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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규 변론’ 안동일 변호사 “10·26 사건, 책으로 쓴 이유는..”

    ‘김재규 변론’ 안동일 변호사 “10·26 사건, 책으로 쓴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10·26 사건’의 장본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론을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가 당시 170일 간의 재판과정을 기록한 책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을 냈다.‘10.26 사건’이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탄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사건이다. 김재규는 1980년 5월 20일 대법원 사형 선고를 받고 나흘 뒤 사형이 집행됐다. 피고인 중 한 명인 박흥주는 군인 신분이어서 군법회의에 회부돼 김재규 등의 사형이 집행되기 두 달여 전에 이미 총살형으로 사형됐다. 수사, 기소, 심리, 사형 구형까지 걸린 시간은 단 54일. 이를 위해 거의 매일 공판이 열렸다. 일반 형사 사건의 경우 2주 또는 3주에 한 번씩 공판 기일을 정하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의 경우 신속히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신군부의 의도가 작용했다고 안 변호사는 말하고 있다. ‘10.26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당시 판결이 옳았는지에 관한 논란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안 변호사는 사건 현장에 있던 이들의 법정진술과 공판조서, 수사기록, 언론보도와 함께 공판조서에서 삭제된 김재규의 주요 진술과 김재규가 1심부터 3심까지 안동일 변호사에게만 털어놓은 개인적인 고백을 실었다.안 변호사는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우리가 역사를 정확히 알려면 기록이 있어야 한다”며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그는 대학 시절 4·19 혁명에 참여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예전에 ‘새로운 4·19’라는 책을 냈다고 언급하면서 “그 새로워진 4·19가 촛불혁명으로 뭉쳤다고 본다”고도 말했다. 그는 “박정희 18년, 전두환·노태우 14년으로 군사정권이 이 땅을 경작한 것이 햇수로 32년이다”라며 “이 ‘32년’으로 군사문화가 청산됐다고 보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회창 전 총리는 축사에서 “김재규 사건이 박정희 시대라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음 시대를 여는 역사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면서 “김재규 사건 판결에서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관들이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강요로 대법관에서 물러난 사건을 보고 통분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문무일-추미애-홍준표, 물고 물리는 순환 인연 주목

    문무일-추미애-홍준표, 물고 물리는 순환 인연 주목

    홍준표 신임 자유한국당 대표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문무일 부산고검장과 그를 최선으로 카드로 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간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고 있다.추미애 대표가 4일 더불어민주당을 방문한 홍준표 대표와 팔짱을 끼었다. 추미애 대표는 “협치를 굳게 국민 앞에 약속한다는 의미에서 팔짱 한 번 끼실까요? 이렇게 좀 적극적으로…”라며 다가서자 홍준표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엔 ‘스트롱맨’이 되겠다더니, ‘샤이 보이’처럼 행동했다. 사실 두 사람은 좀 특별한(?) 관계다. 사법연수원 14기 동기다. 추미애 대표는 판사로, 홍준표 대표는 검사로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정계 입문도 같은 해에 했다. 1996년 15대 국회 때 홍준표 대표는 ‘YS 키즈’로, 추미애 대표는 ‘DJ 키즈’로 정치에 들어왔다가 여당과 제1야당 대표로 만났다. 이날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문무일 부산고검장은 홍준표 대표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이들은 고려대 동문이다. 문문일 후보자가 사법연수원 4기 후배다.하지만 2008년, BBK 김경준 사건 때 홍준표 당시 의원이 김경준 기획입국설을 제기했지만, 문무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정치적 논평에 불과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최근 만기출소한 김경준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에 의한 기획입국설을 주장해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후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골이 깊어진다. 문무일 당시 특별수사팀장은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를 기소했고, 이 사건으로 홍준표 대표는 1심에서는 유죄를, 2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다. 정치활동에 많은 족쇄가 잡혔던 홍준표 대표는 대법원의 판결을앞두고 있다. 이런 문무일 후보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모든 검사의 지휘자가 될 형에게”라는 글을 폐이스북에 올리면서 측면 지원사격에 나섰다. 문무일 후보자와 이재명 시장은 사법연수원 동기로 전해졌다. 이들은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며 ‘2차 사법파동’이 일었을 당시, 지명반대 서명운동에 나선 인연이 있다. 이같은 얽히고 설킨 인연과 악연이 향후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용 갖춘 檢개혁 ‘삼두마차’… 새달 인적쇄신 예고

