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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인채택」 심야협상도 무위로/「국조」 등 줄다리기… 긴박한 여야

    ◎“현직은 절대불가” 마지노선 제시/민자/“50명 반드시 관철” 막판 강경선회/민주 국무총리임명동의안등 3개 안건의 처리는 여야의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29일로 미뤄졌다.여야는 임시국회회기 마지막날인 28일 이들 안건을 일괄타결하기 위해 여러차례에 걸쳐 공식·비공식접촉을 가졌으나 상무대의혹사건에 대한 증인·참고인채택을 둘러싸고 진통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합의에 실패했다.이만섭국회의장은 이날 자정까지 열린 본회의에서도 야당의 반대로 원만한 처리가 어렵게 되자 직권으로 회기를 하루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이날까지 나타난 여야의 대립양상으로 미루어 이들 안건이 29일에 처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임시국회폐회시한을 불과 6분 남긴 밤11시54분 이만섭의장은 직권으로 임시국회회기를 하루 연장할 것을 상정,여야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뒤 곧바로 정회를 선포. 이의장은 이어 양당총무를 의장실로 불러 향후 의사일정등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29일 하오2시에 본회의를 재소집하기로 결정. ○…이에 앞서 밤11시10분쯤 회의장에 입장한 이만섭국회의장은 『산적한 국내외현안을 해결하고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의 임무를 더이상 외면할 수 없다』면서 총리임명동의안과 국무위원해임안을 직권상정. 이에 민주당의 김대식총무,조홍규부총무는 차례로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의사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필리버스터로 인준동의안 처리를 지연. 김대식총무는 『상무대의혹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이번 임시국회의 의제였다』고 주장. 조부총무는 『총리인준동의라는 중대한 문제를 굳이 밤이 깊은 지금 해야 할 이유가 뭐냐』면서 회기를 연장할 것을 의장에게 제의. 그러나 민자당의 현경대국회 법사위원장은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정치선전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반복,더이상 합의가 불가능하다』면서 이를 제외한 나머지 2건의 처리를 촉구. ○…민주당은 하오10시30분부터 의장실에 부총무단을 보내 총리임명동의안및 국무위원해임건의안만의 상정을 저지하는 한편 김대식총무가 민자당 이한동총무와의 총무회담을 요청,회기를 연장하자고 제의.그러나 이총무는 『더 할 얘기없다.의장결심대로 국조권을 뺀 두건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가겠다』고 최후통첩. ○…이날 하오9시부터 30분에 걸쳐 네번째 여야총무접촉을 가진뒤 민자당의 이한동총무는 『고별만남이었다.10시에 의장이 총리임명동의안과 각료해임안을 상정한다고 양당 총무에게 통보했다』고 말해 협상타결을 통한 회기내 안건처리가 사실상 물건너갔음을 시사. 이총무는 『최선을 다했으나 도저히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난항의 원인을 민주당측의 과도한 요구에 돌렸고 김대식총무는 『정치자금의혹을 규명하는데 정치인은 다 빼버린채 스님과 사업자들만 불러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느냐』고 역으로 민자당측에 화살. ○…이날 저녁 9시 총무회담이 결렬되자 이만섭국회회장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회담결과를 설명하고 『의장직권으로 국정조사계획서를 제외한 두가지 안건을 처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 이의장은 성명을 발표한뒤 『야당도 국정조사를 하자는게 목적이 아니냐』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뒤 『당이 집단지도체제로 얽혀 의견조정이 어려운 모양』이라고 한탄. 이에 앞서 민자당의 이총무는 이날 하오5시30분쯤 민주당의 김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외부에서 세번째 접촉을 갖고 민자당의 최종방침을 전달. 이총무가 제시한 방침은 이날 청와대측과의 몇차례에 걸친 조율끝에 마지노선으로 정한 것으로 『현직은 절대불가』라는 것.즉 노태우전대통령과 서석재전의원은 물론 김윤환·김영일 두 민자당의원까지 증인으로 채택할 수 없으나 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이진삼전육참총장,정구영전청와대민정수석,이종구전국방부장관등 몇몇 6공인사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있다는 방침을 간접전달했다는 후문. ○…국정조사 증인채택과 관련,이날 하오 다소 유연한 자세를 보이던 민주당은 하오6시를 넘어서면서 이기택대표등 당지도부의 강경한 뜻이 전달돼 다시 완강한 태도로 돌변. 이기택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은 이날 저녁7시 의원회관 2백16호 대표실에 모여 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신하며 협상전략을 숙의. 이 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은 민자당이 의외로 증인문제에 완강한 모습을 보이자 당혹해 하면서도 『국회가 파국을 맞더라도 여론은 우리를 지지할 것』이라면서 50명의 증인및 참고인채택을 반드시 관철시킬 것을 결의.
  • 여야,조회장 수표추적 합의/오늘 국조계획서·총리임명동의 처리

    여야는 27일 상무대 의혹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국회가 조기현전청우종합건설회장이 유용한 자금의 모든 수표에 대한 추적을 하기로 하는등 국정조사계획서 작성에 의견접근을 보았다. 이에 따라 국회는 회기 마지막 날인 28일 국정조사계획서의 작성을 마치는대로 본회의를 열어 국정조사계획서와 이영덕국무총리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안,민주당이 제출한 22개 부처 각료해임건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국회 법사위의 국정조사계획서 작성소위는 이날 국정조사과정에서 필요한 은행을 상대로 직접 수표추적을 하되 은행측이 수표추적에 응하지 않으면 국정감사및 조사법 15조(증언자료 제출 거부 처벌)에 따라 고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은행측으로부터 관련자료를 제출받는데 시일이 걸린다는 이유를 내세워 갑자기 조사활동기간을 연장할 것을 주장,논란을 벌였다. 또다른 쟁점인 증인채택에 있어서는 민주당이 김영삼대통령과 노태우전대통령등 전현직대통령을 포함한 51명을 증인및 참고인으로 채택하자고 계속 주장한 반면 민자당은청우종합건설및 조계사 관계자 30명을 증인으로 채택한 뒤 조사과정에 필요한 인사를 추가로 부르자고 맞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 전·노 전대통령 고발/「5·18」 진상규명위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 계승 국민위원회」(공동대표 김상근목사) 간부등 15명은 26일 낮 12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 동아클럽에서 제1차집행위원회를 갖고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등 5·18관련자 34명을 내달 13일 서울지검에 고발키로 했다. 국민위원회는 또 5월 14일 하오 2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광주시의회·한국사회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광주항쟁 14주년 학술대회」를 갖고 18일에는 전국연합차원에서 전국 각 지역별로 추모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 증인채택·수표추적 절충/국조소위/28일까지 조사계획 도출 전망

