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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김현희 편지’ 의혹 낱낱이 파헤쳐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씨가 참여정부 초기 국정원으로부터 진실을 왜곡하는 증언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편지가 공개돼 세간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김씨는 이 편지에서 2003년 11월 당시 국정원 담당관이 MBC ‘PD수첩’에 출연하거나 인터뷰에 응해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라고 여러 차례 강압했음을 밝혔다고 한다. 우리는 ‘김현희 편지’가 제기한 의혹을 철저히 규명할 것을 정부 당국에 요구한다.1987년 12월 발생한 ‘KAL기 폭파’ 사건은 내외국인 115명을 희생시킨 악랄한 테러인 데다 그 며칠 뒤 치른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또 이 범죄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20년 넘게 북·미관계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했다.이처럼 역사적 의미가 큰 사건이 일부의 주장대로 실제로 조작됐건,아니면 김씨가 밝혔다는 것처럼 왜곡 시도의 대상이 됐건 이는 명백히 진상을 가려야 할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국이 관련 의혹을 낱낱이 풀기를 기대한다.먼저 ‘편지’ 자체가 사실인지를 확인해야 한다.일각에서는 필체가 예전과 다르다는 등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이어 편지가 진짜라면 국정원 측이 왜 김씨에게 왜곡된 고백을 강요했는지,방송3사가 그 시점에 잇따라 관련 특집물을 방영한 경위는 어떠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만에 하나 당시 집권층이 특정 의도를 갖고 왜곡을 시도했다면 이는 지금이라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겨울길목 온정과 보은 2題] 공덕비 세워 고마움 표하고

    [겨울길목 온정과 보은 2題] 공덕비 세워 고마움 표하고

     강원 홍천 서면 주민들이 수몰 위기의 마을을 살려준 이상룡(74) 전 강원도지사의 은혜를 기리는 공덕비를 세워 화제다.  주민들은 마을을 수장시킬 뻔했던 홍천댐 건설 사업을 백지화해 마을을 지켜준 데 대한 고마움으로 27일 서면 사무소앞에 공덕비를 세웠다.지난 1987년 12월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는 홍천댐 건설을 추진하며 주민들에게 후한 보상을 공약했다.그러나 이듬해 5월 강원도지사에 취임한 이씨는 홍천댐이 건설되면 사방이 호수와 강으로 둘러싸인 춘천시가 완전히 물에 갇히게 된다며 댐 건설을 반대했다.더구나 홍천읍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서면은 물론 홍천강 줄기까지 물이 차오르면 도시계획조차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주민들과 함께 댐 건설에 강력 반대했다.정부도 뒤늦게 댐 건설의 백지화를 선언했다.20여년이 지난 지금 마을 주민들은 공로비를 세워 당시 강원도지사를 지내며 마을을 살려준 이씨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로 한 것이다. 홍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씨줄날줄] 측근 게이트/이목희 논설위원

     제대로 후계자를 낸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후보 기획부터,물심양면 지원으로 노태우씨의 당선을 확정지은 뒤 전씨측은 “발 뻗고 잘 수 있겠다.”고 했다.권력 현실은 달랐다.대선 직후 만난 노씨 측근의 단호한 언급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5공 청산은 야당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전두환·노태우 권력이양이 이랬으니,다른 정권교체 때는 말할 필요가 없다.전직 정권의 손볼 대상 리스트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A급,B급,C급….“사돈의 8촌,초등학교 동창까지 다 뒤지고 조사하고 있다.”는 전직 대통령들의 불평을 현장에서,전언으로 여러 차례 들었다.  4년전 노무현 정권 실세로 불린 인사가 사석에서 한 말.“우리는 다음 정권에서 게이트로 불릴 만한 측근 비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그가 내세운 이유는 두가지.민주투사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집권 말기 측근·친인척 비리로 고생했다.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조심하겠느냐고 되물었다.또 정권초 여소야대 상황에서 고초를 겪었는데,물밑 비리가 남아있을 게 없다고 했다.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국회가 ‘측근비리 규명 특검법’을 통과시키자 거부권을 행사했고,국회는 특검법 재의(再議)까지 가결시켜 버렸다.  그럼에도 바보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노 전 대통령의 후견인,학교 동문들이 범죄계보도로 그려지면서 줄줄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고 있다.친형 연루 의혹도 제기된다.노 전 대통령측은 “후원자나 같은 고교 출신이 모두 측근이 냐.”라며 반발했다.설득력이 떨어진다.대통령과 권력에 가깝지 않았다면 로비자금이 오가고,정보가 있었겠는가.당시엔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보다 영향력이 있었던 이들이다.  노 전 대통령측이 “왜 우리 주변만 집중적으로 캐느냐.”는 불만을 가질 수 있다.그러나 비리 조사의 빌미를 떨치지 못한 자체가 치명적이다.“우린 바보가 아니다.”라는 장담은 무엇이었나.인간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뻔한 일이 5년마다 왜 반복되는지….깊은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측근비리 게이트를 반면교사로 삼을 이들은 지금도 도처에 널려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국군기무사 ‘과천시대’ 열었다

    1980년대 5공화국 신군부 세력의 등장과 1979년 12·12사태의 진원지였던 옛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가 37년 동안 영욕의 종로구 소격동 시대를 접고 경기도 과천 시대를 열었다. 기무사는 18일 “과천 새 청사에 입주를 끝내고 업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1971년 경복궁 동문 앞, 청와대 진입 지점인 소격동으로 이사 온 군 대공방첩기관들(기무사 전신)은 군은 물론 국내 정치까지 주물렀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로 정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 신군부가 등장했다. 그 해 12월12일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 장군 불법연행으로 시작된 군부 쿠데타도 소격동 보안사령부를 축으로 진행됐다.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대통령 암살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군사쿠데타를 성공시켰다. 그 뒤 1980년대 보안사는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두 사령관을 대통령으로 배출했다. 기무사 옆에 있는 국군지구병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이송된 곳이다. 기무사는 국군지구병원 경비도 맡고 있어 신속하게 대통령 사망소식을 접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 기무사 건물은 일제강점기 병원으로 지어진 후 80여년이 지나 노후화돼 당초 그 자리에 신축이 검토됐다. 그러다 문화예술계 요구로 과천 주암동 이전으로 매듭지어졌다. 소격동 기무사 터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사간원 등의 건립이 검토되고 있다. 국군지구병원 이전도 사실상 확정됐다. 정부 관계자들은 “근대사의 지울 수 없는 영욕을 남긴 이 곳을 경복궁 복원사업과 연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검찰총장 임기제 유명무실

