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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실패한’ 97세대, 죽어야 산다/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실패한’ 97세대, 죽어야 산다/박록삼 논설위원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경선은 뜨거웠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만 44세의 김영삼 원내총무와 45세 김대중 의원, 48세 이철승 의원의 각축장이었다. 엎치락 뒤치락 정치공학이 뒤섞인 가운데 김대중 의원이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김대중 후보는 이듬해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관권·금권 선거 속 94만표 차이로 아깝게 패했다. 40대 기수론의 핵심은 새 시대를 향한 젊은 세대의 도전과 기성세대에 대한 투쟁이었다. 5·16 쿠데타로 좌절된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 실현 및 한반도 평화와 통일 등 4·19 혁명이 담은 시대정신에 대한 갈증이었다. 1990년대 들어 청년세대의 도전 역시 웅장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 사망 등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봇물이 터졌다. 당시 6월 항쟁의 핵심 주역은 청년들이었다. 전국적 변화의 흐름을 조직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을 주도했다. 훗날 ‘386세대’라는 칭호가 부여됐고, 스스로 한국 사회 경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변화와 혁신의 시대정신의 정수는 오롯이 이들에게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86세대는 이후 제도권으로 대거 진출했다. 여야를 아우르며 국회의원이 됐고, 여러 정부에 걸쳐 각 부처의 장관을 역임했고, 정당의 원내대표ㆍ당대표를 맡았고, 청와대 요직을 지냈다. 세상을 바꾸고 발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졌던 셈이다. 그러나 86세대가 전면에서 역할을 하는 동안 변화는 더뎠다. 국가총생산은 높아졌지만 사회 양극화는 극심해졌고, 민주주의는 절차와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실질적인 진전을 만들지 못했다. 물론 성과도 좌절도 오롯이 86세대만의 몫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동시대의 성원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사회적·정치적 권한을 가졌음에도 사회 모순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책임은 명백하다. 역량의 한계를 대내외에 천명하며 기득권이 돼 버린 86세대에서 하나둘씩 ‘정계 은퇴’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며 오히려 너무 미미해서 문제일 뿐이다. 정치의 주체가 바뀌지 않았는데 실질적 변화를 바라는 건 요원한 일이다. 90년대 학번 및 70년대 출생 세대, 이른바 ‘97세대’는 지난 민주당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도전했고, 실패했다. 22.23%를 득표한 박용진 의원 개인이야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자평할지 모르겠지만 이 실패는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했고, 세대 공통의 가치와 과제를 만들지 못한 원죄다. 싸우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식의 좌충우돌 싸움이 아닌, 청년을 자신의 정치 수단으로 삼은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너 죽고 나 죽자식 싸움이 아닌, 정교하게 준비된, 동세대와 함께하는 싸움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97세대가 살아남는 방법은 있다. 적극적인 징검다리 역할이다. 차세대 주역인 80년 이후 출생한 청년세대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과제를 발굴하고 그 과제가 청년세대를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후위기, 사회적 양극화, 정체기를 겪는 경제성장, 주변 열강 속 제자리 못 잡는 외교, 해법 못 찾는 한반도 평화 등에서 청년세대가 약진할 공간을 열어 주도록 기성세대와 더 적극적인 싸움을 벌이고, 그러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다. 피투성이가 돼 쓰러져 그 등을 밟고 청년세대가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97세대는 그렇게 죽어야 역사적 소임을 다한 세대로 살아날 수 있다. 기성세대, 기득권 세대와 싸워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치와 비전이 구현될 수 있는 세대교체의 공간을 열어 주는 것이 97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다음번 총선은 그 전장이 될 것이다.
  • [씨줄날줄] 역사 교과서 내로남불/김성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역사 교과서 내로남불/김성수 논설위원

    2018년 3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헌법 가치를 위반한 행위였다”고 발표했다. 조사위는 국정화를 주도했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에 대해 검찰에 수사 의뢰하라고 교육부에 요청했다.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였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시대착오적 정책이었다. ‘좌편향된 검정체제에서는 올바른 역사 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통치자가 원하는 대로 내용을 바꿨다는 비난이 더 컸다. 정권이 바뀌면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매번 반복된다. 정권을 잡은 쪽은 자기들의 역사관이 옳고 전 정권의 역사관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5월 교육부는 2020년부터 중고교생이 사용할 한국사 교육 과정 및 집필 기준 시안을 공개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을 뺀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북한 세습’, ‘북한 도발’, ‘북한 주민 인권’ 등 북한에 부정적인 표현들도 삭제됐다.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돼 좌편향됐다는 주장과 함께 국정 교과서를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와 뭐가 다르냐는 말까지 나왔다. 북한과는 탈이념 평화시대로 가자고 하면서 국내 보수세력과는 이념 전쟁을 하려 한다는 반발도 컸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은 “논란을 위한 논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요즘 중고등학생이 배우게 될 ‘2022년 개정 한국사 교육 과정’ 시안에서 ‘남침’,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빠진 게 논란이 되고 있다. 6·25 전쟁에서 ‘남침으로 시작된’이라는 설명을 빠트려 전쟁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가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구성한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이유를 들어 ‘역사 교과서 알박기’라는 비판과 함께 이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역사적 사실은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5년마다 정권에 맞춰 선택되는 사실이 달라지고, 해석도 제 입맛대로 이뤄진다면 역사 교과서는 누더기가 된다. 역사 교과서는 어떤 경우에도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 안 된다.
  • [길섶에서] 대간령/임병선 논설위원

