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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3만척 규모 용장성·몽골 막은 명량 물길…삼별초 오롯이 간직한 진도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3만척 규모 용장성·몽골 막은 명량 물길…삼별초 오롯이 간직한 진도

    전남 진도에 가려면 울돌목에 1984년 놓인 진도대교를 건너야 한다. 우리말 울돌목을 한자로 옮긴 것이 명량(鳴粱)이다. 그런데 외적(外敵)을 격퇴하고자 울돌목의 빠른 물살을 이용한 선조는 왜군(倭軍)에 대대적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에 그치지 않는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략에 맞섰던 삼별초(三別抄) 역시 이곳을 방어수단으로 삼았다.배중손 장군이 지휘한 삼별초는 1270년(원종 11) 6월 1일 고려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새로운 왕조의 출범을 선포한다. 6월 3일에는 1000척 남짓한 선박에 나누어 타고 강화도를 출발한다. 삼별초는 역시 명량대첩의 역사가 서려 있는 벽파진으로 진도에 상륙한 다음 용장산성에서 이듬해 5월까지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오늘은 진도에 남은 삼별초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삼별초의 항전(抗戰)은 고려에 침입한 몽골과 그런 몽골에 복속을 선택한 고려 왕조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삼별초에는 다양한 시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가를 좌지우지한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私兵)이었다는 점에서 항전이 아닌 난(亂)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몽골 침략기 임시수도 강화에서 정규군과 삼별초의 역할을 구분 짓는 것은 쉽지 않다는 연구도 잇따르고 있다. 진도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진도를 돌아보면 섬답지 않게 상당한 규모의 농토가 곳곳에 흩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 품만 들이면 언제나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는 바다가 있으니 어느 시대나 크게 풍요로울 것은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도 없는 고장이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것은 내륙국가 군대는 수전(水戰)에 약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고려왕조는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자 고을을 버리고 산성(山城)과 도서(島嶼)에 들어가 싸우는 이른바 입보(入保) 전략을 폈고, 산으로 갔던 사람들도 더이상 버티기 어려워지면 다시 섬으로 옮겨 가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진도는 장기 항전에 최적의 여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좋겠다. 진도는 최씨 정권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최씨 정권은 경상도의 사천, 진주, 하동, 남해와 전라도의 군산, 화순, 보성, 강진, 순천, 진도 일대를 영지(領地)로 삼고 있었다. 한반도의 곡창지대를 망라한 꼴이다. 그런데 진도와 울돌목이란 개경이나 강화로 가는 경상도 세곡선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그러니 고려 조정의 시각에서 ‘진도의 반란군’이란 그 자체로 국가재정에 엄청난 손실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삼별초에게 울돌목이란 몽골군의 침입을 막는 물길이자 세곡선을 단속하는 길목이었다. 흔히 최씨 무신 정권이라고 하면 최충헌과 최이, 최항, 최의 4대가 이어서 집권한 1196년(명종 26)부터 1258년(고종 45)까지를 말한다. 이 기간 동안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이 왕위를 잇기는 한다. 하지만 명종과 희종은 최충헌이 제 손으로 폐위하고 새로운 왕을 세웠으니 모든 권력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최씨 무신정권의 3대 실력자 최항(?~1257)과 진도의 인연은 흥미롭다. 어린 시절 이름이 만전(萬全)이었던 최항은 순천 송광사에서 출가해 화순 쌍봉사 주지를 지내다 아버지 최우의 명으로 환속한 인물이다. ‘고려사’에는 ‘그때 최이의 아들인 승려 만전이 진도의 한 절에 머물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불교국가 고려에서 승려란 곧바로 정치인이나 행정가와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순천이나 화순, 진도는 모두 최씨 정권의 땅이었다. 어머니가 창기 출신이었다는 비아냥이 따라다니는 최항이지만, 전라도 지역의 재산은 물론 경상도 지역에서 나오는 이익까지 철저하게 챙긴 결과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 후계자로 등용된 것은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무신정권은 일찍부터 진도를 ‘강화도 이후’의 항전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진도 곳곳에 삼별초 유적이 있지만 용장성을 먼저 둘러보는 게 순리다. 둘레가 12.85㎞에 이르는 용장성은 해상 보급 통로 역할을 했을 벽파진에서부터 삼별초 본진이 머물렀을 궁궐터 및 용장사를 아우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용장성이 3만 8741척(尺)이라고 했으니, 강화 고려외성의 3만 7076척보다도 큰 규모다. 울돌목 쪽으로 솟은 해발 229.2의 선황산은 망루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것이다. 궁궐터는 목포대박물관이 2009~2010년 발굴조사를 벌여 전모가 드러났다. 경사지를 이용해 계단식으로 조성한 궁궐터는 고려·몽골 연합군에 쫓기던 삼별초가 허겁지겁 지은 건물터로 보기는 어렵다. 전각의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어도 계획적으로 조성된 왕궁터의 모습이다. ‘또 하나의 천도 계획’에 따라 일찍부터 조성된 것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궁궐터 왼쪽에는 용장사가 자리잡고 있다. 용장사는 고려시대 창건됐다고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절은 최근 지어진 것이다. 고려는 관사를 새로 지을 때는 주변에 절을 함께 짓곤 했다. 용장사도 용장성을 쌓고 궁궐을 지으며 함께 조성한 것은 아닐까. 극락전에는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석불좌상이 있다.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만큼 약사여래로 추정된다. 진도군이 용장사 아래 지은 용장산성홍보관은 삼별초의 역사를 성의 있게 보여 주고 있다. 패널을 꼼꼼히 읽고, 많지는 않지만 발굴조사에서 수습한 유물을 살펴보면 삼별초의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왕궁터 주변을 돌아보다가 상당히 질이 좋은 청자 각항아리의 큼지막한 파편을 하나 주웠다. 삼별초 고위 지도자가 쓰던 그릇이 아니었을까.여기서 벽파진은 차로 10분쯤 달려야 한다. 벽파진 바위 언덕에는 1956년 세워진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가 우뚝하다. 그 아래 1207년(고려 희종 3) 처음 지은 것을 지난해 복원한 벽파정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벽파진에서 삼별초의 역사는 마음으로만 새겨야 한다.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한 승화후 온의 것으로 전하는 무덤은 진도읍내를 지나 운림산방으로 가는 왕무덤재 너머에 있다. 제주도로 가는 금갑포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하는데 용장산성에서부터 뒤쫓은 몽골장수 홍다구(洪茶丘)가 이곳에서 온을 참살했다고 한다. 금갑포 쪽으로 더 가면 삼별초궁녀둠벙이 있다. 여몽연합군에 쫓기던 삼별초 궁녀들이 집단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이 있다. ‘삼별초의 낙화암’이라고 할 수 있다.배중손 장군의 사당인 정충사(精忠祠)는 금갑포에서 국립남도국악원을 지나 남도석성 쪽으로 가는 길 중간 굴포리에 있다. 역시 여몽연합군에 쫓긴 배중손 일행은 이곳 뻘밭에서 최후를 맞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1년이 채 못 되는 삼별초의 진도 시대는 막을 내렸다. 김통정 장군이 남은 병력을 이끌고 제주도로 건너간 삼별초는 항파두성에서 항전을 이어 갔지만 결국 1273년 4월 28일 패망한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인사]

