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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변화를 잊은 노벨상/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변화를 잊은 노벨상/박록삼 논설위원

    2016년 노벨문학상은 대중가수 밥 딜런(81)에게 돌아갔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in the wind) 등 ‘가요의 전통 안에서 참신하고 시적인 표현들을 창조해 낸 공로’를 선정 이유로 꼽았다.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에 전 세계 문단이 술렁거렸다. 문학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노벨문학상의 파격이 어디까지 갈지 기대와 궁금증을 한껏 끌어올렸음은 물론이었다. 이후 그가 혹시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는, 파격에 또 다른 파격으로 대꾸할 듯한 묘한 기대감도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밥 딜런은 그해 12월 열린 시상식에 “선약이 있어 못 간다”며 불참했다. 대신 수상 소감 편지를 스웨덴 주재 미국대사에게 대독시키는 것으로 안팎의 기대와 우려를 절반쯤에서 봉합했다. 노벨문학상 시상은 1901년 시작했다. 120년이 넘는 동안 유럽과 남성 중심으로 치우쳤다는 오래된 비판을 쉬 벗어나지 못했다. 구색 갖추듯 아프리카ㆍ아시아 대륙의 작가들을 한 번씩 끼워 넣거나 선심 쓰듯 여성 작가에게 상을 준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8년에는 ‘한림원 미투 파문’으로 그해 노벨문학상 시상이 취소되는 일까지 있었다. 따지고 보면 노벨문학상 차별과 편견의 역사는 첫 수상자로 가장 유력했던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를 외면하면서부터였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관계가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또한 1958년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1964년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각기 다른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알프레드 노벨(1833 ~1896)의 기일인 12월 10일에 맞춰 시상식이 열린다.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올해 시상식은 코로나19 탓에 온라인 행사로 대체됐던 2020년, 2021년 수상자들도 함께 참석해 더욱 성대하게 치러졌다. 하지만 역대 119명 중 17명째 여성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82)는 기쁨과 감격보다 “노벨상은 남성을 위한 제도”라며 해묵은 편견과 차별을 지적했다. 그는 “인종차별 등 모든 불평등에 고통받는 모두, 인정받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모두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제 노벨문학상에 더 파격적이고, 더 혁신적인 변화를 허락할 때가 됐다.
  • [길섶에서] 말할 수 없는 맛/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말할 수 없는 맛/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좋아하는 유튜브 요리 사이트가 있다. 서른 살쯤의 딸이 이것저것 물으면 엄마가 대답하면서 뚝딱뚝딱 집 반찬을 만든다. 모녀의 부엌에는 계량 숟가락이 없다. 눈금을 재는 일이 없다. 소금 한 움큼 쥐고서 엄마는 “요만큼”, 설탕을 집어서는 “한두 꼬집만”, 고추장 단지를 열고서는 “서너 숟가락 좀 넘게”. 요만큼이 얼마만큼이냐고, 딸은 툴툴댄다. 그래도 엄마는 웃으면서 “그냥 요만큼”. 멀리서 김장 김치가 왔다. 택배상자에 서툴게 적힌 우리 집 주소와 내 이름. 이맘때마다 수줍어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의 손글씨. 어머니의 김장독에도 눈금이 없다. 계피향 설핏한 어머니의 손맛은 올겨울도 내게 미궁인 채 지나간다. 쪼갠 통배추를 허리춤까지 쌓아 손대중으로 좌락좌락 지르던 왕소금. 샛노란 배추속은 장독대 짠물에 숨죽여 잤고, 배추속보다 노란 그 달밤에 어린 우리들도 단잠을 잤고. 숨이 덜 죽은 김장 한 포기. 샛노란 그리움이 저녁 밥상 위에 올라와 있다.
  • [서울광장]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이순녀 논설위원

    ‘명언 제조기’로 유명한 손흥민 선수는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도 인상적인 어록을 여럿 남겼다. 안와골절 부상으로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뛰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개막 전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국민들이 썼던 마스크에 비하면 내 마스크는 아무것도 아니다.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앞만 보고 달리겠다”고 담담히 밝혀 축구 팬들을 울컥하게 했다. 포르투갈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16강 진출이 확정됐을 땐 “주장인 제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선수들이 커버해 줘서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어 “무엇보다 벤투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를 벤치에서 같이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울먹였다. 직전 가나전에서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 조치를 당해 관중석에서 포르투갈전을 지켜봐야 했던 파울루 벤투 감독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느껴지는 말이다. 주장으로서의 품격을 보여 준 감동적인 인터뷰라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그제 오후 귀국 기자회견에서도 손흥민의 명언은 계속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화제가 된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질문에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준 정말 멋있는 말”이라며 “국민들도 인생에서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늘 잘하는지는 모르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팬들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는 손흥민이기에 ‘포기하지 말고 전진하라’는 격려와 위로, 희망의 메시지가 더 울림 있게 다가왔다.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꺾이지 않는 마음’ 문구가 널리 알려진 건 지난 3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다. 통쾌한 승리 직후 선수들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적힌 태극기를 관중석에서 건네받아 펼쳐 든 모습이 중계되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원래는 지난달 게임 프로팀 ‘DRX’의 리그오브레전드 우승 인터뷰에서 파생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던 문구였다. 약체팀 ‘DRX’가 강팀을 연달아 누르고 세계대회에서 승리한 드라마 같은 서사와 축구대표팀의 기적 같은 16강 진출이 겹쳐지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상징하는 구호로 떠올랐다. 십수년 전 ‘좌절금지’라는 픽토그램이 젊은층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영어 알파벳 대문자를 연결해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사람을 형상화한 그림(OTL) 위에 대각선을 그어 좌절하지 말라는 뜻을 표현했다. 좌절(挫折)은 마음이나 기운이 꺾이는 것이니, 좌절금지와 꺾이지 않는 마음은 같은 의미의 유행어인 셈이다. ‘불굴의 의지’ 같은 고리타분한 한자어에 비해 시(詩)적인 표현이 대중의 감성을 자극한 요인으로 꼽힌다. 시대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마법 같은 문구들이 있었다. 너나없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IMF 외환위기 때는 ‘부자 되세요’가 방방곡곡 울려 퍼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꿈은 이루어진다’로 요약된다. 꿈만 같던 4강 진출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불가능한 꿈은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공교롭게도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카타르월드컵 개막식에서 부른 노래도 ‘드리머스’,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누군지 봐 / 우린 꿈꾸는 사람들이야 / 우린 이뤄 낼 거야 / 우린 믿으니까.’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이제 2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상황, 북한의 노골적인 핵위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나라 안팎의 내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도, 개인 일상에서도 험난한 시련과 도전의 시간이 닥칠 수 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신념과 의지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 축구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 [씨줄날줄] 문자메시지 송달/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문자메시지 송달/박현갑 논설위원

