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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12살 가출소년 노렸던 경찰…기계처럼 일했어도 늘상 얻어맞아”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12살 가출소년 노렸던 경찰…기계처럼 일했어도 늘상 얻어맞아”

    “이런 상태로 지금까지 살아온 게 신기하다.” 이향직(48)씨가 수년 전 병원을 찾았을 때 정신과 의사가 했다는 말이다. 치료를 받기 전엔 옛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 숨도 쉬기 어려웠다는 이씨. 그는 1984년 14살 때 부산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3년 넘게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과 부모의 이혼, 복지원에서의 강제 노역, 출소 후 세상의 편견을 홀로 감내해야 했던 그의 48년 삶은 고도성장기에 가려졌던 한국 사회의 그늘과 야만적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씨와 동갑인 김학철씨의 인생 역정도 비슷하다. 12살 때 복지원에 끌려간 그는 “맞지 않고 기합받지 않으려고 시키는 대로 일만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얼마 전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대법원에 비상상고하라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함에 따라 사건이 세상이 알려진 지 30여년 만에 그 실체와 책임 규명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형제복지원에선 군사정권 시절인 1975~1987년 수만명이 수용돼 온갖 가혹 행위와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그 과정에서 수백명이 사망했다. 그중 상당수는 이향직·김학철씨 같은 아이들이었다. 경기 광주의 이씨 집 인근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어린 나이에 어떻게 복지원에 들어갔나. -이 부산에서 자랄 때 아버지의 폭력이 심했다. 어머니와 나 모두 많이 맞았다. 어머니가 견디다 못해 나를 데리고 몇 차례 도망가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결국 어머니가 몰래 혼자 나가셨고 아버지가 재혼했지만 폭력은 계속됐다. 나도 가출해 신문보급소에서 기거하면서 신문을 배달했다. 당시 아버지는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시장을 보러 가던 중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시장 보고 오면서 데려간다고 잠깐 파출소에 맡겼는데 경찰이 형제복지원에 들어가라고 계속 회유했다. 좋은 옷과 음식을 주고 학교까지 보내 준다고 했다. 집에 가면 다시 아버지에게 맞을 게 두려워 입소하겠다고 했다. 그때 경찰이 누군가에게 전화해 “됐으니 가져가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파출소에 간 지 1~2시간 만에 복지원으로 넘어갔다. 나중에 아버지한테 들으니 시장을 본 뒤 파출소에 들렀을 때 경찰이 “아이가 도망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경기도 광주에서 살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이혼했다. 재혼한 아버지와 새엄마 아래서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해 부산까지 내려갔다. 거기서 혼자 배회하는 걸 보고 경찰이 경찰서(부산진경찰서로 기억)로 데려갔다. 향직이와 마찬가지로 경찰이 온갖 사탕발림으로 회유했고, 결국 꼬임에 넘어가 복지원에 들어갔다. →당시 12살, 14살이었는데 어떻게 노역에 동원되었나. -이 처음엔 낚시점에서 파는 낚싯바늘 꿰는 작업을 했고 나이가 들자 목재 가공이나 미싱 작업에 투입됐다. 거의 기계처럼 일했다. 인근 교회 부지 공사 때는 돌이나 흙 나르기 작업도 했다. 원장(박인근·2016년 사망)이 “열심히 일해 기술을 익혀라, 적금 넣어 주겠다”고 했지만 돈은 한푼도 구경하지 못했다. 철골 작업을 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격증도 땄고 일부는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다시 돌아왔다. 몇 년 동안 외출·외박을 금지해 외부와의 모든 교류를 막은 탓에 밖에 나가도 적응이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원생들은 바깥세상 사정이나 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아이들에게 어떤 가혹 행위가 행해졌나. -김 복지원에 들어가자마자 폭력이 쏟아졌다. 작업하다가 맞지 않고 기합받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결핵 같은 병에 걸려 많이 죽었다. 병원에 제대로 못 가는 데다가 약도 별로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가 도망갔더라’, ‘누가 도망갔다가 잡혀 왔더라’ 하는 얘기가 자주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잡힌 사람은 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폭행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봉제공장에서 일할 때 조장에게 맞아 코뼈가 함몰되고 콧등이 찢어진 적이 있다. 코피가 쏟아지자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인제 그만 맞겠구나’ 하고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의무실에 가니 의사도 아닌 수용자 중 한 사람이 마취도 하지 않고 찢어진 부위를 꿰맸다. 당시 의무실엔 의사는 물론 간호사도 없었고, 비치된 약도 소독약과 소염제 등 서너 가지가 전부였다(얼마나 엉성하게 꿰맸는지 지금도 이씨의 콧잔등에 흉터가 뚜렷했다).→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출소했다. 그 후 삶은 어땠나. -이 집에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폭력이 무서워 다시 가출해 보석가공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 다락에 기거하면서 야간중학교(고등공민학교)에 다녔다. 그때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돈이 생기자 친어머니 찾기에 나섰다. 경북 어딘가에 산다는 것만 알고 경북 지역 읍·면사무소를 샅샅이 뒤졌다. 상주에서 한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황씨(어머니의 성씨) 집성촌인 어느 마을에 가게 됐고 거기서 물어물어 서울 사는 어머니를 찾게 됐다. 아버지의 폭력을 못 이겨 재봉틀 하나 들고 탈출해 서울 와서 미싱일을 하셨다고 했다. 둘이 손을 맞잡고 엄청 울었다. 지금도 의상실을 운영하신다. 어머니를 찾은 뒤 열심히 일해 보석가공 공장을 차렸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IMF) 사태가 터지면서 공장 부도로 모든 재산을 날렸다. 그후 경기도 광주에서 헌옷가게를 꽤 오래 운영했다. 하지만 또 사정이 안 좋아져 접고 야시장 노점을 하다 지금은 배달일을 하고 있다. 옷가게를 할 때 나처럼 집안 사정이 안 좋은 아이 둘을 데려다가 함께 살았다. 모두 검정고시를 준비해 공부하도록 도와줬고 지금은 결혼해 잘 살고 있다. -김 출소 후 서울 와서 봉제공장에 들어갔는데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 그후 간판일을 배웠고 정비공장에서도 일했다. 2001년 결혼도 했다. 지금은 반도체 장비 관련 일을 한다. 해왔던 일이 모두 밤늦게 끝나는 작업이라 공부는 꿈도 못 꿨다. 그래서 학력이 국졸이다. 만약 남들과 같은 집안에서 자라고, 교육도 받았으면 나도 정상적으로 성장했을 텐데 하는 마음이 항상 있다. 부모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연락을 끊고 살다가 아이들이 생기면서 명절 때는 찾아뵙는다. →복지원 생활로 인한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들었다. -이 언젠가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복지원 기억이 떠올려지면 숨도 못 쉴 정도였다. 몇 년 전 병원에 가니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 지금까지 살아왔느냐. 무사한 게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고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알고 지내는 복지원 출신 5~6명도 같은 증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보기엔 복지원 출신 대부분이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글 사진 sdragon@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강제노역·가혹행위로 12년간 551명 사망… 대검 비상상고 권고로 진실 규명 ‘한 걸음’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강제노역·가혹행위로 12년간 551명 사망… 대검 비상상고 권고로 진실 규명 ‘한 걸음’

    부랑인 관리 지침 근거로 3만명 입소 행정부 조직적 은폐로 원장 ‘면죄부’ 계류 중인 특별법도 제정 탄력받을 듯부산 형제복지원 참상은 정부가 원인을 제공했다. 1975년 부랑인 관리 지침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발령했고, 복지원은 이를 근거로 경찰과 공무원들이 부랑인으로 낙인찍은 이들을 입소시켜 선도라는 미명 아래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 참상이 세상이 알려져 폐쇄된 1987년까지 12년간 3만여명이 입소했고, 12년간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거리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연행되거나 기술을 배우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입소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형제복지원의 실상은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근무 중이던 김용원 검사(현재 변호사)가 울산의 한 공사장에 동원된 원생들의 노역 현장을 우연히 발견해 수사를 시작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법 감금과 강제 노역, 구타와 학대, 성폭행 등이 자행된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권력층의 외압과 행정 당국의 조직적인 은폐·축소로 복지원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최근 시의 관리 감독 소홀로 무고한 시민이 불법 감금돼 폭행과 강제 노역 등 참혹한 인권유린을 당했다며 복지원 사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사과했다. 당시 김용원 검사가 외압을 받으면서도 박인근 복지원장을 체포해 재판에 넘겼지만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고, 핵심 혐의인 불법 감금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따른 적법한 수용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 훈령 자체가 위헌·위법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에 대검 검찰개혁위원회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대법원 비상상고를 권고한 것이다. 비상상고가 받아들여져 대법원이 재심의 절차를 밟게 되면 당시 불법 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피해 생존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탄력을 받게 됐다. 특별법은 2014년 처음 발의됐지만, 심의를 미루다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6년 다시 발의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돼 있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돼야 진상 규명과 가해자 처벌, 피해자 지원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 이향직씨는 “특별법의 가장 큰 목적은 당시 야만적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이라며 “피해자 보상 등 금전 문제로 초점이 흐려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sdragon@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8) 백화점을 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인들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8) 백화점을 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인들

