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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태우
    20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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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태우 정부 사법부 수장’ 김덕주 전 대법원장 별세

    ‘노태우 정부 사법부 수장’ 김덕주 전 대법원장 별세

    노태우 정부의 마지막 사법부 수장을 지낸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 1933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면서 법관의 길을 걸었다. 이후 서울지법·서울고법 판사와 서울민사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 춘천지법원장, 서울민사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을 거쳐 1981∼1986년 대법원 판사(현 대법관)를 역임했다. 1988년 대법관에 재임명된 뒤 1990∼1993년 대법원장을 지냈다. 김 전 대법원장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정통 법관이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진통 끝에 오른 대법원장 자리는 6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2년 10개월 만에 사퇴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공직자 재산공개가 처음 도입되며 알려진 일부 법관들의 석연찮은 재산 형성 과정, 또 김 전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투기 대상 지역에서 사들인 부동산이 문제가 된 탓이다. 대법원장직을 내려놓은 뒤에는 2012년까지 동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유족으로 사위인 성백현 서울중앙지법 원로 법관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7일. 장례는 법원장(葬)으로 치러진다. (02)3410-3151.
  • 내실화·유연성·연속성·민관협력 ‘4대 전략’으로 외교위기 넘어야[신년기획-변화 선택해야 한다]

    내실화·유연성·연속성·민관협력 ‘4대 전략’으로 외교위기 넘어야[신년기획-변화 선택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남북 긴장 심화 등 한국 외교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역대 정부의 외교정책을 살펴보면 시행착오 속에서도 국내외 도전과 국가전략 속에서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태우 정부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와 탈냉전이라는 국내외 도전 속에서 적극적인 북방외교로 옛 소련·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이뤄 냈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포용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했고 이를 위해 중일관계 개선 등 동북아협력을 강화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통상외교에도 힘을 쏟았다. 노무현 정부는 국내 역량 강화와 국제관계 변화에 부응하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추진했고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해 10년에 걸친 남북 해빙을 이끌었다. 문재인 정부도 균형외교와 ‘한반도 운전자론’으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견인하고 전쟁 위기를 극복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 추진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을 추진했지만 국내 비판여론이 격화되자 예고 없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빠져드는 빌미를 제공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논리의 균형외교를 내세웠으나, 결과적으로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 참석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 양쪽에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북미 정상 간 ‘하노이 노 딜’ 이후 교착상태를 극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외교안보정책을 풀어 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한국 외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칙으로 역량 강화, 초당적 협력, 연속성과 유연함을 꼽았다. 유준구 국립외교원 교수는 3일 “2023년 외교안보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갈등관리와 위기관리인데, 이런 국면에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굉장히 어렵다”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외교안보전략을 이행할 수 있는 추진체계와 민관협력 체계 강화 등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정부와 여야는 물론, 여야가 추천하는 전문가집단도 참여하는 초당적인 기구를 만들고, 초당적인 기구를 통해 정권과 상관없는 장기 전략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허재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에 보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이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건 경희대 정외과 교수는 “정상회담 성명서만 발표하고 끝낼 게 아니라 현안이 무엇인지 정부 입장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전략에 기반한 유연한 접근법과 연속성이야말로 한국 외교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원동욱 동아대 중국학과 교수는 “가치와 규범을 달리하는 상대와 만나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외교의 기본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희용 전 주캐나다 대사는 “주변국에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 또 바뀔 텐데’ 하는 생각을 심어 주면 그 자체로 국익이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역대 정부마다 전임 정권의 외교를 무조건 뒤집는 ‘anything but(에니싱 벗) 전임 대통령’식 당파적 정책을 펼쳤다”며 “미국처럼 외교정책의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여야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비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인태 전략 추진 및 아세안 국가들과의 새로운 소다자 차원 실질 협력 강화를 위해 미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로부터 한국이 ‘신뢰 가능하고 협력 가능한 국가’로 인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한국 외교안보정책 업그레이드 이것부터 손봐야

    한국 외교안보정책 업그레이드 이것부터 손봐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남북 긴장 심화 등 한국 외교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역대 정부의 외교정책을 살펴보면 시행착오 속에서도 국내외 도전과 국가전략 속에서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태우 정부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와 탈냉전이라는 국내외 도전 속에서 적극적인 북방외교로 옛 소련·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이뤄 냈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포용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했고 이를 위해 중일관계 개선 등 동북아협력을 강화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통상외교에도 힘을 쏟았다. 노무현 정부는 국내 역량 강화와 국제관계 변화에 부응하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추진했고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해 10년에 걸친 남북 해빙을 이끌었다. 문재인 정부도 균형외교와 ‘한반도 운전자론’으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견인하고 전쟁 위기를 극복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 추진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을 추진했지만 국내 비판여론이 격화되자 예고 없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빠져드는 빌미를 제공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논리의 균형외교를 내세웠으나, 결과적으로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 참석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 양쪽에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북미 정상 간 ‘하노이 노 딜’ 이후 교착상태를 극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를 계승한 윤석열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외교안보정책을 풀어 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한국 외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칙으로 역량 강화, 초당적 협력, 연속성과 유연함을 꼽았다. 유준구 국립외교원 교수는 3일 “2023년 외교안보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갈등관리와 위기관리인데, 이런 국면에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굉장히 어렵다”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외교안보전략을 이행할 수 있는 추진체계와 민관협력 체계 강화 등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정부와 여야는 물론, 여야가 추천하는 전문가집단도 참여하는 초당적인 기구를 만들고, 초당적인 기구를 통해 정권과 상관없는 장기 전략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허재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에 보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이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건 경희대 정외과 교수는 “정상회담 성명서만 발표하고 끝낼 게 아니라 현안이 무엇인지 정부 입장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전략에 기반한 유연한 접근법과 연속성이야말로 한국 외교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원동욱 동아대 중국학과 교수는 “가치와 규범을 달리하는 상대와 만나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외교의 기본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희용 전 주캐나다 대사는 “주변국에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 또 바뀔 텐데’ 하는 생각을 심어 주면 그 자체로 국익이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역대 정부마다 전임 정권의 외교를 무조건 뒤집는 ‘anything but(에니싱 벗) 전임 대통령’식 당파적 정책을 펼쳤다”며 “미국처럼 외교정책의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여야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비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인태 전략 추진 및 아세안 국가들과의 새로운 소다자 차원 실질 협력 강화를 위해 미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로부터 한국이 ‘신뢰 가능하고 협력 가능한 국가’로 인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노소영 “결혼생활 34년, 아이 셋 키웠는데…수치스럽다”

