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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껴라… 그러나 진짜 뛰어넘는 창조성 지녀라

    베껴라… 그러나 진짜 뛰어넘는 창조성 지녀라

    요즘 ‘카피캣’(copycat)이 산업계 화두다. 단초는 지난 3월 애플의 ‘아이패드 2’ 발표 자리였다. 당시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삼성전자를 ‘카피캣’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자사 제품을 베껴 유사 상품을 만들었다는 게 이유다. 지난 18일엔 지적재산권 침해 혐의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애플은 소장에 ‘삼성은 자신만의 기술과 스타일로 신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애플의 기술과 사용자 환경, 스타일을 베끼는 것을 선택했다.’고 썼다. 물론 애플의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이 소장에서 삼성과 애플 두 당사자를 빼면 카피캣의 정의와 그럴싸하게 맞아떨어진다. 다만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빠졌다. 모방을 하되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것. 모방만 하고 창조성이 결여됐다면 그건 ‘짝퉁’에 불과하다. ‘카피캣’(오데드 센카 지음, 이진원 옮김, 청림출판 펴냄)은 창조적 모방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기업과 개인이 남다른 시각으로 체계적인 모방 전략을 수립하고, 나아가 시장에서 살아남도록 돕는다. 일각에선 애플의 이 같은 반응을 두고 스마트폰 후발 주자인 삼성의 맹추격에 애플이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라 보기도 한다. 바로 이것, ‘오리진을 훌쩍 뛰어넘는 창조적 모방의 기술’을 일컫는 용어가 카피캣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3대 화가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라파엘로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는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로 수많은 혁신적 창작품을 남겼다. 반면 라파엘로는 선배 화가들의 아이디어와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모방형 화가’였다. 후대 미술사학자들은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외려 르네상스 미술을 완성한 화가로 라파엘로를 꼽는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턴도 자서전에 “내가 한 일의 대부분은 남이 한 일을 모방한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혁신 기업의 대표 주자로 언급되는 월마트의 창업자가 한 말로는 다소 뜻밖이다. 실제 월턴은 브라질 업체를 모방해 백화점과 슈퍼마켓을 결합한 하이퍼마켓을 미국에 열었다. 그는 녹음기를 들고 다른 할인점 최고경영자들을 만나서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저자는 “모방이 기업과 개인의 생존과 번영에 혁신만큼이나 중요하며,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혁신을 실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모방과 혁신을 흑백 논리로만 보지 말고, 서로 보완해 시너지 효과를 내게 하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맥도널드, 한국의 이마트 등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한 ‘창조적 모방가’의 사례들도 제시한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푸치니의 ‘토스카’ 눈으로 즐기세요

    음악평론가 안동림씨는 저서 ‘내 마음의 아리아’에서 “푸치니의 토스카는 눈으로 봐야 할 오페라”라고 말했다. ‘오묘한 조화’(Recondita armonia·1막),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2막), ‘별은 빛나건만’(Elucevan le stelle·3막) 등 오페라와 담을 쌓은 이들도 들어봤을 법한 중독성 강한 아리아들이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의 ‘토스카’에 담겨 있다. 하지만 안씨의 말처럼 토스카의 고갱이 같은 아리아를 CD로만 빼먹는 것과 직접 무대를 보는 즐거움은 비교할 수 없다. 서울시오페라단이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리는 ‘푸치니’를 놓쳐서는 안되는 까닭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이 2007년부터 3년에 걸쳐 ‘베르디 빅5’ 공연을 통해 원작에 충실한 해석에 장점이 있음을 입증한 것도 기대치를 높이는 대목이다. 박세원 단장은 “베르디에 이어 푸치니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베르디의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특유의 색채를 잃지 않은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푸치니의 또 다른 작품 ‘자니 스키키’도 7월에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토스카는 가수들에게 부담스럽다. 오페라팬들이 남자 주인공(카바라도시)의 아리아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버전에, 여주인공(토스카) 노래는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녹음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카바라도시는 테너 박기천이, 토스카는 소프라노 임세경이 맡았다. 박기천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에서 올 시즌 ‘투란도트’의 칼리프 역과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에 잇따라 발탁되기도 했다. 임세경은 지난해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극장에서 ‘아이다’의 주인공을 맡아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라는 평을 받았다. 2만~12만원. (02)399-1783~6.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슈베르트 팬이세요 이남자 놓치면 후회

    슈베르트 팬이세요 이남자 놓치면 후회

    거장의 후광이 불편할 때가 있다. 이미 ‘일가’를 이뤘는데도 ‘아무개의 제자’란 이유로 평가절하되는 경우다.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38)도 한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체코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알프레도 브렌델(80)의 애제자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루이스는 축구와 비틀스, 사이먼 래틀(독일 베를린 필 음악감독)의 도시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전형적인 리버풀의 노동자 집안이라 넉넉하지 않았지만, 4번째 생일에 장난감 피아노를 선물 받았다. 가정형편상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피아노 교사가 없어 첼로를 먼저 잡았다. 점심시간에 홀로 피아노를 두들기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맨체스터의 체담 음학학교에 들어가 제대로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된 것은 열네 살 때의 일이다. 늦깎이인 셈이다. 런던 길드홀 음악원에서 브렌델 문하(門下)에 들어가면서 루이스의 인생이 달라진다. 좀처럼 제자를 두지 않는 꼬장꼬장한 노장 피아니스트에게 발탁된 것은 양날의 칼. 빨리 주목을 받았지만, ‘브렌델 복제판’이란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음반부터 까다로운 슈베르트의 후기 소나타를 녹음한 데 이어 베토벤 소나타 전집 녹음 등 뚜벅뚜벅 나간 끝에 스승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내로라하는 슈베르트 해석가로 우뚝 섰다. 오는 2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루이스의 첫 내한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다. 루이스는 “아무런 선입견이나 기대 없이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경험하고 싶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5번 C장조와 제17번 D장조 등 전공인 슈베르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루이스는 “C장조 소나타는 두 악장만으로 구성돼 있는데, 끝에 가서 해답을 주지 않고 우리를 의문에 빠뜨린 채 남겨 놓는 것이 슈베르트 작품의 전형”이라면서 “슈베르트는 종종 우리에게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고 말했다. 슈베르트 팬이라면 그의 해석이 더 궁금해질 터. 3만~10만원. 1544-8117.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길섶에서] 보이스 피싱/박홍기 논설위원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000-000’ 번호가 찍혀 있다.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이 “○○은행입니다. 어제 ○○백화점에서 구입한 198만원어치 상품의 결제가 오늘 이뤄졌습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다시 말해 달라고 하자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같은 말을 반복한다. 순간 당황했다. “백화점에 간 적이 없다.”고 하자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적이 없으신지요. 아니면 누군가 신용카드를 위조해 쓰고 있나 봅니다. 신고해 드리겠습니다.”라며 한술 더 뜨는 게 아닌가. 하도 사무적으로 말하는 통에 “잠깐만요.”하고 카드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어지는 말, “카드 번호를…” ‘보이스 피싱’ 너무나 그럴싸해 낚아채이기 직전까지 갔던 것 같다. “연락처를 달라.”고 하니 태연하게 “12번 김○○을 찾아달라.”고 말한다. 연결될 턱이 없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보이스 피싱에 잠시나마 자연스럽게 걸려들었다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낚였다면, 끔찍하다. 헛똑똑이가 따로 있나 싶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백남중씨 “장애인 IT교육은 재활 수단…강사·강좌개발 지원 늘려 줘야 …”

    백남중씨 “장애인 IT교육은 재활 수단…강사·강좌개발 지원 늘려 줘야 …”