    국회 법사위의 국정조사계획서 작성소위는 26일 하오 회의를 속개,증인채택및 수표추적,문서검증 문제등 3개 쟁점에 대해 막바지 절충을 벌였으나 여야의 기존 방침고수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 증인및 참고인 문제와 관련,민자당측은 서의현전조계종총무원장과 조기현전청우종합건설회장등 불교계와 업계 관계자 27명만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측은 김영삼대통령과 노태우전대통령등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이병대국방장관,서석재전의원,이진삼전육군참모총장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맞섰다. 민주당의 이같은 주장은 조기현전청우건설회장의 횡령액 1백89억원가운데 1천만원이상을 인출한 1백24차례의 자금흐름에 대한 수표추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협상용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면 철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여야는 민주당에서 증인및 참고인대상을 축소하는 대신 민자당에서 문서검증과 수표추적을 상당부분 수용하기로 의견을 좁힌 것으로 알려져 임시국회 회기연장 시한인 28일까지는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상무대 증인·참고인 야 51명 채택을 요구/전현직 대통령 포함

    국회 법사위 국정조사계획서 작성소위는 23일 상무대 의혹사건과 관련,증인채택의 범위와 수표추적문제등에 대한 협의를 계속했다. 이날 회의에서 민주당은 김영삼대통령과 노태우전대통령을 참고인으로 하는등 정치인 7명이 포함된 51명의 명단을 제시하며 증인및 참고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민자당은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할 의혹이 불분명한 인사는 소환할 수 없다』면서 증인 수를 대폭 줄이자고 맞섰다.
  • 민주 「여권핵심 증인채택」 혼선/국정조사 발동 앞둔 야기류

    ◎2시간 넘긴 연석회의 결론없이 끝나/“왜 주저하나” 지도부 소극태도에 불만 상무대 공사대금 일부의 정치자금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와 관련,그동안 기세등등했던 민주당이 증인선정을 두고 「적전분렬」의 양상을 보이고 있고 민자당은 이를 공세적으로 국면을 바꾸는 계기로 삼을 듯한 태세이다. ○…민주당은 여권 핵심인사까지 증언대에 세우겠다던 초반의 의욕과는 달리 증인선정문제를 둘러싸고 멈칫거리는 모습을 보여 그 배경을 놓고 당주변에서는 이상한 소문마저 나돌아 뒤숭숭한 분위기.특히 국정조사를 맡은 법사위에 참여하기 위한 의원들의 물밑 신경전까지 맞물리면서 당분위기는 그야말로 자중지란의 조짐마저 표출. 증인선정및 법사위원 교체문제등을 논의하기 위해 이날 상오 열린 법사위및 상무대조사위 연석회의는 2시간을 넘기고도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나버려 당안의 이같은 미묘한 기류를 반영. 특히 상무대진상조사위를 이끌어 온 정대철의원은 전날 노태우전대통령과 최형우내무부장관·서석재전의원등의 증인채택에 소극적인 견해를 밝힌데 이어 이날 회의에서도 한때 법사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춘 것으로 알려져 속내를 두고 해석이 분분.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동교동쪽에 약점이 있는 것 같다』는 설과 『정의원이 개인적인 약점을 잡힌 것 같다』는 설이 나도는등 어수선.정의원은 특히 『나에 대해 안기부에서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주장까지 펴 의혹을 더욱 증폭. 이기택대표도 「성역없는 조사」를 강조하면서도 『국정조사활동을 결코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겠다』면서 『파헤쳐야 할 의혹부분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증인대상을 내놓는 것은 진지하지 못한 자세』라고 신중론을 펴 당관계자들을 갸우뚱거리게 하기도. 이같은 당지도부의 소극적 태도에 대해 당관계자들은 『싸움은 이제부터인데 지도부가 왜 주저하는지 모르겠다』『그들(민자당)주장대로 정말 켕기는 것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며 못마땅한 모습. ○…민자당은 민주당안에서도 여권 핵심인사의 증인채택문제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것과 관련,이는 민주당이 소문에만 근거해 정치공세를 펼치려고 했다는 증거라고 해석하는 분위기.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민주당에서도 뒤가 켕기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여권핵심인사의 증인채택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싫지 않은 표정. 문정수사무총장은 야권이 거명하고 있는 여권인사의 증인채택에 관해 『상무대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다』고 발히고 『야당도 증인요구 이전에 합당하고 명확한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
  • 상무대 국정조사/예상밖 증인 축소… 순항 가능성

