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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9」는 명예 혁명”/보통사람과의 대화서 강조/노 대통령

    민자당은 6·29선언 5주년을 맞아 29일 저녁 서울 가락동 중앙정치교육원에서 노태우대통령·김영삼대표등 당관계자와 각계 시민 1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통사람과의 대화」모임을 가졌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6·29선언은 우리 국민,보통사람들이 한 것』이라면서 『6·29선언으로 우리의 40년 헌정사에서 늘 쟁점이 되었던 「민주대 반민주」의 갈등구조와 정부의 정통성을 둘러싼 시비가 일거에 해소되었다』고 평가했다. 노대통령은 『6·29선언은 그 영향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대외관계등 모든 부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명예혁명이라는 말을 써도 무방할 것이며 우리민주주의의 황금문서』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또 『6·29선언으로 민자당의 창당이 가능했다』고 지적하고 『이 나라 민주화에 평생을 바쳐온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이 집권여당으로서는 처음인 대통령후보 자유경선에서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역사의 순리』라고 말했다.
  • 민주주의 가능성 활짝 열었다/「6·29」5주(해외 특별기고)

    ◎로버트·J·마이어 미카네기위 회장/아시아에 새정치 수범 보여 지난 87년 여름,지금의 노태우대통령이 한국에서 민주적 정치개혁을 단행한 의미는 5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더욱 부각되고있다.내년 2월이면 그는 5년 단임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서울에서 간선대통령제에 반대하는 시위군중의 물결을 직접 목격했다.그때 6·29선언을 한 장본인이 다름아닌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씨였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대통령직선제와 함께 오랫동안 정치적 반대자였던 김대중씨의 공민권을 회복시킨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그때 정치규제에서 풀린 김씨는 지금 제1야당의 당수가 되어있다. 노씨는 그무렵 (국가적)위기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나는 사회적 혼란을 진정시키고 국민화합을 달성하기 위해선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하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나는 민정당대표,대통령후보직 그리고 다른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이다.…나는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웃을수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노태우후보는 87년 12월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37%의 득표로 승리한후 정치적 제휴를 통해 성공적으로 통치해왔다.노정부는 지난 45년 건국이래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정권이다.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이전부터 연간 7∼9%의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해왔기때문에 노대통령이 한국정치에 기여한 독특한 공로는 다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뚜렷한 민주주의발전궤도는 4단계를 거쳐왔다고 본다.첫째는 정치적 안정,둘째 「창조적 파괴」를 가능하게 할만한 경제적 성장,셋째 정치적 참여,넷째 사회적 정의라고 할수있다. 민주국가의 발전에 있어 정치와 경제간의 서로 다른 특징,그리고 민주정치의 본성에 관해 아시아지역에서 노대통령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시대의 지도력은 경제적 성장이 더이상 정치적 정통성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이 될수없다』는 인식을 갖고있다.또 경제가 발전하면 결국 정치를 경제로부터 분리시키며 따라서 정치적 정통성은 정치 그 자체로서 확립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아울러 갖고있다. 노대통령은 집권한후 여소야대국회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을 극복하기위해 보수진영의 정치적 결합을 성공시킴으로써 국회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확보했다.점차 확대되어나가는 정치적 개방성은 금년 3월의 총선에서 집권당인 민자당의 의석을 과반수에도 미치지 못하게했다.더욱 곤혹스런 것은 국민당을 결성,국회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정부에 반기를 들고나온 재벌총수 정주영씨의 등장이었다. 민자당은 정씨의 이같은 사태발전을 전혀 바라지 않았다.역설적으로 말하면 노태우씨는 한국의 민주주의제도를 확립하는데 성공했지만 그에따른 피해자는 바로 그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이 한국에서 민주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인내는 참으로 놀랄만했다.그동안 동구나 다른 아시아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해진다.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노대통령의 집념은 아시아에서 새로운 정치적 수범으로서 심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훌륭한 전례는 지난 5월 태국사태때 깊은 영향을 주었다.바바라 크로세트가 뉴욕 타임스에 썼듯이 경제만 발전되면 민주적 개혁이 수반될 것이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은 비단 태국에서만이 아니다.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의사표시나 자유선거가 초래하는 불안정보다는 차라리 부패한 권력에 의한 안정이 더 낫다든가,아시아인들은 서구와는 다르다는 따위의 논쟁을 점차 경멸해왔던 것이다. ◎군출신 없는 대선 “큰 사건” 노대통령의 선언과 그의 민주화과정에 있어서의 인내의 덕택으로 다가오는 12월 한국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순수한 민간인후보자들만 출마하여 경쟁을 하게 될것이다.군인출신이 한사람도 후보에 포함되지 않는것은 한국정치사에 또하나의 첫기록을 남기는 셈이다. 이번에 출마하게될 것으로 보여지는 인물들은 민자당의 김영삼,민주당의 김대중,국민당의 정주영후보등이다.김영삼씨는 한국정치사의 우여곡절과 함께 평생을 살아왔고 김대중씨는 제1야당의 지도자이며 정씨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에 나서고있는 텍사스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와 비견되고 있다. 한국에 있어 민주주의의 장래는 밝다.비록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고 총리급회담등 남북대화를 통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노력이 매우 느리긴 하지만 민주화로 가는 과정은 낙관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영향은 다른 나라에도 본보기가 될수있을 것이다.한국민주주의에 대한 노대통령의 기여는 한국현대사에 있어 뚜렷한 이정표로 기록될것이다.6·29 민주개혁선언은 한국에서 일반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 “한국면모 일신한 「조용한 혁명」”/미·가 등 8개국 언론특집보도

