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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일한 낙 TV 시청…전기세 겁나 그나마 짬짬이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유일한 낙 TV 시청…전기세 겁나 그나마 짬짬이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지난해에 큰 맘 먹고 거금 120만원을 주고 3D TV를 샀습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눈을 떴을 때부터 감을 때까지 보는 TV에 ‘사치’를 부린 거죠.” 서울 강북 지역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A(55)씨의 ‘재산목록 1호’는 TV다. 3년간 매달 3만~4만원씩 모은 돈으로 최신 TV를 샀다. 그가 공사판에서 버는 한 달 수입(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사치품’이다. 다른 가구들은 재활용센터 등에서 헐값에 사들이거나 버려진 걸 주워 왔지만 TV는 달랐다. 스포츠뿐 아니라 평소 즐겨 보는 SF 영화도 기존에 쓰던 구형 브라운관 TV 대신 3D TV로 보니 현장감이 훨씬 살아났다. A씨는 “TV가 없으면 딱히 낙이 없고 뉴스라도 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 있다”면서 “서너 달 생활비 전부를 TV 사는 데 썼어도 별로 아깝지 않다”고 했다. 놀기 위해서는 돈과 여유가 필요하다. 먹고사느라 고달픈 절대빈곤층에게는 그래서 TV가 유일한 여가 수단인 경우가 많다. 그저 켜놓는 것만으로도 온갖 ‘문화생활’을 브라운관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 B(76)씨에 비하면 A씨는 ‘호사스러운’ 축에 든다. B씨는 TV를 보고 싶어도 전기요금 걱정에 손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B씨가 단칸방에서 매일 아침 눈뜨는 시간은 오전 4시. 하지만 딱히 할 게 없다. 아직 밖이 깜깜해 산책할 수 없는 시간이다. TV라도 보고 싶지만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처지라 전기비 걱정에 잘 틀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오전 10시쯤 동네 경로당을 찾는다. 거기서 인근 노인들과 어울리며 줄곧 TV를 시청한다. B씨는 “집에서는(공중파만 나와서) 채널이 몇 개 안 되지만(케이블 채널을 갖춘) 경로당 TV는 채널이 많아서 더 볼 게 많다”면서 “저녁 때 집에 오면 밥 먹으면서 TV를 잠깐 보다가 끄고 8시면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경기 광명에 사는 독거 노인 C(83·여)씨는 노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의 유일한 낙은 TV 시청이다. 하지만 낮 대신 밤에만 본다. 하루 종일 TV를 틀어 놓기에는 전기요금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C씨는 “오후 6시 이후 3시간이 TV 시청 시간”이라면서 “TV로 영화를 보고 싶어도 (공중파에서는) 늦게 영화를 틀어 주니까 요즘엔 제대로 본 게 없다”고 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빈곤층은 PC방에서 여가를 보내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매입임대빌라에 사는 D(45)씨는 2주에 한 번꼴로 일 없는 날을 골라 PC방에서 ‘게임 데이’를 즐긴다. 보통 한 번 가면 13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 한때 20시간 연속으로 죽치고 앉아 게임에 몰입한 적도 있다. 1만원이면 13시간 정도 게임을 할 수 있어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거나 컵라면 등 간식을 먹어도 2만원이면 하루를 날 수 있다. D씨는 “게임방에서 오락을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가 있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기 좋다”면서 “게임 도중 채팅에서 만난 사람 소개로 경기 인근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 막노동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다수 빈곤층은 제대로 된 여행을 꿈꾸기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4년 비수급 빈곤층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한 번 이상 2박 3일 이상의 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빈곤층(기초생활수급대상자)은 98.0%로, 전체 가구 평균(22.4%)의 4배가 넘는다. C씨는 평생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없다. 젊은 시절 명절 때 고향인 광주를 오고 간 것 외에는 순전히 여가를 위해 버스 등을 타고 나간 적이 없다. 더욱이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요즘 들어 여행은 꿈도 못 꾼다. 그는 “재작년 노인복지관에서 여는 무료 나들이에 따라 갔다가 몸살이 걸려 꼬박 일주일을 누워 지냈다”면서 “사는 게 심심하고 따분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셈”이라고 했다. 빈곤층 아이들 역시 여행이나 나들이를 쉽게 가지 못한다. 부모가 형편이 안 되는 데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일 때문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짬이 없는 탓이다. 