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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연방제」 양보 시사”/방북 미연구원

    ◎“「한민족공동체」안 수용 표명”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자신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남한에서 수용되지 않을 때는 그 대안으로 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이 제안한 3단계 통일방안 또는 노태우전대통령이 제안한 「한민족 공동체」방안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9일 평양을 방문한 셀리그 해리슨 미카네기재단 수석연구원이 23일 영남일보에 보낸 서신에서 밝혀진 것으로 해리슨 연구원은 이 서신을 통해 『김주석이 「남한이 자신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 거부감을 보인다」면서 이같은 대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 「8·15대회」들러리회담엔 반대/북「광복절정상회담」추진설 정부시각

    ◎평양의 통일전선전술 연장 판단/2개월이나 남아… 시간벌기 시각도 남북정상회담시기가 주목되는 가운데 북측에서 오는 8월15일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 김일성북한주석과 면담한 미키 무쓰코여사가 정확히 어떤 발언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미키 무쓰코여사는 일요일인 지난 19일 김주석가족과 점심을 같이 한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보도가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미키여사를 동행한 손녀가 김주석이 남북정상회담시기와 관련,8월15일이라고 말했다고 한 것으로 알려져 북측이 8·15 광복절에 즈음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만일 이같은 외신보도가 사실이라면 카터 전미대통령을 통한 북한의 조건없는 남북정상회담제의의 순수성이 크게 의심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경우 북한이 줄곧 주장하고 있는 「8·15민족대회」행사의 일환으로 정상대좌를 갖겠다는 저의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북한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이는 결국 북한의 종래의 통일전선선전술의 연장선상이라는 설명이다. 북한은 과거 6공정부 때도 야당대표 및 재야인사들과 함께 노태우전대통령을 민자당총재자격으로 초청하는 등 이와 유사한 기도를 한 바 있다.이같은 북한의 남북대화방식은 우리측 당국과 비당국을 갈라놓으려는 차원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성격의 대남분열책에 다름아니라는 분석이다.때문에 우리측은 당국 대 당국의 대화가 아닌 이같은 유형의 대화방식에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일관된 방침을 견지해왔다. 이는 또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정상회담을 현시점에서 무려 2개월이후에 개최함으로써 시간을 끌어보자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북측의 진의는 정상회담절차를 논의하기 위한 우리측의 28일 예비회담제의에 어떤 「공식반응」을 보일 것이냐에 따라 확인될 것이다.다만 「8·15대회」참관성격의 정상회담제의가 구체화될 경우 북측이 우리측을 진실한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고 다른 목적을 갖고 「들러리」로 세우려는 저의가 분명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 경우 카터전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중재는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남북간의 불신의 골만 깊이 파는 역기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 남북정상회담 추진 경과/81년1월 전전대통령 첫 공식제의

    ◎김대통령,93년 2월 취임사서 표명/김일성,90년 방북대표에 처음 언급 남북한정상회담이 우리측에 의해 공식제의된 것은 81년1월 당시 전두환대통령에 의해서다.그러나 그에 앞서서도 막후에서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이 이끌던 자유당정권은 「북진통일」이 국시였다.남북정상회담은 상상조차 못하는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남북대화의 기운이 일었지만 정상회담 개최논의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어 등장한 박정희대통령의 「5·16정부」는 처음 반공을 강력히 내세우다 보니 정상회담추진이 어려웠다.72년에 들어서야 남북조절위가 열렸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특사 사이에 남북정상회담논의가 비공개로 있은 것으로 알려진다.박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공개적인 운을 뗀 것은 집권말기인 79년1월이었다.그는 연두회견에서 『남북한당국이 어떤 시기·장소·수준이든 조건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남북정상회담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긴 했지만 직접표현에는 신중을 기했다. 전두환대통령은 80년 정권을 잡자마자 정상회담개최에 집념을 보이기 시작했다.81년1월 국정연설에서 「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안,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의사를 밝혔다.전대통령은 거의 매년 8·15 경축사등을 통해 북한이 회담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북방외교를 가장 큰 목표로 내건 노태우대통령은 전대통령보다 남북정상회담에 더 열심이었다.노대통령은 88년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며 김일성주석과 만날 뜻을 피력했다.또 88년10월 유엔연설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의제까지도 소상히 밝혔다. 김영삼대통령은 최초의 「문민정부」답게 남북정상회담에 접근하고 있다.김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사에서부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획기적 전제아래 정상회담을 제안했다.올해 들어서도 취임 1주년회견에서 남북한정상회담의 조기개최의지를 천명했다. 「5공」과 「6공」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정통성 확보의 가장 효율적 수단으로생각한 듯 비밀협상을 통해 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5공」 때는 장세동안기부장,「6공」 때는 박철언청와대특보가 나서 북한의 고위당국자와 해외에서의 만남 혹은 상호방문등으로 깊숙한 논의를 진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북한에 대한 대대적 경협이 정상회담개최의 대가로 제시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당시 정부의 노력은 북한측의 기만적 태도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북한은 해방직후부터 최고당국자의 만남을 거론해왔다.하지만 그것은 모든 정당·사회단체대표들의 회담으로 우리 내부를 교란시키려는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었다.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가끔 정상회담의사를 비췄으나 무게가 실리지 않은 듯했다.지난 90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 대표에게 정상회담의사를 밝혀 기대를 부풀게 했으나 역시 구두선으로 끝났다. □남북한 정상회담 관련 일지 ▲81년1월12일=전두환대통령,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제의(국정연설) ▲81년6월5일=전대통령,남북한당국최고책임자간 직접회담제의(평통정책자문회의 개회사) ▲81년7월1일=북한금일성주석,우리측 제의 거부 ▲88년2월25일=노태우대통령,김일성과 대화용의 표명(대통령취임사) ▲88년8월15일=노대통령,김일성과 회담제의(8·15경축사) ▲88년10월18일=노대통령,평양방문 회담용의표명(유엔총회연설) ▲93년2월25일=김영삼대통령,김일성과 회담용의표명(대통령취임사) ▲93년5월25일=북한 강성산총리,특사교환통한 정상회담논의제의(대남전통문) ▲94년2월25일=김대통령,핵문제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의사천명(취임1주년회견) ▲94년6월16∼17일=김일성,남북정상회담 수락의사표명 ▲94년6월18일=김대통령,김일성주석 제의 즉각수락
  • 제12차 전직정부수반회의 참관기/김학준