    ◎「6·29선언」으로 민주화 토대 마련/북방외교 성과… 통일행보 가속화 세계 각국의 언론매체들은 노태우대통령의 6·29선언 5주년을 계기로 일제히 이를 평가하는 논설과 특집을 실었다. 홍콩의 성도일보,대만의 자립만보,인도의 파이어니어,미국의 베터런스 보이스,캐나다의 글로브 앤드 메일,아르헨티나의 라 프렌사,오스트리아의 디 프레세,인도네시아의 앙카탄 베르센자타등 8개국 10여 매체들이 6·29선언 5주년을 앞두고 이 선언이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강조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들 매체는 『한국의 민주화는 6·29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노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다』 『노대통령의 2대 공적인 민주화와 북방정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등의 요지로 이를 평가했다. 캐나다의 글로브 앤드 메일지는 지난 16일 「한국 보고서」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경제현황과 민주화 달성과정을 전하면서 한국이 통일로 가는 발걸음을 서서히 내딛기 시작했다고 소개하고 차기 대통령선거의 후보들은 모두 민간인 출신으로 이 선거는 양금씨간의 2파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의 성도일보는 16일 「국가의 면모를 새롭게 전환­한국의 조용한 혁명」이란 제목으로 6·29선언 전문과 함께 한국경제의 성장과 발전,남북한 관계와 북방정책의 성과등을 다루었다. 또 시카고의 베터런스 보이스지는 15일자에서 「한국,통일과 개혁으로 가는 길을 열다」란 제목으로 『한국 민주화의 현대적 역사는 6·29선언으로 출발했다』고 전제하고 이 선언은 40년 역사상 최초로 진정한 민주화 시대를 선도했고 정부의 정통성을 확립했다고 논평했다. 한편 아르헨티나의 라 프렌사지는 「한국은 국제적 모범국가」란 제목의 21일자 논설에서 노대통령이 6·29민주화 개혁선언 이후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행해왔으며 특히 북방외교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 정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민주­반민주」 대결구도·권위주의 청산/다양한 이념포용… 「보통사람」의 시대로/국회권한 강화로 「과거청산」도 과감히/전방위외교 추진해 세계속 한국위상 높여/여당 대선후보 자유경선·지자제실시등 큰 성과 「오늘은 기쁜 날,찻값은 받지 않습니다」5년전 6·29선언이 있던 날 서울의 어느 찻집에 써붙였던 글귀는 당시의 전국민의 감정을 한마디로 나타낸 것이었다.사회 전반의 경직된 분위기를 일소하고 권위주의의 청산으로 민주화의 훈풍은 예고했던 6·29선언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었고 그 성과는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에 6·29가 미친 파장과 앞으로의 과제를 정치부기자의 방담을 통해 엮어본다. ­민주화의 새 장을 열었던 6·29선언이 있은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그동안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정말 엄청난 변화가 있었죠. ­그렇습니다.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지요.우리 국민들은 너무 쉽게 과거를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권위주의통치의 마감을 알리는 6·29선언이 있던 날,모두들 얼마나 감격했습니까.서울의 한 다방 여주인은 「오늘은 기쁜 날,차값은 무료입니다」라고 써붙이고 고객들에게 서비스함으로써 기쁨을 자축했지요. ○“오늘은 기쁜날…” ­6·29선언이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민주화가 이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되겠습니다.우리가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민주적 정치행태들이 6·29정신의 영향아래 가꾸어진 것들이라는 점을 알아야하겠지요. ­노태우대통령은 6·29선언후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곧 6·29실천에 착수했습니다.「보통사람의 시대」개막을 주창했던 노대통령은 대통령당선자의 신분으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다녔고 와이셔츠차림의 회의주재모습을 언론에 보이는등 그야말로 비특권인임을 과시했습니다. ­노대통령은 또 취임이후에도 「각하」라는 용어를 쓰지 말도록 지시했습니다.청와대를 개방하고 회의용 탁자를 전부 원탁으로 바꾼것도 권위주의시대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지요. ­사전에 짜인 각본에 의해 진행되던 대통령기자회견이 콘티없이 이뤄져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그밖에 대통령 외출시 몇시간씩 교통통제를 실시하던 것도 이제는 보기 어렵게 되는등 대통령의 일반적 움직임과 관련된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6·29선언이 우리정치에 미친 영향은 집권 여당의 민주화로 상징됩니다.도중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당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후를 자유경선을 통해 탄생시켰지요. ­집권당의 대통령후보 자유경선은 정말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을만한 사건이었습니다.중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일단 시도했다는 자체로서도 평가할만 하지요. ­여당내에 점차 비주류가 자리잡아가는 것도 특기할만 합니다.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획일적으로 움직이던 과거 예를 들며 「통치권 누수」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으나 너무 단편적 시각인 것같습니다.민주주의란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가운데 최선의 정책을 찾아내는 것 아니겠습니까.대통령이 힘을 가지고있으면서도 그것을 절제하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 분화 뚜렷 ­노대통령이 야권의 대표적 투사였던 김영삼 민자당대표에게 대권후보자리를 넘겨준 것도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겁니다.노대통령은 우리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여야의 정권교체가 필요하나 그것을 한꺼번에 이루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이룩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때문에 3당통합을 통해 김대표를 받아들여 여당 지도자의 면모를 가꾼뒤 후계를 삼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요. ­여야관계나 국회운영에 있어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가 청산된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과거에는 권위주의정권과 그에 항거하는 재야인사간의 갈등이 그야말로 사생결단 양상이었지요.6·29선언이후에는 이러한 여건이 상당히 달라졌습니다.민주화투쟁보다는 정책이나 이념에 따른 정치권의 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보여집니다. ­일부 야권 인사들이 아직 구태를 떨치지 못하고 간혹 극한 투쟁에 나서보기도 하지만 예전같은 국민호응은 없다는게 일반적관측입니다. ­군장성출신들이 대거 야당에 입당한다든지 극렬 재야 운동권인사들이 제도권 정당에 들어오는 현상이 빈번해진 것도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다는 반증이지요. ­여야총재나 대표사이의 만남이 잦아진 것도 6·29선언이후의 변화입니다.대통령이 정치현안해결에 직접 나서 야당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보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으로 이해됩니다.이같은 타협적 태도가 여야 3당의 합당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사건을 가져오기도 했지요. ­국회 국정감·조사권이 부활되는등 국회의 권능이 대폭 강화된 것도 지적해야겠습니다.「청문회정국」이란 말을 낳으면서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으나 전직 국가원수의 국회증언이 이뤄지는등 국회활동을 통한 과거청산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지요.정부의 추곡가결정에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는등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국회심의권한도 강화됐습니다. ­지방의회 구성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도 6·29선언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요.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어가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군림하는 정치인에서 봉사하는 정치인으로서 빠른 자세변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적 절차도 착실히 마련되어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6공초기 노사분규가 악화되면서 민주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과도기를 거친뒤 점차 노사간에도 화합·타협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대통령 희화화 허용 ­학원자율화·해외여행자유화·문화예술인에 대한 제한없는 창작활동허용등 사회 각 분야에 있어서의 자율화조치도 정착되어가고 있는데 이의 바탕에는 6·29선언에 따른 정치민주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6·29선언으로 신문·방송등 언론매체도 상당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매체의 등록개방으로 다양한 간행물과 방송이 출현,6·29선언이후 53개의 일간지와 5개의 방송,그리고 2천84개의 주간·월간지가 새로이 늘어난 거죠. ­더욱이 이같은 양적 팽창 뿐만아니라 언론의 보도기능에 있어서도 질적인 수준향상이 이뤄졌다는 게 특이할만 합니다. ­각 언론이 제한없는 보도와 비판,풍자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직대통령을 코미디소재로도 활용하는 이른바 「대통령의 희화화」를 꼽을수 있죠.대통령을 마음대로 비판하고 또 대통령의 실수만을 소재로 한 책도 여러권 출판됐습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양태로 국민들은 어느 장소에서든 누구나 자유롭게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할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됐죠.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셈입니다.국회의원들도 이같은 매스컴정치시대를 맞아 자신들의 새 이미지창출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질정입니다. ○언론 보도기능 강화 ­그렇습니다.그 당시에는 중앙일간지의 경우 조·석간 각3사체제로 운영한 데다 지방지도 시·도별 1개씩으로 제한했었습니다.거기에도 정부의 입김이 많이 좌우되었던 형편이었지요.그러나 이제 공영방송도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고 민방도 생겨났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취재와 보도가 금지되었던 「성역」이 사라진 셈이지요.따라서 「유비통신」의 위력이 약화되었고 외신을 절대시하던 풍조도 없어졌습니다. ­6·29이전의 웃지못할 얘기를 소개해보죠.5공시절 한동안 현직대통령을 두고 「땡」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인구에 회자했습니다. ­정각9시 뉴스시작을 알리는 「땡」소리와 함께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동정기사가 10여분 이상 계속됐던 것을 말하는 거죠.당시는 대통령기사에 대한 일정 지면과 방송시간 할애는 무조건적이었습니다. ­또 현직대통령과 외모가 너무 닮았다고 해서 탤런트 모씨의 TV출연이 장기간 금지된 실례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황을 비교해보니 언론계도 6·29이전에 비해 엄청난 지각변동을 경험한 셈이군요.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너무 변화속도가 지나쳐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방종」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대두하는 실정입니다. ­6·29선언 이후 6공정부의 외교스타일도 많이 달라졌죠.6·29선언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전세계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고 노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전방위외교를 펼쳐 회기적인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미수교국은 이제 중국,쿠바정도 뿐입니다. ­이러헌 북방외교의 성과는 그대로 남북관계진전으로 이어져 남북통일의 튼튼한 받침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됩니다. ▷정치부기자 방담◁ 김만호 정치부 차장 구본영 〃 김명서 정치부 기자 최철호 〃 김경홍 〃 유 민 〃 황진선 〃 문호영 〃 이목희 〃 윤승모 〃 양승현 〃 박정현 〃 유상덕 〃 김현철 〃 한종태 〃 이도운 〃
  • 14대국회 오늘 개원/박준규의장·황락주­허경만부의장 선출

