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노태우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카카오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고객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모로코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가석방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64
  • 김복동 의원 별세

    자민련 수석부총재를 지낸 김복동(金復東)의원이 19일 오전 9시40분 삼성서울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67세. 고 김의원은 경북고와 육사 11기 출신으로 육사교장 등을 거쳐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광업진흥공사사장과 국제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거쳐 14대 국회 때 정계에 입문해 15대까지 재선의원으로 활동했다.이번 16대 총선에는지병이 악화돼 출마를 포기했다. 고 김의원은 국민당 최고위원,신민당 대표,자민련 수석부총재 및 상임고문등을 역임했다.육사 동기인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처남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와 박태준(朴泰俊)총리 등은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빈소에는 노전대통령과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와 이한동(李漢東)총재 등이 문상했다.또 자민련 김학원(金學元)대변인과이원범(李元範)의원,정진석(鄭鎭碩)총선당선자 등이 조문했다.손영길씨 등육사11기 동기생들도 빈소를 찾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금주(任金珠·65)여사와 4녀가 있다.영결식은 21일 오전 10시 국회 본관 앞에서 국회장으로 치러진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 15호실(02-3410-6915)에 마련됐다. 박대출기자 dcpark@
  • 남북 정상회담/ 전직대통령들 반응

    남북 정상회담 날짜까지 잡았다가 김일성(金日成)의 사망으로 뜻을 이루지못한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비롯한 4명의 전직대통령은 한결같이 축하와 환영의 뜻을 보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상도동 자택을 찾은 황원탁(黃源卓)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94년 당시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역사가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이어 “김대중 대통령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안부를 전해달라는 당부의 말씀도 있었다”고 황 수석은 전했다.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 역시 “아주 잘됐다”고 크게 환영한 뒤 대북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지원의 의미를 강조했다고 한다.전 전 대통령은 “SOC확충을 위한 남북간 경협은 단순하게 식량을 지원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개방하는 데 엄청난 효과가 있다.이런 점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면서 “멀리볼 때 SOC 확충 의미와 효과에 대해 충분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규하(崔圭夏)·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도 남북 정상회담을 크게 반겼다.특히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지원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국민들도 있는 데 이런 점에 대해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바르게 이해시켜야 한다”며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 이뤄낸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이 반영되길 희망했다고 한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관계 일지

    ▲72년 7월4일=7·4남북공동성명 발표▲72년 8월∼73년 7월=1∼7차 남북적십자회담▲81년 1월12일=전두환 대통령,정상회담 첫 공식 제의▲84년 11월∼85년 11월=1∼5차 남북경제회담▲85년 5월∼12월=8∼10차 남북적십자회담▲88년 2월25일=노태우 대통령,김일성과 대화 용의 표명▲90년 1월1일=김일성,남북정상회담 용의 표명▲90년 1월10일=노태우 대통령,남북한 통행 통신 통상협정 위한 정상회담 촉구▲90년 9월∼92년 9월=1∼8차 남북 고위급회담▲91년 12월13일=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92년 2월19일=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발표▲93년 2월25일=김영삼 대통령,취임사에서 정상회담 추진 발표▲93년 5월25일=북한,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 교환 역제의▲94년 6월17일=김일성 주석,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의 평양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동의▲94년 6월28일=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부총리급 비공개 접촉▲94년 7월8일=김일성 주석 사망▲98년 2월25일=김대중 대통령,취임사에서 남북 최고 당국자간 회담 개최 제의▲98년 4월=1∼4차 남북당국 대표회담▲98년 8월31일=북한,대포동미사일 발사▲98년 11월18일=금광산관광 첫 출항▲99년 2월3일=북한,남북 고위급정치회담 제의▲99년 6월15일=서해교전▲99년 6∼7월=남북 차관급회의▲2000년 3월10일=김대중 대통령,베를린선언▲4월8일=남북 특사,베이징 접촉 통해 정상회담을 위한 합의서 서명▲4월10일=남북 정상회담 발표
  • [오늘의 눈] 현대제재와 여론의 힘

