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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지역균형발전 이끌 자치분권 강화… 연방제 하자는 것 아니다”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지역균형발전 이끌 자치분권 강화… 연방제 하자는 것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는 ‘지방분권’이다. 비록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청와대가 6월 지방선거에 맞춰 마련한 헌법 개정안의 명칭이 ‘지방분권 개헌안’인 데서 보듯 지방분권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이전 정부와의 비교를 불허할 만큼 강력하다. 문 대통령 스스로 지난해 6월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민선 자치시대 23년을 맞이했지만, 풀뿌리민주주의의 원형인 주민자치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고 비대한 중앙권력을 나누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지닌 비민주적 구조를 청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나 중앙권력 이양과 재정 분담 등 범국가적 이해관계가 얽힌 고질적 난제 앞에서 논란은 여전히 거세기만 하다. 20일 앞으로 다가온 민선 7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 대통령의 지방분권 구상을 가다듬고 있는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 정순관 위원장으로부터 지방분권 시대를 준비하는 정부의 구상과 추진 상황을 들어 봤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 8층 자치분권위원장실에서 이뤄졌다.→역대 어느 정부보다 지방분권 의지가 강력하다. 우선 6월 선거를 통해 새롭게 시작될 민선 7기 지방자치의 시대적 과제는 뭐라고 보는가. -압축성장의 그늘이라 할 사회 불균형,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이라 할 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게 민선 7기 지방자치시대 우리의 소명이라고 본다. 다음달 새롭게 구성될 민선 7기 지방자치단체 구성원들은 정부의 국정기조인 자치분권 실현을 위한 소중한 기회를 잡는 셈이다. 모쪼록 지역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목표 가운데 네 번째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을 목표로 한 지방분권이다. 개헌을 통한 대통령과 시·도지사 국무회의(제2국무회의)와 4대 지방자치권(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 도입, 주민직접참여제 활성화, 국가기능 지방이양, 마을자치 활성화, 그리고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국세·지방세 조정(장기목표 6대4), 주민참여예산제 확대 등의 구상이 담겨 있다. →지방분권 개헌이 무산되면서 정부의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한 것 아닌가. 자치분권위의 후속 방안은. -개헌과 별개로 정부 차원의 자치분권 종합계획 수립 작업은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다. 6월까지 자치분권위 차원에서 구체적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이후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보고를 거쳐 7월에 최종안을 확정한 다음 정기국회에 관련 입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현 정부의 지방분권 강화가 궁극적으로 연방제를 염두에 둔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방제 전환은 엄청난 체제 변화를 뜻한다. 대통령 말씀은 강력한 자치분권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정치 수사(修辭)이지 연방제로 가자는 얘기는 아닌 것으로 안다. →일각에선 정부가 향후 연방제 형태의 통일한국을 염두에 두고 그 과도적 단계로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을 구상하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지방 강연 때 한 청중이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얘기를 하면서 그런 취지로 물은 적도 있다. 어떻게 지방자치 문제에 대해서까지 그런 냉전사고를 들이대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단언컨대 남북 통일을 염두에 둔 자치분권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통일 방식에 대한 담론과 전혀 무관하다. ※북한은 1960년 ‘남북연방제 통일방안’을 처음 주창한 뒤로 보완을 거듭,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원칙으로 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표방하고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의 연합제(▲1연합 2체제 ▲1연합 1체제 지역자치 정부 ▲1국가 1체제 1정부로 이어지는 3단계 통일)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하고 이를 6·15 공동선언에 담았다. →정부는 8대2 수준인 국세·지방세 비중을 장기적으로 6대4 수준으로 전환하는 목표를 세웠다. 논란이 크지 않겠나. 세금이 늘 가능성은. -지금 자치분권위 내부에서도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재정분권이 지방분권의 핵심인데 쉽지가 않다. 대통령 공약을 모두 중앙정부를 통해서만 이행하던 것을 지방정부를 통해서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 정부 임기 중 6대4는 아니어도 7대3 정도로라도 전환됐으면 좋겠다. 지방세 전환을 통해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게 대원칙이다. →현안인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해 얘기하자. 정부는 내년에 5개 시·도에서 자치경찰제를 시범실시하고 2020년에 전 국가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인데, 정작 국민들 가운데는 자치경찰 도입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자치경찰제를 시행해야 할 이유가 뭔가. -우선 지금 국가경찰이 지닌 중앙집중적 경찰권에 대한 민주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 입장에선 지역별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자치경찰제가 훨씬 적합하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정형화되지 않은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세계적 수준인 우리 국가경찰의 치안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늘어날 비일상적 범죄에 대한 치안력을 증진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자치경찰이 필요하다. →경찰과 각 시·도, 검찰에 이르기까지 이해 당사자가 많다. -수십년간 해결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대단히 복잡한 사안이다. 경찰과 검찰, 각 시·도 등 핵심 관계기관들이 지금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위원회에서 충분히 수렴하고 있다. →분권위가 생각하는 자치경찰 모델은. -우선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자치경찰 수장에 대한 임명권과 추천권, 동의권 등을 어느 한 기관이나 한 사람이 틀어쥘 수 없도록 한다는 게 하나다. 아울러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지방권력과 자치경찰의 이권 결탁 내지 유착을 철저히 차단할 장치를 마련하는 게 또 하나다. 세 번째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이원화에 따른 재정 부담 증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 아래 분권위 차원에서 깊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분권위가 참고하는 안 가운데 경찰개혁위의 자치경찰제안과 서울시의 자치경찰제안, 그리고 1999년 경찰청이 마련했던 자치경찰제안 등이 있다. 어느 모델이 우리 현실에 적합하다고 보나. -경찰은 적게 내주려 하고, 시·도는 많이 가지려 한다. 그 중간의 어느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본다. 경찰개혁위안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기능 중복과 예산 증가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반면 서울시안은 갑작스러운 큰 폭의 변화에 따른 혼란이 우려된다. 경찰권력이 지역의 이해 관계자들에게 포획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경찰 수장에 대한 추천권과 제청권, 임명권, 동의권을 모두 분산시키는 것이 그에 부합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임명권은 지자체장이 갖고, 동의권은 대통령이 갖는 식으로 인사권을 분산시키는 거다. 1999년 경찰청이 마련했던 안이 두 기관 안의 중간 지대에 있는데, 이를 보완하는 모델이 검토되는 것으로 안다. →검찰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청와대는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도입은 무관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위원장도 같은 의견을 밝힌 바 있는데 일정 부분 맞물려 있는 것 아닌가. -전혀 맞물려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검·경 수사권 조정이 안 되면 자치경찰제를 할 수 없다, 이건 넌센스다. 지금도 경찰의 수사개시권이 있지 않나. 이걸 바탕으로 자치경찰제를 추진하겠다는 것이고, 검·경 간 수사권 문제는 이와 별개로 논의하는 게 마땅하다. jade@seoul.co.kr■ 정순관 위원장은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을 지낸 행정학자로, 1998년부터 순천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2015년 지방자치발전위원회(자치분권위원회 전신) 위원으로 참여해 지난해 8월 위원장에 올랐다. 2015년 6월 순천대 제8대 총장 선거에서 총장 임용 1순위 후보자로 선출됐으나 교육부가 국립대 사상 처음으로 1순위 후보를 제치고 2순위 후보를 신임 총장으로 임명해 논란이 일었다. 정 위원장은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60·순천 ▲전남대 행정학 박사 ▲국무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원 ▲전남 지방분권추진협의회 위원장■ 자치경찰제는 지방분권 핵심 정책과제… 2020년 ‘한국형 자치경찰’ 전국 시행 방침 자치경찰제 논의는 연원이 광복 직후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해묵은 난제다. 공권력의 상징이라 할 경찰권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행사하느냐의 문제는 민생 치안의 수준을 결정짓는 차원을 넘어 민주 정치질서의 척도가 된다. 정부는 5대 국정목표의 하나인 지방분권의 핵심 정책과제로 자치경찰제 도입을 꼽고, 2019년 5개 시·도에서 시범 운영한 뒤 2020년부터 전국에 걸쳐 전면 실시한다는 방침 아래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를 중심으로 한국형 자치경찰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워낙 관계기관의 이해가 얽혀 있는 데다 민생과 직결된 사안이어서 최적의 모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치경찰제 모델과 관련해 지난해 경찰청 경찰개혁위원회와 서울시, 그리고 앞서 1999년 경찰청이 내놓은 방안을 간략히 소개한다. ■ 자치분권위원회는 지방분권 정책 총괄 부총리급 컨트롤타워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지방분권과 관련한 추진 전략을 마련해 권고하고 관계부처의 자치분권 정책을 종합 조정하는 부총리급 컨트롤타워다. 지난 3월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따라 기존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 전환됐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등 당연직 3명을 비롯해 각계 전문가 27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 [길섶에서] 사교육/황성기 논설위원

