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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의 사회면] 재활용의 첨병, 넝마주이

    [그때의 사회면] 재활용의 첨병, 넝마주이

    ‘비닐 대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던 시절 쓸 만한 쓰레기를 대신 수거해 주는 일꾼이 넝마주이였다. 넝마는 낡고 해어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 이불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넝마주이는 등에 싸리나무나 대나무로 짠 커다란 망태기를 메고 쇠집게로 폐지나 빈병 등 고물을 주워 담아 팔며 살았다. 지금은 처치 곤란인 비닐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커다란 망태기를 ‘치룽’이라고 한다. 쓰레기 재활용에 큰 역할을 해온 넝마주이가 나쁜 인상을 남긴 것은 범죄에 쉽게 휩쓸린 밑바닥 인생이라는 관념 때문이었다. 실제로 넝마주이들은 여염집에 널린 빨래나 생선 등을 훔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 넝마주이들은 이른바 ‘왕초’ 휘하에서 갈취를 당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넝마주이를 ‘양아치’라 부르며 비하했다. 울던 아이도 ‘넝마주이가 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그런 넝마주이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고 등록제를 시행한 것은 5·16 쿠데타 직후였다. 겉으로는 넝마주이의 공익성을 인정하고 취업을 보장한다는 명분이었다. 사회적 문제 집단인 이들을 선도하고 갱생시키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군사정권은 시ㆍ도별로 넝마주이 등록제를 실시, 지정된 복장과 명찰을 달고 지정 구역 안에서만 일을 하도록 했다(동아일보 1961년 6월 17일자). 1961년 6월 등록 기간에 등록한 넝마주이가 서울에서는 882명이었다. 다음달 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넝마주이 882명의 취업식이 열렸다. 검은색 제복에 푸른색 모자, 명찰을 단 넝마주이들은 이름도 폐품 수집인으로 바꾸고 ‘산업경제에 이바지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경향신문 1961년 7월 1일자). 부산에서는 국립대 영문과를 나와 통역장교를 지낸 30대 남자도 등록된 넝마주이에 포함돼 있었고, 정부의 유도로 상당한 돈을 저축해 자활의 길을 걸었다(동아일보 1961년 12월 4일자). 이듬해 ‘근로재건대’란 이름의 조직 체계도 갖추었고 1972년 5월 창립 10주년 행사를 열기도 했다. 넝마주이 자활정책은 그 뒤에도 이어졌지만, 범죄 연루는 끊이지 않았다. 넝마주이는 1980년 국보위가 사회악의 하나로 지목하면서 상당수 넝마주이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로 사실상 사라졌다. 광주 민주화항쟁 때는 연고 없는 넝마주이가 다수 희생됐고 사망자 통계에도 빠졌다는 주장도 있다. 넝마주이가 엿장수와 함께 완전히 직업을 잃은 것은 1990년대 중반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가 시행되면서다. 사라졌다지만 따지고 보면 넝마주이는 사라진 게 아니다. 생활고로 폐지를 모으는 노년 세대가 사실상 그 자리를 이어받은 현실은 더 씁쓸하다. 사진은 1961년 열린 넝마주이 결단식 모습(출처: 국가기록원).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박현갑의 틈새보기] 수문장 교대식과 대한문 화단의 비밀

    [박현갑의 틈새보기] 수문장 교대식과 대한문 화단의 비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자 추모를 위한 분향소와 천안함 용사 추모 분향소 등 보수·진보단체 천막들이 있다. 보수와 진보간 ‘불안한 동거’현장이다. 그런데 조만간 이런 모습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서울시에서 2013년 대한문 앞에 집회를 차단할 목적으로 만든 화단을 철거하기로 했다. 현재 대한문 앞에는 삼각형과 마름모꼴로 된 8개의 미니 화단이 들어서 있다. 전체 화단 폭은 약 5m로 원래 보행로의 절반 정도다. 철거는 이 화단때문에 다니기가 불편하다는 시민들의 민원해소를 위해서다. 특히 대한문 앞에서 있는 수문장 교대식을 보려오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불편이 많다고 한다. 대한문 앞에선 하루 3차례씩 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재현되는데 많을 땐 하루에2000명의 관광객이 찾는다.서울시 관계자는 6일 “중구청에서 화단을 없애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화단을 철거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시는 조경과 문화재 전문가 등으로 자문위원회를 꾸려 화단 철거를 논의할 예정이다. 철거한 공간은 의자나 그늘막 설치 등 시민 휴식공간으로 꾸미거나 보도 목적에 맞게 아무 것도 설치하지 않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화단 철거 이후 대한문 앞에서의 집회가 어떻게 될 지 주목된다. 시 관계자는 “현재 덕수궁 앞에 쌍용차 해고자 추모를 위한 분향소, 천안함 용사 추모 분향소 등 보수·진보단체 천막들이 들어서 있어 이들 천막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화단 철거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두 집회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도로 불법점용 상태긴 하나 경찰에 집회신고를 했기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집회때문에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대한문 앞에서의 수문장 교대식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 사후 변상금을 부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면서도 “집회시위의 자유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견도 있어 고민”이라고 고충을 토로한다. 화단 철거를 계기로 대한문을 둘러싼 보수·진보간 이념충돌과 수문장 교대식 추진 뒷얘기를 짚어본다. 대한문은 노동투쟁의 현 주소 대한문 앞 화단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 집회가 한창이던 2013년 4월 만들어졌다. 2012년 4월 5일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에서 쌍용차의 부당한 정리해고 이후 숨진 24명의 조합원들을 추모하기위해 설치한 분향소와 농성용 천막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중구청에서 1년간 도로교통법 위반을 이유로 자진 철거를 요구하다 2013년 4월 천막을 강제 철거한 뒤,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울타리를 친 화단을 꾸몄다. 보도에서의 불법집회로 서울관광 명소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더 이상 불편을 줄 수 없다는 뜻도 있었으나 추가적인 분향소 설치를 막으려는 속내가 더 강했다. 하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다. 보수단체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때부터 박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를 대한문 앞에서 갖고 있다. 지금도 매 주말 집회를 연다. 게다가 지난 3일에는 6년 전 철거했던 쌍용차 해고자 추모 분향소도 다시 설치됐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평택시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김주중(48) 조합원을 기리기위해서였다. 김 조합원은 23세 때 쌍용차에 입사했으나 2009년 정리해고 사태 때 회사를 떠나야 했고 이후 생활고를 겪었다고 노조는 전했다. 2009년 쌍용차 해고사태 이후 해고자와 그 가족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번이 서른번째다. 문재인 정부는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약속했으나 아직 진척이 없다. 쌍용차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고종 퇴위 반대에서 박근혜 탄핵까지 대한문은 구한말 고종황제 퇴위를 반대하는 민중시위 등 항일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이동녕 이준 등 애국지사들을 중심으로 을사조약폐기 상소운동을 일어났다. 이준은 이 상소문을 짓고 대한문 앞과 서울 시내에서 일본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며 격렬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요즘말로 하면 탄핵 반대운동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촉구 촛불집회로, 박근혜 정부 때는 박근혜 탄핵 무효 집회가 잇따랐다. 왕궁 수문장 교대식도 집회방지용? 대한문 앞에서의 집회시위 방지를 위해 설치했던 화단와 마찬가지로 왕궁 수문장 교대식 또한 집회와 시위방지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건 시장 때다. 하루가 멀다하고 대한문 앞에서 계속되는 시위로 시장 등 본청 공무원들이 제대로 집중해서 업무를 보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오면서 당시 시에서 낸 아이디어가 수문장 교대식행사였다. 덕수궁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명분이었으나 사실은 집회를 못하게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묘책이었던 셈이다.초창기 수문장 교대식에는 공익요원이 동원됐고 플라스틱 창으로 된 무기를 들고 교대하는 등 엉성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반응이 좋으면서 지금은 경찰청의 기마까지 동원하고 전문 업체에 맡겨 교대식 행사를 재연하고 있다. 대한문 앞에서 시작해 서울시청 앞 광장을 거쳐 경복궁으로 가는 행렬도 있다. 영국 버킹엄 궁전 앞 근위병 교대식을 흉내낸 것이다. 아쉬운 점은 교대식 행렬이 아스팔트 도로의 차량 행렬 사이를 빠져가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의 전통 행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좋으나 우리 환경에 맞는 교대식 행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황성기의 시시콜콜] 구매냐 임차냐, 그것이 골치인 전용기

