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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대환 총리인준 부결/역대 인준안 부결 사례 - 연속부결은 50년만에 처음

    28일 장대환(張大煥) 국무총리 서리도 지난달 말 장상(張裳) 전 서리에 이어 국회 인준 관문을 넘지못했다.헌정 사상 총리 임명 동의나 승인과정에서 연속 부결된 것은 지난 52년 10∼11월 이윤영(李允榮) 이갑성(李甲成)씨가 잇따라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이후 50년만에 처음이다.특히 이번에 인준을 못 받은 장 서리는 역대 총리직 수행자 중 3번째 단명자인 동시에 제2공화국 이후 최단명 총리직 수행자로 기록됐다. 지난 48년 정부수립 이후 장대환 서리까지 모두 37번에 걸쳐 총리 임명 동의나 승인과정을 거쳤으나,이중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는 모두 8차례다.이승만(李承晩) 대통령시절에만 5차례 있었다. 이윤영씨는 세 차례나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지 못하는 좋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그는 48년 7월27일 정부 출범 후의 첫 국회 동의과정에서 ‘부결판정’을 받은 이후 50년 4월6일,52년 10월17일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윤영씨가 세번째 도전에서도 실패한 뒤 이승만 대통령은 이갑성씨를 내세웠지만 실패했다. 백낙준(白樂濬))씨는 득표율 최저기록을 갖고 있다.그는 지난 50년 11월3일 국회의 표결에서 단 21표만 얻었다.득표율은 17.1%에 불과했다. 4·19 직후 민주당 시절이었던 지난 60년 8월17일에 이뤄진 국회 표결에서 김도연(金度演)씨는 단 2표 차이로 아깝게 인준을 받지 못했다.김도연씨가 총리가 되는 데 실패한 뒤 장면(張勉)씨가 국회 인준을 받아 총리가 됐다.그는 225표의 투표수 중 117표를 얻어 가까스로 국회의 문턱을 통과했다.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는 지난 2000년 6월29일 272표 중 139표를 얻어 더 아슬아슬하게 국회 승인을 받았다.이 전 총리의 득표율 51%는 국회 승인을 받은 사례중에는 가장 어렵게 통과된 기록이다. 박정희(朴正熙) 최규하(崔圭夏)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에는 총리가 국회 인준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경우가 없었다.한편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초기인 3공화국 헌법에는 총리 임명에 국회동의를 거쳐야 하는 제도가 없었다. 곽태헌기자 tiger@
  • ‘허일병 사망’ 현장 조사 의문사규명위, 새달 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25일 허원근(許元根) 일병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실지조사를 다음달 2일 7사단 사건 현장에서 실시한다고 밝혔다.실지조사에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조사관과 참고인을 포함해 규명위 위원들과 아버지 허영춘씨 등 유가족들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허 일병을 쏜 것으로 알려진 모 예비역 하사관은 최근 “몸이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전해져 실지조사에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한편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63)씨는 “부검의가 당시 ‘사건 현장에 가보지 못했고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없으며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규명위는 5공화국 시절 강제징집·녹화사업과 관련,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당시 이학봉 계엄사합수부 수사단장,서정화 내무부장관에게 동행명령장을 보내기로 했다.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과 20일 두 차례의 출석요구에 불응했으며 노 전 대통령 등도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이세영기자 sylee@
  • [2002 대선 대해부] 鄭風 허실과 신당/ 바람직한 짝짓기

