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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효상 “청와대에 굴복한 조선일보, 한겨레 보는 줄”

    강효상 “청와대에 굴복한 조선일보, 한겨레 보는 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 공개편지‘북 비핵화 두둔’ 칼럼 쓴 양상훈 주필 파면 요구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31일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일단 믿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칼럼을 쓴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올리고 이렇게 주장했다. 강 의원은 “오늘 양상훈 주필의 칼럼을 보고 한겨레신문을 보고 있는 지 깜짝 놀랐다”면서 “피 흘려 지켜온 대한민국의 운명과 민족의 생존을 상대로 장난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강 의원은 또 “북미회담을 코앞에 두고 백악관 등 미국 정부가 조선일보 논설이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주장을 살펴보고 협상에 감안한다”며 “그런데 이 칼럼은 한마디로 북한에 항복하라는 시그널”이라고 주장했다. 이럴 때일수록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한 압박을 해서 협상의 지렛대로 써야 한다는 게 강 의원의 논리다.그는 칼럼이 나온 시점이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조선일보를 협박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조선일보와 TV조선의 북한 관련 보도가 오보일 뿐더러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한 보도라고 비판한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강 의원은 양 주필에 대한 앙심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양상훈의 기회주의적 행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라면서 “TK정권 때는 TK 출신이라고 하다가 세상 바뀌면 보수와 TK를 욕하고 다니질 않나. ‘삼성공화국’이란 괴담을 퍼뜨려 놓고도 삼성언론상을 받아 상금을 챙겼다”며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사리와 법력/이종락 논설위원

    조계종 원로의원인 속초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이 어제 우리 곁을 떠났다. 속명이 ‘조오현 시인’으로 유명한 스님은 시조시인으로도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신흥사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금강산 건봉사에서 다비식이 이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같이 있던 지인이 툭 묻는다. “스님의 사리는 몇 개나 나왔을까.” 사리는 다비한 후에 나온 영롱한 색깔의 작은 구슬 형태의 물질이다. 석가모니의 사리는 8만 4000부분으로 나눠져 여러 나라의 사리탑에 안치됐다. 사리는 불자들의 숭배 대상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리 신앙이 유별나다. 지인의 그 질문은 이런 우리 불교 문화에 익숙한 탓이리라. 사리 숫자와 법력이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게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불교신자들은 스님이 열반한 후 사리를 얼마나 남겼나에 유달리 관심이 많다. 마치 법력의 크기를 재는 듯하다. 더 중요한 것은 스님들이 남긴 가르침일 텐데. 무산 스님은 중생의 이런 아둔함을 경계해서인지 “화장해서 흩뿌려라”고 했다. 무산 스님은 중생의 사리 집착을 두고 “억!” 하고 또 꾸짖었을 것이다.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경영권 승계/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경영권 승계/이순녀 논설위원

    김정주(50) 넥슨 창업자가 그제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혀 화제다.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회사 NXC 대표인 그는 1000억원 재산의 사회 환원도 약속했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역사가 길지 않고, 대다수 창업자 나이도 50대 전후로 젊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아직 경영권을 대물림한 선례는 없다. 기업 오너가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이 당연시되는 국내 풍토에서 김 대표의 공개 선언이 IT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지 주목되는 이유다.김 대표는 2년 전 대학 동창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의 비상장 주식 매입대금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당시 1심 법정에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가와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되갚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등 외국 IT 기업은 전문 경영인 승계가 보통이다. 가족 경영이나 가업 승계가 흔치 않은 서구의 전통적인 기업 문화에 따른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세 자녀 대신 친구이자 동료인 스티브 발머에게 최고경영자 자리를 넘겼다. 그는 자녀들에게 재산도 조금만 물려주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뒤 팀 쿡을 CEO로 맞았다. 팀 쿡은 지난 2월 주주총회에서 “바통을 잘 넘겨주는 것은 (나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며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경영권 승계를 언급했다. 한진그룹 오너 3세의 갑질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무차별적인 경영권 대물림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재벌 부모를 뒀다는 이유 하나로 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 없이 경영 수업은 고사하고, 인격 수양조차 덜 된 철부지 3세, 4세들이 경영권을 제멋대로 휘두른 폐해는 애먼 회사 직원과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를 위해 상속세를 한 푼이라도 덜 내려는 재벌의 경영권 편법 승계 행태도 목불인견이다. 일감 몰아주기와 기업 자금의 불법 유출, 차명재산 운용, 변칙 자본거래 등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국세청은 어제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역외 탈세 행위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등 경영권 편법 승계 검증의 끈을 바짝 조이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나 가족 경영을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다만 가족 승계를 결정하기 이전에 자녀의 능력과 자질을 꼼꼼히 따지고, 상속세 등도 법대로 내야 한다. 그땐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가스 밸브 강박/임창용 논설위원

    외출할 때 가스 안전 밸브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출근할 때는 물론 산책이나 쇼핑을 나갈 때도 의식적으로 가스 밸브를 확인한 뒤 집을 나선다. 정말 가스가 샐까 봐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아내의 불안을 덜어 주고 싶어서다. 아내는 잠긴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면 밖에서 온종일 안절부절못한다. 함께 외출했을 땐 불안으로 인한 아내의 짜증이 애먼 날 향하기도 한다. 외출했다가 되돌아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간혹 확인을 빼먹는다. 아내의 가스 밸브 불안은 오래전의 작은 사고에 뿌리를 뒀다. 미국 연수 시절 쿡탑에 냄비 올려놓은 걸 깜빡하고 외출했다가 집을 태워 먹을 뻔했던 소동이다. 다행히 옆집 아주머니가 연기를 보고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불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그 후 아내는 밖에 함께 있을 때마다 “가스 잠갔던가?”라며 초조해했다. 충격으로 인한 강박이 생긴 듯했다. 내가 직접 확인하면서부터 아내의 불안감은 사라졌다. 자기보다 꼼꼼하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가스 밸브를 점검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듯하다. 진즉 내가 할 생각을 왜 못했을까.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공연권료/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공연권료/박현갑 논설위원

