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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푸바오 속앓이/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푸바오 속앓이/이동구 논설위원

    중국은 외교관계를 맺은 중요 국가에 판다를 선물하는 것을 관행처럼 이어 오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판다를 외교에 활용하는 ‘판다외교’를 그리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인권이나 대만 문제 등을 희석시키는 데 판다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희귀동물의 서식지를 인위적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시선은 곱지 않다. 판다가 돈벌이와 정치적 도구가 되는 것에는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다. 최근 몇 년 사이 무력과 보복을 앞세워 주변국을 압박하는 이른바 ‘전랑(戰狼ㆍ늑대 전사)외교’를 노골화하면서 중국의 ‘판다외교’는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 정부의 입장을 강경한 어조와 행보로 관철시키려는 모습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이 올 들어 와카야마현의 새끼 판다 11마리와 우에노 동물원의 두 살짜리 판다를 중국에 돌려보낸 것도 악화일로에 있는 중일 관계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새끼 판다 송환금지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낸시 메이스 미 하원의원은 법안을 제출하면서 “해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판다의 짧은 체류 이면에 감춰진 사악한 음모를 알지 못한 채 판다를 즐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한 중국대사의 도 넘은 언행으로 국민 감정이 편치 않은 시점에 세 살배기 한국 태생 판다의 송환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푸바오(福寶)는 2020년 7월 20일 국내 최초 자연번식으로 태어나 아빠 러바오(樂寶), 엄마 아이바오(愛寶)와 함께 용인 에버랜드에서 지내고 있지만, 네 살이 되는 내년에는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육사들은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간 뒤 중국인 사육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을 염려해 중국어로 소통하는 노력을 쏟고 있다. 푸바오가 사육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공주처럼 자라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중국 누리꾼들의 애절한 마음이 표출되고 있다. 한 중국 누리꾼은 “푸바오가 한국에 더 오래 머물기로 양국이 합의했다”는 가짜뉴스까지 올렸다고 한다. 자국의 외교 또한 전랑이 아니라 푸바오처럼 사랑스런 판다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는 ‘속앓이’는 아닐지. 우리 국민들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 [길섶에서] 초여름 캠핑/황비웅 논설위원

    [길섶에서] 초여름 캠핑/황비웅 논설위원

    따스한 날씨와 기분 좋은 바람은 초여름 캠핑의 묘미다. 지난 주말 경기도 가평으로 가족들과 캠핑을 갔다. 오랜만에 나선 나들이인지라 아내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끊이질 않았다. 아내가 엄선해 고른 글램핑장은 삭막한 도심을 벗어나 쉼표를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수영장이 있고, 숯과 모닥불 세트도 판매했다. 텐트 바로 옆 계곡에선 청아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계곡으로 내려가 발을 담가 보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저녁 무렵엔 초여름인데도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요즘 유행하는 ‘감성캠핑’을 위해 모닥불을 피웠다. 나무가 탁탁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들으며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데, 제 몸이 타는 것도 모른 채 달려드는 나방들이 있었다. 인간관계가 그런 것 같다. 온기를 느끼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닥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어느 순간 타들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부고]

    ●임재희씨 별세, 백호(서울교통공사 사장)씨 장모상 = 13일 은평성모병원, 발인 15일. (02)2030-4444 ●유정자씨 별세, 김종민(자영업)·미연(강사)씨 모친상, 조익한(국민일보 편집담당 부국장 겸 종합편집1부장)·서윤철(필드ENC대표)씨 장모상, 유은미(도로공사)씨 시모상 = 13일 성남시장례식장, 발인 15일. (031)752-0404 ●정효습(전 남양전업 대표)씨 별세, 박연지씨 남편상, 정영오(한국일보 논설위원)·슬아(주부)씨 부친상, 이현정(제일기획 국장)씨 시부상, 강석규(노무라금융투자 부문장)씨 장인상, 정지윤(한국 SG증권 과장)·정지호(학생)씨 조부상 = 13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02)2227-7580 ●이진석(KBS 스포츠취재부 팀장)씨 별세, 박경주씨 남편상 = 13일 서울 여의도성모장례식장, 발인 15일. (02) 3779-1526
  • [씨줄날줄] 방향 잃은 유나바머/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방향 잃은 유나바머/안미현 수석논설위원

