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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서울역 인수위’ 띄워 ‘광화문 집무실’ 만든다

    [단독] ‘서울역 인수위’ 띄워 ‘광화문 집무실’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끌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서울역 등 도심의 민간 빌딩에 입주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취임 뒤 청와대 밖 집무실에서 국정을 이끌겠다는 ‘광화문 집무실’ 공약 이행에 앞서 ‘서울역 인수위’를 가동해 공약 실행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이겠다는 것이다. 인수위 설치 관련 실무행정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와 정부청사관리본부 등은 최근 인수위 사무실로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서울역·광화문·종로 주변 민간 빌딩 ▲세종시 공공기관 건물 등을 후보로 선정해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에 보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 가까운 데 위주로 (후보지를) 검토했다”며 “당선인 비서실과 조율해 최종 입지를 확정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 관계자들은 지난주 관련 기관을 방문해 장단점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최근 인수위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인수위는 모두 금융연수원에 설치됐다. 최근에는 금융연수원이 레지던스를 비우는 등 정리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당선인 측은 도심 민간 빌딩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 집무실’ 공약을 꼭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인수위 사무실 설치에서부터 드러내는 한편 부처와의 협업을 원활하게 하려는 실용적 이유 때문이다. 정부세종청사 등에서 서울의 인수위로 출장을 오는 공무원들의 이동 편의를 고려했을 때 접근성이 불편한 삼청동보다 서울역 주변 사무실이 적합한 측면이 있다. 이와 함께 이곳 연수원을 인수위 사무실로 사용한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3명의 전직 대통령이 모두 형사처벌된 전력이 있는 점도 다른 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역 주변 빌딩 중에선 대우재단빌딩과 부림빌딩 등 2곳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이 건물은 올해 7월 리모델링이 예정돼 있어 단기 임대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과 종로 주변 건물까지 확장해 살피면 3300㎡(약 1000평) 안팎의 공실이 있는 건물은 9곳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모두 단기 임대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간 건물은 도심 한복판이라 금융연수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임대료가 단점으로 꼽힌다. 민간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할 수가 없어 경호에 어려움도 예상된다. 서울 여의도에 인수위 사무실을 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누구도 민간 빌딩에 사무실을 꾸리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수위를 이끌 인수위원장과의 조율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도 인수위 사무실 입지를 결정할 최종 변수로 꼽힌다.
  • 정계 입문 8개월 만에… 0선 의원·서울대법대 출신 첫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대선 승리로 정계 입문 이후 최단기에 국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인물이라는 기록을 쓰게 됐다. 사법고시는 9수 만에 합격했지만 ‘대통령 시험’(대선)은 단번에 합격한 셈이다. 윤 당선인은 1987년 직선제 대선 이후 처음으로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0선 의원’ 출신 대통령이란 기록도 세웠다. 또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이자 첫 서울대 법학과 출신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3월 검찰총장에서 자진 사퇴한 뒤 6월 말 정계 입문을 선언했다. 같은 해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 10월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직선제 이후 역대 전현직 대통령들은 여의도에서 국회의원에 더해 당대표나 총재 등을 거치며 오랜 정치 경험을 쌓았다. 직전 대선까지는 대통령뿐 아니라 대선 득표율 2위 후보도 모두 국회의원 출신이었다. 검사 출신 대선후보는 있었지만 대통령이 된 것은 윤 당선인이 처음이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후보가 지난 대선에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검사 출신 대선후보를 내세운 적이 없다. 윤 당선인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이다. 앞서 53학번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15·16·17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학력은 노태우 육사 졸업, 김영삼 서울대 철학과 학사, 김대중 목포상고, 노무현 부산상고, 이명박 고려대 경영학 학사, 박근혜 서강대 전자공학 학사, 문재인 경희대 법학 학사 등이다. 윤 당선인을 첫 충청도 출신 대통령으로 볼 수 있을지에는 시각차가 있다. 그는 선거 기간 ‘충청의 아들’이라며 충청권 민심에 지지를 호소했다. 윤 당선인은 충남에 터를 잡은 윤씨 소정공파 35대손으로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이 충남 공주다. 하지만 윤 당선인이 나고 자란 지역은 서울인 만큼 충청 출신으로 보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윤 당선인은 서울 성북구 대광초, 은평구 충암중·고교를 졸업했다. 만약 윤 당선인을 서울 출신으로 본다면 최초의 서울 출신 대통령이란 기록을 쓰게 된다. 앞서 이 전 총재도 선대의 원적이 충남 예산이라며 충청도 출신이라고 주장했지만 황해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생활한 탓에 ‘충청 대망론’이란 구호가 딱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그동안 충청도 출신인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 이인제 전 의원,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도 대통령을 꿈꿨으나 모두 실패했다.
  • 110석 vs 178석… 총리 인준이 협치 첫 시험대