    ■교육부 ◇전보△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장학관 금용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장급 전보△연구성과정책관 유국희△지식재산정책관(파견) 신준호 ■문화체육관광부 ◇실·국장 전보△ 기획조정실장 김영산△문화예술정책실장 이우성△종무실장 김갑수△국민소통실장 직무대리 박정렬△해외문화홍보원장 직무대리 김태훈△대변인 황성운△지역문화정책관 고욱성△콘텐츠정책국장 조현래△저작권국장 문영호△미디어정책국장 김진곤△관광정책국장 금기형△관광산업정책관 박태영△체육국장 오영우△체육국 체육협력관 전병극△해외문화홍보원 해외문화홍보기획관 김성일△홍보정책관 박용철△대한민국예술원 예술원사무국장 박영국△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자료운영부장 이형호△국립한글박물관장 김재원◇과장급 전보△장관 비서관 최종철△홍보담당관 홍성운△감사담당관 김요일△문화인문정신정책과장 김근호△문화예술교육과장 이정현△지역문화정책과장 박종달△게임콘텐츠산업과장 김규직△문화통상협력과장 강연경△국내관광진흥과장 진주원△융합관광산업과장 최원일△관광개발과장 박형동△홍보협력과장 노점환△홍보지원과장 이정은△국제체육과장 정원상△동계올림픽특구기획단 특구기획담당관 천은선△평창올림픽지원담당관 이해돈△평창올림픽협력담당관 강대금△예술원사무국 관리과장 이정우△한국예술종합학교 총무과장 신종필△국립중앙박물관 기획총괄과장 김욱환△국립국어원 기획운영과장 김정호△국립중앙도서관 기획총괄과장 소순천△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정보이용과장 장영화△국립중앙도서관 어린이청소년도서관 행정지원과장 윤종호△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장 이기정△국립중앙극장 운영지원부장 김재숙△국립중앙극장 교육전시부장 하윤진△한국정책방송원 방송기술부장 김동욱△한국정책방송원 운영관리부장 윤문원△국립아시아문화전당 시설관리과장 김성수△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 파견 조연갑△국가지식재산위원회 파견 최성희 ■산업통상자원부 ◇실장급 전보△에너지자원실장 박원주 ■보건복지부 △장관정책보좌관 김창보△인구정책실 인구정책총괄과장 배경택△건강정책국 구강생활건강과장 임혜성△보건의료정책실 의료정보정책과장 오상윤 ■국토교통부 ◇과장급 전보△물류산업과장 김유인△항공운항과장 김상수△항공관제과장 유경수△도로투자지원과장 방윤석△광역도시철도과장 이우제△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투자유치지원과장 안광열△동서남해안및내륙권발전기획단 기획총괄과장 황윤언△부산지방항공청 안전운항국장 정의헌△부산지방항공청 항공관제국장 이종성△도시경제과장 이정희△대중교통과장 김기대 ■인사혁신처 ◇국장급 승진△공무원노사협력관 연원정 ■통계청 ◇과장급△기획조정관실 성과관리팀장 황현식△통계조정과장 송영선△품질관리과장 강호승△보건복지부 정책통계담당관 파견 서경숙 ■농촌진흥청 ◇승진△경상북도 농업기술원장 곽영호△경상북도 농업기술원 기술지원국장 최기연 ■게임물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최충경 ■서울에너지공사 △신사업본부장 김명호△기획조정실장 김양동△동부지사장 표호근△효율화사업처장 강용훈 ■MBC △문화사업국 제작사업부장 한명석△보도국 취재센터 정보과학부장 박성준 ■가천대 △부총장 조효숙△특임부총장 이한주 ■건국대 ◇서울캠퍼스△홍보실장 이거산△산학협력단 기술이전팀장 김호섭?◇글로컬캠퍼스△교무처장 이정환△기획처장 김환기△학생복지처장 박찬희△취창업전략처장 김영준△총무처장 윤태민△공공인재대학장 이상진△교양대학장 안세근△미래지식교육원장 이효신△학생복지처 학생상담센터장 이향수△취창업전략처 현장실습지원센터장 최대현 ■식품의약품안전처 ◇과장급 전출 및 전입△외교부 주미합중국대한민국대사관 강백원△식품의약품안전처 부이사관 이승용 ■KBS △전략기획실 방송문화연구소 방송문화연구부장 김영배 ■조선영상비전 △영상편집부장 직무대행 강태식 ■한국경제신문 △독자서비스국장 한규완 ■서울경제신문 ◇승진△논설위원실 논설실장 오철수△편집국 바이오IT부장 한영일◇겸임△편집국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정두환 ◇이동△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송영규△전략기획실 사업부장 우승호
  • [길섶에서] 잔혹/진경호 논설위원

    인터넷을 떠돌다 ‘충왕전’이라는 걸 늦게 알았다. 사슴벌레, 지네, 장수풍뎅이, 전갈, 사마귀, 장수말벌, 하늘소 등 한덩치에 한주먹(?) 하는 곤충들을 유리 상자에 넣어 싸움을 붙이고는 어느 쪽이든 죽음을 맞을 때까지 지켜보는 ‘놀이’다. 일본에서 한때 크게 유행해 진행자와 해설자까지 붙어 TV로 중계까지 했다니, 그들의 잔혹함과 옹색함이 새삼스럽다. 하기야 그들만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다. 우리도 지방 어느 구석에선 여전히 투견과 투계가 벌어지고 피 묻은 판돈이 오간다. 전승무패의 복서 메이웨더와 종합격투기 선수 맥그리거가 벌인 3450억원짜리 격투에 세상이 들썩였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도시 파에스툼에 그려진 벽화에 검투사가 나오는 걸 보면 싸우고 죽이도록 디자인된 인간의 유전자는 분명 인간이라는 운반체보다도 더 오래 지속될 것만도 같다. 궁금해진다. 인간의 이 ‘싸우고 죽이기’ 유전자가 언젠가는 인공지능(AI)에 이식되지 않을까. 그래서 수만의 로봇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간 검투사들이 목숨 걸고 피 흘리며 싸우게 되지는 않을까. 한낱 공상일까.
  • [씨줄날줄] 덕수궁 돌담길/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덕수궁 돌담길/이순녀 논설위원

