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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시론] 검찰이 특검제 도입을 막으려면

    경기도 지사와 그 부인의 수뢰·독직,전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사건을 처리하는 검찰의 추상같은 모습을 접하니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다.검찰은할 수 있었다.특검제 도입의 여론을 피하려 한다든지 이를 법제화하려는 정치인들에 대한 경고이든지 또는 범인(凡人)이 미처 측량하지 못하는 원모(遠謀)에서 왔더라도,어쨌든 검찰은 능력이 있었다. 검찰권과 정치권력간의 상관관계를 지적한 대표적인 표현이 김영삼정권 당시의 ‘검찰공화국’이었다.당시 여당의 당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기소는 없을 것’이라느니 ‘소환은 혐의에 대한 소명의 기회를 주는 것일 뿐’이라느니 등의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상황이었다.강직한 검사들은 “검찰총장위에 사무총장”이라 자조하면서,정치로부터 독립을 되새겼다. 당시 전 복지부 장관의 부인이 이익단체인 한 협회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는데 정작 ‘장관 본인은 몰랐다’라는 판단기준을 원용한 검찰은 그를 형사책임으로부터 면책시켰다.‘개인책임’이라는 법의 원리에 따르면 검찰의처리결과는 법률가들의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시정 인심은 그렇지가 않았다.검찰은 실정법에 한정한 법리의 개진에 그쳐서는 안 되었다.오히려,“그는 장관인 동시에 국회의원이다.때문에 헌법상 청렴의무(제46조 제1항),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직무를 행할 의무(동 2항),그 지위를 남용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등을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는 의무(동 3항)등이 있다”는 등 공직자의 헌법적 수신제가(修身齊家) 의무를 판단기준으로 삼았어야했다. 한보 스캔들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권력형’ 부패임을 인정한 후에야검찰권은 추상같이 행사되었다.5·18 불기소 처분 역시 같았다.노태우 정권당시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은 당시 청와대의 한 비서관에 대한 처벌로써마무리하였지만,95년 ‘노태우 독직’ 처리과정에서 대통령 자신이 관여되었음이 확인되었다.검찰권은 무참하게 손상되었다. 시민들은 형사소송법상의 검사동일체 원칙이 검찰권의 정치화를 결과적으로 가능케 하는 현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기소법정주의의대상이 되는 범죄를 재조정하고 한시적으로나마 특별검사제를 채택하라는 요구가 그치지 않았다.그렇지만 검찰권과 정치권력을 같이 태워서,즉 구분(俱焚)하여 검찰권을 사리와 같은 결정체로 만들어 정치권력과 검찰권을 구분(區分)할 수 있게 하려는 이런 제안들은 실현되지 못했다. 검찰은 정의의 규범적 칼로 사법적 해법의 길을 열어 법치국가를 세워야 할 책무의 수행자이다.국회에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고 청문회를 열어 사안에접근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정치적 해법에 그친다.특별검사도 직무범위에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정치권에서’ 칼을 잡고 있는 ‘지금의’ 특검제 법제화는 동시에 검찰권에 대한 진검(眞劍)도 되고 있다. 검찰은 기로에 서 있다.국민의 진심은 검찰권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것이다.특별검사는 그 한 방편으로 생각할 뿐이다.그렇다면 정치권은 특검제 도입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검찰의 이번 수사와 기소과정을 중단하라는 등의 개입은 금해야 한다.자칫 검찰조직을 또다른 형태로 정치권에 복속(服屬)시키려는 정치적 시도라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 록히드 의혹을 파헤치면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수상을 구속·기소한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와 같은 명망을 얻어 특별검사법 제정의 현실을잠재울 수 있는가,실체적 진실의 발견 문턱에서 수사검사의 기를 꺾어 특별검사법을 도입케 하느냐는 오로지 ‘지금의 사건’을 처리하는 검찰의 수장인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몫이다. 미국의 특별검사제도는 특별검사를 해임시키라는 닉슨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옷을 벗은 법무장관,법무차관의 ‘토요일의 대학살’이 있었기에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姜京根 숭실대 교수·헌법학]
  • 申昌源수사 이모저모

    경찰의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신창원은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테러’와 파출소 습격 등 다소 황당한 ‘거사’를 계획하는 등 도피기간 중의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 특별조사팀은 21일 “신이 전·노 두 전직 대통령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서울 연희동에 몇차례 찾아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신은 조사에서 “집을 찾지 못해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정확한 주소를 물어봤으나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는 것. ■신의 행적과 유류품들은 그가 밀항을 계획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있다.경찰은 신이 ▲서울 강남 일대에서 강·절도로 거액을 마련하려 한 사실 ▲다녀간 곳에서는 거의 빠짐없이 영어책과 테이프 등이 발견된 점 ▲도피기간 중 두 차례나 외화를 소지하고 있었던 점 ▲마지막 검거된 곳이 바다에 가까운 순천이라는 점 등이 모두 신의 밀항기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보고 있다. ■신창원은 수사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한결같이 입을 다무는 ‘모르쇠’로 일관,수사진을 애태우고 있다.신은 혐의를 추궁하면 “기억이 잘나지 않으니 기록을 갖고 오라”며 배짱을 부리다 증거를 들이대면 순순히시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수사 관계자들이 전했다.특히 처벌이 가벼운절도혐의에 대해서는 순순히 시인하면서도 강간 등 강력범행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인하고 자신을 도와준 택시기사와 동거녀들에 대해서도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수사진의 설명이다. ■신은 도피기간 중 모두 9차례나 경찰과 맞닥뜨리거나 경찰서와 검찰청을드나들었지만 한번도 붙잡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97년 4월 동거녀 오빠의 폭력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충남 예산경찰서와 대전지검 홍성지청을 2번씩 찾아갔고 지난해 5월4일에는 대구 달성군 하빈면 30번 국도에서 승용차 선팅위반으로 단속됐으나 무사통과했다. 부산 김정한 이기철 김성수기자 jhkim@
  • 고교 1학년 점수 부풀리기 ‘시험문제 쉽게 출제’ 경쟁