    ■新黨, 정책·이념 차별화 돼야 ◇이념·정책노선 다른 집권연합은 국민적 공감 얻기 어려워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과 정계개편이라는 이름의 ‘연합게임'이 시작되고 있다.이번 KSDC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로 이회창 후보를 추월한 정몽준 의원은 정파를 넘나들며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이번 조사결과 분석에서 나타났듯이,정 의원에 대한 지지는 이념과 정책노선에서 비롯되는 견고함은 없다.하지만 ‘정풍'(鄭風)이 불고 있고 정 의원이 선거연합게임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정 의원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신당에 무임승차하는 것과 독자신당 창당을 저울질하다가 박상천 민주당 최고위원과의 ‘합의파동' 이후 신당 창당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물론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박근혜·이인제·이한동 의원,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포함하는 이른바 5자(者)연대에 참여하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더구나 정 의원 자신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나라당으로부터의 ‘연락'을 기대하는 듯한 발언까지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정 의원의 무색무취한 연합게임이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무소속,무검증,무임승차? 기성 정당에 대한 반(反)정당 분위기와 정치적 냉소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무(無)소속,무(無)검증에서 비롯된 참신성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과연 정의원은 국민들 머리 속에서 어떤 인물로 그려지고 있을까? ▲민주당 중심의 신당 ▲독자신당의 창당 ▲5자연대 등 세 가지 연합 시나리오를 유권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치지도 그림의 위치에서 볼 수 있듯이,정 의원은 노무현 후보와 함께 가기에는 이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너무 동떨어져 있다.유권자들에게 각인된 정 의원의 행적과 이미지가 민주당의 이념과 노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정치지도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정몽준-박상천 합의파동 이후 민주당 내에서 ‘왜 신당을 해야 하냐.' ‘신당은 꼼수다.' ‘왜 재벌2세 출신의 정몽준과 무원칙하게 연합해야 하느냐.'는 등의 정체성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정 의원이 남북대화나 구조조정 등에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자성론이 나오고,정 의원에게 민주당 의원 113명이 망신당했다는 자괴감까지 토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 의원이 노 후보의 장벽을 넘어 신당에 무임승차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반 이회창(反 李會昌)과 비 노무현(非 盧武鉉)인 5자 연대 역시 쉽지 않을 것임이 예고되고 있다.정치지도는 기본적으로 유권자들이 정치사를 통해 느끼고 경험한 이념적 의미를 요약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5자 연대는 노무현-정몽준 연합보다는 정치노선 면에서는 일견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그러나 이인제 의원과 정몽준 의원은 물론 5자간의 정책적·정서적 거리감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반 이회창 5자 연대 역시 유권자의 생각을 반영한 연대라기보다는 정치인들간에 자리를 나누는 정략적 야합이라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크다. ◇5자 연대,유권자들의 생각과 달라 유권자들은 5자 연대를 영남과 충청,경기를 포함하는 지역연합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이러한 지역연합은 5자의 중앙 부근에 위치한 이회창 후보와의 지역기반 경쟁이 불가피하다.현재 이회창 후보가 이 경쟁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5자 연대의 취약점이라 할 수 있다.5자 연대와 이회창후보의 보수진영 경쟁 역시 불가피할 전망이다.현재 정 의원의 지지기반은 젊은 층에서 노무현 후보와 중첩되는 양상이지만,정 의원이 5자 연대에 나설 경우 이들의 정치지도상 위치는 궁극적으로 영남과 보수층에서 이회창 후보와 경쟁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이 경쟁에서 역시 현재는 이 후보의 상대적 우위가 공고한 상황이기 때문에 5자 연대가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정 의원이 진지하게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면 정 의원의 선택은 좌회전해서 노무현 후보와 경쟁하느냐,우회전해서 5자 연대를 통해 이회창 후보와 경쟁하느냐에 있다.물론 일단 독자신당을 창당하는 방법도 있지만,이 경우에도 정 의원은 당의 노선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정 의원은 월드컵을 통해 국민 모두를 기쁘게 할 수는 있었지만,정치에서 모두를 기쁘게 할 수는 없다.정책과 연계되지 않은 ‘정풍'(鄭風)은 허상일 뿐이고,노선 없는 정치는 인기 위주의 이미지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이제 정몽준 의원의 오리무중 연합게임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여론조사 상세분석/ 鄭 지지율 한달새 6%P 껑충 대한매일과 KSDC가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몽준 의원이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제 3후보로 출마할 경우 29.3%를 얻어 한나라당 이회창(26.9%) 후보와 민주 신당 노무현(17.3%)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결과를 7월의 조사와 비교해 보면 대선 후보 가상대결 추이에서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발견된다.한 가지 특징은 이 후보와 노 후보의 지지도는 동반하락한 반면 정 의원의 지지도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이 후보의 지지도는 7월보다 9.8% 포인트,노 후보의 지지도는 5.3% 포인트가 각각 떨어졌다.반면 정 의원의 지지는 6%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별로 살펴보면,20대에서 정 의원의 지지도가 16.7% 포인트 급상승한 반면 이 후보의 지지는 11.2% 포인트가 낮아졌다.30대에서도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정 의원의 지지는 5.9% 포인트 상승한 반면 이 후보와 노 후보의 지지는 각각 7.9% 포인트와 4.3% 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40대에서는 후보별 지지도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이 후보의 핵심지지 연령층인 50대 이상의 고연령층에서는 이 후보의 지지도가 18.7% 포인트 하락했지만 노 후보와 정 의원의 지지도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과 영남지역에서 정 의원 지지도 상승이 주목할 만하다.서울과 인천·경기지역에서 정 의원의 지지는 각각 8.5% 포인트와 6.4% 포인트 상승했다.반면 이 후보의 지지는 각각 9.6% 포인트와 8.1% 포인트 떨어졌다.한편 영남지역에서도 이 후보의 지지도 하락과 정 의원의 지지도상승 현상이 뚜렷했다. 이 후보는 7월까지만 해도 자신의 텃밭인 영남지역에서 5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8월 조사에서는 대구·경북에서 41.9%,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는 38.1%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반면 정 의원의 지지도는 대구·경북에서 8.5% 상승했고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는 27.3%로 7월보다 4.7% 높은 지지를 받았다. 더욱 관심을 끄는 부분은 호남지역에서 정 의원의 지지가 33.5%로 노 후보(31.1%)보다 2.4% 포인트 앞섰다는 점이다.이러한 결과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신당에 정 의원이 참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여겨진다.8월 조사에서 나타난 또다른 특징은 무응답층의 규모가 크게 늘어난 점이다.7월 조사에서는 무응답층의 규모는 17.4%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6.4%로 9% 포인트높아졌다. 특히 ▲중졸 이하의 저학력층(41.3%) ▲15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38.3%) ▲호남지역(31.7%) 등 친여(친 민주당) 계층과 ▲50대 이상의 고연령층(36.2%) ▲전문직(37.5%)에서 부동층의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이러한 결과는 여야간 5대의혹 및 3대 공작 제기 등 네거티브 공방이 가열되면서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혐오가 증폭된 결과로 여겨진다. ■유권자 정치지도 분석/ 盧·李후보 좌우대칭 형태 최근 대립구도 극명히 표출 다차원 척도법에 의해 형상화된 한국의 정치지도는 오늘의 한국정치를 마치 사진 찍은것처럼 보여준다.이 지도상의 평면공간은 이념적 의미를 가지는데,공간이론에서 이념은 유권자 개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정치환경을 이해하는 데 활용하는 도구다. 정치지도는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각각 좌우에 위치시킴으로써 유권자들이 인지하는 최근의 여야 대립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지도상의 붉은선은 대북지원정책에 대한 찬반으로 좌우를 각각 진보와 보수로 구분한다.각 정치인을 이 선에서 직각으로 이어보면,대북지원 정책에서 이회창 후보,자민련 김종필 총재,이인제·박근혜 의원 등은 상당히 보수적이다.정몽준·이한동 의원,고건 전 서울시장은 중도 내지 온건한 진보다.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후보는 진보적 인사로 자리매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녹색선은 경제 측면에서 분배와 성장의 정책 차원으로 역시 좌우를 진보와 보수로 구분한다.대북지원정책에서 중도적 입장에 있는 정몽준 의원이 경제정책에서는 성장위주 정책으로 치우친 것으로 인식된다.반면 김종필 총재와 이인제 의원은 중도적 위치에 속한다. 파란선은 영·호남의 지역구도를 보여준다(왼쪽은 지지기반이 호남,오른쪽은 영남).또 지도상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우측 상단 지역은 충청권의 영역이다.여기서 가장 큰 특징은 지역주의가 여야 대립구조와 거의 유사한 갈등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주의는 여전히 지배적인 균열 요소로 작용하고 있고 현재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궁극적으로 지역연합의 성격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무응답층이 많아 정치지도에서 빠졌다. 한편 신당 창당과 정계개편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최근의 정치기류 속에서 유권자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정치지도는 앞으로의 정국을 전망하고 정당,정치인들의 정략적 움직임을 평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92·97년 연합 교훈/ 선거승리 노린 연대 국정운영 실패 초래 ◇대통령 선거와 집권 연합의 실패 대통령제의 가려진 장점 중 하나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커다란 연합이 형성된다는 점이다.물론 이러한 연합은 선거 승리를 목표로 한 집권연대의 성격을 가지지만,다른한편으로는 선거를 통해 효율적인 국정운영의 주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의미도 함께 갖는다.선거연합이 선거 승리 이후 얼마나 잘 유지되느냐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양대 정당구도가 공고하지 못한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집권연합의 유지 여부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연합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정운영의 책임을 다한다면 대통령제는 높은 수준의 국정수행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선거연합이 집권 이후 붕괴될 경우에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그렇기 때문에 선거연합은 이념과 정책노선에 기초한 공고한 연대기반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지난 92년 대선에 앞서 형성된 노태우-김종필-김영삼의 연합과 97년 대선을 승리로 이끈 이른바 DJP연합(김대중-김종필-박태준)은 집권을 위한 선거연합의 성격을 가진다.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중간매개자 역할을 한 이 두 선거연합은 집권 초·중반에 붕괴됨으로써 결국 실패한 연합이 되었고,궁극적으로는 국정수행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위기를 초래하였다. ◇무원칙한 연대는 국정운영의 실패 초래 이러한 두 선거연합의 실패는 우리 정치에 값진 교훈을 주고 있다.무엇보다도 인물과 지역중심의 연대가 주는 위험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물간의 친소관계나 감성에 바탕을 둔 연합은 그만큼 쉽게 붕괴될 수밖에 없다.인물간의 합의는 선의의 협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개인 수준의 선의는 사소한 이해관계에 의해서도 쉽게 나쁜 감정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3김(金)간의 연합과 결별과정은 이념과 정책노선의 합리적 조율이나 제도적 뒷받침이 결여된 인물연합과 지역연합이 국정운영과 정치발전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국민의 기대와 예측을 무시한 정략적 연대는 국민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나라와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국정실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3김의 성공과 실패를 목격한 우리 국민들이 집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형태의 무원칙한 집권연합에 또다시 나라의 미래를 맡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 [사설] 의문사규명위 시한 연장해야

    18년 만에 진실이 밝혀진 허원근 일병의 타살사건은 오는 9월16일로 끝나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의 필요성을 확인해 주었다.2000년 10월,9개월이라는 한시적 기구로 출범한 ‘의문사위’는 지난해 7월과 올 3월두 차례에 걸쳐 기간을 연장하면서 활동했으나 접수된 83건중 24건만이 종결을 보았다.국정원·기무사·국방부 등 핵심자료를 갖고 있을 법한 기관의 비협조와 참고 인물들의 증언거부 때문이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다수의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 차례에 걸친 재조사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다.더구나 사건 당시 위장을 지시한 상사의 명령에 의해 죽은 전우에게 2발의 총을 더 쏘았다는 보도도 말문이 막힌다.그러나 이런 일들이 지금 시점에서 믿기지 않을 뿐,당시에는 ‘죽은 사람은 어차피 죽었으니 부대장이 문책을 받고 진급에서 누락되게 할 필요가있느냐.’는 인정론이 통하던 시절이다.그만큼 우리 사회의 생명·인권의식이 척박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난 시대의 의문사들을 규명하는 것은 과거 정권이나 특정 개인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그보다는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과그 가족의 상처를 씻어주고 명예를 회복해 주는 일이다.더 중요한 것은 인권에 대한 우리사회의 경각심을 높이고 이처럼 미개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일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시한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특별법이 허용하는 시한연장도 다 사용했으므로 법개정이 없는 한 여기서 손을 놓아야한다.그렇다면 손도 대지 못한 나머지 사건은 어떻게 되는가. ‘의문사위’가 요구한 시한 폐지 혹은 연장은 불가피해 보인다.아울러 ‘의문사위’권한도 강화돼야 한다.의문사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를 비롯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증언을 거부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 특별법의 한계다.진상규명을 위한 시한연장이라면 참고인,증인 등의 강제구인과 위증,증언거부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야 한다.그래야 특별법의 실효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 노태우前대통령 소환 불응 의문사위, 재소환 여부 검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녹화사업’과 관련해 출석을 요구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로 예정됐던 소환에 불응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날까지 출석을 요구했던 이학봉 전 수사단장도 위원회에 나오지 않았다.이들은 위원회 출석거부에 따른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위원회는 이들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음에 따라 조만간 회의를 열어 2차소환장 발부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한편 위원회는 2차 출석요구를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일 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예정이다. 이세영기자
  • [굄돌] ‘각하’ 호칭 유감

