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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당정의 관계(김영삼총재 시대:3)

    ◎「무게중심」 당으로… 개혁정책 주도/JP경륜 활용… 당정협조 긴밀히/예산편성·공약 등에 「변화」 담을듯 김영삼총재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민자당과 정부와의 관계도 종전과는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 틀림없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의 입장에 보다 더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대표라는 양축 사이에서 당정이 사안에 따라 갈등을 겪거나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김총재가 하나의 중심축이 됨으로써 당에 무게의 중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당과 정부간에 서로 다른 의견개진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외부로 표출돼 마찰이나 갈등으로 인식될 여지는 적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정간의 관계가 보다 긴밀해지고 결속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예전부터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당정이 더욱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이번에는 그강도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종필최고위원이 당대표가 되었다는 점도 당정간의 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변수의 하나이다. 김최고위원은 당대표가 된뒤 일부 중요한 당무와 국정을 제외하고는 당무는 물론 당정관계도 자신의 실질적인 책임아래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총재측근들은 국무총리직을 비롯해 30여년에 걸쳐 당정의 고위직을 두루 맡아온 김대표가 풍부한 경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당정간에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관계의 설정에도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측근은 이와관련,앞으로 당정회의는 김대표가 주재하고,김총재는 그가운데 중요한 사항만을 사후 또는 사전에 보고받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와함께 당정간의 협의를 거치고 여론으로부터 검증을 받은 국정사항들은 박태준최고위원이 위원장으로 내정된 선거대책위원회라는 창구를 통해 김총재의 비전등으로 제시될 전망이다. 그러나 김총재는 대선공약등을 남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총재는 취임사에서도 영국의 대처수상이 거창한 공약을 내세우기보다는 「영국병」을 치료하겠다고 선언한뒤 오늘의 영국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자신도 우리사회의 각종 병리를 진단하고 「한국병」을 치유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임을 천명했었다. 따라서 당정은 김총재가 제시한 국정운영의 기본방침을 중심으로 실현가능한 공약만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측과는 어느정도 이견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측으로서는 노태우대통령이 87년 대선당시 내건 공약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김총재측은 우리나라의 경제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공약이행은 재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오는 9월 정기국회의 예산편성과 관련해서도 김총재측은 이번 정부의 입장이 반영되기보다는 다음 정부가 책임을 지고 집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어차피 내년 2월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만큼 내년 예산도 차기 대통령후보의 요구가 더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일부에서는 노대통령과의 「차별화」정책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핵심인사들은 김총재가 취임소감등에서 밝혔듯이 「차별화」라기 보다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당정간의 관계에 있어서 또하나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은 야당생활을 30년 넘게 해온 김총재의 개인적인 퍼스낼리티가 반영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김총재는 총재취임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과거 야당시절에는 무책임한 주장을 폈던 적도 있었다』고 회고하고 『그러나 이제 집권여당의 총재가 된만큼 모든일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민자당관계자들은 김총재가 과거 여권인사들의 사고의 폭과 한계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있다. 집권여당의 대표인데다 대통령후보라는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총재나 대통령후보와는 다른 현실인식과 그에 따른 처방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김총재의 측근들은 그같은 변화를 「발상의 대전환」 또는 「권위주의의 탈피에 따른 민주주의적인 의식과 행동의 일치,민주주의의 생활화」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같은 맥락에서 이른바 시국 또는 공안관련문제등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시국관련 구속자들을 대폭 석방·사면·복권시킨다든가 국가보안법 안기부법등의 개정문제에 대해서도 야당과 재야측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정간의 관계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면 결국 「개혁과 변화」의 의지를 어떻게 원만히 이룩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 개혁정책 구체화 착수/민자 김 총재/각분야별 문제점 검토 지시

    ◎「선대기구」 10월초 발족 민자당은 김영삼신임총재가 「개혁과 변화」를 천명함에 따라 29일부터 당분위기를 일신,이를 가시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김총재는 이날 당정책위와 비서실에 정치 경제 사회등 각분야의 현안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으며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의견을 수렴,노태우대통령과의 협의를 통해 순차적으로 처리해 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측근은 이날 『김총재는 앞으로 노대통령과의 청와대회동을 지금까지의 현안을 논의하는 수준에서,현안을 해결짓는 「당정최고협의」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생각』이라면서 『내주부터 제반 문제점들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들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김총재는 총재취임사에서 밝힌대로 대통령선거에 앞서 국정의 문제점들에 대한 개혁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이때문에 당초 9월초 발족시키려던 선거대책기구도 상당기간 늦추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당의 정책관계자도 『김총재가 시국관련 구속자와 전교조문제,국가보안법 안기부법등에 대한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안다』면서 『정부측과 이같은 문제들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중 우호시대에 부쳐/토머스 로빈슨(해외특별기고)