    1995년 9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기고문을 실어 주면 당시 미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은 폭탄 테러를 멈추겠다는 내용이었다. 고민에 빠진 뉴욕타임스는 연방수사국(FBI)과 논의 끝에 결국 기고문을 지면에 실었다. ‘인류에게 있어 산업혁명과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체제를 이끌어가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술적 필요성이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도 하지만 그건 대체로 체제 자체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 한한다. 중요한 것은 체제의 욕구이지 인간의 욕구가 아니다.’ 원제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이지만 ‘유나바머 선언문’으로 더 유명하다. 2만쪽 분량이다. 지금까지도 ‘정신병자의 황당한 외침’이라는 주장과 ‘현대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는 평가가 갈린다.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유나바머의 본명이다. 폭탄(Bomb)을 소포로 배달해 3명을 죽이고 23명을 다치게 한 중범죄자다. 폭탄 소포가 주로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에 배달돼 FBI가 유나바머라는 별칭을 붙였지만 엄밀히는 그의 17년 범죄행각 동안 이름은커녕 실마리조차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더 컸다. 애초 FBI는 학력이 낮은 일용직 노동자를 용의자로 추정했다. 하지만 유나바머는 잘 알려진 대로 하버드대 수학과를 나와 25세에 박사 학위를 받고 UC버클리대 최연소 교수가 됐다. 혹자는 하버드대가 10대 재학생인 그에게 행한 가학적인 심리실험을 ‘유나바머 탄생 배경’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일부러 극도의 불쾌한 감정 상태로 몰아가 심리적·생체적 변화를 살피는 실험이었다. 정작 유나바머 자신은 훗날 옥중 인터뷰에서 이런 가설에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결국 기고문 때문에 꼬리가 밟혀 1996년 체포된 그가 지난 10일(현지시간) 교도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스로 81년 삶을 끝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인간을 파괴한 기술과 산업을 공격하면서 인간을 도구로 쓴 유나바머는 천재성 여부를 떠나 ‘방향’을 잃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삶을 다룬 드라마 ‘맨헌트’(manhunt)에서 주인공은 유나바머 검거에 성공하고도 바뀐 신호등 앞에서 차를 출발시키지 못한다. 마치 우리 사회는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거냐고 묻듯이.
  • [길섶에서] AI 부작용/이동구 논설위원

    [길섶에서] AI 부작용/이동구 논설위원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이제는 창작영역까지 대신해 준다는 ‘챗GPT’에 이어 인간과 사랑을 나누는 인공지능(AI)도 상용화됐다니 어리둥절하다. 실제 미국 뉴욕에서 두 아이를 가진 30대 싱글맘은 앱에서 만난 ‘남성’과 결혼해 달콤한 신혼을 즐기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AI 남편’인 셈이다. 며칠 전 과학관에서 ‘나이 맞히기’라는 AI 기술을 경험했다. 대형스크린 앞에 서니 “기분이 좋아 보여요”라는 자막과 함께 실제 나이보다 20년 이상 적은 나이를 알려 줬다. 우쭐한 마음에 다른 것을 관람하던 아내를 불러 화면 앞에 세웠더니 “화내지 마세요”라는 자막과 함께 엇비슷한 나이를 표기했다. 웃음보가 터졌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마음가짐을 밝게 하고 젊게 살아야지”라며 은근히 약을 올리니 대뜸 쏘아붙인다. “남편이 애먹이고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표정이나 몸매가 다 망가진 거지”라며 짜증을 부린다. “AI 부작용이겠지”라며 다른 곳으로 옮겼다.
  • [서울광장] 내려올 때를 아는 지도자가 보고 싶다/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내려올 때를 아는 지도자가 보고 싶다/임창용 논설위원

