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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검찰 소환장 받아든 노 전 대통령에게

    사흘 뒤면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 현관 앞에 서는 모습을 보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돌리고 싶은 부끄럽고 참담한 역사가 재연되는 것이다. 더욱이 돈에 있어서만은 역대 대통령 누구보다도 깨끗하다고 스스로 자부했고, 많은 국민들 역시 국정의 공과를 떠나 그 점 하나만은 평가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과는 비견할 수 없는 아픔이 아닐 수 없다.검찰의 소환장에 담긴 그의 혐의는 포괄적 뇌물죄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건네진 100만달러와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전달됐으나 사실은 아들 건호씨가 주무른 500만달러의 실제 주인이 노 전 대통령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에 맞서 노 전 대통령은 여섯 차례에 걸쳐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자신과의 관련성을 모조리 부인해 왔다. 부인이 받은 100만달러는 자신이 모르는 일이며, 500만달러는 뒤늦게 알았지만 순수한 투자금이라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 집사라 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재임 중 대통령 특수활동비에서 빼내 차곡차곡 쟁여 놓은 12억 5000만원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친형과 부인, 아들에다 오른팔이니 왼팔이니 하는 측근들까지 그와 더 가까울 수 없는 인사들이 뒤엉켜 검은 돈 잔치를 벌였건만 오로지 자신만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다.검찰 수사를 통해 혐의가 하나씩 드러날 때보다 국민들이 더욱 실망했던 것은 피의자의 권리 운운하며 증거를 대라고 목청을 높이는 그의 이런 모습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증거를 요구하고 있으나, 국민은 그에게 진실을 원한다. 바보 노무현이라며 돼지 저금통을 모아 보낸 2002년의 그 지지자들과 깨끗한 정권을 다시 잃은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속죄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노 前대통령 30일 소환] ‘이용호 특검팀’서 진가 발휘한 에이스

    [노 前대통령 30일 소환] ‘이용호 특검팀’서 진가 발휘한 에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할 우병우(42) 대검 중수1과장은 검찰 내 ‘에이스’로 통한다. 서울대 법대 3학년이던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우 중수1과장은 이후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서울 내 검찰청을 주로 돌며 특수통으로 성장했다. 1999년 법무부 국제법무과 근무 때부터 대검 중수1과장으로 발령난 올해까지 10년간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서 근무한 기간은 1년 10개월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1년간 강원 영월지청장으로, 2004년 6월부터 10개월간 대구지검 특수부장으로 근무했던 것이 지방 근무의 전부다. 그만큼 그는 검찰 내 엘리트다. 우 중수1과장의 실력은 이미 김대중 정권 시절 이용호 게이트 사건의 특검팀에서 활동하며 널리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장으로 있던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의 공천 사기사건을 맡아 김씨를 끝내 구속시켜 뚝심을 인정받았다. 탁월한 수사력으로 올해 1월 검찰의 꽃인 대검 중수1과장으로 발탁된 그는 노태우·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켜 ‘전직 대통령 저승사자’란 별명을 갖고 있는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의 계보를 잇게 됐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서울광장] 조기숙씨를 반박함/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조기숙씨를 반박함/이목희 수석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런 중에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술자리 논쟁의 안줏거리 하나를 제공했다. 조 전 수석이 주장한 요지는 “노 전 대통령의 잘못은 생계형 범죄”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청렴했으면 주위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사후에 쓸 돈을 마련해 놓았겠느냐는 논지였다. 노 전 대통령의 가족·참모들이 돈을 챙긴 게 전직 대통령의 생활이 어려울까봐 그랬을까. 전직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재임시 봉급의 95%를 받는다. 연금과 예우보조금을 합쳐 월 1300만∼1400만원 수준이다. 국가에서 봉급을 주는 1급 비서관 1명, 3급 비서관 2명을 둘 수 있다. 이 정도로 풍족하다고 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낸 그늘이 얼마인가.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도움을 줄 손길은 언제라도 열려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퇴임 직후 쪼들린다는 소문이 돌자 측근들이 갹출, 몇천만원을 금세 만들어 줬다고 한다. 조 전 수석은 ‘생계형 범죄’의 반대어로 ‘조직적 범죄’를 들었다. 권력을 이용해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만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조직적 범죄를 진두지휘한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노무현과 전두환·노태우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먼저 권력을 이용했다는 부분에서는 차별성이 크게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측이 권력을 잡지 못했어도 기업인들이 그런 돈을 주었을까. 청와대 예산을 횡령하는 일은 더욱 하기 힘들었을 터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잘못 역시 권력형 비리의 테두리에 들어간다. 비리 액수에서 양측이 차이가 난다. 그래도 일반국민 처지에서는 그게 그거다. 수천억원의 도둑질이 엄청난 범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수십억원의 도둑질이 면책되진 않는다. 수십억원 범죄를 ‘생계형’이라고 하다니, 생활고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염장을 지르는 말이다.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 선물을 ‘평범’으로 포장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비리가 모두 구조적이라는 점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때도 정치자금을 물 쓰듯 썼지만, 퇴임 후 정치입지를 위해서 비자금을 만들었다. 돈이 없으면 비호세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이 돈을 모으고, 사업을 벌인 원인도 비슷하다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열망이 그만큼 강했다. 공직 출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발휘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얼마간의 정치자금을 축적하는 게 필요했던 이유가 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분위기가 가족·측근들에게 전해지면서 오늘날의 사태가 벌어졌다면 이는 ‘구조적인 범죄’이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 야망을 버렸다면 사태는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숲 해설가로 여생을 소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봉하마을의 집 주변도 너무 호화롭다. 잘살 수도 있는데 절제하면 멋지게 비친다. 노 전 대통령에게 바란다. 이제라도 정치를 완전히 떠나야 한다. 그는 한때 우리나라를 총체적으로 책임졌던 이였다. 그리고 그의 시대는 갔다. 여론몰이,이런 것을 잊어야 한다. 어쭙잖은 말솜씨로 동정을 사려 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을 솔직히 털어놓은 뒤, 책임질 일 있으면 지고, 정말 담담하게 여생을 사는 게 그의 행복일 것이다. 이목희 수석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구차한 발언… 국민 인내심 시험하나”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들의 ‘박연차 게이트’를 “생계형 범죄”라고 옹호하자 24일 정치권이 들끓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수백만 달러를 받은 게 생계형이냐.”