    [길섶에서] 대간령/임병선 논설위원

    설악산 대간령(大間嶺ㆍ641m)을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관령(大關嶺)?” 하고 되묻는다. 지루한 진부령(520m)과 험준한 미시령(826m) 사이에 있다 해서 ‘사이’의 사투리를 따 ‘새이령’이라 했다. 설악산깨나 다녀봤다는 이들도 이런 길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고즈넉한 숲길이 왕복 4시간 내내 이어진다. 계곡의 세찬 물줄기와 풀벌레 소리가 머릿속을 정화하는 듯했다. 낙엽송과 서어나무 군락에서 심호흡을 하니 싱그럽기만 하다. 속초와 양양의 소금과 고등어, 미역이 인제의 감자와 콩, 팥과 만나는 장이 선 곳이기도 하다. 말 거래가 이뤄졌다고 마장터로도 불렸다. 영서 사람들이 인제 원통까지 가기 위해 이곳을 걸어 길을 다졌다니 대단하게만 여겨진다. 숲에 나를 숨기고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떠올렸다. 40년 터줏대감 백모(70)씨의 귀틀집을 소리 죽이며 지나쳤다. 몰려드는 사람들이 싫어 그는 떠날 결심을 굳혔단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 [전경하의 실패학] 부처 칸막이 갇힌 공급자 중심 복지서비스… ‘비극’ 예방 어려워/논설위원

