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논설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짬뽕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상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안무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아베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978
  • [길섶에서] 반찬 투정

    [길섶에서] 반찬 투정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임진강 변의 매운탕집에 다녀왔다. 국물도 시원했지만 반찬이 좋았다. 얼핏 봐도 동치미에 열무김치, 무말랭이, 마늘종, 멸치조림, 청포묵 등 열 가지 남짓한 반찬이 상에 올랐다. 시골스러운 맛과 소박한 비주얼이 처음 찾은 이후 20년이 넘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서는 이런 반찬을 구경하기 어렵다. 음식점 대부분이 체인점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반찬이 가장 많은 동네 식당이 김치와 깍두기를 주는 설렁탕집일 지경이다. 진천과 음성에 걸쳐 있는 충북혁신도시와 원주기업도시를 찾았을 때도 놀란 적 있다. 줄지어 세워진 아파트부터가 당연히 우리 동네와 비슷한 브랜드의 같은 모양이다. 음식점마저 우리 동네와 거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체인점이 대부분이었다. 이러다 음식점에서는 제대로 반찬 구경하기가 어려운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매운탕집 아주머니는 “6학년 6반”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그래서 10년은 더 이 집 반찬을 먹을 수 있겠거니” 하고 안도감이 드는 것이었다.
  • [황수정 칼럼] 국힘은 왜 ‘중도층 노다지’를 못 챙겨 먹을까

    [황수정 칼럼] 국힘은 왜 ‘중도층 노다지’를 못 챙겨 먹을까

    고별 무대에서 가수 나훈아가 정치권에 쓴소리를 날렸다.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 치고 있다. 왼쪽 니는 잘했나?” 마지막 공연장은 광주도 대구도 아닌 서울. 좌도 우도 아닌 공간에서 좌우를 싸잡아 마이크를 잡고 꾸짖을 수 있는 사람. 이런 배짱을 지닌 사람이 현실 정치권에 있을까. 있다면 당장 가서 “어른”이라 불러 줄 것이다.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을 잘 몰랐다. 울산 남구갑의 초선의원.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소신 투표를 해서 알게 됐다. 내란특검법, 김건희특검법의 국회 표결에서 그는 찬성표를 던졌다.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당을 강요받고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덕분에 되레 유명세를 탄다. 계엄 사태에 사람들은 아직도 혼돈을 헤맨다. 여론조사 결과가 잘 말해 준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민심은 70%에 육박한다. 그런데 여야의 지지율은 다시 팽팽해졌다. 여러 설명이 필요 없다. ‘대통령 윤석열’은 용납 불가. ‘대통령 이재명’도 용납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중도층은 마음 붙일 데가 없다. 세계의 정치학자들은 틀림없이 우리를 실험무대로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제3세계에서도 보기 힘든 계엄을 선포한 ‘잠재적 독재자’. 그런 장본인을 공개 두둔하는 여당. 민주적 절차 무시로 정당주의를 무력화하는 거대 야당. 여야 모두 극단주의 세력과의 동맹. 민주주의 멸절의 희귀 연구 소재가 다양하게 분화 중이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들이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최신 사례로 들어가야 한다. 그 틈새로 활개치는 반지성주의.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하필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그래 놓고 스스로 최악의 반지성 대통령이 됐다. 이 아이러니도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만하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쓴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살아 돌아온다면 당장 할 일. 세계 10위 경제강국이 어쩌다 극단적 반지성을 지도자로 선택했을까. 총, 도끼를 계엄에 동원한 한국의 반지성 대통령을 개정판에 추가할 것이다. 자칭 ‘중도’들은 기성 정치판을 지금 환멸한다. 그러면서도 미련을 못 버린다. 어느 쪽이든 살짝 건드려만 줘도 넘어갈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천우신조 꽃놀이패를 쥐고도 자기한계에 갇혔다. 수권정당, 지도자의 면모를 보였다면 관망하던 중도층이 큰 신뢰를 보냈을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하자는 투표를 하고 나오면서 이 대표는 묘하게 웃었다. 거친 대통령에 질겁했지만 사람들은 얕은 대통령 후보도 겁난다. 이재명의 가장 약한 고리는 결여된 휴머니티. 치명적 약점들을 이 마당에도 재확인시키고 있다. 숨죽였던 찐윤, 친윤, 멀윤들이 그래서 기사회생 중이다. 윤 대통령 관저 앞으로 인간방패를 하러 가자고 찐윤 의원이 큰소리로 불러모았다. 손익계산이 흐려진 이들의 손에 국민의힘이 맡겨져 있다. 이것이 여당의 비극. 상식 있는 중도의 눈에는 결론이 보인다. 여당은 윤 대통령과 끝까지 생사를 같이할 수 없다. 어느 시점에서의 손절은 불가피하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판결보다 빠를까 그것이 관건일 뿐이다. 총선 패배 때나 지금이나 국민의힘의 대응은 달라진 게 없다. 위기의식도 없고 리더십도 없고 절박함도 없다. 당권 근처의 몇몇 사람들만 개인적 정치이력 관리용으로 집권당을 유용한다. 냉정한 눈으로 따지자면 지금 국민의힘은 패를 흔들어 새판을 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출구 없던 의대 증원 문제, 김건희 리스크, 정신없이 터지기 시작했던 명태균 의혹. 속수무책이던 악재들이 윤 대통령과의 선긋기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을 기회의 시간 아닌가. 다 죽은 보수 정치를 되살릴 수도 있는 모멘텀이다. 중도층 노다지를 못 잡는 것은 차려진 밥상도 못 챙겨 먹는 꼴이다. 지금 노다지를 잡는 법은 매우 쉽다. 백골단을 국회에 불러들이는 식의 비상식 의원들을 맨 뒷줄로 빼면 된다. 상식을 복원할 얼굴들을 맨 앞줄에 세우면 된다. 여럿도 필요 없다. 김상욱 같은 ‘상식인’ 네댓이면 충분하다. 황수정 논설실장
  • [씨줄날줄] 나훈아의 뒷모습

