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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분류학계 대부’ 이우철 강원대 명예교수 별세

    ‘식물분류학계 대부’ 이우철 강원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 식물분류학계 대부로 꼽히는 이우철 강원대 명예교수가 4일 오전 9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9세. 1933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괴산고, 성균관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8년 한국식물분류학회 창립에 참여했고, 1989∼1990년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장, 1999년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자문위원, 2009년 하은생물학상 이사장을 역임했다. 일본 도쿄대, 교토대, 대만대 등에서 평생 수집한 한국 식물의 최초 기록(원기재문)과 식물분류 관련 문헌 자료들을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기증했다. 이 공로로 2012년 국립수목원 산림생물 표본관의 세 번째 ‘명예의 전당’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009년 국립수목원은 이 교수의 기증 자료를 모아서 한반도에 자생하는 관속식물의 발견부터 명명까지를 기록한 책 ‘한반도 관속식물 원기재문 I집’을 펴내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오경옥씨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발인은 6일. (02)3779-1526 
  • 한국 식물분류학계 거목 이우철 교수 별세

    한국 식물분류학계 거목 이우철 교수 별세

    한국 식물분류학계 대부로 꼽히는 이우철 강원대 명예교수가 4일 오전 9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9세. 1933년 1월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괴산고, 성균관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8년 한국식물분류학회 창립에 참여했고, 1989∼1990년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장, 1996년 한국자연보전협회 부회장과 강원대 자연사박물관장, 1999년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자문위원, 2009년 하은생물학상 이사장을 역임했다. 일본 도쿄대, 교토대, 대만대 등에서 평생 수집한 한국 식물의 최초 기록(원기재문)과 식물분류 관련 문헌 자료들을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기증했다. 이 공로로 2012년 국립수목원 산림생물 표본관의 세 번째 ‘명예의 전당’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009년 국립수목원은 이 교수의 기증 자료를 모아서 한반도에 자생하는 관속식물의 발견부터 명명까지를 기록한 책 ‘한반도 관속식물 원기재문 I집’을 펴내기도 했다. 올해는 자신의 호를 딴 국내 최초의 식물분류학 학술상 ‘죽파(竹波) 식물분류학상’을 만들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경옥씨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5일 오후 6시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2층에서 진행된다. 발인은 6일이다. (02)3779-1526 유용하 기자
  • 여왕의 사인은 “노환”, 나이듦이 죽음의 원인일 수 있는가?