    지난 1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전격 사의를 표명해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10월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하면서 사실상 정계은퇴 선언이 됐다. 40대 초반의 여성 정치인인 데다가 임기도 많이 남아 있던 상황이라 전 세계 지도자들이 의아해했다. 아던 총리는 다음과 같은 사임의 변을 내놓았다. “특권적인 역할엔 적임자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알아야 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아던 전 총리는 37세이던 2017년 노동당 대표를 맡아 그해 10월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총리에 올랐고, 2020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지나치게 강한 규제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기가 많이 떨어지고,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야당에 뒤지는 결과까지 나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자진사퇴할 정도까지 상황이 악화된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임기까지 버티고, 낙마하더라도 기회를 잡아 재기하려는 이들이 넘치는 정치세계에서 ‘적임자일 때를 아는 책임’을 내세운 사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2022년 선종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사임하면서 내놓은 문서의 맥락도 아던 전 총리와 비슷하다. 그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복음을 선포하려면 몸과 마음의 힘도 필요하다. 맡겨진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정도로 제 자신이 너무 약해졌다”며 교황의 직을 내려놓았다. 교황은 종신직이다. 선종해야만 다음 교황을 뽑는 추기경단 회의가 소집돼 온 불문율에 비춰 베네딕토 16세의 ‘생전’(生前) 사임은 이례적이었고, 지도자의 책임은 태산보다 무거워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베네딕토 16세나 아던 전 총리처럼 내려갈 때를 알고 이를 스스로 실천하는 지도자는 사실 별로 없다. 외려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다. ‘최순실발’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탄핵의 촛불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할 때 상당수 언론과 비평가들은 박 전 대통령이 직을 스스로 내려놓길 촉구했다. 그때 이미 국정 수행을 위한 에너지는 소진된 상태였다. 한데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버티는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는 탄핵에 의한 강제 하차였고, 특검 수사로 이어져 만신창이가 된 채 중형을 선고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금 정치권에서 박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곳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쫓아내는 데 앞장섰던 더불어민주당이란 생각이 든다. 버티기의 대표주자는 이재명 대표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로서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곧바로 총선과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야당 권력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성남 대장동·백현동 사건과 성남FC 불법 후원 사건 등에 휘말려 재판과 수사를 받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재판 결과에 따라 당 대표 유고나 당 와해 위기를 맞을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전대 돈봉투 사건’에 휘말려 위기를 맞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두 번이나 검찰에 ‘셀프 출석’하는 쇼를 연출했다.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질없는 버티기가 연상돼서다. 민주당에선 지난 10년간 선거 패배 등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기득권화된 586세력 용퇴론이 불거졌다. 하지만 위기를 모면하면 없던 일이 됐다. 지난해에도 송 전 대표는 대선 패배 후 ‘586 용퇴론’을 외쳐 놓고 석 달 만에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코미디를 벌였다. 이젠 결국 ‘부정 선거’ 사건에 휘말려 나락에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희대의 입시 부정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까지 선고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총선 출마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정도면 버티기가 ‘병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내려오지 않으면 결국 끌려 내려온다는 아주 단순한 상식마저 통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 [씨줄날줄] 코리아 코커스/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코리아 코커스/황비웅 논설위원

    미국 의회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코커스(caucus)다. 코커스는 자발적으로 의원들이 조직한 단체로서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미국 의회에서는 각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별 코커스 활동이 활발하다. 2003년 1월 미 하원에서는 마이클 카푸아노(민주·매사추세츠), 비토 포셀라(공화·뉴욕) 의원 주도로 코리아 코커스가 정식 출범했다. 지난 20년간 미 하원 코리아 코커스 의원들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 추진 당시엔 코리아 코커스 의원들 다수가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이 법안으로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이 가능해졌고, 북한 인권 문제가 미국 사회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2007년에는 코커스 소속인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의원과 코커스 공동의장이었던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의원이 초당파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했다. 혼다 전 의원은 이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우리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코리아 코커스 의원들은 미 행정부를 압박하는 역할도 한다. 2008년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 영유권 표기를 ‘주권 미지정’으로 표기했다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일주일 만에 ‘한국’과 ‘공해’로 되돌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코리아 코커스 의원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원상복구를 촉구했다. 2014년에는 중국 해상 영유권 분쟁 청문회에서 코커스 중진인 제럴드 코널리(민주·버지니아) 의원이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에게 2차 대전 당시 범죄를 일본이 인정하고 한국에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2021년에는 코커스 소속 그레이스 멩(민주·뉴욕) 의원이 미국 내에 거주하는 한인 이산가족과 북한 가족의 상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미 상원에서도 코리아 코커스가 결성됐다. 존 오소프(민주·조지아), 댄 설리번(공화당·알래스카), 브라이언 샤츠(민주·하와이), 토드 영(민주·인디애나) 의원 등이 주축이다.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최근 분위기 속에 하원의 코리아 코커스보다 더욱 활발한 활약상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 [길섶에서] 아듀, ‘빨간 극장’/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아듀, ‘빨간 극장’/이순녀 논설위원

