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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정부 공공기관 구조개혁 방향 짚는다…30일 한국조직학회 세미나

    한국조직학회가 오는 3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새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개편과 조직혁신 과제’를 주제로 특별기획세미나를 연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가운데 새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과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 세미나는 임준형 한국조직학회 회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김완희 기획재정부 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장의 축사와 학술논문 발표와 패널토론 순으로 진행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 구조 및 기능 조정원칙과 개편방안’을 주제로 공공성과 경쟁성, 시장성을 기준으로 공공기관의 기능을 유지·축소·폐지할지를 검토한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전환기 공공기관 역할 변화와 조직혁신 전략’을 발표한다. 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장을 맡았던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조직성과와 거버넌스 혁신’를 발표하면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독립성 을 강화할 방안을 제안한다. 이번 세미나 좌장은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으로, 토론에는 곽채기 동국대 부총장,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김근세 성균관대 교수, 박현갑 서울신문 논설위원, 장세정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참여한다.
  • [씨줄날줄] 파운드 쇼크/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파운드 쇼크/임병선 논설위원

    영국 파운드(poundㆍlb)나 이탈리아 리라(lira), 프랑스에서 한때 유통됐던 리브르(livre) 모두 라틴어 리브라(libra)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귀금속 무게를 재는 단위로 쓰이다 화폐 단위로 전용됐다. 1816년 금본위제를 채택한 영국은 산업혁명과 식민지 확장으로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뤘고, 파운드화는 유일한 국제통화이자 무역 결제 수단으로 부상했다. 런던은 국제금융 중심지가 됐다. 1793~1956년 발행된 5파운드 지폐는 ‘화이트 파이버’로 불렸는데 금과 같은 지위를 누렸다. 1918년 발행된 것은 지금의 가치로 316파운드(약 50만원)의 구매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자 파운드는 달러에 밀리기 시작했다. 독일 지방정부는 마르크 지폐에 달러를 병기할 정도였다. 영국은 1973년 1월 1일 유럽공동체(EC)에 가입했으나 국내 사정 등을 이유로 환율 공동정책에 함께하지 않고, 유로존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5파운드에 23달러 83센트를 매길 정도로 파운드는 달러보다 여전히 교환비율이 높았다. 파운드는 갈수록 기를 펴지 못했다. 지난 1월 국제결제수단 가운데 달러의 비중이 39.9%, 유로가 36.6%였던 반면 파운드는 6.4%에 그쳤다. 위안화(3.2%)와 엔화(2.8%)에 앞섰을 뿐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國葬)이 마무리된 지 얼마 안 돼 파운드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 리즈 트러스 내각이 대규모 감세를 발표한 것이 직격탄이었다. 영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지난 주말 미국 뉴욕과 그제 국내 증시를 덮쳤다. 1파운드가 1달러 아래로 교환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전 뉴욕대 교수는 “파운드화가 37년 만의 최저를 기록하는 등 영국 경제가 심각하다”며 영국이 결국 또다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은 1976년에도 앤서니 바버 재무장관이 감세 정책을 펴다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IMF로부터 40억 달러를 긴급 대출받은 일이 있다. 우리 금융당국도 면밀한 시나리오를 갖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 [서울광장] 바이든과 ‘날리면’ 사이/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바이든과 ‘날리면’ 사이/문소영 논설위원