    사교육과 거리가 멀어진 게 10년 가까이 됐는데, 이 세 글자가 최근 생활의 일부가 됐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개가 있는 집에 훈련사가 방문해 원인을 분석하고 개를 기르는 사람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TV 프로그램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 집 개가 TV에 나올 만큼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어서 고민 끝에 ‘개 유치원’의 문을 두드렸다. 7년 전 개를 키우면서 앉아, 서, 기다려 같은 기본 동작에서부터 산책 때의 행동 요령까지 꽤 열심히 가르쳤다. 그렇지만 택배 초인종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든가, 낯선 사람에게 짖는 행동을 바로잡기는 어려웠다. 20개월 전 딱 한 마리 태어난 새끼는 두 번째라 방심했던 건지 거의 손길이 가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이웃이나 산책하며 만나는 사람, 다른 개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개 예절 교육은 불가피하다고 느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니는 ‘유치원’은 재미있게 놀아 주며 잘하는 행동을 더 잘하게 하는 곳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착한 도시형 개가 되기를 바라며 복습도 하는 나날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씨줄날줄] ‘교권’ 보험/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교권’ 보험/황수정 논설위원

    신학기에 엄마들은 두 부류다. 담임을 면담할 때 빈손이 민망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학부모 총회가 있거나 상담 기간을 앞두면 학교에서는 떼문자가 날아온다. “교실에 소소한 찬조용품도 일절 들고 오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다. 김영란법에 음료 한 잔도 불법인 줄 알면서 맨손이 멋쩍은 학부모들은 아직 많다.신학기의 엄마 부류 중 나는 전자다. ‘박카스’ 한 병을 같이 못 나누면서 “맡겨 놓은 내 자식, 잘 보살펴 달라”고 입을 떼기가 영 염치없다. 교실에서 처음 대면하는 학부모에게 물 한 잔 내놓지 않는 담임선생도 편치 않다. 안 받고 안 주는 것은 깔끔한 계산법이기는 하다. 갈수록 의문은 쌓인다. 이런 살풍경 매뉴얼이 교실의 주인, 교사와 학생들에게 과연 긍정 신호를 보내 주는 것인지. 교사들이 교권침해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에 앞다퉈 가입한다. 학부모나 학생들의 폭언·폭행에 대비하는 고육지책이다. 시중의 한 보험사가 지난달 관련 상품을 출시했더니 가입자가 벌써 600명이 넘었다. 보장 내역은 단순하다. 교권보호위원회에서 교권 침해 행위를 인정받으면 최대 300만원을 지급받는다. 폭언에 시달린 초등교사에게 보험금이 지급된 선례가 이미 나왔다. 교사에게는 학생과 학부모의 존재가 불시에 들이닥치는 교통사고가 된 셈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발 빠른 교사들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비한 보험 상품에 진작 가입했다. 일명 ‘학폭(학교폭력) 보험’이다. 학폭 문제를 전담 처리하는 교사들에게 교원배상책임보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통한다. 교사들 사이에서 기피 직무 1호가 학폭 전담이다. 학폭 처리 결과에 불만인 피해자와 가해자 측에게 소송을 당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새로 부임한 교사에게 학폭을 맡기는 폭탄 돌리기는 학교들의 암묵적 관행이다. 학폭 심판관으로 등 떠밀린 교사들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이니 일부 시·도교육청은 학폭 전담 교사들의 배상 책임 부담을 덜어 주는 단체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어느 책에서 “교사들이 편의점 점원이 되고 있다”고 통박했다. 쓸쓸하고 또 쓸쓸해서 애써 무시했던 문장이다. 그 대목이 이 순간 왜 돋을새김 되는지 모르겠다. 학교가 교육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점포로 전속력으로 전락하는 중인지. 교사는 그 점포의 시간제 점원이 되고 있는 것인지. 김영란법, 학폭법 등 온갖 미명의 제도가 교단의 마지막 경의(敬意)마저 거둬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인사]

    ■서울신문 △심의실 심의위원 진경호 최광숙 안미현 박상숙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이두걸△전략사업기획부장 김철홍 △인사관리부장 이연경 △기획부장 송경섭 △재경부장 전선미△편집국 부국장 김성수 오일만 송한수 류기혁 이경숙 △소셜미디어플랫폼TF 팀장 박홍환 △정치부장 김상연 △사회부장 이창구 △정책뉴스부장 김경두 △국제부장 김미경 △경제부장 전경하 △산업부장 조현석 △문화부장 손원천 △체육부장 이지운 △탐사기획부장 유영규 △사진부장 이호정 △온라인뉴스부장 최여경 △나우뉴스부장 박종익 △선임기자 김명국 이기철 △독자서비스국 부국장 박종덕 △공보전략1부장 정경수 △광고전략부장 임철재 △사업국 부국장 안창섭 △디지털사업부장 한정일 △제작국 부국장 김헌국 △제작지원팀장 이동규 △편집제작부장 이덕승 △시설안전관리국 부국장 정성주 △부동산사업부장 김종현 △감사팀장 조원석 ■여성가족부◇ 과장급 승진△다문화가족과장 조선경
  • [길섶에서] 수목장/이순녀 논설위원