    ◎의사일정 못잡아 공전예상/주초 총무회담… 지자제법등 절충/여야 제14대 개원국회가 29일 열린다. 국회는 법정개원시한 마지막날이자 임기시작 한달만인 이날 상오 여야가 참석한 가운데 제1백57회 임시국회 본회의를 개최,국회의장에 박준규의원(민자),부의장에 황락주(민자)·허경만의원(민주)을 뽑아 의장단을 뽑은뒤 하오에 노태우대통령이 참석하는 개원식을 갖는다. 노대통령은 축하연설을 통해 국정운영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자치단체장 선거가 법정선거시한내에 실시되지 못한데 대해 유감을 표시한뒤 95년이전에 단체장선거를 실시토록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조속한 심의와 처리를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의견차로 개원국회는 30일부터 의사일정을 잡아놓지 못해 당분간 난항을 겪을것으로 보인다. 여야총무는 의사일정 절충을 위해 30일과 7월1일 양일간 휴회할 예정이다. 민자당은 개원국회 회기를 3주정도로 잡아 17개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곧바로 대정부질문과 상임위 활동을 한다는 방침이나 민주·국민당이 단체장선거 문제의 우선해결을 요구하고 있어 진통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여야는 주초부터 총무접촉등을 통해 지방자치법및 대통령선거법 개정문제를 집중 절충할 예정이며 총무회담에서 타협점이 모색되지 않을 경우 대표회담 또는 영수회담으로 돌파구를 찾아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민자당은 단체장선거의 95년 실시안은 양보하지 않는 대신 대통령선거법 개정에 야당측 의견을 충분히 수용,공렁한 선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대야협상안으로 제시해 타협한다는 방침이나 당내 일각에서는 기초·광역단체장중 광역단체장선거만 연내 실시하자는 절충방안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민주·국민당은 야권공조체제를 유지하며 단체장선거 연내실시 관철을 위한 대여공세를 강화 해 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부여당측이 광역및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중 하나만이라도 연내에 실시한다는 대안을 여당이 제시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단체장선거 문제와는 별도로 「정치관계법 개정특위」를 공동으로 구성,공무원들의 선거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등도 논의할 방침이다. 한편 민자당의 김용태총무와 국민당의 김정남총무는 이에 앞서 28일 상오 박의장내정자 초청 골프모임에서 회동,의사일정을 논의했으나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민주당의 이철총무는 당내 개원준비를 이유로 불참했다.
  • 「6·29선언」 5돌을 되돌아보며(사설)

