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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세훈 법정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동양 고전 인용해 잘못 지적” 무슨 내용?

    원세훈 법정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동양 고전 인용해 잘못 지적” 무슨 내용?

    원세훈 법정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원세훈 법정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동양 고전 인용해 잘못 지적” 무슨 내용?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서울고법 형사6부 재판장은 김상환(49·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다. 대전 출신인 김 부장판사는 보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용됐다. 이후 헌법재판소 파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2013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 재판장을 마치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부산고법에 근무하다가 작년 서울고법으로 올라왔다. 김 부장판사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형사 사건을 맡을 때마다 단호한 모습을 나타냈다. 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맡던 2010년 최태원 SK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최씨는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유모씨를 폭행한 뒤 2000만원을 준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듬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사촌인 김재홍씨에 대해서도 영장을 발부했다. 이후 김씨는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SK그룹 횡령 사건 공범으로 기소된 김원홍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검찰의 양형 부당 주장을 받아들여 징역 4년 6월로 형을 가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엄한 형을 선고할 때 약한 마음을 드러낸 적도 있다. 2012년 불구속 재판을 받던 신삼길 전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수감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재판을 멈추지 말라”며 눈물을 흘린 일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런 김 부장판사는 이날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고공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그동안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는지 얘기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죄와 벌을 다루는 법관에게는 끝없는 숙고와 고민이 요구됩니다. 특히 외부로부터 독립된 재판부는 알 수 없는 고독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판결을 앞두고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정성을 다해 탐구하고 고뇌한 결론을 말하겠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또 판결을 마치면서는 동양 고전을 인용해 원 전 원장의 잘못을 지적했다.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는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단에 대한 공격과 강요가 결국 심각한 갈등과 분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한편, 김 부장판사는 송년회에서 선·후배 판사들과 함께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고, 체육대회에서는 발군의 운동 신경을 발휘하는 등 사법부에서 ‘만능맨’으로 통하기도 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어준 무죄·김재홍 구속… 소신 판결

    김어준 무죄·김재홍 구속… 소신 판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장인 김상환(49·사법연수원 20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9일 열린 선고 공판 말미에 논어의 위정(爲政)편을 인용해 “나와 다른 생각을 배척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원 전 원장과 국정원의 편파적 대선 개입을 우회적으로, 그러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김 부장판사에 대해 ‘재판 진행은 부드럽게 하되 공정하고 소신 있는 판단을 내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형사사건에서 단호한 판결을 내리곤 했다.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 5촌의 살인 사건 관련 의혹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시사인 주진우 기자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언론의 의혹 제기까지 원천봉쇄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재홍씨에 대해 원칙대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북 김천 출신으로 대전 보문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나온 김 부장판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94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용돼 대법원 재판연구관, 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지난해부터 서울고법에서 재직하고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원세훈 법정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정성을 다해 탐구하고 고뇌한 결과”

    원세훈 법정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정성을 다해 탐구하고 고뇌한 결과”

    원세훈 법정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원세훈 법정구속, 김상환 부장판사 “정성을 다해 탐구하고 고뇌한 결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서울고법 형사6부 재판장은 김상환(49·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다. 대전 출신인 김 부장판사는 보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용됐다. 이후 헌법재판소 파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2013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 재판장을 마치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부산고법에 근무하다가 작년 서울고법으로 올라왔다. 김 부장판사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형사 사건을 맡을 때마다 단호한 모습을 나타냈다. 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맡던 2010년 최태원 SK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최씨는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유모씨를 폭행한 뒤 2000만원을 준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듬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사촌인 김재홍씨에 대해서도 영장을 발부했다. 이후 김씨는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SK그룹 횡령 사건 공범으로 기소된 김원홍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검찰의 양형 부당 주장을 받아들여 징역 4년 6월로 형을 가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엄한 형을 선고할 때 약한 마음을 드러낸 적도 있다. 2012년 불구속 재판을 받던 신삼길 전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수감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재판을 멈추지 말라”며 눈물을 흘린 일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런 김 부장판사는 이날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고공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그동안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는지 얘기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죄와 벌을 다루는 법관에게는 끝없는 숙고와 고민이 요구됩니다. 특히 외부로부터 독립된 재판부는 알 수 없는 고독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판결을 앞두고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정성을 다해 탐구하고 고뇌한 결론을 말하겠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또 판결을 마치면서는 동양 고전을 인용해 원 전 원장의 잘못을 지적했다.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는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단에 대한 공격과 강요가 결국 심각한 갈등과 분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한편, 김 부장판사는 송년회에서 선·후배 판사들과 함께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고, 체육대회에서는 발군의 운동 신경을 발휘하는 등 사법부에서 ‘만능맨’으로 통하기도 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광복 70주년, 2015년과 1875년의 한가운데/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광복 70주년, 2015년과 1875년의 한가운데/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30세면 입지(立志), 40세면 불혹(不惑), 그리고 70이면 고희(古稀)라는 ‘논어’의 옛말을 애용하듯이 우리는 10을 기준으로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지닌 10개 손가락을 바탕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십진법’이라는 표준을 제시한 역사를 상기하면 동서양 할 것 없이 ‘몇십 주년’이라는 기억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같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광복 69주년이나 광복 71주년과 달리 무엇이 특별해야 하는지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70주년’이라는 남다른 시점을 계기로 남북한 분단의 근원적인 해결책도 찾아보고,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안고 있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지역 질서도 모색해 보자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된다. 1945년을 기준으로 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모습을 광복 당시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물질적인 풍요, 정치적 성숙, 사회적 관계,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 등 우리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지구상에 이런 현대사를 경험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매우 갑작스런 성장의 역사를 경험했다. 물론 오늘날 우리 민족의 최대 고민거리인 북한 문제가 바로 그 70년 전부터 시작됐고, 번영과 성숙의 역사적 시간만큼이나 남북한 사이에 이질감과 단절의 역사가 진행돼 왔다.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통일의 의지를 굳게 다짐해 보지만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는다. 1945년을 기준으로 오늘날까지의 시간이 흐른 만큼 70년의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보니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만남과 교착의 데자뷔를 경험하게 된다. 1875년 9월 20일 ‘운요호 사건’이 발발했다. 이 사건은 훗날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일본 조선 진출의 시발점이었던 ‘강화도 조약’ 성립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 한반도에 고단하고 안쓰러운 개화의 역사가 시작된 해였던 것이다. 또 그해 4월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태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를 논할 의도는 없지만, ‘광복 70년’이 ‘성장 70년과 분단 70년’의 동의어라고 가정한다면 이 전 대통령의 공(功)과 과(過)가 1945년을 기준으로 2015년과 1875년 한가운데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성공적인 ‘세계화’ 경험도 한·일 관계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으니, 역시 1945년은 ‘운요호 사건’의 1875년과 ‘2대 수입국과 3대 수출국’이 된 2015년의 한가운데서 만나고 있다. 한국이 경험한 1945년은 비단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다.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1945년 2차대전 종전을 기준으로, 국제사회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독일, 베트남, 예멘 이렇게 모두 5개의 분단 국가가 생겨났다.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통일이 이뤄졌으며, 중국 역시 국제사회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수용해 더이상 중국과 대만을 경쟁관계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있다. 결국 한반도는 1945년을 기준으로 아직도 70년 전의 모습과 큰 차이 없이 분단 국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유일한 곳이 됐다. 베트남의 통일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중화학공업에 기반한 수출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세계인의 생각과 마음속에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를 분명히 새기고자 노력한 반면, 북한은 독일 통일 과정을 지켜보면서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여하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흡수 통일당하는 길은 막아야겠다는 다짐을 곱씹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우리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1945년의 의미가 70년 기준을 전후로 한 1875년과 2015년의 맥락 속에서 비로소 이해되듯이 한반도의 분단 해소는 세계사적 변화의 맥락과 맞닿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1875년과 1945년의 역사는 결국 당시 세상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우리 선조들 탓이라는 지적을 교훈 삼아 2015년을 맞이하는 지금의 우리는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과 물줄기를 정확히 파악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 ‘正本淸源(정본청원)’ 교수신문,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 선정…“상식이 통용되는 사회 의미”

