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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납북자들의 비극(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42)

    ◎총 8만여명… 김규식·안재홍 등 각계 명사 다수/귀향길 막혀 고난의 세월… 대부분 비참한 최후 유엔군과 공산군이 한국전쟁을 마무리짓기 위해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던 무리가 있다.그들은 바로 납북인사들이다.전쟁의 와중에 북으로 끌려가 휴전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이야말로 영원한 에트랑제였다.그래서 더욱더 관심과 동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만 2만여명 한국전쟁 기간중 북한군에 납치당한 사람들은 서울 2만7백38명을 비롯해 전국에 걸쳐 8만4천5백32명이나 됐다.이 납북자들은 대부분 북에서의 삶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소외된채 베일에 싸인 이들이 만난 비극적인 운명은 전쟁 발발 3일째인 1950년 6월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한강철교 폭파로 미처 피란을 못했던 요인들이 북한 노동당 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우선 포섭대상에 들어갔다. 이 계획은 7월4일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등이 참석한 연석회의에서 최종 결정됐다.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후 피란하지 못한서울과 점령지역의 주요 정치·종교·경제·문화인 등 각계 인사를 찾아내 포섭하려는 것이었다.군사위원회는 이 결정에 따라 남한의 저명인사를 친·반공의 정도에 따라 5개 부류로 분류했다. 북한은 7월4일부터 김응기 이주상 방학세 김창주 김춘삼 등 실무 집행자들로 하여금 이를 추진시켰다.이에따라 서울시 인민위원회(서울시청)와 성남호텔(서울 광교부근)에 납북 대상자 심사장이 설치됐다.국회의원과 정당·사회단체의 저명인사,임정요인에 대한 심사를 거쳐 이들을 북으로 연행해가기 시작했다.이들 중에는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김붕준 류동열 최동오 윤기섭 오하영 원세훈 엄항섭 등 임정요인이 들어있었다.안재홍 박열 백관수 정인보 이광수 최규동 방응모 등 전현직 국회의원과 정당 사회단체,문단 인사들이 포함됐다.납북 인사들은 대부분 평양을 거쳐 만포로 들어갔다.도중에 정인보와 이광수,최규동,방응모,김붕준,류동열이 미공군의 폭격과 지병으로 숨졌다. 해방정국에서 미국이 장래의 한국 지도자로 꼽았던 김규식은 만포에서 16㎞ 정도가 떨어진 별오동이라는 마을에서 1950년 12월10일 세상을 떠났다.납북인사들과 당시 함께 생활했던 북한 조국통일민주전선 부국장 신경완의 증언에 따르면 김규식의 최후는 너무 비참했다.별오동에는 유엔군에게 쫓겨온 북한의 주요기관이 모두 있었는데,김규식은 지병인 해소와 노환으로 생명이 경각을 다투었다. 그러나 서울을 떠날 때 지니고 간 약이 모두 거덜났다.당시 상황으로 약을 구할 수 없어 해소에 좋다는 토끼똥까지 달여 먹였다는 것이다.주변의 강력한 요구로 별오동에서 8㎞를 더 들어간 군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홍명희를 만나 중국에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그리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그날 압록강변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꽃다발이 개인 이름으로 도착했다.추도사를 맡은 조소앙은 날씨가 하도 추워 말을 이어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김규식의 시신은 상여에도 오르지 못하고 군 트럭에 실려 장지에 갔다.땅이 얼어붙어 내려놓은 관을 땅에 제대로 묻지못하고 가장을 하다시피 장례절차를 마쳤다.김규식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렇게 한만국경에서 막을 내렸다. ○독자 휴전운동 불발 납북자들의 일관된 관심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철저하게 정보가 차단됐던 납북자들은 전쟁이 끝나 남한으로 하루빨리 돌아가는 것을 학수고대하면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1951년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은 이들의 환향의지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물론이다. 1951년 6월23일 소련의 말리크 유엔대사가 휴전과 관련한 토의를 제의한후 시작된 휴전회담은 납북인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납북자 대표들은 휴전회담이 답보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독자적인 휴전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한 적도 있다.북한측 연락장교들의 인솔로 안재홍 조소앙 김약수 원세훈 윤기섭은 51년 1월25일 판문점까지 오기도 했다.그러나 북한의 조종을 받은 이들은 유엔군측 연락장교 키니대령을 만나는 선에서 활동을 끝냈다. 1953년 7월27일 휴전이 됐지만 납북자들은 여전히 환향의 길이 막힌채 감금에 가까운 상태로 북에서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휴전협정 체결 90일만인 19 53년 10월26일 판문점에서 정치회의 예비회담이 열렸으나 회의 초반부터 미국측과 북측이 회담방법 등 정치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섰다.그러나 미·영·소·불 등 4개국이 1954년 4월부터 제네바에서 정치회의를 열어 한반도 문제를 토론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납북자들은 조소앙이 주창한 「중립화 통일론」을 제네바회의에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주선해줄 것을 북한당국에 건의했다.북한은 납북자들의 의도가 자신들의 통치속셈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표면적으로 이를 거부하지는 못했다.54년 4월 중순 엄항섭과 권태양 등 납북자 대표는 제네바로 들어가기 위한 입국사증을 받기 위해 소련 외무성의 안내를 받아 모스크바로 떠났다.그러나 소련주재 북한대사는 결국 이들을 제네바 국제회의에 보내지 않았다.스위스 정부가 입국사증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들을 되돌려보냈다.처음부터 북한당국이 납북자들을 제네바 회담에 참가시킬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시킨 것이다. ○제네바회담 참가 무산 1955년부터 김일성은 평화통일과 평화이미지 선전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이를 계기로 북한은 납북인사들에게 자신이 내세운 평화통일 방안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하는 등 이들의 정치적 이용을 서둘렀다.그래서 1955년 11월13일 납북요인들의 첫 공동성명으로 알려진 11·13성명을 발표하는데 납북자들이 실제 이용됐다.이 성명에는 납북인사들의 주장은 철저히 배제된채 전쟁 직전까지 북한이 내세운 정치적 허구라 할 수 있는 선전문구만 나열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납북자들은 이후 북한에서의 독립적인 정치활동 보장을 위한 조직체 구성을 시도했다.1956년 7월2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재북 평화통일 촉진협의회」 결성대회가 그것이다.각지에서 모인 납북 및 월북 인사 4백여명 등 7백여명이 참석한 이날 대회는 조소앙 안재홍 오하영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하고 합법적 통일정부 구성과 국제적 중립화 선언,남북의 자유로운 내왕 등을 내용으로 하는 7개항의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협의회에는 북한의 노동당 등 친공세력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또 분열이 이미 고질화돼 있었던 만큼 납북자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결국 이 협의회는 1958년 9월9일 지도자인 조소앙이 숨을 거둔후 본래의 취지와는 멀어진채 북측의 대남 위장 정치선전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쿄대 「납북자 행적」 단행본/“북,납북 인사들 협박… 대남공세 악용”/56년 조국 통일전선 중앙위에 “동원”/“총일 앞장” 조소앙 등 강요된 맹세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일본 도쿄대학 동양학연구소에서 한국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간 인사들의 족적을 기록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란 단행본 책자를 입수했다.이 단행본은 1956년 5월24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의 주요문헌과 참가자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납북 임정요인과 인사들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들 재북인사들은 1956년 4월23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조선노동당 제3차대회에 참가한 것으로 돼있다.특히 당대회 직후인 같은해 5월24∼25일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는 재북평화통일협의회를 준비하고 있던 재북인사들을 대부분 초청한 것으로 밝혀져 이들을 여러 수단으로 회유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홍명희의 보고와 토론으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 남한출신 정치인 조소앙 안재홍 오하영 윤기섭 엄항섭 송호성 김약수,국회의원 출신 노일환 김병회 황윤호 박윤원 이구수 강욱중 최태규 김옥주 배중혁 구덕환 이문원 신성균이 참석했다.이밖에 남한의 각 정당 사회단체 인사들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남한 정치인을 대표해 토론에 나선 송호성 조소앙 안재홍 등의 토론 내용을 소개했다.이들은 분단의 원인과 평화통일의 방책에 대해 토론한후 자신들이 앞장설 것을 맹세했다고 전하고 있다. 어떻든 이 자료는 납북인사들이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됐음을 보여 주었다.더구나 휴전 이후 정치공세를 강화한 폐쇄사회의 실상을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 자료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 후쿠다 타계/전 일총리… 향년 90세