    자신의 희생으로 전체에 이익을 주는 삶을 가장 고상한 삶이라고 한다.이에해당하는 두 명을 지적하라. ①정주영 ②노태우 ③예수 ④전두환 ⑤안창호 서울 K여고 윤리과목 1학기 중간고사 문제다. 이처럼 고교 1학년 중간·기말고사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도 맞출 수 있는 수준 이하의 문제들이 대거 출제되고 있다. 2002학년도부터 학교생활기록부의 비중이 높아지고 교육부가 현재 고1 학생들에 대한 성적평가를 석차백분율 대신‘수 우 미 양 가’로 표시하는 절대평가로 바꾸면서 학교마다‘문제 쉽게 출제하기’를 통해‘점수 부풀리기’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절대평가로 반영하면 석차와 관계없이 과목마다 90점을 넘은 학생은 누구나‘수’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양심적으로 시험문제를 낸 학교의 학생들은 대학입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서울 D여고 중간고사 수학시험에는‘두 집합 A=(2,3,5,7),B=(1,3,5)의 교집합(A∩B)을 구하라’는 기초적인 문제가 출제됐다.서울 K여고의 기말고사 국어과목은 32문항 중 30문항이‘맞음(O)과 틀림(X)’문제였다. 서울 Y여고에서는 지난 8일 1학기 기말고사 수학시험이 어렵게 출제됐다는학부모들의 항의로 재시험을 치르기도 했다.일부 학교에서는 교장과 교감이교사들에게 “시험을 되도록 쉽게 출제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E여고의 한 교사는“주관식문제는 교과서 몇페이지에서 나온다”고 알려줘 지난해에 비해 평균점수를 10점 가량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졌다.서울 C고에서는 시험 전에 100문항을 알려준 뒤 이 가운데 30문항을 출제하기도 했다. 교육부 고원영(高元永)학교정책과장은“2002학년도 대학입학 전형때 석차백분율을 함께 반영하도록 각 대학에 권고하고 시·도교육청에서도 ‘점수 부풀리기’를 일삼는 일선 학교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김삼웅 칼럼] DJP협력의 역사인식

    한국현대사에서 지도자들의 협력이 절실할 때 분열함으로써 국가의 진운에큰 타격을 입힌 경우가 적지 않았다.정치지도자들의 갈등과 반목이 역사를그르친 사례가 크게 네 차례나 있었다.첫번째는 여운형과 송진우다. 해방직후 이들이 손을 잡았다면 건국준비위원회의 좌경화를 막고 임시정부를 봉대하여 정통성 있는 정권을 수립했을지 모른다. 여운형은 해방직전부터 송진우에게 민족해방에 대비할 것을 제의했다.측근을 보내 제휴를 희망하고, 해방당일에는 직접 자택을 방문하여 함께 일할 것을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송진우가 여운형의 거듭되는 합작요청을 거절한 것은 일제협력의 자격지심과 들러리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 결과 해방정국은 엉뚱하게 흘러가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암살당했다. 두번째는 해방공간에서 이승만과 김구의 분열이다. 두사람이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대의(大義) 아래 협력했다면 독립운동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통성을갖춘 정부가 수립되고 친일파는 발붙일 곳을 상실했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과 김구는국민의 희망이었고 신화적 존재였다. 두 영수가 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국민은 힘을 합해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정부를 세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두 영수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는 한민당과 인민공화국이 각기두 사람을 영수급으로 추대한데서도 드러난다. 만약 이승만이 집권 후 김구를 보호하고 후계로 삼아 제2대 대통령으로 지원했다면,그리하여 김구가 북한측과 새로운 남북협상을 시도했다면 6·25전쟁과 자유당의 12년 폭정은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세번째는 4월혁명으로 집권한 윤보선과 장면의 분열이다. 구파의 윤대통령과 신파의 장총리는 민주당의 한 뿌리이면서도 학생혁명이 갖다바친 정권을독식하고자 꼴사나운 이전투구를 벌였다. 내각제 대통령인 윤보선의 책임이컸다.힘을 모아 이승만정권의 부패와 사회악을 청산하며 경제건설과 민주발전에 전력해야 하는데도 권력다툼으로 1년여 만에 군사쿠데타를 맞아 탈권당하고 30여년의 군사통치가 자행되었다. 네번째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이다. 1980년 ‘서울의 봄’때 양김이 협력했다면 신군부의 쿠데타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 6월항쟁 이후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면 노태우정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헌정의 파행과 양민학살,그리고 전·노씨의 천문학적 부패의 사슬이 끼어들지는못했을 것이다. 역대 지도자들이 협력보다는 분열을 일삼아온 데 비해 김대중대통령과 김종필총리는 협력하여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IMF국난을 극복하면서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두사람의 협력은 민주화세력의 본류와 근대화세력의 본류가 합류하는, 한국정치사(사상사)에서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5·16이래 갈등과 대립관계를 지속해온 두 세력이 공동정권을 수립한 것은 근현대사에서 개화와 쇄국, 독립운동과 친일매족, 통일정부와 분단정부, 민주화와근대화의 대립선상에서 처음으로 합치점을 찾았다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들, 예컨대 40년 특정지역의 패권주의가 소외지역으로교체되었다든가, 반세기의 지배구조가 바뀌었다는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하겠다. 또 진보(상대적)진영과 보수(상대적)진영이 협력함으로써 ‘용공 매카시즘’을 극복하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펴게되고 민족민주운동의 희생자들이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DJP협력의 진정한 가치는 신의냐 대의냐,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를 뛰어넘는, 협력해야 할때 협력할 줄 모르는 우리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처음으로바로잡는 ‘역사인식’이라 하겠다. 칠순을 넘긴 두 지도자와 측근들이 항상이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 노 전대통령, YS정권 비판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은 월간조선 8월호와의 인터뷰에서 “김영삼(金泳三)정권은 남북관계를 추진하면서 어렵게 얻어낸 남북기본합의서를 단 한번도언급치 않아 정책의 연속성을 단절시켰다”며 문민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6공때는 상호주의와 당사자 해결원칙을 기초로 북한을 압박했기 때문에 그들이 대화로 나왔고,도발도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정권이 바뀌어상호주의와 당사자 해결원칙이 실종됐다”고 덧붙였다. 노전대통령은 또 “재임기간중 남북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있어미국은 우리 양해 하에서만 북한과 접촉했다”면서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방북에 제동을 건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구본영기자
  • [대한시론] 임시정부 법통계승 기념사업

