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노태우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유행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K리그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사업가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64
  • 재보선 출마 저울질 前의원 3인의 ‘奇緣’

    8·8재보선을 앞두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전직의원 3명의 기연(奇緣)이 이채롭다.이철(李哲·54)·박계동(朴啓東·50)·이신범(李信範·52) 전 의원이 주인공들로,적과 동지의 어제와 오늘을 보내고 있다. 이철 전 의원과 박 전 의원은 70년대 학생·재야운동권 시절부터 호형호제해 온 막역한 사이.이들은 14대 국회 때 3선과 초선 의원을 지내다 96년 15대 총선 때 나란히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당시 (통합)민주당과 결별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합류하지 않고 남아 ‘3김(金)청산’을 외치며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좌절한 것이다.3김이 이끄는 지역구도의 벽을 넘지 못한 셈이었다.당시 개표작업이 끝나갈 자정 무렵 이들은 서울 태평로의 한 호텔방에서 통음하며 정치현실을 개탄했었다. 이후 두 사람은 택시기사와 외유 등으로 ‘낭인’의 시절을 보냈다.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종로 출마를 놓고 박진(朴振) 전 대통령후보특보 등과 함께 한나라당 공천을 따내기 위해 정면으로 맞서 있다.지난 24일 두 사람은 한 음식점에서 만나 담판을 시도했다. 박 전 의원은 “2시간 동안 서로 다른 곳 출마를 권유하며 설득했지만 무위에 그쳤다.”고 말했다.이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의 결정만을 기다리는 상황. 이신범 전 의원은 15대 총선 때 서울 강서을에서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박 전 의원의 금배지를 뗀 장본인이다. 당시 박 전 의원은 95년 말 ‘노태우 비자금’사건을 터뜨리면서 일약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인물.본인 스스로도 낙선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민주당의 다른 후보들 선거 지원에 몰두하다 이 전 의원에게 ‘기습’을 당한 것이다. 이 전 의원은 15대 국회에서 박 전 의원보다 더 맹렬하게 ‘DJ저격수’로 활약했으나 그 역시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타도 이신범’을 외치며 투입한 김성호(金成鎬) 현 의원에게 패배했다.이후 그는 현 정권과의 송사를 피해 줄곧 미국에 머물다 최근 귀국했다.이 전 의원은 서울 영등포을이나 경기 광명 후보로 거론된다. 진경호기자 jade@
  • 재경부 홍영만과장””원로 아나운서 열댓명 목소리 흉내””

    개그맨 표영호씨가 묻는다.“홍 박사님,월드컵 개최로 우리가 얻을 경제적 이익은 얼마나 될까요.” “최소 11조 6000억원 가량의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됩니다.인천공항을 2개나 지을 수 있는 돈이지요.” 4강에 오른 우리 축구대표팀만큼이나 이번 월드컵에서 뜬 사람이 있다.MBC 특별생방송 ‘월드컵이 좋다’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재정경제부 홍영만(洪 永萬·46) 해외홍보과장.매주 월요일 개그맨 표씨와 함께 월드컵 개최에 따 른 우리산업의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조명해 보는 ‘좋거나 나쁘거나’코너 를 진행하고 있다. 공중파 방송은 처음이지만 홍 과장의 ‘끼’는 관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어릴 적 꿈이 축구캐스터였다.중학생 때 서울 동대문운동장·효창 구장을 돌며 남들이 보든말든 큰 소리로 축구중계를 했을 정도다.대학시절 야유회·종강파티의 마이크는 늘 그의 몫이었다. 지금까지 결혼식 사회만도 서른 번 이상을 봤다.1990년대초 미국 시애틀에서 유학(워싱턴대 경제학박사)할 때에는 교민방송에서 1년간 TV·라디오 아나운서로 활동하기도 했다.성대모사도 특기.김동건 이장우 조춘제 박종세 전영 우 원창호 김인권 원창묵씨 등 원로 아나운서 열댓명의 목소리 흉내는 기본이다. 88올림픽조직위원회에 파견돼 있던 83년의 일.부서 대항 축구대회 때 확성기를 이용해 게임을 중계한 적이 있었다.그 솜씨에 감탄한 당시 노태우(盧泰 愚·전 대통령) 조직위원장은 칭찬을 해주기 위해 이미 집으로 간 그를 30분 동안이나 찾았다고 한다. “외국에서 보고 있는 한국경제는 우리 생각보다도 훨씬 좋습니다.우선 파이낸셜타임즈,월스트리트저널 등의 한국관련 기사량이 크게 늘었습니다.당장이야 월드컵 관광수입이 크게 늘지 않는 등 기대에 못미치는 면도 있지만 장 기적으로 볼때 도약의 틀을 마련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라디오 시사경제 프로그램 진행자나 경제 칼럼니스트가 돼 어려운 경제현상을 대중들에게 쉽게 풀어내 주는 게 꿈이다.행정고시 25회로 금융· 세제·경제협력 등 분야를 거쳐 지난해 8월 지금 자리에 앉았다. 김태균기자 windsea@
  • 퇴임 앞둔 ‘클린맨’ 고건 서울시장 “”시장은 청렴한 조정자 돼야””

    ‘클린 맨’고건(高建) 서울시장이 오는 29일 오전 이임식을 갖고 시장직에서 물러난다.오후에는 서울시장으로서 마지막 공식 행사인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결승전을 참관하기 위해 일본 요코하마를 방문한다.7월1일 귀국해서는 평범한 서울 시민으로 돌아간다.일단 대학로 인근 자신의 사무실에서 책에 파묻히며 간간이 대학강단에 오를 생각이다.퇴임을 며칠 앞둔 고 시장을 24일 만났다. ◇최근 월드컵을 지켜본 소감은. 지난 6개월 동안 월드컵 준비에 열정을 쏟았습니다.경기장 건설에서부터 도로건설,숙박대책,교통문제,심지어 도로표지판 정비까지 모두 직접 점검했습니다.대회 개최가 성공적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고생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과 가장 비중을 점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어려운 문제는 없었습니다.다만 월드컵 개최를 통해 국가 및 서울 이미지 쇄신,시민의식의 선진화,경제 활성화 등 갖가지 파급효과가 많은데도 국민의 관심은 한국팀의 경기와 성적에만 온통 쏠려 다소 아쉽습니다.월드컵 준비때 각별히 비중을 둔것은 없지만 전용구장인 월드컵경기장 건설과 환경 월드컵의 원년으로 삼고자 야심적으로 추진한 월드컵공원 준공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습니다.아시아 최대 규모의 축구전용경기장을 지으면서 경기장 안까지 지하철을 끌어들인 것과 이른바 ‘환경재생 드라마’로 불리는 쓰레기산 난지도의 월드컵공원 조성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월드컵 경기장 사후관리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요. 다른 경기장은 모르겠으나 서울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월드컵이 끝나면 텅텅 비게 될 유휴시설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다양하게 활용되는 서울 서북지역의 중심 커뮤니티시설이 될 것입니다.당초부터 경기장 유지관리를 위해 매년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시설이 아니라 상당한 수입을 창출하는 수익시설로 설계했습니다. 시설 자체는 축구전용 경기장이지만 축구경기 외에 대중음악회·패션쇼 등 다양한 대중행사가 가능하도록 가변무대와 완벽한 음향·조명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또 20만 인근 주민과 ‘디지털 미디어 시티’의 직장인 5만명을 위한 상업·여가문화시설이 경기장 안에 설치됩니다.대형 할인매장과 10개 상영관,게임센터,스포츠센터,사우나,예식장,은행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게 됩니다.이미 입찰과정에 들어갔고 내년 상반기에 개장합니다.업계 연구결과를 보면 2004년부터 경기장의 유지관리비용은 59억원인 데 비해 수입은 77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난 4년간을 평가한다면. 많은 분들의 협조로 서울시정 여러 분야에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우선 서울은 세계 5대 지하철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제가 임명직 시장 때 착공한 지하철 5,6,7,8호선 160㎞가 모두 완공됐습니다.역시 임명직때 착공한 내부순환도로도 개통됐습니다.이렇게 해서 지난 4년간 대중교통의 대동맥이 구축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또 한 가지는 지난 4년간 서울시에 이렇다 할 대형 안전사고·인명사고가 없었다는 점입니다.아울러 취임하면서 생명의 나무 1000만그루 심기 운동을 했는데 올해 1600만그루를 돌파했습니다.선유도공원과 월드컵공원·낙산공원 등을 새로 만들어 서울시 역사상 처음으로 공원녹지 면적을 늘린 것도 큰 성과입니다. 민원처리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좋은 성과를 낸 점도 기쁩니다. ◇아쉬운 점은 없는지요. 있지요.취임후 몇 차례 수해가 있었습니다.날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지난해 7월15일 엄청난 비가 삽시간에 쏟아져 8만여 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었습니다.사실은 취임후 수해항구대책 5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해 왔는데 이것이 완성되기 전에 피해가 발생했습니다.피해를 입은 시민들께 죄송스럽고 안타깝습니다. ◇낙후됐던 서울 서북부지역이 월드컵 경기장 건설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서울은 어떻게 변할까요. 월드컵 경기장,월드컵공원 상암 DMC(디지털 미디어시티) 등이 들어서면서 상암 신도시는 새 천년의 화두인 ‘환경’과 ‘정보’를 하나의 도시에 통합해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형 복합도시’로 평가됩니다.