    【도쿄=강석진 특파원】 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 전일본총리가 5일 낮 12시6분 도쿄도내 도쿄여자의대 아오야마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90세. 후쿠다 전총리는 대장상과 외상 및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뒤 76년 미키 다케오(삼목무부) 전총리에 이어 67대 총리로 취임해 약 2년간 재임하면서 중국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도쿄 국제공항 개항 등 현안을 처리했다. 86년 중의원 14선을 역임한 뒤 후쿠다 전총리는 파벌을 고 아베 신타로(안패진태랑) 의원에게 인계하고 지난 90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음으로써 정계를 은퇴했다. ◎김 대통령 조문 김영삼 대통령은 5일 별세한 후쿠다 전일본총리의 유가족들에게 위로전문을 보내 『우리나라의 오랜 친구인 고인의 서거에 대해 더없이 애석하게 생각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고인은 생전에 총리대신으로,또 전직 정부수반협의회의 명예회장으로서 인류평화와 번영을 위해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면서 『또한 오랫동안 일·한의원연맹회장과 일·한협력위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진력해온 훌륭한 업적은 양국 국민의 가슴속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경찰서장이 청장에게/김태균 사회부기자(현장)

    ◎“비효율적 입원 재소자 감시 언제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재소자 2명을 24시간 감시하느라 형사 2개반이 전원 동원되므로 범죄 예방 및 수사 등 민생치안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검사의 특별감시 지시가 없는 재소자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관찰만 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건의합니다」­최근 서울 서초경찰서가 안병욱 서울경찰청장 앞으로 보낸 「경찰의 병원감시 업무에 대한 질의서」의 일부내용이다. 8일 현재 서초경찰서의 감시대상 재소자는 강남성모병원과 영동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모씨(79·살인)와 김모씨(49·부정수표단속법위반) 등 2명.이들은 병세가 심각해 구치소 생활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이들 병원에 입원해 있다. 서초서는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일반형사반 가운데 방범반 9명과 강폭반 1개반 등 모두 2개반 18명을 보내 밤낮 없이 3시간씩 8교대로 병실을 지키고 있다.감시를 돕는 의경까지 더하면 동원된 경찰력은 하루평균 30명에 이른다.이 정도면 관내에서 하루밤 일제 검문검색도 벌일 수 있는 인원이다. 그러나 정작 한씨는 고령에 따른 노환증세로,김씨는 당뇨에서 온 갖가지 합병증으로 거동은 커녕 말도 제대로 못하는 중환자들이다. 이런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서울지검과 대형병원이 가까이 있는 탓으로 서초서 형사들에게는 감호업무가 연중무휴의 가외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문제는 이같은 24시간 감호업무가 단지 상급기관의 지시에 따른 관행일 뿐 규정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질의서는 이 부분을 지적한 뒤 「당장 그 관행을 고칠 수 없다면 감호업무가 24시간 근접해서 감시해야 하는 것인지,특이동향이 있을 때만 담당검사에게 보고하면 되는 것인지 명확한 지침을 회신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이번 질의서는 시키는대로만 하던 경찰이 오랜 관행의 틀을 깨고 효율성을 구하려고 하는 몸짓으로 풀이되기도 한다.그런 뜻을 담은 질의에 서울경찰청이 어떤 답변을 할지 궁금한 일이다.
  • 노인의 사랑(외언내언)

    정년퇴직으로 일정한 연금을 타게 된 남자노인이 재혼신랑감으로는 인기가 아주 높다고 한다.다른 재산은 욕심내지 않을 터이니 연금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입적만 시켜준다면 결혼하겠다는 꽤 젊은 색시감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대개의 노인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말이 맞다고들 말한다.특히 노환으로 고생하는 노인에게는 간병을 하는 사람이 절실한데 그런 사람으로는 「아내」라는 이름의 동거자보다 더 나은 간병역이 없는 것이다. 젊은 간병인과 병상에서 사랑을 나눈 노인이 그와 혼인신고를 하고 돌아가자 자손들이 그 혼인을 무효화하려다가 이기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비슷한 사건은 종종 있다.그렇게 지위를 얻은 부인이 연금을 신청하여 조사대상이 되었지만 결국 연금지급을 받게 된 경우도 있다. 혼인관계란 육신으로 맺어지는 어떤 일이 가능해야 하는데 노인의 생전 건강으로 보아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 혼인은 무효라고 자손들은 생각한 모양이다.그러나 어떤 종교에서는 「동정혼」을 가장 숭고한 혼인의 상태로 삼기도 한다.본인들이 혼인했노라고 말하면 그것은 혼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경은 7순이 넘은 나이에 자기아이를 임신한 젊은 여비서를 동반하고 베이징에 갔을 때 보도진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너무 터뜨린다고 단장을 휘둘러 국제적인 화제를 부른 적이 있다.자식들은 부모의 재산은 당연히 자기 몫으로 생각하고,노인 아버지가 젊은 여인과 혼인관계를 맺으면 재산을 노린 젊은 여인의 둔갑술쯤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노인이 사랑에 대해 갖는 집착은 매우 집요하다는 것은 많이 입증되고 있다.하다못해 간병만이라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노인의 마지막 사랑으로 재산이 누수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자식들은 그것을 잘 모르는 것같다.
  • 카자흐 자치주 이리계곡(서역 문화기행:12·끝)