    교수들이 2015년의 바람을 담은 사자성어로 ‘정본청원’(正本淸源)을 꼽았다. 교수신문은 지난달 8~17일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를 설문한 결과 265명(36.6%)이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의 정본청원을 선택했다고 4일 밝혔다. ‘논어’와 ‘한서’의 ‘형법지’ 등에서 비롯된 정본청원을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윤민중 충남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2014년에 있었던 참사와 부정부패 등은 원칙과 법을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며 “새해에는 기본을 세우고 원칙에 충실한 국가, 사회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 187명(25.8%)이 어지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라를 건설하다는 뜻의 ‘회천재조’(回天再造)를 꼽았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이 교수 112명(15.5%)의 표를 얻었다. 또 교수 100명(13.8%)이 곧은 사람을 기용해 굽은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른다는 뜻의 ‘거직조왕’(擧直錯枉)을 선택, 네 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앞서 교수신문은 지난해 12월 한 해를 되돌아보는 ‘올해의 사자성어’에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불완전한 법체계서 ‘양심’ 좁게 해석한 것은 문제… 양심의 진지성 판단해 대체복무 인정 여부 논의해야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불완전한 법체계서 ‘양심’ 좁게 해석한 것은 문제… 양심의 진지성 판단해 대체복무 인정 여부 논의해야