서울은 급속한 도시 성장으로 가용지가 크게 부족한 실정이며 점차 서울 집중기에서 벗어나 상대적 분산기에 들어갔습니다.특히 21세기 환경중시 시대를 맞아 앞으로는 환경부문의 비중이 커질 것입니다.따라서 향후 서울은 과밀·과도한 개발은 억제하고 환경을 중시한 지속가능한 개발을 지향할 것이며 삶의 질 향상에 중점을 둔 도시성장 관리정책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봅니다. ◇공직생활에서 가장 기억나는 일은. 업무 측면에서는 70년대초 정부의 초대 새마을 담당관으로 일하면서 새마을운동을 점화시키고 추진한 것이 지금도 보람으로 남습니다.서울시장으로 일하면서는 민원처리 온라인시스템을 만들어 전세계에 전파한 점입니다.처신에 대해서는 80년 신군부에 의해 내려진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반대해 사임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서울시장이 지녀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경험에 비춰 서울시장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말씀드리면 첫째,서울시장은 거대도시를 관리하고 1000만 시민의 생활행정을 보살펴야 하는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또 시장을 해보면 사회의 갈등을 많이 봅니다.서울시장은 이같은 사회적 갈등의 조정자 역할도 해야 합니다.셋째는 좀 우스운 얘기이지만서울시장은 도시설계의 디자이너 역할도 해야 합니다.다시 말해 서울에 대한 10년,20년에 걸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그랜드 디자이너’의 역할을 하는 자리라는 겁니다.물론 시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민주성이라든지 청렴성은 기본이고요. ◇차기 시장이 꼭 마무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면. 추모공원과 상암 DMC 조성입니다.추모공원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시민의 필수 복지시설입니다.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추모공원 건립에 필요한 행정적·법적 절차를 진행했습니다.차질없이 마무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상암 DMC는 서울과 한국의 미래를 여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잘 추진해 나가기 바랍니다. 정리 박현갑기자 eagleduo@ ■고건의 과거와 미래 1938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서 태어났다.경기고,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 시절 내무부 새마을운동담당관으로서 새마을운동을 주도했다.노태우 전 대통령 때는 내무부장관과 서울시장을 지냈다.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는 국무총리를 맡았다.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민선 서울시장으로 서울시를 이끌었다.역대 정권의 통치권자들로부터 모두 인정받은 ‘보증수표’였던 셈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의 공직자로서의 승승장구 비결을 탁월한 업무능력보다는 능수능란한 처세술 탓이라며 ‘소신없는 테크노크라트’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서울시장직을 끝내고 7월부터는 명지대 석좌교수로 돌아간다.학교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이 대학 총장을 지낸 터라 교수 연구실과 월급을 사양할 것이라고 밝힌다. 그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라 할 수 있는 지역감정 해소와 부정부패를 추방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현갑기자 ■스캔들 없는 고건 3가지 생활신조 “그는 정치인이나 고위관료들에게서 심심찮게 나오는 비리 의혹이나 핑크빛 염문이 없다.있다면 ‘행정의 달인’‘클린 맨’이라는 별칭뿐이다.” 공무원들이 고건 서울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30년 공직 생활을 아무 탈없이 보내온 비결은 뭘까.그의 생활신조 세가지를 본다. -지성(至誠) 제일주의- 부친의 영향으로 생긴 가치관이다.그가 지난 1961년 고시에 합격,공직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당시 고시에 합격하면 1년6개월정도 수습을 거친 뒤 중앙부처 계장으로 발령받는것이 통례.하지만 그는 3년 반동안 보직을 받지 못했다. 부친(전북대총장,국회의원 등을 지낸 고형곤씨)이 당시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 등의 당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그는 언제나 사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단다.그리고 공직생활을 남보다 불리한 여건에서 시작한 탓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남보다 더 열심히,온 정성을 다했다.그러면서 ‘지성’이라는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기게 됐다. -청렴성- 이 또한 부친의 영향에서 비롯됐다.부친은 37세의 젊은 나이에 전남지사에 임명된 그에게 3가지 교훈을 줬다.‘줄서지 마라,남의 돈 먹지 마라,술 잘 먹는다는 소문 내지 마라.’였다. 고 시장은 첫째·둘째는 잘 지켰는데 세번째는 잘 지키지 못했던 것 같다고 밝힌다.다산 정약용 선생의 ‘지자이렴’(知者利廉·자신의 창창한 미래를 돈과 바꾸지 말라)의 정신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러나 공직자의 도덕적인 각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다.그래서 부패 척결 및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서울시에 구축한 것이다. -일일신(日日新)- 그는 3000년 전 대학에 나오는 ‘일일신’(日日新-매일 매일 새롭다)이란 단어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해 왔다. 시대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바로 바로 적응하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개발하는 ‘일일신’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박현갑기자
  • DJ ‘등잔밑’의 불행/아들.친인척.측근 비리로 잇단 몰락

    19일 검찰에 출두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까지 김 대통령의 직계 가족과 인척,핵심 측근들이 잇따라 비리에 연루돼 검찰의 조사를 받거나 구속되는 비운을 맞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는 5공 전두환 정권 때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노태우·김영삼 정권 때도 수그러들지 않았다.친·인척 비리를 근절하겠다던 국민의 정부의 약속도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김 대통령의 최측근인 권노갑(權魯甲)씨와 아태재단 전 상임이사 이수동(李守東)씨는 ‘진승현 게이트’와 ‘이용호 게이트’로 각각 구속됐다. 현 정권 2인자로 불렸던 권씨는 ‘진승현 게이트’의 장본인 진승현씨 구명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22일 수감됐다. 이수동씨 역시 이용호씨 구명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이수동씨는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 증언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는 ‘최규선 게이트’로 구속됐다.홍걸씨는 각종 이권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것은 물론,용돈 명목으로 받은 돈만 해도 10억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에 밝은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李亨澤)씨 역시 ‘이용호 게이트’수사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재직하면서 각종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 구속됐다.최근 불거진 부천시 신앙촌 재개발 사업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권력 핵심부에 대한 감시와 제어장치 마련에 정치권이 앞장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참여연대 김민영(金旻盈) 시민감시국장은 “권력형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특검제를 상설화하고 고위 공직자들은 직계가족뿐 아니라 가까운 친·인척의 재산도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홍업씨 수사를 아태재단으로 확대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친·인척 감시를 위해 감시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정승화 전육참총장 빈소 표정

