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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씨,노씨등과 작당해 군사반란/전씨 구속­주요 혐의 내용

    ◎수차례 회합… 군권 장악계획 음모­반란 모의/총장공관 무력 점거… 정 총장 연행­반란 실행 3일 구속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적용하고 있는 범죄 내용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만큼이나 「화려」하다.영장요지를 분석한 전씨의 주요 범죄혐의 내용을 정리한다. ○거사일정 등 논의 ▷반란모의◁ 10·26사건 합수본부장인 전씨는 군장성 진급심사에서 하나회소속 군인들의 진급이 여의치 않게 되고 권한 남용 문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과 잦은 갈등을 빚어 인사조치당할 우려가 있자 정총장을 김재규 내란사건 관련 혐의로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불법 연행해 제거함으로써 군의 실권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79년 11월 중순부터 노태우 9사단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박준병 20사단장 등과 수차례 회합,논의한 끝에 12월12일을 정총장 연행 거사일로 정했다.정총장 연행에 반발,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거사 당일 하오 6시30분 만찬초청 명목으로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전씨 등은 같은 시각에 보안사와 인근 수경사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정총장 추종세력이 무력으로 대응할 경우 병력을 동원해 제압하기로 모의했다. ○초병 현장서 살해 ▷반란실행◁ 12일 하오 7시경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최석립 수경사 33헌병대장 등은 보안사 수사관과 헌병을 동원,총장공관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총장 수행부관 이재천 소령과 경호장교 김인선 대위 등에게 권총을 난사,제압한 뒤 하오 7시30분경 정총장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했다.하오 9시30분쯤 정동호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리·고명승 대통령경호실 작전담당관 등이 경호실 병력을 동원하여 대통령 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한 상태에서 전씨 등은 최규하대통령에게 정총장 연행·조사를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 하오 11시30분경 최세창 3공수여단장·박종규 3공수여단 15대대장은 특전사령관실에 3공수여단 병력을 투입,총격을 가해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낭 소령을 현장에서 사망하게 하고 정 특전사령관에게 부상을 가한 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박희도 1공수여단장·서수렬 1공수여단 2대대장 등은 13일 0시30분경 1공수여단 병력을 동원하여 육본과 국방부를 점거하고 노재현 국방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근무초병인 정선엽 병장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망케 했다.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신윤희 헌병부단장 등은 김진선 수경사 상황실장의 지원을 받아 수경사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수뇌부의 무장을 해제한 후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 ○전씨 수괴역 담당 ▷혐의내용◁ 전씨는 수괴로서 노태우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탈취,반란을 일으키고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의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동원해 중요 지점을 점거하는 등 부대를 진퇴함과 아울러 수소를 이탈했다.또 김오낭을 살해하고 정병주와 하소곤·이재천·김인선 등을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특별법제정 발표에서 전씨 구속수감까지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연내제정 발표 ▲29일=정동년 등 5·18 고소인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소취하 ▲30일=헌재,「5·18선고」 연기 공식발표 ▲12월1일 하오 6시10분=검찰,전두환씨 2일 하오 3시까지 출두통보 ▲2일 상오 9시=전씨 대국민성명발표후 고향인 합천으로 출발 ▲하오 6시10분=검찰,반란수괴등 6개죄를 적용,사전구속영장 청구 ▲하오 11시23분=법원,구속영장발부 ▲밤 12시=서울지검 수사1과장 등 수사관 9명,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합천 전규명씨 집으로 급파 ▲3일 상오 5시57분=수사관 9명,합천 도착 ▲6시9분=전씨에게 영장제시 ▲6시 34분=전씨,영장집행 완료 ▲6시 37분=전씨 호송차량 합천 출발 ▲10시 37분=안양교도소 도착,수감
  • 연희동서 솜한복 교도소에 미리 전달/전씨 영장집행서 수감까지

    ◎안양교도소앞 시민들 과자 던지며 시위/고향 친인척,영장집행 수사관 한때 저지 전두환 전대통령은 3일 상오 묵고 있던 경남 합천군 내천면 율곡리 생가마을에서 검찰 수사관 9명에 의해 압송돼 안양교도소에 전격 수감됐다.영장 집행과정에서 친인척과 주민들이 수사관에 항의하는 가벼운 승강이가 있기는 했으나 전씨측이 순순이 협조해 우려했던 불상사는 없었다. ▷수감◁ 전씨를 태운 서울2버 4442호 검정색프린스승용차는 경남 합천을 떠난지 4시간10여분만인 3일 상오 10시37분쯤 안양교도소에 도착. 승용차 뒷자리 검찰 수사관 2명 사이에 푹 눌러앉은 전씨는 입을 굳게 다문채 잠을 설친 탓인지 초췌하고 침통한 모습. 전씨를 호송한 승용차는 경수산업도로 신군포 사거리 앞에서 우회전,교도소 입구에 도착,외정문 초소,외정문,정문까지 2백50여m를 질주하는 과정에서 취재진들이 포토라인을 제대로 지켜 노태우 전대통령 수감 때와는 달리 혼잡은 거의 없었다. ○…전씨가 탄 승용차가 교도소 진입로에 들어설때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안양지부」 소속 회원 15명이 「5·18 학살자를 처벌하라」 「전두환을 사형시켜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채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뻥튀기 과자를 던지며 시위. 전씨는 처음 이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사람들로 착각,손을 들어 응답하려다 당황해 손을 내리기도. ○…전씨가 구속 수감된지 1시간여 만인 3일 상오 11시35분쯤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김상희 주임검사 등 검사 4명이 전씨를 조사하기 위해 안양교도소를 방문. 서울 3포 5321호 캐피탈 등 승용차 2대에 나눠 타고 교도소에 도착한 김부장검사 일행은 『무슨 조사를 할 것인가』는 등의 기자들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 ▷압송◁ 전씨 압송팀들은 합천을 출발,고령에서 88고속도로로 들어서 남대구 IC를 거쳐 경부고속도로 진입,안산­동수원 톨게이트∼북수원IC∼안양 코스로 이동. 전씨의 호송차량 행렬에 대해서는 시·도 경계가 바뀔때 마다 교통 안내 경찰이 임무를 교대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가 없었으며,대전 부근 지점에서 잠시 정차했으나 보도진이 몰려들자 곧 바로 다시 출발해 안양교도소까지 직행. 전씨는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잠을 잘 이루지 못한듯 간혹 꾸벅뿌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시종일관 입을 꼭다문채 굳은 표정. ○…전씨가 수감되기 전인 상오 10시쯤 연희동에서 2개의 분홍색 보따리에 전씨의 내의 3∼4벌과 솜을 넣은 한복 1벌을 미리 안양교도소측에 전달해 눈길. 서울 4초4133 검은색 프린스 승용차에서 내린 2명은 보도진이 진을 치고 있는 사이를 지나 교도관에게 접근,『연희동에서 왔다』며 슬그머니 입소. ▷영장집행◁ 이수만 서울지검 수사1과장을 팀장으로 한 수사관 9명은 합천경찰서 경찰관 1천여명의 지원을 받아 2일 상오 5시59분쯤 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장조카 전규명(62)씨 집에 도착한 뒤 10분만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검찰수사관들이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동네 청년 10여명이 대문을 가로막고 진입을 막았으나 경찰은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해서는 안된다.여러분들의 행위는 불법행위다』라고 3차례 경고한 뒤 대문을 밀치고 수사관들을 들여보냈다. 이 과정에서 동네 청년과 경찰간에 승강이가 벌어지자 전씨의 측근 한 사람이 나와 『영장집행에 최대한 협조할테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어른(전두환씨를 지칭)이 가족과 잠시 이야기 중이다』라고 사정. 이과장 등은 이어 상오 6시9분쯤 전씨가 있던 안방으로 들어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사전구속영장을 제시한뒤 26분만인 상오 6시30분쯤 전씨와 함께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서울 2버 4442호 프린스승용차에 타고 안양으로 출발. 상오 6시35분쯤 초췌한 모습으로 검은색 양복과 검정코트에 흰 목도리를 걸치고 수사관들과 함께 방을 나온 전씨는 집앞에서 차량에 탑승하기까지 50여m를 뒤따르며 『한마디 해 달라』는 취재진의 끈질긴 요구에 묵묵부답하며 전날 합천으로 내려 올 때에 비해 한결 비통한 표정.
  • 전·노씨 얄궂은 인연/우정·반목 44년 끝내 “동병상련”