    여왕의 사인은 “노환”, 나이듦이 죽음의 원인일 수 있는가?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스코틀랜드 볼모럴 성에서 9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사망 진단서가 29일에야 공개됐다. 공식 사인은 노환(old age)이다. 사망 시간은 왕실이 서거를 발표하기 3시간 전인 오후 3시 10분이었다.  문상을 가 어떻게 돌아가셨느냐고 물어 “노환”이란 답을 들으면 적이 안심이 되곤 한다.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는 얘기로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당연히 떠올려야 했을 의문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친다고 미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지적했다. 사실 2016년에 낸 기사를 여왕의 사인 발표에 맞물려 다시 올렸다.  그 질문이란 의학적 견지에서 나이듦이 사망 원인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폐렴 같은 질환이나 심장 정지 같은 사건의 결과가 죽음이란 뜻이다. 건강하고 강하며 젊은 사람은 폐렴이나 심장 정지 같은 일로 죽지 않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미국인의 사망 원인을 추적한 결과, 2020년에 세상을 떠난 65세 이상 미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심장 질환, 그 뒤를 암, 코로나19,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 치매가 이었다.  노환으로 죽는다는 것은 조용히 죽음을 맞는 경우다. 보통 한밤중 잠자다 심장이 멈춰 죽음을 맞는다. 다른 예는 심하게 낙상해 골반이 부러져 수술해 목숨을 구했지만 폐렴에 걸리거나 다른 감염증으로 연결돼 숨지는 경우다.  흔히 어르신들의 목숨은 여러 일들이 쌓인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노인이라 살아남지 못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나이든 환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문구대로라면 행동과 섭생에 문제가 생기고, 우울증, 인지장애 등 서로 연관된 문제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노환이다.  애미 에를리히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교수는 “나이를 먹을수록 심장질환과 암에 걸리기 쉽다”면서도 “하지만 낙상과 같은, 어쩌면 하찮아 보이는 사고가 골반 골절과 같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연결되곤 한다. 104세라면 회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나이듦의 결과로 죽는 게 아니면 대체 나이듦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항상 나이를 충분히 먹을 만큼 오래 안정적으로 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살갗이 처지기 시작하고 근육이 여위기 한참 전에도 죽곤 했다. 지금 열심히 백신을 맞지만 천연두 등의 질병에 무릎 꿇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떤 이들은 설사를 일으키는 장 감염으로도 목숨을 잃는다. 아직도 많은 나라들의 어린이 사망 원인 1위는 설사이며, 말라리아와 폐렴이 그 뒤를 잇는다.  1950년대 들어서야 (적어도 미국과 다른 부국들에서) 우리는 불과 1세기 전 조상들 수명의 곱절 가까이 살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는 죽기 전에 삶의 훨씬 커다란 비중을 나이 먹는 데 쓰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기대수명이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추세는 팬데믹이 엄습하기 전에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나이 들지 않는 유기체도 있다  죽지 않고 나이듦을 경험하거나 아예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 어떨까? 몇몇 동물은 그렇게 한다.  2014년에 46종의 동물 치명률을 비교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몇몇 유기체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와 죽었을 때 사망률의 변화가 없었다. 다른 유기체들은 노화기(우리 대다수가 65세에 경험하는)에 들어섰다가 나중에 빠져나와 삶을 이어갔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에게 노화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설명하는 차트가 있다. 사망률은 붉은 선, 출산률은 푸른 선이다. 사망률이 급격히 치솟아 우리가 믿기지 않을 만큼 오래 노화기를 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생명체들의 수명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예를 들어 “불멸의” 히드라가 있다. 민물에 사는 작은 동물인데 1400년을 산다. 열 살이 돼 죽어도 1000살 때와 똑같다. 사막거북도 어릴 적 사망률이 높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사망률이 떨어진다.   영생을 바라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부 과학자들은 자연계에 대한 지식을 나이듦을 멈추게 하거나 적어도 인간 수명을 연장하는 데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어빈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 교수는 “나이듦이 죽음에 이르는 무자비한 과정은 아니다”면서 “놀랍게도 건강한 채로 존재하는 것과 안정화 사이의 과도기”라고 단언했다.  생물학자 오브리 드 그레이 같은 연구자들은 다른 유기체에 대한 지식을 우리의 생명 연장에 활용하고 싶어한다. 드 그레이는 나이와 연관된 문제로 사망하는 이들의 비중이 부국에서는 높은 편이라고 2014년 영화 ‘영혼불멸자(The Immortalists)’에서 말하며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이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는 히드라도, 거북도 아니다. 당장은 나이듦을 어쩌지 못한다. 우리에게 노화는 현실이며 기나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많은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 ‘70년 군림’ 엘리자베스 여왕, 사망 원인은 “노환”…사망진단서 공개