    ◎“북한 핵 갖게 해선 안된다” 한목소리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제12차 전직정부수반회의(IAC)에는 영국의 캘러헌 전총리,서독의 슈미트 전총리,일본의 후쿠다 전총리,캐나다의 트뤼도 전총리,호주의 프레이저 전총리,네덜란드의 반아트 전총리,브라질의 사니르 전대통령,잠비아의 라운다 전대통령,코스타리카의 아리아스 전대통령,그리고 한국의 노태우전대통령 등 20여명의 전직 국가원수 또는 정부수반이 참석했다.또 미국의 키신저 전국무장관,미국의 맥나마라 전국방장관,중국의 황화 전외무장관,러시아의 브루텐스 전대통령보좌관 등 10여명의 전직 장관급 인사들이 특별객원으로 참석했다. 이 회의는 세가지 의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오늘날 세계정세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평가」,「새로운 세계적·지역적 국제기구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옛 공산권에 있어서 중앙통제경제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따른 문제점들의 해결방안」등이 그것이었다. 이 회의의 특별객원으로 노전대통령을 수행했던 필자에게 이 회의는 하나의작은 유엔총회처럼 비쳤다.지난날 일정한 시기에 각각 자기나라의 국정을 책임맡았던 세계적 정치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깊이있게 토론하는 가운데 해법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회의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등장한 것은 북한의 핵문제였다.제1차 본회의가 열리자마자 의장인 슈미트 전서독총리는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전체에 대해 큰 위협을 주는 심각한 사태』라고 선언한 뒤 노전대통령의 의견을 물었다. 노전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에 집착하는 동기와 북한 핵개발의 현황을 설명한 뒤 대처방안을 제시했다.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외교적 승인과 경제적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외교카드론」,그리고 북한이 자신의 체제유지에 대한 위기감에서 생존의 보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생명보험론」등.외교계와 학계에서 제시되고 있는 다각적인 해석들을 모두 짚어본 뒤 『결국 현재의 시점에서는 국제공조체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북한에 대해 단계적인 제재조처를 포함한 강력한 대응을 보여야 한다』고 매듭지었다. 캘러헌 전영국총리가 전적인 공감을 나타냈다.그는 김일성이 북한주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함과 아울러 대한민국에 대한 「공갈적 협상」을 시도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분석한 뒤,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은 핵무기 개발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그는 자신이 가진 정보로는 북한이 아무리 늦게 잡아도 내년 후반기까지는 핵무기를 손에 넣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서방세계의 강경한 공동보조가 긴요하다고 주장했다. 트뤼도 전캐나다총리는 반론을 제시했다.강대국들이 갖고 있는 핵무기에 대해서는 왜 말을 하지 않고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만 흥분하느냐는 취지였다. 이에대해 참석자들의 거의 모두가 반론을 폈다.우선 사르니 전브라질대통령은 김일성체제의 「악마적 성격」을 지적했다.김일성은 히틀러나 다름이 없는 광신적 교조주의자이며 자신이 위급해지면 핵무기도 쓸위인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개발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키신저 전미국무장관도 김일성에 대한 강경대응론을 제시했다.베트남협상에 직접 참가했던 자신의 경험담도 섞어가면서 그는 공산주의자와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과시」라고 역설했다.『이쪽에서 뭔가 약하게 보이는 자세를 취하면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을 무자비하게 활용한다』고 경고한 그는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황화 전중국외무장관은 중국정부의 공식입장에 맞게 제재반대론을 폈다.김일성의 특이성격과 북한체제의 타성에 비춰볼 때,제재를 가하면 반드시 무리하게 대응할 위험성이 따르게 되므로 계속해서 대화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프레이저 전호주총리는 남북한과 미­중의 4자회담안을 제시했다.특히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북한에게 줄 것은 주고 핵개발은 포기시키도록 설득하는 길을 찾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결론은 북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단계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났다.회의 마지막날 발표된 공동성명은 바로 그 결론을 제4항으로 채택했다. 북한 핵 문제는 이 회의의 두번째 의제인 「새로운 세계적·지역적 기구들의 미래 역할」에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노전대통령은 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치열해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특히 북한 핵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핵 확산의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해 아시아에서도 유럽안보협력회의와 같은 회의의 소집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그 전초 단계로 자신이 지난 88년 유엔총회에서 제의했던 남북한 및 미­중­러­일의 6자 회담을 적절한 시기에 개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연설해 공감을 얻었다.
  • 노 전대통령 귀국

    노태우 전대통령이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열린 제12회 전직국가수반회의에 참석한뒤 13일 상오 김포공항으로 귀국했다. 노전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는 지난 92년 발효된 남북한비핵화선언을 남북한이 실천할 것과 북한이 이 선언을 지키지 않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지 않으면 유엔의 제재가 불가피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
  • 증인 절반 “소재 불명”… 신문 성과 의문/상무대국조 이모저모