    [황성기의 시시콜콜] 구매냐 임차냐, 그것이 골치인 전용기

    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레이놀즈는 20세기 발명품인 정상회담이 대량 살상무기(WMD)와 매스미디어, 비행기라는 3종 세트의 출현에 의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비행기가 없었다면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열린 북한과 미국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가능했겠는가. 싱가포르는 평양에서 5000㎞, 워싱턴이라면 5600㎞ 떨어져 있다. 산 넘고 바다 건너 가려면 몇 날, 몇 일이 걸릴지 모른다. 시속 40㎞인 여객선을 탄다면 6일 정도 걸리는 거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별 피곤한 기색도 없이 만나 세기의 악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시속 1000㎞에 육박하는 비행기 덕택이다.  세워 두는 시간 더 많은 ‘돈 먹는 하마’, 전용기 대통령 전용기라는 게 정상회담, 혹은 다자간 정상회의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띄울 일이 없는 ‘돈 먹는 하마’이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은 국토가 넓어 국내 이동에도 전용기를 쓰고 있지만, 고속전철로 일일생활권에 있는 한국, 일본과는 사정이 다르긴 하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쓰고 있는 보잉 747-400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대한항공과 1421억원을 들여 5년간 임차 계약을 맺어 전세기 형식으로 쓰고 있다. 한 해 280억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대통령의 정상회담 때 드는 항공유 등은 별개다. 대통령 전용기의 운영 주체가 공군이란 점에서 ‘공군 1호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대한민국에 공군 2호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대통령이 타면 호출부호인 콜사인(call Sign)을 대한민국 에어포스원(Republic of Korea Air Force One)이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선진8개국(G8)은 대체로 전용기 구입해 운용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정상의 전용기를 둘러싼 논란은 예외 없이 빌려 탈 것이냐, 국가가 사들여 운용할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국방부는 2020년 3월 임차 계약이 끝나는 대통령 전용기를 신형으로 교체해 임차하는 방안을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때 구입을 검토했지만 야당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는데 비행보다 주기장에 세워두는 시간이 더 많은 전용기를 구입해 운영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한 대에 수천억원씩 하는 비행기를 구입해 한 해 수백억원의 유지관리비를 쓰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 8개국(G8)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G8 외에는 브루네이, 카타르 등 손꼽을 정도다. 우리도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구입 운용이 맞지만, 정쟁의 불씨가 되기 때문에 여간해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이다.  한국, 미국, 일본이 동시에 전용기 교체 미국은 지금의 대통령 전용기인 VC-25(747-200B 개조형)가 수명을 다해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이다. 1990년에 조지 부시 대통령을 태우고 첫 비행을 했는데, 후속 기종을 보잉 747-8로 결정하고 기존 2기에서 3기로 늘려 발주도 해놓은 상태다. 올해 1호기를 미 공군이 넘겨 받아 시험비행을 거쳐 2023년부터 대통령을 태운다는 계획이다.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 재선에 성공하면 트럼프는 새로운 에어포스원에 탈 수 있게 된다.일본은 1991년 대미 무역흑자를 줄일 셈으로 정부전용기(보잉 747-400) 2대를 360억엔에 사들였는데, 1993년 운용을 시작한 것이라 내년 퇴역을 앞두고 있다. 후속 기종으로는 보잉 777-300ER을 주문해 올해 중으로 인도를 받아 2019년부터 운항한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미국 국무부처럼 외무상 전용기로 세계를 누비며 외교를 해야 한다며 구입해 달라고 주장하지만, 예산을 쥐고 있는 재무성에서 눈 하나 꿈적하지 않는다. 세금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기 싫어서이다.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공양미 3㎏/서동철 논설위원

    문화유산 분야를 취재하다 보니 절에 갈 일이 많고, 불교에 대한 애정도 생겼다. 그럴수록 제법 역사가 쌓인 기독교의 성소(聖所)들도 이제는 어떻게 의미 있는 문화유산으로 부각시킬 것인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일본의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숨겨진 기독교 관련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을 듣고 부러웠다. 어쨌든 불교신자라고 할 수는 없으니 절에 가도 시주를 하거나 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난주 출장길에는 좀 생각이 달라졌다. 암자는 해발 400m쯤에 있다고 했다. 차에서 내려 2㎞ 남짓 등산을 해야 한다. 마트에 들러 1㎏짜리 쌀 세 봉지를 샀다. 그저 깊은 산속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암자로 가는 능선은 가팔랐다. 불과 몇 줌밖에 되지 않는 배낭의 쌀도 처음에는 부담이 없었지만, 갈수록 조금씩 무게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등산과는 담을 쌓았으니 그럴 수밖에…. 간신히 암자에 닿았다. 불전에 올려놓은 손바닥만 한 쌀 세 봉지는 초라했다. 그래도 뭔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코르셋’ vs ‘찐따’ 교복/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코르셋’ vs ‘찐따’ 교복/황수정 논설위원