    ◎평양의 변화는 「역사의 필연」 한중수교는 가장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아야 할것이다.한중수교는 한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 가능성을 증진시켰으며 한중 양국의 경제에 보탬이 되고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을 강화하며 대만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 한반도교차승인을 향해 한걸음 더 다가갔다는 점에서도 한중수교의 외교·안보적 의미는 깊은 관심을 끌만하다.중국은 이번 수교를 통해 한반도에 새로운 분쟁이 일 경우 북한이 중국에 의존할수 없으며 중국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북한도 개혁과 대외개방정책을 뒤따라야 함을 북한측에 알렸다.북한은 고립이 더욱 심화됐으며 최후의 우방을 잃게 됐다.게다가 김일성은 북한의 핵무기개발과 관련된 의혹을 깨끗이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 문제로 국제사회(특히 미국)와 분쟁이 빚어질 경우 중국에 의존할수 없음을 알게 됐다.이 모든 것은 한반도의 평화전망이 한층 강화됐음을 의미한다. 한·중국의 움직임은 또 미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북한과 어떤 형태로든 외교관계 내지 최소한의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미·일과 북한간의 관계개선은 북한의 핵무기개발 의혹으로 인해 정체상태에 빠졌다.북한은 사실상 그들의 오래된 지연전술을 다시한번 구사하고 있을 뿐이다.즉 핵무기에 대한 복잡한 협상과 접촉을 통해 한국과 미국을 묶어놓음으로써 핵무기개발의 기초기술 획득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벌려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불행하게도 미·북한간의 관계개선 전망은 오는 11월의 미대통령선거 이후로 지연될 것으로 보이며 만일 클린턴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더욱 늦어질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다.그러나 이제 러시아와 중국이 모두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의 대북한 자세가 바뀔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됐다.즉 미·일은 「선핵문제해결,후관계개선」이라는 종래의 대북입장에서 다소 후퇴하는 경우가 되더라도 북한과 관계를 진전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북한은 미·일의 외교적 승인과 그에 따른 경제적 지원,투자와 교역확대등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계개선의 지연은 북한으로선 매우 불행한 일일 것이다. 북한에의 압력을 유지하는 한(좀더 강화해야 할는지도 모르지만) 국제사회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김일성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강요할수 있다.중국이 한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이같은 압력은 더욱 증가됐다.그러나 미·일은 북한승인이라는 유화책을 쓰려면 러시아 및 중국과의 연대속에 미국의 대북군사적 위협을 포함한 강경책을 함께 추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한국을 승인함으로써 중국은 북한에 대해 시장경제개혁과 외부세계에의 전면개방을 통한 경제자유화외엔 달리 선택의 방안이 없음을 통고한 것이다.중국에 있어 경제자유화는 동구와 구소련을 휩쓴 공산주의의 몰락으로부터 공산지도부를 구하고 천안문사태의 재발을 방지할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다.중국은 이제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자신들을 구하고 싶으면 그같은 길을 뒤따르도록 말하고 있는 것이다.북한의 체제가 유지될수 있을지의 여부는 사실상 명확치 않다.경제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고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의 세습이이뤄지면 무질서와 혼란이 확산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김부자 공산왕조의 전도는 매우 어두운게 사실이다.한중수교는 국제사회가 이제 북한이 중국식 모델에 따라 현대화하는 것을 지원할 것이냐 아니면 북한을 계속 고립된 상태로 방치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북한의 개방노력을 외부세계가 적극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북한의 고립이 계속된다면 후계세습에 따른 혼란은 극대화할 것이며 심지어는 북한내에서의 내전발발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그럴 경우 이는 남북한간의 분쟁으로까지 이어질수도 있다.어떻든 북한의 체제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내부적으로 개혁이 이뤄지든 외부세계에 대한 개방이 이뤄지든 어느 경우에나 시장경제의 건설을 가져올 것이며 필연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이념을 낳을 것이다.북한의 다음 세대들은 시장경제와 표현의 자유,민주주의 등의 매력을 느끼게 될것이며 결국 김일성체제에 반발,이를 전복시키게 될것이다.따라서 그것이 단지 북한사람들에게 좋다는 이유에서 뿐만아니라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할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란 이유에서도 이같은 과정은 한시라도 빨리 시작돼야 한다.한중수교는 이같은 선상에서 북한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남은 문제는 대만이다.다행히도 양국간의 문제를 해결할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 존재하고 있다.한국과 대만은 매우 성공적인 미국·대만간의 모델에 따라 서로 연락사무소를 설치할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외교적 접촉은 모든 분야에서 거의 공식적인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며 상황은 조만간 그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끝으로 한중수교가 한국의 국내정치 문제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노태우정부가 한중수교를 오는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에 이용해서도 안될 것이며 야당의 김대중후보가 이를 공격대상으로 삼을 문제도 아닌 것이다.한중수교는 단지 국가이익의 차원에서 한국민 모두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이뤄진 일로 국내정치와는 무관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것이다. ◇미 조지타운대 교수 미 엔터프라이즈연 중국연구실장,「중국과 국제관계」등 저서 다수
  • 주태국대사 등 6명에 노대통령 신임장 수여

    노태우대통령은 29일 상오 청와대에서 한탁채 주태국·이정수 주코스타리카·최남준 주카타르·임인조 주네덜란드·이종무 주쿠웨이트·김용규 주자메이카대사등 신임대사 6명에게 신임장을 수여했다(사진). 노대통령은 또 이병대 주호놀룰루·박종기 주오사카 총영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 추석 대책 만전을/노 대통령 지시

    노태우대통령은 28일 『올 추석을 어느해보다도 검소하고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교통소통,체불임금해소,물가안정,방범,사고예방등에 대한 종합대책을 세워 기동성있게 대처해 나가도록 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또 『연휴기간중의 교통소통과 교통사고 예방에 철저를 기하되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수단 이용을 장려토록 하라』고 당부했다.
  • 역경 딛고 민주화·개혁기수 40년