    ◎천산 산맥자락 초원… 기마민족의 터전/18세기 들어 영·러 등 열강 각축… 중,54년 자치주 선언/아편전쟁 승리 이끈 임칙서 장군 동상 혜원성에 남아 밤낮을 부리나케 보름을 달리면서 겨우 서역의 중로와 남로를 말 타고 꽃 보듯 하였다.이제 남은 것은 사막에 논을 일구고 초원을 비단으로 가꾼,그래서 서역의 낙원으로 불리는 북로를 결코 빠뜨릴 수 없었다. 우루무치에서 이닝(이령)까지 공로 한시간은 정말 미의 여로였다.중로나 남로가 백색 아니면 적갈색의 질식적인 영토였다면 북로는 적갈색이 마르고 청록색이 살 찌는 낙원이었다.멀리 아이비호와 사이리무(새리목)호의 쪽빛 물결이 굽어 보이고 카자흐의 팔카스호로 흘러가는 이리강의 굽이치는 맥류조차 역력히 보인다.그보다는 하얀 만년설의 천산산맥과 파란 초원과 바둑판인양 구획 정리된 논밭들을 보면서 그 장관과 풍요를 읽고 있을 때 저 땅에 흥망과 공방이 오갔던 역사,그 소용돌이가 들리는 듯했다. ○꼬마들도 말타고 사냥 여기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흑해로부터 동점한 스키타이들이 유목하면서 행국을 형성하던 곳.기마민족의 마당은 초원이었었다.따라서 초원위에서 꼬마조차 말을 타고 새를 쏜다는 흉노와 한무제때부터 동맹을 시도했던 오손과의 밀고 당기던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땅이다.그래서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었다. 기원전 110년부터 기원전 105년 사이의 일이었다.한무제의 사신 장건이 오손의 곤막왕을 찾아 명마 천필을 요구하자 오손왕은 한왕조의 공주를 소망하였다.오손과의 동맹으로 흉노를 치고 명마 천필을 위해 이를 응낙하였다.무제 조카의 딸인 세군공주를 구천리밖 오손에게 보냈다.공주가 왕의 우부인이 되었지만 멀지 않아 곤막조차 노환으로 죽었다.오손의 풍습대로 곤막의 손자에게 다시 시집을 가서 딸 하나를 두었다지만 고향을 그리다가 끝내 백조가 되어 환고향하겠다는 슬픈 시를 남겼었다. 아름다운 이리계곡에 싸움은 쉬지 않았다.18세기에 들면서 이슬람교도의 반란으로 야기된 서터키스탄의 무장 침입을 비롯,영국·러시아등 열강의 침노로 영일이 없었다.19 54년 중국 중앙정부가 이닝에다 「이리지역카자흐자치주」를 선포하면서 안정을 되찾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이리강 유역은 뎅구리(카자흐말로 하늘이란 뜻)신앙에 뿌리 깊은 기마민족과 세계최대의 농업민족인 한족과 교전으로 얼룩진 「화성」이요,「백양성」이다. 「사기」,「대원전」에 따르면 오손은 흉노보다 작은 행국으로 준갈분지의 남역과 천산북로를 무대로한 천산유목민이었다.그들은 늘 몽골 고원으로부터 침노하는 흉노나 서쪽으로부터 밀려오는 대월씨,대원등과 쫓고 쫓기면서 혼혈을 거듭하였다.그래서 옛날 오손국을 점거한 카자흐사람이 혈맥상 오손의 후예일 가능성도 없지않지만 유목적인 생활모형만은 오손의 계승자임이 틀림 없다. 이닝지역의 인구는 비록 카자흐·위구르·한의 삼분천하였지만 카자흐의 자치주인 만큼 카자흐의 색깔이 진했다.거기서 손을 뻗치면 옛날 소련연방이었던 카자흐공화국과 맞닿는 국경이다.텁수룩한 수염에 뾰죽하면서도 결코 높지 않은 코.형상은 사뭇 위구르사람을 닮았지만 살갗은 흉노쪽,역시 알타이가 가까워선지 모르겠다. ○위구르사람 얼굴 닮아그러한 카자흐사람을 보면 옛날 한나라때부터 이곳에 죽치고 살았던 터주들임에도 그들이 뽐내는 천마를 기르고 천산 산마루나 초원을 질풍처럼 달리면서 함성을 지르는 기마술 말고 그들 스스로의 역사는 쓸쓸하리만큼 한산하다. 1978년 북경의 고고학자들이 이닝의 서쪽 고을 신웬(신원)에서 오손의 무덤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필자는 그때 의아했었다.유목민에게는 성토해서 봉분을 만드는 습속이 없어서였다.오손족은 그만 두고 천하를 휩쓸었던 칭기즈칸의 무덤조차 알 길이 없지 않았던가? 그들은 시신을 풀밭에 묻고 그 위로 말이 달리고 새풀이 돋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풀밭이 되었었다. 그럼에도 차푸차알(찰포사이)에 있는 시보(석백)족 자치현에 오손 고분이 있다는 말을 듣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그 고분이 있는 진첸(김천)읍은 이닝의 동남쪽 4.8㎞지점.진쳰읍 이라치뉴루(의랍재오록)마을엔 크고 작은 고분 2기가 있었다.그들은 모두 만두모양의 대머리 무덤,그 위에는 풀 한포기 없는 황토의 언덕이었다. 진쳰 씨앗공장뒤편에 있는큰 무덤은 그 높이가 10m에 직경이 25m쯤,거기서 서쪽으로 4백m지점인 시보중학교 교문옆에 있는 작은 무덤은 큰 무덤의 3분의 1 크기였는데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임은 마찬가지였다.다만 아무 곳에도 2천년전의 오손 무덤임을 증명하는 기록은 없었다.1978년,신웬고분의 발굴조사에서 이미 밝혀진대로 비록 2천년의 연조는 밝혀졌지만 그 속에서 고작 유골과 약간의 목기만 출토되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다만 흙 둥주리뿐인 오손 고분을 답사하고 돌아오면서 결코 허행이 아니었다는 생각은 차푸차알에 들러 시보족들의 마음을 참관하고서였다.그곳은 이닝 남쪽 20㎞지점,서역에서는 유일하게 시보족이 집단 거주하는 촌락이었다.그 마을 이름이 시보말로 「곡식의 창고」라는 뜻,그만큼 풍요로운 땅이었다. 필자가 서역을 떠돈지 스무날,이제 귀로에 올랐는데 뜻밖에도 타관서 동향을 만난 설렘이 있었다.글세,차푸차알을 거닐다가 거리에서 만난 얼굴들은 몹시 낯이 익었었다.작은 키에 둥글 넙죽한 얼굴,낮은 코에 가는 눈.그뿐이랴? 그들의 민속촌에서는 울긋불긋한 과녁에 활쏘기와 장사들의 씨름판이 벌어지고 있었다.거기다 서너근이 될법한 무와 빈대떡 비슷한 밀떡을 부침질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2년여 남짓 귀향살이 그들은 벌써 백여년전,빈발하는 청로전쟁에 만주로부터 파견된 청군의 후예들이었다.그러니까 우리 민족과 가장 사촌민족인 만주족이었는데 그곳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만주어 보존 구역이었다. 그러나 풍운의 현대사가 남아 있는 곳은 역시 중·카국경옆 훠청현에 있는 후이웬(혜원)읍이었다.후이웬은 이닝 북서 40㎞지점.거기는 청대 이리장군(총통이 등진장군의 약칭)의 주둔지였다. 청나라는 1757년,준갈분지의 반란을 평정하여 서역을 재통일하고,1762년,거기다 「이리장군」을 설치하여 신강지역 최고의 행정및 국방의 수장으로 천산산맥의 남북로는 물론 팔카스호 동쪽지구를 총관장했었다.1764년부터 3년에 걸쳐 이곳에다 둘레 7㎞의 성을 쌓았지만 1871년의 러시아침략으로 무너졌던 것을 18 82년에 오늘의 후이웬성으로 복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이웬성이 역사의 무게를 지니게 된 것은 2백30년에 달한 연조 그 자체보다는 그를 다스리던 사람과 역사와 예술을 한 곳에 응집 표현한 몇채의 건물이 있다.그 사람은 임칙서(1785∼ 1850년)요,그 건물이란 후이웬루(혜원루)와 장군부·장군정이다. 임칙서는 애국의 장군이었다.광동광서의 총독으로 금연운동을 펼치고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군대를 물리쳐 공을 세웠으면서도 면직 당한 채,1842년12월부터 이리장군으로 전임,1845년1월 사면 받기까지 2년남짓 귀양살이하면서도 농지를 확장하고 농산을 장려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그의 자취는 사방에 있었다.후이엔성안에 보존되고 있는 당시 이리장군의 거소요 지휘본부였던 「장군부」와 「장군정」이 중국 남방의 소박한 건축양식과 정원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는가하면 후이웬성 북쪽 5백m쯤엔 임씨가 손수 심었다는 청강수 네그루가 「임공수」란 이름으로 빨간 벽돌담안에 모셔 있었다.거기에 그치지 않았다.이닝시 서북쪽 교외의 경제개발구역에는 이닝시문화국에서 1994년8월에 완공한 「임칙서기념관」이 문을 열었는데 그안에는 임씨의 동상과 사적전시실이 꾸며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리지역을 상징하는 마크는 뭐니뭐니해도 후이웬성밖에 북경의 고루를 본 떠서 1897년에 축조한 「후이웬루」다.벽돌 축대위에 날듯한 처마와 울긋불긋한 기둥의 3층 누각은 어쩌면 중국 서북단을 지키고 카자흐 자치주에 세워진 가장 한족적인 문화의 축도로 서 있다.
  • 「모택동 사생활」 저자 사망/임종까지 22년간 모주치의