    최근 법을 뛰어넘는 파행적인 인사를 되풀이 한 현대그룹에 대한 제재를 놓고 정부가 고민하고 있다.경제부처 좌장격인 이헌재(李憲宰)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 27일 “현대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주채권은행이 여신을회수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여신제재가 말처럼 쉬운 것도아니다. 주무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와 금감원은 현재로서는 여신제재에 관해 고개를갸우뚱하고 있다.지난 98년 은행권이 공동으로 마련해 재벌그룹과 개별적으로 합의한 ‘재무구조개선에 관한 약정안’에는 최근의 현대사태와 같은 인사문제는 여신제재 대상으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무구조 약정상 여신제재를 할 수 있는 것은 부채비율,자산매각,유상증자,계열사 정리,외국자본 유치,분사(分社),사외(社外)이사 선임 등에서 약속한대로 하지 못했을 경우다.다음달 본격 조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수 있지만 현대그룹은 이런 항목에 대해서는 약정사안을 지킨 것으로 금감위는 보고 있다 재무구조 약정을 다 지켰다고 해서 제재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채권은행은 현대사태로 신인도가 떨어졌다고 보고 예정보다 앞서 여신을 회수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재벌의 그릇된 행태를 그대로 보인 현대그룹에 대해 정부나 대부분의 국민들이나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금감위원장 출신이라 현재의 규정상에는 여신제재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이 장관이 ‘여신회수 가능성’을 흘린 것도 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90년대 초 당시 노태우(盧泰愚)정권은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정치입문을 계기로 현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제재에 나섰다.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때의 규정 등을 새로 만들면서까지 현대에 대한 자금압박도 했다.하지만 점점 민주화되면서 정부가 직접 ‘칼’을 쓸 수 있는 기회는 줄고 있는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보다는 국민과 소액주주,여론의 힘으로 현대 뿐 아니라재벌의 나쁜 행태에 매운 맛을 보이는 게 보다 현실적인 대안일 수도 있다. 정치판 뿐 아니라 재벌들의 구태(舊態)를 바꾸는 것도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 [곽 태 헌 경제과
  • 金대통령, 前대통령 초청 만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지역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국가경쟁력을 갖추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태어날 때부터 본적지를 없애는 방향으로 호적제도를 바꾸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저녁 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과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박태준 국무총리, 최종영 대법원장 등 3부 요인 및 김용준 헌재소장, 이용훈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만찬을 함께하면서 “지역감정이 국민과 국가에 주는 낭비가 엄청나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통령은 또 영국 등 선진국의 공명선거를 예로 들면서 “돈 안드는 선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유럽순방 기간 중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3개국으로부터 141억달러 투자상담을 벌인 결과, 약100억달러에 대해서는 연내 양해각서체결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투자를 요청하면 즉각 반응이 와서 민주주의와 국가재건을 통한 우리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유라시아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은 당초 의제에 없던 것을 제안한 것인데 3국이 모두 수용했다”면서 “오는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 공식의제로 채택해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노소영씨 ‘SK 멀티미디어 미술관’ 관장에

    최태원(崔泰源) SK회장의 부인이자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외동딸인노소영(盧素英·39)씨가 서울 종로 SK사옥 내 멀티미디어 미술관의 관장직을맡아 운영한다. 9일 SK에 따르면 노씨는 오는 9월 신사옥 4층에 개관할 120평 규모의 ‘SK멀티미디어 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현재 국내외 전문가들과 전시작품 및 공간배치 등을 협의 중이다. SK 관계자는 “노씨가 97년 당시 워커힐 미술관장이던 박계희(朴桂姬·고최종현 회장 부인) 여사가 타계한 뒤 워커힐 미술관장 직무대행을 맡아오다지난해말 정식 관장에 취임했다”고 말했다. 회화 조각품 등 4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워커힐 미술관은 사이버 미술관개념으로 바꿔 이 개관에 맞춰 문을 닫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권혁찬기자 khc@
  • 행정직공무원 3년간 계속 감소

