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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고소 수사/내일 결과발표

    「5·18」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16일 이 사건에 대한 최종수사결과를 18일 하오 2시에 발표하기로 했다.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소인과 피고발인 58명에 대해 내란혐의를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없음」등 불기소처분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 전·노씨 기소 요구/검찰청사 앞 시위/한총련 학생 80명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의장 정태흥) 소속 대학생 80여명은 8일 하오 4시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앞에서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를 요구하며 1시간 남짓 시위를 벌였다.
  • 「5·18 내란」 무혐의/검찰,불기소 결정/권력찬탈 의도 없어

    ◎공소시효 기산점 8월16일로 「5·18」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6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비롯한 이 사건 관련자들의 내란혐의에 대해 「혐의없음」등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같은 내용의 수사결과를 빠르면 다음주 안에 발표할 예정이다. 검찰관계자는 이날 『내란죄의 범죄구성 요건은 국헌을 문란할 목적의 폭동이 있고 무엇보다 권력찬탈 의도가 입증돼야 한다』면서 『고소·고발된 사안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때 내란죄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와 관련,『보안사의 「집권계획서」라는 문건 자체의 존재여부도 확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허화평·허삼수·권정달씨 등 당시 보안사 핵심간부들에 대한 조사결과 「5·18비상계엄 확대조치와 군투입은 시국수습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계엄법 등 실정법에 근거한 조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당시 신군부측의 권력찬탈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또 이 사건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80년 5월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로 결국 최전대통령이 하야한 같은 해 8월16일로 잡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이 사건은 오는 8월15일 내란죄의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된다. 고소·고발인들은 검찰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불복할 경우 항고·재항고를 거쳐 헌법소원을 낼 수 있으나 남은 기간은 1달에 불과한 실정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부터 피고소·고발인 58명에 대한 소환 또는 서면조사를 모두 끝냈지만 핵심 참고인인 최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최전대통령의 조사거부로 조사하지 못했다.
  • 조순 후보 전력 시비/“사퇴 마땅”·“흑색선전” 여·야 격렬공방

    ◎조 후보·경호실 관계 교수들이 밝힌 것­민자/“전대통령 스승까지 용공이라니” 반박­민주/인공부역→DJ수하… 무차별 권력지향­무소속 여야는 25일에도 민주당 조순 서울시장후보의 전력시비를 놓고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다.민자당은 이날 『조후보가 6·25때 부역하면서 세가지 직책을 맡았다』고 주장하며 직책명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민주당은 『흑색선전』이라고 맞받으며 민자당의 박범진 대변인과 이신범 부대변인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여기에다 무소속의 박찬종 서울시장후보진영도 민자당과 같은 주장을 펼치며 조후보의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는 등 민주당이 제기한 박후보의 「유신지지」 전력에 대한 역공을 펼쳤다. ▷민자당◁ ○…조후보측이 박범진 대변인과 이신범 부대변인을 검찰에 고발조치하자 『법정에서 흑백을 가릴 일』이라면서 시비가 확대될수록 손해볼 것 없다는 분위기. 박대변인은 『공인은 자신의 경력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할때 해명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조후보를 겨냥한뒤 『유신때 청와대경호실장과 함께 국기하강식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자문교수단에 참여했던 많은 교수들의 얘기를 종합해서 밝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대변인은 민주당에 의해 고발당한 것과 관련,『재판을 하면 많은 동료교수들의 명예를 훼손시킬뿐 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낱낱이 모두 밝혀질 것이므로 선거가 끝나면 취소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신범 부대변인은 이날 『조후보는 6·25때 강릉농업학교 교사시절 교직원 동맹위원장,민청위원장,문화동맹위원장 등 세가지 직책을 맡아 공산주의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공격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이부대변인은 이같은 전력시비 공방에 대해 『민주당이 먼저 다른 후보의 전력을 문제삼고 나섰기 때문에 우리당도 조후보의 의문스런 전력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조후보의 중학시절 남로당가입설과 3공의 차지철 청와대경호실장 비밀자문교수단 참여주장을 명백한 흑색선전으로 규정,민자당의 박범진 대변인과 이신범 부대변인을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형사고발하는등 강경 대응방침을 정했다.조후보측의 정대철 선거대책위원장과 이해찬 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남로당은 지난 46년12월23일 생겼고 조후보가 경기중학을 그만둔 44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면서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과 이춘구 민자당대표를 가르친 스승이자 국가 일급비밀을 다루는 부총리와 국고의 열쇠를 책임지는 한은총재를 지낸 조후보를 용공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흑색선전』이라고 주장했다.또 『비밀자문교수단 참여주장도 전혀 사실과 달라 진실을 가리기 위해 고발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지원 대변인도 논평에서 『당선이 확실한 조후보에 대해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 인신공격을 하고 있는 반면 박찬종 후보 싸안기와 정원식 후보 버리기라는 국민들의 선택을 왜곡하는 반국민적 작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공격했다.박대변인은 『이로써 민자당이 과잉반응을 보였던 박찬종 민자당입당설,즉 이충범 시나리오는 현실화됐고 민자당의 진짜후보는 박후보임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박찬종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이상용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인민공화국시절 교육동맹위원장으로 시작하여 3공·유신·5공과 6공을 지나 김대중선생 수하에 들기까지의 무차별적 권력지향은 그를 초야의 선비로 한때 존경한 많은 사람의 가슴을 황량하게 하고 있다』고 조후보를 맹비난했다.이대변인은 『조후보는 더이상 출세주의 기회주의로 지자제의 신성함을 더럽히지 말라』면서 조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가깝고도 먼 이웃(한·일수교 30년)