    ◎「거산」의 정치역정… 집권당총재가 되기까지/25세에 국회입문… 9선에 야총재 4번 역임/한때 연금 등 핍박… “구국일념” 3당통합 결행/대학땐 학생운동 몰두… 「6·25」 나자 의용대 지원도 「정치 거산」김영삼총재는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당의 제1인자이다.신장 1백68㎝,체중 66㎏,아담한 체구,미소띤 동안의 그는 어떤 역정을 거쳐 이 자리에 섰는가.65년동안 살아오면서 40년간을 민주화투쟁과 정치개혁의 일선에서 기수역할을 해온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9선의원에 야당총재를 4차례나 역임하고 다시 집권당총재로 선출된 그의 진기한 기록은 앞으로 찾기어려울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로 꼽힌다.그의 연륜과 불굴의 정치역정을 조감해보면 그가 왜 오늘 이자리에 섰으며 또한 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유복한 어린시절 ▷출생◁ 김총재는 1927년12월20일(음력)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씨(82·마산거주)는 당시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씨(60년작고)는 대가집며느리답게 손도 컸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령김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총재는 여동생만 다섯을 둔 외아들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김총재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정치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된것으로 보인다.어머니 박씨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김총재식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수영·축구에 소질 ▷성장◁ 아호가 거산인 김총재는 거제 장목소학교를 거쳐 통영중학교에 진학하고 45년해방과 함께 부산에 있던 경남중학교(6년제)3학년에 편입했다.43년4월에 입학한 통영중학시절 김총재는 민족의식이 강하고 수영과 씨름을 잘하는 학생으로 동창생들에게 기억되고있다.김총재가 당시 한국인학생들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처분을 받은 일은 아직도 주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44년 전근하는 교장의 이삿짐을 나르면서 곡물자루에 구멍을 내고 잡동사니를 채워넣은 사건으로 영삼학생은 통영경찰서 고등계에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이다.해방이 되던해 11월 영삼군은 경남중으로 전학했다.학업성적은 중상정도였으며 문학과 역사과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정치학수업 열심 ▷대학시절◁ 김총재는 47년9월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김총재가 철학과를 지망하게 된것은 당시 모교인 경남중 안용백교장의 영향이 컸던것으로 알려져있다.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인 안교장이 학생들에게 윤리교육을 통해 많은 교훈을 주었으며 김총재의 학과선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했다.철학과 동기생은 김총재와 이한조씨(서강대 명예교수)등 모두 7명.그들은 김총재가 대학시절 철학과수업보다는 웅변부에 가입하는등 학생활동에 열성적이었다고 기억한다.당시 정치학과에 다녔던 이규원씨(현대문예사대표)는 영삼학생이 정치학과 수업에 열심히 나왔고 웅변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치학과에 다니던 손도심씨(작고·전서울신문사장)와 「순학회」라는 우익단체를 만들어 낭산 김준연,창랑 장택상씨등을 초빙해 강연회도 갖는 등 학생운동에도 열심이었다.김총재는 51년5월 서울대를 졸업했는데 졸업논문제목은 「칸트에 관한 소고」였다. ▷군대시절◁ 김총재는 전쟁이 한창이던 50년10월 「대한학도의용대」에 들어감으로써 군생활을 시작했다.「군번은 E135」.그러나 전투병으로 전쟁에 참가한것이 아니라 후방 정훈교육요원으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대북방송담당으로 일했다.김총재는 이시절을 매일 1시간동안 직접 원고를 써서 군가를 섞어가며 대북방송을 했는데 날마다 다른말을 하려니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대북방송을 맡은지 8개월쯤 지난후 김총재는 당시 장택상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에 발탁되면서 군생활도 마감했다.김총재는 80년봄과 87년 대선에서 군복무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김총재의 복무사실에 대해서는 당시 김상구씨(유도회총본부회장)등 학도의용대관계자들이 확인해주고 있다. ○거제서 최연소 당선 ▷정치입문◁ 창랑 장택상과의 만남은 일찌감치 정치에의 꿈을 키워오던 김총재에게 현실정치입문의 계기가 됐다.서울대2학년때 정부수립기념 웅변대회에서창랑과 인연을 맺은 김총재는 50년 5월 경북 칠곡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창랑의 지원유세를 하면서 현실정치를 몸에 익혔다.이후 51년 학도의용대 복무중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수업을 받았다.장택상씨가 총리가 되면서 인사담당비서관도 지냈다.53년 창랑이 총리직을 사임하자 김총재는 다음해 5월 실시될 3대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거제로 돌아왔다.무소속출마를 준비중이던 김영삼은 선거 열흘전 유력한 무소속후보를 찾던 자유당의 눈에 띄어 정당공천을 받게 됐다. 첫 선거결과 김영삼후보는 총2만7백70표를 얻어 차점자인 1만4천1백10표의 서순영씨(작고)를 누르고 만25년6개월의 나이로 금배지를 달았다. ○사사오입에 반대 ▷야당시절◁ 사사오입개헌에 반대해 자유당을 탈당한 김영삼청년의원은 당시 야당인 민국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가입함으로써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30여년 야당인이 된다.55년9월 민주당이 창당되자 김영삼은 중앙당청년부장겸 경남도당부위원장을 맡았다.당내에서는 선이 굵은 조병옥박사의 계보인 구파로 분류됐다.김총재는 이때 56년·60년 2차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조박사를 쫓아 다니며 승부사의 정치감각을 익혔다고 한다.3대의원시절 김영삼의원은 대구매일피습사건·김창용특무대장암살사건 등의 진상규명에 뛰어난 활약을 했다.58년 4대총선에서 민주당후보였던 김영삼은 부산서갑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당시 선거는 자유당말기로 선거부정의 공방이 치열했으며 김영삼후보는 선거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진행도중 4·19를 맞게된다. 4·19이후 5대 7·29총선에서 부산서갑에 다시 출마해 차점자를 무려 3배이상 표차로 제치고 원내에 복귀했다. 이후 김총재는 정치규제에 묶였던 11,12대를 제외하고 내리 9선에 달하는 헌정사상 최고다선을 기록했다. 김영삼의원의 활약은 5·16이후 구성된 6대국회부터 두드러졌다.김영삼의원은 제1야당의 대변인으로서 한일협정서명,공화당창당과 관련한 4대의혹사건,월남파병문제등 굵직굵직한 정치쟁점에 능숙히 대처함으로써 위상이 높아졌다. ○대선 낙선,좌절도 74년과 79년 신민당총재에 두차례 선출됐고 87년 통일민주당 총재와 13대 대통령후보에 이르기까지 줄곧 야당의 정상을 지켜온 그였지만 이기간중 두차례 2년간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총재직정지가처분및 의원직제명,정치활동규제등 핍박은 그를 불굴의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 야권대통령후보 단일화 실패로 대통령선거에 낙선하고 이후 88년 4월총선에서는 제2야당으로 전락하는 좌절의 시기도 겪었다. ▷3당통합◁ 김총재는 90년 1월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으로 당시 노태우민정당총재·김종필공화당총재와 3당통합을 결행,오늘날에 이르렀다. 89년 당시 민주당총재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해 미수교국과의 초당외교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90년 3당합당후 민자당대표로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하는등 정당외교사의 새지평을 열었다. 민자당출범후 2년반여동안 계파간 갈등속에서도 꾸준히 여권2인자의 자리를 지켜 드디어 대통령후보경선을 치렀고 총재에 선출됐다. ▷가족관계·사생활◁ 김총재는 51년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혜영(39·연대 도서관학과졸)·혜경(37·이대 음대졸)·은철(36·한대 열공학과졸)·현철(33·고대 사학과졸)·혜숙씨(31·이대 음대대학원졸)등 2남3녀를 두고 있다. 25년째 상도동 인근 산에 올라 4㎞씩 조깅으로 건강을 다지고 있으며 술은 마주앙 1∼2잔 정도며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과거 양주2병에 하루 서너갑씩 담배를 피우기도 했으나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과감히 끊어버렸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현재 충현교회 장로이다. 좌우명은 「대도무문」으로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의 붓글씨를 써넣어 구운 도자기를 선물하기도 한다.
  • 송 체신 사표 반려