    ‘기획통’ 이동호 그룹 부회장은 정지선 회장의 최측근‘재무통’ 장호진 그룹 기조본 사장, 계열사간 ‘조정자 역할’‘영업통’ 박동운 현대백화점 사장, 신규사업확장에 진력   현대백화점그룹은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을 보좌하는 전문 경영인들이 각 계열사 대표를 맡는 책임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들어 본업인 백화점을 넘어 패션·가구·랜털 등 신성장 동력 먹거리 찾기에 분주하다.  이동호(62)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은 광주제일고와 조선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입사 이래 줄곧 기획과 재무 관련 업무를 맡아온 기획·재무통이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기획조정본부장 등을 두루 역임했으며, 지난해 그룹 부회장에 선임됐다. 그는 합리적인 판단력을 바탕으로 ‘선(先)안정 후(後)성장’ 기조 아래 추진되고 있는 M&A 전략과 조직문화 혁신 등 정지선 회장의 경영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측근이다.  장호진(56) 현대백화점그룹 기획조정본부장(사장)은 부산 동인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현대백화점그룹 내 대표적인 재무·관리통이다. 현대홈쇼핑 관리담당 이사,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장, 기획조정본부 부본장 등을 거쳤으며, 지난해 기획조정본부장에 올라 현재 계열사간의 조정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진주고와 부산대 사회학과를 거친 박동운(60) 현대백화점 사장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영업통이다. 목동점장, 무역센터점장, 압구정본점장, 상품본부장을 맡은 뒤 지난해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으며, 백화점·아울렛 증축 및 신규 출점 등 사업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강찬석(57) 현대홈쇼핑 사장은 이천고와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현대백화점 사업개발팀장과 기획담당 상무를 거쳐 지난 2011년 현대홈쇼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영업본부장과 공동대표(부사장)를 맡았으며, 지난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박홍진(54) 현대그린푸드 사장은 경북고-서울대 농경제학과-서울대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그룹내 ‘엘리트’다.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무역센터점장, 영업본부장을 맡았으며, 지난 2015년 현대그린푸드로 옮겨 공동대표직(부사장)을 수행했다. 지난해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현재 케어푸드 사업 확대 등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에 힘쓰고 있다.  김화응(59) 현대리바트 사장은 대성고와 숭실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현대H&S 법인사업부장과 현대H&S 대표 등을 거쳐 지난 2013년부터 현대리바트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지난해 미국 최대 홈퍼니싱 기업인 ‘윌리엄스 소노마(WSI)’ 브랜드를 국내에 처음 도입하는 등 현대리바트의 고급화와 B2C 중심으로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 2015년 설립된 현대렌탈케어 대표이사직도 겸하고 있다.  김형종(58) 한섬 사장은 명지고와 국민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현대백화점 목동점잠, 상품본부장을 거쳐 지난 2012년 한섬으로 자리를 옮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현재 국내 브랜드 고급화와 온라인 사업 강화 등 유통채널 다각화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유정석(56) 현대HCN 대표(부사장)는 거창고-영남대 경영학과-연세대 대학원 방송영상학 석사학위를 거쳤다. 10년 넘게 HCN에서 일한 정통 케이블맨으로, HCN 경영지원실장, 전략기획실장, 영업본부장, 공동대표 등을 거쳐 2015년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7) 백화점 넘어 패션·가구·식품에도 ‘명품’으로 승부하는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7) 백화점 넘어 패션·가구·식품에도 ‘명품’으로 승부하는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

    현대백화점그룹, 현대계열사 지원회사에서 재계 21위로 발돋움정지선 회장, 경영참여 이후 15년새 매출 2.8배 늘어나동생 정교선 부회장과 ‘형제 경영’으로 순환출자구조 해소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는 1971년 설립돼 당시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는 작은 회사에 불과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을 운영할 뿐이었다. 현대건설의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가 성장의 물꼬를 트게 된 계기는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을 지으면서부터다. 현대백화점 하면 ‘명품 백화점’이라는 공식을 만든 이가 정몽근(76)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9남매(8남 1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고 정몽필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현대가에서 세 번째로 큰 형님이다. 2001년 정주영 선대회장이 작고하면서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현대백화점그룹을 승계했다.  정지선(46) 회장은 지난 2003년 당시 31세의 나이에 그룹 총괄부회장 자리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가 2008년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나이 36세에 범(汎)현대가는 물론, 재계에선 3세 중 가장 먼저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정 회장은 취임 직후 한계 사업을 정리하는 등 6년 간의 내실을 다진 후 2009년부터 본격적인 점포 확장을 이어갔다. 2009년 현대백화점 신촌유플렉스를, 2010년 8월 현대백화점 킨텍스점을 개점했다. 이어 2011년 대구점, 2012년 충청점의 문을 열었다. 2015년에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과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 판교점을 연이어 오픈했고, 2016년에는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점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을 차례로 개장했다. 작년에는 현대시티몰 가든파이브점을 열었다. 특히 오는 11월에는 서울 강남 코엑스의 핵심 유통시설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시내면세점을 열어 면세점 사업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룹의 뼈대인 백화점사업과 관련된 영역으로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2001년 홈쇼핑 시장에 이어 2002년 지역케이블 방송사업(HCN)에 진출했다. 2009년 종합식품 전문기업인 현대그린푸드를 출범시켰다. 2012년 이후 의류·패션기업인 한섬과 가구회사 리바트(2013년), 산업기계·특장차 전문기업 에버다임(2015년), 패션기업 SK네트웍스 패션부문(현 현대G&F·한섬글로벌)을 잇따라 인수한 데 이어, 지난 2015년에는 렌탈사업에도 진출하며 유통뿐 아니라 생활 전 영역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이 결과 정 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던 지난 2003년 5조 60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액은 2017년 15조 9000억원으로 2.8배 성장했고, 경상이익은 2003년 2000억원에서 지난해 약 8400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부채비율은 2003년 150%에서 2017년 36%로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2017년 기준 자산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 가운데, 재계 21위를 기록했다. 정 회장은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선순환적 기업문화를 정착시키는데도 애쓰고 있다. 2014년 유통업계에선 처음으로 오후 6시에 자동으로 컴퓨터 전원이 꺼지는 PC오프제를 도입한 것을 비롯해 △2시간 단위로 연차를 사용하는 ‘2시간 휴가제(반반차 휴가)’ △출산휴가 신청과 동시에 최대 2년간 자동으로 휴직할 수 있는 ‘자동 육아 휴직제’ △임신부 직원에게 임신 전 기간 2시간 단축근무를 적용하는 ‘예비맘 프로그램’ △남직원 1년 육아휴직 시 3개월간 통상임금 100% 보전 등을 도입했다.  정지선 회장은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 스페셜스튜던트 과정을 수료했다. 정 회장은 고교 동창의 소개로 황서림(46)씨를 만나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황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를 졸업해 서울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뉴욕근대미술관 뉴미디어 부서에서 부지배인으로 활동했다.  정 명예회장의 차남이자, 정 회장의 동생인 정교선(44)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은 형과 마찬가지로 경복고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에서 무역학과를 전공했다. 정 부회장은 2004년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가운데 장녀인 허승원(43)씨와 결혼했다. 허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재학했다. 둘 사이에는 3남이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백화점 경영관리팀장을 시작으로 그룹 경영의 중심이 되는 기획조정본부 이사, 상무, 전무를 거쳐 2009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2013년에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형인 정지선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백화점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범현대가에서 가장 먼저 이뤄졌다. 정 명예회장은 2006년 정 회장 형제에게 현대백화점 등 계열사 지분을 증여하며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 현재 정 명예회장은 현대백화점 2.6%, 현대그린푸드 2.0% 등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 17.1%, 현대그린푸드 12.7%를 가지고 있고, 정 부회장은 현대그린푸드 23.0%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4월 그룹 내 순환출자 구조를 완전히 해소하며,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에 앞장서고 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새우등’ 집값 민심/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새우등’ 집값 민심/황수정 논설위원