    ◎괴벽 폭로 등으로 파문 불러 중국 건국의 아버지 모택동의 성생활을 폭로해 세계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던 모의 22년간 주치의 이지수박사가 미국 시카고인근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그의 가족들이 14일(미국시간) 밝혔다. 이 박사는 「76년9월9일 모의 사망직전까지 22년간 그의 주치의를 맡았으며 지난해는 자신이 보관해온 수십권의 일기를 토대로 미국에서 「모 주석의 사생활(The Private Life of Chairman Mao)」이라는 영문서적을 출판해 모의 기이한 성생활과 괴벽 및 권력투쟁 등을 폭로했었다. 이 책은 중국대륙으로의 반입이 금지돼있으나 몰래 들어가고 있고 홍콩의 중국계 출판사인 상무인서관,삼련서점 등에서는 팔지도 않고 있으나 다른 서점들에서는 베스트셀러이며 미국·일본·대만·싱가포르 등지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박사는 이 책 출판에 앞서 영국 BBC TV의 모택동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의 섹스행각을 폭로했었다.
  • 19세 소녀가장 뒤늦은 중학 졸업/성지중 마친 박영미양의 삶

    ◎동사무소 사환으로 일하며 주경야독/관절염 할머니·중학3년 남동생 부양 『서울에 전세방이라도 마련,시골에 있는 할머니·남동생과 함께 오붓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9일 강서구민회관에서 열린 교육부지정 학력인정 사회교육시설인 성지중·고등학교(교장 김한태·61)졸업식에서 중학과정을 마친 박영미(19·강서구 화곡본동 50)양의 작은 바람이다. 박양은 졸업식에서 모범학생 학교장상을 받은 소녀가장이다. 어머니가 남동생 영대(6·중3년)를 낳으면서 숨진데 이어 아버지마저 국교 2년때 교통사고로 숨져,졸지에 소녀가장이 됐다. 박양은 고향인 전남 신안군 도초면 지엄리에 살고있는 할머니(68)와 남동생을 부양하다 91년 상경했다. 할머니가 관절염에 걸려 있는등 노환으로 생활력이 없는데다 동생학비대기도 힘들 정도여서 중학교 3학년 과정을 중도포기한뒤였다. 박양이 처음 일한 곳은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전자부품회사로 전화기 부품조립일을 하다 월급을 제대로 주지않아 봉제공장으로 옮겼다. 일을 하면서도 배움에의 꿈을 버리지않고 있던 박양은 지난해 이 학교 3학년 야간과정에 편입했으며 5개월전부터는 강서구 화곡5동 동사무소에서 사환으로 일하고 있다. 상오8시부터 하오5시까지 동사무소 일을 하고 곧바로 학교로 가 하오5시30분부터 하오9시40분까지 공부하는 주경야독 생활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박양은 그러나 일주일에 3∼4번씩 할머니와 동생에게 안부전화거는 것을 빠뜨리지 않고 있으며 50만원의 월급가운데 27만원은 저축하고 10만원은 할머니에게 생활비로 보내고 나머지 13만원으로 자취생활을 해나가는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졸업을 하고보니 작은 둥지하나를 차고 나온 느낌』이라는 박양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가고 싶다』며 배움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 여교사가 「시댁식구 4대」 봉양/아신효행상 받은 유필남씨

