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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가족 상봉 1주년… 짧은 만남뒤 긴 그리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지 1년.북녘의 부모형제를 만났던 남쪽의 가족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그리움에,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생사라도 알고 싶은 답답함에 시름만 깊어가고 있다. 지난해 역사적인 6·15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8월15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뒤,금방이라도 이어질 듯했던 이산가족 추가 상봉과 방문소 개설 등이 기약없는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1·4 후퇴 당시 가족과 생이별을 한 경유진씨(66·서울 성북구 정릉4동)는 “반세기만에 형·누나가 꿈에 나타나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데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꼭 한번만이라도 형제들을 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경씨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집을 지키며 형 호진(당시 27세),응진(〃 22세),누나 경진(〃30세). 신진(당시 19세)씨를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7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식들을 보고 눈을 감겠다던 어머니마저 96년 96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6·25때 19살의 나이에 의용군에징집된 동생 강신철씨(69)를 애타게 찾고 있는 선웅씨(70·서울 서대문구 홍은동)도“하루빨리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추진돼 우리들의 가슴에맺힌 한을 씻어줘야 한다”면서 “동생의 생사여부만이라도확인하고 싶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반세기만에 서울에서 북녘의 가족을 만난 남쪽 가족들도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8·15 이산가족 상봉 때 노환으로 입원하는 바람에서울에 온 아들 량한상씨(70)를 만나지 못하다가 마지막 날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짧은 해후를 한 김애란씨 (87·서울 마포구 서교동)는 하루종일 아들의 이름만 부른다. 이같은 어머니를 뵈면 자꾸만 가슴이 아프다는 동생 한종씨(65)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님을 만난 뒤 어머니가 더욱 애를 태우시는 걸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면서 “조금만있으면 형님이 다시 온다며 어머니를 위로하지만 언제까지계속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전영우 박록삼기자 anselmus@
  • 원로가수 고운봉씨 별세

    부두에서 남녀가 이별하는 장면을 구슬프게 표현한 노래 '선창'으로 일제 때 서민들의 마음을 달랬던 원로가수 고운봉씨(본명 고명득)가 1일 오후 2시20분 서울 강동 성심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1세. 1942년 데뷔곡 '선창'으로 인기를 얻은 뒤 '남강의 추억' '홍등야곡' '백마야 가자' '명동블루스'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고, 이 노래들은 지금가지 애창되고 있다. 지난 98년 문화훈장 옥관장을 받았으며 지난해 6월 고향인 충남 덕산온천에 노래비 '선창'이 세워졌다. 빈소는 서울중앙병원 영안실. 영결식은 3일 오전10시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가수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도 파주 오산리 묘역. (02)3010-2292. 김성호기자
  • 원로가수 황금심씨 별세

    ‘알뜰한 당신’‘삼다도 소식’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원로가수 황금심(黃琴心ㆍ본명 黃金童)씨가 30일 오전11시 30분 서울 당산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79세. 부산 동래출신인 고인은 일제하인 1934년 ‘외로운 가로등’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뒤 ‘뽕따러 가세’‘울산아가씨’ 등 4,000여곡을 발표하며 오랫동안 ‘가요계의 여왕’자리를 지켰다.그러나 고인의 말년은 평탄치 못했다.지난 72년 남편 고복수씨(가수)가 타계한 이후 슬하의 3남 2녀를 기르기 위해 밤무대 활동을 마다하지 않았으며,5년전부터는 파킨슨씨병까지 앓았다. “병이 나으면 다시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해온 고인의음악열정은 자식들에게 이어지고 있다.큰아들 고영준씨와둘째 며느리 손현희씨가 가수로 활동중이고 셋째 아들 병준씨는 SBS 사극 ‘여인천하’의 음악감독이다.빈소는 서울 강남 성모병원 영안실.영결식은 8월1일 오전8시30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가수장으로 치러진다.장지는경기도 용인 가톨릭공원묘지.(02)590-2538김성호기자 kimus@
  • 부음/민석홍 학술원 회원

