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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전대통령/“「12·12 논란」 관심없다”

    ◎어제 당정회모임서 심경 밝혀/“역사는 거스를수 없는 물결/현정부 잘하니 힘껏 도와야” 노태우 전대통령이 「지난 역사」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12·12사건」 기소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18일 서울 플라자호텔에 헌정회 원로들을 초청,오찬을 나누면서다. 이날 모임은 노전대통령이 지난 1월 헌정회의 원로자문회의 의장을 맡은 뒤 미뤄왔던 상견례를 겸한 정계원로들과의 회동이었다. 최근 입주를 마친 대구 지묘동 아파트에 머물다 이날 서울에 올라온 노전대통령은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약속시간인 낮12시 정각 오찬장에 들어섰다. 최근 변호사개업을 한 정해창 전비서실장과 손주환 전정무수석이 수행했다. 노전대통령은 야당의 「12·12 기소투쟁」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들에게 『관심없다.지나간 일이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완곡하게 드러냈다. 이어 미리 와있던 윤치영 전공화당의장,안호상 전문교부장관,백남억 전공화당의장,윤길중 전민정당대표,이민우 전신민당총재,김주인 헌정회장등 15명의 참석자들과 악수를나눈 뒤 오찬인사말을 시작했다. 「12·12」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을 의식한듯 노전대통령은 『사회일각에서 현대사를 왜곡,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분명히 역사는 도도히 흐르는 물결이며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나라 헌정사를 잘 지켜준 선배들 덕에 오늘이 있다』는 요지로 인사를 마친 노전대통령은 『나는 호가 없으나 주변에서는 중용을 지키는 집이라면서 용당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일부 참석자들이 『재임 때 「물태우」 소리를 들었으니 수당도 괜찮겠다』고 농을 건넨 뒤 『그러나 물도 고요한 중용을 의미한다』고 치켜 세우자 노대통령은 웃으면서 화제를 현실정치로 돌렸다. 『재임 때 클린턴 아칸소주지사의 방문을 받고 헌칠한 인물을 칭찬해 주었더니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전화로 감사를 표하더라』고 밝히고 『정상외교란 말한마디부터 중요한 것이며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잘하고 있으니 선배들이 많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 “민심 어수선하다는 것 알고 있다”/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 회견

    ◎인사·정책혼선 국민지적 겸허히 수용/개혁 실종이라니?… 소리없이 지속될것/외교안보팀 윤리대결… 「갈등」으로 보는건 곤란/불평하는 노재봉의원등 포용해야지요/부산시장 출마 전혀 불고려… “우전서울시장 천거” 언론보도는 무책임 □대담=이중호정치부장 청와대의 박관용 비서실장은 김영삼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고 있는 사람이다.김대통령의 그림자와 같이 늘 곁에서 김대통령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따라 움직인다.서울신문은 창간 49주년을 맞아 김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을 통한 신한국 건설의 성과와 현위치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전망등을 들어보기 위해 박실장을 만났다.대통령비서실장이 된 뒤 그는 한차례도 정식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고 했다.그런 박실장이 서울신문의 창간기념일(11월22일)을 축하하는 뜻에서 처음으로 이중호 정치부장을 청와대 집무실에서 만나 한시간남짓 개혁문제를 중심으로 김대통령 주변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통령께서 안 계실 때의 느낌은. ▲신경이 훨씬 더 쓰이고 무거운 책임감이느껴집니다.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까지 있게 되고 위보다 아래에 신경을 쓰게 되지요. ­새정부 개혁의 성과와 미흡한 점은 무엇이라 봅니까. ○“개혁에도 리듬”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우리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엄청난 부분을 개혁했습니다.특히 깨끗한 정치를 위한 선거법 개정,군의 사조직정비,금융실명제 등은 굉장한 개혁입니다.김영삼대통령이 아니면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개혁은 우리 정권의 기반이요,철학입니다.개혁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개혁실종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개혁에도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비리 관련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개혁이 아닙니다.생활개혁도 있고 경제개혁도 있어요. ­그래도 개혁실종이라는 일부의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개혁을 주도하는 처지에서 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대외적으로 드러내놓고 하는 개혁,즉 비리관련자를 처벌한다거나 실명제등은 소리나는 개혁입니다.의식개혁,기초질서확립,중소기업대책등은 소리 안나는 개혁입니다.개혁의 실종은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최근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국정전반이지요.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뀔 뿐입니다.요즘은 성수대교 붕괴사고후 각분야의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에 신경을 많이 쓰십니다.60년대 개발붐을 타고 공사를 많이 했는데 기술부족과 자재부족으로 시공부실이 많아 안전사고가 많을 수 있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흐트러진 민심과 국가기강을 바로잡는게 주요 관심사지요. ­시중여론이나 대통령의 인기도를 자주 보고하십니까. ○인기 연연 않을것 ▲인기는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초기에 너무 인기 높았던 것이 비정상적이랄 수 있지요.구체적 통계는 없으나 성수대교 이후 떨어졌을 것으로 봅니다.인기도 중요하나 너무 연연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민심수습대책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까. ▲성수대교붕괴라는 대형참사를 당하니까 국민 전체가 받는 충격이 큽니다.민심이 어수선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전반적 관리를 잘못한데 대해 책임을 공감합니다.민심을 일거에 수습하는 묘책은 없습니다.끊임 없는 개혁을 통해 하나하나 시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그 이유는 국민들이 현 정부를 정통성이 없다든지 도덕성이 없다,정경유착했다고 비판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정책혼선 혹은 인사잘못,능력 없다든지의 비난은 시정할 수 있습니다.성실히 하고 국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한일은행장 경질로 제2의 사정이 시작된게 아니냐 하는 관측도 있는데. ▲언론에서는 뭘 만들어 내려고 하는데 우리는 일반론적으로 사심없이 엄정하게 하겠다는 것일 뿐입니다.은행장 그 사람 어떤 일로 나갔는지 모르나 한사람 일로 제2사정 운운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실장께서 청와대 비서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비서실 장악문제에 대해 어떤 얘기가 있는지 모르나 나는 비서실장 자리에 임명받았을 때 과거처럼 청와대는 권부가 아니니 실장의 권한 이하도 이상도 아닌 적절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과거에는 명령 하나에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물리적 힘이 가해졌습니다.그것은 안기부로 대표되겠지요.비서실장에게는 대통령과 수석 사이의 가교역할이 맡겨져 있을 뿐입니다.대통령의 보좌기능은 수석 각자가 하는 겁니다.매일 수석회의를 주재하는데 일사불란하다고 생각합니다.내부적으로는 비서실 운영에 별다른 얘기가 없습니다.일반 국민은 물론 언론까지 30년 넘게 군사정권에 부지불식간에 길들여져 있다고 생각됩니다.지휘봉 하나로 움직이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일반의 시각이 이처럼 흐르는 것은 군사문화의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가는 과도기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봅니다.청와대 비서실이 문제 있다면 구체적 사안을 제시해 보세요.다만 내가 어느 계보출신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행정부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대통령중심제여서 행정부와의 갈등은 없습니다. ­이회창 전총리시절에는 문제가 있었지요. ▲그것은 특정인의성격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외교안보팀 안의 갈등은 여러군데서 지적되는데. ▲갈등이라는 용어는 절대 부적절합니다.통일원장관 외무장관 외교안보수석 모두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그러나 집행에는 이견이 없지 않습니까.과정에서 다를 뿐입니다.회의도 한번 안한 상황에서 개인 생각을 물으면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아요.통일안보조정회의라든지 한번 모이면 통일됩니다.특히 학자출신이 많아 회의에서 논리대결이 많은데 좋아 보입니다.그것을 갈등이라고 몰아붙이면 언론기피증이 생깁니다.장관이 언론을 기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때로는 혼선으로 비쳐져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 믿으면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국민들의 걱정은 알고 있지만 인식부족 측면이 있어요. ­최근 노재봉의원 발언 등 여권 내부가 삐거덕거리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 당이 걸어온 길을 국민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민자당은 3당 합당을 한 정당입니다.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당내에서 불평을 했다 해서 항명 혹은 파동이라며 쫓아내면 문민정부가 아니라고 봅니다.큰 걸음으로 포용해야 겠지요. ­민주계가 행정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내각에 민주계 장관은 3명 밖에 없어요.청와대수석은 2명이고 비서실장까지 3명입니다.개별적으로 능력이 있다 없다고 얘기할 수는 있어도 그 정도 인원이 국정의 문제점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지요. ­숫자는 적더라도 실세 아닙니까. ▲모두 잘한다고는 생각 않습니다.그러나 민주계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차지한 자리가 별로 없어요.너무 민주계만 타켓이 되고 있는 측면도 있어요. ­공직자의 복지부동을 타파할 특별한 대책은 없는 겁니까. ▲무사안일에 대한 지적은 지난해 개혁과정에서부터 나왔습니다.그러나 다수 공무원은 열심히 합니다.감사원 감사등 상당히 체크해 보았습니다.일부 공무원에게는 무사안일이 발견되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사정활동이 있으면 공무원이 위축되는게 사실입니다.그래서 미래지향적 사정을 할 예정입니다.과거에는 돈주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했습니다.요즘은 돈을 안받으니 불가능한 것은안되는 것입니다.그에 대한 불만도 있고 실제 복지부동도 있겠지요.정말 복지부동이 있다면 그들을 엄벌하는게 과제입니다.그밖에도 발탁인사를 하려 하고 있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시험 없이 승진시키는 방안,복수직급제로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등 공무원 사기진작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공무원 사기진작이 복지부동을 없애는 길이라고 봅니다.처우개선도 노력하고 있으나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안타까운 점이 많습니다. ­내년 지방자치제선거를 앞두고 지방행정 조직이 흔들리는 것 같은데.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것 때문에 실제로 무사안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누가 시장 군수 되느냐 하고 눈치보고 따라다니느라고 업무를 등한히 하는 것 같습니다.그러한 선거의 과도기적 혼란은 다 있는 것입니다.그것을 최소화해야 합니다.후보자를 놓고 눈치보면 가차없이 엄단해야 합니다. ­통일전문가로서 통일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는지. ○통일 절박한 문제 ▲과거 국회 통일특위위원장,남북국회대표 등을 맡았을 때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습니다.이 자리에 오니 나의 얘기가 마치 대통령의 뜻인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어 자제하고 있습니다.통일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절박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노태우 전대통령,김대중씨 등 유력인사들의 자제가 정치를 하거나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대통령 아들이라고 정치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봅니다.얼마나 자질이 있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입니다.그러나 구체적인 면면은 잘 알지 못합니다. ­대통령께서 돌아오신 뒤 특별한 예정이 있습니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총회를 통해 느끼신 세계화에의 철학을 구체화시켜야 되겠고 또 국회문제나 이완돼 있는 민심수습책에도 골몰하실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야권과 서로 이해부족인 것 같고 그래서 국회가 파행으로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은 야당사람들과 정치를 했던 분입니다.누구보다 그들의 처지를 알고 이해하고 있습니다.야당과의 대화도 마다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야당이 자기들 안에서 일어난 복잡한 상관관계로 생긴 일을 가지고 여당 혹은 국회 전략으로 표출할 때는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황낙주 국회의장이 여야 영수회담의 주선을 공언했는데. ▲사전교감은 없었으나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를 피한 적이 없습니다.그러나 여건은 조성되어야겠지요. ­민주당은 「12·12」 관련자 기소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담판자리」 안될말 ▲그게 조건이 될 수 있습니까.이 기회에 말 한마디 하겠습니다.두분의 만남은 국정심의 과정에서 각자 생각을 개진하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무엇을 담판하는 것이나 쟁취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조건을 붙이고 선물을 주고 받고 하는 것이 대표자 면담이 아닙니다.여야 대표자 면담이 흥정거리가 돼서는 안됩니다.무엇 하나를 얻고 안 얻고,쟁취한다 않는다 라는 고식적인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국회의 정상화 전망은. ▲여러 현안들을 법정기일 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강하면 국회가 정상화되지 않겠습니까.국회문제는 두 교섭단체가 있으니까 잘 되어갈 것이고 국민의 뜻에 따라 정상화될 것으로 믿습니다. ­부산시장 출마설이 있던데요.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이자리에 올 때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밝히고 왔습니다.다만 대통령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우명규 전서울시장을 천거했다는 소문은. ▲언론에서도 이미 파악했겠지만 무책임한 보도입니다.경상도 말로 「택도 아닌 기사」를 써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해명을 하자니 구구하고 가만 있자니 답답하고….우씨 자신이 8개월짜리 서울시장을 내심 흔쾌하게 받아들인 것도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사생활에 불편은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그러나 이자리에 올때 사생활을 사실상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아침마다 수영하고 일요일 상오 북한산에 2시간가량 등산하는 것으로 피로도 풀고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제 사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 영수회담 절충 난항/여야,기존입장 고수

