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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환경 배추·무 직접 가꿔보세요”

    올가을에는 손수 키운 친환경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가 보는 건 어떨까. 서울시민이라면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27일 개장하는 ‘하이서울 친환경 가을농장’ 13곳에서 직접 김장 채소를 수확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 농장은 서울시가 2000년부터 환경보호와 친환경농업 실천을 위해 서울시민의 식수원인 팔당호상수원보호구역 내에 조성했다. 무농약·무화학비료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데, 올해 봄농장에는 시민 2만 8000여명이 참여해 열무, 상추, 감자 등을 수확했다. 이번에 개장하는 가을농장은 남양주시 진중리, 송촌약수터, 삼봉리, 고개너머, 양평군 부용리, 교동, 문호리, 수능리, 광주시 삼성리, 귀여리, 도마리, 번천리, 지월리 등 3개 시·군 13곳으로 총 7000구획, 11만 5500㎡ 규모다. 특히 이 가운데 올해 시범운영하는 남양주 진중리 ‘내 품에 농장’에서는 다른 공동 밭갈이가 아니라 참여자가 직접 농기구로 밭을 갈고 이랑과 고랑을 만든다. 참여시민들은 1구획 당 배추 모종 40주, 무 씨앗 1봉지를 무료로 지급받을 수 있으며, 기호에 따라 총각무나 쪽파, 갓 등 양념류를 심을 수도 있다. 시는 또 톡톡이와 청벌레 등 해충을 막기 위해 유기농 병해충 방제제를 살포하고 웃거름도 지원한다. 박상영 생활경제과장은 “친환경 농산물로 가족 건강도 지키고 이웃 간 정도 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도시농업 실천을 위해 내실 있는 운영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안내는 서울시 홈페이지(www.seoul.go.kr)이나 다산콜센터(120번), 서울시 생활경제과(02-6321-4072, 4088)에서 받을 수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경상북도 봉화-산골마을에 퍼지는 ‘워낭소리’

    경상북도 봉화-산골마을에 퍼지는 ‘워낭소리’