    관공서나 공항 등에서 본인 확인에 필요한 주민등록증이 없어 난감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게다. 2017년부터 주민등록등초본 신청 때 지문만으로도 본인 확인이 가능해졌으나 그 전에는 신분증이 꼭 필요했다. 지난 7월부터는 해외로 출국할 때도 실물 신분증이 필요 없다. 휴대전화 속 ‘주민등록증 모바일 확인 서비스’로 신분 확인이 가능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행정서비스가 나날이 개선되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화물연대 파업 가담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휴대폰 문자메시지로도 보냈다. 사진으로 찍은 명령서를 메시지로 보내는 방식이다. 정부가 중요한 행정처분과 송달을 문자메시지로 한 건 처음이다. 업무개시명령은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 부과가 가능한 행정처분으로 문자메시지 발송이 옳으냐는 논란이 있으나 근거가 있다.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인 행정절차법 24조에는 행정처분은 문서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공공의 안전이나 복리를 위해 긴급히 처분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는 말, 전화,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 전송, 팩스 또는 전자우편 등 문서가 아닌 방법으로 처분할 수 있으며 당사자가 요청하면 지체 없이 처분에 관한 문서를 주어야 한다고 돼 있다. 정부는 파업 가담자들이 고의적으로 업무개시명령 문서를 수령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나아가 이들이 문자 수신 사실을 부정하며 법적 다툼이 생길 것에 대비, 화물차 기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문자메시지를 봤는지 확인도 한다고 한다. 운송 거부가 정식 우편송달이 아닌 문자로 보낼 정도로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해 긴급히 처분할 필요가 있는 경우’였는지는 제소 이후 법원에서 판단할 일이다. 정부로서는 파업으로 4조원 넘는 피해가 생긴 터라 긴급히 처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행정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정보통신기술로 행정서비스 제고가 가능하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세계 각국이 전자정부를 지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 등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다.
  • [길섶에서] 고블린 모드/안미현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고블린 모드/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고블린 모드’(Goblin Mode)를 선정했다고 한다. 고블린은 덩치가 작고 탐욕스러운 요괴를 뜻한다. 그렇다고 악마까지는 아니어서 우리말로는 ‘도깨비’ 정도로 번역된다. 코로나 방역 규제가 풀린 뒤에도 일상으로의 회귀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나태하고 지저분한 생활방식을 고수하면서 신조어로 등장했단다.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태도를 상징한다. 이 말에 시선이 머문 것은 이어진 설명과 댓글을 보고 뜨끔해서였다. “일주일 내내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거나, 잠옷에 윗옷만 걸친 채 아무렇지 않게 집 앞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가거나, 새벽 2시에 부엌에서 이상한 간식을 만들고 있다면 당신도 고블린 모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고블린 모드에 빠져든 날이 많다. 사회의 미적 기준과 생활 규범에 저항하려는 ‘결기’는 전혀 없지만 의도치 않게 시대 흐름에 올라탄 형국이다. 반성해야 하나, 뿌듯해해야 하나.
  • [씨줄날줄] ‘4대 천왕’ 망령/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4대 천왕’ 망령/안미현 수석논설위원

    4대 천왕은 불교에서 유래했다.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 허리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동쪽은 지국(持國), 서쪽은 광목(廣目), 남쪽은 증장(增長), 북쪽은 다문(多聞) 천왕이다. 모두 우락부락한 얼굴에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런데 손에 든 물건이 각기 다르다. 칼(기쁨), 삼지창과 보탑(분노), 용과 여의주(사랑), 비파(즐거움)다. 각각의 감정을 상징하면서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다. 이후 실력이나 명성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뜻으로 변주되며 한류, 게임, 바둑 등에서 수많은 4대 천왕을 탄생시켰다. 금융권에도 4대 천왕이 존재했다. 저 유명한 강만수 전 산업은행, 어윤대 전 KB금융, 이팔성 전 우리금융,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다. 강 전 회장은 이명박(MB)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나머지 세 명은 MB의 대학(고려대) 동문으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라인으로도 유명했다. 이들은 MB정부 때 4대 금융그룹 회장을 동시에 맡아 금융권을 쥐락펴락했다. MB와 사이가 별로였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4대 천왕은 모두 물러났다. 이때가 2013년 여름이다. 그런데 10년 만에 4대 천왕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오는 13일 윤곽이 드러나는 BNK금융 회장에 이팔성 전 회장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기재부 출신인 김창록 전 산은 총재 이름도 들린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고문인 변양균씨와 부산고 동창이기도 하다. 내부 연임으로 기우는 듯했던 농협금융 회장에는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내정설이 파다하다. 기재부 차관도 지낸 그는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초기 멤버다. 우리금융 회장과 기업은행장 후임에도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 등 MB맨과 기재부 출신이 거론된다. 4대 천왕이 여든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자가발전’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지난달 예금보험공사 사장에 기재부 출신이 6년 만에 컴백한 점, 현 정부에 MB맨과 기재부 출신이 유난히 많이 포진한 점 등을 들어 ‘낙하산 부활’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4대 천왕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아직도 그때의 ‘몸집 불리기’ 과당경쟁 후유증을 성토하는 이들이 많다. 과거로의 회귀는 보고 싶지 않다.
  • [길섶에서] 로또 단상/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로또 단상/이순녀 논설위원