    ◎조전회장 “정치자금 제공설은 모략”/국조법개정 움직임에 오늘 일단 마감 상무대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벌이고 있는 국회 법사위는 8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조기현전청우종합건설회장을 시작으로 30명의 증인·참고인 신문에 착수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날 여야영수회담에서 거론된 사실을 내세워 국정조사 관계법이 개정될 때까지 국정조사를 잠정중단하기로 방침을 세움에 따라 이번 국정조사는 9일의 증인·참고인 신문을 끝으로 사실상 마감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조사가 계속됐더라도 조씨를 빼고는 핵심증인인 서의현전조계종총무원장을 비롯,절반 가까운 증인·참고인이 소재불명등의 이유로 출석요구서를 받지 못한 데다가 출석요구서를 받은 증인·참고인 가운데서도 일부가 불출석할 것으로 알려져 순조로운 신문이 이루어질지가 미지수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날 조씨에 대한 신문은 차수를 변경,9일 새벽까지 서울구치소 청사 회의실에서 진행. 조씨는 이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상 피고인 신분인 증인이 원한다면 비공개로 할 수도 있다』는 현경대법사위원장의 설명에 공개로 해달라고 자청한 뒤 시종 거침없는 자세로 답변. 조씨는 특히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사과를 하면서도 정치자금 제공설은 고소인인 이동영대로개발사장과 자신을 사업관계로 배반한 이갑석·김광현전청우부사장의 터무니없는 모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 ○…조씨는 변호인을 방불케하는 함석재의원(민자)의 1시간30여분에 걸친 질문에 『이부사장으로부터 지난 89년 10월부터 91년초까지 이봉삼 명의의 수표·어음 21억1천만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청와대관계자나 정치인들에게 준 일은 없다』고 항변. 조씨는 『노태우전대통령으로부터 청우측에 공사를 주라는 메모가 전달됐다는 것과,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정구영 당시 청와대민정수석에게 1억원을 주었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이라고 일축. 그는 이진삼전육군참모총장에게 청우가 특허를 가진 라크공법을 채택해 준 대가등으로 3천만원을 비롯 휴가비,자녀학비등으로 6억5천만원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냐는 함의원의 질문에 『참모총장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 몰라도 그분의 자녀 학자금까지 내가 신경쓸 처지가 못된다』고 부인. ○…정기호의원(민주)은 조씨가 일사천리로 정치자금설을 부인,초반부터 김을 빼자 『함의원의 장시간 질문은 우리 법사위의 관례에 어긋난다』면서 발언권을 빼앗은 뒤 『무자격업체인 청우가 로비도 부탁도 없이 공사를 따냈겠느냐』는 「상식론」을 앞세워 뒤집기를 시도.
  • “시재원 동화사지원 특혜 아닌가”/「상무대국조」 대구시 문서검증

    ◎야의원들,노전대통령 지시여부 추궁/검찰에 넘긴 핵심 5개 문건 검증 못해 상무대 의혹사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벌이고 있는 국회 법사위는 7일 대구시와 동화사를 방문,조기현전청우종합건설회장이 횡령한 공사대금 1백89억원 가운데 논란의 핵심인 통일대불 시주금 80억원의 행방과 내무부·대구시가 34억원을 특별지원한 배경등을 집중조사했다. ○…함석재·박희태·강신옥·박헌기(이상 민자),정대철 정기호 나병선(이상 민주),유수호(국민)의원등 8명으로 구성된 조사반(반장 함석재)은 이날 하오2시 대구시청에 도착,내무부 특별교부세및 시세의 동화사 지원근거,공사비 집행지원요청서,사업도면·사업계획서등 대불공사관련 3종류,10여건의 문서를 검증. 정대철·나병선의원 등은 『내무부특별교부세 26억8천만원및 대구시세 8억8천만원을 보수공사도 아닌 신축공사에 특별지원한 것은 노태우 당시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냐』고 지원배경에 의혹을 제기. 조해령대구시장은 이에대해 『통일을 기원하고 지역개발및 관광진흥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당시 행정책임자들이 전통사찰보존법,대구시보조금관리조례 등에 근거해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뒤 『노전대통령이 지원을 지시한 문서상의 흔적은 없다』고 답변. 그러나 민주당의원들은 『당시 대구시와 동화사에서 공사진척상황을 청와대 이모과장에게 수시로 보고했다는 정보가 있다』(나병선의원) 『시의회의 심의조차 없이 내무부로부터 5차례나 지원을 받아낸 것은 정부 고위층의 각본을 입증하는 것』(정기호의원)이라고 주장. ○…하오4시부터 시작된 동화사 문서검증에서는 대구시에 제출한 사업집행현황보고서등을 빼고는 통일약사대불건립 시주자명부,대불공사 경리장부,공사대금 지출장부,공사집행계획서등 핵심문서 5건이 모두 검찰에 제출된뒤 회수되지 않아 검증에 실패. 무공주지스님은 『현철스님이 지난 4월 서울지검에 조사받으러 가면서 3∼4차례에 걸쳐 특별회계장부등 대불관련서류들을 모두 가져갔다는 실무자의 보고를 받았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설명. 이에 정대철·정기호의원은 『검찰의 압수수색대장에 그런 장부가 없고 임의제출때 끊어주는 보관증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서의현·현철스님등이 조작된 장부를 은닉했을 것』이라고 주장. 무공스님은 공사비규모와 관련,『91년 당시 대불 외형공사에 75억원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판단,정부보조금 34억8천만원을 확보한뒤 나머지는 서의현전총무원장이 구해왔다』면서 『서전원장은 그 출처에 대해서는 함구했다』고 설명.또 『공사비 추가소요액은 통일대전공사 22억원,좌대조각비 23억원등 모두 1백55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최근 보고받았다』고 언급. 그는 이어 『이 지역 교구장으로서 의혹의 전말을 파악해나가겠다』면서 『그러나 80억이라는 거액의 행방을 산사의 수도승에게 추궁하는 국회의 양식도 의심스럽다』고 속세의 간섭에 불쾌한 표정. 그러나 야당의원들은 『국방예산을 횡령한 이적행위자의 돈이 불사에 들어왔다고 믿을수 없다』(나병선의원) 『불교계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대금장부 회수및 자금입출금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유수호의원)면서 협조를 당부.
  • 노 전대통령 출국

    노태우전대통령은 오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동안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전직국가수반회의(IAC)제12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4일 하오 출국했다. 퇴임이후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는 노전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북한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을 촉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는 13일 귀국할 예정이다.
  • 노 전대통령 오늘 출국/독 IAC총회 참석

    노태우전대통령이 오는 7일부터 10일까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전직국가수반회의(IAC) 제12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4일 하오 출국한다.
  • 대통령의 식성(청와대)