    110석 vs 178석… 총리 인준이 협치 첫 시험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4년 4월 실시되는 22대 총선까지 여소야대로 국정을 이끌게 됐다. 윤 당선인은 10일 당선 일성으로 여소야대 상황에 대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가 훨씬 성숙해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긍정적 전망을 내놨으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국무총리 인준은 물론 단 1건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국회 지형이 험로를 예고했다. 국민의힘은 3·9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4석을 추가해 110석으로 의석을 늘렸다. 합당을 약속한 국민의당 3석, 국민의힘 성향 무소속 1석을 더해도 국회에서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로’다. 반면 제1야당이 될 민주당은 172석, 민주당 출신 무소속 6석으로 실제 178석을 보유하고 있다. 정의당 6석, 기본소득당 1석, 시대전환 1석도 소수 야당으로 민주당에 힘을 보탤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후보가 지난 8일 마지막 선거 유세에서 “민주당 사람들은 제가 대통령이 되면 180석을 가지고 정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게 방해하거나 심지어는 우리 당의 이탈자를 모아 저를 탄핵할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고 한 것도 열악한 의석 구조 때문이다. 역대 여소야대 상황과 비교해도 윤 당선인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128석, 대통합민주신당 142석으로 임기를 시작했으나 취임 두 달 만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해 여소야대가 해소됐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2024년 총선까지 약 2년 동안 완고한 여소야대 구도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민주당이 ‘무조건 반대’에만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원내 관계자는 “4·7 재보선과 대선에서 연달아 패한 민주당이 새 정부 발목 잡기에만 집중하면 심판론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윤 당선인이 여소야대 국회에서 한계를 절감할 경우 6월 지방선거 이후 인위적 정계개편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여소야대 국면 속 대통령의 통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야합’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충격적인 ‘3당 합당’을 감행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통치에 어려움을 겪자 정적인 YS(김영삼), JP(김종필) 등과 합당하는 인위적 정계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 [2000자 인터뷰 53] 정성장 “윤 당선인, 노태우·김대중 정부의 인사 살펴 ‘협치’ 실행을”

    [2000자 인터뷰 53] 정성장 “윤 당선인, 노태우·김대중 정부의 인사 살펴 ‘협치’ 실행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온 그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0.7% 포인트 차 신승을 거둔 것은 국민들이 일방적 독주 대신 통합과 협치를 명령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대북정책과 다른 길을 걷겠다고 공언해 온 윤 당선인이 취임할 때까지 어떤 자세로 외교안보, 대북정책을 가다듬어야 할까?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으로부터 의견을 들어봤다. Q. 한반도 상황이 엄중한데 외교와 국제관계에 문외한인 윤 당선인이 취임 때까지 짧은 시간에 얼마나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A. 윤 당선인이 헌정 사상 최소 득표 차로 당선된 것은 국민들이 통합과 협치를 명령한 것으로 본다. 그는 지난 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 공동선언문을 통해 인수위원회 구성부터 공동정부 구성까지 안 대표와 협의하면서 국민통합정부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또 10일 새벽 당선 인사를 통해서도 이를 재확인, 야당과도 협치하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진보 진영이 국회의 180석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 윤 당선인이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도 야당과의 협치는 불가피하다. 윤 당선인이 전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이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정책은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한 점, 국민을 가르는 분열의 정치는 사라질 것이라고 언급한 점에 주목한다. Q.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A. 역대 대통령 당선인 대부분이 실용과 통합을 강조했지만 실제 이행한 정부는 많지 않다. 윤 당선인이 진정 그런 쪽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선거운동 기간 자신의 공약에 쏟아졌던 비판들을 인수위원회에서 과감하게 수용해 야당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수 정권이 대북정책과 관련해 야당과 협치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선례가 있다. 노태우 정부 때 이홍구 국토통일원(현재의 통일부) 장관을 임명한 것과 김대중 정부 때 강인덕 통일부 장관을 임명한 일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연구해 공산주의를 잘 이해하는 합리적인 중도 성향의 이홍구 교수를 국토통일원 장관에 임명하면서 통일방안과 관련해 “국민들이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한국 정치의 지도자로 인정하니까 그분들하고 잘 이야기해서 만들어보라”고 위임함으로써 여야정 합의에 의해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나오게 했다. 이런 초당적 합의에 의해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DJP연합으로 대선을 승리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보수 성향의 북한 전문가인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했다. 당시 북한은 강 장관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비난했지만, 이 인사를 통해 김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윤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합리적인 중도 또는 진보 성향의 전문가를 추천받아 새 정부와의 소통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인사를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실용주의와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여소야대 상황에서 남북화해를 중시하는 민주당과의 협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Q. 윤 당선인이 취임 준비를 하는 동안 북한의 도발이 잇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A. 북한은 한국의 대선 결과가 발표된 10일 기다렸다는 듯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우주개발국 현지지도를 보도하면서 “정찰위성개발을 위한 사업은 (중략) 우리 당과 정부가 최중대사로 내세우는 정치군사적인 선결과업, 지상의 혁명과업”이라고 발언한 사실을 공개했다. 오는 4월 15일 김일성의 110회 생일까지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거나 2017년에 시험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과 화성-15형의 검수사격시험, 모형은 공개했지만 아직 비행시험을 하지 않은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시험발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윤 당선인은 임기 초부터 급격히 냉각된 한반도 정세를 잘 관리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 새 정부는 남북 및 한중 관계 관리에 실패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이 아니라 야당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초당적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면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했던 노태우 정부의 북방 및 대북정책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 이재명 “당선되면 북에 즉시 특사” 정성장 “누가 되든 이렇게 했으면”

