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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9억원짜리 이름/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9억원짜리 이름/박현갑 논설위원

    서울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은 서울 지하철 최초로 사찰 이름을 역명으로 사용한 역이다. 1번 출구로 나가면 봉은사로 이어진다. 개통 전 역 이름을 놓고 봉은사와 인근의 코엑스 간 갈등이 많았다. 코엑스 측은 봉은사와 마찬가지로 부지도 제공했고 코엑스몰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코엑스역을 주장했다. 역명 선정을 두고 개신교 측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종교 색채가 없는 코엑스역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1989년 2호선 삼성(무역센터)으로 병행표기되고 있는 데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사찰이라는 역사성에 밀렸다. 삼성역과 봉은사역은 565m 떨어져 걸어서 8분이면 오갈 수 있다. 무역센터는 서울시 지명위원회에서 공공성을 고려해 무상으로 병기를 결정한 곳이다. 이런 무상 병기역은 2호선 교대(법원·검찰청), 3호선 남부터미널(예술의전당) 등 67개 역이 있다. 공공기관과 달리 사기업이 지하철 역명에 자신의 회사 이름을 내걸려면 사용료를 내야 한다. 한국철도공사나 서울교통공사 등 전국의 교통공사에서는 유상 역명 병기 사업을 하고 있다. 코레일이 2006년부터 시행했고, 서울은 2016년부터 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대상 역에서 1㎞ 이내(서울시내 기준, 시외는 2㎞ 이내로 확대)에 있어야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최근 끝난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역명 병기 공개 입찰에서 역대 최고가인 9억원짜리 역명이 나왔다. 7호선 논현역이다. 낙찰자는 인근의 강남 브랜드 안과로 3년간 광고를 할 수 있다. 역명 병기는 민간 기업으로서는 안정적인 광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어서 관심이 높다. 환승역이나 도심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역일수록 인기가 높다. 하지만 대중교통 수단을 영리 추구가 목적인 기업의 광고 수단으로 허용하는 건 공공성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교통공사는 노인 무료승차로 인한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말한다. 10월에는 서울 버스정류소 10곳에서도 사용료를 받고 민간 기업의 상호를 병행 표기하는 사업을 한단다. 수입 창출을 위한 조치라지만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씨줄날줄] 캥거루족/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캥거루족/박홍환 논설위원

    천연기념물 올빼미의 육아법은 나무 위나 풀숲 등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보살피는 일반적인 조류들과는 사뭇 다르다. 사방이 탁 트인 평지에 둥지를 틀고 포란과 육아를 한다. 사람들 눈에도 잘 띄는데, 주변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어미 올빼미가 그 큰 눈을 부라리며 새끼들의 위기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목격된다. 알에서 깬 지 3주 정도 지나면 새끼들은 스스로 걸어 어미가 마련해 둔 제2의 둥지로 이동하고, 5주 정도 지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비행훈련을 하다가 마침내 어미 곁을 떠나 이소(移巢)하면서 독립된 성체의 삶을 시작한다. 오세아니아에는 몸에 주머니를 갖고 있는 유대(有袋)류 포유동물이 유난히 많다. 캥커루가 대표적이다. 주머니는 오로지 육아용이어서 육아낭(囊)으로 불린다. 어미 캥거루는 임신한 지 30여일 만에 미성숙한 새끼를 낳는데 육아낭이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실제 갓 태어난 캥거루 새끼는 몸길이가 2~3㎝, 몸무게는 1g에 불과하다. 벌레만 한 크기의 새끼 캥거루는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어미 배를 거슬러 올라 육아낭에 들어선 뒤 젖꼭지에 달라붙어 자란다. 새끼 캥거루는 9개월 정도 육아낭에서만 지낸 뒤 육아낭을 들락거리다가 생후 1년 6개월쯤 되면 1m가 넘는 성체로 자라나 완전히 독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체 캥거루의 수명이 최대 20년을 넘지 않으니 사람으로 치면 8살쯤 독립의 길에 들어서는 셈이다. 흔히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생활하는 젊은이들을 ‘캥거루족’이라고 부른다. 위험이 닥치면 부모의 방어막으로 몸을 숨겨 ‘자라족’이라고도 하고, 일본에서는 ‘기생 독신’이라고도 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50세 미만 성인 10명 중 3명이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동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에서도 미혼자 2명 중 1명은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한다. 취업난과 치솟는 주거비 등의 경제적 이유로 캥거루족이 젊은층뿐 아니라 장년층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쯤에서 캥거루들의 항변이 나올 성싶다. “우리는 인간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독립한다고!”
  • [길섶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전경하 논설위원

    [길섶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전경하 논설위원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담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했다. 지인 어머니 상가에 다녀온 것이 계기였다. 13년 전 뇌출혈로 병상에 누웠는데, 몇 년 전부터 장기가 하나둘씩 제 기능을 못 하면서 돌아가셨다. 망가진 장기는 각종 의료도구가 대신했단다. 정신은 멀쩡하셨다는데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자식들 마음고생도 심했겠다.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기관을 찾아 전화하니 모든 문의전화가 그렇듯 자동응답시스템(ARS)이다. 상담사와 연결돼 원하는 시간에 의향서를 쓸 수 있는지 확인하는데, 그 상담사 또한 해당 지역에 물어본다. ARS 번호는 기관 대표번호이기 때문이다. 해당 기관을 방문해 상담사 설명 몇 마디 더 듣고 서명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도 안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전국 지사에서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내용의 책자를 나오는 길에 받았다. 순서가 바뀐 듯했다. ARS는 낯설고 관련 정보는 궁금할 어르신들에게 쉽게 알려 줄 방법을 찾아야겠다.
  • [안미현 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리스크/수석논설위원