    직장이 덕수궁 가까이에 있다 보니 가끔 점심시간을 이용해 덕수궁 돌담길을 산책하곤 한다. 대한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서울시립미술관 앞까지 걷다가 주한 미국대사관저가 있는 오르막길로 접어든 뒤 구세군중앙회관과 덕수초등학교를 지나 서울시의회 청사 방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그 오르막길 정점에 오른쪽으로 골목이 나 있다. 길 안쪽에 유명한 한식 퓨전 레스토랑이 있어서 방문객만 오고 갈 뿐 겉보기엔 막다른 골목이라 평소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은 길이다.그 길을 어제 다시 가 봤다. 철문에 가로막혀 있던 길이 덕수궁 돌담을 따라 활짝 열려 있었다. 58년 만에 개방된 돌담길을 걸으려고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로 골목은 시끌벅적했다. 고종과 순종이 제례 의식을 행할 때 주로 이용했던 길이다. 폭이 좁은 길 양쪽 담장 위로 솟구친 울창한 나무숲이 싱그러움을 더했다. 하지만 길은 곧 다시 끊겼다. 100m가량 이어진 길을 주한 영국대사관 철문이 막아섰다. 몇몇 시민들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지난 30일부터 일반에 공개된 이 길은 서울시와 주한 영국대사관이 2년간의 협상 끝에 지난해 10월 일부 개방에 합의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전체 통제 구간 170m 가운데 서울시 소유인 100m(영국대사관 후문~대사관 직원 숙소 앞)만 돌려받고, 영국대사관에 소유권이 있는 70m(영국대사관 정문~후문)는 개방 대상에서 빠졌다. 영국대사관은 1959년 서울시로부터 무상점유 허가를 받아 철문을 세웠다. 이후 서울시가 제때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아 여태 영국대사관 소유처럼 사용돼 왔다. 이제라도 덕수궁 돌담길 일부 구간을 복원한 것은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개방이 나의 산책 코스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듯싶다. 개방된 돌담길과 연결되는 덕수궁 쪽문을 새로 만들었지만 덕수궁에서 돌담길로 나가는 것만 자유롭다. 덕수궁 입장권이 없으면 왔던 길로 돌아나와야 한다. 서울시는 영국대사관과 협의해 70m를 돌려받는 방안과 덕수궁 안에 새 길을 내는 방안을 고민하겠다는데 현재로선 둘 다 여의치 않아 보인다. 지금이야 덕수궁 돌담길에 낭만과 자유로움이 넘치지만 시국이 수상할 때는 미국대사관저 앞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전경이 배치돼 통행을 못 하는 경우도 많았다. 구한말 서구 열강에 휘둘렸던 아픈 역사의 현장인 덕수궁을 감싸는 1.1㎞의 돌담길이 오롯이 하나로 이어질 날을 기대한다.
  • [씨줄날줄] 공동육아나눔터/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공동육아나눔터/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보육과 교육에서 사회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할 때 단골로 인용되는 아프리카 격언이다.‘공동육아’ 하면 가장 먼저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성미산 마을이 떠오른다. 맞벌이는 늘어나는데 믿고 맡길 보육시설은 부족하고, 획일적인 기존의 어린이집에 만족할 수 없었던 부모들이 1994년 모여 협동조합 형태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설립했다. 부모들이 품앗이로 아이들을 돌봤고, 보육교사 선발부터 식단, 프로그램까지 부모들이 결정했다. 대안학교의 모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보다 경제적 부담은 컸지만 부모와 지역공동체가 육아에 직접 참여한 사례는 큰 관심을 모았었다.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정부의 저출산 지원 대책에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9일 발표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도 저출산 지원 항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함께 공동육아나눔터 확대도 들어 있다. 2010년 5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공동육아나눔터는 급속한 핵가족화로 약화된 가족 돌봄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이웃들이 자녀를 함께 돌보고 육아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열린 공간’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공간과 운영비를 지원한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학습활동과 체험활동 등 다양한 품앗이가 이뤄진다. 부모들이 돌아가며 자녀들과 함께 등하교를 돕기도 한다. 공적 지원이 가미된 변형된 성산동의 공동육아 프로그램이라고나 할까. 정부는 현재 전국 66개 지역 149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동육아나눔터를 내년까지 196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예산도 올해 17억원에서 30억원으로 늘려 잡았는데 조정 과정에서 깎이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공동육아나눔터는 전국의 건강가정지원센터나 동네 도서관, 주민센터 내 공간을 나눠 쓰는 경우가 많다. 2013년 주민공동시설 설치 총량제 운영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면서 아파트 단지 안에 하나 둘 공동육아나눔터가 눈에 띈다. 삼성생명과 롯데, 신세계그룹을 비롯해 대우건설, 경기도시공사, LH 등 건설사들의 참여가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아직은 공동육아나눔터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공동육아나눔터가 활성화돼 입소문이 나면 말려도 늘어난다. 그러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품앗이와 참여가 중요하다. 경로시설을 찾은 어르신들 옆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부모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한 이웃 공동체를 기대해 본다.
  • [길섶에서] 가전제품의 은퇴/황성기 논설위원

    10년 이상 써 온 청소기의 흡입이 신통치 않아 살펴보니, 이리저리 휘둘려 온 호스 부분이 찢어져 있다. 빨아들이는 공기가 샜으니 청소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애프터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했다. “오래된 제품이라, 부품 판매나 수리가 안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라는 대답. 아무리 오래된 제품이라고 해도 수리를 안 해 준다니 어이가 없다. 테이프를 붙여 ‘연명치료’를 한다. 먼지를 모으는 종이봉투도 품절이라고 하니, 모터가 멀쩡해도 청소기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랬더니 습도가 높은 날이 지속된 얼마 전 TV가 갑자기 꺼진다. 여름철이면 같은 증상이 생겨 십수만원의 수리비를 들여 고쳤다. 기사를 불러 고칠까도 했지만, TV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어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니 다음날 배달되어 온다. 지난 30년간 2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했던 터라 오래된 가재도구가 없다. 10년간 동고동락한 TV의 은퇴, 곧 은퇴하는 청소기를 보면서 괜히 마음이 언짢다. 손에 익은 물건, 그리고 기억도 버리고 사는 게 인생이란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 北미사일 발사…노동신문 “자위권 행사이며 합법적 권리”

    北미사일 발사…노동신문 “자위권 행사이며 합법적 권리”

