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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체비평] 권력형 범법자 사면에 왜 침묵하나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는 알선수재와 조세포탈혐의로 유죄가 확정됐으나 지난해 8월15일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로 사면됐다. 권력형 부정부패의 전형적인 인물로 비판받은 김현철씨에게 서둘러사면조치를 취하자 당시 여론은 들끓었다.그후 1년,올해 광복절에 김현철씨는 역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로 당당하게 복권됐다.두 번의광복절을 거치는 동안 국정을 문란케 했던 권력형 범법자는 사면권의최대수혜자가 됐다.남들은 사면 특혜 한번 보기도 힘든 판국에 그는왜 광복절마다 사면의 특혜를 누려야 하나? 사면권을 행사할 때마다 대통령은 ‘국민화합’을 내세운다.국가형벌권을 혼란시키고 사법부의 독립을 흔드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올해 그 수혜자가 사상최대라고 자랑했다.그러나 지난주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문제는 별 이슈가 되지 못했다.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서겨우 언급하는 정도였다.대다수 방송과 신문은 침묵했다.대통령의 사면권은 물론 법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다.그러나 대통령의 사면권행사는 사법권에 대한 행정권의 개입이기 때문에 나라마다 한계규정을 두고 있다.미국은 탄핵의 경우를 제외시키거나 덴마크의 경우장관들의 사면은 금하고 있다.절차적인 면에서 최고재판소의 자문이나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제한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면권의 한계에 관한 명문규정이 없다.따라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원칙도 기준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김현철씨가 두차례에 걸쳐 사면특혜를 받은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은아니다.사면권이 정치적 흥정의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1970년대 종신형을 받고 수감됐던 김지하씨는 불과 1년만에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나자 ‘종신형을 받았는데 벌써 나오다니 시간이 미쳤든지 내가 미쳤든지 둘 중 하나가 미친 것 같다’며 사면권에 따른 법집행의 모순을 꼬집었다.97년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에게 내란수괴죄 등으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확정했다.특별법까지 만들어 중죄를 선언한 이들에게 재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면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1심부터 대법원까지 연속적으로 사형판결을 받은 대한항공폭파범김현희는 애당초 구속조차 된 일이 없다. 이같은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에 대해 언론이 이번에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것은 단순히 이산가족문제 때문만은 아니다.이번 사면에는 두 전현직 언론사 사주들이 포함돼 있었다.해당 언론사는 당연히 보도할 수 없었고 타언론사들은 동업자 봐주기식의 끈끈한 ‘의리’를 과시했다.언론의 권력 감시기능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세금포탈 혐의로 기소돼 올해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벌금 30억원이 확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도 이번에 사면대상에 포함됐다.대법원의 유죄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떨어지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법관들의 고뇌에 찬 판결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그 권위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공영방송 사장 시절 1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역시 지난해 구속기소돼 징역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홍두표 전 KBS사장도 사면권의 특혜대상이 됐다.부도덕한 언론사 사주들이 이처럼 대통령의 무분별한 사면대상이 될 때 사주의 힘은 세지는 반면 한국언론은 초라해진다.사면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은 아무리 개혁과 사회정의,법치사회를 외쳐도 그 목소리에 호소력이 없다. 김현철씨같은 권력형 비리사범에게 반복되는 사면특혜.그 부당함을지적해야 할 언론사의 사주 역시 ‘사면동기생’이 될 때 한국언론은‘할 말도 못하는 부끄러운 언론’이 될 수 밖에 없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 언론정보학부
  • “나라종금 盧씨 270억 반환하라”

    서울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金善鍾)는 17일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이 차명으로 맡긴 2개의 어음관리계좌(CMA)의 예탁금과 운용수익금 293억여원을 돌려 달라”며 국가가 나라종금을 상대로 낸 전부금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270억여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검찰은 곧 강제집행에 착수할 계획이지만,현재 나라종금이 청산절차를 밟고 있어 돈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가압류한 나라종금의 건물을 처분하거나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변제 책임을 묻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금융실명제 이후 실명 전환을 하지 않았다해도 예금주는 노씨가 분명한 만큼 피고는 돈을 돌려줄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 5월 “나라종금은 국가에 285억여원을 돌려 주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으나 나라종금은 이에 불복, 재판부에 이의를 신청했었다. 노씨는 지난 97년 4월 법원으로부터 2,628억여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1,742억여원을 추징당했다. 나머지 886억여원 중 쌍용그룹 김석원(金錫元) 전 회장에게 맡긴 200억여원과 노씨의 동생 재우(載愚)씨에게 맡긴 129억여원에 대해서는재판이 진행중이다. 이상록기자
  • ‘8·15대사면’ 특징·주요인사

    14일 발표된 ‘8·15 대사면’은 새천년 첫 광복절이라는 ‘상징’과 최근의 남북화해기류라는 ‘현실’을 모두 감안해 내린 결단이라는 평이다. 과거의 어둠을 씻고 민족대통합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일반형사범을 비롯,시국·공안사범,선거사범,비리 정치인 등에 대해 대폭적인 사면·복권의 혜택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특징과 배경=우선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감안,공안사범을 대거 포함시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이번에 석방되거나 사면·복권된공안사범은 1,101명.법무부 설명대로라면 복역기간이 짧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석방하거나 사면·복권됐다. 특히 무기수로 40년동안 복역하다 풀려나 곧 북한으로 돌아갈 우용각씨 등 장기수 19명에 대해서는 잔형집행면제 조치로 ‘족쇄’를 풀어줬다. 15대 총선사범과 그 이전 선거사범에 대해 복권 조치가 내려져 다음 선거 출마 기회를 준 것도 큰 특징이다.법무부측은 “이들이 이미동종선거에 한차례 출마를 못하는 등 징벌을 받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특사에서는 특히 국민의 정부 출범 이전 비리사건 관련자에 대해 대규모 사면·복권이 이뤄져 눈길을 끈다.한보사건 연루 정치인,비리 공직자 등 부정부패 관련자와 비리 경제인 등이 ‘은전’을 받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새천년 첫번째 광복절을 계기로 불행했던 역사를 벗고 민족대통합의 시대를 열기 위한조치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밖에 지난해에 이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사형수 2명을 무기수로 감형,갱생의 길을 열어줬다.