    민석홍(閔錫泓) 학술원 회원(서울대 명예교수)이 2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76세.고인은 48년 서울대 사학과를졸업,연세대와 서울대 문과대 교수를 거쳐 88년부터 학술원회원을 지냈다. 프랑스혁명 연구와 한국민주주의 연구에 큰성과를 남겼으며, 국민훈장 모란장과 프랑스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유족은 아들 동선씨(SK제약 부장) 등 1남1녀.빈소는 삼성서울병원,발인은 24일 오전 8시 (02)3410-6917.
  • 대한매일 첫 발굴 항일독립운동사 2題

    ■단재 신채호선생 화장터 찾아냈다. [베이징·뤼순 김삼웅주필] 대한매일신보 창간 97주년을맞아 대한제국시대 본보의 주필을 역임한 민족주의 사학자단재 신채호선생의 시신을 불태운 화장터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중국 뤼순(旅順)시 용하서(龍河西)삼리교(三里橋)부근의옛 화장터가 그곳이다. 뤼순감옥에서 시내쪽으로 1Km지점 8천여평부지에 자리잡은 건물에 일제가 감옥전용으로 설치한 화장장이다.당시의 건물이 퇴락한 채 남아있다. 잡초가 무성한 한켠에 세워진 화장장 건물 2동은 지금 건축 자재를넣어두는 창고로 변했다. 기자를 이곳에 안내한 반무충(潘武忠)대련뤼순 감옥 연구원(52)은 최근까지 일제 말기에 화장장에서 일해온 사람(중국인)이 살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일제는 뤼순감옥에서 옥사하거나 처형한 항일지사들을 이곳에서 화장하였다고 전했다. 단재에 앞서 안중근의사는 뤼순감옥에 갇혔다가 1910년 3월26일 형이 집행되어 순국했다. 안의사의 유해는 형무소공동묘지에 매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상태이다.안의사가 순국하고 8년후인 1928년 단재선생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6년 2월18일 뇌일혈로 의식을 잃고 2월21일 오후 4시20분 의식불명으로 유언을 남기지 못한채 이국땅에서 옥사하였다. 향년 57세. 단재는 다음날 오전 11시 뤼순화장장에서 한줌 재로 변해달려간 부인 박자혜여사와 어린 아들 수범 그리고 동지 서세충(徐世忠)에 의해 고국으로 운구되었다. 박자혜 여사가 1936년 ‘조광’제4호에 쓴 ‘가신 임 단재의 영전에’는 남편을 이국의 화장터에서 불사른 당시의 애틋한 정경이 그대로 전한다.(다음은 글의 뒷 부문) “지난 2월18일 아침이었지요, 아이들을 밥해 먹여서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전보 한장이 왔습니다. 기가막힙니다. 무엇이라 하리까. 어쨌든 당신이 위급한 경우에 있다는 것이라 세상이 캄캄할 뿐이나 그저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어떻게 되든 간에 수범이를 데리고 그날로 당신을 만나려고 떠났습니다. 뤼순형무소에 닿기는 그 이튿날-2월19일 오후 세시 십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벌써 의식을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5년이나 그리던 아내와 자식이 곁에 온 줄도 모르고당신의 몸은 푸르뎅뎅하게 성난 시멘트 방바닥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지요. 나와 수범이는 울지도 못하고 목메인채로 곧 여관에 나와서 하룻밤을 앉아서 새우고, 그 이튿날 아홉시 되기를 기다려 다시 형무소에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고 면회를 거절하겠지요. 물론 비참한 광경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관리들의 고마운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세상을 아주 떠나려는 당신의 임종을 보지 못하는 모자(母子)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정말 당신은 2월21일 그날 오후 4시20분에 영영 가버리셨다고요. 당신의 괴로움과 분함과 설움과 원한을 담은 육체는 2월22일 오전 열 한시, 남의 나라 좁고 깨끗치 못한 화장터에서 작은 성냥 한 개비로 연기와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이여! 가신 영혼이나마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kimsu@. ■백암 박은식 서거 호외도 입수.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임정기관지 ‘독립신문의 주필과 사장에 이어 임정 제2대대통령을 역임한 백암 박은식선생의 부고를 알리는 독립신문 호외가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백암 선생은 대한매일신보 창간 직후인 1905년 본보의 주필을 역임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강제합병직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과 역사연구에 생애를 바쳤다. 기자는 허중전(許中田) ‘인민일보’주필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중 베이징에서 지인을 통해 ‘독립신문’의 호회를입수했다. 대한민국 7년(1927)11월2일자로 발행한 이 호외는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과 ‘독립신문’의 주필·사장을지낸 백암선생의 부음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 신문의 호외판형으로 앞면에 “전 임시 대통령 박은식 각하 서거”란 제목으로 “전 임시대통령 박은식각하께서 수월 전부터 노환으로 요양중에 계시다가 마츰내 약석(藥石)의 효(效)를 진(秦)치 못하야 작일 하오7시 상해 ○○의원에서 문득 서거하시니 향수가 67세시라.”란 부음 기사를 싣고 있다. 특히 이 호외에는 백암선생이 임종때에 남긴 ‘위촉(유언)’을 공개했다. 첫째, 독립운동을 하려면 먼져 전족적(全族的)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고 둘째, 독립운동을 최고운동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하여는 어떠한 수단방략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고 셋째, 독립운동은 오족(吾族)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운동동지간에는 애증친소의 별(別)이 없어야 된다는 우국충정의 유훈이 실렸다. 백암 선생의 서거를 맞은 임시정부는 최초로 장의를 국민장으로 할것임을 호외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장례날과 장지는 미처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호외를 발행했음이 드러났다. 임정은 11월4일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유해를 상하이 정안길로(靜安吉路)공동묘지 600번지에 안치하였다.(현재 동작동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안장) 백암 선생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독립신문’이 11월11일자 전면에 추모특집을 꾸민 것을 비롯 중국의 ‘중화보(中華報)’, ‘상해화보(上海畵報)’등에서 선생의 죽음을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애도해 마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이상재·권동진·김성수등이 ‘고 박은식씨 추도발기회’를 결성하고 동아일보에서는 ‘곡 백암 박부자(朴夫子)’란 사설을 싣기도 했다. 1946년 대한매일의 전신서울신문사에서 백암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하였으며, 현재 대한매일과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의 공동작업으로 박은식·양기탁전집이 준비되고 있다. kimsu@
  • 부 음/ 독립운동가 정영국 선생. 박병배 전 국회의원