    ◎수교 19년뒤에야 한국정상 “공식 방일”/66년 무역협정 서명… 경제협력 “물꼬”/빈번한 교류속 일 지도층 잇단 망언 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일 양국간에는 모두 17차례의 정상간 왕래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공식 방일이 추진된 것은 72년이다.박정희 대통령이 11월23일 공식 방일하기로 예정됐었으나,국내의 반일감정이 수그러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취소됐다.박대통령은 18년에 이르는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일본을 공식방문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의 공식 방일이 성사된 것은 12년 뒤인 84년에 이르러서였다.이 해 9월6일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히로히토 국왕을 만났다.이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90년과 94년 각각 일본을 방문했다. 수교전에도 대통령의 방일은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48년과 50·53년 등 세차례 일본을 비공식 방문,요시다 총리 등과 면담하기도 했다.또 61년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경로에 일본을 비공식 방문,이케다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일본 총리는 사토 총리로 67년 6월30일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공식방한한 첫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총리로 83년 1월11일 서울에 와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이후 88년 다케시타,91년 가이후,92년 미야자와,93년 호소카와 총리의 방한이 이어졌다. 비공식과 실무 방문을 포함하면,한국의 대통령은 모두 7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며,일본의 총리는 10차례 방한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6년 3월 한일간의 무역협정이 서명,발표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 관계도 시작됐다. 이 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장기영 전부총리와 후지야마 일 경제기획청장관이 참석하는 한일경제각료 간담회가 열렸다.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80년대 말까지 크게 확대되어 왔으나,90년대초에 들어 무역·투자·기술협력 등의 분야에서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역불균형 심화가 지속적으로 양국간 현안이 됐는데,65년 1억 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는 80년대 후반에 50억 달러를 초과하기 시작했으며,92년에는 79억 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67년 정기 각료회의가 시작된 뒤,양국 외무장관 회담,고위외교정책협의회,한·일 어업공동위원회,문화교류실무자회의 등의 한·일 정부간의 정기회담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한일협력위원회,한일경제협회,한일협회,한일여성친선협회,한일문화교류기금 등의 민간 친선단체가 발족되기도 했다. 65년 1만명에 불과하던 양국간 인적교류는 지난해 2백70만명으로 늘어났다.일본이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은 68만8천명이다.최근에는 재일교포와 일본인과의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90년 통계에 따르면,재일교포의 총혼인건수 1만3천9백34건 가운데 동포간 혼인은 15.8%에 불과하며,일본여자와 결혼한 교포남성이 19.5%,일본남자와 결혼한 교포여성이 64.2%였다.일본에 귀한한 재일교포는 50년이래 17만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관계 발전의 한편에서는 일본측의 망언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일본의 고위각료급에서만도 해마다 일일이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망언을 쏟아냈다.대표적인 것이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그에 대한 86년 후지오 문부상의 망언으로 양국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다.정부는 이해 9월 예정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연기하며 후지오의 망언에 엄중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외상이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을 함으로써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도쿄의 평가와 과제/“국교정상화 한국발전에 크게 기여”/위안부 등 개인배상문제 불씨 잠복/재일동포3세 법적지위개선도 현안 한국과 일본은 22일로 한·일기본조약 서명 30주년을 맞는다. 국교가 정상화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한국에 대한 우월감이,한국은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또 「김대중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망언파동 등으로 한일관계는 곡절도 많이 겪었다. 한일관계는 양국 정치에 있어 「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정략적 카드」로 악용당한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한일국교정상화가 냉전체제하에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한국의 경제발전,일본의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안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양국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다는 데 대해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진다.특히 일본에서는 국교정상화가 한국에 보다 많은 플러스가 됐다고 말하는 학자,평론가들이 많다. 초대 주일대사를 지낸 김동조전외무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냉전구조하에서 정치적으로 아시아,넓게는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으로서도 피폐해진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조약체결로 얻은 자금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도쿄신문 20일자).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이 한국경제 발전에 대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일사학자 강재언교수도 높이 평가한다.하지만 강교수는 강조하는 점이 조금 다르다.그는 우선 일본으로부터 무상공여 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의 자금은 식민지 피해에 따라 당연히 받을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강교수는 또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배상을 받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특권층을살찌운 반면 한국은 깨끗하게 경제건설에 활용됐다』고 말해 자금이 들어온 일본보다는 활용한 한국의 노력에 비중을 두었다. 그는 반면 「식민지지배 책임문제」 등이 분명하게 밝혀진 위에 국교정상화가 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돈이 급하고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된채 기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여러가지 문제들이 남게 됐다고 말한다.남은 문제들 가운데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반성,한일기본조약의 해석,재일동포 3세이하의 법적 지위 문제,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배상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서명 이동원 전외무/“국력 길러 일 우월의식 극복을/과거에 매달려 역사흐름 놓치지 말길/패전 극복 일의 창조적 노력 본받을만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이동원 전외무장관(현 국제학술원이사장)은 21일 국교정상화 30주년에 즈음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말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인터뷰 내용.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당사자로서 30주년을 맞는 감회와 기본조약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은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전후 세계사에서 가장 길었던 외교협상이었습니다.그만큼 양국간의 적대감과 갈등이 깊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약에 서명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식민지지배에 대한 청산을 분명히 하지않고 경제협력을 우선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역사는 변화하는 것입니다.변화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한·일기본조약은 그 시대의 역사적 변화의 흐름을 활용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당시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한국도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과거의 역사는 물론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의원의 「전후50년국회결의」 채택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과거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독일과 같은 자세가 부족합니다.일본은 국수주의적 환상에서 깨어나 이웃국가들과 함께 공존·번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러나 불행히도 아시아의 후진성을 이용,우월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강합니다.공존의 시대에 배타주의적 우월의식을 고집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고 봅니다.일본도 중국·한국·아세안등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인식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국교정상화후에도 일본지도층의 망언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변국가를 멸시하는 일본의 배타주의적 우월의식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의 의식속에는 아시아를 깔보는 경향이 강하게 배어있습니다.그러나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창조적 노력과 국력배양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2차대전후 일본은 전쟁폐허의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일본은 그러나 미국에 머리숙이며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경제부흥을 위해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특히 선진기술을 그대로 모방하지않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본적인 알파」를 추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러한 「창조적」 노력이 오늘과 같은 경제대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일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그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점점 깊어져왔습니다.작은 것이라도 「한국적 알파」를 추가하려는 창조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의 시각이 변했다고 봅니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한국을 얕보는 본질적인 인식은 크게 변하지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지배를 배경으로 한 한·일간의 특수관계에서 이제는 보통의 이웃국가관계로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과거가 미래를 구속하는 상황이 더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광복 50주년이 됐습니다.일본에도 한국에도 식민지이후 세대가 중심이 되고 있기때문에 한국도 이제는 냉정한국제정치논리에 대비하여야합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양국은 경제뿐만아니라 정치·문화등 각분야에서 더욱 밀접하고 복잡한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그러나 한국은 반일감정을 극복하고 기술·정보등 경제분야의 발전을 통해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야합니다.물론 일본과는 경제규모에서 대등할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질적인 대등함을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합니다.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력이 뒷받침되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노태우 전대통령 「재임시 방북정책」 강연