    다시 ‘각하’란 호칭을 쓰면 어떨까.“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막강해 어떻게 하면 분산시킬까 난리인데 다시 쓰자고? 본래 대통령을 호칭할 때 ‘각하’라 했다.하지만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때 각하란 호칭이 너무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라 하여,보통 사람들의 냄새가 나는 ‘님’자를 붙여 ‘대통령님’으로 부르도록 했다. 예전대로 각하라고 하면 부르기도 편하고 듣기도 편할 텐데 굳이 궁색하게‘님’을 붙이려니 왠지 어색하다. 천자를 ‘폐하’라 하고 왕을 ‘전하’라 하며,대신을 ‘각하’,장신(將臣)을 ‘휘하’ 또는 ‘막하’라 불렀다. 또 동년배끼리는 서로 족하(足下)라고 불렀다.이같은 호칭법은 중국 진·한이후에 생긴 것으로 상대와의 거리에 따라 격을 달리해 붙인 것이다. 폐하란 ‘궁전의 섬돌 아래’라는 뜻으로 신하가 천자와 말할 때 감히 그몸을 지칭할 수 없으니,뜰 아래에 있는 자를 불러서 고한다는 것이다. ‘전하’는 왕이 궁전(宮殿)에 위치하고 폐하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높아 상대를 감히 직접 부를 수가 없기 때문에,그 앞에 있는 좌우 집사나 전달병을 불러서 고한다는 뜻이다.왕을 알현할 때는 반드시 내시나 상궁을 통해 고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각하’는 궁전보다 한 단계 낮은 각(閣)아래에서 집무를 본다 하여 붙인 호칭이다.그리고 허물이 없는 친구 사이를 족하(足下)라 부르는 것은,발이신체 부위 중에서 가장 아래에 있고,직접 자리에 닿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붙인 ‘각하’는 예전의 상감마마인 ‘전하’와는 격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요즘 대통령에게 붙이는 각하란 호칭은 원래 대신에게 붙이던 것이다. 지금 같으면 장관급에다 붙이는 호칭을 대통령에게 붙여놓고,권위적이다 위압적이다 하고 떠들어댔으니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정종수/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 [열린세상] 택지부담금 반환법 제정을

    최근 대법원은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택지상한법)이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에 의한 택지초과소유부담금(택지부담금)을 납부하지 않는 자에 대한 재산압류를 계속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건교부는 택지부담금 미납자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압류했던 2237건, 1683억원 상당의 토지압류를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이달 초 서울지방법원은 택지상한법에 대한 위헌결정 전에 부과되어 압류까지 마친 부담금이더라도 위헌결정 후 국가가 강제적으로 징수한 것은 부당하므로 이를 돌려 주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법원의 일련의 판결과 건교부의 조치는 결국 부담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은 손해를 보고 끝까지 버티거나 마지못해 낸 사람들은 구제를 받게 된다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향후 법치행정에 대한 신뢰 특히 납세의무의 핵심인 성실납부정신이 크게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1989년 말 노태우정부는 당시 전국을 휩쓸던 부동산 투기열풍을 잠재우고택지부족과 주택의 열악한 수급상황 등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른바 토지공개념의 일환으로 택지상한법을 제정했다. 그 내용의 핵심은 1가구 구성원 전부가 소유할 수 있는 택지 면적을 200평(광역시의 경우 300평)으로 한정하고 가구별 소유상한을 초과하는 택지에 대하여는 택지가격의 4%에서 11%에 달하는 택지부담금을 부과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택지를 소유하게 된 경위나 목적 여하에 관계없이 법 시행 이전부터 택지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소유상한을 적용하여 세금과 다름없는 부담금을 징수하는 것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이자 자유시장경제질서라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반한다는 주장이 법 제정시부터 줄곧 제기되어 왔다. 특히 택지는 소유자의 주거장소로서 행복추구권 및 인간의 존엄성 실현과 직결되어 있어 단순히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경우와는 헌법적으로 달리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법에 의한 부담금 부과에 대하여 많은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위헌 논란의 와중에서 1998년 9월 이 법은 폐지되었고,1999년 4월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이 법 전체에 대한 위헌결정이 내려졌다. 법이 페지되거나 위헌결정이 나더라도 위헌결정의 계기가 된 당해사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헌 결정전에 부과,결정된 부담금이나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법의 일반원칙이다.물론 이때에도 위헌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자와의 형평의 문제는 있으나 이는 국가의 소송제도 이용 유무에 대한 차등으로서 부득이한 일이다. 국가는 그동안 택지상한법이 폐지되기까지 5만 7000여건,1조 3393억원을 징수하고,부담금을 내지 않은 2237건,1683억원에 대하여는 토지압류조치를 취하였는데 이번에 위 압류조치를 해제한 것이다.더욱이 위헌결정 이후에 강제징수한 부담금은 반환하라고까지 한 것이다. 미납자에 대한 압류조치가 해제된 이상 이 문제는 일반적인 세법의 폐지 및 위헌결정의 경우와는 차원이 다르다.성실납세자 즉 법을 준수한 자와 그러지 않은 자와의 형평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제기된 것이다.이유와 경과야 어떻든 국가 스스로 성실납부자를 미납자에 비하여 오히려 적극적,명시적으로 불리하게 대우한 것이 되었다. 이제 해결책은 하나다.성실하게 부담금을 납부한 92% 납부자들에게 이를 돌려 주어야 한다.정부는 법적근거의 결여와 재원부족을 거론할지 모르나 이는 설득력이 없다. 특별법을 제정하고 분할상환 등의 방법을 택하면 된다.정부로서는 절차가 번거롭고 내키지 않는 일일 수 있으나 국가의 진로에 있어서 이는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그대로 묻어 둘 때 야기되는 조세저항 등을 통한 국민의 의무이행에 대한 비협조가 확산됨으로써 법치주의의 토대가 무너지는 상황을 가정해보라.정부뿐만 아니라 이 법을 통과시킨 국회도 함께 이문제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례를 통하여 우리는 아무리 시대상황 또는 국민정서상 불가피하더라도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이나 제도는 그 법적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국가의 경제,사회 생활에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석연/ 변호사·동국대 겸임교수
  • 의문사위, 노태우前대통령 17일 소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13일 5공화국 초기 운동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강제징집 조치와 관련,80년 당시 계엄합동수사본부장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과 수사단장을 지낸 이학봉씨를 각각 오는 17일과 18일 오전 소환해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편 규명위는 강제징집 조치와 관련,국방부가 담당한 역할과 내무부 등 유관기관과의 협조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14일 오전 국방부를 실지조사할 계획이다. 이세영기자
  • 집채만한 그림속 얼굴, 화가 강형구씨 자화상전

    때때로 그림에서 크기가 중요한 이유는,큰 규모가 주는 충격과 감동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30호(신문 크기)와 150호(30평 아파트 벽면 하나 크기)의 차이는,이를테면 영화를 비디오로 보느냐 영화관에서 보느냐의 차이가 될것 같다. ‘얼굴의 작가’ 강형구씨는 오는 14∼20일 세종문화회관 전관에서 자화상개인전을 연다. 자화상의 가장 작은 크기가 120호이고 가장 큰 것이 1000호인 만큼,관객이커다란 얼굴 그림을 보고 받을 충격이 궁금해진다.‘극사실주의’또는 ‘포토 리얼리즘’ 형식에 충실한 그림들은 머리카락 한올,땀구멍,눈가에 맺힌눈물,늘어진 주름까지도 생생하다. 서양화가 강씨는 주로 사람의 얼굴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지난해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특정인의 얼굴을 그려 전시회를 가졌다. 강씨가 얼굴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의 얼굴이 인간의 일상을 포함해 지나간 세월과 사회성,역사성,다양한 감정 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란다.그는 특정 인물의 얼굴을 통해서 사회성과 역사성을,자신의 얼굴을 비롯해 보통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서 세월의 흐름과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드러내고있다. 이번 자화상들에선 40대의 강씨가 20대 청년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하게 표현됐다.일부는 상상력이 발휘됐고,어떤 자화상은 하루에 20장 이상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한 모사에 가깝기도 하다. 문소영기자 symun@
  • [2002 대선 대해부] 역대선거와 지역주의