    올해는 검찰 창설 60주년이자 검찰총장 2년 임기제 도입 20주년이기도 하다. 검찰총장 임기제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12월 검찰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돼 22대 김기춘 총장 때부터 적용됐다. 독립의 잣대로 여겨진 임기제는 그러나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임기를 1년 정도 남긴 36대 임채진 현 총장을 빼면 19년 동안 무사히 임기를 마친 경우는 14명 가운데 김기춘·23대 정구영·26대 김도언·29대 박순용·33대 송광수·35대 정상명 총장 등 6명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임 총장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경질설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꾸준히 흘러나오는 등 임기제가 흔들리는 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임기제 도입 전인 21대까지 평균 재직 기간이 1년11개월인 것에 견줘 도입 뒤 1년4개월로 오히려 줄어들기까지 했다. 각각 취임 3개월만에, 퇴임 3개월을 앞두고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한 24대 김두희·28대 김태정 총장은 그나마 나은 사례로 꼽힌다. 나머지는 대부분 권력층과 갈등을 빚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자의반 타의반으로 낙마했다.25대 박종철 총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슬롯머신 사건 수사를 놓고 권력층과 이견을 빚다 6개월 만에 하차했다.27대 김기수 총장은 임기만료를 불과 한달 남짓 앞두고 사퇴했다. 당시 한보사건을 통해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구속한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김대중 정부 막바지에 임명됐던 32대 김각영 총장은 새 정부 들어서도 신임받는 분위기였으나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신을 쏟아놓자 4개월만에 물러났다.34대 김종빈 총장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 사건과 관련해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 파문이 일어나 6개월만에 스스로 사직서를 던졌다. 노명선 성균관대 법대교수는 “임기보장제는 입에 맞지 않는다고 흔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능을 담고 있다.”면서 “이미 1년 정도 지난 총장의 임기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민주 의원 ‘경제과외’ 받는 까닭은

    YTN 대량 해고 사태를 비롯한 언론장악 논란 등 여러 현안들이 얽혀 있는 가운데 경제위기 극복이 정국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지지율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민주당도 경제 문제에 ‘올인’하면서 존재감 부각에 나섰다.●정세균대표 “경제이슈 우리가 장악” 정세균 대표는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들으시면서 의원님들은 ‘우리가 호락호락해서는 안되겠구나,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이 정부는) 책임의식도 전혀 없고, 반성의 기미도 없고, 앞으로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셨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경제 이슈 장악을 통한 정국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설 뜻을 밝혔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주최하는 민주정책포럼도 당분간 경제문제를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김효석 원장은 “민주당이 경제성장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문제”라면서 경제를 주제로 한 강연회 개최의 취지를 설명했다. 연구원은 이날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민주당, 경제를 논한다’를 주제로 노태우 정권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의 강연을 들었다. ●정책포럼 경제 올인… 30일 국민 토론회김 전 의원은 이날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을 향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경제수석이라는 사람이 최근 ‘왜 주가가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이게 경제정책을 보좌하는 사람의 발언인가 하고 놀랐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또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은 실상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해서 국민에게 소상하게 얘기해 주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30일에는 당 차원에서 ‘경제위기극복 국민대토론회’를 열고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 제시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박병석 정책위의장 이외에 윤원배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형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가 주제 발표에 나선다.토론에는 국회의원과 전문가 외에 국민 패널이 참석, 이명박 정부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민주당의 역할을 모색할 계획이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평화문제硏 역대정부 통일정책 변천사 발간

    이승만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을 분석한 책이 나왔다. ‘역대 정권의 통일정책 변천사’(평화문제연구소 발간). 저자인 신영석 평화문제연구소 부이사장은 이 책에서 분단 이후 우리 사회가 겪어 온 통일환경의 변화와 분단 극복의 노력을 총괄적으로 고찰했다. 신 부이사장은 “통일은 결국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가진 여러 집단의 총체적 의사가 결집되면서 분단의 높고 두꺼운 장벽을 뚫고 나가는 과정”이라며 “어느 주장이 옳고, 다른 주장은 그르다는 편가르기식 태도는 가장 반통일적인 자세”라고 지적했다. 저자에 따르면 힘대 힘으로 치닫던 남북관계에서 통일 논의의 싹을 틔운 것은 4·19혁명이다. 통일 논의의 자유화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주장과 제안이 쏟아졌다. 박정희 정부는 남북협상을 통해 일부 성과를 냈지만 정부가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불신이 팽배했다고 신 부이사장은 지적했다. 군사정부 시절 통일논의가 다시 활성화된 것도 특이할 만하다. 신 부이사장은 “전두환 정부 시기 남북관계 및 대북·통일정책에서 적지 않은 진전과 함께 남북교류와 접촉이 시도됐다.”며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확산된 남북대화 촉구분위기 등에 따라 노태우 정부도 북방정책을 비롯한 각종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김영삼 정부에는 북핵 문제 대두와 김일성 주석 사망 등으로 대북정책이 냉·온탕을 오갔고, 김대중 정부 들어 냉전적 사고를 극복한 정책을 추진함으로서 한반도 분단 역사의 극복을 위한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핵 문제의 진행에 따라 남북관계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고 평가하고, 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선 공약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서술했다. 평화문제연구소는 27일 오후 서울 세종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재벌 총수는 ‘사면의 달인’

    사면 혜택이 재벌 총수 등에게 집중되고, 사면을 단행하기 전에 관련 정보가 유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형이 확정된 뒤 최단기간에 사면을 받은 사람은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27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가 불과 나흘 뒤인 31일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형기에 비해 가장 빨리 사면 받은 사람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지난 1997년4월17일 대법원 판결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이 확정됐지만,8개월 뒤인 12월22일 특별사면을 받았다. 사면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으로, 두 사람 모두 3차례씩 특별사면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화 김승연 회장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2차례 특별사면에 포함됐다. 박 의원은 일부 재벌총수 등이 사면 직전에 상고 등을 취하하고 형을 확정받아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95년 8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특별사면이 발표되기 1주일 전에 대법원 상고를 취하했다.2002년 12월에는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상고를 취하한 뒤 9일만에 특별사면됐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근령씨 ‘눈물의 결혼식’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 근령(54)씨가 13일 14세 연하의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에 반대 의사를 밝혀 왔던 박 전 대표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이날 결혼식에는 동생인 지만씨 내외도 불참했다.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을 제외하고는 정치인의 발걸음도 없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참석하지 않았다.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난을 보낸 것을 비롯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박태준 전 총리,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김형오 국회의장, 안경률 사무총장, 김성조·원희룡·김소남 의원 등 정치인들의 화환만 가득했다.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와 지난 총선 박씨가 유세를 도왔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장관이 각각 화환을 보냈다. 박씨 부부가 불우이웃 돕기를 위해 화환 대신 보내 달라고 부탁했던 쌀부대 선물도 20여개 정도 됐다.박씨는 결혼식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보이며 “여러 가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 “나부터도 내 동생이 그렇게 결혼한다고 하면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결혼식에선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검소함을 기리는 취지에서 식사 대신 다과가 대접됐다. 각각 재혼인 두 사람은 별도의 신혼여행은 가지 않고 박씨의 서울 성북동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꾸릴 계획이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서울광장] 소신 외교를 보고 싶다/이목희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소신 외교를 보고 싶다/이목희 편집국 부국장