    노소영 “결혼생활 34년, 아이 셋 키웠는데…수치스럽다”

    “34년의 결혼 생활 동안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안팎으로 내조하면서 그 사업을 현재의 규모로 일구는데 제가 기여한 것이 1.2%라고 평가받은 순간, 그 금액보다 그동안 저의 삶의 가치가 완전히 외면당한 것 같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가 결혼 34년 만에 법적으로 남남이 됐다. 법원은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600억원대 재산을 분할해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을 시작한 지 5년여 만에 나온 첫 법원 판결이다. 최태원 회장과 노 관장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그러나 최 회장이 2015년 스스로 “혼외자가 있다”고 털어놓으며 노소영 관장을 상대로 이혼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두 사람이 협의 이혼에 실패하면서 2017년부터는 본격적인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노 관장의 청구만 받아들였다. 한국 법원은 원칙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소영 관장 측은 “최태원 회장이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재산 절반을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부가 이혼할 시 일반적으로 재산분할 비율이 5대 5라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최 회장이 혼외자 문제 등으로 부부 관계를 파탄 낸 책임이 있다는 점도 노 관장에게 유리한 부분이었다. 국내 이혼 재판 가운데 재산분할 액수가 가장 많았다. 노소영 관장은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사 SK㈜ 주식 50%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종가 기준 1조  3586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노 관장 측은 최 회장이 결혼 뒤에 이뤄진 SK C&C(직전 대한텔레콤)와 합병을 통해 SK㈜의 최대 주주가 된 만큼 혼인 중에 형성된 재산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용된 금액은 극히 일부인 4.85%, 665억원과 위자료 1억원이었다.“1심 판결, 창피하고 수치스럽다” 노소영 관장은 최근 법률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2017년 남편이 먼저 이혼 소송을 냈고, 2019년 반소(反訴)를 제기했다. 이 판결로 인해 힘들게 가정을 지켜온 많은 분들이 유책 배우자에게 이혼을 당하면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대표적 선례가 될 것이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5년 동안 이어온 재판이고 국민들도 다 지켜보시는 재판인데, 판결이 이렇게 난 것이 창피하고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했다. 노 관장은 “억울하고 부당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많지만 외부 지면을 통해 판결문에 대해 세세하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많은 분들이 보시기에 적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점 저도 잘 알고 있다. 외부에 드러난 바로 5조원 가까이 되는 남편 재산에서 제가 분할 받은 비율이 1.2%가 안 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34년의 결혼 생활 동안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안팎으로 내조하면서 그 사업을 현재의 규모로 일구는데 제가 기여한 것이 1.2%라고 평가받은 순간, 그 금액보다 그동안 저의 삶의 가치가 완전히 외면당한 것 같았다”며 “이번 판결로 수십 년을 함께 한 배우자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받으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노 관장은 “1심 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대기업 오너들 뿐만 아니라 그 규모를 불문하고 사업체를 남편이 운영하는 부부의 경우, 외도한 남편이 수십 년 동안 가정을 지키고 안팎으로 내조해 온 아내를 거의 재산상의 손실 없이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1심 판결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부가 최 회장의 입장을 거의 100% 받아주었다. 1심 판결문을 받아들고 나서 ‘재판을 더 받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도 했다”며 “딸과 함께 차를 타고 눈길을 운전하면서 ‘엄마 혼자 너무 힘드네. 여기서 멈출까’라고 물어봤는데 (딸에게) ‘엄마, 그만하면 됐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딸이 ‘여기서 그만두는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은 싫다’고 대답했다. 그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다음 세대 아이들에게도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며 “가정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 가치의 훼손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친다. 사법부가 그것을 지켜주는 곳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사법부를 믿고 열심히 항소심 준비를 하겠다”고 호소했다. 또 “개인의 안위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저도 사회를 위해 이바지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특히 교육과 여성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며 “그동안 해 오던 문화예술과 기술교육 분야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유책 배우자인데 ‘1조’ 재산 지킨 이유는 SK그룹 주식 상당수가 최 회장이 부친 고(故) 최종현 전 회장으로부터 증여·상속받은 ‘특유재산’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민법에서는 부부의 일방 당사자가 상속이나 증여로 취득한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규정하고, 특유재산은 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 회장 측은 부친 최 전 회장에게서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이 현재 SK㈜ 주식의 기원인 만큼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노소영씨가 SK㈜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려워 이를 ‘특유재산’으로 판단하고 재산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최태원씨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 부동산, 퇴직금, 예금과 노소영씨의 재산만 분할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혼인 생활 과정과 기간, 분할 대상 재산의 형성 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산분할 액수를 정했다”고 부연했다.최근 재벌가 재산분할 소송에서는 ‘특유재산’이 분할액을 크게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부사장 간 이혼 소송에서도 당시 임우재 전 부사장은 “이부진 사장이 보유한 삼성 주식 2조 5000억원가량을 기준으로 재산을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부진 사장이 지닌 삼성전자 주식 상당수를 혼인 전에 물려받은 ‘특유재산’으로 분류했다. 이 때문에 임우재 전 부사장에게 인정된 분할액은 141억원이었다.