    ■‘지역거래' 정치인/ “우리가 남인가” 박정희·3金이 조장 한국사회에서 ‘지역주의’와 관련된 관심은 주요 선거를 치를 때마다 크게 일어난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낙선운동,선거법 개정,후보자 정보공개 같은 선거운동 방식이나 선거풍토의 변화로 한국선거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지역주의의 경향은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지난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와는 달리 부산,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65개 선거구중에서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한나라당 소속 후보들이 당선됐으며,호남에서는 민주당 소속 후보이거나 ‘당선 후 민주당 입당’을 공언한 친여 무소속후보들이 당선됐다.이같이 선거결과의 지역적 편중성은 한국사회에 있어서가장 심각한 갈등과 대립의 한 단면임이 틀림없다. 지역주의라는 심리적인 현상이 사회적으로 고착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 같은 특정한 매개체를 필요로 한다.박정희와 3김이라는 특정한 인물들이 바로 그러한 매개체 역할을 담당했음은 아무도 부정할 수없다.박정희 정치가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을 동원한 첫번째 인물이었다면,3김은 바로 지역을 담보로 하는 거래의 정치인들이었다. 1997년의 대선에서 나타난 DJP(김대중-김종필)연대는 바로 그러한 정치인간의 지역거래였던 것이다.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바로 그러한 거래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선에선/ 67년 대선때부터 ‘동서균열' 우선 이러한 정치분야에서 나타나는 지역주의 현상을 대통령선거를 통해서 살펴보자.1948년 정부수립 이후 모두 열여섯번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그가운데 아홉번은 직접선거였고,나머지 일곱번은 간접선거였다.따라서 대통령선거에서 ‘지역’이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는 선거는 아홉번의 직접선거로 볼 수 있다.이중에서도 이승만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1950년대의 두번의 선거와 부정선거로 무효화된 1960년 선거를 제외한 여섯번의 선거에서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나타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지역주의적 투표는 최초에는 남북을 축으로 이뤄졌다.1963년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서울,경기,강원 등 중부권에서는 30∼40%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으나,영호남 지역에서는 50∼60%의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반면에 윤보선 후보는 중부권에서는 50∼60%의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나,영호남 지역에서는 30∼40%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196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최근 지역주의의 핵심인 영호남간의 대립,즉 동서를 축으로 하는 지역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영남에서는 박정희 후보가 이전 선거보다 10% 포인트 이상 더 얻어 65% 이상의 높은 지지를 확보한 대신에,윤보선 후보는 호남에서 8∼10% 포인트 더 높은 약 45%의 지지를 확보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이렇게 동서를 축으로 하는 지역주의적 투표의 성격이 더 강해졌다.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영호남의 지역주의적 투표는 더욱 두드러졌다. 박정희 후보는 강원,충청,영남에서,김대중 후보는 서울과 호남에서 각각 65% 이상의 지지율을 보였다.이후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도 이러한 지역주의적 투표는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1987년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는서울,호남,경남을 제외한 지역에서,김영삼후보는 경남,김대중 후보는 호남에서,김종필 후보는 충남에서 각각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이러한 경향은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가 격돌한 1992년 선거에서도 이어졌다.1997년 대선 역시 강한 지역주의적 대립구도를 극복하지 못한 지역패권연대에 의해 승패가 갈리고 말았다. ■역대 총선에선/ 13대 첫 표출… 고착화 추세 대통령 선거에 비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나는 지역주의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지만 역시 점점 더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각 지역별 지지율에서 뚜렷한 지역격차를 발견하기 어렵다.지역보다는 도시와 농촌으로 구별되는 지역규모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역대 선거에서는 대체로 도시화가 많이 진전된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야당지지가 강하고,도시화 정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여당지지가 강한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도시와 농촌으로 구별되는 투표경향이 특정 연고지를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3대(1988년) 국회의원 선거이다.제3공화국 이후 결집되어 있었던 야당세력은 민주당과 평민당으로 나눠지게 되었고,이 선거에서 호남은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에,부산은 김영삼 총재의 민주당에 높은 지지를 보였다.이러한 경향은 14대(1992년),15대(1996년),16대(2000년) 등 세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욱 강해지는 양상으로 계속 이어져 왔다. 16대 선거에서는 적어도 국회의원 선거에서만은 지역주의적 성향이 대통령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대구,경북지역에서까지 지역주의적 투표가 강하게 나타났다. ■지역주의 정치의 해법/ 정책중심 선거전략 ‘급선무' 지역주의 강화에 매개체 역할을 담당했던 3김식 정치가 서서히 막을 내려가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3김정치의 여진이 남아있는 현실이다.또한 아직도 많은 유권자들이 지역을 축으로 하여 정치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게 사실이다.따라서 현실정치에서는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내는 효율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많은 정치엘리트가 이러한 지역감정의동원이라는 효율적인 수단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전망이다. 지역주의에 의한 균열현상은 정치과정의 합리성을 떨어뜨린다.정치과정에서 이념이나 정책은 후퇴하고 지역성이 강조된다.21세기의 국가경쟁력은 정치과정의 합리성이 전제될 때 강화될 수 있다.지역성이 강조되는 정치과정을 가지고는 정치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착화되어 있는 지역주의를 일시적인 한두 가지 정책을 통해 쉽게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역대 정부가 지역주의 타파라는 공언을 해왔으나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적합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장기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실용적인 접근법이 될 것이다. 지역을 담보로 한 정치인들간의 거래에 의해 어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결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국민들은 또 다른 실패한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대통령 실패의 결과는 국민 모두의 고통이기 때문이다.여야 대통령후보는 지역주의를 활용하는 쉽고 단순한선거전략을 버리고 초지역적인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선거전략을 수립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길 바란다. ■유권자에 미치는 영향/ ‘지역 프리즘' 통해 우리정치 현실 이해 지역주의는 한국의 정치현상을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두이다. 그동안 지역주의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대부분의 논의가 거시적,역사적 차원에서 이뤄져왔으며 미시적 차원에서의 경험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다.물론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지역주의,즉 지역주의적 정당구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시적 현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미시적인 수준에서의 지역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지역주의가 유권자 개개인 수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선행돼야만,거시적 차원에서의 지역주의 현상에 대한 근거있는 논의가 가능하다.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유권자가 출신 지역을 사랑하고,자기 지역 출신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이러한 지역주의에 기반한 투표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미국,영국 등 거의 모든 민주국가에서 발견된다. 한국 지역주의의 문제는 이러한 지역주의적 투표가 단순히 자기 지역 출신후보에게 표를 많이 주는 차원을 넘어서,자신의 출신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현상으로 공고화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영남지역 유권자의 상당수는 충청 출신인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며,그가 이끄는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다. 이는 거시적으로 보면 지역주의적 정당구도가 자리잡았음을 의미하며,미시적으로는 많은 유권자의 정치적 사고와 판단의 기저에 ‘지역’이라는 변수가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한다.지역은 유권자들이 정치적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이 되어 버린 것이다.마치 서구 사회의 유권자들이 보수-진보라는 이념을 통해 정치를 바라보듯이,한국의 많은 유권자들은 지역을 통해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후보평가 어떻게/ 영남유권자 상당수 “李가 盧보다 개혁적” 지역주의에 대한 기존의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실제로 많은 유권자들에게 있어서 지역주의 감정은 그들의 정치적 정서와 평가에 영향을 미치며,궁극적으로 그들의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일례로 1997년 대선 당시 전라도인에 대한 거부감이 약한 유권자일수록 김대중 후보나 그가 이끄는 정당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또한 이들 유권자들은 김대중 후보의 국정수행 능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나타냈고,궁극적으로는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하는 양상을 보였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판단에 있어서 지역 변수가 갖는 지배적 위상은 지난달초 실시한 대한매일·KSDC 조사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영남 출신유권자들은 이회창 후보의 자질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했고,반대로 호남 출신 유권자들은 노무현 후보의 자질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했다(대한매일 7월18일자 참조).유권자가 어느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 대권 후보의 자질에 대한 평가와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영남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이회창 후보의 개혁성향을 노무현 후보의 그것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노 후보의 개혁성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반대로 이 후보는 노 후보에 비해 보수적인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인식과 달리 상당수 영남 유권자들은 이 후보를 보다 개혁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이라는 지배적 변수에 의해 유권자의 개혁성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영남 출신의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에게 있어서 개혁이란 “무능하고 부패한 김대중 정부의 퇴출”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지역정당의 문제점/ 타협점 없어 지역갈등 심화 왜 이처럼 지역주의가 우리 정치 현실에 고착화되었는가.왜 많은 유권자가 지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정치를 보게 되었는가.많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역시 거시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정당간의 정책적 차별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이전에는 여당과 야당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여당은 정치적 안정 위에 경제발전을 일관되게 주장했고,야당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외쳤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이러한 정당간 정책적 차이에 근거하여 정치를 바라보고 투표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면서 여야간 정책적 차이가 사라지게 되고,‘지역’이지배적 변수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념을 기반한 정당의 대결은 특히 양당제의 경우 타협점을 찾기 쉽다.즉양당은 선거에서 보다 많은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극단적인 보수 혹은 진보적 입장보다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이념과 비교해 볼 때 지역이라는 갈등구조가 갖는 결정적인 취약점은 중간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호남과 영남의 중간점은 대체 무엇인가.타협점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간 갈등과 대립은 격화되기 쉬운 것이다. ■공동 집필자 약력 대한매일이 민영화 원년을 맞아 선거보도에 일대 혁명을 가져오기 위해 기획·보도중인 ‘2002 선거대해부’시리즈 이번 주제는 ‘선거와 지역감정’입니다. 지역감정의 실체는 무엇이고,이번 대선에서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이번시리즈의 테마입니다.이번 시리즈 역시 ‘대한매일 2002년 대선 선거조사위원회와 조사분석위원회’ 위원들이 공동집필했습니다.공동집필자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명진(李名鎭) 국민대 교수·미국 아이오와대 사회학 박사 ■윤종빈(尹種彬) 명지대 교수·미국 미주리대 정치학 박사 ■김욱(金旭) 배재대 교수·미국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김영태(金榮泰) 목포대 교수·독일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 택지개발지구 환경오염/ 시흥시 정왕동 르포