    ■독립운동가 정영국 선생 독립운동가 정영국(鄭永國)선생이 13일 오전 0시 5분 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향년 91세. 평북 철산 태생인 정선생은 1930년 창동(彰東)학교에서 반제동맹을 조직,책임자로 활동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안창호 등을 만나 애국단 조직확대에도 참여했다.또 귀국후국내에서 항일활동을 하다가 동지 72명과 함께 체포돼 모진고문을 받고 척추와 팔에 부상을 입어 불구가 됐다.90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은 부인 이열자씨와 치섭(청주대 교수),경훈(재미 치과의사),예실(재미 약학의사)등 2남 1녀.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은 16일 오전 9시,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02)590-2560. ■박병배 전 국회의원. 박병배(朴炳培) 전 의원이 12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84세.고인은 제4,5,7,8,9대 국회의원과 민주통일당 총재대행 등을 지냈으며 학교법인 돈운학원 이사장으로 육영사업을벌여왔다. 유족은 장남 선우(善宇.학교법인 장훈학원 이사장)씨 등 1남4녀.빈소는 삼성서울병원,발인 16일 오전 7시.(02)3410-6915
  • 부음/ 김문근 대성광업개발 회장

    ■김문근(金文根) 대성광업개발㈜ 회장이 5일 오후 3시45분께 서울 연대세브란스병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78세. 대구 출생인 고인은 고(故) 김수근 대성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으로 대성탄좌개발㈜,대성자원㈜ 대표이사를 거쳐 대성광업개발 회장으로 기업을 이끌어왔으며 대한석탄협회 부회장,대한광업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김정희(72)씨와 영범(51·대성광업개발 사장),영돈(48·〃 부사장),은주(46·여),영천(41·〃 이사),영석(39·〃 부장)씨 등 4남1녀.발인은 7일 오전 9시 서울대병원. (02)760-2011
  • 애국지사 유용근옹 별세

    애국지사 유용근옹이 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80세. 황해도 송화 태생인 고인은 일본 도쿄농업대학 대학중이던 1940년 항일지하단체인 조선인학우회를 결성, 1943년 12월 일경에 체포돼 해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장기8년 단기5년형을 선고받고 해주감옥에서 복역중 광복을 맞았다. 이어 단신 월남하여 서울대 수의학과 재학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하였으며, 육군소령으로 제대한 뒤 1955년부터 20년동안 서울시립농업대, 서울시립산업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중앙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4일 오전 8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유족은 부인 이상희 여사와 2남1며. (02)3010-2000.
  • 강신재씨 ‘명성왕후’ 재출간

    지난 12일 타계한 여류작가 강신재(康信哉)씨가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명성황후’의 재출간을 하루 앞두고별세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명성황후’(전3권)를 재출간한 소담출판사 박지근 과장은 17일 “강 선생님은 지난 1월부터 ‘명성황후’재출간작업에 직접 참여,손수 표기법·띄어쓰기 수정작업 등을 했다”면서 “책이 13일 나왔는데 선생님이 하루전인 12일 돌아가셔,결국 영정 앞에 책을 바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명성황후’ 재출간 작업은 작년말 판권 재계약을 계기로출판사측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 때 강씨는 기존의 현대식 표기법 등에 대해 일부 수정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이번 책에서는 ‘있을꼬’가 ‘이슬꼬’로,‘몸으로라도’가 ‘몸으로락두’로,또 일본어는 ‘카’‘타’가 ‘까’‘따’ 등 경음으로 바뀌었다.이는 강씨가 역사소설의‘시대성’이라는 특성을 감안한 때문이다.작업과정에서 편집자가 “‘이조(李朝)’라는 용어는 ‘조선’을 비하한 것으로 적절치 못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이에 대해강씨는 “지금은 ‘이조’라는 용어가 그렇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명성황후가 살았던 당시 표현으로선 가장 적절한 용어라고 본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이조’가 그대로 나갔다. 강씨는 노환으로 병원을 오가면서도 ‘명성황후’재출간작업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대개 재출간은 저자의 동의 아래 편집자가 ‘알아서’ 손보는 것이 보통인데 강씨의경우 한줄 한줄의 표기까지 꼼꼼히 손을 보며 강한 집착을보였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강승원씨의 ‘남한강’출간 이후 출판사측이 후속 역사소설로 내놓은 것이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 등과 맞물려 ‘시의성’을 타고 있다. “지금의 국제정세의 복잡성과 국내정치의 난맥상이 당시와너무나 흡사하다”. 3권 후미에 실린 ‘저자후기’의 한 대목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부음/ 뇌성마비복지회장 김학묵씨

    김학묵(金學默) 한국뇌성마비복지회장이 15일 밤 8시25분서울 고려대부속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5세.1916년 충북 음성 출생으로 54년 고등전형시험 합격,서울시 비서관을 거쳐 60년 보건사회부 차관을 지냈다.대한적십자사사무총장과 부총재를 역임했고 78년 한국뇌성마비복지회를창립,장애인들의 복지향상에 기여했다. 유족으로는 TV드라마 ‘용의 눈물’‘여인천하’ PD인 장남 재형(在衡)씨와차남 재휘(在徽·신한 회장),3남 재연(在衍·KBS 부주간),딸 재옥(在玉)씨 등 3남1녀가 있다.발인은 18일 오전 8시삼성서울병원 (02)3410-6921.
  • 고건 서울시장 모친상 美서 귀국