    4~5월쯤 동네 옷수선점에는 난데없는 ‘007 실랑이 작전’이 벌어진다. 중·고교생 딸을 둔 엄마라면 몸소 겪어 봤거나 십분 공감할 풍경. 아이 몰래 엄마는 교복 치마 길이와 통을 1㎝라도 늘려 달라고 맡기고, 이를 귀신같이 알아차린 아이는 다음날 득달같이 줄인다.여학생 교복이 여론의 입길에 올랐다.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불편한 교복을 수술해서 입는” 학교 현실을 언급하면서 불이 붙었다. 여학생 교복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연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쌓이고 있다. 여성 인권이 사회 이슈로 크게 부각되면서 여학생 교복이 여론의 중심부로 깊숙이 들어온 셈이다. 학교와 가정에서는 한 번도 꺼진 적 없는 갈등의 불씨가 사실은 교복이다. 맹추위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여학생들의 짧은 교복 치마는 학부모들에게 원성의 대상인 지 오래다. 엄마들 사이에서 악명 높기는 여름 교복이 더하다. 제대로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게 딱 달라붙은 여학생 셔츠와 통 좁은 치마는 ‘감옥’이다. 최근 부산의 한 여중학교에서는 학교의 속옷 규제에 항의하는 집단 시위도 있었다. 상의 아래 입는 속옷을 흰색으로만 통일하라는 교칙에 학생들은 인권침해라고 반발한 것. 셔츠의 품이 넉넉했다면 애초에 논쟁거리가 될 수도 없는 문제였다. 더 짧게, 더 좁게 ‘라인’을 강조하는 대형 교복업체들의 경쟁은 해마다 치열하다. 배꼽을 간신히 덮는 짧고 좁은 상의는 어느 업체할 것 없이 마케팅 포인트다. 최고의 남녀 아이돌 스타들에게 무대 의상처럼 ‘핏’을 살려 입힌 교복 광고는 업계의 공식이 됐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몸에 붙어)좀 불편해도 핏은 ○○○브랜드가 최고”라는 말이 정설로 굳었을 정도. 학교가 공동구매 업체로 지정한 업체의 교복 대신 핏이 예쁜 특정 업체의 것을 비싼 가격에도 사겠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광고 속 아이돌처럼 미니스커트로 줄여 입는 것은 기본. 무릎 위로 아찔하게 줄여 입는 유행을 혼자 무시했다가는 학교에서 “찐따”로 놀림받기 일쑤다. 현실이 이렇다. 교사들은 “몸에 붙는 스키니 교복이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유행 코드다. 일일이 단속하자면 수업을 못 할 지경이어서 손 놓고 있다”고 푸념한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교육부가 일선 교육청으로 “학생 눈높이의 편한 교복을 입히자”고 부랴부랴 주문했다. 다수 교육감은 편한 교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발 늦었지 싶다. ‘코르셋 억압’을 견디는 동안 체육복까지 줄여 입는 교복문화가 십대의 체질로 굳어 버린 것 같으니. sjh@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교정직원 눈높이로 재구성한 ‘높으신 그분’들의 감방생활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교정직원 눈높이로 재구성한 ‘높으신 그분’들의 감방생활

    전직 대통령 둘이 한꺼번에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재임 중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구치소에 각각 수감 중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포함해 네 명째다. 앞뒤 대통령이 나란히 수감생활을 한다는 점에서는 전·노 두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불행한 역사다. 어떤 이는 분노하고, 어떤 이는 안타까워한다. 지지 여부를 떠나 투표로 뽑은 대통령이 구속돼 있는 것을 보는 국민은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들을 단죄하는 것은 ‘신상필벌’과 ‘법 앞에 평등’이라는 원칙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의 수감생활을 두고 ‘특혜’라거나 ‘스위트룸’에서 감옥생활을 한다는 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옥생활을 힘겨워한다. 불면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법무부와 구치소 등 교정당국과 변호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교정직원의 시선을 빌려 ‘높으신 분’들의 감방생활을 재구성해 봤다. sunggone@seoul.co.kr■수인번호 716의 생활 고정식 사이클 40분 타는 분…못 먹고 못 잔다는 보고 없어 그날 나는 밤늦게까지 그분(77)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 교도소가 이전한 이후 가장 고위급 수감자이자 논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3월 22일 영장이 떨어졌지만, 그분이 들어온 시간은 다음날인 23일 0시 3분이었다.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단독실도 준비해야 했고, 검찰의 수사를 위해서 조사실도 만들어야 했다. 10여명이 넘는 전담팀도 꾸려졌다. 구치소 직원들의 관심사는 그분이 제대로 잠을 자고, 먹는가였다. 전직 대통령들은 물론 대부분 수감자는 첫날 잠을 잘 못 잔다. 그러나 그분이 그날 밤잠을 못 잤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생각보다 적응을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석 달이 넘게 지난 지금 그분의 감방생활을 보면서 당초 내 판단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 재판정에 들어설 때도 교정직원의 부축을 받고, 벽에 손을 기대는 등 건강이 우려할 정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감방생활을 잘할 것으로 봤던 내 예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지는 모르겠다. 그분은 지난달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구치소에 와서 지난 두 달간 잠을 자지 않고도 살 수 있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면서 구치소 생활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건강 문제로 필요할 때만 출석하겠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냈지만,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판을 강행하자 법정에서 한 얘기란다. 이를 두고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 보도도 있었다. 둘 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분이 하루만 밥을 안 먹어도 구치소는 난리가 난다. 바로 ‘불식(不食)보고’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며칠 굶었다는 보고는 아직 한 번도 없었다. 하물며 3일씩 식사를 못 했다니…. 그분의 입이 짧은 것은 맞다. 집안 내력으로, 위장장애가 있단다. 언론에 나온 얘기다. 실제로 밥을 남긴다. 재판을 앞두고는 특히 그렇다. 그래도 불식은 아니다. 그분은 바쁘다. 아침에는 변호사가 면회를 오고, 오후에는 김윤옥 여사와 아들, 딸 등 가족이 돌아가면서 면회를 온다. 가끔은 특별면회를 오는 분들도 있다.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거기에 재판에도 나가야 하니 하루가 짧다고 할 수도 있다. 운동은 걷기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구치소에 온 기증 물품 가운데 고정식 사이클이 몇 대 포함돼 있어서 그분이 계시는 곳에도 한 대가 설치됐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목격됐다. 일반인과 공용인데 일반 수감자가 타지 않을 때 탄다. 시간은 대부분 40분 안팎이다. 그 나이에 테니스를 친다더니 운동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같은 구치소에 있는 최서원(최순실)씨도 자전거를 가끔 탄다. 건강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심각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원래 당뇨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다녀오라고 해도 그분의 말처럼 ‘특혜’를 받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인지, 견딜만 해서인지 안 간다. 그분은 동부구치소의 가장 높은 12층 단독실에 있다. 단독방 수감자들은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는데 그분은 방에 책은 쌓여 있지만, 거의 보지 않는다. 유일하게 읽는 책은 성경이다. 대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쓴다. 아마 재판을 준비하는 것 같다. 나중에 책을 쓰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변호인과 숙의해 재판에서 반전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는 느낌도 받는다. 역시 그분은 쉽게 포기하는 분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재소자들은 수감 중 몇 번씩 수감 태도가 바뀐다. 최초 입감 때의 예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처럼 이 예상도 안 맞을 수 있다. ■수인번호 503의 생활 하루 10~20통 편지 받는 분…억울해선지 요통 탓인지 꼿꼿 1년 4개월 전에 이곳에 온 그분(66)은 요즘 감방생활이 자리를 잡아 가는 듯하다. 면회도 사절하고, 재판도 거부하면서 일체의 외부 접촉을 하지 않는다. 서울구치소 3평짜리 독방에서 그분은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1시간쯤 걷기 운동을 하고, 가끔 체조를 하지만, 격한 운동은 하지 않는다. 허리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그분이 왔을 때 감방생활을 견뎌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여성인 데다가 임기 중 탄핵을 당해 수감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은 자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러다가 쓰러지지….”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내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한다. 동부구치소에 있는 또 다른 그분보다 훨씬 감방생활에 적응을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1년 4개월이라는 수감생활을 통해 나름의 방식을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책은 많이 읽는다. 초기 ‘꼴’, ‘바람의 파이터’ 등 만화를 즐겨보기 시작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일본의 대하소설 ‘대망’, 박경리의 ‘토지’, 김주영의 ‘객주’, 이병주의 ‘지리산’과 ‘산하’ 등 소설을 읽다가 요즘은 체조 등 건강 관련 책도 본다. 초기에는 이런저런 요구도 많았다. 지금은 체념한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침대다. 요통이 있으니 침대를 넣어 달라고 했다가 거부당했다. 이는 특혜로 비치기 때문이다. 구치소에서는 수감자에게 특혜를 베풀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식사는 대부분의 범털 재소자들이 그렇듯이 많이 먹지 않는다. 3분의1쯤 먹고 남긴다. 그러나 거른 적은 없다. 짠 음식을 싫어해 김치도 씻어서 먹는다. 잠은 자다가 깨는 경우가 많다. 요통 때문이라고 하지만, 수면 문제는 담당 직원도 쉽게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대부분 허리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27일에는 허리 때문에 서울성모병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5월 9일에 이어 두 번째다. 발가락을 다쳐서 다녀온 적도 있으니 그분은 그래도 병원 출입은 잦은 편에 속한다. 얼굴은 주기적으로 부었다가 빠졌다가 한다. 허리 외에도 뭔가 더 이상이 있다는데 알 수는 없다. 그분이 죄수복을 입은 모습뿐 아니라 이런 얼굴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글을 쓰는 것은 그의 주요한 하루 일과 중의 하나다. 어디선가 그가 수필가로 등단했던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직접 쓴 글을 보지는 못했다. 높으신 분들이 그렇듯이 나중에 회고록 등 책을 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해서인지, 자세는 꼿꼿하다. 동료 얘기를 들으니 동부구치소에 계신 그분의 측근이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김 전 비서실장은 감옥생활을 제법 잘하지만, 일반인과 섞이는 것은 싫어한다. 대신 최서원(최순실)씨는 뜻밖에 일반 재소자들과 잘 섞여 지낸단다. 이곳에서는 그 정도는 범털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특혜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분은 재판도 거부하고, 유영하 변호사 등 변호인단을 몇 번 만난 외에는 외부와 단절했다.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부부나 박근령씨 등의 접견도 거부하고 있다. 텔레비전은 보지만,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세상 소식은 하루에 10~20통쯤 오는 편지를 통해서 얻는다. 그 정도로 세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재판이 종료되면 어떤 변화를 보일지 알 수 없지만, 다른 구치소에 있는 분보다는 쉽게 적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예우이자 안전 문제로 1인실, 일반인과 달리 10여명 전담팀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예우이자 안전 문제로 1인실, 일반인과 달리 10여명 전담팀