    ◎「발동」 앞둔 여야분위기/물증 없는데다 「당내악재 가능성」 부담/여선 “본격 조사땐 야쪽이 말릴것” 자신 상무대 공사대금 일부의 정치자금 유입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와 관련,여야가 증인채택등을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민주당이 14일 노태우전대통령을 비롯,최형우내무부장관과 서석재전의원을 증인채택 대상에서 제외할 뜻을 시사함에 따라 별다른 마찰 없이 순탄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민자당은 여전히 『뒤져봐야 나올 게 없다』면서 느긋해하고 있다. 이같은 국면전환에 대해 정가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내부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자당◁ 14일 상오 김종필대표가 주재한 고위당직자 회의에서는 정면대응 원칙과 민주당의 증거 없는 증인요구는 수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 그러나 내심 부담을 느끼고 있던 노전대통령,최내무부장관,서전의원등에 대해 민주당이 「꼬리를 내리는」 움직임을 보이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특히 최장관과 서전의원 문제는 계속 거론될수록 여권이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그러나 민주당이 이들의 결백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돌연 방향전환을 하자 당연한 결과로 평가하면서도 무척 반기는 분위기. 민자당은 민주당의 이같은 모습을 크게 세가지의 이유로 분석. 첫째 당국이 의혹이 제기된 여권인사에 대해 조사한 결과 무고함을 확인했고,반면 민주당은 이를 뒤집을 만한 물증이 없다는 것.군 특검단과 검찰의 수사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의혹을 『민주당이 해봐야 얼마나 캐내겠느냐』고 전망. 둘째 민주당이 내부 연루자가 분명히 없음을 자신하지 못하는 것도 안도감을 주는 대목.즉 상무대이전사업의 무대가 광주이고,사퇴한 서의현총무원장이 김대중씨의 아·태재단 고문이라는 것등의 사실 때문에 내부 문제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관측.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조사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그쪽에서도 말릴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배경. 마지막으로 이 사건이 6공 때의 일로 현정부와는 무관하다는 여권 핵심부의 생각도 이를 뒷받침.그러나 이는 자칫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심스러운 대목. ▷민주당◁ 국정조사권발동에 대해 원칙적으로 환영하면서도 거둬들일 수확에 대해서는 짐짓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 특히 지금까지의 주장과 달리 여권핵심인사의 개입여부와 관련,「터뜨릴 만한」 호재를 찾지 못해 내심 고민하는 모습.이에 따라 공공연하게 거론됐던 노전대통령과 최내무부장관,서전의원에 대한 증인선정도 불투명한 상황.정대철 상무대진상조사위원장은 이와 관련,『이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고 말해 기세등등하던 모습에서 한발 물러서는 인상. 김대식총무도 『얼마만큼의 증인을 확보하느냐가 이번 조사의 관건』이라면서도 『구체적으로 누구를 증언대에 세울지에 대해서는 당론으로 정한 바 없다』고 말해 여권핵심부를 공략할 실탄이 없음을 간접 시사. 민주당은 15일 법사위와 진상조사위 연석회의를 열어 증인선정문제등 조사계획서 작성을 위해 협의할 예정이나 당내 인사의 관련설등 「잡음」때문에 회의분위기는 상당히 위축되리라는 것이 당안팎의 전망 한편 여권이 국정조사에 흔쾌히 응한 배경과 관련,「야당에도 약점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은근히 동교동을 겨냥한 일부의 시각에 대해 『그쪽에서는 펄쩍 뛰고 있다』(문희상대표비서실장)며 강력 부인.그러나 한 의원은 『지난 대선때 서의현총무원장이 20여명의 정치인과 접촉했다는 설이 있다.그 사람들이 전부 여당인사였겠느냐』면서 의외의 악수가 터져 나올 수 있음을 경계. ◎심기 불편한 연희동/“또 6공이냐” 볼멘소리… 구설수 신경/노 전대통령 개입했을 개연성도 일축 노태우전대통령의 연희동주변 공기가 다시 흐려지고 있다.상무대 공사대금의 정치자금 유입의혹 때문이다. 최근들어 여권 핵심부는 이 문제에 대해 「6공 때의 일」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잘못이 있더라도 「6공인사」가 간여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이에 대해 노전대통령측은 『또 6공이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한마디로 불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과 이진삼전체육부장관이 구설수에 오르는데 대해서는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물론 연희동측 인사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그러면서도 두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상무대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국정조사권의 발동을 여권이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나,여권 인사들의 입을 통해 두사람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한것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사실이 그렇다면 마냥 자신할 수만도 없다는 점에서 고심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전실장과 이전장관은 상무대공사의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챙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전실장은 주변 인사들에게 『그런 일 없다.신경 쓸 것 없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연희동의 한 인사는 『최근 이전실장의 모습에서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전장관은 지난 1일 미국으로 출국,한 때 도피성 외유라는 의심을 받았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그는 「바람이나 쐬려고」 지난 1월20일 미국으로 갔다가 항소심 첫 재판을 받으려고 지난달 30일 잠시 귀국했었다는 것.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되면 귀국해 출두할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밝혔다. 연희동측은 노전대통령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무대 건으로 얘기되고 있는 동화사는 노전대통령의 생가와 가까워 노전대통령이 자라다시피한 곳으로 거기에 불상을 세운다는데 부정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말로 일축했다.
  • 노 전대통령·최내무·서석재씨 민주,증인 소환 않키로

    ◎정대철 상무대조사위장 밝혀 민주당의 정대철고문은 14일 상무대정치자금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에서 노태우전대통령을 비롯,최형우내무부장관·서석재전의원을 증인으로 소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상무대정치자금진상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고문은 이날 『그동안 조사를 계속해 왔으나 이들이 직접 관련된 사실은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이들의 증인채택을 직접 거론한 적이 없다』고 말해 이들을 환문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김대식총무는 『이들을 증인으로 신청할 지는 아직 당론으로 결정하지 않았다』면서 분명한 방침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은 15일 이기택대표주재로 법사위및 상무대진상조사위 연석회의를 열어 조사항목과 증인선정문제등을 협의할 예정이나 정고문이 상무대비리조사를 이끌어 온 점을 감안할 때 노·최·서씨는 증인선정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난항이 예상돼 온 여야의 조사계획서 작성협상도 계획된 일정대로 24일까지 원만하게 타결돼 25일 본회의에서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 이춘구의원 아들 결혼식하객 1천5백여명 참석(조약돌)

    ○…13일 하오 3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열린 이춘구민자당의원의 외아들 제용군(28)과 한국고속도로보수공단 사장 이철호씨(52)의 딸 주연양(25)의 결혼식에는 노태우 전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5·6공 인사와 현직장관등 1천5백여명의 하객이 참석. 이현재 전국무총리가 주례를 맡은 이날 결혼식에는 노재봉,박준병,이자헌,이한동,권익현,김윤환의원과 정해창 전대통령 비서실장,안무혁 전안기부장등 5·6공시절 인사와 최형우내무장관등 정치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석,예식장 내부는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 그러나 이날 결혼식에 같은 군출신이면서도 전두환 전대통령은 물론 그의 측근인사들의 모습은 없어 대조적.
  • 안병호씨 소환조사/「12·12사건」 관련