    지난 주말에 ‘듣기평가’ 또는 ‘청력 테스트’에 도전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난 직후 한 발언을 각기 다른 방송사 버전으로 반복해 들었다.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 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지난 22일 이 발언을 가장 먼저 보도한 MBC는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 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냐”라고 자막 처리를 했다. 이른바 ‘핫 마이크’(Hot Mic)다. 해외에서 흔한데 대통령이나 정치인 등이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혼잣말 등으로 누군가를 욕하는 등 속마음을 드러내면 그것이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되곤 한다. 윤 대통령이 그 경우에 노출된 것이다. ○○○은 헷갈리더라도 ‘이××들’과 ‘쪽팔려서’는 언제나 또렷하게 들렸다. 이 발언은 대통령실에서 별다른 대응이 없었기에 더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한덕수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바이든 앞에서 한 말은 아니지 않으냐”며 반박했다. 외신도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모욕했다’는 헤드라인을 내걸고 보도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공개 해명한 것이 15시간 뒤다. 대응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김 홍보수석은 문제의 그 발언을 다시 들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고, ‘국회에서 이××들’은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의 야당 국회의원, 그러니까 더불어민주당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즉 윤 대통령이 한국 민주당 국회의원 ××들이 (글로벌 펀드에 1억 달러 기부하기로 한 것을)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냐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미 의회 의원을 모욕해서는 안 되지만 정치적 파트너인 민주당 국회의원 169명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괜찮다는 것인지 그 해명 그 자체가 참사로 판단됐다. 대통령의 순방 때 일화를 앞세워 국익을 훼손하는 일은 과거 역대 정부에서도 늘 있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으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쉬운 사람’(easy man)으로 불렀는데, 한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며 당시 야당 의원들이 공격했다. 중국 초청을 받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몇 끼를 ‘혼밥’했는데, 시진핑 주석에게 홀대당했다며 난리였다. 현재 국민의힘이 야당일 때였다. 대통령 순방마다 바뀐 여야가 매번 “외교참사”니, “홀대”니 하면서 공격하면 어떤 대통령도 그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런 점에서 국익 앞에서 여야의 신사협정이 필요하다. 신도 실수한다는데, 사람은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실수보다 그 실수를 처리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만약 비속어가 섞인 발언이 보도된 시점에서 윤 대통령이 부적절한 발언이었음을 인정하고 깨끗하게 사과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말실수 정도로 정리될 수 있지 않았을까. 바이든 대통령은 폭스뉴스 기자에게 혼잣말로 욕설을 하다가 핫마이크 됐는데, 빠르게 사과하면서 일단락이 났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꺾였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요즘 적지 않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저서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네덜란드, 영국, 미국, 중국 등의 흥망성쇠를 다양한 지표로 분석했다. 한국은 이 흥망성쇠 6단계 중 어느 단계에 있을까. 단군 이래 최대의 부를 쌓았다는 주장을 20년 넘게 해오던 한국은 주요 10개국(G10) 언저리에서 정점을 통과하고 하락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일본처럼 G2를 밟아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신냉전의 도래로 세계가 재편되는 시점에 한국의 주요 정치경제 리더들은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현실이 될 수 있는 ‘비속어 논란 진상조사’는 한국이 현재 처한 복합위기의 해결 순위에서 아주아주 낮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 [씨줄날줄] 디지털 관광주민증/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디지털 관광주민증/박현갑 논설위원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면서 시골은 고사 위기에 놓였다. 거주하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 지역으로 나가고, 학교는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노인들만 남은 마을에는 적막감만 감돈다. 이런 실정을 극복하고자 사이버 주민 모집에 나선 지방자치단체들이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과 충북 옥천군은 다음달 4일부터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발급한다. 두 곳은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89개 인구 감소 지역에 속한다. 주민증은 관광공사 여행 정보 플랫폼인 ‘대한민국 구석구석’ 모바일 앱에서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다. 발급 뒤 현지를 방문하면 다양한 할인 혜택이 기다린다. 평창군은 선착순으로 5000명의 관광주민증 소지자에게 평창여행자카드 1만원권을 준다. 옥천군은 11월 말까지 주요 숙박시설 요금은 10~30%, 체험은 최대 50%까지 할인해 준다. 정주 인구를 늘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관광이나 체험 등을 통해 지역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관계인구’를 늘려 지역의 활력을 제고하려는 것이다. 관광주민증 사업의 성패는 원조 모델인 ‘공주시 온누리 시민제도’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2008년 충남 공주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이버 시민을 모집했다. 인터넷상 공주시민이 된 뒤 인터넷 홈페이지(온누리 공주)에 게시글 올리기 등의 활동을 하면 관내 문화유적지 입장권 구매나 시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를 적립해 준다. 한때 20만명을 웃돌던 주민수가 13만명 선으로 줄면서 취약해진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제도 도입 당시 시가 목표로 한 사이버 시민은 100만명이나 지난 5월 말 현재 10만 755명이 가입해 있다. 단체장이 바뀌면서 사업이 명맥만 유지해 온 탓이다. 시 담당자는 “올 하반기부터 시장님 공약에 반영돼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자체들이 지역의 역동성 제고를 위해 관계인구에 주목한 건 바람직하다. 시골에 도시민들의 세컨드하우스, 농막 등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런 행태를 부동산 투기 차원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살릴 자원으로 인식하고 지원하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 [길섶에서] 엘리베이터 교체/임병선 논설위원

    [길섶에서] 엘리베이터 교체/임병선 논설위원

    아내는 짬만 나면 온라인 쇼핑에 열을 올린다. 벌써 확보된 생수 물량이 상당하고, 쌀과 식빵ㆍ라면 등도 어지간히 쌓아 뒀다. 마치 전쟁이 임박한 것 같다. 화요일에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니 다음날 휴가를 떠나야 한다고도 했다. 다음달부터 한 달 동안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예정돼 있어 벌어지는 일이다. 준공 떨어진 지 25년 된 아파트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 시작된다. 돌아보니 엘리베이터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하루이틀 멈춘 것 빼고는 사반세기를 큰 탈 없이 주민들 실어 나른 공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관리사무소는 주민들의 불만이 신경 쓰이는 눈치다. 저녁마다 “이해와 협조를 당부한다”고 방송한다. 우리 집은 11층이라 나은 편이다. 마침 회사 사무실도 먼 곳으로 이전하는데, 아침저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건강을 챙기란 배려인가 싶기도 하다. 우리 동(棟)의 맨 꼭대기는 23층이다. 그분들 생각하면 뭐라고 큰소리 낼 일도 아니다.
  • [씨줄날줄] 공공기관의 방만과 비리/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공공기관의 방만과 비리/전경하 논설위원

    공공기관은 정부의 투자나 출자, 또는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기획재정부는 물론 해당 부처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속사정은 복잡하다. 장관 임기는 보통 1~2년이지만 기관장은 3년이다. 기관장은 장관이나 부처의 뜻이 아닌 정권의 역학 관계에 따라 임명되는 사례가 많다. 대통령 임기 5년과 어긋나 정권이 바뀌어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기도 한다. 외부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내부 기강이 종종 무너진다. 기재부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 가스공사 등은 지난해 집을 사거나 빌리려는 임직원에게 3349억원을 연 0~3%대 금리로 빌려줬다. 기재부가 주택자금 사내 대출 이자율을 은행의 가계자금 대출금리보다 높게 하고, 대출한도(7000만원)와 담보인정비율(LTV)을 적용하라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이 매달 내는 건강보험료를 관리하는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3일 46억원의 횡령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채권관리실 직원이 올 4~7월과 9월, 요양기관이 공단에 청구한 의료보험비 중 지급 보류된 돈을 빼돌렸다. 거짓 청구가 의심돼 지급 보류된 돈들이 관리가 잘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해 윗선 결재를 생략하고 개인 계좌로 송금했단다. 전형적인 관리 실패다. 지난 7월 SRT 열차가 대전에서 탈선하기 전 선행 열차 기장이 해당 선로를 지나가면서 충격을 감지하고 이를 역에 통보했다는 사실이 어제 알려졌다. 탈선한 열차는 이를 몰랐다. 해당 선로의 보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땜질 보수에 그쳤다. 구조적 취약성을 개선하는 작업은 탈선 이후 시작됐다. 지난해 말 기준 349개 공공기관의 임직원은 44만명이다. 기관장 평균 연봉 1억 8000만원, 직원 평균 보수 7000만원이다. 복지후생비도 매년 늘어나 총 8594억원이다. 영업에 내몰리지 않고, 정년이 어느 정도 보장되니 공공기관에 인재가 몰린다. 인재들이 모였는데 방만경영, 사내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일을 잘하기보다는 대충 하려는 무사안일주의가 조직에 퍼져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기재부는 물론 해당 부처에 기관장과 임원에 대한 견제권을 주고, 대통령·산하기관장 임기 일치법을 만들어야 한다. 여야 모두 해결책은 알 텐데 안 하는 걸까 못 하는 걸까.
  • [길섶에서] 이러한 가을/진경호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이러한 가을/진경호 수석논설위원

