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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민주열사들을 잊지말자

    피와 땀과 눈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투쟁의 나무를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것은 가신 임들이 흘리고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우리곁에 없는 김남주시인이 암울한 시대에 쓴 ‘전사2’의 중간 부분이다. 이 시에는 다음의 내용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은/투쟁의 초기단계에서 죽어갔다/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어떤 사람은/승리의 막바지 단계에서 죽어갔다/이름도 없이 얼굴도없이/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쥐도 모르게 새도모르게 죽어갔다/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모레(10일)는 6·10민주항쟁의 날이다. 녹음방초의 어간에 다시 6월항쟁의 날을 맞는다. 우리는 흔히 해방후 친일파 척결을 하지 못하고 독립지사들을 홀대해온 것을 두고 애국심이 부족한 이승만정권과 친일세력의 발호로 치부한다. 그리고 왜곡된 역사와 그 시대 사람들을 원망한다.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들그러면서 막상 우리는 지금 군사독재 청산과 민주열사들에 대한 추모와 대접을 소흘히 한다. 후세로부터 비판받고 원망들을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세 리잘(Jose Ri Zal)을 기억할 것이다.스페인 관리들에 의해 최초의 아시아 민족주의자로서 기록된 인물, 젊은 의사이자 작가·시인이면서 필리핀 독립운동가,1861년 35세로 스페인 정부군에 의해 총살된 사람, 지금 필리핀에서는 그가 사망한 12월 30일을 법정공휴일로 기념한다. 필리핀 독립운동은 리잘의 처형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리잘은 형장에서유언을 남겼다.“나는 조국의 밝은 새벽을 보지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밝은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들을 잊지 말아달라.” 적당한 강우량과 이상고온 현상으로 올 6월의 신록은 여느해보다 짙고 싱그럽다. 이좋은 계절을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밤사이에 스러져간’이들이다. 그들의죽음을 잊은채 우리는 찬란한 녹음과 햇볕을 즐긴다. 지금 국회에는‘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된 이래 동면상태이고 바로‘민의의 전당’건너편에서는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자식과 형제 남편을 잃은 유가협과 추모연대 회원들이 200일도 넘는,기약없는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또 의문사 관련 회원들이‘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제정’을 요구하며 국민회의당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새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던 세력이고,국민회의에는 수많은‘민주인사’들이 포진한 상태이고, 자민련은 그런 인식을 공유하는 ‘공동여당’이며, 한나라당에도 상당수의‘민주인사’들이 참여해 있다.그런데도 이 법안이 긴 잠에서 깨어날줄을 모르는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민주화 참여의원들 각성을 최근 국민회의 관계자는 이 법률안을 철회하거나 심의를 보류하는 대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하기로 했다한다.‘유공자’를‘관련자’로 바꾸고 5·18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 했던 것처럼 특별법 형식으로 일시 보상금을 주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겠다는것이다. 그 이유는 일부 보훈단체와 자민련, 한나라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라 한다. 보훈단체의 경우 형평성의 이유등을 들어 반대한다 치고,자민련과 한나라당의 반대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 국민회의의 소극적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국시’인 민주주의를 지키다가 희생된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예우를 하자는데 반대할 명분이 무엇이란 말인가.‘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대로 ‘민주화운동하면 3대가 망하는’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국회의원 특히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의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주필 kimsu@]
  • 모차르트 ‘레퀴엠 미사’ 진혼곡(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4)

    ◎검은 가면의 만파식적(萬波息笛) 1.울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다.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진다.짙음만으로 비극성(悲劇性)에 도달하려는 것처럼.그것은 음악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니 태초(太初)부터,지금까지 깔리고 쌓여 오는 것 같다.그렇게 순식간에 음악의 공간이 마련된다. 레퀴엠 아에테르남 도나 에이스.안식,영원한,주소서,그들에게.언제부터 ‘레퀴엠’이라는 단어가 슬픔과 위안을 그 자체로 동일시했던가.언제부터 ‘키리에’라는,‘주님’을 뜻하는 단어가 그 자체 인간 존재 비극성의 명징한 음악적 응축으로 되었는가.라크리모사(눈물),호스티아스(봉헌),베네딕투스(찬양),아뉴스 데이(신의 어린 양)은 또 어떻게? 서양음악의 레퀴엠 전통은 그렇게,‘단어를 음악으로 만들’ 만큼 위대하다.그리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중 가장 인간의 체취로 온습(溫濕)하다. 모차르트,쫓겨난 천사의,인간적인 체취? 왜냐하면,이 작품은,놀랍게도 자기 자신을 위한 진혼곡이다.그리고 이 작품 이래 모든 걸작 진혼곡들은 미사곡이 아니라 비극 자체가 등장인물인 장엄한 오페라로 화한다. 2.어느 날 짙은 안개를 꿰뚫고 검은 가면을 쓴 사내가 모차르트에게 나타난다.진혼곡을 써다오… 그는 죽음의 사자(使者) 같았다. 이 곡은 혹시 나를 위해 쓰라는 것이 아닐까,그렇게 나는 사형선고를 받은게 아닐까…모차르트는 작곡을 하면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는 가난과 방탕으로 병들고 지쳐 있었다.그의 작곡 속도가,원래 빨랐지만,병적으로 더 빨라졌다.미처 악보에 옮겨 적기가 힘들 정도로 악상(樂想)이 유령처럼 어른댔다. ‘돈 때문에’ 오페라 ‘마적’과 ‘티토의 자비’를 마친 후 그는 다시 레퀴엠에 몰두한다.심신이 점점 더 황폐해가고,그는 음악 속으로,진혼곡 속으로 그리고 죽음 속으로 속속 빠져 들어갔다.죽음이 더 먼저 왔다.레퀴엠은 미완으로 남았다.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룬 음악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한 이탈리아 출신의 선배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음의 공포’로 내몰아 살해했다,혹은 독살했다는 푸슈킨-림스키 코르사코프류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시재(詩才)를 시기하여 정지상을 죽이는 김부식의 이야기를 우리 고려사는 품고 있다.‘삼국사기’의 명문장가이자 대학자였던 김부식이 왜 시골 뜨기 시인 동창(同窓)을 선망­질투­증오했을까. 3.그러나 실제 고려사는 훨씬 더 복잡하다.정지상은 혁명적인 예술가였지만 정치적 미망(迷妄)에 사로 잡혔다.김부식은 보수적인 대학자였고,현실주의자였다.‘모차르트 독살’설은 우선 사실과 다르다. 살리에리는 베토벤,슈베르트,그리고 리스트를 가르친 훌륭한 스승이었고 존경받는 오스트리아 황제궁 음악감독이었다.1790년 황제 죠셉 2세가 죽고 새로 부임한 레오폴트 2세가 살리에리 대신 자신을 음악감독으로 써 주기를 바랐던 모차르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재능은 있었으되 말썽꾸러기였던 것.살리에리는 그런 그를 두둔하느라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그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몰랐을 리는 없다.그러나 자신의 제자들 또한,특히 베토벤이 모차르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리라는 것을 몰랐을 리도 없다. 기교만 보자면 모차르트는 놀라운 음악의 신동(神童)이다.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로서 그는,아니 그도,평생 동안 거대한 벽과 싸워야 했다.그 벽은 바로 이탈라이 오페라 부파 음악. 이 음악장르는 이탈리아 본토 뿐 아니라 파리와 빈 등 서유럽 음악중심지에서 그야말로 창궐했다.일반인들은 그 장르가 구사하는 기발한 악상,무엇보다 음탕한 대사를 즐겼지만 모차르트는 달랐다.테너의 고음 선율이 청아한채로 뒤틀릴 때 그는 죽음의 검은 가면을,죽음이 삶 속에 제 모습을 언뜻 언뜻 내보이면서 흘리는 웃음을,어리석은 삶을 너그럽게 포괄하는,비극을 넘어서는,수 천년 나이를 먹은 웃음의 경지를 보았다.그렇다.그는 현대성의,미래예술의 한 핵심을 보았다. 4.모차르트의 부파 풍(風)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코지 판 투테’는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를 차용하고 선망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비비꼬는 이탈리아 청아성(淸雅聲)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독일적 서정의 극치를 구현한다.그렇게 ‘마적’은 부파적인 요소를 최대로 삭제한 채 독일 오페라 음악사의 최고절정에 달하고,최후작 ‘티토의 자비’는 오페라 세리아다. 물론 모차르트 음악은 가장 위대한 인류 유산 중 하나다.‘이탈리아 오페라 부파’라는 벽은 그가 스스로 키운,그렇게 실제보다 더 거대한 벽이고,그의 위대함을 담보해 주는 예술가의,예술의,시련의 벽이었다. 그렇게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한 진혼곡을 남긴다.지상으로 쫓겨왔던 천사가 지상을 떠나며 남기는 유언은,지상적으로 뭉클하다.하나님,이제는 이 창조의 속박을 벗게 하소서.그 유언이 지상에 남은 모든 인간을 위한 만파식적이 된다.살으라,고통받으라,의미를 창조하라… ‘살리에리 이야기’는 35세에 요절한 천재 모차르트를 위한 허구다.그러나 예술가는 더 깊은 진실을 이야기 속에 은유(隱喩) 혹은 상징(象徵)으로새겨 넣는다. ‘검은 가면’이야말로 진실의 핵심을 담고 있다. 모차르트 레퀴엠은 대개 브루노 발터의 연주를 최고의 것으로 친다.그의연주는 모차르트 음악의 한 본질인 일상적 우울의 장려미(壯麗美)를 총괄적으로 보듬고 있다.다만,그것조차 풀어헤치고 절망하는 모차르트,그 절망의 진지함에 기적적으로 묻어나는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의 검은 가면이,카를 뵘의 연주와 달리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불쌍한 살리에리.그는 모차르트보다 6년 먼저 ‘이탈리아에서’태어나 34년을 더 살았다. 1971.녹음,1983 DG 413 553­2 GH 소프라노:에디트 마티스/알토:율리아 하마리/테너:비슬라브 오크만/베이스:카를 리더부쉬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빈 필하모니커/지휘:카를 뵘 ◎레퀴엠,부파란 레퀴엠.‘죽은 자를 위한 미사’ 통상 미사에서 ‘글로리아’(영광송)와 크레도(신앙송)부분이 빠지고 ‘디지레’(진노의 날)부분이 첨가된다.팔레스트리나와 빅토리아,그리고 베를리오즈,베르디,포레가 걸작을 남겼다.브람스 이래 진혼곡은 통상 미사곡과 다른 가사를 사용하거나 기악만으로 구성되면서 더욱 일반화,현대화되었다. 오페라 부파. 일상의 삶에서 소재와 등장인물을 뽑아내는 희극(喜劇)오페라.오페라 세리아의 반대.페르골레시 ‘마님이 된 하녀’,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로시니 ‘세빌랴의 이발사’와 ‘신데렐라’를 거쳐베르디 ‘팔스타프’에서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 마티스(1938∼)는 모차르트,슈트라우스 해석에 능한 스위스 소프라노.하마리(1942∼ )는 헝가리 메조소프라노이다.레퍼토리가 다양하다.오크만(1937∼ )은 폴란드 테너.차이코프스키,모차르트와 베르디까지 소화한다.리더부쉬(1932∼ )는 바그너역으로 너무나 유명한 독일 베이스. 빈 필하모니커.1842년 창단.역대 주요 지휘자는 니콜라이,말러, 바인가르트너,푸르트뱅글러,카라얀,뵘 등. 뵘.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에 정통한 오스트리아 지휘자.그가 지휘한 두 작곡가의 오페라 전곡집이 DG 레이블로 나와 있다.
  • 슈베르트 D.956.(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1)