    외교통상부 안에서 바른 소리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고참 외교관에게 “역대 외교부 장관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이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이상옥 전 장관”이라고 했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 장관을 소심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았던 인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참 외교관이 이 전 장관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청렴하다고 했다. 둘째, 외교목표가 정해지면 지나치리만큼 꼼꼼하게 챙겼다. 셋째, 권력에 약한 듯 비쳤지만 나름대로 보정(補正)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 김대중씨를 재연금하라는 지시가 내각에 떨어졌다. 그때 외무부 차관이던 이상옥씨는 “미국의 입장을 들어보자.”며 일단 제동을 걸었다. 미국의 ‘힘’을 빌려 권부의 잘못된 결정을 막은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능력있는 외교관을 좌천시키라는 명령을 자주 내렸다. 장차관 시절의 이상옥씨는 할 수 없이 따르면서도 잊지 않고 있다가 꼭 다른 보상조치를 해줬다고 한다. 고참 외교관에게 “가장 인상에 남는 청와대 외교참모는 누구인가.”라고 다시 물었다. 역시 의외의 대답이 있었다.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율곡비리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이다. 검찰의 수사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했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고참 외교관은 “그러나 김종휘씨는 기획력과 추진력이 뛰어났다.”고 전했다. 이상옥·김종휘씨는 노태우 정권에서 핵심 요직을 지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역대 국가수반 평가에서 꼴찌에 이름이 오르곤 한다. 국내정치에서 평가받을 만한 족적을 남긴 게 없다. 밀실야합으로 비판받는 3당합당을 했고, 국내정치 상황을 엉망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외교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다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그리고 중국과의 수교. 이른바 북방외교를 꽃피웠다. 남북간 화해 및 불가침, 교류협력을 망라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하기도 했다. 지금 남북관계는 그때의 기본합의서 내용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무능하다고 치부되는 노 전 대통령 정권에서 이처럼 외교와 남북관계는 괜찮았던 것이다. 뚝심있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 머리회전이 빠른 김하중 통일부 장관. 쌓아온 평판으로 보면 이상옥·김종휘씨에 뒤질 게 없다. 현 정부가 인기가 없다고 하지만 노태우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의 간섭이 지금도 꽤 있다고 보여지나 ‘5·6공’ 때보다 더하겠는가. 외교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이 대외정책과 남북관계에서 왜 색깔을 못 보여주는지 답답하다. 가까운 정권을 돌아보자. 김대중 정권에서는 임동원씨가, 노무현 정권에서는 이종석씨가 있었다. 임동원·이종석 모두 재임 시절 욕을 많이 먹었다. 인사와 정책에서 독주하면서 부작용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방향이 보였다. 외교와 남북관계가 어디를 지향하는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북핵 문제가 꼬이고,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미·일·중·러 등 주변국은 신경전을 벌이며 한국을 밀고 당긴다. 더구나 국제경제마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야말로 위기의 시대다. 이때 대한민국의 외교·통일 사령탑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엄혹한 권위주의 시절의 외교관만큼이라도 고민하고 활로를 찾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제라도 외교 목표를 명확히 하고, 몸을 던져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이목희 편집국 부국장 mhlee@seoul.co.kr
  • [단독]한국 사회를 바꾼 ‘시대적 판결’ 12건

    [단독]한국 사회를 바꾼 ‘시대적 판결’ 12건

    1988년 12월27일 여성 노동자의 인권을 향상시킨 판결이 나왔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1년 직원 정년을 43세에서 55세로 높이는 규정을 마련했다가 이후 일부 착오가 있었다며 여성이 대부분인 전화교환원의 정년을 43세로 다시 낮췄다. 대법원은 사실상 여성전용 직종인 교환원의 정년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다른 분야에 견줘 낮게 정한 것은 남녀차별금지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판결했다. 2005년 7월21일 관습법 하나가 깨졌다. 제사 등의 목적으로 이뤄진 종중(가문)은 성인 남자만 구성원으로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여성에게도 그 지위를 인정했다.1999년 모 종중은 종중 소유 땅을 팔아 그 돈을 나눠주며 성별 및 나이에 따라 차등을 뒀다. 기혼 여성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가 뒤늦게 며느리들보다 적은 금액을 지급받게 됐다. 대법원은 양성 평등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2006년 6월22일 소외된 삶을 살아온 성전환자들에게 획기적인 판결이 나왔다. 여성으로 태어나 성전환 수술을 받은 A씨가 호적 성별란을 고쳐 달라고 정정신청을 내자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남녀 구별에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성전환수술까지 받아 정신적·육체적으로 바뀐 성을 갖춘 경우에 호적정정을 허가해야 한다고 했다. 오는 26일 사법 60주년을 맞는 대법원이 ‘시대의 판결’을 뽑아 전시한다. 이날 기념식 등에 맞춰 문을 여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내 법원 전시관을 통해서다. 법원도서관에서 우리사회에 큰 획을 그은 판결을 1차로 추렸고 전시관 태스크포스(TF)팀이 엄선을 거듭해 16일 현재 14건으로 압축했다. 이 가운데 12건이 최종 확정돼 전시관 내 ‘체험의 장’의 한 부분을 꾸미게 된다. 큰 액자 형식으로 만들어져 책장을 넘기듯 볼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예상 방문객이 대부분 학생 등인 점을 고려해 삶에 밀접하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 눈높이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성공한 쿠데타’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며 헌정질서 수호 의지를 드러낸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내란사건도 의미 깊은 판결로 뽑혔다. 공공기관의 수해방지 및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망원동 수해 손배 사건도 있다. 유명 백화점에서 여성의류의 실제 가격을 할인 가격으로 속여 판매한 것을 ‘사기’로 규정한 백화점 변칙세일 사기 사건도 목록에 올랐다. 변호인접견이 제한된 상태에서 나온 자백은 효력이 없다는 것을 명시한 걸개그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진술거부권을 알려주지 않은 채 확보한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신이십세기파 사건은 피의자 인권을 강조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적법한 압수수색 절차에 따르지 않고 얻은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 김태환 제주지사 사무실 압수수색 사건, 범죄 예방 책임이 있는 수사기관이 검거 명목으로 범죄를 유발·권유하는 것은 불법행위임을 명시한 필로폰 함정수사 사건으로 관행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이 밖에 사회 통념을 넘어서는 학생 지도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것을 판시한 교사의 체벌 행위 유죄 인정 사건, 소리바다 저작권법 위반 사건, 인터넷 게시글 관련 명예훼손 사건, 운전면허증 부정사용행위 유죄 인정 사건 등이 의미 있는 판결로 선정됐다. 이와 관련,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잘못이 있었던 판결도 보여주고 스스로 교훈을 삼는다면 사법 60주년이 더욱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MB 아니었어도 협상 그렇게 안됐겠나”

    이명박 대통령은 9일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황준기 지방자치비서관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김두우 정무기획비서관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각각 보내 추석인사를 전했다. 오전 이 대통령의 추석선물과 난을 들고 서울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정 실장은 이 대통령의 안부를 전한 뒤 “우리가 대통령을 잘 못 모시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이에 전 전 대통령은 쇠고기 파동과 관련,“이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그렇게 (협상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전 전 대통령은 “나도 청와대에서 일 해봐서 알지만 미국이 우리나라하고 협상하는 문제가 즉각 되는 게 아니다. 실무자들이 몇 달 동안 해놓으면 대통령은 마지막에 내용도 모르고 사인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임기가 7년이었는데 5년 정도 지나니까 몸이 힘들더라. 이 대통령에게 건강을 잘 챙기시라고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정 실장은 이어 노 전 대통령을 예방했으나 지난 2002년 전립선 암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좋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은 휠체어에 앉아 말없이 이 대통령의 안부를 전해 듣기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앞서 지난 4일 김해수 정무비서관을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보내 62회 생일(5일)을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생일 축하를 겸해 추석인사를 전했고,10일에는 김두우 비서관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추석인사를 할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현대아산 돌파구 찾나