    지난 40년 동안 공무원 정원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제1공화국에서 ‘문민정부’까지는 공무원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그러다 ‘국민의 정부’ 출범후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공무원 정원이 감소하기 시작했다.정부 조직도 당시집권자의 의지에 따라 휘둘린 경향이 짙었다. 행정자치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대한매일 행정뉴스팀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승만(李承晩)정부 시절인 지난 60년말 전체 공무원은 23만7,476명이었다.당시 정부는 독립국가로서 면모를 갖추는 데 필요한 기구를 만드는 데 급급했다.대륙식 행정체제를 모방하다보니 11부 4처 3위원회로,행정수요의 예측에 의한 기구라기보다 형식요건을 갖추기에 급급한 인상이 짙었다. 제2공화국인 장면(張勉)정부는 내각책임제 채택에 따라 국무총리와 국무원(내각)의 지위를 크게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공무원 수는 23만7,500명으로 이승만정부 시절보다 겨우 24명만이 늘어났다. 제3공화국은 국가안보와 경제개발계획을 중점 추진한다는 목표아래 국가조직도 확대일로를 걸었다.2원 14부 4처 14청으로 공무원 수가 무려 55만6,793명(79년 기준)으로 많아졌다. 전두환(全斗煥)씨가 집권한 제 5공화국 초기는 대폭적인 정부조직 개편으로고위공직자가 많이 줄었으나 집권 말기인 87년엔 집권전보다 10만8,622명이늘어난 70만5,053명이 됐다. 가장 기구가 팽창했던 때는 노태우(盧泰愚)대통령시절이다.2원 16부 6처 15청 2외국으로 공무원 정원이 88만6,179명나 됐다.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조직이 강화됐다고하나 공무원의 비대화를 초래,오히려 국민들로부터 비판요인을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문민정부시절인 김영삼(金泳三)대통령집권 때는 93만4,247명으로 6공화국보다 전체적으로는 4만8,068명이 늘어났으나 행정직공무원은 3,163명이 줄어들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무원은 대변혁기를 맞는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아예 ‘대통령령’으로 국가직 공무원 수를 정해놨다.현재 정원에묶여있는 국가공무원 수는 27만3,982명(지방공무원,교육직,헙법기관 제외)이다. 국민의 정부는 2차례에 걸쳐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 현재 17부 4처 16청에 88만989명이 근무하고 있다.문민정부때보다 5만여명이 줄어든 수치다.이를 다시 분류해보면 순수국가 행정직 공무원은 8만1,04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지방공무원이나 공안직,교육직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가직 공무원은 별로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반면 공무원 총정원제에 영향을 받지않는 지방직을 비롯,교육직 또는공안직 등은 언제든지 늘어날 소지가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행정부를 제외한 입법 사법부는 98년 이후 오히려 10%인원이 증가됐다”면서 “이는 구조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홍성추기자 sch8@
  • ‘지역감정’ 보도 문제없나