    1987년 10월12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해 10월27일 국민투표를 통해 제9차로 개정된 현행 헌법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대한민국이‘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뜻한다. 법통 계승이 왜 중요한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헌법이 선언적인 의미만 갖는 형식적인 글귀가 아니라면 헌법전문에 명시한 법통 계승은 거기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음이 당연하다.더구나 같은 전문에 명시된‘3.1운동’과‘4.19민주이념’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조치가역대 정권에 의해 취해졌다.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임정에 대해서도 예우가필요하다. 개정 헌법에서 임정과의 관계를 적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헌법하에서 출발한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기껏 김영삼 정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요인 몇분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했을 뿐이다. 50년 만에 교체되었다는 이 정권이 앞의 정권들과 차별성을 보이려면 임정의 법통 계승문제의 해결도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이에 법통 계승과관련된 몇가지를 거론하고자 한다. 첫째,임정 유적지 보존이다.임정은 상해에서 시작하였지만 1932년 한인애국단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에는 계속 피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임정이 충칭(重慶)까지 옮겨간 여러 지방의 유적지를 찾고 후손들이 찾을 수 있도록보존해야 한다.오랜 세월이 지나 정확한 유적지를 알 수 없는 곳도 많겠지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에 서둘러야 한다.이런 문제는 주재국 정부와의 외교적 교섭이 앞서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둘째,임정기념관의 건립이다.지금까지 임정기념관이 설립되지 않은 것은 임정의 권위와 전통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세력에 의한 것이지만 결코 떳떳한일은 아니다.임정기념관은 임정 관계자료와 독립운동 관계자료 및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자료 등,이 시기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완벽하게 갖춘다.그렇게 되면 이곳에 와서 독립운동과 민족 반역의 역사를 모두 찾아볼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여러번 임정기념관 설립 최적지는 헐어버린 조선총독부 자리라고 주장한 바 있다.주장의 의도는 광화문 일대의 국가 핵심 건물의 배치도가 종전에는 경복궁→조선총독부→정부종합청사의 순서로 되어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가관이었는데 조선총독부 자리에 독립광장과 임정기념관을 대신한다면 조선왕조가 독립운동(임정)을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게 되었다는 바른 역사의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셋째,효창원 등 국립묘지 밖에 있는 임정 요인 묘역을 국립묘지 수준으로예우하는 것이다.이런 묘역들은 나름대로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립묘지로 이장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현재 효창공원은 임정주석 김구와 임정 요인(이동녕 조성환 차리석),삼 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묘역으로 조성되었다.이 묘역을 국립묘지 수준으로 격을 높이고,효창공원이라는 이름도 거기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정 자료의 체계적인 편찬이다.여기에는 의정원과 정부의 각종 기록,독립신문,독립운동사 편찬자료 및 각국 정부·인사 및해외 교민들과 왕래한 문서들이 해당된다.그동안 국사편찬위원회 등 여러 곳에서 많은 자료를 출간하였고 최근 대한매일이 발간한 ‘백범 김구전집’에서도 상당 부분 보완하였다.임정 요인들이 귀국할 때에 두 트럭분의 문서를가져왔으나 소실된 것 같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정부는 임정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한시적인 기구를 만들어 본격화시켜야 한다. 최근 임정자료 수집만을 위해 학계 중진들이 연구소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정부가 이 사업을 직·간접으로 지원한다면 역사에 남는 정권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한국사
  • 전직대통령 연금 인상…年 484만여원 올려

    전직 대통령의 연금이 내년부터 현재보다 매월 40만4,000원씩,연간 484만8,000원 오르게 된다. 연봉제 도입으로 연금 산정기준이 바뀌는데다 경제사정 악화에 따라 올해한시적으로 일부 삭감됐던 현직 대통령의 기말수당이 내년부터 제대로 나오기 때문이다.전직 대통령 연금은 현직 대통령 보수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행정자치부는 올해의 경우,국가공무원법상의 경과규정에 따라 종전의 월 급여 방식대로 연금을 지급하기로했다. 행자부 방침에 따르면 내년부터 전직 대통령은 다달이 575만9,910원의 연금을 받게된다.현재는 매달 535만5,910원이 나온다. 이번에 산정기준을 바꾼 것은 고위 공무원 보수체계가 월급제에서 연봉제로바뀌었기 때문이다.월급제를 토대로 한 산정방식대로라도 현재 연금은 다달이 573만8,000원이 나와야 한다.그러나 올 한해동안은 535만5,910원만 나온다.기말수당의 30%를 고통분담차원에서 공제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가운데 최규하(崔珪夏),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만 연금을 받으며 예우가 중단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경우 연금은 여전히 받을 수 없다. 한편 행자부는 이같은 산정방식 변경 등이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시행령 개정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관보를 통한 입법예고를 하지않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이와관련,“전직 대통령 연금은 국민들의 생활에 영향을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해 입법예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YS, IMF사태 DJ에 ‘떠넘기기’

    도쿄 최광숙특파원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돌출성’ 발언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김전대통령은 7일 아침 도쿄 뉴오타니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IMF행 과정과 92년 내각제각서 파동,향후 정치행보 등에 대한입장을 소상하게 설명했다.자신의 책임과 관련된 부분은 ‘면피성’ 해명을앞세웠다.그러면서 주요 대목에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걸고 넘어지는 특유의 화법을 계속했다. 김전대통령은 IMF책임론과 관련,“경제가 나빠질 것 같아 96년말 노동법개정 등을 지시했으나 김대중씨가 필사적으로 반대해 안됐다”며 김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기아자동차도 경제원리에 입각해 처리해야 하는데 야당이 국민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끝까지 반대했다고 주장했다.특히 강경식(姜慶植)전경제부총리,김인호(金仁浩)전경제수석의 사법처리에 대해 “정책적인 결정을 가지고 재판을 한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나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몰아세웠다.그는 또 ‘경제가 좋다고 보고한 관료’들에게도 책임을 돌렸다. “관리들은 IMF로 가는 것을 굉장히싫어하더라”며 “(관리들이)체면을 얘기하기에 나라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며 IMF행을 주저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92년 내각제 합의각서 파문도 해명했다.“당시 내각제 합의각서는 영원히비밀에 부치기로 한 세 사람(김전대통령·노태우전대통령·김종필총재) 사이의 약속이었으나 깨졌다”며 “따라서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한 DJP 약속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김전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할 말을 다해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bori@
  • 검사장급 이상 6명 프로필