    프로야구장에서 홈팀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나오던 ‘등장곡’이 사라진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등장곡의 작사ㆍ작곡가 21명이 저작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프로야구 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구단들이 분쟁 시비를 없애려 등장곡을 틀지 않아서다.‘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 독점적 권리’, 즉 저작권이 문제다. 저작권은 저작 재산권과 저작 인격권으로 나뉜다. 작사·작곡가들이 문제 삼은 것은 저작 인격권이다. 이들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저작 재산권은 보호받으나 구단들이 개사, 편곡 등을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변형해 저작물의 내용과 형식을 동일하게 유지할 권리인 저작 인격권을 침해받았다는 것이다. 최근엔 저작 재산권의 하나인 공연권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공연권은 내 노래가 공연되거나 공연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권리다. 법률적으로는 매장에서의 음악 재생도 포함될 수 있다. 기본 전제는 영리를 목적으로 공연하는지 여부다. 공연권 문제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지난 28일 SPC 등 프랜차이즈 본사와 편의점 본사에 지난 5년간 매장에서 재생한 음악에 대한 공연권료를 내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불거졌다. 하이마트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자사 가전제품 매장에서 저작권협회의 허락도 없이 협회가 관리하는 음원을 재생했다며 낸 소송에서 이긴 게 근거다. “법 개정 전에 틀었던 걸 요구하는, 말도 안 되는 협박 아닌가요”라거나 “앞으로는 저작권료 시비에서 자유로운 클랙식만 틀어야 하나”라고 가맹점주나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하소연한다. 저작권법 개정으로 오는 8월부터는 커피점이나 헬스장 등에서 음악을 틀 경우 스트리밍료와 별개로 공연권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과거 5년치 공연 사용료를 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는 눈치다. 디지털 시대에 복제 및 변형은 어렵지 않다. 카피 라이트(저작권) 보호가 그만큼 중요하다. 반면 카피 레프트(오픈 저작권) 목소리도 높다. 창작자와 이용자 간 경계가 무너진 공유경제 시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전 세계적 패러디화는 카피 레프트의 대표 사례다. 창작자 권리는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소급 적용은 이해하기 어렵다. 매장에서 음악을 틀 때와 안 틀 때의 영업이익 차이에 대해 영업장별로 그 금액을 구분할 수 있을까. 엄포성이라면 빨리 접기를 바란다. 저작권 보호는 당연한 일이지만 협박 수단으로 삼는 건 창작자 보호 취지에 위배된다. eagleduo@seoul.co.kr
  • [서울광장]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의 ‘조용한 혁명’/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의 ‘조용한 혁명’/이순녀 논설위원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가 지난 주말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찬성 66.4%로 낙태죄 폐지를 결정했다. 아일랜드는 1983년 임신부와 태아에게 동등한 생명권을 부여하는 수정헌법 8조가 발효되면서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 금지 국가로 꼽혀 왔다. 법을 어기면 최대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2013년 임신부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경우에 한해 낙태가 허용됐으나 영국 등으로 향하는 ‘원정 낙태’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35년간 약 17만명의 임신부가 국경을 넘었다. 이러한 법과 현실의 괴리가 국민을 움직였다. 지난해 총리 선출 당시 낙태 찬반 국민투표를 공약했던 의사 출신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이번 결과에 대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조용한 혁명의 정점”이라고 표현한 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조용한 혁명’은 어쩔 수 없이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 24일 낙태 처벌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 공개변론을 계기로 낙태죄 폐지 찬반 갈등이 재점화됐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6개 국가에 속한다. 현행법은 낙태 여성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 임신중절을 집도한 의사는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 1956년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1973년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강간,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등 극히 일부 경우에만 예외를 두고 있다. 법과 현실이 따로 놀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연간 낙태 건수를 2005년 34만 2000건, 2010년 16만 8000건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하루 3,000명꼴, 연간으로 따지면 100만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낙태율은 1000명당 29.8명으로, OECD 1위다. 낙태 허용 국가인 미국(15.9명), 프랑스(14.5명), 네덜란드(8.5명)보다 훨씬 높다. 낙태 금지법과 처벌 강화가 낙태율을 떨어뜨린다는 낙태죄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다. 반면 엄격한 낙태 제한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은 크다. 안전하지 않은 불법 임신중절로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침해된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의 부담을 여성만이 짊어진다는 점도 차별적이다. 이런 왜곡된 현실과 변화된 사회 인식을 감안하면 낙태죄 논란에서 태아 생명권이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는 이분법적 접근법은 소모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지난해 11월 인사 청문회에서 “태아의 생명권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은 바로 임신한 여성”이라면서 “임신한 여성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태아의 생명과 충돌하는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고,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24주’는 낙태 허용 국가인 독일에서 주인공이 태아 생명권과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98% 확률로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고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여성은 그러나 태아의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어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아야 하고, 평생 고통 속에 살 수도 있다고 하자 깊은 번민에 빠진다. “태어나도 행복하지 않을 거야”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마침내 수술대에 오른 주인공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정은 내가 내렸지만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다”고. 낙태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가슴을 짓누른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낙태 결정을 하기까지 충분한 의학적·사회적 상담을 받는 대목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유럽 대다수 국가는 이런 절차를 의무화하고 있다. 2012년엔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가 이번에는 어떤 판단을 할지 예단하긴 어렵다. 낙태죄를 손질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위헌 결정으로 원칙을 바꿀지, 아니면 합헌을 유지하고 예외를 늘릴지는 의견이 팽팽히 갈린다. 우리에게도 과연 ‘조용한 혁명’이 벌어질까.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방탄소년단/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방탄소년단/이두걸 논설위원

    음악은 세대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르다. 그래서 젊은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은 평생 함께하곤 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음악을 이런 세태적 특성 탓에 즐겨 듣지 않았다. 최근 출간된 저서 ‘BTS 예술혁명-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는 BTS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저자는 ‘촛불혁명이 한국에 국한된 정치 변화를 가져왔지만, BTS는 전 지구적인 변혁을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들뢰즈는 BTS를 치장해 주는 뽀샵 기계가 됐다”(소설가 장정일)는 비판도 경청할 만하지만 BTS가 10대들이 즐겨 듣는 ‘틴팝’(Teen Pop) 수준을 넘어섰다는 증거들은 여럿 나오고 있다.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은 BTS가 27일(현지시간)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외국어 앨범이 이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은 12년 만이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역시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7주 연속 2위를 하는 등 선풍을 일으켰지만 단발성에 그쳤다. 강남스타일은 남녀노소가 즐기고 패러디로도 훌륭했지만, ‘우스꽝스러운 B급 문화’라는 한계가 있었다. BTS는 미국의 힙합과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케이팝으로 재해석하는 등 ‘음악’으로만 승부했다는 점에서 싸이의 성과를 넘어설 공산이 크다. BTS의 가사도 ‘보편성’을 인정받는다.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노력 타령 좀 그만둬”(‘뱁새’)라거나 “지친 몸 끌고 학교로 가 잠만 자던 내가 20살이 돼 버렸네”(‘치리사일사팔’)라는 절망감은 저성장 자본주의 시대의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는다.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절망이 있”(‘바다’)고, “유리천장 따윈 부숴”(‘낫 투데이’)라는 격려도 잊지 않는다. BTS가 노래를 발표하면 수십 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진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미국의 대중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방탄소년단의 이번 성적을 두고 “방탄소년단이 공식적으로 미국을 점령한 것”(as BTS officially conquered America)이라고 논평했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롤링스톤이 비틀스나 롤링 스톤스 등 영국 밴드들의 미국 팝 음악계 점령을 두고 쓴 ‘영국 침공’(British Invasion)이라는 표현과 닮은꼴이다. BTS의 성과를 경이롭게 받아들이면서도 이질적인 문화인 케이팝이 자국 음악시장에 대거 진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엿보인다. 케이팝이 널리 향유되는 것 못지않게 전 세계 10대들이 BTS의 음악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바른 말글] 안주 일절/손성진 논설고문