    총선을 앞두고 ‘지역 감정’ 발언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여과없이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언론학자 등 전문가들은 7일 정치인들이 총선을 겨냥해 마구 내뱉는선동성 발언을 언론이 액면 그대로 보도하면 지역감정을 간접적으로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수백명 청중을 상대로 한 발언이 전국 단위로 퍼지는 데 언론이 앞장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보도는 해야겠지만 비판적 시각에서 기사를 다뤄야 하며,너무 자극적으로 비쳐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정외과 함재봉(咸在鳳)교수는 “정치인들이 정책대결을 펴지 않고감정싸움을 하다보니 지역감정 유발이라는 가장 손쉽고 원시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면서 “언론은 사설이나 칼럼 등을 통해 따끔하게 충고하면 될 것을 감정을 섞어 흥미 위주로 싣고 있다”고 ‘언론 상업주의’를 경계했다. 지난 주말부터 대부분의 언론은 “87년 대선 때 노태우(盧泰愚)후보와 나는호남에서 돌멩이를 맞았지만 DJ는 영남 와서 돌을 맞은 적이 없다”(자민련金鍾泌명예총재),“신당이 실패하면 영도 다리에서 빠져 죽어야 되는 것 아니냐”“지역감정 덕택에 대통령이 된 사람은 지역감정 괴수 중 괴수”(민국당 金光一최고위원),“차기 대선에선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가 합쳐 영남정권을 창출해야 한다”(민국당 金潤煥최고위원)는 등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발언을 가리지 않고 싣고 있다. 상당수 언론들은 ‘영남 출신에게만 가혹하다’,‘충청권에서도 반발’ 등지역색을 뚜렷이 보이는 제목을 자주 쓰고 있다.특히 여론조사 결과 보도에서도 지역주의에 근거한 해설과 판세분석,지역감정 불가피론 등으로 지역감정을 고착화시키는 보도 성향을 자주 보이고 있다.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이강준(李康俊)간사는 “지역감정은 보도함으로써 오히려 확산되는 역작용이있다”면서 “지역감정을 근거로 당선되고 보자는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선연대 이경숙(李京淑)사이버팀장도 “지역감정의 해결방안을 묻기 위해개설한 쟁점토론방에 150여명의 네티즌들이 의견을 보내왔다”면서 “언론도지역감정을 가지고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조의 글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JP, 지역감정발언 진화 나서

    김종필(金鍾泌·JP) 자민련 명예총재가 5일 ‘4월 총선전 마지막 골프’를쳤다.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이 마지막 파트너가 됐다.이한동(李漢東) 총재와 정해창(丁海昌) 전청와대비서실장이 함께 팀을 이뤘다. JP는 지난 2일 부여에서의 지역감정 관련발언에 대해 해명했다.변웅전(邊雄田)선대위 대변인을 통해 내용을 공개했다.지역감정 조장이라고 여론의 거센역풍(逆風)을 맞자 다급해진 듯했다. JP는 “부여발언은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또“지역감정은 영원히 없어져야 한다”면서 “이번 4·13총선에서 지역감정이없어지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반(反)DJ’는 분명히했다. JP는 “지역감정 악화는 지난 71년부터 생긴 것인데 (金大中대통령이)5·16부터라고 해서 바로 잡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전대통령은 “지난 87년 대선 때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그 때도 지역감정은 대단했다”고 상기했다. 이날 골프회동은 JP에게 두가지 의미가 있다.노 전대통령은 성향으로 보면‘보수’다.또한 대구·경북(TK)출신 인사다.자민련이 보수대통합을 내세우고,TK지역에서의 선거가 급한 상황을 감안하면 ‘공통분모’가 나온다. 박대출기자 dcpark@
  • [굄돌] “설계비는 대원군께…”