    집 둘레로 아무렇게나 핀 맨드라미에게 칼을 댈 뻔했다. 허락도 없이 멋대로 둘러 핀 까닭이다. 이름은 또 왜 맨드라미야. 우리말 놔두고. ‘벼슬꽃’ 이러면 좀 예쁘지 않나. 맨드라미는 대체 어느 나라 말? 혹시 싶어 자료를 찾았다. 아뿔싸! 순우리말이란다. 닭볏을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 ‘면두’에서 왔다는 게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말이다. 나잇값 못 하는 과문함이 부끄러워 밑둥을 잘라 내려던 커터칼을 내려놨다. 다시 보니 아련하다. 왜 하필, 아침저녁 찬바람에 무서리가 스멀대는 지금, 어디서 뭘 하다 이제 와 세상 구경하겠다 머릴 내민 건지…. 서정주는 한 송이 국화꽃에 새봄 소쩍새의 울음과 한여름 먹구름 속 천둥이 담겼다 했는데, 붉은 볏 저 맨드라미들은 어떤 풍상을 품었기에 이제야 여기 있는가. 가을은 이러하다. 봄꽃과 여름꽃이 흐드러진 향연을 펼치고 떠나면 비로소 부끄러운 가을꽃들이 하나둘 사연을 낸다. 세상은 가을을 닮았다. 대개의 사람도 그러하다.
  • 보급로 ‘중추’ 청주성 탈환 왜군에 치명타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보급로 ‘중추’ 청주성 탈환 왜군에 치명타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격렬한 상소로 조정 괴롭히던 선비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모집 격문동지·문생 1700명 곳곳서 모여들어 승장 영규와 청주성 수복에 큰 공금산성으로 진격하다 왜적에 포위“구차하게 살 수 없다” 항전 끝 순절조헌은 과격한 상소를 일삼는 조정의 골칫거리 선비였다. 하지만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해 청주성을 탈환하는 큰 승리를 주도했다. 청주성은 부산에서 한양, 의주를 잇는 가장 중요한 보급로에 자리잡았으니 왜군이 입은 타격은 매우 컸다. 당시 호남의 초입인 금산성으로 진격하다 왜적에 포위된 상황에서는 ‘죽을지언정 국난이 닥쳤는데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며 북채를 잡고 끝까지 군사를 독려하다 순절했다. 그의 금산성 탈환작전을 두고 무모함의 극치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조헌을 비롯한 ‘무모한 죽음’이 이어지면서 왜군은 곡창 호남을 포기했고, 나라를 지켜 낼 수 있었다.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따른 서인이었다. 그는 격렬한 표현을 담은 상소로 조정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율곡조차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큰 뜻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재능은 미치지 못하며 고집이 극심하여 시세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아호는 ‘율곡 정신을 잇는다’는 후율(後栗)이다. 충청도 옥천에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지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공부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삼기도 했다. 그 흔적인 후율당(後栗堂)은 지금도 남아 있다. 조헌은 선조 22년(1589)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무장 야나가와 시게노부와 승려 겐소를 조선에 보내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자 ‘청절왜사소’(請絶倭使疎)로 일본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조정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사신들의 목을 베라는 ‘청참왜사소’(請斬倭使疏)가 뒤따랐다. 군제를 개혁하고 일본과의 외교를 끊으라는 상소도 거듭했다. 한양으로 올라와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거든 이 도끼로 목을 치라는 뜻의 지부상소(持斧上疏)가 이어지자 선조는 결국 조헌을 함경도 길주에 유배한다. 정치적 주도권을 동인이 잡고 있던 시절이다. 유배는 7개월 만에 풀렸지만 귀양지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대신들을 꾸짖는 소를 올렸다. 선조는 “조신들을 다 탄핵하고 몇 사람만 찬양하면서 직언(直言)이라 하니 웃을 일”이라면서 “아직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조정을 경멸하여 더욱 거리낌 없이 날뛰니, 다시 마천령을 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곧바로 함경도 변방 유배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였다. 중봉은 청주성을 탈환하고 올린 상소에서도 ‘류성룡이 화친을 주장해 도적을 불러들인 것은 진회보다 심하고, 이산해가 현인(賢人)을 죽이고 나라를 그르친 죄는 이임보와 다름없으며, 김공량이 원한을 쌓고 환심을 산 것은 양국충과 다름없다’면서 ‘바라건대 세 사람의 머리를 베어 의순문 밖에 매어 달고, 김수와 이광의 머리도 한강 남쪽 언덕에 매어 다소서’라고 했다. 동인정권 대신들과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임란 발발 당시 이산해는 영의정, 유성룡은 좌의정이었다. 진회는 중국 남송시대 고종의 재상으로 주전파(主戰派)를 탄압해 금나라와 굴욕적 화친을 맺게 했다는 인물이다. 이임보는 당 현종시대 재상으로 아첨을 일삼으며 유능한 관리를 배척했고, 같은 시대 양국충은 인사를 문란케 하고 백성으로부터 재물을 수탈해 ‘안사의 난’을 불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경상우감사 김수는 동래성이 함락되자 도망다녔다는 비판을 받았고, 전라감사 이광은 삼도근왕군의 용인참패 책임자다. 의순문은 선조가 머물던 의주의 중국사신 객관 의순관(義順館)의 정문이다.조헌의 고향은 경기 김포다. 