    고건(高建) 서울시장이 미국 방문도중 모친상을 당해 지난 13일 오후 급거 귀국했다.고시장의 모친인 장정자(張貞子)씨는 13일 0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7세.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투자유치 등을 위해 지난 8일 미국 방문길에 나섰던 고시장은 당초 15일 귀국할 예정이었다.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02)3410-6915.발인은 17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경기도 파주 용미리 서울시립 추모의집이다.
  • 월하스님 폐렴으로 입원

    조계종 제9대 종정을 지낸 경남 양산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월하(月下) 스님이 노환으로 동국대 경주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월하 스님은 폐렴 증세를 보여 지난 5일 이 병원에 입원,한때 상태가 위독했으나 현재는 상좌스님의 부축을 받아 기동이 가능한 정도로 호전돼 일반 병동에서 치료받고 있다. 병원측은 “고령(세수 88세)인 스님이 환절기에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며 “위험한 상태는지났지만 당분간 입원을 계속하며 요양하는 것이 좋다고판단된다”고 말했다.
  • 애국지사 김군남옹 별세

    애국지사 김군남(金君南) 옹이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5세. 김 옹은 평북 박천에서 태어나 26세때 조국광복의 꿈을안고 중국으로 망명,서주에 위치한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부대의 군수품 조달임무를 수행했으며 이후 한미공동으로 구성한 OSS훈련반 연락장교로 파견돼 활약했다.지난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받았다. 빈소는 서울 안암동 고대병원 영안실(02-921-5899)이며발인은 6일 오전 9시30분.장지는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이다.
  • “남녘 마을 꽃이 피네”