    ◇ 愼承男 대검차장 성품은 온화하나 단호한 일처리가 돋보인다.부하들로부터 외풍(外風)을 잘막아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차기 총장으로 꼽힌다.박정희(朴正熙)대통령때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 후 청와대에 특채돼 사정업무를 지휘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조상호(曺相鎬) 전 체육부장관의 딸 조현숙(曺玄淑)씨와 사이에 1남2녀▲전남 영암(55) ▲목포고 서울대 법대 ▲사시 9회 ▲전주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金慶漢 법무부차관 고등검찰관을 사시 9회와 같이 승진했을 정도로 사시 11회 중에서도 두각을나타냈다. 성격이 화끈해 대인관계도 좋고 후배들에게 인기도 높다.87∼89년검찰1과장으로 ‘살림꾼’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사시8회가 모두 퇴진함에따라 차관으로 전격 발탁됐다.취미는 수영과 등산.부인 성명숙(55)씨와 1남▲경북 안동(55) ▲경북고 서울대 법대 ▲사시 11회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춘천지검장 ▲교정국장◇ 任彙潤 서울지검장 선이 굵고 성격도 호방해 따르는 부하가 많다. 폭탄주를 마시는 두주불사형으로 어깨춤과 함께 부르는‘농부가’가 일품이다.‘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과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특수수사 및 공안통.검사장 승진 때까지 동기 중 선두였다.부인 김혜자(金惠子·53)씨와 2남.▲전북 김제(55) ▲이리 남성고 서울대 법대 ▲사시 12회 ▲서울지검 공안1부장 ▲대검 공판송무·강력부장◇ 李鍾燦 대검중수부장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 1·2·3부를 차례로 거친 특수수사통.단구(短軀)이면서도 추진력은 대단하다.서울지검 3차장 때 특별수사본부를 창설했고 12·12,5·18사건을 총괄 지휘하면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을 수사했다.취미는 등산.▲경남 고성(53) ▲삼천포고 고려대 법대 ▲사시12회 ▲서울지검 3차장 ▲부산고검 차장 ▲대검 총무부장 ▲전주지검장◇ 金珏泳 대검공안부장 김수장(金壽長)서울지검장의 용퇴로 송인준(宋寅準) 대구고검장과 함께 검찰 내 대전고 인맥의 맏형격이 됐다.수도권 지검과 지청에서 특수부장으로경제·금융수사를 지휘했다.사법연수원 부원장 시절 연수원 살림을 도맡아하면서 꼼꼼하고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을 보였다.▲충남 보령(56) ▲대전고고려대 법대 ▲사시12회 ▲사법연수원 부원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韓富煥 법무부검찰국장 후배들을 잘 챙기는 덕장(德將).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학구파이기도 하다.사법개혁 작업 및 검찰제도 개혁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94년부천지청장으로 내정됐다가 곧바로 서울지검 1차장으로 발령받아 5·18사건수사를 맡았다.부인 최옥출(47)씨와 3남 ▲서울(51) ▲경기고 서울대 법대▲사시 12회 ▲대검 중수 2·3과장 ▲서울지검 1·3차장 ▲대검 총무부장
  • 총장 동기 5명 용퇴 진통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과 동기인 사시 8회 검사장 7명 가운데 총장의 지휘라인에서 벗어난 법무연수원장과 법무부차관에 기용되는 2명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용퇴하기로 했으나 일부가 한때 사표 제출을 거부,4일 단행하려던 고검장급과 검사장급 승진 및 전보인사가 5일로 연기됐다.3일 저녁사시 8회 모임에서 최경원(崔慶元) 법무부차관과 김수장(金壽長) 서울지검장 외에는 ‘총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모두 사표를 내기로 합의했으나지방의 한 검사장이 이날 하오까지 잔류의사를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藍犬? 오후 5시까지 법무부에 사표가 접수되지 않은 한 지방검사장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는 한 사표를 내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사표가 지방에서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밝혀 이날 중 사표를 받아낼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사시 기수를 4회나 뛰어넘는 박총장의 갑작스런 기용으로동기 검사장들이 미처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탓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고급옷 로비의혹’사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시 8회가 대거 희생됐다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3일 저녁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사시 8회 동기모임은 ‘고급옷 파문’으로어려운 처지에 몰린 김태정(金泰政) 법무부장관을 대신해 박총장이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좌장’격인 안강민(安剛民) 대검 형사부장은 박총장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조정역을 자임,“총장의 지휘권 행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자”며 동기들의 용퇴를 적극 유도했다는 후문이다. ?籃횐括揚? 박총장 취임 직후 김장관으로부터 “남아 있어 달라”는 제의를받았지만 “다른 동기들이나 배려해 달라”면서 동기의 고검장 승진을 천거하는 등 마지막까지 ‘대인’다운 면모를 잃지 않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검찰 후배들은 안부장이 지난 95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수사를 지휘하면서 사시 8회에서 가장 먼저 서울지검장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가 정권교체와 함께 고검장으로도 승진하지 못하고 끝내 옷을 벗자 못내 아쉬워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YS 좌충우돌

    - YS ‘내각제 봉창’ 왜 두드리나 기타큐슈 최광숙특파원 3일 김포공항에서 페인트 봉변을 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간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4일에도 정부의 실정을 꼬집는가 하면‘내각제 문제’를 거론하는 등 김대중(金大中)대통령 흔들기를 계속했다. 김전대통령은 이날 기타큐슈 국제대학에서 ‘21세기 아시아의 미래를 말한다’라는 제목의 강연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 안에 내각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또 “내각제 약속으로 당선된 DJ의 정치적 임기는 올해 말로 끝난다”고 주장했다. YS는 강연에서 “국민에게 체념과 좌절을 안겨준다면 가장 큰 불행”이라며 “독재자 자신의 불행도 기다리고 있다”고 DJ를 맹비난했다.이어 “당시야당 총재이던 DJ의 노동법 개정과 기아자동차 처리 반대로 IMF사태가 초래됐다”고 DJ의 책임론을 폈다. 그는 이와 함께 “(내각제는) 어제 오늘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덧붙였다.내각제 추진을 위한 정치세력화 등에 대해서는 “지금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곧 말할것”이라고 밝혀 정치재개를 강력히 시사했다. 그의 이같은 ‘내각제 발언’은 내각제 개헌 논쟁에 불을 지펴,정국을 뒤흔들면서 자신의 존재도 부각시키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김대통령과 정부에 맹공을 퍼부을 경우 최소한 텃밭인 부산·경남지역에서는그만큼의 반사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김전대통령은 이밖에 페인트 사건과 관련,“양심적인 변호사나 수사 경험이 많은 전문가로 하여금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좌충우돌 ‘訪日 행보’빈축 일본을 방문중인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3·4일 연내 내각제 개헌을 잇따라 촉구,빈축을 사고 있다.무엇보다 90년 3당 합당 당시 내각제 합의 약속을 깬 ‘당사자’가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정국이던 90년 1월 22일 당시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盧泰愚)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민주당 총재,김종필(金鍾泌) 공화당 총재는 ‘내각제’를 전제로 3당 합당을 선언했다.5월에는 각서도 썼다. 그럼에도 내각제 문제는 민자당 합당 이후 계속 논란거리가 됐다.각 계파가내각제를 하느냐,마느냐로 ‘분당’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여기에 YS가 ‘쐐기’를 박고 나섰다.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그해 10월 31일 독자적인 기자회견을 갖고 내각제 개헌 반대와 합의각서의 사실상 백지화를 선언했다.YS도 당시 “국민 다수와 야당이 반대하는 것이 확실한데도 내각제 개헌을 끌고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이유를 댔다.올 8월까지 내각제 논의 유보를 결정한 상황과 엇비슷하다.그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부친이살고 있는 마산으로 내려가 당무 복귀를 거부했었다. 이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치권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국민회의는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으며,내각제 지지정당인 자민련으로부터도 ‘박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발언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어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 난감을 표정을 지었다.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YS의 언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특별기고] 前·現職 대통령들께 드리는 충언