    ◎눈물 부서져,광휘(光輝)로운…/베토벤 장례식후 유언으로 쓴 4악장/안개,흐느낌 영롱한 눈물 아! 베토벤 죽음의 安息/절정이 쇠한 미완성 아찔한 현기증… 음악 작품에는 작곡가의 혼이 있습니다.그의 삶이 있고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명연주가가 그것을 살려 냅니다.金正煥 시인의 지상 음악감상실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바이올린,비올라,첼로.세 겹 현음(絃音)이 겹쳐 전설같은 안개가 형성된다마치 시작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듯이.비장(悲壯)이 낮고 무겁다. 그러나 짧다.선율이 잠시 흐르다가 흩어질 틈도 없이 현악기들이 갈라진다.바이올린은 길길이 치솟고 첼로는 둔중하게 깔리고,비올라는 양자를 수습치 못한다.무언가 찢어진다.바이올린 음이 제 스스로 분리되어,하나가 아니고둘이다.아니 여럿이다.첼로 음은 무거운 채로 균열되고…. 음악은 그렇게 흐느낌의 생애를 시작한다.현악5중주 D.956번.슈베르트는이 작품을 생애 마지막 유언으로 썼다.1827년 3월 29일 베토벤 장례식에서그는 관을 옮겼다. 2.베토벤은 그에게 평생 거대한 벽이었다.비엔나의 한 카페에 베토벤은 늘같은 자리에 무뚝뚝하게 앉아 있었지만 슈베르트는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하고 더듬거렸었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슬픔의,원흉이 그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매독이그의 몸에 치명적으로 번진 상태였던 것.그런데,어떻게,아름다운 음악이? 그러나 그렇게 음악은 고통의 생애를 ‘고통스러울수록 아름답게’ 액정화(液晶化)하기 시작한다.이듬해 10월 2일 그는 피아노 소나타 세 편 ,하이네시에 곡을 붙인 가곡 여섯편을 라이프치히 출판업자에게 보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위대한 유언에 달하는 걸작이다.그러나 그 모두를 합해도 그가 ‘써 볼 참’이라고 덧붙인 현악5중주 한 편을 능가하지 못한다. 출판업자는 ‘노래’에만 흥미를 보였다.11월 19일 슈베르트는 31세로 숨을 거두고 현악5중주는 22년 동안 연주도 출판도 되지 못하다가 1850년 처음으로연주되고 1853년에 원고가 일부만 출판되었다. 3.슈베르트는,아니 음악은 그 운명을 알고,오로지 아름다움으로써 감내하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2악장 아다지오에서 기적이 일어난다.1악장의 서두,‘공간화했던 시간’이 장중한 주선율로 흐르고 제1바이올린과 첼로음이 묻어난다.그 묻어남은 정확히 눈물의,시야(視野)흐릿함과 자체(自體) 영롱함을 그대로 닮았다. 그렇다.눈물은 언제나 생애의 광경에 묻어난다.그것이 광경을 흐리지만 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들리고 귀는 마음에 가장 가깝고 그렇게 기억의최대 광경이 음악의 선율로 액정화되고 흐른다. 귀가 광경을 보고 눈이 선율을 듣는다.위대한 미완성,위대한 미완성….미완성이므로 더욱 감동적인 그러므로 몸은 지상을 떠나되 음악은 역사 속으로 스며드는,그렇게,미완성이므로 영원히 이어지고 포괄하는 순간이다. 물론 모든 예술이 그렇다.상상력은 손에 잡히지 않고 무한한 광경을 펼친다.조각 예술조차,우리가 손으로 만지기 전에,얼마나 무수한 광경을 펼치고있는가.다만 음악은,그 사실을 다시 예술의 시간으로 가시화(可視化)하며 흐른다. 4.슈베르트 현악5중주,2악장 아다지오.때는 불곰 러시아가 터키를 노리고 숫사자 영국이 그 러시아의 배후를노리던 1827년.제목조차 선율화하는 이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음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펼쳐진다.전쟁의 참상과 인간 존재의 슬픔을 머금고.더욱 광활한 음악의 광경으로. 그 속으로 황혼녘,우리의 가장들이 귀가한다.일터를 찾지 못한,하릴 없는 가장들이.점차 황혼을 닮아가는 그들의 생애와 표정이 음악의 집으로 귀가한다.음악은 다시 묻어나고 무언가,슬픔이,지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반짝이다가 아름다운 희망으로 전화된다. 아,미완성.31세.모차르트보다 4년 더 짧았던 슈베르트의 생애.그러나 누가 그것을 안타까워하겠는가.그의 유언이 이리도 흐릿하며 영롱하고,간절하며 흥건한 것을. 3악장은 베토벤의 위대한 스케르초에 바치는 헌사다.그것은 베토벤의 언어로 베토벤을 뛰어넘으려 했던 자신의 시도가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펴가는 과정의,고백의 헌사다. 그래서,4악장은 슈베르트만의 출발.그러나 음악 안에 이미 죽음의 안식이 깃든다.되돌아오는 론도 무곡(舞曲) 형식 속에 그 형식이 발전한다.그렇게 그는 자신의 음악 속으로가라앉고,아찔한 현기증이 지나면 어느새 지상에 남은 자 벅찬 삶의 무게에 감동하고. 5.그래,이제 알겠다.왜 슈베르트가 (베토벤의) 현악4중주 아닌 현악 5중주를 유언의 형식으로 삼았는가를.현악4중주는 절정과 심화,5중주는 절정이 쇠하는 미완성의 경지고,그런 채로 ,펼쳐짐인 채로,현악기 음악의 끝이다. 현악6중주는 3중주의 2배에 불과한 까닭이다. 그리고,위 음반이 위대한 연주인 까닭도 그 미완성의 경지와 일맥상통한다.하이페츠의 바이올린이 예의 강성한 독재성을 스스로 무마시키며 현악5중주의 세계로 귀가한다.그리고 묻어난다.숱한 광경으로 묻어난다. 피아티고르스키의 첼로가 그런 그를 따스한 자궁으로 받아들인다.프림로즈의 비올라가 그 세계를 가장 겸손하게 주관하면서 나머지 두 무명(?)연주자를 위로 세운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이페츠와 ‘ 백만불 짜리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했던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유언했다.‘내 장례식 때슈베르트 현악5중주 2악장을 연주해다오…’ 놀라운 일이다.2악장에는 피아노가 없는데. □金正煥 시인 약력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 졸업. △‘창작과 비평’통해 시인 등단. △자유실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황색 예수전’등 시집 다수.음악 관련 저술 ‘클래식은 내 친구’‘김정환의 클래식 이야기­음악이 있는 풍경’ 등 △라디오 클래식 음악 해설자 1년. ◎1961.녹음,1988.BMG 7964­2­RG/바이올린:야샤 하이페츠/비올라:윌리엄 프림로즈/첼로: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현악5중주는 현악4중주 악기 구성(바이올린 2대,비올라 1대 첼로 1대)에다 비올라 혹은 첼로를 추가한다. 모차르트가 비올라를,슈베르트가 첼로를 추가한 대표적인 경우.슈베르트 이전에 보케리니가,이후에 본 윌리엄즈가 첼로를 추가했다. 야샤 하이페츠(1899∼1987)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 귀화한 바이올리니스트.세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1911년 데뷔,그 이듬해에 니키쉬의 베를린필과 고난도의 차이코프스키 을 협연했다.1917년 미국 이주 및 카네기홀 데뷔 이후 반세기 넘게 바이올린의 제왕으로 군림했다.그의 전집음반이 BMG레이블로 나와있다.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1903∼1976) 또한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에 귀화한 첼리스트.1921년 소련을 떠나 푸르트뱅글러의 베를린필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했다(1924∼28년).그 후 슈나벨,호로비츠,밀슈타인 등과 실내악 연주 호흡을 맞추다가 하이페츠를 만났다.정명화의 스승이다. 윌리엄 프림로즈(1903∼1982)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이자이에게 배우며 활동하다가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비올리스트.1938년부터 1942년까지 토스카니니의 NBC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 비올라주자로 활동했다.
  • 美 사상 첫 합법적 안락사/오리건주