    노태우대통령은 28일 송언종체신부장관과 이진설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이 제2이동통신사업자선정문제와 관련해 제출한 사표를 전달받고 『이 일로 물의가 빚어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일이었고 엄정한 선정기준에 의해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한 만큼 물러날 만한 잘못이 없다』면서 사표를 반려했다. 노대통령은 『이번 일로 소신있고 깨끗하게 일해온 공직자들이 동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김학준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 김영삼총재 체제 출범/변화·개혁의 문민정치 펴겠다/민자총재 취임사

    ◎획기적 인사로 대화합 이룩/노 대통령 명예총재로… 당대표 김종필위원 지명 민자당은 28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중앙상무위원회를 열고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을 제2대 당총재로 선출,김영삼총재체제를 공식 출범시켰다. 민자당은 또 노태우대통령은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김종필최고위원을 당대표로 지명했다.상무위의장에는 정재철의원을 선출했다. 민자당은 이날 대회를 마친뒤 김영진기획조정실장을 중앙선관위에 보내 노태우총재에서 김영삼총재로 법적인 명의변경을 마쳤다. 이에따라 민자당은 이날부터 김총재-김대표-박태준최고위원의 단일 지도체제가 됐다. 김총재는 이날 총재로 선출된뒤 「변화의 시대를 연다」는 제목의 취임사를 통해 『지금 우리 국민과 역사는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가 새롭게 변화하려면 강력한 정부와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총재는 사회전반에 만연된 가치관의 혼란,기강해이와 무책임,과소비와 사치,계층·지역·세대간 갈등등을 「한국병」으로진단한뒤 『지금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마음이며 이제부터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의 주름살을 펴는 「생활정치」를 펴겠다』고 다짐했다. 김총재는 『강력한 정부,강력한 지도력은 깨끗하고 정직한 지도자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하고 『저는 상도동에 집 한채 밖에 없으며 앞으로도 그것밖에 없을 것』이라며 「도덕정치」를 최고의 가치로 삼겠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우리사회 병폐와 지역간 경제 사회적 불평등은 대부분 인사불공정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국민적 대화합을 이룩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인사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이밖에도 ▲경제재도약을 위해서는 규제와 간섭을 줄이는 「작은 정부」와 일관성있는 정책이 중요하고 ▲통일은 뜨거운 감정만으로는 안되고 북한의 핵개발문제해결,이산가족상봉등 인적교류를 우선해서 추진하는등 차분하고 내실있는 통일정책을 역설하고 ▲공명정대한 대통령선거의 실시 ▲정경유착 고리단절 ▲중소기업및 과학투자확충 ▲사람을 만드는 교육제도의 정착등을 약속했다. 이날 대표로 지명된 김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정권재창출을 위한 당원들의 단합을 호소하고 당정일체를 이루는 한편 당의 기강을 바로잡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김 총재,이시대의 지도자 확신”/노 대통령 격려사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리셉션 격려사를 통해『높은 경륜과 국정운영의 경험을 가진 김총재야말로 이시대를 이끌어나갈 이 나라의 지도자임을 확신한다』면서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후보의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다함께 나아가자』고 역설했다. 노대통령은 『이제 김총재가 대들보를 올리고 지붕을 얹어 온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훌륭한 집을 완성할 것이며 나는 한장의 벽돌,하나의 버팀목이 되어 김총재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 「거산호」 출범의 의미와 과제(김영삼 총재 시대:1)