    그는 정보기술(IT) 분야 ‘개안(開眼) 전문의’다. 실명한 눈을 뜨게 해 주듯 컴맹인 시각 장애인들에게 정보화의 신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의 백남중(55) 정보화교육팀장. 시각 장애인들은 그를 이렇게도 소개한다. “길 가는 시각 장애인 아무나 붙잡고 ‘백남중’씨를 혹시 아느냐고 물으면 열 중 아홉은 ‘당연히’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시각 장애인들에겐 대부 같은 존재다. 1995년 본인이 인터넷 세상에 처음 눈뜬 직후부터 발품을 팔아가며 장애인들의 컴맹 탈출 교사를 자처해 온 이다. 20일 제31회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서울 상일동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백씨를 만났다. 정부의 시각장애인 정보화 지원 교육은 1999년에야 시작됐다. 하지만 백씨는 이미 1996년 국내 처음으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교육을 시작했다. 후원자도 정부 지원도 없던 시절이었다. ●정부보다 먼저 장애인 인터넷교육 “막연히 ‘필드’가 좋아서 사회사업가가 됐는데 16년째 IT교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어요.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저보다 학번이 앞선 분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석사학위 논문도 포기하고 당시 지도교수였던 김영모 중앙대 사회사업학과 교수 추천으로 복지관에 입사한 게 1982년. 지금은 장애인복지관이 전국 약 150개로 늘어났지만 당시만 해도 두 번째로 생긴 복지관이었다. 처음엔 재활분야에서 점자책과 녹음도서, 흰지팡이 같은 보조공학기기를 자체 제작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정보화교육에 손댄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였다. “1995년 점자 관련 정보를 얻어간 삼성 연구원이 답례로 인터넷 모뎀 접속번호를 귀띔해 주고 갔어요. 그때만 해도 인터넷 접속이 쉽지 않은 때였죠. 토요일 새벽에 어렵게 접속이 됐는데 세상에…, 미국 국회도서관 등 해외 점자 자료가 어마어마한 거예요. 정신없이 모았죠.” 그리고 1996년 6월 ‘장애인과 인터넷’이란 책을 펴냈다. 장애인 유형별로 인터넷 접속법, 유용한 사이트를 모아 놓은 책이었다. 책을 쓰자 주위에서 교육 요청이 쇄도했다. 서너명을 모아 놓고 인터넷 1박2일 강좌로 교육을 시작했다. 강사료도 따로 받지 않았다. 요즘처럼 시각 장애인용 스크린 리더(화면낭독기) 프로그램도 없던 시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타자연습부터 시작해 도스, 이메일, 내 컴퓨터, 음악듣기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면 CD굽기를 비롯해 멀티미디어 교육을 했어요.”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간 장애인은 1000여명, 그중엔 전숙연 한빛맹학교 교사처럼 다른 장애인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는 이들도 많다. 장애인에게 인터넷 교육은 무슨 의미일까. “결국엔 직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반인은 얼마든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도 특히 시각 장애인에겐 높은 벽일 뿐이고, 정보 격차는 여기서 시작된다. “장애인 정보화교육은 그 자체도 목적이지만 직업재활의 하위수단으로 봐야 합니다. 그거 아세요. 모든 장애인의 꿈이 세금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맹학교에서 안마 배워서 안마사 하는 거, 마누라 살 대고 사는 것도 지겨운데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거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직업선택권이 없었던 장애인들이 재활훈련을 받고 원래 직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원래 정보화교육의 목표라는 것이다. ●장애인 IT교육 예산 매년 줄어 그는 IT분야에서도 장애인 직업을 따로 구분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에선 이미 80년대에 장애인들도 일하고 있었다. 그 시절 미국엔 ‘정보 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선언도 있었다. 어떤 매체로도 장애인의 정보 격차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의 표현이었다. 장애인 직업권에 대한 우리나라의 ‘몰개념’을 설명해 주는 일화가 있다. “80년대 중반, 독일 맹인 법률가협회에서 저희 복지관으로 편지 한장이 날아들었어요. 한국의 시각장애인 판·검사들과 교류를 하고 싶으니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었죠. 그런데 한국에 그런 사람이 어딨었겠어요.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은 수강생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한다. 숙박료는 3주일에 4만원. 최근까지 단돈 1만원을 고수했지만 예산상 피치 못하게 올렸다. 현장 사회복지사들의 의욕과는 정반대로 장애인 정보화교육 예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취약계층 정보화지원 사업에 포함되는 장애인 IT교육은 사업을 주관하는 정보통신부가 행정안전부로 통합되면서 사업이 대폭 쪼그라들었다. 예산도 매년 줄어 지난해 64억원에서 올해 56억원으로 삭감됐다. 그나마 지자체와 매칭펀드 형식으로 바뀌면서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들이 취약계층 사업에 관심을 쏟을 리도 만무하다. 전국 147개 복지관에서 월 80시간씩 교육을 진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행안부 역점사업인 전자정부 사업에 올해만 1304억원을 쏟아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다 보니 강사 보수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교육 프로그램의 수준도 나날이 낮아지는 실정이라고 백 팀장은 답답해했다. “지자체에서 강사료를 10개월치만 줘서 매년 1~2월은 강의를 못해요. 장애인들의 항의가 빗발치죠.”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게 강사의 질인데 한달 실수령액 130만원씩 받고 주당 20시간씩 꼬박 교육하라니 외면받는 게 당연지사다. ●지자체, 강사 양성·관리 외면 “지난해 여교사가 출산휴가를 들어가서 서울시 담당부서에 대체교사를 요청했더니 ‘공익요원으로 대신하세요.’라고 합디다. 어이가 없어서 면전에 대고 욕을 퍼부었어요.” 1600만명이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에 장애인의 스마트폰 활용률은 10.6%. 때문에 스마트폰 활용 교육 계획도 다 짜놨는데 예산이 없어 두손만 비비고 있다. 백 팀장은 “예산을 내려주는 16개 시·도는 복지관 교육장 관리만 하지 강사 양성·관리는 외면한다.”면서 “사업 총괄교육을 짜는 행안부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이 강사·강좌 개발 지원을 확충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백 팀장은 윈도부터 마우스 없이도 모든 기능을 사용한다 .복지관 컴퓨터, 집 노트북까지 총 4대가 모두 맹인용으로 세팅되어 있단다. “내가 먼저 기능을 숙지해야 그 감각으로 교육할 때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전해줄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그는 영원한 시각 장애인들의 IT선생님이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돈 찾아오라고 시켰나요?”···이것이 신종 보이스피싱

    “돈 찾아오라고 시켰나요?”···이것이 신종 보이스피싱

     “여기 농협인데, 혹시 돈 찾아오라고 시켰나요?”  이같은 유사한 전화를 받으면 금융전화사기(보이스피싱)임을 의심해야 한다.  부산체신청은 14일 “돈을 찾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느냐.”고 전화를 한 뒤 계좌를 이체하도록 해 돈을 빼돌리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을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이 보이스피싱은 지난 8일 오후 3시30분쯤 부산 화명동우체국에서 처음 일어났다. 당시 사기에 걸려든 안모(49)씨가 3250만원을 사기범들에게 넘겨 주기 직전에 우체국 직원들의 기지로 피해를 막았다.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안씨는 이 날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농협이라고 사칭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사기범은 “여기 농협인데, 000씨라는 분이 주민등록증과 통장을 가지고 돈 850만원을 찾으러 왔는데 혹시 돈 찾아오라고 시켰나요?”라고 물었다.  안씨는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하자 사기범은 “아무래도 의심이 돼 확인차 전화를 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 같으니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새로 통장을 만들어 돈을 계좌이체 하세요.”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안씨는 우체국에 도착하기 전에 경찰서를 사칭한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에서 “조금전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접수했다. 피해자의 신상에 대한 녹음을 해야 하니 통장거래은행과 입금금액을 알려달라.”고 했다.  안씨는 조금 전에 농협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터라 의심없이 “00은행에 3250만원이 있다.”고 말해주고 우체국에 도착해 이들이 시키는대로 통장를 만들고 계좌이체를 하려던 중이었다.  그러나 일을 보면서 계속 전화를 받고 있는 안씨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조창원(54) 우체국장이 보이스피싱 같다며 거래를 중지시키면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안씨는 “농협에 이어 경찰서에서 전화가 잇따라 와 믿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동안 알뜰하게 모아 둔 돈을 한순간에 날릴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산체신청 관계자는 “올해 들어서만 우체국 창구에서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은 사례가 10건 1억600여만원에 달할 정도로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정엽 “7인에 든 것만으로 제겐 1등”