    전직 대통령은 감옥 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까. ‘범털’(죄수들의 은어로, 거물급 수감자) 중의 범털이라는 전직 대통령인데 일반인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리는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인의 시각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나 형 집행에 관한 법률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감 기준은 없다. 하기야 대통령 구속을 전제로 규정을 만드는 것은 좀 우습기는 하다. 1인실을 주고 거실을 따로 주는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지만 안전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다인실에 수감하거나 일반인과 만나게 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어서 1인실에 두고, 일반인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운동시간과 이동시간을 잡는다”면서 “식사나 도서신청, 운동은 모두 똑같다”고 말했다.●여인숙과 모텔… 구치소마다 시설 차이 전직 대통령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독거실(독방)에 수감된다. 특혜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긴 수감생활에는 독방보다는 다인실(혼거실)이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전직 대통령의 독방과 다인실은 천양지차다. 서울구치소 기준 4인실은 8.48㎡(1.35평), 6인실은 12.75㎡(3.86평)지만 보통은 1~2명씩 더 수감한다. 반면 전직 대통령은 13~22㎡ 안팎의 독실을 쓴다. 안양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21㎡(6.47평)와 22㎡(6.6평)의 독거실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08㎡(3평),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13.07㎡(3.96평)의 독방에 각각 수감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독방이 이 전 대통령 독방보다 작은 것은 임기를 마치지 못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시설이 협소하고 오래된 구치소 여건상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는 게 교정 당국의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이 있는 동부구치소는 2017년 신축 이전해 건물과 시설이 새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게다가 12층에 수감 중이다. ‘펜트하우스’에서 수감생활을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2017년 3월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어서 두 전직 대통령을 한곳에 수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이 동부구치소에 수감되면서 혜택(?)을 본 것이다. 텔레비전과 샤워실, 화장실, 식탁 겸 책상, 싱크대, 청소용품, 사물함 등은 일반 수감자와 같지만, 다른 점은 혼자 쓴다는 것이다. 여인숙과 모텔의 차이쯤 될까. ●“716 이명박씨” “503 박근혜씨”로 불려 전직 대통령은 일반 수감자와 달리 전담팀이 꾸려진다. 대략 10~15명쯤 된다고 한다. 이들은 전직 대통령의 안전은 물론 각종 수발을 한다. 전직 대통령의 동향 등이 밖으로 잘 새어 나가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호칭은 수인번호를 부르는 게 원칙이지만, 대부분 ´716번 이명박씨’나 ‘503번 박근혜씨’처럼 수인번호 뒤에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 과거에는 오랜 수감생활로 친해지면 개인적으로 만나면 ‘각하’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단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감방 내에서도 통 크게 놀아서 교도관들로부터 인기가 제법 높았다고 한다. ●라면·간식 등 특별식사? 보는 눈이 많다 식사는 일반 수감자나 전직 대통령이나 같다. 영치금으로 간식 등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똑같다. 독방인 만큼 밤에 라면이나 다른 간식을 시켜 먹을 수 있지만, 이는 금기사항이다. 밤에 식사 수발 등은 같은 일반 수감자가 교도관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자칫 이들이 소문을 내면 특혜를 베푼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침·운동·면회는 일반 재소자와 같아 재소자들은 오후 5시면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오후 9시면 취침을 해야 한다. 기상은 보통 오전 6시다. 전직 대통령이라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1일 45분이 기준이다. 면회도 장소변경 면회(특별면회)는 주 2회, 일반 면회는 하루 1회, 변호사 접견도 일반 재소자와 같지만, 일반인과 접촉을 피한다는 원칙에 따라 운동시간 등에서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sunggone@seoul.co.kr
  • [길섶에서] 메멘토 모리/이두걸 논설위원