    ‘70년 군림’ 엘리자베스 여왕, 사망 원인은 “노환”…사망진단서 공개

    70년이라는 세계 최장 군주 기록을 세우고 이달 초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사망 원인은 ‘노환’(old age)으로 확인됐다. 3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국립기록원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망진단서를 공개했다. 진단서에는 여왕이 발모럴 성에서 9월 8일 오후 3시 10분 숨졌다고 기록됐다. 영국 왕실이 여왕의 서거를 발표하기 약 3시간 전이다. 사망 시각으로 미뤄봤을 때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 윌리엄 왕세자는 여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북동부 애버딘 공항에 오후 3시 50분에 도착했고, 오후 5시가 넘어 발모럴성에 들어갔다. 사망 신고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유일한 딸인 앤 공주가 9월 16일에 했다.여왕의 사망진단서가 공개됨에 따라, 그가 질병을 앓고 있었다는 추측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앞서 지난 6일 여왕이 리즈 트러스 총리를 접견했을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여왕의 오른손에 새까맣고 커다란 멍 자국이 선명했다. 이에 일각에선 정맥 주사 등으로 인해 멍이 생겼을 가능성, 혈액순환장애나 혈관 질환 등 여왕의 건강이 악화됐을 가능성에 대한 여러 추측이 등장한 바 있다. 한편 1952년 25세에 국왕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70년 216일간 재위하며 영국의 군주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지켜왔다. 세계 최장 군주 기록을 쓰고 지난 8일 96세를 일기로 타계한 여왕은 남편이 묻힌 윈저성 지하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 ‘원자력 안전 산증인’ 이상훈 초대 KINS 원장 별세

    ‘원자력 안전 산증인’ 이상훈 초대 KINS 원장 별세

    이상훈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초대 원장이 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94세. 고인은 국내 원자력 연구 초창기부터 원자력 안전 분야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휘문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다. 1953년부터 1959년까지 경기고에서 화학 교사로 지내다 1959년 원자력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영국 하웰원자력연구소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리버풀대 공대 대학원(1963년)와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교환연구원(1970~1971년)을 거쳐 1972년부터 원자력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안전공학실장, 안전공학부장을 거쳐 1985년 원자력연구소 산하 원자력안전센터 소장도 지냈다. 원자력연구소는 1976년 내부에 안전공학부를 신설했다가 1979년 미국의 TMI-2호기 원전 사고를 겪으며 1981년 원자력연구소 안에 원자력안전센터를 설립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1990년 독립기구인 KINS를 설립했다. 고인은 이 과정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된다. 1990∼1993년 KINS 초대 원장을 지낸 뒤에도 2001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원자력기술협회 회장을 맡았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유족은 2남 1녀(이승윤·이규형·이준형)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9일 오전 10시, 장지 천안공원. 02-3010-2000
  • 제주, 다시 이중섭을 기리다...이중섭이 그리다