    현대아산 돌파구 찾나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이 결국 중도하차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그다. 그 자리에는 전직 통일부 고위관료가 들어왔다. 현대그룹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윤만준 사장 교체 왜? 현대아산은 28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조건식(56) 전 통일부 차관을 신임 사장에 선임했다. 윤 전 사장은 현대경제연구원 상임고문으로 옮겼다.‘경질’보다는 ‘읍참마속’ 성격이 짙어 보인다. 금강산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두 달이 다 돼간다. 그런데도 이렇다할 돌파구가 없다. 여기에 사건 초기 북측 주장 앵무새 대변, 고의 여부를 떠나 사고현장 조작 논란 등이 겹치면서 현 회장은 유·무형의 문책 압력을 받아왔다. 결국 내부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분위기를 쇄신하고 돌파구를 모색하자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강연 개성사업단장(부사장), 임태빈 관리지원본부장(전무) 등 대북라인을 한꺼번에 물갈이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북한 소통이냐, 자기진용 짜기냐 조 사장은 서울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대통령 통일비서관, 통일부 제1정책관, 남북회담사무국 상근위원 등 통일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를 놓고 “정부와의 소통을 원활히 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가 노무현 정권 때 통일부 차관을 지냈다는 점에서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측면도 있다. 더욱이 조 사장은 현 정부와 썩 편치 않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장관은 윤만준 전 사장과 절친한 학교(경기고,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조 사장은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 시절 북방정책을 추진할 때 알게 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내심 조 사장의 북한내 인맥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그러나 전직 관료라고는 해도 ‘금강산 사고’ 책임에서 일정부분 자유롭지 못한 통일부 인사를 후임에 앉힌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다소 보수적 성향의 관료와 대북 사업(비즈니스)은 맞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조 사장도 이날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경영 경험이 없는 게 치명적 약점”이라며 “(현대의 대북사업)고비 때마다 관직에 있었던 경험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 회장 초기멤버 완전 물갈이 2003년 10월21일 취임한 현 회장은 그 해 연말 대대적인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 조규욱 현대증권 부회장, 장철순 현대상선 부회장, 김재수 그룹 경영전략팀 사장 등 이른바 ‘가신그룹’을 퇴진시켰다. 현 회장을 두고 “여장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가신 중 유일하게 살아 남았던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도 2005년 9월 경질됐다. 최용묵(현대엘리베이터), 김지완(현대증권), 노정익(현대상선) 등 당시 재신임을 받았던 사장단도 오래 가지 못했다. 현 회장 취임 초기 멤버 가운데 ‘생존자’는 김병훈 현대택배 사장이 거의 유일하다. 그룹의 두뇌인 전략기획본부(하종선)와 핵심 두 축인 현대상선(김성만)·현대아산 수장은 외부인사로 물갈이됐다. 현 회장이 고(故) 정몽헌 회장의 색깔을 완전히 지우고 자신의 진용을 짠 셈이다. 공교롭게 현 회장은 지난 25일 신설회사인 현대투자네트워크의 지분 20%(2억원 상당)를 사들여 외아들 영선(23)씨에게 전량 증여했다. 이로써 영선씨는 이 회사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후계구도보다는 앞으로의 현대건설 인수전이나 경영권 분쟁 등에 대비한 지분 확보 성격으로 보인다. 황현택 현대투자네트워크 사장이 현대아산의 등기이사로 신규 선임된 것도 연장선상에서 풀이된다. 안미현 박홍환기자 hyun@seoul.co.kr
  • [초유의 범불교도대회] 역대 대통령과 종교

    [초유의 범불교도대회] 역대 대통령과 종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다종교 국가인 우리의 정치에서 권력과 종교는 불가근불가원, 즉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가 만든 미묘한 ‘힘의 균형’은 역대 대통령으로 하여금 자신의 종교가 무엇이든 특정 종교로의 편향을 허용치 않았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대통령일수록 자신의 종교보다는 다른 종교를 배려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다만 다른 대통령과 달리 기독교를 신앙으로 했던 이승만·김영삼·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종교편향 논란 속에 불교계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어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기독교 신자 이승만 ‘대처승 정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권위주의 정부 시절 권력과 종교는 서로 견제하고 대항하는, 이른바 길항(拮抗)관계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해방 직후 대대적인 대처승 사찰 정화에 나섰다. 이로 인해 태고종 등 불교종단과 마찰을 빚었고, 이후로도 긴장관계를 지속했다. 반면 자신은 경무대에서 종종 기도모임을 갖는 등 친기독교적 행보를 이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종교를 갖지 않았으나 불교신도인 부인 육영수 여사의 영향을 받아 친불교 행보를 보였다.3·15부정선거 이후 유신체제로 이어지는 동안 천주교가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서면서 명동성당은 민주화 투쟁의 ‘성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전두환때 ‘10·27 법난´ 일어나 불교신도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이른바 ‘10·27법난’이 일어났다.1979년 12·12 사태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의 합동수사본부(본부장 노태우)가 ‘불교계 정화수사계획(45계획)’에 따라 80년 10월27일 군인과 경찰을 동원, 전국의 사찰·암자 5731곳을 일제히 수색하고 승려와 불교계 인사 153명을 연행해 폭력과 고문을 자행했다. 법난 당시 합수본부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불심 잡기에 공을 들였다. 본인이 불자이기도 했지만 취약한 권력기반을 메우려는 의도였다. 취임 직후 고향인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통일기원대전 현판을 직접 쓰는 등 불교계와 화해를 적극 시도했다. ●장로 YS 청와대서 예배·모임 ‘호국불교’라는 기치 아래 순항하던 정권과 불교계의 관계는 충현교회 장로인 김영삼 대통령의 등장으로 돌변했다. 문민정부를 열며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한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청와대 안에서 예배를 봤고, 기독교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끔 성당에 나가 미사를 보기도 했으나 다른 종교와는 그다지 마찰을 빚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사학법 개정을 둘러싸고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와 정면 충돌했다.400여 사학재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계와의 대립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를 떨어뜨린 핵심요인 중 하나가 됐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옛 전남지사 공관 미술관 변신… 새달초 개관

    한때 ‘지방 청와대’로 불렸던 광주시 서구 농성동 옛 전남도지사 공관이 미술관으로 탈바꿈한다.광주시립미술관은 19일 이 공관을 재단장해 ‘상록전시관’으로 이름짓고 다음달 3일 개관한다고 밝혔다.시립미술관측은 개관 기념전인 ‘콜라주’를 마련하고 내년 2월까지 국내 작가 7명의 작품을 전시한다.분재·수석 등도 함께 전시되며,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문화강좌가 열린다. 옛 공관을 재 단장한 전시관은 1만 8128㎡의 부지에 전체 건축면적 1861㎡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본관동과 부속동으로 이뤄졌다. 본관동 지상 1층에는 전시관, 세미나실 등을 배치하고 카페는 야외 데크와 공원을 연결했다.이 미술관은 5,6공화국 당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광주·전남을 방문할 때 숙소로 자주 사용하면서 ‘지방 청와대’로 불렸다. 이후 전남도청 이전으로 용도가 폐기되자 2004년 7월 광주시가 공공기관 이전부지 공원화 사업의 하나로 미술관을 꾸렸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건국 60·광복 63주년] GDP 반세기만에 746배로