  • ‘여군 병과’ 폐지 33년…여군은 전진했을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여군 병과’ 폐지 33년…여군은 전진했을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여군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2002년에야 여군 병과 폐지현재도 간호·행정업무에 집중복지 향상 등 대대적 개혁 필요6·25 전쟁 기간 ‘여군’은 ‘남성이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여군의 시초인 ‘여자의용군’이 조직됐으나 정보수집, 수색활동에 참여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간호, 행정 업무에 배치됐습니다. 이런 인식이 뿌리 깊이 박히게 된 사건은 1951년 6월에 벌어졌습니다. 1일 학술지 ‘군사연구’에 실린 ‘한국군 여군 인력 운영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전투근무지원을 하던 여자의용군 권이순 이등중사(현재의 병장)가 적의 총격으로 전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여자까지 전사하게 해서 되겠느냐’는 인식이 군 내부에 급속히 확산하고, 여군의 전사를 ‘중대 문제’로 인식해 비난여론이 크게 일었습니다. 그 해 8월엔 전방 전투부대에 있던 여군 전원을 후방으로 철수시키는 상황까지 발생합니다. 여군의 전투 참여를 반대하는 여론은 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차별, 차별, 차별…‘여군 무용론’의 시초 1960년대엔 ‘여군 무용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황당하게도 ‘여군 신체 특성상 전투 임무가 제한돼 활용도가 떨어지고 여군 유지비만 과도하게 소요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엔 ‘여군단’이라는 여군 별도 조직까지 생겨 차별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급속히 늘어나자 군 구조조정의 화살을 여군에게 돌려 33%나 인력을 감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바꾼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군사 쿠데타 핵심 멤버이자 장성 출신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1989년 ‘국방분야 여성 인력 확대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이듬해 여성으로만 이뤄진 ‘여군 병과’가 폐지되게 됩니다. 그런 뒤에도 ‘여군학교’는 한참 더 운영됐고, 2002년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럼 이런 차별이 사라진 뒤 여군은 군의 요직을 차지했을까요. 답은 ‘아니다’입니다. 여군은 당시와 비교해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 했습니다.올해 4월 기준 육군 병과 중 여성 장교 비율이 높은 병과는 간호(91.4%), 의정(의료행정·37.5%), 재정(37.4%), 인사(37.2%), 수송(36.6%), 군악(30.3%), 법무(29.8%), 군종(24.4%) 등 기술·행정 병과 위주였습니다. 반면 핵심 전투병과인 보병(4.4%), 방공(3.7%), 포병(3.0%), 기갑(2.4%)은 5%에도 못 미쳤습니다. 그나마 전투병과 중에선 정보통신(14.3%), 정보(17%), 공병(11%)에서 여성 장교 비율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여전히 간호·행정에 집중된 여군…왜?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됐을까. 여군의 잠수함 근무가 2024년부터 허용될 정도로 군에는 여전히 여군에게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 많습니다. 심지어 각종 업무시설과 훈련장에 여군을 위한 시설을 구비하는 걸 빈정대는 인식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여군은 남성보다 2~3배는 먼 거리의 화장실을 가거나, 상급자가 여성 하급자를 위해 개인 시설을 내주는 사례도 있습니다.육아휴직을 ‘공짜휴가’라고 멸시하는 행태도 여전합니다. 남성 장교는 아예 육아휴직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데 왜 여성만 휴직을 하냐고 주장합니다. 군의 잘못된 정책을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해소하는 겁니다. 폐쇄된 조직 특성 속에서 각종 성폭력 사건이 은폐되는 현실도 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여군이 전투병과를 지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닌, 전군 차원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가장 선진화된 조직을 갖춘 미군은 2020년 기준 총 병력의 18%가 여군이며, 해군의 21%, 육군 18%, 공군 22%, 해병대 8%, 해안경비대 16%가 여군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기술 발달로 성별 역할 구분이 필요없다고 판단하면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군인 270만 명 중 여군이 1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캐나다도 전체 군 병력의 16%가 여성이며, 장교의 33%가 여군입니다. 파병 캐나다군 중 여군 비율은 10% 정도입니다. 이들 국가는 대대적인 시설 개선과 제도 혁신, 성평등한 문화를 갖추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선 지난해 여성 육군장관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군 확충은 ‘필수’…군 복지 향상이 답저출생이 고착화돼 앞으로 청년이 급격히 줄어들면 군 조직에서 여군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게 됩니다. 답이 없는 ‘여성 징집’ 논쟁 대신, 성별을 초월해 군인 복지를 대폭 확대하고 군 출신에 대한 대우를 크게 높이면 여성의 군 진출은 자연스럽게 확대될 겁니다. 앞서 밀리터리 인사이드에서 거듭 강조해왔지만, 장교나 부사관은 지원율은 계속 급감할 전망입니다. 학군사관후보생(ROTC) 경쟁률은 올해 2.4대1까지 내려왔고, 수도권 대학 중 ROTC 정원을 못 채우는 곳이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군의 빈 자리는 여성으로 채울 수 밖에 없으며, 전투병과 장교 및 부사관의 여성 비율 확대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됐습니다. ’여군은 남군의 보조역할’이라는 뿌리깊은 차별과 배제를 넘어 우리가 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인 무엇인지 군과 정부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 ‘5·18 항쟁’으로… “내년 정체성 담은 명칭 변경 청원”