    식성에 관한 한 김영삼대통령의 국제경쟁력은 1백점이다. 서울·중부보다는,맵고 짜고 젓갈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을 좋아하는 남도출신들이 외국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남해안 섬출신이면서도 어디를 방문하건 그나라 고유음식을 즐겨 먹는 김대통령의 식성은 「국제화시대의 외교적 축복」이라 불러도 좋을듯 싶다. 김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을 앞두고 외무부선발대는 청와대의 「훈령」하나를 휴대했다.『모스크바와 타슈켄트에서 무리하게 한식을 준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불편이 있더라도 영빈관에서 제공하는 현지음식만을 먹겠다』.외무부 선발대는 김대통령의 자연연령을 감안,상식선에서 조개류와 돼지고기를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만을 러시아 외무부에 전달했다. 대통령의 음식을 가리지 않는 식성으로 외무부의 외국방문 준비가 한결 수월해진 셈이다.지난 3월달에 있었던 중국방문 때도 같은 원칙이 지켜졌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대통령의 식성을 「외교적 축복」이라고 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음식을가리지 않음으로써 외국방문중에도 대통령이 국내에서 처럼 원기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대통령의 건강과 컨디션은 정상외교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사항임은 물론이다. 두번째는 한식을 준비하느라 겪었던 현지공관의 번거로움이 없어졌다는 점이다.지난날 대통령의 외국방문 때는 공관직원들의 부인이 모두 동원돼 대통령 내외를 위한 음식준비에 몰두해야 했었다.공관에서 본국에 음식재료 공수를 요청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여러가지 메뉴를 미리 연습하다 보면 음식만들러 외국에 왔는지 외교하러 왔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나오곤 했었다. 현지 영빈관에 한식냄새를 퍼뜨려 다른사람들을 어렵게 만드는 비외교적 행동을 안하게 됐다는 점도 다행이다. 청와대 관저의 주방팀도 김대통령 부부의 「관대한 식성」으로 모처럼 괜찮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이들은 전직대통령의 식성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지만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두환전대통령 부부는 부인의 입맛이 다소 까다로워 전전대통령이 『그냥 먹어두라』고 부인을 달래는 쪽이었다고한다.부인이 주방에 전화를 걸려고 하면 전전대통령이 말렸다는 것.노태우전대통령 부부는 양쪽 다 미식가 스타일어서 주방팀을 긴장시키는 경우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들린다. 김대통령 부부는 아직 한번도 음식에대해 짜다 싱겁다거나,맛이 있다 없다에 대해 논평을 한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통령이 음식을 가리지 않고,대식가란 점은 청와대 입주전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민주산악회 등산을 다니던 시절 김대통령은 산에 올라 고기를 구워먹은 뒤,찌개와 밥으로 식사를 한다.이어 하산하기에 앞서 라면을 끓여 한그릇을 다시 비우곤 했었다.동행하던 젊은 기자들도 대개는 밥을 먹고나면 다른 음식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도 김대통령은 라면을 후식으로 처리했다.나이를 뛰어넘는 건강 비결중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점치게 하는 부분이다. 외무부가 돼지고기를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역시 가리는 음식은 아니다.초기 민주산악회 시절에는 산에 언제나 가져간 것이 삼겹살이었다. 중국방문 때 대통령 숙소였던 조어대는 기자단과의 오찬에 허연 돼지고기가 섞인 상어지느러미탕을 내놨다.많은 사람들이 돼지고기와 상어지느러미의 보기드문 조합에 잠깐 망설이고 있는 동안 김대통령은 벌써 깨끗이 그릇을 비웠었다.
  • “대선 정치자금 제공 사실무근”/야,노 전대통령 출금조치 요구

    ◎상무대구조 답변·질의/김 법무,“입증자료 전혀 발견못해”/의원들,수사 축소·은폐의혹 추궁 상무대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벌이고 있는 국회 법사위원회는 26일 김두희법무장관으로부터 상무대공사대금 횡령사건 수사결과 보고를 듣고 이 자금의 정치권 유입의혹에 대한 질의를 벌였다. 김두희법무장관은 『김광현전청우종합건설부사장이 군검찰에서 조기현전회장으로부터 「14대 대선때 민자당 후보에게 10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진술했으나 사실무근임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김장관은 이어 『김씨의 진술에 대해 조씨는 그같은 말을 한 사실이 없으며 도리어 김씨가 공사책임자로 문제가 생겨 도피하다 조씨를 모함하기 위해 거짓 진술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장관은 조씨가 횡령한 1백89억원의 사용처에 대해 『동화사 대불공사 시주금 80억원,법회비 45억원,빌라등 구입비 20억원,기타 개인용도로 44억원을 사용했으나 정치자금으로 유입됐다고 인정할만한 자료는 발견하지 못했다』고밝혔다. 이에 대해 의원들은 시주금 80억원이 다른 용도로 전용되었고,법회비 45억원은 선거운동자금의 성격이 짙으며 개인용도 44억원과 업무추진비 34억원은 정치자금으로 제공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병선,강수림,강철선(민주),유수호의원(국민)등 야당 의원들은 『참고인 21명의 진술에서 전·현직 정치인과 고위관리들의 정치자금 수수의혹이 제기되었는데도 수사를 하지 않았느냐,아니면 수표추적등을 하고도 사실을 은폐 축소한 것이냐』고 따졌다. 정대철,강철선의원은 『지난 21일 국민은행 서여의도지점에서 검찰이 이갑석씨 명의의 계좌에서 빠져나간 3천3백만원짜리 당좌수표를 조사했다』고 주장,조씨가 횡령한 1백89억원을 조사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정대철의원은 『특검단에서 조사한 참고인들의 진술에 노태우전대통령의 관련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노전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요구했다. 야당 의원들은 또 검찰이 압수한 청우측 금전출납부 3권과 수사기록등의 제출을 거듭 요구하고 『검찰은 소추에 영향을 미치는지여부만 판단할 수 있지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는 재판부의 권한』이라면서 『이미 소추단계는 지났으므로 검찰은 반드시 문서검증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의 박지원대변인은 이날 국방부및 검찰·법원이 거부하고 있는 수사및 재판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진삼전육군참모총장을 즉각 소환하라고 촉구했다.
  • 새국면 맞은 「상무대국조」 이모저모