    「12·12」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륜석 부장검사)는 11일 사태당시 9사단 작전참모 안병호씨(전수경사령관·예비역중장)를 소환,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안씨를 상대로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산하 29연대를 중앙청으로 이동,진주시키게 된 경위와 이동경로,이후의 역할등을 추궁했다.
  • 꺼풀벗는 「80억 의혹」/「정치권 유입」은 가설

    ◎주고받은 사람 진술 일치/검찰서도 “향방 가려졌다” 상무대 공사대금의 일부가 과연 정치권으로 흘러갔을까. 공사대금이 정치문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의 정대철의원이 『상무대 공사를 맡은 청우건설 조기현회장이 공사비 2백여억원을 횡령,그 가운데 상당액을 민자당의 대선자금으로 바쳤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민주당은 특히 지난 1월 율곡사업 특감을 벌인 국방부와 조회장을 구속수사한 검찰이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고도 자금추적등 횡령한 돈의 사용처에 대한 수사를 고의로 덮어 버렸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국방부와 검찰은 이에 대해 횡령한 돈은 ▲동화사 통일대불건립 시주금 80억원 ▲법회비 45억원 ▲빌라구입비 20억원 ▲기타 44억원등으로 사용처가 규명됐으며 횡령액도 모두 1백89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은 동화사주지 출신의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과 일부 여권내 실력자들과의 친분등을 내세우며 대불 건립비 80억원에 대해 집중적인 의혹을 제기했다.▲실제로 돈은 동화사에 들어가지도 않았거나 ▲일단 시주금 명목으로 들어가 「돈세탁」을 거친 뒤 곧바로 여권에 전달됐을 것이라는 두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조회장은 9일 검찰에서 『80억원은 모두 대불공사 총감독인 현철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사람을 통해 동화사측에 전달했다』고 확인,민주당의 첫번째 가설을 전면부인했다.현철스님 역시 이날 검찰에서 『91년 10월부터 10여차례에 걸쳐 조회장으로부터 80억원에서 5백만원이 모자라는 시주금을 받아 모두 대불건립비로 썼다』고 말해 민주당의 두번째 가설을 뒤집었다. 검찰 또한 이날 총공사비와 관련해 현철스님이 제출한 「대불사업비 지출전표」및 공사대금 영수증등을 분석한 결과 처음 공사비가 60억원으로 알려진 것은 대불앞의 「통일대전」 건립비가 와전된 것이며 지금까지 소요된 공사비만도 모두 1백56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검찰은 『문제가 된 80억원을 주었다는 사람과 받았다는 사람의 진술이 대부분 일치,횡령액의 향방이 일단 가려진 것으로 본다』고 밝힘으로써 횡령사건에 대한 법적조사는 사실상 마무리됐음을 시사하고있다. 검찰은 같은 맥락에서 자금추적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특히 종교사업에 대한 탄압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권은 물론 『그것봐라.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야당은 정치자금설을 유포했지만 한번이라도 사실로 드러난 적 있었느냐』고 반색이다. 지난 대선 때 민자당 선거대책본부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대선 때 서총무원장은 기독교도인 김영삼후보가 아니라 정주영후보를 지지했으며 대선후기에 서총무원장이 김후보 지지쪽으로 돌아섰을 때도 조계종 내부의 방침은 변함이 없었다』고 강조했다.그는 대선 때 불교계에 대한 민자당 진영의 창구는 권익현의원에서 서석재 전의원으로,다시 강삼재 현기조실장으로 바뀐 점만 보더라도 민자당이 조계종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컸던가를 반증한다고 덧붙였다. 민자당은 시주금이 기업자금과는 달리 구체적 수입지출내역으로 기재되지 않고 총액으로만 기재되는 것이 관행이어서 더이상 뒤져봐야 더 나올 것이 없는 만큼 야당이 더이상 이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원장 잔뼈굵은 대찰… 연8억 수입/대구 동화사 어떤 절인가 최근 「조계사 폭력사태」 파문이 80억원의 시주금 행방으로 확산되면서 대구 동화사(주지 벽봉스님)에 세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구 팔공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동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높이가 30m에 이르는 통일약사대불은 92년 11월에 점안식을 가져 현재 완공단계에 있으며 대불주변의 각종 석조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신라시대 흥덕왕 7년(서기 8백32년) 심지대사가 창건한 동화사는 약수암·비로암등 7개 부속암자,70여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4백여명의 승려들이 불공을 닦고 있는 영남 중북부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이곳도 60년대말과 70년초 여느 대사찰과 마찬가지로 주지권을 놓고 극심한 다툼을 벌였다.그러다 70년대 초반 청담스님이 총무원장직을 맡고 서의현스님이 조계종내에서 실권을 얻으면서 안정을 되찾았다.노태우전대통령 생가가 절 건너편동네에 있고 그가 재임중 두차례나 들러 유명사찰로서의 명성을 과시하기도했다. 특히 서총무원장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승려생활을 시작해 주지까지 역임한 곳이라는데서 서원장의 영향력이 깊게 작용했고 그가 총무원장직을 맡으면서 「직영사찰」이 되다시피 했다.서원장의 보살핌속에 평온을 유지해오던 동화사는 통일약사대불 조성공사가 한창이던 92년8월 당시 주지인 무공스님이 총무원의 지나친 간섭에 반발하다 쫓겨 나면서 주지권을 둘러싼 분쟁이 또 다시 폭발했다. 동화사는 연간 4억∼5억원의 관광객 입장수입과 4천5백여 신도들의 시주금및 팔공산시설지구 일대의 주차장과 토지에 대한 임대료등 연간 7억∼8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굴지의 부자 사찰이다.
  • 「동화사 시주금 80억」 정치권에 불똥/선봉스님 폭로로 관심집중