    추석 연휴에 둘만 모여 앉으면 나왔을 얘기는 집값이다. 멀리 지방에서는 “몇 달 새 몇억원이 올랐다”는 서울 집값 이야기는 숫제 ‘전설’이다. 전설은 밥상이든 술상이든 틈만 나면 단골 메뉴로 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집값 화제는 십중팔구 성토 대상이 돼 분위기가 험악해졌기 일쑤. 서울의 집값이 난데없이 지방 도시들에 전방위로 유탄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우리 고향 도시에서도 6억원이던 아파트는 두어 달 새 1억원 가까이 하락했다. “달랑 내 집 하나 지녔을 뿐인데, 서울 집값 잡겠다는 부동산 정책에 왜 지방의 집값이 분양가보다 후퇴하는 상황을 겪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린 이들이 많았다. “지방(집값)은 끝났다”는 체념에다 “지방에 사는 게 죄냐”는 원색적인 불만은 요즘 비(非)서울·수도권에서는 거의 일상어다. 서울 외곽의 경기 신도시 지역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 발표된 경기·인천 지역 전체 주택공급 계획 물량(2만 5000가구)의 절반이 훨씬 넘는 1만 6000채가 공급이 넘쳐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곳이라는 현장의 우려는 좀체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늘려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대책이 발표된 지난 21일 이후 신도시 지역 주민들은 연일 속이 끓는다. 가뜩이나 집값이 내려 미분양이 속출하는 곳에다 주택 공급 방안을 추가로 내놓은 대책은 두고두고 비판의 표적이 될 분위기다. 서울권 바깥의 불만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인터넷 공간만 일별해도 감 잡힌다. “서울 집값이 날뛰는데, 극약 처방 폭탄은 왜 수도권에다 던지느냐”, “파주 운정, 김포 한강 지구처럼 실패한 2기 신도시 전철을 또 밟게 하려느냐”는 원성들이다. 급기야 “서울의 아파트는 전부 50층 이상으로 지어 물량 공세를 하든지, 서울 일은 서울 안에서 제발 해결하라”는 체념과 울분이 뒤죽박죽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궁여지책에 땜질 처방이 아니어야만 할 이유는 분명하다. 지역별 상황과 실수요자 중심의 대책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까닭도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다. 집값 대책에 대한민국의 시선이 통째로 서울에 쏠려 있다. 지방의 상대적 박탈감이 되레 수도권 인구 과밀화를 부추기는 불쏘시개가 되고 있지 않은지 백번 살펴도 모자랄 때가 지금이다. 동강 난 민심을 정부와 정치권은 잘 읽고 왔는지 모르겠다. 올 추석 고향의 보름달은 유난히도 작았다. 취업을 못 해 명절에도 객지의 ‘컵밥’을 먹는 손자손녀에, ‘서울에 집 한 채’를 영영 가질 수 없다는 아들딸까지. 길게 따질 게 없다. 고향의 어머니들을 자꾸 가슴 아프게 하는 세상은 선량한 세상이 아니다. sjh@seoul.co.kr
  • [길섶에서] 목화꽃/문소영 논설실장

    화분에 목화를 심은 건 지난해 봄이었다. 터키 사는 지인이 항공우편으로 부쳐 온 씨앗이었다. 그 봄에는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았다. 조선의 농서에는 솜에 싸인 새끼손톱만 한 검은 씨앗을 오줌통에 하루이틀 넣어 두었다가 심으라고 되어 있는데, 그 과정을 못 거쳐 그런가 하면서 아쉬워했다. 파종을 잊어버릴 만한 시점인 그해 늦여름 목화는 싹을 내더니, 이파리를 몇 개 달지도 않은 채 기운을 짜내듯 꽃을 4개나 피워 냈다. 그중 3개는 열매가 됐는데 그 속이 솜으로 바뀌면서 껍질을 확 깨고 흰 별꽃처럼 변해 볼만했다. 내년에 씨를 뿌릴 생각으로 목화솜을 수확하고, 목화 하나당 6~9개 씨를 발라냈다. 많다. 문씨 가문의 중시조인 문익점 할아버지는 목화씨 3개를 밀수했다는데, 아마도 목화 한 덩어리도 확보하지 못했나 싶다. 목화는 다년생이라 아파트 거실에서 겨울을 나고 올봄 다시 이파리를 올렸다. 섭씨 40도에 가까운 혹독한 올여름을 견디고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되는 듯한 꽃받침 위로 미색 꽃을 피웠는데 그 꽃은 하루만 지나면 분홍색이 되고 질 때는 짙은 와인색 꽃이 된다. 도시 촌놈에게는 꽃의 변신이 마술처럼 놀랍기만 하다. 올해도 목화씨를 얻으면 농부와 서로 나눠 심기로 한다. symun@seoul.co.kr
  • [박현갑의 틈새보기] 소년나이, 13세와 14세 차이

    [박현갑의 틈새보기] 소년나이, 13세와 14세 차이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최근 유튜브 인기스타 중에 초등학생 창작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린이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100번까지 어떻게 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영상물로 조회수 110만여건을 기록한 12살 어린이도 있죠. 이처럼 창의성을 바탕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어린이도 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로 부모들을 충격에 빠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7월 인천의 13세 여중생이 또래 남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해당 남학생은 지난 2월에 이 여학생을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14세 미만이라 형사처벌은 받지 않습니다. 사회봉사명령이나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 대상일뿐입니다. 이 여학생의 극단적인 선택과 성폭행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노가 강했습니다. 아버지를 흉기로 찌르기도 2년 전에는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11살 초등학생 아들이 경찰에 붙잡힌 일도 있습니다. 2016년 1월 7일 경기도 김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 학생은 오후 10시 47분쯤 자신의 방에서 아버지 B(55)씨의 배를 흉기로 한 차례 찔렀습니다. 학생은 경찰조사에서 “아버지가 평소 자주 폭행을 했고 사건 당일에도 집에 늦게 귀가한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고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홧김에 찔렀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 학생 역시 만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이어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지난 6월 26~27일에는 중·고생 10명이 여고생을 노래방으로 불러내 노래소리를 크게 한 상태에서 1시간 30분동안 폭행한 뒤, 얼굴을 가리고 관악산으로 데려가 성추행과 폭행을 한 일도 있습니다. 경찰은 가해청소년 10명 중 9명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만 14세 미만인 중학생 1명은 가정법원으로 넘겼습니다. 검찰로 송치된 9명 중 혐의가 무거운 7명은 구속된 상태입니다. 이 사건 피해자 언니는 지난 7월 3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여고생이 중·고생에게 관악산으로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했다. 경찰이 수사 중인데도 가해자들은 태연하게 SNS를 하고 있다. 한국은 나이가 어릴수록 처벌하기 어렵다”며 소년법 폐지나 개정을 청원하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잇단 청소년 강력범죄 발생으로 처벌강화를 외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부가 소년법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민청원 47번째 답변자로 나서 소년법상 형사 미성년자 상한연령을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을 추진 중이며 소년범죄 예방가 소년범 교화노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소년법 변천 소년법은 1958년 7월 법률 제489호로 제정·공포된 후, 지금까지 여러차례 개정되었습니다. 최초 제정당시 소년의 기준은 20세 미만이었으나 현재는 19세 미만을 소년으로 규정(2조)하고 있구요. 범죄소년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최대 15년형까지만 유기징역을 내릴 수 있습니다. 촉법소년(4조)은 최초 제정당시에는 12세 이상 14세 미만이었으나 2007년 법 개정으로 현재는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바뀌었습니다. 촉법소년은 죄를 지었으나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며 보호처분만 받습니다. 10세 미만은 보호처분 자체도 불가능합니다. 현재 국회에는 26건의 소년범죄 관련 개정 법률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10세 이상 14세 미만’에서 ‘10세 이상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이 핵심입니다. 흉악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성인처럼 취급하여 처벌의 상한을 높이는 방안도 있습니다. 사형 또는 무기형의 죄를 범할 당시 18세 미만인 소년에 대해 사형 또는 무기형으로 처할 경우, 15년 유기징역으로 한다는 것을 사형시에는 무기징역으로, 무기형을 내릴 때에는 20년으로 높이는 방안도 있습니다. 그리고 징역 또는 금고를 선고받은 소년에 대하여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는 형의 집행 기간도 늘림으로써 가석방을 어렵게 하려는 방안도 제안됐구요. 외국은? 우리나라처럼 형사미성년자 기준이 14세 미만인 나라는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입니다. 13세 미만은 프랑스, 호주나 영국은 10세 미만입니다. 13세와 14세, 어떤 차이 있나? 형사 미성년자 상한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한살 낮추면 13세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올 상반기 청소년범죄 통계에 따르면 형사미성년자 중 10~13세 범죄는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13세 범죄만 놓고 보면 14.7% 늘었습니다. 이 통계는 정부가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3세 미만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하는 주요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김상곤 장관은 “초등학생은 형사 미성년자로 남기고, 중학생부터는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경우, 범죄 기록이 남거나 교도소에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같은 13세라고 하더라도 학교급에 따라 처벌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범죄소년에 대한 치료와 교육이 병행되지 않으면 단기적 효과에 그칠 수 있습니다. 보호처분의 핵심인 보호관찰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소년보호관찰관이 보호처분 대상자의 재범 위험 수준에 따라 상담과 장학금 지급 등 다양한 관리감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지난 8월 기준 소년보호관찰관 1명이 담당하는 소년은 118명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7.3명의 4배 수준이죠. 정부는 이를 1인당 33명선으로 낮춘다는 계획입니다. 소년원 학생이나 보호관찰 청소년 치료와 교화가일반 학생 지도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담당인력 증원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형사처벌 연령 인하가 형사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고 처벌의 실효성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형사책임주의라는 것은 행위자가 책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했다는 것이 전제돼야 하는데 촉법소년이 저지른 잘못된 일이 빈번하다고 해서 형사책임 연령을 일률적으로 낮추면 형사법체계의 대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2015년 10월 경기도 용인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던져 5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이 아파트에서 사는 9살 초등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사처벌은 물론 보호처분 조치 대상도 안 돼 정의에 부합하느냐는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청소년 성숙,법은 10여년 전이라면 형사미성년자 연령 인하 문제는 선택의 문제로 보입니다. 과거에 비해 지금의 청소년은 경제성장과 학교교육 보편화로 정신적ㆍ육체적으로 성숙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인터넷 발달로 청소년 모방범죄는 기승을 부리고 범죄수법은 성인범죄에 못지않게 흉포화되고 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범죄행위에 걸맞는 처벌이 되지않는다면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법은 시대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기 마련입니다. 청소년 범죄행태의 변화와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하여 국민 모두가 납득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해보입니다. 형사처벌 대상 나이를 낮춰 청소년 범죄를 억제하는 한편 보호처분기간 다양화와 보호관찰인력 증원 등 실효성있는 교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같은 입법 및 행정조치와 별도로 사회공동체의 노력 또한 중요합니다. 청소년 보호와 교육책임은 가정과 학교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의 책무입니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6) 위기의 현대중공업그룹에 구원투수로 나선 경영인들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6) 위기의 현대중공업그룹에 구원투수로 나선 경영인들

