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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낭만 청와대, 맞아서는 갈 수가 없다/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낭만 청와대, 맞아서는 갈 수가 없다/황수정 논설위원

    세월이 흘러도 독보적인 문장론의 주인공은 월북 작가 상허 이태준이다. 필명깨나 날린 후대의 작가들이 절정기에 저마다 문장론을 썼지만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작가들에게도 교본인 상허의 역작 ‘문장강화’는 직유법을 경계한다. 글을 꾸미려 들지 말고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라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용하면 글의 품격과 진정성이 곤두박질친다.글과 말이 다를 게 없다. 은유 과잉의 청와대 화법이 너무 자주 논란이어서 피곤하다. 거의 날마다 구설에 오르면서도 거의 날마다 구설을 빚어낸다. 구설의 출처가 딴것도 아니고 특감반원 폭로 사태다. 청와대는 의혹을 폭로한 6급 수사관과 옥신각신 멱살잡이를 했다.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리는 주먹싸움. 초라한 싸움판에 번번이 동원한 것이 한담 수준의 수사(修辭)다. “미꾸라지의 개인적 일탈”, “불순물”, “문재인 정부의 DNA”. 청와대의 은유들이 시중의 농담 소재로 굴러다닌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 파열음이 심각하다.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처음으로 긍정 평가를 넘어섰다. 취임 후 1년 7개월 만이다. 취임 직후 최고치는 84%. 농담에서나 나올 법했던 지지율은 지난달 50%선이 무너지더니 불과 20여일 만에 부정·긍정 평가치가 뒤집혔다. 숫자에 일희일비할 일 아니더라도 이렇게 가파른 하락세라면 무시할 일도 아니다. 여권 언저리에서도 자기 경고음들이 터져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자살골을 넣어 주지 않는 이상 이대로는 총선 필패”라는 말이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도둑이 들 때는 개도 안 짖는다. 특감반 사태를 복기하자면 하나 틀리지 않는 말이다. 청와대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악재들이 삼박자를 맞춰 대통령의 지지율을 까먹는다. 실험이 실패를 했거나 어쨌거나 일련의 경제정책들은 없는 사람들한테 좀더 나눠주자고 출발했다. 정책의 선의만큼은 마지막 순간에도 평가받을 미덕은 있다. 특감반 의혹은 그러나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민간인 사찰 의혹은 삐끗했다가는 정권의 뿌리를 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눈곱만큼이라도 정치적 의도에서 특정 민간인을 괄호 밖으로 끌어냈다면 그 자체로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 적폐와 본질이 닮았기 때문이다. 뜨거운 감자 앞에서 위험 요소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있는 중이다. 대체 당·청은 최소한의 교감이라도 하는지 근본적 의심마저 든다. 특감반이 교체되는 파동이 났을 때 해외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 “믿어 달라”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을 경질하겠다는 뜻인지 아닌지 함의의 일단도 파악하지 못한 여당은 우왕좌왕했다. 청와대 민정실을 대놓고 공박하다가 감싸기 모드로 급선회하는 우스운 모양새를 고스란히 다 들켰다. 청와대는 몇 날 며칠의 난타전에서 밀리자 6급 수사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권력에 줄서지 않는 검찰로 개혁하겠다는 민정수석실이다. 그 핵심 권력이 미꾸라지 한 마리를 어쩌지 못해 검찰에 소 잡는 칼로 엄호를 요청한 격이다. 청와대로서는 심각하게 모양 빠진 일이고, 보는 사람들로서는 두고두고 께름칙한 일이다. 청와대 담장 밖으로는 넘어오지 말아야 될 이야기들이 넘어온다. 문 대통령이 며칠 전 청와대 수석급들과의 관저 만찬에서 “지치지 말고 일하자” 했다고 한다. “질책해도 모자란데, 누가 누구 때문에 지치느냐”는 성난 여론이 끓는다. 대통령 귀에는 정말 안 들리는지 궁금하다. 대통령을 이런 구설에 무방비 노출시킬 정도로 청와대 참모들은 정무 감각이 없는지 더더욱 궁금하다. 이러니 대통령이 혼밥에 혼술을 한다는 소문이 들릴 게다. 국가 중심의 일방 권력이 아닌 일상과 연결된 미시 권력을 주목해야 한다는 메시지들이 이런저런 사상가들의 입에서 이어진다. 어렵지 않은 얘기다. 민심의 결을 읽어 내지 못하는 권력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완강한 경고다. 화타와 편작을 모셔 와도 영원히 되살릴 수 없을 것 같던 자유한국당이 기사회생할 날이 멀지 않아 올지 모른다. “문 대통령이 박근혜 특별사면을 고민할 상황이 조만간 올 수도 있는 것이 정치”라는 야당의 훈수가 허튼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조국 수석이 페이스북에 “맞으며 가겠다”는 의지를 다시 보였다. 굴복하지 않겠다는 노래도 링크했다. 누구한테 왜 맞고 있는지 그 생각은 조금도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수 없을 바에는 어설픈 은유들은 그만 접자. 맞아서는 갈 수가 없다. sjh@seoul.co.kr
  • [길섶에서] 연하장/황성기 논설위원

    지난주 연하장을 부쳤다. 숫자는 지난해와 비교해 조금 줄었다. 정확히 말하면 줄였다. 연초에 받는 연하장도 매년 감소 추세이니 내년 초는 올해보다 줄어들 것이다. 중순께 연하장을 사러 우체국에 갔더니 매진된 종류도 있다. 2019년 기해년 돼지를 모델로 넣은 연하장들이 귀엽고 복스럽다. SNS에서 새해 인사를 하는 시대가 시작된 지도 10년은 넘은 듯한데 여전히 종이로 주고받는 연하장 수요는 남아 있었나 보다. 연하장을 보내는 건 연말의 즐거움이자 손이 가는 일거리 중 하나다. 2018년 연하장을 보내 주신 분에게는 우선적으로 보냈다. 연하장은 받지 못했지만 여러모로 신세를 지는 몇 분도 우송 명단에 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20장에 가깝다. 속지에 간략하게 새해 덕담을 쓰고,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주소를 적는 일이 고작이지만 직접 써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연하장을 부치면서 한때 100장 넘게 보내던 시절을 떠올린다. 내년 초 누가 연하장을 보내 줄지, 종이 연하장은 언제쯤이면 뚝 끊길지.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연하장을 주고받을 몇 분은 있을 것 같다. 귀갓길이면 궁금해 우편함을 들여다 보고, 함에 손을 넣어 보는 것도 연초 며칠간의 설렘이다. marry04@seoul.co.kr
  • [부고]

    ●최태환(전 서울신문 편집국장·전 스포츠서울 사장)씨 모친상 25일 계명대 경주동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54)770-9500 ●이일남(목사)씨 별세 두걸(서울신문 논설위원) 혜란(주부)씨 부친상 이지혜(더바이어 편집국 차장)씨 시부상 최성훈(중부지방국세청 송무과장)씨 장인상 25일 서울 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20분 (02)3010-2000 ●김편규씨 별세 이경수(전 서울신문 광고국 부국장)씨 장인상 25일 부산 해운대백병원, 발인 27일 오전 11시 010-7154-8768 ●백인주(전 남원·김제군수)씨 부인상 25일 전북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10-3680-3141 ●진중호(전 경남은행 지점장) 용성(부산일보 경영기획국 경영위원)씨 모친상 25일 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7시 010-3377-0752 ●윤주성(KBS 순천방송국 방송부장)씨 부친상 25일 전남 담양 동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61)383-0000
  • [부고] 이두걸 서울신문 논설위원 부친상