    경북 봉화는 ‘소’같다. 긴 속눈썹에 크고 깊은 눈망울, 무던하고 천진한 입매의 그 소를 닮았다. 봉화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북 봉화는 ‘소’같다. 긴 속눈썹에 크고 깊은 눈망울, 무던하고 천진한 입매의 그 소를 닮았다. 봉화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간의 채찍질에도 아랑곳없이 길가의 풀을 뜯는 소처럼, 봉화는 오지라 불러도 좋을 산골어귀에서 당신과 나의 고향인 듯 터를 잡고 있던 탓이다. 잠시 봉화라는 달구지에 몸을 실어 볼 것. 딸랑… 딸랑… 아련하고도 청량한 워낭소리가 산바람에 실려 환청인 듯 들려올 것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봉화군청 culture.bonghwa.go.kr 1 최 노인의 집은 누추하지만 정겨웠다. 마당 한 쪽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영화 속 장면이 담겨 있어 <워낭소리>를 추억하게 한다 2 영화의 주요 장면과 줄거리가 새겨져 있는 마을 입구의 조형물 3 최 노인과 누렁이가 논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재현한 동상도 마을 입구에 서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누렁이, 여기 잠들다 차는 봉화 읍내를 지나 내성천을 건너고 다시 봉긋한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에 들어선다. 여기 어디쯤이라는데, 여느 호젓한 시골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풍경에 영화 <워낭소리>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넓은 논 사이로 가지런히 난 흙길을 따라 터덜터덜 느릿한 걸음을 옮기는 소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엔 거짓말처럼 영화 속 주인공인 최 노인이 달구지에 실려 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30년 넘게 반복되어 온 풍경이 그렇게 재현되고 있었다. 변한 것은 소 한 마리뿐이다. 영화에 나왔던 소는 죽어 땅에 묻혔고, 지금은 튼실해 보이는 젊은 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푸석푸석했던 털은 윤기가 흐르고 할아버지처럼 바싹 말랐던 몸은 근육질을 자랑한다. 요 녀석의 나이는 일곱 살, 이 누렁이도 그전 누렁이처럼 마흔 살(사람으로 치면 120살쯤 된다고 한다)까지, 잘 살아 줄까? 그들이 걸어 나왔던 길을 되짚어 가니 누렁이와 할아버지의 일터가 나타났다. 논밭 주위로는 영화 속 대사가 적힌 벤치들이 수시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나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나아요.” “농약 치면 소 먹고 죽어. 사료 먹이면 살쪄서 애 못 낳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듯 생생한데, 그중 한 대사에 코끝이 찡하다. “노인네들 겨울 잘 보내라고 나무를 이레 해놓고 떠났다 아입니꺼.” 그 옆엔 누렁이가 묻힌 무덤과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누렁이(1967~2008)’ 할아버지 최고의 친구이자, 최신의 농기구, 최고급 자가용인 누렁이가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이제는 코뚜레와 워낭을 내려놓고 편히 쉬고 있을는지. 일터에서 할아버지 댁까지는 약 1km 정도. 소처럼 느릿하게 걸어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에 자리한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서니 영화 속 정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이른 새벽 허연 김을 뿜어내며 쇠죽을 끓이던 솥이며, 여기저기 쌓여 있는 나뭇짐 그리고 아담한 외양간 들이 묻혀 있던 기억을 속속 끄집어낸다. 외양간에는 아까 그 젊은 누렁이가 긴 혀로 여물을 먹고 있다. 가끔씩 녀석의 턱에 매달린 워낭이 딸그랑 소리를 냈다. 그 워낭소리가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청아하게 마당에 울린다. 어쩌면 변한 것은 없는지도 몰랐다. 우직한 일소들은 하나같이 똑 닮아서 크고 깊은 눈망울에 덤덤하고 천진한 입매를 하고 있다. 그 믿음직한 얼굴과 몸짓이란. 할아버지를 부탁해! 1 거북바위와 연못 그리고 가지런한 돌다리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는 청암정 2 충재 종택은 고향 할머니의 품처럼 넉넉하다. 소풍을 나온 아이들도 할머니 댁에라도 온 듯 마음껏 재잘거린다 3 계곡에 바짝 다가선 석천정사는 자연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옛 사람들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4 향기로운 전통차를 음미하며 청량산의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안심당은 청량사의 명물이다 5 청량산의 하늘다리는 보는 것만으로 오금을 저리게 한다. 하지만 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장쾌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금닭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할아버지와 누렁이를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석천정사石泉精舍’이다. 내성천의 지류인 석천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울울창창한 숲길을 지나 멋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너르게 흐르던 물길은 좁아지며 콸콸콸 시원한 물소리를 내고, 그 물길만큼이나 수려한 석천정사가 자연 속에 폭 파묻힌 채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석천정사는 16세기 중반 충재 권벌의 장남인 청암 권동보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것이다. 정사를 정자와 구분할 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의 유무를 따진다는데, 그래서인지 꽤 규모가 크다. 돌로 축대를 쌓아올리고 계곡에 바짝 붙어선 모습은 자연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옛 사람들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정사에 올라서면 계곡과 바위와 숲이 온통 ‘내 것’인 듯 유유자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석천정사에서 더 상류로 올라가니 갑작스레 숲이 잦아들고 너른 평지가 나타났다. 그 너머로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충재 권벌이 조선시대 기묘사화로 관직에서 물러나 자리를 잡기 시작해 안동 권씨의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하회마을과 내앞마을 그리고 이곳 ‘닭실마을’까지를 영남의 4대 길지로 꼽는단다.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넉넉한 논과 밭이 이어지다간 깨끗한 물길이 마을을 감싸고 흘러간다. 마을 이름도 풍수지리적으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금계포란金鷄抱卵에서 따온 것이다. 세월을 살짝 비껴간 듯한 마을은 고향의 냄새로 가득하다. 명절 때면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닭실마을의 한과를 만드는 손길이 분주하고, 우뚝한 솟을대문을 자랑하는 충재 종택에는 안동 권씨의 일가친척들이 모여 전 부치는 냄새가 진동할 터이다. 가지런한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억 속의 할머니가 버선발로 달려 나올 것처럼 정감 그득한 마을이다. 닭실마을 동쪽에 자리한 ‘청암정靑巖亭’은 마을 산책의 즐거움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거북이 모양의 넓적하고 거대한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그 주위를 둥글게 파서 연못을 만들었다. 정자를 등에 진 거북이가 연못 위를 노니는 형상이랄까. 연못을 건너 정자로 넘어가는 약 6m의 돌다리도 멋스럽기 그지없는데, 우리나라의 직선으로 된 돌다리 가운데 가장 긴 것이라고. 거북바위, 정자, 돌다리, 연못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어딘가 낯익다면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특히 청암정의 돌다리는 <동이>와 <바람의 화원>을 비롯해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애틋한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꼭 한 번 건너봐야 한다. 원수를 만나는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비껴갈 수 없는 사랑의 외돌다리(?)이니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질지도 모를 일 아닌가. 닭실마을┃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63 문의 054-674-0963 www.darsil.kr 열두 연꽃잎으로 감싸인 청량사 청량산(870m)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일주문에서 시작된 가파른 길은 ‘청량사淸凉寺’까지 부단히도 이어지며 장딴지를 묵직하게 했다. 사찰의 경내로 진입해서도 마찬가지. 어찌 이런 지형에 사찰을 건립할 생각을 했던 것인지 경이로울 만큼 가람배치가 독특하다. 가파른 산의 경사면에 건물을 올리려니 높다란 석축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여느 산사들보다 더욱 입체적인 가람배치가 형성된 것이다. 이른 아침 산안개가 자욱하게 몰려드는 경내에 서 있자니 주위가 온통 봉우리들로 가득하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해서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화봉, 향로봉 등 12개 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아 있고, 청량사는 그 한가운데에 자리한 형국이다. 열두 연꽃잎에 감싸인 꽃술이 바로 청량사인 셈이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층 석탑에 서면 청량산의 장쾌한 풍경이 펼쳐져 산행의 고단함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원효대사가 663년 창건했다는 청량사에는 그 깊은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오고 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이곳 청량사에 들렀다고 한다. 약사여래를 모신 ‘유리보전琉璃寶殿’의 현판이 바로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하며, 사찰 오른편에 자리한 응진전에는 공민왕과 그의 부인인 노국공주의 영정이 걸려 있기도 하다. 또 통일신라 말기의 뛰어난 학자였던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운대와 독서당, 명필 김생이 10년간 은거하며 글을 썼다는 김생굴, 퇴계 이황이 성리학을 집대성한 청량정사 등이 산 곳곳에서 여행객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청량사에서 숨을 돌리고 다시 산길을 더듬어 한 30분 정도 오르면 ‘하늘다리’이다. 해발 800m의 높이에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다리는 보는 것만으로 아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현수교라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출렁이는 것이 오금을 저리게 한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태백산맥 끝자락에 걸린 봉화는 면적의 83%가 산이다. 산과 산들이 중첩을 이루며 하늘 끝으로 멀어져 가고, 그 사이사이 작은 마을들이 들어선 모양새는 아득하고 또 신비롭다. 청량사로 되돌아와서 산을 내려오려는데 어디선가 그윽한 차향이 흘러나온다. 시원한 통유리로 청량산의 정경을 감상하며 솔바람차, 오미자차, 작설차 등 전통차를 음미할 수 있는 찻집이다. 그 이름도 ‘안심당安心堂’이다. 차 한 잔을 시키고 창밖을 바라본다. 문득 영화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누렁이가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와 5층 석탑 앞에서 소의 영혼을 위해 기원을 드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소리가 마치 워낭소리인 듯 ‘딸랑’ 귓전을 스치고 지나간다. 청량산도립공원┃주소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로 255 문의 054-679-6653 mt.bonghwa.go.kr Travel to Bonghwa ▶봉화 찾아가는 길 경상북도 봉화를 찾아가는 관문 도시는 영주, 안동, 영양, 울진, 태백 등지다. 사통발달 길이 통해 있지만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시내버스나 택시로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서울에서 영주까지 기차(무궁화호)로는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영주와 봉화를 오가는 버스는 하루 종일 5~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봉화버스터미널 054-673-4400, 영주여객(시내버스) 054-633-0011 ▶봉화에서 가볼 만한 곳 재래시장의 질펀한 흥겨움‘봉화시장’ 봉화군청에서 철길을 건너면 왁자한 시장골목이 시작된다. 봉화시장은 예로부터 영월, 삼척, 울진, 안동, 예천 등지에서 장을 보러 올 만큼 사람들로 붐벼 ‘들락날락 봉화장’이라는 유행어까지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는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장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졌다. 오일장(2, 7일)이 서는 날이면 각설이 공연에 민속품 경매까지 흔히 볼 수 없는 장터 풍경이 펼쳐지니 살 것이 없더라도 눈이 즐겁다. 시장문화사랑방 054-674-2008 이몽룡은 실존인물이다! ‘계서당’ 봉화 읍내에서 내성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이몽룡의 생가로 알려진 계서당이 나온다. <춘향전> 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오랜 연구 끝에 이몽룡이 실존 인물이었음을 밝혀낸 것. 이몽룡은 본래 봉화의 성이성이란 사람이었는데, 계서당은 그가 1610년 즈음 건립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라고 한다. 이중으로 기단을 올려 높다랗게 지은 사랑채와 오른쪽 끝에 만들어놓은 간이 화장실(?)이 볼거리이다. 주소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 그 씁쓸하고 톡 쏘는 맛! ‘오전약수’ 봉화군에는 두내, 다덕, 오전 세 개의 약수터가 유명하다. 그중에서 물야면 오전리에 자리한 오전약수는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기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 약수로 선정됐다고도 하니 그 명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탄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톡 쏘는 맛이 강하고, 철도 많아 매우 씁쓸한 것이 특징이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발견했다고 하여 약수터 옆에는 보부상 조각이 서 있기도 하다. ▶봉화의 맛 3선 송이돌솥밥 봉화는 매년 9~10월 즈음에 ‘봉화송이축제’를 개최할 만큼 자연산 송이가 맛난 지역이다. 송이돌솥밥은 얇게 저민 송이를 밥 위에 살짝 얹고 쪄낸 것으로 향긋한 송이의 향이 입 안을 감도는 맛이 일품이다. 봉화읍내의 ‘솔봉이’ 식당이 송이돌솥밥으로 유명하다. 송이돌솥밥 1만5,000원, 송이전골 1만5,000원, 송이구이 4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232-11 문의 054-673-1090 봉성돼지숯불구이 봉화군 봉성면에는 ‘봉성돼지숯불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식사 때가 되면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예전에는 이곳에 시장이 있었는데, 암퇘지 고기를 소나무 숯불에 구워내는 남다른 향에 사람들이 장보는 것도 잊고 고기를 즐겼다고. ‘상봉숯불식당’도 봉성돼지숯불단지에 자리한 식당 가운데 하나이다. 돼지숯불구이 9,000원, 생삼겹살 1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 363-1 문의 054-672-9783 봉화한약우 봉화는 산악지형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작약, 당귀 등 약초 재배가 활발하다. 이러한 한약재를 첨가한 사료를 먹여 키워낸 한우를 ‘봉화한약우’라 한다. 올레인산을 비롯한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기로 잘 알려져 있다. 봉화읍내에 자리한 ‘은하숯불회관’도 봉화한약우 전문식당이다. 육회 3만원, 생갈비살 2만원, 소고기버섯전골 1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352-2 문의 054-673-1303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8일 TV 하이라이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홈쇼핑은 소비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광고 효과로 연간 매출액 8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환불이나 교환을 하고자 했지만 거절을 당하거나,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다. 홈쇼핑 과대광고로 인한 사기 등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홈쇼핑 피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함께 알아본다.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KBS2 밤 11시 5분) 블루팀과 레드팀은 하와이에 도착한 첫날부터 양 팀으로 나뉘어 대결을 펼쳤다. 시간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양 팀의 암투와 음모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체력에서만큼은 자신만만해했던 블루팀이었다. 그러나 전략 실패로 인해 1, 2회 연속 두 명의 팀원을 잃고 말았는데. ●MBC 스페셜(MBC 밤 11시 5분) 가수 임재범은 1991년 ‘이밤이 지나면’으로 솔로 데뷔 후 발라드와 솔, 알앤드비 등 다양한 음악으로 이름을 알렸다. 사실 그는 1980년대의 전설적인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의 1대 보컬리스트 출신이다. ‘나는 뼛속부터 로커’라는 말로 운을 뗀 후 시나위·부활·백두산 등 전설적인 록그룹들이 활약하던 80년대의 기억들을 소상하게 풀어 놓았다. ●농비어천가(SBS 밤 6시 30분) 자나 깨나 농사밖에 모르던 경기 양평군의 청년들이 떴다. 농기구를 챙겨 집을 나선 청년들이 산을 오른다. 이유는 바로 백야초 때문인데. 매년 백야초를 만든다는 노인회 총무 댁을 찾아가 백야초 구경부터 하는 청년들. 항아리를 열자마자 퍼지는 백야초의 향에 감동 먹은 청년들은 영양만점의 백야초를 만들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한다. ●명의(EBS 밤 10시 40분) 다리를 자주 접질리는 30대 환자가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보다 자주 발목을 접질렸다. 그런데 2년 전 계단에서 크게 발목을 접질린 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습관적으로 발목을 다치게 됐다. 오랜 시간 접질림이 반복되면서 그의 인대는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손상됐다. 그에게서 정상적인 인대 조직은 찾아 볼 수 없게 됐는데…. ●전기현의 씨네뮤직(OBS 밤 11시) 라디오를 통해 월드뮤직 팝 칼럼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전기현. 그가 처음으로 TV 방송 진행을 맡는다. ‘전기현의 씨네뮤직’은 영화음악 전문 프로그램으로 주류 팝음악의 상업성과 획일성을 배제했다. 세계 각지의 문화적 지평을 간직하고 있는 영화와 음악의 다양성과 희소성을 마니아적인 감성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 [문화마당] 귀농인과 귀예인/공선옥 소설가