김포시 감정동 옛집 터에는 우저서원(牛渚書院)이 있다. 서원의 가장 높은 곳 중봉을 기리는 사당 문열사(文烈祠)의 한쪽 마당에는 ‘조헌 선생 유허 추모비’도 세워졌다. 그럼에도 옥천이 조헌을 상징하는 고장이 된 것은 보은현감을 지내다 물러난 그가 이웃한 이곳으로 낙향했기 때문이다. 조헌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중봉은 ‘하늘과 땅의 큰 덕은 생명이니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게 할 것을 생각하라. 귀신과 사람이 미워하는 것은 적(賊)이니 원수를 같이 쳐서 그 고을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자’로 시작하는 격문을 써서 삼도(三道)에 보냈다.금산 칠백의총에는 1603년 세운 ‘중봉 조선생 일군 순의비’(重峰 趙先生 一軍 殉義碑)가 있다. 일제가 ‘반시국적 고적’으로 지목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한 것을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복원했다. 해평부원군 윤근수가 지은 비문은 ‘이때 공이 옥천 시골집에 있다가 분연히 일어나 피를 뿜으며 격문을 돌려서 의병을 모집했다’고 했는데 ‘순찰사와 수령들이 모두 방해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럼에도 동지와 문생이 앞다투어 모여들어 7월 4일 공주에 깃발을 세웠으니 1700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조헌은 1571년 홍주향교 교수로 재직했다. 1586년에는 공주향교의 제독관으로 부임했다. 제독관(提督官)은 각 도의 행정 중심지에서 지방유생들의 교육에 관한 일을 맡은 벼슬이다. 공주향교 제독관의 지방유생에 대한 영향력은 주변 고을에 두루 미쳤다. 조정에서는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은 중봉이지만 지역의 사족 사이에서는 따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중봉이 공주에서 봉기한 것도 충청도관찰사가 청주에서 벗어나 이곳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지세력의 중심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청주공성군은 방어사 이옥의 관군, 조헌의 의병, 영규의 의승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순의비는 ‘공이 청주로 진군해 승장 영규와 8월 1일 성 서문 밖을 두드렸다. 공이 친히 화살과 돌팔매를 무릅쓰고 종일토록 독전하니 적이 크게 패하여 마침내 저들의 송장을 태우고 밤에 달아났다’고 적었다. 중봉의 당시 전투 흔적은 청주성의 옛터인 중앙공원에 있는 ‘조헌전장기적비’(趙憲戰場記蹟碑)로 남아 있다. 왜군은 청주성에 빼앗은 군량미를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났다. ‘재조번방지’에는 조헌이 이옥에게 쌀 수만 석을 곤궁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소와 말 수백 마리는 마을에 나눠 주어 농사를 짓게 하자고 했지만, 이옥은 “이미 순찰사와 의논해 결정했다. 남겨두었다가 적이 다시 점거할 때 쓰게 해서는 안 된다”며 곡식을 다 태웠다고 했다.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은 청주성 전투의 총지휘자 역할을 했다. 윤선각은 이후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내 ‘관군이 마음대로 의병에 참가하면 처벌할 것이니 원대복귀하라’고 했다. 결국 중봉 막하의 관군은 흩어지고 700명 의사(義士)만이 남았다. 윤선각은 중봉이 거병하는 단계에서도 청양현감 임순을 옥에 가두어 관군의 의병진 참여를 막기도 했다. 현감이 지휘하는 관군이 의병진에 통째로 가담해 의병장의 지휘를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조정에는 조헌이 요즘식 표현으로 시한폭탄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만큼 이런 인물이 많은 병력을 거느리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이 윤선각의 우려였다. 선조도 중봉을 가리켜 간귀(奸鬼)라고 표현한 적도 있었다. 윤선각은 의병을 이끌고 근왕하겠다는 조헌을 오히려 위태롭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윤선각이 중봉에게 “근왕에 앞서 금산으로 나아가 호서와 호남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선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조헌이 기병(起兵)한 다음 선조가 내린 교서에는 ‘내가 밝지 못해 물정을 살피지 못하고 충성스런 목소리를 알지 못했다. 나에게 진언하는 자들 중에 국가 존망의 위기가 조석간에 달렸다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내가 비록 그 말을 옳게 여기면서도 실로 깨닫지 못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조헌의 상소가 결과적으로 충언(忠言)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일종의 반성문 성격도 담겨 있는 듯하다. 교서는 청주성 탈환 이전에 작성됐다. 하지만 조헌은 교서를 보지 못하고 금산 전투에 나섰다. 금산 전투의 과정을 되풀이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칠백의총은 의병과 의승이 순절한 자리에 조성됐다. 조헌의 제자들은 전투 나흘 뒤 의병의 유해를 한 봉분 아래 모셨다. 1603년(선조 36)과 1647년(인조 25) 각각 순의비와 사당을 세웠고, 현종은 1663년 사당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이름을 내렸다. 조헌은 칠백의총에 묻히지 않았다. 동생 조범이 형의 시신을 거두어 오늘날의 옥천 안남면에 장사 지냈고, 인조 14년(1636) 무덤을 멀지 않은 안남면으로 옮겼다. 대청호를 품은 청정고을이다.
  • [길섶에서] 유튜브 유감/김성수 논설위원