    화장한 골분을 나무 주위에 뿌리는 수목장(樹木葬)은 고인의 영혼이 나무에 깃들여 상생한다는 섭리에 근거한 자연친화적 장묘법이다. 나무의 성장을 보며 고인을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고, 환경 훼손이 적어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수목장을 처음 보급한 나라는 스위스다. 1993년 스위스 사업가가 영국인 친구의 부탁으로 화장한 재를 스위스의 숲에 묻으면서 시작됐고, 6년 뒤 ‘프리트발트’라는 공식 프로젝트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일부 사찰에서만 수목장이 운영되던 우리나라는 2004년 김장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장례식이 수목장으로 치러지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 수목장이 합법화된 건 2008년 5월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례가 어제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 인근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라는 뜻의 화담(和談)숲은 생전에 새와 숲을 사랑했던 고인이 직접 조성한 생태수목원이다. 소탈한 성품과 정도 경영으로 존경받았던 고인이 새와 나무, 별과 달을 벗삼아 자연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참모의 품격/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참모의 품격/박현갑 논설위원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궜다. 김 장관은 지난 20일 오후 4시 동대구역에서 서울행 KTX를 탔다. 한 남성 승객이 자리 문제로 여자 승무원에게 고함을 치는 등 소란을 피우던 것을 목도한다. 이 승객은 승무원의 친절에도 소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김 장관이 “나가서 얘기해라. 왜 승무원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고 윽박지르느냐”면서 이 승객을 나무란다. 이 승객은 “당신이 뭔데? 공무원이라도 돼”라며 반발했고, 김 장관은 “그래, 나 공무원이다”라고 응수했다. 소동은 문제의 승객이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끝났다.이 과정을 SNS에 올린 사람은 “그렇게 말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싸움 아저씨’가 계속 고함을 지르며 시끄럽게 했을 것이다. 공무원이 용감하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이 공무원은 김 장관이었다. 두 달 전 서울 용산역에서 양손에 짐을 든 채 광주행 KTX열차를 기다리던 김 장관을 봤다는 한 네티즌은 김 장관이 양손의 짐을 내려놓고 악수를 해줘 울컥했다고 미담 릴레이를 이었다. 김 장관의 행동은 공직자의 당연한 처신이지만, 미담으로 소개된다. 갑질의 한 축으로 공직자를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이 그만큼 강한 셈이다. 향응 접대, 인허가 비리 등등 문재인 정부가 청산하려는 생활 속 적폐에 일부 공무원의 책임이 있다. 장차관이나 청와대의 수석비서관과 보좌관 등은 대통령의 참모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을 뒷받침하고 실천해야 하는 공복들이다. 이들의 인품과 일 처리 능력이 대통령의 능력으로 평가된다. 특히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이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사실 파악과 후속 조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 혐의자인 드루킹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의 접촉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청와대 참모진의 일처리 방식은 아쉽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은 송 비서관이 드루킹을 네 차례 접촉했고, 모두 200만원을 받았다는 내용을 조사하고도 비서실 차원에서 내사 종결처리했단다. 대통령에겐 언론보도 이후에야 보고했다. 경찰 수사가 믿기 어려워 ‘드루킹 특검’을 하기로 한 마당에 어설프고 무책임한 정무적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장차관이나 청와대 참모진은 정무적 판단에서도 품격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하고 야당이 승복한다. 송 비서관은 특검의 수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특검에 나가 제기된 의혹에 대해 당당히 밝히기를 기대한다.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길 위의 두 ‘화’/김성곤 논설위원

    출근길 한남대교 북단 고가차로 시작점. 다리 중간부터 고가차로행 1차선에서 가다 서기를 7~8분쯤 한 것 같은데 막판에 3, 4차로에서 비상 깜빡이를 켠 차들이 마구 끼어든다. ‘욱’하고 ‘화’(火)가 치민다. “끝까지 양보를 안 하고 밀어붙일까. 그러면 접촉 사고인데…. 에이 참자.” 운전을 하다 보면 흔한 일이다. 모임에서 끼어들기 양보 기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버스는 사람이 많이 탔으니까”, “비상 깜빡이를 켰으니까…” 등등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운전자든 동승자든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였다. 그때는 대부분 양보를 한다는 것이었다. ‘로드 레이지’(road rage)는 보복이나 난폭 운전을 말한다. 원인도 여러 가지다. 본래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있고, 얌전한데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뜻밖에 자기는 잘 지키는데 안 지키는 상대방 때문에 욱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경우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망신은 기본이고, 처벌로 이어진다. 도로교통법 위반은 물론 때론 폭력행위로 처벌받기도 한다. 참자. 그리고 끼어들 땐 비상 깜빡이든 손이든 들자. 작은 예의가 도로 위의 ‘화’(禍)를 막는다. sunggone@seoul.co.kr
  • [씨줄날줄] 불사조 아베/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불사조 아베/황성기 논설위원

    ‘아베 1강(强)’, ‘자민당 1강’, ‘더블 1강’. 요즘 일본 정치를 읽는 키워드다.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이 각각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 조사 결과를 21일자에 보도했는데, 놀랍게도 지난번 각각의 조사보다 지지율이 올랐다. 요미우리는 39%에서 42%로, 아사히는 31%에서 36%가 된 것이다. 최근 몇 개월간 아베 총리 지지율 하락의 핵심에 있는 사학 스캔들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커지는데도 이런 신기한 현상이 이웃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이른 봄만 해도 아베가 총리를 사임한다면 언제인가, 어떤 형식을 취할 것인가가 일본 정가의 화두였다. 유력한 설은 6월 20일 정기국회를 마친 직후 자민당 총재 선거(9월)에 아베 총리가 3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다수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 일본에서 아베 총리가 총재 자리를 자민당 유력자에게 물려주는 대신 의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겠다는 확약을 받는 빅딜을 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있었다. 하지만 4월 말~5월 초의 대형 연휴를 고비로 급락하던 아베 비판 여론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주 서울을 찾은 일본의 야당 정치인은 필자에게 “자민당 내부에서 아베 총리를 끌어내릴 만한 유력한 도전자가 없고, 자민당 독주 체제를 견제할 야당 세력도 7개로 쪼개져 지리멸렬 상태여서 이대로 가다 간 자민당 총재 3선에 성공하고 정권을 지속해 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탄식했다. 그야말로 아베 1강에 자민당 1강이 겹친 더블 1강의 시대에 그 누구도 아베 아성에 도전하기 어려운 형세다. 대한민국 같으면 벌써 100만명 촛불집회가 열리고 어수선했을 대형 의혹인데도 지난 4월 3만명이 모인 게 ‘아베 타도’ 집회의 최대 인원이었다.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자민당 독주의 폐해가 1990년대 소선거구 제도 도입에 기원한다는 분석도 있다.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48%밖에 득표를 하지 않았는데도 의석 점유율은 74%에 이르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게 자민당의 제1당 독주, 아베의 5년 5개월에 걸친 장기 집권, 정치의 관료 지배를 뜻하는 ‘총리 관저 주도’, 정치 실력자의 눈치를 살피는 ‘손타쿠(忖度) 정치’를 낳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과거 정치의 미덕이기도 했던 자민당 내부는 물론 여야의 ‘합의형 정치’에서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다수결 정치’가 폐해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안 세력 부재 속에 아베 총리의 회생도 점쳐진다. 좋든 싫든 그의 자민당 총재 3선 성공과 2021년까지의 집권을 내다보는 대일 외교가 필요해졌다. marry04@seoul.co.kr
  • [바른 말글] 분명히 하다/손성진 논설고문