    사람은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이 양심이다. 헌법 제19조는 양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양심은 삶의 기둥이 된다. “삼군이 호위하는 장수라도 그를 잡을 수 있지만, 필부라도 그 가슴 속의 지조는 빼앗지 못한다.”(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논어 자한 편) 자기가 믿는 종교, 윤리나 가치관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경우를 흔히 ‘양심적 병역거부’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은 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지만 불교도나 종교가 없는 경우도 있다. 군대가 가진 폭력성 때문에 입대를 거부하고 프랑스로 망명한 경우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병역법상 입영통지를 받고도 양심상의 이유로 입영 또는 소집에 응하지 않은 이들을 ‘정당한 사유’를 가진 것으로 보지 않고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해당 판례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가 보호하는 양심을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이라고 봤다. 양심에 대한 해석을 매우 좁게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아울러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양심’에 관한 문제라면 이를 제한하는 법률조항에 대한 심사는 그에 상응하여 매우 엄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택한 심사의 기준과 정도는 그 중요성에 상응하지 않는다.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관점은 양심을 정의한 것과 모순된다. 둘째,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더라도 국가안보와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국가·안보 등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입장이다. 양심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옳은 것에 대한 관념도 그 사람의 경험이나 가치관, 윤리와 종교 등에 따라 달리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심은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때로는 양심은 현행법과 충돌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판례는 양심의 자유에 따라 법률을 심사하기보다는 법률체계에서 인정한 가치와 틀 안에서만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셋째, 이미 다양한 형태의 대체복무가 실시되고 있음을 도외시한 채 대체복무의 도입 가능성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근거의 제시 없이 병력자원의 손실이나 안보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소설에 가깝다. 이 사건에서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할지 여부가 아니라 이미 시행되고 있는 대체복무제에 관련하여 양심상의 이유로 군 복무를 할 수 없는 자를 추가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신체조건이 복무에 부적합한 이들에게 병역면제 또는 대체복무 처분을 하고, 산업기능요원 또는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이들도 많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신적 사유로 인해 군복무가 부적합한 이들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양심상의 이유로 도저히 병역의무 이행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체복무를 인정할지 여부는 일반적인 국방의 의무에 관한 법률형성권에 관한 논의나 입법재량의 문제로 접근할 일은 아니다. 넷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병역거부를 위해 특정 종교로 개종하려는 이들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인간의 윤리나 신념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본다. 이미 많은 국가가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 면제 또는 대체복무 여부를 심사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되기 위하여 다양한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하고 상세한 질문과 토론을 통해 양심의 진지성을 판단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또한 군 복무의 여건을 개선하는 게 수반된다면 굳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거짓된 방법을 이용해 병역을 거부하려 시도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해당 판례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2004년 헌법재판소의 판례에서 권성 재판관이 쓴 합헌의견에 대한 별개의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항간의 사려 깊지 않은 인식과 편견 또는 적대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권성 재판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의심스럽다’, ‘군 복무를 하는 이들이 양심이 없거나 전쟁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병역거부를 결정하기까지 겪은 고민과 이후 겪어야 할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를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측은지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이들만 양심이 있고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이 양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법체계 자체는 불완전한 것이다. 항구불변의 것도 아니다. 다수가 가진 이해관계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다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공존할 수 있는 것이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은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이 인권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가진 사면제도도 법체계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법제도가 취한 가치체계와 다른 가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다양성과 공존을 위한 관용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이고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 헌법이 전제하는 인간관이다. 사람마다 다른 양심을 다수가 만든 틀 안에 가둬 둘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 ■ 송기춘 교수는 ▲서울대 법학 박사 ▲한국비교공법학회 학술이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민주주의 법학연구회장 ▲전북교육청 학생인권심의위원회 위원장 ▲전북 평화와 인권연대 공동대표 ▲한국공법학회장
  • [글로벌 시대] 설화와 수화/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설화와 수화/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 발언으로 한동안 정가가 시끄러웠다. 그 발언을 비판하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던 김태호 최고위원은 말을 바꿔 다시 돌아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고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정치연합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각당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말이 참으로 가볍고 경박하다. 때론 다변(多辯)이 천(賤)하고 침묵(沈?)이 귀(貴)한 법인데 말이다. 역경(易經)에는 “혼란이 생기는 것은 말이 그 실마리가 된다”(之所生也 則言語以爲階)라는 구절로 말의 신중함을 경계하고 있다. 논어(語)에도 “사불급설”(駟不及舌·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아무리 빨라도 혀에서 나온 말을 이길 수 없다)이라 하여 말을 한 번 뱉으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으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말을 토해 낼 수 있는 매체들이 많아지다 보니 쓸데없는 말들이 난무한다. 다양한 팟캐스트 방송들도 여과 없이 말들을 생산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확대 재생산되는 소음의 언어들도 판친다. 꼭 해야 할 말들이 아닌 과잉의 언어가 넘쳐난다. 해야 할 말들은 침묵인 채로 남아 있는데, 하지 말아도 될 말들은 달변으로 포장돼 주목받는다. 그러나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이는 드물다. 맹자(孟子)에 “사람이 말을 함부로 쉽게 하는 것은 책임을 추궁받지 않기 때문이다”(人之易其言也 無責耳矣)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그 말을 가벼이 하고 경솔하게 하는 것은 그 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편 TV의 ‘썰전(戰)’이란 프로그램이 거슬린다. ‘썰’로 이겨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니, 마치 말을 전쟁처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독한 혀들의 전쟁’이다 보니 설화(舌禍)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마침 설화로 곤욕을 치렀던 김구라와 강용석이 프로를 맡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때론 눌변(訥辯)이 강할 수도 있다. 공자(孔子)도 눌변이면 인(仁)에 가깝다고 했다. 노자(子)에도 말을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것과 같다(大辯若訥)고 했으니 달변이 능사가 아니다. 중국의 사마천(司馬遷)도 친구를 변호하다 말이 어긋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궁형(宮刑)을 당해야 했다. 바른 일이라고 해도 무리하게 말을 한다면 해를 입게 된다. 말의 신중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래서 군자는 글쟁이(文士)의 붓끝, 칼잡이(武士)의 칼끝, 말쟁이(辯士)의 혀끝을 피함으로써 필화(筆禍), 살화(殺禍), 설화를 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군자피삼단’(君子避三端)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 사회는 네티즌의 손끝에서 야기되는 수화(手禍)까지 덧붙여 ‘군자피사단’(君子避四端)을 논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딱히 매체랄 게 없었던 시대에도 선현들은 말이 부르는 화(禍)에 대해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그런데 방송, 인터넷, SNS 등을 통해 봇물처럼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순식간에 파급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설화와 수화에 얼마나 두려움을 갖고 경계하고 있는가. 침묵보다 나은 말인지, 개인적·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말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되풀이되는 말과 글의 화(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대중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인·연예인들은 주목받기 위해 내뱉었던 무책임한 말들을 거두고 돌아보길 바란다. 그들이 야기하는 설화와 수화에 대해 우리 사회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열린세상] 한류 원조, 태권도는 안녕한지요/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열린세상] 한류 원조, 태권도는 안녕한지요/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한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요즘은 K팝, K드라마지만 한류의 원조는 태권도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에 뿌리를 둔 유일한 올림픽 종목으로 9000만명이 넘는 세계인들이 수련하는 스포츠다. 태권도를 통해 건강, 예절, 인격수양의 체덕지(體德智)를 아우르는 대한민국의 기상과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포르피리오 로보 온두라스 대통령, 무함마드 알카시미 아랍에미리트(UAE) 왕자, 도요시 사토 세계대학총장협회 회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세계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스포츠다. 태권도의 경제적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면 300조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태권도는 교민사회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태권도는 교민들의 고단한 타국 살이를 달래 주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지켜 주었다. 모국과 교민사회를 끈끈하게 잇는 가교가 돼 준 것도, 교민사회의 취약한 경제력에 버팀목이 돼 준 것도 태권도였다. 경제 형편이 녹록지 않았던 1970년대에도 나랏돈으로 태권도 사범을 해외에 파견했던 우리 선배들의 지혜가 녹아 있다. 이들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유산이 될 수 있었다. 30여년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경제 부처에서 보냈던 필자가 태권도 업무를 접하게 된 것은 2012년이다. 그해는 런던하계올림픽 개최와 함께 25개 올림픽 핵심 종목 선정, 차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선출을 목전에 두었기에 국제스포츠계의 외교전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국제스포츠계는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특히 국제스포츠계로부터 태권도의 올림픽 퇴출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던 시기인지라 일 년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3년 2월 IOC 집행위원회는 레슬링을 핵심 종목에서 퇴출한다는 결정을 했다. 태권도의 올림픽 유지 소식을 가슴 졸이며 전해 듣던 순간 기쁨과 함께 느꼈던 안도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된 지 12년밖에 되지 않은 태권도가 올림픽의 핵심 종목을 유지하게 된 것은 우리 스포츠계의 쾌거였다. 그럼에도 태권도의 앞날은 안녕하지 않다. 정부의 공언에도 승부조작, 파벌싸움, 이권개입 등 체육계의 적폐는 근원적으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 태권도진흥재단,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등 유사 기관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설립돼 정부 지원을 받다 보니 중복지원이 많고 운영비도 과다하여 지원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기관 간 협조나 연계는커녕 과열경쟁으로 상호 견제만 심화하고 있다는 태권도계 내부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그동안 태권도는 환경변화에 따른 자기 혁신과 새로운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 감동과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 성인들로부터 외면을 받다 보니 자칫 초등학생용 호신 운동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태권도 정신은 유지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고 감동하는 융통성 있는 태권도가 돼야 한다. 태권도도 이제는 단순 홍보를 뛰어넘는 마케팅이 필요한 시기다. 태권도의 메카를 표방하며 서울월드컵경기장의 10배에 이르는 부지에 2500억원을 들여 무주에 개원한 태권도원은 개장 일 년이 지났지만 방문 인원이 예상의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해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있다. 매년 수백억원의 운영비가 소요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라는 논어의 말씀처럼 우리부터 태권도를 제대로 즐겨야 외국인들도 태권도를 즐기고 사랑하지 않을까. 태권도원의 활성화는 하드웨어 확충에 앞서 태권도를 사랑하고 생활화하는 무주군민들의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재의 IOC 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한 2년 후에는 올림픽 종목 유지를 위한 고비를 또다시 넘어야 한다. 태권도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올림픽 유지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의 우슈, 일본의 가라테 등 여타 종목들의 올림픽 진입 공세도 한층 강화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이 우리 모두가 태권도를 아끼고 후원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때다. 이를 계기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 유지라는 소극적 대응을 뛰어넘어 세계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 [열린세상] 창조경제와 창조인문학/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