    [안미현 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리스크/수석논설위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돼 간다. 시끌벅적하다. 5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규제 완화 추진 등 박수 칠 일이 많다.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경찰국 신설’ 등 걱정스런 일도 많다. 최근 들어 가장 고개가 갸우뚱해진 일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주 52시간제 개편 방향 발표를 윤석열 대통령이 부인한 것이었다. ‘주 92시간 혹사가 가능해진다’는 언론의 비판이 나오자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게 뭔가’ 싶었을 수 있다. 선거 때 “주 120시간 바짝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던 터라 더욱 민감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심한 의도가 있지 않는 한 장관이 공개적으로 발표한 내용을 바로 다음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상식을 넘어선다. 노동계의 하투(夏鬪) 경고에 윤 대통령이 한발 물러선 게 아니냐는 엉뚱한 해석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불필요한 혼선이다. 언론 보도를 보고 이상하다 싶었을 때, 윤 대통령이 고용부 장관이나 안상훈 사회수석에게 자초지종만 파악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달이다.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은 또 다른 성격이다.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국기 문란이라며 진노했다. 그런데 대통령 결재 전에 인사안을 발표한 게 국기 문란이란 건지, 대통령실과 협의하라는 행정안전부 지시를 지키지 않은 게 국기 문란이란 건지 분명치 않다. 전자라면 앞서 새 정부가 단행한 경찰 인사 때는 왜 문제 삼지 않았는지, 후자라면 행안부는 왜 애초 최종안이 아닌 인사 초안을 경찰청에 보냈는지 의구심이 남는다.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새 정부 두 달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하지만 한 가지 일치하는 대목이 있다. 윤 대통령의 최대 리스크에 관해서다. 혹자는 처가쪽 의혹이나 뼛속까지 검사인 유전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견이 없는 리스크는 의외로 ‘너무 쉽게 대통령이 됐다’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그만둔 지 8개월 만에 당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고, 그렇게 대권에 도전한 지 한 번 만에 대통령이 됐다. 4수 끝에 대권을 거머쥔 김대중 전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경이로울’ 일이다. 단박에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 자신감이 넘쳐난다. 추진력도 강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술수나 야합 유혹에도 상대적으로 강하다. 커다란 자산이다.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모든 게 만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여 준 윤 대통령 모습엔 거침이 없다. 이런 자신감이 정책이나 현안 파악 등 ‘학습 노력’에 기반한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논란이 이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의 언어가 어떠해야 하는지 충분히 고민했을 법도 하건만, 여전히 윤 대통령의 언어는 거칠고 즉흥적이다. 부인 김건희 여사의 지인 대동 논란에 “대통령이 처음이라서”라고 한 답변에서도 자만심이 묻어난다. 주요 보직에 검사 출신을 계속 기용하는 데서는 아집마저 느껴진다. 아무래도 외신기자가 한 번 더 질문해야 할 듯싶다. 이번 주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가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역전이다. 격차가 크지 않지만 통상 지지도가 높은 정권 초기인 점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아프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 물가가 6%를 넘보는 등 전대미문의 복합위기가 온다는데 혼연일체가 돼야 할 당·정·대가 되레 혼선의 진앙지이니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다. 국제무대에 처음 데뷔한 자리다. 여러 정상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자리’의 무게감을 새삼 절감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쉽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직은 쉽게 할 수 있는 자리가 결코 아니다.
  • [길섶에서] 아너소사이어티 2668호/진경호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아너소사이어티 2668호/진경호 수석논설위원

    “작년 7월에 부산 아너소사이어티 225호로 가입한 후 모임에는 처음 참석했다. 국회의원 월급(세비)을 30%씩 기부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 이만큼 누리고 사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 ‘내가 잘돼서 남도 잘되게 해야 남도 기뻐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모교 동아대에 매년 기부한 게 1억을 채울 수 있어 몹시 기쁘고 감사했다.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살아가고 있으니 나눌수록 더 잘되는 축복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엄마를 닮아 천성적으로 측은지심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퍼주지 않았다. 원하지만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놓인 분들께만.” 부산의 태광산업 방직공장 ‘공순이’ 김미애는 37년 뒤인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초선 국회의원 3년차. 1억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아너소사이어티, 명예의 전당에 그는 2668호로 조용히 들어갔다. 정치판에도 아름다운 사람은 있다.
  • [씨줄날줄] 국립소피아왕비미술관/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국립소피아왕비미술관/서동철 논설위원

    마드리드에 가면 프라도미술관, 국립소피아왕비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미술관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프라도미술관은 스페인 왕실이 15세기부터 수집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언젠가 프라도미술관을 찾았을 때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엘 그레코의 명작들이 동네 화랑처럼 벽면에 두 단, 세 단으로 겹겹이 걸려 있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소피아미술관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가 중심을 이루는 현대미술관에 해당한다. 그리스 공주 출신인 소피아는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부인으로 현 국왕 펠리페 6세의 어머니다. 티센보르네미사는 르네상스와 플랑드르파, 인상파 등 스페인 밖 유럽 미술의 양상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상보적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스페인 정부가 배우자 투어 일정에 소피아미술관을 포함시켜 눈길을 끈다. 서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왕궁을 둘러보고 왕립오페라극장(Teatro Real)에서 새달 공연되는 베르디의 ‘나부코’ 리허설을 참관하는 일정도 있다. 소피아미술관의 상설 전시실은 크게 3개의 주제로 이뤄져 있다. ‘20세기의 돌입: 유토피아와 갈등(1900~1945)’과 ‘냉전시대의 미술(1945~1968)’, ‘저항부터 포스트모더니티까지(1962~1982)’가 그것이다. 20세기 사회 변화에 미술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 준다. 가장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유토피아와 갈등’ 주제관에서 볼 수 있다. 세로 349.3㎝, 가로 776.6㎝의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란이 한창이던 1937년 프랑코군을 지원하는 나치 공군이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을 맹폭해 2000명 남짓한 시민을 학살한 사건을 그렸다. 프랑코는 이후 ‘국왕 없는 왕국’의 섭정이 되어 독재를 이어 갔고, 후안 카를로스 1세는 1975년 프랑코가 죽은 뒤에야 국왕에 즉위했다. ‘소피아 왕비’도 이렇게 탄생했다. 김건희 여사도 당연히 소피아왕비미술관을 방문한다. 굵직굵직한 전시회를 기획한 미술전문가인 김 여사는 이전에도 소피아미술관을 찾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번에는 기획자가 아닌 대통령 부인으로 예술의 힘, 문화 정책의 방향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 [서울광장] 한전공대와 반도체 인재 육성/박현갑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전공대와 반도체 인재 육성/박현갑 논설위원