    요즘 언론이나 항간에는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이 무성하다.나는 여론에 편승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전·현직 대통령들께 사심 없는 충언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최규하 전대통령께. 노후를 평안히 보내고 계시는 최전대통령은 역사와 국민 앞에 진솔한 증언을 통해 당시 하야와 5공 집권과정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회고록을준비하고 계시다니 회고록에라도 명확한 진상을 공개하실 것을 국민은 바랍니다. 전두환 전대통령께. 폐일언하고 5·18의 영령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고통으로 신음하는 부상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과의 말 한마디쯤 해주시는 것이어려운 일인지요.광주시민은 오랫동안 따돌림과 차별을 당해 왔지만 지역감정 해소와 동서화해를 호소하며 국민화합을 위해 마음을 열었습니다.망국지병인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누군가 앞장서 풀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한을삭이고 통분을 억누르면서 우리는 화해하자,용서하자,지역감정을 해소하자,동서화합을 이루자,구걸하듯이 손길을 내밀며 진정한 화해의악수를 애원해왔습니다.사죄와 사과는 강요할 수 없듯 화해와 용서도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아린 마음으로 체험했습니다.어렵지만 동서화합 차원에서 마음을 비우고사과하기를 기대합니다. 노태우 전대통령께. 다른 전직 대통령을 당신 생전에 평가하는 발언은 현명하지 못합니다.다른분도 더한 말로 당신을 비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상호비방하면 똑같이 명예만 실추되고 위상만 떨어집니다.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냉소와 당혹과 황당감으로 상처를 받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께. 당신의 아호처럼 ‘거산(巨山)’ 같은 지도자로 남아 주도록 국민은 기대했습니다.그러나 IMF로 기업인과 국민에게 큰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신이 남겨놓은 실패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과 현 정부는 안간힘을쏟고 있습니다.지역감정 유발로 힘을 분산시켜서는 안됩니다.당신의 취임사에서 5·18 선상에 놓였다는 문민정부는 5·18 진상과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공소권 없음’이라던 ‘성공한 쿠데타’도 주모자들을 법적 처리했습니다.그때 당신의 용단을 환영했습니다.그러나 요즈음 당신의 행보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당신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방과 독재자 운운하는 발언은 당신에게도 국가사회에도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선진국의 전직 대통령들처럼 참고서가 될 수 있는 회고록 저술에 전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대통령께. 부도 직전의 나라살림을 물려받아 노심초사하신 결과 일년반 만에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접어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반DJ세력이 아직도사사건건 과한 비판과 공격을 가하고 퇴임대통령까지 원색적 비난을 마구 퍼붓는데도 의연한 바위처럼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존경을 받을 만한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공조와 화합의 기치 아래 보수세력,비민주 인사,독재 전과자들,반개혁 기득권세력,반개혁 언론까지 수용하고 아우르는 것은 DJ의 개혁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여타 정권과의 차별성과 참신성이 희석된다고 우려합니다. 지역감정 해소와 국민화합,용서는 대통령의 평생 소신이요,덕목인 것도 이해합니다.한 신앙인으로서도 사랑과 용서를 한결같이 실행하는 것은 복음정신입니다.그러나 ‘박정희 전대통령 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화합과 화해의 차원이 아닌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경제개발과 근대화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하겠지요.그러나 그것으로 상쇄할 수는 없습니다.5·16쿠데타,4·19혁명 무효화,비민주 일인 독재 장기집권,지역차별 심화,정의와 인권·자유 탄압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조명없이는국민들에게 가치관의 전도와 선악의 무분별을 가져다 줄 뿐이라고 우려합니다.정치적 역학 관계와 복잡한 복선이 얽힌 현실에서 힘과 지혜를 겨루는 것이 아슬아슬하게 비쳐지는 데 통치의 지혜와 힘을 다수 국민들로부터 얻고모으기 바랍니다.국민들은 국민의정부의 제2건국의 성공을 열망하고 기대에차 있습니다.
  • [특별기고]‘민추협’15년의 불행

    1980년대 ‘암흑기’를 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해본 사람이면 ‘민추협’으로 더 잘알려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기억할 것이다.한줄기 빛이자 희망이었고 우리들 자존심의 회복이었다. 민주주의가 질식상태에 빠져 있던 전두환정권의 폭정 아래서 ‘5·18 광주민중항쟁’ 4주년이 되는 날 출범했으니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일이다. 지금에 와서 불행이란 말을 붙여 15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건 아픈 부분을들춰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세력을 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민추협을 결성한 목적은 민주세력이 대동단결해 ‘군정’을 종식시키자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민추협의 정치권내 세력은 이른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양대 인맥으로 이뤄졌으며 민주세력의 단결이란 곧 이 양대 인맥의 단결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주효해 1987년 6월투쟁이 일어났으며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그해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세력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그 결과 직선제로 노태우 군부정권이 성립됐다.민추협의 첫번째 불행이었다고하겠다. 1988년 총선 결과 여소야대 국회가 되었고 이 때문에 노태우정권은 같은 군부정권이면서 ‘5공청산’이란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전두환 전대통령을 백담사로 귀양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민추협 세력 중 상도동계가 12·12 신군부세력인 전두환·노태우 중심 정당,5·16 구군부세력인 김종필 중심 정당과 합쳐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노태우 군부정권 아래서 여당이 됐으니 민추협의 두번째 불행이었다. 그후 민추협의 상도동계는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잡은 뒤 문민정부를 자칭했다.그러나 군부정권을 뒤엎거나 선거로 맞서서 이긴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타협에 의해서 성립된 문민정권이었다. 김영삼 문민정권 5년간의 정치적 업적 여부는 그만두고라도 민추협 세력이이제 상도동계의 여당과 동교동계의 야당으로 완전히 나누어지게 됐으니 세번째 불행이었다고 하겠다. 1997년 대통령선거 결과 상도동계의 문민정부에 이어 어렵사리 동교동계의‘국민의 정부’가 성립됐다.선거에 이겨서 성립되기는 했으나 단독으로 이기진 못하고 5·16구군부 핵심세력이 이끄는 충청도 세력과 연합함으로써성립할 수 있었다. 투쟁대상이었던 군사정권 세력과 상도동계같이 합당을 했건 동교동계처럼연합을 했건 민추협은 두번씩이나 정권을 성립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한 정치적 저력을 가진 단체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추협 동교동계 중심 국민의 정부가 성립한 지 1년이 되는 지금 5·16 구군부세력은 정권 핵심부에 건재한 채 다시 내각책임제를 하자며 국민의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정부는 5·16 군사쿠데타 정권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고,12·12 군사반란후 5·18 광주항쟁을 피로써 탄압해 정권을 잡았던 신군부세력은 국민의 정부가 묵인 내지는 원조한다는 풍문 속에서 정치 현역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민추협 발족 15주년을 기념하는 날 상도동계의 김영삼 전대통령은 민주세력의 재단결을 말하기는 고사하고 동교동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를 4·19전 이승만정권과 같은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했다.민추협의 네번째불행이라 하고도 남을 것이다. 민추협이 걸어온 길은 흔히 권력 획득만이 최고 목적이라는 ‘정치판’에서는 예사로운 일일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역사의 눈으로 보면 크게 비판받아야 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姜萬吉 고려대 명예교수]
  • [기고] 光州의 5월은 저무는데