    ◎치매앓는 시조모 병수발 등 솔선수범/“시부모·친부모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자식된 도리에 시부모와 친부모가 따로 있을 수 있습니까』 부모를 해치는 패륜이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16년동안 시조모와 시부모·시동생가족 등 4대에 걸친 시댁식구 11명을 부양해온 40대 국민교 여교사의 미담이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황금국민교 유필남 교사(42·여·대구시 수성구 황금2동 796의6)는 지난 79년 4형제중 맏아들로 같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손태식씨(47·성서공고교사)와 결혼하면서부터 결코 쉽지 않은 시부모봉양의 길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신혼의 단꿈도 잠깐,결혼 3년만에 남편이 구미로 발령받는 등 근무지를 옮겨다니는 바람에 10여년동안 주말부부생활을 하며 힘겨운 살림을 혼자 도맡아왔다. 그러나 시할머니(92)와 시아버지(71)·시어머니(67)·시동생들을 친가족처럼 여기며 한마디 군소리 없이 뒷바라지를 했고 노환으로 쓰러진 시삼촌(84년 사망)의 병간호도 마다 않고 3년동안 집에서 모시기도 했다. 또 지난 4월에는 결혼해 분가한 시동생(35)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 가족 4명도 불러들여 함께 생활하고 있다. 부부교사의 박봉으로 대가족의 생계를 이끌어가기가 어려워 제철에 맞는 옷 한벌 해입지 못하고 살아왔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억척같은 생활을 한 보람이 있어 결혼생활 4년만에 단칸 전셋방생활을 청산하고 23평 아파트로 옮겼고 다시 4년후에는 어른들을 더 잘 보살피기 위해 아담한 단독주택을 마련하게 됐다. 검소한 생활속에서도 퇴근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난 6년동안 노인성치매와 폐질환을 앓아온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목욕·대소변수발을 했고 특히 최근 두달남짓은 병원에서 밤샘간호를 했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해도 힘든 40대주부로서 어머니와 맏며느리의 역할까지 1인4역의 「고단한 삶」을 16년동안 부족함 없이 해온 유교사는 『솔직히 가끔씩 힘에 부칠 때가 없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유교사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연실(15·중학2)·연옥(13·중학1)양등 두 딸을 떠올리며 『내가 아니면 시댁어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아이들이 보고배울 수 있는 어머니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곤 했다.친정어머니와 주위사람들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묵묵히 효행의 길을 걸어온 유교사의 생활이 같은 학교 교사들의 입을 통해 알려져 그는 18일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이 주관하는 아산효행대상 시상식에서 효친부문대상을 수상했다.
  • 특별기 타고 급행…“폐암 중증” 관측/오진우,왜 갑자기 파리 갔나