    제주, 다시 이중섭을 기리다...이중섭이 그리다

    1956년 9월 6일, 나이 마흔살에 요절한 천재화가 이중섭을 기리는 특별전이 제주에서 다시 열린다. 서귀포시는 올해 이중섭미술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시리즈 전시를 개최하고 있는 가운데 이중섭특별전 2부 ‘정직한 화공, 이중섭’ 전시를 이중섭 화가의 기일인 지난 6일 시작해 내년 2월 26일까지 상설전시실에서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정직한 화공 이중섭의 유화, 드로잉 등 18점 소개 이번 전시는 상반기 진행된 1부 전시 ‘청년 이중섭, 사랑과 그리움’에 이어 개최되는 전시로, 이중섭미술관이 지난 20년간 기증과 구입을 통해 확보한 이중섭 원화 소장품 60점을 모두 소개하기 위한 시리즈 전시 중 마지막 2부 전시이다. 지난 1부에서는 이중섭과 연인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와의 사랑의 연서(戀書)인 엽서화, 가족에 대한 이중섭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은지화와 편지화를 소개했다면, 이번 2부 전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림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그림 재료의 선택에 있어서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고 치열하게 작업했던 정직한 화공 이중섭의 유화, 수채화, 드로잉 등 18점을 소개한다. 그가 제주 서귀포에 머문 기간은 불과 1년. 그는 서귀포 피난 시절 바닷가 게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 미안한 마음에 게를 그리기 시작했을 만큼 어렵게 살았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게, 가족, 아이들, 물고기 등 서귀포 관련 소재들은 결국 작품으로 승화됐다. 이번 전시되는 1951년 서귀포에서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 서귀포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해변의 가족’, ‘환희’, ‘아이들과 끈’, ‘여인과 게’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여인과 게’ 첫 공개… 고인이 된 이남덕 여사의 애틋한 편지와 사진 등도 전시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해에 미술관이 구입한 작품 ‘여인과 게’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 작품은 일부 선 위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흔적 외에는 전혀 색채를 쓰지 않았으나 이중섭 화가의 유려하고 속도감 있는 드로잉 솜씨로 인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난달 13일 노환으로 별세한 이남덕 여사를 추모하기 위한 전시 공간도 일부 마련돼 눈길을 끈다. 고인은 이중섭과 1936년 일본 문화학원의 미술부 선후배로 인연을 맺고 1945년 결혼식을 올려 이남덕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쓰게 됐다. 고인은 이중섭의 뮤즈이자 미치도록 사랑하는 그리움이었다. 결혼사진을 비롯, 1978년 이중섭 은관문화훈장 받을 때 모습, 2012년 11월 화가의 유품인 팔레트 기증, 2016년 이중섭 100주년 기념 전시때 친필 메시지 등 10여점과 1955년 5월 10일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 등을 함께 전시하여 의미를 더한다. 이 편지에는 요즘 연락이 없어 걱정되며 빨리 만나길 학수고대하고 아이들이 아빠 소식을 궁금해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사는 1945년 이중섭과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으며, 1951년 서귀포에서 1년을 지내고, 1952년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1953년 일본에서 이중섭과 약 1주일간 재회한 후 1956년 이중섭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2016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 전시에서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함께 하겠어요. 우린 운명이니까”라는 소감을 밝혀 이중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23일부터 창작 오페라 이중섭 공연… 예술제 등도 준비중 창작 오페라 ‘이중섭’도 오는 23~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다. 지난 2016년 대향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페레타로 제작되었으며 2019년부터 창작 오페라로 발전시켜 서울과 제주에서 성공리에 공연됐다. 올해 공연은 ‘서귀포 환상’이라는 부제로 오페라 업계의 저명한 장수동 연출가가 기존 작품과는 다른 시각으로 서귀포에서의 이중섭 예술혼, 파란만장한 생애를 풀어낼 예정이다. 한편 오는 28일에는 제25회 이중섭세미나를 통해 이중섭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 조명, 미술관 시설확충에 따른 발전방향을 논의하고, 이중섭예술제(10월 중)를 개최하여 전도학생 그림그리기 대회 및 부대공연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 이중섭 부인 야마모토 여사, 도쿄에서 101세로 세상 떠나

    ‘국민 화가’ 이중섭(1916∼1956)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최근 별세했다. 101세. 30일 미술계에 따르면 일본 도쿄에서 거주하던 야마모토 여사가 지난 13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21년생으로 이중섭과는 1936년 일본 문화학원의 미술부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고, 이중섭과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중섭은 고인에게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이란 뜻의 이남덕(李南德)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 줬다. 야마모토 여사는 1952년 부친의 별세를 계기로 일본으로 떠난 후 계속 일본에 머물러 왔으며 2012년 남편의 유품인 팔레트를 서귀포시에 기증하기 위해 제주를 찾은 바 있다.
  • 일본 ‘경영의 신’ 이나모리 교세라 명예회장 노환으로 별세