    여야는 17일 장기공전되고 있는 국회의 정상화를 위해 김영삼대통령과 이기택 민주당대표의 회담을 추진하고 있으나 민주당이 「12·12 사건」 관련자에 대한 기소유예 조치의 철회를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태 지역 3개국 순방을 마치고 19일 귀국하는 김영삼대통령은 오는 21일 낮 3부요인과 여야대표를 청와대로 초청,순방성과를 설명할 예정이지만 이대표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여권의 대야협상 창구인 서청원 정무제1장관은 이날 『정국 경색을 풀기 위해 그동안 이기택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고 밝히고 『그러나 현재로서는 영수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50대 50』이라고 말해 양쪽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한편 민자당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12·12 관련자에 대한 처리는 검찰의 고유권한이므로 정치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방침을 재확인했다. 민주당은 이날 이대표 주재로 최고위원 고문및 당12역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의 서훈박탈을 비롯,12·12 관련자의 기소 관철 말고는 다른 협상조건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여야 대변인,TV토론 출연/「공전국회」 싸고 줄다리기 설전

    ◎“「12·12」 법적판단 검찰에 맡긴것”/민자/“가해자가 맞고소… 재심판 마땅”/민주 여야의 「입」들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요즈음 정국에 대해 처음으로 마주앉아 설전을 벌였다.민자당의 박범진 대변인과 민주당의 박지원 대변인은 18일 밤11시45분에 방영된 MBV­TV 「추성춘 시사진단」프로에서 국회 공전사태등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와 같은 여야 대치정국을 주제로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사회자인 추해설위원이 「12·12」에 물려 국회가 보름째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을 『국민부재의 후진국 정치』라고 진단했다.이에 박범진 대변인은 『법적 판단과 처리는 검찰에,정치적 평가는 역사에 맡기는 것』이라고 강조하자 박지원 대변인이 『검찰은 죄가 있으면 처벌하는 곳』이라고 맞받았다. 박범진 대변인은 92년10월14일 김대중 당시 민주당대표가 정기국회에서 용서와 화해를 천명했고,「5공청문회」 때도 노태우 전대통령과 「3김씨」가 『이미 청산하기로 웃으며 합의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박지원 대변인은 『그때는 가해자들이 사과했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문민정부에 와서 맞고소까지 하는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재심판」을 주장했다.또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이래 가장 나약한 대통령이 될 것이고 이 때문에 노재봉·허화평 의원등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라고 민자당의 내부분란을 겨냥하기도 했다. 생활정치가 실종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국회를 보이콧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박범진 대변인),『민생현안은 순간이지만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은 영원』(박지원 대변인)이라고 맞섰다. 이어 민주당이 「초강수」로 나오고 있는 것을 놓고 박범진 대변인은 『특정인(이기택 민주당대표)이 약한 당내의 입지를 키우기 위한 당권투쟁의 성격』이라고 몰아붙였다.이에 박지원 대변인은 『우리는 민자당처럼 비열한 짓을 않는다』면서 『자신의 입신을 위해 3당합당하고 집권하지 않았느냐』고 흥분,「말다툼」은 급기야 「위험수위」로 치달았다.박지원 대변인은 민주당의 「강수」에 대해 『청와대및 민주계의물밑접촉에서 양해된 사안』이라고 말하자 박범진 대변인은 『우리를 흔들기 위한 흑색선전』이라고 반박했다. 국회의 재개전망에 대해 박범진 대변인은 『민주당이 여론을 이겨내지 못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으나 박지원 대변인은 『김영삼 대통령이 귀국하면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하는등 상대방의 「양보」만을 바랐다. 이처럼 얘기가 아무 접점을 찾지 못하자 사회자는 『다음주에도 국회가 공전되면 유권자들은 아마 화를 낼 것』이라는 말로 토론을 마무리지었다.
  • 노재봉발언 그 이후의 파문(임춘웅칼럼)

    여당인 민자당 소속의 노재봉의원이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현정부의 통일정책을 신랄히 비판하고 나선 이후 민자당에서는 그의 발언을 새삼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고 본인도 다른 자리에서 더 이상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치 않겠다고 해 정치적으로는 일단락된 듯해 보인다. 그러나 노의원의 발언은 그 이후에도 정치권과 관계없이 신문잡지들에서 계속해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한 나라의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의 발언이란 정치적 비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발언의 시점 또한 미묘해서 그 배경을 알아보려는 뉴스 감각 또한 작용하고 있을 법하다. 이 칼럼에서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노의원 발언이 엉뚱한 방향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발언을 액면대로 평가하지 않고 평소 보수 쪽인 사람들은 노의원이 할말을 했다고 보고 있으며 반면에 진보 쪽이라 할수 있는 논자들은 있을수 없는 망언이란 시각을 갖고 있다.다시 말하면 노의원 발언에 보수와 진보의 편가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현상이 노의원이 내심 의도했던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바람직한 결과라 할수 없다.이런 현상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현정부의 통일정책이 기존의 우리 정부정책과 비교해 현저히 진보적이란 설명이 있어야 한다.노의원이 이와 관련,지적한 것은 『우리를 말살하려는 김일성에게 이인모 노인을 생일선물로 바쳤다』는 것이 전부인데 한 미전향 사상범을 북한에 돌려보냈다는 사실이 이 정권의 통일정책이 진보적이란 증거는 될수 없는 것이다. 또 노의원이 현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하려면 그가 정치특보로,대통령비서실장으로,국무총리로 재직했던 노태우정권의 통일정책과 김영삼정권의 통일정책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데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노태우 전대통령은 취임직후인 88년 이른바 「7·7선언」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북방외교」를 전개했다.그것은 노전대통령이 지금도 스스로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업적중의 하나다. 간접교역방식의 남북경제교류를 공식화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며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것도,남북 유엔동시가입을 실현시킨 것도노정권 때의 일이다.지금까지 남북문제의 기초가 되고있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도 91년 노정권 때 서명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현정권은 남북문제에 관한한 진전시킨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핵문제로 인해 대북문제가 노정권 때 보다 더 경직되고 더 보수화한 측면마저 없지않다.지금 논란이 되고있는 제네바의 북한­미국간 핵합의란 이 정권의 통일정책의 결과가 아니고 북한과 미국간의 핵게임의 결과였다.우리의 통일정책은 기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정권 때인 72년 「7·4공동성명」 이후 기본골격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노의원의 비판이 다분히 감정적이라는 것은 그의 발언에 사용된 선정적인 표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자기가 몸담았던 정권의 통일정책과 크게 다를게 없는 정부정책을,그것도 여당 소속의원으로 참아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으로 매도하는 것은 논리 이전에 한 공인의 양심의 문제에 속한다. 더구나 그것이 보수와 진보논쟁의 대상일수는 더욱 없는 일이다.
  • 한­호/교역규모 연45억$/김 대통령 방호계기로 본 양국관계