법무부는 이번 조치는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형폐지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IMF체제 하에서 부득이하게 부도를 내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중소기업인과 IMF 생계형 사범,민생과 직결되는 과실범 등에 대해 ‘국민통합’ 차원의 은전이 베풀어졌다. ◆사면·복권 주요인사=지난해 8·15특사때 잔형집행면제로 사면된김현철(金賢哲)씨는 이번 특사로 복권됐다.한보·청구사건에 연루돼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홍인길(洪仁吉) 전 청와대총무수석은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문민정부 시절 현철씨 인맥으로 전횡을 휘두르던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기조실장도 형선고실효 조치와 함께복권됐다. 노태우비자금 사건의 이원조(李源祚),한보사건의 노승우(盧承禹) 전의원 등 비리 정치인과 우찬목 전 조흥은행장,신광식 전 제일은행장,손홍균 전 서울은행장,이수휴 전 보험감독원장,김경회 전 철도청장,정홍식 전 정보통신부차관 등 대출비리 은행장과 뇌물수수 공직자에대한 복권 조치도 이뤄졌다. 탈세혐의로 기소돼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의확정판결을 받은 홍석현(洪錫炫) 중앙일보회장,홍두표(洪斗杓) 전 KBS사장도 복권됐고,12·12사건 관련자인 박희도(朴熙道) 전 육군참모총장과 장기오(張基梧) 전 총무처장관은 형선고실효로 사면됐다. 선거사범은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4월 영수회담에서 복권을 요청한 홍준표(洪準杓)·이명박(李明博)·최욱철(崔旭澈)·박계동(朴啓東) 전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 이기문(李基文),자민련 김화남(金和男) 전의원이 포함되는 등 모두 382명이 복권됐다. 공안사범 가운데는 일명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鄭守一) 전 단국대교수와 서울지하철 고정간첩사건의 심정웅씨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지난 98년 한총련대표로 밀입북한 황선씨,영남위사건으로 기소된 방석수씨 등도 석방됐다.영남위사건 관련자인 김창현(金昌鉉) 전울산동구청장도 복권됐다.이밖에 강위원(姜渭遠·한총련 4기 의장),정명기(鄭明基·〃5기 의장)씨는 감형됐다. 박홍환기자 stinger@
  • 盧 前대통령 한보에 맡긴 비자금 “국가환수 불가” 판결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정태수(鄭泰守) 전 한보그룹 회장에게 맡긴 800억여원의 비자금을 추징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을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安泳律)는 10일 국가가 한보철강을 상대로 낸800억여원의 정리채권 확정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한보철강으로부터 800억여원을 확보해 노씨의 미납 추징금으로충당하려 했던 검찰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보철강의 정리채권 부인은 공공 복리를 위해 헌법상 허용된 합리적 재산권 제한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 원고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한보철강은 노씨가 지난 93년 정 전 회장에게 599억여원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보증을 섰으며,97년 8월 회사정리 절차에 들어간 뒤 국가가 원금과 이자를 합해 신고한 800억여원의 정리채권을 전액 부인했고 이에 국가는 소송을제기했다. 노씨는 97년 4월 법원으로부터 2,628억여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지금까지1,742억여원을 추징당했다. 나머지 886억여원중 쌍용그룹 김석원(金錫元) 전회장에게 맡긴 200억여원과 노씨의 동생 재우(載愚)씨에게 맡긴 129억여원,나라종금에 맡긴 248억여원에 대해서는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이상록기자 myzodan@
  • 8·7개각/ 진념 재경장관 누군가

    “원칙대로 하겠습니다.원칙에 충실하지 않으면 길이 없습니다.” 7일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네번째 경제팀장으로 발탁된 진념 재정경제부장관의 취임 첫 마디다.원칙을 중요시하지 않는 관료가 있을까마는 그는 특히 원칙을 강조했다.“국민들에게 솔직하게 경제현안을 밝히고 협조를 구할 것은 구하겠습니다.원칙대로 하다보면 당장에는 일시적으로 주가가 떨어지는등부작용도 있겠지만 그 게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합니다.” 현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가 될 진장관은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모두 장관을 지냈다.그래서 그를 빗대어 ‘직업이 장관인 사람’이라는 말도 나온다.정권이 바뀌어도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빠른 두뇌회전,친화력,업무조정력의3박자를 갖췄다.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부터 2년 3개월간 관직을 떠났으나 95년 5월 노동부장관으로 중용된 게 이런 맥락에서다.경제기획원 국장급 시절에는 고(故)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으로부터 “공무원 중에서 저렇게 똑똑한 사람은 처음봤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각 부처의 현안을 조정하는 기획원의 기획차관보를 5년가까이 지낸데다 재무부 차관,해운항만청장,동력자원·노동부장관 등 여러 부처를 거쳐 ‘해결사’로도 통한다.지난달 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미리 쓴 것이 문제가 돼 의원들의 집중포화를 얻어맞았으나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그래서 정치인들로부터는 뻣뻣하다는 말도 듣는 편이다. 그의 ‘뚝심’에 관한 일화도 많다.노동부장관이던 97년 1월 노동법 개정을 추진할때 노동계 반발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던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이 내무장관 때인 지난 83년 제주도를 홍콩과 하와이를 혼합한 이상형 관광단지로 만들려고 추진했다.그는“예산사정을 생각하지도 않고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홍콩이면 홍콩,하와이면 하와이를 모델로 해야지 둘을 섞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대하기도 했다.경제기획원 차관보 시절의 일이다.하지만 진장관에 대해서는 총대를 메지 않으려고 꾀를 부린다는 일부의 부정적인 평가도 없지않다. 진장관은 “앞으로 경제팀은 팀워크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을 씻어주고 자율과 책임이 경제운용 전반에 확산되도록 하겠다”고 팀워크를 유난히강조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80년이후 경제사령탑·경제수석 출신별 분포

    다음주에 이뤄질 개각의 최대 관심사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부총리로 승격할 재정경제부장관과 경제수석인 것 같다.자천타천으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으로 거론되는 인사들도 많지만 관료출신과 학자(금융인 포함)출신중 어느쪽에서 중용되느냐도 관전 포인트다.관료냐 비관료냐에 따라 성향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80년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시절 이후 20년간 경제부총리(김대중 정부의 재정경제부장관 포함)와 경제수석의 출신배경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80년 이후 경제부총리는 모두 18명(중복제외)이다.이중 순수한 관료출신은 고(故) 서석준(徐錫俊) 전 부총리를 비롯해 최각규(崔珏圭),강경식(姜慶植) 전 부총리와 이규성(李揆成) 전 재경부장관 등 모두 11명이다. 학자와 금융인 출신은 김준성(金埈成),김만제(金滿堤),조순(趙淳) 전 부총리 등 7명이다.순수 관료출신이 다소 많다.특히 지난 97년 3월 강경식 전 부총리 이후 현재의 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까지 5명 연속 관료출신이다. 경제수석은 다소 다르다.80년이후 경제수석은 모두 16명이다.이중 관료출신과 학자(금융인 포함)출신은 각각 8명으로 같다.관료출신은 문희갑(文熹甲),한이헌(韓利憲),이석채(李錫采),강봉균(康奉均) 전 수석과 이기호(李起浩)현 수석 등이다.학자출신으로는 고(故) 김재익(金在益), 사공일(司空壹),박영철(朴英哲),김종인(金鍾仁) 전 수석 등이다. 경제수석도 최근에는 학자보다 관료출신이 많은 편이다.전두환 정부시절의경제수석은 모두 학자출신이었으나 노태우(盧泰愚) 정부때에는 관료출신과학자출신이 각각 2명으로 같았다.김영삼(金泳三) 정부때부터는 관료출신이더 많다. 경제부총리는 관료출신,경제수석은 학자출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보완적인 역할을 유도하는 측면이 깔려있다.하지만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의 성향에 따라 경제정책과 파워도 다르다.경제수석이 드셀 때에는 경제부총리가 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않다.김영삼 정부시절 한이헌,이석채 전 경제수석은 홍재형(洪在馨),한승수(韓昇洙) 전 부총리보다 목소리가 높았다는것이 중론이다. 경제부처 관료들은대체로 경제부총리는 부처를 잘 장악하고 경험이 많은관료출신이,경제수석은 새로운 시각의 학자출신이 각각 맡는게 보다 바람직한 구도로 여기고 있다. 곽태헌기자 tiger@