    6·29선언 5주년을 맞으며 노태우대통령은 『이 선언은 나의 통치철학이 되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념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87년의 6·29선언은 당시 민주주의 관건이라고 여겨졌던 개헌시비를 일단락시키고 정치의 자유,기본권의 신장을 약속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정치적 파탄에서 구해주고 실질적인 민주화의 길을 터준 중대하고 현명한 결단이었다. 지난 5년간을 되돌아 볼때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자유가 크게 신장되어 정치·사회 분위기가 질적으로 달라진 사실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6·29이후 민주화를 위한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새로운 많은 문제에 당면,「무엇을 할것인가」이상으로 「어떻게 할것인가」의 문제를 심각히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의 당면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정치·사회·경제및 주변상황등 현실적인 특수성을 감안,「개혁」을 부단히 추구하되 「안정」이라는 기틀에 흔들림이 없도록 신축성있는 정책이 그 어느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우리는 현재 사회 제권위의 갑작스런 붕괴등 과도기적이긴 하나 일종의 사회적 혼돈마저 경험하고 있는 속에서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스스로 이에 역행하는 행동을 취하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이 일부 이익집단들의 행위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민주체제의 정착은 민주적인 법과 제도가 국민과 정치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그 가치와 안정성이 현실적으로 드러날때 그 실현을 실감케 된다.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와 반민주라는 구도가 정치권에서 소멸하고 재야 정치세력이 제도권으로 유입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지난 두차례의 선거에서도 탄압과 부정이라는 관권 개입에 따른 불만이 없어진 대신 금품유포나 대중동원등의 타락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그 부정적 결과로 국가경제에 주름살을 주고 정부와 정당의 정책에 불신감을 키워주고 있는것이 오늘의 정치 현실이다.이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민주화 실현이라는 기본정신 보다는 당과 정파들이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현 사회·경제적으로는 많은 「착오」와 문제점을 예견하면서도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어떤 정치행사의 당장 「시행」을 강요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을 우리는 듣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제도상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토착화 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며 국민들이 민주적 관행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우리는 권위주의의 청산과 민주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단계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보고 있으나 정착의 단계에서 적지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일부 야권에서는 지금 6·29선언중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정치공세를 펴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고 정책을 협의하며 현안을 논의,분쟁을 해소해나가야 함에도 본래 기능을 정략적으로 이용,마비시켜 놓고 있는 실정이다. 노대통령은 『작년 지방의회까지 구성 함으로써 6·29선언 8개항의 민주화개혁을 모두 이뤘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6·29정신을 지속적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일은 앞으로도 더욱 폭넓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화의 긴긴 도정에서 민주주의는 실천과 시도 및 시행착오속에서 정착화되고 뿌리를 내려간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그러나 「시행」은 하되 「착오」는 어떻게든 줄여 나가야 할 책무는 1차적으로 정권담당자에 있다는 점을 당부해 두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는 상황에 있다.그러나 「어떻게 할것인가」의 문제에서는 상황과 여건을 면밀히 검토,특정 정당의 당략이나 정략을 떠나 보다 대국적인 입장에서 민생과 국가경영상의 제반문제도 폭넓게 수용하는 지혜와 도량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어떤 의미에서든 6·29선언이 4·19와 더불어 온 국민의 호응을 받은 역사적인 결단이었으며 이 선언이 오늘의 한국 민주화의 기본틀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만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4년간 경제성장의 열매에서 더 많은 몫이 근로자에 돌아간것도 사실이요,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다원화되고 일사불란한 권위주의 체제가 거의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점 또한 누구나 실감해가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정치권의 행동양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국민의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는 점을 정치인들은 깊이 인식해 주기를 바란다. 6·29선언이 87년 당시 국민의 시대적 요구를 수용한 노대통령의 결단이었다면 오늘의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국민이 정치인들을 보는 시각이 어떠하며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세심히 살펴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정치행태를 지양하고 국민경제와 사회현실에 보다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대한다.이것이 바로 6·29선언의 기본정신이며 이나라에 민주화의 초석을 놓는 책임있는 정치인의 임무다.
  • 「6·29선언」 얼마나 이룩됐나

    ◎“민주·화해·자율” 정신혁명이 최대결실/자자제실시로 선언8개항 완결/역대정권의 정통성 시비 일거에 해소/북방외교 대성공… 통일시대 가시화 6·29선언은 민주화와 자율화를 골간으로 한다.권위주의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체제로의 이행을 약속한 것으로 함축할 수 있다. 노태우대통령은 취임이후 임기만료 8개월여를 앞둔 현시점까지 6·29선언에 담긴 약속을 착실히 실천해 왔다고 할 수 있다.노대통령의 표현대로 이는 노대통령의 통치철학이었고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이념이 되어왔다. 6·29선언 5주년을 맞으면서 약속사항들이 어느정도 지켜졌는가를 각론적으로 따지는 것은 자칫 무의미할 수 있다.정치적 시비는 있을 수 있겠지만 지난해 지방의회선거의 실시로 6·29선언 8개항은 사실상 완료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6·29선언속에 담겨있는 민주,화해·화합,자율의 정신을 국가·민족적 과업에 구현시켜 나갈 수있는 태세를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다.이는 번영과 통일이라는 민족적 숙원을 목표로 한다.그러나 이것은노대통령과 정부만의 과제는 아니다.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풀어나가야만 달성할 수 있는 과제이다.6·29선언으로 시작된 우리의 민주화 대장정은 이제 국민 각자의 발상과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할 만큼의 단계로까지 무르익은 것이다. 6·29선언의 8개항은 ①조속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새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권이양 ②대통령선거법개정과 공명정대한 선거관리 ③시국관련사범의 대폭석방및 사면복권 ④인간존엄성의 존중과 기본권의 최대한 신장 ⑤언론기본법폐지등 언론자유의 창달 ⑥지방자치,대학자율화,교육자치등 사회 모든 분야의 자치와 자율보장 ⑦정당활동의 보장과 대화·타협의 정치풍토 마련 ⑧과감한 비리척결과 밝고 맑은 사회건설등이다. 이가운데 정치적 시각에서 굳이 문제를 삼을 수 있다면 단체장선거연기와 연관한 지방자치,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 정도일 것이다. 지방자치 문제는 선언당시 「지방의회」로 명시됐던만큼 사실상 위약의 소지는 없다.그러나 단체장선거의 금년 실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뒷받침되었다.6·29선언을 탄생시킨 「국민의 뜻」이 단체장선거 연기에도 투영됐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은 노대통령 자신만의 의지로 이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그러나 노대통령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노대통령은 6·29선언을 발표한 배경에 대해 『온 나라가 위기와 긴장감에 휩싸여 나라의 운명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속에서 민주화라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수용하지 않고는 정치와 경제의 안정은 물론 나라의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술회했다.당시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은 여권의 패배로 간주되는 상황이었다.따라서 이를 골자로한 6·29선언은 가히 「혁명적 조치」로까지 평가되었고 이를 바탕으로한 정면돌파작전은 노대통령에게 대선에서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렇게 출범한 6공정부는 역대 정권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던 정통성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었고 지속적인 민주화조치를 통해 우리 정치의 민주대 반민주구도를 타파할 수 있었다. 노대통령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화가 더이상 이슈화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해냈구나 하는 한없는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민주화가 더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에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게 된 것이다.대통령이 코미디의 소재로 될 만큼 권위의 색채는 엷어졌다.공직자 모두에게 군림이 아닌 봉사의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민주화의 정착은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가 자유경선에 의해 선출된 것으로도 확인된다.지난 총선을 통해 재야정치권이 해체되어 제도권 정치로 흡수된 것이나 차기대통령선거의 각당 후보가 순수민간인 출신이라는 것은 우리의 민주화가 어느정도 진척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표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에 따른 한국의 대외적 위상제고는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결국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을 성취해 냈다.또 국제적인 화해조류에 맞춰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을 발효시키는등 남북한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6·29선언을 실현하는데 있어 숱한 우여곡절과 함께 부정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이른바 민주화의 대가이다.6·29선언으로 물꼬가 터진 민주화의 물결은 엄청난 욕구의 분출을 몰고왔다.이에따라 한동안 우리사회에는 무질서가 범람하고 탈제도로 치닫기도 했다.노대통령의 이미지도 우유부단으로 희석되기도 했다. 이는 6공정부가 추구했던 경제의 자율화,개방화와 맞물려 급격한 임금상승,근로조건 향상등에 따른 우리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켰다.그리고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우리 경제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고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우리 경제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산업구조조정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우리경제의 기조를 안정적이고 대외경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는 견해다. 총체적으로 6·29선언은 나라의 모습과 국제적 위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음이 틀림없다.외국의 저명학자들도 동의하듯이 노대통령은 역사발전과정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아직도 극복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다.그 주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도 국민 각자가 져야 할 것이다.
  • “6·29선언은 나의 통치철학/민주국가 기반다진 원동력”