    [문화마당] 귀농인과 귀예인/공선옥 소설가

    어린 시절 동네에 들어온 곡마단이 잊히지 않는다. 서커스단, 혹은 쇼단이라고도 했다.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음악극도 하고, 마술·줄타기·차력 같은 서커스도 하는 종합예술가들이 이따금 마을 공터에 나타나곤 하였다. 그들은 종이 메가폰으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주민 여러분 오늘밤…”을 외치며 조무래기들을 뒤에 달고 골목을 누볐다. 물론 그들은 문화와 예술뿐 아니라 약도 팔았다. 정말 약인지 어쩐지는 알지 못해도 사람들은 그들이 들려준 노래, 그들이 보여준 굿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만병통치약’을 하나씩 사게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명절 뒤끝이나 국경일을 즈음하여 ‘콩쿠르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나뭇가지와 꽃 같은 것으로 무대를 그럴싸하게 꾸미고 마을에 있는 악기란 악기는 총동원하여 팡파르를 울리고 사람들은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재담이면 재담 같은 것으로 각자 가지고 있는 끼를 발산하였고 부상으로 나누어 주는 플라스틱 바가지, 양은솥 따위를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린 채 받아 가곤 하였다. 아무리 작은 고을이어도 읍내에는 극장이 두어 개는 있게 마련이었다. 시골사람들은 장에 간 길에 극장에도 들러 당대의 영상문화를 즐겼다. 까막눈 우리 엄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마부’를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추억했다. 그것을 보던 날의 행복을 반추했다. 그 모든 풍경은, 그 모든 추억은 농촌이 ‘잘살기’ 이전 시절의 풍경이고 추억이다.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농촌에 소위 ‘소득증대사업’의 일환으로 비닐하우스가 생기고 축사가 생기고 공장이 지어지는 동안, 그래서 농촌에 돈이 많아지고 텔레비전을 사고 차를 사는 동안 ‘문화와 예술과 약’을 팔던 그 종합예술가들은 더 이상 시골에 오지 않게 되었다. 잘살아야 하니까 소득증대 사업을 벌였고, 그 덕분에 텔레비전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더 이상 마을에서 콩쿠르대회는 열리지 않았다. 어쩌다 연다 해도 예전처럼 재미나지가 않게 되었다. 콩쿠르대회에 나온 사람들이 예전처럼 자신만의 재주를 자신만의 기량으로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모르게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 흉내를 내기 때문이었다. 읍내의 극장들도 사라졌다. 잘살아 보자고 지붕 개량도 하고, 마을길도 넓히고, 신작로도 아스팔트로 바꾸고, 새집도 짓고, 농기구가 아닌 농기계를 들여서 일이 편해졌는데도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은 잘살아 보려고 하면 할수록 빚이 늘어났다. 이름하여 ‘농가부채’는 이제,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되었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이 늘어나는 그 기묘한 조화 속에 사람들의 가슴이 짓눌리는데, 혹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주민 여러분’을 누가 외친다 한들 문화와 예술을 제대로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빚을 갚으려면 일을 해야 하니 시간은 없고 몸은 피곤해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오락’을 ‘유일한 문화’로 여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군 단위에 문화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문화원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농촌사람들이 언제까지나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일방적 영상을 바라보는 것을 유일한 오락거리, 유일한 문화생활로 여기며 살아야 하는가. 이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귀농인’뿐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이야말로 ‘귀예인’이 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각 지역의 문화원에서 그 ‘귀예인’들을 적극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길 바란다. 그래서 그 예술을, 그 예술인을 만나고 싶으면 도시 사람들이 예술인이 살고 있거나 그 예술이 펼쳐지고 있는 시골로 찾아가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문화와 예술 한번 즐기려면 도시로 가야 하는 이런 ‘문화’, 이젠 정말 신물이 난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이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단체장이 나서서 문화와 예술로 ‘소득증대사업’ 한번 해보기를 권한다.
  • 노원, 마을공동체 공원 조성

    노원구 불암산 자락에 지역 주민이 손수 가꾸는 공원이 오는 11월 말 들어선다. 서울시는 노원구 상계동 95-336 일대 불암산 자락 1만 6923㎡를 시 제1호 마을공동체공원으로 조성한다고 7일 밝혔다. 이는 급격한 도시화와 도시재개발로 붕괴되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다. 최광빈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은 “주민들이 논쟁하는 기회가 길어질수록 지역 커뮤티니가 살아나더라.”며 “역시 불암산 마을공동체공원 조성 과정에서 공동체 회복 운동의 성격을 얻었다.”고 말했다. 시는 불암산 공동체공원 진입로의 자연스러운 바위 암반을 보존하면서 경사지에는 허브 식물을 재배하는 공간(820㎡)을 배치하기로 했다. 중앙에 들어설 과수원(770㎡)에는 자두, 살구, 매실, 모과, 복숭아 등을 심어 주민과 함께 가꿀 예정이다. 공원 전체로는 소나무 등 키 큰 나무 830그루, 명자나무 등 키 작은 나무 3990그루, 옥잠화 등 초화류 2만 9600포기를 심는다. 1120㎡에는 가구당 10㎡(2×5m) 규모의 텃밭 64곳을 만들고 인근에는 원두막, 음수대, 농기구 보관소, 관리소, 화장실을 겸한 건물 1동을 설치한다. 과수원과 텃밭 사이에는 작은 시냇물을 흐르게 하고 순환 산책로에는 야외 체력단련 시설과 테이블을 갖춘 데크를 만들기로 했다. 다음달 말 착공할 예정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서울서 ‘대장장이 45년’ 류상준·상남 형제