    권오갑 부회장, 위기의 현대중공업 경영쇄신 이뤄 한영석 현대중 사장, 선박설계 전문가로 경영능력발휘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 최대 영업이익 숨은 공로자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사업과 정유, 건설기계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종합중공업 회사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계열 3사는 긴 불황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건조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현대오일뱅크를 비롯한 정유사업 계열사와 현대건설기계는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그룹의 중심에는 권오갑(67)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부회장)가 있다. 성남 효성고와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했다. 해병대 장교 출신이다. 권 부회장은 현대중공업 런던사무소 외자구매부 부장, 서울사무소 전무를 거쳐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지냈다. 2010년 현대오일뱅크 사장 시절, 회사 규모는 업계에서 가장 작았지만 정유부문에서 영업이익률 1위의 알짜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모든 임직원이 직영주유소에서 연간 20시간 이상 근무하도록 해 애사심을 키우도록 했다. 2014년 9월 현대중공업 사장에 취임한 뒤 위기에 빠진 ‘현대중공업 호(號)’를 진두지휘해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사업재편을 마무리하는 등 그룹의 지주사체제를 확립한 주역이다. 그해 현대중공업의 실적은 역대 최악의 수준이었지만, 임원을 대폭 감축하고 비효율 사업을 과감히 재편했으며, 성과 연봉제 도입 등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등 강력한 경영쇄신작업을 실시했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조선 3사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냈고, 이해 말 현대중공업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 3월에는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2021년까지 기술개발에 3조 5000억원 투자,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 1만명 확보 등을 골자로 한 기술과 품질 중심의 경영을 선포하며 ‘제2의 도약’이라는 기틀을 마련했다. 한영석(61) 현대중공업 사장은 예산고와 충남대 기계공학과를 나왔다. 선박 설계 및 생산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온 최고의 엔지니어 출신 CEO다. 회사 내 선박 설계 전문가로 손꼽힌다. 2015년 조선사업본부 생산본부장에 오른 그는 2016년 현대미포조선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대미포조선을 3년 연속 흑자로 이끌어 중공업사장으로 영전했다.  가삼현(61) 현대중공업 사장은 인천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해외영업통으로 런던지사장을 거쳐 2014년 그룹선박영업본부의 초대 본부장이 됐다. 사장으로 승진한 이듬해인 지난해 전 세계를 직접 돌며 글로벌 주요 선사들과 영업활동을 펼친 덕분에 수주 목표를 30% 초과 달성했다.  신현대(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충북고와 충북대 전기공학과 출신이다. 조선사업본부 계약관리, 의장, 시운전 담당을 거쳐 군산조선소장과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사업대표를 맡아왔다. 이상균(57)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장흥고와 인하대 조선공학과를 나왔다. 선박 건조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2015년부터 생산본부장을 맡아온 현장형 CEO로 손꼽힌다.  정명림(59) 현대일렉트릭 부사장은 강원 영동고와 아주대 기계공학과를 나왔다. 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4월 현대중공업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가 인적분할하면서 설립됐으며, 변압기, 차단기 등 각종 중전기기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정 사장은 30여 년간 고압차단기 및 변압기의 설계와 생산 등 여러 실무를 두루 경험한 전문가다.  공기영(56) 현대건설기계 사장은 마산고와 부산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31년간 건설장비 분야에서 한우물만 파온 전문가다. 이런 전문성을 인정받아 현대건설기계에서는 처음으로 내부승진을 통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공 사장은 지난해 4월 현대건설기계가 현대중공업에서 분사하면서 첫 사령탑을 맡았다.  안광헌(58)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부사장)는 서영고-경희대 기계공학과-홍익대 열유체공학 석사학위를 거쳤다. 2016년 11월 ‘엔지니어링 서비스 전문회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대표를 맡았다. 안 부사장은 엔진기계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2000년 첫 독자개발 중형엔진인 힘센엔진(HiMSEN)의 개발을 주도했다.  강철호(49)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 대표이사(부사장)은 창원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 상해 복단대 MBA과정을 마쳤다. 10여년간 외교관으로 일하다 2004년 현대중공업 기획실로 입사, 2006년 현대중공업 중국지주회사 설립을 주도했다. 그룹 내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알려진 강 부사장은 2010년부터 중국지주회사 법인장을 맡아 현대중공업의 중국사업을 총괄해왔다. 강 부사장은 태양광발전 EPC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크게 중공업 분야와 에너지 분야로 나뉜다. 에너지 분야의 핵심 리더는 강달호(59) 현대오일뱅크 사장이다. 영훈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문 사장은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에서 생산부문장, 중앙기술연구원장, 안전생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5) 중공업 재건에 나선 현대가 최연소 오너 CEO 정기선 부사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5) 중공업 재건에 나선 현대가 최연소 오너 CEO 정기선 부사장