    [전경하의 실패학] 부처 칸막이 갇힌 공급자 중심 복지서비스… ‘비극’ 예방 어려워/논설위원

    복지부 415쪽 책만 17만부 배포맞춤 지원 받으려면 또 기관 문의英, 사안별 구분 짧은 인쇄물 비치美, 기관이 상황 파악 알아서 지원 尹정부 맞춤형 통합지원 과제로‘협업예산’ 도입해도 걸음마 단계디지털플랫폼정부 민간도 참여를정책 실험 필요… 수정·보완 후 실행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모든 부처의 복지사업은 450여 종류나 된다. 하지만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2014년), ‘탈북 모자 아사 사건’(2019년) 등 비극은 반복해서 일어났다. 수요자가 아니라 부처 간 칸막이에 갇혀 공급자 중심으로 복지 서비스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경제·사회 현상이 복잡해지면서 정부 운영 방식이 변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운영 방식 개편이 늦어질수록 국민의 삶은 더욱 불편해진다.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난달 22일 이후 주민센터에 갔다. 복지부가 올 5월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복지서비스를 모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책을 찾았다. 인터넷으로 내려받을 수 있지만 415쪽이라 필요한 내용만 골라 보기에는 번거롭다. 서울 중구 주민센터도, 경기 용인 주민센터도 책장에서 꺼내 줬다. 서울 노원구 주민센터는 책이 없다며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물었다. 주민센터에서 받은 책은 100쪽 내외였다. 복지부가 지역 특성에 맞게 제작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2007년 방문했던 영국의 비영리상담기구인 시민상담소(Citizen Advice Bureau)는 사안별 짧은 인쇄물을 입구에 꽂아 뒀다. 주택담보대출 연체, 연료 문제 등 상황에 대한 구체적 표현이 써 있었다. 시민상담소는 지금도 2만 명가량의 자원봉사자와 금융기관 등의 지원으로 해당 지역이나 연령층에 필요한 정보를 담은 자료를 나눠 준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마이너스통장에 의지하지 말기, 일상생활비 기억하기 등 10가지 조언을 담은 홍보물을 만든다. 접어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크기다. ●부처의 복지사업 450여 종류 ‘방대’ 복지부 입장에서 415쪽짜리 책 17만부를 주민센터는 물론 공공기관, 사회복지시설 등 8000여개 기관에 배포한 것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모든 부처의 450여개 복지사업을 다 필요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노령층과 청년층을 위해서는 각각 PDF 파일이 제공되지만 임신·출산·영유아, 아동·청소년, 장애인용은 전자책만 있다. 전자책을 내려받아 필요한 서비스를 찾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싶다.책이 있어도 지원받으려면 곳곳에 물어야 한다. 장애인 가정의 전기료 할인은 한국전력에, 도시가스 요금할인은 지역별 도시가스 회사에 신청해야 한다. 장애인의 직업능력개발은 장애인고용공단에 가야 하고, 장애인 창업은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가 담당한다. 재활은 장애별로 구성된 협회가 맡는다. 지역에 따라 장애인과 가족의 지원센터가 다른 곳도 있다. 문의 전화번호도 필요하지만 자동응답전화(ARS)로 연결되는 대표 전화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애인 지원체계가 잘 갖춰졌다고 평가받는 미국 일부 주(州)는 ‘원스톱 서비스’를 운영한다. 장애 관련 지원 제도를 한 곳에 모아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도 있다. 장애인 가족이 어떤 제도가 있는지 알아보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기관이 해당 가족의 상황을 파악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이 있다. 복지서비스의 칸막이를 없애 개인예산제를 도입하고 장애 특성·유형에 맞는 직무모델 개발 등 일자리 지원, 방문재활서비스 추진 등이 담겼다. 그동안 없었다는 뜻이다. ●장애인 지원받으려면 각자 찾아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8월 10일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산고령사회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5년 단위로 세우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라 매년 부처와 지자체의 세부계획이 발표된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 다음해인 2006년부터 그랬다. ‘청년 창업 지원’ 예산이 있는 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123억원), 문화체육관광부(50억원), 농림축산식품부(12억원), 중소벤처기업부(1조 183억원) 등이다. 과제별로 부처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처별로 최대 78개 과제가 나열돼 있다. 이런 접근법의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실패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는 26만 562명이다. 올 6월까지의 출생아 수는 12만 8138명. 통상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출생아 수가 적다. 올해 출생아 수가 25만명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20년 전인 2002년 출생아 수(49만 6911명)의 절반 수준이다. 저출산에 쓰였다는 200조원이 실제 저출산 해소 대책에 쓰였는지도 의문이다. 부처 편의에 따라 대상을 나누는 것은 고질적이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은 교육부,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가족부 담당이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복지부와 행정안전부가 개입한다. 장애인이나 노령층을 포함한 취약계층 가족은 복지부, 다문화가족이나 한부모가족은 여가부 담당이다. 정부도 문제점을 안다. 기획재정부는 2021년 예산 편성부터 협업예산을 도입했다. 각 부처들이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거나 급하지 않은 사업이나 다른 부처와 중복되는 사업까지 예산을 요구하면서 세금이 낭비되고 재정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서다. 협업예산은 관계부처가 주관협업부처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업을 공동기획하고 투자계획을 사전 조정해 관련 예산을 공동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2021년 디지털신기술 인력 양성 등 12개 사업, 올해는 인구감소지역 재도약 프로젝트 등 17개 과제가 추진됐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과거 데이터·기존 서비스 철저 분석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2019년 4월 가능성부(Ministry of Possibilities)를 신설했다. 플랫폼에 기반한 가상정부로 담당 장관은 없고 모든 부처가 관여한다. 민간도 참여해 당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고안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조직이다. 하부 조직으로 기대서비스국, 행동보상국, UAE재능국, 정부조달국 등 4개국이 있다. 기대서비스국은 모든 정부서비스를 요구되기 전에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을 5년 안에 만드는 것이 목표다. 행동보상국은 법과 규제 준수, 시민참여, 경제발전 등 5개 분야에서 국민의 올바른 행동을 보상을 통해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우리 정부도 늦었지만 시작했다. 대통령 소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2일 출범한다. 디지털플랫폼정부는 국민, 기업, 정부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정부를 뜻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디지털플랫폼정부를 설명한 안철수 당시 인수위원장은 기존 정부 혁신 사업인 전자정부를 ‘전산화정부’라고 평가했다. 기존에 하던 일을 컴퓨터를 이용해 좀더 빠르게 한 것이지 일하는 방식은 아날로그였다는 지적이다. 인수위에 따르면 정부가 가진 1만 7000개 정보는 공유되지 않고, 민간에 개방된 주요 공공데이터는 10%에 불과하다. 디지털플랫폼정부가 성공하려면 첫째, 정책 실험이 제대로 돼야 한다. 박형준 성균관대 국정평가연구소장은 “외국의 주요 부서는 최근 정책실험이 가장 핵심적 과제”라며 “특정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따져 보고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은 수정 보완한 뒤 실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초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거나 메타버스 등 가상공간에서 정책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과거 데이터 분석이다. 복지서비스가 450여개에 이르는 까닭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부처별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존 서비스를 철저히 분석해 확대·보완하는 노력이 먼저다. 셋째, 민간의 적극적 참여다. 순환보직하는 공무원보다 민간 전문가가 해당 분야를 더 잘 안다. 민간의 전문성을 적정한 값을 치르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 [씨줄날줄] 개혁개방의 두 얼굴/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개혁개방의 두 얼굴/오일만 논설위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의 마지막 서기장이자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이다.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최연소(54세) 정치국원으로 권력을 쥔 1985년부터 7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집권 기간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의 대담한 정책을 추진해 역사적 격변을 이끌었다. 1989년 12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몰타 정상회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냉전의 종식을 선언했고, 이 공로로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고르비가 역사의 영욕을 뒤로하고 30일(현지시간) 9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서방세계에선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정작 러시아 내에선 ‘초강대국 소련을 멸망시킨 매국노’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북한은 아직도 ‘사회주의 배신자’로 비난할 정도로 그를 증오한다. 소련·동구권 몰락을 지켜봤던 워싱턴포스트의 마이클 돕스 기자는 ‘1991년’이란 저서에서 “고르비는 공산주의를 해체한 공산주의자이고 개혁에 추월당한 개혁자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다민족 제국의 해체를 주도한 마지막 황제”라는 평을 남겼다. 역대 공산당 서기장 가운데 가장 지적인 지도자로 평가받았던 그는 1985년 집권 초부터 다당제와 시장경제 도입, 사상 분야에서의 자유화 등 대담한 개혁을 이끌었다. 비슷한 시기 개혁개방에 나섰던 중국 덩샤오핑의 신중하고 노련한 행보와 달리 경험이 일천한 고르바초프의 성급한 개혁은 관료사회와 기득권 세력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했다.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보수파들의 1991년 8월 쿠데타가 ‘3일 천하’로 막을 내렸지만 그 역시 급진파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났다. 당시 소련 체제 붕괴를 시간문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소비에트 공산주의 체제의 무능과 부패, 타락은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이 된 지 오래였고 비효율적 계획경제 시스템 역시 붕괴 직전의 상태였다. 어찌 보면 고르비는 존재 자체가 어려운 공산주의 체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다 본의 아니게 몰락을 주재한 비운의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반세기 동안 세계를 괴롭혀 온 ‘냉전 해체’의 위업을 달성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 [길섶에서] 헤어질 결심/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헤어질 결심/박현갑 논설위원

    안 보던 책과 낡은 다이어리 등 책상 위 물건을 정리 중이다. 모두 참고할 요량으로 쌓아 둔 것들이다. 물건 속 손글씨 등 일상의 흔적과도 헤어지려니 아쉽기도 하다. 정리는 기억과의 이별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시간따라 기억도 새로 채우는 게 맞다며 애써 위로해 본다.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몽블랑이라는 말에 50대 이상은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산을, 30대는 만년필을, 20대는 하얀 눈가루를 뿌린 케이크를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백설공주나 인어공주 등 서양의 고전동화 속 주인공은 대부분 백인이다. 요즘은 흑인이나 라틴계 주인공들도 넘쳐난다. 원작가에겐 왜곡이겠으나 다문화 사회 흐름에 맞춘 설정이라니 관념은 변하는 게다. 이성 간 애정표현 방식이나 부모 자식 간 사랑 등은 어떨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을 게다. 그런데 남성,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이 나오고, 인공지능 모델이 주목받는 시대다. 애써 지켜 온 규범과 삶의 양식도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 [진경호 칼럼] 이준석의 헤어질 결심/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이준석의 헤어질 결심/수석논설위원