    이재명 “당선되면 북에 즉시 특사” 정성장 “누가 되든 이렇게 했으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투표를 하루 앞둔 8일 “당선(되면) 즉시 미국, 중국, 일본,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실용적 대북접근법을 위한 외교 채널을 굳건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위기극복·국민통합 특별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제거하겠다”며 “강력한 자주국방을 바탕으로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펼쳐 평화와 공동 번영의 새 길을 열겠다”고 덧붙였다. 북한 특사 파견 방침 등을 내세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선제타격론 등과 차별화하고, 평화와 안정의 메시지로 중도 표심에 호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재명 정부’라는 표현은 ‘국민통합정부’보다 앞설 수 없다”며 “선거 과정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갈등을 빚었다. 통합된 국민의 정부가 돼 깨끗이 치유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대한민국의 역사가 과거로 퇴행하느냐, 미래로 전진하느냐가 결정될 중차대한 갈림길에서 무겁고 두려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보복과 증오로 가득 찬 검찰 왕국,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사회, 민생의 고통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구태 정치를 더 방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제주를 찾아 “나라를 바꾸기 위해 한 분도 빠짐없이 내일 투표해달라”면서 “정치 문법, 셈법도 모르는 제가 여러 달의 마라톤 여정을 마치고 이제 결승점을 앞둔 스타디움으로 뛰어 들어왔다. 제가 1번으로 결승 테이프를 끊고 나라를 바꾸고 제주를 바꿀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민주당 정권을 겨냥해 “지난 오랜 기간 제주에 약속만 하고 제주도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이기적인 정치세력과 달리 (제가) 제주를 책임 있게 제대로 변화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제주도민의 삶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머슴이 주인을 제대로 섬기는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발전도 제주도의 발전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한 분도 빠짐없이 내일 투표해달라. 정직하고 책임 있게 나라와 제주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것과 같은 국정 운영 방향과 통합에의 의지 표명 같은 메시지는 없었다. 오후 부산 유세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날 ‘분석자료-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외교·안보·대북정책 비교 및 대선 이후 차기 정부의 과제’를 통해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오는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시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의 하나로 원자력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데 대한 미국의 동의와 협조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처음부터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결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정 센터장은 북한과 미국,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정교한 전략 수립과 대내적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주도해 ‘한반도 비핵·평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보수와 진보 진영을 아울러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대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의미있는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북미 양자뿐만 아니라 남북미중 4자, 남북미중일러 6자 등 다양한 비핵화 협상틀을 동시 가동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천명하는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정 센터장은 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과거 남북 및 한중 관계 관리에 실패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이 아니라 야당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초당적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면서 북한을 협상의 테이블에 나오게 했던 노태우 정부의 북방 및 대북정책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임기 초부터 한국의 미사일 전력과 정찰자산 등을 통합적으로 운용할 전략사령부 창설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이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부상한 상황에 미국의 확장억제에 더욱 의존함으로써 우리의 안보를 해결하려는 자세보다 자강력을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건강한’ 한미동맹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14대 김영삼 16%P 더 받고 19대 땐 2·3위 뒤집혀… 바뀐 적 없는 1위, 이번 대선은?

    14대 김영삼 16%P 더 받고 19대 땐 2·3위 뒤집혀… 바뀐 적 없는 1위, 이번 대선은?

    3일부터 투표일인 오는 9일 오후 7시 30분까지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면서 20대 대선 레이스는 안갯속에 갇혔다.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는 최종 대선 결과와 유사할까.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와 실제 결과를 비교한 결과, 직선제가 실시된 13대 대선부터 19대 대선까지 1위가 뒤바뀐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번에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첫날인 3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하면서 초박빙 구도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이 더욱 어려워졌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은 1992년 28일에서 1994년 23일로 줄었다가 2005년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6일로 줄었다. ●13대 가가호호 조사로 격차 적어 1987년 13대 대선에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줄곧 30%대로 1위를 유지했다. 선거를 33일 앞둔 11월 15일에는 38.2%를 기록했다. 이런 흐름은 한 달 후 대선에도 이어졌다. 최종 결과는 노 후보 36.6%,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28.0%,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 27.1%,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 8.1%였다. 1위뿐만 아니라 모든 후보의 순위와 격차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전화조사 대신 집집마다 방문해 개별면접조사했다고 한다. 당시 가구 유선전화 보유율은 전국 평균 71% 수준에 불과했다. ●14대  ‘초원복집’이후 김영삼 26→42% 1992년 14대 대선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실제 결과와 차이가 컸다. 선거를 31일 앞둔 11월 17일, 김 후보는 26.0%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투표를 불과 사흘 앞두고 ‘초원복집’ 사건이 발생했다. 영남 지지층이 결집한 덕분인지 김 후보가 42.0%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33.8%,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16.3%, 신정당 박찬종 후보는 6.4%로 레이스를 마쳤다. ●15대  1·2위 격차 4.2→1.6%P 좁혀져 1997년 15대 대선은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후보,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3강 구도로 치러졌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1위와 2위의 순위는 바뀌지 않았지만, 선거일에 임박할수록 격차가 줄었다. 선거를 26일 앞둔 11월 22일 조사에서 김 후보는 33.1%, 이회창 후보는 28.9%, 이인제 후보는 20.5%를 차지했다. 여론조사 1위와 2위의 격차는 4.2% 포인트였지만, 실제 개표 결과 격차는 1.6% 포인트에 불과했다. ●16대 ‘단일화’ 노무현 지지율 뒤집어 2002년 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직전인 11월 24일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다. 직전 조사에서 노 후보의 지지율은 25.4%에 불과했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32.3%로 앞섰다. 그러나 단일화 후 선거를 24일 앞둔 11월 25일 조사에서 노 후보는 43.5%, 이 후보 37.0%로 순위가 바뀌었다. 결국 노 후보는 48.9%로 당선됐다. ●17대 이명박 한때 60% 실제론 48.7% 2007년 17대 대선은 ‘이명박 대세론‘이 압도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한때 지지율이 60.7%에 달했다. 마지막 공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 45.4%,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17.5%,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13.6%였다. 결국 이명박 후보는 대선에서 48.7%의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18대 文 단일화에도 박근혜에 밀려 2012년 18대 대선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1강 2중을 형성했다. 선거를 26일 앞둔 11월 23일 안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고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문 후보의 지지율은 40%대로 치솟았다. 마지막으로 여론조사가 공표된 12월 12일 박 후보 47%, 문 후보 42%로 접전 양상을 보였으나, 박 후보가 51.6%를 받아 당선됐다. ●19대 안철수·홍준표 순위 뒤바뀌어 19대 대선은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2017년 5월 9일에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탄핵 정국 이후 30%대 지지율을 얻기 시작했고, 선거 한 달여를 앞두고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30%대로 부상했다. 5월 2일 마지막 공표된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 38%, 안 후보 20%,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16%, 정의당 심상정 후보 8%,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6%로 조사됐다. 실제 결과는 2위와 3위, 4위와 5위 순위가 바뀌었다. 
  • 노소영 “우크라이나 대통령 애처로워” 비하 논란