    ◎육사 졸업후 친구서 상하관계로/노씨 「5공 청산」싸고 서로 멀어져 전두환과 노태우.40년 친구이면서 나란히 대통령의 영광을 누렸던 두사람이,역사의 심판을 받고 영어의 몸이 되는 신세로 전락했다.두사람의 성격은 상반된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그러나 살아온 이력은 닮은데가 너무 많다. 두 사람의 관계는 51년 육군사관학교에 11기로 입학하면서 시작된다.대구공고를 졸업한 전두환과 역시 대구공고를 다니다 경북고등학교로 옮겼던 노태우는 동질감으로 어울리게 된다.55년 소위로 임관한뒤 군생활이 본격화되면서 둘의 관계는 친구이면서도 서서히 주종적 관계로 형성되어 간다.70년1월 전두환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자리를 노태우에게 인계한다.노는 동기생인 전을 유난히 따랐다.하나회와 육사11기 주도권을 놓고 처남 김복동이 전두환과 다퉜지만,노는 줄곧 전의 편을 들었다.대령시절에는 전이 사는 연희동으로 이사까지 갔다. 그저 전두환이 갔던 길로만 편안하게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79년 운명의 12·12를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80년 8월 정권의 산실인 국군보안사령부를 친구인 노태우에게 인계했다. 권력의 마력때문일까.전두환씨가 대통령이 되면서 두사람 사이에는 반목의 씨앗이 잉태됐다.노태우는 5공 7년동안 2인자가 되기위해 끊임없는 견제와 수모를 견뎌왔다고 스스로 말한 바 있다.결국 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는 전두환의 지원을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됐다.전두환은 대통령직도 자신이 노태우에게 물려준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노의 생각은 달랐다.함께 12·12와 5·18을 저질렀지만,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대통령직을 빼앗은 전과,직선으로 선출된 자기는 다르다는 것이 노의 심사였다.노태우는 대통령에 취임한뒤 5공청산 작업에 나섰다.전에 눌려 살아온 30년에 대한 보복이라는 말도 나왔다.89년 겨울 전두환은 삭풍이 몰아치는 백담사에서 『노태우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고 울분을 삭였다. 그러나 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정은 또 달라졌다.5공과 6공은 한 뿌리이며,아무런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 새정부의 역사관이다.위기감을 느낀 전과 노는 반목을 멈추고 다시 손잡지 않을 수 없었다.94년 6월25일 두사람은 함께 현충사를 참배하는 형식으로 퇴임후 첫회동을 한뒤 화해의 폭탄주를 마셨다.그러나 5·6공의 공동전선으로도 역사를 바로잡자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지난달 16일 노태우씨는 재임중의 뇌물수수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그리고 3일 전두환씨는 마침내 반란수괴혐의로 안양교도소에서 구속수감됐다. 두사람이 살아온 역정처럼 심판을 받는 장면도 상반됐다.노씨는 눈물을 닦으며 감정에 호소해보려 했으나,전씨는 끝까지 버티며 「장렬히 전사」하는 쪽을 택했다.어쨌든 지금까지 계속 물려받기만하던 노태우씨가 구속만큼은 처음으로 전을 앞서게 됐다.
  • 뭘하자는 장외투쟁인가(사설)

    김대중씨의 국민회의측이 장외투쟁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대규모 장외집회를 개최한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지금까지 열려있는 국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자유롭게 개진해왔고 앞으로도 할 수있는 상황에서 굳이 인파를 모아 장외투쟁을 하는 낡은 방법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김총재가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장외투쟁을 지양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그것이 의회주의원칙과 맞지않을 뿐아니라 안정과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김총재 스스로 어제 집회에서 현재의 상황이 혼란과 격동의 비상한 시국이라고 말하면서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깊게 하는 장외투쟁을 벌인 것은 자가당착이다.더구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수감과 5·18특별법제정 결단등 김영삼대통령의 강력한 역사청산의지가 휘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검사제도입과 대선자금공개등의 요구가 장외투쟁 강행의 명분으로 얼마나 호응을 얻었을지 심히 의문스럽다. 오히려 우리는 국민회의측이 굴절되고 왜곡된 역사의 청산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진정으로 협조할 뜻이 있는지 궁금하다.잘못된 역사의 청산은 그동안 확고히 다져진 민주적 안정의 토대위에 어디까지나 법치주의의 원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혼란과 불안을 막고 국가발전을 위한 청산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접근을 넘는 역사의식이 필요하다.정치적으로만 접근하면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검찰이 전씨에 대한 조사를 유보해야 한다는 식의 국민들이 수긍할 수 없는 논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무리한 장외투쟁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20억원 수수사실을 덮어주지 못했을뿐 아니라 국민회의측의 역사청산의지에 대한 의구심만 깊게 해주었다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어느 정파든 5·18을 당리당략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역사청산이라는 대의의 실현을 가로막는 일이 되며 정치적 이익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정치권은 하루빨리 정쟁에서 벗어나 특별법제정등 역사청산방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전씨 11시간 조사… 할만큼 했다”/이종찬 수사본부장 일문일답