  • [외언내언] 80년 ‘언론도살’

    1980년 신군부가 정권 탈취를 위한 사전 공작으로 언론계에서 몰아낸 언론인 711명의 해직사유가 구체적으로 명기된 당시 보안사 내부문건이 지난달 30일 최초로 공개됐다.노태우(盧泰愚)보안사령관이 직접 결재·서명한 이 문건의 제목은 ‘정화언론인 취업허용건의’. 이 문건은 “언론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우리가 몰아낸 반군부(反軍部)성향의 기자들이 먹고 살지도 못하면 반정부 세력으로 똘똘 뭉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그들이 적어도 ‘먹고는 살 수 있게’해주자.그리고 그들이 취업을할 수 있는 범위는 우리가 ‘비위’를 이유로 공직에서 몰아낸 전직 공직자들이 취업을 할 수 있는 범위로 제한하자”쯤으로 풀이할 수 있는 문건 작성취지를 밝히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해직언론인들에게 제한적으로나마 취업을 허용하자’고 건의한 이 문건이해직언론인 711명 개개인에 대한 해직사유를 구체적으로 명기함으로써 20년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 80년 당시 해직의 아픔을 겪었던 언론인들의 명예와 권리 회복에 결정적으로 기여를할 줄이야!정부는 그동안 80년 해직언론인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관련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제해직의 ‘물증’이 없다고 망설여 왔다.그러나 이 문건보다 딱 떨어지는 물증이 또 있겠는가. 문제의 문건을 보면,신군부는 해직언론인 711명을 3등급으로 나눠 A급으로분류된 12명은 영구적으로 취업을 제한했고,B급 97명에 대해서는 1년 동안,C급 602명은 6개월 동안 취업을 제한했다.‘영구 취업 제한’이라니 말이 되는가. 뿐만 아니라,이 문건에는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나 있다.신군부는 억대 이상치부한 부패 언론인들과 파렴치 기자 등 저질 언론인들을 축출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언론탄압이란 국민들의 비판에 ‘물타기’를 했고,각 언론사들 또한 미운털 박힌 기자들을 ‘자체 정화대상자’로 ‘끼워 넣기’를 했던 것이다.그럼에도 그 언론사들은 아직도 건재(健在)하다. 80년 신군부 ‘언론도살’의 물증이 드러난 이상 정부는 해직언론인 보상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역대 군사정권의 업보(業報)에서 자유로운 국민의 정부는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쫓겨난 75년 해직기자들의명예도 회복해 주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 장윤환 논설고문 yhc@
  • 대통령 받은 선물 구경 좀 합시다

    “대통령은 어떤 선물을 받을까” 역대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국빈들이 외국방문때 받은 각종 선물이 공개된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 조직위원회는 27일 전·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이 외국에서 선물로 받은 각종 기념품을 모아 엑스포 행사기간중 전시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조직위는 국빈 기념품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과 협의를마치고 전시품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대학교수와 문화관광부 관계자 등 각계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이달말까지 40여점의 기념품을 선정,오는 9월1일부터 11월10일까지 경주시 천군동 엑스포 행사장내 ‘우정의 집’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전시품 가운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받은 기념품은 지난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받은 ‘목재 장식함’과 98년 카나다 방문때 받은 ‘순록털공예 장식액자’을 비롯,모두 7점이다. 전시품목이 가장 많은 대통령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으로 94년 필란드총리에게 받은 ‘크리스탈 새’ 등 모두 11점이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83년 나이지리아에서 받은 ‘물소뿔’ 등 5점의 기념품도 전시된다.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기념품은 90년 에쿠아도르에서 받은 장식용 수예품 등 3점이다. 이밖에 이범석 전 외무장관이 83년수단 대통령에게 받은 ‘상아꽃병’ 등 국무총리나 장관들이 받은 기념품 10여점도 전시된다. 엑스포 조직위는 전시기간중 국내 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명인,명장의 문화상품 160여점도 함께 전시할 계획이다. 경주 이동구기자 yidonggu@
  • 옛 세종硏 부지 18만평 활용처 고심

    정부가 지난 92년 세종연구소(옛 일해연구소)로부터 기부채납받은 경기도성남의 18만여평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고민중이다.부지 관리를 맡고 있는 외교통상부와 각 부처 소유 부동산의 활용방안을 찾고 있는 기획예산처의 생각이 다르다. 외교부는 이곳에 국제교류연구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그동안 국제교류연구단지 조성을 추진해 왔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제대로 활용이 되지 않고있는 셈이다.한때 정보통신정책연구원도 이곳으로 이전한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기획예산처의 생각은 다르다.한 관계자는 24일 “국제교류연구단지로 만드는 것보다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국제교류연구단지로 조성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게 주요인이다.그렇기 때문에 연구단지보다는 서울 양재동의 시민의 숲처럼 쉴곳으로 가꾸자는 얘기다. 분당의 아파트 단지와 양재동에서 차로 15∼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수원과 용인 등 수도권에서 접근하는 것도 괜찮아 교통여건은 좋은 편이다.지난 83년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 시절 일해재단이 설립될 때에는 현재 세종연구소가 쓰고 있는 부지 1만8,740평과 기부채납한 18만8,314평 모두 세종연구소(당시는 일해재단,일해연구소) 부지였다. 하지만 지난 92년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시절에 세종연구소 설립 배경에대해 말들이 많고 연구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많은 땅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활용하지 않는 18만여평은 국가에 기부채납하도록 했다.현재이 땅은 외교부 산하의 국제협력단이 관리하지만 예산이 별로 없어 현상유지만 하는 정도다. 곽태헌기자 tiger@