    노소영 “우크라이나 대통령 애처로워” 비하 논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코미디언 이력에 대해 비아냥 섞인 반응을 보이고,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3일 온라인상에서 화제된 내용에 따르면, 노 관장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It is no comedy(이것은 코미디가 아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수도를 사수하겠다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영상이 그리 미덥지 않다. 겁먹은 얼굴로 하는 대국민 발표가 애처롭기만 하다”고 썼다. 이어 “차라리 소총이라도 든 전대통령을 믿고 싶다”며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릴 순 있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웃겨주기라도 하라는 주문이겠지.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건 냉혹한 국제 정치”라고 했다.노 관장은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가 정신줄을 놓으면 목숨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코미디가 아니다”며 “우리의 생존을 앞으로 5년간 책임질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나는 무엇보다 우리의 지정학적 상황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분을 뽑고 싶다. 대선 토론을 봐도 이 부분을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노 관장의 글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퍼졌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직 코미디언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노 관장의 말투가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논란이 불거지자 노 관장은 해당 글을 삭제했다.
  • [사설] 후보들 ‘깜깜이’ 중이라도 국민통합 구상 내놔라

    [사설] 후보들 ‘깜깜이’ 중이라도 국민통합 구상 내놔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 초박빙 다툼이 선거 막판까지 이어진다. 오늘부터 선거일인 9일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는 ‘깜깜이 선거 기간‘’이다. 역대 최고의 비호감 선거인 탓에 후보나 배우자 관련 비리나 의혹이 폭로될 때마다 여론이 뒤집히기도 한다. 각 후보 진영이 팩트체크가 어려운 가짜 정보와 흑색선전, 비방에 집착하는 이유다. 유권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신냉전에 고물가, 성장력 저하 등 우리 경제의 앞날을 불안해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겠다는 후보들에게 비전과 정책, 통합의 메시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후보가 경기도 지사 시절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한 황교익씨가 “윤석열은 푸틴을 닮았다”고 하거나, 윤 후보의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 허용’ 발언을 두고 유시민 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것이 이 후보의 득표에 도움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첫 민주정부는 김대중 정부”라고 한 언급도 아쉽다. 6·10 민주화운동의 성과가 ‘6공화국 헌법과 87체제’ 아닌가. 그 시작은 노태우 정부였다. 광주시민의 죽음에 책임이 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한 배경도 거기에 있다. 김영삼 정부마저 민주정부의 시작이 아니라고 함으로써 갈라치기를 통해 선거에 개입하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유권자들이 이 후보의 ‘정치교체’, 윤 후보의 ‘정권교체’ 중 어느 쪽을 택할지는 오리무중이다. 지금까지 진영의 표를 한 표라도 더 끌어오고자 상대를 비방하고 모욕하며, 혐오를 유발했다면 남은 기간이라도 국민통합의 정책을 내놔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갈수록 입이 거칠어지는 후보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혹독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나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편 가르고 진영만 강화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거센 저항을 보면서 구심점으로서의 국가 지도자, 대통령의 역할을 되새긴다. 당선되면 곧바로 통합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분열된 국가를 하나로 묶을 구상을 밝히는 게 도리다. 그것이야말로 누구한테 투표할지 정하지 못한 중도층을 포용하는 전략이 아니겠나. 혐오와 보복의 언어로는 미래를 일굴 수 없다.
  • 김용민 “윤석열, 김건희로부터 성상납 받아” 막말 성희롱

    김용민 “윤석열, 김건희로부터 성상납 받아” 막말 성희롱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로 이름을 알린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부에게 성희롱성 막말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씨는 2일 페이스북에 ‘이재명이 전과 4범이라 대통령 자격이 없어? 전과 11범 이명박에 줄섰던 보수팔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인가요’라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고문의 글을 공유하면서 “이재명의 전과가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윤 후보가 건설업체 삼부토건에서 2002년부터 2015년까지 명절 선물을 받아 챙겼다는 보도를 의식한 듯 “윤석열은 검사로 있으면서 정육을 포함해 이런저런 선물을 받아 챙기고, 이런저런 수사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김건희로부터 성상납을 받은 점이 강력하게 의심된다“며 “검찰 조직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우리가 TV로 본 바”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 후보의 전과를 두둔하고자 역대 대통령의 과오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사지도 않은 땅을 샀다고 하고 학교 건축기금을 모으고, 독립자금을 자기 돈이라고 주장하며 동포와 싸웠다. 이같은 해방 전 이력은 아름다워 보이나”라고 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 괴뢰군을 자청했다. 5·16 이전에도 무려 세번이나 쿠데타를 시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난 상황에서 쿠데타라, 정상적이라면 목숨을 부지 못할 내란죄였다. 이것도 아름다워 보이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전두환은 군내 사조직을 만들었고, 12.12 쿠데타로 하극상의 전형이 됐으며 광주시민을 학살했다. 노태우는 그의 동지”라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를 거론한 뒤 “박근혜를 뽑았는데 그의 사적 인연인 최순실 부부가 집권했다”라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다른 역대 대통령의 사익을 추구하려던 참담한 범죄 이력 또는 흠결 어린 자취는 괜찮고 공익을 실현하려다 달게 된 이재명의 전과는 용서할 수 없이 악독한가”라고 역설했다.
  • [최광숙 칼럼] 대통령 당선인이 첫번째 할 일/대기자