    ‘안주 일절’ 술집 벽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이다. ‘切’는 ‘끊을 절’ 또는 ‘온통 체’로 쓰인다. ‘일절’(一切)과 ‘일체’(一切)는 학교에서도 용법을 배웠지만 여전히 혼동해서 쓴다. ‘일절’은 ‘아주, 전혀, 절대로’라는 의미의 부사로, ‘일체’는 ‘모든 것’이란 명사 또는 ‘모든 것을 다’라는 부사로 쓴다. 따라서 ‘모든 안주가 다 있다’는 의미는 ‘안주 일체’가 맞다. ‘일절’은 부정문 앞에 쓴다고 보면 된다. ‘중국산 식재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는 맞다. ‘모든 것’이란 명사로 ‘일체의 중국산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도 맞다. 그러나 “두 선수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강압이나 폭력은 일체 없었다”는 어느 인터넷 언론 기사 안의 ‘일체’는 ‘일절’로 바꿔 써야 한다.
  • [길섶에서] 에어포칼립스/박현갑 논설위원

    “집에 공기청정기 있어? 난 고객이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든 말든 열심히 설명해 줘.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거든.” ‘청정 공기 전도사’로 변신한 친구의 말이다. 금융업에 종사하다 인생 이모작에 나선 지 4개월 정도 됐다고 한다. 미세먼지 탓에 세탁기보다 더 팔리는 게 공기청정기란다. 미국 항공우주국 연구진들이 한반도 상공에 비행기를 띄워 우리나라 공기질을 조사했더니 맑은 날인데도 오염물질로 형성된 뿌연 먼지 띠가 자주 나타나는 등 공기질이 위험 수준이라는 영상도 보여 준다. 공기 오염으로 인한 재앙을 뜻하는 ‘에어포칼립스’ 상태라는 경고다. 미세먼지 1시간 노출이 담배 연기 1시간 노출과 같다는 ‘정보’도 던진다. “난 없어, 오래 살아라.” “장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해서 하는 얘기야”라는 친구의 일침이 귓가를 때린다. 맞는 말이다. 요즈음 ‘역세권’ 못지않게 ‘숲세권’이 인기다. 이동의 편리성도 중요하지만, 대기의 질이 그만큼 중시되는 시대다. 한 대 구입해 볼까. 소음이 정겨운 지하철역 주변으로 집도 옮길 마당이니.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씨줄날줄] 무투표 당선/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무투표 당선/이순녀 논설위원

    6·13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지난 25일 마무리되면서 표심을 향한 후보자들의 전력 질주가 시작됐다. 광역단체장 17명, 교육감 17명, 기초단체장 226명, 광역의원 824명, 기초의원 2927명, 교육의원 5명(제주) 등 총 4016명을 뽑는 이번 선거엔 후보 9317명이 등록했다. 평균 경쟁률은 2.32대1로, 역대 최저였던 2014년 6·4 지방선거(2.28대1)보다 약간 높다.아무리 여론조사에서 큰 차이로 앞선다고 해도 뚜껑을 열기 전까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게 선거다. 후보자들은 그래서 막판까지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런데 등록 마감과 동시에 당선의 기쁨을 누리는 ‘선거 황태자’들이 있다. 단독 출마해 자동으로 당선 처리되는 무투표 당선자들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총 86명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중도 사퇴자가 나오면 더 늘어날 수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무투표 당선이 가능하다. 2006년 지방선거까지는 광역·기초의원에만 적용하고 단체장은 단독 후보라도 투표자 3분의1 이상 득표해야 당선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단체장에도 무투표 당선제가 도입됐다. 2010년엔 기초단체장 8명 등 167명이 무투표 당선됐고, 2014년에는 기초단체장 4명 등 229명이 무혈 입성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드물지만 무투표 당선 사례가 있다. 1대 선거에서 13명, 4대 선거에서 9명, 9대 선거에서 4명, 11대 선거에서 2명이 무투표 당선자였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총선부터 19대 총선까지는 한 명도 없다가 2016년 20대 4·13 총선에서 이군현(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통영·고성 선거구에 단독 출마해 투표 없이 당선됐다. 무투표 당선은 유권자가 후보를 심판할 기회를 원천 차단해 참정권을 침해한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상대 후보와 담합하거나 금전으로 매수해 선거 풍토를 타락시킬 요인도 된다. 무엇보다 무투표 당선자가 영남이나 호남 등 특정 정당세가 강한 지역이나 특정 정치인이 장악한 지역에 쏠려 있다는 점에서 기득권 고착화, 거대 양당의 독식 같은 비판과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3~4인 선거구를 줄이고 2인 선거구를 늘리는 기초의회 선거구 쪼개기를 계속한다면 무투표 당선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개혁적인 소수 정당의 정치 신인들에겐 높은 진입 장벽이고, 그 피해는 유권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추첨의 진화/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추첨의 진화/손성진 논설고문