    북한이 지난 29일 일본을 넘어 북태평양으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한 것에 대해 “로켓 발사훈련은 주권국가의 자위권 행사이며 합법적 권리”라고 밝혔다.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30일 ‘정세 격화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개인 필명의 논평에서 “우리나라가 국방력 강화에 힘을 넣고 자위적 조치들을 연속 취하는 것은 바로 미국으로부터의 핵전쟁 위험을 막고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며 이와 같이 주장했다. 신문은 이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연합 군사연습을 거론하면서 “남조선에 집결된 방대한 무력이 실전 행동으로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며 “미국에 의해 언제 핵전쟁의 불집이 터질지 모르는 엄혹한 상황에서 우리가 핵 억제력을 약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은 또 ‘평화 타령의 기만적 본질은 가리울 수 없다’는 제목의 정세논설을 통해서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면 마땅히 그에 배치되는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며 UFG 연습의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상황에서 노동신문은 내부결속 강화에도 주력했다. 노동신문은 “일본 제국주의를 때려 부순 힘의 원천도 군민 대단결이었고,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의 비결도 당과 수령의 두리(주위)에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친 군대와 인민의 단결에 있었다”고 선전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자력자강의 길만이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진정한 발전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건강검진/이순녀 논설위원

    지난 토요일에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매년 미루고 미루다 연말에 가서야 허겁지겁 해치웠는데 올해는 여유 있게 하자 싶어서 서둘렀다. 당겨서 해 보니 좋은 점이 많았다. 연말에 비하면 검진자가 적다 보니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하기 싫은 숙제를 끝마쳤다는 홀가분함이 좋았다. 검사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검진을 받는 동안 언제나 그렇듯 후회와 불안이 수시로 교차했다. 지난번 검진 결과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와 한동안 집에서 양파 주스를 만들어 먹다 중단했는데 혹시 이번에도 높게 나오지 않을까. 삼겹살을 덜 먹었어야 했는데. 계단 오르기라도 열심히 할 걸 그랬나?. 까마귀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검진 결과가 나올 때마다 1년치 헬스장 이용권을 끊고는 한 달에 두세 번 갈까 말까인 대책 없는 게으름, 너무 쉽게 식욕에 굴복해 버리는 나약한 의지. 건강도 공부와 마찬가지다. 꾸준히 준비해야지 벼락치기는 안 통한다. 열흘 뒤에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조마조마하다.
  • [씨줄날줄] 대림동 파문/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림동 파문/서동철 논설위원

    영화 ‘청년경찰’에는 서울이라는 한 지붕을 이고 있는 천국과 지옥이 등장한다. 부유층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른바 ‘물 좋은’ 강남 클럽이 천국이라면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의 풍경쯤으로 묘사된 대림동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 지옥에 사는 중국동포들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처럼 그려진다. 물론 주인공인 두 경찰대생은 “돈도 못 버는 경찰 뭐 하러 하느냐”고 비아냥대는 ‘개념 없는’ 청춘들로 가득 찬 강남 클럽 역시 결국은 지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제작사는 ‘청년경찰’을 만들며 ‘유쾌한 웃음’을 추구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액션이 가미된 코미디라는 뜻이다. 코미디의 특징은 말할 것도 없이 과장이다. 그 결과 현실성 없는 과장이 영화 전편을 지배한다. 강남 클럽에 대한 과장은 사회성을 담은 비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대림동에 대한 과장으로는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제작자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림동에 사는 중국동포와 지역 주민이 그제 대림역 출구 앞에서 ‘청년경찰’의 상영 금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이 영화가 아무런 개연성 없이 중국동포를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고 중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대림동을 범죄 소굴로 묘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대림동에 사는 중국동포들이라면 ‘나’와 ‘우리가 모여 사는 동네’가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 작지 않은 충격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제작사는 ‘영화적 장치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제작사 대표는 “진정한 악인은 사회 상위계층이며 중국동포는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설정”이라면서 “혹시라도 불편함을 느꼈다면 사과한다”고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영화는 ‘정작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은 대림동의 조선족으로부터 위협받는 서울시민’처럼 그리고 있다. 벌써 “조선족들을 당장 중국으로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년경찰’에 등장하는 장면은 당연히 허구다. 우리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영화인들에게 최대한 부여하려 노력할 때 한국 영화는 발전한다. 그런데 영화인들은 그렇게 허용받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배려하며 써야 하지 않나 싶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제작사는 ‘이화여대’로 되어 있던 납치 여학생의 가짜 학생증 속 학교 이름에 대한 항의를 받고 ‘한국대’로 바꾸었다고 한다. 중국동포가 훨씬 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이 제작사에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 [서울광장] 다시 읽는 ‘올브라이트’/황성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다시 읽는 ‘올브라이트’/황성기 논설위원