    ◎풍부한 자원바탕 대한교류 활발/61년 대사급 외교… 교민3만여명 호주는 「마지막 대륙」으로 일컬어지는 자원의 부국이다.호주는 헌법상 영국 여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이지만 국가의 장래가 유럽보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결부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이에 따라 미국·일본·한국·동남아국가연합(ASEAN)과의 협력을 매우 중요시 하며 경제와 안보면에서 이 지역의 다자협력체제를 추진하고 있다.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와의 교류관계는 생각보다 오래돼 이미 1889년 최초의 호주 선교사가 한국에 건너와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장로교회 선교활동을 전개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이후 1948년 호주대표가 유엔 한국임시위원회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총선거 실시와 정부 수립에 기여했으며 50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53년에 시드니 총영사관이 개설됐으며 61년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양국 정상간의 교류는 매우 활발했던 편이다.67년과 68년 고 박정희대통령이,88년 노태우전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했으며 전두환전대통령도 83년 10월 방문 예정이었으나 미얀마에서의 「랑군사태」로 취소한 바 있다.호주에서는 67년 홀트 수상과 82년 프레이저 수상,84년과 89년 호크 수상이 방문했다.또 노동당 출신으로 공화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키팅 현 수상도 지난해 한국을 다녀갔다. 호주에는 지난 10월 현재 모두 3만2천7백40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80년대 들어와서는 매년 1천명을 전후한 숫자가 호주에 이민을 가고 있다. 지난해 호주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출은 11억8천5백만달러,수입은 33억4천7백만달러로 무려 21억5천2백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가전·섬유·기계등의 수출이 저조해진 반면 석탄,철광석등 원자재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호주와의 합작투자는 모두 43건에 2억4천6백만달러 규모로 현대·포항제철·삼성등이 호주에서 석탄을 채취하고 국내에 호주의 기술을 들여와 농장을 운영하는 사업이 주종이다. 호주는 74년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75년 북한이 호주의 친남한 정책에불만을 품고 주캔버라대사관을 일방적으로 철수하면서 주평양 호주대사를 추방함에 따라 사실상 외교관계를 중단한 상태이다.
  • 여 “단독국회” 확인/야 「강공」 내부 제동

    ◎「12·12」 대치정국 열이틀… 민자·민주 동향/“사안성격상 절충여지 없다” 외길 수순/민자/“투쟁목표 뭐냐” 일부의원 「가투」에 이의/민주 여야는 15일 원내총무회담을 갖고 국회 정상화 문제를 논의했으나 아무런 절충점 없이 회담이 결렬되는등 서로 「제갈길만 가겠다」는 식의 팽팽한 대립양상이 계속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기약 없는 투쟁」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와 주목되고 있다. ▷총무회담◁ ○…이날 상오 황낙주 국회의장의 주선으로 의장실에서 열린 원내총무회담에서 민자당의 이한동총무는 『남은 정기국회 회기가 한달밖에 안되고 예산안 심의기간도 촉박하므로 모양새 좋은 국회는 틀렸지만 이제라도 국회에 들어와 달라』고 요청. 그러나 민주당의 신기하총무는 『12·12문제는 기소 말고는 절충이나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전달할 수 밖에 없다』고 맞서 결국 회담은 20분만에 결렬. 회담이 끝난 뒤 이총무는 『오늘 단독국회 얘기는 일체 안했으며 되든 안되든 주말까지 막후 정상화노력을 계속하겠다』고 설명. ○…황의장은 총무회담이 끝난 뒤 국회 민주당 대표실로 이기택대표를 찾아가 『국회의 파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야 영수가 한번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이를 주선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피력. 이대표는 그러나 『12·12사건 관련자를 기소하라는 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자는 것』이라면서 『국회정상화보다 기소가 우선』이라고 일축. ▷민자당◁ ○…이날 상오 고위당직자회의에서 16일 당무회의,17일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야당이 이번 주안에 국회에 복귀하지 않으면 단독국회를 강행한다는 당론을 재확인했으며 오는 21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국회처리 안건을 상정하기로 일정을 확정. 이총무는 전날 청와대에서 있은 당정회의 결과를 보고한 뒤 『현재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사항은 사안의 성격상 절충점을 생각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외길수순」을 강조. 이총무는 또 『현안이 있는 상임위는 이번주에라도 정식회의를 소집하되 여의치 않으면 간담회라도 열어 현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고. ▷민주당◁ ○…이대표의강공드라이브에 첫 제동이 걸리면서 당내에 이상기류가 형성되는 조짐이 나타나 주목. 이날 아침 소집된 당무위원과 소속의원 연석회의에서 이협 수석부총무는 『우리당의 처음 주장은 기소유예처분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정권퇴진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등의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도대체 우리당의 투쟁목표는 뭐냐』고 지도부에 반문. 이 부총무는 이어 『민주당은 국회의 반쪽을 책임지고 있는 국민정당으로서 예측가능한 정치를 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전제,『12·12투쟁을 언제까지,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프로그램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 국회 농림수산위 소속의 김영진의원도 이 부총무와 논지는 달랐지만 우루과이라운드(UR)및 추곡수매문제에도 당지도부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구,이대표의 「12·12 투쟁」의지에 김을 빼는 모습. 김의원은 『지금 농촌에는 야당이 12·12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UR나 추곡수매문제등이 묻혀버리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고 전하고 『12·12투쟁에 힘을 더하기 위해서라도 농촌문제를 연계시키자』고 주장,정국의 초점을 「12·12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이대표의 전략에 제동. 한편 민주당 소속의원들은 이날 하오 5시부터 서울의 도심지에서 추가로 제작한 당보를 배포하며 대국민홍보활동을 전개. ◎여야 「정상화」 해법찾기 물밑접촉/채널 풀가동… 접점 “암중모색”/아직 초보적 단계… “「명분」 축적 목적” 분석 민주당의 「12·12사건」 관련자 기소관철 투쟁으로 국회가 열흘이상 공전되고 있는 가운데 여야가 국회정상화를 위한 막후접촉에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같은 움직임은 국회 공전이 3주째로 접어든 지난 13일을 분수령으로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여야의 물밑대화는 국회 공전에 따른 양비론적 비난을 의식한 여권쪽에서 먼저 제의했을 가능성이 크며 접촉 파트너는 여권핵심부와 「12·12」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이기택대표의 측근 의원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좀더 구체적으로 여권쪽에서는 이원종 청와대정무수석과 서청원 정무1장관이,그리고 민주당쪽에서는 문희상 대표비서실장등이 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서장관은 14일 『우리가 그냥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처음으로 여야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 물밑접촉이 시도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서장관의 이같은 발언으로 정가에서는 이대표와 비교적 접촉이 잦은 편인 서장관이 이미 만나봤을 것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의 문희상 대표비서실장은 일요일인 13일 이원종 청와대정무수석을 만나 이대표의 정확한 생각을 전달했다고 밝혀 여야의 물밑대화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이대표도 15일 북아현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쪽에서 만나자고 한다는 보고를 듣고 만나보도록 했다』고 밝히고 『비공식적인 대화를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 말고도 민자당의 문정수 사무총장과 민주당의 최낙도 사무총장이 경색정국을 풀기 위해 두번 만났고 원내의 공식 협상창구인 이한동·신기하 양당총무도 수시로 접촉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황낙주 국회의장도 15일 이대표를 직접 찾아가 국회 정상화 방안을 모색했다. 이같은 징후들로 해서 민주당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국회 안에 「12·12」진상규명특위 설치 ▲관련의원 4명의 의원직 사퇴 ▲전두환·노태우씨의 대국민 사과 및 이들의 서훈박탈 ▲전직 국가원수 예우에 관한 법률개정을 통한 예우 중단등이 「12·12」정국을 풀 수 있는 해법이라는 성급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여야의 물밑접촉은 아직까지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며 신통한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그리고 어느정도 의견접근을 이룰지에 대해서도 극히 회의적이다. 정국경색의 본질을 살펴보면 물론 이대표가 워낙 강공드라이브를 구사하고 있다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이미 연말정국의 최대변수로까지 떠오른 이대표는 의원직 사퇴도 각오한다는 식으로 강경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민자당도 분위기가 강경하기는 마찬가지다.이대표의 요구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민자당은 민주당 주변에서 떠도는 수습방안에 대해서도 『오히려 검찰의 기소번복을 들어주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정도로 아주 부정적이다. 결국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여야는 한동안 끝없는 팽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물밑접촉도 서로 명분을 축적하려는 수순에 그치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 우리기업 302건 36억불 투자/인니 개황과 한국과의 관계