    ◎노 대통령,「5주년 평가보고회의」서 강조/미진한부문 남은 임기중 보완/대선후보 경선은 헌정사에 새기원/자율정착위해선 발상·인식의 전환 필요 노태우대통령은 27일 『지난해에 지방의회까지 구성함으로써 6·29선언 8개항의 민주화 개혁은 모두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그러나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당과 정부에서 나의 남은 임기동안 보완,발전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정원식국무총리등 국무위원 전원,민자당의 김영삼대표를 비롯한 당무위원등 관계자 1백6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6·29선언 5주년 평가보고회의」를 주재하면서 이같이 말하고 『6·29선언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대외관계등 모든 부문에서 나라의 모습과 국제적 위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우리 국민중 상당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문제 해결에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을 정부에 요구하는등 민주화에 대한 모순된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진정한 자유와 자율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발상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6·29선언의 내용과 정신이 진정한 우리 국민의 염원이라 믿었기에 대통령 취임 이후 이를 나의 통치철학,국가를 경영하는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6·29민주화를 통해 경제적 기적에 이어 정치적 기적을 이뤄냄으로써 선진국으로 가는 기반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노대통령은 『집권여당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후보를 자유경선으로 뽑아 헌정사에 새 기원을 이룬것이 큰 보람』이라고 술회하고 『그것이 6·29선언을 완결하는 일이라 믿고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는 민자당을 탄생케 해 정치적 안정의 기틀을 다지게 됐으며 민주와 번영 통일을 실현할 주체세력을 형성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날 보고회에서 민자당 황인성 정책위의장은 「민주화선언 계승·발전의 길」이라는 보고를 통해 단체장선거는 95년에 반드시 실시하여 완전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고 현행 대통령선거법도 여야합의로공명정대하게 개정토록하겠다고 밝혔다. 윤성태 총리실행조실장은 「사회 각분야의 자율화조치와 사회질서 확립」보고에서6·29선언 시책의 추진과정에서 지역이기주의로 지방자치활성화가 미흡하고 민생치안의 체감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질적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주환 공보처장관은 「언론자유의 창달과 사회변화」에 관해 보고,언론과 정부간의 새로운 이해·협력관계 정립이 긴요하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자율적 노력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 대선법미비점 개정 용의/노 대통령 표명

    ◎“공정선거 위해 여야합의로”/「단체장」 95년실시 입장 불변/야원하면 언제든 회동 할터/고속전철등 백년대계차원서 추진/「6·25」5돌 기자간담 노태우대통령은 26일 『야당이 단체장선거의 연내실시를 주장하는 이유가 대통령선거를 공정히 실시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통령선거법의 미비점을 고치면 될 것』이라고 말하고 『95년에 단체장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청와대에서 6·29선언 5주년을 앞두고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야당도 단체장선거의 6월30일 이전 실시안을 거둬들이고 연내,또는 대선과의 동시실시안을 제시하고 있는만큼 여야간에 타협이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노대통령은 『정부에서는 단체장선거가 정치·경제·사회에 미칠 영향을 검토한 결과 98년 실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으나 최선을 다하면 95년에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해 실시시기를 95년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야당에서 단체장선거의 연기가 6·29선언의위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6·29선언에는 분명히 지방의회라고 못박고 있다』고 반박했다. 노대통령은 국회의 정상운영을 위해 여야지도자들과 만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야당측이 대통령과 상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생각을 존중하겠으며 그쪽 입장이 정리되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음을 밝힌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민자당총재직 이양등 지도체제개편과 관련,『당에서 대선을 기준으로 어떠한 지도체제가 좋을지를 판단해 건의해오면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해 따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최근의 주가폭락과 관련,『증시침체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회복불가능한 상황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는 검토하고 잊지 않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또 이동통신,고속전철,영종도공항건설등을 문제삼고 있는데 대해 『나라의 백년대계차원에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엄청난 예산이 들겠지만 소비성 경비등 불요불급한 부문의 예산을 과감하게 절약,이 재원을 간접자본확충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 단체장 연기배경 설명

    노태우대통령은 29일 14대 국회의 개원에 맞춰 국회에서 축하연설을 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의 국회연설은 여야가 모두 등원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장선거의 연기배경을 설명하고 정부가 제출한 지방자치법개정안을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심의·처리해 줄 것을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 남북 상호사찰 한·미 긴밀협조/노 대통령 강조