    ●이일남(목사)씨 별세, 이두걸(서울신문 논설위원)·혜란(주부)씨 부친상, 이지혜(더바이어 편집국 차장)씨 시부상, 최성훈(중부지방국세청 송무과장)씨 장인상25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 27일 오전 9시 20분. ☎02-3010-2000  
  • [씨줄날줄] 위정자의 임중도원(任重道遠)/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위정자의 임중도원(任重道遠)/임창용 논설위원

    정치인들이 중책을 맡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사자성어를 통해 각오나 소회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게 ‘임중도원’(任重道遠)이다.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증자의 가르침(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으로 ‘등에 진 짐은 무겁고 길은 머니 선비는 모름지기 도량이 넓고 굳세지 않으면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정치적 부침이 잦아선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 말을 꽤 애용했다. 2015년 새해 첫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임중도원의 상황”이라며 “근본을 바로하고 근원을 맑게 하는 정본청원(正本淸源)의 개혁정신으로 혁신의 아이콘이 돼야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당내에서 비박계의 입지가 좁아지고 청와대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이 싹트는 상황에서 여당 대표로서의 복잡한 심경, 그리고 혁신을 통해 이를 돌파하겠다는 뜻을 담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도 2014년 임중도원을 언급했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그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책임 있는 정부라면 막무가내 발목 잡기를 하는 야당 탓만 할 수는 없다”며 “임중도원이란 말과 같은 상황이지만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자세로 국민과 민생만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민생정치를 강조했다. 이들이 진정 임중도원의 길을 걸었다면 지금처럼 추락했을까 하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지도자가 부패 척결의 각오를 다질 때도 임중도원은 유용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초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 “반부패 투쟁은 임중도원이라며 앞으로도 강도 높게 펼쳐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후 국가 감찰위 구축과 국가감찰법 제정 등을 통해 전방위적인 부패 척결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교수신문이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임중도원을 선정했다. 전국의 8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41명(38.8%)이 임중도원을 선택했다고 한다. 임중도원을 추천한 전호근 경희대 철학과 교수는 추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이 성공적으로 완수되기를 바라는 마음, 두 번째는 적폐청산과 불평등 없는 세상을 이루고자 한 또 다른 짐을 내려놓지 말라고 당부하는 마음이다. 전 교수는 “당부라 했지만, 이것은 경고”라고 했다. 사방에 깔린 덫이 다리를 죄어 오더라도 절대 짐을 내려놓지 말고 끝까지 가 달라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가 임중도원의 길을 묵묵히 걷기를 바란다.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땅 보며 잘 걷기/문소영 논설실장

    발은 작아도 잘 넘어지지 않는 동생은 그 비결을 땅을 주시하며 걷는 습관 덕분이라고 했다. 대신 동생은 험한 걸 많이 봤다. 이를테면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같은 것이다. 내 걷는 습관이자 버릇은 시선을 허공에 걸어둔다. 그래서 길을 걸어도 땅바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모른다. 싱크홀이나 맨홀 뚜껑이 열려 있거나 하지 않았으니 허공에 시선을 두어도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계단이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늘 참사가 일어난다. 마지막 남은 계단 한 칸을 미쳐 보지 못하고 발을 신나게 내딛다가 발목이 돌아가는 일이 수십년째다. 수습기자 때 마포경찰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목을 또 다쳐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일주일 넘게 고생했다. “수습은 사람도 아니다”라던 시절이니까 발목을 다쳤다고 말을 못해 병원에도 못 가고 압박붕대에 의지해 길고 긴 하루를 보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이제 허공에 시선을 두는 버릇을 고칠 나이가 되었다. 연초에 넘어져 오른발 골절로, 연말에 왼발 인대를 또 다쳐 깁스를 각각 했다. 나이 탓인지 잘 낫지 않는다. 목발에 기대 아둔하게 걸으니 두뇌도 아둔해지는 듯하다. 직립보행으로 뇌가 커졌다는 가설이 맞는 건가 싶다. symun@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독립군 탄압 거점 부산경찰서 폭파… 의열단 거사 1호 ‘부산의 윤봉길’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독립군 탄압 거점 부산경찰서 폭파… 의열단 거사 1호 ‘부산의 윤봉길’