며 거세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정치 쟁점화를 경계하며 공식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친노(親) 인사들은 개인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에게 “생계형 범죄에 속하느냐.”라는 질의를 받고 “조금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의원이 “조 전 수석의 발언은 노무현 정부의 부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예”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대한민국은 전직 대통령이 생계를 걱정하도록 하는 나라는 아니다.”면서 “‘서민 대통령’을 자처했던 분이 수백만 달러의 검은 돈을 받은 것이 생계형 범죄라고 한다면 국민은 분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생계형이라서 1억원짜리 시계를 부부가 받았는지 묻고 싶다.”면서 “국민을 상대로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민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몇천억원을 받은 것보다 노 전 대통령이 단 1억원을 받은 것에 더 큰 실망감과 절망감이 들 것”이라면서 “구차하고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당내 한 친노 핵심인사는 “조 전 수석이 정치적으로 비중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발언의 전체적 맥락은 후진국형 정치보복 문제에 방점이 찍힌 것인데 단어 하나를 갖고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졸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조 전 수석의 발언에 대해 “‘불법대선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1을 넘었으면 재신임을 받겠다.’는 발언처럼 자신들의 범죄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대검 중수부 출두… 홍만표 직접 나설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받는 첫 전직 국가 원수로 기록되게 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대검의 조사는 그 동안 중수부를 거쳐간 어느 VIP급 인사들보다도 급이 높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할 검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른바 VIP 인사들은 그동안 과장급과 젊은 검사들이 직접 조사를 담당했다. 수사기획관이 조사 전에 차 한 잔을 내며 예우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기존 VIP와 급이 다른 만큼 홍만표(50) 수사기획관이 직접 조사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이인규(51) 중수부장과의 티타임도 예상된다. 홍 기획관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인 지난 1995년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을 조사한 장본인이다. 홍 기획관은 당시 특수부장(김성호 전 국정원장)과 함께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해 세간에 화제를 낳았다. 또 중수부 과장들도 노 전 대통령 조사에 배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우병우(42) 중수1과장이 홍 기획관과 함께 조사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석환(45) 중수2과장, 이동열(43) 첨단범죄수사과장 등도 참여가 예상된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내가 너무 진솔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라며 “지금도 몇 십명씩 데리고 산에 다니고 골프치러 다니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정면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은 23일 SBS 라디오 특별기획 ‘한국 현대사 증언’에 출연,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에 대해 “대법원 판결은 그렇게 엉터리로 안한다.대법원은 증거 재판을 하기 때문에 상당한 증거에 의해서 ‘얼마다.벌금 내놔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안 내고 있는 것”이라며 이 같이 비난했다.  김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나 전 전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비자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고 밝힌 뒤 “그 사람들(노·전 전 대통령)이 부정을 많이 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납부에 대해 “노 전 대통령 것은 거의 다 걷혔는데 전 전 대통령 것이 영 안 되고 있다.”고 말한 김 전 대통령은 “참 놀라운 일이다.금융실명제가 다 돼버려서 어려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을 수감한지 1년 만에 사면 복권한 배경과 관련,”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희한해서 그렇게 죄 지은 사람도 감옥에 있으면 동정을 한다.”며 “1년 후에 석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그 사람들이 1년 동안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이어 “(전직 대통령들을) 구속한 채로 내가 대통령을 그만두는 사태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며 “내 손으로 구속했으니 내 임기 동안에 내 손으로 석방하는게 옳다.”고 회고했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 집권 직후,자신을 포함해 세 명의 전직 대통령과 만찬 회동을 했던 사실을 돌아보며 “전 전 대통령이 좀 뻔뻔하니까 ‘김 대통령 감사하다.우리들 석방해줘서’라고 하더라.그러니까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서운해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내가 성격이 되게 무서운 줄 아니까 표시를 못한다.”라고 답한 김 전 대통령은 “내가 무서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두 사람을 구속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재임 기간 삼풍백화점 붕괴 등 사고가 많았던 것에 대해 “사실 지나고 보면 대통령 책임이 아닌데,내가 너무 진솔해서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그랬다.”라며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이와 관련 “건물 하나 무너졌다고 대통령이 사과하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한 김 전 대통령은 “(삼풍백화점은) 박정희 시절에 지은 건물인데,박정희가 죽었지만 그런 식으로 하면 박정희한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또 “그렇게 (사과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결과적으로 전부 대통령 책임으로 돌아오더라.”라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박대출 선임기자 정가 In&Out] ‘큰 손’과 ‘검은 손’