    ◎개혁깃발 드높이… 대선전 “시동”/양분론적 「민주대 반민주」 구도 종식/정직한 정치통해 「참신한 변화」 추구 김영삼 민자당총재체제출범은 우리 정치의 근본 「틀」이 바뀌고 있음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30여년간 야권을 대표하는 지도자였던 김총재가 집권여당 대통령후보에 이어 당최고사령탑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로도 세계의 이목을 끌만하다. 그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도 다양하게 풀이될 수 있다. 우선 김총재시대개막은 「민주」대 「반민주」구도의 종언을 알리고 있다. 해방이후 우리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사실여부를 떠나 집권층은 항상 반민주세력으로 치부되곤 했다. 지난 87년 노태우대통령의 6·29선언과 그에 이은 민주화 추진으로 이러한 구도가 희석되긴 했으나 아직도 양분론적 정치사고가 잔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투쟁의 대표격이었던 김총재가 집권당의 1인자가 됨으로써 「여=반민주,야=민주」라는 등식은 더이상 성립되지 않게 되었다. 김총재취임은 나아가 사실상의 여야 정권교체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6공이후 활발하게 추진되어온 민주화의 완성은 여야가 아무 부담없이 정권을 주고 받을때 이룩된다는게 일반적 견해이다. 그러나 야당의 고질적 수권능력부족 때문에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 과거 여당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이를 타파하기위한 것이 3당합당이었으며 김총재의 등장이다. 김총재는 2년7개월여의 여당생활에서 집권수업을 계속해왔다.야당에서 제기할 수 있는 반민주비난,구여권인사들 사이에서 거론될 수 있는 자질시비,어느 것에 대해서도 적절히 대응할 논리와 자격을 김총재는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김총재가 집권당을 이끌게 된 것은 문민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지난 61년 5·16혁명이후 30여년동안 야당측은 군부통치를 비난해왔다. 3공·5공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집권했고 노대통령은 직선으로 집권했음에도 군출신이란 점때문에 야당의 비난표적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순수 민간출신인 김총재 취임은 더이상 「군정」·「군부독재」라는 용어가 정치권에서 나올 근거를 없앴다고 볼 수 있다. 김총재의 취임은 노대통령의 우호적 지원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김총재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김총재는 소수 세력을 이끌고 있으면서도 대통령후보 자유경선을 수용했다. 이는 김총재 취임이 여야 정치민주화뿐 아니라 정당민주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게한다. 여야관계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협력·투쟁과정을 겪어온 양금후보가 명실상부한 여야당의 맹주가 됨으로써 양금구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김총재가 총재취임사에서 밝힌 내용도 자신이 집권여당을 실질적으로 이끌게 된 정치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총재는 자신의 총재취임의 의미를 변화의 선택으로 표현했다.야당출신으로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개혁을 주장해온 그가 민자당총재로 추대된 사실 자체가 이미 민자당의 개혁정당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김총재는 연설에서 변화의 방향을 민주개혁과 책임의식의 회복으로 규정했다.김총재는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무책임·기강해이·무사안일·이기주의등은 정치권의 리더십부재에 의해 야기된 책임과 신뢰의 위기라고 진단,「강력한 정부,강력한 지도력」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강력한 지도력은 「깨끗하고 정직한 정치」에서 나온다는게 김총재의 소신이다. 「김영삼총재호」가 대선승리를 위해 힘차게 돛을 올림으로써 여권권력의 축이 김총재에게로 급격히 기울게 됐다. 창당이후 민자당을 괴롭혀오던 계파분열도 해소되고 김총재를 정점으로 3계파가 하나로 융화되어가리라 예상된다. 12월 대선승리를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는 김총재가 풀어야할 과제도 많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이날 총재취임사에서 밝힌 개혁의지를 어떤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풀어놓느냐는 것이다. 집권가능성이 높은 집권여당총재로서 실현불가능한 정책들을 제시할 수는 없다.여론의 목소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면서도 잘못된 여론은 옳게 이끌 책임을 지게 됐다고 생각된다. 청와대및 민정계소외세력등을 포함,범여권을 결속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개혁과 변화를 위해서는 전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되 그것이 「관계단절」로 이어지지않도록 조화시키는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여권의 2인자로 있을 때와는 달리 지금부터는 국정의 1차적 책임이 노대통령보다 김총재에게 지워지리라 예상된다.「힘」을 가지게된 만큼 「책임」도 커진 것이다. 야당도 대여공세의 표적을 김총재에게로 집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단체장선거문제,정기국회운영등 정치일정을 얼마나 매끄럽게 진행시켜 일각에서 제기되는 반양금분위기를 효율적으로 극복할지 여부도 김총재의 정치력발휘에 달려있는 것이다.
  • “「장선거」 연내실시 불가/대형 국책사업 정부와 충분히 협의”

    민자당의 김영삼총재는 28일 총재로 선출된뒤 기자회견에서 단체장선거시기문제에 언급,『대통령선거를 3개월 앞두고 시간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할 경우 자치단체장선거를 연내에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총재는 이어 영종도 신국제공항건설및 고속전철사업등 대형국책사업추진과 관련,『아직까지 정부측과 협의한 바 없고 앞으로 노태우대통령과 수시로 회동을 갖고 충분히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또 자신의 국회의원직 사퇴와 관련,『적당한 시기에 잘 정리해서 밝히겠다』면서 정부측의 이동통신관련 발표에 대해서도 『대단히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 “「한국병」 반드시 치료하겠다”/YS총재 제일성