    현대중 정기선 부사장, 지난해부터 경영전면에 나서선박수주절벽과 상속세 1조원 마련 등 과제 산적부친 정몽준 이사장은 FIFA 징계풀려 ‘권토중래’ 꾀해  현대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이 많은’ 강원군 통천군 아산마을에서 태어났다. 농사꾼이 되는 게 싫어 소학교를 졸업한 14살 무렵무터 가출을 시도하며 경영인의 꿈을 키웠다. 학업에 미련이 많았던 정 회장은 8명의 아들중 6남 정몽준이 서울대에 입학하자 뛸 둣이 기뻐했다. 변형윤·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을 울산으로 초대해 크게 ‘한턱’을 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부친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란 정몽준(67)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은 중앙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메사추세츠공과대(MIT) 경영대학원 석사와 존스홉킨스대 국제문제연구원(SAIS)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화려한 학력과 이력을 쌓았다. 경영인으로 외길을 걸었던 형제들과는 달리 정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두고 정치에 입문해 7선 의원과 한나라당 대표 등을 역임했다.대한축구협회 회장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맡으면서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에 기여했다. FIFA 회장에 도전했으나 윤리위원회로부터 자격정지를 당했지만 지난 2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부터 제재와 벌금(5만 스위스프랑)이 취소돼 ‘권토중래’를 꾀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정 이사장의 ‘외도’로 현대중공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찍부터 구축했다. 이재성-최길선 회장-권오갑 부회장 체제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2014년 조선업황이 나빠져 현대중공업이 3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내면서 오너 경영인 체제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정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36)씨가 현대중공업에 재입사, 경영기획팀과 선박본부 부장을 겸임하면서 경영권 승계작업이 자연스레 시작됐다.   정기선 부사장은 대일외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 처럼 학생군사교육단(ROTC) 43기로 임관해 2007년 육군 특공연대(파주 701·흑표범부대)에서 군 생활을 마쳤다. 아버지의 ROTC 30기 후배인 셈이다. 2009년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한 뒤 그해 8월 미국으로 유학,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은 뒤 2011년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지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현대중공업에 다시 들어왔다. 이후 기획재무부문장 상무(2014년)-전무(2015년)를 거쳐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 부사장이자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에 올라 경영 전면에 나섰다. 정 부사장은 지난 3월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 5.1%를 확보했다. KCC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지주 주식 83만 1000주를 매입한 것이다. 앞으로 현대중공업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승계하려면 아버지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25.8%)을 물려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속세로 1조원 정도가 필요하다. 정 부사장은 재벌 3세지만 겸손하고 소탈하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 중역들에게 몸을 낮추고 부하직원에게도 말을 높인다. 허름한 선술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경영권 전면에 나선 정 부사장 앞에는 만만찮은 과제가 놓여있다. 세계적인 조선업계 불황으로 극심한 수주절벽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3사의 수주잔고는 2013년말 인도 기준으로 637억 달러에서 지난 5월말에는 234억 달러로 크게 줄었다. 후반기 들어 선박 수주가 늘고 있지만 호황기에 이르려면 갈길이 멀다.  이런 이유로 정 부사장은 선박 AS시장에 미래를 걸고 있다. 지난 2016년 선박의 정비와 수리, 친환경설비 설치사업, 스마트선박개발 사업 등을 담당하는 현대글로벌서비스 설립을 주도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배가 넘는 1억 2000달러를 수주하는 성과를 냈다. 2022년까지 매출 2조원, 수주 23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으로서도 그룹의 체질 개선과 사업 다변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8월 100억 원을 출자해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국내 첫 의료 데이터 전문회사인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가칭)’를 설립했다. 의료 빅데이터 시장은 2023년까지 약 56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용 로봇 분야 강화를 위해 전세계 로봇시장 점유율 3위인 독일 쿠카(KUKA)사와 협력해 2021년까지 국내 시장에 산업용 로봇 6000여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동생으로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와 선이, 예선씨가 있다. 정남이 상임이사는 연세대 철학과를 다니다 유학,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음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 MBA 과정을 마쳤다. 2012년까지 다국적 컨설팅 전문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 다니다 2013년 1월 아산나눔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철강회사인 유봉의 서승범(43)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정선이(32)씨는 미 MIT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 만난 백종현(35)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백씨는 미국 유명건축사무소에서 근무중이다. 막내 정예선(22)씨는 연세대 철학과에 재학중이다. 2014년 4월 아버지 정 이사장이 서울시장 예비후보였을 당시 페이스북에 세월호 추모열기를 두고 국민정서에 반하는 글을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정 부사장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이다. 어머니 김영명(63)씨의 언니 영숙(73)씨와 영자(68)씨는 사위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인 방준오(44) 조선경제아이대표와 홍정욱(48) 헤럴드미디어회장을 맞는 등 외가가 언론계와 인연을 맺고 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백두산 트레킹/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백두산 트레킹/임창용 논설위원

    백두산에 오를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14년 전이다. 한반도에 있지만, 남북 분단으로 중국을 통해 향할 수밖에 없었던 백두산 트레킹 길. 7월이었지만 천지 아래 계곡엔 눈더미가 군데군데 보였고, 천지 주변 드넓은 초원에는 온갖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다. 산 아래 안개와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 마치 ‘천상화원’(天上花園)을 방불케 했다. 천지는 그 새파란 물빛이 말 탄 장수의 서슬 퍼런 눈빛을 보는 듯했고, 천지 주변을 덮은 꽃밭은 개선장군의 목에 두른 꽃다발 같았다.여행담당 기자를 지낸 뒤로 주변에서 여행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항상 1순위로 백두산 트레킹을 권했다. 백두산은 그만큼 새롭고, 다른 여행지에서 보기 힘든 희소성을 갖고 있다.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는 코스는 서쪽에서 오르는 서파와 북쪽에서 출발하는 북파 두 개다. 그중 서파 코스가 등산객들에게 단연 인기다. 북파 코스는 차량을 타고 천지 턱밑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트레킹으로서의 의미가 적다. 단지 백두산 천지를 보는 데 의미를 두는 이들이 많이 선택하는 코스다. 반면 서파 코스를 타면 제대로 된 백두산 트레킹을 만끽할 수 있다. 백두산 서쪽 중턱에서 트레킹을 시작해 천지에 도달한 뒤 북·중 경계인 5호 경계비부터 천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중국쪽 봉우리들을 넘거나 에둘러서 소천지까지 걷는 코스다. 10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노약자는 시도하기 어렵다. 5호 경계비는 천지 서쪽에 서 있는데, 마음대로 북한 땅을 밟는다는 기분 때문에 일행과 함께 몇 번씩이나 경계비 양쪽을 들락거렸었다. 남북 관계가 개선돼 관광길이 열릴 경우 금강산 다음으로 백두산 여행이 꼽히는 것은 여행지로서 이런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 앞서 문 대통령은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백두산 트레킹을 하고 싶다고 김 위원장에게 말했었다. 비록 오랜 시간 걷는 트레킹은 아니지만, 남북 정상이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문 대통령은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백두산은 ‘백두혈통’이라 부르는 김일성 일가가 신성시해 온 곳이다. 김 위원장도 결단을 할 때마다 백두산을 찾아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작년 12월 영하 26도의 엄동설한에 백두산에 오른 뒤 약 3주 후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며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이번에 두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중대한 기로에서 백두산을 찾은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불리는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비핵화와 남북 관계 개선이 순조롭기를 기대한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서울광장] 집값 대책 혼선 빚은 그대들, 옐로카드다/김성곤 논설위원

    [서울광장] 집값 대책 혼선 빚은 그대들, 옐로카드다/김성곤 논설위원

    잘 조율된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줄 알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월 25일 취임하자마자 각종 부동산 대책을 거침없이 주문한다. ‘종합부동산세 강화’(8월 30일)와 ‘공급 확대’(9월 3일)에 이은 ‘토지공개념의 현실화’(9월 11일) 주문 등이 그것이다. 지침을 받은 듯 정부는 ‘9·13 대책’에서 다주택자 종부세 최고 세율을 3.2%로 올리는 등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강력한 세제 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에 서울 등지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서 3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포함했다. 다만, 서울시와의 조율을 거쳐서 오늘 발표하겠다고 했다.대책 발표 전 청와대 회의에서 김수현 사회수석이 대책의 수위를 높이는 등 최종 조율을 했다고 한다. 1주택자 종부세와 양도세 강화 등은 김 수석의 지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안을 대폭 수정했다고 한다. ‘청와대 대서소 논란’이 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여당의 실세 대표가 지침을 주고, 참여정부 부동산 대책의 설계자인 김 수석이 최종 조율한 모양새다. 강성 여당 대표와 청와대 수석의 등장에 시장은 아연 긴장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잘 짜진 각본이 아니라 ‘중구난방’이었다. 전용면적 85㎡ 이상의 주택에 대해 전량 가점제로 한다고 했다가 1주택자들의 반발을 사자 뒤로 물러선 데 이어 대출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린벨트를 풀어 서울 노른자위 지역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던 대책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반대로 갈지자걸음을 했다. 관심들이 많아서 어지간하면 박사다. 이른바 ‘부동산 국민 박사’다. 실물투자를 해본 주부를 만나면 얼치기 전문가나 담당 공무원도 혼쭐이 난다. 밥상머리에서는 물론 술잔을 앞에 놓고도 갑론을박이다. 문재인 정부 2년차 접어들어 뛰기 시작한 집값 대책을 놓고도 갑론을박이다. 국민 전문가들이야 말싸움 수준이지만, 고위 정책입안자나 집행자들의 다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정부·여당에 흠집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당 대표와 청와대 사회수석, 수도 서울의 시장, 기재부와 국토부 장관이 얽혀 있다. 사공은 많아 힘들은 쓰는데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헛심을 쓴다. 백미는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공방이다. 국토부는 그린벨트를 활용하자는 입장인 반면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는 미래 후손을 위한 유산으로 보존해야 하고, 개발해도 집값만 올린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여기에 지난 6월 용산·여의도 개발 계획 발표로 서울의 집값 상승을 유발했다는 비난을 받은 뒤 이를 접는 과정에서 쌓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에 대한 박 시장의 앙금까지 겹쳐 감정싸움 양상이다.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참여정부 때 이명박 서울시장의 뉴타운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다. 서울시 대변인이나 부시장 등이 나서면 국토부 주택국장 등이 나서서 반박하는 일이 하루가 멀다 않고 반복됐다. 이명박 대통령 때에는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뉴타운 해제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들 갈등의 공통점은 서로 당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부에 한나라당 출신 시장이나 한나라당 정부에 민주당 출신 시장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같은 당의 부처와 서울시가 이처럼 첨예하게 맞서는 것은 전례가 없다. 마치 다른 당처럼 싸운다. 엘리트 공무원까지도 편을 갈라서 수장의 입맛대로 근거들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중재자가 없다. 대책을 주무른 청와대도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든지 중재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공급 확대에 불을 지핀 여당 대표도 뒤로 한발 물러서 있다. 박 시장과 김 장관, 이 대표까지 이번 문재인 대통령 방북단에 포함돼서 다녀왔다. 거기서까지 낯을 붉히진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처럼 이들도 좋은 결론을 냈길 바란다. 가부는 오늘 대책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린벨트에 대한 미래세대 차원의 접근과 집값이라는 민생 차원의 접근이 충돌할 수는 있다. 서로 명분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에게 몽니로 혼선으로 비쳐선 안 된다. 이는 곧 정책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 그렇게 보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지금은 정부의 강력한 대책으로 시장이 움츠러든 상태다. 여기에 적절한 공급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쪽짜리 대책으로 전락하고 만다. 틈이 생기면 집값은 이를 파고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갈등의 당사자들은 모두 옐로카드를 받아 마땅하다. sunggone@seoul.co.kr
  • [길섶에서] 멋대로 여행/황성기 논설위원