    “당신은 내 로또야.” “날 만난 게 그렇게 행운이야?” “아니, 하나도 안 맞잖아.” 몇 년 전 유행했던 ‘허무 개그’가 다시 생각난 건 로또가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는 기사 때문이다. 복권의 대명사인 로또는 한일월드컵이 열린 해인 2002년 12월 7일에 1회차를 추첨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1회차부터 올해 11월 26일 1043회차 추첨까지 로또 1등 당첨자는 총 7803명이다. 이들이 받은 총당첨금은 총 15조 9000억원으로, 한 사람당 평균 20억원이 넘는다. 역대 최대는 407억원, 최소는 4억원이다. ‘인생역전’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없지만 소소한 재밋거리로 가끔 로또를 산다. 길몽을 꾼 다음날 로또 한 장을 사서 지갑에 넣어 두면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지금까지 당첨 기록은 5등 5000원이 유일하다. 본전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다. 꽝이어도 상관없다. 나라가 복권 기금으로 입양아동 가족을 지원하고, 저소득층에 장학금을 지급하니 좋은 일 아닌가.
  • [씨줄날줄] 유리천장 시계/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유리천장 시계/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취업 여성이 겪는 승진 차별을 뜻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언제 누구 입에서 맨 처음 나온 말일까. 언어에 꼬리표를 달 수 없으니 객관적 입증이야 불가능하다. 통설로는 1978년 뉴욕에서 열린 ‘직장 여성 박람회’가 연원으로 꼽힌다. 박람회의 토론회 패널로 참가한 뉴욕전화회사 인사과 여직원 매릴린 로든이 처음 썼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그러던 것이 1986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를 언급한 기고문을 실으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유리천장’은 각 분야 여성의 차별을 뜻하는 용어로 줄기차게 변주됐다. 아시아계 여성의 이중차별에는 ‘대나무 천장’, 종교계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 천장’, 공직에서는 ‘대리석 천장’ 등으로. 삼성그룹에서 오너가 출신이 아닌 첫 여성 사장이 탄생했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여성도 사장까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 지 11년 만이다. 주인공 이영희 삼성전자 사장은 2007년 입사 후 갤럭시의 마케팅 성공 스토리를 일궜다.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객관적 능력을 인정받은 성취로 평가된다. 지난달에는 5대 그룹 중 처음으로 LG가 여성 사장을 배출했다. 두 대표 그룹에서 잇따라 기록을 세웠으나 기업들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공고하다.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5.6%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해마다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명단에서 우리나라는 10년 연속 부동의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직장의 성별 다양성 문제는 세계 어디서나 더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상장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권고했다. 우리나라도 제도적인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본시장법이 지난 8월 시행됐다. 소리소문 없이 등장한 구호성 제도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리천장’에 유의미한 사회적 요구가 담긴 시간은 줄잡아 반세기가 다 됐다. 몇 달 전 타계한 로든은 “이 단어가 나보다 더 오래 버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유리천장’의 단어 수명은 얼마나 더 남았을까.
  • [길섶에서] 3년 만의 송년회/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3년 만의 송년회/임창용 논설위원

    주말에 모처럼 고향 친구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3년 만이다. 30여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송년회를 코로나 팬데믹으로 두 번이나 쉬었다. 여전히 확진자가 매일 수만 명씩 나오고 있지만 이번엔 송년 모임을 갖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미 감염에 대한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진 듯 모임이 끝날 때까지 코로나 얘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자녀 혼사나 부모상을 치르고 큰 병을 앓는 등 친구들 일상에 변화가 많았다. 위력을 잃은 코로나가 모임에 목말랐던 친구들의 말잔치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각종 송년 모임 약속이 빼곡하다. 대부분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갖는 송년회다. 팬데믹 전보다 모임이 더 많아진 듯하다. 팬데믹 이후 ‘보복소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데 송년회도 그런 영향을 받은 걸까.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 사회적 동물이란 걸 생각해 보면 대화에 목마른 이들이 ‘보복모임’을 가진들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 학폭 심의만 年 3만건… 학부모 예방 교육·사회적 대응 강화해야[박현갑의 뉴스 아이]

    학폭 심의만 年 3만건… 학부모 예방 교육·사회적 대응 강화해야[박현갑의 뉴스 아이]