    ◎“한 중·한 소 수교로 한반도안정구도 공고히” 노태우 전대통령은 14일 상오한朱프레訓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榻에碻 열린 고려대 언론대학원(원장 원우현) 최고위과정 조찬강의에 연사로 초청돼 대통령재임시 추진했던 북방정책에 관해 강연했다.노 전대통령은 강연에서 남북관계는 핵묻제딸으로 인한 일시??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이미 북방정책의 당면목표인 통일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노 전대통령의 강연요지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미간 경수로문제가 풀려가는 것같다.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우선 대통령재임시의 성과를 묻는다면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사회적인 균형발전,그리고 북방정책으로 대변되는 외교적인 성과등 3가지를 꼽고 싶다.그러나 정치·경제·사회적인 공과는 당사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 생각한다.다만 북방정책에 대해서는 벌써 몇편의 논문이 나오는등 학문적 연구대상이 되고 있으나 그 기본개념과 철학,수행과정등에서 중요한 내용들이 잘못 이해되고 있다.이를 바로잡아 북방정책의성과를 확대·발전시키는 것이 국가나 현정부를 돕는 길이라 믿는다. 북방정책은 남북통일이라는 당면목표와 함께 통일후 우리의 생활문화권을 과거와 같이 연변·연해주등지로 넓히면서 동북아시아의 위대한 중심국가로 자리잡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는 원대한 구상이었다.그리고 우리민족의 장점,무서운 저력등을 고려할 때 2천년대 이전 최종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소 수교는 당시 공산권국가들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을 점령,우리의 외교가 전방위외교로 전환하는 출발이었던 동시에 북한의 최대 외부지원세력을 제거,북한의 기본노선에 일대 타격을 가하는 사건이었다.이로써 우리 외교는 자주외교라는 확신과 자존을 확립하게 됐다.또 소련과의 수교는 중국과의 수교를 앞당기는 청신호였다. 한편 소련과의 수교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30억달러를 지원하는등 돈낭비가 많았다는 지적이 있으나 소련에 실제 제공한 돈은 15억달러이며 소련과의 수교로 인한 북한군사력의 억제라는 측면만 고려하더라도 이미 투자비용이상의 효과을 거두고 있다.그리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소련은 다가 오는 21세기에는 큰 나라가 될 것이다.장기적으로 볼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한다. 중국과의 수교는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과의 우호관계를 확립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정구도를 공고히 했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경제적 측면으로 볼 때도 오랜 역사적 선린관계에 있던 중국과의 관계회복으로 최대의 경제시장을 확보한 셈이 됐다.우리와 중국은 상호발전을 위한 보완성이 무한대다. 이밖에 주택 2백만호건설의 급작스런 추진등으로 부실공사,물가상승등의 부작용이 빚어졌다는 지적과 관련,졸속시행의 착오를 시인한다.그러나 서방세계가 1백∼2백년에 걸쳐 달성한 국가발전을 30년도 안걸려 이룩했다.부작용이 없진 않았지만 짧은 기간내에 고속 성장·발전했다는 사실이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 현대그룹 잘 나간다/계열사분리 등 정부정책 동참

    ◎침체분위기 삼성과 대조… 재계 “갸우뚱”/시설자금 대출·기업공개 재개 요즘 현대그룹은 기분이 좋다.정부와의 껄끄럽던 관계가 끝난데 힘입어 라이벌인 삼성그룹의 힘을 빼는 연타를 터뜨리고 있다.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북경발언 이후 다소 침체되고,조용한 분위기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에는 현대그룹답지 않은 기동성도 보이고 있다.그동안 삼성그룹의 전유물로 보이던 정부 입맛맞추기 발표를 앞장서서 하기도 한다.재계가 이상스러워할 정도다. 증권감독원이 지난 9일 현대상선을 오는 8월 공개하기로 한 것은 현대그룹에 대한 금융제재가 완전히 풀렸다는 보증서다.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노태우 전대통령시절인 지난 92년초 국민당을 창당한 때를 전후로 현대그룹은 각종 금융제재를 받아왔다.금융제재는 ▲현대자동차의 해외증권발행불허 ▲산업은행의 설비자금대출중단 ▲계열사의 공개불허등 세 가지였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3월4일 증권업협회로부터 9천만달러의 해외증권발행을 허용받은 게 금융제재 1차해금.그동안 현대자동차가지난 92년부터 세 차례나 해외증권발행을 시도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당한 뒤의 사건이었다.2차해금은 3월28일.산업은행이 현대자동차에 4백90억원의 시설자금대출을 승인한 날이다. 제재가 풀린 것은 정부가 세계화시대를 맞아 필요성을 느낀데다 현대그룹도 그동안 새 정부에 용서를 구하는 몸짓을 열심히 보인 덕이다.정세영 그룹회장이 지난 1월25일 발표한 현대그룹의 구조조정개편이 대표적인 사례다.계열사의 분리 및 정리와 대주주의 지분축소가 주내용으로,작년 10월 삼성그룹이 발표한 내용과 비슷하다. 새 정부가 추진중인 소유와 경영분리,업종전문화에 호응하겠다는 뜻이다.정 명예회장은 구조조정에 반대했으나 정세영 회장이 설득해 이뤄졌다는 설이다.정세영 회장과 그의 측근인 김판곤 현대자동차전무가 정부의 실력자들을 만나며 정부와 현대의 관계호전에 노력했다는 설도 나돌았다. 이외에도 새 정부 출범이후 공산품가격 1년간 동결,협력업체지원 등을 발표해 정부에 힘을 주기도 했다.정 명예회장의 측근인 이병규씨를 문화일보 부사장에서 현대중앙병원 부원장으로 전보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올 하반기부터 신입사원 공개채용 때 필기시험을 없애기로 한 것도 정부의 입맛에 맞는 발표다.삼성그룹의 한 관계자가 『한방 먹었다』고 말할 정도로 의외였다.지난 4월27일에는 삼성그룹이 중소기업지원대책을 내놓자 몇 시간 뒤에 기동성 있게 비슷한 내용을 발표해 남의 잔치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재주를 부리기도 했다. 현대가 삼성을 물먹인 일은 또 있다.현대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최대의 정보통신회사인 AT&T사의 비메모리사업부문을 3억4천만달러에 인수,경쟁을 벌이던 삼성전자를 따돌렸다.지난달에는 미국에 세계최대의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기로 발표,또 한방 먹였다.이건희 회장은 이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현재 현대의 현안은 제철사업진출이다.굴레를 벗어던진 현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빅3」TV토론(“열전” 6·27선거)