    [최광숙 칼럼] 대통령 당선인이 첫번째 할 일/대기자

    이번 대선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선거다. 초박빙인 1, 2위 후보 지지율에 야당 후보 간 단일화 무산 책임 공방까지 가장 험한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원로들은 “진영 대결과 적대가 역대 최악 수준”이라고 걱정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수가 괴멸되고,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로 진보가 밑바닥을 드러낸 이후 한국 정치판은 폐허 상태나 다름없다. 정치권과 국민은 보수와 진보로 쫙 갈라져 거의 ‘정신적 내전’을 치르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해결할 시대적 과제가 열 손가락으로도 셀 수 없는데, 선거판을 보면 어퍼컷과 하이킥으로 희화화되고, 저급한 네거티브와 포퓰리즘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진지한 고민은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9일 대통령이 선출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중 누가 승자가 돼도 국민 통합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선거 후가 더 걱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들의 국정 운영 역량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 대통령학 전문가인 찰스 존스는 “취임 전 정부 구성을 치밀하게 잘한 당선인은 성공한 대통령이 됐고, 그렇지 못한 당선인들은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고 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해 9·11 테러 사태 대응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부실한 정권 인수’가 꼽힌다. 부시와 고어 간의 선거인단 재검표 논란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당선인 확정이 36일이나 늦어져 정권 인수 기간이 반으로 줄었다. 이에 행정부의 인선 등이 지연돼 안보 대응에 차질을 가져왔다.(9·11 진상조사위 보고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당선인이 취임하는 5월 10일까지 두 달여 정권 인수 기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정권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득표에는 도움이 됐지만 경제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할 공약들은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임기 초 밀어붙일 개혁 과제를 비롯해 주요 정책의 우선순위도 정해야 한다. 역대 정권을 보면 인수 기간 때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이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취임 전부터 엄청난 국정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DJ는 당시 심경을 “‘준비된 대통령’이란 구호로 당선됐지만 국정에 대한 두려움과 막중한 책임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청와대 근무 등 국정 경험이 있는 김중권씨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고 술회했다.(‘대통령 당선자의 성공과 실패’의 저자 함성득 경기대 교수의 전언) DJ는 당선 직후 노태우 정부 때 정무수석을 지낸 김중권 전 의원을 삼고초려해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평생 야당 지도자의 길만 걸었던 DJ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절묘한’ 인사였다. DJP 공동 정부라서 내각 인선 등 난제가 많았는데, ‘비경제장관은 DJ몫, 경제장관은 JP몫’이란 제안을 한 이도 김 실장이었다. “취임 초 정권 안정을 위해 법무부 등 비경제장관은 DJ 쪽에서 맡아야 한다”는 김 실장의 제언을 DJ는 전폭 수용해 새 정부 내각의 진용을 짰다. 이번에 당선되는 후보 역시 DJ와 비슷한 입장이다. 코로나, 경제, 안보 등 국내외 환경이 어느 것 하나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선인이 제일 신경써야 할 대목은 인사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브레인’이자 ‘손발’인 비서실장 인선이 가장 중요하다.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가장 지근거리에서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해 논의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국회 경험이 없는 만큼 이번 비서실장에겐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된다. 특히 윤 후보가 당선되면 여소야대가 되는 만큼 더욱 그렇다. 대통령 파워가 가장 셀 때는 당선인 시절이다. 두 달여 동안 정치권은 물론 공직사회에 ‘말빨’이 가장 잘 먹힌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제대로 ‘첫발’을 내디뎌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다.
  • 항암 포기한 채… “머릿속 마지막 한 자까지 글로 남기고 떠나련다”

    항암 포기한 채… “머릿속 마지막 한 자까지 글로 남기고 떠나련다”