    ◎유방암고통 8순노인 치사량의 약물 투여 【로스앤젤레스 연합】 의사의 도움을 받는 안락사를 허용한 미국 오리건주(州)법이 발효된 후 처음으로 유방암으로 20년동안 고통받아온 한 80대 노파가 주위의 도움으로 입수한 치사량의 약물을 복용,숨진 것으로 26일 밝혀졌다. 안락사 옹호단체인 ‘컴패션 인 다잉 (죽어가는 이에 대한 동정)’은 이 노파의 신원은 밝히지 않은 채 그가 치사량의 바르비투르 약제를 복용,가족과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30분만에 수면상태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호흡곤란 증세로 평소 즐기던 정원 가꾸기를 할 수 없게 된 이 노파는 자살하기 이틀전 남긴 녹음 테이프에서 의사로부터 자신의 수명이 두 달 정도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나는 그것(죽음)을 고대하고 있다.언제나 적극적이던 내가 앞으로 두달동안 이같은 상태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다.나는 이제 이 모든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유언했다. 노파의 유언에 따르면 그는 ‘참지 못할 고통’ 이 아닌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택한 것으로,주변에서는 그가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안락사법에 따르면 의사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자살 이전에 상담치료를 권유해야만 하게 돼 있어 이 부분에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 “워드로 대신쓴 유언장 본인 서명 있어도 무효”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조용무 부장판사)는 18일 92년 서울 S병원에서 위암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차모씨의 유산 30억원을 둘러싸고 차씨의 언니 등이 낸 유언무효확인소송 항소심에서 “급박한 상황이 아닌한 워드프로세서로 남이 대신 받아적은 유언은 무효”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차씨가 위암으로 입원치료 중이었지만 유언 당일 병원을 걸어서 산책하는 등 상태가 중하지 않았다”면서 “자필로 유언장을 쓰거나 유언을 녹음할 여건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대필시켜 자신의 서명만 첨가한 유언장은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 암울의 시대/80년 배경 드라마 봇물