    일본 ‘경영의 신’ 이나모리 교세라 명예회장 노환으로 별세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 교세라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지난 2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0세. 3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지난 24일 교토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고 가족장이 치러졌다. 추후 작별식을 열어 고인을 추모할 예정이다. 가고시마시 출신의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27세 때인 1959년 자본금 300만엔(약 2900만원)을 가지고 교토 세라믹(교세라)을 창업했다. 반도체 소재를 비롯해 전자부품, 세라믹 칼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교세라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 교세라는 창사 이래 단 한 번의 적자를 낸 일이 없다. 또 일본 2위 통신사인 KDDI의 모체인 DDI를 1984년 창업하기도 했다. 1997년 교세라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그는 2010년 일본 정부의 강한 요청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일본항공(JAL) 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JAL은 일본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2조 3000억엔의 부채를 지고 파산했다. 그는 회장직을 맡았지만 무급으로 일하며 JAL의 경영 정상화에 돌입했다. 그 결과 JAL은 그해 1884억엔 영업이익을 내며 부활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JAL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보수는 받지 않고 딱 3년만 JAL을 위해 일하겠다”고 공언했는데 그는 약속대로 JAL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2013년 3월 퇴임했다. 그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고인은 ‘아메바’ 경영 기법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했다. NHK는 “회사 조직을 여러 명의 집단으로 나누어 이를 아메바로 불렀고 각자 사업 계획이나 목표를 세움으로써 부문별 채산을 높이거나 사원들의 사기를 끌어내는 경영 방식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넷째 사위였다. 고인은 매년 경기 수원시 농업시험장 근처 언덕에 있는 우 박사의 묘를 방문하기도 했다.
  • [부고]프랑스 행정법 연구 일인자 김동희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부고]프랑스 행정법 연구 일인자 김동희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행정법 I·II’의 저자 김동희(金東熙)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26일 오전 1시19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대 법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00∼2002년 법대 학장을 지냈다. 프랑스 행정법 연구의 일인자였다. ‘월권소송론’(1976), ‘공역무론’(1977),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상의 헌법위원회’(1980), ‘프랑스 행정법에 있어서의 행정제도의 적용기준’(1983), ‘프랑스 행정법상의 통치행위에 관한 고찰’(1984), ‘프랑스 행정법에 있어서의 법의 일반원리’(1987), ‘행정법의 일반원리에 관한 고찰’(1989), ‘공역무 제도에 관한 연구’(1994), ‘프랑스 행정법상의 법의 일반원리’(1996) 등 논문을 냈고, 1989년 한불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프랑스 행정법’(1980), ‘프랑스 사회보장제도’(1980)라는 저서도 냈다.
  • 일산·분당 개발 주도… 주택 200만호 건설 추진

    일산·분당 개발 주도… 주택 200만호 건설 추진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을 추진하고 분당과 일산 개발을 주도한 이상희 전 건설부 장관이 8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90세.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대구 중앙상고 교사로 일하다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진주시장,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을 거쳐 대구직할시장을 역임했다. 이후 경북도지사를 거쳐 1987∼1988년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 당시 한국토지개발공사 사장과 건설부 장관을 지내며 1기 신도시(분당·일산) 개발 계획을 주도했다. 특히 일산신도시 중앙의 땅 30만평을 사들여 일산호수공원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족은 부인 송명자씨와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11일 오전 6시 30분.
  • 최명재 민사고 이사장 별세

    최명재 민사고 이사장 별세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를 설립한 최명재 이사장이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5세. 고인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경성경제전문학교(현 서울대 경영대학)를 졸업한 뒤 상업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물류운송업체인 성진운수를 세워 번 자금으로 1987년 강원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창립했다. 국내 최초로 저온살균 우유로 우유업계 4위로 성장했고 1996년 민족주체성 교육을 표방한 민사고를 개교했다. 영국 이튼학교보다 나은 교육기관을 만들어 세계적인 지도자를 키우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유족으로 부인과 2남 2녀가 있다. 장남인 최경종 민사고 행정실장이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 발인은 28일 오전 6시 20분이다. 28일 오전 9시 민사고 체육관에서 학교장 영결식이 치러진다.
  • 파스퇴르유업·민족사관고 설립자 최명재 이사장 별세