    얼마전 초청강연차 광주를 다녀왔다.강연을 마친 후 5·18 묘지를 참배했는데 묘역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공수부대 간부들도 조의를 표하고있었다. 그날 아침 광주의 한 신문을 보았더니 전남대 총학생회가 전남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학생의 33.4%가 ‘5·18 기념행사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고 한다.또 전체 학생의 과반수인 50.6%가 5·18묘지를 한번도가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광주는 오히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는 느낌이다.5·18당시 나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었는데 외신을 통해 광주소식을 많이 들었다.CNN을 포함한외국방송에서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석방될 때마다 5. 18의 참상을 담은 영상자료를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광주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가운데,5·18은 벌써 현재의우리와는 상관없는 흘러간 역사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시민들의봉기와 무력적인 진압,수백명의 사망자와 실종자의 발생과 같은 역사의 큰기복도 19년 정도의 세월이면 잊혀지게 되는가? 올해도 5·18기념식은 광주에서만 거행되었다.1997년에 5·18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지만,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행사는 광주에서만 열리고 있다. 5·18의 성격을 특별법으로 ‘5·18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고,망월동 일대를 성역화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어딘가 모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국가의 법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고 시행하는 사업이,광주 이외의 지역 주민들에 의해 소외당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5·18행사가 광주에서만 계속 거행된다면,광주와 다른 지역간의 골이 깊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이러한 일들은 5·18의 희생자들도 바라는 바가 아닐것이며 결과적으로 광주는 이중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전남대 여론조사에 의하면 ‘진상 규명 등 5·18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해결되었다’고 응답한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한다. 민주주의가 시들어가는 초기증세로 정치적 무관심(Political Apathy)가 손꼽히고 있다.무관심은 실존하는 문제에 대한 망각을 낳고,망각의사각지대에서 또 다른 사회적 격변(Social Upheaval)이 준비되어 간다. 광주지역에는 좋은 관광숙박시설과 온천도 많은데,다른 지역 손님은 별로오지 않는다고 한다.학생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신록의 계절이 가기전에‘예술의 고향’이라고 자부심 가득한 광주를 방문해서 5·18 희생자들의 영령을 가깝게 느끼면서,그들의 정신이 오늘의 현실에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鄭夢準 국회의원·무소속]
  • 신임 국정원장등 장관급·청와대 수석·차관급 프로필

    ◇ 千容宅 국가정보원장 정책·전략,군사교리 등 국방 전분야에 걸쳐 해박한 식견을 가진,자타가 공인하는 안보통. 93년 중장으로 전역한뒤 비상기획위원장을 거쳐 국민회의 전국구의원으로 15대 국회에 진출했다.국방위원 시절에는 율곡비리 폭로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지난 대선 과정에서 ‘북풍’을 잠재우는 등 안보분야에서 김대중(金大中)후보의 핵심참모로 활약했다.그 공로로 국민의 정부 초대 국방장관에 발탁됐으나 잠수정 침투,미사일 오발사건 등 한때 어려움도 겪었다. 부인 김아미(金雅美·55)씨와 3녀. ◇ 朴舜用 검찰총장 빠른 판단력과 친화력으로 사시 8회 출신 가운데 일찌감치 ‘총장감’으로꼽혀 왔다.법무부 교정국장 시절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 수감 업무를 무난히 처리했고 대검 중수부장때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무리없이 처리해 신임을 얻었다.지난 2월 검사 항명파동때에는 밤늦도록 평검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불만을 추슬러 신망을 얻었다.김태정(金泰政) 법무장관과는 총장-중수부장,총장-서울지검장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환상의 콤비’라는 평을 들었다.취미는 테니스.부인 김혜정(金惠貞·52)씨와 2남. ◇ 安炳禹 중소기업 특별위원회 위원장 경제기획원 예산정책과장과 예산총괄과장,예산심의관을 거치는 등 자타가공인하는 예산전문가.국민의 정부 출범후 초대 예산청장을 맡아 IMF사태 극복을 위한 본예산 편성을 무난히 처리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부하직원들에게 좀처럼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다.부인 유인숙(柳寅淑·49)씨와 1남1녀. ◇ 李起浩 경제수석비서관 깔끔한 외모에 정연한 논리와 빈틈없는 일처리로 사무관 시절부터 윗사람의 신망이 두텁다.지난 김영삼(金泳三)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노동장관 자리를 지켜 화제가 됐다.IMF체제 하에서 노사정위원회의 필요성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해 관철시키는 등 실업대책과 노사관계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부인 양인순(梁仁順·47)씨와 1남1녀. ◇ 黃源卓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육사 18기 대표화랑 출신으로 합리적이고 온화하지만 업무 추진력도 만만치 않다는 평.91년 한국군 장성으로는 처음으로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측 수석대표에 임명됐으나 북한이 인정하지 않아 군정위가 열리지 않는 등 파동을겪기도 했다.12·12 당시 정승화(鄭昇和)육군참모총장의 수석부관을 지냈다는 이유로 5·6공때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부인 음성원(陰聖媛·54)씨와 1남1녀◇ 朴晙瑩 공보수석비서관 언론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해직기자 출신의 언론인.지난 80년 5·18 이후 언론검열에 항의해 강제 해직됐으나 87년 민주화바람에 중앙일보에 복직,뉴욕특파원 등을 지냈다. 신사풍으로 부드러우나 논리적인 원칙주의자.뉴욕특파원 시절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과 친분을 쌓았다.취미는 속기바둑이며,골프가 싱글수준이다. 부인 최수복씨(崔秀福·49)와 3녀. ◇ 嚴洛鎔 재정경제부차관 신임 엄차관은 행정고시 8회로 30년 경력의 정통 재무관료.금융,관세,경제협력국 업무를 거쳐 국장때 세제실로 옮겼다.2차관보 재직때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을 담당했다.성격이 온화하고 차분하며 일처리가 합리적이다.부인홍영신(洪榮信·46)씨와 1남1녀. ▲51·서울 ▲경기고 서울법대 ▲재무부 세제심의관,국세심판소장,2차관보◇ 梁榮植 통일부차관 제주 출신으로 72년 이래 통일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통일전문가. 역대 정권의 통일정책을 비교한 통일정책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여러권의 저서도 낸 학구파.TV 대담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등 개방적인 성격이라는 평.부인 권영례(權寧禮·53)씨와 1남1녀.▲58·제주 ▲통일부대변인 ▲통일정책실장 ▲통일연구원장◇ 朴庸玉 국방부차관 75년 하와이대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은 ‘국제신사형’ 정책전문가.92년 남북고위급회담때 남북군사분과위원장으로서 ‘불가침 부속합의서’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탄생시켰으며,북한 핵문제가 절정에 달한 94년에는 주미 국방무관으로 대미협상을 주도했다.부인 유승애(劉承愛·52)씨와 3녀. ▲57·평남 평원 ▲경기고 육사21기 ▲국방부 정책기획차장,군비통제관,정책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金興來 행자부차관 작은 체구임에도 추진력이 강하면서 부하들로부터 사랑받는 행자부의 맏형.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옛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지방행정 전문가다.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의 진도 군내초등학교 1년 후배.부인 위영자(魏英子·57)씨와 1남2녀. ▲58·전남 진도 ▲목포해양고 단국대법대 행시 10회 ▲목포시장 ▲재정국장 ▲지방행정연수원장 ▲기획관리실장◇ 羅承布 소청심사위원회위원장 행정고시 10회로 전남도 내무국 지방과에서 시작한 정통 내무관료.온화한성품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만 업무에 관한한 치밀하고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평.옛 내무부 주요 부서와 시장,군수 등을 두루 거치면서 폭넓은 행정경험을 쌓아 ‘행정 9단’으로 불린다.▲57·전남 함평 ▲한양대 행정대학원▲전남 여수,목포시장.내무부 공보관,지역경제및 지방재정국장,전남 행정부지사. ◇ 李元雨 교육부차관 온화한 성품으로 강단이 있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법무부 보도직(5급)으로 출발해 77년 문교부 편수과로 옮겼다.서울시 부교육감을 역임해 일선 교단의 사정에 밝다.술자리에도 자주 어울리는 등 소탈한 성격으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단국대 국악과 교수인 부인 서원숙(徐元淑)씨와 1남1녀. ▲57·충북 청주 ▲서울대 사대 ▲교육부 교육기획정책관 ▲서울시부교육감 ▲청와대 교육비서관◇ 趙健鎬 과학기술부차관 상공부와 재무부,총리실,청와대를 두루 거친 경제관료.일처리가 꼼꼼하지만 성격은 활달하고 솔직하다.대학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한 경험 때문에 조정협회 이사직도 맡고 있으며 연극,영화 등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재무부 공보관 시절에는 ‘명대변인’으로 꼽혔다.박찬혜(朴贊蕙·49)씨와 2녀. ▲55·경기 김포 ▲서울대 법대 ▲재무부 국제금융국장 ▲청와대 기획조정관◇ 金順珪 문화관광부차관 행시 출신으로 문화 분야에서만 28년 동안 근무해 온 문화부 터줏대감.정책기획력이 뛰어나고 합리적이다.그러나 고집이 세다 할 정도로 소신도 있고뚝심도 있다는 평이다.‘일본이 앞서고 있다’는 영문번역서를 낼 정도로 학구적.취미는 등산이며 자주 실력발휘를 하지 않지만 주량도 상당한 편이다. 노모를 모시고 살며 부인 김혜성씨와 1남2녀.▲52세▲경북 의성▲경기고▲국민대 무역학과▲행시 10회(71년)▲문화부 공보관▲문화부 청소년정책실장
  • [김삼웅칼럼] 吳越도 같은배 타는데