    서울 용산구 서계동 1번지. 회색도시 풍경에 반기라도 드는 양 강렬한 빨간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이 있다. 서울역 뒤편 서부역을 이용하는 시민과 행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곳은 국립극단 공연장인 백성희장민호극장과 소극장 판이다. 국립극단이 기무사 수송대가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해 2010년 12월 개관했다. 문화시설을 상상하기 어려운 위치인 데다 컨테이너 건물이고, 게다가 건축에 잘 사용하지 않는 색상의 외관이다 보니 ‘수상한 시선’도 적잖게 받았다. ‘빨간 극장’이 13년 만에 사라진다. 11일 폐막한 연극 ‘영지’를 끝으로 건물이 헐린다. 이 자리엔 연극, 무용, 뮤지컬을 아우르는 15층 규모 복합문화시설이 2026년쯤 들어설 예정이다. 무대는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반복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무대가 사라져도 관객이 느낀 감정은 긴 여운으로 남는다. 빨간 극장에 대한 기억도 그렇게 오래 간직될 것이다.
  • [씨줄날줄] 스포츠 워싱/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스포츠 워싱/이순녀 논설위원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 간 전격 합병 선언의 여진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6월 LIV 골프 출범 직후부터 격렬하게 ‘골프 전쟁’을 벌여 온 두 단체가 1년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잡자 사우디의 인권침해와 독재권력을 비판해 온 미 민주당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은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정말 이상하다. PGA 투어 관계자들은 몇 달 전만 해도 사우디 인권을 언급하며 미국 스포츠 지분 소유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면서 “아마도 그들 관심사는 인권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사우디가 막대한 오일머니를 스포츠에 쏟아부어 인권침해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리는 ‘스포츠 워싱’에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의 연장선이다. 사우디는 2021년 잉글랜드 프로축구 뉴캐슬 지분을 4856억원에 인수했고, 같은 해 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FI)을 개최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엔 우크라이나 국민 영웅이자 통합 챔피언 올렉산드르 우시크와 헤비급 최고 인기 스타 앤서니 조슈아의 타이틀 매치를 개최해 복싱 팬을 열광시켰다. 국제대회 유치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2029 동계아시안게임, 2034 하계아시안게임을 따냈고 2030 FIFA 월드컵, 2026 하계올림픽 개최도 노리고 있다. 2018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목되면서 인권침해와 독재 논란이 커지자 스포츠를 이미지 세탁 수단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독재 정권이나 권위주의 국가에서 스포츠 워싱 사례는 드물지 않다. 1934년 이탈리아월드컵,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은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히틀러 체제에서 개최됐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올림픽 폐막 직후 크림반도를 침공했는데, 전쟁 준비를 은폐하는 눈속임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은 지난해 신장위구르 지역 탄압 논란 속에 베이징올림픽을 치렀다. 1980~90년대 국내에선 ‘3S 정책’이 회자됐다. 대중의 관심을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 섹스(sex)로 돌려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독재정권의 우민화 정책이었다. 용어는 달라도 본질을 가리고, 이미지를 덧씌운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 [길섶에서] 유월이 와서/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유월이 와서/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삽짝’이란 말을 오랜만에 마주쳤다. 며칠을 머릿속에 맴돈다. 대문에 밀리고 현관에 밀려서 잊혀진 말. 삽짝, 삽짝 하면 기다려도 안 오던 사람이 사부작사부작 걸어올 것 같다. 떠난 사람들이 보고 싶어지면 삽짝, 삽짝 소리내 불러 봐야지. 불러 주지 않아서 가 버린 것들이 많다. 저 혼자 가지 않고 훌훌 데려가 버린 것들은 또 얼마인지. 삽짝을 모르면 삽짝 저쪽 마당가의 수채 도랑을 알 수가 없고. 물이끼 피는 그 도랑을 모르면 “뜨건 물 나가시네” 크게 먼저 소리치고 끓는 솥 비우신 할머니 마음을 알 수가 없고. 그 소리에 놀란 개미들 줄행랑치는 도랑을 돌아 뒤란을 모르면 물앵두 다 익어 몰래 떨어지는 풋그늘을 알 수가 없고. 그 뒤란 너머 안마루의 두레상을 모르면 무릎 붙이고 숟가락 붐비던 그 저녁을 알 수가 없지. 두레밥상 접고 나면 동그란 이마 위로 봉긋한 달. 둥글게 저물던 저녁, 모서리가 없던 밤. 눈만 감아도 삽짝에서 달까지 한달음에 다녀오고야 마는 유월의 이야기.
  • [길섶에서] 골짜기 세대/안미현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골짜기 세대/안미현 수석논설위원