    “미국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면 1000명의 수행원이 붙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라고 예외가 아니지요. 평양을 뒤졌지만 그 인원이 묵을 수 있는 호텔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 만난 미국 외교관은 2000년 10월 평양에 갔던 일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때 수행원으로 현장에 파견됐다. “그때만 해도 클린턴이 김정일을 만나는 데 적극적이어서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장관 수행원 200명도 2개 호텔에 분산됐는데 1000명을 어떻게 나누어 숙박을 시킬 건지 평양 관계자조차 즐거운 난색을 표하더군요.”17년 전이라면 어제 ‘화성12형’ 미사일보다 못한 사거리 2000㎞짜리 ‘대포동’에도 화들짝 놀라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북한과 미국의 적대 관계는 한때 풀리기도 했다. 북한의 2인자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10월 군복 차림으로 ‘미 제국주의의 심장부’ 백악관을 찾았던, 그 어색했지만 신선한 장면, 기억할 것이다. 조명록은 클린턴에게 김정일 친서를 전하며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 조는 클린턴의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행을 성과로 안고 귀환했다. 2017년 8월. 북·미는 전쟁 직전이다. 1994년과 비슷하다. 북핵 30년을 돌이켜 볼 때 이제까지가 말 폭탄의 성찬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폭탄이 터질 현실이 성큼 다가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은 막겠다”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 배치가 임박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남한 대통령의 말대로 ‘전쟁 스위치’에서 손을 뗄지는 의문이다. 자국의 안전과 이익을 해치는 위협을 제거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선제 타격·예방 전쟁을 불사해 온 미국 아닌가. 트럼프의 ‘노스 코리아’ 목록에 남은 것은 전쟁이냐, 평화협정 체결이냐 두 가지다. 김정은 참수 작전이나 정권 교체는 중국 개입이 우려돼, 혹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테이블에서 내려놓은 지 오래다. 수백만명의 희생을 부를 수 있어 클린턴 행정부 1기 시절인 1994년의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은 무산됐다. 그렇지만 1994년 사례를 들어 2017년에도 미국이 전쟁 카드를 내려놓고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남한식 낙관에 불과하다. 평화협정의 길은 지난하다. 핵·미사일의 검증과 동결·폐기, 보상의 귀찮은 절차보다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평양을 때리는 게 득이라는 계산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비극은 피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희망은 대화뿐이다. 2003년 출간된 올브라이트의 자서전을 다시 읽어 본다. 2000년 한반도 해빙기에 얽힌 지혜들이 녹아 있다. 김정일·올브라이트 회담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클린턴이 대북 조정관으로 앉힌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1999년 올브라이트에게 “북한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제안한다. 페리는 “북한 의도를 시험해 보자”면서 “김정일에게 독단적 핵 활동 금지와 불안을 유발하는 미사일 개발 및 수출 중단에 합의해 관계 개선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잡든지, 아니면 대결을 계속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자”고 말한다. 그해 5월 페리는 평양에 들어가 제안을 내놨고, 몇 개월 뒤 북한은 긍정적 회신을 보낸다. 2000년 7월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연례안보포럼(ARF) 총회에서 백남순 외상과 올브라이트의 북·미 외교장관 회담, 조명록의 미국 방문, 올브라이트의 평양 답방이 이어진다. 그러나 정권 교체기의 클린턴 평양 방문은 미국 조야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북한을 저울대에 올려놓은 클린턴은 평양행을 포기한다. 클린턴은 백악관을 떠나기 하루 전날 올브라이트에게 “중동 문제로 워싱턴에 있느니, 북한에 갈 기회를 잡았으면 좋을 걸 그랬지요”라고 후회했다고 한다. 정상회담 직전까지 가 본 북·미다. 향후 몇 개월이 고비다. 한·미 정상의 긴밀한 대화가 지금처럼 절실한 때도 없다. 김정일을 만난 김대중은 올브라이트에게 방북을 권했다. 특사의 평양 파견을 비롯한 가능한 수단을 모두 짜내야 한다. 한반도 군사 옵션 타이머는 곧 멈출 것이다.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페북’ 불청객/박건승 논설위원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에 페이스북만 한 게 없다. 명쾌한 논리와 신념의 목소리를 간혹 접할 수 있어 좋다.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건 보너스를 받는 기쁨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페북’ 이용자도 아니다. 기껏해야 ‘좋아요’를 누르거나 ‘멋집니다’ 정도의 댓글을 남기고, 좋은 사진과 글을 보면 동의를 얻어 공유하는 정도다. 절친과는 ‘페친’을 맺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입만 열면 ‘자랑질’하는 사람, 극단·편향적 이념의 소유자도 예외일 수 없다. 잊을 만하면 ‘어제저녁 무슨 고급 안주를 곁들여 몇 년짜리 코냑을 마셨다’는 따위의 사진을 올리는 이들, 특히 그런 몇몇 대학교수는 불편하다. 그들의 식도락을 탓할 자격은 없으나 그 시간에 제자들이 백수 신세로 거리를 떠돌고 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언짢다. 차라리 티라도 내지 말고 마시면 될 걸?. 앞으론 이런 부류와도 페친할 생각이 없다. 요즘엔 웬 ‘미군 병사’들까지 대여섯 명씩 가세해 친구 요청 건수가 열 개를 넘기는 날이 많다. 그렇다고 보는 족족 삭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페북을 대청소한 뒤 ‘페친 권리장전’이라도 만들어 띄워야 하나.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씨줄날줄] 생리대 노마드/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생리대 노마드/황수정 논설위원

    이름 있는 중견 업체가 새로 출시했다는 프라이팬을 하나 샀다. 주방 시장에 후발 주자로 진입했으니 고품질로 승부를 걸겠다는 홍보에 끌렸다. 하지만 한 번 쓰고는 다시 손이 가지 않는다. 운두가 너무 높아 음식을 온전히 뒤집기가 힘들어서다. 용도 폐기된 멀쩡한 프라이팬을 볼 때마다 속은 느낌이 들어 며칠째 혀를 차고 있다. “주부가 만들었을 리가 없다!”덧붙여 두 가지 합리적인 추론. 소비자 시장 조사가 아예 날탕이었거나, 제품 개발의 의사 결정 과정에 주부(여성) 임원이 한 사람도 없었거나. 유해 생리대 공포가 갈수록 심각하다. 뒤늦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중 생리대를 전수조사한다지만, 소비자들은 발만 동동 구른다. 식약처를 믿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여성단체의 신고를 진작에 받고서도 깔아뭉갰다는 식약처다. 생리대는 여성에게 ‘취향’이 아니라 필수 선택의 문제다. 여성 한 사람이 평생 쓰는 생리대는 1만개가 넘는다. 불안한 소비자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온갖 대체 상품을 스스로 고민하는 중이다. 몇 배나 비싼 친환경 생리대와 면 생리대를 수소문하거나 선진국의 제품을 해외 직구한다. 국내 시판이 허용되지 않는 실리콘 생리컵을 해외에서 구매하느라 아우성이다. 시중 생리대를 쓰려거든 미리 뜯어서 휘발성 유독 성분을 날리라는 요령까지 공유한다. 가뜩이나 신생아 울음소리가 끊긴 산부인과에는 살풍경이 더해졌다. 불편과 불안에 시달리느니 이참에 아예 무(無)월경 시술을 받겠다는 문의가 몰리고 있는 모양이다. 요령부득의 신제품 프라이팬을 볼 때마다 왜 생리대가 겹쳐 보일까. 상품이든 정책이든 남성 공급자 중심을 탈피했다면 둘 다 다른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직의 유리천장이 좀더 크게 깨져 있었더라면. 당장 식약처의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 실무 공직자가 다만 몇 명이라도 끼어 있었더라면. 지지부진한 생리컵 시판 논쟁 따위는 진작에 마무리됐을 수 있다. 생리컵을 소재로 희화화하는 온갖 성적 비하 공방도 없었을지 모른다. ‘정부’가 아니라 ‘남자(정책 실무자)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지금의 인터넷 억측도 잠재웠을지 모른다. ‘생리대 노마드(nomad)’라는 신조어가 돈다. 안전한 생리대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돈다는 여성들의 자조 섞인 조어다. 기왕의 생리대 홍역에서 꼭 건져야 할 의미는 있다. 정책의 무지(無知)가 여성 인권의 원형까지 넘보는 어이없는 잘못은 다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바른 말글] 가능성이 높다/손성진 논설주간

    “확률이 크다”, “확률이 높다” 중에서 어느 것이 맞을까. 대체로 수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은 ‘높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한다. 확률은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수학적인 개념이므로 “확률이 높다”로 쓴다. 반대로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효과’는 ‘효과가 높다’보다는 “효과가 크다”로 쓰는 게 어울린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어느 쪽일까. 신문 기사를 보면 “가능성이 크다”보다 “가능성이 높다”로 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가능성은 효과처럼 수치로 환산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따라서 “가능성이 크다”로 쓰는 게 맞을 듯하다. 그러나 가능성 또한 꼭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니 재단하듯이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능성이 60%면 “높은” 쪽이다.
  • [길섶에서] 오로지 지금/황수정 논설위원

