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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학생 성적 높이려면 남녀 따로 가르쳐야”

    남녀 학생 간 성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을 따로 가르쳐야 한다고 영국의 교육기준청(Ofsted)이 제안했다. 교육기준청은 교육부 의뢰로 영국의 교육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2020 비전’ 보고서에서 학교 교사들이 남학생들의 필요에 맞춰 수업 방식을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4일 보도했다. 교육기준청의 수석 교육감사관인 크리스틴 길버트는 남학생들의 경우 경쟁이 심한 과목에 좀 더 집중하고, 논픽션 책들을 많이 읽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중등교육자격시험인 GCSE 성적이 발표됐을 때 남학생들은 7년 전 여학생들이 거둔 성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등 여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많이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또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 특히 남학생들이 낙제생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어와 수학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추가 개인 교습을 실시할 수 있는 비용을 정부가 부모에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GCSE 같은 국가적인 시험 제도는 모든 학생에게 일률적으로 실시하지 말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먼저 보고,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은 준비를 갖춘 뒤에 보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 초등학교 졸업생의 20% 이상이 영어를 읽고 쓰는 능력과 계산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졸업하는 상황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되돌아본 2006 출판계

    올해 출판계는 유명인을 내세운 대리번역과 대필 논란으로 들썩거린 한 해였다. 또 인문학 교수들의 인문학 위기 선언에 이은 출판인들의 인문서적 위기 선언으로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도서정가제 개정 문제는 아직 뚜렷한 결말을 내지 못한 채 올해도 현안으로 남겨 뒀다. 대리번역·대필 논란은 번역가 혹은 저자의 역할과 위상, 출판사의 도덕성 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주목된다. 한경BP는 지난 10월 방송인 정지영씨가 역자로 돼 있는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의 대리번역 의혹이 제기되자 “대리번역이 아니라 이중번역”이라고 해명했지만, 결국 독자들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으로 번졌다. 이어 화가 한젬마씨의 대필사건까지 불거져 출판계는 스캔들로 얼룩졌다. 출판사측과 필자는 대필이 아니라 ‘고쳐쓰기’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같은 ‘정신적 사기’ 행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출판사 대표들의 인문서적 위기 선언은 연구-저술-출판-독자로 순환되는 우리의 지식문화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일각에선 80억원 규모의 정부 우수학술도서지원제도가 있지만 이는 모든 학술분야를 망라한 것인 만큼 인문학 분야만을 별도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그러나 정부와 ‘책 읽지 않는’ 대중을 탓하기 전에 고질적인 사재기 행태나 대리번역·대필 등 출판계 내부의 ‘환부’부터 도려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출판계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앞서야 한다는 얘기다. 도서정가제의 필요성에 대해 출판계는 대체로 공감한다. 도서 할인시장은 현재 출판시장의 3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이처럼 할인시장이 급격히 팽창함에 따라 중소서점은 물론 많은 출판사와 도매업체들이 경영압박에 시달리고 있다.30년 전통의 동화서적이 지난 11월 영업을 중단, 폐업 절차에 들어간 것은 생존위기에 처한 중소형서점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논술 광풍’은 출판계에도 몰아쳤다. 김영사는 인문, 사회, 과학기술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지식인 100명의 사상을 국내 젊은 학자들이 재해석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전 50권) 1차분 15권을 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영사는 최근 논술전담 별도 법인 ‘스쿨 김영사’를 설립, 내년부터 본격적인 논술출판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아동 출판시장에서는 창작동화가 다소 정체된 반면 논픽션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스토리 학습만화 시리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문화마당] 천년을 사는 기술/황현산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프랑스는 역시 유별난 나라다. 하릴없는 사람들이 모여 ‘새해 반대 전선’을 결성하고 거리 행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해서, 해당 웹사이트를 찾아가 보았더니 과연 “2007년의 통과를 적극 저지하라”고 동참을 촉구하는 슬로건이 자못 거창하다. 어이없는 장난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겠으나, 거기에 엄숙한 어조를 들이댄다면, 지난 시대의 삶과 이 시대의 삶이 공존하고 살인적인 경쟁과 넘쳐나는 정보로 혼란한 세계에서 개개인들이 더 이상 외부의 시간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기 자신의 고유한 시간을 안고 살려 한다는 식의 철학적 해석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헛된 해석이 아니다.‘느림’ 또는 ‘느린 삶’을 표방하는 이런저런 교훈적 주장들이 사실 이 철학을 울타리로 삼는다. 세상의 공적 시간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의 개인적 시간 속에서 삶을 기획하려는 태도가 사회적 반항의 표지로 나타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벌써 한 세기 반 전에, 보들레르는 ‘악의 꽃’의 시 ‘키 작은 노파들’에서, 군인들이 군악을 연주하는 공원 한 구석에 떨어져 앉은 한 노파를 이렇게 예찬한다.“아직도 꼿꼿하고 늠름하고, 단정함이 무언지 아는 그 여자는/저 씩씩한 군가를 목마른 듯 들이마시니/그 눈은 이따금 늙은 수리의 눈처럼 열리고/그 대리석 이마는 월계관을 얹기에 알맞은 품새네!” 척추가 내려앉아 키가 작아진 노파들은 이미 자본주의가 삶의 거의 유일한 형식으로 자리잡은 시대에 그 치열한 경쟁을 더는 따라가지 못하고 줄밖으로 물러서 있지만, 그렇게 물러서 있기에 세상의 분주한 발걸음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진보의 신화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살펴볼 기회를 얻는다. 승리하는 것은 그녀들이라는 보들레르의 암시는 조금 과장된 것이겠으나, 그녀들은 적어도 자기를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전설 속의 인물들이나 역사가 희미해진 시대의 인물들은 그 수명으로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단군은 1908년을 살고 신선이 되었으며, 노아는 950세를 누렸고, 삼장을 도와 천축국에 경을 얻으러 갔던 손오공으로 말한다면 석가여래의 법력에 눌려 오악의 암괴 아래 갇혀 있던 세월만 해도 500년이다. 그들의 삶이 특별했다고 하기보다는 계산방식이 특별했다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생명과 정신의 윤회를 믿는다면, 그 윤회 속에서 전생의 기억이 오롯이 보존되기만 한다면, 우리 같은 범인들의 나이도 천 년의 세월로 계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저 긴 수명의 전설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모멘토’ 같은 우리 시대에 만들어낸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더 좋은 설명을 얻는 것이 아닐까. ‘모멘토’의 주인공은 자기 아내가 살해된 날 이후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이다. 그는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메모를 해야 하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겨 기억을 대신하려 하나 그 기록들은 연결되지 않는다. 그에게 10분 저쪽의 시간은 이미 기억이 지워진 전생과 같다. 그가 50년을 살건 60년을 살건 그 자아의 일관성은 10분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그의 수명은 10분이다. 그러나 이 10분 사내의 삶은 우리들이 지금 영위하고 있는 삶의 알레고리일 뿐이다.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우리의 삶은 일주일전이 벌써 전생이다. 그러고 보면 윤회도 일종의 기술이다. 나의 먼 기억과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지금 이 삶에 끌어들이고 운동하게 하여 이 시간에 깊이와 넓이를 주는 어떤 기술. 