아름다운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 서울 지역 저소득 가정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강에서 역사와 문화 체험을 하는 무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한강에 처음 와봤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쉽사리 가지 못하는 빈곤층의 약점을 노리는 ‘사기’도 종종 벌어진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빈곤층 E(74·여)씨는 지난가을 황당한 일을 당했다. 낯선 이들이 E씨가 자주 가는 동네 경로당을 찾아 “공짜로 세종시 구경을 시켜 주겠다”면서 전세버스에 오를 것을 종용했다. E씨와 주변 노인들은 의심 없이 따라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내린 곳은 세종시가 아닌 서울 외곽의 허름한 가건물 강의실이었다. 이들은 노인들을 앉힌 뒤 녹용과 옥장판 등을 파는 강의를 4시간 넘게 진행했다. 항의하는 이들에게는 “자꾸 이러면 못 간다”며 윽박질렀다. E씨는 “강의와 호객 행위가 끝난 뒤 차로 다시 경로당에 데려다준 게 다행이었다”면서 “그 이후에는 누가 ‘공짜 여행을 보내 준다’고 해도 절대 안 따라간다”고 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겨우 의식주만 해결하는 수준을 도와주는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 지원 시스템으로는 빈곤층이 여가라는 걸 누릴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정보 검색’에 능한 빈곤층 중 복지단체에서 지원하는 무료 여행의 기회를 잡은 경우도 있다.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 싱글맘 E(40)씨는 2013년 여름 강원도 속초로 2박3일 휴가를 다녀왔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들과 2살 딸 외에 100일이 갓 지난 막내딸까지 네 식구가 함께했다. 그러나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모 복지재단이 한부모가정 등을 대상으로 주최한 여름휴가 프로그램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주최 측이 숙박과 교통, 식사비 일체를 무료로 제공했다. 앞서 그녀는 지난해 11월에는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이 역시 싱글맘 관련 협회의 후원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E씨 역시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었다. E씨는 “아이들을 위해 1년에 한 번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함께 여행을 가려고 한다”면서 “집에만 있는 애들을 생각하면 무료 여행을 갈 좋은 기회가 없을까 여기저기 찾아보게 된다”고 했다. E씨는 미혼모 관련 협회가 여는 ‘부모 교육’ 강의를 20차례 수강하면 제주도 여행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한 덕택에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 관람도 빈곤층에게는 쉽지 않다. 노년 빈곤층에서는 최근 수십년간 영화관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례가 수두룩했다. 특히 한창 영화 관람에 맛을 들일 젊은 층이 돈 때문에 참아야 하는 일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스튜던트 푸어’ F(27)씨는 밥 먹을 돈을 아껴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 애호가다. 하지만 영화 관람비는 지갑이 가벼운 그에게 큰 부담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대신 스크린을 적게 내거는 군소 영화관에 주로 간다. F씨는 “멀티플렉스는 관람비는 1만원에 가깝지만 단관 극장은 6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면서 “이것조차 부담스러우면 인터넷으로 영화 파일을 공짜로 내려받아 본다”고 했다. SF 영화를 즐겨 보는 G(34)씨도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데 1만원이나 내야 하니 최근 6년간 극장 문턱도 밟지 못했다”면서 “대신 가끔 동대문시장 등에서 복제한 최신 영화 DVD를 5편에 1만원 주고 사서 집에서 본다”고 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은 예나 지금이나 빈곤 노년층의 놀이터다. 강서구에 사는 H(82)씨도 매일같이 정오쯤 탑골공원으로 출근한다. 공원 팔각정 주변에 자리 잡은 뒤 허리에 찬 소형 카세트 라디오를 들으며 공원을 천천히 산책한다. 팔각정에 앉아서 주변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 달 소득이 국민연금 40만원에 노인연금 16만원 정도가 고작인 처지라 탑골공원 만큼 ‘경제적인’ 소일거리 공간이 없다. 주변 식당들의 밥값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시키면 6000원 정도면 충분하다. 친구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한두시간은 훌쩍 간다. H씨는 “지하철 요금은 공짜이니 밥값 정도를 빼면 돈이 별로 들 일이 없다”면서 “날씨가 좋을 때는 청와대 앞까지도 놀러간다”고 했다. I(71)씨도 매일 아침 경기도 성남에서 탑골공원으로 나오는 ‘터줏대감’이다. 그는 “밖에서 밥을 챙겨 먹지 않으면 한 달 용돈은 10만원이면 충분하다”면서 “잠실 석촌호수 부근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라고 했다. 봉사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는 빈곤 노년층도 일부 보인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독거 노인 J(82·여)씨는 10년째 지역 노인복지센터 뜨개질 교실에서 다른 노년층을 가르친다. 그녀는 “그냥 놀 바에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는 게 훨씬 보람 있다”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일본 사죄 끝내 못 듣고… 또 한 분 하늘로