    [건국 60·광복 63주년] GDP 반세기만에 746배로

    2만 달러를 넘어선 1인당 국민소득은 6·25전쟁 직후에는 고작 67달러였다.‘재산목록 1호’였던 유선전화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누구나 휴대전화를 쓴다. 국가적 정책으로 아이는 많이 낳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통계청이 14일 발표한 ‘통계로 본 대한민국 60년의 경제·사회상 변화’자료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변화상이다. 정부 수립 후 60년간 이뤄낸 눈부신 발전을 보여 준다. ●1인당 소득 67달러에서 2만달러 시대로 국내총생산(GDP)은 53년 13억달러에서 72년 100억달러대,86년 1000억달러대,95년 5000억달러를 넘어 지난해 9699억달러로 증가했다. 반세기 남짓 만에 746배나 급증한 것이다. 이에 따라 1인당 국민소득(GNI)도 53년 67달러에서 지난해 2만 45달러로 뛰었다. ●인구 2.4배, 국토 여의도 면적 725배 늘어 전체 인구는 49년 2019만명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4846만명으로 2.4배 늘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63년 56.6%에서 61.7%로 증가했다. 여성 취업자 비중도 34.8%에서 41.9%로 늘었다. 땅 덩어리도 넓어졌다. 국토 면적은 49년 9만 3634㎢에서 9만 9720㎢로 6086㎢(6.5%) 늘었다. 여의도 면적 8.4㎢의 725배에 해당하는 새 영토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꾸준한 간척사업의 결과다. ●무역 규모 3000배 늘어 무역 규모는 48년 2억 달러에서 지난해 7283억달러로 3000배 이상 불었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50년 2300만달러에서 지난해 59억 5000만 달러로 확대됐다. 원유 도입량은 64년 584만배럴에서 같은 기간 8억 7254만배럴로 150배 가량 증가했다. 외환보유액은 60년 1억 6000만달러에서 지난달 말 2475억 2000만달러로 늘었다. 철강과 자동차, 선박 건조, 반도체 등 주요 제조업 생산량은 지난 30∼40여년 만에 각각 396배,2270배,1482배,181배 증가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택보급률은 70년 78.2%에서 2006년 107.1%로, 상수도 보급률도 같은 기간 16.1%에서 91.3%로 증가했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55년 1만 8000대에서 지난해 1643만대로 913배 늘었다. ●수명 80살은 거뜬, 인구 고령화 문제 심각 기대수명도 크게 늘었다.70년 61.9세에서 2006년에는 79.2세로 17.3세나 더 살게 돼 장수국가의 반열에 들고 있다.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65세 이상 인구는 55년 3.3%에서 지난해 9.9%로 3배나 뛰었다. 대조적으로 합계출산율은 70년 4.53명에서 지난해 1.26명으로 급감하는 등 저출산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혼건수는 70년과 비교해 10.7배나 급증했다. ●자녀,3명→2명→1명→많이 낳자! 66년엔 ‘3·3·35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3년 터울로,3명만,35세 이전에 낳자.’라는 의미다. 이후 70년대에는 인구급증으로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캠페인으로 바뀌었다.80년에는 ‘하나만 낳자.’로 변했다. 그러다 2005년 출산율이 1.08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많이 낳자.’로 가족 정책이 180도 바뀌었다. 이젠 3명 이상 자녀를 낳으면 아파트 분양 우선권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대구 기온 2.1도나 올라 지난 수십년간 한반도는 많이 더워졌다.48년 서울의 평균기온은 11.7도였으나 지난해 13.3도로 1.6도 높아졌다. 대구도 같은 기간 평균기온이 12.9도에서 15.0도로 2.1도 올랐다. 지구 온난화 영향 때문이다.70년대에 한강은 꽁꽁 얼었고, 전국빙상대회가 열리기도 했으나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됐다. 기후 변화 불똥은 산업계 전반으로 튀고 있다. 최근 건설된 인천공항 제3활주로의 길이는 제1,2활주로보다 250m가 더 길다.2040년쯤엔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4도가량 상승할 것으로 보고 이같이 설계한 것이다. 기온이 상승하면 공기 밀도가 떨어져 비행기가 이륙을 위한 충분한 양력을 얻기 위해 활주로를 더 달려야 한다. 통계청은 “다음 세기에는 ‘남산위의 소나무’가 열대림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줌이 최고의 외화벌이 품목? 불과 30년 전 딱히 수출할 거리가 없던 당시엔 오줌 한방울이 귀한 외화벌이 자산이었다.70년대 공중화장실엔 “여러분의 오줌이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을 정도였다. 오줌에서 추출하는 ‘유로키나제’가 값비싼 중풍치료제로 수출됐다. 이후 수출 주력품목은 70년대 섬유,80년엔 철강판과 선박,90년대 자동차,2000년대 반도체로 변화했다. ●‘재산 목록 1호’에서 화상휴대전화 시대로 80년대 이전까지 전화는 당당히 ‘재산목록 1호’였다. 55년 전화가입자는 3만 9000명에 불과했다. 인구 1000명당 2대꼴로 장·차관이나 검찰간부, 국회의원, 기업체 사장 정도는 돼야 전화를 집에 모셔놓을 자격이 됐다. 이후 ‘삐삐’라 불린 무선호출기 시대를 거쳐 지금은 10명 중 9명은 개인 휴대전화로 통화한다. 휴대전화 가입자는 84년 3000명에서 지난해 4350만명으로 1만 4499배나 폭증했다. 인구 1000명당 898명이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다. ●미군 부대 타이피스트 “인기 짱” 변화된 시대상만큼 인기직업도 달라졌다.45년 광복 직후 미 군정 시절에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타이피스트가 최고의 인기 직업이었다. 고물수집상과 광산개발업자도 선호 직업이었다.50년대는 전차운전사와 전화교환원, 라디오조립원 등이 유망 직종이었다.60년대에는 은행원이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70년대에는 자유로이 해외에 드나드는 항공승무원이 여성의 인기 직종이었다.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프로게이머와 인터넷 학습사이트 교사가 선호 직업으로 등장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태극기 판매 ‘불티’ 독도문제·올림픽 맞물려 특수 태극기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한·일간에 독도 문제가 불거져 있는 상황에서 맞는 광복절인 데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연일 한국선수의 금메달 승전보가 전해지면서 태극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국경일이나 큰 행사 때만 관심이 반짝했던 것과 달리 인기 품목 대열에 당당히 명함을 내밀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8월 들어 온라인 판매업체 등을 중심으로 태극기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대량 주문이 이어지면서 태극기 제조업체들도 신이 났다. 국내시장의 60∼70%를 공급하고 있는 대전 서구 월평동 동산기획은 요즘 하루 1만개 이상 태극기를 만들고 있지만 물량이 달린다. 부산 남구 D국기사도 이 달 들어 10만여개의 태극기를 판매업체 등에 팔았다. 동산기획 관계자는 “시민이 주로 사는 동사무소는 물론 부녀회에서 가정용 태극기를 구입한다.”며 “독도를 찾을 때나 응원할 때에 많이 흔드는 수기용 태극기는 예년 이맘 때에 비해 20∼30% 늘어났다.”고 말했다. 온라인몰 옥션은 8월 들어 하루 평균 200여개를 판다. 인터파크에서도 태극기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신장됐다. 예년에 보기 힘든 ‘태극기 판매 경기’이다. 이같은 ‘태극기 사랑’ 물결은 지자체와 사회단체, 아파트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태극기 달기운동이 적극 전개되기 때문이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태장동 쌍용1차아파트 등 5개 아파트(1500가구)는 아파트 공동기금으로 태극기 1500여개를 구입했다.100%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다. 대구 달서구 월성동 코오롱하늘채 1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20일까지 입주민 823 전 가구가 동참한 가운데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강원 횡성군 횡성읍번영회는 태극기 2333개를 일괄 구입해 아파트 단지에 1915개, 시내 상가 및 주택지역 3개 구간에 333개, 도로변 280개 등에 게양했다. 자유총연맹 전남 순천시지부도 200여만원으로 가정용 태극기 400개와 차량용 100개를 사서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눠 줬다. 또 포항시와 포항새마을회는 14일 ‘독도지킴이 서명운동 및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시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벌였다. 새마을운동 광주서구지회도 이날 광천동 종합버스터미널 앞에서 차량용 태극기 2000여개를 운전자들에게 무료 배포했다. 광주시 바르게살기협의회·부녀회 등도 아파트 단지 등을 대상으로 태극기를 가정에 무료로 나눠 주거나 차량에 부착해 줬다. 부산 D국기사 관계자는 “30여년간 태극기를 제작·판매해 왔지만 올해 같은 특수는 처음”이라며 “독도문제, 베이징올림픽과 맞물려 애국심이 더욱 고취되면서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경제풍요도 박정희·사회복지도 노무현 ‘1위’ 역대정권 선진화 기여도 ‘박정희 정권과 노무현 정권, 다르면서 닮았다(?).’ 역대정권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제적 풍요도를 가장 많이 끌어올린 정권은 박정희 정부로 조사됐다. 그러나 성장의 그늘도 짙었던 만큼 박 정권은 사회복지 분야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노무현 정권은 정반대다. 정권 내내 균형발전을 강조한 덕에 사회복지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경제적 풍요도는 맨꼴찌였다. 극과 극의 닮은 꼴이다. 종합점수에서는 희비가 완전히 엇갈린다. 경제적 풍요도, 사회복지 등 항목별 점수를 합산해 평균 낸 ‘선진화 지수’는 박정희 정권이 1등, 노무현 정권이 꼴찌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14일 낸 ‘정권별 선진화 기여 평가와 MB정부의 과제’ 보고서에 나타난 결과다. 선진화 지수는 앞의 두가지 항목에 잠재성장력, 환경, 세계화를 더해 총 5개 항목 증감률을 평균한 것이다. 환경에서는 김대중 정권이, 세계화에서는 전두환·김영삼 정권이 각각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박정희 정권은 사회복지·환경 부문의 좋지 않은 점수에도 경제 풍요도 및 잠재성장력 부문에서 워낙 높은 점수를 받아 선진화지수(153.6%)가 압도적 1위로 나타났다. 그 뒤는 전두환(44.3%)-김영삼(42.7%)-노태우(36.5%)-김대중(28.1%)-노무현(23.8%) 정권 순이었다. 보고서를 쓴 이부형 연구위원은 “항목별 편차가 매우 큰 것이 역대정권의 공통점”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이를 교훈삼아 성장, 환경, 사회복지 등의 조화로운 발전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독도… ’ 상표 295건 출원 한·일 분쟁나면 건수 높아져 즉흥출원 많아 30건만 등록 ‘독도는 우리땅, 상표로도 입증?’ 14일 특허청에 따르면 ‘독도’와 관련된 상표 출원은 총 295건에 달한다. 이 중 절반 이상(54.6%)인 161건은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2005년 이후 출원됐다.2005년에만 84건이 출원되기도 했다. 이후 상표 출원은 감소했지만, 올해들어 한·일간 분쟁이 맞물리면서 증가세로 돌아섰다. 독도 상표 등록건수는 현재 30건이며 지난해 이후 출원된 ‘섬 백리향 독도 향수’ 등 22건이 심사 또는 대기 중이다. 독도 관련 상표는 1988년 첫 출원됐다. 당시 2건이 출원됐지만 최초 등록 상표는 1991년 ‘독도해물탕’이다. 이 상표 등록자인 이모씨는 독도관련 등록 상표를 8건이나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종도 독도의 지리적 위치 및 청정성 등의 이미지를 반영하듯, 해산물 관련 음식점에 집중됐다. 특히 개인 출원은 전체의 75.9%(224건)를 차지했고 남자 출원(209건)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출원건수의 80.6%인 238건이 거절 결정또는 포기돼 즉흥적인 출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특허청 관계자는 “지리적인 명칭만으로 된 상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면서 “독도처럼 지리적으로 잘 알려진 명칭이 포함된 상표를 등록하려면 식별력있는 단어나 도형 등을 결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건국 60주년] 이승만·김대중 ‘지사형’ 김영삼·노무현 ‘투사형’