    ◎인구 1억8천만·면적 한반도의 9.5배/양국교역 연30% 증가… 작년 46억불 인도네시아는 비동맹의장국으로서 국제적으로 주요한 사안에 대해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국가이다.특히 이번에 아·태경제협력체(APEC) 지도자 및 각료회의를 주최한 것을 계기로 아·태 지역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49년 우리나라가 인도네시아를 승인하면서부터이다.66년에는 영사관계를 수립했으며 73년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최근에는 우리의 경제발전을 높게 평가,유엔과 APEC,동남아국가연합(ASEAN)등 국제기구에서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북한 핵문제에 대해 인도네시아는 전세계적인 핵비확산 유지차원에서 우리 입장을 소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지만,비동맹의장국이라는 차원에서 북한을 고립시키지 않으려는 양면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두나라 정상간의 교류는 매우 활발했던 편으로 81년 6월 전두환전대통령과 88년 11월 노태우전대통령이 각각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또 수하르토대통령이 82년 방한했으며 92년 9월에는 뉴욕에서 노태우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66년 군 최고사령관 당시 공산당의 쿠데타를 진압,수카르노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실권을 이양받은 이후 6차례 대통령에 당선된 수하르토대통령은 최근 정치적 민주화의 압력을 받고 있으나 경제개발을 위한 경제외교를 추진하는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두 나라의 경제는 최근 5년간 연평균 교역증가율이 30%대로 매우 빠른 증가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지난해 인도네시아에 대한 한국의 수출은 20억9천5백만달러,수입은 25억8천8백만달러를 기록,우리가 4억9천3백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여섯번째 교역국이며 한국은 인도네시아의 4번째 무역상대국이다.올 4월 현재 인도네시아에 대한 우리 기업의 투자는 모두 3백2건에 36억3천5백만달러에 이르고 있다.90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의 진출이 많았지만 91년 이후 전자,합성섬유등 대규모 투자가 증가,기아·선경합섬·제일제당등 우리나라의 주요기업이 진출하고 있다.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기계와 섬유·철강·금속·전자·전기·화공제품이다.또 주요 수입품은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목재·펄프·가죽등이다. 58년 주 자카르타 북한 교역대표부가 설치돼 북한과의 공식관계가 시작됐으며 61년에 주자카르타 북한총영사관이 설치됐다.63년에는 주평양 인도네시아 총영사관도 개설됐으며 64년 정식으로 외교관계가 수립됐다.65년에는 김일성 당시 북한주석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으며 수카르노 전대통령도 64년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 「남북 무관세교역」의 국제공인 모색/「민족 내부거래」인정받기 절차

    ◎“모든 국가 동등대우” 가트규정 걸림돌/동·서독의 전례 따라 정식신청 등 추진 본격적인 남북경협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남북교역을 민족내부거래로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현재 무관세로 거래되는 남북교역이 국제사회의 이의 제기로 제동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우려는 이미 오래전에 제기되어 정부측이 나름대로 은밀히 대응해 온 것도 사실이다.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에서 「남북간 교역을 민족내부교역으로 간주한다」고 밝힌 이후 남북교류협력법 등 국내법체계를 민족내부개념에 부합되도록 제정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규정보다 우월적 효력을 지닌 것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유엔헌장이 분단국의 민족자결권을 인정하고 있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국제무대에서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지는 않았다.섣불리 공론화했다가 국제적 시비의 빌미를 줄 가능성을 염려했기 때문이다.괜히 긁어 부스럼을만드느니 동서독의 선례를 따라 민족내부거래임을 기정사실화한 채 남북교역을 계속하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활성화되어 교역량이 늘어나고 간접교역 위주의 현행 거래방식이 직교역으로 전환될 경우 내부거래 개념의 국제적 공인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될 전망이다. 남북간 무관세 거래의 잠재적 장애요인은 GATT규정 중 모든 회원국들을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최혜국 대우 의무조항이다.다른 나라들이 이 조항을 근거로 왜 북한에게만 무관세 혜택을 주느냐는 식으로 문제삼을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미국이 91년 우리측이 북한에 쌀 5천t을 보냈을 때 『내부거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GATT의 규정을 적용받아야 한다』며 유사사태 재연시 문제삼을 뜻을 시사한 바 있다. GATT협정상 내부거래를 공식 인정받기 위해서는 크게 두가지의 방법을 택할 수 있다.첫째는 독일의 경우처럼 최혜국대우 의무면제를 정식으로 신청하는 방법이다.이를 위해서는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지만 회원수가 얼마 안되던 과거와달리 지금은 1백23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협상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국력을 소모해야만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GATT의 유보조항으로 인정받는 방법이다.이 경우 남북거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국가와 양자교섭을 해야만 하는데 이 교섭과정에서 다른 것을 양보하는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있는게 문제이다.어떤 방법이든 남북교역을 민족내부거래로 인정받기 위한 공식적 절차를 밟는게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가입비준서 기탁때 남북한간 교역이 민족내부거래라는 문구를 명기하는 방안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즉 구서독이 51년 GATT에 신규 가입하면서 동서독간 거래는 민족내부거래임을 공인받은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발상이다.정부는 외무·상공자원부 등 통상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앞으로 열릴 국제회의 등을 통해 남북교역이 민족내부거래임을 공론화해 나갈 복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 허화평의원 의총발언 파문 언저리

    ◎「12·12」관련 여야태도 싸잡아 비난/“야 이간전략에 흔들리는 민자 안타깝다”/허 의원/“소모적 논쟁은 끝내자” 단발성 발언 치부/당 시각 노재봉의원의 발언파문에 이어 허화평의원이 8일 「12·12사건」에 대한 여야의 태도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서 또 다시 눈길을 모으고 있다. 허의원은 이날 민자당 의원총회에서 「과거」에 대한 더 이상의 시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면서 여야를 싸잡아 꼬집어 파장을 일으켰다.민자당은 허의원의 기습적인 발언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의미부여를 자제하면서 파장을 잠재우려는 분위기다. ○…지난 4일 민주당 하근수 의원으로부터 「반란군의원」이란 공격을 받았던 허의원은 이날 신상발언을 통해 그동안의 「12·12」 수사에 대한 심경을 피력.그는 먼저 『노태우 정권에서는 무혐의였고 정승화쪽에 내란음모방조죄가 적용됐던 일이 현 정권에서는 반란죄가 됐다』고 「6공」 때와 상반되게 나온 검찰의 수사결과에 이의를 제기.『5·6공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검찰은 이를 심판할 도덕적 권위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허의원은 이어 『민정당이 반란자들의 정당이라면 민정당이 주축이 된 민자당의 도덕적 존립기반은 어떻게 되느냐』라고 반문.이어 『이 자리에는 주요 증인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김종필 대표등을 겨냥한 뒤 『오랫동안 정치사를 얼룩지웠던 갈등과 반목의 기억을 역사의 대하속에 흘려보내고…』라는 지난 90년 민자당 창당선언문의 구절을 인용.아울러 『정권창출에 동참했던 상당수가 수구보수세력으로,반통일세력으로,반개혁세력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개탄. 허의원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존립기반이 「5공」때 제정된 현행 헌법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맹공.민주당의 강창성의원은 지난 72년 유신계엄 때 보안사령관을 지내고도 마치 민주투사처럼 과거의 전우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5공 청문회 특위위원장이었던 이기택대표와 중진 다수도 과거청산을 약속해놓고 이를 어기고 있다고 비난. 그는 『언제까지 진실규명과 국민여론이라는 구실 아래 과거의 손으로 현재와 미래를 파괴할 것이냐』면서 『한지붕 세가족이 아닌 한지붕한가족이 되자』고 전향적인 자세를 호소.발언 말미에 그는 『국회 공전의 원인을 제공한 검찰 수뇌부에게 책임을 묻도록 총재에게 건의하자』고 주장. ○…이에 대해 민정계 의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한 데 반해 민주계 인사들은 다양한 견해를 제시.황명수의원은 『5공 특위로 이미 끝난 사안이고 노태우씨와 3김씨도 합의한 것』이라고 말해 「12·12」가 더 이상 정치쟁점화가 될 수 없음을 지적.신상우의원은 『용서는 하되 과거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정치역정의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 할 수 없다』고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반형식의원은 『12·12 논쟁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의 분열을 바라는 야당의 전략』이라고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을 요구. 그러나 김종필대표는 『우리는 해서는 안될 일을 되풀이 해서도 안되지만 해야 할 일을 기피하는 것은 더 나쁘다』고 언급. 한편 김덕룡 서울시지부장은 이날 시지부산하 지구당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요즘 말이 많지만 우리가 독재를 하거나 통일을 반대하는 것도아니고 총칼로 권력을 잡지도 않았으니 잘못한 게 없다』면서 『결코 기죽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 당당하게 대응하자』고 허의원의 주장을 반박. ○…의원총회가 끝난 뒤 박범진 대변인은 『이날 회의는 비공개』라고 상기시키고 『여권 내부에서 소속원으로 한 얘기이므로 문제삼을 것 없다』고 「단발성 사안」으로 매듭지을 것임을 시사. 허의원 스스로도 회의가 끝난 뒤 『민자당이 과거문제를 이용하려는 야권의 외풍을 맞고 흔들거리고 있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면서 「항명」이 아님을 강조.또 『검찰이 구습에서 탈피하지 못해 스스로 알아서 정치환경에 판단을 꿰어맞춘 것』이라면서 검찰수사에 여권핵심부의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을 피력.
  • 경수로건설 기술진·물자 “대이동”/경수로 지원과 경협의 함수