    파스퇴르유업·민족사관고 설립자 최명재 이사장 별세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를 설립한 최명재 이사장이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5세. 고인은 전북 화포리에서 태어나 경성경제전문학교(현 서울대 경영대학)를 졸업한 뒤 상업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물류운송업체인 성진운수를 세워 번 자금으로 1987년 강원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창립했다. 국내 최초로 저온살균 우유로 우유업계 4위로 성장했고, 1996년 민족주체성 교육을 표방한 민사고를 개교했다. 영국 이튼학교보다 나은 교육기관을 만들어 세계적인 지도자를 키우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유족으로 부인과 2남 2녀가 있다. 장남인 최경종 민사고 행정실장이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 발인은 28일 오전 6시 20분이다. 28일 오전 9시 민사고 체육관에서 학교장 영결식이 치러진다.
  • 흰눈썹 휘날리던 한국경제의 거목…조순 前경제부총리 94세로 별세

    흰눈썹 휘날리던 한국경제의 거목…조순 前경제부총리 94세로 별세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이자 관료, 정치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94세를 일기로 23일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1928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과대를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통역장교로 발탁됐고 이후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수요원으로 활동했다. 종전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고인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68년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20여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조순 학파’로 불릴 만큼 많은 제자를 길렀다. 1974년엔 케인스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교과서인 ‘경제학원론’을 펴냈다. 육사에서 인연을 맺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다. 이어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경제관료 길을 걷던 고인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인을 정계로 이끌었다. 당시는 ‘판관 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인기였는데, 강직한 행보를 거듭한 고인은 ‘서울 포청천’으로 불렸다. 특유의 흰 눈썹 백미(白眉)도 그의 상징이다. 고인은 1997년 시장직을 사퇴하고 15대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다만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해 완주하지는 못했다. 2000년엔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선거에서 참패한 뒤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고인이 주례를 섰을 정도로 사제 관계가 돈독했던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특정 분야 전문가는 많지만 고인처럼 모든 방면에 박식한 분은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개인적으로는 고인이 경제부총리로 일하실 때 비서관으로 모셨다”면서 “대한민국 경제가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기본에 충실하며 바르게 갈 수 있는 정책을 늘 고민하셨던 고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되돌아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제학자로서는 물론이고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하시면서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라고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장지는 강원 강릉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92)씨와 기송·준·건·승주씨 등 4남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밤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다.
  • 흰눈썹 휘날리던 한국경제의 거목

    흰눈썹 휘날리던 한국경제의 거목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이자 관료, 정치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94세를 일기로 23일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1928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과대를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통역장교로 발탁됐고 이후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수요원으로 활동했다. 종전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고인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68년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20여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조순 학파’로 불릴 만큼 많은 제자를 길렀다. 1974년엔 케인스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교과서인 ‘경제학원론’을 펴냈다. 육사에서 인연을 맺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다. 이어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경제관료 길을 걷던 고인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인을 정계로 이끌었다. 당시는 ‘판관 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인기였는데, 강직한 행보를 거듭한 고인은 ‘서울 포청천’으로 불렸다. 특유의 흰 눈썹 백미(白眉)도 그의 상징이다. 고인은 1997년 시장직을 사퇴하고 15대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다만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해 완주하지는 못했다. 2000년엔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선거에서 참패한 뒤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고인이 주례를 섰을 정도로 사제 관계가 돈독했던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한 달쯤 전에도 고인을 뵀는데 이렇게 갑자기 별세할지 몰랐다”며 “특정 분야 전문가는 많지만 고인처럼 모든 방면에 박식한 분은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개인적으로는 고인이 경제부총리로 일하실 때 비서관으로 모셨다”면서 “대한민국 경제가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기본에 충실하며 바르게 갈 수 있는 정책을 늘 고민하셨던 고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되돌아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제학자로서는 물론이고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하시면서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라고 추모했다.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장지는 강원 강릉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92)씨와 기송·준·건·승주씨 등 4남이 있다.
  • 조순 전 부총리 빈소 찾은 조문객들