    진용 갖춘 檢개혁 ‘삼두마차’… 새달 인적쇄신 예고

    박상기(65)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문무일(56·사법연수원 18기)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지명되면서 문재인 정부 핵심 과제인 ‘검찰개혁’을 이끌 법무·검찰 사령탑도 진용을 갖추게 됐다. 문 후보자는 비(非)법조인 출신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박 후보자 등과 호흡을 맞춰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전망된다.법무부 탈(脫)검찰화와 검찰 조직을 형사·공판부 중심으로 재편하는 문제부터 정체된 검사장과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 인사를 통한 인적쇄신까지 문 후보자가 챙겨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서울 지역 한 부장검사는 “평소 꼼꼼한 형사 사건 처리, 수사 지휘를 지론으로 강조해 왔다”면서 “검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잘 제시할 총장 적임자”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문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임명동의안 제출일로부터 20일 이내에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이르면 7월 말쯤 임명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8월 초쯤 예상되는 후속 검사장 인사 폭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관례를 감안하면 문 후보자 동기나 선배 기수 검사장들은 퇴진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에 남아 있는 연수원 17~18기 검사장은 모두 6명이다. 여기에 현재 공석인 검사장 자리도 10개에 달한다. 법무부 국·실장·본부장 등 일부 검사장 보직이 축소되더라도 대대적인 인적 변화가 불가피한 대목이다. 현재 17~20기가 포진해 있는 고검장급 8자리에는 연수원 19~20기가 주축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지검장급은 현재 22기에서 23기 혹은 24기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문 후보자 하면 ‘지존파 사건’ 처리 일화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문 후보자가 3년차 검사이던 1994년 남원지청에 지리산 자락에서 발생한 실족사가 단순 사고사로 처리돼 송치됐다. 문 후보자는 ‘성남 거주자가 이런 산골까지 왜 왔을까’라는 기초적인 의문을 품어 경찰에 재수사를 지휘하면서 5명을 살해해 2명을 불태우는 등 잔악한 범죄를 일삼았던 ‘지존파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이 수사 경험은 현재도 사법연수원 교재에 실려 있을 정도로 ‘수사 정석’으로 통한다. 문 후보자의 치밀한 수사 스타일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삼남 지방을 전전하던 이름 없던 문 후보자가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를 시작으로 특수통(通)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됐다. 광주에서 태어난 문 후보자는 초·중·고교를 모두 광주에서 나온 광주 토박이이기도 하다. 1980년 5·18 광주항쟁과의 인연도 깊다. 그의 친구들이 시민군으로 가담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졌고, 손위 동서도 곤봉에 맞아 머리가 깨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19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검찰 특별수사팀에 참여할 때 이런 일화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제주지검 부장검사이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팀에 파견됐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에는 김경준씨의 주가 조작 및 사문서 위조, ‘기획 입국설’ 의혹,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 등을 이끌었다. 2015년 특별수사팀장으로서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맡았다. 한 장의 메모만 남기고 공여자가 사망한 뇌물 사건을 지휘해 여권 실세였던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를 기소했다. 두 사건 모두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당시 수사팀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꼼꼼한 스타일로 검사들과 소통을 잘했다”면서 “새벽 3~4시까지 수사가 이어지면 꼭 남아서 후배 검사들을 챙겼다”고 돌이켰다. 한편 문 후보자와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1988년 ‘2차 사법파동’ 때 함께 반대성명을 주도했던 일을 회상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자 법조계가 반대한 일이다. 이 시장은 “두벌식 타자기로 성명서를 작성해 복사한 뒤 법원·검찰에 나가 있는 연수생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졌다. 185명의 반대성명서가 발표됐고, 대법원장 지명은 철회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대한민국 모든 검사의 지휘자가 될 형(문 후보자)이 여전히 초심을 간직한 채 용기와 결단으로 적폐청산과 공정국가 건설의 첫길을 제대로 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믿는다”고 썼다. ▲광주(56) ▲광주제일고 ▲고려대 법학과 ▲대전지검 논산지청장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 ▲대검 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수원지검 2차장검사 ▲인천지검 1차장검사 ▲부산지검 1차장검사 ▲광주고검 차장검사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서울서부지검장 ▲대전지검장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 ▲부산고검장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재명 “문무일은 사법파동 성명 앞장섰던 형”

    이재명 “문무일은 사법파동 성명 앞장섰던 형”

    이재명 성남시장이 4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시장은 문 후보자가 “이 시대의 최대 과제인 적폐 청산과 공정국가 건설의 첫길을 제대로 열어갈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이 시장은 1987년 사법연수원생 시절 비공개동아리 ‘기모임’에서 문 후보자를 처음 만난 인연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두 사람은 사법시험(28회)·사법연수원(18기) 동기다. 이 시장은 “집단행동이 금지된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우리는 제적 등 중징계를 무릅쓰고 직선제 개헌과 군사독재 정권 타도를 위한 투쟁을 피할 수 없어 시민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고 말했다.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자 법조계의 반대로 2차 사법파동이 시작됐고, 사법연수생들도 집단서명으로 의사를 표명하고자 했지만 연수원이 제지했다고 이 시장은 설명했다. 이 시장은 “그날 저녁 (서울 관악구) 봉천동 여관에 문무일·최원식 등 몇몇 연수생이 다시 모여 밤을 새우며 토의한 끝에 반대서명을 하기로 결의했다”면서 “두벌식 타자기로 성명서를 작성해 복사한 뒤 법원·검찰에 나가 있는 연수생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185명이 참여한 반대 성명서가 발표됐고, 대법원장 지명은 철회됐다”고 덧붙였다. 이 시장은 “모든 것을 건 싸움이었지만, 다행히 민주화로 처벌과 징계를 면했다. 이 모든 일에 형으로서 앞장섰던 문 후보자는 군법무관을 마친 후 검찰을 지망해 검사가 됐다”면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생계조차 어려웠던 나는 실망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검사를 지망하는 것도 당시로서는 일종의 용기였다. 검찰에서 할 일이 있다는 형의 각오와 결의를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사로서 최선을 다했고, 특수부 검사로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이제 대한민국 모든 검사의 지휘자가 될 형이 여전히 초심을 간직한 채 용기와 결단으로 적폐 청산과 공정국가 건설의 첫길을 제대로 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믿는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씨줄날줄] 6·29 민주화선언 후 30년/이경형 주필