    ◎경협·개방 자연스런 유도 계기로 대북한 경수로지원을 위한 국제간의 논의가 활발해져 빠르면 이달말쯤 지원기구인 코리아에너지기구(KEDO)의 구성,운영방안등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3국간의 「경수로회의」가 20일쯤 열리면 대체적인 KEDO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대북한 경수로지원 성사여부가 향후 정부차원의 남북경협에 디딤돌역할을 할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이와 관련,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경수로지원 사업을 남북경협진척의 가늠자로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통일원과 외무부 일각에서는 북한핵문제 해결책으로 나온 경수로지원문제를 「범민족공동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이번 북·미간의 핵타결을 계기로 실질적인 남북경협에 기대를 걸어온 것은 확실하다.「한국형」경수로를 제공하면 우리의 주도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즉,경수로를 제공하려면 우리의 인적·물적자원이 북한에 들어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남북화해는 물론 실질적인 경협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기대해온 것이다. 실제로 경수로지원을 위해서는 우리 기술진이 북한을 방문,경수로지형과 안전성을 분석하는등 타당성조사가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또 기술진만도 연2천여명이 건설현장에 참여하고 공사가 완료된 뒤에도 사후관리,안전점검요원이 상주해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금까지 3차례 가진 정부부처간 경수로지원대책협의회에서는 조만간 한·미 공동으로 사전답사팀을 구성,파북하는데 따른 기술적인 검토를 끝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협의회에서는 또 KEDO지원에는 「현금」보다 설비·인력 등 「실물」지원방침을 굳혀 대북지원에 따른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이같은 기대와는 달리 일각에서는 경수로지원 자체는 제네바합의 이후 북한의 대남태도에서 보듯 남북대화,경협과는 연계되기 힘들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이렇게 분석하는 사람들은 경수로지원계약은 「미국이 KEDO를 대표해 체결한다」는 합의문을 꼽는다.애초부터 이 부분은 북한이 한국을 배제시키기 위한「함정」이란 것이다.또 북한의 「핵이행시간표」가 제대로 이행돼 경수로건설이 착공되더라도 과연 북한이 한국의 주도적인 「기술인력」을 쉽게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다.설사 기술진이 입북하더라도 「한국」의 인력이 아닌 KEDO기술진이 들어가는 것이며 건설인력의 대부분도 북한자체에서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앞으로의 「경수로협상」에서 KEDO에서의 대표권을 미국과 나눠 계약대표권은 합의문대로 미국이,운영대표권은 한국이 갖는 「공동대표제」의 추진을 강력히 관철시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북경협 일지◁ △84·9·8=북한적십자사 수재물자제공 제의따라 물자인수 △84·11·15=제1차 남북경제회담,쌍방교역품목제시 △88·7·7=노태우대통령,남북관계 특별선언(교역문호개방 천명) △88·10·7=정부,간접교역 중심으로 한 남북경제교류 허용 발표 △89·1=정주영 현대그룹회장 방북,금강산 공동개발 등 경협사업발표 △89·2=효성물산,남북직항로(남포∼인천)로 북한산 무연탄 도입△89·7=코오롱상사,북한 대성은행과 처음으로 신용장개설(북한이 최초로 공식 인정한 남북거래) △90·8·1=남북교류협력법 제정및 교류협력기금설치 △90·9=삼성물산,북한산 명태 3천t반입 △91·1=한국산 원산지표시상품 북한에 첫 반출 △91·4=코오롱상사,평양에 양말합작공장 설립(최초의 남북합작사업) △91·7=남한쌀 5천t(6만5천5백가마)북한과 첫 직교역 △92·1·8=코오롱상사,북한산 가방을 임가공 형식으로 첫 도입 △92·1·16=김우중 대우그룹회장 방북,남포공단건설 합의 △92·7·19∼25=북한 김달현 부총리일행,남한방문해 산업시찰 △92·10·6∼9=남포공단조사단 방북 △92·10·14=「남한조선노동당」간첩사건으로 정부,대북경협 당분간 중단키로 △92·10·19=통일원,북한산 한약재 반입신청 승인 △92·12·7=김달현 북한부총리,삼성·럭금·대우에 북한의 4차 7개년 계획에 공식 참여 요청 △93·1·7=쌀이외의 농수산물 남북교역 첫 성사 △93·6·5=정부,미원그룹에 대북 무환거래 첫 승인 △93·6·10=정부·민자당,남북경협 9대과제 선정(직교역확대 교통통신망연결 등) △93·8·28=한국플라스틱조합,북한 신덕샘물 도입계약 △94·3=한국특수선,중국연변항운공사와 공동으로 부산∼청진 직항로 첫 취항 △94·4·19=삼선해운,부산∼청진 정기직항로 취항 △94·6·2=정부,「유엔서 대북제재땐 임가공무역 중단」발표따라 기업들 대북투자계획 전면 유보 △94·6·18=김일성주석 남북정상회담제의및 김영삼 대통령 수락 △94·7·9=김일성 사망으로 정상회담 무기연기
  • 중국,이념보다 평화공존 중시/이붕중국총리 이한회견 문답

    ◎“남북등거리정책은 한반도 안정에 도움/한국기업 수준높아… 포철 못가봐 아쉬움” 다음은 이붕중국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 내용이다. ­제네바 북미합의를 북한이 이행하는데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북한과 미국이 합의를 이룬 것을 환영하며 한반도 정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북한이 자기방식대로 합의서를 이행하는 것을 지지한다. ­정전협정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데 대한 입장은. ▲새로운 체제 수립을 위해 남북한과 관련측들이 참여,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기업들을 방문하는 일정이 많았는데. ▲이번 방한은 주로 경제적 목적이었다.한국의 기업들은 실력과 기술수준이 높았다.일정이 짧아 포항제철등을 보지 못해 유감이다.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남한을 방문했는데 둘 사이의 관계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중국은 이데올로기나 사회제도보다는 평화공존의 원칙을 먼저 생각한다.중국은 반도의 남·북과 다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이 정책이 남북의 정세안정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북한의 경수로 건설지원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에 참여할 뜻은,참여한다면 어떤 부분에서의 역할을 기대하는가. ▲북한이 북미합의서를 이행하도록 하는데 우리 방식으로 지원할 것이다.핵사찰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토록 도모했다. ­북한내 권력승계 작업은 순조로운가,김정일의 건강상태는. ▲북한은 주권국가다.중국이 선린관계를 유지하지만 북한의 내정에 대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측을 설득할 용의는. ▲한반도 정세안정을 위해 남북간의 다단계 대화를 지지한다. ­등소평의 건강상태는,등소평이후의 중국 권력체제는 어떻게 되는가. ▲중국은 이미 강택민국가주석등 3세대 지도자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현재 강주석을 핵심으로하는 지도체제가 단결돼 있다.중국정세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이붕총리 방한활동 뒷얘기/이 총리,서울·제주 오갈때 부인과 팔짱/제주숙소 객실 1백10개로도 모자라 이붕중국총리의 방한은 한반도 주변에서 일고 있는 해빙무드를 맞아 남북간의 화해만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상호입장을 조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중국통역원 서툴러 ○…이총리는 이번 방한에 김일성대학출신의 남녀 1명씩의 공식 통역요원을 대동.이 가운데 이총리의 기자회견 전에 심국방 외교부대변인의 두 차례 기자회견을 통역한 여성 통역원 학효비씨는 「한반도」를 「조선반도」로,남북관계를 「북남관계」로 표현하는가 하면 「인터뷰」나 「컨소시엄」등의 간단한 영어도 해석하지 못해 문제점을 노출.이에따라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이총리의 기자회견 전날밤 통역자들이 용어선택을 올바르게 하도록 주의시키도록 당국자들에게 지시.결국 이총리의 회견에서는 「북남」대신 「남북」,「조선반도」대신 「반도」라는 용어가 사용. ○“이 총리 바느질 잘해” ○…이총리는 서울과 제주에서 비행기를 오르내리며 부인 주임여사와 팔짱을 끼는 등 사회주의 국가지도자로서는 매우 「자유분방한」 몸가짐을 나타내 관심을 끌기도.주여사는 3일 제주도지사가 베푸는 만찬에서 옆자리에 앉은한외무장관에게 『이총리가 지난 48년부터 54년까지 모스크바에서 유학생활을 해 요리와 바느질을 매우 잘한다』면서 온화한 인품임을 자랑했다고. ○신라호텔서 1박 ○…이총리는 제주도에서 90년 고르바초프 러시아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노태우 당시대통령이 묵었던 신라호텔 6층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서 1박.이총리의 일행은 신라호텔의 객실 3백30개 가운데 3분의 1인 1백10개의 방을 차지하고도 방이 모자라 함께 온 50여명의 경제인과 비공식수행원들은 부근 호텔에 묵었다고. ○등소평건강 등 답변 ○…기자회견장에서 이총리는 최고실력자 등소평의 건강상태와 강택민주석과의 관계등을 묻는 질문에 『민감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단뒤 두사람에 대해 「예우」를 갖춰 답변.회견이 끝난뒤 심중국외교부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이 남북관계에만 너무 집중됐던 것 같다』고 가벼운 불만을 표시.
  • 여권인재 풀가동… 국정운용 보강/최병렬씨 서울시장 임명의 배경