    학교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수많은 대책이 쏟아졌지만 학교폭력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에 의한 교사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도 늘면서 공교육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3학년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학교폭력이든 교육활동 침해든 폭력행위자가 학생이고, 학교를 매개로 해서 일어나는 것인 만큼 둘은 모두 학교폭력이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학생 인권과 교사의 교육·지도권 침해를 방지하고 이 둘 모두를 강화할 방안은 없는지 정부 대책을 중심으로 짚어 본다. ●학교폭력은 진행형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는 출석 정지, 강제전학, 퇴학 등이 있다. 강제전학이나 퇴학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중 중징계에 속한다. 2012학년도부터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도 한다.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기록되면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경각심을 가져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줄지 않고 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한 2012학년도 이후 코로나19로 등교금지 조치가 내려진 2020학년도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최소 1만 5000건 이상을 심의하고 있다. 특히 2017학년도부터 2019학년도까지는 3만건 이상으로 불어났을 정도다. 국민 인식도 비슷하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해마다 하는 교육 여론조사에서 초중고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물은 결과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응답자의 40% 이상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매우 심각하다는 반응까지 합하면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학교폭력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기승부리는 교육활동 침해 최근에는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사들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도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7∼2021년 교권보호위원회가 심의한 교육활동 침해 심의 건수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원격 수업이 주로 시행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2200건을 넘었다. 올해는 1학기 만에 1600건에 육박했다.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실습용 톱을 던지며 협박하거나 중학생이 교단 위에 드러누워 교사 수업을 방해하고, 고교생은 휴대전화로 여교사의 치마 속을 불법촬영한다. 학부모도 수업 중인 교실에 찾아와 교사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붓고 폭행한다. 이런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여론에 국회 교육위원회는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지난달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킨 상태다. 정부도 전학이나 퇴학을 시킬 정도로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의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마찬가지로 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형평성을 고려하고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려면 모든 교육활동 침해에 따른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게 맞지만 이럴 경우 학생 낙인효과, 교사·학생 간 법적 소송 증가 등 학교 내 갈등이 커질 수 있어 중대한 침해조치 사항만 작성한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학생부에 기재하려는 ‘전학·퇴학’에 해당하는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전체의 10% 선이다. 2020년 113건에서 2021년 236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1학기에만 161건이 집계돼 사상 최고치를 보일 수도 있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재 실효성 논란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에 대해선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 한국교총은 교육활동 침해를 방지할 것이라면서 학생부 기재 방침을 적극 환영한다. 반면 전교조와 교사노조는 반대 입장이다. 특히 전교조는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조치사항을 기록하는 건 교육적 지도를 통한 교육활동 침해 예방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사실상 ‘학생에 대한 위협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본 처방보다 사후 대증요법 중심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정부 대책이 폭력 원인에 맞는 근본 대책의 마련보다 폭력 발생 이후 대증요법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KEDI의 최근 10년간 교육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학교폭력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대중매체의 폭력성을 꼽은 2012년과 2013년을 제외하고 ‘가정교육의 부재’를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의견으로는 ‘처벌 중시’가 59.1%로 제일 많았다. 이어 화해와 선도 중시(20.5%), 중립(20.4%)이 비슷했다.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은 사후 대책 중심이다. 학교·학급 단위의 학교폭력 예방교육도 있으나 피해 학생 보호 및 치유시스템 강화와 가해 학생 교육 및 선도 강화, 학교의 교육적 해결 역량 제고 등 학교폭력이 터진 이후의 대처가 대부분이다. 국민들이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가장 비중 있게 지적한 가정교육 부재를 정책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은 일부에 그치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의 학부모 교육은 유명무실하다. 학교폭력예방법에서는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 등을 위한 학부모 교육을 학기별로 1회 이상 실시해야 한다고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방식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보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모들이 자녀의 담임교사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실정에서 가정 통신문을 보내도 제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 주기적으로 배부하는 학교폭력 예방 소식지나 관련 리플릿을 각 가정에 배부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교의 학생지도 역량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최근 10년 새 부쩍 높아지고 있다. KEDI 자료에 따르면 학교가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에 대해 물은 결과 학생상담 및 지도활동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응답이 2011년에는 7.3%였으나 지난해에는 36.8%로 껑충 뛰었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자녀 관계 개선 교육 필요 국민들은 학교폭력이 주로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인식한다. 그러면서도 학교에서 학생 지도를 더 해 주기를 기대한다. 학교폭력에 대한 국민 인식과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감안하면 교육당국의 학생 지도 역량 강화와 함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전 사회적 협력시스템 강화가 절실하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중심이 돼 방치되고 있는 자녀관계 개선을 도모할 부모 교육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어쩌다 어른’이 돼서 가정이 깨지거나 자녀와의 대화 단절로 학교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교급별·폭력 유형별 자녀와의 대화법 안내 등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폭력 문제라면 외부 컨설팅도 지원하는 등 전 사회적인 인성 강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 내 아동·청소년 기관 등과 연계한 학교폭력 예방 환경 조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현진 박사는 “학생부에 학교폭력 내용을 기록한 초기에는 그 파급력을 몰랐으나 10년이 지나면서 학생부 기재가 교사에 대한 불신 등 학교 내 갈등을 유발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면서 “학생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제한적으로 학생부에 기재하더라도 학생 인성교육과 사회정서 역량 교육을 더 강화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박현갑의 뉴스 아이] 국민과 정부간 동상이몽,학교폭력 해법