    입버릇처럼 “일본이 사죄하는 걸 보고 싶다”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할머니가 26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89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황 할머니가 이날 오전 8시쯤 전남 화순 고려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아들 부부가 임종을 지켰다. 황 할머니가 별세함에 따라 지난해 추가된 한 명을 포함해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237명에서 지난해 8월 1명 추가) 가운데 생존자는 54명으로 줄었다. 고인은 1926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남동생과 살다 17세(1943년) 때 ‘부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꾐에 속아 고향을 떠났다. 부산과 일본을 거쳐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우루(현 나우루 공화국)에 주둔한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3년간 갖은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 내외와 함께 살았지만 강제 동원 후유증과 뇌경색, 당뇨, 대상포진을 앓는 등 힘겨운 삶을 살았다고 정대협은 전했다. 정대협 관계자는 “병환이 깊어 오랜 시간 힘든 삶을 사셨지만 직접 기른 호박, 고구마 등을 이웃에게 나눠 줄 정도로 정이 많은 분이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생전 “살아 있는 동안 일본 정부가 사죄하는 것을 보고 싶어” “일본 놈들은 언제 사과를 하냐”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말년에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강제 동원 당시 타고 갔던 일본군 배와 비행기 이름을 정확하게 얘기할 만큼 그날의 기억은 또렷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고려병원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28일 비공개로 진행된다. 공교롭게도 26일은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자 할머니의 1주기다. 정대협 관계자는 “지난해 이후 벌써 세 분이 돌아가셨다”며 “하루속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 할머니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국민 여러분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부고] 원로 국제법학자 정일영 박사