    경기 시흥시 정왕동 봉화산 일대 69만 8000평에 대규모 임대아파트를 지어 미니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표류하고 있다.지난 5월 말 환경부의 사전 환경성 검토 결과 대기오염이 심해 택지로는 부적합하고 개발하더라도 오염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지역 주민들은 방치되고 있는 땅이 오히려 환경을 오염시킨다며 택지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환경부는 개발반대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환경부의 입장은 녹지대로 보존하자는 것보다는 주변이 공장지대이기 때문에 공기가 나빠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쪽에 가깝다.물론 주민들의 개발 주장은 재산권 행사를 위해서다.현장을 찾아가 오염 상태를 살펴보았다. ■시흥시 정왕동 르포/ 폐차·타이어·가구 ‘쓰레기 몸살' 4일 오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전철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취재차량을 몰아 1㎞쯤 들어가자 봉화산 토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한국수자원공사가 십수년간 이곳에서 흙을 캐내 쓰고 복원을 했다고 하는데 한눈에 제대로 뒤처리를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웃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전철도 다니고 있는데 이곳만 황량한 땅으로 버려져 있는 게 첫눈에 거슬렸다. 말이 산이지 거대한 흙더미나 다름없었다.산으로 연결돼 있는 평지는 장맛비로 곳곳에 웅덩이가 패어 시뻘건 황토물이 고여 있었다. 한때는 꽤 높은 산이었다고는 하지만 흙을 퍼내는 바람에 30∼40m 남짓한 높이로 낮아진 산봉우리에 오르자 자갈밭 벌판에 자동차경주를 벌인 듯 바퀴자국이 깊게 나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민들은 주말이면 이곳에서 행글라이더와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려 사람들이 북적인다고 했다.황토 먼지가 얼마나 날릴지 상상이 됐다.안전장치 하나 마련돼 있지 않은 곳에서 자동차 경주가 열린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옆에 있는 또다른 산으로 가보았다.꾸불꾸불하게 난 길을 덜컹거리며 달린지 10여분.숲속 곳곳에 마구 내다버린 쓰레기와 드럼통,녹슨 농기구들이 보였다.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몰래 갖다버린 듯 수명이 다한 폐차도 세워져 있었다.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사용되는 한 곳에는 차량으로 실어다 놓은 폐가구들이 비에 젖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산 밑을 일구어 만든 밭과 논 가운데는 컨테이너로 지은 가건물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한 허름한 가건물에 들어가보니 온갖 쓰레기가 방치돼 있었다.어떤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듯 가재도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철조망이 둘러쳐진 토취장(土取場)은 잡풀들만 무성했다.붉은 황토가 군데군데 파헤쳐져 있었다.마치 군인들이 훈련하는 각개전투장을 연상케 했다. 우거진 숲이나 초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도저히 녹지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곳이었다.환경보전이라는 명목으로 개발을 중단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주장이 이해될 듯도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한 노인은 “누구 땅인지도 모르지만 푸성귀라도 심어먹는 재미로 돌밭을 일구어 3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정왕동 인근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는 이 노인 말로는 봉화를 올렸다고 해서 봉화산이라고 이름붙여졌다는데,까뭉개지고 뻘건 속살을 드러낸 이곳 어디에도 봉화를 올렸음직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비포장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쳐진 철조망에는 땅 매매를 알선한다는 부동산 광고판들도 즐비했다.개발과 함께 토지가 수용되면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급히 심어놓은 듯한 과실수들도 보였다. 개발예정지를 뒤로 하고 시흥시 정왕역 앞으로 나왔다.역 앞 역시 도로건설과 곳곳에 건물을 새로 짓느라 어수선했다.역 앞에 들어선 ‘역전프라자’건물 바로 앞에서는 최근 마사회의 장외마권발매소(TV경마중계소)가 들어선 것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확성기 소리가 요란스러웠다.부동산업소들도 즐비하게 있었다.한 부동산업자는 정왕동에만 300곳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정왕동은 신흥도시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도시화의 몸살을 앓고 있는 듯했다.정왕동에는 60개 아파트단지가 있고,13만여명이 살고 있다.정왕전철역·오이도전철역이 있으며,인근에 월곶해양관광단지·오이도선착장이 있다. 또 정왕동과 대부도를 연결하는 3㎞의 제방이 있어 주말이면 많은 행락객들이 이곳을 찾는다.특히 시화산업단지 2단계 추가 확장사업 등을 고려할 때 대규모 인구 유입이 지속될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시흥시와 주민들은 시의 특성상 산업단지와 인접해 있고 중소기업 배후도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있는 추세라며 주택 추가건설은 필수적이라고 했다.이런 상황에서 토취장을 방치하고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왕동 바르게살기위원회 이재방 대표는 “대기오염 문제가 나올 때마다 으레 이곳 단지를 들먹이는데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먼지 속에서 살고 있는 특수인간”이냐고 되묻고 “오염배출업소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생각은 않고 애꿎은 주민들 민원만 앞세워 지역개발을 미루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8월부터는 새마을지도자협회 자원봉사회 등 직능단체들과 힘을 합쳐 정왕동 토취장 택지개발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시흥 유진상기자 jsr@ ■양 부처 입장차/ 개발·보전 줄다리기 ◇건교부- 공단입주업체와 주변 인구가 계속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택지개발은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환경부에서 제동을 건 환경오염 요소에 대해 저감 대책을 마련한 뒤 다시 협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대기에 영향을 미치는 오염 요소가 대기를 통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알아보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하고 있다.”면서 “연말까지 환경오염 요소 저감 대책을 마련,다시 환경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환경부에서 지적한 환경오염 항목 가운데 유일하게 미세먼지만 기준치를 넘어섰을 뿐 나머지 항목은 기준치 이하였다.”면서 “미세먼지가 초과한 것도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는 3월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황사 등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흥시 관계자 역시 미세먼지가 기준치를 넘어섰다는 데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했다. 시 관계자는 환경오염도로 치면 안산시 신길동도 마찬가지일 텐데 택지개발지로 허가를 내준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환경부는 택지지구 지정 후 사전 환경성 검토와 구체화 단계에서환경영향평가를 한다.지난 3월 정왕지구에 대한 1차 사전환경성 조사 결과대기오염 지역으로 택지개발은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바람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지역에 대규모 건물이 들어설 경우 건물에 막혀 대기오염이 심화된다는 주장이다.또 녹지공간이 사라짐으로써 주거 생활환경이 더욱 악화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무엇보다 환경오염 영향이 큰 시화단지와 남동측 반월공단에 악취 배출 업소 300여곳이 입주해 있어 주민들의 민원 발생이 많다는 이유를 꼽는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염요소 저감 대책이라면 가구수를 줄여 고밀도 아파트를 저밀도로 바꾸고 녹지대를 늘리는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 지역은 택지개발 지구에서 반드시 제외해야 하고 산림·녹지공간이나 자연생태공원,체육공원 등으로 활용해야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교부가 환경부에서 내린 택지개발 부적합 판단 사유를 충족시키는 안을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협의 과정에서 건교부가 택지 개발을 계속 고집할 경우 환경영향평가로 다시 제동을 걸겠다.”고 말했다. 유진상기자 ■정왕동 택지지구는 경기 시흥시 정왕동 봉화산 일대는 지난 87년 한국수자원공사가 토취장 허가를 얻어 최근까지 흙을 채취해왔다.토취작업을 위해 마을 주민들을 이주시켰으며 주변 땅을 매입하거나 임차했다.현재는 토취작업이 모두 끝났고 복토작업과 산림 복원까지 마쳤다. 토취장으로 사용되기 전 봉화산은 꽤 높았던 산으로,정상에 오르면 서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풍광도 좋았다고 한다.하지만 토취 과정에서 산은 없어지고 주변 땅 역시 돌과 잡풀만 자라는 황무지로 변한 채 방치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지난 2월 수자원공사 소유 40만평,개인 소유 28만 8000평 등이곳 68만 8000평에 대해 그린벨트를 해제,2003년부터 2007년까지 1만 6000여가구의 대단위 주택단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시화·남동공단이 가깝고 서해안고속도로와 국도 39호선,지하철 4호선이 편리하게 연결되며 서울에서 20㎞ 가량 떨어져 있는 등 입지 여건이 좋다는 설명이었다. 이 지역은 시화산업단지,남동공단,반월공단 등 3개 공단이 인접해 있어 대기오염이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인근 공단에는 400여개의 화학·도금업체,2700여 공장에서 악취를 내뿜고 있다.정왕동 옆 5만 5000가구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97년 입주 후부터 지금까지 5700건의 민원이 제기됐다. 이 아파트도 원래는 준공업 지역이었으나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의 국민주택 200만호 공급 정책에 따라 주거용지로 바뀌었다. 97년에는 대기오염을 차단하기 위해 공단과 주택단지 사이에 높이 10m의 거대한 방풍벽을 3.8㎞ 길이로 만들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환경부가 조사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의 미세먼지 평균 측정치는 94.7㎍/㎥로 기준치 7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유진상기자
  • 오피니언 중계석/ “NGO 재정지원 자율성 훼손 없어야”