    3월 섬진강에 눈이 내린다.백설(白雪)이 아니라 매화와산수유가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다.남해바다건너 맨먼저 봄을 알리기 위해 달려온 전령들일까.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550리를 달려와 마지막가쁜 숨을 몰아쉬는 곳,전남 광양의 섬진 ‘매화마을’과구례의 ‘산수유마을’을 찾았다. ◆‘하얀 봄’ 매화=섬진강변을 달리다보면 호남정맥의 종착역격인 광양 백운산(1,218m)의 옹혼한 자락에 휘감기게된다.산자락을 온통 뒤덮은 하얀 눈송이,매화가 훠이훠이봄을 부른다. 전남 곡성과 구례에서 섬진강 줄기를 따라 남하하면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이른다.이 일대 온 산등성이에 매화그림이 그득하다. 매화는 3월 한달동안 이상저온이나 늦서리가 없어야 개화하고 과실을 기대할 수 있다.섬진강 아침안개에 젖은 따사로운 남녘 햇살을 털어내는 곳으로 이만한 데가 없다. 13만여평 광양청매실농원의 ‘신화’는 1930년대초 고 김오천옹이 이곳 밤나무밭에 매화를 심으면서 움텄다.며느리 홍쌍리씨가 맨주먹으로 밭을 일구고 전통옹기 2,000여개에 매실을 보관,식초와 김치(우메보시),장아찌 등을 가공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매실은 6월말쯤 딴다.매실은 수확시기에 따라 백가하,양청매,고성,개량 내전매,남고매,지장매 등으로 나뉜다. 매실마을의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더 윗쪽,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일대까지 50만여평이 매화단지로 탈바꿈하고 있다.아직 어린 나무이지만 4∼5년후에는 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하얀 솜이불을 덮은 듯 화사한 매화밭을 보며 고개를 넘는다.인파로 북적대는 청매실 농원 오른편 고개마루에 서면 계곡을 뒤덮은 매화가 다사롭기 그지없다.낭창낭창 늘어진 매화가지 사이로 하늘을 치어다보는 재미 또한 삼삼하다. 매화밭 곳곳에 나무 등걸을 만들어놨다.여기에서 재야 한문학자 손종섭(83)옹이 엮은 한시집 ‘내 가슴에 매화 한그루 심어놓고’(학고재)의 한 자락을 들춘다.책에는 퇴계 이황이 어찌나 매화를 아꼈던지 ‘매형(梅兄)’이라 부르고 노환이 위중해지자 ‘깨끗하지 못한 모습을 매형에게보일 수 없다’며 매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유언을남겼다는 내용이적혀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석양에 호올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고 읊은 이는 고려때 이색이었고 조선 때 송강 정철은주군을 그리는 마음을 빗대 ‘저 매화 꺾어내여 임 계신데 보내고저’ 했으며 강희맹은 ‘너의 그 맑은 향기로 해서 천지의 봄임을 깨달았나니’ 라고 매화를 칭송하기도했다. 매화밭은 퇴비를 많이 넣는 탓에 야생화가 지천이다.매화 그늘 푸른 잡초 위에 보라빛 꽃잎을 피어올린 제비꽃을완상하는 일은 또다른 즐거움이다.