    [부고] 원로 국제법학자 정일영 박사

    원로 국제법학자로 외무부 차관과 9, 10대 국회의원 등을 지낸 정일영씨가 1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외무부 차관, 세종연구소 소장, 국민대 총장을 거쳤다. 한·일회담 대표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진강씨와 딸 형민(서울대 교수)·형은·형인씨, 사위 이철(울산대 총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2일 오전 5시 30분.(02)3010-2295.
  • [인사]

    ■농림축산식품부 ◇과장급△농촌복지여성과장 윤광일△창조농식품정책과 김정욱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신산업과장 이귀현 ■한국가스안전공사 ◇1급 승진△산업시설진단처장 박영진<지역본부장>△광주전남 정해덕△충북 박경연◇1급 전보 <원장>△가스안전교육 이상무△가스안전연구 이연재<실장>△기획조정 양해명△안전연구 조영도△실증연구 문종삼<처장>△경영지원 오병생△검사지원 신희수△재난관리 이두원△배관진단 송기연<지역본부장>△서울 윤시중△부산 정환규△대구경북 허영택△인천 임호석△경기 김광용 ■국립생태원 ◇실장△기획 임순호△경영관리 방의석△미래기획연구 박은진◇처장△대외협력 윤남호◇부장△기획 이권기△총무 추경진△재정운용 안진철△시설관리 나기정△교육운영 김성중△대외협력 임주흥△홍보 양호제 ■한국감정원 ◇1급 승진 <실장>△기획조정 김양수△홍보 변성렬<처장>△보상사업 임병수△부동산공시 이희원 ■서울대 △감사(상근) 문호승 ■외환은행 ◇지점장△강남구청역 목옥균△광장동 노광윤△구성 전세영△남가좌동 김정래△남동공단 이문성△노원동 남경일△논현남 김기형△논현동 장재영△다대동 신성훈△대구 곽정환△동울산 김재겸△반포자이 최희수△범계역 박상희△범어동 김동주△사상 정성출△삼산 전태일△상록수 김호철△상무 박복수△서면남 류철수△석관동 홍성구△성서공단 윤상보△소공동 이재우△송탄 김현석△수원정자동 홍기수△신갈 서재원△신반포 박은주△양정동 박정석△여의도광장 최윤현△역삼중앙 조항철△영등포 허윤배△오산 조영주△우면동 조대석△울산 이성원△원주 한웅섭△월배역 신철식△이태원 이동국△전주 정광영△전주공단 김영래△제주 정상훈△종로 이상철△주례동 김왕섭△주안공단 김명균△청주 송민철△파주 황의관△학동역 이창환△한남동 오진환△한티역 서임선△해운대우동 최영호△홍제역 한억만△화곡역 임병석△화정역 박종희 ■하나은행 ◇부장△개인여신심사부 고태진△대전영업부 겸 RM 성병석△충청정책지원부 윤순기◇지점장△삼전동 강구△풍납동 강원복△강남PB센터 강홍규△대구중앙 권기범△신림역 권기욱△서판교 권진택△용인동백 김대환△천안중앙 김대환△도안신도시 김상철△일산대화 김선태△흑석뉴타운 김성호△원당 김영만△부사동 김용갑△동탄 김재천△수성동 김정근△오류동 김정훈△포항중앙 김주엽△대구죽전 김치환△부산대 김현호△가오동 김희자△우장산역 김희정△대방동 나정환△사직동 노도영△광안동 류각준△용운동 류정심△방배남 문기영△구미동 문병준△판교역 문창익△변동 박노환△시흥남 박면순△청담사거리 박상연△중앙일보 박연택△침산동 박연홍△연신내 박용관△창원 박재목△김포신도시 박지훈△둔산뉴타운 방명심△낙성대역 부기하△하남 서동건△면목역 서보식△오산원동 서양원△수지동천 서항석△온천동 석현복△판암동 송동헌△신촌역 신기인△시지 신명호△춘천 신운주△청량리 안병희△전농동 안석중△고덕역 안신규△강동구청역 안정숙△금남로 양동원△세류동 엄태섭△방이동 오경창△개포동 유영희△반포자이 유재은△공주 윤강호△방배본동 윤대준△원주 윤병철△이촌동 윤봉인△행당역 윤영철△부평 이근수△휘경동 이기배△동림동 이동훈△서대신동 이병갑△상도동 이석정△학여울역 이성은△마석 이성환△화정 이원근△방배서래 이장성△명일동 이정현△봉선동 임경수△마린시티 임광민△해운대 임문식△호수마을 임인목△방배중앙 임재봉△도마동 장세현△영업1부PB센터 정원기△하안동 정일영△송이 정재훈△봉천역 조병태△대동 주영신△번동 최영찬△유성구청 최영희△대구서 최재찬△율량동 최춘서△장충동 최형욱△석계역 추재호△서역삼 하재기△노은 한승훈△태평동 홍석△청계4가 홍성화△돈암동 홍헌기 ■동부하이텍 ◇부사장 승진△기술개발실장 이윤종◇상무 신규 선임△국내영업팀장 선정현△브랜드사업팀 영업1파트장 강봉진△브랜드사업팀 영업2파트장 오규진△부천공장장 김완식△경영지원팀장 김광수△기술개발실 TE팀장 권건태△기술개발실 공정개발4팀장 이주일
  •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와 180도 달라..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와 180도 달라..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등 ‘갑질횡포’에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사례가 화제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일부 재벌3세들의 ‘갑질횡포’가 국민들을 분노케 하면서 유한양행의 창업주 故 유일한 박사의 경영 사례가 소개됐다. 백화점 모녀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상위층 ‘갑질 논란’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행보를 대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1971년 노환으로 사망한 유일한 박사는 주식은 전부 학교에 기증하고,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겨 당시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또한 유일한 박사는 당시 정치자금 압박에 굴하지 않아 혹독한 세무감찰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국민들을 위한 예산으로 쓰일 귀한 돈이라고 세금을 원칙대로 모두 납부했다. 한편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백화점 모녀는 최근 발생한 ‘갑질 논란’에 대해 “돈을 기쁜 마음에 쓰러 와서 왜 주차요원한테 이런 꼴을 당하냐”며 “내가 왜 돈을 쓰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연예팀 chkim@seoul.co.kr
  •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갑질 모녀와 다른 점?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갑질 모녀와 다른 점?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등 ‘갑질횡포’에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사례가 화제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일부 재벌3세들의 ‘갑질횡포’가 국민들을 분노케 하면서 유한양행의 창업주 故 유일한 박사의 경영 사례가 소개됐다. 백화점 모녀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상위층 ‘갑질 논란’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행보를 대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1971년 노환으로 사망한 유일한 박사는 주식은 전부 학교에 기증하고,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겨 당시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한편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백화점 모녀는 최근 발생한 ‘갑질 논란’에 대해 “돈을 기쁜 마음에 쓰러 와서 왜 주차요원한테 이런 꼴을 당하냐”며 “내가 왜 돈을 쓰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예팀 chkim@seoul.co.kr