    현재 로또 복권은 특수한 추첨 기계로 추첨한다. 아파트 당첨자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한다. 학교 배정 추첨 등 대부분의 추첨도 컴퓨터로 한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추첨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1969년 9월 15일 처음 발행된 주택복권은 화살을 번호판에 쏘아 당첨번호를 정했다. 화살은 물론 직접 쏘는 것은 아니었고 출연자가 버튼을 누르면 화살이 과녁으로 날아갔다. 1970년대까지 주택복권 추첨은 지금처럼 경찰관이 입회한 가운데 TV로 방영됐는데 송해의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신호가 기억에 남아 있다. 이 방식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이 멘트가 총탄 발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에 공 추첨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공 추첨은 재미가 덜 하고 단조롭다고 해서 1992년부터 다시 화살 발사 방식으로 바뀐 적도 있다. 흔히 1970년대 추첨으로 중고교에 입학한 세대를 ‘뺑뺑이 세대’라고 하는데 ‘은행알 추첨기’와 연관이 있다. 8각 물레방아처럼 생긴 은행알 추첨기는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한 번 돌리면 배정되는 학교 번호가 적힌 은행알이 밖으로 굴러 나왔다. 이 은행알 추첨기를 일명 ‘뺑뺑이’라고 불렀다. 뺑뺑이는 엄연히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다. 아파트 동·호수 추첨에도 은행알이 이용됐다. 1971년 입주한 여의도 시범아파트 1850가구의 동·호수를 은행알을 이용해 추첨했다고 한다. 그런데 은행알 추첨에서는 큰 은행알이 밖으로 나올 확률이 높으므로 부정 추첨 시비가 일곤 했다(동아일보 1966년 12월 10일자). 1950, 1960년대 아파트나 전화 청약 추첨은 제비뽑기였다. 1963년 8월 서울 용산고등학교 강당. 서울 상도동과 신림동 시영아파트 분양에 신청자가 쇄도해 최고 2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입주자를 선정하는 추첨 방식은 제비뽑기였다. 눈을 가린 사람이 함 속에 손을 넣어 세모꼴의 제비를 뽑아낸다. 제비를 열어 번호를 부르면 당첨된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경향신문 1963년 8월 27일자). 사립초등학교 신입생 선발에도 제비뽑기 방식이 이용됐는데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간혹 제기되곤 했다(동아일보 1966년 12월 10일자). 아파트 추첨이 공개 추첨으로 바뀌고 컴퓨터가 사용된 것은 1973~1974년 무렵이다(매일경제 1974년 9월 5일자). 아파트 당첨 조작은 컴퓨터 추첨에서 처음 발생했다. 1973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AID아파트 추첨 때 프로그래머 3명이 입주 희망자 10명에게 돈을 받고 당첨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일이 있다. 사진은 1967년 12월 서울 한 사립초등학교 교정에서 은행알 추첨기로 신입생을 추첨하는 모습.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늦봄 풍경/손성진 논설고문

    봄도 이제 막바지다. 봄날이 간다. 새색시 미소처럼 수줍었던 봄도 벌써 노년이다. 안창홍 작가의 빛바랜 사진 같은 작품이 어울릴 때다. 그래도 올해는 메마른 대지를 비가 흠뻑 적셔 주어 마음이 푸근하다. 이제 여름 맞을 채비를 할 때. 만산은 진녹색 마고자를 입은 듯 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봄이 어머니 품같이 포근하다면 여름은 아버지 마음처럼 널찍할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저 넓은 바다처럼. 봄이 지나가는 황혼녘에 호숫가에 앉았다. 사실은 강물인데 너무 잔잔해서 호수 같다. 고요의 바다가 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속의 파도도 숨을 죽인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평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엔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세찰수록 몸을 더 펼친다. 바람이 혈관 속으로 스며든다. 한겨울 찬바람이 아니라 온기를 품은 늦은 봄바람이다. 계절이 오고 감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그만큼 우리는 여유 없이 살고 있다. 산을 바라보고 호수에 돌팔매라도 던져 보면 계절의 향이 수채물감처럼 온몸을 덧칠한다. 형형색색의 미각도 이때쯤이면 더 살아난다. sonsj@seoul.co.kr
  • [씨줄날줄] ‘미디어 왕’ 넷플릭스/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디어 왕’ 넷플릭스/이순녀 논설위원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성장세가 가히 폭발적이다. 2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장중 한때 월트디즈니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 미국 미디어·엔테테인먼트 업계 1위에 등극했다. 종가에선 디즈니가 간신히 1위 자리를 지켰지만 진정한 왕좌의 주인은 의심할 바 없이 넷플릭스였다.21살 넷플릭스가 95년 역사의 미디어 왕국 디즈니를 제쳤다는 사실은 미디어·엔터 산업이 TV, 케이블, 영화관 등 전통 매체에서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으로 완전히 재편됐음을 보여 준다. 넷플릭스는 전날엔 미국 최대 케이블TV 업체 컴캐스트를 추월했다. 타임워너, 21세기 폭스, CBS 등 유서 깊은 미디어들도 진즉에 앞질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콘텐츠 제작 사업 파트너로 넷플릭스를 낙점한 배경도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가장 앞서가는 넷플릭스의 위상을 반증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는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이라는 콘텐츠 제작사를 설립, 쇼 프로그램과 영화·다큐멘터리 등을 만들어 넷플릭스에 공급하는 계약을 최근 맺었다. 애플, 아마존과도 협의를 해 왔던 오바마는 “스트리밍 서비스야말로 우리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고 넷플릭스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넷플릭스는 1997년 DVD 우편배송 서비스 사업으로 출발했다.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한 건 10년 뒤인 2007년이다. 공급자와 수요자를 이어 주는 플랫폼 기업에 만족하지 않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선 건 예상 밖 행보였다. 2013년 공개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은 넷플릭스의 전략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2012년 4편에 불과했던 오리지널 콘텐츠는 지난해 126편으로 급증했다. 전 세계 1억 25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넷플릭스는 올해 말까지 700여개의 신작을 선보일 계획이다.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예산 규모만 80억 달러(약 8조 6280억원)에 이른다. 2016년 한국어 서비스를 내놓은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 업계에도 변화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내놓은 데 이어 최근 유재석을 영입해 국내 첫 오리지널 예능 ‘범인은 바로 너!’를 제작해 전 세계 190개국에 서비스하고 있다. 빅뱅 승리가 출연하는 ‘YG전자’와 좀비사극 ‘킹덤’ 등도 연내 공개된다. 한국과 아시아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겠다는 계산이다. 넷플릭스의 영토 확장이 어디까지 뻗어 갈지 궁금하다. coral@seoul.co.kr
  • [서울광장] 파국의 다른 이름은 시작이다/김성곤 논설위원