    여행을 다룬 명언들이 많다. 괴테는 “사람이 여행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남겼다. 지난 7~8월 숨막혔던 지독한 여름을 에어컨 바람으로 이겨 내며 9월 달력만 노려본 나날이었다. 날이 선선해지기를 기다려 얼마 전 남쪽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다운 여행이 뭘까. 지금까지의 여행 방식을 버려 보기로 했다. 촘촘히 계획을 짠다거나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고, 맛집을 찾아내는 일들을 가급적 외면했다. 가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평일이라 시속 30~40㎞로 천천히 다닐 수 있는 길이 많았다. 느릿느릿 풍경도 살피고 먹을 곳도 지나가다 들렀는데, 그게 대성공이었다. 남쪽에 널리고 널린 가게를 탐방하면서 생선구이에, 멸치쌈밥에 어느 것 하나 실패한 게 없다. 우리 땅 어딘들 그렇지 않겠느냐만 남쪽은 산 좋고, 바다 좋고, 음식 좋고, 인심도 좋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여행도 사흘째 접어드니 몸이 “이제는 집에 가자”고 한다. 숙소를 큰 마음 먹고 골랐는데 잠도 설치고 편치 않다. 수도권의 퇴근 정체에 걸려 집까지 8시간 걸린다. 파김치가 돼 집에 돌아오니 꿈만 같다. 누추한 집이라도 떠나 봐야 집 소중한 것 안다는 옛 어른 말씀이 새삼스럽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왜 의사·여자에게만 돌 던지나… 낙태,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왜 의사·여자에게만 돌 던지나… 낙태,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한국에서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은 불법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범죄로 규정했다. 다만 1973년 모자보건법을 만들어 성폭력에 의한 임신, 유전적 질환 등 극히 일부 경우에 한해 예외를 뒀다. 불법 낙태가 적발되면 여성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 의사는 2년 이하 징역의 형사처벌을 받는다. 법은 이렇게 엄하지만, 낙태율은 1000명당 29.8명(2005년 기준)으로 낙태 허용 국가인 캐나다(13.7명)보다 훨씬 높다. 법대로 하자면 상당수 산부인과 의사들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8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보건복지부가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규정하고, 수술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공포한 데 반발해 낙태 수술 거부를 선언했다. 파장은 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낙태 의사 처벌 강화를 철회하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복지부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위헌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행정처분을 유예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라며 낙태 수술 거부를 유지하고 있다. 김동석(59)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을 지난 13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김 회장은 서울 강서구에서 24년째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개원의다. 지난 7월부터 대한개원의협의회장도 맡고 있다.→복지부가 행정처분을 미뤘는데도 낙태 수술 거부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의 혼란과 건강권 보호 등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결의지 없이 임시방편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행정처분을 유예했으니 이제는 연간 수십만 건씩 이뤄지는 낙태를 허용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복지부는 헌재 판결이 나면 개정안도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방관자적인 태도는 온당하지 않다. 당장 의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정확한 기준의 개정안을 만들기 전까지는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수술을 할 수가 없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사문화된 법이 아니라 공론화를 통해 법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우리는 그 법을 지킬 것이다. →복지부는 이전에도 불법 낙태 수술을 한 의사에게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기 때문에 처벌 강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번 개정안이 왜 문제가 되는가. -이전에도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 건 맞지만, 재판 결과가 유죄로 나와야 행정처분이 이뤄졌다. 이제는 개정안에 확실하게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이 돼서 즉시 처벌이 가능해졌다. 자격정지 몇 개월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낙태 수술을 한 여성이나 의사를 비도덕적이라고 낙인찍은 게 문제의 본질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45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엔 산아제한 때문에 보건소에서 낙태 수술을 권할 정도로 일반적이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국민이나 의사나 낙태 수술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였다. 형법에는 낙태 수술을 한 여성과 수술한 의사를 처벌한다고 돼 있고 한 해 수십만 건의 불법 낙태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처벌은 드물다. 그런데도 유명무실해진 법을 내세워 불가피하게 수술을 택한 여성과 이를 도와준 의사를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한 것은 부당하다. →모자보건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어떤 부분이 바뀌어야 하나. -산부인과 의사들은 모자보건법에서 허용된 낙태 사유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내용이 많은데도 어느 정권이나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산모의 상황에 따라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태아와 관련한 사유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일례로 무뇌아처럼 생존이 불가능한 태아라도 현행법에서는 낙태 수술을 할 수가 없다. 반면 유전이 되는 정신 장애가 아닌데도 정신질환 부모의 낙태를 허용해 정신장애 환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라는 조항도 매우 모호한 표현으로 논란의 여지가 크다. →낙태죄 처벌 강화에 따른 부작용이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처벌 강화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음성화가 더 심각해져 돌이킬 수 없는 사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안전하지 않은 수술로 여성의 건강이 위협받고,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낙태를 금지한 필리핀이나 브라질 같은 국가에서 낙태 수술로 인한 모성사망이 많다는 자료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회는 낙태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다. 낙태 합법화에 대한 반대나 찬성은 의사 회원 각자가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낙태 수술을 합법화하라는 게 아니라 입법 미비에 따른 혼란이 심각하니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다만 일선 의료 현장에서 불가피하게 낙태를 해야만 하는 경우를 자주 봐 온 의사의 입장에선 외국의 사례처럼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사회적 합의다. 어느 쪽이든 공론을 거쳐 법이 만들어지면 의사는 지켜야 한다. →불법 낙태약인 미프진 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낙태가 불법인데 미프진을 합법화하라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다. 미프진은 외국에서도 산부인과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아야 하는 전문의약품이다. 인터넷에서 미프진 불법 유통이 만연하면서 하혈 등 부작용으로 산부인과를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가짜 약까지 나돈다. 그런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낙태 처벌을 강화하겠다면서 왜 미프진 통용은 방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루빨리 실태조사를 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산부인과의 어려움도 클 것 같다. 분만이 가능한 병원이 없는 지역도 상당수에 달한다는데. -합계출산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산부인과도 덩달아 위기에 몰렸다. 그로 인한 분만 인프라의 붕괴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분만 산부인과는 전국 600여곳으로, 지난 10년간 절반으로 줄었다. 우리나라 50여개 시·군·구에 분만 산부인과가 없다는 통계도 있다. 산부인과 전공의 배출도 감소 추세다. 저출산뿐만 아니라 분만 사고 시 의사의 책임이 무거운 점도 분만을 꺼리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예전엔 산부인과 의사들이 태아와 산모, 두 생명을 살린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밤낮없이 일했다. 요즘은 낙태 수술로 비도덕적 의사로 낙인찍히고, 분만 사고로 폐업 위기에 몰리는 이중고로 자괴감이 크다. 산부인과 간판 대신 피부 미용을 전문으로 하는 여성클리닉 병원이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에 산부인과 의사가 한 명도 없다. 분만 인프라가 망가진 걸 알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이런 안이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외국 사례처럼 산부인과의 진료 환경 개선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일본은 2006~2010년 약 3조원을 투입해 산부인과 살리기에 나섰다. 의사와 산모에게 분만 지원금을 주고 산부인과에 진학하는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뇌성마비 아이가 태어나면 국가와 지자체에서 보험금 등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이 모든 책임을 떠맡는 실정이다. 분만에 따른 여러 가지 의료사고는 불가항력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사고가 났을 때 산모와 산모 가족이 가장 힘들겠지만, 의료진도 어렵다. 저출산 정책에 많은 재원을 사용하는 대한민국에서 산부인과의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을 분담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분만을 포기하는 경우는 대부분 의료사고를 경험한 이후다. 산부인과의 저수가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coral@seoul.co.kr
  • 백두산 트레킹, 우리도 가고 싶다