  • 前職대통령 수사기법 印尼 ‘한국 벤치마킹’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부정부패 의혹을 수사중인 인도네시아 하사발라 하즈발라 M.사드 인권장관과 H.S.딜론 반부패합동수사팀 위원이 24일 서울고검을방문해 12·12와 5·18,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주임검사였던 김상희(金相喜) 고검 형사부장을 만났다. 지난 23일 입국한 사드 장관 일행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서울고검 회의실에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처벌 배경과 국민여론을 비롯해 ▲비자금 추적기법 ▲공소유지 상황 ▲재산환수 ▲수사상 어려움 ▲법리상 장애요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이들 일행은 전직 대통령 처벌에 대한 국민반응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면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와관련,‘기득권층의 강한 반발과 뇌물 부분 수사가 진척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락기자 jrlee@
  • 盧泰愚씨 비자금 보관 신동방 “230억 국가에 반환하라”

    서울지법 민사합의17부(재판장 田炳植 부장판사)는 21일 “보관중인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의 비자금을 돌려달라”며 국가가 노 전대통령의 사돈인신동방그룹 신명수(申明秀) 회장을 상대로 낸 추심금 청구소송에서 “피고는230억여원을 반환하라”는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노 전대통령이 신회장에게 빌려준 비자금 230억여원과 동생 재우(載愚)씨에게 맡긴 129억여원 등 359억여원에 대한 지급명령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이의신청이 제기돼 그동안 재판을 벌여왔다. 이상록기자
  • 대법관 임명동의안 10일 상정

    국회 대법관 인사청문특위(위원장 李協)는 7일 이틀째 청문회를 속개,박재윤(朴在允) 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강신욱(姜信旭) 서울고검장,배기원(裵淇源)변협부회장 등 대법관 후보자 3인에 대한 검증을 마쳤다.참여연대 사무처장인 박원순(朴元淳) 변호사에 대해서도 참고인 조사를 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오는 10일 본회의를 열고 6일 검증을 한 이규홍(李揆弘)제주지법원장·이강국(李康國) 대전지법원장·손지열(孫智烈) 법원행정처차장을 포함,대법관 후보자 6명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강신욱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과 관련,“한 점 숨김없이 수사를 했다”고 은폐의혹을 일축하고 “이 사건은 1·2·3심에서 모두 유죄가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민주당 천정배(千正培) 의원은 “근본적으로 당시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시각이 재야운동권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니냐”면서“재야세력이 제출한 모든 증거의 가치를 자의적으로 과소 평가하거나 무시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강 후보자를 추궁했다. 한나라당 윤경식(尹景湜) 의원도 “유서대필사건은 시국을 잘못 판단한 노태우(盧泰愚) 정권의 강경입장을 대변한 사건으로,검찰이 상부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박재윤 후보자는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과 관련해 참여연대가제기한 신주인수권 행사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판결을 내린 것은 형식적 정당성이라는 잣대만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외면했다는 비판이있다”고 한나라당 황우려(黃祐呂) 의원이 묻자 “재벌봐주기 결정이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택시기사로 변신한 前의원님

    지난 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을 폭로했던 박계동(朴啓東·48·서울 강서구 화곡동) 전 의원이 택시기사로 변신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금구상운에 취직,1주일째 택시를 몰고 있는 박씨는 4일 “사납금을 채우느라 점심도 거르기 일쑤”라면서 “머리도띵하고 다리도 후들거린다”고 말했다. 박씨는 14대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활발히 하는 등 개혁성향의 젊은 정치인으로 주목받았으나 96년 15대 총선때 서울 강서갑에서 고배를 마셨으며 지난해에는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6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아 16대총선 출마자격을 박탈당했다. 3일동안 필기시험과 소양교육,신체검사를 받고 지난달 초 택시운전 면허를딴 박씨는 “평범한 시민의 삶이 그리웠고 한편으로는 서울의 교통문제도 살피고 싶었다”고 말했다. 택시회사들은 ‘비리폭로’ 의원이라는 전력을 달갑지 않게 여겼는지 박씨를 반기지 않았지만 입사 후 작장동료들은 박씨가 누구보다도 열심이라고 말한다. 금구상운 정동일 배차주임은 “박씨는 동료 기사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운행을 마치고 차도 열심히 닦는 등 모범생”이라고 칭찬했다. 박씨는 오전 3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12시간 일한다.지난 1주일 동안 최저 사납금 7만7,000원을 못 채운 날은 없었다.회사측은 박씨가 한달 25일 만근을 채울 경우 월급은 대략 100여만원선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李漢東총리 활발한 행보

    서리 ‘꼬리표’를 뗀 이한동(李漢東)총리의 발걸음이 부쩍 빨라졌다. 전직대통령 및 여·야당 총재 연쇄방문을 시작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국회동의 절차를 마치기 전까지의 조심스러웠던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주요 인사 연쇄방문 이총리는 3일 오후 상도동으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을 맨먼저 찾았다.이어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를 차례로 예방했다. 이총리의 정치권 전현직 수뇌부 순회방문 일정은 4일에도 이어진다.오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로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예방한데 이어 연희동으로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도 방문한다. ■방문 배경 이총리의 활발한 움직임에 대해 총리실 주변에선 정치적 의미를부여하려는 기류도 없지 않다.그러나 총리실 관계자들은 “다른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박정호(朴正浩) 총리 공보수석은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신임인사를 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그럼에도 불구,연쇄예방 시점이 청문회라는 호된 ‘신고식’을 치른 직후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는 지적이다.즉,청문회 과정에서 쌓인 갖가지 정치적 앙금을 씻어내려는 계기로 삼으려는 이총리의 희망이 실려 있다는 뜻이다. 총리의 한 측근은 “헌정사상 초유의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정치적 대사를 앞두고 짐을 던 측면도 있다”고 귀띔했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이같은 자체 득실 점검을 감안하다면 이번 연쇄방문은“이제는 총리로서 정상업무에 복귀하겠다”는 신호탄인 셈이다. 구본영기자 kby7@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하)청사진과 미래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최근 대한매일이 주최한 국군 모범용사 부부 청와대 초청 다과회에서 “남북문제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특히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고 쉬운 것부터 벽돌을 쌓듯 하나 하나 추진해 나가면서 다음 대통령이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부터/ 김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남은 2년반 동안의 임기중 남북관계 구상을 함축하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총체적인 바탕은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임을 알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여러차례 “통일은 20∼30년 뒤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남북통일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바랄 뿐,달성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또 통일은 의도하거나 기획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다 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김 대통령의 관측도 이를뒷받침해 주는 언급이다. 