  •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와 얼마나 다르길래..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와 얼마나 다르길래..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등 ‘갑질횡포’에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사례가 화제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일부 재벌3세들의 ‘갑질횡포’가 국민들을 분노케 하면서 유한양행의 창업주 故 유일한 박사의 경영 사례가 소개됐다. 백화점 모녀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상위층 ‘갑질 논란’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행보를 대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1971년 노환으로 사망한 유일한 박사는 주식은 전부 학교에 기증하고,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겨 당시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유일한 박사는 당시 정치자금 압박에 굴하지 않아 혹독한 세무감찰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국민들을 위한 예산으로 쓰일 귀한 돈이라고 세금을 원칙대로 모두 납부했다. 한편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백화점 모녀는 최근 발생한 ‘갑질 논란’에 대해 “돈을 기쁜 마음에 쓰러 와서 왜 주차요원한테 이런 꼴을 당하냐”며 “내가 왜 돈을 쓰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연예팀 chkim@seoul.co.kr
  •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아들을 해고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700만원 갑질 하는데..”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아들을 해고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700만원 갑질 하는데..”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등 ‘갑질횡포’에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사례가 화제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일부 재벌3세들의 ‘갑질횡포’가 국민들을 분노케 하면서 유한양행의 창업주 故 유일한 박사의 경영 사례가 소개됐다. 백화점 모녀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상위층 ‘갑질 논란’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행보를 대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1971년 노환으로 사망한 유일한 박사는 주식은 전부 학교에 기증하고,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겨 당시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유일한 박사의 자녀를 대신해 회사를 이끈 유한킴벌리 초대회장 이종대는 “딸이고 아들이고 회사에 개입이 없었다. 그 당시에 그걸 보고 놀랐다. 그분 곁에서 보니까 기본 정신이 가족을 위한 게 아니라 머릿속에 민족이라고 하는 게 철저하게 박혀있더라. 전부 다 오너 기분으로 회사를 다녔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일한 박사는 1969년 외아들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물려주면서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아들과 조카를 해고했다. 이와 관련해 연만희 유한양행 전 고문은 과거 인터뷰에서 “(유일한 박사가) 이 조직 속에 친척이 있으면 파벌이 형성된다. 회사 발전에 지장을 받으면 안 되니까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우리와 친척 되는 사람을 다 내보내야 한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유일한 박사는 당시 정치자금 압박에 굴하지 않아 혹독한 세무감찰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국민들을 위한 예산으로 쓰일 귀한 돈이라고 세금을 원칙대로 모두 납부했다.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진짜 비교된다”,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보고 배워라”,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유일한 박사 이런 분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다”,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정말 다른 사람들”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백화점 모녀는 최근 발생한 ‘갑질 논란’에 대해 “돈을 기쁜 마음에 쓰러 와서 왜 주차요원한테 이런 꼴을 당하냐”며 “내가 왜 돈을 쓰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특히 백화점 모녀 중 어머니는 “차를 빼달라고 해서 사람이 와야 가지 않겠냐고 했다. 처음엔 죄송하다고 하더니 차 보닛 앞에 와서 권투폼을 하더라. 너무 황당했다”며 “애가 막 벌벌 떨더라. 무릎 꿇고 정중하게 사과하라고 했더니 펑펑 울더라. 내가 가만히 보니까 할리우드 액션을 많이 취하는 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주차요원은 “아줌마를 향하지 않았다. 당시 ‘죄송하다’ ‘아니다’라고 해명하려 했는데 당황스럽고 말을 잘 못 하니 의사전달이 안 됐다”고 해명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연예팀 chkim@seoul.co.kr
  •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비교되는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비교되는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그것이 알고싶다 모녀 등 ‘갑질횡포’에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사례가 화제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일부 재벌3세들의 ‘갑질횡포’가 국민들을 분노케 하면서 유한양행의 창업주 故 유일한 박사의 경영 사례가 소개됐다. 백화점 모녀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상위층 ‘갑질 논란’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행보를 대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1971년 노환으로 사망한 유일한 박사는 주식은 전부 학교에 기증하고,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겨 당시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한편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백화점 모녀는 최근 발생한 ‘갑질 논란’에 대해 “돈을 기쁜 마음에 쓰러 와서 왜 주차요원한테 이런 꼴을 당하냐”며 “내가 왜 돈을 쓰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예팀 chkim@seoul.co.kr
  • [부고] 사병 출신 첫 태극무공훈장 이명수옹