    ◎SBS 「옥이이모」 운동권 대학생 구속/MBC 「연애의 기초」 언론통폐합을 다뤄/「제4공화국」·「코리아 게이트」선 광주항쟁 등장 5·18 광주민주화운동,언론통폐합 등 80년 신군부및 전두환정권에서 비롯된 암울한 시대배경이 최근 방송 드라마 배경으로 앞다투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는 MBC「제4공화국」과 SBS의 「코리아게이트」.「유신정국」을 그린다는 것이 두 드라마의 애초 목표였으나 방송사간의 시청률경쟁과 때맞춰 불거져 나온 6공비자금 파문으로 드라마 내용이 변질됐다.현실정치와 연관있는 5·6공 세력의 권력찬탈 과정이 드라마의 주요내용을 이루어 「유신」이 실종하고 5·6공 정치세력의 탄생 과정및 억압정치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60년대 시골을 배경으로 한 아역탤런트들의 천연덕스런 연기,풋풋한 추억거리 등으로 관심을 끈 SBS인기드라마 「옥이이모」도 이달 초 17년이란 세월을 건너뛰면서 80년 상황으로 들어갔다.유언비어유포를 감시하는 형사,수배돼 도망중인 대학생,언론통폐합등의 무거운 소재가 이 드라마의무대인 경남의 한 시골마을에 짙게 드리운 것. 특히 지난주 53·54회 방영분은 상구삼촌(주현 분)의 대학생 아들 택모가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서울로 잡혀가는 상황을 다루어 눈길을 끌었다.주현은 『나는 내 아들한테 이승만·박정희때도 맞춰 살았으이까네 전두환때도 맞춰살라고 빌었다.그렇지만 그기 아인기라』며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또한 80년 11월 언론통폐합 당시 아나운서였던 황인용씨의 마지막 방송 내용을 담은 녹음 테이프를 극중에 삽입하기도 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고개숙인 남자」등 화제작들로 유명한 황인뢰 PD가 연출을 맡아 지난 6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MBC 월화 미니시리즈 「연애의 기초」도 제2부(20·21일)부터 80년 말 상황이 배경으로 등장한다.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국 조연출로 일하는 창현(김창완 분)의 방송국에 헌병이 깔리고 해직 기자·PD 명단이 벽보에 붙는 살벌한 상황이 배경이다. 이처럼 80년 정치상황이 드라마의 주요소재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방송가에서는 그동안 「타의반 자의반」으로 묘사할 수 없었던 「소재의 금기」가 깨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그러나 한편에선 「모래시계」흥행이후 민감한 정치적인 사건,특히 80년 상황을 배경으로 쓸 때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얄팍한 상업주의가 최근 연출가나 작가들 사이에 은연중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 유산 상속 않기(외언내언)

    모두가 그럴리야 없겠지만 부모의 유산이 많으면 형제간에 분쟁이 있게마련이다.돈얘기를 하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지 않는가.황금에 눈이 멀면 이성도 윤리도 저버린다.형제가 길을 가다 천에 싼 황금덩이를 주웠다.형제는 분배를 놓고 한동안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연못에 버리기로 했다.형제의 우애를 위해 황금이 없는게 낫다는 결론이었다.선인들의 슬기가 담긴 옛날얘기다. 재산상속은 자칫하면 화의 근원이 된다.우리조상들은 재산상속에 엄격한 룰을 따랐다.분재기또는 분급기란 문서가 바로 그것이다.거기보면 아들 딸에게 똑같이 재산을 상속했음을 알수 있다.완전한 남녀평등이다. 흥미있는 것은 적처(본처)의 소생에 비해 양첩의 소생에게는 그 7분의1을,천첩소생에겐 10분의1을 상속토록 규정하고 있는 점이다.우리국민은 자녀에게 유산물려주는 일에 지나치게 열성적이다.부모들이 자녀에게 엄격하지 못한 점과 함께 이것은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다. 이미 일부에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녀에게 「유산물려주지 말자」는 모임을 만들어 활발히 움직이고 있기도하다.재산의 3분의2 이상을 사회에 환원키로 한 이 모임의 신조는 「돈이 되레 자식을 그르친다」는 것.기독교실업인을 중심으로 교수·법조인·전문직종사자들 2백60여명이 회원으로 돼 있다.매년 연초에 유서를 다시 쓰는게 관례. 평생을 온갖 고생끝에 모은 수십억원의 정재를 장학기금으로 선뜻 기부하는 훌륭한 「보통시민」들을 자주본다.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돈을 기를 쓰고 자식에게 상속하려는 것에 비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연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학원이사장 살해사건은 유산상속에 얽힌 패륜범죄로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맏아들에겐 한푼도 안물려주겠다고 유언한 녹음테이프가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는 것같다.
  • “유언장 작년 폐기뒤 재작성 안해”/학원이사장 피살

    ◎한덕빌딩·해강농수산 오늘 수색 금용학원 이사장 김형진씨 피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성동경찰서는 21일 주변인물에 대한 수사결과 아들 김성복(42)씨의 단독범행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경찰은 또 숨진 김 이사장이 최근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따라 범인 김씨 주변인물에 대한 소환조사를 더 이상 벌이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김씨의 이모부 전천호씨(53)로부터 『김이사장의 부인 김은옥씨가 「지난 88년 김이사장이 처음으로 유언이 녹음된 테이프를 만들었으나 그 내용이 장남에게 불리하게 작성돼 있어 자신이 직접 지난해 여름 남편에게 졸라 녹음테이프를 직접 폐기했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그 이후에는 유언장이 새로 작성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폐기된 유언장은 「금용학원은 5남매의 몫으로 하고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뽑는다」라는 내용으로 큰 아들인 성복씨에게는 불리한 것이었으며 문서와 녹음테이프로 각각 작성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와 함께 김 이사장이 오는 4월 새 유언장을 만들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새 유언장 작성을 앞두고 부채문제로 고민하던 아들 김씨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있다. 한편 김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범행을 하기 며칠전 서울 종로6가 한덕빌딩에 있는 김 이사장의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뒤 살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30분동안 아버지와 다퉜고 이 때문에 심한 충격을 받았으며 아버지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면서 『아버지와 나의 가치관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김씨를 존속살해혐의로 구속수감했다. 경찰은 김씨의 부채관계와 자금거래 내역이 기록된 경리장부를 압수하기 위해 한덕빌딩과 마포구 서교동 해강농수산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22일 실시키로 했다. 경찰은 또 같은날 하오2시 사건현장인 덕암빌딩과 범행에 사용된 흉기등을 버린 한덕빌딩앞 하수구 등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할 계획이다.
  • “언제 무슨일 닥칠지…” 불안한 현대인의 삶

    ◎평상시의 유언 필요성 증대/자필증서 등 5종… 일정형식 갖춰야 효력/가정법률 상담소서 법률자문 현대는 언제 어떻게 무슨일이 닥칠치 모르며 살아가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갑자기 사고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에따라서 모든 것이 처리될 수 있도록 평상시 유언을 해두는 것도 확실성의 한 방법이다. 흔히들 유언은 사람이 운명할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라고만 알기 쉽다.그러나 유언은 17세이상이면 법정대리인의 동의없이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반드시 법이 정한바에따라 일정한 형식을 갖춰야한다. 명지대 법학과 김숙자교수(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는 최근 유언문제에 관한 법률상담이 늘고 있다고 밝히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유언을 하지않은채 사망,고인이 남긴 재산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족간의 갈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교수는 외국의 경우 평소 유언을 해두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활화 돼있기 때문에 만일의 사고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이에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법보다 정에 이끌려 처리하려는 습성이 강해 만약 부모에게 무슨 사고가 난다해도 맏아들 중심으로 대충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다.그러나 가족법 개정이후 재산상속의 방법이 아들과 딸 모두 똑 같아지면서 부모가 유언없이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 고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후 재산상속을 둘러싼 가족간의 분쟁이 일고,법정소송으로까지 발전하는 예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젠 사후에 본인의 뜻에따라 재산이 처리되고 가족간의 괜한 분쟁을 방지할 수 있도록 유언을 생활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유언의 방식은 크게 본인이 직접 글로 쓰는 자필증서·말로하는 녹음·공증인의 필기·낭독으로 꾸미는 공정증서·유언내용을 생전에 비밀에 부치고 싶을때 많이 쓰는 비밀증서·급박한 상황에서의 구수증서의 5종류가 있다. 이가운데 본인이 편한대로 한가지 방법을 택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종류별로 무효가 되지않도록 일정한 형식을 갖췄는지를 최종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는 유언이 있었다해도 요건을 제대로갖추지 않아 무효가 되고 분쟁으로 발전하는 예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여성교육 개척자인 김모박사도 생전 유언을 했었으나 일자와 주소가 없어 유언집행시 문제가 됐던 예는 너무 유명하다.유언에 대한 자세한 법률정보는 가정법률상담소를 비롯한 법률관련 단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 불우아동 장학금에 써달라/헐머니 전재산 기증뒤 자살(조약돌)