    [박현갑의 뉴스 아이] 국민과 정부간 동상이몽,학교폭력 해법

    학교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수많은 대책이 쏟아졌지만 학교폭력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에 의한 교사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도 늘면서 공교육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3학년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학교폭력이든 교육활동 침해든 폭력행위자가 학생이고, 학교를 매개로 해서 일어나는 것인 만큼 둘은 모두 학교폭력이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학생 인권과 교사의 교육·지도권 침해를 방지하고 이 둘 모두를 강화할 방안은 없는지 정부 대책을 중심으로 짚어 본다.●학교폭력은 진행형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는 출석 정지, 강제전학, 퇴학 등이 있다. 강제전학이나 퇴학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중 중징계에 속한다. 2012학년도부터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도 한다.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기록되면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경각심을 가져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줄지 않고 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한 2012학년도 이후 코로나19로 등교금지 조치가 내려진 2020학년도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최소 1만 5000건 이상을 심의하고 있다. 특히 2017학년도부터 2019학년도까지는 3만건 이상으로 불어났을 정도다. 국민 인식도 비슷하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해마다 하는 교육 여론조사에서 초중고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물은 결과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응답자의 40% 이상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매우 심각하다는 반응까지 합하면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학교폭력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기승부리는 교육활동 침해 최근에는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사들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도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7∼2021년 교권보호위원회가 심의한 교육활동 침해 심의 건수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원격 수업이 주로 시행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2200건을 넘었다. 올해는 1학기 만에 1600건에 육박했다.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실습용 톱을 던지며 협박하거나 중학생이 교단 위에 드러누워 교사 수업을 방해하고, 고교생은 휴대전화로 여교사의 치마 속을 불법촬영한다. 학부모도 수업 중인 교실에 찾아와 교사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붓고 폭행한다. 이런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여론에 국회 교육위원회는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지난달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킨 상태다.정부도 전학이나 퇴학을 시킬 정도로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의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마찬가지로 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형평성을 고려하고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려면 모든 교육활동 침해에 따른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게 맞지만 이럴 경우 학생 낙인효과, 교사·학생 간 법적 소송 증가 등 학교 내 갈등이 커질 수 있어 중대한 침해조치 사항만 작성한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학생부에 기재하려는 ‘전학·퇴학’에 해당하는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전체의 10% 선이다. 2020년 113건에서 2021년 236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1학기에만 161건이 집계돼 사상 최고치를 보일 수도 있다.●교육활동 침해, 학생부 기재 실효성 논란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에 대해선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 한국교총은 교육활동 침해를 방지할 것이라면서 학생부 기재 방침을 적극 환영한다. 반면 전교조와 교사노조는 반대 입장이다. 특히 전교조는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조치사항을 기록하는 건 교육적 지도를 통한 교육활동 침해 예방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사실상 ‘학생에 대한 위협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의 이덕난 입법조사관은 “학생부 기재의 실효성 부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만약 이런 조치가 없었더라면 학교폭력은 더 늘었을 것”이라면서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주는 학생부 기재가 그나마 현실적으로 학교폭력을 줄일 수있는 실효성있는 조치라고 본다”고 밝혔다. ●근본 처방보다 사후 대증요법 중심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정부 대책이 폭력 원인에 맞는 근본 대책의 마련보다 폭력 발생 이후 대증요법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KEDI의 최근 10년간 교육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학교폭력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대중매체의 폭력성을 꼽은 2012년과 2013년을 제외하고 ‘가정교육의 부재’를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의견으로는 ‘처벌 중시’가 59.1%로 제일 많았다. 이어 화해와 선도 중시(20.5%), 중립(20.4%)이 비슷했다.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은 사후 대책 중심이다. 학교·학급 단위의 학교폭력 예방교육도 있으나 피해 학생 보호 및 치유시스템 강화와 가해 학생 교육 및 선도 강화, 학교의 교육적 해결 역량 제고 등 학교폭력이 터진 이후의 대처가 대부분이다.●부모들이 자녀의 담임교사 이름도 모르는데... 국민들이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가장 비중 있게 지적한 가정교육 부재를 정책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은 일부에 그치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의 학부모 교육은 유명무실하다. 학교폭력예방법에서는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 등을 위한 학부모 교육을 학기별로 1회 이상 실시해야 한다고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방식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보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모들이 자녀의 담임교사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실정에서 가정 통신문을 보내도 제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 주기적으로 배부하는 학교폭력 예방 소식지나 관련 리플릿을 각 가정에 배부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이런 가운데 학교의 학생지도 역량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최근 10년 새 부쩍 높아지고 있다. KEDI 자료에 따르면 학교가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에 대해 물은 결과 학생상담 및 지도활동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응답이 2011년에는 7.3%였으나 지난해에는 36.8%로 껑충 뛰었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전 사회적 학교폭력 대응 체계 강화해야 국민들은 학교폭력이 주로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인식한다. 그러면서도 학교에서 학생 지도를 더 해 주기를 기대한다. 학교폭력에 대한 국민 인식과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감안하면 교육당국의 학생 지도 역량 강화와 함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전 사회적 협력시스템 강화가 절실하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중심이 돼 방치되고 있는 자녀관계 개선을 도모할 부모 교육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어쩌다 어른’이 돼서 가정이 깨지거나 자녀와의 대화 단절로 학교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교급별·폭력 유형별 자녀와의 대화법 안내 등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폭력 문제라면 외부 컨설팅도 지원하는 등 전 사회적인 인성 강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 내 아동·청소년 기관 등과 연계한 학교폭력 예방 환경 조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현진 박사는 “학생부에 학교폭력 내용을 기록한 초기에는 그 파급력을 몰랐으나 10년이 지나면서 학생부 기재가 교사에 대한 불신 등 학교 내 갈등을 유발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면서 “학생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제한적으로 학생부에 기재하더라도 학생 인성교육과 사회정서 역량 교육을 더 강화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서울광장] 업무개시명령을 보는 뒤바뀐 시선/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업무개시명령을 보는 뒤바뀐 시선/임창용 논설위원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정유와 철강 업종에 대해서도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시멘트업에 이어 초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운송거부를 사실상 지휘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이에 맞서 6일부터 연대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 대형 악재들로 복합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산업·노동 현장마저 시계제로 상태로 치닫고 있어 불안감을 더한다. 업무개시명령은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다. 화물운수자동차사업법 14조는 운송사업자나 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거부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노동계는 업무개시명령이 헌법과 법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조항들을 보면 애매한 측면이 있긴 하다. 먼저 헌법 12조는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한데 이 경우 운수사업법에 근거 조항을 갖추고 있어 헌법 위반이라고 보긴 힘들다. 다만 ‘정신상 또는 신체상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자유 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명시한 근로기준법 제7조와의 충돌 소지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이 경우도 화물차 운전사들이 법률상 자영업자여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 논란이 크다. 파업 참가 제재 수단으로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조약인 ILO 협약 제105호 위반 소지는 있어 보인다. 조약은 법률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다만 한국은 해당 조약 미비준 국가다. 국내법상 따를 의무는 없는 셈이다. 한국이 비준한 협약 29조도 강제노동 금지 원칙을 담고 있긴 하다. 한데 ‘인구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등 비상 상황에선 예외로 하고 있어 위반이라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ILO는 최근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정부 의견을 요청했다. 노동계에선 ILO가 ‘개입’했다며 정부를 압박하지만, 정부는 “단순 의견 조회”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무개시명령은 그동안 경제 상황이나 정치 논리에 따라 정부나 정치권이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이 제도는 2004년 노무현 정부와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주도로 화물운수법 개정을 통해 도입했다. 바로 전해 화물연대의 파업에 사실상 백기투항한 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태도를 바꿔 “위헌성이 높다”, “악용 소지가 농후하다”고 비판한다. 국민의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20년 의사 파업 때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되자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전념해야 할 의사들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ㆍ약사의 집단업무거부를 제한하는 업무개시명령은 앞서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화물연대 사태에 대해 국민의힘은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서라도 불법 폭력파업을 끊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근로자든 자영업자든 일을 하고 안 하고는 원칙적으로 본인의 자유다. 다만 집단적 업무 거부로 인해 누군가 손해를 보거나 공공의 이익이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이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헌법도 용인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법률 조항에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아 노동계와 업계, 정부, 정치권이 상황에 따라 아전인수식 논리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정당한 사유’, ‘심각한 위기’ 등 기준이 막연한 조항들은 시행령을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와 노동계의 싸움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다.
  • [씨줄날줄] 월드컵과 전쟁/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월드컵과 전쟁/박록삼 논설위원