    ◎“내가 된다면”… 교통난등 3인3색 처방/교통·주차난/차 더 이용하는 사람 세금 더내야­정 후보/주차비용 부담 늘리는 것 불가피­조 후보/차고증명제 실시 조금 늦춰야­박 후보/상수원문제/4.300㎞ 노후 송배수관 교체 시급­정 후보/취수원 정화등 국가차원서 접근­조 후보/수돗물개선 위한 물값인상 반대­박 후보 서울시장선거 후보중 「빅3」로 불리는 민자당의 정원식,민주당의 조순,무소속의 박찬종 후보는 11일 밤 MBC TV의 특별토론회에 참석,안방 유권자들에게 서울시장후보로서의 자질을 다각도로 검증받았다. 지난번 관훈클럽 특별회견이나 각 방송국의 특별회견이 단문단답식으로 진행됐던 것과는 달리 이날 토론회는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됨에 따라 상대후보의 주장에 대한 반박 등 활발한 토론이 보장돼 후보간 비교평가가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이같은 TV토론회는 우리나라 공직선거 사상 처음이다. 그러나 세후보는 자신의 생각만을 밝히는데 치중할뿐 상대후보의 의견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피해 기대와는 달리 후보간 공방은 거의 펼쳐지지 않았다. 토론회는 재정,교통,상수도,환경,주택 등 서울시 주요현안에 대한 질문에 후보들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2시간남짓 진행됐다. 세후보는 선거전 초반 기선잡기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아래 이날 낮부터 선거운동을 일체 마다하고 참모들과 함께 예행연습을 갖는 등 준비에 신경을 썼다. 다음은 문답요지. ­서울시공무원들을 점수로 평가한다면. ▲정원식=소수의 부정공무원때문에 전체공무원이 부정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전체적으로 60점은 된다. ▲조순=공무원마다 천차만별이므로 일률적으로 점수를 매기기는 어려우나 굳이 평균을 낸다면 50점정도다. ▲박찬종=70점은 줄 수 있다.1백점만점에서 30점이 모자란 것은 과거 솔선수범하지 않는 시장과 행정풍토때문이다.민선시장이 들어서면 시공무원도 1백점 가까이 될 수 있다. ­주택가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한 행정지도 지침은. ▲조순=주차공간을 확보하는 일을 서둘러야겠으나 이 문제는 주차장만 늘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궁극적으로 자동차수가 줄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때문에 주차비용을 증가시키는 방안이 불가피하다. ▲박찬종=소방도로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골목길 주차를 허용해야 한다.차고지증명제실시는 당분간 늦춰야 한다. ▲정원식=밤10시부터 아침6시까지 6차선도로는 양쪽에,4차선도로는 한쪽에 주차를 허용해야 한다. ­자동차세를 주행세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한 견해는. ▲박찬종=주행세를 통해 자동차수요를 억제하겠다는 발상은 잘못이다.시민 자율적으로 10부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순=휘발유값에 주행세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통행료를 받는 방법도 교통혼잡만 가중시킬 뿐이다.전자감응장치를 통해 주행세를 손쉽게 징수하는 시기가 오기 전에는 주행세를 시행하는게 무리다. ▲정원식=차를 갖고 있다고 해서 똑같이 세금을 내는 것은 불합리하다.등록세를 제외한 나머지 세금은 차량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더많이 물도록 하는 제도가 바람직하다. ▲박찬종=시민들의 편의를 생각할때 주행세를 당장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다.다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환경오염부담금 성격의 주행세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내 평균주행속도를 올릴 방안은. ▲정원식=상습적인 병목구간을 해소하는 일이 시급하다.특히 다리마다 인터체인지를 건설해야 한다.또 교통혼잡지역에는 교통정리요원을 12시간이상 배치해야 한다.아울러 전자감응식 신호체계를 시급히 갖춰야 한다. ­정 후보는 총리퇴임이후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나 전교조측에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데. ▲정원식=당시 오병문교육부장관에게 여러차례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구했고 총리에게도 건의했다.오장관에게 물어보면 안다. ­조 후보는 지난 89년 부총리재임때 『교통문제는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다』고 했는데. ▲조순=자동차증가는 기하급수적인데 반해 도로는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일반적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박 후보는 무소속출마를 선언하고도 한동안 신민당에 당적을 두고 있었다.이유는. ▲박찬종=측근들이 당적을 정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위해서였다.개인적으로는 빠른 시일안에 당적을 정리하려고 생각했었다. ­수질환경개선사업에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조순=수질개선을 위해서는 송·배수관의 교체가 시급하다.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취수원을 깨끗이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울시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박찬종=팔당댐 상류지역으로 취수원을 옮겨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5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나 우선 하루빨리 공사에 착수해야 한다.수돗물값을 인상해 재원을 조달할 수도 있으나 좋은 방법은 아니다. ▲정원식=서울의 수도관가운데 4천3백㎞가 노후관이다.수질개선을 위해서는 이 노후관을 교체하는 일이 시급하다.지난해 6백50㎞를 교체했지만 부족하다.연간 1천㎞이상 교체해야 한다.시장임기안에 이를 완전히 교체하는데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수도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은 적절치 않다. ­취수원가도 다른데 수도요금도 달라야 하나. ▲박찬종=생산원가 차이만을 염두에 두고 차별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정원식=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무제한 공급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조순=물이나 전기를 원가와 가격을 연동시킬 수 없다. ­조후보는 한은총재때 더 소신있게 처리했더라면 하는 평가에 대해. ▲조순=내가 조금 더 있었더라면 금융실명제나 한은독립문제가 잘 됐을 것이라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조 후보는 부총리 및 한은총재때 노태우 대통령과 사제지간이 도움이 됐나. ▲조순=사적으로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공적으로는 입장이 달랐다. ­박 후보는 민주당 박지원 대변인이 청와대 사정비서관이던 이충범변호사가 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고 민자당이 영입하려 했다고 성명을 내자 음해라고 미약하게 반박한 것이 아닌가. ▲박찬종=사실무근이다.반박성명은 근거없는 루머를 삼가고 언어도 순화하기로 약속한 바 있어 약하게 한 것이다.당선된뒤 특정당에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조순=저는 요새 다른 일로 바빠 그런 얘기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 ­정 후보는 총리때 평양 남북고위급회담때 대취한 사실을 부인했는데 보좌진과 기자들은 술이 꽤 센 총리가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다는데. ▲정원식=있을 수 없는 일로 나를 음해하려는 것으로 본다. ­정 후보는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대한 경찰력투입 조치를 어떻게 보나. ▲정원식=한국통신 파업사태는 국가 중추신경이 마비되는 결과를 낳게 돼 조기에 진압해결한 것은 불가피했다.종교계도 이해해야 한다. ­박 후보는 안전비상령을 내려 공사를 일체 중지시켜 안전진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원식=당장 중단은 많은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찬성하지 않는다. ▲조순=안전관리공단 같은 것을 만들 필요는 있으나 당장 모든 공사를 중단할 수는 없다. ▲박찬종=모든 공사를 중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지하지리정보체계 구축을 위해 지도를 작성하는 구간은 시장의 권한으로 부득이 중단시켜야 한다. ­성수대교사고때 시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보나. ▲박찬종=사퇴해야 한다. ▲정원식=동감이다. ▲조순=무조건 사퇴는 중앙정부가 목을 침으로서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끝까지 노력하는 노력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대낮조차 부녀자들이 택시타기를 무서워한다.안전확보 대책은. ▲조순=택시는 택시답게 하기 위해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정원식=치안을 위해 가로등문제나 자율방범활동 서울시가 별도로 해야 할 일도 있다.택시문제는 점차 고급화해 나가야 한다. ▲박찬종=택시차고난과 함께 회사택시는 개인택시보다 세금을 10% 더 물고 있는등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박후보는 일관성 없는 발언을 한다는 평가가 많다. ▲박찬종=작년 신민당사태에 대해 송구한 마음 금할 수 없다.다만 통일국민당과 합당한뒤 주류 비주류와의 끊임없는 갈등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신민당으로서 관여할 짬이 없었다.72년 유신헌법 옹호기고문은 언론검열시절 지역보안책임자가 내 이름으로 냈다. ­정 후보는 5공때 5공 이미지 창출과 학원안정법에 관여했다는 소문은. ▲정원식=금시초문이다.당시 교수로 관여할 처지가 아니었다. ­조 후보는 아랫사람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는데.앞으로 여당과 마찰가능성은. ▲조순=그런적 없다.경제기획원 떠날때 누구에게도 섭섭한 감정이 없이 떠났고 한은 총재때도 모든 직원들이 슬픔을 갖고 환송했다.누구는 바닥에서 큰 절을 하기도 했다. ◎「전력」질문에 부인·해명 민감 반응/「빅3」TV토론 이모저모/주차해결책 묻자 방범대책 대답 해프닝/「박 후보 민자입당설」 놓고 각자 입장 피력 ○…11일 저녁 서울시장후보 빅3의 TV토론은 교통문제로 시작됐다.사회자는 『요즘 주택가 골목길의 평화가 깨지고 있다』며 심각한 주차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이에 대해 첫번째로 나선 조순 후보는 『가급적 주차장을 늘려야 하겠으나 근본적으로 주차장보다는 자동차를 줄여야하는 자동차와의 싸움』이라고 답변,질문의도에서 다소 빗나갔다. 이에 『주차문제로 주택가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라고 다시 묻자 조후보는 민생치안문제를 묻는 것으로 착각한듯 방범문제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해 시청자들을 잠시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민주당의 박지원 대변인이 「여권이 박찬종후보를 당선시키고 민주당 조순 후보를 떨어뜨리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놓고 후보들이 제각기 입장을 설명했다. 박후보는 『나를 도와준다는 이충범 변호사는 학교후배로 아는 정도』라며 『내가 정치권 세대교체를 외치며 살아왔는데 민선시장이 된뒤 민자당에 입당한다는게 말이나 되느냐』며 민주당측 주장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라고 펄쩍뛰었다. 그러나 같은 문제에 대해 조 후보는 『요사이 다른 일로 바빠 그런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소속당 대변인이 미발간 주간지기사 사본까지 제시하며 성명으로 발표한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답변을 피했다.이를 의아하게 여긴 사회자가 재차 질문하자 『박지원 대변인에게 물어보고 다시 대답하겠다』고 계속 답변을 피해 눈길을 모았다. ○…대형시설 안전문제와 관련,박 후보가 안전비상령을 내려 모든 공사를 일시 정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데 대해 정·조후보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논란을 벌였다. 정 후보는 『공사의 일시 중단은 많은 혼란과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면서 『시장직속의 방재본부를 만들어 다리 건물 화재등의 안전문제를 종합적·조직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반박했다.조후보도 『모든 공사의 중단은 곤란하며 안전관리공단을 만들어 안전점검을 실시,안전에 하자가 있는 공사를 중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문등에 근거한 과거 「전력」문제에 대해 세후보는 완강하게 부인하거나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 박 후보는 유신헌법을 지지하는 기고문을 썼느냐는 질문에 『당시 엄격한 통제아래서 이름을 도용하는데 동의했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조 후보는 경제기획원장관때 부하직원과의 마찰설에 대해 『윗사람과 일부 마찰은 있었지만 아랫사람들은 떠날때 아주 섭섭해 했다』고 반박했다. 정 후보는 80년대 5공 이미지 창출과 학원안정법추진에 앞장섰냐는 질문에 『당시 일개 교수였을 뿐이며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 「부전」등 알맹이 뺀채 “겉치레반성”/일여당「전후결의안」합의 의미