    13일 정승화(鄭昇和) 전 육군참모총장의 빈소가 차려진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에는 현역 장성들과 예비역 원로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김판규(金判圭) 현 총장 등 육군 고위급 장성들은 흰색 예복을 차려입고 대선배의 죽음을 애도했다.일부 예비역 원로들은 조문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4성 장군에게 총을 겨누고 계급장을 떼버린 신군부측 인사들은 보이지 않았다.지난 79년 10·26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군권(軍權)을 거머쥔 정 전 총장의 빈소에 당시 신군부를 이끌었던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찾을지 관심을 모았으나,끝내 이뤄지지 않았다.‘23년 전에 쌓은 벽’이 주검 앞에서도 허물어지지 않은 셈이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은 이날 아침 전화통화에서 “어른께서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며 조문기간 5일 동안 빈소 방문은 물론 조화도 보낼 뜻이 없음을 밝혔다.이 측근은 “아침에 지방선거 투표는 했다.”고 덧붙였다.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가 있는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조화는 오전에 도착했으나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빈소에서 치워졌다. 이른 아침부터 빈소를 지키던 장태완(張泰玩) 재향군인회장은 전 전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죽은 사람에게 예의도 모르는…,옹졸한…”등 분을 감추지 못했다.한 유족은 “고인이 억울하게도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찾아온 조문객에게 화를 내겠느냐.”면서 “(전씨는) 못 오는 것이 아니라 안오는 것”이라고 서운해 했다. 대통령 시해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계엄사령관인 정전 총장은 사건의 수사 방향과 인사문제 등에서 마찰을 빚었다.전 사령관측은 정총장이 인사권을 이용,자신들을 제거하려 한다는 첩보를 듣고 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선제공격을 택했다.반면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등은 헌병대장에게 유인돼 연희동 요정에 있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 개막식장의 김대통령- 환란 이겨내고 월드컵성사 ‘감회’

    31일 오후 6만여명의 관중이 서울 상암동 경기장을 꽉 메운 가운데 2002 한·일월드컵 대회의 개막을 선언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인 97년 말 몰아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 첫 월드컵 대회를 성사시키기까지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저녁 7시15분쯤 경기장에 도착,귀빈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조제프 블라터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아키히토(明仁) 일왕의 4촌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 일본축구협회(JFA) 명예회장 등과 함께 행사장에 입장했다. 김 대통령 왼편으로는 고이즈미 총리,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 내외,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내외,정몽준(鄭夢準) 월드컵 공동조직위원장 내외 등이 앉았다.또오른편으로는 블라터 FIFA 회장,다카마도노미야 명예회장 내외 등이 자리잡았다.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초청을 받았으나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김 대통령은 지난 29일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한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과오는 3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 전 전 대통령에게는 전화를 걸었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전화를 걸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귀빈석에는 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이한동(李漢東) 총리 등 3부요인과 신건(辛建) 국정원장,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서청원(徐淸源) 대표,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한화갑(韓和甲) 대표도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김 대통령은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 전·후반 경기를 끝까지 관람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김대중 대통령 全·盧씨에 전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최근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대통령은 지난 28일 전 전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해 달라.”면서 “일본에 잘 다녀오시라.”고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29일 전했다.이에 전 전대통령은 오는 31일 월드컵 개막식 참석을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어 전 전대통령은 최근 타계한 사이토 에이시로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전 회장의 문상을 위해 다음달 3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김 대통령은 또 신병 치료차 이날 오전 미국으로 출국한 노 전대통령에게도 지난 27일 전화를 걸어 쾌유를 기원하는 뜻을 전했다.인천공항에는 조순용(趙淳容) 정무수석을 보내 환송토록 했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외국방문 계획이 없는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에게는 전화를 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들의 월드컵 개막식 참석과 관련,“월드컵 조직위 사무총장이 전직 대통령들을 직접 찾아뵙고 초청장을 드린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노태우씨 신병치료 미국행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신병 치료차 29일 미국으로출국한다. 한 측근은 27일 “노 전 대통령이 최근 삼성의료원에서건강진단을 받은 결과 전립선 비대증 징후가 있는 것으로나타났다.”면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 미국 뉴욕의 전문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에따라 출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정밀 진단을 받고 필요할 경우 수술도 받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SK 인수귀재인가 식탐인가, 잇단 깜짝쇼 재계 경계령

    ‘공기업 인수의 귀재인가,끝없는 확장욕인가’ SK의 공기업 인수가 도마위에 올랐다.SK텔레콤이 ‘깜짝쇼’를 연출하며 20일 KT의 최대 주주로 떠오르자 재계에서는 과거 대한석유공사(유공)나 한국이동통신 등 알짜 공기업을 싹쓸이한 전례를 들며 거부감을 보이는 시각이 적잖다. 사실 SK는 7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재계 순위 10위권 밖이었다.그러나 SK는 지난 20여년간 공기업 인수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오늘날 대재벌로 성장했다. [몸집 부풀리기] SK의 첫번째 몸집 부풀리기는 유공 인수에서 비롯된다.SK는 지난 80년 11월 인수전에서 월등한 재력을 앞세운 삼성을 따돌리고 유공의 주인이 됐다.이로써 매출액 1200억원대 그룹에서 1조원대의 기업으로 급성장한 것이다.재계순위도 10위권에서 5위로 수직상승했다. SK는 또 지난 94년 7월 한국이통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면서 두번째 비상(飛上)을 한다.2년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집권당시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고도 사돈그룹에 대한 특혜시비로 사업권을 반납한 뒤의 마지막 카드였다.이로써 SK는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양대 축을 갖춘 그룹으로 다시 태어났다.재계 서열 5위도 확실하게 굳혔다. SK는 또 지난해 6월 공기업인 송유관공사의 민영화 조치에 따라 종전에 보유한 공사 지분 16.30% 외에 17.74%를 추가로 취득,경영권을 확보했다. 급기야 SK는 지난 18일 KT 공모청약 마감 5분을 남기고 전략적 투자자 청약한도인 5%를 모두 신청,자산 23조규모의 KT의 최대 주주로 부상했다. [엇갈린 평가] SK는 인수한 유공이나 한국이동통신을 모두초우량 기업으로 키워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특혜시비에 대해서도 SK는 유공 인수 전부터 일본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는 등 정유사업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고 강변한다. 특히 통신사업의 경우는 다른 어떤 기업들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80년대 말부터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으며 미국에 현지연구소를 세울 만큼 앞서 있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SK가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것이 무엇이냐고 극단적인 평하하기도 한다.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SK텔레콤이 수조원의 매출을 올린 것은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전액 나온 것이 아니냐.”면서 수출 위주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빗대어 꼬집었다.