    [김문이 만난사람] 서울서 ‘대장장이 45년’ 류상준·상남 형제

    단조(鍛造)의 예술이다. 아무리 딱딱한 쇳덩이라도 필요한 생활 도구로 척척 만들어 내니 말이다. 역사를 거슬러 천년의 기술도 뚝딱 재현해 낸다. 인기 TV드라마 ‘서동요’ ‘대장금’ ‘주몽’ ‘태왕사신기’ 등에서 봤던 소품 도구도 그러한 단조의 예술로 빚어냈다. 하여 어떤 시인은 신화창조의 영웅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류상준(58)·상남(55)형제. 요즘 같은 ‘현대문명’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45년째 대장장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형제끼리 아름다운 동행의 길을 걷고 있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장장이로 열심히 땀을 흘리며 집도 사고,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행복하게 산다. 이쯤 되면 실업난이라는 이유로, ‘눈높이’라는 핑계로 탱자탱자 노는 이들에겐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수색역 바로 옆 ‘형제 대장간’. 10평밖에 안 되는 공간이다. 두 형제는 뜨거운 화덕 앞에서 쉴 새 없이 메질을 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두들기고 다지고, 벌겋게 달궈진 고철덩이들은 형제의 손기술에 의해 새로운 모양으로 태어났다. 낯선 손님이 왔음에도 “잠깐만 기다리쇼.”라는 말만 던지고는 바삐 일만 한다. 그렇게 20여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인터뷰에 응했다.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장간 안에는 낫, 도끼, 지렛대, 이북호미, 경기호미, 낙지호미, 굴 까는 조새 등 생활 주변에서 사용되는 각종 도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앉을 의자 하나 놓을 공간도 없어 서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형제에게 뭣부터 물어볼까 찬찬히 생각하다가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인사했다. 형 상준씨가 “천직인데요, 뭘.”이라면서 피식 웃는다. 천직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말 그대로 타고난 직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람을 느끼고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겠다. 다음 궁금증이 ‘얼마나 벌까’였다. 이번에는 동생 상남씨가 “신문에 쓸 건 아니겠지요.”라면서 “(한달) 천만원 정도 벌어요.”라고 답한다. 이어 “나는 월급을 받고 형은 사장님이다.”라면서 웃는다. 또 생긴 궁금증, 과연 자녀분들은? 형 상준씨는 “우리는 딸만 둘인데 지금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생 상남씨는 “우리집 아들은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하고 얼마 전에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화 하나. 상남씨의 아들이 취직면접 때였다. 면접관이 아버지 직업을 묻자 아들은 “수색에서 형님과 함께 대장장이로 일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사는 집안이구나’라고 느꼈던지 다음 질문을 안 하고 그냥 통과시키더라는 것. 형 상준씨도 한마디 거든다. “우리집 딸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버지가 대장장이라고 자랑을 해 학교 어린이들이 단체로 대장간 체험을 하러 오기도 했지요.” 잠시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 미안해진다. 그래서 얼른 화제를 바꿨다. 훌륭하게 살아온 대장장이의 내력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형 상준씨가 말한다. 서울 모래내(남가좌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대장간을 보면서 신기함에 빠졌다. 쓸모없는 쇳덩어리들이 생활 도구, 농기구 등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졌다. “저는 원래 공부에 취미가 영 없었어요. 공부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한테 ‘중학교 진학을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어떤 부모도 그런 자식을 좋아할 리 없지요. 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렇다면 기술을 배우라. 밥은 안 굶을 것이다’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동네 대장간으로 달려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때 대장장이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박용신(4년전 작고) 스승님이었지요. 풀무질부터 차근차근 배웠습니다.” 1966년 당시 대장간에서 받은 첫 봉급은 1000원이었다. 그때 호미 한 자루 가격이 50원. 일당으로 따지면 비록 호미 한 자루 값만도 못했지만 그는 군소리 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쇠망치를 잡는 단순한 일이었으나 천직으로 여기고 열심히 대장장이의 길을 닦았다. 또한 당시 아버지는 편자 박는 일을 했는데 틈틈이 시간나는 대로 아버지한테 그 일을 배우기도 했다. 성격이 워낙 꼼꼼해 물건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런 점이 스승한테 인정을 받으면서 10년동안 모래내에서 대장장이 기술을 익힌 뒤 1976년 서울 암사동으로 가서 대장간을 차렸다. 그의 정성스러운 솜씨로 젊은 나이에 단골손님들도 많이 생겼다. 6년 뒤인 1982년, 상준씨는 다시 모래내에서 대장간을 차렸고 1997년 수색으로 옮기면서 동생이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 이르자 동생 상남씨가 얘기한다. “형님은 일찍 대장장이 일을 시작했고 저는 원래 장사를 했어요. 떡집, 야채장사, 치킨집,옷장사 등 안 해 본 게 거의 없어요. 그러다가 거덜나서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가 됐지요. 친구집에서 전전하기도 했고…. 그런 저를 보고 형님이 대장장이 일을 같이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흔쾌히 받아들였지요. 같이 한 지 15년 됐는데 그 사이에 빚도 갚고 집고 사고 자식들 대학 보내고 다 했습니다.” 그는 또 “형님도 월세 살다가 6년전에 집을 장만했고 외환위기(IMF) 당시 은행에서 빌린 3000만원도 열심히 일해서 다 갚았다.”면서 “대장일을 하다 보니 땀 흘린 만큼 돈도 벌고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원래 1년만 해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오게 됐다. 이제는 천직으로 여긴다.”고 털어놓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형제는 주로 농기구를 제작했다. 지금은 공사장이나 건축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 얼마 전에는 북한의 개성공단 건설에 필요한 도구를 2000여개나 주문받아 납품했다. 최근에는 방송국에서 자주 찾아온다. 역사드라마에 사용할 소품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쇄도한다. 역사속의 병장기는 물론이고 드라마 ‘식객’에서 사용된 ‘서울식 전통 칼’도 제작해 화제가 됐다. 이래저래 형 상준씨는 TV에도 여러번 출연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쇳덩이로 예쁜 장미꽃을 만들었고 EBS 특집 ‘극한직업’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금나라 병장기를 재현하고 있다. 칼과 창, 방패 등 금나라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는 대학교수의 부탁을 받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전국에서 주문 오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외국인 교수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영국에서 매년 대장장이 국제대회를 여는데 한번 참가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문화재청에서는 인간문화재급에 해당하는 명장 신청을 하라는 연락이 왔지만 형 상준씨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와 글도 잘 모르니 싫다.”면서 뿌리쳤다. 가끔 칼을 잘 만드는 명장도 찾아와 한수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형 상준씨한테 지나온 대장장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스승이 만든 물건을 가지고 와서 수리해 달라고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 스승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홀로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애들도 다 잘 커 주고 그러니 걱정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도 직업을 잘 택한 것 같아요.” 그는 똑같는 김장 김치라도 써는 칼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듯 정성을 쏟는 만큼 물건의 질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전통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에만 해도 현재 10개 미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제품도 많이 들어오고…. 특히 대장장이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몇년 후면 아마 서울에서 대장간이 사라지고 말걸요.” 형제의 꿈은 무엇일까. 동생 상남씨가 말한다. “그동안 만든 작품들이 많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병장기라든가, 삼국시대의 농기구 등 역사 속의 우리 것을 재현하는 전시관을 만들 생각입니다. 또한 대장간 체험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견학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60대 후반에는 꼭 성사시킬 것입니다.” 형제는 뜨거운 화덕 앞에서 다시 망치를 들고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두들긴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45년 세월만큼이나 단단해진 그들의 인생이 아름다워 보인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류상준·상남 형제는 “국내 첫 鍛造 예술전시관 만들겁니다” 형 상준씨는 1954년 서울 모래내(남가좌동)에서 8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1966년 수색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래내 대장간에서 스승 박용신(4년전 작고)씨한테 대장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0년동안 모래내에서 기술을 익힌 뒤 1977년 서울 암사동으로 옮겨 대장간을 열었다. 지금의 수색역 근처에서 대장간을 차린 것은 1997년. 이때부터 동생과 함께 ‘형제 대장간’을 시작했다. 그의 딸 둘은 중앙대와 추계예술대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있다. 동생 상남씨는 1957년 모래내에서 태어나 수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장사꾼으로 나섰다. 떡집, 치킨집, 옷장사, 야채장사를 하다가 망해 15년 전부터 형과 함께 대장장이 일에 동참했다. 상남씨의 아들은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하고 현재 KCC그룹에 다니고 있다. 형제의 꿈은 국내 최초 단조예술 전시관을 만드는 것이다.
  • 농산물가 급등에도 농가는 돈 못번다