    20세 이하 남자 월드컵 축구 대표팀이 장안의 화제다. ‘광탈’(광속 탈락)할 것이라는 일각의 냉소를 딛고 대표팀은 보란 듯이 4강까지 올라갔다. 이들은 ‘골짜기 세대’라 불린다. 우뚝 솟은 봉우리 사이의 골짜기처럼 출발할 땐 존재감이 없었다. 빼어난 실력을 가진 것도, 화려한 스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다. 골키퍼를 빼고는 대표팀 전원이 출전 기회를 얻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지만 더 시선이 간 것은 등번호 18번이 적힌 유니폼이었다.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기념촬영을 할 때도, 승리 뒤 환호할 때도 어김없이 이 유니폼을 흔들며 함께했다. 유니폼 주인공은 온두라스와의 시합 중 부상을 당해 조기 귀국한 박승호 선수다. 아르헨티나서 뛰는 선수나 한국서 TV로 응원하는 박 선수나 원팀이었다. 처음 한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이후로도 계속 ‘동반 출전’하는 모습에서 찐동료애가 느껴졌다. 누가 Z세대가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했는가. 보편화의 편견을 다시 한번 경계하게 만드는 골짜기 세대다.
  • [씨줄날줄] 사이코패스 검사/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이코패스 검사/임창용 논설위원

    질문1. 젊은 자매가 할머니상을 당해 슬퍼하고 있는데 멋진 남성이 조문을 왔다. 언니와 동생이 모두 첫눈에 반했지만 장례식 후 그 남성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얼마 후 언니가 동생을 죽이게 되는데 그 이유가 뭘까. 정상인들은 답을 찾기 어렵겠지만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동생 장례식에서 그 남성을 볼 수 있을 거 같아서.’ 질문2. 당신은 지금 남의 집에 침입해 도둑질을 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집주인이 나타나 당신 얼굴을 보고 옷장 속으로 숨어 버렸다. 옷장엔 잠금 장치가 없다. 당신에게 칼이 있다면 집주인을 어떻게 죽이겠는가. 사이코패스는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면 죽인다’고 답한다고 한다. 상대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느낌이나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을 즐기기 때문이다. 흉악범이 잡히면 수사기관은 범죄 동기나 다른 범죄 여부를 캐내기 위해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한다. 테스트는 캐나다 범죄심리학자 로버트 헤어 박사가 제시한 사이코패스 판정 도구(PCLR)에 기반한 것으로 앞서 사례로 든 것과 유사한 총 20개의 질문으로 구성된다. 총점 40점에 가까울수록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선 25점이 넘으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며, 해외에선 30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로 판정한다. ‘계곡살인’ 범인 이은해는 31점이 나왔고,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만점에 가까운 34점이 나왔다고 한다. 얼마 전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20대 여성의 집으로 찾아가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의 검사 수치도 정상인의 범주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코패스는 태생적으로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대한 공감능력은 없는 반면 자신의 욕망은 강렬해 분출하고자 하는 특징을 갖는다. 충동적이고 우월감이 매우 강하다. 전 세계 인구의 1% 정도가 이런 성향을 갖는다고 하니 그리 드문 편도 아니다. 물론 모든 사이코패스가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성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큰 성공을 한 사업가나 의사, 검사 등 한 분야를 파고든 사람들의 뇌가 사이코패스의 뇌와 비슷하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 주변엔 이런 ‘선한’ 사이코패스만 있기를.
  • [황성기 칼럼]과학이 ‘방탄당’ 주술 이겨야-현장에서 본 후쿠시마 문제<3>/논설위원