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SK의 공기업을인수하는데 비교우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이동통신 시장이 독과점화된 상황에서 기간통신마저 독과점화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SK의 항변] SK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우려와 달리 KT를 인수할 수도 없고,그럴 능력도 없다고 강조한다.다만 통신시장에 특정 기업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어적인 차원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실련 등 시민단체 등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SK텔레콤이 KT의 경영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정부차원의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충식기자 chungsik@ ■'구겨진'삼성-SK 숙적 되나 “‘패’를 다 보여줬는데 이게 뭐냐.” KT지분 청약 과정에서 SK에 일격을 당한 삼성의 불쾌감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사기를 당했다.’는 얘기도들린다.‘삼성 불패(不敗)’의 자존심이 SK에 의해 여지없이 구겨졌다고 직원들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삼성측은 SK의 이번 처사를 남의 ‘패’를 다 읽어본 뒤베팅하는 카드놀이에 비유한다. 서로 신의를 지킨다는 전제아래 먼저 투자계획을 발표했던 경쟁자를 뒤늦게 원천 배제시키는 것은 상도의를 저버린행위라는 지적이다.이번 거래가 아무리 사는 쪽이 주도하는 ‘바이어스 마켓(Buyer’s Market)’이라고 하더라도 SK행위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SK가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KT 지분을 대거 사들인 것으로 알려지자 삼성은 극도로 마음이 상해 있다.삼성이 경영권을 장악할 뜻이 있었다면 왜 지분참여를 3%만 하겠다고 미리 선언했겠느냐고 반문한다. 삼성과 SK가 사업영역을 놓고 다툰 것은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SK는 지금껏 단 한차례도 삼성에 밀리지 않았다. 우선 워커힐과 유공 인수전이 SK의 승리로 끝났다.IMT-2000(차세대 이동통신) 사업 때는 SK가 비동기식을 고집하는바람에 동기식 단말기 생산업체인 삼성전자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비동기식 생산체제를 갖춰야 했다.지난 98년 SK텔레콤의 휴대폰 제조시장 진출 때도 두 그룹은 감정다툼을 벌였다. 이번 사태로 재계에 반(反) SK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과거부터 SK는 돌출적인 행동으로 다른 재벌의 눈총을 받아왔다.손길승(孫吉丞) SK텔레콤 회장이 주도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활동에 삼성·LG·현대자동차 등이 비협조적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박건승기자 ksp@
  • 한나라 “출자제한 폐지”

    한나라당은 대통령 직계 존·비속의 재산공개 의무화와 고교 평준화제도 전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국가혁신과제를 마련,17일 발표했다. 12월 대통령 선거 공약의 밑바탕이 될 이 혁신과제를 통해 한나라당은 재벌규제 중에서 기업활동의 자유를 지나치게막고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와 출자총액 제한은 단계적으로 완화한 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이어 선관위에 신고한 단일계좌로만 정치자금을 입·출금토록 하고 선관위에 계좌추적권을 부여하는 정치자금 실명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차기 정부는 중립적 관점에서 헌법논쟁을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혀 차기 정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개헌을 추진할 뜻임을 밝혔다. 또 국정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금융감독위원장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되 이들의 임기를 보장하기로 했다. 국회 기능도 강화해 감사원에 특정사안에 대한 감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감사지정제를 도입하고,본회의가 아닌 상임위 의결만으로도 국정조사를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고교평준화제도도 전면 개선해 사립학교에 대해 희망학교를 대상으로 학생선발권을 허용하기로 했다.저소득층에 사교육비 일부를 지원하는 ‘교육 바우처(voucher)’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대북 정책과 관련,한나라당은 노태우(盧泰愚)정권에서 마련한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이를 위해 ▲전략적 상호주의 ▲국민합의와 투명성 확보▲검증 등 대북 정책 3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겠다고 밝혔다.한나라당은 특히 “6·15남북공동선언이 북한의 연방제통일 방안을 수용하는 것이라면 이를 받아들일수 없다.”고 못박았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자유시장경제 체제 확립을 기조로 규제혁파 5개년 계획 추진,금융기관 조기 민영화,금감위·금감원 통합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진경호기자 jade@
  • [사설] 홍걸씨 출두를 보는 국민 시선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16일 검찰에 소환돼 출두하는 모습을 본 국민들은 분노보다는 착잡함을 느꼈을 것이다.동시에 5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된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왜 똑같은 전철을 밟는지 안타까워했을것이다.이제 곧 2남 홍업씨마저 소환되면 이같은 불행의 악순환을 반드시 단절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홍걸씨와 홍업씨는 현철씨가 구속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몸가짐을 신중하게 했어야 했다.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권이 바뀐 뒤 한동안 ‘귀양’생활을 하거나 영어의 몸이 됐다는 사실도 마땅히 교훈으로 간직했어야 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통령 아들 주변의 비리는 5년 주기로 반복된것이다. 물론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 대통령 아들 책임만은 아니다.홍업·홍걸씨는 어느 새 모든 국가권력이 집중된‘제왕적 대통령’인 아버지 그늘에서 살아왔다.‘제왕적 대통령제’아래서는 권력의 사유화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그래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지 못한대통령의 친인척 등 권력 주변 사람들도 마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홍걸씨는 물론 홍업씨도 마찬가지다.더 큰 문제는 친인척 주변의 사람들이 호가호위하며 사유화된 권력에 기생하고 이권에 개입하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다.홍걸씨를 등에 업은 최규선씨가 그 대표적 사례다. 국민들은 이번 기회에 사유화된 권력이 누리는 추악한 부패의 사슬을 완벽하게 단절하기를 희구하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검찰은 엄정한 법의 잣대를 추상같이 적용해야 할 것이다.국가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더이상 사법적 처리를 가로막는 보호막이 될 수 없는 것이다.대통령아들들의 비리는 권력의 사유화 현상이 빚은 필연적 결과이고,한편으로는 우리의 잘못된 정치 풍토의 탓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홍걸씨는 이를 탓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홍걸씨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그 이유만으로도 높은 도덕적 책무가 요구된다는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대통령 자녀들 예외없는 ‘탈선’, 이강석부터 김홍걸까지

    대통령 자녀들의 잇따른 불행은 우리나라의 서글픈 현대사로 기록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3남 홍걸씨가 16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고,차남 홍걸씨도 소환이 임박했다.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양아들 강석씨부터 현직 대통령의 아들까지 청와대에는바람 잘 날이 없었다.홍걸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에 이어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는 두번째로 검찰에 소환됐다.현철씨는 97년 5월15일 고교 동문 기업인들로부터 대가성이 의심되는 돈을 받은 혐의가 포착돼 검찰청사에 출석한뒤 66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같은 달 17일 현직 대통령자녀중 처음으로 사법처리됐다.