    지난해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농가의 채산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의 채산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농가교역조건지수는 지난해 4분기 90.4로 전분기의 85.8보다 나아졌지만 2007년 2분기(96.0) 이후 15분기 연속 100을 밑돌았다.  농가교역조건지수는 농가판매가격지수를 농가구입가격지수로 나눈 값으로 100 아래로 내려가면 농산물 판매가격이 가계용품과 농업용품,임금,농기계이용료 등 농가가 농사를 지으려고 사들인 물품값보다 낮다는 의미다.  이 지수는 2007년 1분기에 103.3을 기록했지만 2분기에 96.0으로 떨어졌고 2008년 2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80대에 머물렀다.  농가판매가격지수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은 지난해 2분기에 -0.6%에서 3분기 5.1%,4분기 13.5% 등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농가판매가격지수의 상승세는 농산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에는 못 미쳤다.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농산물 상승률은 지난해 2분기 5.7%,3분기 17.9%,4분기 30.8% 등이었다.  농가구입가격지수는 지난해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0.6% 상승에 그쳤으나 3분기 1.6%,4분기 3.2% 등으로 원가 부담이 늘었다.  농가구입가격지수 가운데 농업용품(종자,비료,사료,농기구 등)은 지난해 2분기 -3.6%,3분기 -1.7% 등으로 안정됐으나 4분기에 0.6%로 반등했고 농촌임료금도 2분기 -0.1%에서 3분기 1.6%,4분기 4.6% 등으로 오름폭을 키웠다.
  • 정병국 편법 형질변경 의혹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 후보자가 국회의원이 되고난 뒤 2004년 부인이 토지를 매입해 편법으로 형질을 변경, 시세보다 높은 차익을 누렸다는 것이다. 10일 민주당 최문순 의원과 국회 인사청문요청안 등에 따르면 “정 후보자가 지난 2004년 사들인 경기 양평 땅이 편법으로 논에서 대지로 형질이 변경돼 땅값이 3배 가까이 올랐다.”고 주장했다. 형질 변경은 논→밭→대지의 순서로, 정 후보자의 땅은 곧바로 대지로 변했다는 것이 편법 형질 변경 주장의 핵심이다. 최 의원 측은 “정 후보자의 부인 이상희씨는 2004년 양평군 개군면 77-1의 ‘무허가 건물(175㎡)’이 지어져 있는 논 1673㎡를 사들였다.”면서 “그 뒤 2007년 논의 40%인 660㎡를 대지로 형질 변경을 하고 나머지 논의 일부는 다시 창고(957㎡)로 지목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최 의원 측은 “2000년 당시 3200만원이었던 땅(주택) 값은 올해 기준 8900만원으로 뛰고, 창고 자산 증가분을 더하면 모두 1억 3000만원의 부동산 시세차익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인사청문요청안 자료에 따르면 창고로 지목을 변경한 토지는 현재 대부분 차고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 의원 측은 “토지대장에 보면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친척들 소유로 보이는 땅을 2000년도에 부인 명의로 등기도 하지 않은채 재산 신고를 하고, 2004년에 매입한 것도 의문”이라면서 “양평군청이 지역구 의원인 정 후보자에게 특혜를 베푼 것은 아닌지 소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1995년 사촌이 사놓은 땅을 2004년 부인이 모두 샀으며 논 위 건물은 친척이 지은 것”이라면서 “친척과의 공동소유 부분이 정리가 안 돼 등기이전이 10년가량 늦어졌지만 창고는 대신 농사를 짓는 사람이 필요해 만들었다. 지난해 홍수가 나 농기구가 다 쓸려갔지만 일부가 남아 있다. 농지법상 문제가 있으면 군청에서 허가를 내줬겠느냐.”고 해명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제사 필수품 ‘통북어’ 가장 무섭다는 ‘창귀’ 왜?

    제사 필수품 ‘통북어’ 가장 무섭다는 ‘창귀’ 왜?

    통북어는 개업 고사 같은 간단한 제의부터 마을제사 같은 대규모 제의를 지낼 때 빠지지 않는 제물이다. 왜 그럴까. 크게 뜬 눈으로 잡귀가 있는 곳을 잘 살피고, 큰 입으로 액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장승제 때 통북어를 백지로 둘둘 말아 천하대장군 몸통과 천하여장군 머리에 실타래로 묶는데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남자는 허리로 힘을 쓰고, 여자는 머리에 짐을 이기 때문이며 실타래로 묶는 것은 잡귀를 오래 잡아 두라는 의미다. 창귀는 수많은 귀신 중에 가장 무서운 귀신으로 통한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창귀는 호랑이의 노예가 되어 항상 곁에 붙어다니며 시중을 들고 먹잇감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사돈의 팔촌뿐 아니라 이웃사촌, 친구 등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간다는 등골 오싹한 설화를 갖고 있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서 매년 6월 열리는 금산농바우끄시기도 흥미롭다. 장수 갑옷이 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농바우(반닫이를 거꾸로 매단 듯한 형상의 바위)에 동아줄을 매고 이를 잡아당기면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다. ‘농바우가 움직이면 세상이 개벽한다.’는 금기를 역이용, 하늘을 노하게 해 비를 내리게 한다는 조상들의 지혜와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마을신앙사전’(전 2권)을 최근 펴냈다. 한국의 마을신앙에 관한 정보를 집대성한 최초의 백과사전이다. 박물관이 기획한 ‘한국민속신앙사전’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액을 방지하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생겨난 마을신앙은 수천년 세월 동안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그만큼 사전에 담긴 양도 방대하다. 마을신앙 연구자 108명이 2년여에 걸쳐 총 1050쪽 분량을 담아냈다. 자문위원단 10명과 감수위원단 5명의 철저한 감수도 거쳤다. 제의(祭儀), 제장(祭場), 신격(神格), 신체(神體), 제물(祭物), 제구(祭具) 등 8개 분야로 나눠 핵심 표제어 455개에 대한 설명과 사진 1100여장을 수록했다.  이를 테면 대전 산내동의 디딜방아뱅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기구를 신성한 물건으로 관념화해 전염병을 막고자 한 의례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이웃마을에 가서 디딜방아를 훔쳐와 마을 입구에 거꾸로 세워 두고 피 묻은 속옷을 매어 질병이 마을에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 잡귀나 호랑이와 싸우다 다쳐서 다리 하나를 잃은 삼족말 철마, 결혼 못 하고 죽은 처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목제남근,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신격화한 김부대왕 등에 관한 설화도 눈길을 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사전편찬팀장은 “마을신앙에 관한 조사연구서는 기존에도 많이 나왔지만 중구난방 격으로 체계화되지 못했다.”면서 “마을신앙을 학문적으로 정립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15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 까닭에 일반인이 구입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박물관은 내년부터 마을신앙사전 웹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오프라인 사전에 수록하지 못한 내용까지 얹어 도판 5만 6000여장과 동영상 334건, 음원 1662건을 서비스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플러스] 수확·탈곡 친환경 영농체험