    [열린세상] 창조경제와 창조인문학/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

    빠른 추격자에 입각한 한강의 기적은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과거 추격형 경제에서는 선도기업들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를 모방해 더 좋고 더 싸게 제공하면 됐다. 하지만 이러한 추격형 전략으로는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69개국 비교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는 능력없이는 중국과의 레드 오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개척자 전략으로 대전환의 전제조건은 인문학이다. 창조경제는 원가 중심에서 가치중심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가치 창출은 근원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가치 창출은 당연히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에 그 뿌리를 두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있다’고 선언한 이유일 것이다. 실용학문만으로 일류국가가 된 사례는 거의 없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사회를 바꾸는 국가만이 일류국가로 거듭났다. 작금의 한국의 현실을 보자. 실용기술을 제공하는 강좌들은 수강생 모집에 허덕이나 인문학 강좌들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러한 인문학 열풍은 일단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의 핵심이 인문학 그 자체가 아닌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가치 창출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인문학 강좌들은 중국과 구미의 아류, 즉 추종 인문학에 치우치고 있어서 새로운 세상의 가치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분명 필요하지만 그리스 철학으로 서구를 앞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란 쉽지 않다. 논어 맹자와 서사삼경을 연구하는 중국 인문학 역시 동양고전의 이해하는 데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한민국이 중국을 앞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란 만만찮다. 그렇다면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창조 인문학의 뿌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바로 한국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세계와 호흡하며 발전시키는 소위 유라시안 인문학에 길이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유의점은 소통과 순환이라는 개념이다. 한국을 비하하고 전통을 무시하는 사대주의는 분명히 배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만이 최고의 선이라는 독선(獨善)적 자만심인 국수주의 역시 반드시 배격해야 한다. 창조 인문학은 사대주의와 국수주의라는 양 극단을 넘어 한국과 세계를 잇는 열린 인문학이 돼야 할 것이다. 과거를 무시해도 안 되나,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과거에 뿌리를 두고 미래를 지향하는 창조 인문학이 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창조 인문학은 한국에 그 뿌리를 두고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남미까지 펼쳐진 유라시안 국가들의 동질성 확보로 일차 방향이 설정될 수 있다.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를 거쳐 터키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스탄’ 국가들을 거쳐 몽골, 한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의 네팔, 베트남에 이어 중남미의 멕시코, 페루 등 인디오 국가들을 아우르는 연결망이다. 이들 유라시아 국가들의 역사, 철학, 문학 등 유라시안 인문학 연구를 통한 연결 망 강화는 새로운 가치를 이 세상에 제공할 것이다.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배타적 제국주의가 아닌 모두를 존중하며 상호 동질성을 확보해 나가는 열린 유라시안 네트워크는 전 세계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라시안 인문학의 뿌리는 우리의 전통 문화다. 그러나, 우리는 훈민정음 해례에 설명된 한글의 철학적 기반인 자음과 모음의 상극(相剋)상생(相生)오행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만 원권 지폐에 그려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포함한 우리 천문학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세계 최고(最古)의 홍산문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여하할까. 더 나아가 우리는 중앙아시아와 중남미에 펼쳐진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신화, 철학, 언어의 유사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홍익인간과 천지인의 선순환 태극 사상으로 양극화되어 가는 세상에 새로운 철학적 대안을 제공해 보자. 인문학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공유된 가치를 형성하고 상호 발전하는 창조 인문학으로 창조경제의 성장동력이다.
  • [길섶에서] 미스킴 라일락/구본영 이사대우

    벌써 가을 초입인데 봄꽃 뉴스를 접하다니…. 이른 아침 조간신문을 뒤적이다 라일락에 대해 쓴 기사를 접하고 잠이 확 달아났다. 미 군정청 식물 채집가가 1947년 북한산에서 야생의 털개회나무 종자를 채취해 미국에서 원예종으로 개량해 이름도 ‘미스킴 라일락’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본래 한국 토종인지도 모르고 봄마다 코끝을 간질이는 라일락 향기에 취했나 보다. ‘수수꽃다리’란 예쁜 우리말 이름도 잊어버린 채 말이다. ‘미스김’도 아닌 ‘미스킴’이란 개량종 라일락의 호칭이 한국과 미국 사이의, 어중간한 국적을 말해주는 듯하다. 며칠 전 평창에서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 총회가 개막됐다. 생물주권 보호가 총회의 큰 이슈라고 한다. 토종 수수꽃다리가 미스킴 라일락으로 둔갑해 역수입되는 사례가 반복되는 게 우리에게 달가울 리는 없다. 문득 ‘생물주권’ 못잖게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도 ‘줏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화합하되 자신의 바른 원칙은 지키는 것)이란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구본영 이사대우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우산혁명 vs 공자 마케팅/구본영 이사대우