    노태우대통령은 26일상오 청와대에서 폴 월포위츠 미국방차관을 접견,『북한의 핵무기개발의혹은 전세계 관심의 대상이며 한반도는 물론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남북상호사찰을 통한 북한 핵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 한미두나라는 계속 긴밀하게 협의하고 노력해 나가야한다』며 『한미사이의 긴밀한 안보협력은 한반도및 동북아 지역평화와 안전에 긴요하므로 앞으로도 계속 확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노 대통령 「6·25」 5돌 기자간담 내용

    ◎“「6·29」는 통치철학이자 우리의 민주장전”/남은 임기 민주화완성에 주력/「안정속 성장」기조로 예산 편성/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의혹 있을수 없어/“증시 임시처방으론 치유 어려워… 세계경제 나아지면 회복될것” 노태우대통령은 26일 낮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6·29선언 5주년을 맞는 소회와 더불어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연기문제등 국정현안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노대통령의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6·29선언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역사적인 대사건에 있어 숨은 에피소드라든지 야사라든지 흥미를 자아내는 얘기들이 말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실제 당사자나 책임자에게는 궁금증을 풀만한 자료가 역사를 거슬러 보더라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나로서도 크게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맞게되는 6·29에 대한 소감은 어떠신지요. ○“40년만의 성위” 보람 ▲매번 감회가 깊지만 5년째가 되는 올해도 새로운감회를 느낍니다.특히 지난번 총선에서 민주주의가 안됐으니 민주주의를 해야한다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해냈구나하는 한없는 보람을 느꼈습니다.40여년만에 민주주의를 성취했다는 보람 말입니다. 6·29선언의 주체가 누구냐는 시비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는 국민이라고 정리합니다.국민이 한결같이 바랐기에 나는 하겠다고 받아들인 것입니다.그리고 실천은 나와 국민이 함께 했습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리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그러나 이 몸을 던져 희생하더라도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6·29선언은 나의 통치철학이 되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념이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마그나카르타를 민주주의의 황금문서라고 칭합니다.다소 과장된 얘기인지 모르지만 6·29선언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황금문서라고 감히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단체장선거의 실시를 6·29선언의 완결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내가 6·29선언을 실천해 나가면서 얻은 교훈은 최선을 추구하되 차선으로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이를 터득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6·29선언 8개항에는 지방의회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습니다.그렇다고 단체장선거를 안한다는 것은 아닙니다.넓은 의미로는 다 포함될 수 있겠지요. 나는 금년도에 총선,대선,단체장선거 2번등 4차례의 선거를 치를 경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잦은선거 경제압박 야당에서는 단체장선거가 실시되지 않으면 대선을 공정하게 치를 수 없다고 합니다만 시장·군수등이 정당인으로 이루어졌을 때 공영·공명선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나로서는 오히려 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6·29선언을 완결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테니까요.그러나 나라를 책임진 입장에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같은 뜻을 국민들에게 알릴 생각은 없습니까. ▲연구를 해 보겠습니다.국민이 잘 모르는 사항이 있다면 알릴 필요가 있겠지요. ­25일 김영삼대표와의 주례회동에서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는데 단체장선거실시 시기도 신축성이 있습니까. ▲95년 실시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95년은 좀 빠르고 98년이 제일 좋다는 판단이었으나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는 생각으로 95년안을 선택,국회에 제출한 것입니다.야당도 6월30일이전 실시안을 거둬들이고 연말 대선과의 동시실시 안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설득하면 되리라고 봅니다.야당이 대선의 공정성보장을 이슈화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통령선거법의 불비한 점을 고치면 될 것입니다.그런 차원에서 협상과 타협을 촉구한 것입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여러 경제정책을 제시,경제부처에서 안정기조가 흔들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예산편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또 야당이 경부고속전철 서해안고속도로 영종도신공항건설 이동통신사업 등을 4대 의혹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내년 예산편성에 국민및 정치권의 욕구가 증대,경제적 원칙을 지켜야 하는 점에서 어려움이 많습니다.그러나 안정과 성장을 조화시키는 것이 예산편성의 기본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긴축을하자니 기업이 아우성이고 특히 대기업은 나으나 중소기업은 자제시킬 도리가 없어요.유망한 중소기업은 도산시킬 수 없으니 지원해야 하고 그러려니 재정이 소요됩니다.또 백년대계차원에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간접자본 투자를 안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영종도공항 고속전철 이동통신 다 마찬가지입니다.종전 안보문제로 유보해온 이동통신은 공청회 등을 통해 법까지 제정된 마당에 의혹이 있을 수 없습니다.야당 등에서 떠든다고 간접자본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예산이 엄청나게 들겠지만 에너지·소비성경비등 불요불급한 부문의 예산을 과감하게 절약,이 재원을 간접자본 확충에 투자하겠습니다. ­심각한 상태에 있는 증시의 회복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며 부양책이 있으신지요. ▲경제규모가 커진만큼 정부의 임시조치로 치유하기는 어렵습니다.그렇다고 우리 증시가 회복불능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증시 침체는 일본 대만 등에서 우리보다 더 심각할 정도로 세계적인 현상입니다.세계경제가 나아진다면 우리도 회복될수 있을 것 입니다. ○대중수교 차정부서 ­임기중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남북관계와 마찬가지로 대중국문제는 서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정식수교는 다음 정부에 물려주어도 좋은 일입니다.중국과는 공식수교만 안했을 뿐이지 교류협력 등에 있어 수교국과 별차이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북방정책의 보람과 함께 현재의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적절한 시기에 여야 대통령후보들과 함께 만날 용의를 밝혔는데 국회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여야대표를 직접 만날 계획은 없습니까. ▲지난 연초에 내가 정치보다는 경제회복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한 것을 기억하지요.야권정치지도자를 청와대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것 아니더라도 여러 경로로 뜻이 오갈수 있고 여야간의 대화도 촉구하고 있습니다.여당대표도 이뜻을 충분히 인식해 대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야당이 전략상 시기가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야당측이 국정의 총책임을 지닌 대통령과도 상의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도 존중합니다.그쪽 입장이 정리되면 언제든지 회담을 받아들일 용의를 갖추고 있음을 밝힙니다. ○총재이양 당결정에 ­8월쯤 민자당의 총재직을 이양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지도체제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복안을 밝혀주십시오. ▲나의 후보시절을 돌이켜볼때 이 문제는 대권출마자 입장에서 무엇이 좋으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대선을 놓고 볼때 당의 지도체제가 어떤것이 좋을지를 당이 판단해 건의하면 그것에 따르는 것이 내가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도와주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민자당대표와 주례회동에서 언론에 공개된 것이외에 어떤 대화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대표는 야당의 경험은 누구보다도 많지만 여당책임자로서의 경험이 짧은 것은 사실입니다.그분이 여당지도자로서 알고 챙기고 갖추어야할 일,국가경영자로서 준비해야할 일을 내가 얘기해주고 김대표는 야당을 안해본 나에게 야당의 생리와 야당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가지 조언을 해 줍니다.피차에 공부도 되고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위벗고 함께 책임 ­6·29선언의 실천과 관련,일부에서는 아직도 미흡하다는 의권도 있습니다.남은 과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민주화가 되긴 됐지만 제대로 안된 것 같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민주화를 이룩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으면서도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겁니다. 우선 식자들간에 의식개혁이 필요합니다.말로는 「민주화」를 얘기하면서 해결은 권위주의방식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이제 대통령의 권력도 많이 이양,분산된 만큼 궐력을 나누어 행사하는 사람들이 책임도 함께 지는 자세를 갖추기를 바랍니다.나자신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완전히 노출돼 있고 많은 비판도 듣지만 이것이 민주화의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국회,국민이 지켜보고 있다(사설)