    강동구(구청장 이해식) 14일 일자산 영농체험장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벼를 베고 탈곡하는 가을걷이 행사를 한다. 신명초등학교 학생들과 지역주민 등 150여명이 참여해 낫으로 벼를 베고, 발로 원통을 돌려 탈곡하는 발탈곡기와 벼를 훑어서 탈곡하는 홀테 등 우리 고유의 전통 농기구를 이용한 타작법과 볏단 나르기, 쌓기 등을 체험한다. 이날 수확한 약 200㎏의 쌀은 강동지역의 사회복지단체에 전달한다. 푸른도시과 480-1395.
  • 구하라, 트랙터 자격증 불합격 “약속 못 지켜 죄송”

    구하라, 트랙터 자격증 불합격 “약속 못 지켜 죄송”

    카라 구하라가 농기계 운전기능사 자격증 필기시험에 불합격했다. 구하라는 17일 오후 11시5분 방송된 KBS 2TV ‘청춘불패’에서 농기계 트랙터 운전을 위해 ‘농기계 운전기능사’ 자격증에 연예인 최초로 도전했다. 시험전 태국을 찾은 구하라는 태국 CF 촬영 등 끊임없는 스케줄에서도 농기계 자격증 책을 꼭 쥐고 틈틈이 공부에 매진했다. 구하라는 농기구 필기 시험날, 당당히 시험장에 입장했지만 시험내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는 결국 탈락. 대국민 약속 지키기에 실패한 구하라는 “최선을 다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열심이 하는 구하라 되겠다. 죄송하다”고 심정을 전했다. 구하라의 탈락은 필기시험 전 트랙터를 운전하며 직진, 후진 등 처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능숙하게 운전을 했던 터라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G7(나르샤 김소리 빅토리아 주연 효민 한선화 구하라) 멤버들이 강원도 논 김매기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고현정 징크스 때문에 MC몽 군대 간다? ▶ 박보람 ‘세월이가면’ R&B에 극찬 “나이 맞지 않게 완벽” ▶ 최희진 협박피해자 고백…”자살 협박 돈 요구” ▶ 박봄, 고기중독 산다라박에 희생양 “나만 살쪄” ▶ 수잔 보일, 교황 앞에서 ‘천상의 목소리’ 선사
  •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지역경제 활로 찾는다] (8) 우수 정보화마을 충남 아산 ‘기쁨두배마을’ ‘내이랑마을’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지역경제 활로 찾는다] (8) 우수 정보화마을 충남 아산 ‘기쁨두배마을’ ‘내이랑마을’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미래 선진 농어촌 모델로 정보화마을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상지역은 정보화 소외지역인 농촌·어촌·산촌지역 중 주민 참여의식과 발전 가능성이 높은 마을을 우선 선정해 지원해 왔다. 2001년 24개 시범마을 조성을 시작으로 현재 363개의 정보화마을이 조성됐다. 마을에 정보센터를 마련해 문화격차가 해소되고 활발한 자치회를 통해 지역공동체 의식이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주말 우수 정보화마을로 선정된 충남 아산의 ‘기쁨두배마을’과 ‘내이랑마을’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기쁨두배마을’. 주변은 공단부지로 수용돼 각종 건물이 들어서기 위한 터 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조금 더 차를 몰고 들어가면 넓은 배밭 가운데 기쁨두배마을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이다. 전체 58가구 중 30가구가 과수(배) 농가이다. 이 마을은 2003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됐다. 마을 한가운데 들어서면 정보화회관과 농촌 체험장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회관에서는 마침 수익사업으로 벌이는 오토캠핑장 운영과 출하를 앞둔 배 판매를 놓고 주민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 마을의 최고 자랑거리는 배나무다.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배가 한 해 1000t가량 생산된다. 특히 배맛이 좋을뿐더러 봄이면 하얀 배꽃으로 마을 전체가 뒤덮인다. 마을 운영위원장인 한상호(55)씨는 “정보화마을 조성 당시 정부로부터 9000여만원을 지원받았다.”면서 “이후 시설비용이 모자라 마을주민 18명이 900만원을 출자해서 정보화마을 인프라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기쁨두배마을이란 브랜드는 전자상거래를 위해 주민에게 상금을 내걸고 공모한 이름이란다. 처음에는 온라인 판매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젠 효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온라인상에서 마을 홈페이지(http://asan.invil.org/)를 보고 농촌체험 관광을 오는 사람들도 봇물을 이룬다. 특히 주말에는 150명 가까이 찾아와 동네가 외지인들로 북적인다. 2007년 조성한 오토캠핑장(이용료 1만 5000원)도 인기다. 마을에는 명산이나 계곡도 없지만 마을주민들이 나서서 음식을 나누고 인정을 베풀어 한 번 찾은 사람이 또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보화마을로 지정되면서 홈페이지에 주변 명소와 음식점까지 상세히 소개되면서 기쁨두배 마을은 유명해졌다. 기쁨두배마을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내이랑마을 역시 자연자원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앞에는 삽교천으로 나가는 큰 도로가 나있고, 마을을 휘감고 수없이 많은 전신주들이 서 있다. 이런 곳에 외지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서야 궁금증이 해소됐다. 천혜의 관광자원은 없지만 마을사람들이 노력해서 명품마을로 만든 것이다. 그 축에는 정보화라는 매개체가 큰 역할을 했다. 이 마을은 2005년에 정보화마을로 지정됐다. 정보화교육을 통해 성공한 마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정보화교육장이 마련되고부터 주민들이 한덩어리로 뭉치게 됐다. 마을소득을 높이기 위해 농사방법을 유기농법으로 바꿔 유명한 유기농마을로 탈바꿈했다. 내이랑마을(http://e-rang.invil.org/)의 성공은 신상품 개발에 주민이 적극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기농 쌀과 뽕잎을 갈아 넣은 반죽에 골담초 등 야생화가 들어간 화전과 유기농 토마토, 오디, 뽕잎 인절미, 웰빙 팥빙수 등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마을의 ‘대보름 축제’도 온라인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써, 농촌체험마을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달기농장 박응서(여·52)씨는 “최근 2개월 동안 인터넷 홈피를 통해 토마토즙 1000만원어치를 주문받았다.”면서 “앞으로 홈피를 더욱 활성화시켜 자연 출하량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의 아이디어로 조성된 ‘내이랑 농촌체험 박물관’도 인기다. 집안에서 나뒹굴던 농기구와 옛 소품들을 한데 모아 박물관으로 꾸민 것인데 탐방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내이랑마을은 볼거리가 없는 핸디캡을 축제와 신상품 개발, 그리고 전자상거래로 활로를 개척한 사례로 주목을 끈다. 관광자원 없이도 정보화교육을 활용해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높은 수익도 올리는 내이랑마을의 사례는 성공한 정보화마을로 귀감이 될 만하다. 글 사진 아산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부천도 ‘오정 올레길’ 조성