    ◎「수표추적」 등 양보… 돌파구 마련/“본질밖의 사안싸고 대립 불필요” 판단/민주,사업 특혜­국방부 축소의혹 추궁 상무대사건 국정조사가 조사 3일째인 25일 국방부측에서 상무대이전사업에 일부 특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조사절차를 둘러싼 갈등도 민자당의 양보로 해소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날 국회 법사위가 이병대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벌인 질의답변에서는 재판관련 서류의 제출문제및 상무대 이전사업과정의 특혜여부,국방부의 사건축소의혹등에 대한 공방이 핵심이었다.민주당측은 회의 초반부터 『위원회 결의로 이장관으로부터 재판관련자료의 제출을 약속받은 뒤 보고를 듣기로 하자』고 요구,한때 논란을 벌였다. 보고에 나선 이장관은 91년 9월 육군중앙경리단이 청우측에서만 특허를 갖고 있는 LAC공법을 소유한 업체와 공동계약을 맺도록 한 단서조항은 위법이라고 밝혔다.이장관은 이진삼당시육군참모총장이 이를 직접 지시했음도 시인했지만 그 자체가 불법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또 청우측이 과도한 공사지분을 갖게 된데는 육군중앙경리단의 「중재」가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 특혜를 간접적으로 인정했다.입찰참가 때 제출해야 하는 「공동도급협정서」를 계약 때 내도록 임의조정한 사실도 덧붙였다. 이장관은 또 락크(LAC)공법을 입찰전제조건으로 변경한 것과 관련,『청와대측에서 지시했거나 메모가 전달됐다는 근거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고 노태우전대통령과 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의 개입설을 부인했다. 이장관은 이어 『상무대 특감의 조사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은 물론 청와대 대책회의를 열거나 상부지시를 별도로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방부가 이러한 불법및 특혜를 알고도 정치인의 연루 때문에 이를 축소 또는 은폐했는지에 대한 공방이 계속됐다.이장관은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줬다고 하더라』는 「하더라」만으로는 로비및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규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민주당의원들은 「하더라」의 내용을 자세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의 강수림 정대철 나병선의원등은 『5부 합동조사 때 임명룡국방부설계담당관이 LAC공법 채택은 청와대와 국방부 시설국의 지시였다고 군검찰부에서 진술했는데도 요약서에서 고의적으로 뺐다』고 주장했다. 정기호의원(민주)은 『검찰이 조전청우회장으로부터 청와대 고위관계자및 정치인들과 관련된 진술을 받은 뒤 7차례나 청와대측 주재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축소은폐의혹을 제기했다.정대철의원은 『2백27억원이 대선전에 증발됐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뭐냐』고 추궁했다. ○…그동안 수표추적의 방법및 증인신문에 대한 여야의 공방은 이날 민자당이 거의 양보함에 따라 일단 타결됐다.계좌및 수표추적과 관련해 민자당은 일단 은행측에 관련자료의 제출을 요구,그 자료를 검토한 뒤 미흡하면 추가자료를 요구하든지 현장방문을 하자는 방침을 철회했다. 민자당의 이같은 방침선회는 크게 두가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하나는 문서검증및 수표추적등을 둘러싸고 국정조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본질을 벗어난 주변사안을 놓고 민주당과 대립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여기에 여야 영수회담을 3일 앞두고 좌초위기에 있는 국정조사에 새로운 국면전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성의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착한 분이…” 애도 행렬/고 심명보의원 빈소 주변

    ◎“너무 열심히 일한게 탈” 추모 민자당은 25일 참으로 침통했다. 심명보의원의 별세로 고인을 추모하는 분위기 일색이었다. 특히 치열한 경쟁,책임과 의무 때문에 인간적인 측면이 다소 외면되기도 하는 정치사회에서의 허무감마저 감도는 것 같았다. ○민자 분위기 침통 한 당직자는 며칠 앞서 세상을 떠난 서수종의원까지 두 의원의 타계로 치러야 하는 보궐선거문제가 거론되자 『아직 장례도 안 지냈는데…』라면서 추모분위기에 연이어 닥쳐오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이날 민자당의 고위당직자 간담회에서는 『참으로 선한 사람이었는데…』라며 고인의 인간적인 풍모를 추모하는 얘기들이 주로 오갔다. 김종필대표는 『천성이 순하고 덕이 충만한 분이셨다』면서 『그렇게 착한 분이 어떻게 그리 빨리 갈수 있느냐』고 애도했다.고인의 서울 법대 동기동창이자 민정당시절부터 정치를 함께 했던 이한동원내총무는 『87년 대통령선거등을 치르면서 너무 열심히 일하고 또 불가피하게 과음을 한 탓에 숙환을 얻은 것 같다』면서 『정말 애석하기이를데 없다』고 아쉬워했다. ○“가족장으로”… 유언 심의원은 임종직전 『주변에 부담을 주지 말라』면서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촐히 치를 것을 유언했으나 이총무등이 『4선의 현역의원인 만큼 국회장으로 치르는 것이 예의』라고 가족들을 설득,26일 국회장으로 결정됐다.민자당은 이수담총무국장 박보환원내총무보좌역등을 빈소인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보내 장례절차를 돕고 있다. 25일 고인의 빈소에는 김영삼대통령,노태우·전두환·최규하전대통령,이만섭국회의장,김종필민자당대표,이기택민주당대표,김동길국민당대표,이시윤감사원장,김주인헌정회장등이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다.특히 이날 상오 조문한 노전대통령은 『심형,너무 애통해…』라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청와대측에서는 박관용비서실장,이원종정무수석이 이날 하오 빈소를 방문,조의를 표했다. 이어 이영덕국무총리 최형우내무 김숙희교육 남재희노동 김우석건설 서상목보사,오린환공보처 서청원정무제1장관과 이한동총무 이세기정책의장 강삼재 정재철 김덕용 최재욱 정시채 최병렬 박우병 이상득 이승윤 김봉조 정필근,박주천의원(이상 민자),민주당의 이부영 조순형 박석무의원,새한국당의 이종찬대표,국민당의 김용환의원등이 조문.또 채문식전국회의장,윤길중전민정당대표,황인성전국무총리,정해창전대통령비서실장,서석재전의원을 비롯한 수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전전대통령은 이날 하오 장세동전안기부장,안현태전경호실장과 함께 조문한뒤 의원들과 고인의 자녀들의 장래문제를 의논하는등 애도를 표시했다. ○친화력·성실성 평판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고 민정당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투신,고향인 영월·평창에서 내리 4선을 지낸 고인은 특히 85년 2·12총선 뒤 2년남짓 민정당대변인을 지내면서 남다른 친화력과 성실성을 보여 「명대변인」으로 불리었고 6·29선언후 노대통령의 당선에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다. ○궂은일에 항상 앞장 고인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던져 최선을 다하는 충직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으며 남의 어려운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가혹할 만큼 엄격한일면을 가졌었다.
  • 노 전태통령 퇴임후 첫 외유/퇴임 1년4개월만에… 새달 4일 출국