    [부고] 사병 출신 첫 태극무공훈장 이명수옹

    6·25전쟁 당시 ‘탱크잡이의 명수’로 불리며 사병 출신으로 처음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이명수옹이 지난 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육군은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병사와 부사관(당시 하사관) 계급을 모두 ‘사병’이라고 불렀다. 이옹은 1946년 10월 병사로 자원입대해 6·25전쟁이 발발하기 수개월 전에 제대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재소집돼 일등상사로 임용된 뒤 3사단 22연대 3대대 소대장대리로 복무했다. 1950년 7월 28일 영덕지구전투에서는 특공대장으로 대원 12명과 함께 적진에 침투해 북한 전차 3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웠다. 고인은 이 같은 공훈 등을 인정받아 1951년 7월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서 군인에게 가장 영예로운 태극무공훈장을 직접 받았다. 이는 사병으로서는 최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순일씨와 아들 태영, 원영씨 등이 있다. 빈소는 경기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육군은 영결식을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8일 오전 8시 30분 ‘육군장’으로 거행한다. 영결식을 마치면 고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 (031)787-1509.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부고] 美 첫 민선 흑인 상원의원 브룩 별세

    [부고] 美 첫 민선 흑인 상원의원 브룩 별세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민선 상원의원이자 흑인 ‘존 F 케네디’로 평가받았던 에드워드 브룩 전 의원이 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에서 별세했다고 워싱턴포스트 등이 전했다. 95세.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암 수술 후유증에 노환인 것으로 보인다. 브룩 전 의원은 1962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매사추세츠주 법무장관으로 선출됐으며, 1966년 같은 지역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당선돼 1979년까지 활동했다. 브룩 전 의원 이전에도 두 명의 흑인 상원의원이 있었지만 선거가 아니라 주의회에서 선출된 경우였다. 브룩 전 의원에 이어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흑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6명이다. 그의 상원의원 당선은 인종 갈등이 심화되던 1960년대 상징적이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는 민권 향상 및 빈곤 퇴치 등 공정 경제를 위한 입법 활동에 노력을 기울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브룩 전 의원은 민권과 경제 향상을 위해 최전방에 섰고, 초당적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적 방안을 찾아 도전에 맞선 인물”이라고 치하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前나치 친위대(SS) 93세 노인 내년 봄 ‘단죄’ 받는다

    前나치 친위대(SS) 93세 노인 내년 봄 ‘단죄’ 받는다

    독일의 '과거청산'은 정말 끝이 없는 것 같다. 최근 독일언론은 "지난 9월 기소된 전직 나치 친위대(SS) 소속 경비원 오스카 그로닝(93)이 내년 봄 재판을 받게 될 예정" 이라고 보도했다. 무려 93세 나이에 단죄(斷罪)될 위기에 놓인 그로닝은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경비원 혹은 회계사로도 통했던 인물이다. 독일 하노버 검찰이 공개한 그의 혐의는 지난 1944년 5월 16일부터 7월까지 단 2개월이 대상이다. 그는 당시 아우슈비츠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이곳으로 끌려온 유태인의 학살을 방조한 것과 이들이 소유한 돈과 물품 등을 가로챈 후 장부를 작성해 나치 정권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혐의를 받고있다. 이에대해 그로닝은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SS상관이 아우슈비츠로 가라고 명령해서 간 것 뿐" 이라면서 "유태인을 죽이는 잔학한 행위를 목격한 바 있지만 내가 직접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수용된 유태인의 돈과 보석등을 정리해 베를린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면서 "지금도 꿈 속에서 죽은 자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기도 한다" 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독일당국의 처벌 의지는 단호하다. 현지 검찰은 지난해부터 그로닝을 포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근무한 경비원 30명을 추적해 왔으며 확인된 몇몇은 노환, 수사 중 사망, 증거 부족 등으로 기소를 포기했다. 이중 그로닝의 경우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당시 아우슈비츠 생존자 8명의 증언이 목격자 증거로 채택해 법정에 서게됐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남부 오슈비엥침(독일어명 아우슈비츠)에 설치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헝가리 출신 유태인 42만 5000명이 수용됐으며 이중 30만명 이상이 가스실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끝없는 과거청산…前나치 친위대 93세 노인 내년 봄 재판

    끝없는 과거청산…前나치 친위대 93세 노인 내년 봄 재판

    독일의 '과거청산'은 정말 끝이 없는 것 같다. 최근 독일언론은 "지난 9월 기소된 전직 나치 친위대(SS) 소속 경비원 오스카 그로닝(93)이 내년 봄 재판을 받게 될 예정" 이라고 보도했다. 무려 93세 나이에 단죄(斷罪)될 위기에 놓인 그로닝은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경비원 혹은 회계사로도 통했던 인물이다. 독일 하노버 검찰이 공개한 그의 혐의는 지난 1944년 5월 16일부터 7월까지 단 2개월이 대상이다. 그는 당시 아우슈비츠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이곳으로 끌려온 유태인의 학살을 방조한 것과 이들이 소유한 돈과 물품 등을 가로챈 후 장부를 작성해 나치 정권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혐의를 받고있다. 이에대해 그로닝은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SS상관이 아우슈비츠로 가라고 명령해서 간 것 뿐" 이라면서 "유태인을 죽이는 잔학한 행위를 목격한 바 있지만 내가 직접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수용된 유태인의 돈과 보석등을 정리해 베를린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면서 "지금도 꿈 속에서 죽은 자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기도 한다" 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독일당국의 처벌 의지는 단호하다. 현지 검찰은 지난해부터 그로닝을 포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근무한 경비원 30명을 추적해 왔으며 확인된 몇몇은 노환, 수사 중 사망, 증거 부족 등으로 기소를 포기했다. 이중 그로닝의 경우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당시 아우슈비츠 생존자 8명의 증언이 목격자 증거로 채택해 법정에 서게됐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남부 오슈비엥침(독일어명 아우슈비츠)에 설치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헝가리 출신 유태인 42만 5000명이 수용됐으며 이중 30만명 이상이 가스실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길섶에서] 3차 신경통/문소영 논설위원