    올해로 42주년을 맞은 5·18이 올바른 정체성을 담은 이름을 찾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지 주목된다. 최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5·18민주화운동’의 명칭을 ‘5월 광주항쟁’으로 변경하자는 제안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광주’라는 지역명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운동이 아닌 항쟁’이라는 데엔 의견이 일치된 상태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19일 “공식 명칭인 ‘5·18민주화운동’은 5·18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내년 초 5·18기념재단 및 5월 3단체 등과 협의를 거쳐 이름을 ‘5·18 민중(민주화) 항쟁’으로 변경하기 위한 입법 청원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광주’를 제외한 데 대해 “진상 규명 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김종태·김의기 열사는 광주가 아닌 부산과 경북 사람”이라며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지만, ‘광주’가 들어갈 경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견인한 5·18에 지역적인 한계가 그어질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5·18 명칭 변경이 화두로 떠오른 데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5·18 정신과 헌법전문 토론회’가 기폭제가 됐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토론회에서 “공식 명칭은 독재권력에 맞서 희생적 저항과 투쟁을 한 주체와 장소를 명확히 담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화운동보다는 항쟁으로, 그리고 5·18은 광주와 만날 때 항쟁의 의미가 살아난다는 점에서 ‘5월 광주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5·18은 지난 40여년 동안 정치·사회적 환경 변화와 역사적 평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980년 당시 민주진영에서는 ‘민중항쟁·민중봉기·시민의거’ 등으로 불렀으며, 전두환 신군부 측은 이를 폭동으로 몰아 ‘광주사태’로 지칭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8년 여야의 정치적 타협에 따라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었다. 5·18을 광주만의 항쟁으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따라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18특별법을 제정하면서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이라고 명명했고, 이후 공식 명칭으로 사용돼 왔다.
  • 5·18 ‘운동’ 넘어 ‘항쟁’… “내년 정체성 담은 명칭 변경 청원”

    올해로 42주년을 맞은 5·18이 올바른 정체성을 담은 이름을 찾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지 주목된다. 최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5·18민주화운동’의 명칭을 ‘5월 광주항쟁’으로 변경하자는 제안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광주’라는 지역명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운동이 아닌 항쟁’이라는 데엔 의견이 일치된 상태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19일 “공식 명칭인 ‘5·18민주화운동’은 5·18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내년 초 5·18기념재단 및 5월 3단체 등과 협의를 거쳐 이름을 ‘5·18 민중(민주화) 항쟁’으로 변경하기 위한 입법 청원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광주’를 제외한 데 대해 “진상 규명 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김종태·김의기 열사는 광주가 아닌 부산과 경북 사람”이라며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지만, ‘광주’가 들어갈 경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견인한 5·18에 지역적인 한계가 그어질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5·18 명칭 변경이 화두로 떠오른 데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5·18 정신과 헌법전문 토론회’가 기폭제가 됐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토론회에서 “공식 명칭은 독재권력에 맞서 희생적 저항과 투쟁을 한 주체와 장소를 명확히 담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화운동보다는 항쟁으로, 그리고 5·18은 광주와 만날 때 항쟁의 의미가 살아난다는 점에서 ‘5월 광주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5·18은 지난 40여년 동안 정치·사회적 환경 변화와 역사적 평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980년 당시 민주진영에서는 ‘민중항쟁·민중봉기·시민의거’ 등으로 불렀으며, 전두환 신군부 측은 이를 폭동으로 몰아 ‘광주사태’로 지칭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8년 여야의 정치적 타협에 따라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었다. 5·18을 광주만의 항쟁으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따라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18특별법을 제정하면서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이라고 명명했고, 이후 공식 명칭으로 사용돼 왔다.
  • 노소영, ‘665억 재산분할’ 이혼소송 1심에 항소

    노소영, ‘665억 재산분할’ 이혼소송 1심에 항소

    19일 재계 등에 따르면 노소영(61)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62)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의 이혼 소송 1심에서 재산분할로 665억원가량만 지급받게 된 데 불복하고 항소했다. 19일 오전 노 관장 측은 이혼소송 1심 재판부인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판사 김현정)에 “판결에 전부 불복한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대리인단은 “최 회장 소유의 SK 주식을 ‘특유재산’이라고 판단해 재산분할에서 제외한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해당 주식은 최종현 선대회장이 최 회장에게 상속·증여한 주식이 아니다. 혼인기간인 1994년 2억 8000만원을 주고 매수한 주식이고, 이후 최 회의 경영활동을 통해 그 가치가 3조원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치 형성 과정에 노 관장이 내조를 통해 협력했다”며 “전업주부의 내조와 가사노동만으론 주식과 같은 사업용 재산을 분할할 수 없다고 판단한 법리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부부간 분쟁으로 회사 경영이 좌우돼선 안 된다고 판단한 부분이나, 기업 이해관계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설시한 부분도 인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6일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재판장 김현정)는 노 관장이 최 회장을 상대로 청구한 이혼 소송을 받아들여 두 사람의 이혼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가진 에스케이 주식 1297만 5472주(지분율 17.37%)의 절반(648만 7736주·6일 종가 기준 1조 3600억원)을 달라고 청구했다. 또 최 회장 소유 에스케이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 퇴직금 등에 대해서도 재산분할을 청구했다. 지주사인 에스케이의 노 관장 지분은 현재 0.01%(8616주)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 관장이 에스케이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 등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려워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34년에 이르는 혼인 기간과 재산 형성 경위 등을 따져 최 회장이 보유한 일부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퇴직금·예금 등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보고, 노 관장에게 현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한편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노태우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15년 최 회장은 혼외 자녀 존재를 밝히며 노 관장과 이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가정을 지키겠다던 노 관장이 2019년 12월 이혼을 결심하고 맞소송(반소)을 내면서 이혼 소송 절차가 본격화됐다. 두 사람 사이에는 윤정(34), 민정(31), 인근(27) 등 세 자녀가 있다.
  • [김천식의 통일직설] ‘담대한 구상’ 호응이 북한의 옳은 선택이다/세한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차관