    15대 국회 때다. 여의도 63빌딩 음식점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종업원들끼리 다퉜다. 빈 술병을 갖기 위해서다. 루이 13세란 최고급 양주병이었다. 크리스털로 돼 있다. 빈병 값만 10만원을 호가했다. 이 음식점에서 한 병 값은 800만~1200만원. 주문한 손님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기업인이었고, 또 한 명은 정치인이었다. 1996년 8월 호화쇼핑 파문 때 얘기다. 국민회의 국창근 의원이 주인공이었다. 해외에서 루이 13세 2병을 구입했다. 정가는 시끌해졌다. 정치권의 고급 술은 따로 있다. 밸런타인 30년산이다. 실력자들은 30년산을 애용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심취했다. JP(김종필), 허주(김윤환) 등도 즐겼다. 많이 실어나르는 이가 ‘큰손’이었다. 원조격은 TJ(박태준)였다. 그의 승용차엔 늘 실려 있었다. 박연차 회장도 30년산을 즐긴다. 부산에선 ‘밸런타인 30년 남자’로 통한다. 많이 실어날랐다. 아낌없이 내놓는다. 홍인길 전 의원이 장모 칠순 잔치를 치렀다. 박 회장은 30년산으로 축하해 줬다. 호텔, 음식점 곳곳에 그의 보관술이 있다. 동네 주민들과도 30년산을 나눈다. 한 언론인이 박 회장을 만났다. 봉투를 하나 받았다. 100만원으로 생각했다. ‘0’이 하나 더 있었다. 놀라 돌려줬다. 박 회장은 2~3년 전 오케스트라를 대접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금호가든에 초대했다. 홍 전 의원의 부탁을 받고서다. 부산 소년의 집 원생들이 단원이었다. 갈비를 실컷 먹이고, 나이키 신발을 나눠줬다. 그는 ‘큰손’이다. 부산에선 ‘통 큰 회장’으로 통한다. ‘탈 없는 게 박연차 돈’이란 말도 있었다. 전별금도 후하다고 한다. 밀려난 인사 때는 더 많다고 한다. ‘멀리 보는 투자’다. 또 관료들이 정치인보다 위다. 건넨 액수가 많다. 정태수도 큰손이었다. ‘0’이 하나 더 붙는 스타일이다. 한보그룹 회장 때다. 미국 출장을 갔다. 호텔 보이에게 팁 1000달러를 줬다. ‘정태수 리스트’란 게 있었다. 두 차례 터졌다. 정·관계 인사들이 그의 돈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탈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줄줄이 도마에 올랐다. 1차 때만 정치인 33명이 소환됐다. 2차까지 합치면 구속된 의원만 9명이다. ‘박연차 수사’로 흉흉하다. 정태수 리스트와 닮은꼴이다. 연루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탈 없다.’는 소문을 너무 믿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예외가 아니다. ‘노() 패밀리’는 초토화되고 있다. 형님, 부인, 아들, 조카사위까지 타깃이다. ‘깃털 논란’이 있었다. 원조는 홍인길 전 의원이다. 김동주 전 의원도 인용했다. 그는 수서사건 때 구속됐다. 몸통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둘 다 공통점이 있다. 몸통이 밝혀지지 않았다. 박 회장은 ‘모기론’이다. 모기를 잡으려고 대포를 쏜다고 항변했다. 그런데 검찰의 대포는 전방위다. 전 정권의 최고 권력자에게도 정조준이다. 몸통이 드러나고 있다. 깃털론과 다른 점이다. 야당은 불만이다. ‘또 다른 몸통’ 의혹을 제기한다. ‘큰손’은 ‘큰손’으로 남기도 한다. 금도를 지킬 때 가능하다. 정 전 회장의 큰손은 ‘검은 손’이 됐다. 박 회장의 큰손도 검어지고 있다.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dcpark@seoul.co.kr
  • [씨줄날줄] 식약청장의 눈물/함혜리 논설위원

    감정을 드러내는 눈물은 언제 어떻게 흘리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진다. 어떤 눈물은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그 솔직함이 보는 이의 가슴에 공명을 울리는 까닭이다. 하지만 자칫 눈물을 잘못 흘렸다가는 그 덫에 걸려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 한번 잘못 흘린 눈물이 한 인물의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있다. 황산성 변호사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황 변호사는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 첫 조각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당시 환경처 장관에 발탁됐다. 취임 초인 93년 4월 수돗물 자료의 부실을 지적하는 기자들의 지적에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보였다. 언론은 그를 ‘울보 장관’ ‘눈물 장관’으로 불렀고 결국 황 변호사는 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해 12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눈물이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까닭에 남자의 눈물은 여자의 눈물과 비교할 수 없는 상징성과 파괴력을 지닌다. 비근한 사례로는 올초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보였던 눈물이 꼽힌다. 윤 장관은 자식 잃은 부모의 황망함을 내색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셔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눈물을 흘렸다가 본전도 못 찾고 질책만 받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는 ‘머스키의 눈물’이라는 관용어구가 있는데, 1972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지명전에 나선 에드먼드 머스키 후보가 대중 앞에서 엉엉 울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터진 눈물보 탓에 그는 ‘나약하고 감정 컨트롤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고 결국 정치적 대망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기획되고 연출된 거짓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라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숨겨뒀던 사실을 발표하면서 흘린 눈물,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검사들의 전별금 수수관행에 대해 대국민사과문을 낭독하다가 흘린 눈물이 이 범주에 속한다. 최근 석면 탤크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윤여표 청장이 13일 국회 답변 중 눈물을 흘렸다. 머스키의 눈물일지, 악어의 눈물일지 알 수 없지만 보기에 좋지 않았다. 괴로움을 이해는 하지만 4000만 국민의 건강은 눈물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잊은 것 같아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전략적 한·미동맹의 현주소/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전략적 한·미동맹의 현주소/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1952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방한한 뒤 지난주 런던에서 열린 G20 세계금융정상회의까지,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만난 횟수는 50회 정도이다. 한국·미국에서건, 아니면 이번과 같이 제3국에서 만난 것이건 다 합한 것이다. 정상회동은 대부분 양국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이루어지거나 한국 대통령이 먼저 미국을 방문했다는 특징이 있다. 정상회동은 한국의 위상과 양국관계의 수준을 대변해 준다. 1961년 11월 국가재건회의 의장 박정희는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를 만났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걸친 채 케네디가 묻지도 않은 베트남 파병을 제안했다. 5·16 이후 반 년도 지나기 전 이루어진 박 의장의 방미는 자신의 좌익 경력에 대한 의심을 씻고 쿠데타 성공을 보장받고자 서두른 것으로 풀이되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케네디에게 패배한 닉슨이 개인 자격으로 방한했을 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동원 당시 외무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1968년 대통령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한 닉슨은 1969년 취임 뒤 열린 정상회동 참석차 방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국측 환영 인사를 공항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닉슨은 제 별장에 박 대통령 일행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게 했다. 당연히 오찬도 만찬도 없었고 답방도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취임 1주일 만에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취임식 후 정상회동으로는 가장 빨랐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도 취임 첫 해인 1988년 10월에 미국을 찾아 레이건 대통령과 만났다. 같이 보수적인 정상 사이의 회동은 상대적으로 더 발빠르게 진행된 듯하다. 1993년 7월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반년 만에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을 성사시켰다.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1998년 6월에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다시 2001년 3월 방미하여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이때 부시는 김 대통령을 ‘디스 맨’이라 불렀다. 한·미 사이에 대북 정책으로 인한 이견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5월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부시를 만나러 방미했다. 역시 북한문제로 갈등관계에 있던 부시는 노 대통령을 ‘이지 맨’이라 칭했다. 이 방문에서 노 대통령은 “만약 53년 전에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구설에 시달렸다.