    기적과도 같은 16강 진출 이후 월드컵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월드컵은 철저한 국가별 대항전이기에 애국심 또한 따라서 치솟는다. 더욱이 나라별로 월드컵에서 실제 역사 속의 전쟁을 소환해 내기도 한다. 그만큼 관심은 증폭되겠지만 자칫 피해 국가의 해묵은 상처를 헤집어 놓는 일이 될 수도 있기에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들기 일쑤다. 얼마 전 잉글랜드와 이란의 경기에 한 영국 팬이 십자군 병사의 복장을 하고 입장하려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무모하거나 몹시 무례한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십자군전쟁은 서구 세계에서는 성전(聖戰)으로 통한다.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물론 이슬람교ㆍ유대교 등 여러 종교에서도 성지다-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되찾겠다는 이유로 1095~1290년 약 200년 동안 공식적으로만 9차례, 비공식적으로는 수십 차례 무슬림 지배 지역 곳곳을 침략했다. 반면 이슬람권에서는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했던 십자군은 공포 그 자체였고, 십자군전쟁은 일방적 침략 전쟁일 뿐이다. 실제로 십자군 연대기의 저자 라울 드 카엥은 ‘마라(현 시리아)에서 우리는 이교도(무슬림) 어른들은 솥에 삶아 죽이고, 어린이들은 꼬챙이에 꿰어 구웠다’고 썼을 정도였다. 이번 월드컵을 비롯해 축구 경기에 일본 팬들이 간혹 욱일기를 들고나와 응원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을 당한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 욱일기는 전범기로 통한다. 서구의 역사적 인식 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반대로 누군가 같은 전범인 나치의 깃발을 들고 월드컵을 응원한다면 전 세계가 발끈할 것이다. 만인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서구권이 대체로 욱일기에 무감하거나 무지할 뿐이다. 국민들을 잠시나마 위로하고, 환호하게 하며, 한마음으로 묶어 놓는 것은 축구의 순기능이다. 하지만 자칫 퇴행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망령을 부활시키는 식이라면 더이상 환영받을 수 없다. 밤잠을 설치면서 남의 나라 경기까지 챙겨 보는 것은 ‘전쟁 같지만 전쟁이 아닌’ 월드컵의 매력 덕이다. 머지않아 곧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펼쳐질 수도 있는 한일전 역시 그 영역을 넘어서서는 곤란하다.
  • [길섶에서] 사과의 추억/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사과의 추억/박현갑 논설위원

    요즘 간식으로 사과를 즐겨 먹는다.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진다. 과당이 많아 자제해야 하는데 빨간 옷을 입은 녀석의 유혹을 뿌리치는 게 쉽지 않다. ‘어머니 사과’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장바구니엔 종종 사과가 들어 있었다. 아삭아삭 먹는 재미에 생선 바르듯 씨만 남긴 채 다 먹었다. 흠집 있고 쭈글쭈글한 볼품없는 녀석도 속맛은 일품이다. 껍질째 먹기도 했는데 퍼석퍼석한 과육 때문에 입맛을 버릴 때도 있지만 ‘달콤한 추억’ 하면 늘 사과가 떠오른다. ‘뉴턴의 사과’나 성경 속 ‘이브의 사과’도 있다. 인간이 얻은 지식, 죄와 유혹을 상징하며 세상을 바꾼 사과들이다. 하지만 맛을 말하기엔 거북스럽다. 차라리 ‘스피노자의 사과’가 침샘을 돌게 한다. 내일 죽더라도 묵묵히 내 길을 걷겠다는 멋진 자기 선언 아닌가. 마음속으로나마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 보련다. 첫 꽃을 피우고 열매가 열리는 그날까지 정성을 쏟는다면 치유와 행복의 시간이 될 게다. 사과나무야, 잘 자라렴.
  • [씨줄날줄] 부자의 기준/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부자의 기준/임창용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의 자산을 보유해야 부자로 인정받을까. 일반인의 경우 막연하게 서울 강남의 비싼 아파트나 고급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상위 1% 정도의 고소득자 정도로 추측할 듯하다. 그런데 사실 딱 잘라 부자의 기준을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부자 관련 조사를 하는 주체들조차 자기들의 목적에 맞춰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올 상반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펴낸 ‘2022 대한민국 상위 1%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상위 1% 가구의 순자산 커트라인은 29억원 정도다. 이들의 평균 총순자산은 51억원이었고, 10명 중 9명은 본인 명의 아파트에 살았다. 평균 연소득은 2억 1500만원에 달했다. 평균 생활비 500만원 정도와 세금 등을 빼고도 연 9000만원 정도가 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에 사용했다. 하지만 ‘상위 1%’는 편의적 구분일 뿐이고, 부자의 기준은 조사마다 제각각이다. 특히 설문조사 대상에 따라 기준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지난해 한 언론사가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득을 구분하지 않은 일반 국민들은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을 포함한 총자산 10억원 이상을 부자의 기준으로 꼽았다. 100세시대연구소가 제시한 상위 1% 기준(29억원)의 3분의1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상위 1% ‘부자’는 자신을 부자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지난 4일 KB금융그룹이 발간한 ‘2022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가진 조사 대상자의 과반수는 총자산이 100억원 이상은 돼야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위 1% 자산가들보다 3배는 넘게 가져야 진정한 부자라고 인정하는 셈이다. KEB하나은행이 수년 전 이 은행 PB 고객 10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자산가들끼리도 부자 기준에 대한 인식 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고객들은 부자의 최소 자산이 100억원 이상이라고 한 반면 30억~50억원 고객은 129억원, 50억~100억원 고객은 153억원, 100억원 이상 고객은 215억원을 가져야 부자라고 인정했다. 꼭 철학적 가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진정한 부자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 [신간] 정약용코드