    ◎독서 열리는 「전직정부수반회의」 참석 노태우전대통령이 오는 6월4일 퇴임한지 1년4개월만에 첫 외유길에 나선다. 같은 달 7일부터 10일까지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전직 정부수반회의」(OB서미트)에 정회원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한 것이다. 노전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초청장을 받고 측근들과 여러차례 논의하는등 고심을 거듭한 끝에 최근 참석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한때 검토했던 미국과 중국 방문은 취소하고 13일 곧바로 귀국하기로 했다.수행팀은 김학준전청와대특보 통역 수행비서등 3명만으로 하고,부부동반이 관행이지만 부인 김옥숙여사도 함께 가지 않는등 「단촐하게」 다녀올 계획이다.
  • 이 총리­현장 공무원 25명/「국정좌담」 3시간

    ◎“「복지」 늘려 「복지부동」 없애야”/업무량 느는데 인원축소 웬말인가/출장비 현실화… 탁아시설 있었으면/언론,비위공무원만 부각… 문제있다 이영덕국무총리는 20일 삼청동 공관에서 중앙행정부처및 서울시의 6급이하 공무원 25명으로부터 2시간 50분동안 현장의 의견을 들었다. 이날 모임은 이총리가 취임한 뒤 신설된 「국정좌담회」의 첫번째 행사로 노태우전대통령시절의 「국민과의 대화」를 개선한 것이다.「국민과의 대화」는 지난해 8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신한국 창조와 금융실명제 설명회」로 명칭이 바뀌었었다. 「국정좌담회」는 전임 이회창총리 재직때 기획됐다.이전총리는 「국민과의 대화」가 지역유지등 기득권층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개선을 지시했다. 정부는 가까운 시일 안에 2차로 수원 또는 대전에서 시·군의 계장및 면사무소사무장등을 대상으로 좌담회를 가질 예정이다.다음은 이날 좌담회에서 나온 주요 의견들이다. ▲정세곤(6급·강동구청 기획예산과)=고등학생인 아들로부터 「아버지의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부끄럽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권오렬(6급·경제기획원 대외경제총괄과)=국장·과장 뿐아니라 우리들도 일정 분야의 전문가들인데 이런 점이 인정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형재(6급·농림수산부 국제협력담당관실)=행정업무가 고도화·복잡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등 공무원조직을 축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규윤(6급·재무부 특수금융과)=7∼9급 공채시험에도 행정고시처럼 기수를 매겨 동기간의 연대감 형성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권달근(6급·외무부 총무과)=5급 공채인원과 6급 승진인원의 비율을 적절하게 조정해 6급 공무원들이 승진에 대해 예측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종국(6급·상공자원부 중소기업정책과)=해외출장여비를 현실화해달라.현지의 지정호텔비는 1백달러인데 숙박비는 53달러 밖에 주지 않는다. ▲김영옥(여·7급·서대문우체국)=직장 탁아시설의 설치,출산 무급휴가제도,육아휴직제도를도입했으면 한다. ▲박영부(6급·내무부 행정과)=언론에서 감사원의 비위공무원 적발 발표때 숫자만 크게 보도해 사기가 떨어진다. ▲이건방(6급·법무부 검찰1과)=언론이 의욕적인 수사활동을 인권탄압으로 비난할 때 섭섭함을 느낀다. 이날 황영하총무처장관은 좌담이 끝난 뒤 공무원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는 연금 축소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이총리는 맺음말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대로의 사람이 된다는 내용의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소개하면서 『정부는 공무원들이 평가하는대로의 정부가 된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가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총리는 또 『앞으로 복지불동」이라는 말이 아예 없어지도록 추방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 「정 명훈」과 「명훈 정」(객석에서)

    서양사람들이 동양사람의 이름을 부르는데는 두가지 기준이 있는 것 같다.정치지도자 이를테면 「마오저퉁」「덩샤오핑」「김영삼」「노태우」등은 깍듯이 우리식 순서로 부른다. 그런데 음악가의 경우는 예외없이 「명훈 정」「요요 마」「세이지 오자와」다.왜 정치지도자는 「프레지던트 김영삼」이면서 음악가는 「마에스트로 명훈 정」일까. 「정명훈」이나 「명훈 정」이나 그게그거 일수도 있다.그러나 「명훈 정」이라는 호칭의 이면에는 서양사람들이 지금까지 자신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서양음악에 도전하고 있는 이방인들을 향해 쌓아놓은 높다란 장벽이 보이는 것만 같다. 우리는 정명훈을 물론 「정명훈」으로 부른다.서양음악으로 출세한 한국사람이라는 것이다.그런데 서양사람들은 정명훈이 몸만 한국에서 태어났을 뿐 그들이 서양식 전통으로 키워 능력을 인정받게 한 서양음악가라고 생각한다.그가 바스티유오페라의 음악감독이 된 것을 두고 어떤 사람은 『국립극장에 동양사람을 내세운 것을 보면 프랑스사람들은 역시 대범하다』며 엉뚱한 감탄을 하기도 한다.그러나 그들의 뇌리속에 정명훈은 「동양인」이라기 보다는 「서양음악가」다.「명훈 정」이지 「정명훈」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같은 동양음악가에 대한 서양식 관점은 어느 틈엔가 걸러지지 않은채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우리 음악가들의 이름은 제대로 부르면서도 중국사람인 마요요(마우우)는 「요요마」·린쵸량(임소량)은 「쵸량 린」으로,일본사람인 오자와 세이지(소택정이)는 「세이지 오자와」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이미 우리 귀에 익어버린 「요요마」를 당장 「마요요」로 부르자는 것은 억지일수도 있다.그러나 언젠가는 그렇게 불러야 할 것으로 믿는다.우선 우리에게 새로이 소개되는 사람만이라도 제이름을 불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다.오는 23일 세번째 내한연주회를 갖는 대만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린쵸량의 경우도 「쵸량 린」으로 완전히 굳어지기 전에 「린쵸량」으로 고향을 찾아주는 것이 어떨까.
  • 한­러 내일 경제공동위 개최/나홋카공단·무역센터 건립 합의할듯