    [씨줄날줄] 6·29 민주화선언 후 30년/이경형 주필

    오늘은 ‘6·29 민주화 선언’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선언은 임기 5년 단임의 대통령직선제 현행 헌법의 출발점이었다. 5공화국의 군사독재가 국민들에게 항복한 날이기도 하다. 1987년 6월 29일 오전 9시. 서울 관훈동 민정당사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실은 긴장감으로 숨이 막혔다. 이윽고 노태우 당대표가 자리에 앉아 ‘국민 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 선언’을 읽어 나갔다.“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고… , 김대중씨도 사면복권….” 당시 민정당을 취재하던 필자도 ‘뭔가 대물 같다’는 감은 있었으나 그렇게 화끈할지는 몰랐다. 발표를 마친 노 대표를 뒤따라 나오면서 심경이 어떠냐고 묻자 “국민들에게 손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군 출신인 그가 ‘손든 것’은 ‘항복했다’고 말한 것 아닌가. 이 부분을 그의 회고록에는 “나는 이제 발가벗었다. 오직 국민 뜻대로 한다는 생각뿐이다”라고 기술했다. ‘6·29 민주화 선언과 한국 민주주의’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정훈 서울대 교수는 “정치사로서 6·29 선언은 4·13 호헌 조치에서 6·10 시민항쟁으로 이어진 ‘중대 시점’의 종결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옳은 지적이다. 군사정권의 한 시대는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내각제, 신한민주당 등 야당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대립 정국,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개헌불가 천명, 경찰의 시위 진압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사건 등 군사정권을 향한 간단없는 민중의 저항으로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도전과 미래’라는 논제로 “연인원 1700만명의 촛불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거리 의회’를 열어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승리한 명예혁명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정보를 가진 시민’이 온라인에서 소통하고 오프라인에서 집회를 열어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이 되면 광장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된 새로운 민주주의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6공화국 헌법이 시행된 후 7명의 대통령이 취임했다. 30년 전 모든 국민이 염원했던 대통령 직선제 헌법을 쟁취했지만 한 세대가 흐른 지금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만연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했다. 대통령 권한의 분산, 중앙집권의 지방분권화,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일대 혁신하는 선거법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제7공화국의 헌법안을 국회개헌특위를 중심으로 가다듬어 나가야 할 때다.
  • 법원 통신망 “양승태 대법원장, 사법부 위해 용단 내려야”

    법원 통신망 “양승태 대법원장, 사법부 위해 용단 내려야”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 사퇴를 요구하는 글들이 법원 통신망에 올라왔다. 22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퇴와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글이 잇따랐다고 경향신문이 전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는 9월까지다.코트넷에는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이날 오전에만 5~6건이 이어졌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한 판사는 “이번 일은 1988년 김용철 대법원장이 (2차 사법파동으로) 중도 퇴진한 경우보다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라며 “대법원장께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법부를 위하여 용단을 내리시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이는 1988년 소장판사들이 군사정부에 협조한 대법원 개편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여기에 판사 430여명이 서명했다. 결국 당시 김용철 대법원장은 노태우 정부에서 사퇴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글도 이어졌다. 다른 판사는 “왜 대법원장님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말씀이 없으시냐”며 “이 긴 침묵이 일선의 법관들로 하여금 논쟁을 만들고 상처를 심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법관대표회의에 관해 “한두 명도 아닌 100명이 의견을 모으려면 다수결을 통한 의사확인은 불가결한 절차(라는 것이) 상식이고 민주주의”라며 “회의장에서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고성과 상호비방이 난무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이성복 수원지법 부장판사) 집행부는 21일 오후 5시 서초동 대법원에서 양 대법원장을 만나 19일 회의에서 의결된 내용을 전달했다. 이들은 전날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1차 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추가조사 권한 위임 ▲책임자 문책 등에 대한 대법원장의 공식입장 표명 ▲전국법관회의 상설화를 위한 대법원규칙 제정 등을 의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정배, ‘전두환·노태우 국립묘지 안장 금지’ 5·18 특별법 개정 발의

    천정배, ‘전두환·노태우 국립묘지 안장 금지’ 5·18 특별법 개정 발의

    국민의당 천정배 의원(광주 서구을)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천 의원은 헌정 질서 파괴자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13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12·12와 5·18 등 헌정 파괴 행위로 유죄를 확정받은 사람이 사면·복권 받아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도록 조항을 신설했다. 법 시행 전 국립묘지에 안장한 예도 소급 적용했다. 5·18 책임자 국립묘지 안장은 국립묘지법과 국가장법 등에 관련 규정이 없다. ‘하나회’ 출신으로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해 실형을 선고받은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 정부로부터 사면받은 책임자 일부가 국가보훈처 심사를 통과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천 의원은 “5·18 책임자 등 헌정 질서 파괴자의 국립묘지 안장은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소통과 국민 공감 능력 뛰어나” YS·DJ의 71%보다 높은 84%

    문재인 대통령은 80%대에 달하는 국정운영 지지도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호응을 받으며 출발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전국 성인 1004명(95% 신뢰수준 ±3.1% 포인트)을 대상으로 문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는지를 묻자 84%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자들은 특히 잘하고 있는 분야로 ‘소통과 국민 공감 능력(18%)’과 ‘인사(10%)’ 등을 꼽았다. 앞서 취임 직후인 지난 5월 셋째 주(16~18일·1004명, 95% 신뢰수준 ±3.1% 포인트) 문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할 것 같은지 전망을 묻는 질문에 87%가 잘할 것이라며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5월 넷째 주(23~25일·1003명, 95% 신뢰수준 ±3.1% 포인트) 조사에서는 기대감이 88%까지 올라갔다.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후 첫 직무수행 지지도 조사에서는 1988년 6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57%, 1993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과 1998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각 71%, 2003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 60%, 2008년 3월 이명박 전 대통령 52%, 2013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44%였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국정운영 지지도 조사에서도 5월 셋째 주(15~19일·2526명, 95% 신뢰수준 ±1.9% 포인트) 81.6%, 5월 넷째 주(22~26일·2523명, 95% 신뢰수준 ±2.0% 포인트) 84.1%로 연달아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전쟁 아닌, 평화를 노래하라!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전쟁 아닌, 평화를 노래하라!