    지난 26일 타계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약 1년 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불안한 것”이라며 “죽음을 앞둔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또 “건강이 다할 때까지 머릿속에 들어간 모든 것을 마지막 한 자까지 글로 남기고 떠나려 한다”고 했다. 장녀 이민아 목사의 9주기 즈음이었다. 2015년 발간한 추모집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개정판을 이때 내놓는 까닭에 대해 이 장관은 “딸의 10주기까지 살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자신의 말처럼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부인과 설립한 영인문학관에서 집필을 거듭하다 딸의 10주기를 열이레 앞두고 하늘로 향했다. 89세. 결코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시대의 지성’이 우리 곁을 떠났다. 2017년 암 진단을 받고 2년 뒤 이를 공개했으나 항암 치료 대신 글쓰기를 선택한 고인이었다.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그는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 관료, 교수,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직함으로 자신의 생애를 큰 산으로 쌓아 올렸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와 대학원을 나온 고인은 1956년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하며 세대 논쟁을 부른 ‘우상의 파괴’를 신문 지면에 발표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960년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시작으로 ‘삼각주’(서울신문), ‘여적’(경향신문), ‘분수대’(중앙일보), ‘만물상’(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쓰며 당대 최고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0년대부터는 학계에 몸을 뒀다. 1966년 이화여대 강단에 선 뒤 문리대 교수, 국문과 석좌교수를 거쳐 2011년 명예교수가 됐다. 50대인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의 면모도 과시했다.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도 고인의 아이디어였다. 노태우 정부 때는 문화공보부에서 분리돼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지냈다. 문화예술인으로는 처음 문화 정책을 지휘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을 설립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 시대 정신과 그 흐름을 읽어 내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축소지향의 일본인’ (1982),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디지로그’(2006),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특히 ‘디지로그’에서는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세상을 언급하며 비빔밥과 같은 우리 문화와 정서에 조화의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숱한 상과 훈장을 받았던 고인은 지난해 10월 문화계 최고 영예인 금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유족으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장남 이승무 한예종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교수가 있다. 장녀 이민아 목사는 2012년 암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다. 전임 장관을 부처장으로 치르는 건 처음이다. 영결식은 새달 2일 오전 10시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 장지는 충남 천안의 공원묘지로 알려졌다.
  •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줘요”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줘요”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줘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임종 사흘 전에 남긴 말이다. 오랜 시간 가까운 거리에서 이어령 선생을 보필했던 윤재환 전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이 문안 인사 차 고인을 찾았다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다. 결코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 이어령 전 장관이 26일 별세했다. 89세. 지난 2017년 암 투병 사실을 처음 밝인 이 전 장관은 이후 항암치료 대신 글쓰기를 선택한 뒤 마지막까지 글쓰기 작업을 벌이다 이날 세상을 떴다. 고인은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큰 산이었다. 문학 평론가, 언론인, 관료, 교수, 시인, 소설가 등 다양한 직함으로 생애를 보냈다. 고인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학과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대 약관의 나이에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고인은 ‘삼각주’(서울신문), ‘여적’(경향신문), ‘분수대’(중앙일보), ‘만물상’(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쓰며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1960년대부터는 학계에 몸을 뒀다. 1966년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고, 2011년 명예교수가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도 선보였다. 개회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도 고인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태우 정부 때는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1990~1991)을 역임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립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계획을 수립했다. 이후로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신부여팔경’의 저자 윤재환 작가는 고인을 “물음표와 느낌표에 생애를 바친 인물”이라고 했다. 세상 모든 것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졌고, 이를 해결해 세상 사람들에게 ‘유레카’를 안겨줬던 고인의 생애를 함축하는 말이다. 윤 작가는 고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오랜 기간 가까운 거리에서 고인을 보필했던 이다. 그는 2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흘 전 이 전 장관님을 뵀던 날, 제가 별세 소식을 알려도 좋겠냐고 여쭸더니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다”며 이같이 밝혔다.‘메멘토 모리’도 이 전 장관의 생애를 설명하는 말 중 하나다. 고인의 마지막 저서가 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윤 작가는 “이 전 장관님께서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던 6세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죽음에 호기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는 것이다. 고인은 이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께 빈소를 방문해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은 것은 지난달 9일 이한열 열사의 모친인 고 배은심 여사를 조문한 이후 48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선생님 책을 많이 보았고 감화도 많이 받았다”며 “우리나라의 큰 스승이신데 황망하게 가셔서 안타깝다”고 유족을 위로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 검사를 지내던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다. 부처의 전임 장관을 부처장으로 치르는 건 처음이다. 이날 장례식장을 지킨 황희 문체부 장관은 “이 전 장관의 영결식이 새달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 황 장관이 장례위원장, 김현환·오영우 차관이 부위원장을 맡는다. 장지는 충남 천안의 한 공원묘지로 알려졌다. 손원천 기자
  •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사흘 전 남긴 말이다. 결코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 이어령 전 장관이 26일 별세했다. 89세. 지난 2017년 암 투병 사실을 처음 밝인 이 전 장관은 이후 항암치료 대신 글쓰기를 선택한 뒤 마지막까지 글쓰기 작업을 벌이다 이날 세상을 떴다. 고인은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큰 산이었다. 문학 평론가, 언론인, 관료, 교수, 시인, 소설가 등 다채로운 직함으로 생애를 보냈다. 고인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학과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대 약관의 나이에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고인은 ‘삼각주’(서울신문), ‘여적’(경향신문), ‘분수대’(중앙일보), ‘만물상’(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쓰며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1960년대부터는 학계에 몸을 뒀다. 1966년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고, 2011년 명예교수가 됐다. 50대 때인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도 선보였다. 개회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도 고인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태우 정부 때는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1990~1991)을 역임했다. 이때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립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계획을 수립했다. 이후로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신부여팔경’의 저자 윤재환 작가는 고인을 “물음표와 느낌표에 생애를 바친 분”이라고 했다. 세상 모든 것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졌고, 이를 해결해 세상 사람들에게 ‘유레카’를 안겨줬던 고인의 생애를 함축하는 말이다. 윤 작가는 고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오랜 기간 가까운 거리에서 고인을 보필했던 이다. 그는 2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흘 전 이 전 장관님을 뵀던 날, 제가 별세 소식을 알려도 좋겠냐고 여쭸더니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한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다”며 이같이 밝혔다.‘메멘토 모리’도 이 전 장관의 생애를 설명하는 말 중 하나다. 고인의 마지막 저서가 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윤 작가는 “이 전 장관님께서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던 6세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죽음에 호기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는 것이다. 고인은 이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 검사를 역임하던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지는 충남 천안의 한 공원묘지로 알려졌다. 손원천 기자
  • ‘한국의 이야기꾼’ 떠나다…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한국의 이야기꾼’ 떠나다…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한국 지성의 대들보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유족 측은 이어령 전 장관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이날 밝혔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서울대와 동(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20대 초반에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우상의 파괴’를 1956년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를,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1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됐다. 고인은 노태우 정부 때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하면서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에 임명됐다. 문화부 장관 재임 시절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세계적인 예술인을 길러내는 집합소로 자리잡은 한국예술종합학교(1992년 개교)를 만든 것이다.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설립,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 계획 등도 고인이 문화부 초대 장관으로 이뤄졌다. 고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식전행사 기획자로도 활약했다. ‘화합과 전진’이라는 주제의식과 역동성을 모두 표현해낸 명문으로 평가받는 ‘벽을 넘어서’ 구호와 개막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 기획 모두 고인의 아이디어였다. 저술 활동도 쉬지 않았다. 1984년 발표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고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고인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통해 하이쿠, 분재, 트랜지스터, 쥘부채 등 일본 문화가 가진 독창적인 특징이 바로 ‘축소지향’이라는 주장을 펼쳐 화제가 됐다. 2006년엔 ‘디지로그’를 통해 후기 정보화 사회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 상생하는 ‘디지로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밖에도 고인은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60여년 동안 약 130여 종의 저서를 펴냈다. 고인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저서 집필에 마지막 힘을 쏟았다. 고인은 자신을 ‘이야기꾼’이라 칭하며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탐구하는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해왔다. 12권으로 계획한 시리즈 중 지난해 2월 첫 권인 ‘너 어디에서 왔니’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고인은 “생과 죽음이 등을 마주 댄 부조리한 삶. 이것이 내 평생의 화두였으며,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 아닌 탄생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 [속보]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향년 89세