    정엽 “7인에 든 것만으로 제겐 1등”

    “7인의 가수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 제 자신에겐 1등이나 마찬가지죠.” 가수 정엽(34). 요즘 그는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정엽으로 익숙하지만, 가요계에서는 4인조 남성 보컬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리더로 더 유명하다. ‘나가수’의 첫 탈락자라는 수식어가 다소 불편할 법도 하지만, 9년 차 가수의 내공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지난 5일 서울 논현동 녹음실에서 정엽을 만났다. →가수 생활 9년 만에 ‘스타덤’이 뭔지 확실히 느꼈을 것 같다. -팀보다 개인 섭외가 더 많아졌고, 생애 처음으로 CF 섭외도 들어오긴 했다.(웃음) 제 개인 블로그에 50~60대 분들까지 글을 올려주시고, 회사에도 응원하는 전화가 폭주해 참 신기하다. 지켜봐주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생각에 자극도 되고,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나가수’에 출연한 이유가 뭔가. -호기심이 가장 컸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왜 날 섭외했지?’하는 생각에 갸우뚱했다. 처음엔 일곱 명의 가수가 나오는데, 노래가 미션으로 주어진다는 말만 들었다. 음악 위주의 방송이라면 새로운 도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바이벌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부담감이 컸을 것 같은데. 인지도 면에서도 가장 불리하고. -김범수씨가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가수 경력은 훨씬 길다. 즉, 나는 가장 후배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 편했다. 많은 분들이 모르기 때문에 떨어져도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부담감이 훨씬 덜했다. 그래서 더 긴장하지 않고 나름대로 무대를 즐기려고 했다. 나로서는 전혀 잃을 것이 없는 게임이었다. →그러면 얻은 것은 뭔가. -가수로서 새로운 무대 경험을 했다. 앞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음악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가수로서 ‘나가수’의 흥행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좋은 무대를 보고 열광하는 것은 가수나 대중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 중에 누군가는 탈락되어야 한다는 긴장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수들끼리는 섭외 단계부터 경연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예를 들어 김건모라는 ‘국민 가수’에 대한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방송이 나간 뒤 생각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워 분위기가 그렇게 된 것 같다. →가수의 서열화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 실제로 김건모의 재도전 등 탈락을 둘러싸고 논란도 많았는데. -물론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상식적인 것에서 살짝 변형된 것이 이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 김건모씨가 탈락했을 때 출연자들도 너무 당혹스러웠다. 나는 오히려 김건모씨가 재도전을 결정한 것이 큰 용기라고 생각한다. 가수로서 재도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을 안고 가야 하기에 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던 것 같다. →본인은 재도전에 응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물러나야지 또다른 가수가 멋있는 무대를 꾸며줄 것이고, 그것이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래가 아쉬웠다거나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면 모르겠는데, 편곡도 좋았고 나의 무대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후회나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았다. →주현미의 ‘짝사랑’이나 윤도현밴드(YB)의 ‘잊을게’는 솔(soul) 창법을 주로 구사해 온 정엽에게는 좀 불리한 미션이 아니었나. -사실 처음에 미션곡을 받을 때 어느 정도 가수의 스타일이나 자기 생각이 반영된 곡 중에서 고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복불복’ 게임이었다. 솔직히 두 곡 모두 난해하고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가수들도 똑같은 선상에서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선곡한 것이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다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특별히 도전해보고 싶은 노래가 있었나. -한영애씨의 ‘누구 없소’나 김건모씨의 노래를 해보고 싶었다. 가수로서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잘할 수 있는 곡도 있고, 잘 어울릴 것 같아도 불편한 곡이 있게 마련이다. →‘나가수’를 계기로 가요계 흐름이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한번에 가요계 패턴이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인식이 서서히 스며들기를 바란다. 쉽게 타오른 관심은 쉽게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대 위의 모든 가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래하면서 퍼포먼스를 하는 아이돌은 능력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가요계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다양하게 발전했으면 좋겠다. →정엽이 생각하는 가수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사랑과 이별을 대신 불러주는 사람이 아닐까. 사람들의 사랑이나 이별의 색깔은 다 다르지만, 결국에는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가수는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 그 공감대를 노래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방송 출연을 일절 하지 않는 그룹으로 유명하다. 이번을 계기로 방향이 바뀐 것이 있나. -방송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멤버가 있어 방송 출연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불편하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 음반 활동은 각자의 판단에 맡겼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내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모체 같은 곳이다. 앞으로도 그룹 차원에서 방송 활동을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정엽은 오는 9월 포크록,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담긴 정규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회사에서는 흥행을 염두에 두고 5~6월에 앨범 발매를 제의했지만, 내실이 무너질 것 같아서 거절했다. 그때 가서 지금의 유명세가 사그라질 수도 있지만, 음악적인 부분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는 정엽. 그가 우리가 찾던 진짜 ‘가수’의 모습이 아닐까.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임정희 사전투표 1위…‘오페라스타’ 순위 기대만발

    임정희 사전투표 1위…‘오페라스타’ 순위 기대만발

    가수 임정희가 ‘오페라스타 2011’의 사전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임정희는 지난 26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오페라스타’ 프리쇼에서 함께 참여 중인 JK 김동욱, 테이, 김창렬 등을 제치고 25.3%의 득표율로 1위에 올랐다. ‘오페라스타’는 2010년 영국 지상파 iTV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화제작 ‘팝스타 투 오페라스타(Popstar to Operastar)의 한국판으로 각 장르를 대표하는 8인의 가수들이 오페라 아리아에 도전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임정희는 첫 미션 곡으로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에 도전하게 됐다. ‘하바네라’는 담배공장의 자유로운 집시 여공 카르멘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순진한 젊은 병사 돈 호세를 유혹하며 부르는 노래로 소울의 디바라 칭해지는 임정희와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임정희는 곡이 결정된 후 매우 흡족해 하며 자신의 앨범 녹음 때 보다 더 열심히 연습한 것 같다고 이야기 할 만큼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 후 네티즌들은 “다음 주 생방송 기대된다, 임정희의 ‘하바네라’는 어떨지 궁금하다.”, “열심히 연습하는 것 같던데,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임정희는 지난 24일 공개된 MBC 수목드라마 ‘로열패밀리’의 OST인 ‘시간을 되돌린다면’을 녹음하던 중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사진=tvN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방시혁 “독설도 애정 있어야 나오죠”

    방시혁 “독설도 애정 있어야 나오죠”