미리 도구를 준비해 가족들이 함께 수채화를 그려보는 것도 좋다. 때마침 바람이 인다.조그만 바람에도 꽃송이가 눈처럼 날린다.이번 주말 매화의 마지막 화사로움을 낱낱이 지켜볼일이다. ◆‘노란 봄’ 산수유=매화마을을 나와 섬진교를 건너 경남 하동읍에 들어서기 전 좌회전해 30분정도 올라오면 벚꽃터널로 유명한 화개 쌍계사로 가는 길이 나온다.조금 더가면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악양들판이 펼쳐진다. 여기를 지나쳐 구례읍에 이른 다음 전북 남원쪽으로 올라가다 오른편으로 빠지면 지리산온천 타운.이어 지리산 만복대 기슭으로 올라가면 산수유로 유명한 상위마을에 이른다. 지난 주말 산수유꽃축제를 치렀지만 산수유의 노란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는 이번 주가 제격이다.추운 날씨 탓에만개시기가 늦춰졌다. 산수유는 얼음과 눈이 녹아내린 차디찬 계곡물을 먹고 꽃을 피운다.버들개지 사이로 계곡을 향해 팔 벌리듯 가지를뻗은 산수유나무들의 합창이 현란하다. 속정모르는 서울 사람들은 산수유를 개나리와 구분하지못하는 청맹과니다.가지와 꽃 모양이 전혀 다르다.산수유꽃잎은 현미경으로 본 눈 결정체를 닮았고 개나리처럼 가지가 처지지 않는다. 구례읍에 사는 김수철씨(37)는 “해마다 이맘때쯤 찾는다”며 조붓한 골목길과 초가지붕,알록달록한 지붕 사이사이얼굴을 드러낸 산수유 잔치가 볼만하다고 말한다. 산수유나무 한그루가 200만∼300만원씩에 팔린다니 이만한 돈벌이가 없다.여기에 고로쇠물로 얻은 소득까지 합하면 김씨 말대로 이곳 사람들은 구례에서 가장 부자인 셈이다. 이제 매화와 산수유가 고운 자태를 뽐낼 날도 얼마 남지않았다.매화향과 산수유의 색상을 음미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임병선기자 bsnim@. *여행가이드.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을 나와 17번 국도를이용,남원시 직전의 춘향터널을 지나자마자 19번 국도로갈아탄다.이 도로는 하동과 광양으로 이어진다. 서울역에서 구례 구(舊)역까지 하루 13회 열차가 다닌다. 31일까지 당일코스와 무박2일 코스 매화열차가 마련돼 있다.서울남부터미널에서 구례행 고속버스와 하동행 고속버스가 하루 4차례 운행한다.구례공용터미널 (061)782-3941,하동공용터미널 (055)883-2663. 구례 화엄사 입구와 지리산온천 주변에 숙박시설이 많다.지리산 한화콘도(061-782-2171)와 지리산온천호텔(061-783-2900),송원리조트(061-780-8000) 등이 있고,하동 섬진각(055-882- 4342) 신라호텔(055-884-4181) 등도 괜찮다. [먹거리] 섬진강가의 먹거리는 참게와 재첩.구례읍 대한가든(061-782-8239)은 된장을 푼 국물에 무,호박,토란줄기,고사리를 넣고 끓인 참게탕이 유명하다.하동읍의 섬진강식당(055-884-5527) 화개면의 동백식당(055-883-2439)도 이름이 있다. 섬진강 주변 거의 모든 식당에서 재첩국을 판다.하동의동흥재첩국(055-883-8333)과 강변할매재첩국(055-882-1369) 등이 잘 알려져 있다.
  • 애국지사 김용씨 별세