    37세 청년 중진 이준석에게선 종종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묻어난다. 그의 말이 그렇다. “저거 곧 정리됩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자신과의 통화에서 나온 이준석의 말이라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폭로한 내용이다. 윤석열 후보를 ‘저것’이라 한 것인지는 차치하고, 지금과 앞날을 단정하는 말투에 한 치의 여백이 없다. 지난해 12월 당무를 거부하며 제주도로 가서는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원님들이 이준석의 복귀를 명령하신다면 어떤 직위로든 복귀하겠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론 절대 대선에 필요한 젊은층 지지를 같이 가져가진 못한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일 것이다.”(1월, 국민의힘 의원총회) 유아독존(唯我獨尊)이란 말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그 말에 ‘싸가지’가 있든 없든 거짓만 아니라면 어떠랴. 한데, 그렇지가 않다. 2019년 3월 바른미래당 청년정치학교 회식 자리. 최고위원 이준석은 “캠프에 기자가 없다고 자랑을 해. 안철수 그 병신이…. 내 최고의 적은 안철수”라고 했다. 첫 폭로가 있었고, 이준석은 잡아뗐다. 녹취록이 공개됐다. 빼도 박도 못 하게 된 이준석은 말을 바꿨다. “사석에서 한 말이라 문제 될 발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최고위원직을 잃었다. 성상납 의혹 앞에서의 행보도 다르지 않다. 새벽 댓바람에 측근을 보내 7억원 각서를 써 주고도 성상납 여부에 대해선 지금껏 가타부타 말이 없다. 외려 당내 윤 대통령 세력의 찍어 내기로, 자신을 정치 탄압의 희생양으로 자리매김해 간다. 윤 대통령과의 갈등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든 지금의 사태가 여권 내 주도권 싸움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따지기 앞서 그는 성상납 여부에 대해 국민 앞에 있는 사실 그대로를 먼저 고했어야 한다. 그게 보수 꼰대 정당을 젊은피로 일신해 보라며 한국 정당사에 유례가 없는 30대 당대표를 만들어 준 당원과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고 예의다. 그게 조국 사태를 비판하는 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보여 줘야 할 그들과 다른 모습이다. 너무 높은 길을 걸어왔다. 서울과학고와 미 하버드대를 나와서는 잠깐 벤처기업을 창업했다가 2011년 26세 나이에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손에 이끌려 정치판에 들어온 지 11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바른정당 청년최고위원,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그리고 국민의힘 대표…. 국회의원에 세 번 떨어졌지만 주변부로 밀려난 적이 없다. 아래로 떨어진 적도 없다. 낡아 빠진 정치 좀 바꾸자는 장삼이사의 염원과 이제 꼰대 이미지 좀 벗어 보자는 보수 당원들의 갈망을 구름 삼아 너무 높은 곳으로만 날았다. “실은 대선 때 개고기를 팔았다”는 그의 불량한 ‘앙심(怏心) 고백’은 그런 고공행진의 궤도 위에서나 나올 국민 모독이다. 몰라도 아는 척만 하는 방송 패널을 오래한 탓인지, 그의 아무말 대잔치엔 이제 담장조차 없다. “난 윤 대통령에게 체리따봉을 받아 본 적 없다”며 분을 참지 못해 울먹이는 그를 마냥 측은지심으로 지켜봐 줄 만큼 국민은 한가하지 않다. 그가 대구 떡볶이 축제를 기웃대고 칠곡의 조부 묘소에 머릴 조아리며 ‘윤핵관’과의 권력 싸움에 삼국지연의를 덧씌우는 어름에도 수원에선 세 모녀가 생활고 끝에 죽었고, 보육원을 나선 대학생이 사회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생을 마쳤다. 그리고 이준석발 태풍의 한복판에서도 이런 사회 약자들을 살릴 대책과 당 내분의 출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동료 의원들도 즐비하다. 이준석 사태가 그의 책임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변화에 대한 거친 생각’이 뭔지, 불안한 눈빛으로 그의 정치공학을 계속 바라봐야 할 이유가 더는 국민에게 없다. 국민의힘이 아니라 정치와도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 [씨줄날줄] 기후 정의/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기후 정의/임병선 논설위원

    파키스탄이 성서에나 나올 법한 홍수에 신음하고 있다. 두 달 동안 폭우가 이어진 데다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는 바람에 1100명 넘는 사람이 숨졌고 주택과 작물, 가축들이 떠내려갔다. 한 장관은 국토의 3분의1이 침수됐다고 개탄했다. 파키스탄은 세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46개 최빈개도국에 속한다. 이들 나라가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에 책임을 져야 할 몫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후재앙의 피해를 파키스탄처럼 가난한 나라가 온통 뒤집어쓰고 있다. 기후변화가 지구촌 차원의 재앙이긴 하지만 탄소 배출 등을 책임져야 할 선진국은 쏙 빠져나가고, 가난한 나라가 막대한 인적ㆍ물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기후 부(不)정의’라 할 만하다. 파키스탄 정부 당국자는 “환경을 무책임하게 파괴하고 훼손한 다른 나라의 행위 때문에 파키스탄이 불공정한 결과를 감내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2015년 페루의 한 농민은 안데스산맥의 빙하가 녹아 홍수 피해를 입었다며 독일 에너지기업 아르베에(RWE)그룹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언뜻 얼토당토않다고 여길 수 있는 소송이지만 획기적이다. 파키스탄 정부도 이 재판 결과를 참고해 비슷한 사법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 나라 안에서도 기후재앙은 차별적으로 전개된다. 파키스탄만 해도 상대적으로 덜 개발되고 기반시설이 미흡한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와 남동부 신드주에 홍수 피해가 집중됐다. 이달 초 우리의 중부 집중호우 피해 현황을 돌아봐도 노인, 여성, 이주자 등이 훨씬 재난 위험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수도권에 에너지 수요가 집중되는데 수도권이 아닌 곳에 석탄 발전소와 쓰레기 처리 시설이 몰려 있는 문제도 기후 부정의로 간주될 수 있겠다. 우리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견줘 누린 것은 많았지만 책임지는 대목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미래 세대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성찰도 제기될 수 있다. 분명히 했으면 하는 것은 기후재앙의 책임을 규명한다는 이유로 지구촌 차원의 하나 된 대응에 균열이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길섶에서] 탭오더/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탭오더/임창용 논설위원