    요즘 유독 병원행이 잦다. 십수년간 투병을 이어 온 부친의 병세가 악화된 탓이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입원 생활 중이다. 병실의 풍경은 여전히 생경하다. 소독약과 노쇠의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는 삶과 죽음이 매 순간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움켜쥐는 것보다 내려놓는 게 익숙한 이곳에서 생명의 시간은 각자의 속도로 자정을 향한다.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맞닥뜨리는 한여름의 햇살은, 그래서 더욱 비현실적이다.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작품을 원작으로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축제’는 호남 지역의 장례 모습을 담담히 비춘다. 수많은 인연과 사연으로 얽히고설킨 인물들은 노모의 죽음을 매개로 모이고, 결국 해원(解怨)의 순간을 맞는다. 한 사람의 사그라듦이 남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처럼 우리 전통에서 죽음은 내세(來世)에서의 또 다른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완전무결한 ‘없음’이자 새로운 ‘있음’의 시작이다. 그러기에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는 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투를 견뎌 내겠다는 다짐이자, 근거다.
  • [씨줄날줄] ‘빼박캔트’ FFVD/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빼박캔트’ FFVD/황성기 논설위원

    복잡다단하고 다양해진 오늘날을 살아가자면 약어(略語), 즉 줄임말을 몰라서는 바보 되기 십상이다. 약어 그깟것 모른다고 일상생활을 꾸려 가는 데 지장은 없지만, 대화를 하거나 신문이나 방송을 접할 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사 약어가 튀어나오면 순간 이해불능의 상태에 빠지기 쉽다. 전 국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된 카톡 같은 데서 쓰는 수고를 줄이거나 읽는 상대방을 배려할 때 혹은 시대에 뒤처진 인간이 아님을 과시하기 위해 약어나 신조어를 날리는 일이 적지 않은데, 받는 쪽에서 약어를 모르면 당황하기 일쑤다. ‘빼박캔트’가 그렇다. 필자도 잘 몰랐지만 10대 자녀나 조카를 뒀다면 귀동냥했을 법하다. ‘빼도 박도+못한다(can’t)’의 한글 영어 약어 조합이란다. ‘아재’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알아 둬야 할 10대 신조어’에 올라 있다. SNS에서 대화할 때 알겠다는 ‘오케이’가 자음만의 조합인 ‘ㅇㅋ’ 혹은 ‘ㅇㅇ’가 된 지 오래다. 미국에서도 SNS 대화 때 알았다(I see)가 ‘IC’, 행운을 빈다(Good Luck)가 ‘GL’로, 약어가 일상화돼 있고 이런 줄임말은 전 세계 공통의 현상이 됐다. 바쁜 세상에 가급적 줄여 말하는 걸 나쁘게 말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하지만 약어가 너무 자주 바뀌거나 하면 헷갈리고 따라잡기도 어렵다. 나아가 약어를 바꾸는 배경에 의심도 생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우리의 눈과 귀에 익숙해진 게 불과 몇 달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의 며칠 전 발표에서는 CVID가 어느새 ‘FFVD’로 바뀌었다. ‘최종적이고(final) 완전하게(fully) 검증된(verified)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뜻이다. 그게 그거 같은데 아마도 바꾼 의도가 있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CVID를 못 넣은 비난이 트럼프 행정부에 쏠리자 물타기로 바꿨을 수 있다. CVID보다 조금 센 영구적(permanent)인 PVID를 주장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 방문길에 오른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일정을 ‘향후 2년 반’이라고 했다. 최근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비핵화는 1년이면 된다고 더 나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술 더 떠 “우리는 (비핵화) 시간표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사자 북한이 많이 헷갈릴 것 같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데 빼도 박도 못할 ‘빼박캔트 비핵화’를 이뤄 한반도 평화가 달성되면 더 할 나위 없겠다.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약어도 정리하고 시간표(time line)도 분명히 했으면 한다.
  • [길섶에서] 비 오는 밤 택시/황성기 논설위원

    잠시 그친 장맛비가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오니 다시 내린다. 버스를 기다렸더니, 생각하지도 않던 빈 택시가 온다. 밤 10시에 비 오는 날의 빈 택시가 웬 횡재냐 싶다. 무작정 손을 든다. 대부분의 택시 운전사들이 그렇지만, 75세라는 이분도 말이 청산유수 같다. 19살에 대처로 나와 트럭 운전대를 잡은 게 인생을 결정했단다. 30살에 택시 회사에 들어갔다가 40살에 개인택시를 장만하고 두 딸을 키우고 지금은 혼자 편히 산다고 했다. 어느 시인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농민에게 논밭, 어민에게 바다인 것처럼 이분은 길이 키운 셈이다. 방방곡곡을 누볐을 법한데 그렇지 않단다. 서울 택시 규정상 서울은 물론 광명시, 위례신도시, 인천공항, 김포공항에 무조건 가야 하지만 그 외 지역은 승차 거부가 허용된다고 한다. 지방은 잘 다니지 않아 서울 길에만 밝단다. 비 내리는 밤, 택시 잡기가 왜 힘든지 아느냐고 내게 묻는다. 우물쭈물하자 “사고 낼까 봐 택시가 안 나오기 때문”이라는 설명. 비 오는 밤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게 45년 택시를 몬 그분의 결론이다. 그젯밤은 운이 좋았다. marry04@seoul.co.kr
  • [씨줄날줄] 기내식 대란/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기내식 대란/이순녀 논설위원