    ◎주치의등만 수행… 정치목적 없는듯/의료수준·인도적 정책 고려 불 선택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폐암치료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것은 입국 신청 4일만에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측은 지난 20일 북경주재 프랑스대사관에 오진우부장의 입국 비자를 신청했다는 것이다.프랑스정부는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 「거물」의 입국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이틀 뒤인 지난 22일 알렝 쥐페 외무장관의 승인을 받아 입국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진우부장은 비자를 받은지 이틀 뒤인 24일 서둘러 평양을 출발했다.그의 비자발급을 위한 입국 목적도 「폐암 치료」라고 돼 있을뿐 아직은 그가 중병을 앓고 있는지 단순한 검진차원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수교국간의 영공통과 문제로 특별기보다는 민간항공기를 이용해 달라는 프랑스정부의 의사전달에도 굳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특별기를 타고온 점등을 보면 그의 폐암이 중증일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진우부장을 수행한 인물은 주치의2명,간호요원 2명,경호원 1명,통역 1명인 것으로 전해졌다.때문에 그의 프랑스 방문에 신병치료 이외의 망명등 정치적 목적은 없는 것으로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그가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파리 시내 라에넥병원은 파리의 6대 종합병원의 하나로 호흡기전문 병원이다.그러나 26일 현재 그의 병원입원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가명으로 입원한 것으로 보인다. 오진우부장이 중국 등 수교국을 두고도 프랑스를 택한 것은 프랑스의 발달된 의료기술,프랑스와의 관계및 프랑스의 인도주의적 정책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프랑스는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회당 정권의 출범으로 서방국가 가운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84년 12월에는 통상대표부에서 일반대표부로 승격됐다.평양의 양각도호텔도 프랑스 기업이 투자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의료기술은 에이즈 백신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등 세계적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또 고 김일성주석의 심장박동기도 프랑스 의료진이 방북해 달았을 만큼 북한에는 프랑스 의료기술이 친숙한 점도 고려된듯하다. 또 프랑스가 미수교국의 지도층이 치료나 검진을 희망하는 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허락해준 전례들도 오진우부장의 프랑스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프랑스는 지난 85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제2인자의 치료를 받도록 했으며 지난 5월에는 리비아의 외무장관이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파리를 경유하는 과정에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 적이 있다. ◎오진우의 전력과 최근 행보/항일유격대출신 혁명 1세대… 77세로 거동 불편/군 좌지우지… 김정일과 권력투쟁설 올해로 만 77세인 북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최근 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로 노쇠현상이 뚜렷했다.가장 최근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 16일 김일성사망 1백일 추모회였는데 이때 다리를 저는등 거동이 몹시 불편한 모습으로 북한 TV에 비쳐졌다. 그는 김정일에 이어 권력서열 제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8일 김일성사망 이후 몇몇 주요 행사에 나타나지 않아 김정일과의 불화설등 그의 신변을 둘러싸고 이상이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즉,7월20일 중앙추도대회 후 첫 중요행사인 「7·27 전승기념일」 행사에 군원로이며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가 당연히 참석해야 했으나 불참했고,이어 9·9절(정권수립기념일)행사,10월11일의 단군릉 개건 준공식등 비중있는 행사에 잇달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다만 지난달 20일 추석을 맞아 「혁명열사릉」에 헌화한 뒤 다음날인 21일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사망 45주 추모회에 참석했고 또 하루 뒤인 22일 김정숙동상에 헌화한 사실이 전해졌다.생전에 두터운 교분을 유지해 왔던 김일성부부,혁명열사 추모행사에만 참석했을 뿐이다. 폐암이라는 오의 병력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지금까지 파악된 것으로는 86년 9월께 음주운전 사고를 내 의식불명의 중태에까지 빠졌었다는 것이 전부일 정도이다.당시 오는 한 연회에 참석한 뒤 만취된 채로 차를 몰고가다 평양시내 전승기념관의 가로수를 들이받아 9개월가량 고위 당정간부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이때 김정일이 헬리콥터까지 동원,긴급 후송을 하도록 지시하고 치료에도 세심한 배려를 해 준 것이 계기가 돼 김정일에 호감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그의 출생연도가 김일성보다 불과 5년 아래인 1917년생인 것으로 알려져 폐암이 아니더라도 노환을 피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원 출신으로 혁명 1세대를 대표하고있는 그는 김일성과함께 오늘의 북한 체제를 구축한 주역의 한사람이다.함남 북청출신인 오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 구조에서 언제나 2인자로 군림함으로써 그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다.옛 소련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대학을 수료한 뒤 항일유격대에 가담한 오는 45년 10월 인민군 최고사령부 호위국장에 취임하면서 북한 군부의 핵심라인에 올랐다.이어 60년 8월 1집단군 군사령관을 거쳐 당정치위 후보위원이 됐으며 마침내 76년 5월 인민무력부장에 취임,군부를 장악했다.92년 4월에는 원수에,93년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라 실질적인 3인자 지위에 있다가 김일성이 죽자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최근에는 그의 「거세설」·「연금설」과 함께 아들의 중국탈출설도 나왔었다. ◎“오진우란 환자없다” 입원 부인/파리병원 주변 스케치 ○…파리시내 비노가에 있는 북한 일반대표부는 오진우 부장의 방문에도 불구,겉으로는 조용한 분위기. 북한측 한 관계자는 기자가 전화를 걸어 오부장이 대표부내에 있는지 등을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면서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딱딱한 반응. 북측은 한달여전부터 폐암치료병원을 물색해 왔으며 암치료약을 상당분량 구입해 평양으로 수송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오늘중 검진 받을것” ○…오부장은 입원할 병원이 워낙 취재진에게 노출돼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거소에서 의사왕진을 통해 진료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라에네크병원측은 많은 취재진이 몰리자 『오늘 이 시간 현재 「오진우」라는 환자는 병원에 없다』며 『그러나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다』고 발표. ○노출우려 왕진 가능성 ○…프랑스 내무부는 26일 상오 오부장이 이날 중 라에테크병원의 검진을 받을 예정이라고 발표. 외무부는 검진결과에 따라 입원,수술,귀국등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 ○외교소식통,망명 일축 ○…한 외교소식통은 오부장이 망명할 가능성에 대해 『프랑스정부는 인권탄압등의 경우에 한해 망명을 허용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일축. 이 소식통은 『오부장의 프랑스방문이 핵문제합의문 채택에 이어 남북대화등 관계진전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
  • 신병딛고 국감 전념 정균환의원(국정감사 스포트라이트)

    ◎「세금횡령」 13가지의문 제기/“휴식” 권유에도 막무가내… 대안제시 앞장 벌써 종반으로 접어든 이번 국정감사 기간동안 국회 내무위는 거의 날마다 밤12시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내무위원의 수는 재무위(28명)에 이어 국회 상임위에서 두번째로 많은 26명이다.그동안 한두명을 빼고는 거의 모두가 질의에 나섰으니 회의가 늦게 끝날 수 밖에 없었다.게다가 올해 내무위에는 유달리 「뜨거운」 쟁점이 많았다.인천시 북구청 세무비리사건,행정구역 개편논란을 포함해 「지존파」「온보현」「보복살인」등 새로운 유형의 흉악범죄등. 이처럼 산적한 현안들을 놓고 연일 계속된 공방으로 내무위원들은 피로에 지쳐있다.이들 의원가운데 성실성에서 단연 돋보이는 의원은 민주당의 정균환의원(51)이다.전북 고창에 지역구를 둔 재선의 정의원은 지금 「환자」이다.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 장수술과 목수술을 한번씩 받아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더욱이 여든살 된 노모가 노환으로 몸져누워 있다.그런데도 창백한 얼굴의 그는 빠짐없이 감사활동에 참가했다.도저히앉아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렵자 김기배위원장의 양해를 얻어 먼저 질의를 한뒤 「조퇴」했고,한번은 서면질의로 대신하는 정도였다.동료의원들이 안쓰러운 나머지 「쉴 것」을 권유해도 막무가내다. 이러한 불편속에서도 수감기관들의 「아픈 곳」을 낱낱이 지적할때는 풍부한 증빙자료와 냉철한 분석이 뒤따랐다.수감기관들로부터 「피곤한 의원」으로 손꼽히는 데서 알 수 있듯 감사전에 요구한 자료만 해도 무려 4백50여건에 이른다.내무위 전체요구자료의 4분의 1에 가까운 분량이다. 장의원은 13일 내무부 감사에서 세무비리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인천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과 관련,『이것이 알고 싶다』면서 13가지 의문점을 들었다.경찰이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첩보를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하지 않았고,세무과에 근무한지 5개월도 안되는 공무원이 영수증의 은닉에 가담했고,영수증 은닉을 확인하고도 4일이나 지나서야 수사했고,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부천경찰서가 수사한 점등을 조목조목 따졌다.지난달 최형우내무부장관이 이번 사건에 대해 인천시북구청에 한정된 것이라고 밝힌데 대해 13가지의 사례를 들어 『허위답변』이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세금비리사건이 지난 92년까지가 아니라 지난해와 올해도 있었으며 서울 부산 대구 인천남구 경기 전남에서도 일어났다』면서 하나하나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이처럼 내무부를 공격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지방세 비리를 막기 위한 7가지 대책도 내놓았다.
  • 박태준씨 금명 귀국/모친별세… 일체류 19개월만에