    ◎침략·식민지 지배 범죄책임 회피/연정붕괴 우려 「물타기 결의」 변질 산고 끝이라고 꼭 옥동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연립여당이 6일 밤 간사장·서기장급 회담을 열어 오랫동안 논란이 벌어져온 전후 50주년 국회결의안에 합의했다.자민당내 우익정치가를 비롯한 우익세력의 집요한 반대로 무산될 뻔한 결의가 연립여당 안에서 합의에 이른 것은 사회당이 강공을 펼치고 연립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자민당이 양보한 결과다.또 와타나베의원의 망언에 대해 한국이 단호하게 반발한 것도 합의를 촉진시켰다.이제 남은 절차는 야당인 신진당과 협의를 거쳐 중·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다. 합의안이 산고 끝에 나왔지만 그 내용은 피해당사국 주민에게 실망스러운 것들이다.합의안에는 자민당이 반대해온 「침략행위」·「식민지지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하지만 당초 내건 「사죄」나 「부전결의」라는 말은 모두 빠졌다.결의안의 제목은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에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가 돼버렸다.「침략행위」라는 말도 「침략적 행위」라고 바뀌었다.외무성이 영어로 번역하면 「Acts of Aggression」으로 똑같다고 유권해석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한자어권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물타기수법」에 불과하다.많은 역사가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에 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총리들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반성한다』고 말한 것보다도 후퇴한 형태다. 또 일본의 책임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비켜나갔다.일본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일본 국회의 결의안이 서구 제국주의국가보다는 아시아국들을 향한 선언이라는 성격이 강한데도 책임부분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다. 국회결의가 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다.결의는 법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가 아니다.단지 선언일 뿐이다. 결의내용이 비록 형편없어도 성의 있는 후속조치가 따른다면 일본이 어느정도 반성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여당안을 마련하는 논의과정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에는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두껍게 포진하고 있다.후속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 침략 사죄관련 주요 발언 ▲히로히토(유인) 일왕=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84.9.6 전두환 대통령 방일 만찬사) ▲아키히토(명인) 일왕=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만찬사) ▲가이후(해부) 총리=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한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회담) ▲호소카와(세천) 총리=2차대전은 침략전쟁이었으며 잘못된 전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과 함께 분명한 매듭을 짓고 평화와 국제협조를 위해 책임을 다해 나갈 생각이다.(93.8.10 취임기자회견) ▲하타 쓰토무(우전목) 총리=일본은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슬품을 가져다 줬다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94.5.10 참의원 본회의 소신표명연설) ▲무라야마(촌산부시) 총리=우리나라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데 대해 깊은 반성에 입각,부전 결의하에서 세계평화창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94.8 전후 50년을 향한 담화)
  • 「표심」읽기와 보도(6·27 선거풍토 점검:3)