    부천시 오정구는 1일 대장동과 오정동 일대 논길과 마을길, 둑길을 잇는 ‘오정 올레길(일명 대장들길)’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대장들길은 오정대공원∼쌍수문∼말무덤∼오곡다리 논길~대장동 마을길~동부간선 수로둑길을 잇는 10㎞로 꾸며졌다. 이 길에는 시민들이 걷는 데 지루하지 않도록 솟대 10개와 장승, 마을 유래 안내판 등이 세워졌고 마을 주택 담 10곳에는 농기구와 옛 농촌 풍경,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장동 마을 전경 등이 그려져 있다. 길 옆에는 화단 3개도 조성돼 있다. 오정동 주민자치센터는 시민들이 사계절 정취를 느끼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올레길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했다. 이달 중순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건강걷기대회를 열고 8월까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곤충관찰 체험행사를 갖는 한편 추수철인 9∼10월에는 황금들녘 걷기대회와 연날리기대회를 개최키로 했다. 또 11∼12월엔 농산물 직판거래장을 운영하고 떡국 나눠먹기 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바이오닉’ 생체공학 다리 이식받은 최초 고양이

    생체공학 다리를 이식받은 고양이의 모습이 최초로 공개됐다. 9개월 된 고양이 ‘오스카’는 얼마 전 집 마당에서 놀다가 농기구인 콤바인에 뒷다리 2개를 모두 잘리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이후 걷거나 뛸 수도 없는 어두운 삶을 살다, 주인인 케이트와 마이크 놀란, 그리고 뛰어난 수의사의 기술로 ‘바이오닉’(생체공학) 다리를 이식받는 행운을 거머쥐게 됐다. 오스카의 생체공학 다리 이식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수의과 최고임을 인정받은 노엘 피츠패트릭 박사다. 피츠패트릭 박사는 지난 1월 고양이에게 세계 최초로 금속 무릎 관절을 이식했고 2007년에는 개에게 의족을 채우는 시도를 해 전 세계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오스카의 발목 주위를 깨끗이 정리한 뒤 구멍을 뚫어 생체공학 다리를 이식했고, 그 주위로 근육과 피부가 자라 완벽한 그의 다리가 될 수 있게 했다. 오스카는 수술한지 단 하루 만에 몸을 일으키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아직 2차 감염의 우려가 있지만, 4개월 정도의 집중치료를 잘 버티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의료진은 전했다. 이 소식을 전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넷판은 “오스카의 ‘맞춤공학 임플란트’다리는 과학이 자연계를 완벽하게 모방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푸른농촌 희망찾기]② 시범마을 현장을 찾아

    [푸른농촌 희망찾기]② 시범마을 현장을 찾아

    농촌의 홀로서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 스스로의 변화 의지다. 농촌진흥청의 ‘푸른농촌 희망찾기’ 운동에 참여 중인 농가들도 자립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깨끗한 농산물 재배, 건강한 농촌사회 만들기 등 각 마을의 목표를 위해 노력 중인 농촌 현장을 찾았다. ●유기농 곡물 맞춤생산 “생산만 해서는 미래가 없어요. 가공·유통까지 겸해야 부농(富農)의 꿈이 영글 수 있습니다.” 13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평리 식품가공단지. 마을 주민 서너명이 대형 정선 선별기계 앞에서 제품포장에 열심이다. 잡곡마을로 유명한 사평리는 재배한 곡류를 보리차와 엿기름, 찹쌀가루 등 다양한 제품으로 가공, 판매한다. 이 지역 잡곡 농가의 밭 100㎡당 수익은 150여만원. 타 지역 잡곡 농가의 평균소득(100㎡당 60만~70만원)보다 2배 이상 높다. 사평리 농민들이 잡곡 경작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린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주로 벼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쌀 과잉생산 등으로 농가소득이 줄자 다른 수익원을 찾아나섰다. 이때 주목한 것이 잡곡이었다. 건강식이어서 품질 보장만 되면 미래가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유기농 잡곡재배에 뜻을 같이한 10여농가는 2000년 도시지역 생활협동조합과 공급계약을 맺고 맞춤형 곡물생산을 시작했다. 인공비료를 쓰지 않아 정부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은 덕에 2004년 이후 ‘참살이(웰빙)’ 바람이 불면서 주문이 크게 늘었다. 문제는 품질관리와 유통체계였다. 낮은 인지도 탓에 판로개척이 어려웠고 원곡(元穀) 판매만으로는 수익창출에 한계가 있었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한 기술 및 자금력이 절실했다. 농촌진흥청이 지역 특성화를 위한 도우미로 나섰다. 농진청은 공모절차를 거쳐 이 지역을 잡곡 특성화마을로 선정했다. 덕분에 사평리 웰빙잡곡사업단지는 농기계 구입비용 등으로 지난해부터 2년에 걸쳐 9억 3000여만원을 지원받았다. 농진청은 또 우수 잡곡 종자를 우선 보급하는 한편 포장 및 상품개발 노하우도 전수했다. 또 컨설팅 지원을 통해 판매 홈페이지 구축 등 판로 확보도 돕는다. 경종호(54) 괴산잡곡영농조합 대표는 “농진청의 도움으로 수익이 크게 늘었다.”면서 “팝콘용 옥수수 생산 등 가공품을 다양화해 수익원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건강 컨설팅으로 ‘농부증’ 극복 ‘딸기마을’로 유명한 충남 논산시 노성면 화곡리 주민들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모두 서른여섯 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의 딸기농가는 12곳. 대부분 50대 이상의 장·노년층으로 하루 10시간씩 쪼그려 앉아 딸기밭에서 일하다 보니 마을 주민 72명 중 37명이 ‘농부증’(근골격계질환)에 시달렸다고 한다. 박종필(48) 화곡리 이장은 “온종일 밭일에 시달리다 보면 귀가 뒤 식사만 마치고 잠을 청하기 바빴다.”면서 “몸이 아프니 작업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던 화곡리 주민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2008년 공모를 통해 농진청의 농작업 안전모델마을로 지정된 것이다. 농민들은 농진청의 도움으로 건강검진과 재활치료 등을 받았고 육묘상자 이송기와 전동차 등 고된 작업을 대신해줄 농기구도 지원받았다. 과학적 영농법을 도입한 것도 건강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 논산시와 농진청 등의 도움으로 허리 높이의 딸기 재배상(작물을 기르는 작업대)을 도입한 것이다. 무릎이나 허리 등을 굽힐 일이 줄어들자 농민들을 괴롭혔던 통증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농작업 도구 정리 운동 등을 통해 작업환경도 개선했다. 습관의 작은 변화를 통해 거둔 효과는 컸다. 박 이장은 “농민 건강이 회복되면서 작업능률이 올랐고 덕분에 생산성도 크게 향상됐다.”고 전했다. 충북 괴산·충남 논산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돈 선거’ 봉화 4년만에 또 무더기 입건

    올해 초 돈 선거의 악습을 재연하며 농촌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북 봉화군 상운농협 조합장 선거 금품 살포 사건과 관련, 출마 예정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주민들이 무더기 사법처리됐다. 봉화경찰서는 19일 입후보 예정자 우모(64·전 조합장·구속)씨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농업협동조합법 위반) 로 조합원 510명 가운데 24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상운농협 조합장 선거 출마 예정을 앞두고 있던 우씨로부터 한 사람당 적게는 5만원, 많게는 60만원 등 모두 70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결과 우씨는 사전에 조합원들에 대한 학연, 혈연, 영향력 등을 파악해 조합원 개개인의 지지도를 ‘×, △, ○’로 분류,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금품을 직접 건네거나 지지를 부탁한 후 차량이나 농기구 등에 두고 가기도 했다는 것. 돈을 받은 조합원 중에는 공무원 4명과 농협 직원 3명, 마을 이장 8명도 포함돼 있다. 한편 봉화지역에서는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군수 당선자 측으로부터 10만~20만원씩 돈을 받은 혐의로 주민 130여명이 무더기로 기소돼 1인당 30만~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봉화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예술깃발 200여점 ‘펄럭’