    “비핵화(CVID)라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북한 주도권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느 일간지 기사의 일부분이다. ‘분명히 하다’라는 말을 기사에서 흔히 쓴다. ‘분명히하다’로 붙여 쓰기도 한다. 영어로 하면 ‘make (목적어) clear’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어에도 이런 표현이 있는데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우리말에 비슷한 어투가 있다. “확실히 해!” “똑바로 해!”와 같은 문구다. 어떤 일이나 행동을 확실히, 똑바로 하라는 것으로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분명히 하다’는 좀 다른 것 같다. 어떤 일을 분명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생각을 다른 이들한테 명백하게 밝힌다는 뜻으로 들린다. 따라서 ‘분명히 밝히다’로 표현하는 게 낫다. sonsj@seoul.co.kr
  • [씨줄날줄] ‘대가람의 뒷간’/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가람의 뒷간’/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양주시 회암사는 원나라를 거쳐 들어온 인도 선승 지공(指空) 화상이 1328년(고려 충숙왕 15) 인도의 아라난타사(阿羅難陀寺)를 본떠서 창건했다는 262칸의 대형 사찰이다. 조선시대에도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준 뒤 이 절에서 수도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한때는 승려가 3000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한다.회암사터는 1997년부터 단계적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전성기 때 모습이 드러났다. 지금 천보산 아래 회암사터를 찾으면 전각은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남아 있는 석축의 기하학적 아름다움만으로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광활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절터는 깨끗하게 정비됐고, 그 아래 절의 역사를 보여 주는 회암사지박물관이 세워졌다. 최근에는 절터와 박물관을 아우르는 거대한 유적공원이 완성됐다. 회암사터는 새로 조성되고 있는 양주옥정신도시의 끝자락이다. 양주시민들은 역사와 문화, 휴식이 함께하는 멋진 유적공원을 가진 데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지금 회암사터박물관에서는 ‘대가람의 뒷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회암사터박물관이 공동기획한 전시회다. 수천 명이 생활하는 공간이었다면 배설물 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회암사 조사단은 2005년 절터 동쪽에서 남북 12.8m, 동서 2.2m, 깊이 3.6m의 대형 석실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용도를 알 수 없었지만, 서울대 의대 연구팀이 바닥 토양의 성분을 분석하면서 주로 배설물에서 발견되는 각종 기생충의 알을 확인했다. 뒷간이라는 증거였다. 주변에서는 정료대(庭燎臺)도 나왔다. 밤에도 불편하지 않도록 불을 밝힌 것이다. 전시회는 회암사 뒷간의 발굴 과정을 소개하고, 조사 연구를 거쳐 재현한 뒷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더불어 회암사터에서 발굴된 청동발과 백자장군을 비롯한 식생활 및 뒷간 유물, 소매통과 동이, 똥바가지 등 전통시대 뒷간 문화를 보여 주는 유물 등 128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찰의 뒷간 문화가 속세의 그것과 다른 것은 물리적인 배설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뒷간에서 지켜야 할 마음가짐을 담은 전시실의 입측오주(入厠五呪)가 눈길을 끄는 이유일 것이다. 뒷간에 드나들 때 외우는 진언(眞言)이라고 한다. 뒷간에 들어가면서 입측(入厠), 뒷물을 하면서 세정(洗淨), 손을 씻으면서 세수(洗手), 더러움을 씻어 버리며 거예(去穢), 몸을 깨끗이 하는 정신(淨身) 진언이 그것이다. 문경 김룡사 것이라지만, 다른 사찰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 [그때의 사회면] 공중전화 수난

    [그때의 사회면] 공중전화 수난

    지금은 이용자가 거의 없는 공중전화는 1889년 미국 발명가 윌리엄 그레이가 고안한 동전으로 작동하는 공중전화가 최초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전화국 안에 공중전화가 있었다고는 하나 동전을 넣는 사실상 최초의 공중전화는 1962년에 생겼다. 종전의 공중전화와 다른 점은 공중전화 부스가 있고 감시원이 없는 무인전화라는 것이었다. 빨간 네모 상자 모양의 본체 앞에 동그란 다이얼식 번호판이 붙어 있는 ‘벽괘형 공중전화’다. 그해 9월 20일 서울시청 앞, 서울역 앞, 서울 중앙우체국 앞과 남대문 로터리 등 서울시내 10곳에 처음 설치됐다.무인 공중전화는 처음부터 수난을 당했다. 보름 만에 절반인 다섯 대를 도둑이 통째로 훔쳐 간 것이다. 그나마 50환 동전만 쓸 수 있어 이용자가 적었던 바람에 잃어버린 돈은 많지 않았다. 송수화기를 절단해 가져가거나 전화번호부를 훔치는 도둑들도 있어 경찰이 골머리를 앓았다. 통째로 훔치지 않고 동전만 빼가는 절도범들도 잇따라 붙잡혔다. 못으로 자물쇠를 열어 공중전화 안에 있던 255원을 턴 20대도 있었고 시내 전역을 돌며 공중전화 동전을 훔친 이도 있었다. 그보다 큰 문제는 ‘돈 먹는 공중전화’였다. 전화기 품질이 떨어져 거의 모든 공중전화가 고장이 잦았다. 다급한 사람은 혹시나 해서 서너번 동전을 넣었다가 15~20원을 손해 봤다며 신문에 독자투고로 고발하기도 했다. 급한 일로 공중전화를 걸었다가 전화가 돈만 삼키고 걸리지 않자 법원에 5원 반환소송을 낸 시민도 있었다(경향신문 1969년 7월 11일자). 법원은 당연히 승소판결을 내려주었다. 소송은 더 있었는데 증거불충분으로 패소한 시민도 있었다. 1964년 4월 서울 공중전화는 99대였는데 고장건수는 한 달에 260건이었다. 전화 한 대가 한 달에 세 번 고장난 셈이다. 고장이 잦았던 이유 중 하나는 정해진 동전이 아닌 쇠붙이 따위를 넣고 전화를 걸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규격에 맞지 않는 조선시대 엽전이나 일본 동전 구화도 심심찮게 발견됐다(경향신문 1964년 5월 21일자). ‘이동공중전화차’라는 게 있었다. 공중전화 다섯 대를 설치한 차량을 시내 번화가를 돌면서 시민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매일경제 1969년 6월 16일자). 공중전화는 처음에 시간 제한이 없었다. 통화 시간이 늘어나 불편을 주자 3분으로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이었다. 시외 자동 공중전화기는 1977년에 처음 설치됐는데 일본 제조 회사의 이름을 따 ‘다무라 전화기’로도 불렸다. 최초의 공중전화 요금 5원은 당시의 물가 수준에 비해서는 싸지 않았다. 그래서 10여년간 올리지 않았다. 현재의 공중전화 요금은? 3분에 70원이다. 사진은 1962년 서울에 설치된 최초의 공중전화 부스 모습.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눈먼 봄/황수정 논설위원