    ◎여론조사 활발… “날림” 많아 판단에 혼란/같은 조사에 다른결과… 무분별 수용 금물/특정집단의 합리와 도구로 악용되기로 여론조사결과는 다시 새로운 여론을 형성한다.여론조사결과가 매스컴에 의해 보도됐을때 새로운 여론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따라서 오류나 왜곡이 없는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하지만 우리 여론조사는 아직 정확한 여론을 궤뚫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결과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여론조사가 선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일관성 갖지 못해 우리나라 여론조사에 나타난 여론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여론성향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지난 91년11월에 실시한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는 「92년내에 실시해야 한다」가 57.5%로 나타났다.그러나 노태우전대통령이 92년 연두기자회견에서 연기방침을 결정한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연기 찬성」이 59.3%로 나타났다.금융실명제에 대한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정부는 90년3월 금융실명제실시 유보방침을 굳혔다.이전의 여론조사에서 대다수가 금융실명제를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보방침이 결정된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51%가 정부의 결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리나라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의심케 하는 또다른 점은 유사한 성격의 질문에 대한 조사에서도 상이한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이다.89년말 한국갤럽이 5백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두환씨의 증언으로 5공청산문제를 종결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에 「종결하는 것이 좋다」가 54.3%,「잘잘못을 더 따져야 한다」가 41.0%로 나타났다.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 신문방송학과팀이 전국 9백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씨의 증언으로 5공청산이 되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되어야 한다」 44.1%,「안된다」 50.7%로 조사됐다.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비슷한 내용의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조사결과가 서로 다르다.조사대상자의 교육수준과 연령층의 분포에 차이가 있는 점에 기인한 것일 수 있지만 매스컴에 보도되는 여론조사를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에는 앞서 지적한 여론성향의 비일관성과 조사결과의 상이함외에 부동표로 분류되는 무응답자의 성향변화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추가된다.무응답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면 해석상의 어려움이 생겨 정확한 여론을 파악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진다.선거여론조사는 여타 여론조사보다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난해 7월31일 대구 수성갑과 경주시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이틀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결과와 실제 후보자별 득표율에는 큰 차이가 있다.대구 수성갑의 여론조사에서 현경자 26.2%,정창화 23.6%,부동표 40.0%로 나타났으나 투표결과는 현경자 58.8%,정창화 26.5%로 집계됐다.부동표의 대부분이 현경자후보에게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경주시 여론조사에서는 이상두 14.9%,임진출 30.5%,김순규 19.9%,부동표 30.9%로 나타났으나 실제 득표율에서는 이상두 33.7%,임진출 32.6%,김순규 26.3%로 집계됐다.부동표라는 부동변수가 여론조사를 믿지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불신” 응답 33%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최근에는 선거여론조사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여론조사결과까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리서치 앤 리서치」사가 지난 5월31일 서울에 사는 만 20살이상의 성인남녀 6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3·1%가 오는 27일 실시되는 서울시장선거와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결과를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여론조사결과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3.5%가 「매우 믿을 만하다」,49.1%가 「대체로 믿을 만하다」고 답했지만 27.2%는 「별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 5.9%는 「전혀 믿지 못하겠다」라고 답했다. 「후보를 결정하는데 있어 여론조사결과를 고려하는 편인가」라는 항목에서도 37·3%가 「고려하지 않는 편」,24.7%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답해 62.0%가 고려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매우 고려한다」는 1.8%,「고려하는 편」은 33.1%였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여론조사결과 당선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서도 여론조사결과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응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구 수성갑과 경주시 보궐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와 투표결과의 차이,그리고 「리서치 앤 리서치」사의 조사결과는 선거여론조사의 신뢰도에 대한 의심을 품기에 충분하다.또 그같은 낮은 신뢰도는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원우현 교수(고려대 신문방송학과)는 『여론조사는 신뢰도와 표본의 대표성에 한계를 지닌다』면서 『여론조사결과는 단순한 어림치일뿐』이라고 말했다. ○투표향력 미미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앞두고 정책이나 주장을 합리화시켜주는 도구로서 여론조사를 이용하기도 한다.따라서 여론조사기관에 조사를 의뢰할때 자신들이 목표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설문을 작성해 보내거나 특정 지역 또는 계층을 선택하도록 모집단을 조작한다.최근의 상당수 여론조사가 갈팡질팡하는 이유가운데 하나다.조사기관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의뢰자의 의도에 영합한다면 여론조사는 잘못될 수밖에 없다.원 교수는 이같은 여론조사를 『여론조사라는 사회과학을 무기로 삼아 비과학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는 정확도보다는 신속성에 역점을 둔다. 급하게 몇백명을 상대로 전화인터뷰한 결과를 보편화시키는 일이 다반사다.짧은 시간에 급조된 설문으로 실시되는 여론조사는 자연히 날림이 될 수밖에 없고 분석 또한 자의적이기 십상이다.정용길 교수(동국대 정치외교학과)는 『여론조사전문기관이 정파나 정당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랫동안 역대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를 지속적으로 꾸준히 실시해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한국정치사의 재평가/이달순 지음(화제의 책)

    ◎특유의 「민주사관」 통해 본 한국정치사 한국정치사를 「민주사관」이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재해석한 연구서.지은이는 민주주의란 「통치를 받는 자가 투쟁 끝에 얻은 과실」이며 「그 과실을 얻어가는 과정에 중점을 둔 역사관」이 민주사관이라고 규정짓는다.그리고 우리 정치사에도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투쟁의 사례가 풍부하기 때문에 우리 역사를 민주사관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곧 한국정치사에도 유럽의 일반론을 적용해 봉건사회­절대주의시대­민주혁명기­민주정부 수립으로 시대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지은이는 조선왕조를 절대주의 체제,「3·1시민혁명(3·1운동)」으로 탄생한 상해임시정부는 「제1 민주정부」,「4·19」의 결과인 민주당 장면정부는 「제2 민주정부」,문민정부인 김영삼정부는 「제3 민주정부」라고 평가했다. 또 ▲이승만정부는 「권위주의」 ▲박정희정부는 초기의 「군부 권위주의」에서 「유신 독재」로 ▲전두환 정부는 「군부 위주」 ▲노태우정부는 권위주의체제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과도기」로 각각 분석했다. 수원대 학장,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을 역임한 지은이는 수원대 산업경영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수원대 출판부 1만2천원.
  • 관훈 토론회(임춘웅 칼럼)