    [씨줄날줄] 나훈아의 뒷모습

    ‘국민 가수’ 나훈아의 본명은 최홍기다. 1947년 부산 초량에서 태어났다. 초량초등학교와 대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서라벌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대동중 시절에는 야구선수였다. 한화 이글스 감독을 지낸 동문 이희수는 그가 뛰어난 내야수였다고 회상한다. 당시 대동중은 전국을 제패한 강팀이었는데 나훈아는 강타자였다고 한다. 고교 1학년 때는 우이동 소풍길에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불러 여고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유명 가요 작곡가 사무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첫 앨범은 1966년 나온 ‘내 사랑아’였는데 반응이 없자 음반사 옥상에서 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듬해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그의 노래는 애상(哀傷)이 가장 중요한 정서라는 연구도 있었다. 그리움, 외로움, 서러움의 정서를 혼합한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1960~1970년대는 라디오가 가장 중요한 문화 수단이었다. 이 시기 나훈아는 남진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열풍을 일각에서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당시 노동환경에서 기계와 다름없었던 남녀 노동자들을 각각 음주와 트로트 스타에 매달리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견뎌 낼 의지를 키웠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요로서의 기능이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나훈아가 가수 인생 58년을 마무리하는 고별 콘서트를 그제 마무리했다. 공연 도중 발언을 두고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는 모습도 펼쳐졌다. 개발시대와 다름없이 여전히 우리 사회가 무엇인가의 결핍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직도 그의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는 “장날 막걸리와 빈대떡을 먹는 일이 가장 하고 싶다”고 은퇴 이후의 희망을 피력했다. 그렇게 거리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친근한 이웃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면 좋겠다.
  • [길섶에서] 위장 비우기

    [길섶에서] 위장 비우기

    최근 ‘건강수명’(기대수명에서 질병 또는 장애가 있는 기간을 제외한 수명)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본 뒤 새해를 맞아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해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건강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다. 일본인 의사인 저자는 ‘건강수명 100세 습관’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손쉬운 습관 100가지’를 식사, 운동, 생활습관 등 카테고리로 나눠 별 5개부터 별 1개까지 중요도 순서로 소개한다. 당연히 별 5개인 ‘모든 사람이 오늘부터 당장 실천해야 하는 습관’에 눈길이 먼저 갔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추천된 것은 ‘배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내려놓는다’였다. 식사량은 80%로 줄이고, 살짝 부족하다 싶은 정도가 적당하며, 과식을 해서 뱃속을 전쟁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 위장을 80%만 채우면 ‘장수 유전자’가 활성화해 혈관 노화를 방지하는 등 세포가 늙는 것을 억제한다고 한다. 국난으로 심신이 힘든 요즘 위장을 비우니 몸이 쌩쌩해지는 것 같다. 이참에 소셜미디어(SNS) 거품도 빼서 몸도 마음도 가볍게 살아 볼까 싶다. 스트레스도 줄어들 것이다.
  • [서울광장] 탄핵 바람에 흔들리는 ‘가치 동맹’의 미래

    [서울광장] 탄핵 바람에 흔들리는 ‘가치 동맹’의 미래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0일 언론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령 선포에 대해 “잘못됐다”면서도 “한미동맹은 건강하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관련해서도 “새 팀이 동맹 관계를 어디로 가져갈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정치적 혼란에도 한미동맹은 성공을 위한 준비가 잘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희망 섞인 관측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미국 조야에서 나오고 있다.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국계 3선 영 김 의원(공화)은 6일자 ‘더 힐’ 기고에서 “탄핵 주도 세력이 한미동맹을 훼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썼다.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의) 야당 정치인들이 기름 뿌린 바닥에 성냥을 켜려는 위험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날 선 목소리들은 더불어민주당이 1차 탄핵소추안에 넣었던(2차 소추안에선 빠짐) 탄핵 사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소추안은 “윤 대통령이 가치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폈다”고 힐난했다. ‘가치외교’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다.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복원을 바탕으로 2023년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협력체제 구축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도 가치외교에 바탕한 한미동맹의 결실이었다. 동맹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시대에 가치외교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듯한 한국 거대 야당의 움직임을 불편해하는 기류에는 민주, 공화 성향이 따로 없는 듯하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백악관 국장을 지낸 머세이디스 슐랩 미국보수주의연합(ACU) 공동의장은 지난 7일 방송에서 동북아의 지정학 구도 재편 가능성을 우려하며 “중국·북한은 (한국의) 좌파 정당을 당연히 지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남편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측근인 맷 슐랩 ACU 공동의장은 앞서 지난달 14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방문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리처드 롤리스 전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집권할 경우 대북정책 전환을 위해 동맹을 희생하고 반일 감정에 의존할 것”이라고 했다. 주한미군을 ‘점령군’으로 부른 적 있는 이 대표가 주한미군 철수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옵션으로 갖고 있는 트럼프와 맞물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표시다. 이 대표는 트럼프 2기 출범을 맞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북러 밀착, 미중 패권경쟁 등 한미동맹의 도전 요소들에 대한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꼭 유력 대권주자여서가 아니라 170석의 압도적 1당을 이끄는 대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 대표는 친중·반미·반일 인사로 각인돼 있다. 2023년 6월 싱하이밍 당시 주한 중국대사는 이 대표를 앉혀 놓고 “(한국은)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그런 ‘베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잘못된 판단”이라고 훈계한 적이 있다. 이 대표는 다소곳이 듣기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총선 유세에선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중국어),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고 한 어록도 남아 있다. 그랬던 이 대표가 지난달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는 “한미일 간의 협력 관계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 한미 관계는 그나마 버팀목이던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소추로 정상 외교가 실종된 상태다. 트럼프 당선인으로부터 취임식에 초청을 받은 인사가 민주당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 대표는 워싱턴이 탄핵 이후에도 한미동맹을 흔드는 서울발 돌풍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위반에 해당할 수 있는 대북송금 사건 재판에서의 성실한 해명도 미국의 의구심을 씻어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 [씨줄날줄] 더닝 크루거 효과