    14대 국회 개원을 위한 제1백57회 임시국회가 29일 열린다.민자당 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26일 소집공고가 됐고 민주·국민 등 야당도 이날 개별등원키로 함에 따라 14대 국회는 법정시한을 꽉 채운 마지막날에 간신히 열리게 된 것이다.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개원 첫날 이후의 국회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지방자치단체장 선거문제의 선결을 내세우는 야당의 강공으로 개원 국회가 원구성조차 마치지 못한채 공전 또는 파행운영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야당측은 국회의장단만 선출하고 선결조건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상임위 구성에 필요한 명단제출을 거부하는 등 투쟁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상태이다. 만약 일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국회의 역할과 권위를 높여나가야 할 정치권이 스스로의 의무를 망각한채 정략에만 급급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단체장선거 시기문제와 연계시켜 끌대로 끌어오다 회기 한달만에,그것도 법정시일에 쫓겨 열리게 된 개원국회를 원구성조차 하지 않은채 또 다시 공전시킨다면 이는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 할 수밖에 없다. 여야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정치적 이해를 국민 다수의 이해보다 우선시키는 일은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다.대통령선거를 앞둔 소모적 정쟁으로 국민이 멍들어서는 안된다.오히려 국회가 제기능을 다하도록 체제를 갖추고 그곳에서 국민의 바라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고 채워주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적 대선전략이 아닌가 한다. 국회는 정상운항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우선 그 토대부터 갖추어야 한다.의장단의 구성은 물론 17개 상임위의 체제도 국회법 절차에 따라 하루속히 갖춰져야 할 것이다.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에서 국회는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려면 당연히 일할 수 있는 체제부터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국회운영은 원구성을 마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국정 현안을 밀도있게 다루는 것이다.현재 증시·유가인상 등 경제현안에서부터 북한 핵문제 등 남북관계·민생치안 등 국민들이 가려움을 느끼는 문제들이많다.국회도 이런 문제들의 개선과 해결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마땅하다.또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와 환경에 따라 꼭 필요하거나 고쳐야 할 법률이 적지않다.이미 6개월이상 국회가 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제 정치권은 다시 한번 국민을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정국을 주도할 1차적 책임이 여당에 있는 만큼 민자당은 보다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고 성공시켜야 할 것이다.노태우대통령이 이미 김영삼대표에게 『인내심을 갖고 야당과의 타협안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해본다. 야당은 단체장 선거문제를 국회운영과 연계시키는 구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국회운영과 병행하여 원내외에서 정치력을 발휘하는 방법이 보다 합리적이 아닌가.더 이상 국회를 마비시켜서는 안된다.
  • 29일 보통사람과 대화/민자,1천여명 초청

    민자당은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의 「6·29선언」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9일 하오 가락동 중앙정치교육원에서 「보통사람과의 대화」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는 근로자,주부,교사,농·수·축산 종사자,종교,문화,예술계 인사,장애인,직능,사회단체 회원등 1천여명이 초청됐으며 민자당소속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사무처요원,중앙위분과 위원장및 간사등 당인사 5백명도 참석한다.
  • 5부 장관·서울시장 경질

    ◎통일원 최영철/노동부 이연택/총무처 이문석/환경처 이재창/법제처 한영석/서울시장 이상배/정치특보 서동권/김영준 감사원장 연임 노태우대통령은 25일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에 최영철 청와대정치특보,노동부장관에 이연택 전총무처장관,총무처장관에 이문석 전1군사령관,환경처장관에 이재창 전경기지사,법제처장에 한영석 형사정책연구원장을 임명하는등 5개부처장관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노대통령은 또 서울시장에 이상배 총무처장관,청와대정치특보에 서동권 전안기부장을 임명했다. 노대통령은 오는 7월4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김영순감사원장은 연임시키기로 내정하고 14대개원국회에 임명 동의안을 제출키로 했다. 김학준 청와대대변인은 『14대 민자당의원으로 활동하는 최병렬노동부장관의 경질을 계기로 내각의 분위기를 쇄신한다는 차원에서 부분적인 개각이 단행됐다』고 개각배경을 설명했다. 김대변인은 『행정경험이 없는 생소한 사람보다 계속 행정부에서 일해 온 사람이 바람직하다는 점이 이번 개각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됐다』고 말했다.노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신임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다. ◇이상배서울시장▲경북 상주·53세▲서울대 법대졸▲고시행정과 13회▲경북지사▲환경처장관▲총무처장관 ◇서동권대통령정치특보▲경북 영천·60세▲고려대 법대졸▲고시사법과 8회▲서울고검 검사장▲검창총장▲안기부장
  • 백범유족 초청 격려