    ◎「성수대교 붕괴」 질곡서 조기탈출 겨냥/인사스타일 「의외성」서 「역량 중시」로 변화 김영삼대통령은 여권총동원체제의 카드를 택했다.정권적 위기의식의 확산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이다. 김대통령이 2일 신임 서울시장에 민자당의 중진의원인 최병렬(최병렬) 의원을 임명한 것은 그의 경력을 고려할 때 성수대교 붕괴로 발단된 일련의 국정난맥상을 여권 전체의 인력과 지혜를 모으는 총동원체제로 치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불과 두달 앞으로 다가온 연말의 당정 대개편에서도 구여권과 신여권의 총력가동 메시지는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임명직 서울시장은 정치적으로 그다지 큰 비중을 갖는 자리는 아니다.그러나 성수대교 붕괴,이원종전시장 해임,우명규시장 임명,11일만의 우시장 전격 사퇴파동을 통해 서울시정은 김영삼정부의 국정관리능력과 인사에서의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때문에 김대통령으로서는 신임 서울시장에 총리에 버금갈 정도로 정권의 신뢰도와 국정운영 능력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인물을 기용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었던 셈이다.무엇보다 앞서 그같은 인사를 해야만 성수대교 붕괴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이처럼 상징성이 높은 서울시장으로 최의원을 택했다. 그는 전형적인 「5·6공」 인물이다.언론계출신이지만 「5공」때 민정당의 전국구의원으로 들어가 노태우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던 사람이다.그 기여와 기획력 및 조직장악력등으로 「6공화국」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보처장관·노동부장관을 맡았다. 대단히 정치적이고 정권전위대 성격이 강한 자리들에만 있었던 것이다.이 때문에 그가 김영삼후보의 캠프에서 대통령 당선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그는 「5·6공」,노태우대통령 사람으로 분류돼 왔다. 김대통령의 최의원 발탁은 김대통령의 인사구도가 개혁성·참신성을 강조하던데서 관리능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이는 「5공·6공」등 구여권에 몸담았다는 점이 인사의 제척요인이 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고,동시에 민주계 중심의 인사등용이 더이상 김대통령의 인사기준이아님을 말하는 것이다.소수의 민주계나 개혁적 인물만으로는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다는 판단아래 김대통령은 「세 불리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김대통령은 이번 인선에서 인사스타일면에서도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김대통령이 취임후 보여준 인사스타일은 의외성과 철저한 보안,독단적 점지가 특징으로 꼽혀왔다.그러나 이번 인선에서 김대통령은 비서실의 제도적 장치를 존중하고,자신의 생각외에 일반적 여론과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인선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공개성을 높이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최시장을 임명하기까지 이틀동안 청와대 비서실은 여러사람을 거론하면서 이를 언론에 흘려서 여론을 떠보는 의외의 행태를 보였다.최의원과 김진현 전과기처 장관,이상희 전내무부장관,이재창 전환경처장관등이 여론의 탐색대상에 들었던 후보들이다.이같은 여론 스크린과정을 거쳐 김대통령에게 2명의 명단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사는 국정운영의 밑그림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마련이다.때문에 김대통령 인사의 변화는국정운영의 변화를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의원의 발탁에 정치적의미가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의원의 발탁은 앞으로의 국정운영에서 당의 역할이 현재보다 훨씬 강조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당정협의에서 당의 입김은 보다 강화될 것이며 구여권인사와 정책을 포용하는 노력은 보다 가시화될 것으로 여겨진다.개혁도 중요하지만 관리에 보다 비중이 두어질 것임을 뜻한다. 이번 인사는 김대통령의 국정운영이 개혁위주에서 충실한 관리위주로 들어가는 분수령이 될 것 같다. ◎최병렬 신임 서울시장 일문일답/“책임질일 변명않고 책임지겠다”/“공무원 소신껏 일할 여건 조성 노력” 최병렬 신임서울시장은 2일 국회 본회의장에 있다가 임명소식을 듣고 기자들에게 이끌려 회견장으로 가면서 최근의 사회상황과 전임 두 시장의 「불행」을 의식한듯 『지금 웃을 심정이 아니다.웃는 사진은 쓰지 말아달라』는 주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소감은. ▲솔직히 역부족이라고 생각돼 두렵다.모두가 느끼듯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며 해야 될 일이 산적해 있다.하지만 명을 받은 이상 최선을 다하겠다. ­시장 내정사실을 언제 알았나. ▲오늘 하오 늦게 본회의장에 있다가 통보를 받았다.이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도움이 될것 같지 않다고 정중히 고사했으나 명에 의해 맡게 됐다. ­가장 역점을 두어 추진할 시정분야는. ▲생각해보지 않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앞으로 공부를 해가면서 파악하겠다.다만 최근 발생한 큰 불행한 사고로 불안해 하는 시민들의 불안해소가 급선무라고 생각한다.다음은 일을 안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우리 공무원들이 나라를 위한 충성스런 마음으로 일할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 ­그동안 서울시정에 대해 가져온 느낌은. ▲「정부속의 정부」로 굉장히 복잡하다고 들었다.덩치가 크고 일도 다양하며 복잡한 모양이다. ­발탁배경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여러분들이 해석할 부분이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게 된데 대한 아쉬움은. ▲물론 개인적으로 있다.그러나 사람은 성경에도 있듯 나갈 때와 들어갈 때가 있는것 아닌가. ­관운이 따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흔히들 하는 얘기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언론계를 떠나 국회의원을 두번 하고 장관도 두번 하는등 과분하게 공직에 오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세로 일해나갈 것인가. ▲공직에서 일하는 동안 자리나 인기,돈에 연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홍구부총리에 이어 과거정권에 몸담았던 민정계인사로서 발탁됐는데 이는 능력있는 과거정권 인사들의 발탁신호탄인가. ▲나에게 그런 판단소재는 없다.인사권자가 판단할 일이다. ­6공정부에서의 일이라 해도 책임질 일은 책임을 지겠다고 말해왔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내가 맡은 일은 리저베이션(Reservation) 즉 유보나 변명 없이 책임을 지겠다. ­김영삼대통령과의 관계는. ▲(시장을 맡는 것과)개인적인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시절부터 잘 알았다.
  • 1천만 서울시민 살림 떠맡은 최병렬시장/정면돌파형 소신파

    ◎직언 잘하고 고집세 「최틀러」 별명/위기의 시정·민생분야 대수술 기대/「8개월 단명 시장」 맡은건 뭔가 결심했기 때문 「최틀러」가 드디어 1천만 서울시민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최틀러」는 최병렬 신임서울시장의 별명이다.언론사 재직시절,이어 정계에 들어와 국회의원과 청와대수석,그리고 장관을 두번이나 역임하면서 보여준 불같은 추진력과 소신이 독일의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해서 붙여졌다.그러나 그는 히틀러가 보여준 독재성·잔인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합리를 추구하면서 옳다고 판단될 때만 밀어붙이는 히틀러에게서는 볼 수 없는 민주적 타입이다. 그가 새정부에서도 중용되리라고는 모두 생각했지만 서울시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성수대교 붕괴사고이후의 서울시정의 난맥상,나아가 국기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여기서 종지부찍기 위해서는 「불의 사나이」 최병렬의 등장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최시장의 고향은 경남 산청.지리산 천왕봉밑 깡촌이다.부친이 6·25사변 때 사망해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진주중·부산고·서울법대등 엘리트코스를 착실히 밟았다. 한국일보·조선일보를 거치면서 언론인으로 명망을 얻던 그가 세인의 관심권에 진입한 것은 85년 민정당 전국구의원에 발탁되고부터다.그 이전에도 숱한 정계입문 제의가 있었지만 늘 거절하던 그는 『신문사를 위해서도 전국구를 수락하라』는 말에 마음을 바꿨다. 국회의원으로서 최시장은 단연 발군이었다.냉철한 현실감각과 뛰어난 판단력은 그를 단숨에 민정당의 「1급브레인」으로 지칭되게 만들었다. 87년 대통령선거전이 시작되자 당시 민정당의 노태우후보는 최시장을 최고의 참모로 생각했다.노대통령이 제시한 주요선거공약은 거의 최시장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6공화국」 출범후에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서 이른바 「5공청산」작업을 주도했다.이어 공보처장관·노동부장관을 지내면서 소신있게 업무를 처리한 일화는 너무나 많다.KBS노조사태 때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일,우리 근로자의 임금체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것등­그때는 그를 두고 「매파」 또는 「강성」이라고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태도를 긍정평가하는 쪽이 훨씬 늘어났다. 「노태우사람」이라고 여겨지던 최시장을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 대통령후보시절 중용한 것도 그의 뛰어난 추진력·기획력·정면돌파기질 때문이었다. 그는 몇차례나 고사한 끝에 김영삼 후보의 선거기획위원장을 맡았다.일단 업무를 맡겨놓으니 밤낮이 없었다.김영삼 후보의 선거기획팀은 최시장의 불호령에 새벽 2시,3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자신의 기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김영삼 후보에게까지 듣기 싫은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김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뒤 최시장은 청와대비서실장 물망에 올랐고 최소한 장관자리는 주어지리라고 예상됐다.하지만 그는 『새술은 새부대에』라면서 극구 사양했다.최근들어서도 지구당위원장등 몇가지 매력있는 자리가 제시되었으나 모두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 최시장이 의원직을 버리면서까지 길어야 8개월가량인 서울시장직을 수락했다는 것은 무언가 결심을 단단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교통·건설 등 민생과 밀접한 분야에서 「창조적 개혁」이 중요하다고 평소 주장해온 소신파시장을 맞아 서울시 관리들은 최대로 긴장하고 있다.
  • 2일 본회의(의정중계)