    “과거엔 장관과 교육철학이 다르면 지방이나 유학 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직인수위에서 대학 자율성 강화를 위해 교육부 관료를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보내는 거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실행된다면 앞으로 국장들이 장관에게 다른 말 하기가 쉽지 않을 게다.” 교육부 관료들이 교육 수장에게 바른 소리 할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는 교육계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이 바뀌면 관료도 정책도 바뀐다. 그리고 개혁이든 혁신이든 제도 변화는 정권 초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이해관계 조정이 어렵다는 뜻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개혁이라면 속도감 있는 추진이 답일 게다. 그러나 교육정책, 그중에서도 인재 양성은 그 속성상 미래 수요를 현시점에서 판단하는 만큼 종합적이고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지난 3월 개교한 한전공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2017년 대선 공약이었다. 광주·전남 지역에 에너지 특화 대학을 세워 에너지 산업을 국가 미래전략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공약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정치적 결정이었지 교육을 감안한 결정은 아니었다. 당초 2025년 개교 목표였으나 개교 시기를 앞당기면서 학부생 108명 등 157명의 학생들은 도서관, 기숙사 등 교육용 건물이 없는 상태에서 입학했다. 포스텍, 카이스트, 디지스트, 유니스트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들이 있고 대학 구조조정도 추진하는 마당에 뜬금없는 대학 설립이냐며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교육부에서는 두 번의 대학 설립 심사 반려를 끝으로 다른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재 육성을 강조한 이후의 교육부 행보도 우려스럽다. 장관이 공석이지만 장관 있는 부처보다 더 열심히 뛰고 있다. 지난 7일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재 육성 방안 강구를 지시한 이후 한 달여 만인 다음달 중순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를 육성하려면 대학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 추가 정원을 어디에 배정할지를 놓고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의 입장차가 확연하게 갈리고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고쳐 첨단산업 인재 육성이 수도권 대학 중심으로 이뤄지면 지금도 어려운 ‘지방대학 시대 열기’라는 국정 과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다. 대통령의 주문은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적자원 양성을 교육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도구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교육부는 부처 폐지론이 나올 정도로 위기의식에 내몰린 상태에서 조직 존폐를 거론하는 대통령 발언에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하지만 미래 인재 양성은 고려할 게 많은 사안이다. 반도체 인재 육성을 위한 입학 정원을 내년부터 늘린다 하더라도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되려면 앞으로 최소 5년은 걸린다. 시시각각 바뀌는 산업 현장의 인력 수요가 5년 뒤에도 지금과 같을 것이란 보장은 하기 어렵다. 게다가 지금도 전국 30개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들이 모두 취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최소 5년 이후를 내다보는 중장기 첨단인재 양성 계획을 짜야 한다. 대통령의 주문으로 한 달여 만에 곧바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신속한 정책 반영이라는 이점은 있으나 자칫 수급 계획을 잘못 세웠다간 5년 뒤 일자리 부족 현상을 초래한 정책으로 비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는 이제부터라도 뼈를 깎는 각성과 함께 부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개혁 작업을 통해 학생, 학부모로부터 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교육을 수단으로 간주하는 인력 공급 정책도 필요하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민주사회 시민 육성을 위한 발달주의적 교육 가치는 어떻게 살려 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바란다.
  • [길섶에서] 건강한 거리/김성수 논설위원

    [길섶에서] 건강한 거리/김성수 논설위원

    얼마 전 선배 한 분이 뉴스 링크를 하나 보내 줬다. 두 달을 넘겼던 코로나 봉쇄가 지난 1일 풀리자 중국 상하이에서 이혼 신청이 급증했다는 기사다. 신청 예약도 모든 날 다 꽉 찼다고 한다. 상하이가 중국 최대의 이혼 도시로 부상할 것 같다는 전망과 함께 “좁은 공간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주 충돌하게 된 것 같다”는 촌평도 담았다. 미국으로 1년 연수 갔을 때 아내와 가장 많이 다퉜던 경험을 돌이켜 보면 틀린 해석은 아닌 듯하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상대방의 단점만 눈에 들어온다. 필연적으로 싸움으로 이어진다. 평소 바빠서 자주 못 보던 사이일수록 더 그렇다. 흔히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에서 언급되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의 원칙을 부부 사이에도 적용해야 하나. 선배도 글 말미에서 비슷한 조언을 해 준다. “사이가 좋으려면 사이가 있어야 한다.” 부부 사이에도 ‘건강한 거리’가 꼭 필요하다는 뜻일 게다.
  • [씨줄날줄] 런던왕립학회/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런던왕립학회/임병선 논설위원

    자연과학 진흥을 위한 런던왕립학회는 1660년 찰스 2세의 후원으로 창립됐다. 영국 정부로부터 해마다 4000만 파운드(약 631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 나라의 과학아카데미 구실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 학회로 362년 동안 거쳐 간 인물들이 화려하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중성자 별을 발견한 조슬린 벨 버넬 등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최근에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도 이름을 올렸다. 노벨상의 산실임은 물론이다. 최근 트래펄가광장 근처에 있는 학회 건물에서 신규 회원 가입식이 열렸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이 쟁쟁한 이름들로 가득한 헌장에 이름을 적어 넣는 영예를 누렸다. 해마다 60명을 새 회원으로 받아들이는데 10명은 외국인으로 채운다. 이 부총장은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와 함께 지난해 한국인으로는 처음 선발됐다. 김 교수는 가입식엔 불참했다. 가입식은 여왕을 상징하는 메이스(Mace·장식용 지팡이)가 입장하며 시작해 퇴장하며 끝난다. 새 회원이 단상에 올라가 헌장에 서명한 뒤 회장과 악수하며 가입 선언을 듣는다. 새 회원들은 362년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헌장에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모여 서명 연습까지 했단다. 기존 회원의 추천과 동의를 거쳐 신규 회원을 받아들인다. 현재 회원은 1600명. 물질적 혜택은 없지만, 진정한 과학자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최근 들어 이 학회는 기후변화,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AI), 데이터 사이언스 등 과학 이슈와 관련해 위원회를 운영하며 정책 조율을 돕고 영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이 부총장은 시스템대사공학 창시자로 미국공학한림원, 미국국립과학원까지 세계 3대 주요 학회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미국과 영국 외 국적자로는 선례를 찾기 힘들다. 런던왕립학회가 지난해 한국인을 두 사람이나 회원으로 선발하고, 코로나 탓에 뒤늦게 열린 가입식 취재를 주선하는 등 한국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소원해진 유럽을 대신해 한국 등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노력으로 보인다.
  • 금리 왜곡 대응 방편일 뿐…전문성 높여 요령부득 극복해야[차현진의 銀根한 이야기]

    금리 왜곡 대응 방편일 뿐…전문성 높여 요령부득 극복해야[차현진의 銀根한 이야기]