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그해 4월부터 11월 사이 아주 짧은 기간에 임기 말인 부시 대통령을 무려 네 차례나 만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창조적 실용외교’라는 기치 아래 한·미동맹을 과거보다 발전된 전략적인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켰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2009년 1월에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시작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첫 정상회동이, 런던에서 일과 동반되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실용이라면 실용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이 대통령과 부시 사이에 형성된 긴밀하고 애틋한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추구하던 전략적인 한·미동맹이 공허해졌다.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발표한 한국 정부가 무색하게 미국측은 미사일이 아니라 우주발사체 실험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을 서두르고 있는데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지명자는 현상태대로라면 한·미 FTA가 통과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아예 한·미 FTA에서 자동차 교역 문제가 핵심 이슈라며 재협상 요구를 분명히 했다. 목하 오바마는 금융규제를 강화하고 무역관계를 재정비 중인데 이 대통령이 외국 유력신문에 대놓고 무역장벽을 쌓는 나라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동맹이 어떤 경로를 밟을지 지켜보게 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전직대통령 예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인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경호를 제외한 연간 2억원 규모의 연금, 예우보조금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부분의 우대 혜택들이 정지될 전망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10일 “현행 법령상 공직자 대표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재임 시절 비리에 대해선 일반 공무원들보다 훨씬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다.”고 강조했다. 일반 공무원은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될 경우 연금이 2분의1 삭감되는 불이익을 받는다. 대통령은 공직에서 물러나면 공무원연금 대신 전직 대통령연금을 지급 받는다. 하지만 전직대통령예우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이 뇌물죄 등으로 금고형 이상의 처벌을 받는다면 지원은 ‘올스톱’되고, 예우 혜택도 모두 박탈된다는 것이 행안부 설명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현재 노 전 대통령은 월 984만원의 전직 대통령 연금(연 1억 1800만원)과 3개월에 한 번씩 받는 예우보조금 2280만원(연 9120만원) 등 매년 2억원 이상의 활동비를 지원 받고 있다. 예우보조금은 사무실운영, 차량유지, 사회활동 등에 쓰이는 비용이다. 이와 함께 무상으로 받아오던 병원 진료(국·공립병원 무료, 사립병원은 사후 국가정산), 공무상 국외여행 경비 지원, 기념사업 추진도 모두 중단된다. 아울러 고위공무원인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6급)에 대한 지원도 끊어진다. 앞서 비리와 관련해 사법처리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이 같은 이유로 연금 등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노무현 자금수수 파장] 재임중 돈 받으면 ‘포괄적 뇌물죄’

    ■ 전 대통령 어떤 처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때인 2007년 6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100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될 전망이다. 포괄적 뇌물죄는 지난 1997년 대법원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처음 적용한 혐의다. 당시 재판부는 “대통령은 국정수행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특정한 청탁이나 대가성 없이 돈을 받았더라도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포괄적 뇌물죄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처럼 직무 범위를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적용된다. 또 이번 사건과 비견되는 한보사건의 재판부는 국회의원에게도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한 바 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 혐의를 적용하려는 데는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친분관계가 깊어 구체적인 청탁과 그 대가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노 전 대통령의 재판부는 “기업체가 기업 운영 편의나 정책결정상 선처 명목으로 대통령에게 제공한 금품은 대통령이 국정수행 과정에서 누리는 지위에 비춰볼 때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앞서 직무 범위가 넓은 박정규 전 민정수석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반면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에게 돈을 요구해 받아 몰래 사용했다면 노 전 대통령은 혐의를 벗을 수 있다. 그러나 권 여사는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다. 법원은 공무원의 부인이 받은 금품 및 금전적 이익도 뇌물로 폭넓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노무현 자금수수 파장] “혹시 우리도…” 한나라 수사 향배에 긴장

    “마냥 즐거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대통령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 그룹이 마냥 구석으로 몰리고 있는 가운데 9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경고음을 울렸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같이 말한 뒤 회의가 끝날 무렵 또 다시 “세상에 비밀은 없다. 우리도 국정을 운영하고 난 뒤 국민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지금이라도 살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의 발언이 그저 국민에게 ‘낮은 자세’를 보이기 위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통로로 여권 실세에 로비를 벌였다는 풍문들이 점차 구체화하는 양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 당직자는 “끼워 맞추기 식으로라도 검찰의 화살이 다시 한나라당 쪽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세도 병행했다. “재임 중에 돈을 받았거나, 퇴임 후에 받았거나 대통령과 관련된 것은 모두 포괄적 수뢰죄”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정 전반의 모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임 중에 받으면 포괄적 수뢰죄, 퇴임 후에는 포괄적 사후 수뢰죄로 대통령과 거래한 돈은 모두 뇌물죄”라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정치자금법 운운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 이래 대법원의 일관된 판결”이라며 근거도 댔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당당한 대통령을 보고 싶어하지 ‘변호사 노무현’을 보고 싶지는 않다. 부인에게 책임을 넘기는 모습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추악한 뒷거래는 명백히 국민 앞에 밝혀 진보정권 10년 간의 대국민 사기극을 입증해야 한다.”