    ◎“「부실」 설계·감리자 최고5년형”/작년 탈세 7조원… 총세수의 14%/질문/농특세 60% 경쟁력강화에 배정/답변 ▷질문◁ ◇박명근의원(민자당)=물가안정이 목표대로 성취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구태의연하게 행정규제를 통한 지수관리만을 답습하기 때문이다.지방공단 조성에 실제 공사기간은 1년도 안되는데 행정처리 기간이 3년이나 되고 환경영향평가에 1년씩이나 걸린다.「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개정,중소기업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 ◇조세형의원(민주당)=모든 규제를 풀자는 재벌의 주장은 경제판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자는 것이다.재벌그룹을 전문 기업군으로 개편하는 재벌개혁을 단행하라.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에 맞게 국내산업지원정책을 전면 개선하라.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방교부세율을 지금의 두배로 올려야 한다.금융실명제 정착을 위해 긴급명령시행령을 대체입법화 할 용의는. ◇유돈우의원(민자당)=원활한 남북경협을 위해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남북경제협력 협의체」를 설치할 용의는.성수대교 붕괴사건을 계기로 「시설안전공사」와 「시설유지보수공사」를 설립하고 정부는 물론 모든 기업이 「무결점운동」(ZERO DEFECT)을 벌여야 한다.불로소득에 무겁게 세금을 부과하는등 차별적 조세정책을 실시할 용의는. ◇김명규의원(민주당)=현정부의 경제정책은 불균형,부정부패,부실건설행정의 3불정책이다.6공이 철회한 부산권광역개발계획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현정부의 지역차별정책을 입증하는 것이다.매일 30여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있다.대책을 밝혀라.93년의 탈세액이 7조원으로 총세수액의 1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세무비리를 포함한 공무원 부정부패에 대해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하라. ◇최돈웅의원(민자당)=개방과 자유경제의 기로에 선 한국경제의 철학과 비전은 무엇인가.민자유치에 따른 경제력 집중등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중소기업 금융지원제도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종래와 같은 일방적인 자금지원보다는 신용대출 확대,신용보증기관 보증능력 확충등을 통해 중소기업이 실질적으로 제도금융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광태의원(민주당)=WTO(세계무역기구)출범에 따라 금융시장의 대혼란이 우려된다.금융시장개방에 앞서 금융자율화를 단행하라.신한은행이 노태우 전대통령의 사돈인 신명수회장의 동방유량에 3백억원을 불법대출해 주식투자에 쓰도록 했다.진상을 조사하라.외국인 주식투자가 허용된 92년 이후 5조2천억원이 해외로 유출됐다.이는 국내 금융환경을 무시하고 자본시장 개방을 서두른데 따른 결과다. ◇유수호의원(신민당)=부실공사를 막기위해 과감하게 건설업의 해외개방을 허용해야 한다.정부가 부산권광역개발계획을 다른 지역보다 앞서 세운 이유는 무엇인가.낙후된 호남지역과 아산만,경북·강원지역의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대구고속전철역사의 지하화방침은 지방선거에 대비한 선심용이 아닌가. ◇금진호의원(민자당)=기업이 해외에서 싼 자금을 쓸 수 있도록 상업차관을 전면 허용하고 금융자율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책자금을 해소하라.금융기관 자기자본의 13·2%에 달하는 부실채권 해결방안은.노조상급단체의 복수노조허용,제3자 개입금지조항및 노조의 정치활동참여금지조항 삭제등 노동관계법 개정위원회 의견을 존중하여 노동법개정안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확정안인가. ▷답변◁ ◇이영덕 국무총리=성수대교를 시공한 동아건설이 새 다리를 지어 헌납하기로 한 데는 서울시등과 사전에 협의했거나 반대급부를 약속받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WTO 출범뒤에 가입하면 보조금 감축및 관세인하등의 부담을 한꺼번에 소급해야 하는등 불이익 때문에 이번 정기국회 회기안에 처리해야 한다. 김철수 상공부장관이 WTO사무총장에 선임되도록 범정부적 노력과 함께 민간 외교채널을 총동원,적극 지원하겠다. ◇홍재형 경제부총리=대일 무역역조의 주된 원인인 기계류및 부품 수입을 대체하기 위해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대기업,중소기업간 공동이익을 증대하고 상호 자금및 정보교환등 협력을 기할 수 있도록 기업간 협력증진 법안을 마련하겠다.WTO출범을 앞두고 농업경쟁력 제고가 시급하므로 농특세 예산의 60%를 경쟁력 강화 분야에 배분하고 일부는 복지부문에 투자,농촌 생활여건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박재윤 재무부장관=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말까지 국내관련 금융개혁을,96년 말까지는 대외관련 금융개혁을 마치겠다.근로소득세는 재정여건이 허용하는한 최대한 경감시키겠다.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상속·증여세 감시강화,정밀 세무조사등을 병행하고 공익법인을 통한 불법상속 규제도 강화하겠다. 동방유량에 대한 신한은행의 3백억원 불법대출의혹은 관계기관의 조사를 통해 진상을 확인한 뒤 고발여부를 결정하겠다. ◇김우석 건설부장관=부실공사의 설계자나 감리자에 대해서도 시공자에 준해 5년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관계법을 개정하겠다.특수교량에 대한 중앙설계심의제를 강화하고 저가낙찰 공사현장에는 감리요원을 상주시키겠다. ◇윤동윤 체신부장관=이동통신사업의 요금체계를 전면 재조정해 내년부터 대폭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운서 상공부차관=전체적으로 중소기업의 생산액과 투자율은 신장세에 있다.대기업과의 보완·협력관계도 확대추세다.
  • 「12·12」사건 가담자/무공훈장 회수 주장/민주당 강창성의원

    민주당 강창성의원은 1일 검찰이 「12·12사건」을 군사반란으로 규정한데 따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한 70여명의 12·12및 5·17 가담자들이 수훈한 태극무공훈장등 무공훈장을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원은 이날 총무처장관에게 보낸 서면질문서를 통해 『검찰이 12·12를 「전두환씨가 수괴로 역할한 군사반란」이라고 법적 결론을 내린 만큼 전씨의 태극무공훈장과 부상을 회수하고 관련기록을 삭제하는 것이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군사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고 밝혔다. 또 『노태우 당시 보안사령관을 포함한 70명내외가 「국가안보유공」명목으로 수훈한 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의 공적사유를 철저히 검증해 12·12및 5·17과정에서 신군부측에 가담해 수훈했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훈장과 부상의 환수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 희대의 살인마들 공판 표정/방청객 몰려 사회적 파장 실감

    ◎“왜 유죄냐” 욕설·독기 그대로/지존파/“나같은 흉악범은 사형 마땅”/온보현 희대의 두 살인마에 대한 공판이 31일 상오와 하오 두차례에 걸쳐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열렸다. ○…「지존파」일당의 선고공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에는 이른 아침부터 2백여명의 방청객들이 들어차 이 사건에 쏠린 사회적 관심을 반영. 김기환은 첫공판과 지난 19일 결심공판때와 마찬가지로 느린 걸음으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입정,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선고공판인 때문에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방청객들을 한차례 훑어본뒤 착석. 이어 고개를 숙인채 강동은·김현양·강문섭·문상록·백병옥·이경숙이 차례로 입정했으며 김현양은 팔꿈치까지 올라온 가죽수갑에 묶인 두손을 쉬지않고 부비며 들어와 초조한 심정을 표출. ○…각자의 생년월일만을 확인,간단하게 인정신문을 마친 재판부는 곧이어 『피고인들의 자백과 관련증거들로 볼때 피고인들에 대한 범죄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범행동기·살해방법·사회적 파장등으로 나누어 차분히 선고문을 낭독. 재판부는 「한탕주의」에 사로잡혀 저지른 이들의 범행이 「가진자」에 대한 맹목적인 질시에서 비롯되었으며 범행의 동기를 사회의 부조리 탓으로 돌리는 이들의 책임전가를 엄중히 질타. 재판부는 또 『모두 결손가정에서 자라 사회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란 점이 인정되나 이들과 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다수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에 엄존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들의 범행동기가 설득력이 없음을 강조. ○…김기환은 선고공판이 끝난뒤 호송차에 타기전 『전두환·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만 왜 유죄냐』며 마구 욕설을 퍼부은뒤 『세상은 ×같은 것이여』라고 해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전혀 참회하지 않는 모습. 징역 5년의 구형을 받고 이날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경숙은 선고를 받은뒤에도 집행유예의 의미를 모르는듯 잠시 멍한 표정. 곧이어 옆자리에 앉은 여교도관에게 몇마디를 묻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며 만감이 교차하는듯 감격의 눈물. ○…지존파에 이어 이날 사형이 구형된 온보현피고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빈다』며 『사형만은 피해달라는 변호인의 말은 지금 이자리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도 나같은 흉악범들에게는 전혀 쓸모없다』는 의외의 최후진술을 했다. 온은 『희생된 사람들과 유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신다면,또 다시는 나같은 흉악범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부디 법정최고형인 사형에 처해 달라』고 재판부에 마지막 심경을 전한뒤 『형의 집행도 하루속히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주문.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현상수배되지 않았더라면 자수하지 않고 범행을 계속 저질렀겠느냐』는 질문에 온이 또렷한 목소리로 『네.아마 그랬을 겁니다』라고 응답하자 방청석에서는 일순 술렁거리며 『저런…』이라는 한숨과 함께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온은 또 2차범행이 실패로 돌아간뒤 인근 경찰서에 자수할 생각으로 『내가 목격자다』라며 전화를 걸었으나 『네가 범인인 것을 알고있다.자수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녹음돼 현상수배를 하면 잡을수 있다』라는 경찰의 말을 듣고 갑자기 반감이 생겨 범행을 계속하기로 작정했다고 진술. ○…온은 지난13일 구속기소된 이래 15년전 헤어진 「첫사랑」을 나눈 여자와의 면회는 허용했으나 가족들을 포함,담당 국선변호인의 면회조차 거부하고 이날 법정에 선 것으로 확인.
  • 「12·12」 수사 장윤석 공안1부장 일문일답