    ◎진술태도·조사사황 말할수 없어/최규하씨 조사 절충작업 잘 진행 12·12및 5·18 특별수사본부 이종찬 본부장은 3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방향등에 대해 설명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전씨에 대한 조사진행 상황은. ▲안양교도소에 파견된 수사팀이 돌아와봐야 안다.인정신문 등 간단한 조사만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씨의 진술태도는 어떤가. ▲그것도 수사팀에게 들어봐야 안다. ­묵비권을 강하게 행사한다던데. ▲아직 보고받지 못했다. ­수사팀이 많은 양의 자료를 가져가던데 조사가 길어지나. ▲자료야 언제나 필요한 것 아닌가.오늘 많이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내용을 조사하나. ▲진술내용을 비롯,조사받는 태도 현재의 심경 등 전씨의 조사에 관한 사항은 일체 말해줄 수 없다. ­앞으로 조사계획은. ▲오늘 조사한 결과를 보고 추후 판단하겠다. ­검찰청으로 소환조사할 수도 있나. ▲계속 교도소를 방문해 조사할 방침이다. ­노태우씨와 대질신문도 갖나. ▲그걸 어떻게 아나. ­최규하 전 대통령에대한 조사계획은. ▲그쪽 대리인 및 비서관들과 절충작업이 덜 끝났다. ­조사방법과 시기는 결정됐나. ▲아직 말할 수 없다.날짜도 확정되지 않았다. ­최씨측이 조사에 응할 것 같은가. ▲확정된 사실이 없다.그쪽과 얘기가 되면 알려주겠다. ­최씨를 조사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나. ▲아직 정해진게 없다. ­절충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나. ▲그렇지 않겠나. ­최씨측 대리인은 이기창변호사인가. ▲여러 통로로 접촉하고 있다. ­오늘 노씨도 조사했나. ▲노씨 조사는 없었다. ­5일로 예정된 노씨의 기소 때 반란혐의도 병합되나. ▲수사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소일에 맞출 수가 없다. ­더 조사할 사람은. ▲앞으로 수사방향이 어떤지,누구를 조사할지 등은 미리 밝힐 수 없다.양해해달라. ­수사결과 공범으로 밝혀진 사람들은 조사해야 하지 않나. ▲우리의 재량이다. ­압송 도중 전씨가 한 말이 있나. ▲언론이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과열경쟁을 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검찰의 조치에 대한 불만은 표시하지 않았나. ▲일체 없었던 것으로 안다.
  • 3백여항목 미묘한 사안마다 함구/전씨 구속­검찰 신문 내용

    ◎“정승화 총장 10·26가담 증거있나” “…”/“중앙청·육군본부 점경 지시했나” “…” 3일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은 특별수사부의 김상희 주임검사로부터 12·12사건에관해 집중적인 신문을 받았다.김검사는 이날 상오11시35분부터 밤늦게까지 전씨를 끈질기게 추궁했다. 전씨 신문내용을 검찰의 브리핑등을 토대로 재구성해본다.전씨는 수사당시 제출했던 서면답변서의 답변내용을 반복하거나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묵비권행사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3백50여개 신문항목은 12·12사건에 국한됐으며 편의상 이를 12·12사건 전개의 시간대별로 정리한다. 김검사=12·12 당일 경복궁 30경비단에 노태우9사단장 등 8명을 모이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까. 전씨=당시 국가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김=사전에 참석자들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계획을 알려주었습니까. 전=노씨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검찰조사결과 노씨이외의 참석자들이 사전에 모두 정승화씨 연행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일부는 피의자에게 직접 들었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입니까. 전=모릅니다. 김=이 모임을 알리는데 사전에 결정된 암호명을 사용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전=모릅니다. 김=참석자들은 「하나회」회원으로 평소 시국이나 군내부 제로 자주 모임을 가졌다는데 사실입니까. 전=「하나회」는 친목단체였을 뿐입니다. 김=정승화씨를 연행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상 불가피했습니다. 김=당시 합수부측은 군최고책임자였던 정씨가 사건발생장소 부근에 있었고 계엄사령관이 된 이후 합수부의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란방조혐의를 주장했지만 살해사건에 가담했다는 정확한 증거가 있었습니까. 전=…. 김=정씨의 혐의가 분명하고 연행이 불가피했다면 왜 사전에 대통령의 재가를 얻지 않았습니까. 전=당시 상황이 사전 재가를 얻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김=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건의하러 가기 30분쯤전인 하오6시쯤 이미 허삼수·우경윤대령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경사 30헌병대 헌병 60여명이 보안사에 집결,하오6시50분에 연행을 위해 출동했는데 결국 사전재가를 얻지 않고 행동한 것 아닙니까. 전=…. 김=참모총장공관에 도착한 수사관들이 일방적으로 재가를 얻었다며 총장을 연행하려 했는데 이를 사전에 지시했습니까. 전=연행하도록만 지시했습니다. 김=공관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이재천수행부관 등에게 총기를 발사,사상자가 났는데 사전에 발포를 명령한 바 있습니까. 전=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김=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모든 상황이 끝난 뒤인 새벽 5시쯤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의 배석을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김=하오9시30분쯤 2차 재가요청시 유학성 국방부군수차관보·황영시1군단장 등 5명의 장성들과 함께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국방장관의 소재파악보다 대통령의 재가를 호소하자는 의견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김=최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과정에서 협박하거나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맞습니까. 전=재가를 건의했을 뿐입니다. 김=재가요청시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까. 전=아닙니다.김=정승화씨 연행당시 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과정에서 제1공수여단 등 군병력동원을 지시했습니까. 전=우발적인 충돌결과였습니다. 김=윤성민 참모차장등 육군참모진이 임의로 육본지휘부를 수경사로 이동,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무력반발에 동조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이건영 3군사령관 등 정총장계열이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강행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참모총장의 연행이나 해임에 대한 국가원수의 재가가 없는 상황에서 임의연행한 것에 대해 육본참모진이 경계태세를 갖춘 것은 정당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입니까. 전=…. 김=이날 공수여단,9사단 29연대 등을 동원해 중앙청과 육군본부 등을 점령하고 육군수뇌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것이 사실입니까. 전=아는바 없습니다.
  • 전두환씨 「12·12」에 묵비권/검찰

    ◎반란 모의·병력 동원과정 추궁/안양 교도소 수감… 한밤까지 신문/최 전 대통령 주내 참고인 자격 직접 조사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3일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두환전대통령을 이날 상오 10시37분쯤 안양교도소에 구속수감했다. 검찰은 이에앞서 2일 하오 11시23분쯤 서울지법으로부터 전전대통령의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은 뒤 수사관들을 전전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경남 합천에 보내 전전대통령을 안양교도소로 압송했다. 수사본부는 또 이날 낮12시30분쯤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를 비롯,채동욱·이부영·이종대 검사 등 수사팀 4명을 안양교도소에 보내 전전대통령을 상대로 하오11시30분까지 11시간여동안 조사를 벌였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전대통령에 대해 우선 12·12사건에 국한해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으며 필요에 따라 수시로 구류신문을 할 것』이라면서 『전전대통령과 노태우전대통령 이외에 나머지 관련자들은 앞으로 제정될 5·18 특별법에 따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부장검사 등은 전전대통령을 상대로 ▲12·12 군사반란을 실제 11월말 모의했는지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게 된 경위 ▲최규하 전대통령에게 정계엄사령관의 연행을 재가받는 과정에서 강압이 있었는지 ▲신군부측의 병력동원과정 등을 조사했다. 전전대통령은 검찰의 신문사항에 대해 『재판과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면서 거의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본부는 전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위해 지난해 12·12사건 당시 보낸 서면질의서 3백7문항 이외에 그동안 자료수집 등을 통해 확보한 내용을 추가,3백50문항 정도의 신문내용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본부는 이와 함께 최전대통령의 변호인 등의 논의를 통해 방문조사나 소환조사,제3의 장소에서의 조사등 가운데 한 방법을 결정한 뒤 이번주 중으로 최전대통령을 참고인 자격으로 직접 조사키로 했다.
  • 검찰 대응법리/「개전의 정」 없으면 처벌 당연