    노태우대통령은 25일 낮 백범 김구선생 서거 43주년을 맞아 아들인 김신 전 교통부장관,장손자 김진씨,장손녀 김미씨등 유족들과 백범기념사업회 장충식회장(단국대 총장)등 간부들을 청와대로 초청,격려했다.
  • 이문석 총무처(6·25입각 5부장관등 프로필)

    ◎육사 17기 선두주자… 9일 전역 육사17기 동기생중 제일 먼저 대장에 진급,1군사령관에 취임했다 지난 9일 임기만료로 전역했다. 노태우대통령이 9사단장으로 있을 때 참모장과 연대장을 역임,신임이 두터웠다. 일선지휘관과 육본 작전참모부장, 참모차장을 역임하면서 특수전분야발전에 기여했다. 부인 원유경씨(48)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 여·야 대표회담의 필요성(대선정국:20)

    ◎경색구도 풀게 후보대좌가 바람직/여 선제의 야 비협조로 담보상태/국회공전등 막게 정치적 타협 모색할때 현 시점에서 여야대표회담이 성사된다면 그것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표회담이 정국의 매듭을 푸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이제 각 정당의 대표는 14대 대통령선거의 공식후보이며 대표회담은 실질적으로 「후보회담」이 된다.회담을 통해 각 후보가 어떤 면모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대표회담의 중요성을 먼저 인지한 쪽은 김영삼 민자당 대표이다.김대표는 5·19 전당대회에서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직후 여야대표 혹은 후보회담을 제의했다. 12월 대선까지는 각 당 후보들이 정국을 리드해야 되며 집권당 후보인 자신이 이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김대표는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여야대표회담이 쉽사리 성사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야당측의 비타협적 태도가 주된 이유이다. 야당측은 대표회담의 형식이나 실질면에서 모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형식면에 있어서는 노태우대통령의 간여여부가 논쟁거리이다.야당 특히 민주당측은 노대통령과 김대중 민주당대표간의 직접 담판을 선호하고 있다.그것이 안되면 노대통령과 김영삼대표,정주영 국민당대표등이 모두 포함되는 4자회담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자당은 양금대표와 정대표등 3자회담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민주당이 노대통령을 포함시키려 하는 것은 김영삼대표의 「격」을 떨어뜨려 흠집을 내보자는 전술이라는 민자당측 지적은 일리가 있다. 3당의 공식대통령후보가 만나서 합의한 사항이라면 정치적으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그럼에도 노대통령의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을 일개 정파의 수장으로 대접하고 김영삼대표의 위상을 낮추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연석이냐 개별이냐도 문제가 되고 있다. 당초 민자당의 제안은 연속회담이었다.자치단체장선거및 개원문제를 신속히 타결짓기 위해서는 연석회담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국민당의 정주영대표는 개별회담을 제안했다.정대표로서는 양금대표와 따로 만나 자신의 조정자역할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같다. 정대표와 김대중대표간의 회담은 25일 이루어졌다.김영삼대표도 개별회담에 긍정적 입장이어서 정대표와 따로 만날 가능성이 높다. 여야대표회담,특히 양금대표회담 성사가 불투명한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합의가 도출되기 힘든 상황때문이다. 지금 대표회담이 열린다면 주된 이유는 역시 단체장선거문제이다. 그런데 민주당측이 연내 단체장선거실시라는 여당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전제를 철회하지 않고서는 대표회담이 성사되기 어렵다. 국민당처럼 대선에서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특별법제정이나 대통령선거법개정등을 하자는 유연한 자세를 보일때 여야대표간 회동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민주당도 대표간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 것은 아니다.여당이 보다 타협적 자세로 나온다면 언제든지 대표회담에 응할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국회 개원이후의 행보에 있어서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도 민주당이 대표회담개최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김덕용의원등 김영삼대표 핵심 측근들은 민주당의 이부영·한광옥·권로갑의원들과 대표회담성사를 위한 물밑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이런 사전정지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때 양금대표의 공식회동이 이뤄질 것이다. 양금대표회담이 성사되는 시기는 7월 중순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오는 29일 국회가 개원된뒤 상임위구성도 못하고 공전되면 여론의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이런 분위기는 양금대표 모두에게 부담이 될 것이므로 서로 한발짝씩 양보,정치적 타협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후보회담의 성격을 띤 여야대표회담이 이번 개원국회에 국한해서만 열리게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부터는 정국이 꼬일때마다 그것을 해결해야되는 1차적 책임은 각 후보들에게 있다.따라서 여야 후보회담 개최요구는 12월 대선이 실시되기 이전까지 여러 차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금대표회담을 대선을 향한 양금구도정립움직임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양금대표는 상호 경쟁관계속에서도 다른 후보가 자신들을 추월하는 것을 용인치 않겠다는데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국민들에게 정국을 주도하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인사는 양금대표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성이 있고 그것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대표회담이다.
  • 이연택 노동부(6·25입각 5부장관 등 프로필)

    ◎추진력 뛰어난 실무행정통 차돌같은 용모에 불도저같은 추진력을 가진 정통직업관료 출신의 실무행정통. 61년 7월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후 국무총리실에서만 23년간을 근무한 총리실의 산증인.올림픽조직위 제2사무차장을 역임하면서 노태우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올림픽준비에 솜씨를 발휘했다. 전주시장과 전북부지사를 지낸 큰형 길연씨(67)의 영향을 받아 올바른 관리의 길을 걷기위해 노력해왔다.부인 박길순씨(50)와의 사이에 3남을 두고 있으며 취미는 새벽등산.
  • “인내갖고 야와 타협시도”/노 대통령 강조

    ◎국회 본연임무 훼손땐 명분살려 대응 노태우대통령은 25일 『14대 개원국회에서 민자당은 인내를 갖고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되 국회 본연의 임무가 훼손되거나 야당이 당리당략적 처사로 일관할 때는 원칙과 명분을 확실히하여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민자당의 김영삼대표로부터 주례 당무보고를 받고 『야당이 등원하더라도 계류된 법안이나 민생처리 보다는 단체장선거 연내실시,경제적 특혜시비등 정치공세를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이같이 말했다. 노대통령은 『개원을 계기로 민자당의 새로운 모습과 각오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민자당 의원총회에서 의원윤리강령 준수등 새로운 정치풍토 조성을 다짐하는 결의문 채택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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