면서 “노 전 대통령은 이제는 당당히 털어 놓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원내대표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 전직 대통령을 예우해야 한다는 의견이 39%, 도덕성을 강조한 대통령인 만큼 처벌해야 한다는 답변이 61%로 나타났다고 인용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대한민국을 이념의 전장으로 만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YS “盧 형무소 가게 될 것”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러 행태로 볼 때 머지않은 장래에 형무소에 가게 될 것이라 믿는 국민이 전부”라고 말했다. 9일 경남 거제시에서 열린 자신의 기록전시관 건립공사 기공식에서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공개 사과문과 관련, “우리 역사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노 전 대통령까지 불행의 역사를 걷는다면, 얼마나 불행한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안타깝고 세계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싸잡아 비판했다. “북한 김정일에게 6억달러라는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이뤄냈다. 돈 주고 정상회담을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아마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김 전 대통령의 생가 앞 광장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안경률 사무총장, 조윤선 대변인 등 당 지도부를 비롯해 옛 민주계 출신 여권 인사 500여명이 모였다.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와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이경재·박진·이병석·권영세·정병국·이성헌 의원 등 과거 ‘범민주계’ 한나라당 의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YS “盧, 형무소 갈 것”에 박희태 “각하 건강 만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러 행태로 볼 때 머지않은 장래에 형무소에 가게 될 것이라 믿는 국민이 전부”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9일 오전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생가 앞 광장에서 열린 자신의 기록전시관 기공식에서 최근 노 전 대통령이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현금을 빌려 쓴 사실을 시인한 것과 관련,”우리 역사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노 전 대통령까지 불행의 역사를 걷는다면,우리는 얼마나 불행한 역사를 보게되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에게 6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이뤄냈다.”면서 “돈을 갖다주고 정상회담을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아마 발표가 제대로 안 됐지만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국회 파행과 관련해 “목숨 걸고 쟁취해 세운 민주주의가 얼마 전 국회에서 폭력으로 유린되는 것을 보며 가슴이 메어지게 아팠다.”면서 “나와 우리 국민,우리 민주화 동지들이 그렇게도 어렵게 찾아 세운 민주주의가 이 땅에서 성숙돼 찬란한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싶다.내 남은 마지막 소망”이라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를 대거 이끌고 기공식에 참석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축사를 통해 ”우리 김영삼 대통령 내외분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면서 ‘건강 만세’를 저도 부르겠다.“며 건강 만세를 외쳤다.인터넷 매체인 뷰스앤뉴스에 따르면 박 대표는 이날 인사말에서 ‘각하’ ‘역사의 장이 열리는 날’ 등 다소 낯 간지러운 표현들을 동원해 김 전 대통령을 찬양했다.  박 대표는 먼저 ”이제 이 장소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이 찾아올 민주 성소(聖所)가 되었다.“며 ”많은 정치인을 겪어 봤지만 우리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그렇게 따스함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너무나 인간적이고 너무나 따뜻했던, 잊을 수 없는 인간 김영삼 대통령이 영원히 살아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매주 목요일 열리는 당 최고위원회의도 생략한 채 안경률 사무총장, 김효재 비서실장, 조윤선 대변인 등을 이끌고 거제까지 내려갔다고 뷰스앤뉴스는 전했다.29일 치러지는 재보선에서 울산 북구 출마를 접었던 박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한 경남 양산 출마가 점쳐지고 있다.  이날 기공식에는 또 한나라당 김무성, 이주영, 박진, 권영세, 이병석, 이군현, 정병국, 윤영, 원유철, 김선동 의원 등도 참석했으며 청와대의 맹형규 정무수석, 김덕룡 국민통합특보,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김태호 경남 도지사,김한겸 거제시장,박상덕 국가기록물 원장 등이 함께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노무현 전격고백 파장] 내외, 대검 중수부 조사 가능성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에 응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대검 중수부는 그동안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한 사례가 없다. 과거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은 모두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그동안 중수부를 거쳐간 어느 VIP급 인사들보다도 그 급이 높다.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이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출석 조사나 방문조사를 받을 경우 수사를 맡을 책임자는 누구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검찰은 그동안 이른바 VIP 인사들에 대해서는 대검 수사기획관이 조사 전 간단히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는 등 예우했다.하지만 이번 수사는 전직 대통령인 만큼 이인규 중수부장과 티타임을 갖고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직접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홍 기획관은 1995년 전·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로 두 사람에 대한 수사를 맡았었다. 당시 특수부장이던 김성호 국정원장과 함께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해 세간에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홍 기획관이 직접 할 경우 우병우 중수1과장, 이석환 중수2과장, 이동열 첨단범죄수사과장 등이 파트너로 참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사 장소로는 대검 청사 11층에 마련된 특별실인 1120호일 가능성이 높다. 이 곳은 화장실과 샤워기, 소파, 침대가 딸린 수면실 등이 마련된 51㎡ 크기다.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노무현 전격고백 파장] 前대통령 부인 또 검찰 조사 받나

    [노무현 전격고백 파장] 前대통령 부인 또 검찰 조사 받나

    권력의 그늘은 깊었다. 때론 비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 가시밭길을 비껴가지 못했다. 1993년 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부정권과 통합해 권력을 잡았지만 사정의 칼날을 빼들어 전직 대통령들을 감옥에 보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비자금 9000억원을, 노태우 전 대통령은 4000억원을 만든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이 확정한 추징금만 둘 다 2000억원을 웃돌아 오늘까지도 다 내지 못했다. 때문에 2004년 전 전 대통령의 은닉자금으로 추정되는 뭉칫돈이 포착됐을 때 검찰이 부인 이순자씨, 아들 재용씨, 처남 이창석씨를 줄줄이 소환했다. 전직 대통령의 불법자금을 파헤쳤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검은 유혹을 떨쳐 내지 못했다. 2001년 안전기획부 예산 1200억원을 불법 전용한 혐의로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과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이 기소됐는데 강 전 의원이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법정에서 폭로했다. 대법원도 2005년 이렇게 결론냈다. 김 전 대통령은 사법처리를 면했지만 ‘소통령’이라 불리던 아들 현철씨는 정권 말기인 1997년 5월 한보사건으로 구속됐다. 기업인 6명으로부터 66억여원을 받은 혐의였다. 대통령 아들의 첫 형사처벌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지만 후임자는 금세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가 2003년 5월 기업체로부터 이권 청탁 명목으로 25억여원을 수수하고,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쇠고랑을 찼다. 