    [황성기 칼럼]과학이 ‘방탄당’ 주술 이겨야-현장에서 본 후쿠시마 문제<3>/논설위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출로 가장 신난 나라는 중국이다. ‘대만 문제’ 등의 지렛대로 일본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염수가 안전하고 무해하다면 왜 농업·공업용수로 쓰지 않는가.” 5월 10일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의 브리핑이다. 이 브리핑을 접한 국내 원자력 전문가는 “중국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중국이 가동 중인 원전은 동북아 3국 중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원전 정보 투명도는 가장 낮다. 우리의 서해, 즉 중국 동쪽에서부터 남중국해까지 바닷가에 가동 중인 원전은 55개. 여기에 그만한 수를 건설·계획 중이다. 그 원전들이 발전의 부산물인 오염처리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동 중인 한국의 원전 25개, 일본 10개와 방류량을 비교하면 2~5배에 이른다. 중국산 ‘액체방사성폐기물’(오염처리수)이 안전하다면 중국도 농공업용수로 써야 옳을 것이다. 전 세계 32개국에서 가동 중인 422개 원전의 20%가 모여 있는 동북아 3국이다. 세 나라의 원전 정보 투명성을 우리가 100이라고 할 때 일본 95~105, 중국 70 정도라고 한다. 정부의 원전 과학자는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정보 수집에 적극적이고, 상대방이 필요한 정보 공개에는 소극적인 게 중국”이라고 꼬집는다. 한중일의 원자력안전최고규제자회의(TRM)는 3국의 안전 협력을 위해 창설된 기구다. 공동의 원전 사고 대책을 세우려면 투명한 데이터 공유가 필수인데도 중국의 비협조는 유명하다. 그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후쿠시마 오염수 데이터의 신뢰성, 정화장치 등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있는데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5월 8일)고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중국과 척척 손발이 맞는 게 더불어민주당이다. 이재명 대표는 “안전하면 (일본이) 식수로 사용하면 된다”(5월 10일)고 했다. 중국보다 한술 더 뜬다. 이 대표는 후쿠시마 시찰단에겐 “오염수 테러, 방사능 테러의 공범”이라고 겁박까지 했다. 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원내대책단’까지 만들고 총공세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권 마지막 외교부 장관 정의용은 2021년 4월 19일 국회에서 3가지 조건을 전제한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맞는 적합성, 절차에 따라 (방류)된다면 굳이 반대할 건 없다”고 말했다. 전임자 강경화는 방출을 “일본의 주권적 결정 사항”이라고 했다. 정의용 발언에 후쿠시마 문제의 정답이 있다. 정의용의 조건은 충분한 과학적 정보 제시, 한국 정부와 충분한 사전 협의, IAEA 검증 과정에 한국 전문가·연구소 대표 참여 보장이었다. 첫째는 우리가 요구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정보를 일본측이 제공하고 있고, 시찰단을 수용했으니 클리어. 셋째 또한 IAEA 검증에 한국 전문가가 참가하고 있으니 해결됐다 하겠다. 문제는 둘째 조건이다. 일본 정부가 방출을 결정한 2021년 4월은 문 정권의 반일 공세가 절정에 오른 때였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까지 하려던 문 정권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위한 협의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전 정부가 방치했던 한일 관계 개선을 이루고서야 시찰단을 보낼 수 있었다. 시찰단 보고에 “국민 기만”, “뒷북 사찰단”(5월 31일)이란 민주당 공격은 그래서 반칙이다. IAEA의 최종 보고서가 임박했다. 오염처리수 방출은 국제 기준과 과학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방류수의 철저한 관리, 방출 기간 30년의 준수, 한국에서의 ‘풍평 피해’(불안심리에 의한 소비 위축) 대책을 일본에 요구하는 것이다. 거대 야당이 ‘핵 테러’ 운운의 비과학적 언설로 불안을 조장하고 선동하며 중국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게 과연 대한민국을 위한 일인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재현하려는 ‘방탄당’의 과학 아닌 주술에 두 번 속을 순 없다.
  • [씨줄날줄] 현충원 정국교/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현충원 정국교/서동철 논설위원

    현충(顯忠)이란 충렬을 높이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아산 현충사가 그렇고 국립현충원이 그렇다. 현(顯)에는 ‘드러낸다’거나 ‘밝힌다’는 뜻에 더해 죽은 사람을 추모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한자사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현(顯)이 ‘머리에 밝은 장식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고대엔 실 꾸러미나 천을 걸치고 죽은 사람의 혼령이 좋은 데 가도록 기도했는데 그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은 1953년 부지가 확정됐다. 1956년 군 묘지령이 제정되면서 군인과 군무원은 물론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를 안장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동작동국립묘지로 불렸지만 2005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 대상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서울현충원에는 수충교, 정난교, 정국교라는 다리가 있다. 1956년 당시 함태영 부통령이 ‘삼국사기’의 편찬자로 잘 알려진 김부식의 훈호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에서 따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서경 천도, 곧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겠다는 묘청의 난을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조선시대에도 정국공신이 있었다.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추대한 이른바 중종반정의 공로자들이다. 정국(靖國)은 ‘어지러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오이정국야’(吾以靖國也)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송 휘종의 연호도 건중정국(建中靖國)이다. 건중은 당쟁을 없애 국가를 안정시킨다는 뜻이다. 정국은 고유명사라기보다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이었다.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도 한자로 표기하면 정국신사(靖國神社)다. 메이지유신 직후 막부군과의 싸움에서 죽은 군사를 추도하는 도쿄 쇼콘샤(招魂社)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메이지정부가 무사들의 반란인 세이난전쟁을 진압한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야스쿠니(靖國)도 ‘춘추좌씨전’의 뜻을 취한 것이다. 현충일만 되면 서울현충원의 세 다리 가운데 하나인 정국교가 야스쿠니신사를 연상시키니 바꿔야 한다는 민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정국’의 역사가 ‘야스쿠니’의 그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이해하면 논쟁거리가 아니다.
  • [길섶에서] 식물인간/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식물인간/박현갑 논설위원