    ‘딸기 체험’ 간판이 걸린 비닐하우스 길목이 북적댄다. 저런 시시한 일이 있는가 싶다. 돈으로 사는 체험이 별 게 아니다. 수경재배로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려 익은 딸기를 겨우 따 보는 거다. 오뉴월 땡볕에 정수리를 지져 본 적 없는 딸기는 딸기가 아니다. 농담보다 싱거운 맛이다. 뒤란의 딸기, 담벼락의 앵두로 어릴 적 이즈막은 날마다 애틋했다. 봄볕 아래 애태우는 일이 세상의 일이었다. 햇볕에 잘 구슬리면 내일은 익고야 말겠지, 밥숟갈 놓으면 뒤란으로 담벼락으로. 숨은 열매들을 볕바라기로 꺼내 놓고 또 꺼내 놓고. 구름이 길게 덮치면 발을 동동 굴렀던 것도 같다. 그때 궁금했던 태양의 이력이 아직도 궁금하다. 햇볕이 하는 일은 만분의 일도 짐작 못 하지만, 푸른 딸기가 붉어 가던 감격은 자다가도 그립다. 해 지는 정류장에 학원 버스가 아이들을 풀어놓는다. 심심한 얼굴들에 봄날 저녁이 무너진다. 등 뒤의 노을보다 제 이마가 더 붉은 줄 아무도 모르고 있다. 고드름을 먹어 본 적 없는 적도처럼, 미풍에 졸아 본 적 없는 히말라야처럼. 어쩌면 좋은가, 저 눈먼 봄. sjh@seoul.co.kr
  • [씨줄날줄] 드루킹과 플리바게닝/김성곤 논설위원

    [씨줄날줄] 드루킹과 플리바게닝/김성곤 논설위원

    2003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여성 48명을 살해(그린 리버 사건)한 리언 리지웨어는 사형을 면제받는 조건으로 범행 일체를 인정한다. 이른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도)이다.무자비한 살인으로 악명이 높은 미국 마피아의 전설 알 카포네의 구속 사유는 살인이 아니라 탈세였다. 그를 잡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연방정부가 회계장부 작성 책임자 레슬리 섬웨이에게 암호가 걸린 장부를 풀어 주면 선처하겠다는 조건으로 협조를 받아 알 카포네를 기소한다. 1931년 알 카포네는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앨커트래즈 교도소에 수감된다. 국내에서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검찰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플리바게닝 논의를 촉발하기도 했다. 포털 댓글 조작사건 주범인 ‘드루킹’ 김모씨가 검찰과 거래를 시도했다는 보도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씨가 지난 14일 수사 검사와의 면담을 자청해 “댓글 조작에 김경수(현 더불어민주당 경남도지사 후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깊숙이 관련돼 있다는 걸 모두 진술하겠다”면서 “자신과 경공모 회원에 대한 경찰 수사를 여기서 끝내 달라. 그리고 자신에 대한 수사를 김 전 의원에 대한 수사로 전환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보도대로라면 플리바게닝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검찰과의 거래 시도 직후인 17일 옥중에서 변호인을 통해 한 언론사에 편지를 보냈다. 2016년 10월 파주의 자기 사무실을 찾아온 김 전 의원에게 매크로(댓글 조작 프로그램)를 직접 보여 줬다고 주장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플리바게닝이 도입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사법협조자 형벌 감면제도’도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이들 방식이 적용돼 온 것이 사실이다. 검·경의 수사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의 죄를 털어놓고 자신만 빠져나온 경우도 없지 않다. 수사기관에서도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플리바게닝이 거악 척결에 보탬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문제도 없지 않다. 자신을 변호하느라 다른 사람의 범죄를 과장하기도 하고, 때론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피해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수사기관과 범인이 거래를 하는 것도 찜찜하다. 드루킹 김씨가 특검을 눈앞에 두고 자꾸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검찰과 거래를 하려는 것을 보면, 뭔가 계산이 있는 듯해 보인다. 그 계산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만간 구성될 특검에서 주장할 것 주장하고, 밝힐 것 밝히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싶다. sunggone@seoul.co.kr
  • [서울광장] 100년 마라톤 뛰는 중국/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100년 마라톤 뛰는 중국/최광숙 논설위원

    두 달 전 상가에서 만난 한 전직 고위공직자가 “앞으로 우리 자식 세대들은 중국인들 발마사지나 하면서 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국이 막강한 자본과 풍부한 인재풀을 기반으로 우리의 첨단기술을 맹추격하면서 핵심 산업에서 양국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지만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는 얘기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데도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이제 중국의 위협은 현실로 다가온다. 지난달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반도체 제조업에 뛰어든다고 선언한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중국 정부가 2014년 1차 반도체 투자 펀드(약 24조원)를 조성한 데 이어 최근 약 51조원 규모의 펀드를 추가 조성하기로 한 것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4차 산업혁명의 요체인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중국에 밀릴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선제투자를 많이 한 데다 최근 10년 AI 논문 수만 봐도 중국이 선두를 달린다. 앞으로 3년간 10만명의 AI 인재 육성책까지 나왔다. 5년 뒤 최강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입지가 탄탄하다. 향후 수십년 동안 벌어질지도 모를 에너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천연자원 확보에도 사활을 걸 만큼 미래 지향적 행보를 하고 있다. 그러니 1972년 닉슨·마오쩌둥 회담 이후 중국이 개방 경제의 길을 가도록 경제·군사적 지원 등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마저도 이제는 중국을 견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미국이 중국의 통신 제조업체 ZTE에 대해 앞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의 거래 금지령을 내린 것도 이란·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이나 실상은 중국의 5세대 통신(5G) 경쟁력을 의식한 미국의 견제구다. 아예 중국이 더이상 치고 오지 못하도록 싹을 자르겠다는 심사다. 1975년 1인당 평균 소득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 속했던 중국이 어떻게 미국과 맞짱을 뜰 정도로 급부상했을까. 마이클 필스버리는 저서 ‘백년의 마라톤’에서 “중국의 경제 기적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진핑 등 그의 후계자들이 아편전쟁에서 패했던 치욕을 잊지 않고 서구 열강을 꺾어 다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백년 마라톤 대장정’에 기인한다”고 했다. 필스버리는 닉슨부터 오바마 대통령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의 대중국 외교 전략을 자문했던 중국 전문가다. 그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한 1949년부터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무너뜨려 세계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원대한 계획 아래 치밀한 행보를 해 왔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경제 기적을 이루긴 했어도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채 이제 중국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수출 효자인 반도체도 수입국인 중국이 자국산 반도체 양산 체제에 들어가면 당장 우리 반도체 산업은 물론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것이다. 반도체 이후 미래의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지만 아직도 ‘포스트 반도체’가 안 보인다. 중국처럼 원대한 꿈과 비전을 갖고 멀리 내다보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근시안적 땜질식 처방만 난무한다. AI 기술의 선점을 위해 미국·중국 등이 한창 열을 올릴 때 뒷짐 지고 있다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을 보고서야 뒤늦게 AI 대책들을 쏟아내는 식이다. 최근 정부가 AI 연구개발(R&D)에 5년간 2조여원을 투입한다고 밝혔지만 지난 정부가 내놓은 재탕을 넘어서지 못한다. 선도자의 자세는 보이지 않고 빠른 추격자의 모습만 있다. 정권과 관계없이 긴 호흡으로 국가 발전을 위한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어 흔들리지 않고 매진해도 경쟁국을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정권 5년마다 제각각 새 역점 사업들을 내놓으면 관료들은 새 사업에 앞장서고, 정부 출연연구기관 역시 일사불란하게 발맞춘다. 다른 나라보다 한 박자 늦은 정책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 국가 연구개발도 정권 따라 춤을 춘다. 이제 우리도 중국처럼 100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10, 20년 앞이라도 내다보고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bori@seoul.co.kr
  • [인사]