    [서울광장] 파국의 다른 이름은 시작이다/김성곤 논설위원

    완벽하게 뒤통수를 맞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은 더 아플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3명을 풀어 주고, 풍계리 취재단에 한국 취재진을 뺐다가 막판에 집어넣는 등 한껏 몸값을 부풀려 가며, 핵시설을 폭파한 지 불과 한두 시간 만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로 예정됐던 북ㆍ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1박4일간의 빡빡한 일정으로 미국으로 달려가 트럼프로부터 북한의 체제 보장과 ‘유연한 일괄타결’ 발언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한 게 바로 엊그제다. 일반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상상이 안 되는 비례(非禮)였지만, 트럼프는 눈 깜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주변국에 그 어떤 배경 설명이 있었다는 얘기도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 트럼프의 북ㆍ미 정상회담 취소 배경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 전 미국과 북한의 실무 접촉에서 진전된 입장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가 별 내용이 없자 실망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장이 “(북ㆍ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며 펜스 미국 부통령을 ‘얼뜨기’로 표현한 것이 화를 돋우었다는 해석도 곁들여진다. 하지만 최 부장의 발언은 명분일 뿐 ‘북한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이 없자 정상회담을 뒤엎었다는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북한으로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 내지 못하면 ‘서두르다가 실패한 회담’이라는 비난이 불을 보듯 뻔한 마당에 굳이 북ㆍ미 정상회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편지를 하라. 언제든 만날 수 있다”며 문을 아예 닫지 않은 것을 보면 미국의 중간선거가 11월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입장 변화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한 중국에 대한 경고도 담고 있다. 중국이 협조를 안 하면 우리가 판을 깰 수도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김계관이 김 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 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히는 등 유화적 제스처를 보인 것을 보면, 일단은 중국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어떻든 트럼프는 승부사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북한으로부터 과거와 같은 ‘살라미 전술’(하나의 과제를 여러 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협상전술)이 엿보이자 정상회담 취소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상식을 초월하는 무지막지한 방식에 북한은 물론 중국도 허를 찔린 듯하다. 그러나 북한도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북·미 정상회담 등 비핵화 논의가 깨진 뒤의 전개 과정을 모를 리 없다. 경제적 압박과 함께 생각하기조차 끔찍하지만, 군사적 카드도 미국이 들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테이블에 앉을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라고 했다. 북ㆍ미 양측 모두 판을 깨는 것은 원치 않는 만큼 차분히 다시 흩어진 구슬을 꿸 필요가 있다. 역사는 ‘조급한 결론은 항상 심판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1978년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 이뤄져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평화를 얻었지만, 서두르다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 정착촌 문제는 짚지 못했다. 지금 미국과 중동은 그 실수의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한ㆍ일 협정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부가 서두르는 통에 우리는 지금 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자 문제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 평화를 지키고 협상을 성사시키는 것은 유리그릇과 같다. 진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를 시작할 때다. 우리도 진득하게 중재의 과정을 지켜보자. “끝은 끝이 아니고 시작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라고 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꿈을 여기서 접을 수는 없다. sunggone@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한성부·도성 품은 광활한 양주목, 한반도 물류 잇는 요충지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한성부·도성 품은 광활한 양주목, 한반도 물류 잇는 요충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조선시대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를 보면 양주목(楊州牧)이 도성(都城)을 아우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도에는 양주목과 함께 도성과 한성부에 속한 성 밖 성저십리(城底十里)를 그려 넣었다. 양주목과 한성부는 북쪽으로 연천과 마전, 동쪽으로 포천과 가평, 남쪽으로 광주와 과천, 서쪽으로 고양과 파주와 마주하고 있다.지도에서 읍치는 양주목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경기 양주시 유양동의 불곡산 남쪽이다. 지금 서울에서 옛 양주읍치에 가려면 의정부를 지나서도 한참을 달려야 한다. 그만큼 양주목이 관할하는 지역은 넓었다. 고양시 지축동 일대와 파주 광탄면, 구리시, 남양주시, 동두천시, 포천시의 일부, 서울시의 광진·노원·강북·도봉·성동·중랑·은평·성북구는 물론 종로구와 중구의 일부도 양주 땅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양주면(古楊州面)이다. ‘옛 양주’라는 뜻이니 과거 양주읍치가 있었던 곳이다. 지도에서 고양주면은 망우면과 노원면 남쪽인 아차산 아래 한강변이다. 학계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양주읍치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에 있었고, 1067년(고려 문종 21) 양주가 남경(南京)으로 승격하면서 북악산 아래로 옮겨 갔다는 연구도 있다.세종실록 지리지의 ‘양주도호부’ 대목은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으로…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주를 두었고, 경덕왕이 한산군으로 바꾸었다. 고려가 양주로 고쳤다’고 했다. 아차산 아래 한강은 오늘날 광진(廣津)으로 불리지만, 양진(楊津)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광주 땅인 남쪽은 광진, 양주 땅인 북쪽은 양진이라 부른 것이 아닐까 싶다. 양진에는 용왕에게 제사 지내는 양진당(楊津堂)이 있었다. 조선 태조는 개국 2년 만인 1394년 수도를 한양으로 옮겼다. 정종이 1399년 개경으로 환도했지만, 태종은 1404년 다시 서울에 자리잡아 오늘에 이른다. 양주 땅이 수도가 된 만큼 읍치는 새로 물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태조실록에는 1395년 ‘한양부를 고쳐서 한성부라 하고, 아전들과 백성들을 견주(見州)로 옮기고 양주군이라 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이때 옮긴 양주의 읍치가 오늘날의 고읍동(古邑洞)이다. 옛 읍치가 있던 동네라는 뜻이다. 고구려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옛 견주의 치소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양주목은 1506년(중종 1) 치소를 유양동으로 옮겼다. 1922년 당시 양주군은 지금의 의정부시로 이전했고, 2000년 지금의 양주시청 자리로 돌아갔다.양주는 큰 고을이었다.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이었기 때문이다. 유양동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바라보면 ‘교통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물류를 인력이 아니면 소와 말이 끄는 수레에 의존해야 했던 시절은 달랐다. 양주 유양동은 임진강의 호로하에서 한강의 광진을 잇는 중간 기착지에 해당한다. 삼국시대 호로하 북쪽에는 고구려성인 호로고루, 남쪽에는 신라성인 칠중성이 있었다. 표주박 허리처럼 좁아진 물길이라는 뜻의 호로하는 배를 타지 않고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최하류다. 조선시대까지도 한반도 남북을 잇는 물류는 대부분 이 일대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광진 일대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치다. 호로하에서 임진강을 건넌 한반도 북부지방의 교통량은 다시 광나루에 모였고, 여기서 한강을 건너 삼남지방으로 내려갔다. 삼남지방의 물류는 당연히 역순으로 북부지방으로 올라갔다.그러니 한반도 남북을 잇는 물류는 당연히 양주를 지날 수밖에 없었다. 양주에는 별산대놀이와 소놀이굿이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 양주농악과 상여와 회다지소리가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많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연희가 발달했다는 것은 물산이 풍부하고 돈이 도는 상업의 중심지였다는 증거다. 유양동 관아는 양주군이 의정부로 옮겨 갈 때까지 417년 동안 양주의 중심이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터만 남은 것을 2000년부터 5차례 발굴조사를 벌였고, 지난달 동헌과 내아 복원을 마무리했다. 새 집 냄새가 물씬해 유서 깊은 유적이라는 느낌은 덜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의 흔적이 녹아들기 시작하면 역사성도 차근차근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불곡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잡은 양주목 관아는 복원공사와 함께 주변이 깨끗하게 정비됐다. 널찍한 주차장에 내리면 왼쪽에 제법 규모 있는 관아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탐방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정면의 비석거리다. 맨 앞에 있는 것이 ‘양주 관아지 유허비’다. 양주읍치가 있었던 장소라는 것을 알리는 비석이다.그 옆으로 양주목사를 역임한 열여덟 분의 선정비와 불망비, 유방비, 추모비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유방이란 유방백세(流芳百世)를 줄인 말로 ‘명성을 후세에 길이 남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양주목사를 역임한 비석 주인공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백인걸(1497~1579)은 조광조의 제자로 기묘사화에 스승을 잃고 을사사화에 파직됐으며 정미사화로 안변에 유배됐다. 학문에 뛰어나 파주 파산서원과 남평 봉산서원에 배향된 인물로 청백리에 뽑히기도 했다. 정대년(1503~1578)은 ‘네 임금을 섬기며 아부한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두 차례 이조판서를 역임하며 ‘당대 명경(名卿)’으로 불리웠다. 무신 출신으로 효종의 북벌계획에 관여한 이완(1602~1674),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에도 능했던 남용익(1628~1692), 제주목사 시절 ‘탐라순력도’를 남기고 ‘병와가곡집’으로 음악사에도 한자리를 차지하는 이형상(1653~1733)도 양주목사를 지냈다. 양주목사란 아무나 갈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다른 사람은 직함이 모두 ‘목사’지만 유일하게 ‘군수’인 사람이 홍태윤이다. 고종 시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주목이 양주군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1902년부터 1907년까지 군수를 역임한 양주의 마지막 목민관이었다. 무인 출신으로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를 업고 여주까지 피신시켜 포천현감에 오른 인물이다. 홍태윤은 도성을 오가는 길목이었던 서울 도봉구 방학동 쌍문2동주민센터 앞에도 선정비를 남겼다. 그런데 선정비는 1903년, 불망비는 1904년 세워졌으니 현직 양주군수 시절이다. 어쨌든 목민관으로는 선정을 펼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포천에도 선정비가 있다고 한다. 비석거리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현대적 야외공연장은 양주별산대놀이마당이다. 해마다 6월부터 9월까지 넷째 주 토요일에 상설공연을 했는데, 올해 일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듯하다. 그 너머에는 양주향교가 있으니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텃밭 실농(失農)/서동철 논설위원