홍걸씨 역시 현직 대통령의아들로 구속되는 두번째 사례가 될지 검찰 수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K(주) 최태원 회장과 결혼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미 국세청 조사를 피하기 위해 거액의 현금을 분산예치했다 93년 현금거래법 위반혐의로 미국법정에서 집행유예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94,95년에는 외화 밀반출 혐의로두차례 검찰에 불려갔다.96년 이양호 전 국방장관 비리사건때도 인사청탁의 대가로 35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반지를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95년 부친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출판사 설립자금 출처를 조사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했다.96년에는 아버지 공판에서 고 강경대군 아버지를 폭행한 혐의로 또 한차례 검찰조사를 받았다. 80년대 대통령의 자녀들이 돈이나 금품을 둘러싸고 물의를빚은 데 비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마약의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89년 검찰에 첫 구속된 뒤지난달 29일 다시 구속될 때까지 마약복용 혐의로 모두 5차례 검찰청사를 드나들었다.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강석씨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4·19혁명 직후 친아버지인 이기붕 전 부통령 등 일가족을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학을 전공하는 고려대 함성득(咸成得) 정경학부 교수는 “권력자의 자녀 관리가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우리나라의 유별난 연고주의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대통령의 자녀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인 대통령의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
  • 전경련 정부조직개편안/ 정부 유사기능 부·처 통폐합

    한국경제연구원이 14일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의 핵심은 유사한 기능을 가진 부·처의 통합으로 요약된다.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작지만 유능하고 투명한 정부’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설명이다.정부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부에선 개편안이 구체적인 대안제시보다는 원론만 지나치게 강조,알맹이 없는 발표라고 지적하고 있다.주요 정부조직 개편안을 요약한다. ●대통령실의 정예화= 대통령의 역할을 장기적 전략기획과조정기능에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이를 위해 일상적인국정운영과 행정 각부의 통할·감독기능은 국무총리에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비서실’도 ‘대통령실’로 개칭,소수의 전문보좌관으로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한경연은 역대 정권의 대통령비서실 인력이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시절 334명,노태우(盧泰愚) 대통령 384명,김영삼(金泳三) 대통령 375명,김대중(金大中) 대통령 405명에 달해 갈수록 확대돼 왔다고 밝혔다. ●국가개혁위원회 신설= 국가의 핵심 정책과제를 추진하고개혁 전 과정을 총괄하는 부총리급의 ‘국가개혁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개위는 소수정예체제로 하되 각종 대통령 자문위원회와 싱크탱크와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무총리 기능을 정상화=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무총리가 행정 각부의 통할·감독권,국무위원 임명제청권,해임건의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국무총리 비서실과국무조정실을 ‘국무총리실’로 통합,실질적인 감독권을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국무총리가 실질적으로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가질 수 있도록 대통령 직속의 ‘중앙인사위원회’도 국무총리 소속으로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중복되는 부·처는 통폐합= 감사원의 직무감찰기능과 부패방지위원회 및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기능을 통합한 대통령 직속의 ‘부패방지원’ 신설을 제안했다. 또 세입,세출,국고,예산편성 기능을 담당하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등도 한 부서로 통합해 재정의 일관성을 꾀해야 한다고 밝혔다.산업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미래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도 정보통신부,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 등유관부처를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이총리 현장지시“구제역 막아라”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가 구제역 문제 등 국정현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챙기고 있다. 최근 잇따른 ‘게이트’ 의혹사건으로 자칫 내각의 기강이 흐트러질 수 있다고 보고 총리부터 앞장서 민생현안을살피겠다는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으로 사실상 ‘중립내각’이 시작된 것과 관련,관가 주변에서는 “각종 민생정책을 다루는데 있어 이 총리에게 힘이 붙는 느낌”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노태우(盧泰愚) 정부 말기 중립내각이 구성됐을 때 당시 현승종(玄勝鍾)총리가 상당히 ‘파워풀(powerful)’하게 내각을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구제역 퇴치에 대한 이 총리의 관심은 각별하다.월드컵을 앞두고 철저한 예방이 필요하다고 판단,지난 2월에 벌써 관련 대책회의를 소집했다.그럼에도 구제역이 발생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확산 방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이 총리는 12일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개별 농가의 예방의식도 요구된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오후에는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 용인시 백암면과 안성시 삼죽면 일대를 방문,방역대책 추진상황을 보고받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 총리는 “확산 우려가 있는 구제역을 조기에 차단하고,축산농가의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범 정부적으로 인력과장비를 최대한 투입하라.”고 수행한 김동태(金東泰) 농림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앞서 지난 3일에는 긴급 관계부처 장관 및 시·도 부지사 회의를 개최,“긴급방역조치를 강화하고 구제역 발생지역을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더이상 구제역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었다. 최광숙기자 bori@
  • [이경형 칼럼] ‘5년 단임제’ 이대로 좋은가

    민주당의 노무현씨에 이어 한나라당 이회창씨도 대통령후보로 확정됐다.대선 가도는 앞으로 한 두 가지 변수가있을 수 있지만 주요 정당의 주자는 일단 정리된 것이다. 각 당 대선 후보는 이제부터 집권할 경우 어떤 일을 하겠다는 국정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국가 경영의 비전을밝히고,상대 후보와 정책 대결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과거에는 대통령 후보가 온갖 좋은 얘기를 끌어 모아 그럴싸하게 포장한 뒤 ‘100대 공약’식으로 내놓는 게 다반사였다.그러나 이제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후보의 소신과 정책 실천의 구체적인 방법이 결여된 공약은 더 이상 득표 캠페인으로도 작동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대통령 중임제 개헌,각종 선거의 통합 문제에 관한 소신을 대선 공약의 하나로 내걸 것을 제의한다.예를 들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임기의 마지막 1년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현행 대통령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등이다. 개헌 문제의 공론화는 새삼스러운 일이아니다.그동안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도 제기되었고,재계가 차기 정부 과제의 하나로도 제안했다.지금까지는 산발적으로 제기된 이슈의 하나에 불과했지만 지금부터는 대선 가도의 중요한쟁점으로 부각시켜 보자는 뜻이다.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면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의 임기를 4년으로 일원화할 수 있다.또 선거 주기가 달라 불규칙적이고 잦은 선거 시기를 대통령선거-지방선거를 한데 묶어 동시에 실시하고,국회의원 총선은 현행 4년 주기를 살리는 것이다.올12월 대선과 2004년 4월 총선처럼 자연스럽게 2년 격차를두게 되어 국민들이 중간 평가를 하는 정치적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지난 1987년 6월 시민 항쟁으로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현행 헌법이 채택된 후 대통령선거 3차례,국회의원 총선거 4차례,지방자치단체선거 3차례를 치렀고,시도 때도 없이 보궐선거까지 실시했다.