    ◎여론 악화… 국가안정 위해 단죄 불가피 자신에 대한 수사가 이미 종결됐다고 주장하며 소환에 불응한 전두환씨에 대응하는 검찰의 논리는 무엇일까. 전씨는 2일 대국민성명을 통해 12·12사건은 이미 지난해 10월 기소유예로 끝났기 때문에 검찰의 어떠한 조치에도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달 30일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며 재수사의 근거로 제시한 『재범을 했거나 개전의 정이 없는 등 처벌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수사를 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기소유예란 용어 그대로 죄는 인정하지만 처벌은 유보하는 것이다. 재수사요건이 성립하면 언제든지 다시 수사해 처벌할 수 있는 것으로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기소유예처분의 이면에는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경우 국가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는 정상이 참작됐고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에서도 이것이 인정됐다. 하지만 노태우씨의 비자금사건으로 말미암아 5·6공 주도세력을 처벌하자는 국민여론이 매우 높아졌고 이에 따라 이제는 처벌이 「국가안정」이 됐다는게 검찰의 분석이다. 12·12사건의 공범인 노씨의 재범이 발생한 것도 재수사의 주요 요인이다. 「개전의 정이 없다」는 것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최근 5공세력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전씨의 강경한 소환거부와 반발이 바로 「개전의 정이 없다」는 반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 지난달 30일로 예정됐다 무산된 5·18관련 헌법소원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검찰이 전씨를 반란죄로 기소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내부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진 것도 검찰이 전씨를 수사하려는 법적 논리의 하나이다. 법리적으로 전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반드시 거치도록 돼있는 만큼 검찰이 나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해석이다. 한편 지난해 12·12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전씨에 대한 직접 조사없이 서면답변에만 의존해 수사상 미진한 점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고소·고발인은 물론 진술인들 사이에도 상이한 진술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200조에 의하면 검사는 수사에 필요한 경우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다. 출석하지 않을 경우 이 법 201조에 의해 구속할 수 있다.
  • 최환 서울지검장·이종찬 특수본부장 문답

    ◎“검찰권 정면도전… 구속 외길밖에 없다”/“전씨 「12·12」이외 위법사실도 모두 조사”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이종찬 본부장(서울지검 3차장)은 2일 하오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직후 기자들과 만났다.다음은 일문일답. ­전씨에 대해 언제 구속집행을 하는가. ▲영장이 발부되는 대로 집행계획을 세울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수사에 일체 협조를 안한다고 했으니까(경남 합천에) 가서 데려와야 할 것같다. ­전씨에 대한 조사는 12·12에 국한하나. ▲구속영장 내용은 거기에 국한됐다.하지만 위법사실에 대해서는 다 조사한다. ­노씨의 12·12사건 혐의에 대한 기소는 언제 하나. ▲대검의 사건(비자금조성 사건)과 일괄해서 하진 못할 것같다.(4일로 예정된 비자금 사건기소에 맞추기에는)시간적 여유가 없다.나중에 추가기소하면 되는 것 아닌가. ­최규하 전대통령은 오기로 했나. ▲접촉을 하고 있으나 용이하지 않다.아프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병세는. ▲약간 아프다는 정도다. 이에 앞서 최환 서울지검장도 이날 하오 기자들과 만나 전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된 배경 등을 설명했다. ­조사도 하지 않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나. ▲전씨에 대한 신문조서는 없으나 서면조사를 이미 받은 상태이다.미비한 부분에 대해서는 노태우 전대통령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영장내용을 구성하면 된다. 또 전씨가 성명을 통해 소신과 주장을 모두 밝힌 만큼 더이상 조사의 의미가 없다. ­조사가 아직 미진한 부분은. ▲12·12의 전체적인 사건구도는 이미 다 드러났으나 공범들간의 행위 분담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고 영장청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오늘 노씨를 상대로 이 부분을 조사했다. ­답변서로는 입증이 안되나. ▲다른 관련자들의 진술에 비춰보면 답변서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처음부터 오늘 전씨를 구속할 생각이었나. ▲아니다.조사를 마치고 귀가조치한 뒤 필요하면 다시 부를 생각이었다. ­전씨의 성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김영삼 대통령과 검찰권에 대한 정면도전이다.우리가 취할 방법도외길밖에 없다. ­더이상 조사는 없나. ▲기록검토는 충분히 돼 있으나 보완조사가 필요하다. ­5·18관련 혐의는. ▲특별법 제정절차를 모두 거치려면 구속기한(20일)을 넘길 수도 있지만 우선 기소한 뒤 추가기소할 수도 있다.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 “역사부정 아닌 역사 바로잡기”/전씨 소환 불응­여의 반박 논리

    ◎정치보복­실정법에 따른 정당한 법 집행/“좌파” 주장­국민 모독하는 파시스트 시각 민자당은 2일 전두환씨가 현 정부의 정통성 문제까지 거론하며 검찰출두를 거부한 데 대해 대변인단은 물론 강삼재 사무총장까지 전면에 총출동,조목조목 반박했다. ◇12·12 군사반란,5·17 내란,5·18 광주학살=민자당은 먼저 전씨가 이들 사건과 관련,일언반구의 반성도 없이 13대 국회청문회와 검찰수사 때의 답변을 인용,정당성을 거듭 주장한 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국토방위에 전념해야할 군인들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정권을 찬탈,국민을 슬프게 하고 군의 명예를 실추시켜 역사를 굴절시킨데 대해 회개·반성하기는 커녕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따를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손학규 대변인도 『장관에게 총을 쏘고 반란의 수괴로서 군의 질서를 문란시키고 헌법기관을 전복하고 인권을 유린하고서도 거짓진술로 진실을 은폐하려한 죄과를 반성치 않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12·12,5·17 등의 재수사 문제=민자당은 또 전씨가 12·12 5·17 등의 재수사를 『현 정부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으로 단정하며 수사에 일체 불응할 뜻을 밝힌데 대해 『국가 공권력에 도전하는 망발』이라고 규정했다.강총장은 『국민의 90%이상이 단죄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렴치한 행위를 회개하지 못하고 잠시 살기 위해 진실을 호도한다면 법에 따른 심판을 면치 못하고 역사속에서 영원히 죽게 될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씨의 「정치보복」 주장=이신범 부대변인은 『전씨는 소급입법에 의해 수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반란수괴행위에 대해 당시의 실정법에 의한 법집행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12·12 5·18 등을 『13대 국회청문회와 검찰수사과정 등을 통해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한데 대해=민자당은 『왜곡된 역사를 진실로 바로잡는 작업은 문민정부에 와서야 가능해졌다』는 논리를 폈다.강총장은 『당시 진실 규명을 해야하는 역사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고 6공치하의 현실적 한계를지적했다.강총장은 『솔직히 우리는 당시 소수파였고 힘이 없없다』고 면서 『그러나 문민정부를 이룬만큼 언제까지나 이를 미뤄둘 수는 없다』고 문민정부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다. ◇『과거 정권의 모든 정통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좌파논리와 같다』고 김영삼대통령의 역사관을 겨냥한데 대해=강총장은 『그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이 7년동안 국가를 통치했다는 사실에 경악할 따름』이라고 일축했다.손대변인도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국민적 노력을 좌파의 논리로 모는 전씨의 비뚤어진 역사관은 우익이 아니라 파시스트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는 『1공화국은 4·19혁명에 의해 국민의 심판으로 무너졌고 3공은 유신독재로 헌정을 유린한 끝에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자 10·26이라는 자체분열로 자멸했다』고 설명했다.또 『5공은 6·10항쟁뒤 6·29선언으로 대국민 항복을 했고 6공은 대통령인 노태우씨가 천문학적 부정부패로 국민의 버림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했다.손대변인은 『김대통령이 과거 역사를 부정한것이 아니라 국민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투쟁했고 마침내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것』이라면서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채 김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바로잡은 국민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결론지었다.
  • 국민회의 장외집회 오늘 보라매공원서