    [건국 60주년] 이승만·김대중 ‘지사형’ 김영삼·노무현 ‘투사형’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는 동안 최고 권력자도 10명이나 배출됐다. 이승만·장면·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현직 대통령 혹은 내각제 총리가 그들이다. 우리 현대사는 최고 권력자들의 통치 스타일에 따라 영욕의 궤적을 그려왔다. ●대부분 의회장악 유혹 못 벗어나 정치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최고 권력자들의 대표적인 공통점으로 반의회적인 국정운영을 꼽는다. 그동안 의회는 숫적 우위를 앞세운 집권당의 ‘날치기 통과’와 야당의 물리적 의사진행 방해로 얼룩져왔다. 18대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이명박 대통령도 ‘의회 장악’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면 앞선 정권의 공통점을 이어받게 된다. 다음으로는 역대 어느 정권도 남북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이다. 분단국가 수반에게 주어진 일종의 원죄다. 이명박 정부 역시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경색된 남북 관계를 어떤 형태로든 풀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금강산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 슬로건으로 내건 ‘상생과 공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권력을 지탱해주는 통치기구를 운영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승만 정권은 관료와 경찰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는 관료와 정보기관을 활용했다. 문민정부인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검찰·경찰·국세청 등 이른바 사정기관을 이용했다. 특히 ‘개혁’을 앞세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민단체를 새로운 형태의 지지 기반으로 활용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통치 스타일에서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뚜렷했다. 관료형에서 투사형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었고, 통치스타일도 각자의 성향을 담고 있었다. 관료형으로는 장면 전 총리와 최규하·노태우 전 대통령이 꼽힌다. 이들은 개인적인 능력보다는 조직 내에서 강점을 발휘했다. 개인의 소신이나 역량을 앞세우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하면서 인고의 세월을 버텨내는 끈기를 발휘한 셈이다. 지사형으로는 이승만·김대중 전 대통령이 꼽힌다. 이 전 대통령은 백범 김구 선생과 더불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로 비록 ‘반쪽 정부’이지만 건국 과정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김 전 대통령도 군사정권 하에서 혹독한 고초를 겪으면서 민주화의 상징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장면은 관료형, 박정희는 혁명가형 혁명가 스타일로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에 해당된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부터 서거까지 혁명가다운 모습을 보였다.‘5·16혁명’‘녹색혁명’‘10월 유신’ 등 당시에 나온 말이다. 철권통치로 반민주적인 국정운영을 펼쳤지만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물 불을 가라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 역시 철권통치로 일관했지만 경제·스포츠 분야에선 괄목할 성장을 일궈냈다는데 이견이 없다. 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은 투사형으로 꼽힌다. 집권 과정은 물론이고 집권 후에도 특유의 소신과 강단을 바탕으로 한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국정 현안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논란이 일 때마다 정면 돌파를 고집하며 논란을 잠재웠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라는 경제 혁명을, 노 전 대통령은 ‘돈 안쓰는 선거’로 대표되는 정치 혁명을 일궈냈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CEO(최고경영자형)으로 일컬어진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CEO형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성공 여부가 CEO형 통치스타일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한인사회 징검다리 역할 할 것”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계 언론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 가슴이 뿌듯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검찰의 첫 아시아계 공보관인 교포 신디 신(33)씨가 6년 만에 모국을 찾았다.재외동포재단이 28일부터 개최하는 ‘차세대 지도자 워크숍’에 초청받아 방한한 신씨는 법무부 등을 비공식 방문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신씨는 22일 대검을 방문한 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는데 뒤돌아보니 지금 자리에 있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 같다.”면서 “21살 때까지 미국과 한국에서 절반씩 살아 영어·한국어에 능통하고 기자생활을 한 점이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정부시절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낸 부친이 KBS 특파원일 때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신씨는 미국에서 10년을 살다 한국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방송저널리즘을 전공했다.2000년 시카고의 한인 방송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2년 뒤 LA로 건너와 한인 TV나 라디오 방송의 앵커 겸 기자로 활약했다.연합뉴스
  • [창간 104주년 특집-건국 60년 사회문화 여론조사]“한강의 기적에 민족적 자긍심” 82%