    ●외국에선 훈계·경고의 의미 없어 미국의 자본시장을 규율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무너진 자본시장을 되살리려면 투자자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그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조지프 케네디를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하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펄쩍 뛰었다.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는 밀주 유통에서 주가 조작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도둑을 잡는 데는 도둑이 최고”라면서 임명을 강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와 반대다. “도둑을 잡는 데는 몽둥이가 최고”라는 생각을 가진 듯, 금융감독원장에 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장 출신을 앉혔다. 엄청난 파격이다. 특이한 이력의 금감원장이 은행장과의 첫 만남에서 “예대금리 차이 확대를 통한 과도한 이윤추구”를 언급한 것도 파격이다. 지금 은행장들은 대출금리를 낮추기 바쁘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여파로 이자 부담이 커진 기업과 가계에는 희소식이지만, 은행 주주들에게는 악재다. 금융 당국이 금융기관에 공공연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관치금융 또는 시장 개입이라고 본다. 부정적 시각이 아주 강하다. 외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그런 일을 도의적 설득(moral suasion)이라고 부르는데, ‘suasion’은 ‘persuasion’과 달리 훈계나 경고의 의미가 없다. 금감원장도 “금리 결정에 간섭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으니 그의 발언은 도의적 설득에 가깝다.경제 상황이 나쁠 때 감독 당국이 한마디 하는 것은 관치금융이 아니다. 미국은 2020년 코로나19 위기로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그때 은행 감독을 담당하는 연방준비위원회는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이라는 규제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은행 대출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규제 완화에 따라 레버리지 비율이 개선되니까 대형 은행들이 현금 배당이나 성과급부터 늘렸다. ‘그들만의 잔치’였다. 그러자 연준이 이익금 처분 자제를 엄하게 요구했다. 그때 미국 언론은 관치금융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격려했다. 금융 당국은 경제가 어려울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한마디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든 금융산업은 과점상태(oligopoly)에 있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이 존재해 금리가 왜곡될 개연성이 높을 때는 도의적 설득이 그 왜곡을 해소하는 현실적 방편이다. 중앙은행이 금리 목표 수준을 밝히는 것은 1994년 2월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일본은행은 1970년대부터 콜금리 목표 수준을 암암리에 밝혀 왔다. 그 수준을 ‘기하이치’(氣配値), 즉 ‘당국의 기운이 담긴 값’이라고 불렀는데 은행들은 거기에 아무 불만이 없었다. 시장참가자가 제한된 콜시장에서는 금리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함께 각국의 금리가 들썩였다. 당시 캐나다는 국채시장이 발달하지 않아서 대출금리 결정에 기준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자 중앙은행이 나서서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금리를 연 5.5%로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은행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그것을 ‘위니페그 협약’이라고 불렀다. 아무 법적 근거가 없었지만, 이후 캐나다중앙은행은 은행들을 수시로 불러서 CD 발행금리를 조절했다. 만일 은행들끼리 모여 금리를 조절했다면 담합이 됐겠지만, 중앙은행이 불러서 조절함으로써 정책이 됐다.●‘은행 고통 분담’ 제안은 당연 도의적 설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외환위기 전 우리나라 감독 당국은 툭하면 은행들을 불러서 ‘양건예금 자제’를 권고했다. ‘양건’(兩建) 예금이란 은행들이 대출하면서 차입자에게 대출금 일부를 다시 예금하도록 강요하는 ‘꺾기’ 그 자체다. 대출이자보다는 예금이자가 낮으니, 양건예금이 커질수록 차입자의 실질 이자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은행은 가만히 앉아서 수신 실적을 높인다. 과거 양건예금이 만연했던 이유는, 전반적 금리 규제 속에서 은행들이 외형경쟁에 매달렸던 데 있었다. 그때 도의적 설득은 양건예금이라는 고질병을 고치는 데 무력했다. 양건예금은 금리자유화 이후에 비로소 사라졌다. 둘째, 실효성이 크지 않다. 은행들이 감독 당국 요구에 따라 대출 가산금리를 낮추더라도 그 금리를 적용하는 거래처나 대출 규모를 줄이면 소용이 없다. 가산금리를 낮추는 시늉을 내면서 대출만기까지 줄인 다음 대출을 연장할 때마다 각종 심사비용과 수수료를 받는다면, 차입자의 실질 금융비용이 줄어들지 않는다. 셋째, 감독 당국의 다른 목표들과 상충할 수 있다. 지금 금융위원회는 금산(金産)분리 원칙 완화를 의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금융기관 출현을 돕기 위해서다. 그런 마당에 예대금리 차이에 대해서까지 감독 당국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원가구조까지 관심을 갖고 마진율을 조정하려고 했다면, 이들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금감원이 예대금리 차이 축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모두가 힘들 때 은행들도 고통을 분담하자는 제안은 비난받을 수 없다. 유가 안정을 위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유회사들에 시설가동률을 높이라고 호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장사하는 태도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킨 취지는 신용도가 높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중금리 대출을 늘리는 데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인터넷전문은행들은 기존 은행들을 흉내 내어 안전성만 추구하면서 고신용자 대출에 주력했다. 결국 지난해 감독 당국의 ‘일침’을 듣고서야 행태를 바꿨다.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남들과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 은행을 늘려도 소용이 없다. 금융계에 혁신 에너지가 필요하다. ●감독 당국 국제기준에도 어두워 예대금리 차이 축소를 기대하는 감독 당국에도 개선의 여지는 많다. 우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출금리 인하를 주문했지만, 은행들은 꾸물거렸다. CD 발행금리가 아직 낮아지지 않았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자 감독 당국이 코픽스(KOFIX)라는 지표금리를 개발했다. 코픽스에는 정기예금 금리까지 감안되는데, 정기예금 금리는 인건비와 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내포한다. 합리적 의사결정은 고정비용이 아니라 한계비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경제원론을 상기한다면, 2010년 감독 당국이 내놓은 코픽스는 엉터리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코픽스와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감독 당국은 국제기준에도 어둡다. 바젤위원회가 제시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국내 은행들에 적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계산할 때 필요 이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 지급결제업무 수행을 위해서 상업은행들이 한국은행에 제출한 국채는 대출 담보와는 성격이 다르므로 당연히 현금화가 쉬운 고(高)유동성 자산으로 인정해야 하는데도 이를 제외했다. 영어 원문이나 외국 사례를 살피지 않은 실수였다. 그 바람에 국내 은행들의 고유동성 자산이 35조원 이상 과소평가됐다는 지적을 받자 보도해명자료까지 뿌리면서 오류를 감추기 급급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 막바지인 올 2월에야 시정됐다. 바로잡는 데 5년 걸렸다. 새 정부에서는 감독 당국의 요령부득과 옹고집으로 피감기관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객원 논설위원·한국은행 자문역
  • 유정복 “민선 7기, 300만 인천시민 속였다”… ‘박남춘 지우기’ 예고

    유정복 “민선 7기, 300만 인천시민 속였다”… ‘박남춘 지우기’ 예고

    ‘리턴매치’ 선거에서 4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남춘 현 시장의 시정 운영 전반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유 당선인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시정혁신단’을 운영한다고 27일 밝혔다. 유 당선인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수위원회 활동을 통해 시정 전반에 걸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혁신단은 민선 7기(박남춘) 시정을 정확히 파악해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혁신단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책 실패나 오류,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지만 300만 인천시민을 속인 행위는 심각한 문제로 철저한 반성과 책임이 따라야 하며,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당선인은 또 “민선 7기 시정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혁신을 통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뤄 내기 위해 시정혁신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 당선인 인수위 측은 박 시장이 지역화폐인 인천e음카드 사용액의 10%를 되돌려 주는 캐시백 정책을 유지할 수 없는데도 계속할 것처럼 시민을 속이고, 2020년 8월부터 최근까지 수도권 매립지 주변 환경 개선과 주민 편익 향상을 위해 써야 할 ‘수도권매립지 특별회계기금’ 가운데 94억 6800만원을 자체매립지 확보 등을 위한 홍보비로 부당 지출했다고 강하게 비판해 왔다. 시정혁신단은 인사·재정·홍보·정책 등 4대 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며 정규 조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홍보 혁신을 위해 현재의 대변인을 공보관으로 전환해 공무원 중에서 임명하고, 새로운 대변인은 시장 직속으로 시장의 철학이나 가치, 정무 상황을 관리하게 된다. 시장이 수시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담당 실·국장들은 업무와 관련해 정책 브리핑을 정기적으로 하게 할 계획이다. 유 당선인은 이날 혁신단장에 류권홍(53·변호사) 선거 총괄본부장을 내정했다. 또 정무부시장에 이행숙(59) 전 서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을, 비서실장에 박병일(44) 전 국회의원 보좌관을, 대변인에는 고주룡(60) 전 MBC 논설위원을 각각 내정했다.
  • [길섶에서] 철밥통/오일만 논설위원