    “안녕하세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독설가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작곡가인 방시혁(39).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위탄)에서 까칠하고 냉철한 심사평으로 ‘독설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는 요즘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논현동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방시혁을 만났다. ●낯가리는 방시혁, ‘위탄’ 출연 이유는?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 2AM의 ‘죽어도 못 보내’,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 비의 ‘나쁜 남자’, god의 ‘하늘색 풍선’…. 자신의 이름보다 더 유명한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방시혁은 가요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기 작곡가다. 낯가림이 심해 인터뷰는 물론 방송 노출을 꺼리던 그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부터 물었다. “처음엔 ‘슈퍼스타K’의 짝퉁이란 얘기가 있어서 위험 부담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장 선도 업체들이 있는 상황에서 저희 회사 음악을 빨리 알리기 위해서는 사장인 제가 스스로 브랜드화되고 킬러 콘텐츠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제작자가 유명해지면 사회적인 책임도 커지겠지만, 그만큼 일관성과 충성도도 커지니까요.”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박진영 대표와 손잡고 많은 스타들을 키워냈던 그는 2005년 독립했다. 2AM, 임정희, 에이트 등이 그의 회사 소속이다. 그렇다면 ‘위탄’ 출연으로 인한 손익계산서는 어떻게 될까. “요즘 사원을 채용 중인데 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지원자가 10배가량 늘었습니다. 저의 멘토 스타일을 본 뒤 (우리 회사) 오디션 응시자도 부쩍 늘었어요. 하지만 삶 자체가 노출되는 데 따른 불편함도 있어요. 공공장소에서도 그렇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글을 올릴 때도 자꾸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얼마 전 SNS에 평소 절친한 사이인 가수 엄정화와 ‘우리, 결혼했어요’에 한번 출연해보고 싶다는 우스갯소리를 올렸더니 인터넷에 ‘방시혁, 공개 구애’라는 기사가 떴다며 웃었다. 그래도 소속 아티스트들의 애로 사항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수확’이란다. 그는 예전부터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게 엄격한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했다. “제가 직접 프로듀서를 맡을 때는 녹음실에서 울면서 노래한 가수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울면서 나간 가수는 없어요.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니까. 케이윌, 에이트, 임정희 등 지금은 유명한 가수들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앨범 제작을 중단한 적도 있어요. 물론 화만 낸 것은 아니고, 성악 발성을 가르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해줬죠.” 방시혁은 ‘위탄’에서의 자신의 이미지는 자사 오디션이나 소속 가수들을 볼 때의 중간쯤이라고 했다. “독설도 애정이 있어야 나오는 겁니다. 소속 가수들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위탄’ 도전자들에게 독설을 하는 것은 음악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이 들어서예요. 정말 가수가 되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온 친구들인데, 단점이 보이는데, 다음 기회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독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가끔은 자신이 봐도 정말 밉살스러울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일에 집중할 때의 모습이 TV에 그대로 나와 더욱 경직되게 보인다는 것. “전 제 말이 꼭 독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남을 비방하거나 해할 의도가 있지 않기 때문이죠. 요즘 독설 화법이 유행하는 것은 명분을 앞세우는 한국 사회에서 체면을 생각해 에둘러 말하거나 거짓을 얘기하기보다는 좀 불편하더라도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기 때문일 겁니다. 엄숙주의를 깨는 데 대한 대리만족이나 통쾌함도 작용한 것 같고요.” 방시혁은 ‘위탄’에서 노지훈과 데이비드 오를 최종 합격시켰다. 두 사람은 새달 8일부터 다른 ‘멘토 스쿨’의 최종 진출자들과 생방송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합한다. 그의 오디션 심사 기준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1등을 할 가능성을 먼저 고려했죠. 제 심사 기준은 무대에서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재능입니다. 가수는 물론 가창력이 중요하지만, 무대에 서는 순간 스타성으로 표현되는 무대 장악력이 화면으로 뿜어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느냐가 주된 평가 기준이죠.” ●서울대 미학과 출신… 어려서부터 빌보드 꿰고 살아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빌보드(미국 대중음악 차트)를 꿰고 살았다는 그는 아직도 박진영의 음악적 유산이 자신에게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작곡가로서 박진영의 문법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숙제”라고도 했다. “작곡가는 평생 하청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을의 정신’에 투철합니다. 일단 곡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또한 새로움의 요소가 없으면 제가 쓴 곡이 아무리 유행해도 달갑지 않아요. 작곡은 모르겠지만, 작사는 당대의 감성을 그 시대의 말로 풀어내는 남다른 문법을 구사했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편입니다.” 평소엔 TV를 잘 보지 않고, 주로 뉴스를 보면서 시류를 파악하고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지 고민한다는 방시혁. 그는 요즘 아이들을 위한 동요 사업과 걸 그룹 ‘글램’의 데뷔(7월) 준비에 여념이 없다. 불혹을 앞둔 나이.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지혜로운 여성을 찾고 있지만, 음악보다 가정을 우선시할 자신이 없어서 당분간은 (결혼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음악을 더 오래 하기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등 체력 관리에도 신경쓰고 있다는 그를 보며 ‘독설가’보다는 ‘완벽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독설은 음악가로서 사회적 책임감 때문”

    “독설은 음악가로서 사회적 책임감 때문”

    “안녕하세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독설가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작곡가인 방시혁(39).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위탄)에서 까칠하고 냉철한 심사평으로 ‘독설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는 요즘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압구정동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방시혁을 만났다.   낯가리는 방시혁, ‘위탄’ 출연 이유는?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 2AM의 ‘죽어도 못보내’,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 비의 ‘나쁜 남자’, god의 ‘하늘색 풍선’…. 자신의 이름보다 더 유명한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방시혁은 가요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기 작곡가다. 낯가림이 심해 인터뷰는 물론 방송 노출을 꺼리던 그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부터 물었다. “처음엔 ‘슈퍼스타K’의 짝퉁이란 얘기가 있어서 위험 부담도 컸어요. 하지만 시장 선도 업체들이 있는 상황에서 저희 회사 음악을 빨리 알리기 위해서는 사장인 제가 스스로 브랜드화되고 킬러 콘텐츠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제작자가 유명해지면 사회적인 책임도 커지겠지만, 그만큼 일관성과 충성도도 커지니까요.”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박진영 대표와 손잡고 많은 스타들을 키워냈던 그는 2007년 독립했다. 2AM, 임정희, 에이트 등이 그의 회사 소속이다. 그렇다면 ‘위탄’ 출연으로 인한 손익 계산서는 어떻게 될까. “요즘 신입사원을 채용 중인데 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지원자가 10배 가량 늘었습니다. 저의 멘토 스타일을 본 뒤 (우리 회사) 오디션 응시자도 부쩍 늘었어요. 하지만 삶 자체가 노출되는 데 따른 불편함도 있어요. 공공장소에서도 그렇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글을 올릴 때도 자꾸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구요.” 얼마 전 SNS에 평소 절친한 사이인 가수 엄정화와 ‘우리, 결혼했어요’에 한번 출연해보고 싶다는 우스개 소리를 올렸더니 인터넷에 ‘방시혁, 공개 구애’라는 기사가 떴다며 방시혁은 웃었다. 그래도 소속 아티스트들의 애로 사항을 확실히 알게된 것은 ‘수확’이란다. 그는 예전부터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게 엄격한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했다. “제가 직접 프로듀서를 맡을 때는 녹음실에서 울면서 노래한 가수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울면서 나간 가수는 없어요.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니까. 케이윌, 에이트, 임정희 등 지금은 유명한 가수들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앨범 제작을 중단한 적도 있어요. 물론 화만 낸 것은 아니고, 성악 발성을 가르치는 보완책을 마련해줬죠.”   방시혁이 말하는 ‘독설의 철학’ 방시혁은 ‘위탄’에서의 자신의 이미지는 자사 오디션이나 소속 가수들을 볼 때의 중간 쯤이라고 했다. “독설은 애정이 있어야 나오는 겁니다. 소속 가수들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구요. ‘위탄’ 도전자들에게 독설을 하는 것은 음악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이 들어서예요. 정말 가수가 되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온 친구들인데, 단점이 보이는데, 다음 기회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독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가끔은 자신이 봐도 정말 밉살스러울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일에 집중할 때의 모습이 TV에 그대로 나와 더욱 경직되게 보인다는 것. “전 제 말이 꼭 독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남을 비방하거나 해할 의도가 있지 않기 때문이죠. 요즘 독설 화법이 유행하는 것은 명분을 앞세우는 한국 사회에서 체면을 생각해 에둘러 말하거나 거짓을 얘기하기보다는 좀 불편하더라도 솔직하게 말을 하기 때문일 겁니다. 엄숙주의를 깨는 데 대한 대리만족이나 통쾌함도 작용한 것 같구요.” 방시혁은 ‘위탄’에서 노지훈과 데이비드 오 두 명의 도전자를 최종 합격시켰다. 두 사람은 새달 8일부터 다른 ‘멘토 스쿨’의 최종 진출자들과 생방송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합한다. 그의 오디션 심사 기준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1등을 할 가능성을 먼저 고려했죠. 제 심사 기준은 무대에서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재능입니다. 가수는 물론 가창력이 중요하지만, 무대에 서는 순간 스타성으로 표현되는 무대 장악력이 화면으로 뿜어져 나와야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느냐가 주된 평가 기준이죠.”   서울대 미학과 출신, 어려서부터 빌보드 꿰고살아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빌보드(미국 대중음악 차트)를 꿰고 살았다는 그는 아직도 박진영의 음악적 유산이 자신에게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작곡가로서 박진영의 문법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숙제”라고도 했다. “작곡가는 평생 하청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을의 정신’에 투철합니다. 일단 곡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또한 새로움의 요소가 없으면 제가 쓴 곡이 아무리 유행해도 달갑지 않아요. 작곡은 모르겠지만, 작사는 당대 감성을 그 시대의 말로 풀어내는 남다른 문법을 구사했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편입니다.” 평소엔 TV를 잘 보지 않고, 주로 뉴스를 보면서 시류를 파악하고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지 고민한다는 방시혁. 그는 요즘 아이들을 위한 동요 사업과 걸 그룹 ‘글램’의 데뷔(7월) 준비에 여념이 없다. 불혹을 앞둔 나이.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지혜로운 여성을 찾고 있지만, 음악보다 가정을 우선시할 자신이 없어서 당분간은 (결혼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음악을 더 오래 하기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등 체력 관리에도 신경쓰고 있다는 그를 보며 ‘독설가’보다는 ‘완벽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월광 소나타를 달이 연주한다면…