이제 전시기간이 이틀쯤 남은 만 레이의 전시회도 찾아가 보고, 요네하라 마리의 가슴 아픈 논픽션 ‘프라하의 소녀시대’ 같은 책도 찾아 읽고, 가난한 먼 친척의 안부도 챙기고, 조류독감으로 키우던 가축을 죽여야 하는 사람들의 애달픔도 생각해 보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삶을 살고, 그렇게 해서 우리도 천 년을 산다.2007년이 온다고 겁날 것은 없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 [책꽂이]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조지프 아마토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펴냄) 중세시대 보행자들은 말을 타고 다니는 기사나 귀족을 만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하는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깨달았다.18세기엔 상류층의 산책문화가 생겨나면서 그들만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우아하게 걷는 법을 개발해냈다.19세기 말엔 낭만주의 사조가 등장, 고독을 즐긴 사상가들은 걷기를 통해 세상과 자연과의 교감을 시도했다.20세기 들어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국민에게 같은 음악에 맞춰 행군하도록 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졌다. 인류가 처음 두 발로 서게 된 600만년 전부터 현재까지 걷기의 역사를 살핀 책.2만 5000원.●카사노바 나의 편력(자코모 카사노바 지음, 김석희 엮어옮김, 한길사 펴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민법과 교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가방끈 긴 남자,‘문체의 솔직함’으로 단테와 보카치오 이후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오른 글쟁이. 생계를 위해 이름을 안토니오 플라토리니로 바꾸고 과거에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재판소를 위해 밀정이 된 인물. 조반니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는 그러나 무엇보다 희대의 호색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썩어서 냄새 나는 치즈와 여자 냄새를 좋아한 감각주의자였다. 이 회고록엔 인생향락가 카사노바가 체험한 18세기 유럽 사회의 풍속사가 담겼다. 전3권 각권 1만 5000원.●죽음의 향연(리처드 로즈 지음, 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광우병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프리온 단백질, 인간 광우병으로 불리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 광우병을 둘러싼 진실을 다룬 과학 논픽션.‘원자폭탄 만들기’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는 광우병의 감염원이 단백질이 아닌 바이러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광우병은 감염성은 낮지만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1만 6000원.●클라시커 50 오케스트라(울리케 팀 지음, 이용숙 옮김, 해냄 펴냄) 륄리에서 코렐리, 모차르트, 하이든, 브람스를 거쳐 바르토크와 번스타인에 이르는 작곡가들의 대표적 관현악곡을 중심으로 400년 서양음악사를 살폈다. 요한 슈트라우스 곡의 소재로 사용된 도나우강이 푸른색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 관조적이고 내면적인 바흐의 음악이 사실은 20명의 자녀들이 법석대는 상황 속에서 탄생됐다는 사실, 헨델이나 모차르트 시대에는 연주가 훌륭하다고 생각되면 청중은 연주 도중에도 즉각 감동을 표현했다는 사실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실렸다.1만 8000원.●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1941년 6월(존 루카치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1941년 6월22일 발발한 독·소전쟁은 그 전까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던 내전 성격의 전쟁이 전면적인 2차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된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6월22일전, 히틀러는 이미 어두운 미래를 예감했으며,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시아가 히틀러와 맞서주기를 간절히 바랐고, 스탈린은 끝까지 히틀러의 침공을 믿지 않으려 했다. 이런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의 불꽃튀는 심리전은 2차대전의 운명을 뒤바꾸게 된다. 저자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 역사학자. 히틀러와 스탈린의 모습을 대비시켜 역사적으로 재구성했다.9500원.
  •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현실을 재료로 다룬 책들이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결합한 ‘팩션’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논픽션소설, 실화소설 등이 휴가철 독자를 겨냥해 속속 서점가에 나오고 있다. 소설이 주는 재미와 감동에 생생한 현실감까지 더해져 한층 구미를 당긴다. 저명한 논픽션 작가 존 베런트의 대표작 2권이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선악의 정원’‘추락하는 천사들의 도시’(정영문 옮김, 황금나침반 펴냄)는 작가가 실제 경험한 일들을 쓴 소설 형식의 논픽션으로 이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르다. 1995년 출간된 선악의 정원은 존 베런트가 8년 간 머물렀던 미국 조지아주의 작은 도시 서배너에 관한 이야기로, 책 출간 이후 이곳은 인기 관광지가 됐다.4년5개월간 ‘뉴욕타임스’ 최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전세계적으로 1000만부가 팔렸다.추락하는 천사들의 도시는 10년 전 베런트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하기 직전 발생한 페니체 오페라하우스의 화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18세기,19세기에 이어 세번째 일어난 페니체의 화재가 고의에 의한 방화일지 모른다는 가정하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사건을 조사한다. 소피의 리스트(잉게보르크 프리어 지음, 명정 옮김, 자음과 모음 펴냄)는 독일 태생의 여성 예술가 소피 슈나이더의 소장 미술품 목록을 둘러싸고 유럽에서 벌어진 미술품 반환 소송을 그린 실화소설이다. 소피는 몬드리안, 칸딘스키, 클레 등 유럽을 주름잡던 예술가들과 교분을 나눴던 실존 인물로 총 13점에 이르는 그녀의 소장품은 1938년 나치에 약탈당했다. 소피는 죽기 직전 자신의 아들에게 미술품의 목록을 자필로 작성해 유산으로 남겼고, 세월이 흐른 뒤 소피의 아들은 사상 유례없는 미술품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파란만장했던 소피의 삶과 1920년대 유럽 미술계의 생생한 모습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팩션류 소설로는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 대교베텔스만)과 오메가 스크롤(에이드리언 다게 지음, 이영아 옮김, 김영사)이 돋보인다.‘암스테르담’의 무대는 거짓말과 계략이 난무하는 17세기 중반 상업도시 암스테르담이다. 2000년 데뷔소설 ‘종이의 음모’로 에드거상을 수상한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커피를 소재로 당시 암스테르담에서 막 열기를 띠기 시작한 선물중개소와 유대인들의 생활상, 커피 거래에 얽힌 음모와 반전 등을 솜씨있게 버무려낸다. ‘오메가 스크롤’은 1947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 사해 근처의 동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고문서의 기원을 추적하는 팩션 스릴러다. 초기 조사단계에서 최소 기원전 1세기 이전 유대 기독교 일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지자 바티칸은 이후 문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언급을 회피하는 등 의문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 육군 장성출신의 저자는 철저한 사실조사를 바탕으로 사해문서에 얽힌 충격적 예언들을 파헤친다. 김유정, 백석, 이상 등 1930년대 문화예술인들에 관한 궁금증을 팩션 형식으로 재구성한 ‘그 이상은 없다’(오명근 지음, 동양문고 펴냄)도 눈길을 끈다. 임화가 진짜 미국 스파이인지, 백석의 나타샤는 누구인지 등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 작가 나름의 경쾌한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각 장마다 ‘각주로 읽는 팩트와 픽션’을 달아 혼란과 오해를 피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황제폐하, 소신은 취했나이다(이여천 지음, 프라임 펴냄)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 양귀비와의 사랑에 주목한 점이 색다르다. 저자는 옌볜에서 활동 중인 조선족으로 2004년 ‘재외동포문학상’을 받았다. 중국옌볜작가협회 이사와 한민족 문학잡지 ‘장백산’의 부주간이다. 전 2권, 각 권 9000원.●환각의 나비(박완서 지음, 푸르메 펴냄) 소설가 박완서의 문학상 수상작만을 모은 단편집.1995년 한무숙문학상을 받은 표제작을 비롯해 ‘그 가을의 사흘 동안’(한국문학작가상)엄마의 말뚝2’(이상문학상)‘꿈꾸는 인큐베이터’(현대문학상)‘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동인문학상) 등 5편이 실렸다.9000원.●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문학동네 펴냄)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의 연작 추리소설 ‘말로센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 범상치않은 캐릭터의 말로센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말로센 시리즈’는 유머와 추리를 버무린 독특한 기법으로 편당 백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18개국 언어로 번역출간됐다.9000원.●용서에 관한 짧은 필름(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창신 옮김, 세종서적 펴냄) 베스트셀러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의 저자가 들려 주는 용서의 메시지. 전쟁의 파도에 휘말린 외딴 섬에서 증오와 상처를 딛고 성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픽션과 논픽션이 결합된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낸다.9500원.
  • 공룡, 그 탄생에서 최후까지