    “왜놈 손에 사형당하기 싫어 단식하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게.” 1921년 5월 5일 대구감옥으로 면회 온 친구 최천택이 가져온 달걀꾸러미를 건네자 박재혁 의사(義士)는 이렇게 말했다. 엿새 후인 5월 11일 오전 11시 20분 박 의사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식음을 전폐한 지 열이틀째, 사형 집행 사흘 전이었다. 며칠 후 의사의 시신은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박 의사의 노모와 친구들, 수많은 시민이 역 앞에 몰려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천만뜻밖에 이 지경이 되니 하늘이 무너진 듯합니다.” 노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최초로 의열단 거사를 성공으로 이끈 주인공이자 ‘부산의 윤봉길’로 불릴 만한 박 의사가 순국한 지 97년이 흘렀다.취재차 찾은 부산 날씨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쯤 됐다. 서봉수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장 겸 삼일동지회중앙회장을 만나 박 의사의 생애와 기념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삼일동지회는 해마다 박 의사 추모제를 여는 등 기념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박 의사는 직계 후손이 없다. 박 의사 여동생 명진의 손녀인 김경은(53)씨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인데 업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아 가슴 아프다”고 말문을 떼었다.●정부·지자체 관심 부족… 담당자도 박재혁 몰라 김씨와 서 회장은 인터뷰 내내 독립유공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실제로 고위층은 물론 현지 담당자 중에도 박재혁이 누군지 모르는 이가 있다고 했다. 1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는 ‘박재혁 거리’를 찾아가 보니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박 의사는 1895년 5월 17일 부산 동구 범일동 183번지에서 가난한 선비 박희선과 어머니 이치수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생가 복원은 고사하고 아직 출생지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범일동 550번지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550번지는 1919년 이사해서 가족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현재 ‘183번지’는 공용 주차장이 돼 있고 ‘550번지’에는 민가가 있다. 박 의사는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여동생 명진과 어렵게 살았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다. 교육열 높은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의사는 1915년 부산공립상업학교(부산상고, 현 개성고)를 4회로 졸업했다. 박 의사와 동급생 최천택, 오택(오재영)은 친형제보다 가깝게 지낸 ‘삼총사’였다. 의형제를 맺고 부모상을 당하면 같이 상주 노릇을 하자고 다짐할 정도였다. 최천택이 남긴 글에 따르면 “박재혁, 김인태, 김병태, 김영주, 장지형(장건상 조카), 오택 등 친구들과 매일 만나 독립운동에 대한 전도를 모의하였다”고 한다.●고서적상으로 위장… 서장실 들어가 폭탄 던져 2학년 때인 1913년 박 의사와 최천택 등은 일제가 금서로 규정한 ‘동국역사’를 여러 학교와 학우들에게 몰래 나눠주다 발각됐다. 구한말 역사가인 현채가 지은 우리 역사교과서였다. 이때부터 박 의사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일경의 감시를 받게 된다. 3학년이 된 박 의사는 최천택 등 16명과 ‘구세단’을 결성, 지역 청년들을 규합하려 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탄로 나 1주일 동안 모진 고문을 받았다. 구세단은 1915년을 전후해 경남 밀양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이 결성한 ‘일합사’와 교류했다. 이는 나중에 박 의사가 의열단에 가입하는 계기가 됐다. 박 의사는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고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1920년 초 박 의사는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다. 김원봉은 “부산경찰서장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는 의열단원 다수를 체포한 악질 경찰로 경남북 경무부 관내 수석 서장인 거물이었다. 박 의사는 김원봉에게서 거사 자금 300원과 여비 50원, 러시아제 원통형 폭탄 한 개를 받아 중국 상하이를 떠났다. ●“모든 책임 진다” 편지 붓대롱에 넣어 친구에 박 의사는 감시가 심한 관부연락선을 타려던 계획을 바꿔 대마도를 거쳐 부산항에 잠입했다. 선생은 상하이 동지들에게 ‘熱落仙他地末古 大馬渡路徐看多’(열락선 타지 말고 대마도로 간다)고 적은 엽서를 보냈다. 검열을 피하려고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부산에 들어온 날은 1920년 9월 6일이었다. 폭탄은 친구 오택의 집에 숨기고 “총독부를 폭파할 것”이라고 거짓으로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경은 오택을 찾아와 박 의사의 입국 경위를 캐물었다. 의사는 더 지체할 수 없었다. 폭탄을 숨겨둔 오택의 집으로 갔다. 오택은 유고집에서 이렇게 썼다. “박형이 시간이 절박하다며 맡겨둔 물건을 내어달라고 독촉했다. 나는 암실에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나왔다.” 박 의사는 가족을 부탁하면서 붙잡히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홀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박 의사가 중국 고서적상을 가장해 용두산공원 아래 부산경찰서에 도착한 것은 9월 14일 오후 2시 30분쯤이었다. 폭탄을 숨긴 짐꾸러미를 들고서였다. 최천택은 용두산공원에서 망을 보았다고 한다. 고서적상으로 위장한 것은 하시모토가 중국 고서적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 의사는 서장실로 들어가 서장이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라며 준엄하게 꾸짖고는 폭탄을 던졌다. “꽝” 하고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1층 유리창과 책상을 부수고 천장을 관통할 만큼 강력했다. 하시모토는 중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의사도 오른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일본 관광객 보기 안 좋다”… 표지석도 안 세워 다친 박 의사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투탄 후 경남 전역에 비상령이 내려졌다. 일경은 경찰서 주변을 지나던 행인 등 수십 명을 닥치는 대로 붙잡아 들였다. 어머니와 여동생도 잡혀와 심문을 받았다. 최천택 등 친구들도 붙잡혔다. 오택은 폭탄을 숨겨준 혐의로 1년 동안 수감됐다. 응급처치를 받은 박 의사는 공범을 불라는 일경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단독범행임을 고집했다. 박 의사는 부립병원 간호원을 통해 유치장에 갇힌 최천택에게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짧은 편지를 붓대롱에 넣어 전달했다고 한다. 망을 보았던 최천택(1897~1962·건국훈장 애족장)은 모진 고문을 받아 의식을 잃은 채 풀려났다. 치안 조직의 핵심인 경찰서장실에 폭탄을 던진 박 의사의 의거는 일본 본토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일본 신문들은 “일선(日鮮) 동화를 단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썼다. 박 의사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2심에서 사형으로 형량이 높아졌고 경성고법 상고심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사형이 선고되자 선생의 홀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대성통곡했다. 방청객 모두 따라 울었다. 폭탄 파편에 맞은 부상과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 생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박 의사는 면회 온 사람들에게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의사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유해도 1969년 부산에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그러나 부산에서도 박 의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데는 정부나 부산시의 책임이 크다. 동상조차 예산 한푼 들이지 않고 롯데그룹 지원으로 건립했고 그나마도 인적이 드문 부산 성지곡 수원지 맨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산길을 돌아 찾아간 동상 앞에는 등산객 몇몇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을 뿐이었다. 폭탄 의거가 있었던 옛 부산경찰서 자리엔 모텔과 상가가 들어서 있었다. 그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표지석도 없었다. “개인 땅이어서 안 된다”거나 “일본 관광객들 보기에 안 좋다”는 반대에 부닥쳐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씨줄날줄] 산타 위치 추적/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산타 위치 추적/이순녀 논설위원

    “산타 할아버지 지금 어디쯤 오셨어요?” 크리스마스이브날 전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궁금증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개 얼버무리기 쉽다. 하지만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를 향한 동심을 보다 단단히 지켜 줄 방법이 있다. 바로 산타 위치 추적 서비스를 통해 아이와 함께 실시간으로 이동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다.미국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와 구글 등 두 곳에서 산타 위치 추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라드는 한국 시간으로 24일 오후 4시, 구글은 24일 오후 7시부터 홈페이지에서 산타와 루돌프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 준다. 전 세계 핵미사일과 전략폭격기의 동향을 24시간 감시하는 군사 조직인 노라드의 산타 위치 추적은 올해로 63년이나 된 유서 깊은 전통이다. 출발은 인쇄 실수에서 비롯됐다. 1955년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신문에 산타의 전화번호가 소개된 백화점 광고가 실렸다. 그런데 이 번호는 노라드의 전신인 콜로라도스프링스방공사령부(CORAD)의 사령관 직통 번호였다. 느닷없이 산타를 찾는 아이들의 전화를 받게 된 해리 숍 대령은 동심을 깨지 않으려고 산타의 위치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성탄 전날의 깜짝 이벤트는 1958년 코라드가 미국 공군과 캐나다 공군의 연합방위 조직인 노라드로 개편된 뒤에도 이어졌다. 미 연방정부가 지난 22일 0시(현지시간)부터 일시적 업무 정지인 ‘셧다운’에 들어가면서 노라드의 산타 위치 추적 서비스 중단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노라드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올해도 어김없이 산타 위치 추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산타를 찾는 아이들의 성화를 걱정했던 부모들로선 가슴을 쓸어내렸을 법하다. 노라드의 산타 위치 추적은 자원봉사자들과 기업 등 협력업체들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이뤄진다. 정부 예산은 극히 일부만 사용된다. 매년 1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는데 대통령 부부도 빠지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도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자원봉사자로 동참한다. 구글은 2004년부터 산타 위치 추적 서비스에 나섰다. 2011년까지 노라드와 협력하다 2012년부터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노라드는 구글과 결별한 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았다. 실시간 산타 위치 정확도를 둘러싼 노마드와 구글 간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노라드는 산타 위치 추적에 정찰위성과 대공레이더망, 전투기까지 동원한다고 밝혔다. 구글은 썰매의 와이파이 신호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낸다고 하니 흥미롭다. cora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크리스마스 차일드’

    [그때의 사회면] ‘크리스마스 차일드’