    홍콩의 민주화 시위 열기가 갈수록 뜨겁다. 중국 주도 행정장관 선거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대가 금융중심지 센트럴(中環)과 홍콩 정부청사 주변도로를 이미 점거했다. 시위대가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를 우산으로 막는 풍경이 일상화되면서 신조어까지 등장했단다. 외신이 명명한 ‘우산혁명’이다. 지난 9월의 중국 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가 시위의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 전인대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선거후보자를 친중국계 인사로 제한하려는 결정을 하면서다. 즉, 친중 인사 1200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만 행정장관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홍콩 민주화 세력은 이를 친중 인사를 홍콩의 행정수반으로 내리꽂으려는 의도로 읽는다. 이들이 덩샤오핑이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원칙을 저버렸다고 반발하면서 ‘센트럴을 점령하라’는 시민단체까지 조직해 시위에 나선 배경이다. 우기(雨期)도 아닌 홍콩의 ‘우산 물결’이 어디로 흐를 것인가.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던 영국은 물론 미국 백악관까지 “홍콩인들의 민주화 열기를 지지한다”고 거들고 나섰다. 중국 공산당식 간접선거가 아닌, 직접·보통선거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마잉주 타이완 총통도 “(중국·홍콩식)일국양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모델을 타이완과의 통일방식에 적용할까봐 방어막을 친 것이다. 시위는 중국 국경절인 오늘 비등점까지 치솟았다가 연휴가 끝나는 시점에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베이징 당국이 ‘완전 직선제’ 등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홍콩의 경제는 시장경제체제로 두되 정치권력은 공산당 일당체제인 베이징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게 중국의 기본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시 주석은 그간 대내외 양면 카드로 ‘공자 띄우기’에 앞장서 왔다. 외국 방문 등 기회 있을 때마다 논어 구절을 인용하고 공자의 인애사상을 강조했다. 중화굴기에 따른 주변국의 우려를 다독이려는 포석이었다. 내부적으론 국가에 대한 충(忠)을 강조하는 유교사상이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란 속내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공자 마케팅’으로 넘어가기엔 사태가 너무 엄중하다. 어찌 보면 중국 5세대 지도부가 마오쩌둥의 건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이은 중대 선택을 해야 할 형국이다. 제2의 톈안먼 사태를 각오하면서 강경 진압하느냐, 아니면 대륙에 앞서 홍콩에서 직선 등 서구식 민주주의 실험을 해보느냐의 갈림길에서…. 구본영 이사대우 kby7@seoul.co.kr
  • 국세청장 “가혹한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

    국세청장 “가혹한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

    국세청이 29일 131만 8000여개 중소기업에 대해 내년 말까지 세무조사나 사후검증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경제 살리기’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기업은 제외되며 연 매출 1000억원 미만(음식숙박업은 10억원)의 중소기업 중에서도 경기 침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음식숙박업을 비롯해 경기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할 건설, 해운, 조선업이 주된 지원 대상이다.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한 기업도 지원 대상이다. 외환위기 당시 세무조사나 사후검증 등 세무 간섭이 유예된 적은 있지만 국세청이 이처럼 업종별로 세분화된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세청은 이날 홈페이지에 해당 업종별 코드를 공개했다. 이번 세무조사 유예 조치가 세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올해도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대책이 나온 점은 주목된다. 이번 조치로 연 매출 300억원 미만이면서 전년보다 고용을 2% 이상 늘리거나, 연 매출 300억원 이상 1000억원 미만이면서 고용을 4% 이상 늘린 기업은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다. 청년(15~29세) 1명을 고용하면 가중치가 부여돼 1.5명으로 계산된다. 연 매출 1000억원 미만인데 현재 세무조사나 사후검증을 받고 있는 기업은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된다. 또 대상 기업이 자금난을 겪고 있으면 납기 연장, 징수 유예, 부가가치세 환급금 조기 지급을 해 준다. 사업에 실패했다가 재기하는 사업자나 청년 창업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지금까지는 세금 체납이 있으면 사업자등록이 거부되거나 세금을 다 낼 때까지 정상적으로 사업을 재기하기가 어려웠다. 앞으로는 체납액이 3000만원 미만인 신용불량자도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면 즉시 발급된다. 사업자등록 신청 때 체납 세금에 대해 분할납부 계획을 제출하는 등 납부 의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최장 1년간 체납처분을 유예해 주고 신용 정보 제공 해제도 지원한다. 사업장을 갖추기 어려운 청년·벤처 창업자가 사업장이 없는 경우 주소로 사업자등록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사업장 주소가 없을 경우 세무서마다 사업자등록이 달라 민원이 제기됐었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수송동 본청에서 열린 전국 관서장 회의에서 “논어에 보면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 하여 ‘가혹한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고사가 있다”며 “성실신고를 유도해야 할 세무조사나 사후검증에 대해 납세자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국세청은 세수 확보를 위해서만 일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는 성실납세 지원을 세정 운영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학동들 폭풍질문에… 훈장님 ‘땀 뻘뻘’

    학동들 폭풍질문에… 훈장님 ‘땀 뻘뻘’