    아침 출근길에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아보니 ㅈ 시청 공무원이었다.갑자기 전화 드려 죄송하다며 당일 오후 4시에 향토사 박물관 현상 설계 작품심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갑작스러운 요청이어서 당황스러웠다.최근 건축비리가 사회적인 문제가 된 바 있어 아마도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당일연락을 취한 모양이었다. ㅈ시로 향하는 차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심사위원을 당일 위촉해야 하는 현실도 착잡했고,지방자치단체가 세우는 향토사 박물관이니 혹시 복고적 건축 양식을 요구하지 않을까 염려 되었다. 17년 전 올림픽조직위원회 건물 현상설계에 옛 직장에서 출품한 작품이 당선되었다.그러나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한마디에 그 작품은 엉뚱한 건물로 변형되고 말았다.그 무렵 유럽 여행을 다녀온 노 전대통령이 전통건축이 잘 보존된 유럽 도시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서울도 그런 도시로 가꾸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자,부랴부랴 당선작 개조 작업이 시작됐다.결국 10여 층 높이 건물에 기와를 속눈썹처럼 올려,양복바지에 한복 저고리를 걸친 듯한 이상한 건물이 세워졌다.건축가로서 최소한의 양식을 지키기 위해 나는 당선작 개조작업 직전에 그 직장을 그만 두었다. ㅈ시청에 도착하니 대학의 역사 및 건축학 전공 교수와 건축가 등 7명으로심사위원이 구성돼 있었다.1,2차 심사결과 당선작으로 뽑힌 최종안은 복고성과는 거리가 먼 참신한 작품이었다.다른 심사위원들도 대체로 복고적 건축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염려했던 것과 달리 ㅈ 시청측에서도 거의 간섭하지 않고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 주었다. 지난 70년 캐나다 몬트리올 엑스포의 한국관 설계를 의뢰받은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은,한국관을 구한말 대원군이 중건한 경복궁 경회루 모양으로 지어달라는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건축가가 할 일이 없으니 목수에게 부탁하시오,설계는 이미 대원군이 하셨으니 기본 설계비는 대원군께 보내드리고(?),내부 장치는 목수들만 있으면 될테니...” 하고. 전통을 살린다고 해서 고전 형식을 되풀이하는 형태적 모방은 곤란하다.전통의 창조적 계승이 중요한 것이다.ㅈ시 향토사박물관 현상 설계 심사를 통해 우리 공무원들이 복고적 건축에 집착한다는 오랜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현상설계를 둘러싼 잡음도 ㅈ시청만 같으면 앞으로 줄일수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 이상연 건축가
  • “지역감정은 네탓”여야공방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의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지역감정 책임론’ 발언에 이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3일 “지역감정에 대한 1차적 책임은 김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일부 정치 지도자의 이같은 발언으로 이번 총선에서 지역감정 문제가 또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여야가 ‘1여3야’ 구도 속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에 의존하는 선거전략을 본격화할 경우 ‘망국병’으로 일컬어지는 지역감정이 재연돼 총선 후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대구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구 필승 결의대회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지난 87년 대선때 김 대통령이‘4자 필승론’을 들고 나오면서TK(대구·경북)는 노태우(盧泰愚)후보가,PK(부산·경남)는 김영삼(金泳三)후보가,충청은 김종필 후보가 각각 맡으면 자신은 결집된 호남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다고 했는데,이로 인해 지역주의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선거대책위회의를 열어 총선 초반부터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조기 차단하는 데 주력키로 했다. 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은 3일 대전 3개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어떤정당의 어떤 지도자가 또다시 지역감정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자민련 김 명예총재를 겨냥한 뒤 “지역감정을 선동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탐욕스런 정치인을 위대한 시민의 힘으로 몰아내자”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은 반드시 호남과 충청,경상도 등 모든 지역에서 지지를 받아 의석을 갖는 전국 정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이 시점에서 지역감정은 역사적 유물이 돼야 한다”면서 “유신 이후 지역 차별이 노골화되고,그 차별은 노태우·김영삼정권을 거치며 심화·강화됐다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자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최광숙 주현진기자 bori@
  • 문정수씨 민국당 합류

    민주국민당의 신상우(辛相佑)·이기택(李基澤)·김광일(金光一)최고위원과문정수(文正秀) 전 부산시장은 1일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부산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부산 중동의 정의화(鄭義和)의원과 해운대기장갑의손태인(孫泰仁)위원장도 조만간 민국당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박찬종(朴燦鍾) 전 의원은 이르면 2일쯤 기자회견을 갖고 민국당 입당과 함께 부산지역 출마의사를 밝힐 예정이다. 정호용(鄭鎬溶) 전 의원도 조만간 민국당 합류의사를 밝힐 예정이라고 이날김윤환(金潤煥)최고위원이 전했다. 한편 김윤환·장기표(張琪杓)최고위원은 이날 각각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방문,신당 창당에 따른 협조를 요청했다. 박찬구 박준석기자
  • 장기표·김윤환씨 YS·노태우씨 방문