    [씨줄날줄] 더닝 크루거 효과

    다양한 매체에서 실시간 정보가 쏟아지는 요즘, 진실과 가짜의 경계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탄핵 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주장과 근거 없는 음모론이 활개를 치는데 그 중심에 한쪽으로 편향된 유튜버들이 있다.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기 쉬운 대중들은 더욱 혼란스럽다. 사회적 분열상은 극심하게 증폭될 수밖에 없다. 12·3 비상계엄 이후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구독자 20만명이 넘는 극우성향 유튜브 채널 15개 대부분의 구독자 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 유튜브들은 “비밀 문건에 따르면”과 같은 불확실한 표현이나 정체불명의 내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한 경우가 많다. 사실 여부를 검증할 수 없게 전제한 뒤 자극적인 가설을 진실처럼 유포하는 방식인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제기된 특정 국가 개입설이나 탄핵 배후설, 부정선거 의혹 등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유튜버들의 주장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급증세인 현실이다. 이런 현상을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부른다. 잘 모르는 분야에서 자기가 취득한 정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이를 맹신하며 행동하는 경향을 뜻한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 복잡한 사안에 대해 단순화된 음모론에 빠져드는 경우도 해당된다. 1999년 미국 코넬대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가 발표한 심리실험 연구에 나오는 개념이다. 민감한 정치 이슈에 허위정보를 가미해 클릭수를 높이고 후원금을 유도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하다. 더 자극적이고 허황된 음모론일수록 더 많은 광고 수익과 후원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글로벌 유튜브 순위집계 플랫폼 ‘플레이보드’가 현실을 그대로 말해 준다. 1차 윤석열 대통령 체포 무산 이후 지지세력이 결집했고 그 틈에 극우 유튜버들이 ‘슈퍼챗’(공식 후원금)으로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묻지마 음모론’이 대명천지에 활개 치고 돈까지 벌어 주는 사회. 누가 봐도 건강하지 못하다.
  • [길섶에서] 텔레그램 사칭 문자

    [길섶에서] 텔레그램 사칭 문자

    재작년 여름 텔레그램 계정을 해킹당했다. 꽤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지인이 텔레그램을 통해 연락을 해 왔길래 별 생각 없이 대응했는데 며칠 뒤 내 계정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갔다. 지인들이 전화와 카카오톡 등으로 알려와 해킹 사실을 알았고 급히 내 계정 이미지에 해킹 표시를 했다. 지문 등 잠금장치를 강화하고 한동안 쓰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텔레그램 가입이 늘어서인지 텔레그램을 사칭한 문자가 자주 온다. 계정에 보안 위험이 있다거나 탈퇴 예정이라는 등 다양한 이유를 들며 홈페이지에 접속하라고 인터넷주소를 보내온다. 텔레그램(telegram) 앞뒤로 무슨 의미인지 모를 알파벳이 더해진다. 보이스피싱 사이트다. 별 생각 없이 눌러서 접속하면 모든 금융정보가 그대로 털릴 것이다. 범죄자들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또 정부가 어떤 대책을 발표하면 이를 이용해 다시 다양한 사기 수법을 선보인다. 정부도 이 사실을 알 텐데.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경고문구가 있지만 그때그때 경고나 알림 등도 보내면 좋겠다.
  • [씨줄날줄] ‘5세대 실손보험’과 비급여

    [씨줄날줄] ‘5세대 실손보험’과 비급여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아 가입자가 부담하는 치료비(비급여)를 지원하는 실손보험(실손)은 출시 시기별로 4개로 나뉜다. 본인부담금 비중이 가장 큰 차이다. 2009년 9월까지 팔린 1세대 실손은 본인부담금이 통원치료 5000원뿐이다. 입원치료는 전액 보장한다. 2021년 7월부터 판매 중인 4세대 실손은 본인부담금이 급여 20%, 비급여 30%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비급여가 늘어나지만 정부의 관리 밖이다. 가격도 제각각이다. 도수치료의 산재보험 수가는 3만 6080원. 병원의 평균 진료비는 10만원인데 50만원을 받는 곳도 있다. 보험금이 지급되면 가입자들은 가격에 둔감하다. 비급여 신기술은 개원의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자궁근종 치료 시 초음파를 이용하는 하이푸(고강도초음파집속술)의 상급종합병원 최고가는 550만원(2023년 기준)인데 1차 의료기관은 2500만원이다. 보험사들이 비급여 보험금 지급을 깐깐이 하면 다른 비급여 항목으로 옮겨 가는 ‘풍선효과’도 끊이지 않는다. 숙련의일수록 위중한 환자를 다루는 상급병원에서 일하기보다 개원의가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편안하다. 보상체계 왜곡은 중증·응급·소아 등 필수의료 의사 부족 현상을 가져왔다. 의대 증원이 이뤄져도 보상체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이 현상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정부가 어제 실손보험 개혁방안 토론회를 열고 ‘관리급여’ 개념을 내놨다.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영양제 주사 등 남용 우려가 큰 비급여를 관리급여로 전환해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방안이다. 5세대 실손의 도입이다. 초기 실손 가입자 1582만명은 이런 논란에서 벗어나 있다. 정부는 이들이 갈아타도록 유도할 방침이지만 쉽지 않다. 중증 등에 꼭 필요한 치료는 건강보험이 보장하고, 관리급여 치료는 가격·시간 대비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증명돼야 한다. 5세대 실손의 성공은 건강보험의 급여·비급여 관리에 달렸다.
  • [길섶에서] 무장애 숲길

    [길섶에서] 무장애 숲길

    걱정이 됐다. 아파트 뒷길 야산에 무장애 산책로를 만든다는 소식 때문이다. 석 달 전쯤 첫 공사부터 아름드리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공사 소음이 숲을 가득 메웠다. 더 많은 이들이 숲이 주는 혜택을 누리는 것은 좋으나 과연 자연과의 공존이 가능할까, 공사 내내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최근 완성된 산책로를 찾았다. 발길이 닿지 않았던 산 정상까지 데크는 지그재그식으로 완만하게 이어졌다. 산 중턱 우거진 숲속으론 뜀박질이 가능한 평평한 길을 냈다.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 보였다. 휠체어를 탄 아이와 노부부가 천천히 숲을 누비는 모습 그 자체가 평화로웠다. 멀리 북한산 능선을 바라보며 산책을 즐기는 여유도 생겼다. 걱정했던 자연 훼손은 최소화됐고, 오히려 길은 탐방객을 정해진 경로로 안내하며 숲을 보호하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발끝으로 느끼던 날것의 흙길과 그 질감이 사라진 아쉬움도 있지만, 인간의 손길이 반드시 자연을 해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무장애 산책로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낸 따뜻한 공존의 길이 됐다.
  • [서울광장] 비상계엄과 탄핵이 만든 ‘한남산성’