    [창간 104주년 특집-건국 60년 사회문화 여론조사]“한강의 기적에 민족적 자긍심” 82%

    ■역사인식 “세대 갈등 확대” 57% ‘6·25전쟁’ 가장 큰 사건 서울신문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2명꼴은 정부 수립 이후 60년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긍심을 갖는 이유로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경제 성장이 으뜸으로 꼽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다.’ 15.1%,‘대체로 자랑스럽다.’ 51.4% 등 전체 응답자의 66.5%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반면 ‘별로 자랑스럽지 않다.’와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등 부정적으로 답변한 응답자는 각각 28.2%,4.4%에 그쳤다. 자랑스럽다는 긍정응답은 학력이 높을수록, 사무관리·전문직 종사자, 대전·충청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자랑스럽지 않다.’는 부정적 응답은 생산·기능·노무직 종사자, 서울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분야별로는 경제적 성장 정도에 매우 또는 대체로 자랑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이 82.5%로 가장 높았다. 이어 문화적 다양성 정도 63.0%, 사회적 민주화 정도 62.0% 등의 순으로 긍정 답변 비율이 높았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 55.6%, 전반적인 삶의 질 55.3%, 국민들의 의식수준 52.2% 등은 긍정답변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는 전체 응답자의 31.7%가 ‘6·25 전쟁’을 꼽았다. 또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14.8%)과 1970년대 새마을운동(14.7%)이 ‘3대 사건’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1988년 서울올림픽 10.0% ▲1960년 ‘4·19 혁명’ 9.2% ▲1961년 ‘5·16 군사쿠데타’ 6.7% ▲1987년 ‘6·10 항쟁’ 4.1%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3.1% ▲1987년 ‘6·29 선언’ 1.9% ▲2000년 남북정상회담 1.6% 등의 순으로 ‘10대 사건’에 포함됐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묻는 질문(중복응답)에는 전체의 56.8%가 ‘정치권 갈등으로 지역·세대간 갈등이 커진 점’을 꼽았다.‘남북 분단으로 민족이 분열된 점’ 50.2%,‘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빈부격차가 커진 점’ 44.0% 등을 지적하는 응답자 비율도 높았다. 이어 ‘군사정부의 장기집권으로 민주화가 늦어진 점’ 16.4%,‘지나친 국수주의로 세계화가 늦어진 점’ 14.4%,‘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이 약해진 점’ 12.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시기별 주역 “정보화 원동력은 국민의 자질” 56%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를 바탕으로,386세대가 민주화를 이끌어냈고, 일반 국민들이 선진국 진입을 위한 정보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서울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시기별 주역은 이처럼 평가될 수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중요했던 시기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7.5%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까지의 산업화 시기’라고 답했다. 즉 응답자 2명 중 1명꼴로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기틀이 마련됐고, 선진국 진입을 위한 초석이 다져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민주화 시기’ 32.1%,‘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의 정보화 시기’ 17.9%,‘건국 이후 60년대 초반까지의 건국 시기’ 1.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업화 시기를 이끈 주역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60.1%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50대 이상(70.3%), 고졸 이하(67.1%), 자영업자(74.4%)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민주화 시기를 이끈 주역으로는 ‘386세대 중심의 대학생’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45.1%에 달했다.3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 운동의 불을 지핀 뒤 1990년대에는 사회에 진출해 왕성한 활동을 펼친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를 일컫는 표현으로,1990년대 중반에 생겨난 개념이다. 민주화의 주역으로는 386세대 외에 일반 국민(25.4%)과 노동자·농민(11.0%) 등 이른바 ‘민초(民草)’들도 높이 평가됐다. 반면 정치권 내 야당세력(6.8%)이나 정치권 밖 재야세력(6.8%) 등 세력화된 정치권 인사를 꼽은 응답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정보화 수준이 높아지게 된 가장 큰 원동력으로 ‘국민의 특성과 자질’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55.8%를 차지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역사정보 “정부수립일 아예 몰랐다” 63% 서울신문 여론조사 결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1948년 8월15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13%에 불과했다.23.6%는 잘못 알고 있었으며,63.4%는 아예 몰랐다고 답했다. 정부수립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는 연령이나 학력, 소득이 높을수록 많았고 여자(8.3%)보다 남자(17.7%)가 더 많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적절한 의미로는 ‘민주주의 국가로의 진정한 독립’이라는 응답이 45.7%로 절반에 가까웠고,‘일본식민통치 해방’(41.9%),‘남북 분단의 시작’(10.5%)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민주주의 국가로의 진정한 독립이라는 응답 비율은 연령이 낮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컸고, 학생(61.3%)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일본식민통치 해방이라는 응답은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많았고, 주부(51.4%)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는 김구 선생이 44%로 가장 많았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35.7%로 그 다음이었다. 김구라는 응답자 비율은 고학력자, 진보주의자일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 또 남자,40대, 사무·관리·전문직, 부산·울산·경남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이승만이라는 응답은 저학력자이지만 보수주의자,60대 이상, 농림어업종사자, 서울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최고 대통령 “경제는 박정희… 민주화는 김대중” 국민 4명 가운데 3명꼴은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73.4%라는 압도적 지지율을 보였고,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이 8.4%, 김대중 전 대통령 7.0%, 노무현 전 대통령 5.1%였다. 김영삼(0.5%) 노태우(0.2%) 전두환(0.1%) 전 대통령은 응답자가 모두 1%에도 못미쳤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높은 응답률을 보였으며 월소득 99만원 이하 저소득층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29세 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응답률이 높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9세 연령층과 전문대 재학생 이상의 고학력층, 진보층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응답은 30대, 고학력층, 진보층에서 많았다. 분야별로 보면 경제분야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였다. 나머지 분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른 응답을 받았다. 경제분야에 대해 응답자의 무려 82%가 박 전 대통령을 꼽았고, 김대중(5.2%) 전두환(4.6%) 노무현(2.5%) 전 대통령 순으로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응답자 특성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70% 이상 높은 응답을 이끌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70.4%라는 압도적 우위를 이끌어냈다. 외교와 민주주의 성장 분야에서도 각각 26.7%,2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남북관계에서 모든 계층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 다음으로는 박정희(5.4%), 노무현(4.7%) 전 대통령이 이었으나 큰 차이를 보였다. 민주주의 성장분야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21.6%) 김영삼(15.3%) 박정희(11.4%) 노태우(5.2%) 전 대통령 순으로 업적을 많이 남긴 것으로 조사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李대통령 시정연설]“화해·상생의 정치…경제 반드시 살려낼 것”