    민주국민당 지도부가 1일 전직대통령을 잇따라 방문했다. 김윤환(金潤煥)최고위원은 오전 연희동으로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을 찾았다.장기표(張琪杓)최고위원은 상도동을 방문,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과오찬을 겸한 회동을 가졌다.두 최고위원은 신당 창당 배경을 설명하고 협조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전직대통령 연쇄방문은 오는 5일 부산지역 지구당 합동 창당대회와8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앞두고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지지세 확산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전대통령과 장최고위원의 회동은 2시간30분이나 이어졌다.회동 직후에는 김전대통령이 대문 밖까지 장최고위원을 배웅했다.두 사람 모두 밝게웃는 표정이었다.그러나 장최고위원은 “상도동에서 초청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김전대통령의 대변인 격인 박종웅(朴鍾雄)의원은 “초청한 일이 없다”며 김전대통령의 민국당 지지로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김전대통령은 서울대 동문인 장최고위원에게 “출신학교를 잊어버리라고 하지만,그게 어떻게 잊혀지겠느냐”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겨냥했다.김전대통령은 또 “독재자가 들어서서 건강이 좋다” “내가 대통령할 때는 김덕(金悳)안기부장을 해임하는 등 정보정치를 엄하게 다스렸다”는 등 현 정권을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윤환 최고위원은 노전대통령과의 회동을 마친 뒤 “한때 모셨던 분에게 정치적 변신의 이유를 설명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최고위원은 외유중인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이 오는 10일쯤 귀국하는 대로 연희동을 방문,창당에 따른 협조를 구할 예정이다. 박찬구기자
  • 자민련도 전직대통령에 ‘구애’

    전직대통령들을 향한 구애(求愛)에 자민련도 가세했다.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가 직접 나섰다.오는 5일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과 골프회동을 갖는다.경기 용인의 은화삼CC에서 라운딩한다.일부 6공 인사들도 초청해 3팀으로 구성했다. 골프회동 약속은 지난달 19일 이뤄졌다.이한동(李漢東)총재가 노전대통령의연희동 사저를 방문했을 때다.취임인사차 갔다가 이총재가 제의했고, 노전대통령이 수용해 성사됐다.민주국민당 바람이 거세게 불기 전이다. 그런데 라운딩은 묘한 시점에서 이뤄지게 됐다.영남권 총선전략과 무관치 않은 상황이다.전직대통령 3인은 최근 상한가다.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은 물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도 한나라당과 민주국민당의 구애를 받고 있다. 자민련은 영남권에서 급해졌다.4·13총선구도는 당초 예상과는 다른 양상이다.한나라당 영남세력이 이탈하면 자민련에 반사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었다.그렇지만 민국당이 탄력을 받고 있다.영남권 대표세력은 한나라당과민국당으로 좁혀지고 있다.자민련으로서는 ‘전·노’와의 화해가 절실한 상황이다. 결국 JP 특유의 ‘골프정치’라는 자연스런 모양새가 만들어졌다.골프광인 JP는 1일에도 골프장을 찾았다.그러나 오는 5일을 마지막으로 총선까지는 발을 끊기로 했다.지난달 27일 함께 골프를 쳤던 조부영(趙富英)선대본부장이‘한시적 중단’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JP는 ‘솔선수범’을 흔쾌히 수용했다는 것이다.조본부장은 “향후 일정상 명예총재께서 라운딩할수 있는 짬을 내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대출기자
  • 虛舟·KT 탈당 안팎

    24일 한나라당을 떠난 김윤환(金潤煥)·이기택(李基澤)전고문은 신당 창당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다.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견을 가진 두 사람은 이회창(李會昌)총재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거침없이 쏟아냈다.이들은 이 자리에서 지역구 출마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김윤환 전고문은 “패륜적 행동”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등의 말로 분기(憤氣)를 드러냈다.회견문 대부분이 이총재를 비난하는 문구였다.차분하고 낮은 톤으로 회견문을 읽어가던 김 전고문도 지난 정치인생을 회고하는 대목에선 목이 메이는 듯 했다. 김 전고문은 자민련내 TK인사들과의 연대가능성에 대해 “문은 항상 열려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또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지원과 관련,“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김전대통령을 찾은 이유에 대해“내가 모신 대통령에 대한 예우차원”이라고 설명했다.김 전고문은 조만간노태우(盧泰愚)·전두환(全斗煥) 두 전직 대통령도 방문할 예정이다. 김 전고문과 동행했던 대구출신 서훈(徐勳)의원도 이날 즉석에서 탈당회견을 가졌다. ●이어 탈당회견을 가진 이기택 전고문도 “제왕적 야당총재” “정치초년생의 굶주린 권력욕” 등의 말로 이총재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이총재의 총재직 사퇴와 정계은퇴도 촉구했다. 이어 이 전고문은 “진정한 정치개혁을 위해 계보정치를 청산하겠다”면서민주동우회를 순수 사회단체로 전환할 뜻을 내비쳤다.이회창총재의 ‘야당분열’발언에 흥분한 듯 이 전고문은 “야당분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기자여러분이 증인되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지원여부와 관련,“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분인만큼 민주주의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할 것”이라며 지원을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곧 김 전대통령을 방문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박준석기자
  • 이번주 小史