김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남북공동선언 2항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의외의 성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연합 뿌리내리기/ 그렇다면 김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무엇일까.가능한 쉬운 것부터 해결하려는 자세여서 종합적인 청사진을 조망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단독회담에서의 논의내용을 감안할 때,그의 ‘3단계 통일론’중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의 안정적 운용과 정착화로 볼수 있다.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와 각료회의,국회회담 등을 통해 남북연합단계를 착근(着根)시키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귀국보고에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밝힌 대목은 그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가 평화공존에 대한 남북간 합의에 있음을 천명한 것으로,‘3단계 통일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김 대통령은 남북연합단계의 첫 단추를 ‘평화공존 속의 평화교류’로 보고 있다. ●다양하고 착실한교류/ 앞으로 발빠르게 진행될 남북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 및 재결합,비전향장기수와 납북인사 송환협의,체육·문화·예술분야의 교류 등도 남북연합단계라는 큰 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김 대통령은 '남북 평화공존이 합의된 뒤부터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교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그래야만 힘의 논리에 의해 한 체제가다른 체제로 급속히 흡수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있다는 논리에서다. 어쨌든 이런 교류협력 작汰? 정상궤도에 진입하면 김 대통령은 남북연합을위한 구체적인 제도 마련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투자보장 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청산결제 방안 등이 그것이다.또 평화공존을 담보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 및 군비통제,평화체제 유지 공동감시단 가동 등의 수순을 밟게될 것이다.나아가 북한이 미·일과의 수교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국제사회로부터 보장받고 남북이 공동 파트너로 확실히 자리잡는 일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현기자 yangbak@. *3단계통일론 정착 '이제 첫걸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남북연방-완전통일)은 이제 겨우 1단계의 초입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가녀린 싹을 막 틔운 셈이다. 따라서 조심스럽고 지속적인 ‘양육(養育)’이 중요하다. 양육에 필수적인 ‘물’과 ‘양분’은 역시 남북 상호간 교류지속이다.그중에서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산가족 상봉의 연속성,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이 기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국방위원장 답방/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보더라도 정상간의만남은 그 어떤 대화방식보다 효과가 크다.이 때문에 김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70대 노인이 평양에 왔는데 예의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이 서울에 안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까지 해가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온 힘을쏟았다. 앞으로 1단계(남북연합) 정착에 필수적인 남북연합 정상회의,남북연합 각료회의,남북연합 회의(의회) 등을 구성하려면 정상간 대화는 무엇보다 필수적이다.특히 북한은 우리보다 체제가 일사불란하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태도와 의지 하나하나가 통일 논의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이산가족 교류 정례화/ 정부당국의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여론이다. 고위층끼리 아무리 합의를 도출해도 민심이 따라오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우려가 있다.따라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계속 만나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통일에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이 2차,3차로 계속 이어지면서 통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김 대통령이 그리는 남북연합 단계도 가능한 것이다.따라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의 지속적인 교환방문은 물론,판문점 등에 면회소와서신교환소를 설치하는 등 이산가족의 교류를 상시화하는 게 중요하다. ●경협의 제도적 장치/ 민간차원이든 정부차원이든 남북간 경제협력을 병행해야 통일 논의가 견고함과 지속성을 띨 수 있다.경협이 깊숙이 진행될수록 뜻밖의 돌발적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거나 통일 논의 자체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어진다. 남북 양측이 벌여 놓은 장·단기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어느한쪽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무효화시키기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남북 당국은 경협을 그때 그때 단발성으로 진행시킬 게 아니라,장기플랜을 토대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전문가 제언.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차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지난 91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천명한 바 있다.소련제국과 동구권이 몰락하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고려연방제라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계속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교와국방을 서로 나눠 갖자고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같은해 7월 북한의 한시해(韓時海) 주 유엔 대표는 ‘미국의 초기 연방제’를 거론했다.미국의 초기 연방제는 바로 대륙회의 즉,국가연합을 말하는 것이다.김 위원장의 연방제는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며 우리의 남북연합과 내용상 같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집권후 특별히 새로운 통일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은 88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 만들어진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방안에는 이미 야당 시절부터 김 대통령이 제기해 온 3단계 통일방안이대부분 반영돼 있다.김 대통령은 집권이후 최근까지 경제난 등으로 통일방안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통일정책을 밝히지 않았다고본다. 