    ◆강상욱 교통개발연 책임연구원 'NGO지원' 논문요약 정부의 재정지원은 NGO의 양적 성장 측면에선 긍정적인,질적 성장 측면에선 부정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그러나 정부 지원이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도 NGO의 질적 성장은 이루어져야 하며,이는 NGO와정부가 함께 이루어야 하는 공동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강상욱 교통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이 한국비영리학회의 학회지인 ‘한국비영리연구’ 창간호에 발표한 논문 ‘NGO의 성장과 정부 재정지원의 영향’은 우리나라 정부의 NGO 지원 실태를 분석하고,향후 정부 지원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논문을 요약한다. NGO(비정부기구)는 비영리로 민간의 자발적 동기에 의해 설립된 조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재정 형편 때문에 불가피하게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90년대 이후 정부의 민간단체 지원 총액은 90년 844억원에서 98년 2860억원으로 명목가격으론 4배,실질가격으로는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 보조는 교육,문화예술 등 주로 준공공기관의 성격을 띠거나 연구 및 학술단체 등에 집중됐고,엄밀한 의미에서 자율적인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은 극히 미미했다. 지원 목적도 시민단체의 활동을 지원한다기보다는 정부의 위탁업무와 같은 개별적 사업수행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다만 행정자치부와 국정홍보처,서울시 등 자치단체의 경우는 지원의 주목적을 시민단체의 성장과 활동 지원에 두고 있고,모든 부문의 시민단체를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90년대 이후 급성장한 우리나라 NGO의 특징은 서구의 ‘서비스(service)형’ 단체라기보다는 ‘보이스(voice)’형 단체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서구의 서비스형 NGO가 정부와의 실질적인 기능적 협력에 바탕을 둔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긍정적 요인이 부각되는 반면,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와의 일정한 대립·긴장관계를 상정한 보이스형 단체의 성격으로 인해 정부 이해의 반영이나 개입으로 인한 자율성의 훼손 등 부정적 측면이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로 이어지는 집권세력의 성격변화에 따라 NGO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이 상이하게 달라져 왔다는 사실은 이같은 부정적 측면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NGO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며,향후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까. 우선 정부 재정지원에 대한 시각이다.부정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 재정지원은 재정상태가 취약한 우리나라 초기 NGO 성장에 긍정적으로 기여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향후 지원도 지속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첫째,기부문화의 전통이 취약한 여건 하에서 회원 회비나 기부에 의존하는 재정 자립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둘째,정부와의 기능적 차원에서 적절한 관계 정립이 이루어진다면 재정 지원을 통한 사회적 효율성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요인이 충족되려면 현재의 정부 재정지원 방향은 개선되어야 한다.현재 NGO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의 부정적 측면은 지원 자체보다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지원방식과 불투명한 지원동기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향후 개선방향은 첫째,정부가 개별단체나 대상사업의 선정에 직접 관여하는 방식보다는 세제감면,우편료나 시설사용 등 편의 제공,기금조성 지원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특정 단체 위주로 성장을 유인하는 문제의 소지를 없애야 할 것이다. 둘째,정부의 불투명한 지원 동기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기능적 차원에서 NGO와의 구체적 관계 정립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NGO의 이점을 활용하여 정부 업무나 사회적 서비스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협력 분야와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또 NGO는 보이스형 또는 서비스형 단체와 같은 단체의 위상과 성격을 감안하여 대정부관계를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리 임창용기자 sdragon@
  •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 공방/ “”공적자금 규명 국조를”” “”한나라당에 원죄 있다””