    공룡, 그 탄생에서 최후까지

    어릴 때 공룡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덩치에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육식공룡을 비롯, 하늘을 나는 익룡까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왜 공룡은 사라졌을까. 논픽션 버라이어티 Q채널은 25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8시 공룡의 비밀을 담은 영국 BBC 제작 다큐멘터리 ‘공룡대탐험’을 8부에 걸쳐 방송한다.1억 6000만년 동안 군림했던 공룡의 탄생에서 멸종, 그리고 공룡이 지배하던 당시 지구에 살았던 각종 동식물의 생태계 모습을 생생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공룡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과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법으로 탄생한 거대한 공룡들의 모습이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제공된다. 25일 방송되는 제1부 ‘새로운 생명’과 제2부 ‘공룡의 전성기’는 공룡이 지구상에 어떻게 탄생했고 그들의 시대를 열었는지 보여준다. 공룡이 축구공만 한 알을 낳는 진기한 모습과 공룡들의 치열한 싸움도 펼쳐진다. 제3부 ‘잔인한 바다’(6월1일)에서는 바다와 섬을 중심으로 수중 공룡들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상어와 흡사한 수중 공룡의 모습을 재현, 먹이를 잡는 모습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같은 날 이어 방송되는 제4부 ‘하늘의 제왕’은 하늘을 나는 화려한 파충류 익룡들의 다양한 모습과 생존방식, 그들의 후손이 현대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를 역으로 추적한다. 제5부 ‘얼음 숲의 영혼’(6월8일)은 지구가 겪는 환경의 변화가 당시 동·식물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줬는지를 알아본다. 이어 제6부 ‘공룡 왕국의 최후’에서는 엄청난 화산 폭발과 갑작스러운 혜성 충돌을 겪은 공룡들이 조금씩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6월15일에는 ‘빅앨’이라는 공룡의 일대기를 다룬 ‘공룡대탐험 스페셜’ 2부작이 방송된다.1부에는 1억 4500만년 전의 공룡 알로사우루스 ‘빅앨’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15년 동안의 일생을 생생히 재현한다.2부에서는 과학자들이 ‘빅앨’의 일대기를 어떻게 추적했는지 그 근거들을 보여준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다빈치 코드 표절 아니다”