    [신간] 정약용코드

    [신간] 정약용 코드  우리는 다산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정약용 코드』를 읽으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약용 코드』는 18년 동안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까닭이 우리가 알고 있던 ‘천주교를 박해한 신유사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과감한 언행 때문’이라는 정약용의 고백을 소개한다.  정약용은 <자찬묘지명> 등에서 30대의 젊은 나이에 공직생활을 하면서 주변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언행을 했기 때문에 운명적인 유배생활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정약용은 남의 잘못과 허물을 감싸는 아량보다는 남을 과감하게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면서 ‘인생 잘 못 살았노라’고 뼈저린 후회를했다.  다산이 전하는 공직사회의 성공비결은 지금도 유효하고, 공직뿐 아니라 민간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하다. 다산은 총애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윗사람의 존경을 받으라고 당부한다. 윗사람의 존경을 받는 비결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할 말을 하는데 있다고 다산은 강조한다. 윗사람 앞이라고 주눅들지 말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이 말한 청렴은 목적이 아니라 통치의 수단이다. 다산은 청렴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렴은 요즘의 지방자치단체장인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면서 부하직원인 아전들을 다루는 ‘통치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다산은 큰 욕심쟁이일수록 청렴한 법이고, 비리를 저지르는 이는 작은 욕심쟁이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다산은 조직관리의 비결로 침묵을 꼽는다. 아랫사람의 작은 잘못을 보고도 말 못하는사람인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갑자기 화를 내지말라는 당부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지금도 공직에 들어가 헤매고 있는 ‘어공(어쩌다공무원)’에게 목민심서 또는 세르반테스의소설『돈키호테 데 라만차』일독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목민심서에서 정약용이 말하는 공직자 행동지침은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서 돈키호테가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으로 가는 산초 판사에게 말한 통치자 매뉴얼과 판박이다. 공직자는 발걸음도 천천히 하고, 양파도 먹지 말아야 하고, 점심보다는 저녁을 더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돈벌이를 하찮게 여긴 다른 선비들과는 달리 뛰어난 경제관을 갖고 있었다. 이미 관직생활을 할 때 양잠 등으로 생활비를 벌어들였기에 틈만 나면 양잠과 특용작물 재배를 해서 돈을 벌라고 강조한다. 다산이 요즘 시대에 살았다면 양잠으로 바이오 대박을 터트렸을지 모른다. 다산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다리와 도로, 수레로 살아 움직이는 ‘시끌벅적한 나라’를 만드는 경제개혁, 양반도 직업을 갖는 사회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반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무노동무음식 원칙을 강조했다.    저자는 남존여비의 조선시대에 정약용은 여성들이 과로하지 않도록 옷감 짜는 길쌈을 중단시키자고 했던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감옥에 있는 재소자들이 후손을 잇도록 부부관계를 허용하는 ‘가족만남의 집’이 도입된 게 불과 23년 전의 일이지만, 이미200여년 전에 이런 제안을 했던 인물이 바로 정약용이다.  성리학의 선비들이 중국을 떠받들던 시대에 다산은 중국보다는 일본에 주목했다. 그는 일본의 학문 수준이 조선 후기쯤부터 조선을 능가했다고 진단하면서, 일본에 대비책을 세워서 항상 경계심을 갖고 관찰하라고 당부했다. 개혁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나라가 망하고 말것이라던 다산의 예언 아닌 예언이 실현되는데는 100년이 걸리지 않았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다산의 저술과 그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자는 되도록 풀어썼으며 시대상황을 현대에 맞게 상세히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200여 년 전 조선시대 ‘흑백의 인물’ 다산에게 컬러를 입히고자 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다산이 갓을 쓴 200여 년 전의 고리타분한 선비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에 딱 맞는 인물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문과와 이과를 드나드는 양손잡이 능력을 보여줬고, 과학과 예술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르네상스형 천재라고 설명한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하이브리드 지식인이 바로 정약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다산은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서’를 펴낸 학자이자 사상가이면서, 200여 년 전에 엑셀을 돌려 어려운 계산을 척척 해냈고 화성축성에 삼각함수를 활용한 수학자였다.  수학자이면서도 음악가이자 메모광이라는 점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완전 닮은 꼴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메모는 503권이라는 사상 유례 없는 저술을 남기게 한 비결의 하나로 꼽힌다. ### 저자 소개   저자는 26년동안 「서울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사회부장, 경제부장, 논설위원, 경영기획실장등을 지냈다. 또한 국무총리 공보실장과 한국수자원공사 감사 등의 공직을 거쳤다. 서울신문 파리특파원의 경험을 살려 『프랑스인들은 배꼽도 잘났다』를 펴냈다.  
  •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함께할 수 없는 슬픔/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함께할 수 없는 슬픔/박록삼 논설위원

    공교롭다. 시인 손택수가 지난달 하순 펴낸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문학동네)는 뭇 생명의 죽음에 대한 도저한 시적 진혼(鎭魂)을 담고 있다. 이태원 참사와 무관하게 쓰여진 작품들이지만 마치 이런 일을 예감이라도 한 듯 집단적 비통함에 빠진 세상을 위로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 담아낸 슬픔에 대한 공감과 성찰의 언어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어 한편으로 다행스럽다. 시인이 겪은 다양한 형태의 죽음과 이별에 공감하다 보면 쉽게 시집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참사 한 달을 넘긴 지금까지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요원해 보이는 사회적 떼죽음 앞에서 시가 주는 위로에만 만족한다면 그저 ‘비겁한 위로’일 수 있다. 시집 제목 역시 함께할 수 없는 슬픔일수록 함께해야만 한다는 명백한 당위를 역설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민변 사무실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발언과 흐느낌으로 뒤엉켰다. 간헐적 절규와 함께 울음바다가 된 공간에서 더이상 세상에 없는 딸에게 써 보내는 편지를 애써 덤덤히 읽는 아빠의 모습은 처연했다. 자신도, 남편도, 떠난 아들도 모두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을 찍었기에 윤 대통령이 명백히 진상을 규명해 줄 것이라 믿는다는 엄마의 모습은 참담한 사고가 정파적 문제로 접근할 일이 아님을 체감케 한다. 또 다른 엄마는 사진도, 위패도, 이름도 없이 분향소를 차려 놓았던 것이야말로 진짜 2차 가해였다며 울부짖는다. 각자 핸드폰 속 아들, 딸의 사진 또는 영정사진을 들고서 진정한 사과를 애원하는 모습은 상식과 가치가 전도된 세상임을 깨닫게 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이 처음으로 국내 언론에 등장한 날의 풍경이었다. 희생자 35명의 유가족이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아들, 딸을 떠나보낸 지 한 달 가까이 흘렀지만 억장 무너지고 비통한 자신들의 얘기를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고 꽁꽁 감춰 두려고만 하니 직접 기자들 앞에 서는 수밖에 없었을 테다. 정부는 일관되게 정서적ㆍ실제적 공감도 없이 오직 참사 희생자를 ‘158’이라는 숫자로만 남겨 놓았다. 마치 희생자들이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일을 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라도 되는 양 ‘명단 공개는 2차 가해’라고 강변했다. 한 진보 인터넷매체가 희생자 전체 명단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유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했음이 알려져 2차 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어디에도 직접적 피해자인 유가족이 없었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한 모든 국민이 잠재적 피해자라는 불안과 두려움의 연대 의식이 생겼다. 그럼에도 혈육 상실이라는 고통의 무게는 유가족 당사자 외에는 짐작조차 힘든 일이다. 같은 처지를 가진 이들이 그 구체적인 슬픔과 고통을 모여서 함께 나누고 싶다는데도 정부는 방해 일색이었다. 행안부에서 희생자 명단과 유가족 연락처까지 갖고 있음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에 나와 버젓이 “명단이 없다. 왜 국무위원의 말을 못 믿느냐”고 했다. 수많은 무책임한 발언에 이은 또 다른 거짓말 사례다. 이것도 모자라 유가족의 기자회견 이후 행안부는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 또는 문자로 ‘유가족협의회 구성’, ‘유가족 모임 장소 제공’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그날 오후 6시까지 답이 없으면 의견이 없는 것으로 알겠다는 통보까지 덧붙였다. 유가족을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함께 모여 슬픔을 나누겠다는 고통의 당사자들 앞에 당위와 이론을 갖다 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까지 희생자 66명의 유가족이 모여 유가족협의회를 꾸렸다. 국정조사 등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 참사 수습 과정에 이들의 목소리가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 위에서 다른 이들과 공감하고 나눈다면 어떤 슬픔도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씨줄날줄] 월드컵과 반정부 시위/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월드컵과 반정부 시위/이순녀 논설위원