막내 홍걸씨도 2001년 3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 등으로 36억 9000여만원을 받고 2억 2000여만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치소로 향했다. 장남 홍일씨도 이용호·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소환조사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악습을 이어받았다. 그는 농협에 압력을 넣어 증권회사를 인수하도록 하면서 수십억원을 받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을 여당 후보에게 배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가시밭길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부인 권양숙 여사가 빚을 갚으려고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부탁해 박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은 물론이고 부인이 사법처리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최고권력자 가족의 ‘쇠고랑 행렬’을 국민들은 답답한 심정으로 지켜 보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최영철(74) 전 국회부의장이 돌아왔다. 노태우 정부의 통일부총리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러나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왔던 그가 15년 만에 사회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언론계·정계·관계가 아닌, 교육자가 되어서다. 서경대학교 총장을 맡은 지 1년 남짓 동안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던 최 총장이 서울 정릉의 서경대 총장실에서 서울신문과 첫 인터뷰를 갖고 입을 열었다.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들어봤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연말 경호권을 발동했을 때 최 전 국회부의장의 이름이 매스컴에 나왔다. 1986년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라는 대정부 질문으로 정국에 파란을 일으켰던 통일민주당 유성환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과정에서 경호권이 발동된 사례가 소개됐고, 그가 경호권을 발동했다는 것이다. 기억이 어슴프레한 당시에 국회의장이 아닌 부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한 이유가 궁금했다. 최 총장은 “당시 이재형 국회의장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제가 임기 2년 동안 의장 직무를 거의 대행하다시피 했어요. 그날도 이 의장이 밤 늦게까지 견디지를 못하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제가 총대를 메게 된 것이지요.”라고 소개했다. 경호권을 발동하면서 동료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지 않으려고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여야를 오가면서 중재를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3당 총무’. 담담하던 최 총장의 목소리는 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바뀌자 높아졌다. 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었던 지지자들이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큰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법입니다. 대통령이 국민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으려다 모두는 고사하고 지지자들까지 등을 돌리게 하고 있어요. 자기 지지자만이라도 계속 박수를 치도록 해야 합니다. 다 가지려 하니까 좌고우면하게 되고 우유부단하게 되고 아무 것도 못하는 거예요. 옳다고 생각하면 소신대로 밀어붙여야 해요.” ●1987년 5년 중임제 제안에 여야 모두 거부 요즘의 국회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최 총장은 “국회요? 그게 국회요? 난장판이지. 국회가 전쟁터인지 이종격투기장인지 원…. 16년 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했지만 국회의원을 했다고 말하기조차 창피하고 부끄러워요.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때라면 몰라요. 여당과 야당이 서로 바꿔가며 집권을 해서 서로 상대방의 고충과 고민도 알게 돼 대화가 쉬워질 법도 한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대화를 통해 서로 조정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정치 아닌가요? 이게 존중되지 않는 국회라면 국회라고 할 수 없지요.” 최 총장은 이런 정치풍토는 25년간 지속돼 온 대통령 단임제의 적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단임제가 합법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데는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정치불안이라는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빠른 시일 안에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개헌하고 국회의원 선거구도 중선거구제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털어놓는 비화 한 가지.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위한 여야 8인 정치회담에서 그는 대통령 단임제를 임기 5년의 중임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로부터 거부당했다. 최 총장은 “당시에 대통령을 직선할 경우 꼭 이긴다는 확신이 여야 모두에게 없었어요.”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형태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대통령 중심제가 옳으며, 늦어도 내년 상반기부터는 개헌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관계 서둘지 말고 차분히 분위기 조성 통일부총리를 지낸 뒤 1997년 ‘통일로, 막히면 돌아가자’라는 저서를 펴낸 최 총장에게 경색된 남북관계의 해법을 물었다. 그는 당장에 묘수는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남발한 부도수표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이명박 정부가 죽을 맛인 것 같은데, 우선은 서둘지 말고 꾸준히 대화의 문을 두들기며 분위기를 조성해 가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대중(DJ)·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최 총장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될 교섭 상대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나이브(순진)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햇볕정책이라는 말을 김대중 대통령보다 제가 먼저 저서 ‘통일로, 막히면 돌아가자’에서 제시한 바 있어요. 그러기에 당초 6·15 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햇볕과 함께 동시에 해결해야 할 핵문제 등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어 경악했어요.” DJ가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 통일고문회의를 열어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최 총장은 왜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 없었느냐고 따졌다. DJ는 공동성명에는 언급 되지 않았으나 문서로 써서 줬다고 대답했지만, 그런 문서는 없었다. 최 총장은 “엄청난 현금을 김정일에게 갖다 주고 천문학적인 경제지원을 하는 등 따뜻한 햇볕을 계속 쏟아 비췄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많은 돈으로 북이 협박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핵무기 개발을 하는 데 도와준 꼴밖에 안 되고 말았어요.”라고 비판했다. ■“권력무상에 가족 그리워 정치 버렸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이 1993년 통일부총리를 끝으로 사실상 15년 동안의 긴 은둔생활에 들어간 이유는 뭘까. 이런 궁금증을 에둘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그는 “유유자적했다.”고 말했다. 그가 은둔생활을 결심한 이유는 세 가지. 