    [길섶에서] 유튜브 유감/김성수 논설위원

    30분 가까이 전화를 했다. 좀처럼 받지 않는다. 수차례 다시 시도했다. 간신히 통화에는 성공했다. 목소리를 들어 보니 사장님이다.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이제 예약은 안 받아요.” 이게 무슨 소리? 불과 몇 달 전에도 예약을 해서 갔었는데…. 자주 가는 명동의 중국집 얘기다. 노포(老鋪)라 손님 대부분은 중장년층이다. 그런데 이 집이 얼마 전 유명 가수의 유튜브에 소개됐다. 이후 손님이 미어터진다. 원래도 손님이 적지는 않았다. 이젠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며칠 전 저녁 6시도 안 돼서 갔다.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공교롭게 젊은 손님들이 많이 보인다. 유튜브를 보고 찾아온 듯하다. 줄서기가 싫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옆에 있는 다른 중국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원래 가려던 집에 비해 훨씬 넓고 깨끗하다. 음식맛도 기대 이상으로 좋다.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 유튜브 탓에 단골집이 아예 바뀔 것 같다.
  • [씨줄날줄] 베일과 소음/문소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베일과 소음/문소영 논설위원

    베일(veil)은 여성이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리거나 장식하는 얇은 천이다. 가톨릭 신자들의 미사포, 결혼식 때 쓰는 새하얀 면사포가 있고, 장례식장에서 과도한 슬픔을 감추기 위해 쓰는 검은색 베일이 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부인 재클린이 지방시가 만든 반소매의 상복에 검은 베일을 쓴 채 서 있는 모습은 20세기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96세의 일기로 서거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참배하고자 전 세계 정상들이 지난 19일부터 모여들었다. 장례식은 200여개국에 생중계됐고, 영국과 미국에서만 4000만명 가까이 시청했다고 한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 입헌군주로서 70년간 재위한 여왕을 추모하는 모습은 공화국 시민들에게 다소 이질적이었으나 색다른 경험을 안겨 주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조문외교’를 하고자 영국 런던으로 갔다. 그런데 현지의 교통 통제로 예정했던 첫날 참배를 취소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김 여사가 쓴 베일 달린 모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런던에 패션쇼를 하러 갔느냐는 말들이 이어졌다. 영국 왕족 여성만 검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써야 했으니 조문 예절에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영국 귀족의 예의범절에 대해 써 놓은 ‘더브렛’(Debrett‘’s)에 따르면 왕실 여성은 국장에서 검은 무릎 길이의 드레스나 코트, 검은 모자를 쓰고 베일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왕실 유족의 ‘애도 베일’(mourning veil)은 최근에 보편화됐다. 이번 국장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이나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부인,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부인 역시 베일 달린 모자를 쓴 것이 사진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은 그제 “(베일 착용이) 영국 왕실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왕실과 사전에 조정된 참배 문제를 공격하더니, 가짜정보를 근거로 김 여사의 베일을 비판하는 것은 금도를 한참 넘었다. 지엽말단의 문제를 뻥튀기해서 한국의 공론장에 불필요한 소음을 형성한 죄는 크다.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형성되는 여론을 거짓정보로 호도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양치기 소년 효과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이다.
  • [씨줄날줄] 한강의 기적/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강의 기적/박홍환 논설위원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지대에서 일제히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장기 소모전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국은 단연 우크라이나다. 지금까지 어린이 1000명을 포함해 민간인 희생자만 6000명에 이르고 있다. 4300만명의 인구 가운데 15%가 넘는 사람이 전쟁 난민으로 해외를 떠돌고 있다. 폐허로 변한 우크라이나 국토 곳곳은 마치 6·25전쟁 당시 한반도 남쪽을 보는 듯 처참하다. 국제통화기금이 예상하는 우크라이나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무려 마이너스 35%. 지금 전쟁이 끝나더라도 인명 손실과 산업기반시설 대량 파괴, 국민 탈출 등으로 향후 몇 년간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이어 나가기 어렵다. 완전한 복구까지는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고민이 깊은 이유다. 허나 우크라이나는 절망보다는 희망, 부정적 역사보다는 긍정적 역사의 흔적을 찾고 있는 듯하다. 나치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 9일 옛 서독은 전 국토가 황폐화한 상황이었다. 1948년부터 비로소 경제활동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는데, 마셜플랜을 통해 지원받은 14억 4800만 달러의 종잣돈과 6·25전쟁 당시 연합군에 대한 보급품 지원 프로그램 참여, 광공업벨트의 재가동 등으로 1950년대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뤄 냈다.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은 모든 개발도상국들의 롤모델로 꼽힌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1960년대 경공업,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했고, 정부와 국민이 힘써 노력한 결과 1953년 65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77년 1000달러, 2000년 1만 달러를 돌파할 정도로 급속 성장했다. 저임금 노동 등 부작용도 컸지만 한국 경제는 전쟁 후 30년 동안 규모가 수백배 커졌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토와 경제가 초토화된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딛고 일어선 우리나라의 ‘한강의 기적’을 교과서에 싣는다고 한다. 한국의 발전상을 고교 지리와 역사 교육 과정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속히 전쟁이 끝나 우크라이나 또한 ‘드네프르의 기적’을 이뤄 내기를 소망해 본다.
  • [길섶에서] 은행 단상/오일만 논설위원

    [길섶에서] 은행 단상/오일만 논설위원

    가을 초입에 들어섰다. 간혹 길가에 떨어진 은행 열매를 밟는다. 뿜어 나오는 냄새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시민들의 악취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은행나무는 자동차의 배기가스에도 잘 견디고, 대기를 정화하는 기능도 탁월하다. 병해충에도 강해 인도와 차도 주변 가로수의 제왕으로 불렸지만, 최근 들어 곳곳에서 퇴출 위기에 몰려 있다. 은행의 악취는 ‘비오볼’이란 열매 껍질의 점액 물질에서 나온다고 한다. 곤충들로부터 열매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 무기’다. 은행나무가 1억 9000만년 가까이 버틴 비결이다. 중생대 쥐라기부터 존재했으니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부를 만하다. 일시적인 악취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전설 같은 은행나무를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시민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노오란 은행잎의 추억마저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인류가 자행한 인위적 훼손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요즘 자연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가을이다.
  • [씨줄날줄] 백만송이 장미/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백만송이 장미/임병선 논설위원