    ○…6순 할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복지법인인 한국어린이보호회(회장 이상롱)에 기증한 뒤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5일 상오1시30분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신천2리 89의2 박순희씨(61·여)집에서 주인 박씨가 집에 불을 질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씨는 자살하기 하루전인 4일 하오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국어린이보호회에 전화를 걸어 『내일 우리집에 꼭 들러달라』면서 『내가 없더라도 장독대 소금독을 살펴보라』고 당부했다. 5일 하오 박씨 집을 찾은 어린이보호회직원 서모씨(23·여)등 2명은 장독대 소금독에서 유언이 담긴 녹음테이프 4개,2백50여만원이 든 은행통장,집문서(시가 2천6백50만원상당)등을 찾아냈다. 녹음테이프에는 『외동딸이 잘 찾아오지도 않고 돈을 달라고 하는 등 성가시게 굴어 남은 재산을 불우어린이를 위해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씨는 서울 상계동 모 암자를 운영해 오다 지난 90년 6천만원에 팔아 이 가운데 3천만원을 한국어린이보호회에 기부했었다. 박씨는 경기도 미금시금곡동에 사는 딸(35)을 두고 있는데 평소 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가공할 폭로전술의 부도덕성(사설)

    대통령선거투표일이 내일모레인데 드디어 폭로전술과 상호비방성 유언비어가 이 선거판에 등장하기에 이르렀다.김권과 흑색선전,인신공격과 아울러 그토록 우려하고 두려워했던 가공할 폭로전술이 재벌당으로 불리는 국민당에 의해 증폭되면서 선거의 막바지 혼탁양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국민당이 제기한 「부산기관장 대책회의」내용에 대해 우선 일단의 회의와 관심을 갖는다.그러나 우리가 보다더 관심을 갖는 대목은 이번 폭로를 위한 국민당측의 사전준비과정이 어떠 했는가이다.그리고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비방성 「폭로」와 사실의 확대공개가 갖는 장세혼란과 공명성저해에 대해 보다 큰 우려와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전후의 사정과 좌우의 맥락을 면밀히 살피건대 국민당이 공개한 녹음 테이프 내용은 오랜 시간의 치밀한 기획아래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연출돼온 흑색전략 내지 폭로전술의 결과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국민당이 일찍이 선거 초반부터 예고했던바 중반이후의 이른바 「깜짝쇼」의 일환일 수도 있고 불리한 사태의 반전을 겨냥한 비방성 현실 왜곡일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는 것이다. 대립되는 상대방에 정치적 또는 인격적 상처를 주려는 이른바 폭로를 준비하고 축적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시간과 장소의 선택은 물론이요 폭로에 해당하는 「사실」의 일부분을 낚아올리기 위한 함정이 필요한 것이다.국민당은 이 폭로를 위해 그들이 전술적으로 선택한 특정 시간과 일정한 장소에 이 덫을 드리웠고 여기에 빠져든 어느 과정의 한 요소를 과장 각색 왜곡했음에 틀림없다고 우리는 본다. 국민당이 주장한바 부산지역의 고위 공직자들 모임은 지역행정의 원활한 수행 또는 친목을 위한 사적 모임일수 있다.그리고 그 장소 역시 공개된 대중음식점이었지 비밀한 곳은 아니었다.국민당의 덫은 거기에 침투,설치됐다고 볼수있다.그것을 확대한다면 일개 정당이 폭로와 비방과 상대공격을 위해서라면 공공의 정당및 정부기관은 물론 고도의 보안을 요하는 국가안보 관련기관에까지 덫을 드리우고 육성을 녹취하는등 명백한 위법행위를 자행할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가공할 일이다.정당으로서 부도덕하고 정치인으로서 타락·비윤리적이라 아니할수 없다.가히 한국판 신종 워터게이트 사건이라 할만하다.개탄할 일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사회에 있어 폭로전술과 유언비어는 자연스런 일상의 사회발전과 인성의 향상을 저해하는 가장 파괴적인 언어폭력으로 꼽히는 타기할 대상이다.그것이 이제 금권의 진원지로서 공권력의 수사대상이 돼있는 현대그룹의 국민당으로부터 제기됐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욱 충격을 받는다. 무책임하고 파괴적인 이 폭로전술을 국민당은 즉각 멈추어야한다.더 이상의 폭주를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무용가 정재만씨(이세기의 인물탐구)