    무더운 여름, 유종필 관악구청장이 진땀을 뺐다. 날씨 탓이 아니다. 주범(?)은 초등학교 1~3학년 16명이다. 어쩌다 입담 좋기로 유명한 그가 꼬마들 앞에서 말문이 막혔을까. 20일 유 구청장은 서울시와 함께하는 까치서당의 일일 훈장님으로 스카우트됐다. 까치서당은 어린이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한문과 고사성어, 예절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이 2기인 서당은 이달 13일 시작해 12월 17일까지 매주 한 번씩 열린다. 조부가 서당 훈장을 지냈기에 유 구청장의 한학(漢學) 실력은 간단찮다. 그래서일까. 그는 겁 없이 훈장 제의를 덥석 받아들였다. 가르칠 내용도 머릿속에 금세 떠올랐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그가 선택한 것은 논어의 첫 구절이었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었다. 학동들이 1~3학년 초등학생이라는 점이다. 도포까지 말끔하게 갖춰 입은 유 구청장이 처음 학생들 앞에 나섰을 때만 해도 수업은 순조로울 듯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제자들의 장난이 시작됐다. “학이시습지…”라며 수업을 진행했지만 아이들은 처음 보는 구청장이 신기해 떠들기만 했다. 회초리까지 내보이며 면학 분위기 조성에 나섰지만 헛물만 켰다. 결국 유 구청장이 백기를 들고 질문을 받기로 했다. 진짜 땀 뺄 일은 그제야 시작됐다. 아이들은 “한자는 왜 배워요”, “영국에도 한자가 있어요”, “중국에서도 영어를 써요”, “한자는 몇 글자나 돼요”라는 곤란한 질문들을 퍼부었다. 당황한 나머지 주춤하던 유 구청장은 그래도 재밌게 하나씩 답해 나갔다. “음, 한자는 우리가 지금 쓰는 말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영국에서도 한자를 많이 공부하지요. 또 한자가 몇 글자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한자는 모양을 보고 만드는 글자라 오늘도 새로운 글자를 만들 수 있거든요.” 40분 강의를 끝낸 유 구청장의 이마엔 땀이 흥건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엔 “차라리 한학 공부하는 학생들이 편하지, 꼬마들을 가르치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아이들이 간단한 한자도 알고 어른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도 하는 걸 보니 뿌듯했다”며 웃었다. 힘들어하는 유 구청장 앞에서 아이들은 신 나는 표정이었다. 한 학생은 ‘학이시습지불역열호’를 또박또박 외고 있었다. 3학년 이다연 어린이는 “앞으로도 이런 수업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없는 걸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서동철의 시시콜콜] 없는 걸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서대문독립공원이 술렁거린다. 철거된 순국열사 추모비의 복원운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항일투쟁으로 옥고를 치른 선열을 기리고자 1998년 옛 서대문형무소를 공원화한 곳이다. 여기서 고문으로 순국한 애국지사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400명에 이른다. 일본의 우경화를 넘어선 군국주의화 움직임을 우리 국민 모두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바탕에는 침략을 부정하는 과거사 인식의 오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서대문독립공원의 존재가치는 더욱 뚜렷해져야 정상이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이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죄상을 확인하고 역사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생생한 역사교육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게 다 옛날 얘기라는 것이다. 공원을 조성하면서 옛 사형장 입구엔 순국열사 추모비가 세워졌다. 이름이 확인된 순국열사 90명의 이름을 검은 빗돌에 금박으로 붙였고 헌화·분향 시설도 갖추었다. 2001년 이곳을 찾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는 이곳에서 무릎을 꺾어 헌화했다. 그는 형무소 건물 지하에 재현된 애국지사 고문 장면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라고 적었다. ‘논어’에 나오는 구절로 ‘그릇된 마음을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리곤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데 진심으로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마음으로 시설을 둘러봤다”고 말했다. 이곳에 남은 일제강점기 역사의 이미지가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2009년 추모비와 헌화·분향 시설이 철거됐다. 대신 ‘민족의 혼 그릇’이라는 상징 조형물이 놓였다. 지하의 고문 장면도 철거하고 영상물로 대체했다. 고이즈미 방명록도 이제는 전시하지 않는다. 당시 서대문구청장이 유신시대 이곳이 민주인사를 고문한 탄압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내용으로 ‘종합 정비’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일본 관광객들은 공원을 모두 둘러보고 과거사 인식을 바꾸기는커녕 야릇한 미소만 지으며 돌아가고 있다고 청원에 나선 사람들은 안타까워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서대문독립공원이 아베의 우경화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민주화운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순국선열을 홀대하고 바람직한 한·일 관계 정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방식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선업(善業)/구본영 논설실장

    얼마 전 고령화 시대라는 요즘 기준으로는 너무 일찍 세상을 뜬 어느 선배를 조문했다. 썰렁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가는 뜻밖에도 문상객들로 붐볐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옛 속담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래서 인과응보를 강조하는 불가(佛家)에서 쓰는 ‘선업신공’이란 말이 생각났다. ‘착한 일은 많이 하면 행운이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고인과는 저마다 다른 인연을 갖고 있을, 수많은 추모객들을 보며 틀린 화두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내세를 믿지 않은 사람들로선 이 각박한 세상을 살다가 죽은 뒤에 극락에 가는 게 무슨 소용이 닿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세를 중시하는 유교에서도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도와주는 이웃이 있다’는 뜻인, 논어의 한 구절이다. 문득 친구들의 십시일반의 도움을 받아 병마를 딛고 사업에서 재기한 한 지인의 최근 사례가 떠올라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본영 논설실장 kby7@seoul.co.kr
  • ‘끼리끼리’문화는 싫어 수많은 시도 좋아 백발 작가는 작업중