    대한불교평신도회장인 청우종합건설 대표 조기현씨(구속중)가 조계종 서의현총무원장에게 헌금한 거액의 시주금이 행방불명됐다는 선봉스님의 주장과 관련,조씨의 헌금액수와 헌금경위·돈의 향방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조씨는 88년 노태우대통령 당시 5천8백여억원짜리 국방부 상무사업을 따낸 이후 정치자금 조성책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동화사 재정국장으로 서총무원장의 측근이었던 선봉스님은 최근 『지난해 조씨가 서총무원장에게 동화사 시주금으로 80억원을 전달했으나 회계장부에는 기입되지 않고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조씨를 국방부 특명검열단으로부터 넘겨받아 수사한 서울지검은 조씨가 동화사 시주금에 80억원,각종 법회비 45억원,개인빌라 건축비 10억원등 모두 1백35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불교계에 유입된 자금에 대해서는 추가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번 폭로결과 조씨가 80억원을 총무원에 전달한 사실이 확인된 셈이며 앞으로 검찰은 불교계 비리 내사을 통해 이 헌금의 사용처를 밝혀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조씨의 상무사업공사자금 유용과 관련,정치자금으로 유입됐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국정조사권 발동을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등 정치쟁점화시키고 있다.
  • 총무원장 8년… 「종단의 얼굴」/서의현원장의 면모와 행적

    ◎5공때부터 최고위급 인사와 교분/상무대 비리·사생활 관련 구설수도 5일 조계종 원로회 회의에서 전격 불신임된 서의현총무원장(58)은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의 종권을 9년동안 굳건히 지켜온 불교계 최대의 실력자다. 86년 8월 제25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뒤 역대 총무원장 가운데 최초로 임기 4년을 다 채운데 이어 90년에는 재임에도 성공,종단 제1인자의 아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독선적이며 친정부적인 종단운영으로 개혁파들로부터 계속 도전을 받아왔으며 사생활과 관련된 구설수와 함께 최근에는 상무대 비리에까지 연루돼 3선연임을 목전에 두고 사면초가의 곤경에 빠진 상태였다. 게다가 자신의 3선연임을 결정할 중앙종회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터진 조계사 폭력사태를 배후 조정한 의혹까지 받게되면서 그의 거취가 관심의 초점이 돼왔다. 그는 36년 대구에서 출생했으며 52년 해인사에서 김상월화상을 은사로 득도한 뒤 같은해에 사미계(사미계),55년 비구계(비구계)를 수계했고 62년 해인사 대교과를 거쳐 67년 대승사 주지를 시작으로은해사와 동화사 주지를 역임했다 또 66년 2대 종회부터 현재의 10대 종회까지 중앙종회의원직에 오르는등 최다선의원으로 화려한 이력을 더해 왔다. 그는 종단내에서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정계를 비롯,각계 최고위급 인사들과도 폭넓은 친분을 유지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정치로비자금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5공말기인 86년 행정수반격인 총무원장에 처음 선출된 당시 집권층의 다수를 이루던 소위 TK세력과의 친분등으로 인해 친정부적인 성향을 띠면서 실세였던 전경환씨와 가깝게 지냈으며 이때부터 호국불교를 외치며 정부를 위한 조찬기도법회를 여러차례 주선했다. 전두환전대통령이 퇴임후 백담사에 은둔중일 때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방문,전씨에 대한 「의리」를 은연중 과시하기도 했다. 또 91년 5월에는 서울롯데호텔에서 노태우전대통령 내외와 불교신자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원법회」를 갖고 법어를 통해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찬양하는 발언을 해 교계 일각에서빈축을 샀다. 91년 9월 종정추대를 둘러싸고 종권다툼이 벌어져 총무원이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되는등 분종의 위기까지 치달으면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으나 양측간의 극적인 화해로 위기를 넘기는 등 남다른 생명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거의 선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지향적인 그의 성향은 92년 3월 당시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또다시 내부 반발에 직면했으며 퇴진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결국 상무대 비리와 관련,공사대금 8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받기에 이르면서 조계사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조계사 폭력」 수사확대에 관심