    [길섶에서] 철밥통/오일만 논설위원

    꽤 오랜 기간 청년 직업 선호도 1위를 달렸던 공무원 인기가 최근 주춤하는 모양새다. 잦은 비상 근무와 야근, 폭주하는 민원 갈등 등 공무원 직업 특성 때문에 매력이 떨어진 탓이다. 공무원 사회는 ‘깨질 염려가 없는 밥통’이란 의미로 ‘철밥통’으로 불릴 정도로 평생이 보장되는 직장이다.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공무원 사회를 진취적인 청년 다수가 원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 기류’다. 어느 사회에서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꿈과 야망을 버리고 안정성을 택하는 것 자체가 퇴보의 징조가 아닐까. 다행스런 것은 2030세대들 사이에 과거보다 안정보다 성장과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징후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최근 대기업과 함께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급등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을 중시하는 이들이 평등하고 수평적인 직업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2030세대 특유의 도전 정신을 북돋고 창의성을 키우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씨줄날줄] 묘한 기름값 시즌 2/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묘한 기름값 시즌 2/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지금처럼 물가가 고공행진하던 2011년 1월 13일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은 “기름값이 묘하다”고 공개 저격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고 있는데 국내 휘발유값은 거의 제자리인 게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정유사와 주유소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내가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는데 (기름값이 적정한지) 정유사 회계장부를 뜯어 보겠다”고 가세했다. 정유사는 휘발유값을 리터당 100원씩 내렸다. 정부가 새달부터 유류세를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더 내리기로 했다. 휘발유는 리터당 57원 인하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그간의 유류세 인하에도 불구하고 휘발유값은 2100원을 뚫고 계속 오름세다.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 요인이 크다. 그럼에도 수조원 세수를 포기한 정부로서는 묘하다고 여길 법하다. 아니나 다를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사와 주유소의 담합행위가 없는지, 유류세 인하분이 가격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현장조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10여년 전의 데자뷔다. 당시 ‘회계장부’ 으름장을 놨던 최 전 장관은 공교롭게 윤석열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으로 막판까지 경합했다. 그래서 기시감이 더하다. 정부는 정유사를, 정유사는 주유소를, 주유소는 세금을 탓하는 ‘네 탓 공방’도 비슷하다. 기름값은 절반 이상이 세금(교통세, 에너지세, 환경세 등)이다. 지난해 걷은 교통세만 16조원이다. 교통세에 교육세(15%)와 주행세(26%)가 얹어진다. 유류세는 1994년 도로·철도 등 교통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 10년만 걷겠다며 도입한 목적세다. 목적이 거의 달성됐음에도 30년 가까이 건재 중이다. 가격이 아니라 물량에 붙는 종량세이다 보니 에너지 소비가 많은 부유층일수록 유류세 인하 혜택이 크다.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기후변화에 맞춰 유류세를 탄소세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영국처럼 정유사 등의 ‘횡재세’(초과이윤세)를 도입해 ‘국민 배당’을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올 2분기에만 1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된다. MB 때의 현장조사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름값이 이내 다시 묘해졌음은 물론이다. 근본적인 처방을 고민할 때가 됐다.
  • 이순신의 연승 이끈 ‘싸움 길잡이’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이순신의 연승 이끈 ‘싸움 길잡이’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1532~1594)은 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미 환갑 나이였다. 종6품 현감(縣監)은 조선시대 지방수령으로서는 품계가 가장 낮은 외관직이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방목(榜目)에 따르면 그는 1564년(명종 19) 갑자 식년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급제 이전에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진 여도의 종4품의 만호를 이미 지냈다. 어영담은 30년 안팎이나 서·남해안 일대에서 수군 지휘관과 고을 수령 자리를 이어 간 것이다. 어영담이 광양현감에 임명된 것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인 1591년 3월이다. 60세에 왜적의 대규모 침략이 기정사실이었던 시기 군사와 행정을 겸해야 하는 남해안 최전선 고을 수령 자리에 앉은 것이다. 오랜 수군 경력으로 남해안 물길을 훤히 알고 있었던 전라좌수영의 맏형 어영담은 왜수군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길잡이이자 선봉장이었다.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을 두고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을 지내며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호남이 보전될 수 있었던 데는 이 사람이 한몫을 했다’고 적었다. 어영담을 다룬 역사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광양문화원에서 ‘광양 어영담 현감 사료조사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영담의 일생’은 완전히 재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방목에 거주지가 함안으로 돼 있는 만큼 고향은 같을 것으로 보지만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영담 스토리’를 제법 길게 소개한 조경남(1570~1641)의 ‘난중잡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출신의 조경남은 13세 때인 1582년 12월 난리를 예견하고 매일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1610년까지 이어진 기록은 인조시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는 데도 크게 참고가 됐다. 그럼에도 이 기록의 기본적 속성은 야사(野史)다. 전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남원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게 변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대 보통사람들의 시각이 투영된 사료라는 뜻이다.‘난중잡록’은 어영담을 1592년 5월 20일자에 다루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경상도 해역으로 처음 출정해 왜수군을 궤멸시킨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 해전은 물론 5월 29일~6월 5일 사천·당포·당항포의 대승 소식도 전하고 있다. 조경남이 기록을 그날그날 정리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난중잡록’은 다른 기록들과 달리 경상좌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에도 출정을 주저하던 이순신의 결심을 이끌어 낸 인물로 어영담을 지목한다. ‘광양현감 어영담이 팔뚝을 걷어올리고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소리치기를, “영남은 왕의 땅이 아닌가. 이 왜놈은 나라의 적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관망이나 하면서 구원을 청하는 말을 듣고도 걱정 않고, 왜적이 온 것을 보고도 마음이 태연한 채 앉아 영남 바다의 군사를 오늘 다 없어지게 만든다면, 내일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남의 위급한 것을 구해 주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왜적을 기다린다면 겁 많고 나약한 게 아니오. 장군께서 헤아려 하시오” 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하기 직전 전라좌수영 참모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5월 1일자에는 ‘수군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李純信),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러들이니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사(義士)들이라 할 만하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뢰한 전라좌수영의 핵심참모들이 한결같이 울분을 곱씹으며 사령관에게 출정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역시 결심이 확고했다는 사실은 이튿날 일기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오정 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으니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출정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히 목을 베겠다는 뜻이다. 낙안군수 신호는 하지만 첫 출전에서부터 전라좌수군의 좌부장으로 나서 이순신이 승리를 알리는 장계에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릴 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난중일기’는 5월 3일 정운의 진언이 출정 명령으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출정 결정을 이끈 최대 공로자로 부각시킨다. 당연히 어영담도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나가 왜적과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참모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팩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당시 사람들에게 어영담은 매우 영웅적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난중잡록’은 수군의 연승을 두고 ‘어영담의 귀신 같은 지도(指導)를 얻어 전후의 전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어영담을 ‘물길 귀신’으로 부르는 근거가 됐다. ‘어영담은 무과 급제 이후 영남 바다 여러 진의 막하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바다의 얕고 깊음과 섬 지역의 험하고 수월함, 나무하고 물 긷는 편의와 주둔할 장소 등을 빠짐없이 가슴속에 그려 두어 수군 함대가 영남 바다를 드나들며 수색하거나 토벌할 때면 집안 뜰을 밟고 다니듯 궁박하고 급한 경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593년 12월 19일 선조가 비변사 및 삼사와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류성룡은 ‘어영담은 수로(水路)에 익숙한 사람이니 일을 위임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영담은 공인된 ‘물길 전문가’였다. 그에 대한 ‘난중잡록’의 서술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군의 전공은 어영담이 가장 높았는데도 당상관에 올랐을 뿐, 선무공신이 되지 못해 남쪽 사람들은 다들 애석히 여겼다’ 마지막까지 애정이 담겨 있다. 이순신의 모든 해전에서 공을 세운 어영담이지만 1593년 10월 광양현감에서 파직된다. 명나라 주둔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독운어사(督運御使) 임발영이 광양현에서 장부보다 600석 많은 양곡을 보관하고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순신은 장계를 올려 ‘어영담은 독운어사가 양곡을 임검할 때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문제는 현감 업무를 대신한 유위장(留衛將)에 있다. 