    “왜 복잡하게 기계를 써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거야?” 며칠 전 한 지인과 함께 부부 동반으로 브런치카페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식사를 주문하려던 지인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테이블에 설치된 탭오더를 처음 접했던 모양이다. 50대 후반인 그는 몇 번 터치해 보더니 잘 안 되자 직원을 부르려는 듯 카운터 쪽을 바라본다. 비대면 주문 경험이 있던 내가 얼른 나섰다. 여러 가지 메뉴를 차례대로 선택해 담고 할인쿠폰 적용 여부를 선택한 뒤 최종 주문을 터치하니 끝. 지켜보던 지인이 “생각보다 쉽네”라며 멋쩍어한다. 요즘 식당가에선 비대면 주문 시스템이 대세다. IT 기기에 서툰 고령 손님들은 불편해하지만 젊은층은 외려 반긴다. 간편한 데다 직원 착각으로 주문이 잘못될 염려도 없어서다. 널찍한 매장에선 로봇 서빙도 자주 눈에 띈다.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도 인건비 때문에 문을 닫는다는 뉴스가 실감난다. IT에 서툴면 외식도 부담인 세상이 됐다.
  • [부고]

    ●모종화씨 별세, 모병철(변호사)·순애·순옥·현철(매일신문 논설위원)씨 부친상, 박찬준(효건상사 대표)씨 장인상, 김영희·김명숙씨 시부상 = 30일 대구 수성요양병원, 발인 9월 1일. (053)766-4444 ●신상순씨 별세, 홍경표씨 부인상, 홍윤우·은정·지형·정석씨 모친상, 이진형(KBO 경영그룹장)·김장철(포스코 근무)·최경호(경기도교육청 국회협력담당관)씨 장모상, 이선나(국민건강보험공단 근무)씨 시모상 =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월 1일. (02)3410-6902
  • [씨줄날줄] 잭슨홀의 경고/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잭슨홀의 경고/전경하 논설위원

    미국 중서부에 있는 와이오밍주 그랜드티턴국립공원 계곡에 잭슨이란 소도시가 있다. 움푹 파인 지형이 구멍 같은 느낌이라 ‘잭슨홀’로 더 알려져 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경제학자 등 150여명이 1978년부터 매년 8월 이곳에 모인다.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하는 ‘잭슨홀 경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2박3일 동안 경제 현안을 치열하게 토론한다. 중앙은행들이 앞으로 어떤 기조를 취할지 논의하기 때문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발언 하나하나에 주목한다. 물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관계자의 발언이 최고 관심사다. 금융위기 당시 헬기에서 달러를 뿌린 것처럼 돈을 풀었다고 해서 ‘헬리콥터 벤’이라 불린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2010년 잭슨홀 미팅에서 2차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직접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를 암시했다. 장기채권을 사고 단기채권을 팔아 유동성을 공급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2011년), 3차 양적완화(2012년)도 잭슨홀 미팅에서 언급됐다. 연준이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과정도 이와 비슷했다. 스탠리 피셔 전 연준 부의장이 2015년 ‘선제적 통화정책 정상화’를 언급했는데, 그해 12월 연준은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렸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도 2016년 “금리 인상 여건이 강화됐다”고 말했고, 그해 12월부터 2018년 말까지 기준금리가 올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간) 8분 50초 동안 연설하면서 물가 상승을 45차례 언급했다. 기준금리가 결정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올해 9월, 11월, 12월 세 번 남았다. 세 번 모두 금리를 올리겠다고 말한 셈이다. 이 발언에 그날 미국 3대 지수(다우지수, 나스닥지수, S&P500)는 3% 이상 급락했다. 코스피를 포함한 아시아 주요 증시는 어제 2%대 폭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19.1원이나 올라 달러당 1350.4원에 마감됐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잭슨홀에서 경기침체는 불가피하더라도 경기침체에 물가 상승까지 더해지는 스태그플레이션만은 막겠다고 결의한 셈이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 됐다. 정부의 대응책 마련이 더 다급해졌다.
  • [서울광장] 다극 질서와 한국인 유전자/임병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다극 질서와 한국인 유전자/임병선 논설위원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유전자에 다극 질서에 대응하는 사상적, 심리적 요소가 약하다. 그런 점이 매우 걱정된다.” 서울신문 평화연구소가 지난 23일 개최한 ‘한중 수교 30년, 갈등 극복 해법을 찾아서’ 포럼에 토론자로 나선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의 발언이 귀에 꽂혔다. 세계가 냉전 이후 미국 단극 체제에서 다극 질서로 바뀌고 있다는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의 발제에 대한 언급이었다. 미국 순양함 두 척이 그제 대만해협을 통과했고, 중국 전투기 10대가 상공을 정찰했다.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침공, 반년 넘게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음을 과시한 북한은 언제라도 7차 핵실험을 감행, 우리와 일본 등에 전술핵을 쓸 수 있는 준비를 마치려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대일 외교에 능했던 우리가 삼각 질서나 다극 질서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진단했다. 동아시아에 신흥 세력이 부상해 질서가 바뀔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위기를 자초하거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의리를 앞세우고 주자학의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민족이라는 것이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다극 질서로 바뀌는 시기에 국익과 백성의 삶을 위하는 이용후생의 상인 의식이 필요한데, 반대로 갔다는 진단이다. 병자호란이나 구한말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본다고 의심했던 이들이나 취임 110일을 넘긴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에 ‘올인’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이들이나 의로움을 판단 잣대로 생각하는 점은 닮았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 예일대 교수는 ‘제국과 의로운 민족’ 한국어 서문을 통해 한반도가 유일하게 제국에 복속되지 않은 이유로 ‘정체성’과 ‘지식’을 꼽아 눈길을 모았다. 베스타 교수는 한국인이 의(義)를 중시하는 정체성을 지녔으며, 조선 지식인들이 오히려 중국인보다 제국을 더 잘 알고 있어서 포섭하려는 제국에 때로는 저항하며, 국방과 외교를 중국에 의지하면서도 국내 문제는 스스로 처리하는 식으로 현명하게 생존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혐오는 결코 방책이 안 된다. 중국을 잘 알아야 잘 대응할 수 있다. 중국에게 우리가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혐오할수록 중국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아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공부와 숙고보다 그저 일어나는 상황 상황에 대처하는 데 급급해 보였다. 어느 날은 미국 목소리에 힘을 싣다가 다른 날은 중국 달래기에 나서는가 하면, 어느 날은 북한과 북녘 인권을 압박하다 다른 날은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원칙론을 설파한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갈파한 대로 윤 대통령은 기본부터, 나라 운영의 기본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제도와 환경을 섣불리 이해하고 혁신을 외치면 안 된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기’(氣)를 충전하거나 집권여당 연찬회에 기웃거리거나 전당대회 시기를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 미중 전략경쟁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미국과 중국 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토와 러시아, 북한, 일본이 이 시점에 어떤 고민을 하는지 연구하고 살펴야 한다. 한가위 물가나 전세난, 주택난 같은 민생 고민도 해야겠지만 우리 민족이 이 격변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국민들이 어떤 사상과 심리적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주변 세력들을 잘 안다고 대통령이나 정부, 국회, 국민 모두가 착각하며 단정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민족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일방의 힘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들어서고 있다.
  • [길섶에서] 헌혈/박록삼 논설위원