    ◎검찰,“혐의 판명땐 서 원장 사법처리”/배후·자금출처 규명위해 불가피/조사땐 「상무대 의혹」 맞물려 고민 조계종 폭력사건때 서의현총무원장의 핵심측근인 규정부장 보일스님이 폭력배를 동원했다는 혐의가 밝혀지면서 경찰이 4일 총무원 상층부로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어 서총무원장에 대한 수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이 총무원 상층부로까지 수사를 확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의 수사결과 이번 사건에 직접 연루된 승려들이 서원장의 수족처럼 일해온 사람들인데다 폭력배 동원에 사용된 거액의 자금이 총무원 최고위층의 허가없이 집행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오는 8월로 임기가 끝나는 불국사 주지 종원스님의 경우 감독기관인 총무원의 재가없이 호텔 숙박료등 경비를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 조계종내부의 지적이다. 경찰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일스님이 총무원 지도부로부터 직접 폭력배 동원에 대한 「어떤 지시」를 받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측근을 통해 간접 전달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에따라 ▲폭력배 동원지시를 한 보일스님의 배후 ▲사용된 자금의 출처및 규모 ▲동원된 폭력배들의 신원등에 대한 수사를 위해서는 총무원 고위층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경찰은 서총무원장의 소환조사문제가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주위의 시각이다. 서총무원장을 조사할 경우 이번 조계사 폭력사태의 원인중의 하나인 상무대 이전자금의 정치권 유입이라는 민감한 정치쟁점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찰은 이에따라 보일스님을 총무원측의 폭력배 동원 주모자로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축소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전면 확대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범종추측 스님들이 『총무원측이 미리 경찰투입을 자제해달라고 경찰에 연락한 뒤 자기들이 폭력배들을 동원,난동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재가불자연합측도 『보일스님 수사정도로는 어림없다』면서 『신흥사·봉은사등 폭력사태를 직접 지시한 고위층을 이번에 함께 밝혀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번 조계사 폭력사태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그동안 말썽 많던 종교계의 비리척결에 대한 검·경찰의 확고한 수사의지와 정치적인 결단까지도 내려져야만 한점 의혹없이 마무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적」 제거에 종원·도오승려 이용/서 원장,지위보장 해주고 자기파 만들어 이번 조계사 폭력사태와 관련,경주 불국사의 자금이 폭력배동원에 사용되고 불국사 말사인 분황사의 전주지 도오스님(42)이 구속됨으로써 조계종 총무원이 이 두 사찰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음이 수사결과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동안 서의현총무원장은 불국사 주지인 종원스님(58)과 도오스님을 이용해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등 세력확장을 해왔고 이 과정에서 두 승려는 서원장의 하수인 역할을 하며 반대급부로 교계내 지위를 보장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된 도오스님은 종원스님의 사제로서 모두 조계종 원로의원인 월산스님의 제자들이다. 이들과 서원장의 이해관계는 역시 월산스님의 제자로서 종원승려의 사제인 전불국사 기획부장 종상승려(46)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서로 맞아떨어졌다. 또 종상스님의 사형인 종원스님은 종상스님이 스승인 월산스님의 문중인 불국사와 금산사·법주사 승려들을 규합해 반서원장운동을 주도하면서 승려들의 신임을 얻게 되자 자신의 지위에 불안을 느껴 반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원장은 이러한 종원스님과 종상스님의 미묘한 양쪽관계를 교묘히 이용,종원스님을 자신의 수족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최대의 「정적」인 종상스님을 제거하는 작업에 나섰다. 또 이 과정에서 두 승려의 사제인 도오스님은 종상스님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불국사내 승려들의 동태등 각종 정보를 서원장에게 전해 서원장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세사람의 「공작」끝에 종상스님은 지난해 12월 종원스님으로부터 폭행혐의로 형사고발된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불국사 기획실장자리에서 물러났고 지난달 10일에는 조계종 호계위원회의 결정으로 체탈도첩(기독교계의 파문에 해당)되기에 이른다. ◎보일승려는 누구인가/조직폭력 두목과 의형제… 9년째 규정부장직 맡아 조계사 난동사태시 폭력배동원의 실무총책으로 알려진 보일스님(49·속명 정진길)은 현 조계종 서의현총무원장과 3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측근중의 측근이다. 그는 63년 대구 동화사에서 서원장에게 계를 받고 삭발한 뒤 서원장의 상좌가 됐다. 86년 서총무원장체제가 출범하면서 불교계의 감찰기관인 규정부장직을 줄곧 맡아왔으며 89년부터 경기 강화의 보문사주지를 겸임하고 있다. 이 사찰은 노태우전대통령 가족등이 신도로 지낼 정도로 오래전부터 『불공을 드리면 효험이 크다』고 소문이 나 있고 신도들에게서 받는 시주가 연간 10억원대가 넘는 노른자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보일은 92년9월 조계사내의 경비원 김모씨를 폭행해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으나 규정부장직을 그대로 유지할 정도로 서원장의 신임이 두텁다. 집행유예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보일스님은 폭력조직인 「신동아파」의 우두머리 강모씨와 의형제 사이로 지내면서 불교계의 각종 폭력사태에 직간접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폭력사태와 관련해서도 보일스님이 강씨를 통해 수십명의 폭력배를 동원하는등 막후지휘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당분위기 일신… 협업체제 구축/민자 4역 「취임1백일」