    [속보]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향년 89세

    한국 문학의 거장이자 우리나라 대표 지성인으로 평가받는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호적상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들어가 1956년 졸업했다. 이후 1960년 같은 대학 대학원 문학석사, 1987년에는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했고, 같은 해 잡지 ‘문학예술’에 ‘현대시의 환위와 한계’와 ‘비유법논고(攷)’가 추천돼 정식으로 등단했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맡아 기반을 닦는 등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 장지 못 구한 전두환 유해… 자택에 두 달 넘도록 안치

    장지 못 구한 전두환 유해… 자택에 두 달 넘도록 안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두 달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전씨 유해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 안치돼 있는 것으로 9일 파악됐다. 지난해 11월 2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한 전씨의 발인은 나흘 뒤인 같은 달 27일 진행됐으나 당시 장지가 정해지지 않아 그의 유해는 화장 후 연희동 자택으로 옮겨졌다. 전씨는 생전에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뿌려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회고록에서는 “통일 전에 내 생이 끝난다면 북녘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로 경기 북부 지역 쪽 전방 지역을 다니기가 어렵고 날씨도 추운 탓에 아직 장지를 알아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지금 특별히 서두를 이유는 없다”면서 “납골당이나 공원묘지에 안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해는 경기 파주의 사찰인 검단사에 임시 안치돼 있다가 같은 해 12월 파주 통일동산 내 동화경모공원에 안치됐다.
  • 분당 2개 단지 연말 리모델링 착공 … 1기 신도시 첫 사례

    분당 2개 단지 연말 리모델링 착공 … 1기 신도시 첫 사례

    수도권 1기 신도시 가운데, 첫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가 올해 안에 분당에서 착공할 전망이다. 8일 경기 성남시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성남시로부터 리모델링 사업 계획을 승인받은 한솔마을 5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오는 19일 총회를 열어 가구별 공사 분담금을 확정하고 하반기에 착공한다. 1994년 10월 준공된 한솔마을 5단지는 수평 및 별동 증축 방식으로 리모델링이 이뤄져 전체 동 수가 기존 12개에서 16개로 4개 늘어나고, 가구 수는 1156가구에서 1271가구로 115가구(9.9%) 증가한다. 단지 내 건축 연면적은 8만 5908㎡에서 20만236㎡로 11만 4328㎡(133.1%) 늘어난다. 지하 1개 층인 주차장이 지하 3개 층으로 확대돼 총 주차 가능 대수도 529대에서 1834대로 확대되고, 운동시설과 도서관 등 각종 주민 편의 시설이 새로 들어선다. 입주민들의 이주는 오는 6월 전후로 시작해 10월 말 까지 마무리 될 전망이다. 이주가 완료되면 11월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갈 수 있다. 공사기간은 38∼40개월로 예상돼 2026년 1월 완공될 전망이다.1995년 11월 준공돼 입주 27년 차인 무지개마을 4단지는 오는 4∼5월 분담금 확정을 위한 조합원 총회를 열 계획이다. 이주는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진행하고, 12월 말이나 내년 초 착공해 2026년 상반기 완공할 것으로 얘상된다. 수평 및 별동 증축 방식으로 리모델링이 진행되며, 공사를 마치면 기존 5개 동에서 7개 동으로 2개 동 늘어나고, 가구 수는 563가구에서 747가구로 184가구(32.7%) 증가한다. 한편 분당 다음으로 규모가 큰 일산에서도 ‘경기도 공동주택 리모델링 컨설팅 시범 단지’로 선정된 문촌16단지, 경기도의 ‘찾아가는 리모델링 자문 시범 사업’ 단지로 선정된 강선마을12단지 등 6개 단지 이상에서 리모델링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기 신도시는 정부가 폭등하는 집값 안정과 주택난 해소를 위해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432개 단지에 29만 2000여 가구가 1992년 부터 순차적으로 입주했다. 주택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상·하수도관 부식, 층간소음, 주차장 부족 등으로 주민들의 불편과 불만이 커지고 크다.
  • 한 달 전 지지율 1위 후보, 7번 중 6번 당선… 지금 표심은 예측불가