    [李대통령 시정연설]“화해·상생의 정치…경제 반드시 살려낼 것”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제18대 국회 개원 축하 연설에서 제시한 분야별 국정운영 기본방향은 경제 위기 탈출, 전면적 남북 대화, 사회 통합, 법 질서 확립 등으로 요약된다. 우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전면적인 대화를 제의해 주목된다. 또 정치·외교분야에선 화해와 상생의 정치를 통한 국민 소통과 통합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경제분야에서는 경제 활력 회복과 서민경제 안정, 공공부문 효율성 제고 등을 정책 기조로 내걸었다. 사회·문화 분야에선 참여정부의 복지정책과 지방분권화를 적극 수용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했다. 1. 정치·외교분야 국회 존중… ‘대화정치’ 꼭 실천 한미FTA 대승적 차원서 비준을 이명박 대통령의 18대 국회 개원 연설 키워드는 화해와 상생의 정치다. 쇠고기 파문에서 불거진 청와대와 정치권, 대국민 사이의 소통 부재를 의식한 듯 ‘대화 정치’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11일 개원 연설에서 “국회가 소통과 통합의 전당이 돼달라.”고 당부하는 한편,“정부도 국회를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고 대화정치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관련,42일만에 문을 연 국회를 겨냥한 듯 “365일 의사당에 불이 켜지고,‘창조의 전당’,‘소통의 전당’,‘통합의 전당’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빗대 말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쇠고기 정국에서 표출된 촛불 민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대의정치의 위기 원인과 법치를 강조한 대목이 이를 반영한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인터넷의 발달로 대의정치가 도전을 받고 있다.”면서 “정부와 국회는 좀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앞으로 국민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한편, 법치의 원칙을 굳건히 세울 것”이라고도 했다. 쇠고기 문제를 정점으로, 인터넷과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한 ‘편향적인’ 소통으로 정권 초기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위기감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밝힌 ‘뼈저린 반성’에 비해 자신감의 수위가 높아진 것으로 들린다. 현 상황에 대한 국민 여론 및 야권을 보는 시각의 괴리감도 엄존하는 것 같다. 이는 ‘이명박식 국정기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에서도 확인된다. 논란이 계속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대승적 결단 차원에서 국회가 조속히 비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자원 외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선진국과의 활발한 교섭을 통해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20%대까지 끌어올리고 에너지 고효율 체계의 기반을 닦겠다.”면서 이를 위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2. 대북정책 6·15선언 등 남북간 합의사항 ‘선언’넘어 구체 실천방안 모색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기조 변화는 대북정책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남북간에 합의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6·15공동선언,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며 남북당국간 대화를 제의했다. 이는 정부가 그간의 대북정책 기조를 일정부분 수정할 뜻임을 시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그동안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를 남북관계의 기본축으로 삼아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6·15선언,10·4선언에 대해서는 사실상 인정치 않는 자세를 보였다.‘비핵·개방·3000’이라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내세워 북한의 전향적 변화를 촉구했다. 이명박 정부의 이같은 대북정책 노선은 그러나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렀고, 남북간 대화 중단 등 경색 국면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의 이날 제의는 결국 북·미 관계의 진전 속에 북핵 문제가 급류를 타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한반도 정세변화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현실 인식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이날 시정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넉 달여 전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선 공약을 언급하지 않았다. 취임사에서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닌 실용의 잣대로 풀겠다.”고 했던 발언도 “호혜의 정신에 기초해 ‘선언의 시대’를 넘어 ‘실천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로 바뀌었다. 최대한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은 자제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6·15선언과 10·4선언이 남북간 실질협력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이행할 당국간 대화를 제의한 점은 정부가 북핵 폐기 2단계에 맞춰 보다 적극적인 대북 지원에 나설 뜻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사실상의 상호주의로 인해 남북관계의 현실도 나빠지고, 여론도 나빠진 상황에서 이 대통령으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이어 “지난 몇 달 시간만 허비했지만, 뒤늦게나마 정부가 전향적 자세를 보인 점은 평가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정책기조 변화에 북측이 즉각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북한은 당분간 관망하며 상황변화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교수도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해온 북한이 당장 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내심을 갖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3. 경제분야 성장→안정… 공공료 인상 억제 공기업 선진화 계획대로 추진 경제분야 시정연설의 핵심은 서민경제 안정과 개혁의 차질 없는 이행이다. 이달 초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서 밝혔듯이 성장률 수치에 연연하지 않고 일단 서민생활의 물가 부담을 줄이는 한편, 규제개혁과 공기업 선진화 등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석유제품과 농수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난해 세계잉여금 가운데 10조원을 영세업자와 소상공인, 농어민, 축산농가를 지원하는 데 쓰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업들에도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당부하는 한편,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거래 활성화와 시장기능의 정상화를 도모하겠다고 의지를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책과 관련해 기름 소비와 탄소배출을 줄이는 ‘녹색성장시대’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에너지 고효율을 위한 기술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도록 ‘기후변화 기본법’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원외교에 대해서도 “자원개발에 늦게 뛰어들었지만 활발한 교섭을 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20%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에너지 고효율 체계의 기반을 닦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규제개혁과 공기업 선진화에 대해서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규제개혁이야말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투자와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전기, 수도, 건강보험 등 민간으로 넘길 수 없는 영역은 경영효율화를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울 때는 사람을 줄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면서, 고용안정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비준을 처리해줄 것을 국회에 당부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4. 사회·문화분야 서민 복지정책·공교육 활성화 민·관 국민건강대책기구 구성 이명박 대통령은 사회 통합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됐던 복지정책과 지방분권화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사회 정책의 변화를 예고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이 뒷걸음을 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복지정책을 강화할 뜻을 시사했다. 정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과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지원을 강화하고 맞춤형 보육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뉴 스타 2008정책’의 하나로 금융소외자 780만명에 대해서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자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불우한 성장 시절을 겪은 이 대통령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비정규직 보호법을 보완, 개정할 뜻도 내비쳤다.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해 공교육을 강화할 방침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이미 대학 입시 자율화에 이어 초·중등학교 자율화를 위한 1단계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 쇠고기 협상 파문을 의식한 듯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아주 높다.”며 “먹거리 문제만큼은 ‘국민건강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 산하에 민간이 참여하는 ‘국민건강대책기구’를 구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지역발전 정책과 관련, 이 대통령은 “중앙정부에 소속돼 있는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점차 지방에 이전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자율성을 높이겠다.”며 “지역경제 활동의 성과가 지방세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방세제의 개편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혁신도시, 기업도시와 같은 지역성장 거점을 특색 있게 육성하는 한편 국제과학 비즈니스 벨트, 새만금 개발 등 지역전략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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