    조순 전 부총리 빈소 찾은 조문객들

    한국 경제학의 거목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의료계에 따르면 조 전 부총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고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6·25 당시 육군 통역 장교와 육군사관학교 교관 등으로 군에 복무하다가 종전 후 도미, 버클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68년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러다 육사 교관 시절 인연이 있는 노태우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1988년 경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은데 이어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경제 관료의 길을 걷게 된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 고인은 1997년 민주당의 총재와 대선주자, 한나라당 총재와 명예총재 등을 거치며 화려한 정계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지난 2000년 당시 이끌던 민주국민당 당수에서 평당원으로 돌아가면서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퇴장했고, 이후 서울대·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등을 맡으며 원로 노릇을 해왔다.
  • [속보] 조순 전 경제부총리 별세…향년 94세

    [속보] 조순 전 경제부총리 별세…향년 94세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의료계에 따르면 조 전 부총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조 전 부총리는 1968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발탁됐다. 이후 한국은행 총재, 민선 초대 서울시장, 제15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고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 “식물인간으론 안 살 겁니다”… 연명의료 거부 4년 새 15배

    “식물인간으론 안 살 겁니다”… 연명의료 거부 4년 새 15배

    사전의향서 등록 130만명 넘어“‘존엄한 죽음’도 노후 설계” 인식임종 돕는 조력존엄사법도 발의“오남용·부작용 위험 주의해야”전남 영광에서 살았던 이수양(94)씨는 지난 18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년 전 건강이 크게 나빠지자 조선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최근 의사로부터 심장 수술을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평소 생각대로 수술을 거부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수술해서 얼마나 더 살겠느냐. 편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광주에 거주하는 김원모(81)씨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며 2년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했다. 5년 전 투병 끝에 사망한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6개월 동안 식물인간처럼 지낸 것을 보고 연명의료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나는 마지막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으려는 ‘웰다잉’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임종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지난 16일에는 ‘조력존엄사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입됐는데, 이 법을 개정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원할 경우 담당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칠 수 있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자는 게 ‘조력존엄사법’의 핵심 내용이다. 22일 보건복지부와 연명의료 관리기관 등에 따르면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가 도입되자 전국적으로 8만 6691명이 서명했다. 이어 2019년에 53만 2667명으로 늘더니 2020년 79만 193명, 2021년 115만 8585명으로 급속하게 늘었다. 2022년 5월 현재 130만 8938명이 서명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문서로,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등록기관에 가서 작성할 수 있고 언제든 의향서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이나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수혈 같이 치료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삶을 연장하는 시술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도 늘었다. 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지정 결과’에 따르면 전국 등록 기관이 568곳이다. 지역보건의료기관 131곳, 의료기관 133곳, 비영리법인 민간단체 34곳, 공공기관 2곳, 노인복지관 30곳, 건강보험공단 지역본부와 지사·출장소 238곳이다. 지난해 법이 개정돼 노인복지관에서도 등록할 수 있게 됐다. 김유일 전남대병원 공공보건사업 실장은 “예전에는 웰다잉 프로그램을 설명하면 어르신들이 ‘왜 구태여 죽음을 부각하느냐’며 반발했는데, 최근엔 능동적으로 ‘존엄한 죽음’을 설계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존엄한 죽음 또한 노후 설계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명의료 중단을 넘어 조력존엄사까지 허용되기까지는 많은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자살을 부추기는 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조력존엄사법에 대해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원하지 않는 결정’을 초래하는 등 오남용이나 부작용의 위험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 “왜 연예인만 조문하게 해…내가 양딸” 송해 빈소서 새벽 소동