    [서울광장] 비상계엄과 탄핵이 만든 ‘한남산성’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회가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두고 시민 대 시민, 공권력 대 공권력의 대치로 내전 상태나 다름없다. 범죄만 다루던 검사 출신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의 가치를 경시하며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의 사법화로 시달리는 곳이 헌법재판소다. 헌재는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사건 등 모두 10건의 탄핵 사건을 떠맡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이 청구한 공수처 체포영장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사건도 있다. 그런데 재판관이 부족하다. 국회 몫인 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한덕수 권한대행은 임명을 아예 거부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여야 갈등 속에 두 명만 임명하고 한 명은 임명을 보류해 헌법 수호라는 헌재의 핵심 가치를 외면했다. 여당의 헌법재판소의 심리 지연 압박과 국가수사본부 항의 방문, ‘영장 판사 쇼핑’ 논란은 사법의 정치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수준을 넘어 사법부를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킬 위험한 일이다. 이런 행태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사법부 길들이기’를 떠올리게 한다. 수사기관과 대통령 법률대리인 간 수사권과 관할 법원을 둘러싼 기싸움은 법치주의를 정의 구현 수단이 아닌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퇴행이다. 탄핵을 둘러싼 갈등은 공조수사본부와 경호처 간의 대치 상황을 만들었고, 시민사회의 분열도 심화시키고 있다. 그 상징적 장소가 바로 한남동 대통령 관저다. 경호처가 철조망과 차벽 등으로 관저로의 접근을 봉쇄하면서 관저는 방어를 위한 요새를 넘어 국민과의 단절과 민주주의 붕괴를 상징하는 산성으로 변했다. 공권력 간 대치 장기화로 국격은 떨어지고 경제적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시민들도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심리적 내전 상태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탄핵 정국의 혼란은 정치 실종이 초래한 법 체계의 미비에 있다. 우리는 87년 체제 이후 권위주의 청산에는 성공했으나,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은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과 탄핵소추 요건, 공수처와 검찰, 경찰 간 업무 범위 조정 등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민주당은 검찰 견제에만 신경 쓰면서 수사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공수처를 출범시켰다. 그 결과 범죄 척결이라는 본질적 가치는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과오을 저질렀다.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에서 정치권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화와 타협을 모른 채 법대로만 외치다 민생을 추락시키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어설픈 정치를 목도했다. 계엄 상황 속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상황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계엄 충격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이 대표는 계엄의 최대 수혜자로 여겨졌건만 지지도는 계엄 이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법 리스크로 행여 대선 출마가 좌초될까 탄핵 추진을 밀어붙이는 조급함을 드러내면서 국민은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에서부터 장관에 이르기까기 행정 공백이 심각하다. 무수한 별들이 구속되면서 안보 불안도 우려된다. 모두 대외신인도 추락 등 불확실성만 키우는 일이다. 정치적 갈등 사안을 사법 판단에 맡기는 관행에서 탈피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건 불확실성 제거다. 최상목 권한 대행이 풀어야 한다. 한남산성에서 유혈사태라도 일어난다면 계엄 못지않은 국가적 상처가 될 것이다. 권한 대행으로 독립적인 수사기관인 공수처의 수사 협조 요청에 응하기 어렵다면, 경호처에 대해서는 영장 집행에 협조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는 분권형 개헌도 필요하다. 우리 민주주의는 위기 때마다 더 성숙해 왔다. 4·19 혁명으로 독재를 타도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민주화의 토대를 다졌다. 국민의 단합된 의지와 정치적 리더십으로 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탄핵정국에서 새겨야 하는 역사적 교훈이다. 박현갑 논설위원
  • [씨줄날줄] 임시공휴일과 ‘내수 살리기’

    [씨줄날줄] 임시공휴일과 ‘내수 살리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유행하던 2015년.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이후 13년 만에 임시공휴일이 지정됐다. 토요일인 광복절 하루 전인 8월 14일이 임시공휴일이 돼 3일 연휴가 됐다. ‘광복 70주년’ 명분도 더해졌다. 정부는 연휴 직후 유통업체 매출액, 고속도로 통행량 등을 거론하며 내수에 기여했다고 자찬했다. 다음해에도 어린이날과 토요일 사이인 5월 6일이 임시공휴일이 됐다. 가장 최근의 임시공휴일은 지난해 국군의날이다. 개천절이 목요일이라 ‘퐁당퐁당 휴일’이 되면서 국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임시공휴일 지정 발표 이후인 지난해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16~69세 국민 1000명에게 물었더니 새로 여행을 계획했다는 응답이 80.7%였다. 여행 목적지로 국내를 답한 비율은 86.5%였다. 경제지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난해 10월 해외여행 출국자는 238만명으로 10월 기준 역대 최다였다.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0.8% 줄었다. 특히 숙박 및 음식점업이 1.9% 줄었다. 재작년 10월에도 임시공휴일이 있었다. 추석 연휴(9월 28일~10월 1일)와 개천절 사이에 임시공휴일이 끼면서 6일 연휴가 됐다. 그해 10월의 국내 소매 판매도 전월보다 0.8% 줄었다. 숙박 및 음식점업은 2.3% 줄었다. 임시공휴일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 사무실 밀집 지역의 자영업자, 근무일 감소로 생산물량은 줄어도 월급은 그대로 줘야 하는 중소기업 경영주 등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유급 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 정부가 설 연휴 직전인 27일 월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6일간의 설 연휴가 됐다. 과연 내수 진작의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숙박 쿠폰, 입장료 감면 등 국내에 머물며 소비할 수 있는 유인책을 서둘러 마련해야겠다. 휴일이 남의 일인 취약계층에 대한 적극적 배려는 더욱 필요하다.
  • [길섶에서] 공항 가는 비즈니스맨