    가끔 기내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지상에서 미리 조리한 음식을 데우기만 하는 기내식이 아무리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겠는가. 그러니 정확히는 기내식이 아니라, 기내식이 제공되는 장거리 비행에 대한 욕구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로 향하는 행복한 여정의 첫 식사인 기내식은 맛을 떠나 그 자체로 ‘하늘 위 별미’가 아닐 수 없다.세계 최초의 기내식은 1919년 핸들리 페이지 항공사가 런던~파리 노선에서 제공한 스낵 박스로 알려져 있다. 샌드위치, 과일, 초콜릿 등을 종이 상자에 담아 나눠줬다고 한다. 100년 역사지만, 항공기에 조리 기구를 둘 수 없는 현실적 제약과 소화 흡수가 잘되는 저칼로리 음식 위주의 한정적인 식단 때문에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만한 건 별로 없는 듯싶다. 그럼에도 기내식이 회사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항공사마다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려고 다양한 메뉴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항공이 1998년에 처음 선보인 비빔밥과 아시아나항공이 2007년부터 제공한 영양 쌈밥이 대표적이다. 둘 다 항공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국제기내식협회의 머큐리상을 수상해 기내식에서도 한식의 명성을 드높였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 여행객이 급증하는 가운데 난데없는 ‘기내식 대란’으로 소란스럽다. 지난 1일부터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항공 수십 편이 기내식 공급 차질로 출발이 지연되거나 기내식 없이 운항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여파가 커지자 기내식 협력업체의 대표가 심리적 압박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회사 안에 기내식 사업부를 둔 대한항공과 달리 아시아나항공은 2003년 기내식 사업부를 없애고 독일 루프트한자와 합작해 LSG스카이셰프코리아를 만들었다. 이후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왔지만 지난해에는 연장을 하지 않았고, 지난달 30일로 계약이 만료됐다. 아시아나항공이 새로 계약한 게이트고메코리아는 중국 하이난항공그룹 자회사 게이트고메와의 합작회사로, 아시아나항공이 지분 40%를 갖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 3월 인천공항에 짓고 있던 공장에 불이 나면서 중소업체인 샤프도앤코와 3개월 단기 계약을 맺은 게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다. LSG스카이셰프코리아는 재계약 논의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이 1600억원 투자를 요청했고, 이를 거부하자 교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주장대로 정당한 절차였는지, 또 다른 형태의 갑질이었는지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coral@seoul.co.kr
  • [서울광장] 우리는 과연 단일민족이었나/김성곤 논설위원

    [서울광장] 우리는 과연 단일민족이었나/김성곤 논설위원

    그리스 아테네의 전성기 때 인구는 3만여명이었다고 한다. 신생국이었던 로마는 기원전 6세기 세르비우스 톨리우스 왕 시절 전체 인구가 8만 3000명이었다고 에드워드 기번은 그의 역작 ‘로마제국 흥망사’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런 로마는 기원전 130년경 동원할 수 있는 군사만 46만 3000명에 달했다. 반면 아테네의 인구는 2만여명으로 쪼그라든다. 왜 그랬을까. 로마는 시민의 기준을 로마의 성벽 안에 가두지 않고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이 붙자 적이든 노예든 로마에 보탬이 되는 것은 모두 수용하고, 시민권 혜택도 속주민에게까지 확대한다. 반면에 그리스인들은 쇠락해 가면서도 외부 문물에 대해 폐쇄적이었다. 이런 폐쇄성 때문에 인구는 줄고, 본토는 피폐해졌다.13세기 초 몽골의 인구는 100만명이었다. 칭기즈칸은 여기서 뽑은 10만명의 군사로 세계 정복에 나선다. ‘복종하면 민족도, 종교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인구 6000만명의 송나라를 정복한다. 세계사적으로 흥한 나라는 대부분 포용적이었다. 이민자들이 세운 미국은 앵글로색슨은 물론 유럽, 아프리카, 한국을 포함한 동양계까지 인종의 용광로다. 그들의 역동성은 오늘날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트럼프가 지금 반이민 정책을 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원상복귀할 것으로 본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이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난민이 아니라 제도를 악용해 난민으로 가장했다는 주장에서부터 탈레반이나 헤즈볼라 등이 숨어들어와 우리 사회에 테러를 가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반면 무턱대고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전쟁과 종교 등의 차이로 위협받는 약자를 보호하고,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소수다. 2013년 7월 1일부터 난민법이 발효됐지만, 우리는 난민 판정에 인색하다. 199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만 2733명의 난민 신청자 가운데 난민 판정을 받은 사람은 고작 706명(2.1%)에 불과했다. 올 들어 제주를 통해 입국한 예멘인 549명 가운데 486명이 제주출입국청에서 심사를 받고 있다. 나머지는 출국하거나 이미 제주도를 벗어났다고 한다. 아마 이들도 극소수만 난민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우리 사회는 또 양분돼 갈등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원칙이 정해졌으면 한다. 일제는 우리를 침탈했고, 나중에는 우리말과 문화 말살 정책까지 폈다. 수십만 명의 동포가 고국을 등지고 만주, 러시아, 심지어는 중앙아시아까지 난민으로 떠돌았다. 그때 저항 수단은 우리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기저에 남아 있는 것이 ‘순혈주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수천 년 역사를 통해 다양한 이민족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 민족의 30%가량이 귀화인이라고 한다. 한국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현재 한국의 성씨는 5582개에 달한다. 이 중 한국 전래의 성씨는 270여개에 불과하다. 최근 새롭게 추가돼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성씨도 4075개나 된다. 유전자 분석에서도 한국인의 피에서 중국과 몽골, 일본, 남방계의 DNA가 검출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우리를 복합민족국가라고 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민족주의 이론가인 르낭(1823~1892년)은 지구상에 순수한 종족이란 극소수에 불과하고 심정적 민족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난민을 받을 때 적법성과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법 위에 있는 것이 인권이다. 그 과정에 피부색이나 종교, 출신 국가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 시대는 변해서 우리는 세계화 속에 살고 있다. 수십 수백 명의 예멘 난민 때문에 우리 사회의 통합이 깨지는 것도 아니다. 설령 예멘 난민 때문에 우리에게 다소의 불편이 따르고 잃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춰서 얻는 이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젠 순혈주의의 틀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자. sunggone@seoul.co.kr
  • [씨줄날줄] 노점, 거리의 가게/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노점, 거리의 가게/박현갑 논설위원