    제라늄 화분이 두 개로 늘었다. 죽어 가는 난초를 뽑아낸 화분에다 옆 화분에 있던 제라늄을 가지치기해 옮겨 심었다. 정기적으로 물 주는 것 외에 따로 돌보지 않는데 눈에 띌 정도로 잘 자란다. 며칠 새 새로운 잎을 하나둘 키우며 나를 반긴다. 놀라운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시골집 담벼락을 덮고 있던 담쟁이덩굴이 생각난다. 담벼락을 따라 옆으로, 위로 뻗어 나가는 기세가 대단했다. 누가 돌보는 것도 아닌데 자라는 걸 보노라면 생명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된다. 숲속에 빼곡히 자리잡은 나무 줄기를 치감으며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칡넝쿨도, 길가의 이름 모를 잡초도 마찬가지다. 돌보기는커녕 제거 대상이 돼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식물인간’, ‘식물국회’라고들 한다. 살아 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하는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말을 써야겠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성장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 친구들에게 도리가 아닌 것 같다.
  • [씨줄날줄] 대통령의 소품/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의 소품/황비웅 논설위원

    대통령들이라 할지라도 애지중지했던 소품들은 있었다. 지난 1일부터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전시되고 있는 대통령의 소품들이 화제다. 우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영문 타자기’다. 이 전 대통령은 옥색으로 된 이 타자기를 독립운동 시절부터 항상 가방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1953년 7월 6·25전쟁 휴전 당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마주한 자리에서도 직접 타자기를 두들기며 협상을 했다고 한다. 무려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독수리타법’으로 직접 타자를 치며 외교문서를 작성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그린 ‘반려견 스케치’도 화제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군인이 되기 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늘 드로잉 수첩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키운 반려견 ‘방울이’도 스케치의 주인공이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도 방울이는 본관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맞이하러 달려 나가곤 했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퉁소를 즐겨 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일곱 살 때 여읜 부친의 유품으로, ‘타향살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가수 겸 영화기획자 고복수가 부친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징인 조깅화도 전시됐다. 재임 5년간 새벽마다 청와대 녹지원에서 조깅을 했던 그는 1993년 금융실명제를 발표한 날에도 새벽 조깅으로 긴장감을 풀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원예가위’도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인동초’(忍冬草)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1980년 신군부에 체포된 뒤에도 독서와 함께 꽃 가꾸기를 통해 감옥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뎠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발명한 독서대도 있다. 그는 1974년 사법시험 준비 시절 누워서도 책을 볼 수 있는 독서대를 만들어 실용신안 특허까지 받았다. “대통령을 안 했으면 컨설턴트나 발명가였을 것”이라고 했던 그의 돌파 본능을 짐작게 한다. 오는 8월 2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소품을 통해 굴곡진 현대 정치사를 간접적으로나마 조망해 보는 것은 어떨까.
  • [길섶에서] 초여름 앵두/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초여름 앵두/임창용 논설위원

    지난 주말, 아파트 뒤편에 가니 앵두가 빨갛게 익어 있다. 탱탱하면서도 말랑한 게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조심스럽게 서너 알을 따 입에 넣어 본다. 톡 터지면서 입안 가득 퍼지는 새콤달콤한 맛. 이제나저제나 열매가 익기를 기다린 지 열흘은 족히 됐다. 몇 차례나 앵두나무 근처를 서성거린 보람이 있다. 앵두맛과 함께 여름을 시작한 게 벌써 10년째다. 10년 전 이맘때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앵두나무를 처음 발견했다. 단지 구석 다른 나무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는데 때마침 빨갛게 익은 앵두 몇 알이 눈에 띄었던 것. 어릴 적 시골집의 부엌 뒤켠 돌담 아래에 있던 앵두나무를 보는 듯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앵두는 오디나 보리수 열매처럼 다닥다닥 붙지 않고 적당히 띄어져 열려선지 어린 맘에도 예쁘고 귀하게 느껴졌다. 한 알씩 입에 넣어 톡 터트려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잘 익은 앵두 몇 알을 따 하얀 종지에 담아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초여름이다.
  • [길섶에서] 아침 라면/황성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아침 라면/황성기 논설위원