    충청도 시골집 마당에 3년 전 차나무 묘목 세 그루를 심었다. 그런데 겨울이 한 번 지날 때마다 한 그루씩 잎을 피우지 않았다. 마지막 한 그루는 지난해 탐스럽게 자라 한 가닥 희망을 가졌는데 결국 길었던 지난겨울을 버티지 못했다.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차나무를 추운 고장에 심은 것은 역시 무리였다. 추위가 닥치기 전 볏짚으로 차나무를 묶어 주라는 지난가을 옆집 할아버지 충고를 무시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재작년 열 포기쯤 심어 놓은 당귀는 탐스럽게 자라나고 있다. 상추에 조그만 당귀 이파리 하나만 올려도 쌈의 풍미는 깊어진다. 비가 내린 며칠 전에는 스물스물 마당에 퍼져 나가는 당귀 향내를 한껏 즐기기도 했다. 해마다 이것저것 심어 보지만, 그런대로 병충해를 견디는 것은 상추와 고추 정도다. 여기에 당귀가 더해졌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 잡초도 뽑지 않고, 비료도 주지 않는 그야말로 태평농법이다. 친구가 텃밭을 일군다며 시골 땅 350평을 샀다고 의욕을 보인다. 나는 “삼백오십 평은커녕 서른다섯 평도 농사짓기 힘들걸?” 하며 웃었다. 나는 열 평 텃밭도 해마다 실농(失農)이다.
  • [씨줄날줄] 체육계, ‘탱크’보다 공정성/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체육계, ‘탱크’보다 공정성/박현갑 논설위원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건 공정성이 담보됐다는 기대 때문이다. 학연·지연·혈연을 벗어나 오로지 선수와 팀이 노력과 실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모습에 감동한다. 그 과정이 휴먼 스토리다.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3일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선수 선발과 경기 운영 등에서 공정성 훼손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의구심을 해소하려는 것이었다. 노태강 문체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이 파벌을 형성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국가대표 선수 선발과 지도자 임용 과정에서의 부적정한 사례 등이 다수였다고 밝혔다. 경기복 선정과 후원사 공모 과정도 불투명했다. 체육계에서 ‘관행’으로 묵인되던 병폐들이 다수 발견된 것이다. 지도자가 선수를 상습적으로 때리는가 하면 선배가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때마침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승훈 선수가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실 등도 드러났다. 이에 앞서 이승훈 선수는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매스스타트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과정에서 정재원 선수가 ‘탱크’로 명명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다는 주장들이 나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금메달을 확보하기 위해 어린 선수들을 그저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문체부는 앞으로 한 달간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은 뒤 최종 결과를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통보한다지만 벌써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빙상인들의 모임은 이번 감사의 목적이 ‘빙상계의 적폐청산’이었는지, 아니면 ‘평창올림픽의 미화’였는지 진의가 의심스럽다며 전면 재실시를 촉구했다. 국민은 국가 선전의 도구로 활용되던 엘리트 체육을 거부한다. 시민들을 건강하게 하는 생활체육이 강화되길 기대한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성적지상주의에 넌덜머리를 낸다. 정당한 절차와 선수들에 대한 인권 존중이 우선되는 체육계로 거듭나려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의 선수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 실력보다 파벌로 선수를 선발하는 불공정도 사라져야 한다. 무엇이 스포츠 정신에 부합하느냐를 따져야 한다. 노 차관의 “체육계의 눈이 아닌 국민의 눈으로 보겠다”는 발언에 기대를 건다. 지난해 촛불집회나 최근의 미투 운동(#Me Tooㆍ나도 피해자다)은 불공정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촛불이 정권을 바꿨듯이 시민들은 구석구석에 쌓인 적폐를 치우길 원한다. 체육계 적폐도 마찬가지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지역균형발전 이끌 자치분권 강화… 연방제 하자는 것 아니다”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지역균형발전 이끌 자치분권 강화… 연방제 하자는 것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는 ‘지방분권’이다. 비록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청와대가 6월 지방선거에 맞춰 마련한 헌법 개정안의 명칭이 ‘지방분권 개헌안’인 데서 보듯 지방분권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이전 정부와의 비교를 불허할 만큼 강력하다. 문 대통령 스스로 지난해 6월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민선 자치시대 23년을 맞이했지만, 풀뿌리민주주의의 원형인 주민자치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고 비대한 중앙권력을 나누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지닌 비민주적 구조를 청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나 중앙권력 이양과 재정 분담 등 범국가적 이해관계가 얽힌 고질적 난제 앞에서 논란은 여전히 거세기만 하다. 20일 앞으로 다가온 민선 7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 대통령의 지방분권 구상을 가다듬고 있는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 정순관 위원장으로부터 지방분권 시대를 준비하는 정부의 구상과 추진 상황을 들어 봤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 8층 자치분권위원장실에서 이뤄졌다.→역대 어느 정부보다 지방분권 의지가 강력하다. 우선 6월 선거를 통해 새롭게 시작될 민선 7기 지방자치의 시대적 과제는 뭐라고 보는가. -압축성장의 그늘이라 할 사회 불균형,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이라 할 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게 민선 7기 지방자치시대 우리의 소명이라고 본다. 다음달 새롭게 구성될 민선 7기 지방자치단체 구성원들은 정부의 국정기조인 자치분권 실현을 위한 소중한 기회를 잡는 셈이다. 모쪼록 지역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목표 가운데 네 번째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을 목표로 한 지방분권이다. 개헌을 통한 대통령과 시·도지사 국무회의(제2국무회의)와 4대 지방자치권(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 도입, 주민직접참여제 활성화, 국가기능 지방이양, 마을자치 활성화, 그리고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국세·지방세 조정(장기목표 6대4), 주민참여예산제 확대 등의 구상이 담겨 있다. →지방분권 개헌이 무산되면서 정부의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한 것 아닌가. 자치분권위의 후속 방안은. -개헌과 별개로 정부 차원의 자치분권 종합계획 수립 작업은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다. 6월까지 자치분권위 차원에서 구체적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이후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보고를 거쳐 7월에 최종안을 확정한 다음 정기국회에 관련 입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현 정부의 지방분권 강화가 궁극적으로 연방제를 염두에 둔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방제 전환은 엄청난 체제 변화를 뜻한다. 