    서울 동작구 노량진 사육신묘 맞은편 길이 270m에 달하는 ‘노량진 컵밥거리’는 지역 명소다. 이 일대 학원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인스턴트 음식 대신 저렴한 비용으로 밥을 해결하는 곳이다.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과 수험거리를 잇는 육교 밑에 몰려 있던 컵밥 노점에 ‘공시생’들이 몰리면서 기존 상인들과의 마찰 끝에 동작구 중재로 옮겼다. 컵밥거리는 구청 중재로 통행의 불편은 물론 노점상과 상인 간 갈등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지역상권 활성화도 도모한 상생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노점은 기본적으로 단속과 관리 대상이다. 허가받지 않은 불법 노점상들이 대부분이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10월 기준 7307개 노점 중 자치구로부터 도로점용 허가를 받고 영업 중인 곳은 1000여개에 불과하다. 노점은 도로 무단 점용도 문제이지만 음식물의 보관 상태나 원산지를 알 수 없다는 위생관리 문제도 있다. 노점은 자본주의 시대 갈등의 집약체다. 상인들에게는 세금도 내지 않고 손님을 빼앗아 가는 경쟁자다. 노점을 이용하지 않는 시민들은 보행권을 위협받는다. 시민 불편과 상인 민원 제기에 행정관청은 단속과 강제 철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치인에게는 포섭 대상이다. 언제든 강제 철거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선거철에는 단속의 손길이 느슨해서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푸드트럭’이 합법화됐으나 정작 혜택을 받은 쪽은 노점상이 아닌 푸드트럭 제작 업체와 공급 업체였다. 영업 행태가 노점과 별반 차이가 없으면서 시의 지원을 받는 업태도 있다. 서울 여의도와 청계광장,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문화비축기지, 반포한강공원 등 6곳에 마련된 야시장이다. 시에서 조성한 노점인 셈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주변 광장은 매 주말 야시장이 열리는데 노점 물품인 귀걸이·팔찌 등 액세서리부터 향초, 머그잔 등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한다. DDP 주변은 한류 관광객들의 관광 코스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은 기존의 오래된 전통 노점상은 단속과 탄압의 대상이 되지만, 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신흥 노점상은 보호 대상이자 홍보 대상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거리가게’ 허가제를 골자로 한 노점 합법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6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한다. 단속과 포용의 이중 잣대로 인한 논란을 접고 영세한 노점의 생계권은 보장하고 시민 보행권도 확립하는 세부시행 방안을 기대해 본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성평등 언어/이순녀 논설위원

    병아리 문화부 기자 시절 ‘여류 작가’라는 표현을 기사에 썼다가 선배에게 된통 혼이 났다. 그냥 작가라고 쓰든가 굳이 성별을 밝히고 싶다면 ‘여성 작가’라고 써야 옳다는 지적이었다. 여류(女流)는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성을 일컫는 말로, 남성들의 주류 문화와 구분하기 위한 폄하의 의미라고 선배는 설명했다. 창피함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 후 다시는 ‘여류’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가끔 남이 쓴 기사에서 이런 표현을 보면 고쳐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남편과 함께 죽지 못했다는 의미의 미망인(未亡人)도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성차별 언어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10건의 ‘성평등 언어사전’을 발표했다. 처녀작, 처녀비행처럼 별 생각 없이 관습적으로 써 온 성차별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에는 무릎을 쳤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 언어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또 한발 늦게 깨우친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바른 말글] 확률이 높다

    “현재 1승 1무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은 16강 진출 확률이 높다.” ‘확률이 높다’, ‘확률이 크다’를 혼돈해서 쓰는데 어느 게 맞을까. 대부분의 신문 기사는 예문처럼 전자를 택하고 있다. 수학에서 확률은 ‘0.5’, ‘1/4’처럼 숫자로 표시하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확률이 크다’로 써야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강수확률 50%’처럼 비율로 표시하기 때문에 ‘확률이 높다’를 더 많이 쓰는 듯하다. ‘합격률’처럼 비율을 나타내는 말은 ‘높다’로 쓰는 게 맞다. 그렇다면 생산성, 가능성, 정확성 등 ‘성’(性)이 끝에 붙은 단어들은? 가장 혼란스러운 단어가 가능성과 개연성이다. 가능성이 ‘크다’, ‘많다’, ‘높다’를 다 쓰지만 ‘크다’로 쓰는 게 맞을 것이다. 정확성과 생산성, 효율성은 ‘높다’가 어울린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민들레 영토/황수정 논설위원

    나이가 들면서 지인은 어딜 가나 구석 자리의 화분을 먼저 살핀다고 했다. 화분의 꽃이 조촐하고 이파리에 윤기가 도는 식당이라면 맛이 덜해도 다시 찾게 된다고. 주인장 말본새가 무뚝뚝해도 속정은 깊을 사람, 내놓는 밑반찬은 거칠어도 매사에 찰찰할 사람. 무턱대고 믿음이 간다면서. 어느 밥집 낮은 기와지붕 한켠에 잡풀이 오복했다. 도심에서는 꿈속같은 풍경이다. 기왓장 틈서리에 깨금발로 하얗게 뻗댄 것들은 개망초꽃. 주인이 게을러서 그냥 두고 본 게 아니다. 조붓한 마당가에는 달맞이꽃, 물망초를 다복다복 발 디딜 틈도 없이 가꿨다. 지붕을 가리켰더니 주인은 웃고 만다. 풀씨가 꽃이 되라고 기다려 준 그 마음이야말로 잘 차린 밥상이다. 우리 집에도 민들레 홀씨가 왔다. 베란다 화분에 멋대로 터를 잡았는데, 함부로 잡초라 부르지 못하겠다. “원래 내 자리”라고 따질지 모른다. 연못도 없는 아파트 뒤뜰에서 어쩌자고 개구리 ‘떼창’은 건너오는지. “고릿적부터 우리 영토”라고 여름밤 오기만 기다렸나. 발을 굴러 너는 울고, 미안해서 나는 웃고, 무진장 밤은 깊고. sjh@seoul.co.kr
  • [씨줄날줄] ‘재벌’의 공익재단/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재벌’의 공익재단/이두걸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1호 공익재단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6월에 출범한 양영회(현 양영재단)다. 삼양사 창업주인 김연수 회장이 사재 34만원을 내놓아 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공익재단 설립이 줄을 이었지만, 이때 공익재단은 탈세와 변칙 상속의 온상으로 지목되곤 했다. 2000년대 이후 설립된 공익재단 역시 불온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6년 ‘삼성 X파일 사건’ 이후 헌납한 8000억원으로 설립된 ‘삼성꿈장학재단’(옛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산을 출연해 만든 ‘청계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꿈장학재단은 삼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청계재단은 이 전 대통령의 상속을 위해 급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공정거래위원회가 1일 발표한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실태 분석 결과’는 우리나라 공익법인의 민낯을 보여 준다. 2016년 말 기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165곳은 자산의 22% 정도를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고, 이 중 약 74%는 계열사 주식이었다. 문제는 해당 계열사의 절반 정도가 총수 2세 지분이 있는 계열사라는 점이다. 공익법인들은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때 모두 찬성 의견을 던졌다. 재벌 총수들이 공익법인이 보유한 의결권 지분 중 5%는 상속·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공익법인을 경영권 승계의 지렛대로 악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은 2016년 2월 삼성물산 주식 200만주를 사들였다.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에 대한 실질적인 지분율은 16.5%에서 17.2%로 상승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사장인 정석인하학원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에 52억원을 출자했지만, 이 중 45억원을 다른 계열사로부터 현금으로 받아 충당했다. 이 과정에서 증여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공익법인은 증여세가 면제되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결과다. 이쯤 되면 공익(公益) 대신 사익(私益) 재단이 더 어울릴 지경이다. 공정위는 일본 등의 사례에 비춰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제한 등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국회에도 법률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하지만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못 잡는다’는 옛말처럼 제도 개선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본궤도에 오른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재벌 총수들이 사재를 내놓을 때 품었을 ‘선한 의지’를 자발적으로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선진국 한국에서 무리한 기대는 아니다. douzir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슬픈 보릿고개/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슬픈 보릿고개/손성진 논설고문