    ◎개혁입법완성 성과… 대야관계 개선 과제 민자당의 현직 4역이 2일로 취임 1백일을 넘겼다. 쌀시장개방에 따른 들끓는 여론과 예산안강행처리 파동등으로 흔들렸던 민자당은 지난해 12월23일 새 진용으로 4역을 교체함으로써 당의 분위기를 일신,안정된 분위기를 되찾았다.그동안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일을 해냈다는게 이들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이다. 「실무총장」임을 자처하는 문정수사무총장은 조용하면서도 내실있는 당운영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실세 민주계라는 「따가운」시선의 부담을 지우기 위해 민정계중진인 이세기정책위의장과 이한동원내총무의 영역을 존중,협업체제를 무난히 유지해왔다.전임 최형우·황명수총장에 비해 비교적 위상이 취약하다는 회의적인 시선을 내실있는 추진력으로 말끔히 털어냈다. 문총장은 취임과 함께 『민자당은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다』고 진단했다.대대적인 조직개편의 신호탄이었다.중앙당직원의 70%를 다른 자리로 보냈지만 잡음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특히 10개 사고지구당의 조직책 임명에서는 골수재야출신의 김문수씨를 발탁해 물갈이의 기준을 매끄럽게 제시했다. 이러한 문총장도 요즘 고민이 생겼다.최기선인천시장과 박태권충남지사의 사전선거시비,황병태주중대사의 북한핵관련 돌출발언등 민주계의 잇따른 실책때문이다. 이세기정책위의장은 통일원장관과 교수를 지낸 전문성을 살려 민정계의 몫을 나름대로 챙겨왔다.학계·경제계의 전문가들을 집에 초빙,「과외수업」을 받으며 정책개발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UR와 관련,정부측과의 협의과정에서 정책담당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는 다소 취약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한동총무는 정치관계법을 여야합의로 타결,제도적인 정치개혁을 완성시킴으로써 관록을 과시했다.특히 통합선거법문제를 둘러싸고 여권내부에서조차 제각각의 목소리를 낼때 대야창구를 「장악」,민정계중진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지켜왔다.『협상과정에서 내 생각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스스로도 만족해 한다.해박한 법률지식도 일조했음은 물론이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임대통령때도 총무직을 지냈던 그는 『지금이 총무하기가 가장 편하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넘어야 할 벽이 있다.UR협정의 국회비준 동의와 정치개혁의 마지막 관문인 국회법개정이다.특히 UR문제는 『한자도 고칠 수 없다』던 정부의 도덕성시비로 악화되면서 「대표급 총무」로서도 난감하다. 여야및 정부와 여당의 「충실한 다리」를 선언했던 서청원정무장관은 그동안 부지런히 여야를 뛰어다녔다.취임하자말자 민자·민주양당의 3역회담을 주선했고 김대통령의 영수회담제의를 전달하기도 했다.정치관계법협상의 막바지단계에서는 민주당측을 찾아다니면서 설득작업을 펴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막후역할로도 최근 고조되고 있는 민주당의 경직된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인다.
  • 이 총리의 공명선거 의지/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1일 상오 청와대와 내무부에서 잇따라 열린 국무위원간담회와 시도지사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김영삼대통령과 이회창국무총리의 사전선거운동 엄단 지시가 워낙 서릿발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총리는 과거 야당의원을 지낸 박태권충남지사와 최기선인천시장을 직접 겨냥했다.이총리는 『시도지사 가운데는 내가 선관위원장을 하던 89년당시 야당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도 있다.야당에 있을 때 관권선거가 얼마나 빈번하고 선거의 공정성에 흠을 주는지 절감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물의를 일으킨 두사람을 비롯한 정부·여당 인사뿐만 아니라 야당에까지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내무부 관리들은 총리가 시도지사회의에 참석한 것이 처음인 것 같다고 밝혔다.이날도 총리는 원래 참석멤버가 아니었는데 전날 최형우내무부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참석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총리는 사석에서 선거와 관련한 얘기들을 많이 한다.『내년의 단체장선거 때까지 총리직에 있을지 확신할수는 없지만이번만큼은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고 총리실 관계자들은 전한다. 그는 지난 89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을 그만둘 때를 회고하면서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말한다. 그때 그는 동해재선거에 출마한 여·야후보들을 모두 고발하는 「기개」를 보였다.그러나 과열된 선거전은 가라 앉지 않았다.『선거가 끝난 뒤 노태우대통령이 내가 고발한 당선자를 청와대로 불러 격려하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고 회상한다.그는 결국 선관위원장직 사퇴서를 던지고 말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김대통령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다.잘못이 있으면 고치겠다는 의지에 있어서는 김대통령과 이총리는 난형난제로 평가된다. 이들 두사람의 의지가 실천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총리직은 대통령직보다는 덜 정치적이며 이총리는 정치권과 그리 깊은 인연이 없다. 선거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무차별 제재하는 「악역」을 총리가 맡고 대통령은 반발하는 정치세력으로부터 총리를 보호하는 그림을 그려본다. 이총리는단체장선거를 관리하는 가장 중립적인 내각을 이끌 적임자같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 한장의 사진/박재범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국방부는 최근 김영삼대통령의 중국방문을 수행한 이양호합참의장이 북경 국방부 외사국에서 중국군 장만년총참모장과 기념패를 주고 받으며 환하게 웃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자 크게 고무돼 있다. 그저 의례적인 행사의 사진 한 장이지만 그것이 신문에 실린데 대해 국방부 관계자들은 의미를 달리 부여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는 자국의 군 고위관계자 사진이 공개되는 것을 금기로 여기기 때문에 국가간의 정치 또는 군사외교때에도 반드시 상대국측에 「사진 비보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91년 노태우대통령의 방중때 수행한 이필섭합참의장이 중국군 지도자와 악수를 나누며 사진을 찍었으나 중국측이 사진의 비공개를 강력히 주장,사진을 공개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 중국이 태도를 바꿔 사진공개문제에 대해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은 것은 중국이 휴전협정 관계국이지만 6·25때 총부리를 맞댔던 앙금을 씻고 공식적으로 과거청산을 위한 작업에 돌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춘 것으로 군정보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또한 중국과 한국간 군사적 교류의 가능성까지도 함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즉 중국지도자들이 한국쪽에 종전에 비해 상당폭 마음이 기울어 있으며 군사측면에서도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상황이 조성되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방부 정보관계자들이 한장의 사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군 정보관계자들은 『공개정보가 극히 적은 공산주의 국가의 경우 지금까지 사진 한장,글자 한자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왔으며 그로부터 추출한 정보가 일정 기간이 지난뒤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뒤늦게 판정된 일이 많았다』고 말하고 있다. 「제비 한 마리가 찾아 왔다고 봄은 아니다」라는 서양속담도 없지않으나 「한 장의 사진」이 한·중군사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북핵 대화해결 강조 가장 인상적”/김대통령 방중 4일…현지 평가

    ◎민자 “성공적”/민주 “비판적”/“「국수대통령」 근검정신 본받아야”/우리기업 간판·광고 부쩍늘어 「한국붐」 김영삼한국대통령의 방중에 대해 중국의 고위관리들은 물론 일반주민들도 상당히 우정어린 마음으로 지켜본 것 같다.강택민국가주석이나 이붕총리등 중국지도자들이 김대통령과 나눈 대화내용을 지켜보면 서방지도자들을 만나서 사무적으로 흥정을 벌이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그저 이웃에 사는 수십년 지기에게나 할 수 있는 정도로 마음을 완전히 터놓고 속엣말을 나눈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것이 북경시민들의 일반적 반응이다. 유씨라고만 밝힌 한 택시기사는 천안문광장에 걸린 태극기를 가리키며 『저게 어느 나라 국기냐』고 묻자 즉각 『한국의 김영삼총통(대통령)이 방중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한 후 『한국사람들은 돈이 많다』고 중얼거렸다.이강이라는 한 대학생은 『한국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자기와 같은 성씨를 가진 민족을 중국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면서 『그래선지 이번 김대통령 행사에 대해서도 이웃사촌 같은 느낌으로 지켜봤는데 핵문제를 대화로 풀어나가자고 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에는 보통 1년에 60명도 넘는 국가원수 또는 서방총리등 최고통치자들이 다녀간다.그래서 일반시민들은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하는 경찰차를 보면 『또 왔구나』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게 보통이다.그런데도 김대통령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그 이유에 대해 한 젊은이는 중국 일반주민들 사이에는 김대통령이 『국수 한그릇 대통령』으로 잘 알려져 있다면서 『우리 중국도 그같은 근검절약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김대통령이 취임후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토록 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며 검약정신을 솔선해 보인 것은 『중국주민들이 중국정부에 가장 바라는 것이기에 큰 감명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 탓인지 중국국제방송국 「조선말방송」에서는 1년반전 노태우대통령 방중 때와는 달리 김대통령의 육성을 그대로 내보내기도 하고 29일 방송의 경우 20분 뉴스시간중 김대통령에 관한 뉴스를13분이나 보도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여줬다. 중앙방송의 김형직기자는 『이번 김대통령의 방문은 실질업무를 추진하는 실질방문으로 양국관계가 실질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일반주민들은 양국간 경제협력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문화협정을 체결해 본격적으로 각 분야간 교류의 길이 공식적으로 열리게 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번 김대통령 방중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틈을 이용해 이곳에 진출해 있는 업체들이 기업홍보에 열을 올린 것도 한 특징.인민일보나 차이나 데일리등 주요신문들에는 연일 한국업체들의 전면광고가 실려 주목을 끌었는가 하면 수도공항고속도로와 북경시내 곳곳에는 입간판 기업홍보물들이 부쩍 늘어 한국붐을 일으키는 데 한몫 거든 것으로 이곳 주민들은 보고 있다.
  • 6공 핵개발 추진/서수종의원 주장