    [길섶에서] 공항 가는 비즈니스맨

    며칠 전 집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인천공항행 버스가 멈춰 섰다.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버스 옆면 짐칸 쪽으로 이동해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버스 운전기사가 내려와 열린 짐칸 속으로 캐리어를 밀어 넣으며 물었다. “국제선 가시나요?” 이에 승객은 “네. 국제선 출국장이요”라면서도 “출장 가긴 가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마지못해 오른 출장길인지 캐리어를 도로 끄집어낼 듯한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버스기사가 “에이, 괜찮아요. 다들 다녀오는데…”라고 위로하듯 말했다. 그제서야 승객이 찜찜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출장길 발걸음을 무겁게 한 것이다(!).’ 한 지인의 아들은 얼마 전 대기업 입사원서를 쓰면서 해외영업 부문에 지원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국제공항에서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즐겁기 때문’이라는 것. 이번 참사로 해외 수출 역군으로 활동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진취적 기상이 조금이라도 위축될까 염려된다. 확실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으로 ‘공항 트라우마’를 하루빨리 극복했으면 좋겠다.
  • 송객수수료 영업의 ‘그늘’… 보이스피싱·암시장·탈세 통로 악용 [홍희경의 탐구]

    송객수수료 영업의 ‘그늘’… 보이스피싱·암시장·탈세 통로 악용 [홍희경의 탐구]