    2003년 3월 출간된 후 전 세계에서 4000만부가 팔린 소설 ‘다빈치 코드’의 표절 재판이 저자인 댄 브라운의 승리로 끝났다. 영국 런던대법원은 7일 역사 논픽션 ‘성혈과 성배’의 두 작가가 다빈치 코드가 자신들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피터 스미스 대법관은 “평결은 표절 논란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송 자체가 놀랍다.”고 말해 표절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댄 브라운은 “이번 판결로 이제 집필에만 전념하게 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랜덤하우스 게일 리벅 회장은 “애당초 법정으로 갈 문제도 아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소송은 1982년 출판된 ‘성혈과 성배’의 작가 마이클 베이전트와 리처드 리가 ‘다빈치 코드’를 출판한 랜덤하우스를 상대로 제기했다. 이번 재판 결과로 오는 5월 개봉을 앞둔 영화 ‘다빈치 코드’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가톨릭과 기독교계는 표절로 판명될 경우 영화 개봉을 적극 저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축구의 모든 것 보여드려요”

    단일 스포츠 종목으로는 세계 최대 축제로 꼽히는 월드컵 개막이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월드컵 관련 방송 프로그램도 국내에서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한국 축구대표팀에 초점이 맞춰진 가운데 세계 축구 전반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어 눈길을 끈다. 논픽션 전문 Q채널은 월드컵 특집 13부작 ‘열정과 승부의 신화, 축구’를 6일부터 매주 목·금요일 오후 8시에 방송한다. 축구의 기원과 역사, 미래, 사회에 미친 영향 등 A부터 Z까지 축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담았다. 1부 ‘그라운드의 별들’에서는 20세기초 영국의 전설적인 스타였던 빌리 메레디스, 오스트리아 국민영웅 마티아스 신델라,‘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등에서부터 설명이 필요없는 ‘축구 황제’ 펠레,‘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아트사커 지휘관’ 지네딘 지단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을 만나게 된다.2부 ‘축구의 기원’은 1863년 축구협회의 탄생과 더불어 축구가 영국에서 출발, 다른 나라에 어떻게 전파됐는지 등을 살펴본다.3부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은 세계 최고 브라질 축구를 철저하게 해부하는 시간이다. 화려함에 가려졌던 브라질 내 인종차별주의와 폭력도 조명된다. 국경을 초월해 외교관 노릇을 하는 축구의 역할을 짚어보는 4부 ‘세상을 바꾸는 축구의 힘’에 이어 유럽, 아프리카, 남미에서 어떻게 축구가 발전했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5∼8부도 호기심을 끈다. 또 프로 클럽과 대표팀의 관계(9부), 축구와 언론의 관계(10부),FIFA 등 막후 실세(11부), 축구 관련 비극(12부)도 짚어본다. 마지막 13부 ‘미래’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공동주최했던 한국과 일본의 축구사를 돌아보며 3세기째를 맞은 축구가 나아갈 방향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일요영화]

    [일요영화]

    ●오아시스(KBS1 밤 12시30분) ‘박하사탕’의 이창동 감독의 2002년작. 대종상 작품상,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고, 여배우 문소리를 주목받게 했다. 사회에서 낙오된 전과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어려운 배역을 잘 소화한 설경구와 문소리의 연기가 호평을 받았다. 제목 ‘오아시스’는 여주인공 공주(문소리)의 방에 걸려 있는 액자 속 그림. 공주와 종두(설경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을 뜻한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경계’에 관한 영화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와 우리가 배척하는 것과의 경계, 정상인과 장애인과의 경계, 사랑이란 판타지와 일상과의 경계에서 충돌을 경험하는 것은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과 3범인 종두는 뺑소니 치사로 복역하다 출소했다. 별 생각 없이 뺑소니 피해자 집에 찾아갔다가 빈집에 혼자 있는 공주를 만난다. 피해자의 딸인 공주는 뇌성마비 장애인. 가족들은 공주의 명의로 장애인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가면서 공주를 놔두고 간 것이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그들은 천천히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전화통화를 하고 자장면을 먹으며 서툴고 어설프게 연애를 시작한다. 환상 속에서 공주는 정상인처럼 걷고 말할 수 있고, 종두도 멋진 남자가 된다. 그러나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고 범죄자가 장애인을 농락하는 것으로 볼 뿐이다. 종두를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132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꿈꾸는 아프리카(SBS 밤 12시55분) ‘불의 전차’의 휴 허드슨 감독이 2000년 쿠키 갈만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생동감 넘치는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대자연과 함께 잔잔한 인간관계를 조명할 수 있다. 이혼녀 쿠키 갈만(킴 베이싱어)은 아들 엠마누엘과 평범한 삶을 산다.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한 후 비로소 쿠키는 살아갈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러던 중 파올로(뱅상 페레)를 만나 그를 따라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로 떠난다.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대자연에 동화되면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만 곧 현실은 꿈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프리카는 심한 기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위험한 야생동물들, 영토를 위협하는 사막폭풍이 존재한다. 밀렵꾼들의 야만적인 도살 행위도 끊이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은데….114분.
  • 새해 다큐 교양 듬뿍 재미 쏠쏠