    “삼촌이 인민군을 따라 어디론지 쫓겨가 버리고 그때까지 대밭 속에 굴을 파고 숨어 의용군을 피하던 외삼촌이 국군에 입대하게 되어 양쪽에 다 각기 입장을 달리하는 근심거리가 생긴 뒤로도 겉에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다.” 작가 윤흥길이 197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장마’는 한국전쟁 당시, 어린 ‘나’의 눈으로 본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국군 소위였던 외삼촌의 죽음 이후 인민군을 따라간 빨치산 삼촌을 저주하는 외할머니와 그 삼촌의 무사귀환만을 바라던 할머니와의 갈등이 전체 소설의 중심축이다. 바로 이렇듯 민족 간에 이루어진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넘어 가족 공동체의 운명마저 파괴한다. 이는 곧 민족 공동 운명체로서의 정체성을 각기 분리시켜 결국은 또 다른 반목을 만들게 되는 비극으로 되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또 다른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은 ‘호국자료의 수집, 보존 전시, 전쟁의 교훈과 호국정신 배양, 선열들의 호국 위훈 추모’라고 하는 다분히 교과서적(?)인 느낌 가득한 목표를 가지고 1990년 9월에 착공하여 1993년 12월에 완공한 기념관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개관은 1994년 6월 10일에 하였는데, 서울 금싸라기 땅에 연건평이 2만 5000평에 달하는 건축물이 들어섰으니 우선은 규모부터가 남다른 전시관이다.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에 총 8500여점의 전시자료를 갖추고 있어 단일 전쟁 박물관 규모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임은 분명하다. 원래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주둔했던 군영(軍營) 자리였다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육군본부로 사용되었던 장소다. 전쟁기념관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노태우 대통령으로 1988년 6월 국방부 순시에서 ‘전쟁기념관 건립계획’을 발표한 후 일사천리로 건립은 진행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친필인 ‘전쟁기념관’ 휘호탑(揮毫塔)이 입구에 있는 이유다. 그런데 요사이 이곳이 의외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한류관광코스가 되었다. 더구나 옥외에 전시된 한국전쟁 당시부터 최근까지 운용된 항공기, 전차, 대포, 군함 등 대형 전투장비는 다른 나라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들이라 쇼핑 위주 한류관광에 지친 남편과 아들들에게는 최고의 인기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창군 이후 17만 전사자들의 넋을 추모 전쟁기념관은 여타 다른 박물관들과는 달리 규모가 크고 전시물들의 가짓수가 많다. 그러다보니 대강 둘러 보려 해도 족히 반나절은 걸리는 곳이다. 현재 호국 추모실, 전쟁 역사실, 6.25전쟁실 1,2,3, 기증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 대형장비실과 옥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입구에 있는 호국 추모실에는 창군 이후 산화한 17만 전사자의 명부가 보관되어 있다. 이 곳에서 제일 처음 묵념을 하고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호국 추모실을 벗어나면 전쟁 역사실이 나온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적 전쟁 사료(史料)를 보관하고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동검과 돌칼, 화살촉, 주먹도끼 등도 만날 수 있어 관람객들의 흥미를 이끈다. 다음이 전쟁기념관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6·25전쟁실 1, 2, 3관이다. 이 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비밀문서, 전쟁의 과정, 당시 사용하였던 전쟁 물품, UN군의 활약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자료가 구비되어 있다. 특히 6·25전쟁실 3관에는 유독 외국인 노병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3년 1개월간 유엔의 깃발 아래에서 유엔군 3만 7000여 명이 전사하였는데 동료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짓는 모습이 참으로 숙연하다. 6·25전쟁실을 지나면 일반인들의 기증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 대형장비실이 차례로 나오는 데, 특히 기증실에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수많은 노병들의 전쟁의 흔적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해외 파병실은 베트남 파병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약 8년 6개월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이 파병되어, 우리나라 현대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베트남 파병의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곡사포에서 나이키 미사일까지 만져볼 수 있어 실내 전시관을 나오면 옥외 전시실이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으로 외국인과 어린이들에게 신기한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또한 얼핏 보아도 군대를 제대한지 20 여년이 훌쩍 넘은 아저씨들도 침을 튀기며 탱크를 구석구석 어루만지는 모습은 흡사 어른들의 놀이터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현재 옥외전시실에는 민간인이 접할 수 없는 6·25전쟁 당시의 공산군과 유엔군 주요무기들과 베트남 전쟁과 대 간첩작전 등에서 국가안보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수송기 및 장갑차 등 일부 장비는 탑승체험도 가능해서 늘 한 줄 가득 길게 늘어서 있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 곳에는 에어보트, 40mm 4연장 함포, 수륙양용장갑차, KT-1 훈련기, 4,5인치 로켓포, 3인치 50 단연장 함포, 155mm 곡사포, 5인치 38함포, S-2 해상초계기, 나이키 지대지 미사일 등이 전시되어 있다. 흔히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민족 간의 상쟁이었던 한국전쟁 당시 발생하였던 숱한 잊혀진 죽음들과 역사가 외면한 희생들에 대하여도 이데올로기의 잣대가 아닌 진실을 척도로 다가서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우리 민족의 미래는 활짝 열릴 것이다. <전쟁 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꼭 가보길 권한다. 서울 내에서도 접근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전시물들도 여타 박물관의 그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훌륭하다.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좋지만 현역 군인들이나 군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 남성분들 -어린이 체험관 시설이 아주 훌륭해서 가족 동반 나들이 장소로도 훌륭하다. 3. 가는 방법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용산동 1가) -대중교통이 가장 편하다. ⑥호선 삼각지역 11번, 12번 출구 (도보 3분)/ ④호선 삼각지역 1번 출구 (도보 5분)/ ①호선 남영역 1번 출구 (도보 10분) 4. 감탄하는 점은? -옥외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실물 대포, 곡사포, 비행기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오히려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알려진 장소인 듯하다. 생각보다 훨씬 볼거리 체험거리가가 많고 다양한 행사가 늘 진행되고 있어 충분히 방문할 공간은 된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호국추모실. 이 곳에서 산화한 17만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은 기본!! 7. 먹거리 추천? -인근에 이태원이나 경리단길에 훌륭한 식당들이 많다.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warmemo.or.kr/newwm/main-new/main.js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이태원 거리, 국립중앙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라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기록, 보관하는 장소다. 무겁지는 않아도 되지만 너무 가벼운 발걸음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선열들에 대한 예의인 듯 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커버스토리] 공무원들 고향에 왜 민감할까