    “왜 연예인만 조문하게 해…내가 양딸” 송해 빈소서 새벽 소동

    ‘국민 MC’ 송해(본명 송복희·95)의 빈소에서 9일 새벽 한 여성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경찰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따르면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오전 5시쯤 자신을 “송해 선생님 양딸”이라고 주장하는 A(51)씨가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A씨는 남색 원피스에 슬리퍼 차림으로 목발을 짚고 나타나 자신을 ‘송해의 양딸’이라고 주장하며 조문하겠다고 고집했다. 이에 장례식장 관계자가 오전 6시 이후 조문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A씨는 “연예인이 아니면 조문도 못하느냐”고 소란을 피웠다. A씨와 실랑이가 이어지자 장례식장 측에서 경찰에 신고해 경찰관이 출동했다. A씨는 이날 오전 7시쯤 장례식장 밖으로 나온 후에도 “전국노래자랑이 연예인 나와서 노래하는 프로냐”, “왜 연예인만 조문하게 하느냐”고 소리쳤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현재 오후 10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조문객 방문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방문객은 6시 이전에 방문하고 이후에는 소란을 피워 제지했다”며 “송해님 빈소는 일반 조문객도 조문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인이 조문하고 싶다고 소란을 피워 현장에 출동했다”며 “실질적인 피해는 없고 유족 측이 사건화를 원치 않는다고 해 현장에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등에 따르면 송해는 전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송해 측은 “인근에 살면서 전날까지 저녁 식사를 챙긴 따님이 자택을 찾았다가 선생님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1988년 5월부터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해 온 송해는 최근 들어 고령으로 병원에 입·퇴원하는 일이 잦았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하기도 했다. 팬데믹 이후 중단됐던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이달 2년여 만에 재개되자 하차를 고심하면서도 스튜디오 녹화를 통해 제한적으로 출연을 이어 가는 방안 등을 놓고 제작진과 논의해 왔다.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3일간 치러지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4시 30분에 진행된다.
  • 故송해, 40대 시절 콩트하는 ‘귀한 영상’ 공개됐다

    故송해, 40대 시절 콩트하는 ‘귀한 영상’ 공개됐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현역 최고령 MC’ 故송해의 젊은 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지난 8일 더라이프와 채널S에서 방송된 ‘김구라의 라떼9’ 8회에서 MC 김구라와 스페셜 게스트로 출격한 프로미스나인 노지선, 송하영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를 주제를 놓고 상상을 초월하는 그 시절 토크를 나눠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이날의 주제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대해 본격적으로 순위를 소개하기 전 김구라는 “귀한 영상을 입수했다”며 “영상 속 인물이 누군지 맞혀 보라”고 두 사람에게 제안했다. 이어진 흑백 영상에는 무려 45세의 나이인 ‘방송인’ 송해의 모습이 담겨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1971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송해는 “가끔 소풍길에서 아름답지 못한 사람이 있어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길거리에서 기타, 꽹과리, 장구를 치며 노는 ‘광란의 봄나들이 파이터’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다. 특히 송해는 8일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난 터라, 고인의 과거 모습이 공개되자 많은 시청자들은 뭉클해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한편 송해는 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5시며, 장지는 부인 석옥이씨가 안장된 대구 달성군 옥포리 송해공원이다.
  • 95세 현역 최고령 ‘원조 국민 MC’ 송해 별세

    95세 현역 최고령 ‘원조 국민 MC’ 송해 별세

    “전국∼노래자랑~!”. 매주 일요일을 알리던 구수한 목소리를 이제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현역 최고령 MC 송해(본명 송복희)가 8일 별세했다. 95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등에 따르면 송해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 측은 “인근에 살면서 전날까지 저녁 식사를 챙긴 딸이 자택을 찾았다가 선생님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1988년 5월부터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해 온 송해는 최근 들어 고령으로 병원에 입·퇴원하는 일이 잦았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했다. 팬데믹 이후 중단됐던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최근 2년여 만에 재개되자 하차를 고심하면서도 스튜디오 녹화를 통해 제한적으로 출연을 이어 가는 방안 등을 제작진과 논의하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훈장 중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장례는 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5시. 장지는 부인 석옥이씨가 안장된 대구 달성군 옥포리 송해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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