    새해 다큐 교양 듬뿍 재미 쏠쏠

    ‘다큐멘터리, 채널 고정∼.’ 새해 들어 방송사들의 다큐멘터리 경쟁이 뜨겁다. 오늘날 바쁜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새로운 지식도 제공해 마니아들의 관심이 높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KBS 1TV에서 매주 일요일 6부작으로 방송되는 ‘KBS 스페셜-마음’.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마음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접근, 현대인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나선다. 우선 15일 첫 방송된 1편 ‘마음, 몸을 지배하다’에서는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따뜻한 마음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 다뤘다. 첨단 컴퓨터그래픽과 HD(고화질) 촬영, 돌비디지털 5.1 사운드 등도 눈길을 끌었다. 방송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유익한 프로였다. 다음 편이 기대된다.”는 의견이 쇄도했다. 22일 방영 예정인 2편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와 3편 ‘무의식에 새겨진 마음을 깨우다’,4편 ‘기억을 버려라’,5편 ‘편안한 마음이 좋습니다’,6편 ‘당신을 용서합니다’ 등을 통해 제작진은 탐욕과 행복의 불행한 연결고리를 끊으려고 노력한다. 이영돈 PD는 “마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면 사회 곳곳에서 생기는 갈등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MBC가 지난 9일부터 매주 월요일 9부작으로 방송하고 있는 ‘논픽션 파노라마-100가지 위대한 발견’도 자연과학의 위대한 발견들을 깊이있게 다뤄 인기를 끌고 있다. 공룡의 멸종, 지구속 기행에 이어 인체해부학, 태양계의 비밀, 인간게놈 지도 등 인류가 발견한 과학사를 재미있게 소개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이 마련한 테마기획 ‘어메이징 모먼트’는 신기한 장면,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 감동적인 순간들을 편집해 16∼20일 5회에 걸쳐 방송된다. 개코원숭이, 하마 등 ‘의외의 킬러들’이 소개되고,‘생사의 갈림길’,‘고통을 즐기는 사람들’ 등 아찔한 모험들이 생생히 전달된다. 아리랑TV는 19일부터 매주 월∼금요일 한국의 자연생태계를 총망라한 자연다큐멘터리 시리즈 ‘자연이야기, 녹색동화’를 3월10일까지 방영한다. 제작진이 5년에 걸쳐 촬영한, 멸종위기의 검은머리갈매기 등 조류와 곤충,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등 동식물의 모습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준다.EBS가 최근 방송한 2부작 ‘바이러스’는 AI바이러스,HIV바이러스 등 바이러스의 실체를 탐구, 호평을 받았다. 이와 함께 위성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방송사 TU미디어는 DMB 최초 다큐멘터리 ‘아버지로의 여행’을 23일부터 매주 월∼목요일 16부작으로 방송한다. 연예인 등 100여명을 인터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담았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Q 채널 아리랑TV 손잡고 한·중·일 문화탐방

    Q 채널 아리랑TV 손잡고 한·중·일 문화탐방

    국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가 처음으로 공동 제작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논픽션채널 Q채널과 아리랑국제방송이 함께 만든 26부작 다큐멘터리 ‘한·중·일 문화 삼국지’(연출 이은희·김중식). 케이블·위성 채널로는 보기 드물게 제작비가 5억원 이상 투입된 이 작품은 동북아를 넘어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한국·중국·일본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나아가 중국 내 한·일 문화와, 한국 내 중·일 문화, 일본 내 한·중 문화 등도 살필 수 있다. 국내 방송 이후 올 하반기에는 중국, 일본 등으로 수출한다는 계획이다.Q채널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아리랑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후 8시에 영어로 더빙돼 나간다. 지난 4일(Q채널)과 9일(아리랑국제방송) 선보인 1부 ‘최고의 밥상’은 황제를 위한 중국 요리 만한취안시(滿漢全席)와 한국 한정식, 일본 가이세키(會席) 요리가 한데 모였다.Q채널은 평균 2배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아리랑에서도 첫 방영 전후로 프로그램 관련 시청자 문의가 잇따르는 등 열띤 반응을 얻고 있다. 따로 놓고 보면 익숙한 소재이나, 비슷하지만 다른 동북아 3국의 전통을 함께 살펴본다는 점이 시청자의 구미를 자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게다가 동양인이 아닌 외국 시청자들이 봐도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만들어졌다. 깊이도 있다. 11일(Q채널)과 16일(아리랑) 전파를 타는 2부에서는 한복과 치타오, 기모노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한 폭에 깃든 멋, 전통 의복’이다. 몸을 가리는 차원을 넘어서 문화·예술적 가치가 흠뻑 스며든 전통 의복을 비교·분석하는 시간. 한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실루엣과 우아한 자연 색감, 부드러운 곡선의 여성미를 자랑하며 한국의 멋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우리의 전통의상. 반면 치타오는 과감하면서도 화려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며, 이를 감추고 있는 한복이나 기모노와 차별된다. 동양적인 자수와 화려한 색감은 치타오만의 특징. 기모노는 화폭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화려하다. 실제로 옷감에 직접 밑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여러 겹을 감싸는 스타일은 감춤의 미학을 보여주는 한편, 허리에 화려한 천을 덧대 몸매를 길고 날씬하게 보이게 하는 눈가림 미학까지 담고 있다. ‘한·중·일 문화 삼국지’에서는 이후에도 전통가옥, 차(茶), 시장, 사찰, 면(麵), 가면, 길거리 음식, 떡과 과자, 광대와 곡예, 술, 결혼식, 전통악기, 도자기, 축제, 샤머니즘, 신화, 건강 음식 등을 다루게 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작은 곤충들의 신기한 집짓기/안네 묄러 글·그림

    곤충들의 생태는 보여주고 싶은데 곤충도감을 읽히기는 부담스러웠다면 ‘작은 곤충들의 신기한 집짓기’(안네 묄러 글·그림, 조국현 옮김, 소년한길 펴냄)가 맞춤이다. 이 책은 ‘도대체 곤충들은 어디서 알을 낳을까?’하는 작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알을 낳으려 집을 짓는 거위벌레 한 마리. 긴 주둥이로 잎자루에 구멍을 내는 사연을 책은 친절히 설명해준다. 잎자루를 통한 수액 전달을 막아 잎을 시들게 만들려는 작전인 것. 시든 잎을 돌돌 말아 그 속에 알을 낳는 거위벌레, 알을 깨고 나오는 애벌레. 소똥구리, 호리병벌, 가위별, 각종 야생벌 등의 생태가 압축묘사됐다. 콜라주 기법의 그림이 재미있다. 2005 독일 청소년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6세∼초등 저학년.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렇게 재밌는 서커스 봤어?