    성탄 전야는 늘 축제 분위기였다. 기독교·천주교인들은 오히려 조용히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동안 일반인들은 밤을 새우며 광란의 밤을 보냈다. 크리스마스이브 분위기가 늘 이렇게 들뜬 것은 통금과 관련이 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이 금지되던 시절 이날만큼은 통금이 해제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올나이트’를 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했다. 업소들은 철야영업을 했으며 특히 ‘댄스홀’은 광란 그 자체였다. “종잇조각으로 만든 관(冠)과 색안경을 뒤집어쓴 댄서들은 거침없는 교성을 연발. 덩달아 손님들은 비틀걸음으로 고함 소리. 손님들은 끝없이 밀려오고 댄서들은 날개 돋은 듯 끌려다니고.” 전쟁이 끝난 지 불과 3년 후인 1956년 성탄전야 모습이다(동아일보 1956년 12월 26일자).1964년 성탄은 사상 최악이었다. 정부 당국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남녀 중·고생 3000여명이 도봉산 계곡과 남산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동틀 무렵 내려온 사건이다. 청소년보호대책위원회 긴급 소집을 부른 이 사건은 “여학생들이 서비스(밥 짓기)를 하고 남학생들이 돈을 모아 산으로 올라간 후 술을 마시고 트랜지스터 음악에 트위스트를 추며 보냈던 광란의 밤”으로 신문들은 대서특필했다. 날씨마저 포근해 서울 종로와 명동으로 쏟아져 나온 인파는 무려 35만명이었다. 이들은 필름을 감아 만든 10원짜리 뿔피리를 불어 대고 가면을 쓴 쌍쌍들이 밤거리를 누벼 가면무도회를 방불케 했다. 도심 거리는 취객들로 넘쳐났고 질서 유지를 위해 기마경찰대가 동원됐다. 순시에 나선 내무장관이 종로3가에서 매춘부에게 소매를 끌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경향신문 1995년 12월 21일자). 1965년 10월에는 서울 시내 산부인과에서는 신생아가 어느 달보다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1964년 성탄 전야에 젊은 남녀의 일탈로 원하지 않은 생명이 잉태됐기 때문이었다. 이때 태어난 아이들을 ‘크리스마스 차일드’라고 불렀다는데 어떤 사람들은 ‘나라의 수치’라고 했다(경향신문 1970년 12월 23일자). 최악의 성탄을 겪은 이듬해인 1965년 성탄 전야는 좀 ‘살벌’해졌다. 명동 등에 경찰이 대병력을 풀어 질서를 유지하고 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사회단체들은 ‘조용한 크리스마스 보내기’ 운동을 펼쳤고 어린이들까지 “아빠 엄마 일찍 돌아오셔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에 나섰다. 광란이 통금 해제 때문이라며 통금을 유지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 이후 성탄 전야 광란의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어 갔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원죄/이두걸 논설위원

    병상에서 사투 중인 부친과 오랜 대화를 나눈 건 거의 20년 전이다. 대학 한국현대사 과목의 구술사(口述史) 숙제를 해야 했다. 구술사는 특정 사건이나 시대에 대한 개인의 주관을 기록한다. 당신은 ‘월남에서 돌아온 이 병장’이었다. 당시 시민사회 진영에서 제기하기 시작하던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에 대해 물었다. “당시 전장에서도 ‘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몰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월남을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 대신 ‘이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커졌다. 나중엔 ‘기독교인인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을까’라는 회의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시를 떠올리는 표정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평생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렸으면서도 참전용사회 등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베트남에서 ‘박항서 신드롬’이 한창이다. 현지에서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입지가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일본에 ‘강점 당시의 만행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우리는 베트남에 한 번도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하지 않았다. 원죄를 언제쯤 씻을 수 있을까. douziri@seoul.co.kr
  • 송건호 선생 흉상 충북 옥천 생가에 건립

    송건호 선생 흉상 충북 옥천 생가에 건립

    한국 언론의 사표로 불리는 청암 송건호(1926∼2001) 선생의 흉상이 21일 충북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생가에 세워졌다.송건호 기념사업회는 청암 타개 17주기를 맞은 이날 생가에서 흉상 제막식과 추모제를 열었다. 맏아들인 송준용 청암언론문화재단 상임이사와 이인석 기념사업회장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추모제는 추모사, 유족인사, 분향 등으로 진행됐다. 흉상은 1.4m 높이의 대리석 기단 위에 높이 40㎝의 동상으로 이뤄졌고, 조각가인 김성용 한남대 미술교육과 교수가 제작했다.청암은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53년 대한통신사 외신기자로 언론에 첫발을 디딘 뒤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냈다. 1975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서 ‘10·24 자유언론실천 선언’을 주도했다가 해직됐고,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을 거쳐 1988년 한겨레신문 초대 대표를 역임했다. 대쪽 같은 기자 정신으로 정도를 걸어 ‘한민족 지성’ ‘해직기자의 대부’ 등으로 불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옥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38) LG에서 GS, LS, LIG로 분화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38) LG에서 GS, LS, LIG로 분화

     지난 2005년 3월 31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GS타워에서 열린 GS그룹 출범식에서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나란히 참석했다. 구 회장은 축사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함께 이겨냈다”면서 “1등 기업을 향한 좋은 동반자가 돼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LG그룹은 창업주 연암 구인회씨와 사돈 관계였던 현 GS그룹의 창업주 효주 허만정씨의 동업으로 시작됐다. 두 가문은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 일명 ‘승산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허씨 일가는 만석꾼, 구씨 일가는 천석꾼으로 불리며 진주 일대 부호로 유명했다. 특히 구씨는 1931년 25세때 진주에 ‘구인회 상점’이라는 포목점을 차려 큰 성공을 거둔 경남지역의 대표적인 기업가였다. 두 가문은 대대로 사돈의 연(緣)을 맺어온 데다 1946년 허만정씨가 구인회씨에게 사업자금 투자와 경영 참여를 제의하면서 57년간 동반자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당시 허씨는 셋째 아들 허준구씨를 데리고 부산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중이던 구씨를 만났다. 허준구씨는 24세로 도쿄 간토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고보를 졸업했을 때였다. 허준구씨는 구인회씨의 동생인 구철회씨의 맏사위였으므로 허만정씨와 구인회씨는 사돈지간이었다.  허만정씨는 “내가 사돈의 역량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일이니 청을 들어주소. 내 아들 준구를 맡기고 갈 터이니 두고 일을 가르쳐 주소. 사돈이 하는 사업에 내가 출자도 좀 할 작정이오”라고 말하며 거액의 사업자금을 내놓았다. 이로써 반세기 넘게 LG의 양 축을 이룬 동업경영체제가 시작됐다. 구인회씨는 허씨가의 투자금을 기반으로 부산 흥아화학에서 생산하는 아마쓰크림의 판매대리점 사업을 시작했다. 판매업에서 승기를 잡자 1947년에는 크림을 직접 생산하는 데 성공해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고 오늘날 LG그룹을 일궜다.  고(故) 허준구 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은 그룹 창업 초기부터 50년간 한 직장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지낸 동료이자 친구였다. 구자경 회장이 허준구 회장보다는 2살 아래였고 LG그룹의 입사도 4년이나 늦었지만 허 회장은 회사내에서는 구자경 회장에게 늘 깍듯하게 예우하며 가풍을 지켜 나갔다고 한다. 그러다 1995년 2월 구자경 회장의 장남인 구본무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모두 동반 퇴진하게 된다.  단단한 동업자 정신을 보였던 허씨·구씨 양 가문은 2000년대 들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분리작업을 시작했다. LG그룹은 전자, 통신, 화학을 갖고, GS그룹은 정유, 유통, 건설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LG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여섯 형제중 넷째인 고 구태회(LS전선 명예회장), 다섯째 고 구평회(E1 명예회장), 막내인 구두회(예스코 명혜회장) 형제는 2003년 계열분리해 LS그룹을 설립했다.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 명예회장의 자녀들은 1999년 LG화재(현 KB손해보험)를 갖고 그룹에서 독립해 LIG그룹을 만들었다. 구철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원 회장은 2004년 LG이노텍으로부터 방산 부문을 인수해 LIG넥스원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그룹화에 나섰다. 이후 LIG그룹은 LIG건설을 설립했지만 금융위기 후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오히려 2014년 주력기업인 LIG손해보험을 KB국민지주에 매각했다. 구자원 회장의 두 아들 구본상, 구본엽씨는 그룹 최대주주지만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다.  LIG손해보험 매각 이후 LIG그룹 경영에 참여해왔던 형제들은 분리과정을 밟고 있다. 구철회 명예회장의 차남 고 구자성 LG건설 사장의 외아들 구본욱씨는 2014년 말 LIG투자자문을 갖고 독립한 뒤 2015년 12월 LK자산운용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해 오고 있다. 4남 구자준 씨는 현재 디스플레이 장비업체인 인베니아를 경영하며, LIG그룹과는 분리 수순을 밟고 있다.  고 구자경 명혜회장의 첫째 동생인 고 구자승 회장은 2006년 LG상사에 패션부문을 떼어내 LF를 설립했고, 장남 구본걸씨가 회장으로 있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자학 회장은 2000년 외식업체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본능 회장은 1996년 희성그룹으로 분리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임창용 논설위원의 시시콜콜] 장영자의 ‘사기중독’