    ◎힘차고 광활한 춤사위… 남무의 대가/벽사에 사사한 승무,만개앞둔 꽃망울 연상/“생활이 춤”… 삶의진실 담은 전통 재현 노력/작품구상땐 무작정 거리 헤매… 「구두한켤레」 별명도 □연보 ▲948년3월 경기도 화성출생 ▲72년 경희대 무용학과 졸업 74년 동 대학원 졸업 ▲73∼79년 국립무용단단원 ▲80년 국립국악원 수석무용 ▲80∼87 세종대 무용과 조교수 현재 정재만무용단,남무단대표(정기공연),벽사 춤아카데미 대표,서울예술단 무용감독,한국무용가협 부이사장 「92 춤의해」운영위원,숙명녀대 무용과 교수 국립무용단 무용극 출연 「별의 전설」「왕자호동」「꿈꿈꿈」「시집가는날」등서 주연 해마다 대한민국 무용제·무용예술큰잔치·무형문화재 공연참가 「춤소리」「□」「춤 그 신명」「먼길」「홰」「비천무」「바라춤」「학춤」「승무」「살풀이굿」「학불림굿」「춤4319」「달맞이」「비단타령」「빛과 소리」(88서울올림픽)「자화상」「한량무」「꿈」「광대의 꿈」「북소리사위」「태극선의메아리」「길놀이 마당놀이」뮤지컬 「옹고집전」「양반전」「지신밟기」안무 84년부터 미국·유럽각지역·동남아·호주·남미·이스라엘·연변·북경·상해 백두산 등 각지역 순회공연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중요 무형문화재평가회의 「학무」최우수상,82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4대한민국 무용제 대상,제45회 디종 국제민속예술제 금상 수상 정재만의 춤은 힘차고 광활하다.수평의 폭이 넓고 수직은 하늘로 솟구친다.긴 장삼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획 뿌리치는 무태에는 비구름이 묻어있다.그리고 움직임 움직임마다에 기쁨과 슬픔,고통과 오뇌가 휘몰아치다 잦아든다. 신라시대 화낭을 연상케 하는 씩씩한 기상과 자신감 넘치는 풍모가 정재만 춤의 특징이다.그가 한번 춤추기 시작하면 그 주술적인 힘에 매료되어 관객은 어깨춤이 절로 나거나 한동안 숨을 멈추게 된다. 특히나 그의 「승무(승무)」는 날이 갈수록 깊은 맛을 더하여 푸른 못속에 뜬 연(연))꽃 봉오리가 만개하려는 찰라다.이제 그는 춤을 알게된 나이다. 15∼16년전쯤 어느 사석(사석)에선가 정재만의 스페인춤을 본적이 있다.그때만해도 조택원이후 송범씨가 그 맥을 이어받았을뿐 남성무용수는 다섯손가락이 넘지않았고 그중에서 정재만은 첫째 둘째를 다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풀이」며 「산조」를 한자리씩 추는 자리에서 유독 구둣발로 바닥을 울리며 등장하더니 그는 「투우사의 노래」를 허밍하면서 정열적인 스탭으로 「투우사의 춤」을 밟아나갔다.한국무용을 하는 사람답지 않은 힘찬 스타카토의 리듬이 돋보이는 춤이었다. 테이블의 붉은 카네이션을 양복주머니에 꽂고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물레타처럼 휘두르며 이리저리 소를 유인하는 동작은 마치 영화 「바렌티노」에서 누레예프의 탱고춤이 어울리듯 그늘진 구석없는 화려한 스페인춤이 더없이 어울려보였다. 춤추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그의 이력에는 「송범 문하생·벽사 한영숙전수생·김백봉사사」가 자랑스럽게 따라다닌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그는 일찍이 송범문하에 들어가 전통무의 발디딤새를 배우고 벽사의 「승무」「살풀이」「학무(학춤)」를 전수하여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 전수조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기전 그는 경기도당굿이 성했던 화성에서 태어나 동네에서 벌어지는 굿판에 몰두한 시절이 있었다.하루종일 굿구경에 빠져있다가 배고파 집에 돌아오면 가난이 기다렸다. 옹기를 굽는 집안에서 9남매중 다섯째인 그는 어쩔 수 없이 불우한 소년기를 보내야했고 그래서 차라리 굿판에나 따라다녔으면 하는게 소원이었다. 본래는 부농이었으나 아버지 정수환씨(70세로 82년 작고)가 남의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집안이 망해 광성국민학교를 졸업하던해 서울로 이사,위로 큰형과 세 누나와 뿔뿔이 헤어져 그는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방배동 단칸방에 정착했다. 그때는 어머니(김순림여사·78)가 동작동 국립묘지 앞에서 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아직 중학교에 가지못한 그는 낮에는 집안을 치우고 동생들을 돌보다가 저녁밥까지 지어놓고 동작동까지 나가 어머니의 꽃 모판을 받아이고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그런중에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책을 읽었다.하루는 헌잡지에서 본 조택원씨의가사를 떨쳐입고 춤추는 사진과 일대기를 읽고는 막연하나마 조택원씨처럼 되고싶은 꿈을 꿨었다. 『저앤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은데 어디 양자라도 보내어 공부를 계속하게 했으면』 어머니는 설거지에 밥하고 동생이나 돌보는 아들의 고생이 보기 안쓰러운 나머지 동료 꽃장수들에게 그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후 인천으로 출가한 큰누나의 집에 얹혀살면서 여기서도 낮에는 조카들을 봐주고 밤에는 인천대건중학교,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라벌예고에 진학하면서 가정교사,그러다가 가정교사로 있던 주인집의 소개로 필동에 있던 송범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잔심부름과 청소로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뚜렷한 이목구비에 재빠른 동작을 눈여겨본 송범씨가 그에게 조금씩 춤을 지도했고 그는 한 동작 한 동작을 혼신을 다해 익히면서 스승이 귀가한 후에도 혼자서 밤새도록 마루바닥을 뛰었다.발바닥이 얼얼하게 부어 성할 날이 없었다. ○송범씨 만나 춤과 인연 벽사 한영숙씨의 제자가 된 것은 벽사가 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였다. 폐쇄적인 당시의 무용인맥에서는 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송범씨는 자신의 문하생을 선뜻 벽사에게 허락해주었다.고 한성준옹으로부터 그의 따님이던 한영숙씨에게 전수된 문화재급의 주옥같은 춤들을 남자무용수로서 전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벽사의 유일한 남자제자가 된 그는 「승무」「학무」를 비롯,「살풀이」「산조」「훈령무」「태평무」를 차례로 전수받았고 벽사로서도 부친의 춤의 맥을 잇는다는 일념외에도 그를 친아들처럼 믿고 의지했다. 89년 10월 벽사는 눈을 감으면서 그의 춤의 사군자로 일컬어지던 승무·학무·살풀이·태평무의 보존과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살풀이」「태평무」에 대한 당부를 그에게 녹음유언으로 남겼다. 그는 요즘도 공연을 앞두거나 해외에 나갈땐 경기도 남양주군 남한강가에 모신 스승의 산소를 찾아 돗자리를 펴놓고 춤추는 성묘로 보고하기를 잊지 않는다. 지난해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승무·학무 보존을 위한 벽사춤아카데미를 청담동 그의 무용연구소에 개설,6월에는 「나의 춤모(모)에게 바친다」 추모공연을 가져 무용계에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송범의 춤의 특징인 수직과 대학·대학원의 지도교수였던 김백봉의 수평,벽사의 곡선을 두루 망라하여 춤에서의 원의 완미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있다. 스승이 남긴 승무·학무의 보존을 위해서는 고유의 특성을 훼손·변질시키지 않는데 그치기보다 「삶의 진실에 대한 표현,삶에 대한 유기적 통찰」의 의미를 담아 전통을 재현해낸다는 자세다. 한때 초기의 춤에서 환희와 힘을 과시하면서 극적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의 외롭고 초췌했던 성장기를 은폐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창작무용에 손대기 시작한 80년에 접어들어 그는 씩씩한 우조에서 벗어나 높은 것을 한층 난춰 감동이 배제된 은은한 계면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춤소리」와 「□」은 화려함속에 비감이 느껴지는 수작으로 그는 한작품 작품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시대를 뛰어넘는 불후의 빛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시 그런 각오로 빚어진 「북소리사위」는 북을 한곳에 고정시키지 않고 춤추는 사람이 5북에서 9북을 다루는 파격적 춤사위로 「거동이 정한(정한)하면서도 흥과 멋이 섬화처럼 빛나는 쾌작」으로 손꼽힌다. ○해마다 전국순회 공연 무용계에 남성무용수가 적은 것을 안타까워한 그는 세종대교수시절 졸업생들을 모아 정재만 남무단을 발족,87년 국립극장에서 창단기념공연을 가진이래 숙명녀대로 옮겨와서도 해마다 방학이면 이들을 이끌고 대전·대구·부산에서 당진·서산·합덕에 이르기까지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 순회공연하는등 안성들만의 「훈령무」와 「학무」 「북소리사위」를 펼치고 있다. 73년부터 6년간 국립무용단의 주역으로 뛸때의 파트너이자 경희대 후배인 박순자씨와 75년에 결혼,박순자씨는 무용극 「시집가는 날」의 여주인공을 끝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무용단을 떠났다.자녀는 용진(남·국악고2)형진(여·국민교1)남매. 요즘도 그는 스승들을 사사하던 시절과 똑같이 새벽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연구소에 나가 3시간연습,낮에는 대학강의와 무용감독으로 있는 서울예술단에 출근했다가 하오 6시부터 밤10시반까지 연습,춤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구소로 달려간다.춤구상을 할때면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는 버릇 때문에 「구두 한켤레」란 별명이 붙어있다.한두달에 보통 구두한켤레씩을 해뜨린다는 얘기다. 그의 생활모두는 춤이다.춤과 관련되지 않는 것은 흥미도 관심도 없다.그의 춤의 한 단면만을 본 사람이라면 씩씩하고 남성다운 용모로 인해 그들 솔직하고 사교적인 인물로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한량춤」에서 보이는 「끼」와 가락은 한량기질이 넘쳐보이기도 한다.물론 아직은 40대중반이어서 그의 춤이 달통의 경지라고는 미리 말할순 없을 것이다.다만 견제가 심한 무용계에서 일관된 침묵과 양보,남과 다투지않는 화합의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만 파고든다. 이따금 옹기장이이던 가난한 부친과 그의 굽던 옹기생각에 온몸이 뜨거워지고 아버지 그리움에 곧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그래서 요즘은 아버지를 위한 창작무 「사금파리」를 구상하고 있다. 남모를 추억과 슬픈 그리움 때문일까.그의 춤추는 손가락 끝에선 피가뚝뚝 흐르는 절규,비스듬히 미끌어지듯 내딛는 보법에는 메마른 눈물과 싱그러운 꽃가루가 동시에 흩날린다. 깊이 숙여쓴 고깔과 백합같은 정화,허공 한끝을 헤매는 속눈썹엔 부세의 번뇌가 향연처럼 타오르고 그의 승무는 지금 속절없는 방황을 헤뜨린듯 하얀 소매끝에서 장한이 적멸된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합장)인양」 동중정을 극도로 자제하여 그속에는 탄식 같은 흐느낌을 소리없이 감추고 있다.
  • “국민신뢰 회복의 전기로”/국방부 「사과성명」 발표 안팎