    국민회의는 3일 하오 시내 보라매공원에서 「비상시국 대강연회」를 열고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5·18특별법제정,전두환씨 수사 등 정국현안에 관해 시민들을 상대로 당의 입장을 직접 호소하는 장외투쟁을 벌인다. ◎경찰,적법조치 통보 경찰은 2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3일 하오 예정된 새정치국민회의 주최의 「비상시국 대강연회」와 관련,불법시위로 변질할 우려가 있을 경우 검문검색등 적법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 전씨 소환 불응­전·노·최씨 수사

    ◎「전씨 선구속 후수사」 검찰방침 선회/노씨 구속만기 촉박… 환문 서둘러/최규하씨 「회고록」 증거 확보 방침 전두환 전대통령이 2일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고 발표하자 검찰은 전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라는 초강수로 대응했다.정면도전에 대해 한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겠다는 단호함의 표시다.「속전속결」로 이번 사건수사를 마무리짓겠다는 뜻도 엿보인다. 최환 서울지검장은 이날 전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공개하면서 『전씨가 정면도전으로 나오자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밝혔다.전씨가 이날 순순히 소환에 응했다면 조사를 마치고 일단 귀가시키려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자 「선구속 후수사」로 급선회했다는 설명이다. 검찰의 이같은 강경방침은 이날 하오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대검과 서울지검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에서는 사전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전씨가 정면도전을 선언한 만큼 재소환통보나 구인장·긴급구속 등의 요식절차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검찰 수뇌부 긴급대책회의의 결론이었다.현행법상 강제수사의 강도가 가장 높은 사전영장을 택해 전씨를 「강제구인 즉시 구속수감」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5·18특별법 제정과 관련,야당이 주장하는 특별검사제도입 논의를 일거에 불식시키겠다는 생각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야당 정치공세의 「핵」인 전씨를 전격구속하는 것이야 말로 특별검사제 주장을 무력화시키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선구속 후수사」라는 원칙의 바탕위에서 수사를 더욱 가속화시키기 위해 「다단계 수사기법」을 구사하기로 수사일정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날 노태우 전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에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 3명을 보내 12·12및 5·18에 대해 처음으로 신문한 것도 「속전속결」식 수사일정에 따른 것이다.노씨의 구속 만기일이 오는 5일로 촉박한 것도 조사를 서두르게 만든 요인이다.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도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방침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검찰이 이미 최전대통령측과 접촉해 왔다는 사실도 이날 이종찬수사본부장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최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다음주초쯤으로 전망되고 있다. 검찰은 최전대통령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직접 조사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다만 최전대통령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고 12·12 및 5·18사건의 「선의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참작,소환조사 방식보다는 방문조사 형식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그러나 최전대통령이 조사에 계속 불응하거나 「입」을 열지 않으면 증거확보를 위해 법원에 「공판기일전 증인신문」을 요청,강제 구인한 뒤 증거조사를 벌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최 전대통령이 집필을 거의 마무리한 「회고록」을 증거로 입수,최 전대통령이 전·노씨 등 당시 신군부세력에 의해 받은 유·무형의 압력을 입증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 영장 청구 5시간만에 발부/검찰·법원·안양교도소 주변

    ◎수사관 9명 한밤 합천 급파… 상오 수감 계획/전씨 안양교도소 구금 결정… 긴급 시설 점검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는 2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자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에 나서는 등 강경 분위기 일색이었다.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이날 하오 6시10분쯤 서울지법 당직실에 접수됐으며 수감장소는 안양교도소,영장의 유효기간은 12월31일까지로 기재. 구속영장이 접수되자 곧바로 심리에 들어간 형사 항소3부 신흥철판사는 『대통령이든 누구든 법 앞에서는 평등한 만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짤막하게 소감을 피력. ○…신판사는 이날 검찰이 청구한지 5시간10여분만인 하오 11시23분쯤 전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직 판사로서 원칙에 따라 영장을 발부했다』고만 밝혔다. 신판사는 영장발부 사유에 대해 『12·12가 군사반란인지 여부에 대해 전씨는 답변서를 통해 「합수부의 정당한 직무수행이었다」고 범행을 부인한 바 있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판단했다』고 설명. ○‥검찰이 영장에 첨부한 「12·12사건 수사기록」은 1만5천여쪽에 커다란 보자기로 5뭉치나 되는 방대한 분량. 24권으로 이루어진 수사기록은 「정승화 내란방조건(공판기록)」(11번째권),「피의자 대법원재판기록」(16〃),「김재규 등 내란사건기록」(21권〃) 등으로 구성됐으며 6번째권에는 허삼수·성환옥·이종민·최석립·이상상·송응섭·정동호·구창회·이학봉·고명승·장기오·최세창씨 등 12·12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의 진술조서가 포함. ○…3일 0시쯤 3대의 승용차에 나눠타고 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경남 합천으로 급파된 압송팀 9명은 내려가자 마자 전씨에게 구속영장을 보여주고 곧바로 집행,빠르면 3일 상오 안으로 안양교도소에 수감시킨다는 계획. 검찰은 압송 과정에서 생길수 있는 물리적 충돌 등 만약의 사태에도 대비,경남 합천 관할 창원지검 거창지청에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현지 주민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도 상당한 신경을 쓰는 모습. 한편 이종찬 본부장은 이날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12·12 사건 첫 방문조사와 관련,『수사기밀이므로 절대 밝힐수 없다』고 했으나 「노씨가 진술을 성실히 했나」라는 물음에 『오늘 조사에서 진술을 좀 받았다』고 말해 노씨가 새로운 사실을 털어놓았거나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음을 암시. ○…최환 서울지검장은 3일 0시5분쯤 기자실에 잠깐 들러 『당초 검찰은 전씨를 밤샘조사한 뒤 다음날 귀가시키고 5·18특별법 제정등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에 사법처리할 계획이었다』면서 검찰의 전격적인 사전구속영장 발부는 순전히 전씨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 최검사장은 이날 『그분(전두환씨)으로 봐서는 검찰의 소환을 받고 2일 낮에 나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데…』라고 말문을 연뒤 『김기수 검찰총장과 내가 전씨의 변호인인 이양우 변호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검찰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었다』고 설명. ○…이날 안양교도소는 미결수사동 중 독거실을 선정,난방장치 등 소내 시설을 긴급 점검하는 등 33년 교도소 역사 이래 최고의 거물급 인사인 전씨의 수감에 대비. 교도소측은 『감방은 1평에서 4평까지다양하나 방의 크기가 정확한 등급으로 나눠지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전씨의 경우 3평 가량의 독거실에 수감될 것』이라고 설명. 교도소 직원들은 『과거 이철희씨 등 거물급을 다룬 경험은 있지만 전직 대통령은 처음이라 처우에 고심하고 있다』면서 『교도원 인력이 부족해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노씨 처럼 3명이 한조를 이뤄 3교대로 24시간 밀착 계호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 안양교도소는 서울구치소와 달리 난방시설이 전혀 돼 있지 않으며,매트리스외에 수감자가 요청할 경우 담요와 이불이 3장까지 지급되고 특별한 경우 조그마한 보온물통이 지급된다. ○…검찰은 상오 9시 전씨의 성명 발표를 듣고 하오 11시까지 일체 향후 대책을 밝히지 않다가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치자 11시30분쯤 간략한 브리핑을 통해 노씨에 대한 조사계획만을 공개. 이 때까지만 해도 이날은 노씨에 대한 조사로 끝날 것 같은 분위기였으나 하오 2시쯤 추가 브리핑 계획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급전.
  • 전씨 발표문 전문