    ◎“화려한 구호·약속보다 실천에 앞장” 집권당의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된 김영삼민자당총재는 28일 상무위원회가 끝난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마디로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김총재는 『순수 민간인 출신이 31년만에 집권당의 총재가 된 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김총재는 특히 영국 전 대처총리를 예로 들며 『많은 정책을 내놓지 않고도 몇가지 중요한 정책을 꾸준히 실천,영국병을 치료했다』며 『차기정부는 강력한 지도력과 도덕성으로 최근 만연하는 황금만능주의 풍조등 이른바 한국병을 치료하겠다』고 밝혔다. ­총재가 된 소감은.이동통신문제외에 경부고속전철및 영종도신공항건설등 대형 국책사업의 정부추진에 대해 총재가 생각하는 바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돼 더욱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이 자체가 집권여당이 변화하는 것이라 생각된다.이동통신은 이미 선경이 분명한 태도를 취했고 정부가 차기정권에 넘기기로 한 것은 대단히 잘된 것이므로 더 얘기할 것이 없다.고속전철및 영종도신공항건설문제는 대통령과 충분히 협의하겠다. ­개혁을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그리고 지자제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소신이다.나는 오늘 강력한 정부,강력한 지도력,정직하고 깨끗한 대통령을 강조했다.이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병」이라고 명명한 우리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대담하게 수술할 것이다. 대처 전영국총리는 많은 정책을 공약하지 않았으나 반드시 영국병을 치료하겠다고 약속했었다.오늘의 영국은 영국병이 치료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화려한 구호나 약속보다는 실천을 통해 반드시 한국병을 치료하겠다. 그리고 지자제문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시기적으로 대선전에 장선거를 할수 없으며 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민생을 위해서 정치를 해야한다. ­앞으로 노태우대통령과의 관계는. 『노태우명예총재와 나는 성장과정과 정치스타일등이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른 모습이 나타날수 밖에 없다. 노명예총재는 민주화를 위해 지대한 공헌을 했다.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앞으로 주례회동은 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시로 가질 계획이며 두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당정최고회의의 의미를 갖는다.
  • YS연호… 피켓물결… 결속축제/민자 새 총재 뽑던날

    ◎취임사 연설도중 30여차례 박수/김 총재 선출안 만장일치로… 화합 다지고/당기흔들며 답례 분위기 절정에 「김영삼총재시대」를 연 28일의 민자당 상무위원회의는 주요당직자및 상무위원등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축제분위기 속에서 2시간여동안 진행. 이날 상무위는 특히 대통령선거에서의 완승과 정권재창출을 다짐하는 출정식의 분위기. ○…이날 대회가 열린 올림픽역도경기장에는 「깨끗한 정치 강력한 정부 김영삼과 함께」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천장에는 팔을 힘차게 뻗고 있는 김총재의 모습을 그린 대형그림을 부착. 또 대회장 주변에는 빨강 파랑 흰색등 4색풍선과 색동휘장이 화려하게 설치돼 늘어뜨려 장내분위기를 고조. 이날 행사는 하오 3시 김영삼대표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등 당수뇌부가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당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면서 시작. 상무위원회는 유학성의원의 개회선언과 국민의례,김영구사무총장의 당약사보고에 이어 이종근고문이 임시의장을 맡아 정재철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하는등 의장 1명,수석부의장1명,부의장 4명의 상무위의장단을 만장일치로 선출. ○…전반부의 요식절차가 끝나고 후반부 총재선출에 들어가면서 대회장 분위기는 더욱 고조. 정재철의장은 옆방에서 당무위원들이 회의를 끝내고 회의장으로 다시 들어온뒤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총재선출안건을 상정.이에 이도선상무위원은 『14대 대선에서의 필승을 위해 만장일치의 박수로 김대표를 총재로 선출하자』는 동의안을 냈고 순간 장내는 함성과 박수 환호로 가득.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김총재선출이 통과되자 사회자 이해구부총장이 『2백만 당원은 김신임총재를 정점으로 정권재창출을 이룩해 조국의 번영과 통일,2천년대의 선진국가 건설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장내에는 팡파르가 울려퍼졌고 참석자들은 피켓을 흔들며 「김영삼」을 연호하는등 분위기는 절정. 단상에 오른 김신임총재는 양손을 번쩍 들어 승리의 V자를 그려 답례했고 정의장으로부터 당기를 건네받아 흔들어보인뒤 김영진기획조정실장에게 인계. 기립박수속에 연단에 나선 김총재는 다소상기된 표정으로 「변화의 시대를 연다」는 취임사를 낭독. 이에 참석자들은 개혁과 변화,도덕정치,깨끗한 정부와 강력한 지도력을 강조할 때를 비롯,연설중간 중간에 30여차례의 박수로 화답. 이어 정의장은 명예총재 추대안건을 상정,만장일치 박수로 노태우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했고 김총재는 김종필최고위원을 대표최고위원으로 지명, 함께 연단앞으로 나와 참석자들의 환호에 손을 번쩍 들어 답례. 이어 참석자들은 「국민에게 드리는 글」과 ▲민주 번영 통일의 창당정신 구현 ▲경제활력 회복으로 다함께 잘 사는 선진한국 구현 ▲불퇴전 의지로 굳게 단합해 정권재창출 달성등을 주요내용으로한 결의문을 채택한뒤 만세삼창으로 대미를 장식.
  • 한·과테말라 경협확대/북한 핵·NAFTA대응책 논의/양국 정상회담