대통령 말씀은 강력한 자치분권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정치 수사(修辭)이지 연방제로 가자는 얘기는 아닌 것으로 안다. →일각에선 정부가 향후 연방제 형태의 통일한국을 염두에 두고 그 과도적 단계로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을 구상하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지방 강연 때 한 청중이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얘기를 하면서 그런 취지로 물은 적도 있다. 어떻게 지방자치 문제에 대해서까지 그런 냉전사고를 들이대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단언컨대 남북 통일을 염두에 둔 자치분권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통일 방식에 대한 담론과 전혀 무관하다. ※북한은 1960년 ‘남북연방제 통일방안’을 처음 주창한 뒤로 보완을 거듭,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원칙으로 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표방하고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의 연합제(▲1연합 2체제 ▲1연합 1체제 지역자치 정부 ▲1국가 1체제 1정부로 이어지는 3단계 통일)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하고 이를 6·15 공동선언에 담았다. →정부는 8대2 수준인 국세·지방세 비중을 장기적으로 6대4 수준으로 전환하는 목표를 세웠다. 논란이 크지 않겠나. 세금이 늘 가능성은. -지금 자치분권위 내부에서도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재정분권이 지방분권의 핵심인데 쉽지가 않다. 대통령 공약을 모두 중앙정부를 통해서만 이행하던 것을 지방정부를 통해서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 정부 임기 중 6대4는 아니어도 7대3 정도로라도 전환됐으면 좋겠다. 지방세 전환을 통해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게 대원칙이다. →현안인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해 얘기하자. 정부는 내년에 5개 시·도에서 자치경찰제를 시범실시하고 2020년에 전 국가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인데, 정작 국민들 가운데는 자치경찰 도입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자치경찰제를 시행해야 할 이유가 뭔가. -우선 지금 국가경찰이 지닌 중앙집중적 경찰권에 대한 민주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 입장에선 지역별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자치경찰제가 훨씬 적합하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정형화되지 않은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세계적 수준인 우리 국가경찰의 치안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늘어날 비일상적 범죄에 대한 치안력을 증진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자치경찰이 필요하다. →경찰과 각 시·도, 검찰에 이르기까지 이해 당사자가 많다. -수십년간 해결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대단히 복잡한 사안이다. 경찰과 검찰, 각 시·도 등 핵심 관계기관들이 지금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위원회에서 충분히 수렴하고 있다. →분권위가 생각하는 자치경찰 모델은. -우선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자치경찰 수장에 대한 임명권과 추천권, 동의권 등을 어느 한 기관이나 한 사람이 틀어쥘 수 없도록 한다는 게 하나다. 아울러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지방권력과 자치경찰의 이권 결탁 내지 유착을 철저히 차단할 장치를 마련하는 게 또 하나다. 세 번째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이원화에 따른 재정 부담 증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 아래 분권위 차원에서 깊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분권위가 참고하는 안 가운데 경찰개혁위의 자치경찰제안과 서울시의 자치경찰제안, 그리고 1999년 경찰청이 마련했던 자치경찰제안 등이 있다. 어느 모델이 우리 현실에 적합하다고 보나. -경찰은 적게 내주려 하고, 시·도는 많이 가지려 한다. 그 중간의 어느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본다. 경찰개혁위안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기능 중복과 예산 증가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반면 서울시안은 갑작스러운 큰 폭의 변화에 따른 혼란이 우려된다. 경찰권력이 지역의 이해 관계자들에게 포획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경찰 수장에 대한 추천권과 제청권, 임명권, 동의권을 모두 분산시키는 것이 그에 부합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임명권은 지자체장이 갖고, 동의권은 대통령이 갖는 식으로 인사권을 분산시키는 거다. 1999년 경찰청이 마련했던 안이 두 기관 안의 중간 지대에 있는데, 이를 보완하는 모델이 검토되는 것으로 안다. →검찰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청와대는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도입은 무관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위원장도 같은 의견을 밝힌 바 있는데 일정 부분 맞물려 있는 것 아닌가. -전혀 맞물려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검·경 수사권 조정이 안 되면 자치경찰제를 할 수 없다, 이건 넌센스다. 지금도 경찰의 수사개시권이 있지 않나. 이걸 바탕으로 자치경찰제를 추진하겠다는 것이고, 검·경 간 수사권 문제는 이와 별개로 논의하는 게 마땅하다. jade@seoul.co.kr■ 정순관 위원장은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을 지낸 행정학자로, 1998년부터 순천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2015년 지방자치발전위원회(자치분권위원회 전신) 위원으로 참여해 지난해 8월 위원장에 올랐다. 2015년 6월 순천대 제8대 총장 선거에서 총장 임용 1순위 후보자로 선출됐으나 교육부가 국립대 사상 처음으로 1순위 후보를 제치고 2순위 후보를 신임 총장으로 임명해 논란이 일었다. 정 위원장은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60·순천 ▲전남대 행정학 박사 ▲국무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원 ▲전남 지방분권추진협의회 위원장■ 자치경찰제는 지방분권 핵심 정책과제… 2020년 ‘한국형 자치경찰’ 전국 시행 방침 자치경찰제 논의는 연원이 광복 직후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해묵은 난제다. 공권력의 상징이라 할 경찰권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행사하느냐의 문제는 민생 치안의 수준을 결정짓는 차원을 넘어 민주 정치질서의 척도가 된다. 정부는 5대 국정목표의 하나인 지방분권의 핵심 정책과제로 자치경찰제 도입을 꼽고, 2019년 5개 시·도에서 시범 운영한 뒤 2020년부터 전국에 걸쳐 전면 실시한다는 방침 아래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를 중심으로 한국형 자치경찰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워낙 관계기관의 이해가 얽혀 있는 데다 민생과 직결된 사안이어서 최적의 모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치경찰제 모델과 관련해 지난해 경찰청 경찰개혁위원회와 서울시, 그리고 앞서 1999년 경찰청이 내놓은 방안을 간략히 소개한다. ■ 자치분권위원회는 지방분권 정책 총괄 부총리급 컨트롤타워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지방분권과 관련한 추진 전략을 마련해 권고하고 관계부처의 자치분권 정책을 종합 조정하는 부총리급 컨트롤타워다. 지난 3월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따라 기존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 전환됐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등 당연직 3명을 비롯해 각계 전문가 27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 [길섶에서] 사교육/황성기 논설위원