    파도가 심할 때는 오월(吳越)도 동주(同舟)하고 산길이 험할 때는 승적(僧賊)도 동행한다. 6·25 이래의 국난기에 국민에게 한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국가위기를 불러온 전직대통령들의 행동거지는 참으로 볼썽사납다. 설혹 은원이 따르고 이해가 갈린다고 하더라도 전직대통령끼리,혹은 전·현직 대통령 사이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월왕(越王)구천(句踐)의 관계에야 비할까. 그들도 풍랑이 거셀 때는 함께 같은 배를탓다고 하지 않던가. 시쳇말로 ‘님’이란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남’이 되고 ‘나’라는 글자에 점하나 바꾸면 ‘너’가 된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서 쿠데타거나부정선거거나 색맹선거를 통해서 대통령까지 역임했으면 퇴임 후라도 걸맞은 품위를 유지하면서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는 금도를 보이는 것이 본인들에게나 국민에게 좋을 것이다. 전직대통령들은 자신들이 행한 패도와 무능으로 무수한 국민이 희생되고 국가가 IMF 환란에 빠지게 된 죄업을 깨닫는다면 참회하는 심경으로 국난극복에 힘을 보태고 국민통합에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다. 또한 그들과 함께 정권의 요직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조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언론도 이제 전직대통령들의 ‘망언시리즈’를 중단토록 자제해야 한다. 전직끼리 또는 현직대통령에 대해 품격없는 욕설과 독설을 흥미위주로 보도하면서 편싸움을 부추긴다면 정치의 희화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솔직히 전두환·노태우·김영삼씨가 대통령직에 오른 데에는 언론·지식인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노태우씨가 김영삼씨를 후계자로 선택한 것은자신과 지도층이 색맹환자였다는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함께 느끼는 바가 많아야 한다. 환란 당시 34억달러이던 외환보유고가 600억달러를 넘어섰고 산업생산·어음부도율 등 각 경제지표가 환란 직전의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 그야말로위기로부터 간신히 벗어나려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직 지나야 할 터널은 길고 어둡다. 실업자는 여전히 150만명을 넘고 학교를 나와도 취업할 일터를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친다. 수출증가율도 더디고공장가동률도 힘겹다. 취약한 산업구조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한 저력이 있고 이를 이끌어온 정통성을 가진 정부가 있다.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펴고 이것이 국제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금강산 뱃길도 열렸다. 주변 4강의 역학관계도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환란위기를 국가발전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내외의 환경인 것이다. 건국 이후 대북관계나 4강관계에 있어서 이보다 더 유리한 시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활용은 커녕 IMF 격랑속에서 여야끼리,전직끼리,노정(勞政)끼리 싸우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부차와 구천의 치졸한 싸움이 그칠 줄을 모른다. 이와 같은 한심스런 행태는 대부분 지역주의를 볼모로 한다. 아무리 악과무능으로 국가와 국민에 위해를 끼친 지도자라도 그들을 감싸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망언과 망설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 정치의 비극과 정치발전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서 근원한다. 악성지역주의의 함정이고 병폐다. 주막 장기는 곧장 마을 장기판이 되기 십상이고 투전판의 개평꾼은 항상 강경파가 된다. 그렇더라도 훈수를 할 사람이 있고 잠자코 있어야 할 사람이따로 있다. 아무나 장기판에 끼어들어 제돈 잃지 않는다고 개평꾼이 함부로부추겨서는 안된다. 어렵사리 격랑을 헤치면서 환란극복과 지역화합에 노력하는 국민에게 더이상 갈등을 증폭시키는 언동을 삼갔으면 한다. 정작 훈수를 하고 싶고 개평을 뜯고 싶거든 마을사람들에게 지은 죄,주막에 진 외상값이라도 갚고 나서 하면 어떨까. 국민의 80% 이상이 전직들의 행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한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이제 언론이 나서서 개평꾼들의 치졸한 ‘훈수’를 묵살할 차례다. 새 내각도 출범한 시점에서 국민화합을 위해 ‘전직’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주필 kimsu@
  • [오늘의 눈] 불안한 證市정책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주가를 부추기겠다.투자신탁회사를 통해 무제한 주식을 매입토록 할 방침이다.” 지난 89년 노태우(盧泰愚) 정부 때 발표한 ‘12·12조치’의 골자다.얼마나 주가급락에 당황했으면 정부가 ‘돈을 찍어서’ ‘무제한’이란 말들을 사용했을까.그 절박감이 지금도 다가온다.87,88년에 기업공개와 유상증자 요건까지 완화,대대적인 물량공급을 벌인 지 2년도 채 안돼 취한 조치다. 최근 주가 부진은 그동안의 급등에 따른 조정국면으로 단기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다만 정부의 증권시장 정책을 보면 다시 80년대 말과 같은 물량공급 과다와 주가 폭락의 길목으로 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는 요즘 ‘증권시장에 개입할 의사도,수단도 없다’며 기업들의 대대적인 유상증자를 방관하고 있다.공기업들의 상장도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한발 더 나아가 증권거래소 상장요건에 못미치는 기업들을 등록해 주식을 사고파는 코스닥 시장을 대폭 육성할 계획이다.물론 창업장려와 기업의 자금조달을위해 코스닥 시장등 증권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주식물량 과다공급이 미칠 부정적인 효과를 간과하는 느낌이다.‘만기 상환으로 없어지는 채권과 달리 주식은 한번 상장되면 물량이 부담이 된다.주식물량이 많으면 반드시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지난달 재정경제부의 배모 과장이 이규성(李揆成)장관 앞에서 발표한 이 논문은 정부 안에서도 일부 공감을 받는 내용이다. 더욱이 등록규정을 대폭 완화,호황으로 돈이 넘치는 개인휴대통신회사들까지 코스닥 시장에 유치하는 것은 이제 갓 살아난 주가 전망을 정부가 너무낙관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정부가 ‘개입은 하지 않는다’면서 시장존중 원칙을 새삼 밝힌 것도 어쩐지 미덥지 않다.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금리를 내리려고 소매를 걷어붙이고지난달에는 환율대책을 내놓지 않았던가.현재 주식시장은 가장 조심스런 ‘계기(計器)비행’을 해야 할 분야로 꼽힌다. 따라서 어설픈 기업의 주식 발행을 막도록 오히려 상장과 등록 요건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물량확대로 일관하다가 또 다른 ‘12·12조치’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면 한다. bruce@
  • 「전직대통령 문화 달라져야 한다」퇴임후 어떤 예우 받나