    [길섶에서] 헌혈/박록삼 논설위원

    매혈(賣血), 즉 피를 팔아서 생계를 전전하는 허삼관은 피를 뽑기 전 이뿌리가 시큰해질 때까지 물을 들이켠다. 일부러 피를 묽게 하고 피의 양을 많게 하려고 오줌도 싸지 않는다. 피를 뽑고 나서는 보혈(補血)한다며 돼지간볶음에 데운 황주 두 냥을 마신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1966~1976년 문화대혁명 시기를 건너온 중국 소시민의 가난과 슬픔이 버무려진 일상을 해학적으로 담았다. 첫 헌혈이 기억난다. 삼십몇 년 전 헌혈차가 학교를 찾아왔다. 교감, 담임 선생님도 나서서 독려했다. 사실상 ‘반강제적’ 헌혈이었다. 그래도 더벅머리들은 헌혈 뒤 나눠 준 빵과 우유를 2개씩 먹어 가면서 낄낄거리기 바빴다. 얼마 전 모처럼 헌혈을 했다. 65번째였다. 소설 속 늙은 허삼관은 모처럼 매혈을 하려고 했다가 거부당하자 피를 팔지도 못할 만큼 나이 들었음을 한탄했다. 헌혈 가능 나이는 69세까지다. 그때까지 건강을 잘 유지할 일이다.
  • [씨줄날줄] 공소시효/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공소시효/박록삼 논설위원

    공소시효. 말 그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효력 발생 시한이다. 범죄 발생 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소권을 가진 수사기관은 법원에 피의자 처벌을 위한 재판을 요청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무기형 범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성폭행과 같은 10년 이상 징역형 범죄는 10년, 10년 미만 형 범죄는 7년 등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증거를 확보하고 범인을 잡아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예컨대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에서 2019년 재판부는 “2006∼2008년 사이 받은 금품과 성접대 등 향응은 공소시효가 완성, 면소됐다”고 김 전 차관의 죄를 묻지 않았다. 시간이 지났다고 범죄를 면책해 주는 제도라면 법이 피의자에게 도망만 잘 다니길 권장하는 것 아니냐며 법의 역할에 대해 회의하는 의견이 많다. 이른바 ‘개구리소년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인 사건 등 여러 반인권적 범죄들은 공소시효 뒤로 밀려나며 지금껏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 결과 피해자 및 가족, 친구들은 오랜 시간 악몽과 같은 고통의 굴레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영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대부분 ‘법적 안정성’이라는 원칙 아래 공소시효를 도입하고 있다. 사건 관련 증거가 훼손되는 등 증거 능력이 휘발돼 이로 인해 피의자가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중범죄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연방법상 사형 구형 가능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으며, 영국은 경범죄에만 공소시효가 있다. 일본 역시 살인죄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완전히 없앴다. 21년 전인 2001년 대전의 한 은행에서 벌어진 강도살인 사건의 용의자 2명이 지난 25일 체포됐다. 사건 현장 유전자(DNA)와 일치하는 인물들로 알려졌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제한된 수사 역량 속 현재 사건에 허덕이는 경찰이 끈질긴 수사를 펼칠 현실적 이유가 없었을 테다. 보다 적극적인 피해자 인권 보호와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해 이제 살인사건 외에 반인도적ㆍ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 폐지를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 [길섶에서] 포도 휴게소/서동철 논설위원