    사교육과 거리가 멀어진 게 10년 가까이 됐는데, 이 세 글자가 최근 생활의 일부가 됐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개가 있는 집에 훈련사가 방문해 원인을 분석하고 개를 기르는 사람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TV 프로그램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 집 개가 TV에 나올 만큼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어서 고민 끝에 ‘개 유치원’의 문을 두드렸다. 7년 전 개를 키우면서 앉아, 서, 기다려 같은 기본 동작에서부터 산책 때의 행동 요령까지 꽤 열심히 가르쳤다. 그렇지만 택배 초인종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든가, 낯선 사람에게 짖는 행동을 바로잡기는 어려웠다. 20개월 전 딱 한 마리 태어난 새끼는 두 번째라 방심했던 건지 거의 손길이 가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이웃이나 산책하며 만나는 사람, 다른 개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개 예절 교육은 불가피하다고 느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니는 ‘유치원’은 재미있게 놀아 주며 잘하는 행동을 더 잘하게 하는 곳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착한 도시형 개가 되기를 바라며 복습도 하는 나날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씨줄날줄] ‘교권’ 보험/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교권’ 보험/황수정 논설위원

    신학기에 엄마들은 두 부류다. 담임을 면담할 때 빈손이 민망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학부모 총회가 있거나 상담 기간을 앞두면 학교에서는 떼문자가 날아온다. “교실에 소소한 찬조용품도 일절 들고 오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다. 김영란법에 음료 한 잔도 불법인 줄 알면서 맨손이 멋쩍은 학부모들은 아직 많다.신학기의 엄마 부류 중 나는 전자다. ‘박카스’ 한 병을 같이 못 나누면서 “맡겨 놓은 내 자식, 잘 보살펴 달라”고 입을 떼기가 영 염치없다. 교실에서 처음 대면하는 학부모에게 물 한 잔 내놓지 않는 담임선생도 편치 않다. 안 받고 안 주는 것은 깔끔한 계산법이기는 하다. 갈수록 의문은 쌓인다. 이런 살풍경 매뉴얼이 교실의 주인, 교사와 학생들에게 과연 긍정 신호를 보내 주는 것인지. 교사들이 교권침해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에 앞다퉈 가입한다. 학부모나 학생들의 폭언·폭행에 대비하는 고육지책이다. 시중의 한 보험사가 지난달 관련 상품을 출시했더니 가입자가 벌써 600명이 넘었다. 보장 내역은 단순하다. 교권보호위원회에서 교권 침해 행위를 인정받으면 최대 300만원을 지급받는다. 폭언에 시달린 초등교사에게 보험금이 지급된 선례가 이미 나왔다. 교사에게는 학생과 학부모의 존재가 불시에 들이닥치는 교통사고가 된 셈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발 빠른 교사들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비한 보험 상품에 진작 가입했다. 일명 ‘학폭(학교폭력) 보험’이다. 학폭 문제를 전담 처리하는 교사들에게 교원배상책임보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통한다. 교사들 사이에서 기피 직무 1호가 학폭 전담이다. 학폭 처리 결과에 불만인 피해자와 가해자 측에게 소송을 당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새로 부임한 교사에게 학폭을 맡기는 폭탄 돌리기는 학교들의 암묵적 관행이다. 학폭 심판관으로 등 떠밀린 교사들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이니 일부 시·도교육청은 학폭 전담 교사들의 배상 책임 부담을 덜어 주는 단체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어느 책에서 “교사들이 편의점 점원이 되고 있다”고 통박했다. 쓸쓸하고 또 쓸쓸해서 애써 무시했던 문장이다. 그 대목이 이 순간 왜 돋을새김 되는지 모르겠다. 학교가 교육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점포로 전속력으로 전락하는 중인지. 교사는 그 점포의 시간제 점원이 되고 있는 것인지. 김영란법, 학폭법 등 온갖 미명의 제도가 교단의 마지막 경의(敬意)마저 거둬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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