    “공무원들은 왜 그렇게 ‘고향’이나 ‘출신지’에 민감한 걸까. 특히나 정권 출범 초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지역별 우대와 홀대가 존재해 온 것은 수치로 드러난다. 우리나라 정당 정치가 큰 틀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공무원 사회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들도 지역별로 승진 희비가 엇갈렸다. 최성주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와 강혜진 서울대 행정학 박사가 최근 발표한 ‘역대 정부 정무직 인사의 지역별·전공별·성별 분석 논문’에 따르면 직업 공무원의 ‘꽃’인 차관급 정무직 인사(1635명) 3명 중 1명이 영남 출신이었다. 호남 출신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차관은 장관과 달리 외부 수혈보다는 해당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이 주로 승진해 올라간다. 그렇다 보니 공무원들은 차관 인사의 지역적 선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역대 정부의 차관급 인사 가운데 영남 출신 비율은 35.06%로, 호남(16.65%)과 충청(15.07%)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높았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 때 영남 출신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특히 김영삼 정부에서 차관급에 임명된 영남 출신 비율(49.44%)과 우리나라 전체 인구 대비 영남의 비중(19.40%)을 비교했더니, 영남 출신 차관급 비율이 무려 30.04% 포인트 높았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그 지역 출신을 더 우대했다는 것이고, 반대로 마이너스 비율이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홀대했다는 의미다. 차관급 인사에서 영남 출신들은 이승만 정부(-3.70% 포인트)와 김대중 정부(-4.53% 포인트) 때만 홀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호남 출신들은 역대 정부에서 다른 지역보다 홀대를 받았다. 야당이 정권을 잡아 출범한 윤보선 정부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에만 상대적으로 우대를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차관급으로 임명된 호남 출신 비율이 전체 인구 대비 호남 인구 비율보다 각각 0.92% 포인트, 2.83% 포인트, 3.23% 포인트 높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뤄진 1차 차관 인사에서 호남 출신은 전체 6명 중 3명(50.0%)이었다. 전체 정무직(차관부터 국무총리까지 역대 3213명) 인사로 확대하더라도 ‘영남 쏠림’ 현상은 뚜렷하다. 영남 출신이 전체의 34.08%로 가장 많은 가운데 호남은 15.54%, 충청은 14.49%였다. 국가정보원과 감사원, 국세청, 검찰청, 경찰청 등 5개 권력기관의 역대 수장(141명)은 영남 출신이 46.3%를 차지했다. 기관장 2명 중 1명꼴로 영남 출신이 임명된 셈이다. 호남 출신은 11.9%였다. 특히 노태우·김영삼·이명박 정부에서는 5개 권력기관장의 70~80%가 영남 출신이었다. 반면 김대중 정부 때는 호남 출신이 50%를 차지했다.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정무직 인사(310명)의 출신지 비율도 사정은 비슷해서 영남 출신 41.04%, 호남 출신 16.29%였다. 논문은 5개 권력기관과 청와대의 영남 출신 비율이 다른 정부부처의 영남 비율보다 높은 것은 권력의 핵심 기관일수록 지연을 더 많이 따진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경기·충청은 대선 나침반… ‘족집게 지역구’ 최다 배출