    한 달 전 지지율 1위 후보, 7번 중 6번 당선… 지금 표심은 예측불가

    1987년 이후 치러진 7차례 대선에서 6차례는 투표 한 달 전 여론조사 1위 후보가 그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한 달 앞인 6일 현재까지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여론조사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혼전이어서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1987년 이후 역대 대선의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돌아보면, 2002년 대선을 빼고 모든 대선에서 한 달 전 여론조사 1위 후보가 실제 득표율도 가장 높았다. 또 1987년 대선을 빼고 모든 대선에서 당선자의 한 달 전 여론조사 지지율보다 실제 득표율이 더 높아 결국은 부동층을 얼마나 흡수하느냐가 승패를 판가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대선 33일 전 조사에서 노태우 후보는 38.2% 지지율로 김영삼(27.7%) 후보, 김대중(24.0%) 후보를 앞섰고, 실제 득표율 36.6%로 대통령이 됐다. 1992년 대선 31일 전 조사에서는 김영삼 후보 26.0%, 김대중 후보 19.6%, 정주영 후보 9.0%였고, 김영삼 후보가 42.0% 득표율로 당선됐다. 1997년 대선 33일 전 조사에서 김대중 후보 34.0%, 이회창 후보 24.4%였으며, 득표율 40.3%로 김 후보가 38.7%의 이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2007년 이명박 후보는 대선 31일 전 조사에서 38.7%로 정동영(13.1%) 후보, 이회창(18.4%) 후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고, 득표율 48.7%로 당선됐다. 2012년 대선 33일 전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는 39.0%로 문재인(23.0%) 후보, 안철수(20.0%) 후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으며, 51.6% 득표율로 당선됐다. 안 후보가 대선을 26일 앞두고 문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지만 변수가 되지는 못했다. 2017년 대선 33일 전 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38.0%로 안철수(35.0%)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고, 득표율 41.1%로 당선됐다. 2002년 대선만 예외다. 대선 26일 전 조사에서 25.4%를 얻은 노무현 후보는 25.1%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1위였던 이회창(32.3%) 후보를 제쳤다. ‘노·정 단일화’ 다음날인 대선 24일 전 조사에서 노 후보는 43.5%를 기록하며 37.0%를 얻은 이 후보를 역전했으며, 48.9% 득표율로 당선됐다. 20대 대선을 한 달 앞둔 지금은 상황이 판이하다. 6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국민일보의 지난 3~4일(D-33)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에 따르면 윤 후보 37.2%, 이 후보 35.1%로 나타났다. 반면 한길리서치·쿠키뉴스의 지난 2일(D-35) 조사(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결과에서는 이 후보 40.4%, 윤 후보 38.5%였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5∼27일(D-41) 조사(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에서는 이·윤 후보가 35.0%로 동률을 기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2002년을 제외하고는 40~50일 전부터 이기는 후보가 정해졌다. 그때가 정상이고 지금이 비정상”이라며 “이번 선거는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과거와 달리 이번 후보들은 정치신인이거나 ‘변방’ 출신이기에 유권자들이 판단을 끝내지 못했다”며 “한 달 남은 상황인데 단일화 구도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 [씨줄날줄] 택시 합승/김성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택시 합승/김성수 논설위원

    개그맨 최양락씨가 어느 방송에서 선배 전유성씨에 대해 털어놓은 에피소드다. “형이 한번은 종로에서 여의도까지 가려고 택시를 탔다고 한다. 1980년대는 택시 합승을 했다. 형 입장에서는 빨리 가야 하는데 기사님이 계속 합승을 시도하길래 속으로 횟수를 셌다고 한다. 여의도 도착 후 형은 요금으로 120원을 냈다고 한다. 기사님이 의아해하자 한마디를 불쑥 던지고 내렸다. ‘야! 이XX야! 12번 섰으면 버스지 택시냐’. 당시 버스요금이 아마 120원이었을 거다.” 1970~80년대는 택시 합승이 흔했다. 기사는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이미 타고 있는 승객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손님을 또 태웠다. 택시가 자주 정차하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합승한 손님 각각에게 돈을 받으니 요금 산정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왜 가까운 길을 돌아서 가냐”며 운행코스에 대한 승객의 불만도 많았다. 합승 승객끼리 언쟁이나 주먹다짐도 종종 벌어졌다. 1988년 10월엔 합승 택시 안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손님과 야당의 김대중 총재를 지지하는 승객이 언쟁을 벌이다 ‘차내 격투’로 번져 철창 신세를 졌다는 기사도 있다. ‘택시 합승 강도’도 신종범죄로 한때 기승을 부렸다. 기사와 승객으로 가장한 2인 1조가 주로 여성들만 골라서 범행을 저질렀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1982년 9월 택시 합승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오랫동안 택시 합승은 당국의 묵인하에 유지됐다. 심야시간에 영등포역 등에서 손님을 4명씩 모아 안양, 인천 등으로 200㎞에 육박하는 광란의 질주를 했던 ‘총알택시’도 합승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서울시가 오늘부터 택시 합승을 합법화한다. 40년 만이다. 방식은 달라졌다. 호출앱을 통한 자발적 합승만 할 수 있다. 합승 선택권을 기사가 아닌 승객이 갖는다. 요금도 합승 승객과 나눠서 낸다. 범죄노출을 막기 위해 실명으로만 앱에 가입할 수 있고,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로 결제수단을 등록해야 한다.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만 합승을 허용한다.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있는 지금 누가 합승을 하겠느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그래도 수요는 있는 만큼 부작용을 줄이고 운용의 묘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 12·12쿠데타 한 달 뒤, 최규하 대통령이 카터에게 전한 한국 상황은

    12·12쿠데타 한 달 뒤, 최규하 대통령이 카터에게 전한 한국 상황은

    1979년 전두환·노태우 등 이른바 신군부가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난 1980년 1월 20일 허수아비로 전락한 최규하 대통령은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신군부 쿠데타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는 카터 대통령의 편지(1980년 1월 4일자)에 보낸 답신이었다. 이 편지에서 최 대통령은 한국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조사와 관련해 일어난 불행한 사건에 대한 우려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후로 군 지휘체계가 완전히 복구되며 상황이 안정됐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은 역대 대통령 비공개 기록물 11만 4176건을 공개 혹은 부분공개로 전환했다고 27일 밝혔다. 특히 역대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 주고받은 서신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가령 미국 아폴로 17호 우주선이 달착륙에 성공한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닉슨 대통령에게 축하 서신을 보냈고, 이에 미국에서 1973년 5월 21일 회답 서신과 함께 아폴로 17호에 실렸던 태극기와 월석을 선물로 보내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월석은 현재 중앙과학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1년을 평가하는 문서도 공개했다. 이 문서는 청와대가 맥킨지 서울사무소에 의뢰해 작성한 것으로 정부의 경제위기 극복과정 평가 결과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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