    1984년 서커스의 불모지 캐나다 퀘벡주에 ‘시르크 뒤 솔레이’라는 공연단이 생겼다.‘태양의 서커스’라는 뜻이다. 서커스하면 피에로가 나와 재롱을 떨고, 동물도 등장하고, 접시를 돌린다든가 공중 그네를 탄다든가 하는 기예가 우선 떠오른다. 그런데 이들의 공연은 차원이 달랐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무용, 곡예, 연극, 마임 등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 예술을 선보인 것. 서커스에 연극과 뮤지컬 요소를 결합했다고 보면 된다. ‘시르크 뒤 솔레이’는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서커스에 이처럼 새 바람을 불어 넣으며 ‘퀴담’,‘바레카이’,‘O’ 등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20년 동안 ‘태양의 서커스’를 찾은 세계 관객들은 약 5000만 명에 이른다는 집계도 있다. 또 연간 매출 규모도 5억4000만 달러 수준이라니 정말 놀라운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케이블·위성 논픽션 채널 큐채널이 16일 오후 10시부터 2시간 동안 ‘태양의 서커스-바레카이’를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마련했다. 컬럼비아트라이스타가 2003년에 촬영, 제작했다. 이 쇼는 화산 꼭대기에 있는 마법의 숲 ‘바레카이’가 배경이다. 로만집시어인 ‘바레카이’는 영어로 ‘wherever’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늘에서 날개가 부러진 청년이 추락하고, 애벌레 모습을 한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고는 우여곡절 끝에 애벌레 허물을 벗은 처녀가 청년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는 피날레에 이르기까지, 코미디언들은 사이사이에 폭소를 자아내는 촌극을 연출하고 숲의 생물로 나오는 곡예사들은 각종 재주를 펼치게 된다. 환상적인 이야기와, 아름다운 의상, 그리고 몽환적인 음악 등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쉴새 없이 즐겁게 만든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내용이라 다분히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슈로 본 2005 문화계](4)출판계 양극화 현장과 명암

    [이슈로 본 2005 문화계](4)출판계 양극화 현장과 명암

    “방금 전화받은 사람이 제 처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지난해까지는 직원 두 명을 두었는데, 올 핸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올해 낸 10여권의 책중 2쇄를 찍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해 300억원 정도 매출을 올렸던데 올해는 400억원을 무난히 넘길 것 같습니다. 출판시장이 어렵다고 하는데 무척 선방한 셈이지요.” 출판시장이 극심한 불황이라지만 이를 느끼는 온도 차는 이렇게 다르다. 첫번째 답변을 한 사람은 인문·사회과학 책을 주로 내온 Y출판사 대표, 그 다음 답변의 주인공은 민음사의 박상준 기획실장이다. 출판시장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판시장 매출규모는 2조 4000억원 정도. 그중 학습참고서와 만화를 제외한 단행본 전체 매출액은 1조 5000억원 정도다. 이중 실질적으로 출판활동을 하고 있는 800여개 출판사의 4%인 상위 30개 출판사가 전체 매출의 3분의1을 장악하고 있다. 90년대 후반만 해도 연 매출이 100억원을 넘는 출판사가 드물었으나, 지난해엔 랜덤하우스중앙, 민음사, 김영사, 넥서스, 시공사 등이 3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으며,100억원을 넘긴 출판사도 21세기북스, 웅진닷컴, 문학동네, 창비 등 30개사가 넘는다. 눈에 띄는 점은 매출 상위로 올라갈수록 그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것.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베스트셀러 500위 내 도서를 펴낸 출판사 중 상위 10개 출판사의 점유율이 2002년 기준으로 61%에 달했다. 상위 5개 출판사의 점유율도 50%를 넘는다. 아직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이같은 매출 쏠림 현상은 올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사의 문윤식 마케팅홍보팀장은 “올해는 책 발행 종수를 지난해 260종보다 대폭 줄인 160종만 냈는데도, 매출은 오히려 13억원 정도 늘어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3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랜덤하우스중앙의 권택규 실장도 “올해 80억원 정도 매출 신장이 이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 200억원이 약간 넘는 매출을 올린 21세기북스는 지난해 수준에 머무를 전망. 반면 비교적 안정권이라는 30억원 내외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출판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논픽션 및 어린이책을 주로 내는 바다출판사 김인호 대표는 “지난해보다 20% 정도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며 “전반적으로 신간 매출이 저조하다.”고 말했다. 올해 10여종의 책을 출판한 동아시아의 한성봉 대표도 “매출이 15% 정도 하락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도 이젠 마케팅 싸움 단행본 출판은 책 제작의 특성상 타산업 분야와 달리 ‘규모의 경제’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분야다. 그래서 적은 자본으로도 출판에 대한 애정과 노하우,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뛰어들어 성공한 출판인도 적지 않다.‘1인출판’이 유행하는 것도 이같은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인식은 곧 폐기돼야 할 것 같다. 앞서 예를 들었듯 작은 출판사일수록 어려움이 가중되고, 이젠 출판업 진입조차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원인의 핵심은 마케팅이다. 한성봉 대표는 “소위 대형출판사들 중 상당수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출혈 마케팅을 한다. 각종 이벤트와 할인경쟁, 홈쇼핑을 통한 무더기 판매, 대형서점의 매대 독점 등은 작은 출판사로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마케팅력이다.”라고 말한다. 이와함께 스테디셀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형출판사들은 기초 토양이 탄탄해 불황에도 견딜 수 있지만, 출판 종수가 작은 출판사나 신생출판사들은 견뎌내기 어려운 점도 있다. ●출판 다양성 해치는 양극화 요즘 흔히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 있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 소위 트렌드에 충실한 책들이다. 물론 그중엔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하고 내용도 충실한 책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수가 급조된 책들이 많다.TV 드라마에 잠깐 등장했거나, 잡학적 정보를 재미만 강조해 급조한 책들, 사회적 성공의 비결을 담은 처세서 등등. 이런 책들도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초소양과 교양을 쌓는 데 기본이 되는 인문·사회과학서 등이 설 자리가 없는 게 문제다. 이같은 현상은 곧 마케팅력에 의한 베스트셀러 양산의 폐해라는 지적이 많다. 연 1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한 출판사 대표는 “사실 중소 출판사들 상당수가 인문·사회과학 책을 내고 있는데, 마케팅력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대형출판사들은 최근 들어 편집자에게 별도의 브랜드를 주고 모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임프린트’ 시스템을 도입, 상업 마인드에만 충실한 책 출판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임프린트는 경영 합리화 차원에선 바람직하지만 일정 기간동안 최대한의 성과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책출판 자체에는 꼭 긍적적이지만은 않다.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는 “임프린트는 길어야 3년 앞을 내다본 기획밖에 할 수 없고, 이같은 시스템하에선 다양한 콘텐츠 생산이 불가능하다.”며 “대형 출판사들은 소형 출판사들이 하기 어려운 양질의 대형 기획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세계의 도시’ 어떻게 만들어졌나