    제1차 한·러시아 경제공동위원회가 20∼21일 서울에서 열린다.회의에서는 양국간 경협증진 방안 등 상호관심사를 논의하고 나홋카 한국공단 및 모스크바의 코리아 무역센터 건립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한다. 정재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과 에이 엔 쇼힌 부총리겸 경제성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양국 대표단은 20일 양국의 경제협력을 평가하고 분야별 협력문제를 논의하며,21일에는 합의사항 점검 및 합의록에 서명한다. 경제기획원의 배영식 대외경제심의관은 『다음 달 초로 예정된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앞서 열리는 공동위에서는 교역·투자증진·과학기술·건설·임업·통신협력·경제전문가 교류문제 등을 다룬다』며 『이를 계기로 한·러 양국 관계는 교역·투자 뿐 아니라 과학기술,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기반을 다지고 앞으로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전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회의와는 별도로 임창렬 재무부 제2차관보와 프라드코프 러시아 대외경제성 차관은 한국이 러시아에 준 14억7천만달러의 상환문제를 협의한다. ◎수교뒤 정부간 첫 경제회동/김대통령 방러 앞서 가시적 협력 논의 20∼21일 이틀 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한·러시아 경제 공동위원회는 우리나라가 지난 90년9월 옛 소련과 수교(91년10월 러시아가 승계)한 뒤 처음으로 열리는 정부 차원의 대규모 경제 회동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미 92년11월 러시아의 옐친대통령 방한시 노태우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부총리간 경제공동위 설치규정에 서명했고 지난 해 산업회담,과학기술공동위,어업위원회 등 개별적인 회동은 이뤄졌으나,경제현안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공동위는 처음이다. 한·러 교역은 지난 89년 6억달러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증가,지난 해 16억달러(수출 6억,수입 10억달러)로 늘어났다.그러나 우리 기업의 대러시아 투자는 현재까지 무역·수산물 가공·의류분야 등에 국한돼 소규모에 그치고 있다.양국의 경제규모에 비하면 모두 낮은 수준이다. 양국간 경협은 최근 러시아의 경제연건 악화로 다소 부진한 편이다.특히 경협차관 문제는 양국 경협의 발목을잡고 있다.우리나라가 옛 소련에 제공한 차관 14억7천만달러의 원리금 연체분을 러시아가 갚지 못하기 때문이다.한·러 경제공동위가 지금까지 1년6개월 동안 한번도 열리지 못한 것도 이 문제와 무관치 않다. 이번 경제공동위는 오는 6월1일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김대통령의 방러기간 동안 우리 기업의 회장들이 대거 러시아를 방문,현지투자 및 자원개발,기술이전 협력방안을 심도 있게 협의한다.따라서 교역과 투자,과학기술,건설·통신,자원협력은 물론 경제전문가의 교류 등을 통한 다양한 정부차원의 뒷받침이 이번 공동위에서 이뤄지게 된다. 특히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숙원이었던 모스크바의 코리아 무역센터와 나홋카의 한국공단 건립문제가 그동안의 실무접촉을 통해서 해결돼 이번에 발표될 예정이다.다만 경협차관 문제는 별도의 실무회의를 통해 협의하기로 함으로써 이번엔 속시원한 해결책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 오늘 「5·18」 14주년/광주 등 전국서 기념행사

    ◎한총련 2천명 연대앞서 시위 5·18 광주민주화운동 14주년을 맞아 18일 서울과 광주,부산등 전국 10여개 시도에서 시민과 대학생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18 기념식및 국민대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릴 예정이어서 경찰과의 충돌이 우려된다. 경찰은 이에따라 전경 1백33개 중대 2만여명을 동원,광주 망월동 묘역주변등 시위예상지역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미대사관·미문화원·전남도청등 주요시설주변에서 시위대의 점거 및 기습시위에 대비한 경계에 나섰다. 이에 앞서 17일 대학생과 재야단체 회원등 4만여명은 서울,광주등 전국 10개 시·도에서 「5·18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총련소속 대학생 2천여명은 이날 하오8시쯤 연세대부근 연희입체교차로 앞에서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왕복 10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사저로 진출을 시도하다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1시간여동안 몸싸움을 벌였다. ◎광주서 전야제 행사 【광주=최치봉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14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전남도청앞 광장에서는 풍물놀이등 전야제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또 광주망월동 묘역에는 추모행렬이 잇따랐다.
  • 「상무대국조」 주말 시작될듯/민주서 「증인 30명」 민자안 수용