    [김천식의 통일직설] ‘담대한 구상’ 호응이 북한의 옳은 선택이다/세한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차관

    31년 전 소련이 해체되고 세계 냉전이 끝날 때 한반도에서도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9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남북 총리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고 비핵화공동선언을 합의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남북한의 지도자였던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남북한이 화해하고 침략하지 않으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다각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의 공동 이익과 번영을 추구해 평화통일을 성취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비핵화하기로 합의했다. 핵무기를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치·사용하지 않음은 물론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도 보유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그러한 지도자들의 결단은 남북한이 마땅히 가야 할 이정표였다. 한민족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동안 우리는 그러한 약속을 모두 지켰다. 반면에 북한은 그러한 약속을 모두 어겼다. 북한의 핵개발은 북한 스스로도 인정했던 바와 같이 분명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험을 높인 것이며, 평화통일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 반민족적인 일이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비핵화와 남북 협력의 바른 궤도로 복귀해야 한다. 북한으로서는 그렇게 해야 할 근거와 의무가 있고 현실적 필요성도 있다. 북한이 안보를 명분으로 핵개발을 추진했으나 핵무장으로 북한의 안보환경은 더 나빠졌다. 애초에 북한을 군사적으로 침공할 의사를 가진 주변 국가는 없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ㆍ미사일은 동북아에서 군비경쟁의 빗장을 풀었다. 주변국 중에 핵ㆍ미사일 협박을 당하면서도 손발 묶어 놓고 있을 얼빠진 나라는 없다. 그 나라들은 국력이 북한보다 최소한 60배에서 수백배나 크다. 북한은 국력을 온통 기울여 핵을 개발했지만 그것으로 주변국을 겁줄 수 없으며 오히려 주변국의 군비강화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북한은 핵무장을 함으로써 체제안전은 더 취약해졌다. 북한은 제재와 압박을 당하고 있으며, 모든 경제발전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북한 인민들은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핵무기는 북한 주민들의 행복을 해치고 불만을 더 커지게 한다. 이것이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흔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다. 북한의 체제안전은 북한 주민들에게 달려 있지 다른 나라가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개방을 철저히 틀어막고 통제를 철통같이 강화하고 있는 것은 체제가 취약하다는 신호다. 30년 전 북한의 지도자는 비핵화와 경제발전이 안보와 체제안전을 위한 좋은 길임을 알고 결단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로부터 권력을 세습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민족과 세계 앞에 약속했던 공약까지도 이어받아야 한다. 그것이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 길이며, 북한 인민을 위하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천명한 것은 북한에 좋은 길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다. 북한이 비핵화를 결단하고 담대한 구상에 호응하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리고 남북 간 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다. 북한은 매년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통해 인민 생활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한다면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상호 적대할 이유도 없고, 미국이 북한을 경계할 이유도 없다. 군사적 신뢰 구축과 긴장완화,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남북한 모두 안보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돼야 한민족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해 나갈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과의 과감한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위상을 갖고 있으며, 미국 등 국제사회의 신뢰도 구축했다. 북한이 호응한다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폭과 속도로 남북 협력이 진행될 수 있다. 북한이 거부할 일이 아니다.
  • 최태원, 유책 배우자인데 ‘1조’ 재산 지킨 이유는

    최태원, 유책 배우자인데 ‘1조’ 재산 지킨 이유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가 결혼 34년 만에 법적으로 남남이 됐다. 법원은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600억원대 재산을 분할해 줘야 한다고 6일 판결했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을 시작한 지 5년여 만에 나온 첫 법원 판결이다. 최태원 회장과 노 관장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그러나 최 회장이 2015년 스스로 “혼외자가 있다”고 털어놓으며 노소영 관장을 상대로 이혼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두 사람이 협의 이혼에 실패하면서 2017년부터는 본격적인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노 관장의 청구만 받아들였다. 한국 법원은 원칙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소영 관장 측은 “최태원 회장이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재산 절반을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부가 이혼할 시 일반적으로 재산분할 비율이 5대 5라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최 회장이 혼외자 문제 등으로 부부 관계를 파탄 낸 책임이 있다는 점도 노 관장에게 유리한 부분이었다. 국내 이혼 재판 가운데 재산분할 액수가 가장 많았다. 노소영 관장은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사 SK㈜ 주식 50%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종가 기준 1조  3586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노 관장 측은 최 회장이 결혼 뒤에 이뤄진 SK C&C(직전 대한텔레콤)와 합병을 통해 SK㈜의 최대 주주가 된 만큼 혼인 중에 형성된 재산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용된 금액은 극히 일부인 4.85%, 665억원과 위자료 1억원이었다.SK 주식 상당 ‘특유재산’ 분류재벌가 재산분할 소송 특징으로 그 이유는 SK그룹 주식 상당수가 최 회장이 부친 고(故) 최종현 전 회장으로부터 증여·상속받은 ‘특유재산’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민법에서는 부부의 일방 당사자가 상속이나 증여로 취득한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규정하고, 특유재산은 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 회장 측은 부친 최 전 회장에게서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이 현재 SK㈜ 주식의 기원인 만큼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노소영씨가 SK㈜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려워 이를 ‘특유재산’으로 판단하고 재산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최태원씨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 부동산, 퇴직금, 예금과 노소영씨의 재산만 분할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혼인 생활 과정과 기간, 분할 대상 재산의 형성 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산분할 액수를 정했다”고 부연했다.최근 재벌가 재산분할 소송에서는 ‘특유재산’이 분할액을 크게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부사장 간 이혼 소송에서도 당시 임우재 전 부사장은 “이부진 사장이 보유한 삼성 주식 2조 5000억원가량을 기준으로 재산을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부진 사장이 지닌 삼성전자 주식 상당수를 혼인 전에 물려받은 ‘특유재산’으로 분류했다. 이 때문에 임우재 전 부사장에게 인정된 분할액은 141억원이었다.
  • 법원 “최태원, 노소영에 665억 재산분할”… SK 주식은 빠졌다