또 약간의 과실이 있더라도 국가적 위기에 의로움을 떨치고 있는 장수를 잃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파직을 막지는 못했다. 전라좌수영은 5개의 수군진과 5개의 연해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답 첨사진, 사도 첨사진, 녹도 만호진, 발포 만호진, 여도 만호진과 순천도호부, 보성군, 낙안군, 흥양현, 광양현 등이다. 연해 고을을 수군에 편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병력 충원과 군량미 보급, 전선(戰船) 건조 때문이다. 그러니 연해 고을 수령은 수군진 지휘관보다 더욱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 수군 소속 고을 수령이 전투에 나설 수군의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직분이 아닐 수 없다. ‘난중일기’에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휘하 군사나 관원을 군율로 처단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이순신이 어영담을 감싼 것은 개인적 비리가 아니었다는 방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발영은 임발영대로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 군영에 끌려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니 광양현의 ‘장부외(外) 양곡’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어영담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의 잇따른 상소로 1594년 2월 전라도 주사조방장으로 복귀한다. 주사(舟師)는 수군을 가리키는 조선시대 용어다. 하지만 다음달의 제2차 당항포해전은 어영담의 마지막 싸움이 됐다. 수군 진영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영담의 병세가 악화했고 결국 4월 9일 눈을 감았다. 이순신은 이 날짜 ‘난중일기’에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 남해안 ‘물길 귀신’ 이순신 함대를 인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남해안 ‘물길 귀신’ 이순신 함대를 인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1532~1594)은 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미 환갑 나이였다. 종6품 현감(縣監)은 조선시대 지방수령으로서는 품계가 가장 낮은 외관직이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방목(榜目)에 따르면 그는 1564년(명종 19) 갑자 식년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급제 이전에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진 여도의 종4품의 만호를 이미 지냈다. 어영담은 30년 안팎이나 서·남해안 일대에서 수군 지휘관과 고을 수령 자리를 이어간 것이다. 어영담이 광양현감에 임명된 것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인 1591년 3월이다. 60세에 왜적의 대규모 침략이 기정사실이었던 시기 군사와 행정을 겸해야 하는 남해안 최전선 고을 수령 자리에 앉은 것이다. 전라좌수영의 맏형이자 오랜 수군 경력으로 남해안 물길을 훤히 알고 있었던 어영담은 왜수군과 싸움에서 언제나 길잡이자 선봉장이었다.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을 두고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을 지내며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호남이 보전될 수 있었던 데는 이 사람이 한몫을 했다’고 적었다.  어영담을 다룬 역사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광양문화원에서 ‘광양 어영담 현감 사료조사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영담의 일생’은 완전히 재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방목에 거주지가 함안으로 되어 있는 만큼 고향은 같을 것으로 보지만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영담 스토리’를 제법 길게 소개한 조경남(1570~1641)의 ‘난중잡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출신의 조경남은 13세 때인 1582년 12월 난리를 예견하고 매일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1610년까지 이어진 기록은 인조시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는 데도 크게 참고가 됐다. 그럼에도 이 기록의 기본적 속성은 야사(野史)다. 전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남원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게 변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대 보통사람들의 시각이 투영된 사료라는 뜻이다.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1592년 5월 20일자에 다루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경상도 해역으로 처음 출정해 왜수군을 궤멸시킨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 해전은 물론 5월 29~6월 5일 사천·당포 ·당항포의 대승 소식도 전하고 있다. 조경남이 기록을 그날그날 정리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난중잡록’은 다른 기록들과 달리 경상좌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에도 출정을 주저하던 이순신의 결심을 이끌어 낸 인물로 어영담을 지목한다.  ‘광양현감 어영담이 팔뚝을 걷어올리고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소리치기를, “영남은 왕의 땅이 아닌가. 이 왜놈은 나라의 적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관망이나 하면서 구원을 청하는 말을 듣고도 걱정 않고, 왜적이 온 것을 보고도 마음이 태연한 채 앉아 영남 바다의 군사를 오늘 다 없어지게 만든다면, 내일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남의 위급한 것을 구해주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왜적을 기다린다면 겁 많고 나약한 게 아니오. 장군께서 헤아려 하시오.” 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경상도해역으로 출정하기 직전 전라좌수영 참모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5월 1일자에는 ‘수군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李純信),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러 들이니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사(義士)들이라 할 만 하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뢰한 전라좌수영의 핵심참모들이 한곁같이 울분을 곱씹으며 사령관에게 출정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역시 결심이 확고했다는 사실은 이튿날 일기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오정 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으니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출정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히 목을 베겠다는 뜻이다. 낙안군수 신호는 하지만 첫 출전에서부터 전라좌수군의 좌부장으로 나서 이순신이 승리를 알리는 장계에 이름을 첫번째로 올릴 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난중일기’는 5월 3일 정운의 진언이 출정 명령으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출정 결정을 이끈 최대 공로자로 부각시킨다. 당연히 어영담도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나가 왜적과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참모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팩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당시 사람들에게 어영담은 매우 영웅적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난중잡록’은 수군의 연승을 두고 ‘어영담의 귀신 같은 지도(指導)를 얻어 전후의 전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어영담을 ‘물길 귀신’으로 부르는 근거가 됐다. ‘어영담은 무과 급제 이후 영남 바다 여러 진의 막하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바다의 얕고 깊음과 섬 지역의 험하고 수월함, 나무하고 물 긷는 편의와 주둔할 장소 등을 빠짐없이 가슴 속에 그려 두어 수군 함대가 영남 바다를 드나들며 수색하거나 토벌할 때면 집안 뜰을 밟고 다니듯 궁박하고 급한 경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593년 12월 19일 선조가 비변사 및 삼사와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류성룡은 ‘어영담은 수로(水路)에 익숙한 사람이니 일을 위임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영담은 공인된 ‘물길 전문가’였다. 그에 대한 ‘난중잡록’의 서술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군의 전공은 어영담이 가장 높았는데도 당상관에 올랐을 뿐, 선무공신이 되지 못해 남쪽 사람들은 다들 애석히 여겼다’ 마지막까지 애정이 담겨있다.  이순신의 모든 해전에서 공을 세운 어영담이지만 1593년 10월 광양현감에서 파직된다. 명나라 주둔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독운어사(督運御使) 임발영이 광양현이 장부보다 600석 많은 양곡을 보관하고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순신은 장계를 올려 ‘어영담은 독운어사가 양곡을 임검할 때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문제는 현감 업무를 대신한 유위장(留衛將)에 있다. 또 약간의 과실이 있더라도 국가적 위기에 의로움을 떨치고 있는 장수를 잃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파직을 막지는 못했다. 전라좌수영은 5개의 수군진과 5개의 연해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답 첨사진, 사도 첨사진, 녹도 만호진, 발포 만호진, 여도 만호진과 순천도호부, 보성군, 낙안군, 흥양현, 광양현이다. 연해 고을을 수군에 편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병력 충원과 군량미 보급, 전선(戰船) 건조 때문이다. 그러니 연해 고을 수령은 수군진 지휘관보다 더욱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 수군 소속 고을 수령이 전투에 나설 수군의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직분이 아닐 수 없다.  ‘난중일기’에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휘하 군사나 관원을 군율로 처단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이순신이 어영담을 감싼 것은 개인적 비리가 아니었다는 반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발영은 임발영대로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 군영에 끌려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니 광양현의 ‘장부외(外) 양곡’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어영담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의 잇따른 상소로 1594년 2월 전라도 주사조방장으로 복귀한다. 주사(舟師)는 수군을 가리키는 조선시대 용어다. 하지만 다음달의 제2차 당항포해전은 어영담의 마지막 싸움이 됐다. 수군 진영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영담의 병세가 악화했고 결국 4월 9일 눈을 감았다. 이순신은 이 날짜 ‘난중일기’에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 [서울광장] 도어스테핑, 있는 그대로 봐주면 된다/김성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도어스테핑, 있는 그대로 봐주면 된다/김성수 논설위원