    노태우대통령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과테말라대통령은 27일 상오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를 포함한 동북아정세,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등 공동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 노대통령과 엘리아스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북한의 핵개발저지가 한반도및 동북아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으며 노대통령은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상호핵사찰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정상은 또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배타적 지역경제가 아닌 범세계적 무역자유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엘리아스대통령은 한국의 경제협력기금지원과 대과테말라 투자확대,투자업종의 다변화를 요청했고 노대통령은 이에대해 『가능한 범위내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엘리아스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치고 국회를 방문,박준규국회의장및 여야지도자들과 면답했다.
  • 「뉴DJ」의 실체가 없다(사설)

    결론부터 말해,김대중 민주당대표가 27일 회견에서 내놓은 주장들은 참신성,현실성,책임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인식이다. 사실 우리는 김대표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후 처음 가진 이번 회견을 주목했었다.그동안 말로만 떠들던 「뉴DJ」의 실체가 이 회견에서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김대표가 이번 회견에서 보여준 것은 발상의 전환을 전혀 찾아볼수 없는 「올드DJ」였다.그는 구차한 이유를 들어 제1야당 대통령후보로서의 비전 제시를 기피한채 대선경쟁자인 김영삼 민자당대통령후보에 대한 인신공격과 대여정치공세로 회견을 일관했다.그는 또 온 세계가 환영한 역사적인 한중수교에 대해서도 단 한마디 언급않는 인색함을 드러냈다.김대중씨가 이번 회견에서 큰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결코 우리만의 평가가 아닐 것이다. 김대중씨의 오류는 그의 상황인식에서부터 발견된다.그는 현 시국을 파탄의 길로 가고 있는 비상시국으로 규정했다.대통령과 정부가 건재하고 내우외환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파국이니 비상시국이니 하면서 나라를 불안으로 몰아넣으려는 저의가 의심된다.지금 국민들은 평온하게 각자의 생업에 열중하고 있다.경제도 호전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문제가 심각하고,그래서 위기가 있다면 그건 바로 정치판이다.특히 민생을 외면한채 국회를 볼모로 잡아 극한대결을 일삼는 정략이야말로 국민의 정치불신을 심화시키는 위기의 원천임을 김대표는 알아야 한다.지금 한국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조정과 각성의 시기를 맞고있는 것이지 통치부재의 비상시국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다. 김대표가 제안한 「비상정치회의」와 「거국내각」은 상황인식의 오류에 반민주적 사고까지 중첩된 해괴한 착상이라는 비판을 모면할 길이 없다.김대표의 비상정치회의란 정부와 여당이 국정관리능력을 상실했으니 노태우대통령과 3당의 대통령후보인 김영삼·김대중·정주영씨등 4자가 공동책임하에 위기를 관리해 나가자는 것이다.다시말해 대통령을 넷 두자는 얘기다.이는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합법적인 국민동의 절차도 없이 무력화시키려는 헌정중단 책동이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자타가 민주투사로 일컫고 있는 김대중대표의 입에서 이런 반민주적 주장이 나온 아이러니를 민주당이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김대표의 거국내각 주장은 과거에도 선거때만 되면 내놓은 단골메뉴였다.이제 국민들은 이런 구태의연한 주장에 식상해있다.김대중씨 주장을 다시 요약하면,4대통령이 거국내각이라는 이름의 연립정부를 이끌어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게 마련인데,정책과 목표가 각기 다른 오월동주식의 집단지도체제로 어떻게 위기를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김대표 회견의 빈약한 내용,불합리한 주장이 야당의 집권능력에 대한 회의론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민주당은 잊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이번에 내놓은 비현실적인 제안들이 아직도 구각을 못벗은 김대표의 개인적 체질을 반영하는 것인지,아니면 야당 두뇌집단의 한계를 드러낸 것인지 그 원인도 분명히 파악하기를 권고한다.
  • 한·중수교 보복차원/대북 접근의사 없어/대만행정원장

    【대북 AFP 연합】 대만은 27일 한국의 대중국수교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카드를 이용,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학백촌 대만 행정원장은 이날 각의를 마친뒤 『우리는 한국이 우리와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해서 북한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고 행정원 대변인 자손 후가 전했다. 그는 또 대만이 대중국정책과 중국과의 쌍무 무역관계를 변경할 것이라는 보도를 부인했다. 자손 후 대변인은 대북에서 일어난 한국학생 구타사건과 관련, 한국의 대중국외교관계 수립은 노태우대통령 정부가 결정한 것이라면서 대만국민들과 한국인들간의 친선관계를 해치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 “강력한 정부 깨끗한 정치” 천명/「YS총재」 국정청사진을 보면