    애국지사 김용(金龍)씨가 23일 오전 5시30분 인천시 중구항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3세. 황해 해주 출신인 고인은 중국 난징(南京) 중앙대 농학원에 재학중 광복군에 입대한 뒤 공작원으로 첩보활동을 한공로가 인정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종전씨와 2남1녀를 두고 있으며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제2묘역에 안장된다.발인은 26일 오전9시 서울 삼성서울병원.(02)3410-6914.
  • 정주영씨 별세

    현대그룹의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이 타계했다. 한국경제 근대사의 마지막 거목인 정 전 명예회장은 21일밤 10시 서울 풍납동 서울중앙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서울중앙병원측은 “정 전 명예회장은 폐렴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증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장남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 총괄회장과 몽헌(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몽준(夢準) 현대중공업 고문등 가족들이 임종했다. 정 전 명예회장은 지난해 6월 ‘3차 소떼 방북길’에 나서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함경남도 원산으로 날아가는 등 무리한 일정 때문에 귀국한 뒤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서울중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입원 중에는 영양주사로 기력을 다소 회복해 서울 청운동 자택이나 계동 본사 사옥에 들르기도 했으나,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기력이 다해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강원도 통천 출신인 고인(故人)은 1940년 합자회사인 아도써비스공장 설립을 시작으로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고,50년에는 현대건설을 세워 대규모의 해외수주 물량을 확보,국가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유족으로는 서울중앙병원에 입원 중인 부인 변중석(邊仲錫·80)여사와 장남 정몽구 현대·기아차 총괄회장,몽근(夢根) 현대백화점 회장,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몽준 현대중공업 고문,몽윤(夢允) 현대해상화재 고문,몽일(夢一)현대기업금융 회장 등 6남1녀가 있다.장례는 25일 오전 8시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이다.빈소는 서울 청운동 자택,연락처 (02)732-3778. 주병철기자 bcjoo@
  • 임진수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별세

    시인이자 서울신문 전 논설위원 임진수(林鎭洙)씨가 11일오전 8시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75세. 임씨는 한국일보·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대한매일의 전신인서울신문에서 논설위원을 지냈다.발인은 13일 오전 8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백병원,장지는 용인 공원묘지이다.유족은 부인 이순진(李順眞)여사와 정아(晶雅),순주(淳周),순형(淳炯),순원(淳源)씨.(031)919-0899.
  • 정주영명예회장 위독설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가 심상치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대는 특별히 악화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7일 현대에 따르면 정 전 명예회장은 최근 외부 거동을 못한 채 서울중앙병원에만 머물고 있다.이에 따라 4억달러 지급보증에 따른 현대건설 출자전환 동의서에 필요한 최대주주정 전 명예회장의 동의도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병원을 방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관계자는 그러나 “정 전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병원과청운동 집을 왔다갔다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라며 “건강상태가 특별히 나빠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 3차 이산상봉/””어머니 두달만 더 사셨다면 막내딸 소식 들으셨을텐데””