    노태우전대통령이 재임 때인 지난 91년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 독자적인 핵무기의 연구를 추진하려 했으나 미국측의 반대로 포기했다고 민자당 정세분석위원장인 서수종의원이 28일 밝혔다. 당시 서동권안기부장의 비서실장이었던 서의원은 이날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시 한국의 정보기관이 미국에 앞서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플루토늄을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히고 『이에 따라 노대통령이 자주국방태세등과 관련,핵연구를 추진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의원은 그러나 『핵무기 연구를 위한 별도의 추진팀은 없었다』고 밝혔다. 서의원은 노전대통령의 핵연구 구상이 어떤 이유로 중단됐는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으나 『당시 대덕 원자력연구단지를 감시하던 미국측 요원(과학관)이 평소에는 출퇴근을 했으나 갑자기 상주를 시작했다』고 말해 미국측의 반대로 핵개발이 무산됐음을 시사했다.
  • 김 대통령 출국인사 요지

    나는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일본과 중국을국빈자격으로 공식 방문합니다. 세계화의 조류속에서 오늘의 국제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나라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상호의존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특히 UR이후의 새로운 세계무역질서는 무한경쟁에 접어들고 있습니다.이러한 시대변화속에서 한·중·일 세나라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의 두번째와 세번째 교역국입니다.중국은 우리의 해외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경제의 세계화 추세속에서 산업구조와 그 발전단계가 다른 세나라가 협력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세나라는 상호 보완적인 협력과 제휴를 통해 각기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또 이번 방문에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세나라가 협조할 방안에관해 깊이 있는 협의를 가질 것입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우리의 직접 문제일뿐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정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IAEA핵사찰을 성실히 받지 않고 남북대화마저 일방적으로 단절하여 한반도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심지어 전쟁불사 등의 극언으로 우리 국민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간의 굳건한 안보협력 체제아래 우리는 저들의 어떠한 도발도 단호히 물리칠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저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저들이 언제라도 자세를 바꾸어 대화에 응해올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둘 것입니다. 나는 이번 순방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두나라의 협력을 구할 것입니다.한·중·일 세나라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위해 각기 해야할 몫을 가지고 있습니다.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매우 긴요한 일임을 두나라 지도자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더이상 지구의 변두리 나라가 아닙니다.문민시대를 열고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은 21세기의 중심국가중의 하나로 떠오르고있습니다.우리앞에 다가온 태평양시대의 새로운 질서형성에 적극 참여하고 기여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자부심과 함께 사명감을 가집시다.개혁과 국제화로 우리의 꿈을 실현합시다.인류공영과 새문명 창조에 기여하는 나라를 만듭시다. ◎일왕 만찬사 귀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책에 밝혀지기 이전의 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그리고 귀국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달돼 우리의 선조들은 귀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이와 같이 양국이 오랫동안 밀접한 교류를 하던 중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었습니다.본인은 몇년전 이러한 점에 대해 매우 슬픈 마음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도 변치않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전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 국민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기위해 노력하여 왔습니다. 최근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양국민들의 우호협력관계가 여러분야에서 진전되고 재작년 가야문화전을 비롯한 한국문화통신사 사업이나 작년 대전 국제박람회등 양국국민을 잇는 유대가 굳건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한 양국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더 강화시켜 미래에의 길을 개척해가야만 합니다. 「신한국 창조」와 일한 양국관계의 강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계시는 대통령각하의 금번 방일은 양국장래에 있어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 대통령 답사 나는 우리 두나라가 마음을 열고 내일을 향해 서로 협력하는,진정한 선린우호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귀국을 방문했습니다.양국관계는 금세기초 역사의 거센 바람과 격랑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속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한일관계가 열리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우리 두나라 국민이 이러한 자세로 여러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가면 틀림없이 새로운 선린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될 것입니다.우리 두나라는 새로운 세대를 여는 동반자로서 상호협력해 나가야 할 역사적 소명을 띠고 있다고 믿습니다.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의 확고한 의지와 경험은 새로운 아시아,새로운 태평양,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류의 도정에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두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통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아시아속의 한일,세계속의 한일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걸맞는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통해 21세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장정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과거사 관련 일본측 주요사과발언 발언자 일시·장소 발 언 내 용 히로히토일왕 84년9월6일 금세기의 한시기기에 있어서 양국 전두환대통령 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방일만찬사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 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아키히토일왕 90년5월24일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 노태우대통령 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 방일만찬사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 의 념을 금할수 없음 가이후총리 90년5월24일 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 노태우대통령 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 방일회담 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 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함 호소카와총리 93월11월6일 과거 우리의 식민지지배시절에 한 경주정상회담 반도의 여러분들에게 예를들어 모 국어교육 기회를 빼앗거나 타국언 러을 강제로 사용케하거나 창씨개 명이란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중 군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등 각 종 문제가 있었음.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일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며 이번기회에 다시한 번 진사드림 아키히토일왕 94년3월24일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김영삼대통령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 방일만찬사 었음.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 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국민과 흔들리지 않은 신뢰와 우정을 쌓기 위해 노력해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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