    ■서울신문 △심의실 심의위원 최홍재△논설위원 박현갑 이종락 ■행정안전부 ◇국장급 전보 △국제행정협력관 임정택◇과장급 전보△자치행정과장 박연병△민간협력과장 장금용△공무원단체과장 이성규△지방규제혁신과장 천준호△지방자치인재개발원 기획협력과장 채경아△지방자치인재개발원 전문역량교육과장 정병욱△국가기록원 기록관리교육센터장 박성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급 전보△규제개혁법무담당관 마재욱△평가심사과장 홍사찬 ■특허청 ◇고위공무원 승진△특허심판원 심판장 손용욱
  • [서울신문 인사]

    비상임 고문 권영길 비상임 논설고문 곽병찬 논설고문 손성진 논설위원실 대기자 김균미 심의실장 박건승 논설실장 문소영 경영기획실장 이상훈 광고국장 최용규 사업국장 송종길 제작국장 김건주 시설안전관리국장 양승현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궁예가 불 지르고 왕건이 중건한 영월 흥녕사 터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궁예가 불 지르고 왕건이 중건한 영월 흥녕사 터

    법흥사(法興寺)가 있는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武陵桃源)면은 2016년 수주(水周)면이 이름을 바꾼 것이다. 무릉도원이 중국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상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릉도원면으로 이름을 바꾸자 “이러다 유토피아면도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무릉도원면에는 예부터 무릉리와 도원리가 있었다. 나름대로 역사성과 동떨어진 작명(作名)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도화원기’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다 복숭아꽃 만발한 살기 좋은 산속 마을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금은보화와 산해진미가 널린 호화로운 천국이 아니라 달콤한 향기가 감돌고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박한 꿈속의 마을이다. 무릉도원면이 그런 동네다.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서 법흥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름다운 계곡에는 펜션이며 캠프장이 수없이 들어섰다.법흥사는 영월과 평창, 횡성에 걸쳐 있는 해발 1167m의 사자산 아래 자리잡고 있다. 절을 창건할 때 도승(道僧)이 사자를 타고 왔다고 하여 사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자는 부처를 상징한다. 깨달음을 이룬 이가 앉는 자리가 사자좌(獅子座)이고, 그가 말하는 진리의 가르침이 사자후(獅子吼)다. 법흥사는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한 곳으로 꼽히는 성지다. 신라승려 자장(590~658)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전수받아 643년 돌아왔다.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에 이어 마지막으로 사자산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당시 사자산에 창건한 절 이름은 흥녕사(興寧寺)였다.진신사리란 부처의 유골이니 적멸보궁은 곧 부처의 무덤이다. 한국 불교에만 있다는 적멸보궁은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과 그 무덤을 바라보며 배례하는 전각을 가리킨다. 부처의 유골이 묻혔다면 그 산 전체가 적멸보궁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대산, 태백산, 영축산, 설악산이 모두 부처의 무덤이고, 사자산이 또한 그렇다. 흥녕사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禪宗)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던 신라 말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철감 도윤(797~868)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개창한 곳은 화순 쌍봉사지만, 그의 제자 징효 절중(826~900)이 흥녕사에 머물며 선맥을 이어 감에 따라 문파의 중심지로 부각된 것이다. 흥녕사는 역사에 기록된 대로 891년(신라 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된 것을 944년(고려 혜종 1) 중건했다.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小刹)로 명맥만 이어 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은 1912년 다시 소실됐고, 1933년에는 적멸보궁을 지금의 터로 이전 중수했다고 법흥사 측는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작고한 미술사학자 호불 정영호 선생의 1969년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이 ‘신라 사자산 흥녕사지 연구’다. 그는 1955년 절터를 처음 답사한 뒤 1967년과 1968년 신라오악종합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현장을 다시 조사했다. 1934년생이니 일선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35세가 되어서야 석사학위 논문을 쓴 것이다. 선생은 논문에 ‘현재 절터 일대는 경작지로 변해 지상의 유구마저 파괴되고 광활한 사역에는 주초석 몇 점만 잔존하여 청자 및 기와 조각을 수집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유물은 모두 석조물로 고려 초기에 건립된 징효대사보인탑비를 비롯해 석조부도 2기와 석실, 석관, 석조불대좌 등이 오래된 것으로 잔존한다’고 덧붙였다. 법흥사를 두고는 ‘금세기에 들어와 흥녕사 옛터에 조영된 사찰로 선문과는 직접 관련은 없다’고 적었다.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법흥사를 돌아봤다. 법흥계곡을 따라 난 길이 끝날 때쯤 나타나는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새로 지은 일주문이 보인다. 사실 ‘새로 지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뿐 모든 전각을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일주문에서 조금 더 차를 달리면 놀이공원을 방불케 할 만큼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법흥사와 적멸보궁을 찾는다는 뜻이다. 차에서 내리면 절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적송숲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이 정도의 노거수(老巨樹)가, 그것도 토종 적송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절 초입에 보이는 2층 전각은 원음루다. 부처의 가르침을 소리로 전하는 법고, 운판, 목어가 있다. 이 세 가지와 더불어 사물(四物)을 이루는 범종은 극락전 앞에 있다. 원음루에 다가가니 1층에 ‘금강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성역(聖域)이다. 정면으로 곧바로 난 산길로 10분 남짓 오르면 적멸보궁이다. 전각 안에는 다라니경을 외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밖에도 두 손을 모으고 수없이 전각을 도는 기도객들이 보인다. 전각 너머에 정영호 선생이 언급한 석분이 있다. 입구가 직사각형인 석분은 기도를 위한 돌방으로 안쪽으로는 사리를 모셨던 돌널이 있다고 한다. 다시 산을 내려오면 원음전 서쪽은 극락전 권역, 동쪽은 요사채 권역이다. 요사채 권역에 숙소로 쓰는 듯한 큼지막한 전각에 붙은 ‘흥녕원’(興寧院)이라는 편액이 눈길을 끈다. 구산선문 시절의 흥녕선원 터에서 법등(法燈)을 이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서쪽의 극락전 앞마당은 뭔가 채워지지 않은 듯 황량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극락전 오른쪽에 보이는 커다란 비석이 흥녕사터 징효대사탑비다. 비문에는 징효 절중이 출생해서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이 실려 있다. 비석은 대사가 입적하고 44년이 지난 944년(고려 혜종 원년)에 세워졌다. 왼쪽 산비탈에는 그의 부도가 있다. 비문에 새겨진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절중과 후삼국의 관계다.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알려진 궁예는 오늘날 영월 남면의 세달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양길도 멀지 않은 원주에서 세력을 키웠다. 흥녕사가 소실된 891년의 병화는 ‘북원의 적수 양길이 그 부장 궁예를 보내 백기(百騎)를 거느리고 북원 동쪽의 부락과 명주 관할인 주천 등 십여 군현을 침습하게 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학계는 본다. 궁예가 군사를 몰아 험준한 영월 지역으로 들어간 목적은 사자산문의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한편 징효대사탑비의 건립과 흥녕사의 중건은 고려 왕실이 주도했다. 탑비에 적힌 시주자 가운데 왕요군(王堯君)과 왕소군(王昭君)은 훗날 정종과 광종이 되는 태조 왕건의 아들들이다. 또 태조의 제15비 광주원부인과 제16비 소광주원부인, 혜종비 후광주원부인의 아버지인 광주(廣州)의 왕규를 비롯해 왕건의 장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결국 절중과 사자산문이 궁예와는 적대적이었던 반면 왕건과는 우호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천가방과 버킨백/최광숙 논설위원