    예술깃발 200여점 ‘펄럭’

    “생명의 바람으로 천년 희망의 깃발을 휘날리자.” 새만금 지구를 세계 속에 알리는 깃발축제가 개최된다. 전북도는 오는 4월 하순 세계에서 가장 긴 33.9㎞의 새만금 방조제 완공에 맞춰 ‘새만금 깃발축제’(엠블럼)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생태환경 사업을 작품으로 연출 깃발축제는 오는 4월23일부터 열흘 간 새만금 방조제 일원에서 펼쳐진다.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육성될 약속의 땅 새만금의 미래와 희망을 부각시키기 위해 ‘깃발예술갤러리’와 ‘깃발 퍼포먼스’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깃발예술갤러리는 새만금의 주요 사업을 깃발 예술로 상징화하는 행사다. 관광, 레저, 농업, 과학연구, 신재생에너지, 생태환경 사업을 재해석해 작품으로 연출한다. 새만금의 탄생, 비상, 생명의 보금자리를 의미하는 대지의 문, 바람의 언덕, 물의 정원, 희망나무, 태양의 신전 등 다양한 깃발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바람개비 조형물, 바람터널, 연을 통해 바람의 움직임을 눈과 귀, 손끝으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솟대, 장승, 허수아비, 농기구, 무당벌레 조형작품을 통해 대지와 소통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표현한다. 깃발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구조물도 만들어진다. 깃발축제의 랜드마크가 될 이 구조물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3m로 넓이가 농구장의 2.5배이고 높이는 10층 건물과 맞먹는다. ●6만여장 깃발에 희망 기원 희망나무로 부르는 이 구조물은 2010개의 깃봉과 6만여장의 깃발을 매달아 대한민국의 희망을 기원하게 된다. 또 해외와 국내 유명 작가들의 창작예술깃발 200여점, 태극기와 이색 깃발작품이 참여하는 군집설치 깃발, 축하휘호깃발, 한국의 전통깃발, 세계 각국의 국기, 교기, 군기, 의장기 등도 전시된다. 한편 깃발축제를 알리기 위한 ‘희망 원정대’가 전국 각 도시를 순회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율동공원 생태학습장 조성 숨은 목적은?

    수도권 남부 최대 자연공원인 분당 율동공원에 목적이 불분명한 생태학습장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그 조성 취지에 의혹이 일고 있다. 성남시는 도시 자연공원인 분당구 율동공원(255만여㎡) 내에 7월까지 생태체험장을 짓기로 하고 최근 실시계획 인가를 마쳤다고 14일 밝혔다. 시는 공원내 5308㎡의 부지에 10억여원을 들여 유리온실(연면적 1229㎡) 형태의 생태학습장을 조성하고, 이 안에 장애인들을 위한 생태학습 체험동·관리동·흙·물·거름·농기구·기초학습관·곤충 생태관·농장 체험장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전용 생태학습장이다. 그러나 공원법상 공원안에는 장애인 등 특정인을 위한 별도의 시설을 지을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시는 장애인 전용 생태학습장인 이 시설을 일반인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공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추진부서와 허가부서 간에 승강이도 벌어졌다. 공원과 직원들은 이 시설이 공원법상 불가능한 시설이라고 주장했으나, 노인장애인과는 일반인도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며 허가를 독촉했다. 공원과는 추진부서 성격상 일반인들을 위한 시설을 추진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노인장애인과의 주장에 밀려 지난해 4월 할 수 없이 허가를 내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현재 분당 인근 맹산(영장산)과 판교에 수만평 크기의 대규모 생태체험관이 추진되고 있어 구태여 율동공원 내 소규모 생태체험관을 강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율동공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4)씨는 “서울대공원 옆에 장애인들을 위한 소규모 대공원을 다시 짓는 격”이라며 “불특정 다수의 장애인들을 생각한다며 대규모 생태체험관에 장애인시설을 제대로 갖추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들도 “당초 체험관 부지는 특정 장애인들이 모여 텃발을 일구었던 곳으로 이들이 시에 유리온실 추진을 줄곧 요구해온 것을 알고 있다.”며 “항간에는 시가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정단체의 표를 의식해 생태공원조성을 강행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이 공원조성을 앞두고 담당부서도 당초 조성취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시 관계자들은 “인사이동이 있어서 조성취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거나 “담당자들로부터 자문을 구한 뒤 조성목적을 알려주겠다.”는 황당한 답변만을 늘어놓고 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기고]서울의 미래에 기대를 거는 까닭/리뱌오 중국건설은행 한국지점장

    [기고]서울의 미래에 기대를 거는 까닭/리뱌오 중국건설은행 한국지점장

    한국에서 생활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한국은 중국과 거리가 멀지 않아 닮은 점도 많지만 또 한국만의 문화와 색채가 강해 참 보면 볼수록 새로운 곳이다. 나는 휴일이나 여유가 생길 때면 서울의 명소를 찾아 다닌다. 기억에 남는 장소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야기하겠다. 열 차례 이상 경복궁을 찾았지만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았고 업무에 지쳤거나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면 근정전 앞을 거닐면서, 인왕산을 병풍 삼고 있는 그 자태에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다. 중국에는 자금성을 비롯해 선이 굵고 규모가 큰 고궁이 대부분이라 경복궁과 같은 한국의 궁을 볼 때면 그 섬세함과 수려한 모습에 감탄을 더하지 않을 수 없다.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한마디로 한국의 대표 생활사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비싼 보물이나 국보들을 전시하기보다는 한국인들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이 가득하다. 게다가 몇해 전 민속박물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좀 더 편한 관람이 가능해졌으며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가이드를 하고 있어, 자칫하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한국의 생활과 문화를 더욱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민속박물관은 3개의 전시실과 야외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야외전시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농기구와 한국의 마을 앞에 세웠다는 장승, 그리고 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까지. 특색 있는 전통 전시품들이 한국의 옛날 모습이 어떠했는지 상상해보게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좋은 볼거리를 정작 서울사람들은 많이 즐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과거를 느낄 수 있는 볼거리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할까? 더 많은 시민들이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에 관심을 갖고 방문해 예전의 한국의 모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서울시의 외국인투자자문회의(FIAC, Foreign Investment Advisory Council)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FIAC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정을 자문하는 기구로, 한강르네상스, 서울디자인프로젝트 등 서울의 다양한 시정에 대해 적극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FIAC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서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또 시정을 논의하다 보니 서울은 참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은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이면 나가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광화문광장과 청계천은 이미 서울사람들의 최고의 휴식명소로 자리잡았으며 한강르네상스, 남산르네상스 등을 통해 서울은 또다시 새 단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점점 늘어가는 나와 같은 외국인들을 위해 외국인이 살기 편한 환경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나는 서울이 좋다. 창밖으로 보이는 그림 같은 산과 나무, 그리고 세련된 빌딩의 조화. 매일매일 새단장을 하며 한층 더 아름다워지고 있는 서울의 모습은 나에게 ‘오늘은 또 어떤 변화가 생길까?’하는 기대감을 안겨준다.
  • [우리말 여행] 헹가래

    기쁘거나 좋은 일이 있는 사람에게 한다. 잘못이 있는 사람을 벌줄 때도 했다. 지금은 벌을 준다는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기쁠 때는 몸을 ‘위로 던졌다 내렸다’ 하지만, 벌을 줄 때는 활개를 ‘당겼다 내밀었다’ 한다. 흙을 떠서 던지는 데 쓰는 농기구 ‘가래’를 사용하는 동작에서 비롯됐다. ‘헌가래’, ‘헝가래’를 거쳤다는 설도 있으나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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