    월광 소나타를 달이 연주한다면…

    개념미술 하면 일단 어렵다. 철학과 자의식으로 중무장되어 있다 보니 알쏭달쏭한 퀴즈 같아서다. 가령 데미안 허스트는 호주산 상어 한 마리를 통째로 포르말린 용액에 담가두고는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이란 제목을 달아놨다. 제목을 여러번 읽어봐도 이게 대체 뭔소린가 싶다. 가장 남는 장사는 입을 꾹 다문 채 알듯 모를 듯 약한 고갯짓을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개념미술은 어떨까. 달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려주겠다면? 지구 온난화로 사라지고 있는 빙하의 물 떨어지는 소리를 빙하 얼음으로 만든 LP판으로 들려주겠다면? 서울 화동 PKM갤러리 ‘케이티 페터슨 개인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응용한 작품 ‘지구-달-지구’(Earth-Moon-Earth)의 제작 방식은 이렇다. 월광 소나타 악보를 모스 부호로 전환한 뒤 이를 달에다 쏜다. 달에 부딪혀 반사되어 나오는 음향을 녹음한 뒤 두 가지 방식으로 복원한다. 하나는 모스 부호 그 자체, 다른 하나는 이 부호를 컴퓨터 자동 연주로 재생시킨 피아노 버전이다. 전파로 이뤄진 작업이다 보니 끊기거나 어색하게 뭉개진 부분들이 있는데, 이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전시장 1층에서는 피아노 버전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는 모스 부호 버전을 들어볼 수 있도록 해뒀다. 또 아이슬란드 빙하지역에서 얼음덩이 3개를 가져다 LP판 음반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빙하가 녹는 소리를 녹음해둔 뒤 이를 고스란히 틀어놓는다. 당연히 얼음은 녹기 때문에 처음 몇분간은 빙하 물방울 소리가 온전히 들리다가 나중엔 얼음 표면을 긁는 소리만 남는다. 얼음으로 LP판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페터슨은 “안 써본 방법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법을 써봤는데 치과용 드릴 기구로 기어코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면서 “나 스스로도 될까 싶었는데 성공적이어서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몇몇 작품에서는 약간의 장난끼도 느껴진다. 4분 33초간 달과 주고받은 ‘침묵’을 기록해둔 작품도 있는데, 이는 백남준의 스승이었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른 뒤 4분 33초간 아무런 연주 없이 가만히 있다가 퇴장하는 작품)를 본뜬 것이다. 우주를 매일매일 찍어 자그마한 사진으로 출력해둔 ‘어둠의 역사’(History of Darkness)도 마찬가지다. ‘날짜그림’으로 유명한 일본 출신 개념미술가 온 가와라의 작품과 비슷하다. 전세계 천문학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한개의 별이 죽을 때마다 간단하게 편지를 써서 기록해둔 작품, 달빛과 똑같은 파장을 내는 전구를 제작해 걸어둔 작품 등도 눈에 띈다. 자의식과 철학에 치우치다 보니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기존의 개념미술과는 다른, 소박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돋보이는 개념미술을 만들어 낸 셈이다. 페터슨 스스로도 자신의 인기에 대해 “작품을 만들 때 무선전파나 오디오 같은 모던한 기술을 적용하지만 궁극적으로 내 작품이 다루는 대상이 옛 전통 미술의 소재들인 자연과 풍경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작업 초점에 대해서도 “우주, 달, 빙하처럼 친숙하지만 너무 거대해서 접하기 어려운 대상들을 쉽게 상상하고 만져볼 수 있는 인간적인 규모로 압축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터슨은 영국에서 ‘2010 최고 신인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앞서 2008년에는 자동차회사 볼보가 문화예술 전 분야에서 서른살 이하 예술가 가운데 가장 유망한 사람 1명에게 주는 상 ‘크리에이티브 서티’(Creative 30)도 받았다. 전시는 5월 6일까지. (02)734-946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하동균, 제대 앞서 드라마 OST로 인사

    하동균, 제대 앞서 드라마 OST로 인사

    가수 하동균이 군 제대를 앞두고 드라마 OST로 먼저 팬들을 찾았다. 하동균은 입대 이후 2년 6개월 만인 25일 MBC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OST의 ‘애프터더러브’(After the Love) 음원을 공개했다. ‘애프터더러브’는 브리티쉬한 느낌의 곡으로 남녀가 헤어진 뒤 이별의 원인과 방법, 상처를 혼자 만의 체념을 통해 지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한 남자의 이별 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하동균 특유의 보컬과 음악적 감성 그리고 깊이가 한층 더 해진 아날로그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 곡은 하동균이 입대 전 미니앨범 발매를 위해 직접 작사, 작곡, 편곡, 녹음 디렉팅까지 모두 참여한 곡으로 갑작스러운 입대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곡을 들은 주변의 끊임없는 권유로 드라마 OST를 통해 발표하게 됐다고. 26일부터 드라마에 삽입될 예정인 ‘애프터더러브’는 극 중 주인공들의 삼각관계를 미리 암시하듯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으로 그들의 심정을 나타내 큰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하동균은 지난 2002년 그룹 원티드로 데뷔한 뒤, 2006년 솔로로 변신해 ‘그녀를 사랑해줘요’, ‘나비야’ 등의 히트곡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WS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한前총리 비서실장에 3억원 돌려달라 했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우진)의 심리로 열린 검증 기일에서 한만호(50·수감 중) 전 한신건영 대표의 교도소·구치소 내 접견 녹음 시디(CD)가 공개됐다. 시디에는 한씨와 면회 온 그의 어머니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67) 전 국무총리와 함께 기소된 비서실장 김모(51)씨에게 3억원을 돌려 달라고 대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음은 한씨의 주요 녹음 내용이다. ●2009년 5월 18일 한만호=(비서실장 김모씨에게) 나한테 오라고 그래요. 닦달을 해야 돼. 뭔가 조치를 취해야 돼요. 어머니=그래도 옛날에 같이 서로 도움 주고 산 시대가 있지 않았냐고 말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대. 상의해서 연락 주겠다고. 한만호=내가 중대한 결단을 내리려고요. 계속 소식 없으면. ●6월 13일 한만호=내가 편지 (비서실장 김모씨에게) 띄웠어요. 내가 3억원을 요구했어요. 3억원. ●6월 30일 한만호=내가 3억원을 요구했잖아요. 3억원이 적은 돈은 아니잖아요. 내가 반(半)공갈성으로 (편지를) 넣었기 때문에 어떤 대답이 오긴 올 거예요. 하여튼 그것은 지켜볼 거예요. 한명숙 서울시장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당선)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11월 27일 한만호=(비서실장) 김모씨 연락 없죠? 어머니=일단 (비서실장) 김모씨하고 총리 그런 개같은 X들 만나서 얘기 확고하게 해, 아주. 뒤돌아볼 것도 없어. 왜 한달에 1000만원씩 주고서 우리가 고통을 당해.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스마트폰 ‘좀비폰’으로 악용될 수도