    1957년 5월 어느 날 서글픈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경남 거창발 기사의 내용은 양식이 떨어진 농민들이 ‘재강’, 즉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를 얻으려고 양조장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동아일보 1957년 5월 5일자). 기사는 군내 1만 5000여 가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8000여 가구의 농민들이 전년도의 흉작으로 양식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 세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보릿고개 풍경이다. 읍내 양조장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있고 40~50리(16~20㎞)나 떨어진 곳에서 찾아온 농민들도 있다는 절박한 사정이 기사에 담겨 있다. 급기야 농민들에게 재강을 균등하게 배급했다고 한다. 재강에 물을 타 모주를 빼낸 것을 술지게미라고 한다. 재강은 물론 술지게미에도 알코올 성분이 남아 있어서 먹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이들이 보릿고개 시기에 흔했다. 보릿고개는 한국전쟁 직후에 참혹할 정도로 심했다. 전쟁으로 농토가 황폐화됐고 남자들은 징병을 당해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해서 쌀 수확량은 크게 떨어졌다. 가뭄과 병충해로 인한 흉년이 겹치면 보릿고개는 절정에 이르렀다. 봄이 되면 양식이 떨어져 농민의 80%가 거의 굶어 죽을 처지에 놓였고 실제로 굶어 죽는 사람들도 많았다. 농민들에게 오뉴월은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시간이었다. 익지 않은 생보리라도 일찍 베어내 먹는 것은 오히려 사치였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목숨을 보전해야 하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졌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53년 4월 기사에 그런 내용이 있다. 경남 하동의 어느 마을에서 남녀 주민들이 모여 식량 대용으로 쓸 소나무 껍질을 벗기는 사진과 함께 아사 상태의 마을 사정을 전했다(※사진※ㆍ동아일보 1953년 4월 5일자). “초식으로 연명하는 군민들의 얼굴은 전부 퉁퉁 부어 환자 아닌 환자가 되고 있다”고 썼다. 오래 굶어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레지는 병을 부황병이라 했다. 농토가 부족한 울릉도나 흑산도 등 섬 주민의 고통은 더 컸다. 울릉도는 주로 오징어를 잡아 쌀을 사 먹는데 오징어가 안 잡히는 해는 대책이 없었다. 해초나 산나물을 강냉이와 끓인 멀건 죽을 먹었다. 산마늘의 다른 이름인 명이나물은 보릿고개 때 명(命·목숨)을 이어 주는 나물이란 뜻으로 울릉도 주민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1959년에 흉어(兇漁)가 들어 고립된 울릉도 주민들이 아사 직전에 내몰렸는데 세계 구호단체들의 긴급 식량 지원으로 아사를 모면했다(경향신문 1959년 2월 24일자). 정부는 쌀 증산을 독려하고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을 들여오며 혼분식을 권장했지만 1970년대 말에서야 식량 자급자족을 이루어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씨줄날줄] 더블린 조약/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더블린 조약/이순녀 논설위원

    소말리아 청년 아메드 압둘라히는 내전을 피해 수단, 리비아를 떠돌다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작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가까스로 도착한 곳은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에게 난민 신청을 위해 지문등록을 요구했다. 목숨을 걸고 조국을 탈출했으나 이탈리아에서도 고된 삶이 계속되자 아메드는 스웨덴과 핀란드로 넘어가 망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대답만 들었다. 그를 가로막은 것은, 유럽연합(EU) 역내에 들어오는 난민들이 처음 도착한 나라에서만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더블린 조약’이다. 번번이 지문 조회에 걸려 난민 지위 인정이 거부된 그는 유럽에 거주한 6년 내내 불법 체류자로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 아메드는 스웨덴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엠 더블린’(2015)의 실제 주인공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난민으로서 그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더블린 조약의 폐해를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더블린 조약은 1990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EU 12개국이 참여해 만들어졌고, 1997년 9월부터 발효됐다. 제3국 국민이나 무국적자가 난민 지위 신청을 할 경우 심사를 책임질 국가를 결정하기 위한 기준과 체계를 규정한 것이다. EU 내 특정 국가에만 난민 신청이 편중되는 현상을 억제하고, 회원국들이 난민 문제에 균등하게 책임을 지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유럽으로 몰리는 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더블린 조약을 둘러싸고 EU 국가들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난민들의 해상 이동 경로인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난민이 도착한 첫 국가가 난민을 책임져야 한다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28일(현지시간)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더블린 조약의 개정 등 난민대책 요구가 수용돼야 선언문에 서명하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이미 조율된 선언문 채택이 무산됐다. EU 내 희망하는 국가들에 난민 망명 신청을 처리할 난민센터 설치가 논의되고 있지만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달라 합의에 이를지는 미지수다. 독일은 다른 나라를 거쳐 온 난민에 대해 국경을 폐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동유럽국들은 난민 할당을 원천 거부하고 있다. 인권과 관용, 연대의 가치를 중시해 온 유럽 국가들이 서로에게 난민을 떠넘기며 빗장을 걸어 잠그는 상황에서 더블린 조약은 어쩌면 역설적으로 난민이 기댈 마지막 보루가 되지 않을까.
  • [길섶에서] 월드컵이 뭐길래/김성곤 논설위원

    기원전 브리타니아 정벌에 나섰던 로마군은 전투가 없을 때 공놀이를 했다. 이를 보고 배운 브리타니아인들은 AD 217년 ‘참회의 화요일’ 축제에서 로마군 격퇴 기념행사로 축구를 했다. 축구의 잉글랜드 기원설이다. 러시아월드컵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태극전사는 세계 1위 독일을 격파해 그간의 졸전을 잊게(?) 만들었다. 몸 사리지 않는 선수들, 화려한 개인기, 변화무쌍한 작전, 여기에 ‘내셔널리즘’이 가세하면 축구는 전쟁이 된다. 스타만으로도, 팀워크만으로도 안 되는 게 축구다. 몰입이 지나치면 광기로 변한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대표선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1969년 월드컵 예선 이후 5일간 전쟁을 벌였다. 나도 작은 전쟁을 치렀다. 잉글랜드와 파나마 경기가 있던 날 아내는 ‘나의 아저씨’를 몰아 보며 TV를 독점했다. “그건 이어 보기이고, 이건 생방송이잖아?”, “한국 경기도 아닌데 뭘 그래?” 화가 나서 컴퓨터에 방송앱을 깔았더니 리모컨을 내놓는다. 이건 내가 이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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