    손 글씨를 쓸 일도 보여 줄 일도 드문 세상이다. 종이에 글씨를 써야 할 때는 무르춤해진다. 마음먹은 필치는 온데간데없이 각(角)이 뭉개진 글꼴. 내가 써 놓고는 내가 멋쩍다. 야무졌던 글씨체가 무너지니 속수무책이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시간이 얼만가. 자판 탓만도 아니다. 잘못은 속도 강박이다. 펜을 잡으면 머릿속 회로는 자판의 속도로 손 글씨를 쏟아내라며 우르르 몰아붙인다. 글씨가 제 매무새를 다듬을 틈이 없다. 생활의 이력은 필체에도 깃든다. 동동거리는 조급증에 글꼴의 맵시를 뺏겼다. 삶의 빠듯한 동선을 들키나 싶어 누가 안 봐도 버릇처럼 민망해지고. 일없이 굴러다니는 공책에 묵혀 둔 만년필을 갖다 댄다. 속도의 폭력에 퇴행한 글씨에게 명예를 되찾아 주려 한다. 속력의 횡포에 주눅 들지 말 것. 지금 이 순간 쓰고 있다는 생각만 오로지 할 것.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 제 발로 지금을 걷어찬 흔적. 망가진 손 글씨를 돌보며 한 수 챙긴다. 말로 퍼주고도 되로 돌려받는 줄 모르는 계산 착오가 삶에서 어디 손 글씨뿐일까.
  • [씨줄날줄] 헨리 소로와 케미컬포비아/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헨리 소로와 케미컬포비아/최광숙 논설위원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이 태어난 오두막은 가난을 의미하지만 헨리 소로의 오두막은 현대 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상징한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소로가 세속적인 성공의 길을 마다하고 매사추세츠 월든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지은 게 1845년 그의 나이 28세. 그는 이곳에서 대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며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2년 2개월간의 오두막살이 경험을 쓴 ‘월든’은 문학적인 평가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물질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줘 큰 반향을 일으켰다.미국의 경제학자인 스콧 니어링 역시 소로와 같은 길을 걸었다. 그는 1930년대 뉴욕의 문명에서 탈출해 버몬트주 숲속으로 들어가 부인 헬렌과 함께 손수 지은 돌집에서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는 산업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을 공허하게 만든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단순한 생활이 필요하다고 봤다. 거액의 유산 상속까지 거부하면서 선택한 것이 숲속의 삶이었다. 스콧과 헬렌은 필요한 물건을 자급자족하고, 돈을 모으지 않고, 동물을 키우지 않으며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을 원칙으로 한 ‘조화로운 삶’을 평생 실천했다. 세계 최대의 아이스크림 기업인 배스킨라빈스의 상속자인데도 이를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작은 섬으로 이주해 자급자족의 생활을 한 배스킨라빈스 창업자의 아들 존 로빈스도 소로의 후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각종 유제품과 축산물에 대해 감춰졌던 진실을 폭로한 환경운동가로 유명하다. 그는 저서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음식혁명’ 등에서 항생제와 호르몬제가 투여된 육식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최근 ‘살충제 달걀’에 이어 유해 생리대 파동으로 먹거리와 생필품 전반에 ‘케미컬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생리대와 유사한 아기 기저귀까지 유해성을 의심받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음식이 먹을 만한지, 어떤 생활용품이 안전한지 국민의 불신은 점차 커지고 있는데 허둥대는 정부를 보면 안심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하다. 국민 스스로 유해물질을 피해 가는 ‘각자도생’의 길밖에 뾰족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올해는 소로가 탄생한 지 200년이 되는 해다.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일찍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교훈을 남겼지만 인간의 욕망은 눈덩이처럼 커져 이제 그 욕망을 담은 먹거리와 생활용품들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더 큰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 [부고]

    ●주민숙(한국화가·전 숙명여대 미술대학장)씨 별세 최송화(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서울대 부총장)씨 부인상 정선(화가)씨 모친상 2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10분 (02)3010-2261 ●정국현(전 아마추어무선연맹 이사장)씨 별세 2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410-6902 ●황재기(서울 원당초 교장)씨 모친상 27일 중앙대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 30분 (02)860-3500 ●이강호(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씨 부친상 김경희(기획재정부 본부국장)씨 시부상 2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2)2258-5940 ●이상범(가나피엔엘·가나아사히 대표이사)씨 모친상 이귀숙(조선대병원 진료부 근무)씨 시모상 26일 조선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11시 (062)220-3352 ●강호일(전 부산일보 논설주간)씨 별세 필순(자영업)소라(기술보증기금 차장)씨 부친상 신승모(롯데제과 매니저)김진욱(에스앤에스 과장)씨 장인상 26일 부산 동아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51)256-7070 ●오일석(미국 텍사스공대 토목학과장)정미(미국 델라웨어대학 의상학과 교수)씨 부친상 김문주(SC제일은행 상무)조영헌(부산대 해양학과 교수)씨 장인상 2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2)3410-6917 ●김천호(전 한양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씨 별세 박창남(전 호텔롯데 전무)씨 부인상 상욱(한우리병원 재활의학과장)상훈(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한국대표부 수석상무관)씨 모친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410-3151 ●류인왕(전 의협신문 주필)씨 별세 홍태숙(전 국회의원 보좌관)씨 남편상 류창욱(순천향대 강사)씨 부친상 2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 30분 (02)2227-7560
  • [길섶에서] 사장님과 샐러리맨/최광숙 논설위원

    같은 사람이라도 처한 위치에 따라 처신이 달라진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럴 줄을 몰랐다. 오랫동안 지켜보던 한 대학병원의 의사는 평소 환자들에게 까칠하게 대했다. 교수까지 겸한 의사이다 보니 그는 전형적인 ‘갑’의 자세가 몸에 밴 듯했다. 그러던 그가 얼마 전 퇴직 후 개업을 해 그곳을 찾았더니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전에 보지 못했던 행동에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가 개업한 병원을 다시 찾아 줬으니 반갑기도 했을 터. 예전에는 뭘 물어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게다가 그는 처음 마주하는 환자인 양 아주 기초적인 사안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오랫동안 진료를 받았어도 한 번도 듣지 못한 얘기들이다. 물론 ‘초치기’ 진료를 하는 대학병원과 개인병원이 다르긴 하지만 그를 이곳에서 처음 만났더라면 아주 친절한 의사로 여길 정도로 태도가 확 바뀌었다. 한 할머니도 “개업하더니 다른 사람이 됐네”라며 어리둥절할 표정을 지었다. 내 사업을 하는 것과 월급을 받는 것의 차이가 이거구나 싶다. 새삼 ‘주인 의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그다.
  • [씨줄날줄] ‘이케아 논란’/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케아 논란’/박건승 논설위원