앞으로 선거를 통합하고 보궐선거 시기를 고정시킬 경우,빈번한 선거로 초래되는 정치 비용과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고,여야 정쟁으로 인한 만성적인 정국 불안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한국 헌정사에 점철된 과거의 개헌 논의는 주로 장기 집권이나 독재 권력 강화를 위한 정치적 음모의 하나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21세기 선진 정치를지향하는 대선 후보가 지금의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개헌 추진을 공론화하여 국민 지지와 연계시키는 것은 정치발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대통령 임기 등 권력 구조에 대한 개혁은 현재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최고 권력 주변의 부패 문제를 푸는 해법도될 수 있다.현행 5년 단임제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등 세 번의 집권 경험에 비추어 그 폐단이 적지 않다. 임기의 절반만 넘기면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임기 말에 가면 대통령이 자신의 소속 정당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권력 누수와 갈등관계가 깊어지고 있다.5년 주기로 일어나는 이러한 한국정치의 풍토병을 고치지않으면 안된다. 또 그동안 권력을 쟁취한 ‘집권 공신들’은 정권을 마치 전리품으로 인식해왔다.그래서 임기5년이 끝나기 전에각자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지금처럼대통령 주변의 부패가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도 상당부분 여기에서 연유된다.물론 중임제 아래서도 재선 임기가 끝날 무렵이면 유사한 레임덕 현상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 빈도는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대통령 단임제는 국가의 활력을 더해주는 젊은 리더십을 창출하는데에도 장애가 된다.중임의 길이 열려 있으면 상대적으로젊은 지도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지만 단임제일 경우젊음이 지도자 선택의 큰 변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대선 쟁점이 후보들의 출신 배경이나 색깔론 같은 퇴영적이고 소모적인 논쟁 수준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권력 체계나 권력기관의 개혁 등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정치 개혁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논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 이경형 논설위원장 khlee@
  • [심층분석 이회창] (1)그는 누구인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가 7일 충북지역 대선후보 경선에서 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됐다.9일 마지막 서울경선과 10일 전당대회를 통한 모양 갖추기 절차만 남겨 놓고 있는 상태다.이 후보의 신상과 이념·정책 및 인맥을시리즈로 심층 해부해 본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가리켜 측근들은 “정치권에 들어와서 망가진 사람”이라고 애정어린 평가를 하곤 한다.정말 ‘망가졌다.’는 뜻은 아니다.정계진출 이전에 법조계에서,공직사회에서 그만큼 추앙받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그러나 이 후보는 스스로를 “정치 초년생”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기존 정치인과는 사뭇 다른 측면이 있다.그러면서 3김을 닮아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치역정]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 ·DJ) 대통령이 없었다면 이회창의 오늘은 없다.” 이 후보의 정치 입문과 성장기를 압축해놓은 표현이다.이 후보는 문민정부 초대 감사원장으로 발탁된 뒤 96년 4·11총선 직전 당 선대위의장으로 영입된다.이듬해 3월 노동법 사태,한보사건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YS는 그를 당대표에 앉힌다.이 후보는 YS와 끊임없는 갈등속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정치적으로 급성장,불과 정치입문 1년반만에 집권당 대통령 후보직을 거머쥐는 ‘정치 신화’를창조한다. 그러나 연말 대선에서 패한 그는 당 명예총재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다가 98 년8월 전당대회에서 제1야당 총재로 복귀한다. 이 때부터는 시련의 연속이다.첫 1년은 ‘이 총재의 유리(遊離)기’로 분류되기도 한다.동생 회성(會晟)씨가 세풍·총풍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고 측근인 서상목(徐相穆) 의원의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이 불거져나왔다.대여투쟁을본격화하는 과정에서 국회는 문만 열어놓은 채 공전됐으며 ‘방탄국회를 열고 있다.’는 비난을 받게됐다. 2000년 4·13 총선을 앞두고는 위험한 모험을 한다.김윤환(金潤煥) 이기택(李基澤) 신상우(辛相佑) 전 의원 등 계파 수장들을 공천과정에서 물갈이한 것이다.당의 분열 가능성을 감수한 게임에서 승리한 그는 거대야당을 만들어낸다.이어 5월 전당대회에서 김덕룡(金德龍)의원 등의 도전을 물리치고 당 총재를 연임한다. [‘대쪽 판사’] 이 후보는 고시8회에 합격,지난 60년 인천지법에서 법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 81년 46세에 최연소의 나이로 대법원 판사에 올라 5년간은 법조계에 발자취를 남겼다.박세경(朴世俓) 변호사 계엄법위반사건,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 김기철(金基喆) 상임총무의 국가모독사건,강신옥(姜信玉) 변호사의 긴급조치위반사건 등에서 그가남긴 소수의견 또는 보충의견은 법 해석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이 뒤따른다. 88년 7월 다시 대법관으로 임용된 뒤에도 그의 ‘소수의견’은 빛났다.‘국가보안법의 고무 찬양죄는 직접적이고구체적인 이적행위가 나타나야 적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관련 판결에 큰 영향을끼친다.‘육체노동자의 정년을 55세로 본 견해를 폐기한다.’는 판결로 근로자의 정년이 60세로 5년 더 늘어나는 데도 공헌했다. [공직 생활] 세간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법관 복귀와 함께 중앙선관위원장직을 수행했을 때다.그는 89년 4월동해시 보궐선거,이듬해 영등포을 재선거 때 당선자를 포함, 후보자 모두를 고발했고,당시 각당의 수뇌인 ‘1盧3金’에게 친필 경고서한도 보냈다. 결국 15개월여만에 불법선거를 제대로 막지못한 책임을지고 자진사퇴했지만,몇몇 언론매체는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문민의 정부 감사원장 시절에는 율곡사업,평화의 댐을 도마에 올리며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으로부터 서면조사를 받아내고 감사원의 위상확보에 힘썼다.국민적 인기는 절정에 달했을 무렵이다. YS는 93년 12월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이 후보를 국무총리에 전격 기용한다.당시 야당도 환영했다.그러나 총리의 역할을 놓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어오다 127일만에 사표를 던진다. [성장기] 이 후보는 명가(名家)에서 출생,성장해 명문학교를 거친 최고의 엘리트이다.본가는 부친대부터 당대까지박사만 7명을 배출했다.외가는 천석지기의 부호에다 외삼촌 3명이 모두 국회의원을 지낸 쟁쟁한 가문이다. 그런 그가 학창시절 신문배달을 하고,닭을길러 달걀을시장에 내다팔았고,17세에 소년가장으로 가족을 부양하며물로 배를 채운 일을 거론하는 것은 “어려움도 모르고 온실속에서 자란 것만은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검사인 부친의 임지를 따라다니느라 자주 전학을 다녀야 했다.토박이들의 텃세에 싸움도 했고 그래서 권투까지 배웠다.뒤쳐진 성적으로 가출한 전력까지 담은 그의 자서전은 평범한 성장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이지운기자 jj@
  • 정부, 김대통령 탈당 새 당정협의 고심/ “민주·한나라 똑같이 대접하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6일 민주당을 탈당함에 따라 앞으로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정부와 정당간,또 정부와 국회간 새로운 정책협의 모델 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여당을 탈당했지만 시기적으로 대선을 불과 1∼3개월 앞둔 상태여서 새로운 정책협조체제 구축의 필요성은 크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대선까지 7개월이나 남아 있다. ▲정부 대책 고심=이한동(李漢東)총리가 “고위당정 정책조정회의가 없어지긴 했지만 정치권과 정책협의를 잘 하라.”고 지시한 점은 정부의 고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사안별로’ ‘수시로’ 원내 정당들과당정협의를 갖고 정치권의 협조를 구한다는 방침이다.과거 여당과는 당정회의를 통해 사전 정책조율을 하고,야당에는 간단한 정책설명회를 갖던 관행에서 이제는 민주당과한나라당 모두 공평하게 당정협의를 열어 현안을 논의할계획이다.법적으로 원내 1,2,3당만 있을 뿐 여야 구분은의미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각 정당과 ‘등거리 당정협의'를 위한 훈령제정을검토 중이다. 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에서는 여러 정당과협의회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안법안 많아=정부는 당장 대외신인도와 관련 있는 예금보험공사채권기금 차환발행 동의안을 처리해야 하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전전긍긍하고 있다.이달 임시국회에 정부가 제출할 법안만 해도 교육공무원법,국유재산법 등 모두24건에 이른다. 