    ◎전대통령·6공인사·의원 제외/조사기간 20일연장 요구… 교착 가능성 여야가 그동안 팽팽한 대립을 보여왔던 상무대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관련,민주당이 16일 민자당의 협상안을 대폭 수용해 전현직 정치인과 6공인사의 증인채택요구를 철회함에 따라 빠르면 주말쯤 국정조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은 이날 상오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국정조사의 증인·참고인 채택범위에 대해 민자당측과 이미 합의한 조기현전청우건설회장과 서의현전조계종총무원장등 30명을 증인및 참고인으로 채택,국정조사를 시작한 뒤 예금계좌및 수표추적 과정에서 혐의사실이 드러나면 관련인사들의 증인채택을 추가로 요구하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전직대통령과 현역 국회의원,6공 고위인사들은 증인및 참고인 채택 대상에서 일단 제외됐다. 민주당은 그러나 철저한 예금계좌및 수표추적등을 위해서는 국정조사기간이 이미 합의한 20일로는 부족하므로 20일을 추가,40일로 할것을 민자당측에 요구하기로 했다. 민자당은 민주당의 당론변경을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되 국정조사기간 연장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총무접촉을 통해 절충해 나가기로 했다. 민자당은 그러나 기본적으로 조사기간의 연장이 어렵다고 밝히고 있으며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아무래도 있을수 없다는 방침이어서 자칫하면 국정조사기간 연장과 전직대통령 조사가능성여부등으로 협상이 또다시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민주당의 김대식원내총무는 『우리는 상무대의혹의 규명을 위해 성역없는 증인채택을 요구해왔으나 민자당이 노태우전대통령과 전현직 정치인및 「6공인사」의 증인채택을 거부하고 있어 일단 이미 합의된 30명만으로 국정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당론후퇴 배경을 밝혔다. 한편 여야는 이날하오 총무접촉을 갖고 국정조사재개를 위한 절충을 벌였으나 조사기간 연장에 대한 이견과 함께 『혐의가 드러나면 전직대통령도 조사할 수 있다』는 민주당측 주장과 『어떤 경우에도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있을 수 없다』는 민자당측 의견이 맞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 민추협/「결성 10돌」… 그 발자취와 역사적 위상

    ◎「어둠」의 시대 “민주”의 외침/84년 YS·DJ “합작”… 5공박해 극복/85년 「2·12총선」서 돌풍… 직선제 투쟁/내일 기념식… 심포지엄 등 열고 「기념 사업회」 계획 80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식및 리셉션이 16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이날 기념식에는 민추협 초기의 지도위원및 후기 상임위원·운영위원과 집행부의 국장·부장급등을 포함해 모두 3백∼4백여명이 참석,여와 야로 나뉜 오늘날의 처지를 떠나 오랜만에 동지애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에 앞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는 기념심포지엄이 열려 장을병성균관대총장의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민추협 역할의 평가와 현대사적 조명」이라는 주제발표와 대학교수·언론인·변호사등의 토론이 벌어진다. 이들 행사를 마련한 「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는 민추협의 공동의장권한대행과 부의장을 맡았던 김상현민주당고문·김명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수석부의장을 책임대표로,이민우전신민당총재와 최형우내무부장관,박종율 조연하 홍영기 김윤식 용남진씨가 준비위원대표로 구성됐다.준비위는 16일 행사를 계기로 「민추협운동 기념사업회」(가칭)를 발족시킬 계획이기도 하다. 민추협은 84년 5월18일 서울 남산의 외교구락부에서 민주화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발족했다. 바로 1년전 이날 가택연금 상태에서 단식투쟁에 돌입,23일이란 장기단식 기록을 세운 뒤 민주화운동의 기회를 찾던 상도동의 김영삼씨가 오랜 정치적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동교동의 김대중씨와 모처럼 손을 잡고 공동의장을 맡았다.그러나 김대중씨는 사형집행정지 상태로 미국에 머물던 시기여서 그의 의장직은 김상현씨가 권한을 대행했다.김영삼씨는 지금 문민정부의 대통령이고 김대중씨는 세번째 대선에서 패배,정계를 은퇴했다. 그때까지도 정치활동 규제에 묶여 있던 인사들이 구성한 민추협은 한달 뒤인 6월 운영위원 64명을 인선하고 민주화투쟁을 정식으로 선언,민주화대장정의 막을 열었다.당시 전두환정권은 사무실에 집기마저들여놓지 못하게 하는등 탄압을 했으며 이 때문에 돗자리를 깔고 회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민추협은 같은 해 9월 헌법연구특위등 17개 부서에 달하는 실무기구를 구성해 정당에 버금가는 조직을 갖추면서 여러 민주세력과 연대투쟁에 들어갔다. 이듬해 1월에는 다음달 2·12총선에서 제1야당의 돌풍을 일으킨 이른바 「통합신당」을 창당,정치활동 재개에 들어갔다.김대중씨는 2·12총선을 4일 앞두고 귀국,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연행돼 가택에 연금됐다가 선거결과에 충격을 받은 「5공」으로부터 한달만에 연금이 해제되면서 공동의장 일을 본격적으로 맡게 됐다. 86년 2월 민추협은 드디어 「1천만명 개헌서명운동」을 선언,직선제 개헌투쟁을 전개했다.87년 4·13호헌선언에 이어 6월10일 노태우민정당대표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던 날 모든 민주세력과 연대해 6·10항쟁을 벌였다. 이같은 투쟁과정에서 민추협에 대한 「5공」의 탄압은 끊임 없이 계속됐다.85년5월 미국문화원 점거사건과 86년2월 직선제 개헌투쟁 때는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87년2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따른 「고문살인및 용공조작 폭로대회」등 일이 있을 때마다 사무실이 원천봉쇄되고 지도부는 수 없이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러나 민추협은 「6·29선언」이후 두 김씨의 대권다툼을 계기로 공중분해돼 3년 남짓의 민주화대장정을 마감하고 말았다. 민추협 참여인사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정계를 은퇴한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가 문민정부의 여야 핵심세력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신상우 황명수 최형우 김덕용 강삼재 번형식 신진욱(이상 민자),이기택 한화갑 이철 홍영기 김영배 신기하 최락도 김종완(이상 민주),박찬종(신정당),양순직의원(무소속)등이 아직 정계일선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이들 말고 이민우 김명윤 박용만 예춘호 김동영 김녹영 문부식 이중재 명화섭 김현규 김창근 김윤식 김충섭 박종태 손주항 최영근 안필수 용남진 박한상 이상민 조병봉 김현수 권오대 김두오 김길준 김창환 송좌빈 이우태 이종남 정채권 정헌주 태륜기 권대복씨 등도 상임운영위원이나 지도위원등으로 참여했던 민추협인사들이다.김광일씨는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김도현씨는 문화체육부차관으로 재직하고 있다.김대통령을 그림자 같이 따라 다니던 청와대의 이원종정무·홍인길총무수석비서관과 최기선인천시장등 이른바 「상도동 가신그룹」들이 민추협 출신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김동영전정무장관과 김녹영전국회부의장은 작고했으나 창립10주년 기념식 때 특별공로패를 받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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