    싱어송라이터 심수봉이 1997년 번안한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을 러시아 것으로 혼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라트비아 가요 ‘마리냐가 소녀에게 삶을 선사했지’가 원곡이다. 1981년 라트비아 방송이 개최한 가요 콘테스트에 출전한 아이야 쿠쿨레와 리가 크레이츠베르가 불러 우승했다. 라이몬츠 파울스가 작곡했고 레온스 브리에디스가 가사를 붙였는데, 강대국에 조국의 운명이 휘둘리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마리냐’는 라트비아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름이다. 라트비아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1988년 8월 23일부터 대규모 노래 시위를 펼쳐 1991년 옛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약소국에게 노래가 위안을 넘어 의식의 고양과 저항, 독립 의지를 고취하는 수단이 된 것은 우리네 ‘울밑에 선 봉선화’, ‘아리랑’과 같다. 그런데 이 노래를 한국과 일본에서 번안곡이 나오게 만들 정도로 알린 이가 옛소련과 러시아 모두 국민가수로 대우하는 알라 푸가체바(73)다. 조지아 출신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1862~1918)가 프랑스 배우와 사랑에 빠져 장미를 선물했다는 내용인데, 1982년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러시아어 가사를 붙였다.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배우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 몇 장 남아 있고, 1969년 파리에서 개최된 전시회에 그림 속 배우라고 주장하는 할머니가 나타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저술가 야마노우치 시게미는 2002년 책을 통해 피로스마니가 배우와 연인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가 장미를 좋아했다거나 많은 장미를 선물했다는 일화는 없는 것으로 봤다. 캅카스산맥에 자리한 조지아는 2003년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을 퇴진시킨 무혈 봉기가 ‘장미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장미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러시아 대중에게 영향력을 지닌 푸가체바가 최근 “크렘린의 허황된 목표가 러시아를 버림받은 나라로 만들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고 전쟁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2012년 푸틴 대통령이 제정한 ‘외국 대리인’ 법률에 의거해 수감된 남편처럼 자신을 체포하라고 불호령을 날렸다. 남편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 장미에 담겼다면 장미 가시가 러시아인들의 각성을 불러올지 궁금하다.
  • [길섶에서] 현찰/전경하 논설위원

    [길섶에서] 현찰/전경하 논설위원

    명절이나 집안 행사로 가족들이 모인 뒤 아들들은 나에게 현찰을 준다. 자신들이 받은 돈을 내가 가지라는 게 아니고 그만큼 계좌로 보내 달란다. 최근 들어 아들들은 현찰로 무엇을 사 본 적이 없단다. 나도 세뱃돈은 현찰로 주지만 용돈은 은행 계좌로 보내 준다. 세월이 지나 손주 세대에게 세뱃돈을 주게 된다면 어떤 형태로 주게 될까 궁금하다. 어르신들에게 돈을 드릴 때는 현찰로 드린다. 받는 맛이 있으니까. 50대 지인은 평소 돈을 얼마 쓰는지 감이 안 온다며 가급적 현찰을 썼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에서 몇천원 정도 할인받기도 한다. 지금도 재래시장이나 지하상가에서는 불법이지만 현찰을 내면 깎아 준다. 숫자만으론 돈을 대하는 감각이 무뎌진다. 같은 금액을 현찰로 낼 때와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 느낌이 다르다. 신용카드를 쉽게 쓰는 이유일 듯하다. 현찰 볼 일은 거의 없고 숫자로만 돈을 인식하는 젊은 세대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키울까. 지금 금융교육이 맞나 싶다.
  • 본사인사

    <상무> △경영본부장 이호정△콘텐츠본부장 이종락 <상무보> △마케팅본부장 김성수△제작관리단장 임철재 <이사> △논설위원실장 진경호△콘텐츠본부 세종취재본부장 오일만△마케팅본부 부본부장(광고독자) 한준규△마케팅본부 부본부장(사업) 문소영△ESG위원장 겸 대기자 최광숙△제작관리단 부단장(제작) 김중열△제작관리단 부단장(시설) 이장훈 <국장> △전략기획실장 김상연△신문국장 김은정△뉴미디어국장 김태균 <10월 1일자>
  • [서울광장] 3연임 시진핑, 마오쩌둥 시대로 회귀하나/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3연임 시진핑, 마오쩌둥 시대로 회귀하나/오일만 논설위원

    이변은 없어 보인다. 다음달 16일 중국의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확정되는 시진핑(69)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은 이미 4년 전에 종결된 사안이다. 2018년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 3기 연임(매 임기 5년) 금지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시 주석의 장기집권 길을 열어 놓았다. 국제사회의 시선은 집권 연장이 아니라 20차 당대회 이후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물론 장기적인 전략·전술적 변화 여부에 쏠려 있다. 마오쩌둥은 1인 독재의 길을 닦았고, 덩샤오핑은 이를 막기 위한 집단지도체제 시스템을 고안했다. 시 주석의 집권 연장으로 덩샤오핑 집권 시 작동했던 정치 시스템이 소멸되면서 자연스레 마오쩌둥 시대의 색채를 가미한 새로운 지도체제와 의사결정, 권력 운용 방식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시 주석의 3연임은 중국 정치 권력구도와 운영체제의 일대 전환점이다. 홍콩 언론들은 집단지도체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1인 독주의 ‘집중통일 영도체제’가 공식화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마오쩌둥 시대의 ‘무소불위 1인 통치’에 버금갈 정도로 시 주석의 권력이 강화되는 구도가 예상된다. 권력 내부의 변동도 관전 포인트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2인자’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권력 3위인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옮길 가능성과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의 차세대 주자인 후춘화 부총리가 총리 자리를 물려받을지, 천민얼 충칭 당서기와 리창 상하이 당서기, 딩쉐샹 중앙 판공청 주임 등 시 주석의 측근들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얼마나 진출할지 등이 최대 관심사다. 1인 독재의 길을 걸었던 마오쩌둥 시대에도 파벌을 안배해 온 전통이 유지될지 지켜봐야 한다. ‘대국굴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해 온 시 주석의 집권 3기는 필연적으로 미중 신냉전의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이 과정에서 시 주석은 ‘대만 통일’의 기치를 내걸고 장기집권의 명분을 삼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자신의 장기집권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대만 통일’을 통해 중국 내 민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최대한의 정치적 결집을 이끌어 내려는 계산이다. 중국 통일을 최대 과업으로 삼을 경우 강력한 중화민족주의를 토대로 마오쩌둥 시대의 배타적 대미 투쟁 노선이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이 체제·이념 대립기를 거쳐 10년 내 최고조의 대결 구도로 확산되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 예상 시점으로 2027년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나 2049년 신중국 건국 100주년 등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시 주석의 국내 통치는 대미 항전을 내걸면서 체제·이념을 강화할 것이다. 모두가 함께 잘살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와 무역ㆍ내수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쌍순환’(雙循環) 전략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전 세계 신흥 억만장자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나왔지만, 인구 14억명 가운데 6억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될 정도다. 빈부격차로 따지면 세계 선두그룹이다. 시 주석은 이를 방치하면 공산당 일당체제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 인식이 강하다. 중국 사회에 만연한 각종 불평등을 줄이면서 인민들의 지지 기반을 넓히는 것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급선무다. 쌍순환 전략은 사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구상에 맞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들자는 배수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경제 재편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경제·과학 기술의 ‘홀로서기’ 전략인 것이다. 시진핑 3기 집권기는 미중 간 치킨게임 양상의 대결 구도가 보다 격렬해지는 시기일 것이다. 그 엄혹한 여파가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에 덮치게 되는 위기의 시간이지만, 이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이다.
  • [씨줄날줄] 배추의 사계절/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배추의 사계절/전경하 논설위원