    지금은 끝났지만 멕시코 휴양지에 분식집을 차린 TV 예능 프로그램을 눈여겨봤다. 연예인 5명이 사장과 직원으로 나뉘어 일하는 설정이다. BTS 멤버를 빼놓고는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이다. 멕시코 분식집도 이들의 대활약으로 높은 매출에다 경이로운 시청률을 올렸다. 메뉴는 김밥, 핫도그, 치킨에 인스턴트 라면이다. 매운 라면을 먹으면서 엄지척을 해 보이는 현지인들. 인스턴트 라면을 멕시코 분식집의 K푸드 메뉴에 올린 제작진의 선택이 ‘신의 한 수’ 같다.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사족을 못 쓰는 게 라면이다. 아침마다 라면을 먹은 지 몇 년째다. 토요일 이른 아침 아내 몰래 끓이던 라면이 당당히 식탁에 올랐다. 체중을 고려해 3분의2만 끓여 먹으니 1년이면 240개의 라면을 먹는 셈이다. 어느 진수성찬이 아침 라면의 강렬함을 이길 수 있을까. 건강검진에서 실제 나이보다 몇 살은 적게 나온다. 순전히 내 주관이지만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 [씨줄날줄] 개 식용 금지법/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개 식용 금지법/박현갑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개 식용이 불법이다. 식품위생법상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에서 식용 가능한 식품 원료를 명시하는데 개고기는 대상이 아니다. 이 법에 따르면 개고기 가공, 유통, 조리는 불법이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동물보호법도 정당한 사유를 제외하고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동물 학대로 처벌한다. 식용 목적은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 속에 개 식용 문화는 여전하다. 정부는 개 식용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2021년 말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지난해 4월까지 결론을 낼 예정이었으나 개 식용 금지에 반대하는 육견협회가 탈퇴하면서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육견협회는 개 식용을 금지하려면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법 제정으로 개 식용을 둘러싼 갈등을 풀려는 움직임이 나와 주목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정애 의원은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이달 중 대표 발의한다. 개 식용 금지뿐 아니라 개 식용 관련업 종사자들의 전업 지원에 대한 내용도 담는다고 한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개 식용을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 법안들의 통과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개 식용 위원회가 지난해 3월 전국의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개 식용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8%가 개 식용을 멈춰야 한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도 강하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개 식용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유기견 나래, 올리 등 11마리의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개 식용을 둘러싼 해외 시선도 곱지 않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 선수는 “개고기나 먹어라”라는 비난을 해외 축구팬들로부터 종종 받는다. 인천 강화군과 우호도시 관계인 미국 뉴저지주의 한 도시는 지난해 강화군에 식용견 사육장이 있다는 이유로 강화도의 청소년 어학연수를 거절했다. 현행 법으로도 개 식용은 불법이다. 제재가 이뤄지지 않을 뿐이다. 개 식용 금지가 반려동물 유기나 학대를 더 규제하는 동물권 보호로도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 [씨줄날줄] 콜로세움의 엘리베이터/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콜로세움의 엘리베이터/서동철 논설위원

    1759년 지어진 런던의 영국박물관은 그리스 신전풍의 원형 기둥이 인상적인 신고전양식 건축물이다. 현관 오른쪽 바깥벽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수직 리프트가 보인다. 당연히 내부에도 모두 단차를 없애 휠체어 이용자들은 대부분의 전시 공간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 영국 국립미술관 건물은 1831년 지어졌다. 휠체어 관람객은 한켠에 설치된 램프로 드나들 수 있다.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역시 장애인과 노약자 모두 어려움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라도 엘리베이터 설치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 도사(東寺)는 796년 큰법당이 처음 지어졌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한국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로 출입구마다 목재로 경사로를 설치했다. 특히 큰법당에도 휠체어가 오를 수 있도록 뒤편으로 램프를 만들어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우리 절들도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도록 주출입구 정도에는 램프를 설치하는 추세지만 이곳에서 전경을 바라보는 데 그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창경궁은 대표적인 무장애 문화유산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문인 홍화문에 휠체어를 위한 램프를 만든 것은 기본이다.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에는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도 설치됐다. 평상시에는 계단으로 쓰다가 필요할 때 휠체어 리프트로 탈바꿈한다. 창경궁의 변화는 문화재청의 ‘궁·능 무장애공간 조성사업’에 따른 것이다. 2026년까지 창경궁을 비롯해 경복궁·창덕궁·덕수궁의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을 ‘무장애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원칙을 문화유산은 물론 문화유산 주변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마침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투명 유리로 만든 현대적인 구조물이다. 2000년 된 세계문화유산을 훼손하지 않으려 애썼겠지만, 조금도 손상 없이 기계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듯 지금은 ‘문화유산의 보존’이 결코 ‘문화유산의 무장애 공간화’에 앞서는 개념의 시대가 아니다. 무엇보다 ‘무장애공간’은 장애인은 물론 노약자를 위한 시설이기도 하다. 그리고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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