    법원 “최태원, 노소영에 665억 재산분할”… SK 주식은 빠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가 결혼 34년 만에 갈라서게 됐다.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600억원대 재산을 분할해 줘야 한다고 6일 판결했다. 다만 분할 대상 중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은 포함되지 않아 SK그룹의 지분이나 경영권 변동은 없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 김현정)는 이날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서로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을 받아들이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 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이 판결 확정 후에도 재산분할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연 5%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연이자로 지급하도록 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재산 분할 대상이었다. 앞서 노 관장은 이혼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회사 주식 1297만여주의 42.29% 등을 분할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노 관장 측은 결혼 기간이 오래된 점을 고려해 최 회장이 증여·상속받은 재산도 공동재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은 부친인 고 최종현 전 회장에게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은 ‘특유재산’이라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민법에서 상속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분류해 이혼할 때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SK 주식에 대해 노 관장이 이를 형성·유지하고 가치를 높이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혼인 생활의 과정과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을 책정했다. 이날 재판에 최 회장은 해외 출장으로 불참했고 노 관장도 대리인만 참석했다. 가사 재판의 선고는 형사 사건과 달리 당사자 참석의무가 없다. SK그룹 측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88년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그러나 2015년 최 회장이 혼외자 존재를 밝힌 뒤 2017년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양측은 조정에 이르지 못해 소송으로 이어졌고, 이혼에 부정적이던 노 관장도 2019년 입장을 바꾸고 맞소송을 냈다.
  • 법원 “최태원, 노소영에 665억 재산분할”…SK 주식은 빠졌다

    법원 “최태원, 노소영에 665억 재산분할”…SK 주식은 빠졌다

    34년 만에 이혼···위자료는 1억1심 “상속받은 주식은 특유재산”SK, 경영권 변동 논란 피해가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가 결혼 34년 만에 갈라서게 됐다.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600억원대 재산을 분할해 줘야한다고 6일 판결했다. 다만 분할 대상 중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은 포함되지 않아 SK그룹의 지분이나 경영권 변동은 없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 김현정)는 이날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서로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을 받아들이고 “최 회장이 노 과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 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이 판결 확정 후에도 재산분할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연 5%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연이자로 지급하도록 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재산 분할 대상이었다. 앞서 노 관장은 이혼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회사 주식 1297만여주의 42.29% 등을 분할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노 관장 측은 결혼 기간이 오래된 점을 고려해 최 회장이 증여·상속받은 재산도 공동재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은 부친인 고 최종현 전 회장에게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은 ‘특유재산’이라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민법에서 상속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분류해 이혼할 때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SK 주식에 대해 노 관장이 이를 형성·유지하고 가치를 높이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혼인 생활의 과정과 기간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을 책정했다. 이날 재판에 최 회장은 해외 출장으로 불참했고 노 관장도 대리인만 참석했다. 가사 재판의 선고는 형사 사건과 달리 당사자 참석의무가 없다. SK그룹 측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88년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그러나 2015년 최 회장이 혼외자 존재를 밝힌 뒤 2017년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양측은 조정에 이르지 못해 소송으로 이어졌고, 이혼에 부정적이던 노 관장도 2019년 입장을 바꾸고 맞소송을 냈다.
  • 법원 “최태원, 노소영에 재산분할 665억원”…盧 요구에 못 미쳐

    법원 “최태원, 노소영에 재산분할 665억원”…盧 요구에 못 미쳐

    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를 지급하고 재산을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위자료와 재산분할 금액은 노 관장이 요구한 액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 김현정)는 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서로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을 받아들여 “두 사람은 이혼한다”라면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최 회장이 판결 확정 후에도 재산분할금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지 않으면 연 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연이자로 지급하도록 했다. 위자료에 대해선 노 관장이 반소를 낸 2019년 12월부터 1심 선고일인 이날까지 연 5%를, 이후 다 갚는 날까지 11%를 더해 지급하게 했다. 항소 없이 판결이 확정되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실제 지급해야 할 위자료는 1억 1000여만원으로 추산된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 세 자녀를 뒀으나 결혼 34년 만에 법적으로 갈라서게 됐다. 최 회장은 2015년 혼외 자녀의 존재를 자인하며 노 관장과 성격 차이로 이혼하겠다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혔고,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하면서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양측은 조정에 이르지 못해 결국 이혼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고 입장을 바꾸고 맞소송(반소)을 냈다. 노 관장은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사 SK㈜ 주식 가운데 42.29%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최 회장은 SK㈜ 주식의 17.5%인 1297만여주를 보유하고 있다. 5일 종가 기준 1조 3700억여원에 이르는 액수다. 노 관장이 분할받게 될 665억원은 SK㈜ 주식 약 31만주(5일 종가 기준)로 4대 주주(0.43%)에 해당한다. 현재 노 관장의 SK㈜ 지분율은 약 0.01%다. 최 회장 측은 해당 지분이 부친 고 최종현 전 회장에게서 증여·상속으로 취득한 SK계열사 지분이 기원이므로, 특유재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뜻한다. 이는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반면 노 관장 측은 결혼 기간이 오래된 부부의 경우 증여·상속받은 재산도 공동재산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 ‘최틀러’ 별명 4선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별세