    2010년 9월 배추 한 포기가 1만 5000원까지 올랐다. 당시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장엔 배추를 들고나온 국회의원이 있었다. 물가안정책임제를 한다며 농림축산식품부에는 ‘배추국장’도 생겼다. 그해 이례적인 폭염에 8월 중순 시작된 장마가 9월까지 이어졌고 태풍 곤파스까지 겹쳐 고랭지배추 수확량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고랭지배추는 ‘여름배추’라고도 부른다. 강원 강릉, 태백, 정선 등의 높은 산간지대에서 자란다. 이 지역 중 해발 1100m의 안반데기마을이 있다. ‘안반데기’는 떡을 치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널찍한 지형을 뜻한다. 기계화가 덜 돼 있고 노지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강우 등 기상 여건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전체 배추 생산량의 10% 정도를 차지하지만 배추 파동의 주역이다. 배추는 지역을 바꿔 가며 1년 내내 자란다. 봄배추는 전남 나주, 충남 예산·아산 등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 4~7월 공급된다. 여름배추가 10월까지, 전국에서 자란 김장배추(가을배추)가 10~12월 공급된다. 김치냉장고 보급으로 김장 수요는 예년보다 줄었지만 이 수요가 김치공장으로 넘어갔다. 겨울배추는 전남 해남 등에서 자라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공급된다. 키우는 데 시간이 걸려 수요가 늘었다고 갑자기 공급량을 늘릴 수 없다. 올 9월에도 배추가 포기당 1만원 이상이다. 이번 배추 파동 이유도 12년 전과 같다. 이상기후에 따른 폭염, 집중호우, 태풍 등이 겹쳤고 김장철을 앞두고 있어 배추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배추값을 올렸다. 정부가 어제 정부의 계약재배 물량을 완전 생육 전 조기 출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사들이기로 한 준고랭지배추를 예정보다 일찍 수확해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비축해 둔 3000t도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했다. 김장배추가 나오는 다음달이면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도 했다. 배추가 물가 불안을 계속 자극한다면 다른 방안도 찾아야 한다. 모니터링 강화로 인한 조기경보 체계와 이에 따른 비축물량 조절, 산지에서 소비자까지 단계별 공급 과잉과 공급 부족 대책 등이 마련돼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10년 전과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할 순 없지 않은가.
  • [길섶에서] 쇼팽과의 만남/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쇼팽과의 만남/박현갑 논설위원

    “다 죽었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러시아를 오가며 공연기획을 하는 지인의 푸념 어린 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 공연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탄만 할 순 없는 법. 그가 기획한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을 돕는 자선음악회가 어제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알렉산드르 로마놉스키가 폴란드 출신인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애절한 피아노 선율에 관객들은 숨죽였다. 국경을 맞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한때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지배한 터라 사이가 나빴다. 지금은 공동의 적 러시아를 두고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돕는 동맹관계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절반 이상이 폴란드로 갔을 정도다. 난민을 돕자는 공연이나 티켓 판매는 기대만큼 되지 않은 눈치다. 하지만 열악해진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자강 의지를 불태운 자세는 언젠간 좋은 결실로 이어질 게다.
  • “효과 없는 지역화폐… 카드 수수료 줄여 소상공인 경쟁력 높여야”[차현진의 銀根한 이야기]

    “효과 없는 지역화폐… 카드 수수료 줄여 소상공인 경쟁력 높여야”[차현진의 銀根한 이야기]