    국민 여러분.저는 오늘 이 나라가 지금 과연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자 하는 지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채 심히 비통한 마음으로 이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잘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6년전인 89년 12월15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 야당총재의 영수회담의 결정에 따라 저는 소위 5공청산정국의 정치적 종결을 위해 그해 12월31일 국회의 증언대에 올라 과거문제의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이미 정치적으로 완전 종결되었던 사안이 최근 또다시 제기되어온 나라가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다시금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개별적인 시시비비는 앞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아 오늘 이자리에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계속해서 되풀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회적 혼란과 불안에 직면해서 몇가지 말씀을 드리고 이에 대해 현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김대통령의 명쾌한 설명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11월24일 김대통령은이땅에 정의와 진실과 법이 살아있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5·18특별법을 만들어 저를 포함한 관련자들을 내란의 주모자로 의법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는대로 현재의 김영삼 정권은 제5공화국의 집권당이던 민정당과 제3공화국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신민주공화당,그리고 야권의 민주당,3당이 지난 과거사를 모두 포용하는 취지에서 「구국의 일념」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연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전임대통령의 자격으로 김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었고 김대통령이 저를 방문했을 때에는 조언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취임후 3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김대통령은 갑자기 저를 내란의 수괴라 지목하며 과거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세력과 야합해온 김대통령 자신도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다음으로 현정부의 통치이념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초대 이승만대통령부터 현정부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운동방향입니다. 그런데 현정부는 과거 청산을 무리하게 앞세워 이승만정권을 친일정부로,3공화국,5공화국,6공화국은 내란에 의한 범죄집단으로 규정하여 과거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현정부의 이념적 투명성을 걱정하는 국민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김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히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으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검찰의 재수사와 관련된 문제입니다.국민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이미 지난 13대국회의 청문회와 장기간의 검찰수사과정을 통해 12·12,5·17,5·18등의 사건과 관련하여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한바 있고 검찰도 이에 의거하여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를 종결한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로 이미 종결된 사안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더 이상의 진상규명을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현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검찰이 저에 대한 사법처리를 하고자 한다면 이미 제출되어 있는 자료에 의거하여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존중하기 위해 사법부가 내릴 조치에는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저는 수용하고 따를 것입니다. 끝으로 12·12를 포함한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은 제5공화국을 책임졌던 저에게 모두 물어주시고 이일을 계기로 여타의 사람들에게 대한 정치보복적 행위가 없기를 희망합니다.
  • 노씨 비자금 4천1백억 확인/대부분 금융기관 계좌·CD입금/검찰

    ◎노씨 기소후 일부 재벌총수 재소환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안강민 검사장)는 2일 지금까지의 계좌추적 결과 노씨가 조성한 비자금 총액 5천억원 가운데 4천1백억원이 확인됐으며 이 돈의 대부분이 금융기관의 예금계좌에 들어있거나 양도성예금증서(CD)의 형태로 입금돼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30대 재벌기업총수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뇌물성이 확인된 비자금 총액은 3천억원 정도로 나머지 돈의 조성경위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검찰은 따라서 노씨 기소후 일부 총수들을 재소환해 노씨에게 건넨 뇌물액수에 대해 다시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또 오는 4일 하오 노씨를 기소하면서 비자금 조성의 구체적인 내역과 돈을 준 기업인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등에 관한 수사발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검찰은 이날 『수사발표때 기업인에 대한 사법처리방침도 밝히겠다』고 했으나 그 처리시기에 대해서는 함구,일부 총수들은 노씨 기소 후에 사법처리할 것임을 내비쳤다. 검찰은 또 노씨가조성한 비자금 가운데 일부는 5공에서 넘겨받은 돈임을 확인했으나 5공 비자금의 수사문제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전두환씨 오늘 구속/반란수괴 등 6개죄 적용 영장