    지난해 3월 출국,일본에 장기체류해온 박태준 전포항제철회장이 8일 모친상을 당함에 따라 이날 하오 대한항공편으로 1년7개월만에 귀국했다. 박전회장의 모친 김소순씨(88)는 이날 하오 1시 경남 양산군 장안읍 임광리 120의 2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박씨는 공항에서 빈소가 마련된 양산으로 곧바로 내려갔다. 유족으로는 맏아들인 박전회장과 아들 태화씨(59),태선씨(47),딸 양자씨(54),절자씨(49)등이 있다. ◎김 대통령 조의 김영삼대통령은 7일 경남 양산에 마련된 박태준 전포철회장의 모친 김소순씨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검찰,장례뒤 소환 한편 검찰은 7일 거래업체들로부터 39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중지된 박씨가 귀국할 경우 공항이나 장례식장에서 연행하지 않고 장례식이 끝난 뒤 다음 주말쯤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박씨가 모친상을 치르는 상주의 신분으로 귀국하는 만큼 공항이나 경남 양산의 상가에서 연행하는 것은 모양상 좋지 않다고 본다』며 『장례기간중에는 어떠한 조치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일단 자진출두형식을 밟되 박씨가 이를 거부할 경우 출국금지조치와 함께 강제연행할 방침이다. 검찰은 그러나 기소중지상태인 박씨에 대한 구속기소는 불가피하며 사건을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맡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박태준씨 사법처리 어찌될까/「모친상 귀국」 이후의 향배

    ◎현재 수뢰·횡령혐의 기소중지 상태/“조사하되 구속 않을것” 일반적 관측 새정부 출범직후부터 일본에 머물고 있는 박태준전포철회장이 모친상을 당해 금명 귀국할 것으로 보여 그에 대한 사법처리여부가 주목된다. 경남 양산에 머물던 박씨의 모친 김소순씨(88)가 7일 하오 1시 노환으로 별세했으며 장남인 박씨는 모친의 사망소식을 듣고 곧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의 고위 당국자는 현재 뇌물수수와 횡령혐의로 기소중지되어 있는 상태인 박씨가 사법처리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삼가고 있다.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이 이날 박씨 모친 상가에 조화를 보내고 최근의 정치권 분위기를 볼때 박씨에 대한 조사는 하되 구속까지는 않으리라는게 대체적 관측이다. ○…박씨는 지난해 3월 출국,일본에 체류하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동안은 부인의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었다.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박씨는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지난해 박씨가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국내에서는 그에 대해 뇌물수수와 횡령혐의가 발견됐고 현재는 기소중지 상태. 박씨의 한 측근은 『국내에 있는 가족들이 모여 박전회장에게 귀국하도록 알릴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했다』면서 『박전회장이 귀국을 결심한다면 8일 하오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박씨는 여권의 유효기간이 11월말로 끝나는 데다 언제까지 도피성 외유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까지 감안,이번에 모친 사망을 계기로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측도 박씨의 모친 사망에 따른 귀국과 관련,『조사야 하겠지만 특수상황이 아니냐』고 예상외로 부드러운 반응을 보여 주목.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냐』면서 『뇌물수수 및 횡령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인 만큼 장례가 끝나면 조사야 하겠지만 특수상황인데 여러가지를 고려해야지…』라고 말해 구속되는 사태는 없을 것임을 조심스레 시사. 이보다 앞서 청와대의 한 고위당국자는 『박씨가 선처를 요청하고,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는게 순서인데 저쪽에서 아무런 입장전달이 없으니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고 밝힌바 있어 청와대측은 오히려 이번 모친사망으로 인한 귀국이 자연스레 박태준문제를 해결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하는 눈치. 청와대는 박씨가 외국에 오래 유랑하는 것에 대한 국내여론의 부담과 현실적인 법적용문제 사이에서 고민해 온 것이 사실.
  • 영 다큐멘터리 거장/린제이 앤더슨 타계

    【런던 DPA 연합】 자유영화운동의 창시자이자 다큐멘터리의 거장인 린제이 앤더슨이 28일 노환으로 숨졌다고 31일 그의 대리인이 밝혔다.향년 71세. 앤더슨은 지난 54년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 「목요일의 아이들」로 아카데미상을 받았으며 60년대 영화및 연극계의 「앵그리 영 맨」(침체한 영국 사회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을 지칭)의 한 사람으로 통했다. 그는 영국 다큐멘터리 영화에 새시대를 몰고온 영화제작자동맹인 「자유영화운동」을 주도했으며 작가,비평가,극작가,시나리오 작가로서 「디스 스포팅 라이프」(63년),「이프」(68년),「오 러키 맨」(72년) 등을 감독했다.
  • 노벨평화·화학상 미 폴링박사 별세

    【빅서(미 캘리포아주) AP 연합】 노벨평화·화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화학자 리너스 C 폴링이 19일 노환으로 숨졌다.향년 93세. 폴링과학·의학연구소는 그가 이날 하오7시20분쯤 캘리포니아 중부 빅서 지역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폴링은 과학자 경력 60년에 걸쳐 1천편 이상의 논문과 여러권의 저서를 내놓았으며 비타민 C를 암·감기 등 질병 예방물질로 전세계에 알리고 핵무기를 반대한 사회운동가로 유명하다.
  • 원로 깍듯이 모시는 YS(청와대)