    열일곱 살에 이케아를 세운 스웨덴인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난독증 환자다. 그래서 이케아 상품 중에는 지명을 본떠 만든 것이 유난히 많다. 제품 코드를 읽는 데 어려움을 덜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다. 소파와 TV 벤치의 제품에는 스웨덴 지명이 많고, 침대·옷장 이름은 노르웨이 지명을 따서 붙였다. 소비자 눈길을 끌어모으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캄프라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혼부부들이 비싼 가구를 사면서 고심하는 것을 보고 원가절감 전략을 짜낸다. 우선 도시 외곽에 매장을 둬 임대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이 스스로 가구를 조립하게 함으로써 상점 비용을 절약한다는 것이다. 또 가구는 조립형으로 설계해 납작하게 쌓아 운반함으로써 물류비를 줄인다는 식이다. 70여년 전의 발상치고는 상당히 창의적이다. 여러 모로 영민해 보인다. 2014년 한국에 진출한 이케아만큼 논란거리를 몰고 다니는 글로벌 기업도 없다. 공식 홈페이지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세계지도 제품 이미지를 썼다가 혼쭐이 났고, 한국에 상륙하기도 전에 다른 나라보다 제품값이 비싸게 매겼다는 지적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았다. 미국 어린이 6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른바 ‘말름 서랍장’을 미국·캐나다에서는 판매 중지하면서 한국에선 계속 팔아 국내 소비자를 무시한다는 비난을 샀다. 그런 이케아가 이번에는 ‘규제 역차별’ 시비의 중심에 섰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그제 경기 고양시 자사의 복합쇼핑몰 개장식에서 정부의 허술한 복합쇼핑몰 규제와 이케아의 비정상적 영업 행태에 날을 세우면서부터다. 국내 복합쇼핑몰과 아웃렛은 내년 1월부터 ‘월 2회 영업 제한’ 조치를 받는다. 당연히 새로 개장한 신세계 복합쇼핑몰도 규제 대상이다. 그러나 오는 10월 신세계의 복합쇼핑몰 인근에 국내 2호점을 여는 이케아는 사정이 다르다. 이곳엔 복합쇼핑몰처럼 가구는 물론 생활용품 전반을 팔고 식품매장, 오락시설까지 갖춘다고 한다. 그런데도 가구 전문점으로 등록한 덕분(?)에 영업제한 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 형태의 영업을 하는데 누구는 격주로 문을 닫으라 하고, 누구에게는 연중무휴로 돈 벌라고 하는 이 모순과 차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모호하기 그지없는 복합쇼핑몰 규제 대책, 그리고 그 빈틈을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는 이케아. 유통업계로서는 분통이 터질 만하겠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니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막혀 막막하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자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벌어 가는’ 형국이니.
  • [서울광장] 탁류(濁流), 탁현민과 류영진/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탁류(濁流), 탁현민과 류영진/이순녀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 인사의 최대 실패 사례로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 사외인사 겸직과 아들의 이중 국적 문제 등으로 취임 이틀 만에 사퇴한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동을 꼽았다. 검증 과정에서 흠결을 확인하고도 인사추천회의에서 아무도 부적격 사유라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시민사회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지방 출장으로 회의에 빠졌는데 그때 참석했으면 반대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그 일을 빼면 참여정부의 인사 추천과 검증 시스템은 자랑할 만했다”고 자평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시스템을 존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를 꼽았다. 노 전 대통령이 좋아하거나 높이 평가한 사람을 후보군에 포함시키기는 했으나 검증에 문제가 있으면 배제했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한 번도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의 의중을 앞세우면 시스템은 금방 무력화된다”고 썼다. 지난 100일간 벌어진 문재인 정부의 여러 인사 논란을 보면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의 자진 사퇴를 시작으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 등 네 명이 낙마했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인사 시스템을 복원해 인사추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인사추천위가 부실 검증을 했거나 아니면 ‘대통령의 의중’이 앞섰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낙마 인사들은 모두 문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는 지인들이다. 특히 박 전 본부장의 경우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있었음에도 임명된 걸 보면 후자일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대통령의 의중이 앞선 것으로 의심할 만한 두 명의 현직 인사가 더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과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차관급)이다.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탁류(濁流)”(국민의당)라는 비판에도 요지부동이다. 대선 캠프 출신으로 임명 당시부터 ‘코드 인사’라는 말을 들었던 류 처장은 살충제 달걀 파동에 무능하게 대처하고, 책임 회피로 일관해 야당의 집중적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제대로 하라”고 질책한 것을 ‘짜증’으로 표현하고, “사퇴 종용을 받았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웃으며 “없다”고 대답하는 오만한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연이어 터진 생리대 부작용 논란, 유럽산 간염 소시지 파문에 대한 조치도 허둥지둥이다. 식약처 수장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만큼 류 처장은 하루빨리 자진 사퇴를 결정하는 게 옳다. 과거 책에 쓴 여성 비하 표현으로 논란이 된 탁 행정관은 야당은 물론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까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5·18 행사, 100대 국정과제 프레젠테이션, 대통령과 기업인 간 호프미팅, 서울성모병원에서의 문재인 케어 발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 등 탁월한 무대 기획력에 힘입어 여전히 건재하다. 보여 주기식 ‘쇼통’에 불과하다는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민이 목말라했던 소통하는 친근한 대통령의 모습을 세련된 기법으로 보여 준 성과는 분명히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이벤트는 100일로 충분하다. 지난 20일 생중계된 ‘정부 출범 100일 대국민 보고대회’는 과유불급이었다는 의견이 많다. 탁 행정관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가 바로 물러날 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이 그나마 박수받고 떠날 수 있는 적기일 것이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2일 국회 답변에서 탁 행정관과 관련해 “대통령 인사권이 존중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류 처장에 대해서도 “좀더 지켜봐 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그토록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사 시스템이 무력화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coral@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큰 바위에 새겨진 ‘공동묘지’… 왕실 여인들의 마지막 흔적일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큰 바위에 새겨진 ‘공동묘지’… 왕실 여인들의 마지막 흔적일까