    지역화폐의 명운을 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싸움이 시작됐다. 2021년 1조 2522억원(추경 포함)이나 되던 정부의 지역화폐 지원 예산이 올해 6050억원으로 줄었는데, 기획재정부가 내년에는 이를 완전히 끊을 생각이다. 기재부의 방침에 대해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는 10개 광역 지자체와 220여개 기초지자체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연말까지 어떤 결론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중요한 것은 지역화폐가 과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느냐, 그 편익이 비용보다 크냐다. 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와 상황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아주 효과가 클 때도 있었다. 전쟁할 때다. 과거 유럽의 전쟁은 성을 빼앗는 것으로 승부가 결정됐다. 수비하는 측에서는 성문을 걸어잠그고 지구전으로 대응했다. 17세기 지중해에서 벌어진 칸디아 공방전은 무려 21년이나 대치 상태를 이어 갔다. 지구전이 길어지면 불안감 때문에 성 안에서는 화폐가 자취를 감추고 상거래가 위축된다. 지역경제의 피폐다. 그럴 경우 영주(지자체장)가 기존 화폐에 뜨거운 인두를 눌러 직인을 박은 다음 당초보다 2~10배 높은 액면가치를 부여했다. 인쇄업자를 불러 아예 종이돈을 새로 발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립된 성 안에서 발행된, 내재가치가 무시된 돈을 ‘봉쇄화폐’(siege note)라고 하는데, 봉쇄화폐는 얼어붙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미국은 식민지 시절부터 지역화폐를 발행한 경험이 있으므로 전쟁이 아닌 때도 유사화폐를 발행했다. 주로 금융위기 때였다. 중앙은행이 없었던 1914년 이전 미국은 유럽 국가들보다 금융공황을 자주 겪었다. 금융공황이 닥치면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바빠 금융시장에서 돈이 돌지 않는다. 그때는 어음교환소가 은행들끼리 채무를 청산할 때만 쓰는 유사화폐를 발행했다. 극소수 은행들끼리만 사용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지급준비금에 해당한다. 어음교환소가 유사화폐를 발행하는 바람에 1873년, 1884년, 1893년, 1907년 금융공황이 아주 쉽게 지나갔다. 은행들끼리만 쓰는 유사화폐로 금융시장을 살렸다면, 지역 주민들끼리만 쓰는 지역화폐로 지역경제를 살릴 수도 있다. 대공황 당시 실업과 파산이 늘고 소비가 위축되자 주정부와 지자체, 지방은행, 협동조합, 상공회의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했다. 주정부와 지자체는 미래의 지방세 수입을 담보로 지역화폐를 발행했다. 지자체의 지역화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스탬프 스크립’(stamp scrip)이라는 것이다. 우유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지역화폐에도 유통기한을 두어 빨리 회전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역화폐 한쪽 끝에는 도장을 찍는 칸을 두고, 매주 일요일이 되면 거기에 도장을 찍도록 했다. 도장이 찍히면 액면가치가 0.1% 포인트 감소한다. 지역화폐에 연 5.2%의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는 셈이라서 당연히 그것을 빨리 처분하려는 유인이 생겼다. 1931년 독일, 1932년 오스트리아에서 그런 방법을 썼더니 소비가 늘면서 고용과 판매가 회복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예일대의 어빙 피셔 교수까지 나서서 미국에도 그런 것을 확산시켜 지역경제를 살리자고 촉구했다. 1932년 아이오와를 시작으로 37개 도시와 8개 카운티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돌이켜 보면 지역화폐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무력한 게 그 증거다. 무엇보다도 지역화폐는 지급수단으로서 열등재라는 것이 원인이다. 물건을 팔고 지역화폐를 받은 사람은 궁극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재료나 물건을 다시 사 와야 하는데, 발행지역 밖에서는 지역화폐가 액면가보다 할인됐다. 우리나라의 지역화폐는 특이하다. 스탬프 스크립과 달리 보유자가 아닌 발행자가 할인비용을 부담한다. 그런 점에서 어음이나 상품권과 똑같다. 근거 법률도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다. 참고로 그 상품권의 발행자는 지자체인데, 할인비용의 최대 8% 포인트는 중앙정부의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고, 지자체 예산으로 추가 할인을 해 준다.지역화폐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지급수단이라는 기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할인혜택에서 나온다. 길거리의 돌멩이라도 90원에 사서 100원에 팔 수 있다면, 지역 주민들이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불로소득이 생기면 당연히 소비도 늘어난다. 이는 엘살바도르 정부가 전 국민에게 30달러에 상당하는 비트코인을 공짜로 나눠 줬을 때 온 국민이 잠시 즐거웠던 것과 똑같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국민 중에서 현재 비트코인을 갖고 있는 사람은 5%도 되지 않는다.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귀한 혈세로 한바탕 환각파티를 벌이고 만 셈이다. 그러니 보조금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지역화폐의 존폐 여부에 대해서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역화폐가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사람은 지역 소상공인들이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자본력과 마케팅 기술을 가진 대형마트나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한다. 그나마 대형마트는 덜 위협적이다. 지자체가 대형마트의 진입과 영업시간 등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중무휴, 24시간 문을 열어 놓는 플랫폼 기업들은 대단히 위협적이다. 플랫폼에서는 신용카드가 절대적인 지급수단이다. 따라서 지역화폐의 경쟁재는 신용카드다. 그렇다면 신용카드로 전자상거래를 하는 것보다 현찰을 들고 지역상권을 찾아가는 것이 더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역경제를 살리는 궁극적인 해법이다. 즉 지급수단의 경쟁에서 신용카드가 더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2017년에는 개천절과 한글날 그리고 대체휴일이 맞물리면서 추석 연휴가 열흘이나 계속됐다. 그 기간에 신용카드로 물건을 팔았던 소상공인들은 카드수수료에 단말기 이용료까지 다 물고도 열흘 이상 기다렸다가 판매대금을 받았다. 그런데도 현찰로 물건을 팔 때와 같은 값을 받아야 했다. 우리 정부는 그런 난센스를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여신전문금융법(제19조)은 일상 상거래에서 신용카드 사용자를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를 ‘가격할증 금지원칙’이라고 하는데,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외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과도한 벌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계약자유의 원칙을 무시하고 현찰이나 신용카드나 무조건 같은 가격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세원 포착을 위해 정부가 현찰 대신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한 데서 나온 결과다. 덕분에 신용카드사들은 현찰과의 경쟁에서 땅 짚고 헤엄치며 영업을 확장해 왔다. 그리고 소상공인 등에게 거둔 신용카드 할인수수료를 소비자(회원)들과 나눈다. 바로 마일리지 적립 서비스다. 결론적으로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은 물신숭배(fatishism)다. 지역화폐 발행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다. 플랫폼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지역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을 높여 주는 것이다. 적어도 신용카드 수수료에서만큼은 지역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 지역화폐 보조금을 중단키로 한 지금이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짚어 볼 적기로 보인다. 가격할증 금지원칙을 통해 신용카드업을 육성한 것은 24년으로 충분하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진 이제는 지역상권 보호에 좀더 관심을 가질 때다. 객원 논설위원·한국은행 자문역
  • [인사]

    ■서울신문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조달청 △구매사업국장 권혁재△혁신조달기획관 임병철 ■문화재청 ◇고위공무원 임용 △문화재보존국장 황권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장급 △기획조정관 정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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