    ◎“일부 부대서 물의일으켜 송구스러워” 최세창국방부장관이 3일 군부재자투표와 관련,『사실여부를 떠나 국방책임자로서 국민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사과성명을 발표하게 된 배경은 군이 14대 총선을 계기로 입은 명예실추를 회복하고 하루빨리 본연의 임무에 정진하도록 하기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이지문중위의 「양심선언」직후 『지금이 어느때인데 군에서 그런일이 있을수 있느냐』고 단호히 부정하던 최장관으로서는 사건이 의외로 확산되자 부정여부를 떠나 국방책임자로서 진화를 위한 입장표명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최장관은 취임초부터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정치인의 군부대방문 금지지시를 내렸으나 총선이후 군이 매도되는 상황에 이르자 후방장병 영외투표는 물론 극약요법으로 군복무중 선거권을 유보하는 것까지 제의했다. 선거권을 유보하는 것은 헌법위반이라는 지적이 국방부 내부에서도 있었으나 현행제도 자체에 불신의 요소가 있다면 이를 과감히 고쳐서 더이상 군이 정치에 이용되는 악습을 막아야 하겠다는 것이 국방당국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장관은 이날 발표하기 전 김진영육군참모총장,한주석공군참모총장 등과 만나 9사단,공군방공포사령부,해병2사단에 대한 조사결과와 지휘책임을 묻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뚜렷한 부정사례를 발견하지 못해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관계자들은 이번 장관의 발표를 계기로 악성유언비어에 말려들지 않고 군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세창국방장관 일문일답 ­의무복무중인 사병에 대해 투표권을 유보하자는 주장은 장관의 개인적 소신인가,군의 의견을 수렴한 것인가. ▲내 개인적 생각이다.군부재자투표가 더이상의 말썽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제도가 어떻겠느냐고 생각해 제의한 것이다.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상보다 진전된 내용이 없는데. ▲사실이 이정도다.수사를 하고난 결과다. ­이것이 최종수사발표인가,중간발표인가. ▲9사단등 해당되는 3개부대 수사는 최종적인 것이다.나머지 제보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것이나 시간이 다소 걸릴 것같다.­인책 범위는. ▲인책 범위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얘기할 수 없다. ­방공포사령관에 대한 인책은. ▲녹음 내용을 들어본 결과 선거법 위반까지 될 정도의 발언은 없었다.지휘관으로서의 소신을 강하게 표명한 것 뿐이다.그러나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아 시정토록 했다. ­이 정도의 수사발표로 사회적 파문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앞으로도 제보 내용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언론의 성격상 제보자의 신변보장을 위해서는 익명으로 표시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익명 제보자를 일일이 수사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발표내용 수준을 놓고 국방부와 육군간에 이견이 있었다는데. ▲그 말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번 문제로 사표를 낼 용의는 없는가. ▲언제든지 책임을 지고 물러날 용의가 있다.
  • 「유언신탁」 국내 첫 서비스/유언장 보관·재산상속등 처리

    ◎제일은 18일부터 제일은행은 국내 처음으로 생전에 유언장을 보관관리하고 사후 이를 집행해주는 유언신탁 서비스를 18일부터 실시한다. 서비스내용은 개개인의 사정에 맞게 유언서를 자필·공증·비밀증서·녹음등에 의해 작성하도록 도와주며 이를 금고에 보관했다가 안전하게 상속인에게 전달해 준다. 또 유산은 유언서에 따라 신속히 분배·집행해준다. 유언신탁은 만17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며 국내의 여행및 출장,자가운전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가입비용은 보관수수료 3만원에 매년 1만원씩이다. 유언집행시에는 기본수수료 30만원에 재산액에 따라 ▲상속재산액이 1억원미만이면 이의 1천분의 5 ▲1억∼2억원은 1천분의 4 ▲2억원초과시는 1천분의 3을 추가부담한다.
  • 「보라매 행사」 파장과 여·야의 대응