    어려서부터 두통이 심해 어지간한 수준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11월 말에는 급기야 오른쪽 관자놀이보다 조금 안쪽을 바늘로 꾹꾹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그 다음날부터는 오른쪽 얼굴 감각이 이상해졌다. 피부를 건드리면 면도날로 피부를 베는 듯이 예리한 통증이 나타났다. 통증으로 깊이 잠들지 못한 탓인지 입술 주변에 물집도 잡혔다. 통증에 물집이 잡히자 신경을 따라 발생한다는 대상포진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했다. 그런데 우연히 비슷한 증상을 앓던 한 친구가 3차 신경통이라고 귀띔해 줬다. 얼굴 양쪽에 통증·온도·압력 등을 느끼는 3차 신경이 한 개씩 있는데, 그 부분에 말썽이 난 거다. 3차 신경통은 흔히 얼굴에 갑자기 송곳이나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발생한다. 그 원인은 비정상적인 혈관이나 뇌종양 등에 자극을 받아서인데, 과로와 과음도 영향을 미친단다. 과음과 과로는 업무의 변화로 상당히 줄어들었다. 최근 뇌를 MRI 촬영해 보니 뇌부종이나 뇌종양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뇌노화의 증거가 보인단다. 의사는 2~3주 동안 푹 쉰 뒤 정밀검사를 하자는데, 통증이 노환으로 왔구나 싶으니 서글프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부고] 동요 작곡가 한용희씨

    [부고] 동요 작곡가 한용희씨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의 동요 작곡가 한용희씨가 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3세. 1931년 서울 출생인 한 씨는 ‘꼬마 눈사람’, ‘우리 유치원’ 등 국내에서 널리 사랑받은 곡들을 작곡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자씨와 아들 진규(JIM 대표이사), 민규(한국체육대 생활체육대학장), 인규(사업)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8호, 발인은 7일 오전 8시, 장지는 평화의쉼터. (02)3010-2238.
  • [부고] 한국아동복지학 창시 주정일 선생

    [부고] 한국아동복지학 창시 주정일 선생

    국내 아동복지학 창시자로 꼽히는 원로 아동학자 주정일 선생이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서울대 사범대학 가정과를 수료한 뒤 미국 조지아주립대와 테네시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당시 보건사회부 부녀아동국장 시절 ‘어린이집’이라는 말을 만들고 그 토대를 다졌다. 서울대와 숙명여대 교수를 지냈으며 대한가정학회장, 한국아동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2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남편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와 딸 진경(전 충북대 교수)씨, 아들 진웅(덕성여대 교수)·진수(충북대 교수)·진호씨, 사위 정병호(한양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5일 오전 9시. (02)3010-2261.
  • 영원한 棋聖 우칭위안 9단, 100세에 돌 거두다