    “우리가 지난 5년간 바보짓을 안 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엊그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대해 꽤나 거칠게 말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원전 설비업체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탈원전에 반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물론 ‘바보짓’을 한 사람들이라면 듣기에 불편했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에둘러서 말하지 않는다. 직설화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윤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5월 11일부터 아침마다 이런 발언이 이어진다. 출근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의 문답으로 진행되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약식 회견)에서다. 이름도 잘 몰랐던 도어스테핑은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는 약속을 윤 대통령이 실천하면서 성사됐다. 보통 2~3개, 많을 때는 7개까지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아침에 외부 행사에 직행하는 대통령 일정이 없는 한 지금껏 예외 없이 진행됐다.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춘추관)이 별도의 공간으로 있던 청와대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어스테핑은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일상화돼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출퇴근길 공관 3층 로비에서 약식 회견을 갖는다. 작년 10월 취임 이후 가진 회견만 100차례가 넘는다.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매달리기)라고 한다. 여러 사람이 총리를 감싸고 대화한다는 뜻이다.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시작한 이후 후임자들에게 이어졌다.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질문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받는다.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과 기자회견장인 브리핑룸이 백악관 웨스트 윙(서관) 1층에 같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백악관 남쪽 잔디밭 사우스론(South Lawn)은 기자들이 대통령과 수시로 문답을 벌이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놓고는 벌써부터 뒷말이 나온다. “과거엔 민변(民辯) 출신들이 도배하지 않았느냐”,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등 몇 번의 말실수로 꼬투리를 잡혔다. “스스로 판 자기 무덤이 될 수 있다”는 등 야권의 딴지 걸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출퇴근길에 시민과 소주 한잔하고 무등산, 팔공산 산행도 같이 하겠다며 국민 소통을 외쳤지만 하나도 지키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의 인사들이 지적할 일은 아니다. 청와대에 출입한다고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들을 기회는 많지 않다. 보통 두 달에 한 번꼴로 풀(pool)기자로 행사 취재를 가야 발언을 듣는 정도다. 그것도 대통령이 모두발언 몇 마디를 하면 그다음부터는 비공개다. 이후 대통령의 발언은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비밀주의에 입각한 ‘전언’(傳言)에 철저하게 의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도 빈발한다. 강도가 센 대통령의 발언은 아예 빼버리거나 은근슬쩍 다른 표현으로 바꿔 친다. ‘마사지’라고 점잖게 말하지만, 명백한 왜곡이다. 도어스테핑을 하면서 ‘날것’ 그대로의 대통령 발언을 매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건 다행이다. 정제되지 않았고, 정치적 레토릭도 아니지만 대통령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실언을 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면 된다.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제 현안이나 상대방이 있는 외교 문제에만 좀더 신중한 답변을 하면 된다. 지금껏 역대 어느 대통령도 안 했던 일인 만큼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말실수를 좀 했지만 새로운 시도인 데다 떳떳해 보여서 보기 좋다.” “(답변을 위해) 신문이나 미디어를 미리 보고 온다니 진심이 느껴진다.” 평가도 나쁘지 않다. 기왕 시작했으니 임기 끝까지 이어 가고 이참에 아예 도어스테핑이 후임 대통령에게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 [씨줄날줄] ‘포청천’ 조순/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포청천’ 조순/박현갑 논설위원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한 도시에서 시민의 쉼터인 공원은 허파나 다름없다. 미세먼지를 흡수하며 공기를 정화하고 열섬화 현상도 덜어 준다. 뉴욕, 파리, 런던 등 외국의 대도시에는 이런 도시공원이 곳곳에 있다. 서울의 경우 1999년 만들어진 여의도공원이 도시계획에 따라 조성된 대표적 도시공원이다. 검은 아스팔트를 걷어 내고 녹색 쉼터로 꾸미면서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순 민선 초대 서울시장의 작품이다. 조 전 시장은 강동구의 빠이롯트 공장 부지, 영등포구의 오비 맥주공장 부지도 공원으로 만들고 남산 외인아파트도 철거해 남산 모습을 살려 냈다. 이후 서울은 시장이 바뀔 때마다 굵직한 공원이 하나둘 생기면서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후임인 고건 전 시장 때 상암동의 노을공원·하늘공원이 들어섰고. 서울숲(이명박), 북서울꿈의숲(오세훈)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제 조 전 시장이 별세했다. 그는 ‘조순 학파’를 이룰 정도로 경제학계의 거목이었다. 제자이자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함께 지은 ‘경제학 원론’은 1990년대 경제학도의 필수 교재였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영어 교수요원으로서 가르친 생도 중 한 명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경제부총리로서 토지 공개념 도입을 주도했고,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도 했다. 1995년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설득으로 민선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 정치권에 데뷔했다. 당시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처럼 하얗고 짙은 눈썹 덕분에 ‘포청천’, ‘산신령’ 등으로 불렸다. 초대 민선 시장이었으나 취임식을 앞두고 삼풍백화점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취임식도 생략한 채 사고 수습에 나서야 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안전한 서울’, ‘시민 제일주의’를 강조했다. 남산 1, 3호 터널을 오가는 1~2인승 승용차에 부과하는 혼잡 통행료도 도입했다. “정치권에서는 미디에이터(중재자), 정부 내에서는 코디네이터(조정자), 국민에게는 내비게이터(방향키)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를 두루 경험한 고인이 제자가 국무총리가 됐을 때 당부한 말이다.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하다.
  • [길섶에서] 화장실 문/임병선 논설위원