    제헌의원 출신인 윤치영옹은 올해 97세다.고령으로 시력·청력 모두가 좋지 않은 윤옹은 대통령이 입장하자 지팡이로 몸을 가누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대통령이 손을 잡으면서 『그냥 앉아 계시지요』하고 말렸다.윤옹은 그러나 기어코 일어서서 90도 가까이 몸을 숙이면서 『각하,초청해주셔서 영광입니다』하고 고마움을 표현했다.김영삼대통령이 14일 생존해 있는 제헌의원들을 위해 마련한 청와대 오찬장에서의 일이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많은 행사를 치렀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의 지극함이 이만한 때도 드물었다』고 말했다.참석자들은 『격동의 시기에 잘 영도해주셔셔 감사하다』 『어려운 때인만큼 대통령의 신변안전에 특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덕담과 당부를 잊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윤옹에게 『3년만 있으면 백세가 되십니다.꼭 백세를 넘기시도록 하십시오』라고 축수를 했다.윤옹은 고령으로 주 2∼3회 건강체크를 받으면서 새벽에는 자동차를 이용해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재욱옹(84)은 김대통령과 호형호제하던 사이다.지금도 영등포에서 치과병원을 개업하고 있다.윤옹의 차례가 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김대통령이 『지금도 치과를 운영하십니까』하고 물었다.윤옹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김대통령은 『참 환자가 불쌍하다.그런 연세로 어떻게 남의 이를 고친단 말입니까』하고 말을 받아 웃음이 일었다.다시 윤옹이 『얼굴보러 오는 사람들이지 병고치러 오는 사람들 같지는 않더라』고 하자 김대통령이 『그러면 그렇겠지요』라고 해 또 한차례 웃음이 일고 오찬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계속됐다. 이석주(91·이철승전의원의 작은아버지)·이상돈(83·와세다대 한국동창회장)·원장길(82·제헌동지회장)·김인식(81·제헌국회 보안법발의자)·정준(80·MRA한국본부장)·박상영옹(76·서예가)등은 젊은이 못지 않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학생파출소습격문제·남북정상회담추진·통일문제등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박옹은 이자리에서 「적벽부」를 적은 병풍을 김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김대통령은 집안어른을 모시듯 깍듯한 예우를 아끼지 않았다.김대통령은 거동이 불편한 윤치영·이석주옹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손수 의자를 뒤로 물려 일어나기 쉽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정치원로들을 잘 모시기 위해 이날 청와대는 두가지 파격을 했다. 하나는 본관의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공개한 것이다.청와대는 외국원수들에게도 1층에서 2층 정상회담장으로 올라갈 때는 계단을 이용하게 하고 있다.비상용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은 청와대비서관들도 잘 모른다.청와대측은 원로들에게 보통출입문처럼 치장돼 있는 이 비상엘리베이터를 제공했다. 김대통령은 제헌의원들에게 거마비도 내놨다.「3공」때부터 이어져온 제헌절관례에 따른 것이었다.다른 관례가 다 없어진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파격이다.제헌의원들은 「한푼도 받지 않는 대통령」의 촌지가 궁금하고 소중한 듯 그자리에서 봉투를 풀어보고는 그대로 다시 싸서 안주머니에 넣었다. 원로가 많은 사회는 여유가 있고 안정되게 마련이다.청와대의 이날 파격은 원로가 대접받기를 바라는 김대통령의 평소 희망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우리나라에 생존해 있는 제헌의원은 모두 12명.이 가운데 노환으로 중대병원에 1년 넘게 입원중인 안순상옹(97),중풍에 걸려 위독한 조규갑옹(90),당뇨로 성야병원에 입원중인 조한백옹(87),호흡기질환으로 제주도에서 요양중인 민경식옹(75)은 이날 오찬에 참석하지 못해 청와대를 안타깝게 했다.
  • 백18세 최고령할머니 별세(조약돌)

    ○…올해 1백18세로 우리나라 최고령자로 알려진 이아기할머니가 2일 하오 노환으로 별세. 이할머니는 공부상 생년월일이 1876년 3월15일로 조선조말 고종때 태어나 만 1백18년 2개월 18일,날짜로 따져 4만3천1백48일의 천수를 누렸다. 이할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이어 네명의 자식을 호열자로 잃은 후 막내아들 김판술씨(63)내외와 증손자와 함께 관악구 신림5동에서 살아왔다.
  • 4개직할시 민방 6대1경쟁/어제 신청마감/광주 9대1로 최고

    공보처가 31일 마감한 부산 대구 광주 대전등 4개 직할시의 지역민영TV방송 신청 접수결과 25개 남짓의 업체가 서류를 제출,전체적으로 약 6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지역별로는 광주가 9대1로 경쟁률이 가장 높았고 부산은 3배1에 그쳤다.대구는 5대1,대전은 6대1이었다. 공보처는 오는 10일부터 7월31일까지 서류심사,현장실사,공개청문회등의 심사과정을 거쳐 오는 8월 초순 최종 지역민방 운영주체를 선정,발표하고 8월 중순 방송국 허가를 내줄 계획이다. 지역민방 신청서를 제출한 업체는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대표자 성명과 지배주주 법인명) ▲부산=부산TV방송(장한성·자유건설) 부산방송(김성조·신극동제분) ▲대구=대구방송(서병주·동국방직) 대구방송(배학철·청구) 대구제일방송(차석준·서한) 대구텔레비전방송(박중길·화성산업) 대구텔레비전(손영호·우방) ▲광주=새한방송(마상렬·남양건설) 광주방송(이병춘·대주건설) 호남방송(곽노환·청전) 광주방송(장두원·대창석유) 광주TV(서규석·동화석유) 나남방송(홍종선·라인걸설) 광주광일방송(배영수·화성건설) 광주동양방송(조찬길·에디슨전자) 광주제일방송(김학명·대한중석) ▲대전=대전방송(박성범·삼정종합건설) 중부방송(전영효·대아건설) 대전방송(한국명·종근당) 충청방송(정연구·국제특수금속) 대전방송(임성기·우성사료) 대전중앙방송(유여복·경성주택)
  • 원로 국어학자 이숭령씨 별세

    국어학자 심악 이숭령박사(86)가 2일 상오 6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1158의21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박사는 1908년 서울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학과를 졸업한 뒤 33년 평양사범학교 교유를 시작으로 경성대학예과교수,서울대교수,학술원회원,진단학회상임이사,국어학회회장등을 지내면서 활발한 학문활동을 벌여 우리나라 국어학의 기틀을 다졌다. 빈소는 원자력 병원 영안실이며 유족은 부인 이종희여사(73)와 아들 이의돈씨(51·원자력병원의사)가 있다.발인은 4일.장지는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외조리 선영.연락처 979­2501.
  • 동아일보 명예회장/김상만씨 별세

    일민 김상만 동아일보사명예회장이 26일 하오8시15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별세했다.향년 85세. 김명예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노환으로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별세했다. 지난 1910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한 김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사이사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45년간 동아일보사에서 상무·부사장·사장·회장·명예회장을 역임했다. 고인의 빈소는 고려대 인촌기념관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오는 30일 상오10시 고김상만선생 장례위원회(위원장 현승종)주관으로 거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면 금남리 선영. 유족으로는 부인 고현남여사(86)와 장남 병관씨(동아일보사회장)등 2남 3녀가 있다.
  • 쌍용자 노조간부 3명에 사전영장

    【평택】 수원지검 공안부 노환균검사는 24일 임금협상기간중 부분파업등 불법행위를 해온 경기도 송탄시 괴안동 (주)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 배범식씨(37)와 사무국장 김광수(27),홍보부장 정상진씨(27)등 노조간부 3명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사전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달 10일부터 회사측과 임금협상을 벌이면서 냉각기간과 중재기간인 지난 22일까지 회사안에서 불법 집회를 주도,부분파업을 해왔고 조합원들에게 야근을 집단으로 거부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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