    [임창용 논설위원의 시시콜콜] 장영자의 ‘사기중독’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이 전과 5범 여성의 사기에 농락당한 사건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법한 의사 출신의 광역단체장이 대통령 부인 사칭 사기에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윤 전 시장은 돈과 명예를 잃은 것도 모자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사기범에게 돈을 넘겨준 게 재선을 위한 공천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어쨌든 사기 피의자는 윤 전 시장에게 가로챈 수억원으로 고가 자동차를 구입하는 등 돈을 물 쓰듯 했다고 한다. 윤 전 시장 사례 뿐만 아니라 언론보도 등을 보면 우리 사회엔 납득하기 어려운 사기사건이 차고 넘친다. 특이한 것은 이런 경우 대부분의 범인은 초범이 아니란 점이다. 지난 해 9월 자신을 유명 항공사의 부기장이라고 소개하고 여성들로부터 결혼을 빙자해 수억원을 뜯어낸 30대 남성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철강회사를 경영하고 수십억원 대의 땅을 물려받았다고 허풍을 떨면서 특급호텔에서 여성과 투숙하고 결국 결혼식까지 올렸다.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는 와중에도 또 다른 여성에게 사기를 치는 대범함을 보였다. 마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항공사 부기장과 의사, 변호사 등으로 변신하며 ‘신출귀몰’한 사기행각을 벌이던 장면을 연상케 한 사건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사기에 넘어가는 이유가 뭘까. 수많은 사기범죄를 다뤘던 25년차 베테랑 수사관으로 ‘속임수의 심리학’이란 책을 낸 김영헌 서울동부지검 수사과장은 속임수에 공통적으로 세가지 심리가 활용된다고 설명한다. 욕망과 신뢰, 그리고 불안이다. 남자는 상당수가 대박을 꿈꾸는 욕망 때문에, 여자는 주변인과의 관계 때문에 사기에 걸려든다고 한다. 그래서 욕심 많고, 남의 말을 지나치게 잘 믿고 쉽게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기꾼의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범죄든 개과천선이 쉽지는 않지만 유달리 사기죄는 재범률이 높다. 2016년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전과 여부가 확인된 사기범 중 전과 9범 이상이 3만 622명으로 초범(2만 7746명) 보다 많았다. 전체 범죄를 통틀어 전과 9범 이상이 초범 보다 많은 것은 사기가 유일하다고 한다. 중독성이 높은 도박죄도 초범(9050명)이 9범 이상(3690명)보다 많은 걸 보면 사기가 도박보다 중독성이 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비싼 술집만 골라 술을 먹은 뒤 돈을 내지 않는 ‘무전취식’ 등으로 사기죄로만 14번이나 처벌받은 남성이 있는 가하면, 평범한 대학생이 인터넷 사기로 전과 26범이 된 사례도 있다. 1982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장영자·이철희 사건’의 장영자 씨(74)가 사기 혐의로 엊그제 구속됐다. 수감생활만 네 번째다. 이·장 사기사건은 당시 어음 사취금액이 1400억 원, 어음 발행 기업의 피해액이 7000억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어음 사기사건’으로 불렸다. 장씨는 그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10년 복역 후 가석방됐다. 하지만, 그후에도 사위인 탤런트 김주승씨 회사 부도사건, 220억원 대 구권 화폐사건 등으로 구속돼 지금까지 총 29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이번엔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세 배로 갚겠다는 등의 수법으로 세 차례에 걸쳐 총 6억2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30년 가까이 감옥에서 고생하고도 속임수를 끊지 못한 걸 보면 ‘사기의 중독성’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부산대 강사들의 파업/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부산대 강사들의 파업/임창용 논설위원

    지난 3일 고려대는 각 학과에 “교무팀에서 요청한 학과별 운영 방안과 내년 1학기 개설 과목 리스트를 제출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앞서 보냈던 요구 사항을 철회한다는 의미였다. 지난 10월 고려대 교무처는 각 학과에 강사법 대응책을 담은 대외비 문건 ‘강사법 시행예정 관련 논의 사항’을 보낸 바 있다. 문건은 필요불가결한 경우를 제외한 강사 채용 금지, 강사가 주로 담당하던 교양과목 종류와 수 대폭 감축, 졸업이수학점 130학점에서 120학점으로 축소 등을 담고 있었다. 강사들은 물론 학생들과 전임 교수들까지 크게 반발하자 학교측이 일단 물러섰지만, 만약 문건대로 시행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물론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일자리를 잃는 강사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생들 또한 교육의 질 저하에 따른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다. 이미 상당수 대학은 고려대의 방안과 유사한 대책을 세워 놓고 여론 눈치를 보고 있다. 강사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으려고 과목 통폐합과 학점 축소, 전임교수 강의 늘리기, 강의 대형화, 졸업학점 축소 등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방안들은 대부분 교육의 질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과목 선택권과 수업권, 학점을 딸 권리를 침해받을 것이고, 전임 교수들은 늘어난 강의 부담에 허덕일 것이다. 강의의 질 악화와 연구의 위축도 불 보듯 뻔하다. 인건비 좀 아끼려다 대학 교육의 기반이 위협받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결국 강사법 시행과 관련해 부산대 강사들이 그제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전국 대학 중 최초라고 한다. 이들은 대형 강좌 최소화와 졸업학점 축소 반대 등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대학측은 거부하고 있다. 경상대와 영남대, 조선대 등도 단체협상이 결렬됐고, 다른 대학들도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파업은 강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를 넘어 우리나라 대학 고등교육의 질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교육부는 시간강사 인건비 지원을 위해 확보한 예산 288억원을 강사를 대량 해고한 대학에는 배분하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사의 대량 해고를 막기엔 역부족일 듯싶다. 강사법 시행으로 대학당 평균 수십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학들로선 지원을 받는 대신 대량 해고를 선택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보다 강력한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삼한사미/이종락 논설위원