    ‘끼리끼리’문화는 싫어 수많은 시도 좋아 백발 작가는 작업중

    “2010년 다시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이렇게까지 홀대받으며 꼭 한국에서 활동해야 하느냐’는 (재미교포인) 아내의 성화 탓이었죠. ‘끼리끼리’ 학연이 지배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고졸 출신인 제가 버티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입니다. 미국에서 살 집과 잡일을 구하다 닷새 만에 돌아왔어요. 이런 식으로 도망칠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외선 모셔가는 작가인데 국내선 홀대 이렇게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린 작가가 또 있을까. 시대정신과 감수성으로 무장한 작가에게는 지금도 ‘천재’ 혹은 ‘정신 나간 사람’이란 엇갈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수억원의 그림값을 쳐주며 모셔갔지만,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은 500만원 그림값도 비싸다며 40%나 깎으려 들더라”고 고백한 김구림(78) 화백이다. 2012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어 비거 스플래시’(A Bigger Splash)전은 꺼져가던 김 화백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관심을 되살렸다. 데이비드 호크니, 구사마 야요이, 신디 셔먼, 잭슨 폴록 등 내로라하는 20세기 현대미술사의 거장들과 함께 ‘김구림’이란 이름 석 자가 올랐다. 작가는 1969년 여성의 몸에 붓으로 그림을 그렸던 ‘보디 페인팅’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들을 내놓았고 호평받았다. 이후 개인화랑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15년간 미국서 활동하다 2000년 귀국전 애초부터 그는 국내와 인연이 적은 ‘해외파’였다. 대구 ‘촌놈’이 무작정 상경해 1960~1970년대 한국 전위예술의 획을 그은 ‘제4집단’을 결성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그뿐이었다. “행위예술, 비디오아트, 대지미술 등을 넘나들 때 주간지마다 제 전담기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에선 종종 작품 전시조차 거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꽃무늬 탁자보와 사람들이 앉았던 방석을 늘어놓은 독특한 판화작품이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판화전이 계기가 됐다. “이대로 안주하지 않겠다”며 1985년 도미한 작가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15년간 거주하며 예술세계를 펼쳤다. 백남준과 2인전을 연 것도 이즈음이지만 세월이 흐르며 국내에선 완전히 잊혔다. 향수병이 도질 무렵, 옛 문예진흥원(아르코)이 대규모 개인전을 제안했다. 2000년 10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옛 문예진흥원 미술관에서 열린 귀국전에는 ‘김구림이 대체 누구냐’며 사람들이 몰렸고, 전시공간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김 화백은 말했다. ●“반짝 관심에 매년 전시 열어도 몰라” 그러나 그때뿐. 김 화백에 대한 국내 화단의 관심은 반짝이다 금세 사라졌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도 고독하다. “매년 전시를 열었지만 사람들이 몰랐을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플레이스막에서 열린 설치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진 작가나 기웃거릴 대안공간에서 대표작인 ‘음양시리즈’를 선보였다. 작은 배를 전시공간에 갖다놓고 물을 채운 뒤 마네킹의 머리와 팔, 모형 뱀과 사과를 함께 놨다. 관람객들이 “동명이인인 20대 작가 김구림의 작품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작가는 지금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지하에서 2000년대 이후 회화와 콜라주를 아우르는 160점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음달 24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성형천국을 꼬집는 도발적 풍자물로 가득하다. 작가는 “서울 강남역에서 마주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 여성 누드와 얼굴로 채워진 이런 작품들을 만들게 했다”고 말했다. 모형 손가락 뼈가 붙은 작품은 아직 사인조차 하지 않은 최신작이다. 젊은 시절 읽었던 논어 등 동양사상서들은 속이 파인 채 거친 욕망을 표현한 ‘진한 장미’시리즈로 탈바꿈했다. ●구상했던 수많은 설치 작품 시도해 보고파 머리와 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노 작가는 몇 가지 고백을 덧붙였다. “본명은 ‘김종배’예요. 미술계 선배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개명했죠. 20대 때는 대구에서 바이크 선수로 이름을 날렸어요. 사고로 지금도 오른쪽 갈비뼈 한 대가 없죠. 재미교포인 (두 번째) 아내와는 미국에 살던 시절, LA 폭동을 피해 잠시 거처를 빌렸을 때 16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인연을 맺었어요. 아들부터 낳고 합쳤는데, 여태껏 결혼식을 못 올렸죠. 1남 1녀 중 딸은 영국 골드스미스미대에서 제 뒤를 이어 미술 공부를 하고 있죠.” 그는 “지금도 예전에 구상했던 수많은 설치 작품들을 시도해 보고 싶지만 돈이 발목을 잡는다. 어떤 미술관이든 도와만 준다면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라고 되뇌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글로벌 시대] 시진핑과 인문학/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시진핑과 인문학/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여운이 아직도 묵직하다. 역대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는 것 외에, 주요 2개국(G2) 정상 시진핑이라는 인물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언론은 그의 정치적 성장기를 집중 보도했다. 그리고 양국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 한·중 FTA 연내 타결, 원·위안화 직거래 등에 합의했다. 여러 합의 내용 중에서 언론이나 일반인들이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인문학자인 필자의 시선이 간 부분이 있었다. 바로 한·중 양국이 인문 유대 강화 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는 보도였다. 양국 간 인문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인문교류 정책포럼을 개최하고, 한·중 청소년 특별 교류를 실시하며,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한·중 인문교류 공동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구체적 계획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문사철(文史哲) 열풍과 인문 소양 중시 분위기에 비추어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내용으로 평가된다. 바야흐로 신(新)르네상스의 시대라 할 수 있는 시점에 한·중 정상이 인문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라 하겠다. 한·중 양국은 인문교류의 훌륭한 토대를 이미 갖추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인문교류가 한자와 한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한자와 한문으로 언어생활을 했고, 중국의 경전, 사상서, 인문 소양서 등을 받아들여 수학하면서 문화, 사상, 인문이 자연스레 하나의 문화권으로 형성된 것이다. 인문학의 시각에서 시진핑은 중국의 역대 지도자 중 인문 소양을 제대로 갖춘 정치 지도자로 평가할 수 있다. 마오쩌둥이 정치사상을 강조한 정치관료였다면 덩샤오핑은 실용경제를 중시한 경제관료, 후진타오는 과학기술을 중시한 기술관료, 시진핑은 역사지능과 인문소양이 높은 인문관료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시안(西安) 량자허(梁家河) 토굴에서 7년 동안 잡곡밥, 벼룩과의 사투, 고된 작업량으로 상징되는 ‘하방’(下放) 생활을 거친다. 중국 영화 ‘발자크와 소녀재봉사’에는 하방된 대학생이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Balzac)의 작품을 읽으면서 고난을 극복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시진핑도 이 시기 여러 인문 교양서들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다. ‘독서가 리더십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또한 그는 고사성어와 격언 등을 자주 인용해 격조와 함축미가 풍겨 나는 수사학(修辭學)을 구사한다. 이번 방한 중 기고문과 연설에서 논어(語), 당시(唐詩), 고금현문(古今賢文)을 인용했는데 이는 중국의 다른 지도자와 극명하게 차별되는 인문 소양 중심의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타분야와의 융복합이 주목받는 시점에서, 한·중 인문유대는 양국 간 무형의 자산을 활용해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자문화권인 일본, 베트남을 포함한 동아시아 인문교류의 장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젊은 세대들과 중국의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주링허우’(九零後)들은 인문 소양이 부족한 세대들이다. 한·중 인문유대사업으로 ‘신(新)채근담’, ‘신(新)명심보감’ 같은 인문 교양서를 공동 개발해 양국의 청소년들이 함께 공부하고, 인문소양과 역사지능을 갖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 [광역단체장 인터뷰] 전북도청 20년·행자부 5년… 공직생활 ‘뚜벅뚜벅’