    ◎전씨,소환 불응 선언… 합천행/검찰,서울 압송 방침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검찰소환에 불응함에 따라 전전대통령에 대해 군사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이날 하오 11시23분 발부받았다. 구속영장은 이 사건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가 청구했으며 서울지법 형사항소3부 신흥철 판사가 심리,발부했다. 이에 따라 수사본부는 이날 자정쯤 이수만 서울지검 수사1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수사관 9명을 승용차편으로 전씨가 머물고 있는 경남 합천으로 급파했다. 검찰은 전씨에게 영장을 제시한 뒤 신병을 확보하는대로 안양교도소로 압송,수감해 조사하기로 했다. 이종찬 본부장은 『전씨를 검찰청사로 데려 오지 않고 수감 즉시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또 비자금사건과 관련,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단 오는 4일 기소한 뒤 군사반란혐의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날 출국금지된 전전대통령에게적용된 죄목은 반란수괴죄를 비롯,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불법진퇴 등 6가지다. 수사본부는 영장에서 『전전대통령은 수괴로 노태우전대통령 등과 작당해 병기를 탈취,반란을 일으켰으며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의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 없이 부대를 인솔,중요한 지점을 점령하는 등 부대를 진퇴함과 아울러 수소를 이탈했다』면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전전대통령은 10·26 직후 보안사령관과 합수본부장으로 군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최규하대통령의 재가 없이 공수부대와 20사단 등을 동원,정승화계엄사령관을 강제로 연행하는 한편 특전사령관실에서 총을 발사,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낭소령을 살해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2명을 숨지게 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영장에는 피살자로 김소령과 초병인 정선엽병장,살해미수 대상으로는 하소곤 당시 육군작전 참모부장,이재천 육참총장수행부관,경호장교 김인선대위 등이 명시됐다. 최환 서울지검장은 이날 『전전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검찰의 소환요구에 협조하지 않겠으며 사법처리를 하려면 이미 제출된 자료에 의거해 진행하라고 밝힌 만큼 소환한다 하더라도 특별한 진술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12·12에 국한해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설명했다. 수사본부는 전전대통령에 대한 5·18사건 수사를 앞으로 제정될 특별법의 내용에 따라 진행할 계획이며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면 일단 구속기소한 뒤 조사하기로 했다. 수사본부는 또 이날 상오 11시40분쯤 채동욱·임성덕·이재순검사 등 검사 3명을 비롯한 수사팀 8명을 서울구치소에 파견,노태우전대통령을 상대로 12·12 및 5·18사건 때의 구체적인 역할분담 등 사건의 전개과정에 대해 3시간 남짓 집중 조사했다. 수사본부는 이와 함께 최규하전대통령에 대해 참고인 자격으로 직접 조사를 벌인다는 방침 아래 최전대통령의 측근을 통해 조사여부를 협의중이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통보를 받았다. ◎문민 도덕성 공격 전두환 전 대통령은 2일 12·12 및 5·18과 관련한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또 현정부의 도덕성과 이념을 공격함으로써 5·18특별법 제정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씨는 이날 연희동 자택 앞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이미 종결된 사안에 대한 검찰의 수사재개는 진상규명이 아니라 현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으로 봐 소환요구 등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수사에 대한 전면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다만 검찰이 사법처리를 하려한다면 이미 제출한 자료에 의해 진행해주기 바란다』며 『그에 따른 사법부의 어떠한 조치든 수용하고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검찰소환 불응이유에 대해 『지난 13대국회 청문회와 장기간에 걸친 검찰 수사과정을 통해 12·12,5·17,5·18사건과 관련,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했으며 검찰도 적법절차를 거쳐 수사를 종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6년전인 89년12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야당총재의 영수회담 결정에 따라 국회 증언대에서 과거문제를 매듭짓게 됐음에도 이문제가 또다시 제기돼 온 나라가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고 현정부의 통치이념등에 대한 김대통령의 설명을 요구했다. 전씨는 3당합당을 거론하며 『내가 국가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내란세력과 야합한 김대통령 자신도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게 순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통령이 이승만 정권을 친일정부로,3·5·6공화국을 내란에 의한 범죄집단으로 규정,과거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좌파운동권의 운동방향과 같다』며 『김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히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성명발표 직후 측근들과 함께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고향인 합천으로 떠났다. 한편 전씨의 핵심측근인 이양우 변호사는 이날 전씨의 대국민성명 발표후 시내 장교동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대응방안과 관련,『가능한 한 모든 법적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또 『이같은 대응은 검찰의 수사방향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현재까지는 정치적 대응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덧붙였다. 이씨는 5공 출범전후를 소재로 한 정치드라마를 방영중인 SBS와 MBC 양TV방송사에 대해 『민사·형사를 모두 포함해 즉각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노씨 기소 마무리 작업 부산/검찰,비자금 수사 45일 점검

    ◎국내외 은닉재산·비리 등 수사 총력/재벌총수 2∼3명은 구속까지 갈듯 2일 대검찰청은 노태우 전대통령을 기소하기 위한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다.검찰은 오는 4일로 예정된 노씨 기소 때 중간수사 결과도 함께 발표한다는 계획이어서 노씨 비자금 사건은 수사 착수 45일만에 대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검찰은 그동안 노씨 비자금 조성 경위와 총액을 규명하기 위해 노씨의 국내외 은닉 재산 추적,측근 및 친인척 비리,6공시절 국책사업관련 비리 등 다방면에 걸쳐 총력수사를 펼쳐왔다. 검찰이 지금까지 계좌추적을 통해 노씨가 밝힌 비자금 5천억원 가운데 4천1백억원을 찾아냈지만 이 가운데 기업인 등이 진술한 금액은 3천억원 정도다.계좌추적과 기업인 진술과의 차액 및 나머지 밝혀내지 못한 비자금은 노씨 기소후 기업인을 재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따라서 검찰은 계좌추적으로 증거를 확보한 4천1백억원에 대해서만 우선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 기소 때 일괄 사법처리 될 비자금 사건 관련자들은 노씨에게 뇌물을건네준 재벌총수 30여명 가운데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24∼25명과 이우근전신한은행 서소문지점장 등 금융기관 임직원 10여명,이원조씨 등 측근인사와 친인척들을 포함해 모두 40여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친인척 가운데 금진호씨는 현직 국회의원 신분인데다 노씨를 구속한 상황에서 금의원을 구속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막바지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이원조씨는 정치권과 국민여론이 요구하는 수위에 비해 드러난 혐의 사실이 많지 않지만 노씨 기소를 전후해 함께 사법처리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특히 재벌총수들의 사법처리 수위를 놓고 마지막 선별작업을 벌이고 있다.검찰은 재벌총수 대부분을 불구속,약식기소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달 29일 한보그룹 정태수총회장을 구속하면서 상습적으로 뇌물을 건네거나 특정사업 수주 등 이권과 구체적으로 관련된 기업인 2∼3명에 대해서는 사법처리 강도에서 차별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번 기회를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해 온 만큼 예상 보다 강도 높은 처벌이 뒤따를 가능성도 있다. 노씨 기소 뒤에도 검찰 수사는 바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율곡사업 비리 및 스위스은행 비밀계좌 등에 대한 수사 뿐 아니라 노씨의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수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안강민 중수부장 일문일답/“5공 전수 비자금 일부 확인”/액수 차이나는 기업인들 계속 소환/스위스 도피자금 수사 성과 없어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은 오는 4일로 예정된 노태우 전대통령의 기소 및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마무리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노씨의 비자금 5천억원은 거의 파악이 돼가나. ▲이제 4천억원이 조금 넘는다(그동안 3천5,6백억원선에서 맴돌던 것에 비해 큰 진전이 있음을 뜻하며). ­이 가운데 중복 계산된 것이 있나. ▲4천1백억원까지는 중복되지 않는 확실한 금액이다. ­기업인 진술로 드러났나. ▲아니다.기업인 진술과 관계없이 은행입금이나 CD(양도성예금증서)등의 계좌추적 등을 통해서만확인한 금액이다. ­주식 부분도 들어있나. ▲모른다. ­그러면 기업별 뇌물공여 액수도 변동이 있어야 할텐데. ▲(그동안 진술로 밝혀낸 총액 2천3백억여원에서 증가했음을 암시하며)많은 차이는 나지 않는다. ­오는 4일 수사결과 발표내용에 비자금 사용처도 들어있나. ▲일부 있다. ­노씨가 5공으로부터 넘겨받은 전수금액도 확인됐나. ▲….조금 있을 것이다. ­5공 비자금 수사계획도 갖고 있나. ▲현재로서는 없다. ­정치권 자금유입과 관련,새로 발견된 것은. ▲…. ­오는 4일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기업인소환을 할 것인가. ▲액수에 차이가 나는 기업인들은 계속 부를 수 있다. ­재벌말고 이원조·금진호·김종인씨 등에 대한 처리 부분도 언급되나. ▲그럴 가능성이 많다. ­정치권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된다는 말이 있는데. ▲발표 때 보면 안다. ­노씨 기소전에 구치소 구류신문은 또 하나. ▲아직 모른다. ­미국이나 스위스의 도피자금부분에서는 특별한 성과가 있나. ▲없다.
  • “역사의 죄인이 국민 우롱”/「전씨 검찰소환 불응성명」시민 반응