    고객 유치 여행사에 주는 수수료팬데믹 때 외국인 손님 사라지자판매액 10% 수준서 45% 치솟아中다이궁에게 캐시백 형태 변질수억 현금 결제해도 출처 안 물어구입한 면세품 온라인서 되팔아환급받은 부가세도 안 내고 폐업정부, 부가세 납부 대책 내놨지만비정상적인 수수료 체계는 방치“겉모습만 바꾸는 미봉책” 지적 #1. “240억 결제합니다” 큰손 다이궁 지난해 8월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중국인 다이궁(보따리상)이 검거됐다. 국내 면세점에서 물품을 대량 구매한 이력이 있는 이였다. 그를 붙잡은 경기북부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반년째 보이스피싱 수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보이스피싱 범죄 계좌를 추적 중 시내 면세점에서 A씨가 1억 6000만원짜리 수표를 사용한 걸 포착했습니다. A씨는 그날 240억원어치 화장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그 수표를 사용했습니다.” A씨를 검거한 형사의 설명이다. 수표를 포착한 뒤 수사팀은 입국 시 통보 조치를 취하고 A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다이궁 활동을 위해 한국에 자주 올 것이라 판단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여죄를 캘 심산이었다. 실제 얼마 지나지 않아 A씨가 입국했고 이번에도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대량 구매해 중국 칭다오로 가려던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이어 구속영장까지 발부됐지만 수사는 곧 난관에 부딪혔다. A씨가 “왜 그 수표를 지니게 됐는지 모른다”며 범죄 연루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구속이 취소됐다. A씨는 풀려났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수많은 질문이 남았다. 어떻게 보따리상 한 명이 수백억원대 물품을 거래할 수 있었을까. 거래 물품은 어떤 경로로 유통될까. 무엇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면세품이 범죄 자금 세탁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들이 쌓였다. #2. 팬데믹, 면세점 판도를 바꾸다 국내 시내 면세점의 다이궁 거래는 코로나19 시기를 기점으로 급성장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국제선 운항이 중단되고 외국인 관광객이 사실상 사라지자 한국의 면세점들이 생존을 위한 극단적 선택에 나섰기 때문이다. 판매액의 30~45%에 달하는 파격적인 송객수수료를 제시한 것이다. 송객수수료는 본래 면세점으로 고객을 데려오는 여행사에 지급하는 대가성 비용이었다. 그런데 사드 사태에 이어 코로나로 관광객이 급감한 데다 중국 하이난에 초대형 면세점까지 들어서면서 송객수수료는 현금 캐시백의 형태로 국내 면세점이 다이궁에게 표시된 가격의 절반 가까이까지 물건값을 깎아 주는 비용으로 바뀌게 됐다. 여행사 인센티브 성격이 강하던 시절 통상적으로 판매액의 10% 남짓한 수준이던 송객수수료는 코로나 이후 3배 이상 치솟게 됐다. 이에 따라 2020년 8626억원이던 면세점 송객수수료 규모는 2021년 3조 8745억원으로 폭증했다.<‘연도별 송객수수료’ 표 참조> 송객수수료 지급 방식은 꽤 복잡했다. 우선 면세점은 모객 계약을 맺은 여행사에 고유 코드 번호를 부여했는데 이런 여행사를 ‘코드 여행사’ 또는 ‘상위 여행사’라고 부른다. 상위 여행사들은 소규모 하위 여행사들과 계약을 맺어 다이궁들을 모집했다. 여행사들은 이 과정에서 다이궁에게 면세물품 구매 자금을 대여하거나 환전을 알선하기도 했다. 하위 여행사가 모객수수료와 면세품을 담보로 대출받는 경우도 있었다. 면세점-상위 여행사-하위 여행사-다이궁을 순환하며 현금과 면세물품이 계속 거래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송객수수료 영업 흐름도’ 그래픽 참조> #3. 범죄자의 눈으로 면세점을 본다면 “현금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추적이 가능하지만 면세품은 다릅니다. 특히 명품이나 유명 브랜드 화장품은 전 세계 어디서나 정가로 재판매할 수 있어 자금 세탁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관할 내 면세점이 있어서 관련 사건들을 다뤄 본 서울 남대문·영등포 지역 일선 경찰들은 면세점이 자금 세탁의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보였다. 면세점 입점 제품은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물품들이니 세계 각지에서 환금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면세점은 고액 거래가 용이한 장소이기도 하다. 수억원대 현금이나 수표로 결제해도 신용 정보나 자금 출처를 증명할 의무가 없어서다. 범죄자의 나쁜 눈으로 면세품을 본다면 마치 암호화폐처럼 자금 세탁용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여기에 온라인 오픈마켓의 성장이 면세품의 판로를 열었다. 병행 수입이나 해외직구 형태의 물품 판매가 일상화되면서 대량의 면세품을 팔 길이 생겼다. 실제로 주요 오픈마켓에선 아예 ‘면세에서 다이렉트로 대량으로 공급받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정가보다 싸게 브랜드 화장품을 판매하는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오픈마켓 앱 사진 참조> “외국인이 홍삼이나 국내 브랜드 화장품을 시내 면세점에서 사면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바로 물건을 가지고 나올 수 있어요. 이를 악용해 외국인 신분증으로 국내 브랜드 제품을 면세점에서 싸게 사서 온라인으로 되파는 일이 불가능할까요.” 면세점 근무 경력자는 면세점을 설립 취지에 맞게 활용하는 건 순전히 개인의 선의에 달린 일이라고 단언했다. #4. 부가세 탈루 대란, 폭탄이 터졌다 불법성 여부를 떠나 면세품을 되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이궁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매가이다. 원가를 낮춰야만 충분한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궁 이외의 고객이 사라졌던 코로나 시기 면세점들이 파격적인 송객수수료를 제시한 것 역시 다이궁에게 보다 저가로 물품을 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이궁들의 끝없는 욕심은 세금을 건드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면세점이 송객수수료 명목으로 지급한 돈에는 10%의 부가세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가세 납부 의무를 지닌 최하위 여행사들이 이를 내지 않고 폐업하는 수법이 반복됐죠.” 국세청은 이처럼 다이궁을 알선하는 용역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부과된 부가세를 내지 않고 폐업한 업체들을 ‘폭탄 업체’라고 설명했다. 폭탄 업체의 탄생 과정은 이러했다. 면세점은 다이궁의 구매액에 비례해 코드 여행사에 송객수수료(30~45%)와 부가세(10%)를 함께 지급했다. 코드 여행사는 수수료의 1% 정도만 수익으로 떼고 나머지를 중하위 여행사를 거쳐 다이궁에게 전달했다. 문제는 마지막 단계에서 발생했다. 다이궁에게 수수료를 건넨 하위 여행사들이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은 채 폐업 신고를 한 것이다. 관세청 집계대로 2021년 송객수수료가 3조 8745억원이라면 이 중 10%인 약 3870억원이 부가세로 책정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세청은 이미 매년 면세점에 부가세를 정산해서 환급해 준 상태였는데, 정작 하위 여행사는 부가세를 내지 않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5. 법정에서 맞붙은 두 개의 진실 “상위 여행사들이 실제 송객 행위 없이 허위로 세금계산서만 주고받은 정황이 있습니다. 상위 여행사들이 폭탄 업체들과 공모한 정황으로 판단했습니다.” 조세당국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폭탄 업체들이 내지 않은 부가세를 상위 여행사들에 추징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새로운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 정당한 과세로 인정하는 판결이 있지만 최근에는 국세청이 부과한 부가세 추징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도 쌓이고 있다. 이를테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4부는 2023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여행사 대표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이 판결은 확정됐다. 부산지법과 서울행정법원에서도 상위 여행사가 원고인 부가세 추징 처분 취소소송에서 “상위 여행사들의 매출 세금계산서는 실질적인 용역의 대가”라는 취지로 원고 승소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여러 상위 여행사들을 대리해 승소 판결을 받은 김권우 변호사는 “면세점이 상위 여행사에 발급한 세금계산서는 합법으로 인정받았다. 부가세 탈루 행위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러한 법리에서는 면세점과 직접 소통하며 실무를 진행하는 상위 여행사가 하위 여행사에 발급한 계산서도 합법일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면세점에 대해선 여행사가 폭탄 업체인 줄 몰랐다고 선의를 인정하면서, 상위 여행사에 대해선 폭탄 업체와 결탁했다고 쉽게 단정 짓는 것은 현재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6. 면세점은 왜 침묵하는가 “여행사 중 최상위 업체라고 해도 우리는 부가세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지급해야 할 부가세를 매입자인 하위 여행사에 보냈을 뿐입니다.결과적으로 면세점은 직접 책정했던 부가세를 아무런 제재 없이 환급받았고, 다이궁은 부가세를 탈세하고 그만큼 더 싸게 물품을 구매하는 효과를 얻었죠.” 수십억원대 부가세와 가산세 판정을 받고 회사 보유 부동산을 가압류당한 뒤 행정소송 중인 한 상위 여행사 대표는 수사·조세심판 과정에서 면세점만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고의 폐업한 하위 여행사에 대한 배신감도 크지만 송객수수료에 의존한 영업 체계를 만든 면세점에 책임을 묻지 않는 점 역시 대마불사를 연상케 하는 부조리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런 복잡한 수수료 체계를 만든 건 면세점”이라면서 “당시 하이난에 대형 면세점이 생겨서 한국 면세점들은 중국 수입업자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형태가 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외 주요 면세점들이 관광객에게 직접 할인 혜택을 주거나 현장 환급을 하는 단순한 방식을 택하는 가운데 송객수수료 영업은 한국 면세점의 고유한 특징으로 꼽힌다. “면세점이 원한다면 송객수수료를 환급하는 대신 그만큼 할인 판매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7. 개혁인가, 생색내기인가 면세점은 국가가 관광 진흥과 외화 획득을 위해 세금을 면제해 주는 특혜구역이다. 하지만 현재의 송객수수료를 둘러싼 논란은 특혜가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관광 진흥은커녕 암시장 물품의 공급처가 되고 외화 획득이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범죄 자금의 해외 반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최근 부가세 탈루 문제의 해결책으로 ‘면세점 송객용역 매입자 납부특례’ 도입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이에 따라 오는 7월부터 면세점은 여행사에 지급하는 송객수수료의 부가세를 금융기관 전용 계좌로 관리하고 국세청에 직접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깊게 팬 골 위에 흙 한줌을 덮어 가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객수수료라는 비정상적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부가세 납부 창구만 바꾸는 것은 겉모습만 바꾸는 미봉책이라는 것이다. 2023년 국회에서 열렸던 ‘국내 면세산업 글로벌 경쟁력 제고 방안’ 세미나에선 송객수수료 영업 관행에 대해 “과도한 송객수수료 지급은 궁극적으로 국내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고, (다이궁과 같은) 특정 고객군에게 부당하고 과대한 이익을 제공하는 건 공정거래법의 부당한 고객 유인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이미 나왔다. 그럼에도 면세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유지한 채 드러난 부작용만 봉합하려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홍희경 논설위원
  • [부고]