    관훈 토론회 관훈클럽이 지난주(5월23∼26일)열었던 서울시장후보 3인 초청 관훈토론회는 몇가지 점에서 주목할만 했다. 무엇보다 관훈토론회가 비록 대서울의 시장후보라고는 하나 지방선거에 눈을 돌렸다는 의미를 새겨볼만하다.관훈클럽은 38년의 역사동안 모두 69회의 초청토론회를 가졌으나 그대상은 언제나 중앙정계의 주요 인물들이거나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들이었다.민주당정권시대 정부수반이었던 고장면 총리,대통령을 거쳐간 노태우 민정당총재,현대통령인 김영삼 민자당대통령후보등 기라성같은 인물들이다.정계의 거물로 관훈토론회에 초청되지 않았던 인물로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 정도일 것이다. 그밖에도 김수환 추기경,정주영 현대그룹회장,주한미국대사같은 각계의 인물들이 등장했으나 지방선거후보들이 초청된 일은 일찍이 없었다.34년동안이나 지방단체장 선거가 없기도 했지만 서울의 시장후보들이 전국적인 관심속에 관훈토론회에 등장했다는 것은 지방화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케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는 이번 토론회가 끼친 영향력이다.3개 주력 TV와 주요방송들이 토론내용을 거의 전량 녹화중계했거나 방송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토론회가 모두 끝난 다음날인 27일 K신문이 전문기관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조사대상자의 67%가 토론회내용을 듣거나 보았다고 응답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86%가 토론회를 통해 후보들의 인물됨을 파악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답하고 있다.토론회 내용을 보았거나 들었던 사람중 15.5%가 이번 토론회를 통해 투표할 후보를 바꾸겠다고 했으며 13%는 지지자를 결정치 못하고 있다가 토론회를 보고 결정하게 됐다고 답변하고 있다. 무려 3분의1에 가까은 투표권자의 투표권행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대단한 영향력이라 할수 있다.이부분은 「TV정치시대」가 운위되는 시대의 TV영향력에 힘입은 바도 클 것이다. 관훈토론회가 유권자들에게 투표권행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관훈토론회의 기능이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 된다.국민의 직접 정치참여 기회가 줄어들고있는 현대사회에서 언론기관의 이런 기능이란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관훈토론회가 그 영역을 보다 넓히고 그 기능을 더욱더 높일수 있다면 이나라의 여러 분야에서 보다 많고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그렇게 하자면 토론회의 초청대상 선정이나 질문문항 연구,토론의 형식에 다채로운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좀더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외부전문가들의 자문을 받는 시스템 같은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아직도 보완되고 연구될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 언론계에 관훈클럽이 있고 관훈토론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 “「중앙당 폭력사태」 일부 계파조종”/이 총재 김천지구당 발언요지

    ◎당대표 더 해야할지 깊이 생각중 민주당 이기택 총재는 25일 하오 김천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김천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치사를 통해 경기지사 경선파문및 당내 폭력사태에 관한 심경을 토로했다. 다음은 이총재 발언요지. 새로운 야당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6월 지방선거와 내년 총선에 승리를 해야 한다.정당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정당을 바라보고 비판하기는 쉬우나 각자 생각이 서로 다르기에 비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비록 한 당원이지만 한 목적지로 가는 데는 애로가 있다. 사실 총재를 해보니 정당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요즘와서 더욱 실감하고 있다. 오늘 이자리에 도저히 올 수 없는 상황이고 심정이었지만 지구당위원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야당총재인 나에게 큰 기대를 했기 때문에 원망도 클줄 알고 있다. 당원앞에 서야할 자격이 있는지 깊이 생각하며 왔다. 요즘 TV와 신문으로 민주당 꼴을 보면 말이 아니다.공천불만으로 중앙당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데 모두 깡패를 앞세우고 와 당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영주 개편대회 행사에 다녀와보니 비서실과 총재실이 박살이 나 있었다.비서들에게 그대로 두고 비서실을 당분간 폐쇄토록 했다. 당원들의 불만은 있을수 있지만 지금 중앙당의 폭력사태는 지구당 후보문제를 빙자한 일부 계파의 조종임에 틀림없다.이는 바로 총재인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흠집을 내기 위한 것이다. 5월13일 경기지사 사태때는 밤늦게까지 공포분위기가 조성됐으며 의원들이 깡패에게 폭행당하고 있는 것이 민주당의 현주소다.나자신 더이상 버틸 기력이 없어져가고 있다.이런 정당 대표를 더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4·19 주역으로 7선의원이며 정치를 하면서 한번도 이권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노태우 김영삼씨가 손잡을때도 반대했다.나는 깨끗한 정치와 도덕정치를 추구해왔다. 그동안 야당총재로서 한번도 제대로 힘을 못써봤다.더이상 총재 하고 싶지 않으며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정치인으로 더 남고싶지 않다.아직 나이는 정계은퇴까지 오지 않았지만 요즘은 정치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자주 해본다.총재를 외면하고끼리끼리 모여 비방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 연해주·심양·하노이/한국 정용공단 연내 착공한다

    ◎중 천진이어 해외진출 “새 교두보”/토개공­통관·세제업무 지원 인·멕시코에도 계획 한국토지개발공사가 최근 해외에서 한국 전용공단사업을 잇달아 추진,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토개공은 지난 93년 8월 중국의 천진에 공단을 착공한데 이어 올해에는 러시아 연해주,중국 심양,베트남 하노이 등 3곳의 한국 전용공단을 잇달아 조성키로 해 해외 직접투자의 총아로 떠올랐다. 토개공이 해외공단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제6공화국이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89년 말.중국 및 옛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던 차에 대외개방을 표방하던 중국이 산둥성과 요령성 등에 공단개발을 요청했다. 92년 7월에는 북방경제정책심의회에서 천진공단의 사업을 확정,본격적인 개발사업이 시작됐다. 러시아의 공단개발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해주 방문으로 활성화되기 시작,국내 기업들의 적극적인 호응 아래 지난 3월 자유경제지역 나홋카에 여의도 크기만한 공단을 조성키로 했다. 세번째인 중국 심양 공단은 경기도의 힘이 컸다.경기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요령성이 한국기업의 진출을 요청했고 경기도는 다시 토개공에 사업 참여를 부탁했다.심양 경제기술개발구 내에 12만9천평으로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중소기업만 유치키로 해 중소업체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하노이 공단은 지난 94년 8월 이영덕 전 국무총리의 베트남 방문 때 베트남 수상이 3개지역에 한국공단의 건설을 요청해 이뤄졌다.하노이는 이 중 북부지역의 공단으로 30만평 규모로 조성됐다.중부 다낭과 남부 호치민시에도 같은 규모의 공단을 건설키로 합의,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토개공의 오국환 사업총괄본부장은 『앞으로 인도나 멕시코 등으로 공단을 확대할 예정』이라며 『단순히 공단을 조성,분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관절차나 세제 등 행정 업무를 대행하는 사후관리에도 적극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 노태우 전대통령 도쿄 전직정부수반회의 연설내용