    오늘은 서울 근교의 불암산(佛巖山)으로 간다. 서울 동부의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불암산은 바위 봉우리가 송낙을 쓴 부처의 모습이어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송낙이란 완만한 삼각 모양의 승려들이 쓰는 모자다. 불암산은 천보산(天寶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의 동쪽 기슭인 남양주 별내면에는 불암사(佛巖寺), 서쪽 기슭인 노원구 중계동에는 학도암(鶴到庵)이 있다. 두 곳에서는 흔치 않은 마애부도 혹은 마애사리탑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부도(浮屠)란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이다. 산스크리트어의 붓다(Buddha)를 음역한 것이라고도 하고 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stupa)나 팔리어의 투파(tupa)가 변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곧 부처를 가리키거나 부처의 유골을 모신 탑(塔) 혹은 탑파(塔婆)를 의미한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가지정문화재는 이제 ‘부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승탑’(僧塔)으로 표기한다. 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동(東) 승탑’도 과거에는 ‘구례 연곡사 동 부도’로 불렀다. 흔히 탑이라 부르는 불탑(佛塔)과 승려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묘탑을 구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다만 시·도 지정 문화재는 지금도 부도라는 이름을 쓴다.하지만 부처의 무덤이 아닌 불교식 묘탑은 꼭 승탑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안 안국사에는 15세기 전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행호조사 모탑’(行乎祖師 母塔)이 있다. 세종시대 이 절을 중창한 행호조사가 출가하지 않은 어머니의 무덤을 이런 모습으로 조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실물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른바 재가신자(在家信者)의 묘탑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은 이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실학자 이중환(1690~1752)은 인문지리서 ‘택리지’에 ‘청평산에 절이 있고 절 옆에는 고려시대 처사 이자현이 살던 곡란암 옛터가 있는데, 그가 죽자 절의 승려가 세운 부도가 지금도 산 남쪽 10리 남짓한 곳에 남아 있다’고 적었다. 이자현(1061~1125)이라면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춘천 청평산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선학(禪學)을 닦았다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승탑의 조성은 선종(禪宗) 불교의 도래와 궤를 같이한다.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은 때마침 발호하던 호족에게도 ‘세력을 키우면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리잡았고 결국 송도 호족 왕건이 신라를 무너뜨리고 고려 왕조를 세우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통일신라 시대에는 선문(禪門)을 이끌 정도의 고승(高僧) 반열에 올라야 승탑 건립 대상이 됐다. 고려 시대에도 국사(國師)나 왕사(王師)급 지위에 올라야 승탑에 안장될 수 있었다. 그러니 크고 화려한 승탑과 탑비(塔碑)의 건립은 국가적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하는 작업이었다. 조선시대 상황은 다르다. 억불(抑佛)의 강도가 높아 불사(佛事) 자체가 위축됐던 초기에는 승탑 건립 역시 부진했다. 하지만 불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위상도 다시 높아졌다. 18세기가 되면 지위가 높지 않은 승려라도 입적하면 묘탑을 다투어 세우게 된다. 불교국가에서 승탑의 건립은 정치적 의미가 큰 의례였지만 역설적으로 유교국가에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신자들의 묘탑이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었다. 18세기 중반부터 본격 조성된 재가신자들의 묘탑은 19세기가 되면 더욱 늘어난다. 이자현 부도나 행호조사 모탑만 해도 고정관념에 매몰되지 않은 신선한 파격이었지만, 이제 신자들의 묘탑을 세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19세기 서울 주변 지역에서는 마애부도가 다투어 출현한다. 곧 바위에 조각한 부도다. 승려보다 재가신자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특징을 지녔다.불암사는 산 아래 별내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일주문으로 들어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곧 절이다. 그런데 마애부도를 찾기는 쉽지가 않다. 절의 일을 돕는 보살님에게 그 존재를 물었지만 처음 듣는 얘기란다. 마애부도는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가야 만날 수 있다. 작은 시내를 건너 올라가다 보면 큼지막한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포장도로를 내기 전에는 굽이돌아가는 이 길이 주(主)통행로였을 것이다. 바위에 가까이 다가서면 나란히 직사각형의 구획을 지어 조각하고 그 위에 사리공(舍利孔)에 해당하는 감실(龕室)을 판 흔적이 보인다. 바위 남쪽면의 마애부도는 다섯 기다. 주인공의 이름을 새기지 않은 맨 왼쪽 것은 최근에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네 기는 모두 조선 후기 조성한 것이다. 서쪽면에도 최근의 마애부도 두 기가 있다. 옆에는 역시 근해의 원구형 부도 두 기도 보이니 명실상부한 불암사의 부도밭이다. 일반적인 부도가 개인 묘지라면 큰 바위에 복수로 새겨진 부도는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다. 서쪽면 부도의 주인공은 오른쪽부터 청신녀 덕원(德元), 청신녀 정심(淨心), 청신녀 상념(常念)이다. 정심의 부도에는 ‘가경(嘉慶) 17년’이라고 새겨져 있으니 1812년 조성된 것이다. 가경은 청 인종의 연호다. 청신녀(靑信女)란 재가 여성신자를 가리킨다. 많은 시주 등으로 절과 깊은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그 왼쪽은 청송당(靑松堂) 성감선사(性鑑禪師)의 승탑이다. 조각에서 승려와 신자의 위계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불암사는 세조가 한양 사방에 왕실 원찰(願刹)을 정하며 동불암(東佛巖)으로 낙점했던 만큼 마애부도의 청신녀들은 왕실과 주변 여인들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불암산 서쪽의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자락 도선사(道詵寺) 주변에는 ‘김상궁정광화지사리탑’(金尙宮淨光花之舍利塔)이라는 명문이 있는 마애부도가 있다. 서울 서대문 안산 자락의 봉원사(奉元寺)에서도 또 다른 ‘상궁 김씨’의 마애부도를 찾을 수 있다. 상궁을 비롯한 궁인들이 출궁 이후 근교 절에서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음을 방증한다. 학도암의 마애부도 역시 왕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계동 아파트 단지와 주택 밀집지역의 골목 사이로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학도암을 찾아가는 길은 복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학도암에 오르면 서울에 이런 곳에 있을까 싶을 만큼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두 기의 마애부도는 학도암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 바위에 있다. 왼쪽은 청신녀 월영(月影)의 묘탑, 오른쪽은 환□당(幻□堂) 취근(就根)선사의 승탑이다. 월영탑에는 1819년 조성했음을 알리는 명문이 있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취근선사 것도 비슷한 시기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학도암은 높이 22m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높이 13.4m의 관음보살로 유명한 절집이다. 마애관음은 1872년 명성황후가 시주해 조성한 것으로 사지(寺誌)는 기록하고 있다. 왕실과 깊은 연관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불암사에서도, 학도암에서도 등산객과 참배객은 대부분 무심하게 마애부도 곁을 지난다. 무심하다기보다 마애부도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불어 마애부도가 유행한 이유를 밝히는 학계의 노력도 아직은 부족하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부도의 명칭에도 여운이 남는다. 문화재청이 쓰는 ‘승탑’이라는 표현은 재가신자의 묘탑을 수용하지 못한다. 신자의 묘탑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가 없으니 용어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서울시는 시 마애부도를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마애사리탑’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재가신자의 무덤을 사리탑이라고 부르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마애부도의 성격을 밝히면서 용어의 재정립도 필요하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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