    ●류권식씨 별세, 조성자씨 남편상, 류병직(서울피부과 원장)·병연(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씨 부친상 = 8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1일. (02)2227-7500 ●최성순씨 별세, 조치연·세연·호연(EBS 이사·전 경향신문 편집국장)·병연·소영·표연(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책임연구원)·혜영(한국보건의료정보원 팀장)씨 모친상 = 8일 충남 논산시 강경장례식장, 발인 10일. (041)745-4401
  • [인사]

    ■기획재정부 ◇국장급 인사△장관정책보좌관 고광희 ■중소벤처기업부 ◇국장급 전보△기술혁신정책관 박용순△상생협력정책관 김우순△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정기환 ■세계일보 ◇논설위원실△수석논설위원 주춘렬△논설위원 김청중△논설위원 황계식 ◇심의위원실△심의위원 이상혁 ◇편집국△부국장 김용출△부국장 겸 외교안보부장 이우승△경제부장 우상규△사회부장 정재영△문화체육부장 이강은△사진부장 남제현 ◇디지털미디어국△디지털전략콘텐츠부장 엄형준△디지털뉴스부장 이진경 ◇총무국△인사관리팀장 정훈진 ◇독자서비스국△판매지원팀장 문성희 ◇대외협력국△대외협력팀장 최형록 ◇조사국△조사팀장 양영수 ■카카오뱅크 ◇임원 선임△커뮤니케이션실장 박형근△경영전략그룹장 이형주△AI그룹장 고정희△뱅킹그룹장 김석△AI기술실장 안현철△투자/신사업그룹장 송호근 ■산은캐피탈 ◇부서장△벤처금융1·2실장 이헌찬△투자금융2〃 우필문△기업금융2〃 김현주 △리테일금융2〃 배일권△기획〃황상규△재무관리〃 이인수△여신심사〃 전호석 △IT지원〃 장세용△리스크관리〃 김효근△금융소비자보호〃 박형일△검사〃 황현승△부산지점장 김이석△강남영업단장 김은주△여신관리단장 정재훈
  • [씨줄날줄] 못질당한 병산서원

    [씨줄날줄] 못질당한 병산서원

    서울 북촌 화동에 살던 1960년대 후반 겨울이면 경복궁 경회루는 스케이트장이 됐다. 얼음판 여기저기선 떡볶이와 어묵도 팔아 어린 마음을 유혹했다. 그때는 그랬던 시절이다. 그동안 세상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크게 달라졌다.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서쪽의 화산 너머 풍산 류씨 집성촌 하회마을과 짝을 이루는 교육기관이 병산서원이다. 흔히 ‘서원 건축의 백미’라고 찬사를 보내지만 실제 찾아보면 어떤 미사여구도 부질없게 느껴지는 마음의 울림이 있다. 한번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으니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며 이런저런 설명으로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할 이유도 없다. 병산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병산서원을 찾는 사람들은 낙동강을 따라 가는 좁은 진입로에 먼저 놀란다. 병산길은 최근까지도 명실상부한 비포장길이었다. 확장해서 포장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아스팔트 도로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 줄다리기 끝에 2022년 황토포장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자연스러운 흙길처럼 보이는 것은 그때의 결정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원 주변 울긋불긋했던 민가 지붕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문화유산 보호 의지가 거둔 결실이다. 국가와 지자체, 주민이 힘을 합쳐 보존하는 병산서원에 KBS 드라마 촬영팀이 못질을 했다. 그것도 병산서원의 대표적 건축물인 만대루에 집중적으로 만행을 저질렀다. 무지했던 시절에도 대놓고 이러지는 않았다.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 낙서를 사주한 피의자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만대루의 진정성은 옛날 것도 아니고 제자리도 아닌 복원 담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병산서원 훼손범과 그 관리책임자의 죄질은 경복궁 낙서범보다 훨씬 불량하다. 수사당국과 법원이 어떻게 조사하고 단죄하는지 온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 [길섶에서] 붕세권 동네 이야기

    [길섶에서] 붕세권 동네 이야기

    동네 길가에 지난 가을부터 붕어빵집이 생겼다. 중년 부부가 좋은 재료로 열심히 만들어 파는 붕어빵의 인기는 뜨거웠다. 지하철역과 가까운 상가 옆에 자리잡아 오가는 주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나갈 때마다 10명 넘게 줄을 서 있기도 했다. 퇴근 시간에 사 먹는 붕어빵 맛은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붕어빵집이 안 보였다. 며칠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러다가 퇴근길 동네 인근에 들를 일이 있어 지하철역 다른 출구로 나갔다가 외진 곳에서 붕어빵집을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물어보니 기존 근처 상가 부동산중개소에서 “기름 냄새 나고 사람이 붐벼 불편하다”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단다. 옮기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떠났다고 했다. ‘붕어빵 지도’까지 나올 정도로 붕세권이 인기인데 부동산중개소에서 내쫓았다니 아이러니했다. 붕어빵집은 민원·단속이 늘어나고 팥·밀가루 반죽 등 원재료 가격도 올라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경기 침체로 매매가 끊겼다며 울상인 부동산과 붕어빵집이 공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미경 논설위원
  • [씨줄날줄] 트럼프 별장 영사관