원내 정당을 모두 설득하려면 시간이나 효율성 면에서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특히 원내 1당인 한나라당의 정치적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 정부로선 걱정이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다수당인 한나라당도 이제는 과거처럼 정부에 시비를 걸 수 없고 책임정치를 해야 하는상황이어서 오히려 정책협조가 잘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만만치 않을 예산심의=올해 예산심의는 예년보다 훨씬까다로워질 것으로 기획예산처는 전망하고 있다. 8월 말∼9월 초 열리는 예산안 당정회의의 분과토의를 통해 정부는 다음해의 주요 정책을 미리 설명하고 국회 심의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조율하는 데 여당이 사라져 이 절차가 어렵게 됐다. 변양균(卞良均) 예산처 기획관리실장은 “앞으로는 국회심의에 앞서 모든 정책을 원내 1,2,3당에 골고루 설명하고 각각의 협의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훨씬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배국환(裵國煥) 예산총괄과장은 “올해예산안 심의는 새로운 정책결정 모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 견해=반부패국민연대 김거성(金巨性) 사무총장은 “신뢰를 가지고 열린 대화를 통해 국정현안의 방향을 잡아가는 정치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는 “그동안 야당이 가지고 있었던 국정 불신을 청산하는 계기가될 수 있다.”면서 “정부는 상호신뢰와 존중을 원칙으로한 쌍방향 대화로 각 정당과 긴밀하게 연결됨으로써 난맥정국을 풀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여야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 상임위를 부처별로 활용하면 된다.”면서 “정부도 초당적인 협의를구하려는 노력을 배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중 최광숙기자 bori@
  • 대통령탈당 노무현측 반응/ “”盧-YS연대 걸림돌 해소””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이 역대 대통령의 전례와 다른 측면은 당 대통령후보와의 관계가 원만하다는 점이다.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YS) 등 전임 대통령의 탈당 때는 여당후보가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대통령의 탈당을 비난하거나,빨리 탈당하라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했었다.반면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전혀 김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실망감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오히려 6일 야당의 ‘위장탈당’ 공세에 대해 “정치인과 국민도 선의로해석할 것은 선의로 해석해야 한다.”며 옹호하고 나섰다.노 후보측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도 탈당에 따른 이해득실에 대해 “곱하기로 하면 1이고,더하기로 하면 0”이라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노 후보가 앞으로도 DJ를 비판하는 등의 ‘차별화’는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그것은 노 후보가 영남출신으로서 호남 유권자들을 안심시켜야하는 ‘특수한’ 처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노 후보가 이날 김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의 심정을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배경에도 이같은 속사정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노 후보는 “나로서는 고맙다고 생각해야 하는데,고맙다고 말하면 시비가 생기지 않느냐.”고 말해 탈당이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인했다. 노 후보측은 굳이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탈당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민주당=DJ당’란 등식이 깨져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무엇보다 당장 부산·경남(PK)지역 공략을 위한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과의 연대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YS로서는 부산시장 후보공천 등에서 노 후보의 민주당 편을 들어주고 싶어도 DJ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가 힘들었을 텐데 이번에 걸림돌이 제거된 셈”이라고분석했다.민주당 안팎에서는 DJ가 탈당에 이어 아들을 엄정하게 사법처리할 경우,정치적 라이벌인 YS가 앙금을 씻고노 후보에 대한 지원에 본격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날 노 후보는 YS와의 회동을 둘러싼 비난여론과 관련,“나도 현실 정치인이다.”고 전제한 뒤“과오있는 사람은아무도 만나지 말라고 하면 김대중 대통령도 당을 떠나는마당에 누구와 정치를 하란 말이냐.과오도 반역에 해당하는 과오가 있고 그냥 과오가 있다.”는 말로 YS와의 연대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김상연기자 carlos@
  • 김대통령 탈당/ 역대 대통령 탈당비교-노태우 이후 3대째 ‘관례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민주당 당적을 포기함에 따라지난 92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민자당 탈당,97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신한국당 탈당 등 현직 대통령이대선을 앞두고 당을 떠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정착되는 형국이다.중립선거 내각을 요구하는 여론과 야당의주장이 크게 기여했지만,여당후보의 차별화 전략도 동인이 됐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들의 탈당 시기와 배경 등을 살펴보면,내용은 사뭇 다르다. 먼저 92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탈당은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충남 연기군 관권개입 선거에 대한 수습책으로개각을 요구하는 등 자신을 밀어붙이는 데 대한 ‘역습’의 성격이 컸다.3당 합당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후보가된 만큼 적자로서 애정이 예전 같지 않았으므로 퇴임 후의 안전판을 고려한 판단이었다.선거지원자금을 당시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에게도 전달한 데서도 알 수 있다. 97년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탈당을 먼저 요구한 당시 이회창(李會昌) 신한국당 후보의 ‘선수치기’에 따른 것이다.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민지지가 급전직하의 형국이어서 이회창 후보의 차별화 욕구가 어느 때보다 강했고,당시이 후보로서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처지였다.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세 아들의 비리연루 의혹 등최근 정국상황으로부터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짐을 덜어주겠다는 ‘배려’ 차원에서 스스로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92·97년에는 대통령과 대선후보간에 갈등·알력 관계가 형성돼 있었다면,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후보간의관계는 그렇지 않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시기적으로도 차이가 있다.노 전 대통령은 대선을 정확히 3개월 앞둔 9월18일 탈당과 중립내각 구성을 전격 발표한 반면,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50여일 전인 11월7일 대선후보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을 무려 7개월 이상 남겨둔시점에서 집권여당과의 고리를 끊는 결단을 내렸다.아들들의 비리연루 의혹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데다,월드컵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양대 선거의 공정한 관리,경제회생등 국정의 안정적 운용이 시급하다는 점이 결심을 앞당기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홍원상기자 wshong@