    23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공적자금과 미국 금융시장 대책,한·중 마늘협상 파문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그러나 밤 늦게 시작된 탓에 상당수 의원들이 자리를 비운데다 정부측 답변도 서면으로 대체해 본회의장은 맥빠진 분위기를 면치 못했다. ◇공적자금 논란 - 한나라당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책임자와 낭비된 공적자금 규모를 규명하기 위해 국정조사가 실시돼야 한다.”고 거듭 정부를 압박했다.민주당은 국정조사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지난 정권의 정경유착이 공적자금 조성의 원죄”라며 한나라당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맞받았다. 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 의원은 공적 자금 상환대책으로 “상환기간을 15년 정도로 단축하고,재원은 세금인상 대신 불요불급한 세출을 줄여 조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주장했다.이어 “정부가 국채상환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차환발행 동의 필요성이 사실상 없어졌는데도 민주당은 아직도 예보채 차환발행에 동의하면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때 지난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김원길(金元吉) 의원은 “공적자금 미회수분의 대부분은 과거 정권하에서 수십년간 누적된 부실대출을 메워주고 회수되지 못한 것”이라며 “여기에는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나,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선거자금,지난 대선에서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국세청동원 불법선거자금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나라당을 공격했다.자민련 원철희(元喆喜) 의원은 “공적자금 상환대책 수립과 회수,관리를 위해 국회에 상설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미국 경제위기 대책 - 한나라당 박종근(朴鍾根) 의원은 “미국경제 불안으로 내년에 중대한 경제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촉진과 수출진흥,금융안정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주문했다. 민주당 김효석(金孝錫) 의원은 “미국에서 발생한 회계투명성과 지배구조의 문제점은 우리의 경우 훨씬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며 집단소송제 조기 도입을 촉구했다.같은 당 김원길 의원은 S-Oil의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회계제도의 보완대책을 물었다. ◇마늘협상 - 한나라당 이인기 (李仁基) 의원은 “당시 합의내용은 청와대에도 보고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대통령이 협상결과를 은폐하도록 결정한 최고 책임자가 아닌지 많은 국민은 의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또 WTO 세이프가드 관련 협정과 부속서에 정식 서명이 안된 점 등을 들어 협상 무효를 주장하며 재협상을 통한 세이프가드 연장을 촉구했다. 민주당 장성원(張誠源) 의원은 그러나 “부속서도 본합의서와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고 재협상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대신 농가소득을 보전할 대책을 주문했다.같은 당 김효석 의원도 “재협상과 관계없이 농가 희망대로 마늘을 100% 수매해 소득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열린 세상] 개헌논의 순리적인 접근 필요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연말 대선을 앞두고 다시 개헌론이 튀어나오고 있다.권력형 비리의 주범이 마치 현행 대통령제에 있는 것으로 보고 권력분산형 통치구조를 채택하겠다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헌론이 그것이다.그러나 이는 시기적으로나 그 내용에 있어서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정략적 발상이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헌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장전(章典)으로서 기능하는 데 있다.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우리 헌정사에서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국민이 진정한 개헌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1948년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공포된 이후 9차에 걸친 개헌은 모두 통치조직 내지 통치기관의 형태와 구성에 초점이 맞추어 졌으며 기본권에 관한 손질은 그 과정에서 구색 맞추기로 끼워넣는 데 지나지 않았다. 물론 헌법규범과 그 규율대상인 사회현실의 변화에 따른 시대적 추세로 볼때,그리고 지난 15년간에 걸친 현행 헌법의 운용과정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된다하겠다.따라서 현 시점에서 각 당의 대선후보는 개헌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그 내용을 선거공약으로 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집권 후 국민의사의 충분한 수렴과정을 거쳐 개헌을 단행하는 것이다.이것이 현 단계에서의 개헌논의에 관한 순리적인 접근이라고 본다.그저께 제헌절 44주년을 맞았지만 필자는 권력욕으로 점철된 파란의 헌정사가 더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향후 개헌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할 바람직한 방안을 몇가지 모색해 본다. 우선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제4조의 평화통일조항 사이의 상충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개헌이 시급히 요구된다.남북관계가 급변하고 있는 마당에 헌법 제3조는 아직도 북한을 우리 영토의 일부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집단으로 보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이러한 헌법구조는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의 헌법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있다.덧붙여 인류보편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입각한 통일정책의 수립,집행의 근거가 되는 헌법규정은 헌법개정의 한계라는 점과 아울러 대북,통일정책이 결코 초헌법적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다음 국가권력구조로서의 대통령제냐,내각제냐의 문제는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결단의 문제로서 그 당부의 가치판단은 논외로 한다.다만 대통령제를 유지할 경우 이를 보완하는 개헌작업은 필요하다고 하겠다. 먼저 대통령선거에서의 결선투표제 도입 필요성이다.현행 헌법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결선투표제를 두지 않는 관계로 선거권자의 과반수에도 못 미치는,예컨대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특정지역의 몰표만으로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실제로 현행 헌법 시행 후 3차례에 걸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후보 모두 과반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37%,42%,40%)로 당선되었다.대통령 선거에서의 결선투표제의 부재는 통치권의 민주적 정당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집권수단으로서의 지역패권주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따라서 개표결과 투표권자 과반수의 득표를 한 후보가 없을 경우에 외국의 경우처럼 차점자와사이에 결선투표를 하도록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와 더불어 5년 단임의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현행 5년 단임제는 장기집권으로 인한 독재의 우려를 염려한 헌정사적 반성에서 온 것이지만 어쨌든 직선대통령의 임기 중 공과에 대하여 국민이 선거를 통해 심판의 기회를 갖는다는 직선제의 본질에 반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현행 단임제는 대통령의 독선과 독단을 가져옴은 물론 임기 중반부터 통치권의 누수현상을 가져와 국민적 역량의 결집에 장애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밖에 소비자,환경,노약자 등과 관련된 이른바 현대형 인권의 강화,고위공직자의 임명시 인사청문회제도의 확대 도입,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국민(주민)소환제 도입,헌법재판관과 대법관에 대한 국민심사제도입,국무총리제 폐지 및 감사원의 국회소속화 등이 향후 개헌과정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이석연 변호사
  • 정치권 ‘헌법 상처내기’ 위험수위

    제54주년 제헌절인 17일에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개헌론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일각에서는 현행 헌법에 대한 ‘상처내기’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나라당은 제헌절 논평을 통해 현 단계에서의 개헌반대 입장을 분명하게한 반면,민주당은 명확한 입장을 유보했다.특히 민주당 정치개혁특위가 개헌공청회를 24일 강행키로 하는 등 개헌론은 ‘진행형’이다.자민련도 내각제개헌논의 개시를 촉구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해소한다는 명분에서 촉발된 개헌론은 그실현 여부를 떠나 대선정국의 불안정성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한나라당도 대선 이후를 전제로,현행 헌법의 개정 필요성 자체는 인정했다. 현재 개헌논의는 민주당에서 가장 활발하다.정균환(鄭均桓) 총무와 이인제(李仁濟) 전 고문,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 등이 개헌필요성을 제기해왔다.한광옥(韓光玉) 최고위원도 16일 개헌론에 가세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내각제가 지론이지만 민주당내 개헌세력이 거론하는 ‘분권적 대통령제’의 일환으로 이원집정부제도 수용할 수 있다며 적극적이다.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도 개헌 논의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대선전 개헌에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전고문,김종필 총재,박근혜대표 등 ‘반창(反昌)-반노(反盧)’성향의 인사들이 주도하는 개헌론은 대선구도의 급변이 없으면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민주당 개헌공청회가 19일에서 24일로 연기되는 등 진통을 겪은 것도 개헌론의 약세를 보여준다. 8·8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완패,노 후보가 위기를 맞거나,‘정치권 9월 지각변동설’이 현실화돼 무소속 이한동(李漢東),정몽준(鄭夢準) 의원 등 제3세력 연합군의 이합집산 시에는 개헌론이 기폭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회창,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정세변화에 따라 급격히 변화할 경우,수세에 몰린 후보측이 개헌론에 전격가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물론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여론의 흐름이다.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하에서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시대를 지내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나타나 국가리더십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개헌 당위론의 근거다.이는 최소한 몇몇 후보의 개헌론 대선공약화의 토대가 될 것 같다. 이춘규기자 taein@
  • 총리서리 과거 사례/ 50년이후 21명 ‘서리생활’