    스마트폰 ‘좀비폰’으로 악용될 수도

    스마트폰은 휴대전화 기능을 갖춘 컴퓨터다. 스마트폰도 일반 PC와 마찬가지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해커의 의도대로 특정 사이트를 공격하는 ‘좀비폰’으로 바뀔 수 있다. 22일 보안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 보안 현실은 위험 수위를 넘어선 상태로 지난해 8월 국내 안드로이드 전용 악성코드가 처음 출현한 후 현재까지 발견된 악성코드는 2151개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스마트폰 155대가 악성코드인 ‘트레드다이얼’에 감염됐다. 악성코드는 사용자도 모르게 50초 단위로 국제전화를 걸어 요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최근에는 유료 과금 전화로 문자메시지(SMS)를 보내는 바이러스와 스마트폰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악성코드가 나타났다. ‘3·4 디도스 공격’처럼 스마트폰을 통한 디도스 공격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의 보안 취약점도 원인이 된다. 무선랜(와이파이)이 더 많은 위협에 노출돼 있어 스마트폰으로 착신 전화를 할 때 해커에 의해 좀비폰으로 둔갑하면서 디도스 공격에 악용될 수 있다. 이형우 한신대 교수는 “현재 mVoIP 서비스 업체들이 인증을 강화하기 위한 암호화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악성코드에 감염된 스마트폰이 사용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 사이트에 대량 접속하면 서버가 검증하지 못해 좀비폰으로 인한 ‘디도스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외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발견된 악성코드 10개 중 9개는 ‘메이드 인 차이나’이다. 검증이 안 된 중국산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다가 좀비폰으로 둔갑할 수 있다. 정현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인터넷전화 보안팀장은 “스마트폰의 운영체제(OS)와 앱이 많이 공개돼 전문가가 클릭 몇번만 하면 악성코드가 만들어진다.”며 “해커가 좀비폰으로 디도스 공격을 시도하면 그 파괴력은 좀비 PC를 동원한 공격 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40년만에 세시봉 시절 돌아가니 신나”

    “40년만에 세시봉 시절 돌아가니 신나”

    “하하. ‘투잡’이라니요. 그저 ‘형주야, 창식아’ 부르면서 20대 세시봉 시절로 세월을 거스를 수 있으니 친구들에게 고맙죠. 요즘은 정말 주말이 기다려집니다.” ●음반 낸적 없어… 지금은 토목 전문가 세시봉 멤버였지만 이익균(오른쪽·64)씨는 음반 한장 낸 적이 없다. 정식 가수로 데뷔한 적도 없고 지금은 한국종합기술 전무로 토목 전문가지만 요즘 윤형주(왼쪽), 송창식, 김세환의 ‘세시봉 친구들’ 전국 공연에서 게스트로 노래하느라 신바람이 났다. ●TV출연 계기… 공연 게스트로 그가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윤형주, 송창식과 ‘트리오 세시봉’ 멤버였던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무대에 선 것은 40여년 만이다. 지난 2월 MBC ‘놀러와’의 설 특집 ‘세시봉 콘서트’ 때 객석에 있다가 친구들의 권유에 깜짝 출연해 매력적인 저음을 선보인 것이 계기가 됐다. 요즘에는 금요일 퇴근하면 지방으로 가서 주말에 친구들과 공연하고 일요일에 상경한다. 그는 1967년 연세대학교 토목공학과 1학년 때 세시봉 ‘대학생의 밤’ 무대에서 취미로 노래했다. “세시봉 사장님이 형주, 창식이와 제게 해보라고 권유했어요. 세시봉 사장님이 먹여주고 입혀 주면서 그 팀을 본떠 ‘트리오 세시봉’란 이름으로 노래하기 시작했죠.” 그러나 이씨의 ‘트리오 세시봉’ 활동은 채 1년도 되지 못했다. 그는 “노래를 하며 휴학을 했더니 바로 영장이 나왔다.”며 “공대생이면 일생이 보장되는데 불확실한 가요계로 뛰어든다며 집안의 반대도 심했다.”고 말했다. ●“전 멤버들과 녹음하는 게 꿈” 결국 1975년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입사해 엔지니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년대 국토개발 건설 붐의 주역으로 살았다. 그의 바람이 있다면 솔로보다는 윤형주, 송창식과 트리오로 한곡을 녹음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작곡한 곡에 목소리를 더하고 싶은 것. 이씨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꿋꿋이 무대를 지켜준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강조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대법 “안기부 X파일 보도 ‘유죄’”

    대법 “안기부 X파일 보도 ‘유죄’”

    2006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테이프인 ‘X파일’을 입수해 보도한 MBC 이상호(43) 기자 등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와 통신의 비밀 보장이 충돌할 경우 공익을 위한 보도라도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17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기자와 김연광(49) 전 월간조선 편집장에게 각각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통비법이 통신의 공개·누설 행위를 불법 감청·녹음 행위와 똑같이 처벌하는 것은 통신 비밀을 침해해 수집한 정보의 내용과 관계없이 불법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어 언론이 수집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이 불법 감청·녹음된 것임을 알았음에도 이를 보도할 경우,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정당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제시한 일정한 요건으로 ▲불법 감청 등의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용을 공개한 경우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경우를 들었다. 또 ▲불법 감청물을 취득할 때 위법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적극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되며, 보도가 공익에 필요한 부분에 한정되고 통신비밀의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기준도 세웠다. 반면 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이인복 대법관은 “테이프에 담겨 있던 내용은 민주적 헌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공공의 이익과 매우 중대한 관련이 있다.”며 “보도로 인해 얻는 이익이 통신의 비밀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안기부 직원들은 1997년 이학수(65)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62) 중앙일보 사장이 대권 후보 정치자금 제공에 대해 나눈 대화를 불법 도청해 ‘X파일’을 만들었고, 이를 입수한 이 기자는 2005년 7월 22일 내용을 보도했다가 기소됐다. 1심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정당 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도청된 테이프임을 알고도 대화 내용을 실명으로 보도하는 등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을 크게 벗어났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힙합의 대부’ 바비 킴