    ◎“기소유예는 국가공헌 고려한 결론”/군권장악에 그쳐 내란죄는 적용안해/1백50명 진술 청취… 자료부족 애먹어 12·12 고소·고발사건의 수사 주임검사인 장윤석서울지검 공안1부장과의 일문일답.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에 대해 기소유예결정을 내린 이유는.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종합해 결정했다.결정 과정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다.결정은 수사결과에 따른 것이다.두 전직 대통령의 국가에 대한 공헌은 물론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요소들을 신중히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다. ­일부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전직대통령과 박준병 당시 20사단장등 피고소인에 대한 기소유예가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말도 나오는데. ▲국민들이 생각한 바와 같이 결정됐다면 국민 정서에 맞게 최대 공약수를 찾은게 아닌가.앞서한 말중에 「정치적 고려」는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12·12사건은 결국 5·18과 제5공화국 탄생등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내란죄에 해당하는 국헌문란이 아닌가. ▲이번 검찰 수사는 12·12사건에 국한된 것이다.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한 내란죄에 대한 결론을 내린 바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둔다.12·12사건의 전후 결과에 대해 연관지울 수 없다.국헌문란의 목적은 정권탈취등의 목적이어야 하지만 국헌 질서와 제도를 일부 거역했다고 해서 모두 내란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궁국적으로는 정권을 잡지 않았는가.「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면죄부는 아닌가. ▲모의 과정·행위·실행범위등 모든 관련성에 대해 조사를 했다.그러나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범위를 넘지 않았다는 판단을 했다.즉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군의 주도권을 잡자 입지가 곤란해진 소장파들이 자신들의 몰락을 우려해 일으킨 것이다.예를 들어 병아리를 훔쳤다고 해서 병아리를 팔아 돼지를 사고 또 소를 사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할수 있겠는가. ­최규하전대통령은 조사하지 못했는데. ▲최전대통령의 조사거부로 당시 재가문제나 총리실 상황에 대해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그러나 당시 총리실 공관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진술을 들었기 때문에 진상규명에는 전혀 하자가 없었다. ­당시 12월13일 최전대통령이 사후재가 할 당시 전두환합수본부장이 권총을 찬 채로 있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강압에 의한 재가를 입증하는게 아닌가. ▲대통령에게 강요와 협박을 했다는 점은 없다.전두환 합수본부장이 계엄하에서 전투복 차림에 권총을 지닌 것은 사실이나 접견실에서 권총을 차고 있었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정승화육군참모총장 연행을 담당했던 우경윤대령이 총에 피격됐는데 누가 쏜 총에 맞은 것인지 확인했는가. ▲구체적으로 누구의 총인지는 모르나 당시 경비병·당번병·가족등 정총장측 사람으로부터 총격을 받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이 부분은 「12·12가 정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인 충돌」이라는 합수부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피고소인에 대한 죄명에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은 형법상 「반란수괴」라는 용어가 사용됐는데. ▲「수괴」라는 용어는 법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전두환대통령등 피고소인측이 항고나 재항고등을 한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12·12사건의 공소시효가 오는 12월 12일까지이기 때문에 충분하다. ­수사를 시작할 때 각오는. ▲12·12사건의 진상규명에 선입견을 갖지 않고 철저히 밝힐 수 있는데까지 밝히려 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며 어렵거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나름대로 조사할 것은 다했다고 생각한다.고소인과 피고소인을 포함,1백50여명의 진술을 들었다.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시간이 너무 흘러 당사자들의 기억이 부정확한데다 또 이들이 관련자료를 잃어버리거나 아예 버린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수사팀은 당사자나 참고인·자료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검토했다.
  • 공소시효 촉박… 번복은 사실상 불능/고소·피고소인 불복 법적절차는

    ◎고소인/고검·대검 항고… 기각땐 헌법소원/피고소인/항고절차없이 바로 헌법소원 가능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비롯한 「12·12사건」고소·고발 사건의 피고소·고발인 38명 전원을 29일 불기소 처분한데 대해 고소인 및 피고소인 양측 모두 불만을 표하고 있어 향후 법적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행법은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에 불복 할 경우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취할 수 있는 법률대응을 각각 따로 규정하고 있다. 고소인측은 우선 사건 담당 검찰청인 서울지검을 통해 상급청인 서울고검에 항고할 수 있으며 항고가 기각될 경우 대검에 재항고를 하는 방법이 있다.이과정에는 통상 2∼3개월의 기간이 걸린다. 재항고 마저 기각될 경우에 한해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헌법소원 자격을 공권력의 행사 및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의 기본권이 침해됐더라고 다른 법률의 구제절차를 모두 거친뒤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피고소인측은 검찰의 「유죄인정」에 불복하면 항고·재항고의 절차없이 곧바로 무죄취지의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낼 수 있어 절차 및 시간상 다소 유리한 입장이다. 현행 검찰청법 10조에는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고소인 또는 고발인은 그 검사가 속한 지방검찰청 또는 지청을 거쳐 서면으로 관할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항고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즉 고소·고발인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해당 검찰청에 항고장을 내면 해당 검찰청이 「항고를 기각하는 것이 옳다」는 등의 의견서와 함께 고등검찰청에 항고장을 제출하게 된다.따라서 검찰차원에서 수사결과가 번복되거나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에 하나 고등검찰청이 항고가 이유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재기수사,공소제기,주문변경 명령 등을 해당 지검 및 지청에 내릴 수 있다. 이같은 항고·재항고는 사건처리 기한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다만 검사가 고의로 사건의 공소시효를 넘기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적어도 공소시효 만료일인 12월 12일 이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따라서 고소인측으로서는 헌법소원을 제출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항고·재항고를 하는데 불과한 것이다. 검찰 속성상 수사주체인 서울지검이 최고수사기관인 대검과 논의해 결정한 결과에 대해 고검이나 대검이 별도의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승화씨 등 고소인들이 헌법소원을 통해 검찰의 결정을 뒤엎기는 시간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헌법재판소가 청구를 받아들일 시점이면 이미 공소시효가 끝날 즈음이므로 헌재의 결정이 고소인들에게 아무런 법률적 이익을 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는 이같은 이유로 『소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풀이다. 이는 피고소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피고소인측이 검찰의 결정에 불복,헌법소원을 낸다해도 공소시효 기일이 촉박해 실효성 있는 결정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결국 고소인 및 피고인측의 향후 법적대응은 검찰의 사법적 판단에 대한 불만표시 또는 역사적 심판을 감안한 정치 제스처의 차원에그칠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 “다신 그런 불상사 없어야”/12·12 수사발표 각계반응

    ◎현대사 올바른 서술근거 제시/“단죄 마땅” 기소유예 비판론 우세/일부선 “반목·갈등 매듭 바람직” 검찰이 12·12사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수사결과를 발표한 29일 각계 인사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같은 불상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상당수 인사들은 『범법사실이 확인되었으면 마땅히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국민 정서」를 중시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사건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규정된만큼 단죄할 경우 예상되는 엄청난 사회적인 혼란과 갈등을 피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서경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사무총장=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군대질서를 문란시키는등 하극상을 일으킨 범법자들에 대해 검찰이 책임을 묻지않은 것은 기소편의주의를 남용한 것으로 본다. 과거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는 철저히 당사자들의 반성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당사자들이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속에서 이루어진 이번 결정을 볼 때 애당초 검찰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이번 문제는 정부에서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해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했다. ◇정진위 연세대부총장=과거에 대한 잘잘못을 무조건 덮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정의실천이라는 법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해결해야 할 총체적 문제가 산재해 있고 국제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분열보다는 앞으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검찰이 결론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안경환 서울대법대교수=검찰의 이번 기소유예처분은 순수법리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국가에 공을 세운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반란을 일으킨 후에 세운 것이므로 법적으로 엄정히 처분해야 마땅하다.또 국가에 대한 공은 역사와 후세가 판단할 일이지 검찰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일도 아니다.과거 대통령에 대한 예우문제도 국민적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 ◇정수암 예비역육군소장=검찰이 과거지사를 놓고 갈등과 반목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관련자를 기소유예한 데 대해 일면 수긍이 간다.그러나 12·12는 반란이었고 전형적인 후진국형 문제였기 때문에 선진국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박찬운변호사=반란행위는 국가와 군의 기강을 흐리는 중대범죄인데도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에 그친 것은 법률적 판단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공소시효를 40여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항고·재항고·헌법소원 등 나머지 수단까지 봉쇄하려는 의도가 있지않느냐는 지적을 받을 것이다. ◇김성영목사(성결교신학대교수)=검찰이 12·12사태의 성격을 군사반란으로 규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사태의 주역들이 자기합리화 논리만을 끈질기게 주장함으로써 자칫 호도될뻔한 12·12성격이 명백히 밝혀졌다.특히 현대사가 사태의 진실을 올바로 서술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물론 국민들이나 12·12사태의 피해당사자들이 보면 검찰의 처분이 불만족스런 부분이 있을 법하다.그러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승환 한성대교수(사망한 정병주 전특전사령관 장남)=반란을 막으려다 죄인으로 몰린 나머지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까지 택한 아버님의 한은 아직도 우리 가족들의 가슴에 남아있다.이번 검찰의 결정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 완전히 정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또다시 우리가족 같은 역사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란에 대한 단죄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12·12수사/생소한 죄목들/반란수괴/부하의 상관살해 혐의 포함/부화뇌동/단순가담자… 정호영씨 해당/불법진퇴/병력 움직인 지휘관에 적용 12·12사건으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관련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죄목이 적용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이 사건의 핵심 주모자격인 전두환전대통령의 경우 사형에 처해지는 군형법 제5조 1항의 「반란수괴죄」가 적용됐다.여기서 수괴란 우두머리를 말한다.이에 따라 전전대통령은 반란 가담자들이 저지른 상관살해의 공범으로 간주돼 상관살해죄도 적용받았다. 노태우 전대통령 등 반란 적극가담자들에게는 사형·무기 또는 7년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지는 「반란모의참여및 중요임무종사죄」가 적용됐다. 사정을 모르고 뒤늦게 반란에 가담한 사람들에게는 「반란부화뇌동죄」가 적용됐으나 이 조항은 7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미 공소시효(5년)가 지난 상태이다.정호용 당시 50사단장은 애초부터 반란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거사가 끝난 다음날인 79년 12월 13일 새벽 대구에서 올라와 갑자기 합류한 사실이 드러나 군인으로서는 다소 치욕스런(?) 이 조항을 적용받게 됐다. 또 전시·사변 또는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해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함선 또는 항공기를 진퇴시킨 경우에 적용되는 불법진퇴죄는 사형·무기 또는 7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이밖에 지휘관계엄지역의 수소 이탈은 사형·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지며 상관살해는 사형,초병살해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상관살해미수는 상관을 직접 살해한 기수범의 형량보다는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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