남북한의 통일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정부는 민간 전문가 등과의 지속적인토론을 통해 국론을 결집해야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남북한이 각료회의와 의회 협의회 등을 구축하고 정상회의를 수시로 열 수 있다면 국가연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이행이 되지는 않았지만,91년 말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됐던 공동위원회가 국가연합의 실행기구 성격이었다. ●정용석(鄭鎔碩) 단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남과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전혀 다른 체제 속에 살아왔다.장기적인 예비기간을 두고 통일의 단계적 준비가 필요하다.연합-연방-통일이 3단계 통일론의 기본 골간이다.1민족·2국가·2체제·2독립정부 형태인 연합 단계에서는 제반 분야의 교류 협력을 기본으로 삼아야한다.남북 정부의 정상회의,국회 공동회의도 제도화하는 등 민족적 공통점을찾아내야 한다. 특히 북측의 공산주의와 남측의 시장경제 사이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공화국 연합제에서도 남측 입장인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북한과의 상이한 체제·이념·제도를 융합할 수 있는 기본틀이 최우선 과제다. 2단계인 연방단계에서는 1민족·1국가·1체제·2자치정부로서 하나의 국호와 외교·국방권을 갖는다.이 단계에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공존하는 ‘제3의 체제’로 발전돼야 한다. 대외통상관계에 있어서도 남측의 개방경제를 택해야 하는지 북측의 유치산업구조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을 관철할 것인지 등의 협의를 이뤄내야 한다. 통일단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서 주장하는 복수정당제·자유선거제·시장경제 등을 북한이 수용할지의 여부가 관건이 된다.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그릇에 담을 때 어느쪽으로든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일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상)현주소와 성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은 ‘30년의 뿌리’를 갖고 있다.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도 김 대통령이 오랜 준비 끝에 도출해 낸 ‘인고의승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6·15선언과 김대통령의 통일론을 두차례에 걸쳐심층 조명한다. ◆ 3단계 통일론의 전개. 3단계 통일론은 시대별로 발전해 왔다.‘통일론 구상기’인 70년대에 씨를뿌리고 싹을 틔워 갔고 80년대 ‘통일론 발전기’에서 통일의 현실성을 높이며 제도적 접근을 모색했다.이후 90년대부터 ‘통일론 완성기’로 가장 평화적이고 안전한 통일의 길을 찾으며 6·15 선언에서 열매를 맺은 셈이다. 김대통령의 지난 30년은 냉전 수구세력으로부터의 온갖 박해 속에서 자신의통일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서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았던 인내의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험난한 여정을 걸어오면서도 스스로 점진적 평화통일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결실인 것이다. 3단계 통일론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71년 대통령 선거였다.당시 김대통령은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방안을 ‘4대국평화보장론’과 함께 제시했다. 냉전적 반공논리가 지배하는 냉전의 최전선에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남북대화를 역설한 것”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그후 김대통령에 대한 용공음해 공작과 덧칠된 ‘색깔론’으로 이용되는 등 정치적 수난의 주요 원인이 됐다. ◆ 3비론(非論)과 통일론. 김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를 가장 중시했다.평화공존에 이어 남북교류가 이뤄지고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게 될 경우 ‘사실상의 통일’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김대통령의 또다른 통일인식의 주요한 기반은 ‘선(先) 민주화,후(後) 통일론’의 개념이다. 이는 그의 3단계 통일론의 주요 철학인 ‘3비론’(三非論) 즉 비폭력(非暴力)·비용공(非容共)·비반미(非反美)와 맞물려 3단계 통일론의 주요 배경이됐다. 그는 역대 독재정권과의 끈질긴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만이 공산세력의 침투를 막는 방패”라고 역설,남한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지난 대선에서 50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통일 대통령’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 햇볕정책과 통일론 연결. 3비론은 민주화 과정에서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공산주의 적화통일의 절대 반대, 자주적 민족통일과 주변국들의 협조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 북한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북측에 충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3단계 통일론은 햇볕정책 즉 포용정책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는지적이 많다.포용정책은 30년간 일궈 온 자신의 3단계 통일론과 6·15 선언의 ‘연결 고리’로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남북정상회담장으로이끌어 낸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남북연합·낮은 단계 연방제 비교. 남북한이 통일방안에 합의하기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처음이다.남측의 ‘남북 연합’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유사점을 인정하고 통일에 대한 공동 모색을선언한 것이다.남북 양측이 통일 논의의 접점과 논의의장(場)을 마련했음을 뜻한다. [유사점] ‘남북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과 북이 별도의 국방·외교권을 보유하며 대등하고 독립된 실체로서 행동한다는 점에서 같다.당장 통일하자는 자세가 아닌 점진적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징] 민족이란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두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가정아래 교류를 추진·심화시켜 나가자는 것이 특징.대외적으론 독립된 실체이자 별개의 국가이지만 내부적으로 보통의 외국관계와 다른 ‘민족내부’란특수관계를 갖는다. 경제·사회·문화의 교류활성화로 사실상 통일 단계인 ‘공동체 형성’을목표로 한다.외국과의 무역관계에선 관세를 물지만 남북끼리는 한 국가안의교역으로 취급한다.남북간에는 수출·수입이란 표현 대신 반출·반입이란 말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연합과 연방] 일반적인 연방제는 중앙과 지방정부간의 주종·상하 관계를 뜻한다.남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연합은 국제법상의 연합국가(Confederation),낮은 단계의 연방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Loose form of federation)으로 정리했다.남북연합은 민족이란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두 실체의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연방제나 국가연합과는 다르다. [차이점과 전망] 남측이 상정하는 국가연합은 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기능 통합을 염두에 둔다.평화공존의 전제 아래 교류를 심화시켜 사실상의 통일 단계를 거쳐 제도적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남북연합이란 틀 아래서 정상회의·국회·각료회의 등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북측의 연방제는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국가통합이 언제든 가능하다. 