    자국 축구 대표팀의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에 환호하던 이란 청년이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지난달 29일(현시지간) 미국과의 경기 직후 발생한 일이다. 이란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를 알지 못한다면 귀를 의심할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자국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축하하며 자동차 경적을 울린 국민도, 무방비 상태인 20대 청년의 머리를 조준사격한 정부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란은 지난 9월 중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한 사실이 알려진 후 전국적으로 ‘히잡 시위’가 들끓고 있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강경 진압에 나서 어린이 60명을 포함해 448명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극한 대결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카타르월드컵이 이란 반정부 시위대를 향한 연대의 장으로 부각됐다. 이란 선수들은 지난달 21일 잉글랜드와의 1차전에서 국가 제창을 보이콧하는 방식으로 시위대에 동조했다. 응원단에서도 시위대 구호인 ‘여성, 삶, 자유’ 팻말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1차전 직후 선수들에게 반정부적 행태를 보이면 가족이 고문을 당할 수 있다고 협박한 사실이 드러나고, 16강 탈락에 환호하던 남성을 사살하면서 이란 국민들에게 카타르월드컵은 악몽으로 남게 됐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백지혁명’의 배경 중 하나로 카타르월드컵의 나비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A4 용지 크기 백지로 반정부 의사를 표현하는 백지혁명은 지난달 24일 우루무치 화재로 코로나 봉쇄에 갇혀 있던 주민 10여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 방역 완화를 촉구하기 위해 시작됐다. 때마침 카타르월드컵 중계방송을 통해 노마스크 외국 응원단을 보면서 정부의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불타올랐고, 이후 ‘시진핑(習近平) 퇴진’까지 외치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는 분석이다.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를 금과옥조로 여기던 때도 있었지만 구두선에 불과할 뿐이다. 과거엔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하는 경우가 흔했다면 지금은 스포츠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졌다. 카타르월드컵에 얽힌 두 나라의 사례처럼 말이다.
  • [길섶에서] 알량한 공존/안미현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알량한 공존/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자려고 누웠는데 모기가 왱왱거린다. 이 겨울에 웬? 철없는 놈의 등장에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일어나서 응징할 것인가. 대개의 ‘귀차니스트’들은 이럴 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는 선택을 한다. 다음날 저녁 하얀 벽지 위에서 놈을 발견했다. 다시 찾아든 고민. 이미 24시간이 지났으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자연사를 기대하며 ‘공존’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날 밤 또 귓전을 때리는 왱왱 소리. 모기의 수명이 새삼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 한두 달이란다. 생각보다 길다. 공존을 선택했다고 해도 ‘먹이’까지 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이불로 철통 방어선을 친다. 다음날 아뿔싸, 팔에 놈의 공격 자국이 선명하다. 평화는 깨졌다. 공존은 내가 공격받기 전까지, 내가 손해를 보기 전까지였다. 얼마나 경박하고 알량한 마음의 수준인가를 빛의 속도로 살충제를 찾아 쥐며 깨닫는다. 놈은 해충이라고 합리화를 해 보지만 해충이 아니었다 한들 크게 다를까.
  • [씨줄날줄] 교권과 학생부/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교권과 학생부/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교육 현장을 넘어 이제는 시중에서도 낯설지 않은 용어가 ‘교권침해 보험’이다. 교권침해에 대비해 교사들이 개인 돈을 들이는 이 보험은 해마다 가입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한국교직원공제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477명이던 교권침해 특약 가입 교사는 지난해 6739명으로 급증했다. 가입자의 75%는 여교사였다. ‘중대 교권침해’라는 용어 조합이 조만간 교육 현장에 새로 편입해 세를 떨칠 듯하다. 학생이 교권을 침해하면 그에 대한 징계 기록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남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수업 도중에 학생이 교단에 드러눕기까지 하는 교실 붕괴 위기 속 고육지책인 것이다. 교육부가 이런 얼개의 대책을 내놓자 벌써 설왕설래는 뜨겁다. 교권 보호는 시급한 문제이지만 학생부에 징계 기록을 남기는 것은 낙인찍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무엇보다 학교폭력 처벌 방안의 실패한 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는 걱정들이 많다. 시행 매뉴얼이 여러모로 학폭과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학폭 처벌의 핵심도 전학이나 퇴학 등 조치를 받은 ‘중대한 학폭 가해자’의 학생부에 징계 기록을 남기는 것. 하지만 학폭은 되레 늘고 있고 관련 행정소송도 덩달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학교폭력위원회에 ‘초동 대처’하는 방법에서부터 행정소송까지 도맡는 ‘학폭 전담 변호사’ 시장이 따로 형성됐을 정도. 학부모들 사이에는 “학폭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전문 변호사나 행정사한테 전화 상담부터 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나돈다. 교권침해 심판을 둘러싼 살풍경이 이제 더 추가될 위기다. 중고교생들에게 학생부는 진학에 절대적인 자료다. 평생이 걸린 중대 기록물에 ‘빨간줄’이 남는다면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이 줄을 이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교사들이 편의점 점원이 되고 있다”고 교육 현실을 통박한 적이 있다. 어떤 순간에도 학교가 교육 상품과 서비스를 팔며 손익을 따지는 곳은 아니어야 한다는 통찰이다. 학생 교육에 백기를 들면서 학생들의 아킬레스건인 학생부로 위협하는 모양새가 아닌지, 말할 수 없이 초라한 교육정책이 아닌지 백번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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