    영화 ‘레옹’에서 소녀 마틸다 역을 맡았던 미국 여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채식주의자로 유명하다. 육식을 하지 않을뿐더러 가죽 구두도 신지 않는다. 요즘 포트먼과 같이 친환경을 실천하는 ‘개념 스타’들이 적지 않다. 우리 여성들 사이에도 ‘에코백’이 유행이다. 하찮을 수도 있는 천가방을 너도나도 들고 다닌다. 어떤 여배우는 SNS에 천가방을 든 자신의 모습을 올려놓으며 개념 스타 대열에 합류하기도 한다. 값비싼 명품 가방을 들고 자신의 부와 명성을 과시하던 때와 비교하면 세상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대규모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권좌에서 밀려난 나집 라작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몰락에 부인 로스마 만소르의 부패도 한몫했다. ‘사치퀸’으로 불린 그는 한 개에 5400만원짜리 에르메스 버킨백을 색깔별로 수집했다고 한다. 자신의 돈으로 사도 눈총받을 텐데 나랏돈을 빼돌려 보석류와 그 백들을 사들인 것이다. 에코백으로도 충분한 이들에게 버킨백은 무거운 가죽 가방에 불과하건만 인간의 욕망은 끝도 한도 없나 보다. 그는 이제 버킨백도 없이 법의 심판대에 오를 일만 남았다.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칠궁(七宮)/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칠궁(七宮)/서동철 논설위원

    신분이 낮은 어머니 숙빈 최씨 때문에 영조의 고민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수없이 나온 대로 최씨는 무수리였다. 궁중에서 청소나 물 긷는 일을 하는 무수리를 한자로는 수사이(水賜伊)라고 쓴다. 무수리는 몽골말이라고 한다. 고려 말 원나라 공주가 왕실에 들어오면서 풍습과 언어가 따라왔고, 조선에도 이어졌다.최씨는 열 살 안팎에 궁궐에 들어가 숙종비 인현왕후를 섬기다 임금 눈에 들어 1693년 왕자를 갖는다. 태어난 왕자는 두 달 만에 죽었지만, 이듬해 또 다른 왕자 연잉군을 낳는다. 곧 영조다. 최씨는 1718년(숙종 44) 세상을 떠났다. 무덤은 지금의 경기 파주시 광탄면 영장동에 썼다. 영조가 어머니 사당으로 점찍은 장소는 즉위하기 전 머물던 창의궁이었다. 경복궁 영추문 서쪽인 지금의 종로구 통의동에 있었다. 하지만 왕이 거처하던 곳에 사친(私親)의 사당을 둘 수 없다고 신하들이 반대하자 영조는 청릉군의 168칸 집을 사들여 사당을 조성토록 한다. 오늘날의 청와대 서쪽 칠궁(七宮) 자리다. 영조는 즉위 직후부터 숙빈 최씨를 기리는 데 적극적이었지만, 자기 손으로 지위를 높이는 것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즉위 30년이 다 되어서야 사당을 숙빈묘(廟)에서 육상궁, 무덤을 소령묘(墓)에서 소령원으로 격상시킬 수 있었다. 이후 육상궁은 1908년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이 더해져 육궁(六宮)이라 부르다 1929년 덕안궁이 옮겨지면서 칠궁이 됐다. 저경궁은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 대빈궁은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 연호궁은 영조의 맏아들로 세자 시절 세상을 떠난 추존왕 진종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사당이다. 선희궁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경우궁에는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덕안궁에는 영친왕의 생모 순헌귀비 엄씨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왕비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왕을 낳은 후궁의 사당을 한자리에 모았음을 알 수 있다. 숙빈 최씨가 아니라도 칠궁을 이루는 사당의 주인공들은 한 분 한 분이 조선 역사의 중요한 대목을 장식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칠궁을 한 번 둘러보려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청와대 특별 관람객만 제한적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이 칠궁의 문을 크게 넓히기로 했다고 한다. 시범 개방 기간인 6월부터 경복궁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하루 다섯 차례 시간대 중에서 골라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역사 자원이자 관광 자원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청와대를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도 작지 않다. dcsuh@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CVIG 보장돼야 CVID 실현… 북미 정상회담 성공 확률 높다”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CVIG 보장돼야 CVID 실현… 북미 정상회담 성공 확률 높다”