    ‘세계의 도시’ 어떻게 만들어졌나

    MBC가 낮방송 시간대에 고품격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논픽션 파노라마’의 첫 순서로 3부작 다큐멘터리 ‘세계의 도시’를 준비해 5일부터 3주 동안 매주 월요일 오후 3시에 방송한다. 지난해 디스커버리사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도시 설립 이전 상태에서부터 급속하게 성장, 현재 메트로폴리스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과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1부 영국 런던 편에서는 2000년의 시간과 함께 유유히 흘러왔던 템스강을 중심으로 런던의 발전사를 훑어본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철도와 수많은 교량, 성당, 그리고 고층 건물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힘으로 성장해 온 런던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시간이다. 12일 2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현대적인 도시로 꼽히는 미국 뉴욕을 찾는다. 한때 아메리카 인디언의 휴식처로 야생의 땅이었던 이 도시가 자연 환경의 제약을 뛰어넘어 거대 도시로 진화하는 과정을 담았다. 19일 마지막 3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 차례다. 상상을 뛰어넘는 설계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시민들의 노력으로 전쟁의 포화 등 숱한 위기를 넘기며 번영을 누리고 있는 이 도시의 고전적인 우아함을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야기꾼들이 뒤집어 본 신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종교 연구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절대적으로 유일하고 정설인 신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신화란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유효하기 때문에 진실인 것이며, 시대와 상황이 변함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유효하게 변경되는 것이 신화의 존재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유효한 신화는 어떤 모습일까. 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참여해 역대 신화들을 재조명하는 세계적인 출판 프로젝트로 주목받아온 ‘세계신화총서’가 6년 간의 준비끝에 1차분 3권을 내놓았다.20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의 기자회견에 맞춰 전 세계 31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세계신화총서’(문학동네)는 1999년 스코틀랜드 케넌게이트출판사의 수석편집자이자 발행인인 제이미 빙이 기획한 것으로 2038년까지 모두 100권을 만드는 거대 프로젝트다. 출판사는 작가들을 섭외하고, 원고량(한국판 기준 200쪽 내외)을 정해줄 뿐 다루는 신화의 내용이나 형식은 전적으로 작가의 판단에 맡긴다. 그리스, 이슬람, 힌두, 남미 신화 등을 총망라하며, 픽션 혹은 논픽션으로 다뤄진다. 지금까지 확정된 필진은 카렌 암스트롱(영국),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재닛 윈터슨(영국)빅토르 펠레빈(러시아), 데이비드 그로스만(이스라엘), 치누아 아체베(나이지리아), 도나 타트(미국), 밀튼 하툼(브라질), 이언 매큐언(영국), 키리노 나츠오(일본), 수 통(중국)등이다. 이밖에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오르한 파묵(터키)과 이사벨 아옌데(칠레), 주제 사라마구(포르투갈), 토미 모리슨(미국)등의 작가와는 현재 계약이 진행중이다. 이번에 출간된 3권은 기존 신화서들과 차별되는 이 시리즈의 방향성과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제1권으로 나온 카렌 암스트롱의 ‘신화의 역사’(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는 1만 2000년 인류 역사를 아우르는 신화 개론서이면서 동시에 이 시리즈의 의미를 설명하는 입문서 노릇을 톡톡히 한다.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 대안으로 신화의 복귀를 제시하는 저자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페넬로피아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김진준 옮김)는 서양 문학 최고의 고전 오디세이아를 통쾌하게 뒤집은 소설이다.‘눈 먼 암살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페니미즘 문학의 대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디세우스의 헌신적이고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의 시각에서 역마살과 여성편력, 영웅 콤플렉스 등 오디세우스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다룬다. 열 두명의 시녀들이 등장해 동요, 연극,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한 재판 장면 등을 보여주며 오디세우스의 비밀을 폭로하는 대목은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무게,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는 ‘21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로 칭송받는 재닛 윈터슨의 소설이다. 올림포스 신들에 저항한 벌로 지구를 떠받치게 된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등 고대 그리스의 두 영웅을 불러낸다. 번역을 맡은 소설가 송경아는 옮긴이의 말에서 “(아틀라스는)소외된 자, 침묵하는 자, 누구도 짊어질 수 없는 무게를 견디면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자”라면서 “재닛 윈터슨은 작가의 권능과 세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아틀라스에게 동반자와 자유를 준다.”고 썼다. 각 권 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권혁희 지음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권혁희 지음