    백두산 트레킹, 우리도 가고 싶다

    백두산에 오를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14년 전이다. 한반도에 있지만, 남북 분단으로 중국을 통해 향할 수밖에 없었던 백두산 트레킹 길. 7월이었지만 천지 아래 계곡엔 눈더미가 군데군데 보였고, 천지 주변 드넓은 초원에는 온갖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다. 산 아래 안개와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 마치 ‘천상화원’(天上花園)을 방불케 했다. 천지는 그 새파란 물빛이 말 탄 장수의 서슬 퍼런 눈빛을 보든 듯했고, 천지 주변을 덮은 꽃밭은 개선장군의 목에 두른 꽃다발 같았다.여행담당 기자를 지낸 뒤로 주변에서 여행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항상 1순위로 백두산 트레킹을 권했다. 백두산은 그만큼 새롭고, 다른 여행지에서 보기 힘든 희소성을 갖고 있다.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는 코스는 서쪽에서 오르는 서파와 북쪽에서 출발하는 북파 두 개다. 그중 서파 코스가 등산객들에게 단연 인기다. 북파 코스는 차량을 타고 천지 턱밑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트레킹으로서의 의미가 적다. 단지 백두산 천지를 보는 데 의미를 두는 이들이 많이 선택하는 코스다. 반면 서파 코스를 타면 제대로 된 백두산 트레킹을 만끽할 수 있다. 백두산 서쪽 중턱에서 트레킹을 시작해 천지에 도달한 뒤 북·중 경계인 5호 경계비부터 천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중국쪽 봉우리들을 넘거나 에둘러서 소천지까지 걷는 코스다. 10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노약자는 시도하기 어렵다. 5호 경계비는 천지 서쪽에 서 있는데, 마음대로 북한 땅을 밟는다는 기분 때문에 일행과 함께 몇 번씩이나 경계비 양쪽을 들락거렸었다. 남북 관계가 개선돼 관광길이 열릴 경우 금강산 다음으로 백두산 여행이 꼽히는 것은 여행지로서 이런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 앞서 문 대통령은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백두산 트레킹을 하고 싶다고 김 위원장에게 말했었다. 비록 오랜 시간 걷는 트레킹은 아니지만, 남북 정상이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문 대통령은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백두산은 ‘백두혈통’이라 부르는 김일성 일가가 신성시해 온 곳이다. 김 위원장도 결단을 할 때마다 백두산을 찾아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작년 12월 영하 26도의 엄동설한에 백두산에 오른 뒤 약 3주 후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며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이번에 두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중대한 기로에서 백두산을 찾은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불리는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비핵화와 남북 관계 개선이 순조롭기를 기대한다. 글 사진: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퓨마의 4시간 34분/김성곤 논설위원

    [씨줄날줄] 퓨마의 4시간 34분/김성곤 논설위원

    근대 동물원의 효시는 1752년에 생긴 오스트리아 빈의 쉰브론동물원이다. 당시 국왕 프란츠 1세가 왕비에게 선물로 동물원을 만들어 줬다. 초기 형태의 동물원은 BC 3000년 전 이집트 등지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된다. 그리스 시대에도 동물원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토대로 500여종의 동물을 분류했다. 한국에는 구한말 순종 황제 때인 1909년 11월 서울 창경궁에 들어선 것이 효시다. 당시 창경궁은 어른 아이 없이 모든 이들이 가보고 싶은 곳 가운데 하나였다. 창경궁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동물원과 관련된 추억은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지난 18일 대전오월드동물원에서 퓨마 한 마리가 탈출했다가 사살되면서 동물원 폐지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 ‘동물원을 폐지해 주세요’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2010년생 암컷 퓨마(60㎏)가 동물원을 나선 것은 오후 5시 10분. 사육사가 청소를 한 뒤 뒷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기 때문이다. 9시 44분 사살되기까지 그에게 주어진 자유는 4시간 34분이었다. 멀리 가지 못하고 동물원 주변을 맴돌았다. 맹수지만 길들여져 야성을 잃어버린 탓일 것이다. 동물원 측이 쏜 마취총을 맞고도 도망쳤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살됐다. 과거 동물원의 주목적은 오락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교육과 연구, 멸종 동물 보전으로 확대됐다. 동물복지 개념이 나온 것은 근래다. ‘동물 권리의 사례’(The case for the animal rights)의 저자이자 미국의 철학자인 톰 리건은 1992년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1993년 영국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는 ‘동물의 5가지 자유’를 규정한다. 배고픔과 갈증, 불편, 통증과 부상, 질병, 불안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에다가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를 더한 것이다. 사람에게 적용해도 거북하지 않은 원칙들이다. 지금은 세상이 변해 직접 현지에 가서 동물을 볼 수도 있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동물을 볼 수 있어서 동물원의 필요성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동물원이나 수족관의 찾는 사람들을 감안하면 이들을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동물복지론자들이 주장하는 ‘의인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동물들이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은 개선돼야 한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탓에 4시간 34분의 자유마저 제대로 구가할 줄 몰랐던 퓨마가 불을 붙인 동물권리 논쟁은 그래서 의미 있다. 다만, 동물원의 부주의뿐 아니라 퓨마를 살릴 방법은 정녕 없었나 하는 점이 아쉽다. sunggone@seoul.co.kr
  • [씨줄날줄] 대형마트 의무 휴업/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형마트 의무 휴업/박현갑 논설위원

    올 추석은 24일 월요일이다. ‘추석 이브’에 제수나 선물을 장만할 계획이라면 대형마트 일요일 휴무에 걸려 헛걸음할 수 있다. 대부분의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매달 2·4주 일요일에 쉬기 때문이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전국의 대형마트와 SSM는 공휴일 중 월 2회를 원칙적으로 휴업해야 한다.대형마트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기준 의무휴업 대상 점포는 418곳이다. 이 가운데 추석 명절 당일로 의무 휴업일을 바꾼 점포는 106곳이다. 휴업일 지정권자인 관할 기초지자체 40곳이 업체의 휴무 변경 요청을 받아들였다. 나머지 312곳도 관할 지자체에 휴업일 변경을 건의했으나 중소유통업체 반발과 소비자 혼란 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추석당일 근무한다. 맞벌이인 소비자들은 대체로 제수나 선물 구입 등 추석 장보기를 명절 하루 전에 한다. 생선이나 과일 등 식품이나 농산물은 특히 그렇다. 하지만 올해는 23일 전에 제수나 선물 구입 등을 마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불편도 문제지만 대형마트 종사자들도 울상이 아닐 수 없다. 협력업체 파견직원 등 대부분 비정규직인 이들은 추석 명절을 가족이 아닌 영업점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의무 휴업일 지정제는 건전한 유통 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점포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해서 2012년부터 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롯데슈퍼, GS슈퍼같은 SSM이 적용 대상이다. 중소유통업은 개인슈퍼나 전통시장의 소상공인이다. 의무 휴업일 지정 취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의무 휴업일로 인해 중소유통업이 활성화되었다는 증거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은 물품 구매에서 합리적 가격과 청결, 편리한 접근성 등을 원한다. 이런 소비자 욕구는 전통시장보다 대형마트가 잘 충족시켜준다. 편리한 주차, 공산품이든 농·수산품이든 원하는 상품을 한번에 쇼핑할 수 있다. 전통시장도 물품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쇼핑할 수 있으나 불편한 점이 없지 않다. 주차 공간은 지역에 따라 많이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부족하다. 게다가 온라인쇼핑이 편한 젊은이 등은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이나 아예 찾지를 않는다. 온라인마켓 등 다양한 유형의 시장이 생겨나는 마당에 점포 규모나 시설의 현대화 유무에 따른 양자택일식 방식으로는 상생을 도모할 수 없다. 남들 다 쉬는 명절에 비정규직의 당일 근무라도 최소화하는 일에서부터 상생의 지혜를 살릴 필요가 있다. 기초지방단체장이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eagleduo@seoul.co.kr
  • [서울광장] 차별없는 세상은 어떻게 도래하는가/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차별없는 세상은 어떻게 도래하는가/이순녀 논설위원