  • [심층분석 노무현] (2)정계개편 구상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줄곧 “현재의 지역구도를 깨고 노선에 따라 정계를 개편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배경에는 그의 오랜 소신과 정치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87년 양김(兩金) 분열 이전의 상태로 민주화세력을 통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은 최근 갑자기 불거진 게 아니라 이미 수년전부터 나온 얘기라는 게 노 후보측 주장이다.서갑원 정무특보는 “정계개편 주장은 94년 ‘여보 나좀 도와줘’란 노 후보 자서전에도 나온다.”고 말했다. 원래부터 갖고 있던 소신이 지난해 대선정국이 본격화하면서 “내가 후보가 되면 정계개편을 주도하겠다.”는 언급으로 구체화됐다는 설명이다.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지난해 말 노 후보가 만나자고 해 경선에서의 지지를 부탁하는줄 알았는데,정작 ‘내가 후보가 된 뒤 정계개편을 추진할때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며 노 후보의 의지가 간단치 않음을 시사했다. 정치적 득실면에서도 노 후보측은 정계개편론을 유리한 전략으로 판단하고 있다. 후보의 자질보다는 지역감정이 투표성향에 더 영향을 미치는 지금의 정치구도에서는 민주당 간판으로 대선에서 당선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고,설사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제대로 국정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 후보측 관계자는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한 맹목적 비토세력이 존재하는 한 누가 대통령이 돼도 YS(金泳三 전대통령)와 DJ(金大中 대통령)처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정계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 후보의 최근 언행에서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정계개편완성의 중요한 기점으로 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즉,그는“6월 지방선거전에 상징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한 다음날 부산·경남(PK)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YS를 만났다. 정치권에서는 노 후보가 YS에게 PK지역 광역단체장 선거와 관련한 협조를 요청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노 후보측 관계자는 “YS와 한나라당이 (표밭을)공점하고있는 PK지역에서 YS를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일으켜 노풍을영남권 전체로 확산시키는 계획”이라고 귀띔했다.이에 따라 노 후보가 ‘정계개편 분위기를 조기에 확산시킴으로써 민주당 불모지인 영남권 민심을 흔들어 지방선거에서 승리,자신의 영남득표력을 확인시킨 뒤,이를 동력으로 본격적 정계개편을 추진해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김상연기자 carlos@ ■정치학자 평가 “이념·정책중심의 정계개편은 원론적으로 100% 타당하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주장하는 정계개편론에 대해 정치학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을 정리하면 이렇다.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실현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평가다. 고려대 임혁백(任爀伯·한국정치) 교수는 “노 후보가 말하는 정계개편이란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점인 지역주의 구도를 어떤 식으로든 바꾼다는 점에서 당위성을 지닌다.”면서 “특히 87년 이전의 지역을 넘어선 민주화 연합을 복원시킨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민의 의사가 표출되는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 성패가 결정될 것”이라며 성급한예단을 피했다. 한국외대 이정희(李政熙·한국정치) 교수도 원론적으론 긍정 평가했다.그는 “한국 정치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민주세력이라는 개념과 정책대결의 구도는 꼭일치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정책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현실적 한계를 지적했다. 성균관대 김일영(金一榮·한국정치) 교수는 “결국 YS와 DJ를 끌어안아 대선에서 당선되겠다는 새로운 지역연합구도”라며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을 강하게 비판했다.또 “진정한 이념·정책 중심의 정계개편을 하려면,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노 후보와 정책·이념이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간의 이합집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정계개편 가설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정계개편 발언으로정계개편 방향에 갖가지 가설이 나돌고 있다.민주당 자민련 합당설,민주화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연대,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합당설,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론 등이다.가설들은 모두 대선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추진 주체에 따라 그 방식은 판이하지만 과거 지역연합 일변도에서 ‘보·혁 연대’나 ‘보·혁 구도’의 형태도 눈에 띈다. [한나라·자민련 합당과 여권 이탈세력 흡수] 노풍(盧風)의 위력에 대한 맞불로 ‘한자 동맹’을 근거로 한 보수대연합이 부상하고 있다.지난 27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대통령후보로 확정된뒤 신민주 대연합을 주창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이회창(李會昌) 전 총재는 29일 대전지역 TV합동토론에서 “필요하다면 여당도 포함,생각이 같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종필(金鍾泌) 총재도 이날 라디오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 후보의 정체성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이 전 총재에대해서는 연대가능성을 열어뒀다.자민련 정진석(鄭鎭碩) 대변인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한나라당과 이 전 총재에 대해 ‘구국 전선의 잠재적 우군’으로 보고 비판과 공격을 삼갈 것”이라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앞서가장 먼저 부상했다.내각제를 연결고리로 각기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있는 민주당과 자민련,민국당이 합쳐야만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분석을 기초로 하고있다.한나라당 이회창 경선후보의 대세론에 대항하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컸다. 민주당내 최대 조직이었던 중도개혁포럼이 적극 추진해왔다.자민련과 상당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당시 민주당 최대 주자였던 이인제(李仁濟) 전 고문이 이를 거부하면서 잠복했다. [민주와 산업화의 연대] 지난 2월28일 박근혜(朴槿惠) 의원의 탈당 이후 가설로 등장했다.한나라당 비주류를 포함한정치권의 민주화 세력과 자민련과 민국당이 대거 참여하는신당 창당 구상이다.박근혜 신당에 대한 관심 저하와 노풍으로 가설이 힘을 잃고있다. 박근혜 의원도 일단 ‘한국미래연대’ 창당(5월17일)을 서두르며 독자행보를 하고 있다.후일을 도모하려는 의도다.때문에 이 연대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가설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 정계개편 내용은 모두 그럴듯해 보이지만 가능성은 불투명한 형국이다.아직 대선가도의유동성이 큰 탓이다. 한나라당 개혁파인 이부영(李富榮) 전 부총재는 노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대선 전략일 뿐”이라며 “DJ와 YS와의 연대라면 동의할 수 없다.”고 거부의사를 표시했다.한나라당내 개혁파도 아직은 큰 동요가 없다. 강동형기자 yunbin@ ■역대 대선 분석 지난 87년 대통령직선제가 재도입된뒤 5년마다 실시돼온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는 어김없이 세력판도를 바꾸기위한 정계개편이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가장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던 해는 87년 13대대선 때다.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되자 85년 구신민당 중진과 민추협이 공동으로 만든 신한민주당에서 당시김대중(金大中)·김영삼(金泳三)씨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이새로 만들어졌다.그러나 양김씨도 대선직전 분열,통일민주당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이 빠져나와 평화민주당을 창당했고,당시 김종필(金鍾泌)씨도 신민주공화당을창당해 대선에 뛰어들면서 3김 시대가 만개했다.물론 야권의 분열로 집권 민정당 후보로 나선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도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있었다.90년 1월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구국의 결단이라며 3당 합당을 단행,민자당을 탄생시켰다.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해 총선과 대선에 참여했고,김대중 대통령의 당시 신민당도 3당합당을 거부한 이른바 ‘꼬마 민주당’과 합당,통합민주당을 만들어 대선에 나섰지만 3당 합당의 위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는 집권여당이 먼저 분열했다.95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종필 현 자민련 총재가 민자당에서 나와 자민련을 창당,지방선거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곧이어 92년 대선패배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대통령이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야권의 중심이었던 민주당이 재분열됐다.대선직전에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DJP연합을 통해 공동정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춘규기자 taein@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