    2.21 ◆민주공화당 창당(1963)◆중공(현 중국)군 조종사 미그 19기 몰고 귀순(1986)2.22 ◆충무 앞바다서 해군 YTL함 침몰참사(1974)◆정부,모스크바 올림픽불참결정(1980)◆보사부,국내 첫 에이즈 환자발생 발표(1988)2.23 ◆국무회의,대학교련을 필수로 한 교육법시행령 개정안 의결(1971)2.24 ◆윤보선 전 대통령 등 66명,3·1민주선언 발표(1978)2.25 ◆전두환 대통령,12대 대통령에 당선(1981) ◆북한군 조종사 이웅평 상위,미그 19기 몰고 귀순(1983) ◆노태우 대통령당선자,13대 대통령 취임(1988) ◆제15대 김대중대통령 취임(1998)2.26 ◆강화도 조약(1876)◆미국,제1차 한·미 금융정책회의에서 자본시장개방요구(1990)2.27 ◆정부,독도영유권 성명(1953)◆제9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1973) ◆노총,정치활동 참여 결의(1988)
  • 鄭亨根의원 문제 발언 전말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그동안 숱한 ‘문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안기부차장 출신답게 막강한 정보력을 밑천으로 진위를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수많은 의혹을 제기했다. 정의원의 ‘발언’은 지난 98년 정권교체 후부터 본격화됐다.지난해에는 서해교전과 관련,‘신북풍론’을 제기했다.또 ‘언론문건’을 폭로하면서 온나라를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다.정의원은 이강래(李康來)전정무수석을 문건작성의 책임자로 지목해 고소를 당한 상태다.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부산집회에서 문제의 ‘빨치산’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다.정의원은 “현정권의 뒤집어 씌우기는 공산당이 전형적으로 쓰는 선전·선동수법이며 지리산 빨치산수법과 다름없다”고 말했다.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서경원(徐敬元)전의원으로부터 1만달러를 받았으나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에게 ‘싹싹’빌어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정의원의 현정권 비난발언은 검찰의 연행시도가 있은 뒤 더욱 ‘농도’가짙어지는 느낌이다. 13일 정의원은 직함을 생략한채 김대통령을 지칭하는 등 도가 지나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정의원은 “여기가 북조선이냐”며 김대통령과 김홍일(金弘一)의원의 관계를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체제에 비유하기도 했다. 특히 정의원은 김대통령이 김정일을 평가한 부분과 관련,“좌익분자이거나정신나간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대통령의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박준석기자 pjs@
  • “우리도 출마자격을…”