    [길섶에서] 포도 휴게소/서동철 논설위원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오는 길에 ‘입장거봉포도휴게소’에 들렀다. ‘입장화물차휴게소’였는데 어느새 바뀌었나 보다. 최근 이 고장에서 포도 품종을 거봉에서 샤인머스캣으로 바꾸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도 들렸다. 이러다 언젠가 휴게소 이름도 ‘입장샤인머스캣휴게소’가 되려나 하며 혼자 웃었다. 충남 천안시 입장면은 경기 안성시와 붙어 있다. 안성성당에 안토니오 콩베르(1875~1950) 신부가 포도나무 두 그루를 심은 것이 지역 포도 역사의 시초라 한다. 믿거나 말거나 천주교는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성찬 의식에 필요한 포도나무’를 들고 해외 선교에 나섰다는 것이다. 입장면은 1912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경기 안성군에서 충남 천안군에 편입됐다. 그러니 입장 포도의 역사와 안성 포도의 역사는 다르지 않다. 두 고장이 함께 포도축제를 벌인다면 볼거리도 생각거리도 훨씬 더 많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포도를 맛있게 먹고 있으니 길이 막혀도 지루하지 않았다.
  • 中 톱배우, 아내 잔혹 폭행 충격… “살려달라” 동영상 유출

    中 톱배우, 아내 잔혹 폭행 충격… “살려달라” 동영상 유출

    중국의 유명 남자 배우인 왕동(王东)이 아내를 무참히 폭행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됐다. 왕동은 '다이아몬드 러버', '도정호:가족의 발견', '완미관계', '최혹적세계' 등에서 열연하며 중화권 톱배우 대열에 들어선 모델 출신의 배우다. 지난 26일 왕동의 아내이자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A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 그의 폭행 장면에 담긴 영상을 원본 그대로 공유했다.영상에는 방 안쪽 창가에 걸터앉아 있던 왕 씨가 침대에 누워있던 아내와 대화 도중 A씨를 향해 달려가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짓밟는 등의 폭행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또, 왕 씨는 이 과정에서 흥분한 듯 아내의 머리채를 잡아 무자비하게 흔들며 온갖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의 아내 A씨는 사건 직후 자신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며 “남편이 아기 침대 겉면의 단단한 나무를 뜯어 폭행하려 했다”면서 “그가 내 휴대폰을 부수고 목을 심하게 졸랐다. 그는 내게 ‘차라리 함께 죽자’며 위협했다”고 폭로했다.아내를 향한 왕 씨의 잔인한 폭행은 관할 경찰들이 출동해 사건을 진화할 때까지 계속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영상 속에는 왕 씨의 얼굴과 폭행 장면 등이 정면에서 촬영돼 가해 남성이 중화권 톱배우인 왕 씨인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왕 씨는 지난 27일 자신의 웨이보에 ‘사건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입장을 공고했다. 하지만 그는 사과문을 통해 ‘다시는 괴롭힘과 위협, 협박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변호인을 선임해 처리할 것’이라고 아내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그의 이런 입장문이 공개된 직후에도 중국 매체들과 누리꾼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분위기다. 중국 매체 훙싱신원의 호유에 논설위원은 “어떤 이유도 가정 폭력의 합당한 변명이 될 수 없다”면서 “가정 폭력에 대한 무관용 원칙은 오랜 시간 동안 중국 여론의 큰 공감대를 형성해온 부분이다. 왕 씨가 아무리 방어하려 한다고 해도 그의 폭력 혐의 사실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현지 누리꾼들 역시 ‘진실이 무엇인지는 부부만 알고 있겠지만 가정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리적일 수 없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그가 공인이든 일반인이든 공정하고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사회 정의를 세울 수 있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에서 그의 이름을 빠른 시일 내에 삭제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에 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에 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