    ◎문민시대 걸맞는 사회적 처방 제시/단계적 통일론·경제 활성화 밝힐듯/“인사는 만사”… 지역차별 철저배제 약속 민자당 지도체제가 개편됨에 따라 새로운 정치에의 기대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영삼총재권한대행은 28일 총재수락연설에 이어 9월초에 있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통치철학등 국가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민자당은 특히 총재수락연설에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계획아래 그동안 황인성정책위의장,김덕용총재비서실장,서상목정책조정실장,강인섭·남재희전의원,최창윤비서실장,박재윤경제·오인환정치·이경재공보특보,김중위정무·한리헌경제·김무성정책보좌역,당홍보위원장인 박관용의원,이원종부대변인등과 사회 각계 각층의 자문교수단을 총동원,수락연설에 담을 내용에 대해 숙의를 거듭해왔다. ○…김권한대행은 총재로 선출된뒤 30여분간의 수락연설을 통해 소감을 피력한데 이어 총론적 수준에서 우리나라사회전반에 관한 현실인식및 이에 대한 처방책을 제시할 계획이다. 수락연설의 핵심은 「변화와개혁」이라는게 측근들의 설명. 순수한 민간인출신인데다 야당생활로 대부분을 보낸 김권한대행을 여당의 총재로 선출한 것은 국민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 이와함께 지금까지 밝혀온대로 「강력한 지도력과 깨끗한 도덕정치」를 표방할 계획. 특히 정권교체기를 맞아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하고 있고 통치력의 누수도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기강해이와 무질서,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집단이기주의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이와관련,『과거처럼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정치선언이나 공약을 제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병리를 진단한뒤 이를 치유하겠다는 철학과 의지를 표방하고,말로써가 아닌 행동과 결단으로 국민의 시름을 덜어주는 생활의 정치를 다짐하게 될것』이라고 역설. ○…김권한대행은 이같은 기조위에서 정치·경제·사회부문등 각분야에서 원론적 수준의 정책지표와 정책의 일관성을 제시한다는 방침.특히 강력한 지도력과 깨끗한 정치는 인사의 공정성에서나오므로 「인사는 만사」라는 방침아래 지역차별을 배제한 획기적인 인사정책을 단행,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인사불만과 불평을 해소할 것을 표방한다는 계획이다. 이와함께 김권한대행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상도동 자택뿐임을 공개하고 대통령이 될 경우 재산을 조금도늘리지 않겠다며 「도덕성」을 강조할 방침. 경제분야에서는 민간분야의 자율성과 창의성및 정책결정에의 참여기회 확대,땀을 흘린 사람이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경제정의의 실현과 경제활력창출을 위한 행정조직의 재편,중소기업및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과감한 지원과 투자등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도 우리의 현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당부한다는 계획. 사회부문에서는 집권하면 재임중 부정부패를 반드시 척결하고 정경유착과 이권개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할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성급한 낙관론이나 이상론에 경계를 표하고,휴전체제의 안정적 유지와 신뢰구축을 전제로 「핵문제의 해결­이산가족등 남북간 인적교류­남북경제협력」등 단계적 통일론을 제시할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 이밖에도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한 당내민주주의의 확립,군의 정예화·전문화·경제화를 통한 국민군대로서의 위상확립과 한미연합작전체제의 유지등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김권한대행의 측근들은 수락연설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으며 앞으로 기자회견이나 대통령선거공약등을 통해 점차 가시화될 것이라고 설명. 한 측근은 『수락연설에는 30년이상 정치에 몸담아오면서 가장 자생력있는 정치지도자로 커온 김권한대행의 통치철학이 담겨 있다』면서 『기본적인 뿌리와 줄기는 생성이 돼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기와 뿌리를 뻗쳐나갈 것』이라고 비유.이 측근은 또 『김권한대행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국민여론』이라며 여론에 부응하는 강력한 정치를 해나갈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여론이 잘못됐을 때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계도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역설. 일부에서는 수락연설에서 노태우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내세울것이라고 보고 있으나 측근들은 28일의 행사는 축제분위기로 이끌게 될것이라고 강조.한 측근은 이와관련,『9월초 정식기자회견에서 보다 구체적인 정책의 방향이 제시될 것』이라고 말해 노대통령과의 「차별화」정책도 점차 가시화해나갈 것임을 시사.
  • 대선공약 당정 긴밀협의/노 대통령·김 총재대행 회동

    노태우대통령과 민자당의 김영삼총재권한대행은 27일 하오 청와대에서 회동,최근 과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사전선거운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대선을 목적으로 한 관광 향응제공 선물공세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노대통령과 김총재권한대행은 노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훌륭히 마무리 짓고 대선에 제시할 각종 정책및 공약사항의 수립을 위해 당정이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청와대측은 노대통령과 김총재권한대행의 주례회동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지만 앞으로도 필요에 따라 수시로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 정치인 5백여명에 추석선물 자제 서한/깨끗한 정치시민모임

    「깨끗한 정치를 위한 시민의 모임」(공동대표 장을병성균관대총장)은 27일 노태우대통령과 정원식국무총리등 공직자와 여야정치인등 5백여명에게 서한을 보내 『올 추석에 유권자들에게 선물을 돌리는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민의모임」은 이와함께 고발창구를 개설,선물을 돌리는 정치인등을 확인해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 민자,김영삼총재 오늘 선출/상무위/취임연설서 새 국정 청사진 제시

    ◎노 대통령은 명예총재 추대 민자당은 28일 하오 서울 잠실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상무위원회 제2차 회의를 열고 김영삼총재권한대행을 제2대 당총재로 선출함으로써 「김영삼총재체제」를 출범시킨다. 김대행은 총재로 선출된뒤 김종필최고위원을 당대표로 지명하며 상무위는 이를 추인할 예정이다. 현 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명예총재로 추대된다. 이에따라 민자당은 김영삼총재·김종필대표·박태준최고위원의 단일 지도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김총재권한대행은 총재로 선출된뒤 「변화의 시대를 연다」는 주제의 취임연설을 통해 정치·외교·안보·통일·경제·사회 등 국정 전반에 걸친 자신의 구상과 청사진을 밝힐 예정이다. 민자당은 이날 상무위가 끝난뒤 장소를 올림픽 펜싱경기장으로 옮겨 노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연을 갖고 김총재선출을 자축한다. 한편 민자당은 김영삼총재체제 출범에 따라 곧 당을 대통령선거체제로 전환시킬 계획이다. 선거대책위원회는 김종필최고위원을 명예위원장,박태준최고위원을 위원장,김영구총장을 본부장으로 하고 부위원장에 김윤환·이춘구·이한동·박준병·최형우의원 등이 기용돼 지역과 분야별로 역할이 맡겨질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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