    “두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들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난 69년 납북된 대한항공 여승무원 정경숙(鄭敬淑·55)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오빠 현수(賢洙·70)씨는 기쁨도잠시, 지난해 12월5일 노환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김금자(金錦子·당시 91세)씨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눈물지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현수씨는 “어머니는 납북된 막내딸 만나기만을 기다리며 여든다섯살까지 25년 동안 하루도거르지 않고 새벽기도를 다니셨다”면서 “두달만 더 사셨으면 막내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텐데…”라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숙씨 가족은 해방 뒤 아버지가 소련군에 억류돼 6남매 가운데 현수씨 등 4명만 어머니와 함께 월남했다.이후 어머니김씨는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4남매를 키웠다. 현수씨는 “경희처럼 경숙이도 납북 당일에 다른 사람 대신근무한 것”이라면서 “납북 한달 전 어머니 환갑 때 ‘오래오래 사시라’면서 어머니께 이불을 선물하며 활짝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여동생에대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경숙씨는 165㎝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키였음에도 스스로정장을 지어 입을 정도로 손재주도 빼어났다.창덕여고 졸업뒤 연세대 도서관학과에 다니면서 장학금까지 받아 15년 손위 오빠를 기쁘게 하던 귀여운 여동생이었다.유난히도 활달하고 씩씩했지만 여승무원이 된 뒤에는 하루도 결근이 없을정도로 성실했다. 막내동생을 잊을 수 없었던 현수씨는 이미 몇 년 전에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냈지만 소식이없어 최근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현수씨는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김책공과대 교수와 결혼도 해 잘 살고 있다니 마음이 놓인다”면서 “하루빨리 경숙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며 빛바랜 막내여동생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전영우 최여경기자 anselmus@
  • 그리움도 원망도 눈녹듯

    이산의 아픔이 누군들 더하고 덜하랴마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가족들도 뼛속까지 슬펐던 세월을 뒤로 하고 혈육의 정을나눴다. 지난 69년 12월 납북된 대한항공 YS11호의 여승무원 성경희(55·成敬姬)씨는 26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어머니 이후덕(77·李後德)씨와 32년만에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납북 당시23세 처녀였던 성씨는 어느덧 초로가 되어 북에서 결혼한 남편 임영일씨(58·김일성대 교수)와 딸 소영(26),아들 성혁씨(24)와 함께 어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국군포로 출신인 손원호씨(75)와 김재덕씨(69)도 고려호텔에서 남측 동생 준호씨(67),재조씨(65)와 재회했다.국군포로출신의 상봉은 남북 당국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보도하지않기로 했으나 북한 중앙TV가 이날 저녁 보도해 드러나게 됐다. 성씨 가족처럼 납북자 가족 상봉은 지난해 11월 남측 방문단으로 평양을 찾은 김삼례씨(73)와 87년 납북된 동진호 갑판장 강희근씨(49)에 이어 두번째다.손씨 등 국군포로 출신의 상봉도 지난 2차방문 때 이정석씨(70)와 남측의 형 형석씨(81)의 만남에 이어두번째여서 앞으로 납북자 및 국군포로 출신의 상봉 확대가 기대된다. 이날 3차 이산가족 방문단 200명이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만난 평양과 서울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됐다.세번째 이루어지는 이산가족 상봉이건만 아쉬움은 갈수록 깊어지고,만남에끼지 못한 가족들은 선택된 방문단의 상봉을 눈물을 흘리며지켜봤다. 1,000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들은 남북 당국이 한시바삐 상봉의 정례화 및 면회소 설치에 힘을 모아주기를 기도했다. 앞서 남북한 이산가족들은 고려민항기편으로 서울과 평양에 각각 도착,단체상봉을 가졌다.고려호텔에서 남측 방문단 이후성씨(76)는 노환으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 장오목씨(94)를 51년만에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휠체어에 앉아방북한 손사정씨(90)도 50년만에 북측의 아들 양록씨(55)의큰 절을 받았다. 센트럴시티에서는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아들 구인(求寅·68)씨가 형 구관(求寬·74)·여동생 구원(求苑·66)씨와 만났다.또 피바다가극단 총장인 김수조씨(68)가 조카 복겸씨를만나 이산의 한을 달랬다. 평양 공동취재단·이석우기자 s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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