    황성기 위원이 만났습니다 - 비핵화, 일본공산당 오가타 부위원장이 묻고 최완규 전 북한대학원대학 총장이 답하다 6월 12일 북한과 미국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고위급 회담의 돌연 연기라는 상황이 발생했다. ‘예측 불허’란 말이 항상 따라붙었던 한반도 정세에 짙은 구름이 끼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는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비핵화 항로에 차질은 없을 것으로 본다. 요동치는 한반도 앞날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기 위해 일본공산당의 오가타 야스오 부위원장이 방한했다. 서울신문은 최완규 전 북한대학원대학총장과 오가타 부위원장의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다음은 오가타 부위원장이 묻고 최 전 총장이 답하는 내용이다. 1922년 창당한 일본공산당은 중의원 12석으로 원내 6위, 참의원 14석으로 5위인 노포(老鋪) 진보정당이다.오가타 야스오 =16일의 남북 회담 연기,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성명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최완규 = 우여곡절, 설왕설래는 있겠지만, 북·미 정상회담에는 지장 없을 거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간이 점령군 사령관처럼 얘기하고 생화학무기, 인권까지 거론하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만났을 때 양보할 것 없이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협상에는 상대가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22일 미국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 역할이 다시 주목된다. 오가타 = 북·미를 설득하고 중개하는 문 대통령 노력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그야말로 운전자론이 빛을 발했는데, 현 정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최 =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에 대통령 역할이 매우 컸지만 문 대통령이 운전자석에 앉았다는 건 지나친 표현이다. 한반도 지정학적 상황과 주변 강대국 생각이나 여러가지 이해관계를 볼 때 운전석에 주도적으로 앉는 것은 쉽지 않다. 한반도 평화를 이루겠다는 대통령의 절실한 생각이 크게 작용한 건 사실이다. 특히 일촉즉발 상황이었던 지난해 12월 19일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연기 혹은 축소하겠다는 대통령 발언에 북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올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등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가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1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한반도 변화에 큰 인상을 받았다. 최 =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흐름은 어느 누구의 독자적인 생각과 능력이라기보다 남북, 미국,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이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가능했다. 김 위원장도 핵무기로 북한의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서 체제나 정권의 생존과 안정, 나아가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것을 남측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남북 정상이 만났을 때 큰 이견이 없었다. 오가타= 우리 당은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 체제 구축은 통합적, 포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실행 방법은 단계적인 게 현실적이라고 보는데. 최 = 북핵 문제에 대한 그간의 잘못된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즉 CVID에 집착했다. 하지만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생존보장’, 즉 보장(guarantee)이 들어간 CVIG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북한이 왜 핵을 개발했는가 자문했을 때 생존을 위해 개발했다고 생각한다면 CVIG가 보장이 돼야 미국이나 한국, 일본이 바라는 CVID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CVIG는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CVID만 강조해 왔다. 북한 핵을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이 부분을 솔직하게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야 하고 CVIG도 이행을 해야 한다. 동시에 CVID와 CVIG를 하던가, 아니면 강자(미국)가 먼저 선제적인 양보를 통해 북한에 확실하게 인지시켜 줄 때 진정한 CVID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나라와 체제를 보장하는 것이 남의 나라가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했을 때 이 정도 되면 체제와 정권이 안전하겠다고 북한이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해야 가능한 것이다. 즉 남의 나라가 ‘네 목숨 보장해준다’고 약속한들 그걸 믿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북한 자신의 판단이 굉장히 중요하다. 오가타 = 북·미 정상회담 전망은. 최 = 성공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에 임했다. 그 결과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여기서 과거처럼 회담 결과를 쉽게 뒤집는 행태를 보이면 그로 인한 위기는 되돌이킬 수 없다. 북한 체제의 안위에 직결되고 자살 행위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 기대를 완전히 접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북한 비핵화는 확실하다. 포괄적으로 일시에 해결하려는 의지는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협상에서 실패하면 정치생명이 위험해진다. 성공이 트럼프의 정치적 부활, 이해관계와 직결돼 있다. 북·미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 큰 틀에서 비핵화 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6·12 정상회담에서는 확인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평창올림픽 때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국정원장, 통일부장관, 청와대 비서실장을 열시간 넘게 만났다. 그 때 남북이 의견을 많이 나누었고 우리 특사단이 평양에서 김 위원장 만났을 때 별 이견없이 정상회담에 합의할 수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도 이런 수순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오가타 =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에 문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갈 가능성은 있는가. 최 =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 김 위원장과 함께 종전을 선언하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러면 트럼프가 더 주목을 받을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문 대통령, 시 주석이 동석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가타 = CVID 후 CVIG가 가능하다는 게 미국 생각이다. 미국과 리비아의 2006년 수교까지 2년 반 걸렸다. 리비아 방식이라 해도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해야 하는 것 같다. 최 = 북·미 간에는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강자인 미국이 약자인 북한에게 “먼저 핵이라는 옷을 완전히 벗어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 종래의 일관된 북·미 핵협상의 방침이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핵을 미국에 보내라고 강경한 발언을 했는데 협상의 공정성 측면에서 보면 동시에 하는 게 맞다. 오히려 미국이 선제적으로 양보한다면 북한이 훨씬 더 큰 수준에서 양보하는 선물을 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북한에 아량을 보여 주면 북한도 더 큰 틀에서 미국에게 보답할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미국도 해 볼 필요가 있다. 오가타 = 왜 이 시점에서 북한이 전략적으로 나오는 것인가. 최 = 북한은 그동안 핵과 미사일로 체제를 보장한다고 했지만 더 이상 경험적으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방법으로 체제보장과 경제발전을 이루기로 작정하고 나온 것이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만약 협상이 결렬됐을 때 미국은 기분 나쁜 정도에 그치지만, 북한은 생존에 관련돼 있다. 절박한 쪽은 북한이다. 오가타 = 김 위원장 언행을 보면 나를 보통 지도자로 봐 달라, 북한을 보통 국가로 봐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국제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과제라면. 최 =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해 핵문제를 해결하고,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규칙, 절차, 과정의 이행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하면 북한 인력의 우수성, 풍부한 자원이란 점에서 투자할 만한 국가이기에 단시간에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 사상, 이념, 핵무기 대신 경제적 성과로 인민들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안정적 체제와 정권을 보장을 이뤄내는 인식의 전환 가능성이 높다. 오가타 = 중국, 베트남에서도 ‘화평연변’(和平演変·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에 강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는데, 북한은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최 =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혁명의 역설’이란 명제에서 독재자가 마음을 바꿔서 억압하고 궁핍하게 만든 지역을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고 자유를 주면 그 지역부터 반동이 시작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독재자에 정치적 스킬이 없으면 본인이 망하기 때문에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국이든 베트남이든 독제 체제의 전환은 상당히 위험하다. 북한도 지금 같은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하기 힘든 것은 알고 있다. 개방 이후 북한의 미래는 북한 사람들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 있다. 북한도 결국 국제적조건이 갖춰지고 대외적으로 정상국가 반열에 올라가면 단계적인 체제전환의 경로에 진입할 것이다. 오가타 = 판문점 선언을 보면 ‘민족의 자주’가 언급돼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는데 중국의 역할과 관여는 어떻게 보는가. 최 = 한반도 문제로 남북이 만나면 키워드는 본질적으로 자주와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 7·4 남북 공동성명 1항도 그렇고 6·15 선언 1항에도 ‘자주’가 들어있다. 남북관계 본질적 특성상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만 지정학을 감안하면 중국이나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인 조명록 차수가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다음 날 뉴욕타임즈에는 ‘한국이 통일되면 아시아는 분단되나’라는 칼럼이 실렸다. 통일된 한반도는 두만강이 아닌 대한해협을 기준으로 분단된다는 뜻인데 미국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미국의 관심사는 군사적 지위와 영향력이다. 따라서 이 두나라를 무시하거나 배제한 상태에서 한반도 통일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 세력들의 영향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가는 남북, 통일 한국의 국민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 오가타 = 일본공산당은 동북아시아에서의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해 평화 협력을 이룬다는 구상과 함께 미·중·러가 ‘소극적 안전보장’을 남북, 일본, 몽골에 대해 서약하는 동북아 비핵지대 구상도 갖고 있는데 가능하다고 보는가. 최 = 목표 자체는 타당하고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통해 평화보장을 이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북 문제가 해결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일본, 중국 관계도 공동체라기보다 경쟁하는 관계이다. 특히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한 강력한 제국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과연 중국이 일본에 양보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 협력안보체제를 하자고 할지는 미묘하다. 방향은 옳지만 현실조건과 환경으로 보았을 때 매우 어렵다. 미·중 간에도 동반자보다 경쟁의 국면으로 들어섰다. 중국이 더 커지기 전에 미국이 견제하는 예방전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최완규 교수는 신한대 석좌교수. 북한대학원대 4대 총장(2012~2015년)을 지낸 북한학의 원로. 4·27 남북 정상회담 원로자문단에 포함됐으며, 회담 직전 ‘비핵화·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발전 토론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경실련 통일협회 대표이기도 하다. 2004년부터 2년간 북한연구학회장을 역임했다. ●오가타 야스오는 일본공산당의 부대표 격인 부위원장. 세계 100개국 이상을 다닌 국제통으로 당 국제위원회 책임자. 19살 때인 1966년 일본공산당에 입당해 기관지인 ‘아카하타’의 파리 지국장을 거쳐 당 국제국장을 역임했다. 참의원 의원에 두 번 당선됐으며 2006년 당 부위원장 직에 올랐다. ‘일본공산당의 야당 외교’ 등 다수의 저서를 갖고 있으며, 서울을 10회 이상 방문했다. marry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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