    경기·충청은 대선 나침반… ‘족집게 지역구’ 최다 배출

    5·9 ‘보궐 대선’에서 투표자(투표율 77.2%)의 41.1%가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안철수 국민의당·유승민 바른정당·심상정 정의당 전 대선 후보는 각각 24.0%·21.4%·6.8%·6.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5명의 ‘득표율 분포도’는 곧 우리나라 ‘민심 지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전체 민심을 한 지역에 고스란히 압축해 놓은 곳, 그야말로 ‘민심의 나침반’이 되는 지역은 어디일까. 1987년 개헌 이후 치러진 7차례의 대선에서 최종 득표율을 정확히 예측한 ‘족집게 지역’을 찾아 봤다.1987년 치러진 13대 대선에서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36.6%, 김영삼(YS) 통일민주당 후보가 28.0%, 김대중(DJ) 평화민주당 후보가 27.0%,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후보가 8.1%씩 득표했다. 이런 수치와 흡사한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은 경기에 몰려 있었다. 구리시가 노태우 38.5%, YS 27.8%, DJ 24.9%, JP 8.6%로 격차가 가장 작았다. 다음으로 경기 안산시, 인천 북구, 경기 시흥시, 경기 고양군 순으로 나타났다. 이때에는 지역색이 강한 후보들이 대거 출마하면서 지역별로 득표율의 편차가 컸다. 때문에 다른 대선에 비해 평균 득표율에 가까운 지역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노태우 후보는 대구·경북(TK)에서, YS는 부산·경남(PK)에서, DJ는 호남에서, JP는 충청에서 각각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이들 지역은 ‘평균 민심지’ 대상에서 제외됐다.1992년 14대 대선에선 ‘제주’가 새로운 족집게 지역으로 등장했다. 최종 득표율은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 42.0%, 김대중 민주당 후보 33.8%,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16.3%였고, 제주 남제주군의 득표율은 YS 42.3%, DJ 31.9%, 정주영 16.8%였다. 제주시도 YS 38.3%, DJ 32.9%, 정주영 16.6%로 집계됐다. 제주가 영호남 지역주의와 거리를 두면서 ‘민심의 축소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도 이때부터 차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양천구갑, 서초구을, 송파구갑의 득표율 분포는 제주 다음으로 최종 결과와 가장 가까웠다. 반면 경기와 충청권은 정주영 후보의 예상 밖 선전으로 족집게 지역을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 14대 대선도 13대 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지역대결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7년 15대 대선에선 경기가 다시 ‘민심의 평균 지대’로 부활했다. 제주도 14대 대선에 이어 위상을 잃지 않았다. 대선 득표율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38.7%,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40.3%,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19.2%였다. 경기 고양군이 이회창 38.9%, DJ 40.8%, 이인제 18.8%로 ‘족집게 지역’ 1위를 기록했다. 경기 군포시도 38.7%·41.6%·18.0%를 나타냈다. 제주시 역시 39.8%·39.9%·18.2%로 최종 결과와 거의 흡사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경기 의왕시와 안양시 동안구갑 지역도 상위에 랭크됐다. 반면 충청권은 ‘DJP 단일화’의 영향으로 표가 DJ 쪽으로 쏠리면서 뒤로 밀렸다.2002년 16대 대선은 족집게 지역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이회창(46.6%)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48.9%) 새천년민주당 후보 간 팽팽한 양자 대결이다 보니 그만큼 최종 득표율과 가까운 지역이 대거 쏟아졌다. 경기 안양시 동안구는 46.6%(이회창)·49.2%(노무현)로 최종 결과를 ‘귀신같이’ 예측했다. 경기 하남시(46.7%·49.3%)와 동두천시(46.5%·48.2%)도 대한민국 민심의 ‘축소판’ 지역으로 불릴 만했다. 서울 강동구(46.4%·49.8%), 충남 청양군(45.6%·48.5%), 경기 김포시(47.2%·48.0%), 강원 인제군(45.6%·48.2%)도 민심의 ‘바로미터’ 지역으로 떠올랐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와 팔달구,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도 만만찮은 저력을 과시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경기 지역이 ‘전통의 강호’답게 수위를 지켰다. 이와 함께 인천이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26.1%,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48.7%,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15.1%를 기록한 가운데, 경기 안양시 만안구가 25.3%·48.1%·14.9%를 기록하며 놀라운 일치율을 보였다. 이어 인천 서구가 25.5%·48.2%·14.4%, 인천 부평구가 25.6%·47.5%·14.8%로 뒤를 이었다. 강원 홍천군은 24.2%·48.9%·15.1%로 수도권 틈바구니 속에 깜짝 등장했다. 특히 정동영 후보를 제외하고 이명박·이회창 후보 두 사람의 득표율만 비교하면 홍천의 일치율이 가장 높았다. 서울 구로구, 인천 남동구, 경기 부천시 원미구·소사구, 경기 군포시, 강원 인제군도 상위 10위권 내에 들었다. 2012년 18대 대선부터 경기와 충청이 양강 체제를 형성했다. 박근혜(51.6%)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48.0%) 민주통합당 후보 간 치열한 양자 대결 속에 경기 파주시가 ‘박근혜 51.7%, 문재인 47.9%’를 기록하며 ‘민심의 축소판’ 지역으로 떠올랐다. 충북 청원군(51.7%·47.7%)과 대전 동구(51.8%·47.8%)도 충청의 자존심을 세웠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51.9%·47.8%)와 경기 남양주시(51.2%·48.4%) 역시 ‘족집게 지역’이라는 별칭을 부여받는 데 손색이 없었다. 세종시, 경기 의정부시, 서울 송파구, 경남 김해시, 대전 대덕구, 서울 용산구 등도 새로운 ‘민심의 기준지’로 떠올랐다. 18대 대선이 보수와 진보의 총력전으로 펼쳐진 까닭에 영호남의 표심은 동서로 선명하게 갈렸다. 한때 민심의 평균지로 떠올랐던 강원은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족집게 지역’에서 멀어졌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족집게 지역’이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골고루 나왔다. 5명의 득표율이 한 지역에서 동시에 일치할 확률이 높지 않은 가운데서도 경기 하남시가 41.4%·23.0%·22.4%·7.0%, 5.9%로 가장 흡사한 득표율을 보였다. 2위는 인천 중구(40.6%·23.4%·22.3%·6.9%·7.0%), 3위는 충북 청주시 서원구(42.0% 22.7%·21.5%·6.3%·7.0%), 4위는 서울 용산구(39.3%·23.9%·21.7%·8.0%·6.6%)가 각각 차지했다. 서울 강동구, 경기 수원시 팔달구, 서울 종로구, 경기 과천시,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울 동대문구가 뒤를 이었다. ‘족집게 지역’은 13대 대선 이후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극과 극으로 갈렸던 민심의 지형이 차츰 수도권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평균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를 지역주의 완화 과정으로 속단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이 TK에서 21%, 홍준표 후보가 호남에서 2~3% 득표율을 얻는 데 그치는 등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남북 유엔 가입 기여’ 현홍주 전 주미대사 별세

    ‘남북 유엔 가입 기여’ 현홍주 전 주미대사 별세

    남북 유엔 동시 가입 등에 기여한 현홍주 전 주미대사가 지난 27일 별세했다. 77세.고인은 공안검사 출신(고등고시 사법과 16회)으로 정치와 외교 분야를 넘나들며 1980~1990년대 한국 외교의 핵심에서 활약했다. 그는 1980년 안기부 제1차장에 발탁된 뒤 1985년 민정당 소속으로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의 핵심 참모역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대외 홍보를 담당했다. 노태우 정권에서 법제처장을 거쳐 주유엔대표부 대사(1990년), 주미대사(1991~1993년)로 근무하며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과 북방정책 추진에 핵심 역할을 했다. 1993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합류해 국가 간 거래 및 한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에 대한 자문 등을 담당하며 주축 변호사로 활약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 고문 등을 맡았으며, 2013년에는 국립외교원 석좌교수에 위촉됐다. 2012년 사단법인 한미협회에서 ‘한·미 우호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영혜씨와 준용·정원·제용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은 30일 오전 7시 30분이다. (02)3010-2230.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씨줄날줄] 청와대 전세살이/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청와대 전세살이/최광숙 논설위원