    대통령들은 퇴임 후 어떤 대접을 받을까.정답은 전직 국가원수로서 보통사람들과 다른 예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 법적인 근거는 80년 제정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이다. 우선 현직때 보수의 95%인 연금을 지급받는다.전직 국가원수로서 최소한의품위를 유지하도록 하려는 취지다.올해 월봉은 535만원 상당이다. 여기에다 차량·사무실 유지비와 사회봉사비용 명목으로 월 505만원의 예우보조금도 받는다.또 정부에서 급여를 받는 비서관(1급 1명,2급 2명)과 운전기사 1명도 지원받는다. 특히 대통령경호실법에 따라 퇴임 후 7년간 청와대경호실 파견 인력으로부터 경호도 받는다.그 이후엔 경찰로 경호업무가 넘어간다. 다만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경호·경비 이외의 모든 예우가 박탈된다.나중에 사면·복권이 돼도 예우는 회복되지 않는다.12·12 및 5·18과 관련,형이 확정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은 97년 5월부터 연금·예우보조금 지급 등이 중단됐다. 구본영기자 kby7@
  • 「전직대통령 문화 달라져야 한다」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 정치영향력 확대 모색보다 역사에 남기는 일 몰두해야 우리 사회가 전직 대통령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과 논의를 시작해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최규하(崔圭夏)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그리고 김영삼(金泳三). 우리는 네 명의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을 두고 있다.전직 대통령이 많다는것은 민주화의 척도이고,국가의 정치적 자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그 반대로 우려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네 명의 전직 대통령 모두에게는 내세울 만한 업적도 있고,비판받아 마땅한 실정(失政)도 있다.그와 관련한 생산적인 토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얼마든지 이뤄질 필요가 있다.그것은 현재의 대통령과 미래의 국가지도자가 참고할중요한 자료도 될 것이다.그러나 현재 전직 대통령 사이에 직접 이뤄지는 다툼은 공과(功過)의 객관적 평가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 있다.또 과거통치기간을 정당화하고,앞으로도 출신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확대해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전직 대통령이 나서서 사회의 갈등을 확산할 시기가 아니다.참여연대와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과 같은 사회단체들은 “전직 대통령들이 지역감정에 편승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네 명의 전직 대통령에게는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또 공통적으로 부여된 소명도 있다. 정치학자와 정치인,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전직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재임 당시의 회고록을 쓰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재임기간의 치적을과시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역사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이밖에 평범한 사회봉사활동, 특별순회대사 역할 등으로 국가에 봉사하기를 국민들은 원한다. 현행 헌법 90조는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정부도 이같은 헌법 정신에 따라 여유와 아량을갖고 전직 대통령에게 합당한 역할을 마련해줄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가야 할것이다. 이도운기자 dawn@
  • 金대통령, 朴전대통령과 화해 이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죽을 고비를 넘길 정도로 자신을 핍박해온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과 화해한 것은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약의 차원을 넘는 것이다.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물꼬를 트는새 작업으로 평가된다.21세기를 앞두고 화합과 사랑의 정신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인 것이지만,5·16과 5·18 등과 맞물려 역사적 함의(含意) 또한 적지 않다. 우선 피해 당사자로서 ‘큰 정치’의 시도다.새 천년을 열기 위한 국민화합의 열정인 셈이다.“왜 정치권은 정략적 의미만을 부여한 채 선의(善意)를선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라고 청와대가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큰의미’를 이해해달라는 당부다.김대통령의 화해선언 이후 영남지역의 정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청와대측도 인정한다. 이번 화해선언으로 김대통령의 향후 정국운영은 화합과 관용의 기조를 유지할 게 확실하다.청와대 핵심참모도 “국민의 정부 2차연도 중반부터는 지역을 담보로 한 구태(舊態)의정치를 떠나 국민화합과 화해,관용등이 주요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원(朴智元)청와대대변인은 16일 “박전대통령 기념사업지원에 대해 70∼80%가 감동적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하고,20∼30%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말해 국민평가에 만족감을 표시하면서도 박전대통령에 대한 부정적평가부분 계승은 경계했다.이어 “(김대통령이) 5·16,5·17,5·18에 여러가지 감회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대변인은 이어 ‘재평가가 박전대통령 뿐이냐’는 질문에 “역대 대통령가운데 박전대통령이 국민의 마음 속에 일정부분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해 신호탄임을 부인하지 않았다.‘전직대통령들도 잘한 부분은 평가해야 한다’는 큰 정치 정신은 그래서 이승만(李承晩)초대대통령부터 윤보선(尹潽善)·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으로 지평을 넓혀갈 공산이 크다. 양승현기자 y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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