    [길섶에서] 화장실 문/임병선 논설위원

    일터의 모든 화장실 문은 열려 있다. 딱 한 뼘만큼이다. 문 넷 모두 각도로 따지면 22도쯤 열려 있다. 그걸 이제야 알아챘으니 우둔하다. 내가 일하는 층만 그런가 싶어 서너 층 돌아봤는데 마찬가지였다. 잘못 아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절대로 우연히 그럴 수 없는 일이다. 눈치챘든 아니든 정리하는 분들이 우리 손 덜 가도록 배려한 것이지 싶다. 어쩌다 새벽에 출근하면 그분들 그림자 보며 고개 숙이곤 했다.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그분들 덕에 우리는 ‘보통의 하루’를 견딘다. 늘 고마움을 느끼지만 제대로 표시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출근하면 늘 깨끗이 휴지통이 비워져 있다. 일회용 컵을 버릴 때 물기 없애고, 더러운 것은 봉지에 담아 버리는 게 옳다. 도시락은 수거용 봉투에 담겨야 한다. 홍보용 전단 같은 것도 가급적 모아 한 번에 버리자. 내가 하기 싫은 일, 남한테 시키지 말라고 했다. 내 휴지통 보며 그분들은 내가 얼마나 제대로 사는지 판단하리라.
  • [씨줄날줄] 홍콩 점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홍콩 점보/박록삼 논설위원

    점보(Jumbo)라고 불렀고, 전바오(珍寶)라고도 불렀다. 중국의 황궁을 본떠 1976년 만들어진 세계 최대 수상 해산물 식당이었다. 80m 길이에 23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관광 명소 그 자체였다. 자신의 통치 지역을 살피기 위해 홍콩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기꺼이 찾았음은 물론이다. 홍콩 관광객이라면 음식값이 비싸 직접 먹어 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보트 투어로 주변을 돌며 사진 찍고 구경하는 것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용쟁호투’, ‘무간도2’ 등 숱한 홍콩영화와 ‘007 시리즈’, ‘컨테이전’ 등 할리우드 영화를 촬영한 장소이기도 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점보가 지난 20일 남중국해 시사군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2013년 이후 1300만 달러(약 168억원)의 적자가 쌓인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2020년 영업 종료 뒤 매각을 기다리며 조선소로 이동 중이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홍콩은 대륙에서 숱한 왕조가 명멸했음에도 별 관심 받지 못한 채 적은 수의 어민들이 고기 잡으며 살던 섬이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1839년 중국에 불법으로 아편을 팔기 시작했고, 아편 금지령을 핑계 삼아 영국은 군함을 보내 청나라 군대를 굴복시켰다. 3년에 걸친 ‘아편전쟁’의 결과 체결된 난징조약으로 홍콩은 영국에 할양됐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 땅 곳곳이 조차지, 조계 등의 이름으로 서구 열강에 빼앗기게 됐다. 덩치만 컸지 무기력하기 짝이 없던 중국은 1898년 아예 홍콩과 주룽반도 일대의 땅에 대해 99년간 영국에 조차권을 내줬고 1997년 7월에야 되찾을 수 있었다. 치욕의 역사를 복원하게 된 중국은 환호했지만, 많은 홍콩인은 슬퍼했고 사회주의와의 공존을 두려워한 이들은 떠났다. 봉건 잔재 타파의 문화대혁명 기운이 중국 대륙을 휩쓸며 정점을 이루던 무렵인 1976년 영국의 식민지 홍콩에서 카지노로 막대한 돈을 번 재벌이 중국 황궁의 외형을 복원하는 상업 식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거나 기묘하기도 하다. 중국과 홍콩, 영국을 모두 기억한 채 가라앉은 점보는 경제성이 없어 인양하지 않을 계획이라 한다. 수장(水葬)된 점보가 홍콩의 쇠락을 상징하는 듯해 씁쓸한 기분이다.
  • [길섶에서] 조퇴 논쟁/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조퇴 논쟁/박현갑 논설위원

    얼마 전 점심 자리에서 고3 수험생 자녀와 아빠의 ‘조퇴 논쟁’을 들었다. 아이는 학교에선 공부가 안 되니 조퇴하는 친구들처럼 자신도 조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건강에 이상이 없는데 조퇴하는 건 편법이니 안 된다고 맞섰다. 두 사람은 실랑이 끝에 한 달에 한 번 ‘조퇴’를 하는 걸로 타협했다고 한다. 부모 동의를 토대로 학생이 결석해도 출석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있다. 그런데 멀쩡한 건강을 핑계로 조퇴나 결석하는 학생들이 많단다. 이런 학생들이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법에 어긋나지 않는데 편법이 뭔 대수냐고 우길까 두렵다. 국회 인사청문회의 ‘아빠 찬스’ 논란이 떠오른다. 자녀 스펙 관리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런 적 없다”, “입시에 사용되지 않았다”는 해명이 이어졌다. 위법이 아니라면 상식에서 벗어나도 문제가 안 된다는 어른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듯해 씁쓸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늙어 가는 게 아니라 익어 간다는 노랫말은 거짓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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