    신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에 강민석(56)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임용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29일자 4급 이상 임용 명단을 발표하며 지방서기관(개방형직위)에 강 대변인이 임용됐다고 26일 밝혔다. 서울 경성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강 대변인은 1992년 경향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2000년 중앙일보로 옮겨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청와대 대변인으로 1년 2개월 간 재직했다. 청와대 대변인에서 퇴임한 뒤에는 지난해 8월부터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청와대 대변인 퇴임 5개월 만인 지난해 9월에는 14개월 간 곁에서 지켜 본 문 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기 ‘승부사 문재인’을 출간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공모에는 강 대변인을 포함해 8명이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 관계자는 “풍부한 경험과 전문 역량을 바탕으로 3선을 맞은 조희연 교육감의 정책을 잘 전달할 인물을 뽑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서울광장] 공무원 취업제한, 현실에 맞지 않는다/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공무원 취업제한, 현실에 맞지 않는다/전경하 논설위원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서울대에 복귀해 9월부터 강의한다. 교육부 장관으로 35일 근무했지만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복직 신청을 해 국공립대 교수로 돌아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퇴 재가를 받은 그날 오후 서울대에 복직 신청을 한 것과 같은 절차다. 지난 6월 퇴직한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은 3년 뒤인 2025년 6월 6일까지 업무와 관련이 있는 곳에 취업할 수 없다. 취업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취업 기관이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 줘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업무 관련성은 퇴직 전 5년간 어디서 일했는지를 따진다. 거의 ‘금융’에서 일했던 정 전 원장은 금융과 밀접한 기업이나 법무법인은 언감생심이다. 그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2017년 7월 그만뒀는데 그때도 같은 제한이 적용됐다. 2주일밖에 근무하지 않은 김기식 전 금감원장도, 30년 이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최장수(3년 6개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퇴직한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도 같다. 교수는 바로 돌아갈 수 있다. 취업제한 3년이 지나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한 전직 관료는 “2년 지나면서는 이러다 손가락 빨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고했다. 경조사비 지출이나 살림살이는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데, 연구소의 초빙연구위원이나 대학교의 특임·겸임교수 등의 수입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퇴직 공무원이라고 나이든 부모를 부양하고,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돌봐야 하는 ‘낀 세대’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취업제한이 끝나 법무법인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데 다시 공직 요청을 받으면 난감하다. 당장 월급도 줄지만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데 퇴직 이후 3년간 또 취업제한에 걸린다. 2010년 전에는 퇴직 직전 3년 평균 보수로 공무원연금액이 결정됐다. 높은 자리에서 근무를 마치면 연금이 늘었지만 지금은 모든 재직 기간 평균소득으로 바뀌어서 큰 변화가 없다. 공직 재취업 제안을 받는 퇴직자들은 재직 시 성과나 평가가 좋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부른다고 꼭 가야 하느냐고 토로한다. 취업제한을 피해 일찍 나가기도 한다. 취업제한은 4급 이상에 적용된다. 최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실력 있는 5급 사무관들이 민간으로 옮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간 전문가를 국장 등 고위공무원으로 영입하려고 해도 이들 역시 퇴직 후 취업제한에 걸린다. 개방형 직위가 무늬만 ‘개방형’인 이유다. 취업제한 도입 당시 제한 기간은 2년, 업무 관련성은 퇴직 전 3년까지였다. 2011년 업무 관련성이 5년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제한 기간이 3년으로 늘었다. 외국은 취업제한이 1년 또는 2년이다. 미국은 취업이 아니라 업무 제한에 중점을 둔다. 공직에서 직접 했던 업무와 관련해서는 퇴직 이후 영구적으로 공무원들에게 연락할 수 없다. 감독에 그쳤다면 2년이 적용된다. 고위 공직자는 ‘냉각기’ 1년 동안 근무했던 기관과 접촉할 수 없다. 공무원 고시 열풍이 사라지고 있다. MZ세대(1980~2000년대생)는 공무원보다 자격증을 선호한다. 민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가는 공직으로 안 가려 한다. 공직사회는 순환 보직이 기본인지라 전문가로 성장할 가능성도 적다. 정년까지 버티는 상사들이 늘어나면서 직장 문화도 민간에 한참 뒤진다. 공직사회가 ‘고인물’이 되지 않으려면 개방형 직위를 도입한 이유처럼 민간과 공직 사회의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 공무원의 능력은 국민 생활과 관련이 깊다. 또 세금으로 만들어진다. 그 능력을 ‘닥치고 3년’ 봉인하는 것은 규제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부정청탁금지법(2016년),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2022년) 등의 시행으로 공직자 부패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났다. 퇴직뿐 아니라 현직 공무원의 능력을 키우고 활용하는 방안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다.
  • [씨줄날줄] 국가폭력/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국가폭력/임병선 논설위원

    모든 국가는 선(善)을 표방한다. 적어도 국가의 행위를 선하게 보이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타자의 입장에서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 국가의 이해에 반한다는 이유로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공권력을 과잉 행사하는 것을 국가폭력이라고 한다. 나치 독일이나 북한,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 마오쩌둥의 중국처럼 국체 자체가 폭압에 근거할 수도 있는데, 국가의 일부 행위가 삿된 의도에 기여할 목적으로 기획되기도 한다. 군대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경찰이 시민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정치범이나 부랑자, 장애인, 난민 등을 시설에 감금하고 폭행하는 일이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일은 늘 있어 왔다. 해방 후 제주 4·3, 거창 양민학살 같은 한국전쟁 중 국군의 잔학행위, 진보당 사법살인, 6·3 항쟁, 실미도 사건, 민청학련과 사북 사태, 삼청교육대, 인민혁명당, 광주민주화운동, 부천서 성고문, 박종철 고문 치사 등에서 우리는 국가의 배신을 경험했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며 입양기관과 공모해 고아라고 서류를 조작해 해외로 입양 보내는 후안무치한 일도 있었다. 2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첫 폭로 35년 만에 군사정권 시절 자행됐던 부산 형제복지원의 인권 침해를 국가폭력 범죄라고 규정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위원회는 정부의 공식 사과 및 피해자 구제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1기 위원회의 권고도 묵살했다. 행정안전부는 2기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는 2024년까지만 권고를 이행하면 된다고 접수조차 마다했다. 크게 잘못한 일이다. 국방부는 행안부 눈치를 보고 있다. 정부 배상을 요구한 이 사건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에 어느 부서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물었는데, 이에 대해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는 국가는 정당성을 인정해 달라고 국민에게 요구할 수 없다. 왜 윤석열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잘못을 대신 사과해야 하는지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가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특정 정부의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지휘하는 것이 옳다.
  • [길섶에서] 오이소박이/문소영 논설위원

    [길섶에서] 오이소박이/문소영 논설위원

    장마에 텃밭이 잡초 정글로 변해 봄에 심은 거의 모든 채소에 사망 선고가 내려졌는데, 유독 부추가 푸르렀다. 그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가위로 싹둑 잘라 오기는 했는데,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일주일간 냉장고 야채 신선칸에 묵혀 놓았다. 보통은 냉장고에 넣어 두고 잊어버리는데, 신통하게도 부추는 자꾸 머릿속에서 떠올라 신경이 쓰였다. 존재감을 자랑하는 부추의 쓰임새를 깊이 고민한 끝에 지난주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오이소박이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살림 정보는 이제 친정엄마가 아닌, 포털과 유튜브에 있다. 십자 모양의 칼집을 넣은 오이를 소금에 절이지 말고 팔팔 끓는 소금물에 샤워시키라고 한다. 그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지 별수 없다. 3ℓ의 물에 천일염 한 컵을 넣고 팔팔 끓여서 오이 10개에 부은 뒤 1시간. 생애 첫 오이소박이를 담그고 나니 한밤, 여름휴가도 끝이다. 맛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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