    민주주의의 대의가 담긴 독립선언문을 쓴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백악관 입성 때 놀랍게도 자신의 흑인 노예들을 데리고 갔다. 전임자인 존 애덤스 대통령부터 백악관 살림을 도와줄 직원 비용과 생활비를 자비로 해결했으니 그로서는 노예들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것에 죄책감을 덜 느꼈을지도 모른다.미국 권력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백악관은 4년마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임대된다. 대통령에게 그곳은 국정을 챙기는 일터이자 가족들과 함께 사는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엄격하게 구분된다. 인력 채용도 다르다. 공적인 분야의 직원은 능력을 최우선으로 보지만 대통령 관저에서 일할 집사는 대통령 가족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입이 무거운지’를 본다. 백악관 경비도 예산으로 나갈 항목과 대통령 사비로 나갈 항목을 의회에서 명확하게 구분 지어 놨다. 경호실과 비서실 운영비, 건물 유지 관리비, 공식 리셉션, 연회 비용은 정부가 낸다. 반면 대통령 가족의 식비, 가사 도우미, 웨이터 월급 등은 대통령이 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는 백악관으로 이사한 뒤 “매끼니 밥값은 물론이고 치약과 화장지 값, 세탁비까지 모두 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내게 알려 주지 않았기에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인 로라는 회고록에서 “평범한 미국인과 똑같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사야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미혼 자녀만 백악관에 거주할 수 있는데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백악관에서 함께 살았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예산 남용을 우려하는 지적에 월급과 세금 명세서까지 공개해야 했다. 대통령 전용기도 공식 탑승자가 아닌 친인척 등을 태울 경우 대통령은 한 사람당 퍼스트클래스 좌석에 해당하는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수활동비로 쓰던 식비와 생활용품 등을 자비로 내기로 했다.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에 전세 들어왔다 생각하시라”고 했다고 한다. 이처럼 당연한 일을 왜 그동안 아무도 실천하지 못했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세 자녀, 노태우 전 대통령은 두 자녀의 결혼식을 재임 중 청와대 영빈관에서 성대하게 치렀다. 이들 중 누구도 자비를 썼다는 얘기가 없으니 결국 대통령 자녀들의 호화 결혼식 비용까지 국민 세금이 쓰인 셈이다. 이제 관저에서 생활하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재소장, 총리, 감사원장, 외무부 장관 등도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 [사설] 또 전직 대통령의 법정 출석 지켜본 착잡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수갑을 찬 채 서울중앙지법에 출두하는 모습을 지켜본 많은 국민은 착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국민의 선택을 받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에 선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국민의 큰 불행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이 재판정에 선 것은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당한 지 75일, 구속 기소된 지 36일 만에 정식 재판에 나왔다. 21년 전 전·노 전 대통령이 법정에 설 때만 해도 그런 불행이 마지막이길 믿고 바랐건만 또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됨으로써 국민은 마음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그나마 대통령의 국정파탄 책임이 얼마나 엄중한지, 법 앞에 만인은 얼마나 평등한지를 재삼 확인시켜 준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일 것이다. 어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첫 정식 재판은 검찰과 변호인 측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다 3시간 만에 끝났다. 공소 사실을 놓고 양측의 견해차가 워낙 커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전·노 전직 대통령도 그랬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등 피고인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취득하기 위해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 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이어 철저히 증거에 입각한 공정한 수사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며 최순실씨와 공모 등 18가지 범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입증 대신 추론과 상상만 갖고 기소했다는 논리다. 이번 재판의 중대성에 비춰 볼 때 양측 간의 치열한 법리 다툼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실체를 은폐하거나 진실을 호도하려는 기도는 용납해선 안 된다. 서로 다툴 건 다퉈야겠지만, 비록 뒤늦었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재판부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법원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뇌물 사건을 합쳐 재판을 같이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중복 증인 심리에 따른 시간 허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선택이다. 국민은 전직 대통령이 수갑을 차고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과 수치감을 맛봤다. 그것은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자 국민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일이었다. 이런 불행은 결코 되풀이돼선 안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우선 법과 국민 앞에 대한민국을 국정파탄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깨끗하게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재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권력 남용 방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 이번 재판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는 대신 대한민국에 법치주의를 꼭 바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 법정서 혐의 부인한 ‘피고인 박근혜’

    법정서 혐의 부인한 ‘피고인 박근혜’

    구속기소 후 36일 만에 법정에 최순실 “검찰이 무리하게 엮어” 재판부 ‘朴·崔 사건’ 병합 심리박근혜(65) 전 대통령이 23일 법대(法臺)에 섰다. 지난해 9월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592억원의 뇌물수수 등 18가지 혐의를 받는 피고인 신분으로 법의 심판으로 이어지는 여정에 들어섰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당한 지 75일, 4월 17일 구속 기소된 지 36일 만이다. 재판부는 신속한 진행을 위해 박 전 대통령 재판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최순실(61)씨 사건 재판을 병합하고,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과 그의 ‘40년 지기’ 최씨,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62) 롯데 회장의 첫 정식 재판을 열었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것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박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올림머리 형태를 유지한 채 통상의 피고인이 입는 수의 대신 남색 정장 차림으로 나왔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지난해 9월 최씨가 독일로 출국한 이후 8개월 만에 이날 같은 자리에 섰지만 서로의 처지를 감안한 듯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3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국가 기밀을 전달해 국정에 개입하게 하는 한편 권력을 남용해 개인이나 기업의 이권에 개입해 사익을 추구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을 배제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등은 사사로운 이익 취득을 위해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했고 재벌과 유착해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제기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뇌물수수 혐의에는 동기가 없다”며 “최씨와의 공모 관계에 대한 설명도 없고 증거 관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롯데 등에 대한 뇌물 요구나 블랙리스트 지시 등의 혐의도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재판부가 “피고인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느냐”고 묻자 “변호인 입장과 같다”고 답했다. 최씨도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검찰이 무리하게 엮었다”고 주장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法臺 앞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혐의 모두 부인”