첫째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패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16년 동안 선거구에 쏟아부었던 애정과 정성이, 하루아침에 외면당한 데 대한 충격이 너무 컸고 이제는 물러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둘째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23년의 공직생활(국회의원 16년·장관 5년·공무원 2년) 동안 매일 전투하듯 살았다. 자식들이 어느 학교, 무슨 과엘 가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고 일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족에 봉사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은둔생활의 절반을 자녀들이 유학하고 있던 미국에서 함께 지냈다고 한다. ‘2등으로 만족하자.’는 그의 좌우명이 세번째 이유다. 국회부의장에 부총리에 3개 부처 장관까지 했으면 됐지,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호남의 인재 최영철’에게 정치권의 유혹이 없었을 리가 없다. 동향(목포) 출신의 김대중(DJ) 대통령이 집권하자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정중히 사절했다. “DJ와 제 선고(先考)는 사업을 함께 한 적도 있는 사이고 DJ의 막내동생이 저와 초등학교 같은 반이어서 어릴 때부터 내왕이 잦았던 사이예요. 함께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타진해 왔을 땐 참 고마웠지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그리 가는 것이 그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최 총장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웃해 근 40년을 연희동에 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2007년 12월. 노 전 대통령은 뇌의 운동신경에 이상이 있어 거동이 어렵고 사람은 알아보지만 말이 어눌한 상태라 방문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심장 관상동맥에 이상이 있어 작년 말에 조형시술을 했지만, 함께 골프를 칠 때면 드라이브 거리가 최 총장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갈 정도로 건강하다고 전했다. 최 총장은 정정했다. 20년이 훨씬 넘은 옛 얘기를 하면서도 사람 이름과 직책을 정확하게 들면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건강의 비결은 주말에 가끔 치는 골프와 주중에 서경대 뒤 북한산 정릉 언덕을 산책하는 것. 30대의 나이에 언론사 정치부장, 38세부터 시작한 4선 국회의원, 49세의 국회부의장, 3개 부처 장관 가운데 어느 자리가 가장 좋았었느냐고 물었다. 최 총장은 서슴지 않고 “대학 총장이 제일 좋아요. 이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밝고 발랄한 젊은이들 속에서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라며 웃었다. 목포대와 서경대에서 북한학을 2년 정도 강의했던 그가 어떻게 총장이 됐을까. 최 총장은 “김성민 서경대 이사장과의 친분관계에서 비롯됐지요.”라고 했다. 서경대는 옛 국제대학. 이기붕 전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씨가 1947년 설립한 한국대학이 국제대학으로 바뀌었다가 1988년 김성민 이사장이 인수해 정릉에 자리잡고 서경대로 개명한, 62년 전통의 종합대학교다. 대일외고, 대일고교와 대일관광디자인고가 모두 같은 뿌리다. ■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프로필 ▲전남 목포 ▲목포고·서울대 정치학과 ▲동아일보 정치부장 ▲9·10·11·12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체신부 장관 ▲노동부 장관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목포해양대 객원교수 ▲서경대 석좌교수 ▲서경대 총장
  • [데스크 시각] ‘陸法黨’을 아십니까/곽태헌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陸法黨’을 아십니까/곽태헌 정치부장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 1980년대 초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이 있었다. ‘학사 위에 석사,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보안사, 보안사 위에 여사’ ‘사’자(字)로 끝나는 이 말에서 육사와 보안사의 막강함을 볼 수 있다. 여사가 보안사보다도 더 셌다는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의 당시 위세를 보여준다. 육사 11기 출신으로 보안사령관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1979년)와 5·17(1980년)을 거치면서 최고의 권력자가 됐다. 육사 동기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호용 전 내무장관을 비롯해 육사 출신은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육사 출신은 정부와 여당(민주정의당)의 핵심을 장악했다. 그 밑에서 서울법대 출신들은 ‘머리’를 제공하면서 정계와 관계 곳곳에 포진했다. 일부 서울법대 출신이 정통성이 없는 전두환 정부를 도와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육사와 서울법대 출신이 장악한 당시의 현실을 반영, ‘육법당(陸法黨)’이라는 조어(造語)가 나온 것으로 기자는 기억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3년 집권하면서 군의 대표적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에 나섰다. YS·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치면서 군 출신의 힘은 떨어졌지만 서울법대 출신들의 파워는 여전하다.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9’ 개각에서 물러났다. 강 전 장관의 서울법대 동기인 윤증현 장관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서울법대 출신인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강 전 장관이 윤 장관을 추천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현재 15명의 국무위원 중 서울법대 출신은 40%인 6명이나 된다. 강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서울법대 모임에 나가 “지난 10년간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 재무부)에 서울법대 인맥이 다 없어져 일을 시킬 사람이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1970년대까지는 행정고시 합격자 중 서울법대 출신이 꽤 있었다. 당시 시험과목에 법학분야가 많았던 데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도 적었던 게 법대생들의 행정고시 지원 이유로도 꼽힌다. 옛 재무부 이재국(理財局)은 막강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의 아들이나 사위는 돼야 이재국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경기고를 나온 것을 기본으로 깔고 서울법대를 나왔으면 가장 높은 성골(聖骨), 서울상대를 나왔으면 한 단계 낮은 진골(眞骨)로 불렸다고 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강 전 장관의 말이 왜 나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법부에서 서울법대 출신의 위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중 한 명만 빼고는 모두 서울법대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뒤인 지난달 말 현재 주요부처 차관급과 청와대 비서관 이상 142명 중 70%인 100명이 서울·고려·연세대 출신이었다.<서울신문 2월24일자 4면 참조> 고등학교 때 예비고사(현재의 수능) 몇 점 더 받고 본고사에서 수학문제 하나 더 풀어 명문대에 들어갔다고 해서 사회에서의 능력까지 검증된 것은 아니다. 같은 실력이라면, 아니 실력이 다소 뒤지더라도 비명문대나 고졸 출신을 발탁하는 게 필요하다. 학력이나 학벌의 ‘배경’ 없이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올라갔다면 더 대단한 일이다. DJ 정부 때 비서실장을 지냈던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가능한 한 지방대와 비명문대, 비명문고 출신을 발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학교 출신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소외되는 지역이나 계층이 없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인사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곽태헌 정치부장 tiger@seoul.co.kr
  • 박물관 14개… 영월 와보셨나요?

    박물관 14개… 영월 와보셨나요?