    ‘최틀러’ 별명 4선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별세

    카리스마적 언행과 추진력으로 ‘최틀러’(최병렬+히틀러)라는 별명으로 불린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일 별세했다. 84세. 193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 기자로 일했다. 이후 조선일보로 옮겨 정치부장, 편집국장, 이사를 지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수석, 문화공보부 및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12대에 이어 14·15·16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된 4선 의원으로 2003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됐다. 한국 정당 최초로 23만명의 대의원단이 참여한 직접 투표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백영자씨와 아들 희준·선준씨, 딸 윤보씨가 있다. 장남 희준씨는 TV조선 앵커, 보도본부장, 편성실장을 지냈다.
  • [포토多이슈] 장쩌민 타계, 분향소 찾은 윤석열-김진표

    [포토多이슈] 장쩌민 타계, 분향소 찾은 윤석열-김진표

    [포토多이슈] 사진으로 다양한 이슈를 짚어보는 서울신문 멀티미디어부 연재물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월 30일 타계했다. 향년 96세.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백혈병,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이날 오후 12시 13분 사망했다.윤석열 대통령은 2일 주한중국대사관에 마련된 고(故)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분향소에서 헌화와 묵념으로 장 전 주석을 추모한 뒤 싱 하이밍 주한중국대사에게 “작년 노태우 전 대통령 그리고 올해 장쩌민 前 주석까지, 한 중 두 나라 간 다리를 놓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후대가 잘 이어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라고 말했다고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어 김진표 국회의장도 장 전 주석의 분향소를 찾아 묵념한 후 조문록에 ‘한중 공동번영의 큰길을 여셨습니다. 미래를 내다보신 주석님의 혜안 덕분에 한국과 중국은 여기까지 함께 올 수 있었습니다. 안식을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 김 의장은 지난 1일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게 장 전 주석 조의 서한을 보내 “장쩌민 전 국가주석께서 서거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참으로 애석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서거로 큰 슬픔에 젖어 있을 중국 국민들과 유가족 여러분에게 진심 어린 조의와 삼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 尹, 장쩌민 전 중국 주석 분향소 조문...“한·중 간 다리 놓은 분”

    尹, 장쩌민 전 중국 주석 분향소 조문...“한·중 간 다리 놓은 분”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고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을 조문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에 마련된 장 전 주석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윤 대통령은 헌화와 묵념으로 장 전 주석을 추모한 뒤 싱 하이밍 주한중국대사에게 “작년 노태우 전 대통령 그리고 올해 장쩌민 전 주석까지, 한·중 두 나라 간 다리를 놓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후대가 잘 이어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에 싱 하이밍 대사는 “한중 관계를 보다 진전시키도록 많이 도와달라”고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조문록에 ‘한중 수교를 비롯해 양국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영면을 기원하며, 유가족과 중국 국민에게 깊은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적었다. 윤 대통령은 중국 측의 방침에 따라 조문단을 보내지 않는 대신에 직접 분향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조문에 앞서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으로 1992년 한중수교를 포함한 고인의 기여를 평가하고, 우리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유가족과 중국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는 조전을 보냈다고 이 부대변인이 전했다. 장 전 주석은 지난달 30일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주한중국대사관은 지난 1일 장 전 주석 빈소와 조문록을 마련했다.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을 접견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햄리 소장과 한미 관계와 북한 및 국제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윤 대통령은 “유력 싱크탱크인 CSIS가 한미 관계에 관한 연구와 이해 제고를 위한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같은 노력을 지속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이 부대변인이 밝혔다. 햄리 소장은 “워싱턴 내에서 한국의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과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지지가 확고하다”면서 “한미 동맹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윤 대통령의 역할과 노력에 전폭적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햄리 소장은 또 CSIS 차원에서 한미동맹 발전에 기여가 이뤄지도록 계속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접견에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와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가, 대통령실에서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이 배석했다.
  • 한국 정상과 10번 회담·국회 첫 연설… 한중관계 기틀 잡아

    한국 정상과 10번 회담·국회 첫 연설… 한중관계 기틀 잡아

    30일 사망한 중국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한국을 찾은 첫 중국의 최고지도자이자 한중 수교를 토대로 양국 관계의 기틀을 잡은 주역이다. 한중 수교는 장 전 주석의 전임 지도자인 양상쿤 전 국가주석과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때인 1992년 8월에 성사됐지만, 이듬해 국가주석에 오른 장 전 주석이 중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를 이끌었다. 장 전 주석은 1993년 11월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시애틀에서 첫 한중 정상회담을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의 방중,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APEC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두 차례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후 장 전 주석은 1995년 11월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장 전 주석의 한국 국회 연설은 중국 국가원수로는 외국 국회에서 한 첫 연설로 탈냉전 시대의 흐름을 극적으로 보여 준 한 장면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방한 당시 양국 간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 전 주석은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도 방문해 기술 협력과 현대차의 중국 진출도 논의했다. 장 전 주석은 방한 이후 김 전 대통령과 다자 정상회의를 계기로 두 차례 더 조우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4차례 정상 간 대면 소통을 했다. 그는 2003년 3월 국가주석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한국 대통령과 총 10차례에 걸쳐 회담을 해 중국의 개혁·개방 기조를 한중 간 폭발적 경협과 연계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고립됐던 중국에 한국과의 경제 협력은 타개점이 됐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중 수교 이후 한반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던 상황에서 장 전 주석의 재임기가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실질적 변화로 이어졌다”며 “장 전 주석이 구축한 한국과의 경협 기조는 후진타오, 시진핑 재임기까지 쭉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 대법 “유서대필 누명 강기훈씨 국가배상금 다시 판단하라”