    박근혜(65) 전 대통령이 23일 법대(法臺)에 섰다. 지난해 9월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592억원의 뇌물수수 등 18가지 혐의를 받는 피고인 신분으로 법의 심판으로 이어지는 여정에 들어섰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당한 지 75일, 4월 17일 구속 기소된 지 36일 만이다. 재판부는 신속한 진행을 위해 박 전 대통령 재판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최순실(61)씨 사건 재판을 병합하고,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과 그의 ‘40년 지기’ 최씨,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62) 롯데 회장의 첫 정식 재판을 열었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것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박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올림머리 형태를 유지한 채 통상의 피고인이 입는 수의 대신 남색 정장 차림으로 나왔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지난해 9월 최씨가 독일로 출국한 이후 8개월 만에 이날 같은 자리에 섰지만 서로의 처지를 감안한 듯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3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국가 기밀을 전달해 국정에 개입하게 하는 한편 권력을 남용해 개인이나 기업의 이권에 개입해 사익을 추구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을 배제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등은 사사로운 이익 취득을 위해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했고 재벌과 유착해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제기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뇌물수수 혐의에는 동기가 없다”며 “최씨와의 공모 관계에 대한 설명도 없고 증거 관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롯데 등에 대한 뇌물 요구나 블랙리스트 지시 등의 혐의도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재판부가 “피고인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느냐”고 묻자 “변호인 입장과 같다”고 답했다. 최씨도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검찰이 무리하게 엮었다”고 주장했다. 재판에는 검찰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과 한웅재 형사8부장 등 8명이 출석했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유영하·이상철·채명성 변호사 등 6명이 나왔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포토] 21년만에 또... 수갑 찬 전직 대통령

    [포토] 21년만에 또... 수갑 찬 전직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과 40년 지기 최순실 씨가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첫 공판에 참석했다. 417호 법정은 1996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2.12사태 및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됐을 때 나란히 섰던 곳이다. 사진 왼쪽은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이 열린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기립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오른쪽은 23일 대법정으로 향하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보]“직업은?” “무직입니다”…53일만에 모습 드러낸 박 전 대통령

    [1보]“직업은?” “무직입니다”…53일만에 모습 드러낸 박 전 대통령

    “박근혜 피고인,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 “무직입니다.”23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417호 형사대법정 피고인석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 인정신문에서 짧게 대답했다. 주소에 대해서는 “강남구 삼성동?”, 생년월일이 ‘1952년 2월 2일’이 맞는지 묻자 “네”라고 읊조렸다. 재판 전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에 대답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첫 정식재판을 시작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신동빈 롯데 회장의 뇌물죄 관련 재판이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삼성·롯데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재판정 피고인석에 섰다. 과거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에 이어 이 법정에 선 세번째 대통령이다. 417호 대법정은 150석 규모로 서울고법·지법에서 가장 크다. 12·12사태 및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된 전·노 전 대통령의 재판이 열렸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1·2심 재판을 받는 등 굵직한 재판이 이뤄진 곳이다.오전 9시 10분쯤 호송차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은 남색 정장에 수용자번호(503번) 배지를 가슴에 달고 플라스틱 핀을 꽂아 올림머리를 한 모습이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에 따르면 도주 우려가 없는 피고인은 사복을 착용할 수 있다. 다른 수감 피고인처럼 손목에 수갑을 찼지만 포승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전 10시쯤 박 전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가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어 그의 ‘40년 지기’이자 ’비선실세’였던 최씨가 피고인석으로 다가가 앉았다. 최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앉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눈인사도 나누지 않고 내내 정면만 응시했다. 피고인 석에는 유영하 변호사와 박 전 대통령, 이경재 변호사와 최씨, 신 회장과 변호인단이 나란히 앉았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피고인 박근혜 재판 앞둔 구치소 앞 지지자들 “석방하라”

    피고인 박근혜 재판 앞둔 구치소 앞 지지자들 “석방하라”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40년 지기’인 최순실씨와 나란히 법정에 선다.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앉는 것은 1996년 3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정식재판이 열리는 2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석방하라” 등의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몰리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경비가 강화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첫 정식재판을 연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서 호송차를 타고 법원에 도착한다. 통상 피고인들은 대형 호송 차량을 함께 타고 오지만,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분리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수의 대신 사복 차림으로 법정에 설 것으로 보인다. 구치소 수용 상태라는 점에서 평소 ‘트레이드 마크’였던 올림머리는 하지 못할 전망이다. 대신 단정히 머리를 묶고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박홍기 수석논설위원

    21년 전이다. 1996년 2월 26일 오전 10시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 연두색 수의를 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들어섰다. 수인(囚人)번호 ‘3124’가 뚜렷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국민의 눈과 귀는 온통 법정에 쏠렸다. 김영일 재판장은 “피고인 전두환”이라고 호명했다.인정신문에서 전씨는 본적과 주민등록번호를 또박또박 대답했다. “현재 주소가 어딥니까”라고 묻자 당황한 듯 “안양교도소”라고 답했다. 법정이 술렁이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95-4입니다”라고 곧바로 고쳤다. 전씨는 재벌들로부터 돈을 받은 경위에 대한 질문에 “관행에 따라 으레 그런 것인 줄 알고 받았다”, “재벌들의 우국충정을 받아들여 정치자금을 받았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4일 뒤인 3월 11일 같은 시간 같은 법정에서 12·12 및 5·18 사건의 첫 재판이 열렸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법정에 섰다. 노씨의 수인번호는 ‘1042’였다. 검찰은 당시 12·12 사건을 군사반란, 5·18 사건을 내란행위로 규정했다.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단죄였다. 국민은 다시는 이런 날이 없기를 바라며 두 전직 대통령을 지켜봤다. 21년이 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법정에 선다. 법원은 피고인석에 선 박 전 대통령을 언론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1년 전과 같은 법정, 같은 시간에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 수인번호 ‘503’을 단 ‘피고인 박근혜’를 볼 수밖에 없다. 뇌물 등 18가지 혐의로 구속된 지 53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주장처럼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몰랐고 나는 한 푼도 사적으로 챙긴 게 없다”, “엮어도 너무 억지로 엮었다”라고 진술할 가능성이 크다.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고, 불리하다 싶으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1년 전으로 되돌아갈 듯하다. 국민의 눈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평행이론’ 같다. 40년 지기인 비선 실세 최씨와 같은 자리에서 재판을 받는다. 최씨 변호사의 말마따나 ‘살을 에는 고통’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지켜보는 국민은 착잡하다. 떳떳하게 당당하게 국민 앞에 설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을 또다시 볼 수 없어서다. 국민의 신뢰와 믿음을 깨 버린 탓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박 전 대통령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헌재의 결정 때처럼 승복하지 않는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국론 분열과 혼란이 지속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한 길이다. 남아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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