    2년 전 어느 토요일 저녁. 중국 베이징으로 휴가간 부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일요일에 출발해야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는데 베이징 공항이 미세먼지로 폐쇄됐다는 것이다. 월요일에 연차를 쓰라고 얘기해줬는데 그 부원은 예정대로 월요일에 출근했다. 놀랍게도 일요일이 되니까 미세먼지가 눈 녹듯 사라져 서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 와보니 베이징에 있던 그 미세먼지가 고스란히 서울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3일간 춥고, 4일간 따뜻하다는 한국과 중국 북부 지방의 겨울날씨를 ‘삼한사온’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3일은 추위, 4일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뜻으로 ‘삼한사미’로 바뀌었다. 환경부는 지난 18일 내년 업무계획에서 미세먼지 배출량을 4만 668t 감축해 서울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를 2017년 1㎥당 25㎍에서 2022년 17㎍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 양이 절대적인데 환경부는 “중국과의 협력 사업을 확대하고, 국가 간 협약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한가한 얘기만 했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미세먼지 저감대책과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 결기가 없으면 미세먼지 문제는 영원히 풀 수 없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한국이 버리고 미국은 내쫓고… 난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한국이 버리고 미국은 내쫓고… 난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미국에 입양간 뒤 국적을 얻지 못하고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불안하게 사는 입양아가 1만 8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다 커서 자발적으로 밀입국 등을 통해 불법체류자가 된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다. ‘아니 다른 나라에서 어린 아이를 입양한 뒤 국적을 주지 않고 불법 체류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이었다. 이들은 지금도 혹시나 교통법규 위반이나 다른 범법 행위로 경찰이나 이민당국에 체포될까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아들은 이태원 등지에서 접시닦이로 일하기도 하고, 홈리스가 되기도 한다. 적응을 못하고 자살한 사람도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고아 등을 다른 나라에 보내기 급급했지 그들의 지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모국 한국과 아이를 데려다 놓고 국적 취득에는 나 몰라라 했던 미국 양부모들의 무성의 탓이었다. 단편적인 얘기만 전해질 뿐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얘기를 알아봤다.●누구도 원해서 한국을 떠난 게 아니다 “내가 대한민국을 떠난 것도 내 뜻이 아니었고, 미국으로 보내져 미국인 부모를 만난 것도 내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나의 뜻과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미국에 입양 갔다가 추방 위기에 몰린 한 입양아의 얘기다. 지난해 5월 21일 안타까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8살 때인 1983년 미국으로 입양돼 28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추방돼 피부색은 같지만, 말도 안 통하는 그의 모국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 42년의 생을 마감한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의 얘기다. 선천성 양극성장애자였던 그는 미국에서 약물 중독과 강절도 등을 저질러 교도소로 가게 된다. 그런데 수용생활을 하다가 출소하면 한국으로 추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양아였지만, 미국 시민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추방된 그는 자신의 친부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다가 결국 찾지 못하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클레이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입양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지만, 그때뿐이었고 이내 잊혀졌다. 미국 입양아 출신 A(45)씨는 1970년대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의 한국 성은 김씨이다. 그를 길에서 발견한 사람의 성을 따랐다고 한다. 그는 행운아였다. 부잣집 외아들로 입양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0년 초 양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자살하면서 그의 삶은 꼬인다. 양부모의 재산은 많았지만, 모두 국가에 귀속된다. 시민권이 없는 그는 상속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갱단에 들어가 범법자가 되고, 3년형을 받고 출소 뒤 한국으로 추방된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던 중 마약 투약이 들통나 1년형을 산 뒤에는 그는 다시 은행강도가 된다. 석방된 뒤 그는 현재 경기도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다. ●경범죄 세 번이면 추방… 공포에 갇힌 일상 G씨(남·47)는 유타주에서 살다가 범죄를 저질러 형을 산 뒤 가족은 미국에 둔 뒤 홀로 추방됐다. 지금도 많은 입양아가 한국 추방을 앞두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들에게 국적을 부여하지만, 그뿐이다. 외교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도 이들의 정확한 통계는 밝히길 꺼린다. 교민사회와 이들을 돕는 종교단체 등을 통해 소문이 나 알려질 뿐이다. 그들은 한사코 만나기를 거부한다. 간혹 만나더라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나마 어렵게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과거가 알려지는 것이 싫다는 사람도 있고, 도움도 되지 않는데 굳이 신상을 털어놓을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의사와 달리 남의 손에 이끌려 이역만리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는 모두 11만명(교민 단체는 14만명 추산)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를 잘 만나서 훌륭하게 성장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인 입양아 가운데 1만 8000명은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시민권 없이 추방의 공포에 떨고 있다.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두려움은 더 커졌다고 한다.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형기를 채우고 난 뒤 한국으로 추방된다. 경범죄도 세 번 누적되면 추방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근무했던 미 육군 예비역 중령인 페트릭 슈라이버는 최근 미 캔자스법원으로부터 그가 입양한 딸인 한국명 해빈(18세)의 추방명령을 받았다. 해빈은 캔자스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하면 추방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2013년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되면서 해빈의 입양수속을 미뤘다가 그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의 부모는 재판을 진행 중이지만, 법원의 결정은 단호했다. 아이 셋을 가진 G씨(여·51)는 최근 시민권을 취득을 위한 소송을 벌여 모든 절차를 마치고 조만간 시민권을 받게 된다. 그는 1992년 선거에 투표한 뒤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 투표한 것으로 드러나 기소된다. “내가 시민권이 없다니….” 그는 충격을 받는다. 양부모가 그를 파양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충격에 홈리스 생활도 2년을 했다. 다행히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입양아들을 돕는 ‘월드 허그 파운데이션’의 지원을 받아 재판할 수 있었지만, 모두 그런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아이 수출’하기에만 급급했던 한국 그러면 왜 1만 8000명이나 되는 한국인 입양아들이 미국에서 시민권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 한국전쟁이 끝난 뒤 한국에서는 많은 어린이가 미국으로 보내진다. 홀트나 동방 등 입양기관도 그때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입양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었다. 양부모가 와서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데 입양기관이 단체로 데려가서 입양가정에 인계했다. 문제는 미국에서는 이렇게 입양된 어린이에게는 시민권이 없는 ‘IR4’ 비자가 발급된다. 그저 입양아 신분일 뿐이다. 18세가 되면 미국 입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해야 하는 데 미국인 부모도 당연히 시민권이 있는 줄 알고 그냥 넘어갔다. 파양 등의 이유로 절차를 밟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은 2000년 ‘아동시민권법’에 따라 18세 미만의 입양아에겐 시민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1983년 2월 이전 출생한 입양아에겐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에는 나이 때문에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입양아가 3만 5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 51.4%가 한국 입양아인 것이다. 아이만 송출할 줄 알았지 그 아이의 권리는 챙겨주지 못한 한국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한국은 그 이후 2012년 입양 법원 허가제를 도입해 국내 가정법원에서 입양절차 완료를 확인해야 국외입양이 가능해졌지만, 사후약방문 격이다. 복지부는 외국으로 입양된 한국 아동을 16만 7244명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20만명을 넘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 교민들은 미국만 해도 14만명은 될 것으로 본다. 복지부에도 1998년 이전 상세한 국외입양자료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자료 요청을 했지만 받을 수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입양아가 가장 많은 나라지만, 1995년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99개국이 가입한 이 협약에 한국은 서명만 한 상태로 정식 가입국이 아니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관련단체의 지적이다. 현재 미 워싱턴DC 연방상원 의원 로이 블런트(미주리) 등 상원의원 13명과 애덤 스미스(워싱턴) 의원 등 하원의원 46명의 공동 발의로 18세 이전에 해외에서 미국으로 입양돼 적법하게 미국에 거주 중인 자에 대해서는 시민권을 자동부여하는 ‘입양인시민권법’이 지난 3월 상·하원에서 동시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통과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어서 이들의 안타까움은 갈수록 커지는 상태다. sunggone@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美의회 움직여 입양아 시민권 획득 노력… 한국의 관심이 큰 도움 될 것”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美의회 움직여 입양아 시민권 획득 노력… 한국의 관심이 큰 도움 될 것”