통일국가 전단계로 남측은 2개 주권의 국가연합 단계를,북측은 단일 주권의연방국가를 거쳐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한민족공동체 통일안과 '대동소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은 역대 정부가 다듬어온 공식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과 명칭이다르다. 그러나 명칭만 다를 뿐 내용상의 함의는 큰 차이가 없다.남북이 신뢰·협력의 폭을 넓히면서 단계적으로 완전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 개념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기 때문. 민족공동체 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등 3단계로 통일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다.이에 비해 3단계 통일론은 국가연합-연방-통일국가 등의 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공동체 방안의 남북연합과 3단계 통일론의 국가연합은 사실상 같은개념.공히 정상회담·각료회의·연합의회 등을 두고 있기 때문. 처음엔 양자간 간극이 있었다.하지만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시절 국회 상임위에서 이론적 접목이 이뤄졌다.이홍구(李洪九) 당시 통일부장관이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의 원류인 공화국연방제가 정부안과 취지가 별반 다르지않다고 언급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 인사들도 3단계 통일론의 연방제는 북한의 고려연방제와는전혀 다른 통일국가의 초기단계라고 설명,혼선을 정리한 적이 있다. 물론 통일방안은 통일이라는 큰 목표로 가는 가공의 설계도일 따름이다.김대통령이 집권 후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강조한 적은 별로 없다.제도적 통일은 훗날의 일이고 당장엔 화해협력 기조 정착이 급선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본영기자 kby7@. *金대통령 평양회담 소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햇볕정책을 추진할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으로 확신했다”고 털어놨다.역사적인 남북 두 정상간 만남을 햇볕정책의 산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추진과정과 정상회담 협상에 이르는 길에는 숱한 고비와위기가 있었다.지난 98년 6월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과 99년 6월 서해 연평해전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을 좌초위기로까지 몰고갔다.당시 김대통령은“북한의 태도에 따라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며 홀로 ‘역풍’(逆風)을 막았다. 김대통령은 이번 단독정상회담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두 사건을거론하며 섭섭함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또 “회담도중 여러차례 절망을 느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위원장과의회담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특한 협상 스타일에 따른 현장 대처가 난제였던 것 같다.김대통령에게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옳다’고 판단되면 즉각 수용하는 합리적인 성품을드러냈으나 그는 거칠 것 없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였다.김대통령이 얘기하는중간에 가로막고 자기 말만 하는 ‘독선적인 모습’도 간혹 내보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김대통령은 그래도 김위원장의 말을 묵묵히 듣곤 했다.우리측에선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인데도 별로 싫은 기색없이 다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다.‘대선 4수(修)’라는 정치역정에서도 정평이 나 있듯이 탁월한 끈질김과 기회포착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이는 1,000여쪽에 이르는 북한 자료 숙지등 그의 철저한 준비자세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또 한번도 김위원장의 주장에 ‘노’(NO)라고 하며 의제에서 배제한 적이없었다.한 수행원은 “김위원장의 웅변조 얘기하는 소리가 회담장 밖으로 흘러나왔으나 김대통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며 설득에 주력했음을 시사했다.공동선언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문구와 두 정상의 직접 사인,한밤 서명식 등은 김대통령이 일궈낸 작품들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 화해시대/ 정보책임자들 訪北사례

    임동원(林東源)국가정보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사전 조율하기 위해 지난달27일쯤 평양을 극비방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역대 정보기관 책임자의 방북밀사활동이 다시 관심을 모은다. 임원장은 지난달 27일쯤 평양을 방문,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와 정상회담의 일정·의제·의전·공동선언 등을 집중 논의하고,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도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때문에 김위원장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대통령 특별보좌역’이란 직함으로 김 대통령의 방북을 수행한 임원장에게 각별히 친밀감을 표시했으며,임원장은 고별오찬에서 오찬사를 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임원장의 방북설에 대해 ‘NCND(no confirm, no deny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라고 밝혀 사실상 시인했다.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 이래 역대 정권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평화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정보기관 책임자를 북한에 보내왔다.박 전대통령 당시에는 72년 5월 이후락(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이 청산가리를 몸에 품고 평양으로 넘어가 김일성(金日成) 당시 수상을 만났다.이후락 부장은 김수상으로부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공동성명의 기본원칙을 받아왔다.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85년 10월 장세동(張世東)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을 평양에 보냈다.이에 앞서 9월 허담(許錟)노동당 대남비서가 서울을 방문,전 전대통령을 면담했다. 장부장은 주석궁(현 금수산 기념궁전)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당시 장부장은 전두환-김일성간의 정상회담을 탐색하러 갔다.당시 장부장의 평양행에는 박철언(朴哲彦)안기부장특보가 수행했으며 당시 구축된 박철언-한시해(韓時海) 노동당 부부장 라인은 살아남아 6공화국의 남북 접촉의 실마리가 됐다. 소련연방과 동유럽 공산제국 몰락의 시대에 맞춰 북방외교를 추진한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도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서동권(徐東權)당시 안기부장을 평양에 밀파했다.서부장은 90년 10월 김 주석을 만났다.이 자리에서 김주석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서부장에게 제시했다.바로 이 때 서부장은 “북측의 연방제와 우리측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분석해보니 공통점이 있다”고 답변했다.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합의한 공동선언의 2항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이도운기자 dawn@