    ◎조화와 협력의 21세기 세계/핵 감축노력 계속하고 지역주의 탈피해야 노태우 전대통령은 24일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전직 정부수반회의(IAC)에서 「조화와 협력의 21세기 세계」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다음은 연설내용. 세계역사에서 20세기만큼 극적이고도 다양한 변화를 겪은 시기도 없다.한 시기에 세계의 여러 지역에 전근대,근대,탈근대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가 실험되기도 했다. 새로운 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세계는 세가지 혁명을 목도하고 있다.첫째는 냉전의 종식이라는 정치적 혁명이다.둘째는 국제경제질서가 자본주의 분업질서로 통합되는 경제적 혁명이다.셋째는 기술과 정보의 혁명이다. 세가지 혁명이 세계평화와 안정에 긍정적인 역할만을 할 것인가.팽배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세계는 여전히 문제를 가지고 있음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정치적으로 강대국간의 핵전쟁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핵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것은 아니다.세계의 「악당국가」들에 의한 핵확산이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대표적인 예가 바로 북한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구조 내적및 외적 충격을 체제가 흡수하지 못할때 세계는 경제공황과 같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국가간의 상호의존성 증가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은 경제적 종속현상을 겪을 수 있다.이들은 방어적 보호주의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1세기 세계의 가장 비관적인 측면중 하나가 환경문제이다.환경보호와 경제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차가 크며 첨예한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20세기의 세계평화는 강대국간의 갈등관계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21세기 세계의 안정과 평화의 구도는 강대국과 약소국 또는 선진국과 개도국 구도의 결과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문명의 충돌론이나 국가발전에 있어서 아시아의 문화적 요소를 강조하는 아시아화의 주장이 있다.하나는 동양적 문화의 몰이해로부터 온 지나친 경계론이며 다른 하나는 서구적 가치를 지나치게 배격하고 있는 극단적 주장이다.아시아가 나아갈 길은 동양적가치와 서구적 가치의 적절한 조화의 바탕위에 선 현대화 즉 「개방적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동양문화의 바탕위에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꽃피울 수 없다고 여겨왔다.이는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실이 아니다.한국은 개도국이 가진 거의 모든 어려운 경험을 다 거친 나라다.식민주의,전쟁,기아,저발전,극심한 정치불안정 등 국가발전의 불리한 요인은 모두 다 경험한 국가이다.그러나 현재 한국은 여러모로 변해 있다.한국민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쉼없는 노력의 소산이다.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되던 것을 가능하게 만든데는 한국민들의 세계역사발전에 대한 매우 전진적이며 진취적인 사고가 있다.또 서구화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적극적인 개방과 수용의 결과인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삶의 질적 향상을 기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때도 없다.21세기의 세계가 평화롭고 인류에게 희망을 주도록 하기 위해서는 행동계획을 세우는데 다음 원칙들이 강조돼야 한다. 첫째 인류의 보편적가치를 최대한 존중하며 발전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세계 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둘째 강대국의 핵감축노력이 계속돼야 한다.셋째 폐쇄적 민족주의나 지역주의를 탈피,세계평화를 고양시키는 시도에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넷째 보호주의보다는 적극적 개방주의를 통한 국제무역의 활성화에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다섯째 자유무역의 확산과 더불어 기술의 상호의존 역시 확산돼야 한다.마지막으로 정보혁명은 문화의 일방적 보급루트가 아니라 상호교류의 장이 돼야 한다.
  • 노 전대통령/답변서 제출/전 전대통령은 27일로 연기/5·18수사

    「5·18」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19일 노태우 전대통령이 서면답변서를 제출함에따라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그러나 20일까지 제출할 예정이었던 전두환 전대통령측으로부터 『답변을 정리하는데 시일이 걸린다』고 해 27일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노 전대통령은 대리인인 한영석 변호사를 통해 제출한 답변서에서 『80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수도권지역의 계엄업무에 전념하고 있었다』면서 『5월17일에 열린 전군지휘관회의에서는 학원소요·사북사태등으로 불안한 시국을 수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오늘 「5·18」 15돌/망월동 묘역 등 2곳서 추모·기념식

    ◎어제 도청앞 광장서 전야제 【광주=최치봉 기자】 5·18 15주기 전야제가 17일 하오7시 광주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5·18유족과 시민·학생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5·18 15주년 행사위원회(위원장 조비오신부)주관으로 치러진 전야제는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굿을 시작으로 1부 노래무대,2부 모의재판,3부 시민평화행진 순으로 4시간여 진행됐다. 2부에서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재판 등 8개 부문의 모의재판이 열렸다. 행사를 마친 시민과 학생은 도청∼유동4거리∼광주역에 이르는 3㎞구간에서 5·18 가해자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촉구하며 평화행진을 했다. 한편 18일 상오10시 망월동묘역에서는 15주기 추모식이,하오3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는 15주기 기념식이 각각 치러진다.
  • 민자 중앙상무위의장/정순덕 의원 선출

    민자당은 11일 하오 서울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중앙상무위 운영위원회를 열어 정순덕 의원을 중앙상무위의장으로 선출했다. ◎정순덕 민자 중앙상무위의장/옳고 그름 분명한 육사출신 4선 직선적이면서도 합리적 성품을 갖춘 4선의원.평소 온화한 면모와는 달리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선 앞뒤를 재지 않는 분명한 성격. 육사 16기 출신으로 지난 80년 준장으로 진급한 지 3개월만에 옛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진출.청와대 정무수석과 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 노태우 전대통령이 9공수여단장이던 시절 참모장을 지내 친밀한 관계.김영삼 대통령과는 통영수중 선후배 사이.지난 2월 당정개편 때 중앙상무위의장으로 내정됐다는 후문. 부인 송도순여사(53)와 1남2녀. ▲경남 통영(59) ▲육사 졸 ▲연세대 경영대학원 수료 ▲민정당 사무총장 ▲민자당 사무총장 ▲한·폴란드 친선협회회장 ▲11·12·13·14대의원
  • 5·18관련서면 답변 전·노씨 “연기”요청

    5·18 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장윤석)는 9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측이 변호인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서면답변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초 10일까지 답변서를 받을 계획이었으나 이날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는 20일까지 답변서를 보내달라고 다시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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