    주미 한국 영사관 입양아 배려 안 해 ‘아이 수출’ 책임 이제라도 나서야“입양을 보낸 한국이나 데려간 미국도 책임을 져야 하지요. 그런데 한국은 아이만 수출해놓고 나 몰라라 해요.” 미국에 입양되고도 시민권을 받지 못해 추방위기에 처한 한국 입양아들의 시민권 취득 운동을 펼치고 있는 길명순(미국명 Joanna Kil·62) 월드 허그 파운데이션 이사장의 얘기이다. 한국 출신 입양아들의 시민권 획득을 위한 서명 등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최근 서울신문이 만났다. 그는 미국 입양아 문제 해결을 위해 2016년 12월 발족한 월드 허그 파운데이션을 이끌고 있다. →언제부터 입양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봉사활동 모임에서 만난 지인으로부터 시민권 없이 고생하는 불행한 입양아 얘기를 듣게 됐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월드 허그 파운데이션이다.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어린이가 20만명쯤 되는데 이 가운데 시민권을 받지 못한 사람이 3만 5000명쯤 된다. 전체의 57%쯤 되는 2만여명(한국 외교부는 1만 8000명으로 추산)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미국에서 이들이 시민권을 얻게 해달라는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고, 미국 조야에 이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서명을 많이 받아서 미국 상·하원에 전달하려고 한다. 이 방법밖에 없다. 아울러 ‘1달러 기부 운동’도 펼치고 있다. 이들의 시민권 회복에는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입양아들이 소송을 통해 시민권을 회복하는 방법이 있지만, 1만 달러 안팎의 돈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다가 성공 여부도 장담하기 어렵다. →법제화를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 미국 의회의 반응은 어떤가. -개별적으로 일일이 소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번에 해결하려면 미 의회와 협력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많은 의원이 호응하고 있다. 현재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입양아에게 시민권을 주기 위한 법안이 미 의회에 제출돼 있는데 내년 2월까지인 회기 내에는 처리되기 쉽지 않다. 다음번 회기에는 통과될 것으로 본다. →한국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나. 앞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몇 년 전에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아가 자살하는 등 사회 문제화되자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을 통해서 외교부의 도움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미국에 있는 한국 영사관은 고압적이다. 한국은 아이를 수출만 했지 그들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그래 놓고 나 몰라라 해서 되겠는가. 이 문제도 알고 보면 한국 정부의 책임이다. 2012년 제도가 고쳐졌지만, 과거 한국은 입양을 보낼 때 미국에서 입양할 부모들이 와서 사인하고 애들을 데려가야 하는데 그냥 보냈다. 한국 입양기관 사람들이 애들을 2~3명씩 비행기에 태워 가서 이 집 저 집에 인계했다. 이건 아이 수출이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해서 입양아가 오면 시민권을 주지 않고 ‘IR4’ 비자를 준다, 그런데 필리핀만 해도 입양을 보낼 때 모두 양부모가 와서 사인하고 가도록 했다. 한국도 이제 부유한 나라가 됐다. 이제 떠나보낸 입양아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서명에 동참하고, 국가가 관심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미국 의회를 움직이는 데 큰 힘이 된다. sunggone@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37)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나선 GS그룹 사장단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37)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나선 GS그룹 사장단