  • 金대통령·李총재 조찬회동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단독 조찬회동을 갖고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한 뒤 야당의 초당적인 협력을 거듭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야당이 제기한 통일방안,미군철수,핵·미사일 문제 등에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야당도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민족문제를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이 총재에게 전달했다. 김 대통령은 또 통일방안과 관련,“연합제는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당시남북연합이라고 말한 것과 똑같은 것으로,‘낮은 수준의 연방제안’은 현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주한미군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설득했고,그에 대한 충분한 토의가 있었으며,핵은 제네바 협약에 의해 잘 지켜지고 있고,미사일 문제는 미국과 북한간 잘 협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이 총재는 1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정상회담등 정국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양승현 오풍연기자 yangbak@
  • 남북 화해시대/ 金대통령 대내외 접촉 행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후속 조치를활발히 추진하고 있다.국론통일을 위해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를 만난데 이어 김영삼(金泳三)·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과도 회동이 예정되어있다.총선기간 대화가 끊긴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와도 오는 20일부부동반 만찬회동이 잡혀있다. 중앙언론사 간부들과 연쇄 만찬을 갖는 것도 이를 위함이다. 국제적으로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진력하고 있다.특히한반도 주변 4강을 중심으로 전화외교를 펼치는 등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공동선언의 안착을 위해 부심하고 있다. ◆국론통일 행보=평양에서 돌아온 김 대통령은 지난 16일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 및 3부요인과 오찬을 함께한 뒤 17일에는 한나라당 이 총재와 오찬회동을 가졌다.16일 오전 이총재에게 도착전화를 했다. 김 대통령은 이총재와의 회동에서 대북문제에 야당의 적극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공동보조의 기초를 조성했다.“야당도 남북정상이 대화를 가진 것을 지지하고,그결과도 지지한다”는 이총재의 언급은 순항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특히 19일 김영삼 전대통령과의 오찬 회동,20일 김종필 명예총재와의 이른바 ‘DJP 회동’은 정치적인 상징성도 함축하고 있다.공동선언 후속조치 추진과 관련,확실한 정치적 기반구축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자민련이국가보안법 개정에 전향적인 자세로 전환한 것도 대북한 관계개선 속도와 연관지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평화정착 외교=귀경 다음날 클린턴 미 대통령,17일에는 모리 요시로(森喜郞) 일본총리에게 회담결과를 설명하는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발빠르게 대응했다.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에게도 17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장주석은 지방행사,푸틴 대통령은 외국 방문중이어서 이뤄지지 않았다.그러나 곧 통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4강의이해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조정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 있다.특히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위해서는 이들과의 우호적인 관계가필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대통령은 모리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본이 북한과 외교 관계수립의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며 김 위원장이이를 접수한 사실도 전했다.일본측이 궁금해하는 북·일 관계개선 협상과 주한 미군에 대한 남측 입장을 전달한 사실도 공개했다. 김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의 압둘 와히드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것은 ‘비동맹 회원국’들의 지원을 겨냥한 배려로 이해된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사설] 남북화해시대, 相生정치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17일 청와대 여야영수회담은 남북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야당의 지지와 함께 국내 정치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김대통령은 ‘6·15선언’과 관련,야당이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부분에관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내용을 이총재에게 소상히 설명했다.통일방안으로 거론된 남쪽의 ‘연합제’는 노태우(盧泰愚)정권때 남쪽이 주장했던 ‘남북연합’과 같은 것이며,북쪽의 ‘낮은 수준의 연방제’는현체제의 유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주한 미군도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설득했고,충분한 토의가 있었다는 것이다.핵 문제는 제네바협약에 의해 잘 지켜지고 있으며,미사일 문제는 북·미간 협상을 잘 해결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또한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북한 노동당의 규약과 형법조항의 폐지와 연계돼 있음을 명확히했다는 것이다.김대통령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나 안보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는 여야간에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안들까지 포함해서 김대통령의 소상한 설명을 경청하고 난 이총재는 “야당도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의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야당으로서 미비한 부분을 짚어나가겠다”고 했다.김대통령도 야당이 남북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6·15선언’의 후속조치도 야당과 긴밀히 의논해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김대통령과이총재는 또한 ‘8·15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김대통령이 시일을 끌지 않고 이총재와 만난 것은 의미심장하다.정상회담후속조치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구하기 위한 측면도 물론 있겠지만 야당에대한 화해의 뜻을 국민 앞에 밝히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대통령은 이총재가 선거법 위반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에서 ‘편파성 의혹’을 제기하자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공정수사’를재확인했다.앞으로 국내정치 전개에 대해 국민들의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민족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당리당략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16대 국회에는 자민련의 교섭단체 문제와 이한동(李漢東)총리서리 인사청문회 등 쟁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럼에도 여야는 4·24 여야 총재회담 이후서로간의 신뢰를 어느정도 쌓아온 것도 사실이다.이제 남북 화해의 시대가열리고 있다.여야는 남북 사이에 이뤄낸 화해를 ‘상생(相生)의 정치’로 발전시켜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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