    일본 도쿄의 오모테산도 골목에 자리한 어린이책 전문서점 크레용하우스는 책보다 꽃이 먼저 반기는 곳이다. 서점 입구에 만발한 꽃과 식물은 직원들이 1년에 두 차례 손수 씨앗을 뿌려 정성껏 가꾼 소중한 생명이다. 바깥에 걸린 ‘Love&Peace’(사랑과 평화), ‘Stop the war’(전쟁을 멈춰라), ‘Nuke free’(반핵) 같은 문구도 인상적이다. 1층은 어린이책, 2층은 친환경 장난감, 3층은 여성 서적으로 나뉘어 있지만, 서가와 매대 곳곳에서 헌법, 인권, 젠더 관련 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에는 유기농 야채 가게와 식당이 있다.너 나 할 것없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최근의 서점가 트렌드를 따라 했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보면 역사가 무려 42년이다. 작가이면서 평화주의자, 페미니스트인 오치아이 게이코(73)가 지난 1976년 창립해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창립자의 철학이 수십 년간 응축된 곳이다. 우경화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을 위한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크레용하우스와 오치아이 대표에 대해 알게 된 건 김언호 한길사 대표 덕분이다. 둘 다 1945년에 태어난 동갑내기인데다 1976년 같은 해에 크레용하우스와 한길사를 세웠다. 우연치고는 남다른 인연이다. 일본에 갈 때마다 크레용하우스에 들른다는 김 대표는 “책의 유토피아가 거기 있다”고 극찬한다. 열흘 전쯤, 김 대표가 한길사에서 번역한 오치아이의 자전 소설 ‘우는 법을 잊었다’를 건네며, 그가 곧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참석차 방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치열한 메시지를 지닌,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말에 궁금증이 커졌다. 지난 14일 파주출판도시에서 마주한 오치아이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으로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에 정치인의 혼외자 딸로 태어난 오치아이는 어릴 때부터 반전(反戰)과 인권, 차별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담담히 풀어놓았다. “열다섯 살때쯤 엄마에게 ‘차별받을 걸 알면서 왜 나를 낳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엄마는 아빠를 매우 사랑했고, 또 전쟁통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나를 꼭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대요. 그러면서 우리가 당하는 차별은 이 세상 수 많은 차별 중 하나일 뿐이고, 차별당하는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방송사 아나운서를 7년 만에 그만둔 것도 직장 내 여성 차별 때문이었다. 작가로 전업한 뒤 출간한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목돈이 생기자 이를 기반으로 크레용하우스를 창립했다. “나이, 성별, 인종, 장애 등 모든 종류의 차별과 폭력은 사라져야 합니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책을 통해 이런 가치를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어릴 때 무엇을 읽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크레용하우스는 언제나 누구에게든 활짝 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 참여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2011년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반대운동에 앞장서 왔다. 평화헌법 개헌 반대 집회에 나가고, 아베 신조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서명운동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평화는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씨를 뿌리고, 함께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반전, 반핵, 반원전 등 그가 주장하는 가치에 모두가 지지를 보내는 건 물론 아니다. 정부 반대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서점 운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개인이 하는 일에 한계가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개인도 여기까지 할 수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치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현실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반도는 지금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책임과 의무를 더는 방기해선 안 된다. 평양에서 진행 중인 3차 남북 정상회담이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이유다. 난민 차별과 여성 혐오 등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반인권적 인식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장애인 특수학교 하나 세우는데 온 나라가 들썩이는 후진적 사고도 창피한 노릇이다. 오치아이의 말처럼 차별 없고, 평화로운 세상은 거저 오지 않는다. 개인 각자가 각성하고, 더 나아지고자 노력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박경리 기념관/김성곤 논설위원

    박경리 기념관은 통영~대전 고속도로 통영나들목에서 20여㎞쯤 거리에 있다. 하지만, 통영항 뒤 동피랑벽화마을이나 청마 유치환 문학관 등을 볼라치면 두세 배는 더 품을 들여야 한다. 작은 도시에 문인과 예술가도 많다. ‘풀’의 시인 김춘수, 재독 작곡가로 현대사 굴곡을 함께한 윤이상까지. 가는 길은 해안도로를 택하면 좋다. 작은 항구와 요트들…. 왜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했는지 짐작이 가리라. 굽이진 둔전길을 가다가 달아공원 못 미쳐 좌회전하면 박경리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작고 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던 글이 적힌 받침돌 위에 빈틈없는 모습으로 그는 서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6·25가 나 부역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남편을 잃고, 이어 어린 아들을 갑자기 잃은 그의 인생이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파시 곳곳에 녹아 있다. 수줍음 타던 앳된 주부의 얼굴에 의지가 서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으리라. 그곳엔 박경리 선생의 육필 원고도 있고, 인생도 있다. 소설보다 더한 감동이 그곳에 있다. 소곤소곤 소감을 나누는 소녀들, 아이들에게 박경리를 이해시키느라 애쓰는 부모,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찾는 사람이 많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sunggone@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우리 사회의 공감대 이끌어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우리 사회의 공감대 이끌어내

    서울신문은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한반도 비핵화, 메르스 사태, 최악의 고용 사정 등 다양한 현안을 다룬 지난 한 달간의 보도 내용을 놓고 18일 제109차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를 열었다. ‘베델 시리즈’와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지방분권 기획에 대한 좋은 평가뿐 아니라 관행적으로 이어지던 제작 관행에 대한 쓴소리도 없지 않았다.김광태(온전한 커뮤니케이션 회장) 위원장과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손정혜(법무법인 혜명 변호사), 심훈(한림대 언론학과 교수), 홍영만(서울여대 초빙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아래는 위원들의 의견이다. -8~9월엔 창간 특집과 기획 특집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다른 신문에서 볼 수 없는 정보들을 새롭게 얻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배델 시리즈를 눈여겨봤다. -가장 인상 깊게 본 기사는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이 기사를 읽고 공감하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는 것을 봤다. 당사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나 이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까지 잘 짚어 준 기사다.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에 이어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탐사보도 중 하나였다. 고생한 탐사기획부 기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왔는지, 정부가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후속 기사가 나왔으면 한다. 다만 간병살인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안락사 문제를 왜 다루지 않았는지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스위스는 외국인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고, 우리도 18명이 신청했다고 한다. 이런 사례를 다뤘으면 좋았겠다.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 여부와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여야 지도부 동행 논란을 사설에서 잘 지적했다. 동행 여부와 관련해 청와대의 절차적 문제를 꼬집었고, 국회 비준에 대해서는 초당파적인 입장에서 적극 협조하라는 주문이었다. 다만 국회 비준과 관련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분석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법제처 해석 사항만 갖고 했는데,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국회 비준을 고민해야 한다. -지방분권 기획도 서울신문의 특성을 잘 반영한 기사였다. 별도 기사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위원회의 호평까지 짚어 줬다. 논설위원의 ‘사이다’에서 다룬 ‘1박2일 나주혁신도시’ 기사도 좋았다. -경제섹션에 그래프와 표가 많아 읽기 편하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경제 섹션의 양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면이 1개면에 그칠 때도 있었다. 경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서운할 것 같다. 섹션 ‘머니톡 머니쏙’ 기사 내용이 굉장히 좋다. 독자가 금융 기사에 관심을 갖는 건 재테크와 관련이 있을텐데, 그런 측면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제목에 ‘말줄임표’(…)가 많다.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인용 제목도 많은데, 말줄임표까지 자주 등장하니 주관적인 느낌이 강해 보인다. 한 번에 관행들을 쉽게 고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부동산 대책과 일자리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다. 특히 부동산 정책 중 수요 억제는 거의 세금으로만 접근했다. 하지만 서울신문이 1990년대 초 일산·분당 신도시 건설처럼 수요 분산을 정책 대안으로 제안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씨줄날줄] 초고령사회 준비/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초고령사회 준비/임창용 논설위원

    일본에서 70세 이상 노인 비중이 전체 국민 중 20%를 넘어섰다고 현지 주요 언론들이 총무성 인구추계 결과를 인용해 일제히 보도했다. 고령자 기준 연령인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8.1%에 달해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3~4인 중 한 명은 노인이란 얘기다. 일본을 가히 ‘노인의 나라’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일본은 2006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겨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번에 70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20%를 넘긴 것은 ‘단카이(團塊) 세대’(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세대)가 본격적으로 70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인구 전문가들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71~74년 출생)가 65세 이상이 되는 2040년엔 고령자 비율이 총인구의 36%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회의 노화를 늦추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저출산·고령화 전담 장관을 두고 인구가 1억명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과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출산율이 2005년 1.26으로 바닥을 찍은 뒤 점차 개선돼 지난해 1.44까지 올랐다. 고령자 급증 대책도 쏟아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해 초 더 많은 노인이 일할 수 있고 차별받지 않는 ‘에이지슬레스(agesless)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월 일률적인 고령자 기준 연령(65세) 수정 방침을 공식화했고, 연금수급 개시 연령 조정, 정년 70세로 연장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 또는 실행하고 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방점을 뒀다. 얼마 전엔 급증하는 노인 간병 수요에 맞추기 위해 베트남 간병인 1만명을 받아들이기로 베트남 정부와 합의하기도 했다. 고령자 친화적인 사회환경 조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70세 이상 고령자가 운전하는 차량 뒤창에 실버마크를 붙여 다른 운전자들의 조심과 배려를 유도하고, 공항 게이트 앞 의자에 노인을 위한 의자 표시로 노란색 커버를 씌우는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의 상황은 우리에게 결코 남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14% 이상)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26년쯤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최저 수준인 1.0대 출산율과 고령화의 가파른 속도를 감안하면 일본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최근 2분기 합계 출산율은 0.97이었다. 한국이 초고령사회를 맞을 준비를 더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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