    변호사 출신 임병용 사장, ‘1등 GS건설’ 이끌어‘GS家 3세중 막내’ 허용수 사장, 주식 최대 보유‘4세중 맏형’ 허세홍 사장 승진, GS칼텍스 ‘3인 사장’ 체제  GS그룹은 지난 2004년 출범 이후 에너지, 유통, 건설 등 기존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인수·합병(M&A), 사업구조조정 등 새로운 사업영역으로의 진출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이런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사장단이 이끌고 있다.  임병용(56) GS건설 사장은 장훈고, 서울대 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공인회계사와 사법고시에 합격해 삼일회계법인과 김&장법률사무소에서 실무를 수행함으로써 세무, 회계, 법률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전문가다. 1991년 LG그룹 구조조정본부에 입사 후 LG텔레콤 마케팅실장 등을 담당했으며, 2004년 이후에는 ㈜GS 사업지원팀장과 경영지원팀장을 거쳤다. 2013년 GS건설 CEO로 선임된 후 GS건설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과감한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위기 극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쟁력 우위에 있는 주택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해외시장도 중동을 벗어난 시장다변화 전략에 초점을 맞춰 GS건설이 꾸준한 이익 성장세를 보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GS건설은 2016년과 2017년 매출 11조원을 2년연속 돌파했으며, 올해에도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경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연수(57) GS리테일 사장은 창업주의 4남인 고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허 사장은 보성고, 고려대 전기공학과, 미 시라큐스 대학원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거쳤다. GS리테일 상품구매 본부장과 편의점 사업부 대표 역할을 맡는 등 경영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쌓아 2016년 GS리테일 사장에 올랐다. 허 사장은 최근 GS리테일의 해외사업 확대와 신시장 진출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올해 1월 베트남에 진출한 편의점 GS25는 현재 20호점을 오픈한 상태이며, 향후 2년 내 하노이 등으로 진출하면서 베트남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김응식(60) GS EPS 사장은 장훈고, 연세대 화학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윤활유사업본부장, Supply&Trading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30여년간 GS칼텍스의 원유 구매 및 석유 제품 수출을 총괄했다. 원유·제품 수급 전문가로 탁월한 성과를 발휘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최측근이다.  홍순기(59) ㈜GS 사장은 대아고, 부산대 경제학과, 연세대 경제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LG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을 거쳐 ㈜GS 재무팀, GS EPS 관리부문장, ㈜GS 업무지원팀장을 역임한 후 현재 최고재무관리자(CFO)를 맡고 있다.  GS에너지 허용수(50) 사장은 창업주의 5남인 고 허완구 승산회장의 외아들이다. GS그룹 지분 5.25%를 소유해 허창수 그룹 회장(4.75%)보다 많아 ‘그룹으로부터 독립설’ 등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이는 GS가의 특수한 사정에 연유한다. 2, 3세에게 지분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외아들인 허용수 사장이 그만큼 다른 사촌들보다 지분을 많이 소유하게 된 셈이다. 허 사장은 보성고와 조지타운대 국제경영학, 카이스트대 석사과정을 마쳤다. 해외 투자은행인 Credit Suisse, ㈜승산을 거쳐 ㈜GS에 입사, 사업지원 담당 상무를 맡은 후 증권, 물류사업, M&A, 발전사업, 자원개발 등을 경험했다. GS에너지 에너지·자원사업본부장을 거쳐 2017년 GS EPS 대표이사를 맡아 LNG복합 4호기 준공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를 통해 GS가 민간발전사로서는 최대 발전용량을 보유하게 됐다. 최근에는 GS EPS가 국내민간발전기업 최초로 미국 전력시장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허세홍(49) GS칼텍스 사장은 허동수 회장의 장남이자 GS가 4세중 맏형이다. 3세의 막내인 허용수 GS에너지 사장과는 나이가 불과 한 살 차이다. 오너가 장손이지만 직원들에게 하대하는 모습을 한번도 못봤을 정도로 예의바른 CEO로 정평이 나있다. 기업은 성장도 중요하지만 사회공헌과 복지에 공헌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휘문고-연세대 경영학과-스탠포드 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거쳤다. 글로벌 금융회사와 IBM, 셰브론 등에서 경험을 쌓고 GS칼텍스에 싱가포르법인장, 생산기획공장장 등을 거쳐 석유화학·윤활유사업 본부장을 역임했다. 2017년 GS글로벌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BSSR 석탄광 지분을 인수하는 등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이번 임원인사에서 GS칼텍스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엄태진(61) GS스포츠 사장은 김천고, 한양대 경제학과, 연세대 회계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약 34년 간 회계, 세무 등 재무 전반을 경험하고 관리부문장, 경리부문장을 거쳐 2011년 재무본부장으로 선임돼 CFO역할을 수행했다.  정찬수(56) GS E&R 사장은 남성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그룹내 ‘기획 전략통’이다. 2013년 ㈜GS 경영지원팀장을 맡아 그룹의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와 지속적인 미래 성장기반 구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GS칼텍스는 CEO인 허세홍 사장을 비롯해 김형국(56)·김기태(59) 사장 등 ‘3인 사장 체제’다. 생산본부장 사장을 맡은 김형국 사장은 여의도고, 서울대 화학공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경영기획 및 신사업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2010년부터 GS칼텍스 경영기획실장 상무-전무-부사장 등을 차례로 역임하며 회사의 ‘브레인’ 역할을 해왔다.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김기태 GS칼텍스 지속경영실장 사장은 소매영업, 인재개발, 변화혁신, 대외협력 등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경험했다. 2013년 대외협력실장으로 부임한 이후 홍보 및 브랜드 관리, 대관, 사회공헌사업, 전사 안전·환경·보건·보안 업무 등을 총괄해왔다. 성격이 올곧고 그릇이 크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남성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김태형(60) GS글로벌 부사장은 주로 해외 수출 분야 업무를 맡아오다 2011년 GS글로벌 기계·플랜트본부장, 2013년 자원·산업재본부장(전무)을 역임하고 2015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대성고와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출신이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이학재와 이부자리 ‘혼수’/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학재와 이부자리 ‘혼수’/이종락 논설위원

    여의도 정가에 때아닌 ‘이부자리 혼수’ 논란이 뜨겁다. 이학재 의원이 지난 18일 바른미래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옮겨 가면서 국회 정보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자 정당들이 설전을 주고받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논란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손 대표는 이날 한국당으로 복당하는 이 의원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지만, 절에서 덮으라고 준 이부자리까지 가지고 가는 경우는 없다”고 공격했다.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이 발언을 받았다. 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3인) 이상돈·박주현·장정숙 세 분 의원을 보내 주는 것이 손 대표의 말씀과 합당하다”며 출당을 요구했다. 박 의원은 “그 세 의원은 이부자리는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당 소속이던 세 명의 의원은 바른정당과 합당해 소속 의원이 됐지만, 이후 평화당으로 또 분당하는 과정에서 바른미래당에 남게 됐다. 비례대표 의원은 자진해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지만, 출당 조치를 당하면 의원직을 유지한 채 평화당으로 넘어올 수 있는 점을 감안한 발언이다. 이 의원은 이부자리 혼수 논란과 관련해 “최근 당적 변경과 관련된 여러 경우가 있었지만 단 한 차례도 당적 변경으로 인해 상임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든가, 사퇴했다든가 한 사례가 없었다”며 위원장직 유지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이 의원의 말대로 그동안 대부분의 의원들이 당적을 변경하면서 상임위원장직을 사퇴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유성엽, 장병완 의원이 국민의당을 탈당해 민주평화당으로 옮길 때 각각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산업자원통상위원장 자리를 지켰다. 2016년에는 새누리당 소속으로 법제사법위원장, 국방위원장,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던 권성동, 김영우, 이진복 의원이 당을 떠나 바른정당에 입당하면서 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았다. 또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김동철 국토교통위원장도 각각 자리를 유지하고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2016년 국회 안전행정위원장을 맡았던 진영 의원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사임계를 제출했다. 원내 정당의 몫으로 나누는 상임위원장 반납 여부가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국회법상 해당 의원 본인의 사의가 없으면 상임위원장직 사퇴를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한국당은 이부자리 혼수에 욕심을 내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보수 대통합 작업을 위해서라도 “혼수가 없어도 받아 준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jrlee@seoul.co.kr
  • [길섶에서] 초보운전/김성곤 논설위원

    연말이라 도로에 차가 많다. 세밑 갈 곳도, 만날 사람도 많으니 차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짜증 나고 자칫하면 다툼으로 번질 수 있는 게 요즘 도로 위 사람들의 사정이다. 언제나 맘을 느긋하게 먹자고 다짐하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그 조급증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문 열고 욕해 본 적은 없다. 차 안에서 혼자 욕을 하는 경우야 다반사지만, 어차피 상대방이 듣지 못하니 욕으로서의 기능은 제대로 못한다. 며칠 전 올림픽도로 주행 중 갑자기 차 한 대가 끼어든다. 깜빡이도 켜지 않는다. ‘욱’ 하다가 차량 뒤 유리에 붙인 초보운전 문구를 보고 ‘씩’ 하고 웃고 만다. ‘초보운전 3시간째 직진 중.’ 그래 3시간 만에 차선 변경이라는데 참자 참아. 초보운전이나 차량 안에 아기가 탔다는 문구도 각양각색이다. 빙긋 웃음 짓게 하는 문구가 있는 반면 도발적인 문구는 불쾌하다. ‘초보운전 R아서 P해라.’ 이건 시비다. ‘여기 소중한 내 새끼가 타고 있다.’ 이것도 방자하다. 운전이 서투르고, 차 안에 아이가 타고 있으니 배려해 달라거나 사고 시 탑승한 아이 구조를 위한 것일 텐데…. 누군가에게 대놓고 저렇게 얘기하면 아마 싸움이 될 것이다. 맞대면하지 않는다고 험한 문구로 불특정 다수에게 짜증을 유발해서야 되겠는가. sunggon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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