    송하진 전북지사는 한학자이자 서예가로 명성이 높았던 강암 송성용 선생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호남평야가 펼쳐진 김제시 백산면에서 출생한 그는 김제 종정초등학교, 익산 남성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어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예술행정으로 석사, 고려대에서 정책행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전북도 지역경제국장, 기획관리실장, 행정자치부 교부세과장, 지방분권지원단장 등을 지냈다. 전북도청에서 20년, 행자부에서 5년 등 25년간의 공직생활을 토대로 민선 전주시장에 도전했다. 2006년 민선 4기 전주시장에 당선돼 재선에 성공한 것을 바탕으로 도백에 도전,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경선 과정에서 재정경제부 장관과 3선 의원을 지낸 강봉균 후보, 재선의 유성엽 의원 등을 물리치고 본선에 올랐다. 6·4 지방선거에서 69.2%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송 지사는 평소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한다. 논어에 나오는 글귀로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고 원칙과 소신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드럽고 웃음을 잃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송 지사의 집안은 전북에서 손꼽히는 명문가로 통한다. 부친인 강암 선생은 평생 상투를 고집한 유학자이고 큰형 하철씨는 관선 전주시장과 전북도 부지사를 역임했다. 그 아래 두 형은 국내 서예계의 거목이고 대학교수를 지냈다. 송 지사 역시 서예와 한학에 일가견이 있다. 명필인 데다 판소리 한 가락을 뽑을 만큼 예술적 감성도 풍부하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씨줄날줄] 美·中대화와 외교수사학/박홍환 논설위원

    중국의 지도자들은 선조들의 휘황찬란한 역사와 문화에 고마워할 법도 하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사자성어나 고문들을 이용해 대화의 상대방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하늘이 건네준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간결하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뜻을 상대방에 고스란히 전달해줄 수 있는 사자성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선조들에게 머리를 조아릴 이유는 충분하다. 일단 멋들어진 풍류를 내보일 수 있지 않는가. 특히 대국을 상대로 한 외교에서 그 진가는 두드러진다. 그제 열린 제6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논어의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다”(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구절을 인용해 남중국해 등에서 미국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뜻을 완곡하게 밝혔다고 한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활동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미국에 왜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어 사달을 일으키느냐는 힐난을 한 것에 다름 아니다. 직언을 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얘기들을 고전을 꺼내 들어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과 중국, G2(주요 2개국) 간 전략경제대화는 2009년 처음 시작됐다. 조지 H 부시 행정부 시절 진행된 ‘전략경제대화’가 중국의 위상 확대에 따라 ‘전략과 경제’ 대화로 확대 개편된 것이다. 전자가 경제에 방점이 찍혔다면 후자는 외교에 주안점이 있다. 두 나라의 외교 및 경제 사령탑이 번갈아가며 상대국을 방문해 회의를 진행한다. 북핵이나 위안화 절상 등 이슈에 따라 긴장감이 달라진다. 외교적 수사(修辭)가 총동원되는 것은 물론이다. 워싱턴의 첫 번째 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 미 지도자들은 온갖 수사여구를 동원해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중국의 행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을 때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산(山)은 계속 다니면 길이 만들어지지만 얼마 동안 다니지 않으면 풀이 우거져 막히게 된다”는 맹자(孟子)의 말을 인용, 양국이 21세기의 새 길을 만들어 보호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힐러리 장관은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심심상인’(心心相印)과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人心齊, 泰山移)’는 중국 속담을 꺼내 협력을 구했다. 이후로도 미·중 양측 인사들은 전략경제대화에서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자는 뜻을 담은 ‘동주공제’(同舟共濟) 등의 사자성어를 종종 거론했다. 하지만 그들이 건네는 덕담 속에는 상대를 견제하는 가시와 발톱이 감춰져 있음은 물론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길섶에서] ‘호저(豪猪) 딜레마’/정기홍 논설위원

    지인에게 작은 부탁을 했더니 세상 돌아가는 물정도 모르냐는 말투다. 한마디를 더했다. 그의 직장에서는 서로 간에 부탁하지 않는 게 오랜 분위기란다. 농번기에 품앗이하던 순정의 시절도 아니고 이권에 개입돼 망신당하기 십상인 요즘이다. 다소 매정했지만 그의 지적이 신선하게 다가선다. 고슴도치와 비슷하게 생긴 호저(豪猪)의 무리들은 한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의 체온을 느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잠을 잔다고 한다. 꼭 껴안고 자고 싶지만 몸에 난 가시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만든 것이다. 가까울수록 어렵게 대해야 한다는 ‘호저 딜레마’란 철학적 우화로 더러 인용된다. 논어에도 ‘군주를 섬기고 벗을 사귀면서 너무 잦으면 욕된 일을 당하거나 멀어진다’는 경구가 있다. 허물없다며 거리낌없이 말하는 그때 친구는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다. 한 젊은 지방의원이 친구에게 자신이 돈을 빌린 채권자를 살인해 달라고 한 사건이 연일 귓전을 때린다. ‘살벌한’ 이해관계가 득실한 세태다. 나의 부탁을 거절한 그와의 ‘이인동심’(二人同心)이 오래갈 듯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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