    ◎야당집회 “불법여부” 논란가열/야공세에 맞서 위법성 적극 부각/민자/「바람몰이작전」 역효과 우려,고심/평민 시·군·구 의회선거 후보등록이 시작된 가운데 9일 평민당이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수서규탄대회」를 강행,정당의 선거전 개입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정당공천이 배제된 주민자치 선거가 초반부터 혼탁해지고 있다. 평민·민주당은 선관위의 불법 유권해석에도 불구,전국순회집회를 강행한다는 방침이어서 선거기간중 여당집회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둘러싼 정부·여당과 야당의 신경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야당공세에 일체 대응을 않던 민자당은 막상 보라매집회가 열리자 이를 비난하는 성명과 함께 집회 및 집회광고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나섰으며 선관위도 집회광고가 위법이라는 유권해석과 함께 집회 자체의 불법여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야는 이번 기초지방의회 선거에서 특히 비교적 지역색이 덜한 서울 등 수도권 장악이 앞으로 이어질 광역선거·국회의원선거 등 주요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어 수도권에서의 일대 격돌이 예상되고 있다. ○…민자당은 9일에도 계속 정당불개입의 공명선거 원칙을 고수했으나 야당의 「바람몰이작전」을 방관만은 하기 어렵다는 판단아래 수서규탄대회의 불법성과 규탄내용의 허위성을 강조. 민자당은 중앙당에 부정선거 고발센터를 운영하면서 야당집회 등의 위법성 여부를 후보 개인차원이 아니라 정당차원에서 적시키로 하고 우선 선관위의 유권해석 의뢰 공세를 통해 야당 바람을 잠재우고 위법성이 심한 경우는 사직당국에의 고발도 적극 검토한다는 자세. 또 이날 「평민당은 각성하라」는 이례적으로 강도높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보라매집회를 비난한 것처럼 야당측의 유언비어성 폭로공세에는 적극 대응키로 결정. 김윤환총장도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기초선거에서 정당개입이 지양되어야 하는 이유와 함께 공명선거 의지를 적극 알린다는 계획. 민자당은 수도권 선거전의 중요성을 감안,9일 김총장 주재로 서울시 지구당위원장회의를 열었으나 기존 방침대로 정당간여를 최대한 억제한다는 전략을 재확인. 이날 회의에서 김수환·김정례위원장 등은 『법을 지켜 철저한 정당불개입 원칙을 지킨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선거결과가 어려워진다』면서 『여야를 불문,선거법을 어기는 사람은 처음부터 엄격히 처벌해야 된다』고 당지도부에 요청. 그러나 박범진위원장은 『과거 선거에 익숙해진 운동원들은 후보가 활동비라도 주길 원하므로 그것이 불필요하다는 홍보가 필요하다』고 중앙당의 「실탄지원」 여부를 거론. 민자당은 수도권 공략을 위해 오는 13일부터 11회에 걸쳐 대표 및 최고위원 등 주요 당직자들이 나서 노동·종교·농림수산·문화예술·체육계 등 1백17개 직능단체회장단 7백여명과 연쇄간담회를 갖고 당의 공명선거 추진의지를 설명할 예정인데 이러한 간담회 자체가 정당간여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평민당은 9일 열린 보라매집회를 기폭제로 삼아 수서비리 규탄 순회집회와 당원 단합대회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해 「황색돌풍」을 일으킨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으나 보라매집회의 성공여부에 대한 자체평가와 선관위의 위법성에 대한 유권해석 등을 고려해 세부일정을 재조정할 전망. 이는 수서비리에 당소속의 이원배 수석사무차장과 김태식 총재비서실장이 연루된 마당에 선거의 쟁점으로 활용하는데는 한계가 있는데다 민자당이 ▲선거기간중 당원 단합대회 ▲당수뇌부 지역방문 등을 자제하는 「김빼기 작전」으로 나올 경우 평민당의 「바람작전」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 평민당측은 이날 전날부터 눈·비가 오는 등 악천후를 감안,군중 동원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 대비해 대회장 연단을 운동장 안쪽으로 당겨 설치하는 등 모양새 갖추기에 고심했으나 이날 모인 군중은 역대 평민당 보라매집회에 비해 가장 적은 수준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정도. 약 3만평의 공원운동장을 3분의 2가량 메운 이날 군중들은 하오3시15분쯤 김대중 총재가 입장하자 「김대중」을 연호했고 김총재의 연설도중에도 간간이 열띤 박수를 보내기도 했는데 평민당측 관계자들은 『악천후 때문에 생각보다 적은 청중이 모였다』고 다소 불만족스러운 표정. 이날 주최측은 군중수가 몇명이나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회피했는데 지난해 10월 「보안사 민간인사찰 규탄 야권연대집회」 때보다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5만명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중론. 평민당측은 중앙선관위측이 집회내용중 지자제선거에 대한 내용이 포함될 경우 위법이라고 사전경고한 점을 의식,이날 집회가 향후 「수서규탄 전국순회집회」 일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 이 때문에 평민당측은 이날 대회장 상공에 수서비리 규탄 내용의 20여개의 애드벌룬을 띄웠고 대회장 곳곳에 황색플래카드를 내걸었으나 지자제와 관련된 문구는 삼가. 김대중 총재는 연설에서 노태우대통령에게 수서사건과 관련한 TV토론을 제안하면서 『노대통령이 수락하면 지금 계획중에 있는 수서규탄에 대한 전국유세를 중지할 용의가 있다』고 한발을 빼는듯한 의사를 밝혀 하루에 2∼3개 도시를 누비고 다닌다는 자신의 순회집회 일정을 재조정할 것인지 여부가 주목. ○…민주당은 『수서비리와 연루된 정당과는 장외집회를 함께 갖지 않겠다』며 보라매집회의 연사파견을 거절한데 이어 당초 연사로 참석키로 했던 이우재 민중당 상임대표도 이날 상오 돌연 불참을 통보해옴에 따라 평민당 색깔만 두드러진 느낌. 이날 다른 야당들과 재야단체들이 모두 참여를 외면한 것과 달리 평민당과 「물밑 교감」을 갖고 창당을 서두르고 있는 친평민계 신당인 신민주연합당(가칭)의 이우정발기 준비위원장이 연사로 나서 평민당을 측면지원. ○…중앙선관위는 이날 하오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평민당의 수서규탄 집회가 향후 선거법 위반여부의 판단기준이 된다는 차원에서 김유수 행정관리담당관을 반장으로 중앙선관위 7명,서울선관위 직원 17명 등 모두 24명을 파견,집회전반에 걸친 모든 상황과 자료를 수집. 중앙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이들 조사반원이 수집한 비디오화면·연설녹음·유인물내용 등을 철저히 검증해 선거법에 저촉되었는지 여부를 가려내겠다』고 중요성을 강조.
  • 진로 또 내분… 이복형제 정통성 시비

    ◎장 명예회장 적자확인소 제기 배경/고 장회장­현회장 생모 혼인취소 청구/경영권등 소외되자 지분찾기 반기든 듯 진로그룹의 경영주 형제간에 경영권을 둘러싼 내분이 발생,진로그룹은 6년만에 또다시 경영권 싸움에 휘말리게 됐다. 장봉룡 진로그룹 명예회장(41)은 28일 어머니 이신주씨(86)명의로 현 회장인 장진호씨(38)의 생모 김영석씨(72)와 창업주인 고 장학엽씨간의 혼인취소 심판청구 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장 명예회장을 대신해 청구서를 낸 부인 서태선씨(39)는 『장 명예회장이 적자임을 밝히기 위해 우선 심판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해 주식수에서 절대적인 약세에 있는 장 명예회장측이 일단 「정통성시비」로 선제공격에 나섰음을 밝혔다. 장 명예회장측은 또 이날 상오 (주)진로 본사에서 열린 제38기 정기주주총회에 대해서도 결의무효 및 부존재확인소송을 낼 계획이어서 이날의 소송제기는 경영권을 둘러싼 잇따른 법정싸움의 시작에 불과한 인상이다. 진로그룹은 장학엽 창업주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뒤 현 회장의 사촌형인 장익룡씨(현 서광회장)가 그룹을 이끌어 왔으나 지난 84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장봉룡·진호형제가 공동으로 장익룡씨를 몰아내 당시 심각한 경영권 분규를 겪었다. 이후 형제는 그룹을 완전 장악,장진호회장이 경영을 전담하고 형인 봉룡씨는 명예회장직을 맡는 체제를 유지해 왔다. 봉룡씨는 실권은 없으나 회장실 규모·봉급 등 각종 예우에서 회장과 같은 대우를 받아 처음에는 명예회장직에 만족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실질적인 「결재권」을 요구하는 형과 이를 반대하는 아우사이의 갈등설이 심심치 않게 나돌았으며 올 초에는 명예회장을 지지하는 일부 임원들이 쫓겨나기도 했다. 장명예회장이 뒤늦게 실권을 요구하고 나선 배경은 적자·맏아들이라는 신분외에도 진로의 사세확장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고 사세확장이 많은 경영부실 요인을 갖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주위에서는 보고 있다. 힘을 합쳐 사촌형을 몰아냈던 이복형제가 이제는 자신들끼리의 싸움에 빠져든 셈이다. 한편 장진호회장측은 창업주가 임종시 현 회장에게 경영권을맡긴다는 유언을 했고 이 내용을 녹음하는 등 「증거물」이 충분하기 때문에 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넘길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장 명예회장이 이날 법원에 나오지 않은 점을 들어 소제기가 본인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면서 형제간에 원만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윤보선 전 대통령 영결식 엄수/아산 선영에 안장

    고 윤보선전대통령의 영결식이 23일 상오9시30분 고인이 생전에 다니던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안동교회에서 가족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미망인 공덕귀여사(80)와 큰아들 상구씨(43) 등 유족 60여명과 박준규국회의장,이일규대법원장,이승윤부총리,최규하전대통령,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김종필민자당최고위원 등 각계인사 6백여명이 참석했다. 유경재목사는 집례로 거행된 영결식은 김관석목사의 설교와 고인의 약력보고,이부총리ㆍ김상협대한적십자사총재의 조사,고인의 육성을 담은 녹음테이프 청취의 순으로 1시간30분동안 열렸다. 고인의 유해는 영결식을 마친 뒤 안국동로터리∼시청앞∼삼각지∼반포대교를 거쳐 선영인 충남 아산군 음봉면 동천리에 도착,이날 하오2시쯤 안장됐다. 전국 관공서와 공공단체는 이날 상오7시부터 하오6시까지 조기를 게양해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이날 장례식은 당초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맞춰 국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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