    대법 “유서대필 누명 강기훈씨 국가배상금 다시 판단하라”

    “소멸시효 적용 위헌”···파기환송강씨 등 가족 배상금 더 늘어날 듯담당 검사 등 배상책임은 시효 소멸대법원이 ‘유서대필 사건’으로 누명을 쓴 피해자 강기훈(58)씨가 낸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배상 책임을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소멸시효를 이유로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하지 않은 원심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강씨가 받을 배상금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가족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국가를 상대로 수사 과정의 개별 불법 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장기 소멸시효(5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소멸시효는 정해진 기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권리가 사라지는 걸 뜻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당시 수사기관이 밤샘 조사를 하거나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한 점 등에 대해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보고 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 피해자가 위법한 직무집행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한 경우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담당 검사들과 필적 감정인 등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시효가 지났다고 봤다. 이로써 강씨의 배상금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가 강씨에게 8억원, 배우자와 강씨 부모에게 각 1억원, 두 동생에게 500만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강씨의 법률대리인단은 판결 직후 “대법원은 끝내 수사 전반과 기소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조작 사건’이라는 본질을 외면했다”며 “파기환송심에서는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을 다시 확인하고 밝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서대필 조작 사건은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투신해 숨지자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가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강씨를 기소한 사건이다. 강씨는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 6개월 형을 확정받았지만 재심을 청구해 2014년 무죄를 받았다.
  • 대법,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파기환송…“국가배상 시효 남아”

    대법,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파기환송…“국가배상 시효 남아”

    대법원은 ‘유서 대필 사건’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58)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깨고 돌려 보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가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 대법 “하급심 일부 소멸시효 도입, 잘못” 대법원은 선고 이유에 대해 “수사 과정의 개별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부분은 과거사정리법 위헌 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장기 소멸시효’ 규정을 적용한 잘못이 있으므로 파기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강씨를 수사하면서 밤새워 조사를 하는 등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한 점 등은 2심까지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이나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은 국가배상 소멸시효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이에 따라 강씨는 2심에서 정한 손해배상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2심이 책정한 국가의 배상금은 강씨에게 8억원, 아내에게 1억원, 두 동생에게 500만원씩, 강씨 부모(사망)에게 1억원이다. 형사보상법에 따라 이미 결정된 형사보상금을 제외하고 부모 몫의 상속분을 더해 산정한 강씨의 실제 배상액은 6억 8000만원 정도다. 대법원은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씨, 억울한 옥살이필체 감정하며 ‘반전’ 1991년 5월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서강대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김씨의 선배이자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씨는 검찰 수사로 후배의 유서를 대필한 혐의(자살방조 등)로 기소돼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 6개월 형을 확정받아 옥살이를 했다. 당시 검찰은 강씨를 김씨 사망의 배후로 지목했다. 국과수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냈다. 그러나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서의 필체가 강씨가 아닌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고 결정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대법원은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한 점 등을 들어 2012년 재심을 개시해 2015년 강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 강씨, 檢 개인 상대는 패소1·2심, 국가·검사 불법행위 인정 사건 발생 24년 만에 억울함을 풀게 된 강씨는 국가와 당시 수사 책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 당시 노태우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따라 검찰총장 지시사항으로 수사팀에 전달됐다고 봤다. 2017년 1심과 2018년 5월 2심은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 2명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수사 과정의 폭행·폭언·변호인 접견권 침해 등 불법행위가 인정됐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취지다.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다. 2심은 국과수 문서감정인 김씨의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1심에서 배상 책임을 부과받았다. 그러나 2심은 김씨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을 인정했다. 이후 법무부는 상고를 포기했고, 강씨 등만 상고장을 냈다.
  • [씨줄날줄] 한국판 나사 도전史/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국판 나사 도전史/박록삼 논설위원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지름 58㎝, 83.6㎏에 불과한 이 작은 위성은 밤하늘 우주에 대한 인류의 관심을 ‘낭만’에서 ‘현실’로 돌려놓았다. 같은 해 소련은 떠돌이개 시베리안허스키 ‘라이카’를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웠다. 내친김에 1961년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08분 동안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냉전시대였다. 인공위성을 쏘고 우주를 개발하는 것은 장거리 미사일 등 군비 경쟁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스푸트니크 충격’ 직후인 1958년 케네디 대통령 직속으로 우주항공연구개발기관인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설립했다. 항공우주기술부, 우주과학응용부, 우주비행부, 우주자료부, 유인우주정거장건설부 등으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나사는 1970년이 오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아폴로 계획’을 세웠고 결국 1969년 아폴로호 달 착륙으로 10년 넘게 소련에 뒤처졌던 우주항공 전세를 순식간에 뒤집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에서 달은 월계수 아래 옥토끼가 방아 찧는 수준의 커다란 별에 불과했다. 관심도 없었지만 기술은 더더욱 없었고 제약 또한 컸다. 1979년 박정희 정부 시절 미국과 맺은 사거리 180㎞ 이상 로켓(미사일)은 개발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에는 군사용뿐 아니라 과학ㆍ산업용까지 로켓 개발을 금지하도록 개악됐다. 이후 사거리는 300㎞, 800㎞로 조금씩 늘어났고 지난해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완전 폐기에 합의했다. 지난 6월 한국형 위성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은 세계 7대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미래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판 나사’인 우주항공청 설립을 통한 우주시대 개막이 핵심이다. 계획대로라면 광복 100주년인 2045년에 우리도 화성에 착륙하게 된다. 탑재 위성 중량 증대, 장거리 비행 가능 발사체 기술 확보, 유인우주선 발사 등 차근차근 풀어 나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주는 미래 먹거리이기도 하다. 우주로 가는 길엔 그 무엇보다 민관의 합심과 노력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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