    영원한 棋聖 우칭위안 9단, 100세에 돌 거두다

    바둑계의 ‘큰 별’이 졌다. ‘현대 바둑의 창시자’ ‘영원한 기성(棋聖)’로 불리던 우칭위안(吳淸源) 9단이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국기원은 1일 우칭위안이 지난달 30일 새벽 일본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에서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1933년 바둑의 혁명으로 불리는 ‘신포석’(新布石)을 만들어 현대 바둑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1930~1950년대 일본 바둑계 1인자로 군림하며 ‘바둑의 신’으로 불렸다. 특히 그는 ‘바둑 황제’ 조훈현(61) 9단의 동문 사형(師兄)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일본 바둑계 원로인 세고에 겐사쿠(1889~1972)는 평생 한국과 중국, 일본에 한명씩 3명의 내제자만을 뒀는데 중국에서는 우칭위안, 일본에서는 하시모토 우타로, 한국에서는 조훈현이었다. 우칭위안은 1928년에, 조훈현은 1963년에 각각 세고에의 내제자로 들어갔다. 우칭위안은 1914년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에서 태어나 부친의 영향으로 일곱 살 때 처음 ‘돌’을 잡았다. 세고에 문하에 들어가 평생 바둑책을 손에서 놓지 않아 왼손 손가락이 기형으로 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엄청난 노력파였다. 1933년에는 기타니 미노루(당시 5단)와 함께 ‘신포석’을 발표했는데 이는 ‘흉내 바둑’과 ‘3·3, 화점, 천원 착점’ 등 기존 관념을 깬 파격적인 포석이어서 당시 바둑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1939년부터 시작된 기타니와의 ‘치수 고치기 십번기’에서 승리하며 일본 바둑계 1인자로 등극했다. 이후 1956년까지 이어진 가리가네 준이치, 후지사와 구라노스케, 하시모토 우타로, 이와모토 가오루 등과의 치수 고치기 십번기에서도 거푸 이겨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다. 10번기 총전적은 10승 1무 1패였다. 1984년 은퇴한 뒤 부인과 함께 오다와라시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냈다. 문하에는 국내에서 활동했던 중국인 여류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과 린하이펑(林海峰) 9단을 두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일본에서 그의 ‘백수(百壽) 축하연’이 열리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도 그의 별세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일본 NHK는 고세이겐(우칭위안의 일본식 명칭) 별세를 보도하며 “화려하고 자유로운 기풍과 압도적인 힘으로 팬을 매료해 ‘바둑의 신’으로 불렸다”고 평가했고, 아사히신문은 “신포석을 발표해 바둑계의 혁신을 가져왔다”고 그의 업적을 전했다. 중국 반관영인 펑파이(澎湃)신문망은 그가 중국 출신의 귀화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그가 세 차례 국적을 바꾸며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집중 조명했다. 펑파이에 따르면 그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던 1936년 일본 내 활동 편의를 위해 일본으로 귀화했는데 중국에서는 배반자로 낙인 찍히고 일본에서는 중국을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1946년 일제 패망 직후 화교 이웃들이 패전국의 국적을 버려야 한다며 제멋대로 그의 국적을 취소시켜 3년간 무국적자로 떠돌았다. 이후 대만 국적으로 살다가 1979년 아이들의 학업과 취업 문제로 다시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펑파이는 그가 말년에 중·일 우호를 위해 힘썼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부고]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 오옥진씨

    [부고]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 오옥진씨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 보유자 오옥진옹이 지난 22일 오후 9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79세. 각자장은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을 뜻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목판본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만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고인은 1996년 각자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7시 30분. (02)3779-1857.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부고] 예술원 회원 손동진 서양화가

    [부고] 예술원 회원 손동진 서양화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손동진 서양화가가 지난 15일 오전 8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경북 경주 출신 고인은 일본 국립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와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대학을 수료했다. 1967년부터 1976년까지 국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지냈다. 1979년 프랑스명예예술가회원으로 지정 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박윤애씨와 장남 광수(소아과 의사), 차남 승범(LG전자 실장), 장녀 경, 차녀 경려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9일 오전 발인. (02)2227-7547.
  • ‘국민 소재’ 나일론 첫 생산…섬유계 선구자

    ‘국민 소재’ 나일론 첫 생산…섬유계 선구자

    국내 섬유의 종가로 불리는 코오롱그룹을 세운 주역인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2세. 이 명예회장은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2년 수료하고 부친인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도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선대회장이 1937년 일본 오사카에서 아사히피복회사를 설립할 당시 15세였던 이 명예회장은 부친 덕에 섬유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1945년 해방 뒤 아버지와 귀국해 대구에 경북기업주식회사를 세웠다. 1957년 4월에는 부친과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질기고 오래가는 기초 생활소재인 나일론의 국내 첫 양산은 당시 한국 의류사의 큰 사건이었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한국나일론을 한국포리에스텔과 합병하면서 상호를 ‘코오롱’(KOLON)으로 바꾸고 새롭게 출발했다. 코오롱이라는 지금의 사명은 코리아 나일론(KOREA NYLON)에서 나왔다. 고인이 취임한 이후 코오롱은 1980년대 필름·산업자재, 1990년대에는 초극세사를 이용한 첨단 섬유제품, 1990년대 초반에는 제2이동통신사업 등에 진출했다. 그는 ‘경제계의 어른’이기도 했다. 1982~96년 초까지 15년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1983년부터 3년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2년 금탑산업훈장을, 1992년에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국내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받았다. 스포츠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대한농구협회장과 대한골프협회장, 2002 한·일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코오롱구간마라톤대회와 황영기와 이봉주가 소속된 코오롱마라톤팀 등을 창설해 한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고인은 1995년 12월 회사 경영을 외아들인 이웅열 회장에게 물려줬다. 퇴임 이후에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2009년에는 미수전을 열었다. 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틀째 이어졌다.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 등 재계와 금융계 인사들이 이날 빈소를 찾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경총 등 경제단체도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고인은 1945년 신덕진(2010년 작고)씨와 결혼해 1남 5녀를 뒀다. 발인은 12일 오전 5시,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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