    [김문이 만난사람] ‘힙합의 대부’ 바비 킴

    이 세상에서 고독이라는 말보다 더 고독한 단어가 있을까. 어느 날 한 남자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러고는 고독하게 헤엄을 친다. 왜 그랬을까. 노래로 답한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디에선가 있는 꿈과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다시 까닭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라는 진한 너울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남자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싹텄다. 어린 나이 때부터 겪은 쓰디쓴 인종차별과 이방인의 외로움이 우선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착해지는 자신이 나쁘다며 ‘오늘 단 하루만 착하지 말자.’고 외쳤을까. 그런 처절함에서 스스로 험한 바다를 택했고 한 마리의 ‘파랑새’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큰 고래가 됐다. 하여 아픔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가로막아도 ‘편히 쉬게 할 꿈’을 향해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지금도 그렇게 ‘고래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바비 킴(38). 그는 요즘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대개 ‘고독과 처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창법이 심금을 울린다.’고 답한다. 특히 대표곡인 ‘파랑새’와 ‘고래의 꿈’에서 흘러나오는 바비 킴의 음악적 향기에는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냄새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무명세월 11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다 2004년에 발표된 앨범 ‘고래의 꿈’으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계속됐다. 그의 노래가 듣는 이에게 위안이 된다는 이유로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전국투어 콘서트에 나서면서 인기스타로서 바비 킴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해 3월부터 지난해까지 그는 30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는 불과 2년 만에 이룬 성과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임을 입증한 셈이다. 팬들은 바비 킴을 가리켜 ‘솔의 대부’ ‘힙합의 대부’라고 칭한다. 그는 오는 26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또 한번의 전국 투어 공연에 돌입한다. 상반기에 4개 도시, 하반기에 10여개 도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5월 중에는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석 수가 한정된 공간에서 콘서트 3년차 만에 10만 관객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공연에는 트로트를 ‘바비 킴’적으로 해석해 불러 볼 예정이어서 또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바비 킴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특유의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속으로 ‘그래서 팬들이 힙합의 할아버지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먼저 이번 공연의 의미와 공연을 앞둔 소감을 물었다. “올해로 단독 콘서트는 3년째입니다. 그 중간에 조인트 콘서트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동안의 콘서트가 바비 킴이 살아온 인생을 담았다면, 올해 콘서트는 바비 킴이 할 수 있는 음악과 바비 킴이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여러 음악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팬들과 함께하는 ‘솔 투게더(Soul Together)’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 더 다양해진 콘서트 무대가 될 듯싶다. 어떻게 달라질까. “트로트곡을 제 스타일로 한번 소화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험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트로트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로트곡 10여곡을 선정해 하나 둘씩 들어가면서 선별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지만 공연 때 2~3곡 정도 불러 볼 생각입니다. 제가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런 시도는 그를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연의 맛깔’을 더할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말은 어떻게 익혔을까. 두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무살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국내 모대학 어학당에서 1년반 동안 배웠습니다. ‘가, 나, 다’부터 배웠죠. 한국인이면서도 한국말을 몰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당히 컸죠. 한국어로 된 노래는 가사에 영어발음을 일일이 적어가면서 익히고 불렀습니다.” 한국에서의 적응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어 테이프 녹음, TV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울러 힙합 음악을 고집하면서 그룹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적응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 김영근씨가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의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바비 킴은 초등학교 때부터 적지 않은 따돌림을 당했다. 미국 아이들에게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은 다들 똑같지 않으냐.’는 대답을 계속 들어야 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필리핀과 중국인들이 살았어요. 또 백인과 흑인들도 많이 살았고요. 한국인은 별로 없었는데 어릴 때 미국인은 물론 똑같은 동양인 아이들에게도 왕따를 많이 당했지요. 화가 날 때에는 덩치 큰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바비 킴은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중학교 때 트럼펫을 몰래 배웠다. 또 학교 노래 발표회에도 솔로로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때마다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고 혹시 음악 하는 것이 직업이 될까봐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원래 음악적 자질도 타고났지만 운동신경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방망이를 잡기 시작해 고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선수로 1번 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특히 어깨 힘이 좋아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상대방 선수들을 거의 다 아웃시켰을 정도였다. 타격면에서는 3할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던 중 고 3때 한 스카우트로부터 ‘너는 동양인이어서 체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3배 이상 훈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때 야구도 그만두고 좋아하던 미식축구도 그만두었습니다. 몇날 며칠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짜 인생의 승부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미국에는 클럽 바에 가면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주 갔지요. 또 원맨쇼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나이트클럽 래퍼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자 바비 킴 가족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 한국에 온 바비 킴은 아버지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음반사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이때 단골로 부른 노래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리듬은 잘 타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바비 킴은 이에 대해 “어릴 때 흑인들과 자주 지내서 그런지 리듬을 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며 웃는다. 1994년 ‘닥터 레게’로 첫 앨범을 냈지만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터보, 젝스키스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코러스와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저는 무명 11년 세월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공했더라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공연 때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관객들과의 공감을 통해 하나하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다른 가수들과) 음악의 색깔도 다르고 창법도 특이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비 킴의 본명은 김도균이다. ‘바비’라는 이름은 세살 때 누나가 미국 TV시트콤을 보다가 바비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그렇게 정했단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음악을 하다 보니 취미가 없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로 연구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들과 함께하는 창조적 음악을 위해 열심히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여자친구는 현재 없지만 나이 마흔이 되면 할 생각”이라며 웃는다. 중절모와 콧수염의 바비 킴. 특유의 애달프고 처절하고 고독한 창법이 앞으로 어떻게 깊어질지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바비 킴은 누구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두살 때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으면서도 음악과 운동을 병행한다. 음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트럼펫을 배웠고 노래도 했다. 학교 발표회 때마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야구와 미식 축구 선수로도 활약했다. 특히 야구는 포수와 1번 타자를 맡았는데 고교 때는 학교 대표로 출전해 3할대의 타율을 자랑했다. 고교 졸업 무렵 클럽 바에 가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고 래퍼로 활동했다. 1993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음반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1994년 앨범 ‘닥터 레게’로 데뷔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터보, 젝스키스 등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 나갔다. 1999년 룰라 이상민의 14인 프로젝트 그룹 브로스의 멤버, 2000년에는 무브먼트 크루의 멤버, 다음 해 부가 킹즈를 조직하면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러던 중 2004년 8월에 발표한 새 앨범 ‘고래의 꿈’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독특한 창법이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의 ‘나몰라 패밀리’를 통해 패러디되기도 했다. 지난해 세 번째 정규 앨범 ‘하트 앤드 솔(Heart & Soul)’을 발표했으며 ‘쩐의 전쟁’ ‘하얀 거탑’ 등 드라마 OST에도 참여했다. 2009년부터 전국 투어 공연에 나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 10만 관객 앞둔 힙합의 대부 바비킴