    [씨줄날줄] 트럼프 별장 영사관

    정치는 상징이 중요하다. 대중의 인식과 감정을 단번에 사로잡는 강력한 힘이 있는 까닭이다. 도널드 트럼트 미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초호화 리조트이자 사저가 있는 ‘마러라고’가 그런 무대였다. ‘겨울 백악관’, ‘남부 백악관’으로 불리는 이곳은 2016년 대선 승리를 기점으로 트럼프의 국제 정치·외교 무대 중심지로 변신했다. 마러라고는 트럼프에게 ‘워싱턴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에게 새 정치의 희망을 상징했다. 트럼프 1기 격식을 벗어난 비공식 무대에서 협상과 대화를 시도하며 비즈니스 감각을 외교에 접목하는 전략을 맘껏 뽐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만찬,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와의 골프 외교 등 주요한 정치 외교 무대가 됐다. 집권 1기 4년 임기 동안 그는 총 32회 마러라고를 찾아 142일간 머물렀다. 대통령 공식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는 찬밥 신세였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집권 2기 핵심 측근들의 정치적 고향도 모두 플로리다주와 겹친다. 백악관 비서실장 수지 와일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 국무장관 지명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인 ‘플로리다 마피아’들이다. 정권 2인자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11월 5일부터 이곳에 머물며 수시로 트럼프를 만나 집권 구상을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등 전 세계 정·재계 인사들이 앞다퉈 몰려와 ‘눈도장’ 찍기에 바빴다. 마러라고는 트럼프 정권의 산실이자 명실상부한 제2의 백악관이 됐다. 우리 외교부도 마러라고에서 약 100㎞ 떨어진 거리의 마이애미에 총영사관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일본, 영국처럼 이곳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미 외교의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는 포석이다. ‘기업 활동이 곧 외교’인 트럼프 시대. 재계 인사들도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모양이다.
  • [길섶에서] 당신의 안녕

    [길섶에서] 당신의 안녕

    새해를 맞은 지 일주일이 됐지만 아직도 해가 바뀌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들뜬 기분으로 연말연시를 보냈던 예년과 달리 거대한 혼돈과 슬픔 속에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에 그저 안도하며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서일까. 안부 인사조차 조심스러웠던 지난 연말, 건강에 대한 기원과 함께 가장 많이 주고받은 덕담은 ‘무탈한 한 해’였다.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인 ‘아보하’도 새로운 인사말 트렌드로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 불행의 집단적 경험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돌아보게 했으리라. 로마인들은 편지 서두에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라는 인사말을 즐겨 썼다고 한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에 나오는 이 대목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당신의 안녕이 곧 나의 안녕이라니. 예전엔 ‘로마인들, 감성이 아주 풍부하네’라고 넘겼는데 이번에는 문구에 담긴 깊은 의미가 가슴에 와 박혔다. 무탈함과 아보하는 혼자만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안녕을.
  • [서울광장] 영화 ‘하얼빈’과 동북아 협력

    [서울광장] 영화 ‘하얼빈’과 동북아 협력

    지난 주말 ‘하얼빈’을 봤다. 무엇보다 제목을 잘 붙인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목이 ‘안중근’이었다면 그저 국내에서 소비하는 데 그쳤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하얼빈’이라는 이름으로 단숨에 국제성을 획득한 것이 아닐까 감탄을 하게 됐다. 물론 작가 김훈의 같은 이름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안중근이 거사에 나선 배경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후기도 읽은 것 같다. 하지만 그랬다면 안중근의 역사를 웬만큼은 알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외국 사람들에게는 그런 친절함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는 영화 자체가 주는 감동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해외에서는 대체로 배우를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이겠다 싶다. 부지런한 것과 거리가 멀어 극장에는 잘 가지 않지만 ‘이순신 삼부작’은 모두 봤다. ‘명량’은 최민식, ‘한산’은 박해일, ‘노량’은 김윤석이 이순신 역을 맡았다. 세 사람 모두 각자가 쌓은 개성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하얼빈’의 현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순신이나 안중근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무게에 짓눌렸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고문에 못 이겨 일본군 끄나풀이 됐던 김상현 역의 조우진이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였다. 서두의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 장면은 이 영화가 국제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로 읽혔다. 안중근은 러시아 연해주 동의군의 우영장이었다. 그의 부대는 1908년 7~8월 두만강을 건너 홍의동의 일본군 척후병을 사살하고 신아산의 헌병분견대를 습격했다. 안중근이 일본군 포로를 풀어줘 다른 의병의 반발을 사는 장면은 역사적 사실이다.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사로잡은 적병을 죽이는 법은 전혀 없다.… 우리들마저 야만의 행동을 하고자 하는가”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가 연해주로 망명한 것은 1907년 일제의 대한제국 군대 해산이 계기가 됐다. 의병이 아직 통합 조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대한제국 군대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자부심이 안중근에게는 있었다. 하얼빈 거사에 성공하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일관되게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외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이 아니라 ‘전투 중 사살’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일본에서 존경받는 배우라는 릴리 프랭키가 이토 역을 맡은 것은 이 영화가 그리 치우친 인식을 담고 있지는 않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는 일본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한다. 릴리가 출연을 결정한 것은 당연히 ‘하얼빈’의 대본이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두 나라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다룬 합작영화를 만드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얼빈’은 한일 관계에 머물 수도 있었을 관람객의 시야를 동아시아 근대사로 넓혀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토가 하얼빈을 찾은 것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러시아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본은 뤼순과 다롄의 조차권을 차지하고 창춘 이남의 철도 경영권마저 요구했다. 이토의 회담 상대였던 러시아 재무대신 블라디미르 코콥초프가 “안중근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젊고 늘씬하며 키가 상당히 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러시아의 불편한 심사를 반영한다. 지금도 안중근과 연관된 한국과 러시아의 공감대는 좁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하얼빈은 19세기 러시아가 철도를 건설하고 조계지로 삼으면서 빼앗긴 땅이나 나름없게 됐다. 그런 점에서 ‘하얼빈’이 중국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다. 지금의 어려운 한중 관계, 특히 중국이 한류를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두 나라의 공통 관심사로 발전시키기에 이만큼 적절한 소재가 다시 있을까 싶다.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는 “일제 침략 반대 투쟁은 하얼빈에서 시작됐다”며 중국민의 안중근에 대한 높은 평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렇게 한 편의 영화가 동북아 4국이 어떤 방식이든 새롭게 협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얼빈’을 봤다. 정부도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대외 관계에 활용하면 좋겠다. ‘핑퐁 외교’도 성공했는데 ‘영화 외교’가 안 된다는 법이 없다. 서동철 논설위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