    여기 사진이 하나 있다. 칼을 쓴 채 물끄러미 카메라를 응시하는 세 남자와 살짝 시선을 떨구고 있는 맨발의 소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죄인들 왼쪽 뒤엔 감시하는 듯한 그림자가 서 있다. 죄인들 앞에는 카메라를 든 촬영자가 있을 것이다. ‘죄인들’(舊罪人)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 만들어진 관광엽서 속의 그림이다. 이들은 왜 감옥에 있지 않고, 관아의 뜰로 짐작되는 곳에 앉아있는 걸까?사진을 찍은 이는 누구일까?관광엽서에 왜 이런 사진이 실렸을까?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민음사 펴냄)는 이같은 의문에서 시작된다. 사진속 보이지 않는 촬영자 시선의 실체를 추적하고, 그 시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헤친다. 지은이는 서울시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는 권혁희씨. 민음사가 제정한 ‘2005 올해의 논픽션상’ 수상작을 단행본으로 엮은 이 책은 지은이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와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생산해 대중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렸던 사진엽서들을 수집하고 연구해온 과정의 결실이다. 저자는 무려 1500여장의 사진엽서를 모았는데, 그중 주제가 선명히 드러나는 300여장을 추려 책에 실었다. 책은 그 자료의 방대함과 풍부함에서 우선 저자의 남다른 노고가 엿보인다. 더불어 그 사진들이 ‘시선의 권력’을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하나의 충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엽서속 그림들은 촬영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인 동시에, 제국주의적 시각이 담긴 ‘세기적 응시’의 결과물이다. 당시 사진엽서는 신문, 잡지, 서적 등과 더불어 제국주의를 재현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매체였다. 카메라가 희귀했던 시대에 수만리 밖 사람들의 생생한 이미지는 소설과 시가 가진 이야기 효과보다 훨씬 강력한 대중성, 상품성을 갖고 있었다. 책은 사진엽서가 하나의 ‘문화적 유물’이란 전제 아래 그 유물에 은연중 혹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데올로기와 권력을 추적한다. 카메라가 담은 풍경중 제국 국민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단연 식민지인들의 인종과 풍속을 부각시킨 이미지들이었다. 서구의 차별적 시선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바로 유색인종에 관한 것들이다. 젖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포즈를 취한 아프리카 소녀들, 요란스럽고 기이한 장신구를 휘감은 아메리카 인디언들, 흑인 아이 피부를 희게 만드는 내용의 모습을 담은 비누광고 카드, 흑인 입술을 오리처럼 삐죽 내밀도록 연출해 찍은 사진 등등. 이들 엽서들에선 공통적으로 원시성 내지는 미개성을 드러내려는 서구인의 차별적 시선이 또렷이 느껴진다. 인류 역사가 야만(savagery)에서 미개(barbarism)를 거쳐 문명(civilization)으로 발전해간다고 보는 3단계의 진보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이들은 유색인종들을 이렇게 철저히 ‘타자화’했다. 같은 시기 제국화에 나선 일본도 이를 그대로 답습했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러·일전쟁 승리후 자국이 조선 등 후진적인 주변국과 구별되는 아시아 일등국이라는 점을 선전하기 위해 이미지를 이용했다. 사진엽서는 주로 문화적 이질성과 경제적 낙후, 인종적 열등함을 보여주는 풍속사진을 담았다. 조선의 폐쇄적 이미지를 재현한 쓰개치마를 쓴 여성, 미개성과 함께 촬영자의 관음증적 시선이 농후하게 엿보이는 가슴 노출 여성사진,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엄청난 양의 독이나 짚신을 지게에 진 짚신장수, 청순가련한 모습의 기생 등등. 이같은 그림은 당시만 해도 날개돋친 듯 팔렸던 그림엽서를 통해 일본인들은 물론 서구인들에게 ‘조선의 표상’으로 각인됐다. 지은이는 100여년 전 제국주의 시대에 형성된 지배자의 시선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재생산되면서 그 재현의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고 확신한다.21세기 세계화시대의 현실 속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시선의 체계’가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하는 책이다.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취재기자 4명 ‘초미니’ 주간지 퓰리처상 수상자 배출 ‘개가’

    취재기자가 단 4명뿐인 미국 오리건주의 한 무가(無價) 주간지 기자가 4일 발표된 올해 퓰리처상의 탐사취재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서 9만부 발행되는 ‘윌러메트 위크’의 니젤 재키스(42)로, 30년 동안 묻혀 있던 전직 주지사의 아동 성학대 행각을 세상에 알린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5월 6일 보도된 이 기사는, 오리건주의 유명 정치인이자 1987년부터 4년간 주지사를 역임한 닐 골드슈미트의 30년 전 비행을 심층취재한 것이었다. 골드슈미트는 부시 행정부에서 교통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포틀랜드 시장으로 일하던 75년부터 3년간 당시 14세의 여고생과 성관계를 가지며 그녀를 추행, 학대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정통 언론’들이 간과한 이 문제를 재키스 기자는 한 달여 추적, 지금은 40대가 된 피해 여성을 찾아 인터뷰해 정신적 고통을 견뎌내온 한 여인의 비극과 유명 정치인의 숨겨진 과거를 재구성했다. 골드슈미트는 기사가 나가기 직전 반론을 요청받고는 이튿날 주 고등교육위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사실을 시인했다. 재키스 기자는 이날 수상 소식을 듣고 “이건 너무나 엄청난 영광이다.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며 거의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재키스 기자 외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각각 2개 부문을 수상했다. (언론)▲전국보도상 월트 보드대니치(뉴욕타임스) ▲특집보도상 줄리아 켈러(시카고 트리뷴) ▲논평상 코니 슐츠(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 ▲논설상 톰 필립(새크라멘토 비) ▲만평상 닉 앤더슨(켄터키주 루이빌 더 쿠리어 저널) ▲속보사진보도상 AP통신 취재진 ▲특집사진보도상 딘 피츠모리스(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문학)▲역사 데이비드 피셔 ‘워싱턴의 도하’ ▲전기 마크 스티븐스와 애널린 스완 ‘드 쿠닝:미국의 달인’ ▲시 테드 쿠서 ‘기쁨과 그림자’ ▲논픽션 스티브 콜 ‘유령의 전쟁’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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