    10만 관객 앞둔 힙합의 대부 바비킴

     이 세상에서 고독이라는 말보다 더 고독한 단어가 있을까. 어느날 한 남자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리고는 고독하게 헤엄을 친다. 왜 그랬을까? 노래로 답한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디에선가 있는 꿈과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다시 까닭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라는 진한 너울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남자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싹텄다. 어린 나이때부터 겪은 쓰디 쓴 인종차별과 이방인의 외로움이 우선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착해지는 자신이 나쁘다며 ‘오늘 단 하루만 착하지 말자.’고 외쳤을까. 그런 처절함에서 스스로 험한 바다를 택했고 한 마리의 ‘파랑새’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큰 고래가 됐다. 하여 아픔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가로 막아도 ‘편히 쉬게 할 꿈’을 향해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지금도 그렇게 ‘고래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바비 킴(38). 그는 요즘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고독과 처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창법이 심금을 울린다.’고 답한다. 특히 대표곡인 ‘파랑새’와 ‘고래의 꿈’에서 흘러나오는 바비 킴의 음악적 향기는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냄새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무명세월 11년 설움을 견디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2004년에 발표된 앨범 ‘고래의 꿈’으로 비로소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계속됐다. 노래를 듣는 이에게 묘한 위안을 준다는 공통분모로 세대를 뛰어 넘어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전국투어 콘서트에 나서면서 인기스타로서 바비 킴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해 3월부터 지난 해까지 그는 30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는 불과 2년만에 이룬 성과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임을 입증한 셈이다. 팬들은 바비 킴을 가리켜 ‘소울의 대부’ ‘힙합의 대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는 오는 26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또 한번의 전국 투어 공연에 돌입한다. 상반기에 4개 도시, 하반기에 10여개 도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5월 중에는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석 수가 한정된 공간에서 콘서트 3년차만에 10만관객을 채우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공연에는 트로트를 ‘바비 킴’적으로 해석해 불러볼 예정이어서 또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바비 킴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특유의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속으로 ‘그래서 팬들이 힙합의 할아버지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먼저 이번 공연을 갖는 의미와 소감이 어떠한지 물었다.  “올해로 단독 콘서트는 3년째입니다. 그 중간에 조인트 콘서트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동안의 콘서트가 바비 킴이 살아온 인생을 담았다면, 올해 콘서트는 바비 킴이 할 수 있는 음악과 바비 킴이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여러 음악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팬들과 함께 하는 ‘소울 투게더(Soul Together)’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 더 다양해진 콘서트 무대가 될 듯 싶다. 어떻게 달라질까.  “트로트곡을 제 스타일로 한번 소화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험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트로트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로트곡 10여곡을 선정해 하나 둘씩 들어가면서 선별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지만 공연때 2~3곡정도 불러볼 생각입니다. 제가 트로트를 부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시도는 그를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들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연의 맛깔’을 더할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말은 어떻게 익혔을까. 두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무살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국내 모대학 어학당에서 1년반 동안 배웠습니다. ‘가,나,다’부터 배웠죠.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을 몰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당히 컸죠. 한국어로 된 노래가사에는 영어발음으로 일일이 적어가면서 익히고 부르고 그랬습니다.”  한국에서의 적응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어 테이프 녹음, TV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울러 힙합 음악을 고집하면서 그룹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적응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 김영근씨가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의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바비 킴은 초등학교때부터 적지 않은 따돌림을 당했다. 미국 아이들에게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은 다들 똑같지 않느냐.’는 대답을 계속 들어야 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필리핀과 중국인들이 살았어요. 또 백인과 흑인들도 많이 살았구요. 한국인은 별로 없었는데 어릴 때 미국인은 물론 똑같은 동양인 아이들에게도 왕따를 많이 당했지요. 화가 날 때에는 덩치 큰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바비 킴은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중학교때 트럼펫을 몰래 배웠다. 또 학교에서 솔로로 노래 발표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때마다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고 혹시 음악하는 것이 직업이 될까봐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원래 음악적 자질도 타고 났지만 운동신경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방망이 잡기 시작해 고등학교때는 학교 대표선수로 1번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특히 어깨힘이 좋아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상대방 선수들은 거의 다 아웃시켰을 정도였다. 타격면에서는 3할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던 고 3때 한 스카우터로부터 ‘너는 동양인이어서 체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3배 이상 훈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때 야구도 그만 두고 좋아하던 미식축구도 그만 두었습니다. 몇날 며칠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짜 인생의 승부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구요. 미국에는 클럽 바에 가면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주 갔지요. 또 원맨쇼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나이트클럽 래퍼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자 바비 킴 가족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 한국에 온 바비 킴은 아버지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음반사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이때 단골로 부른 노래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리듬은 잘 타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바비 킴은 이에 대해 “어릴 때 흑인들과 자주 지내서 그런지 리듬을 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며 웃는다.  그러던 1994년 ‘닥터 레게’로 첫 앨범을 냈지만 인기를 못얻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터보, 젝스키스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코러스와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저에게는 무명 11년 세월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공했더라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공연때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관객들과의 진실한 공감을 통해 하나 하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다른 가수들과) 음악의 색깔도 다르고 창법도 특이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비 킴의 본명은 김도균이다. ‘바비’(Boby)라는 이름은 세살 때 친누나가 미국 TV시트콤을 보다가 바비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그렇게 정했단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음악을 하다보니 취미가 없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로 연구를 많이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들과 함께 하는 창조적 음악을 위해 열심히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여자친구는 현재 없지만 나이 마흔이 되면 할 생각.”이라면 웃는다. 중절모와 콧수염의 바비 킴. 특유의 애닯고 처절하고 고독한 창법이 앞으로 어떻게 더욱 깊어질지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아이폰으로 영어발음 연습하세요”…배틀 파닉스 눈길

    “아이폰으로 영어발음 연습하세요”…배틀 파닉스 눈길

    “이제 아이폰으로 영어 발음 연습하세요.” 직접 자신의 영어 발음을 녹음해서 원어민과 비교하며 공부할 수 있는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이 나왔다. ㈜북이십일이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한 배틀 파닉스(Battle Phonics)가 바로 그것. 배틀 파닉스는 단어학습에 흔히 이용되는 플래시카드에 발음 게임을 결합한 애플리케이션으로 한 장 한 장 카드를 넘겨가며 단어를 배우는 통상적인 플래시카드 애플리케이션의 모든 기능이 제공된다. 특히 배틀 파닉스는 영어를 입으로 배우게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컴퓨터로 영어를 배울 때 흔히 나타나는 문제점은 입을 안 쓰고 눈과 귀만 사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총 500단어를 주제별로 학습하게 되어 있는 이 애플리케이션에는 현재 3개 주제 120여 단어가 들어 있고, 매달 2~3개 주제씩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20단어가 포함된 기본 팩은 애플 아이튠즈를 통해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추가 단어들은 주제 당 0.99달러(30~40개 단어)에 구매할 수 있다. 프리 다운로드 페이지(http://itunes.apple.com/kr/app/battle-phonics/id409976394?mt=8)에 접속하면 무료 버전을 사용해볼 수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마음만은 함께” 한류스타들 日 피해돕기 앞장

    “마음만은 함께” 한류스타들 日 피해돕기 앞장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만은 함께….’ 일본 대지진의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 머물던 한류 스타들이 속속 돌아오는 동시에 지진 피해 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대표적 한류 스타인 배용준 측은 13일 “일본의 피해 상황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일본) 소속사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지우히메’로 통하는 최지우 소속사도 “뉴스를 접하고 상상 이상의 피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고통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중훈 “해운대 영화보다 훨씬 참혹” 류시원 등 다른 한류 스타들도 현지 소속사와 연락이 닿는 대로 구체적인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는 입장이다. 영화 ‘해운대’의 주연배우 박중훈은 트위터를 통해 “영화 ‘해운대’는 진도 8이 넘는 지진을 전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쓰나미와 진도 8이 넘는 이번 일본 지진은 영화보다 훨씬 더 참혹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이 재난을 잘 극복하기 바랍니다.”라며 애도의 뜻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드라마 ‘동이’ 홍보를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한 배우 한효주와 음반 녹음을 위해 일본에 머물던 2NE1, 일본 TV드라마 촬영 일정을 갖던 걸 그룹 카라는 지난 12일 무사히 귀국했다. 화보 촬영차 일본을 방문한 아이돌 그룹 JYJ의 김준수도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현중·류수영 등 행사 취소 잇따라 이에 따라 행사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배우 김현중은 13일 도쿄 NHK홀에서 열려던 ‘장난스런 키스’ 일본 방영 기념 이벤트를 취소했고, 배우 류수영도 같은 날 열 예정이던 오사카 팬 미팅을 취소했다. 배우 장근석은 오는 27일로 예정된 도쿄 콘서트 취소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일본내 K-팝(POP) 공연을 추진하던 한 기획사 관계자는 “공연 성격 자체를 도네이션(기부)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대지진 피해를 인도주의적으로 적극 돕는 한편 일본 내 일부 혐한류를 완화하고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문화사절 역할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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