    ◎용서못할 행동… 즉각 구속 마땅/죄과 뉘우침 없는 궤변에 분노/“좌파 논리 운운에 할말잃어”­광주·전남 전두환 전대통령이 2일 현정부를 비난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데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법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TV를 통해 전씨의 성명발표가 중계된 직후 검찰과 언론사 등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다』『아직도 착각에 빠져 정신을 못차렸다』『철저한 응징만이 해결책이다』라는 등 흥분한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시민들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전씨를 구속시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걸(서울대 국사학과교수)=전씨는 12·12사건과 5·18사건의 진상규명과 역사의 심판을 요구하는 국민의 뜻을 무시했다.검찰의 소환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검찰에 당당하게 출두해 사실과 소신을 밝혀야 할 것이다. ▲기동민(전국연합 부대변인)씨=전씨는 역사의 용서를 받기 위해 검찰소환에 즉각 응하고 진상을 스스로밝혀야 한다.검찰은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를 강제소환해야 한다. ▲김일수(고려대 법학과교수)=전씨는 자신의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현정부를 비난하는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법과 정의의 집행은 정치,상황논리보다 엄중해야 한다. ▲신대균(경실련 부정부패추방본부 운영위원장)=국민은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전씨를 포함한 5·18세력들은 비자금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과 부패로 일관해 왔다. ▲정태흥(한총련 의장)=5월 영령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용서를 구해야 마땅할 전씨가 또다시 국민을 능멸했다.현정부는 정치적 고려나 법리적 해석 이전에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를 즉각 구속하라. ▲이용재(고교교사)=괴변으로 자신의 죄를 모면하려는 전씨의 뻔뻔함에 분노한다.전씨가 현정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5·18학살의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 ▲안상수(변호사)=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확정효력은 없어 언제라도 재수사가 가능하다.5·18관련자 처벌을 원하는 대다수의 국민을 좌익으로 몰아붙이면서 죄를 피하려는 것은 비열한 행위다. ▲김경록(29·회사원)=전씨 자신의 개인적 생각을 밝힌데 불과하다.그러나 노태우씨와 다른 모습을 보여 그의 임물됨을 가늠케 했다. ▲장철운(40·공무원)=전씨가 5·18사건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변론하는 태도가 당당해 보였다.감추고 숨긴다고 끝날 애기가 아니므로 당당하게 검찰의 수사에 응하는게 좋겠다. ◎학살자 사법처리를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와 전남 지역 주민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담화가 너무 뻔뻔하다고 분개했다.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이곳의 주민들은 전씨 등 학살자들을 하루 빨리 사법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전남도 의회 최성호(53·국민회의) 의원은 『담화의 내용이나 태도가 너무나 떳떳해 5·18에 대한 반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서갑성(조선대 교수협의회 의장·47)씨는 『총칼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자가 반성은커녕 「좌파의 논리」니 「정치적으로 끝난 문제」이니 운운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며 흥분했다. 조비오 신부(60·광주 봉선동 성당)는 『나라와 국민과 역사를 무시하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따르고 사죄하는 자에게는 자비가 따르나,그처럼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발언을 일삼는 자는 법을 이용해 강제로 무릎을 꿇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광주·전남 대학총학생회연합 이몽석(25)군은 『이제껏 피흘리며 쓰러져간 민주인사와 민주화 투쟁을 좌파세력의 주장이라는 데는 할 말이 없다.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 「5·18 특별법」 7일 국회 제출/민자

    ◎전·노씨 2천8년까지 기소 가능/「광주 시위」연루 처벌받은 사람 재심 길 열려 5·18특별법 제정을 추진해온 민자당은 1일 형법상 내란·외환,군형법상 반란·이적죄등을 저지르고 집권한 사람에 대해서는 재임중 공소시효 진행을 정지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확정했다.또 신군부가 주도한 12·12,5·17쿠데타 및 5·18광주학살등도 이같은 헌정파괴 행위로 규정,집권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중단된 것으로 규정하는 조항을 부칙에 삽입하기로 했다. 민자당은 이 법을 오는 6일 국회에 제출,정기국회 회기안에 반드시 처리키로 했다.이에 따라 전두환·노태우씨등의 12·12군사반란과 5·17내란혐의등에 대해서는 이들이 집권한 80년 9월1일부터 93년 2월24일까지를 빼고 공소시효기간(15년)이 계산돼 최소한 2008년까지 기소가 가능해졌다. 기초위의 특례법안은 특히 내란·반란죄등의 수괴뿐 아니라 공범들에게도 집권기간 공소시효 정지를 명문으로 규정,이른바 「경복궁 모임」에 참석했던 신군부적극가담자 상당수도 전·노씨와 마찬가지로 기소,처벌받게 됐다. 또한 헌법파괴 사범 불기소에 대한 재정신청과 이 과정에서 저항하다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재심을 허용토록 했다. 이에따라 광주항쟁 당시 시위·집회에 연루돼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 이 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조(목적).이 법은 헌정질서를 파괴죄에 대해 형사소송법상의 처벌절차에 대한 특례를 마련코자 함. 2조(용어정의).이 법에서 「헌정질서파괴죄」라 함은 형법상 내란·외환,군형법상 반란,이적죄를 말한다. 3조(공소시효 특례). 헌정질서파괴죄를 범하고 집권한 사람은 재임기간 동안 형소법상의 공소시효진행이 중단되는 것으로 본다. 4조(재정신청).헌법파괴 범죄에 대해 소추기관이 불기소 처분한 때는 재정신청을 허용한다. 5조(재심) 헌정질서 파괴사범이 유죄로 확정판결을 받은 때는 이들에 맞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재심을 허용한다. 부칙 1조.이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2조.위본문의 공소시효 정지규정은 79년 12월12일 이후 행해진 범죄에 대해서도 적용한다.
  • 올 가장 나쁜 인물 노태우·전두환씨/서울시민 1천명 설문조사

    ◎가장 좋은 인물은 「삼풍 119구조대원」 올해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며 반대로 가장 좋은 영향을 준 인물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헌신적 구조활동을 벌인 119 구조대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SRC 리서치가 최근 서울 시내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95년 한해동안 가장 나쁜 영향을 준 사람으로 응답자의 28.3%가 노태우씨를,21.2%가 전두환씨를 꼽았다.지난해 설문조사에서는 전씨가 1위,노씨가 2위였다. 이어 3위는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6.2%),4위는 이현우 전청와대 경호실장(6.1%)이 올랐다. 그 다음은 약속을 어기고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소쩍새마을 가짜승려 일력,뇌물준 재벌들,이원조 전의원 등의 순이었다. 응답자들은 이들을 꼽은 이유로 ▲사회에 대한 악영향(49.2%) ▲인간성 결여(28.3%) ▲국제적 망신(11.5%) 등을 들었다. 반대로 올해 가장 좋은 영향을 준 인물로는 119 구조대원(24.1%)이 꼽혔고 노씨비자금 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민주당 박계동 의원(12.3%)이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최근 방영중인 TV 정치드라마를 통해 참군인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장태완 전수경사령관(11.9%)이,4위는 김영삼 대통령(8.7%)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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