    워싱턴DC는 미국의 수도지만, 미술관, 자연사박물관, 우주항공관 등 10여개의 박물관으로도 유명한 도시다. 그래서 주말이나 연휴에는 미국 전역에서 많은 사람이 박물관을 찾아 3박4일씩 여행오는 도시다. 그런데 국내에도 박물관만 14개가 몰려 있는 고을이 있으니, 강원도 영월이다. 영월은 조카를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단종을 유배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2006년 상영된 박중훈·안성기 주연의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와 한반도 지형과 닮은 하구가 있는 곳으로 더 알려졌다. 영월에 들어서면 세조가 왜 단종을 이곳에 유배보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산이 높고 험하다. 그래서 영월에 가면 우선 17세에 목숨을 잃은 단종의 기록을 남겨 놓은 역사관을 둘러 보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화가 김기창이 그린 ‘꽃남’ 단종도 있다. 역사관 위로 산꼭대기에 단종이 묻힌 장릉이 있으니, 운동화가 필요하다.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033)370-370-26 19 영월군청에서 자신있게 추천하는 볼거리는 별마로천문대와 동강사진박물관이다. 별마로천문대와 과학관은 봉래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영월은 1년 중 맑은 날이 190일로 국내에서 가장 별이 잘 보이는 고장의 하나다. 최근엔 산행이나 스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별마로천문대에 들르는 여행객이 많아 주말에는 오후 7시에서 11시 사이에 600여명이 다녀간다고 귀띔한다. 천체 투영실에 누워서 가상별자리로 별을 감상하고, 쌩하는 바람을 맞으며 8억원짜리 망원경으로 엄지손가락만한 토성과 둥근 고리를 보고 나면, 잘 왔다는 뿌듯한 느낌이 와락 몰려온다. 어른 5000원, 초등학생 4000원. (033)374-7460 ●동강사진박물관선 김한용작가 전시회 동강사진박물관은 새로 지은 영월군청 바로 옆에 있다. 건축물로도 아주 볼 만하다. 현재는 ‘사진기록으로 본 영월’과 김한용 작가의 ‘희망의 연대기’가 전시 중이다. 한강 상류의 동강과 서강을 끼고 있는 영월은 험준한 산에 갇힌 분지라서 여름엔 범람으로 고통을 받아 왔다. 사진에서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최규하 국무총리(당시) 등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그 해가 대형 물난리가 난 해라고 보면 된다. 김한용 작가의 전시에서는 1950~1960년대의 정겹기도 하고 향수가 묻어나는 서울 풍경, 즉 서울역, 남대문로, 서울 시청앞, 이화여대 앞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1960~1980년대의 광고사진도 전시되는데,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가수인 홍세미, 문희, 유지인, 패티김, 윤정희 등의 풋풋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033)375-4554 난고 김삿갓문학관도 둘러볼 만하다. 홍경래의 난 때 목숨을 부지한 할아버지를 욕되게 한 글로 장원급제한 죄책감으로 22세부터 방랑을 한 김삿갓의 묘가 근처에 있다. 친필 시와 장원급제 시를 볼 수 있다.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033)370-2361 5억년 전 영월이 바다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등을 볼 수 있는 화석박물관(033-375-0088)과 지리를 주제로 한 호야지리박물관(033-372-8872), 차문화 전문 호안다구박물관(010-7689-5779), 국내 곤충이 총망라된 영월곤충박물관(033-374-5888)도 볼 만하다. ●청전전각박물관·조선민화박물관도 세계 조각가의 작품이 있는 국제현대미술관(033-375-2752), 감상용으로 만든 도장을 전시하는 청전전각박물관(033-375-5950), 깜찍한 호랑이와 거만한 까치가 있는 조선민화박물관(033-375-6100), 영월서강미술관(01 6-236-3000), 묵산미술박물관(033-374-72 49), 쾌연재미술관(033-374-8436)도 있다. 영월은 승용차를 이용한 가족여행이 편하지만, 수도권에선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여행 패키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영월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시베리아 삭풍회’ 아물지 않는 상처

    ‘시베리아 삭풍회’ 아물지 않는 상처

    “일본으로, 소련으로 끌려다니며 죽도록 고생만 하다 5년 만에 돌아왔는데…. 양친이 다 돌아가셨더라고.” 백발이 성성한 황희성(85)옹은 65년 전 1944년 1월을 잊지 못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출신인 황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의 농사를 거들던 열여덟살 청년이었다. 그해 강제징집 대상이 됐다는 통지를 받은 황옹은 “이듬해까지 만주와 쿠릴열도에서 철도관리와 섬 경비업무를 하면서 보냈제. 그러다 8월15일 일왕이 항복했다면서 우리를 배에 태우더라고. 귀향길이라 철석같이 믿고 올라탔건만….” 그러나 그를 비롯한 전쟁포로들이 도착한 곳은 고향이 아닌 차디찬 바람이 부는 소련 하바롭스크항이었다. 그후 4년간 시베리아 밀공장에서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49년 옛 소련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고국 땅을 밟았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떴고 고향 사람들은 “일본군에 협력한 친일파”, “소련에 머물렀던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했다. 결국 고향을 떠나 전국을 전전하며 평생을 연탄장수로 보냈다. 황옹은 “일생이 끔찍혀. 그렇다고 국가가 변변하게 보상해 준 것도 없어.”라며 눈물을 삼켰다. 황옹처럼 일본과 옛 소련으로부터 강제징용과 강제노역 등 이중 착취에 시달린 ‘시베리아 억류 조선인’은 1만여명. 60여년이 지난 지금 남한 내 생존자는 고작 18명뿐이다. 당초 남한 생존자 56명은 91년 ‘시베리아 삭풍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억울한 세월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200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방재판소에 미지불 임금반환 및 손해배상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보상이 이뤄졌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 일본은 삭풍회 회원들과 동일한 피해를 당한 일본인 시베리아 억류자 지원을 위한 ‘전후 강제억류자 특별 조치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이 2007년 강제노역자 167만명에게 모두 43억 7000만유로(약 5조 4250억원)의 보상을 완료한 것과 대비된다. 우리 정부 역시 냉대로 일관했다. 문민정부 이후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했지만 보상은 없었다. 지난해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생존자들에게 각각 80만원을 지급한 것이 전부다. 삭풍회 이병주(84) 회장은 “보상은커녕 숨진 원혼을 달랠 위령탑 하나 세우지 못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현재 미지불 임금반환 항소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힘이 부친다. 모두 80세를 넘긴 생존자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회장은 “피해자들이 한을 풀고 눈감는 게 간절한 소원”이라고 하소연했다. 삭풍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시베리아 억류자 귀환 60주년 기념 전시회를 국회도서관 2층에서 연다. 이번 전시회에는 시베리아 억류 당시의 상황을 담은 자료 75여점이 전시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용어클릭 ●시베리아 삭풍회 일제의 조선인 징병 방침에 따라 1944~45년 강제동원돼 만주(중국의 동북 3성) 북부나 쿠릴열도에 배치됐다가 소련군에 일본군 포로로 잡혀 3~4년씩 억류됐던 사람들의 모임. 1990년 12월 노태우-고르바초프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거쳐 그해 9월 한국과 소련이 정식수교를 하자 6명이 모임을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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