    4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면복권’을 바라는 인사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대통령 취임 2주년이나 3·1절 특사를 단행,출마의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청이다. 대표적 인물은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폭로 주역인 박계동(朴啓東)전의원.이와 관련,‘박계동 전의원의 사면복권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은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가두집회를 갖고 박전의원의 사면복권을 촉구하는 서명작업을 벌였다. 집회에는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를 비롯,김홍신(金洪信)김영선(金映宣)의원과 김도현(金道鉉)전 문체부차관,장준영(張俊榮)한국의 선택 21 대변인 등이 참여했다. 박전의원은 지난 15대 총선에서 사전 선거운동이 적발,사법처리됨으로써 현재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다.‘한국의 선택 21’이라는 독자노선을 포기,한나라당에 최근 입당한 것도 ‘사면복권투쟁’을 혼자 벌이기보다 야당의 힘을 빌리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 역시 선거법 위반에 걸렸던 한나라당의 홍준표(洪準杓) 이명박(李明博) 최욱철(崔旭澈)전의원도 사면복권을 강력히 희망하면서 재기 의지를 다지고 있다.사면복권을 여권 핵심에 요구하는데 있어 당지도부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면서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너무 챙기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이기문(李基文)전의원이 동병상련의 입장에 처해 있다. 이들과 경우가 다르지만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상도동측도 김전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의 사면복권 포함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
  • 중앙-과천청사 영상회의 가능할까

    정부 중앙청사와 과천청사간 영상회의 개최가 가능할까. 국무총리실은 중앙청사 국무위원들과 과천청사 국무위원들간 화상회의를 할수 있는 ‘원격 영상회의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국무위원들이 청사를 오가는 불편을 없애고 디지털시대에 맞게 최첨단 시설을 활용하겠다는 것. 7월부터 중앙청사와 과천청사간의 영상회의 실시한 뒤 결과에 따라 청와대와 대전청사로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원격 영상회의를 하려면 중앙청사 19층 국무회의실과는 별도로 90평 규모의회의실을 마련해야 하고 첨단장비를 설치해야 한다. 행정자치부는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이나 영상회의에 필요한 예산 80억원 확보가 난관에 부딪혔다. 국무총리실은 정보통신부의 정보화촉진기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나 기금을 다루는 정보통신부측은 ‘불가(不可)’ 입장이다.겉으로는 기금의 지원 기준에 맞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두 차례의 영상시스템 설치 실패로 치른 곤욕을 되풀이하지않겠다는 것이다.원격 영상회의는 89년 노태우(盧泰愚)대통령 당시에도 추진됐고,지난 95년에도 22억원의 예산을 들여 시스템을 설치했다가 단 세 차례만 사용한 뒤 철거됐다. 실패한 뒤 정통부는 감사원 감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정부 공무원들사이에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설치했다가 과연 한 달에 몇번이나 사용할지’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과거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지는않을 것”이라며 “몇년 전과 달리 엄청나게 바뀐 시대변화를 감안해야 할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정현기자 jhpark@
  • 한나라 이번엔 법조계에 ‘손짓’

    한나라당이 법조계 인사들을 영입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386세대의 간판격인 오세훈(吳世勳)·원희룡(元喜龍)변호사를 잡은 데 이어 ‘거물급 변호사’들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변호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있다.지명도 등을 따져볼 때 이들의 ‘상품성’이 다른 누구보다 높기 때문이다. 대전 법조비리·옷로비 사건의 심재륜(沈在淪) 전 대구고검장과 이종왕(李鍾旺) 전 대검수사기획관 등이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지난 95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수사 때 선(禪)문답으로 이목을 끌었던 안강민(安剛民) 전 서울지검장도 이런 틀에서 영입대상이다. 이들 가운데 안 전 검사장은 최근 한나라당 공천 신청서를 가지고 간 것으로 확인됐다.심 전 고검장과 이 전 기획관은 아직 ‘심중(心中)’을 헤아리기 어렵다. 이와 관련,한나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14일 “거물급 변호사의 영입이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렀으니 잘 지켜봐 달라”고 말해 가시적인 성과가 있음을 내비쳤다. 이들 ‘스타 변호사’ 말고도 20여명의 법조인들이 한나라당에 ‘둥지’를치고 4·13총선에 도전하고 있다.울산 남구갑 조직책에 선정된 최병국(崔炳國) 전 대검공안부장을 비롯,서울 중랑을 조명원(趙明遠)·영등포갑 이종웅(李鍾雄)·동작을 송종섭(宋宗燮)·용산 진영(陳永),부산 사하갑 엄호성(嚴虎聲)·사하을 유기준(兪奇濬),경기 수원장안 강창웅(姜昌雄)변호사 등이 그들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