    역대 정부의 ‘총리서리’는 지난 50년 신성모(申性模)씨부터 장상(張裳) 현 서리까지 모두 21명에 이른다.지난 75년 이후 6공 노태우(盧泰愚)정부 후반기인 91년까지는 내각개편 때마다 총리서리 제도가 관행처럼 유지됐다.이기간에는 상당수 총리가 서리 생활을 했고,‘정상적으로’직무를 수행했다. 총리에 대한 국회동의 제도 자체가 없었던 제3공화국이나,내각제였던 제2공화국은 서리 체제가 없었다. 김영삼(金泳三)정부 때도 마찬가지다.총리서리 임명을 자제한 때문이다.6공 말기 “서리체제가 법적 근거가 없고 헌법에 명시된 국회 임명동의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된 탓이기도 하다.그래서 노태우정부 마지막 총리인 현승종(玄勝鍾) 총리를 시작으로 문민정부까지 이런 관행은 사라졌다.민주당도 과거 야당 시절 서리체제를 반대했다.가깝게는 노태우정부 시절의 강영훈·노재봉·정원식 총리서리 때를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총리서리가 없는 기간에도 총리직은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공백상태를 맞지는 않았다.당시 정부조직법에 따라 경제기획원장관을 겸임하는 부총리가 그 직무를 대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李會昌) 전 국무총리가 사표를 제출했을 때도 이영덕(李榮德)씨를 총리내정자로만 임명해 놓고,서리임명을 별도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는 박태준(朴泰俊) 전 총리만 빼고 김종필(金鍾泌)·이한동(李漢東) 전 총리가 총리서리의 꼬리표를 달았다. 이전 역대 총리 가운데는 4대 백두진·12대 최규하·14대 남덕우·15대 유창순·16대 김상협·17대 진의종·18대 노신영·19대 김정렬·20대 이현재·21대 강영훈·22대 노재봉·23대 정원식 등 12명이 총리서리를 지냈다.신성모(50년),허정(51년),이윤영(52년),박충훈(80년),이한기(87년)씨 등은 총리서리만 하다 물러났다.백한성(54년)씨는 임시서리만 했다. 이지운기자 jj@
  • 돌아온 이한동 ‘잰걸음’,박의장 에방 복귀 신고

    2년 2개월만에 정치권으로 돌아온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8·8재보선 뒤 있을지도 모를 정치권의 격변을 상정,여러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15일 오전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을 예방,정치권 공식복귀를 신고했다.이 자리에서는 정치적인 화제는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는 오후에는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일정을 소화했다.역대 총리직을 물러난 인사들과는 달리 김영삼(金泳三),최규하(崔圭夏)전 대통령을 예방한 데 이어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와도 만났다. 총리직을 물러나기 직전인 9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독대했던 그는 이날 김 전대통령과 김 총재를 만나 소위 3김 모두와 친밀감을 과시한 셈이다. 특히 김 총재와의 만남은 그를 제명했던 자민련과의 관계를 복원,대선구도의 격변에 대비하려는 흔적이 엿보인다.자민련 일각에서 그를 재영입하자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전총리는 앞으로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도 예방한다.조만간 여의도에 개인사무실을 열어‘꿈의 산실’로 활용할 계획이다.기본적인 정지작업이 마쳐지면 이달말 10일 안팎 일정의 외유도 검토,재보선뒤의 구상을 가다듬을 계획이다. 민주당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의 대안으로 이 전총리가 거론되는 빈도가 잦아지는 상황도 향후 그의 정치적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민주당내에서는 “국민경선을 통해 대선후보가 결정됐는데 대안론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환상”이라는 비판론도 제기된다.대안론을 전제로 한 향후 그의 정치적 행보 예측이 부질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춘규기자 taein@
  • ‘정직과 내실경영’ 재계의 귀감/’선 굵은 경영자’ 박정구 금호그룹회장 별세

    박정구(朴定求) 금호그룹 회장이 13일 오전 8시50분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향년 65세. 고인은 지난해 2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MD앤더슨암센터에서 폐기종 치료를 받은 뒤 9월 귀국,한때 건강을 되찾아 경영 일선에 복귀했으나 최근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다. 유족은 부인 김형일(金亨一·56)여사와 은형(恩瑩·32),은경(恩慶·30),은혜(恩惠·26),철완(哲完·24)씨 등 1남 3녀.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며 17일 오전 가족과 그룹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용인 금호인력개발원에서 영결식을 갖고 서울 광화문 금호그룹 사옥에서 노제를 지낸 뒤 장지로 향한다.장지는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 선산.(02)3010-3114. 고인은 금호그룹 창업자인 고 박인천(朴仁天·84년 작고) 회장의 5남3녀 중 차남으로 지난 96년 4월 박성용(朴晟容)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에 취임,그룹을 이끌어 왔다. 그의 경영스타일은 ‘정직’과 ‘내실’두 단어로 요약된다.직원들이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면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거짓 보고땐 호된 질책을 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81년 한해 적자가 50억원이 넘던 (주)금호의 경영을 맡아 2년만에 120억원의 흑자를 내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정부도 고인의 이같은 신의와 내실경영의 공을 인정해 13일 금탑산업훈장을 추서했다. 고인은 또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기업인으로 꼽힌다.80년대부터 그룹내에서 중국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베이징에 고속버스 회사를 설립하고 타이어 공장 건설을 주도했다.이들 기업은 요즘 금호의 효자기업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고인의 빈소에는 14일에도 고인의 경영 신조를 기리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속속 이어졌다. 장상(張裳) 국무총리 서리와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통령후보,한화갑(韓和甲) 민주당 대표최고위원,박지원(朴智元) 대통령 비서실장,정몽준(鄭夢準) 대한축구협회장,이한동(李漢東) 전총리 등이 다녀갔다. 또 재계에서는 구본무(具本茂) LG 회장,조석래(趙錫來) 효성 회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중국 정부는 리빈(李濱)주한대사를 조문사절로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차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은 조화를 보냈다. 고인은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광주상공회의소 회장,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연세대 동문회장 등을 역임했다.또 84년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96년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7·11 개각/ 부처 표정-장관 평균재임 10.6개월 ‘최단’

    7·11 개각으로 국민의 정부에서 4번째 총리가 탄생했다.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사람은 97명,평균 재임기간은 역대정권에 비해 가장 짧은 10.6개월이다.총리실을 비롯,대부분의 부처는 이번 개각 내용을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내각 임기-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17.6개월.이는 6명의 총리를 배출한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10개월보다는 긴 편이다. 그러나 장관 평균 재임기간은 10.6개월에 불과하다.법무부와 보건복지부,해양수산부는 현 정부 출범 53개월만에 7번째 장관을 맞았다.그러나 김명자(金明子) 환경장관은 99년 6월부터 3년2개월째 장수하고 있다.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전두환(全斗煥) 정부 18.3개월,노태우(盧泰愚) 정부는 13.7개월,김영삼 정부는 11.6개월이다. ◇의외의 인사- 총리실은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이 헌정사상 초유의 총리서리에 지명된 데 대해 한마디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업무와 관련해선 “잘 할 것”이라는 기대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다.실무에 밝은 신임 김진표(金振杓) 국무조정실장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법무부는 ‘외압설’로 청와대와 불편한 관계였던 송정호(宋正鎬) 장관의 교체를 예상했다는 반응이다.그러나 법무부와 검찰 관계자들은 김정길(金正吉) 전 법무부장관이 퇴임 1년 2개월만에 되돌아오자 ▲검찰조직을 조기에 장악하기 위한 불가피한 인사 ▲이명재(李明載) 검찰총장에 대한 견제카드라는 등 엇갈린 해석을 내놓으며 장관과 총장간 부조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문화관광부는 첫 내부승진을 기대하다 김성재(金聖在)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이 임명됐다는 발표가 나오자 아쉽다는 표정이었다.윤형규(尹逈奎) 차관도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유임이 예상됐던 보건복지부와 해양수산부 직원들도 장관 교체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태복 전 장관이 지난 1월29일 취임후 한달간 장관실에서 침대생활을 하면서 직원들을 독려하고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과감한 인사를 단행하는 등 의욕적으로 여러가지 개혁조치를 취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 과정에서 촉발된 기존 관료들의 반발과 관련 단체들의 저항이 예상보다 강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처종합
  • 과거사례/중립내각 92·97년 두차례 구성

    우리 헌정사에서 중립내각은 지난 92년과 97년 두차례 등장했다.모두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의 일로,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두 전 대통령의 임기말 때 이뤄졌다. 과거 중립내각들도 지금처럼 정권이 어려운 처지였을 때 구성됐다.다만 배경이나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첫 중립내각은 92년 노태우 대통령이 민자당을 탈당하면서 이뤄졌다.당시 명예총재로 있던 노 대통령은 14대 대선을 석달 앞둔 그해 9월18일 김영삼(金泳三) 대선 후보와 단독 회동한 뒤 명예총재직과 당적을 모두 포기한다고 선언했다.이와 함께 중립내각 구성을 약속했고,이에 따라 10월초 정원식(鄭元植) 총리가 사임하고 현승종(玄勝鍾) 총리체제가 출범했다. 당시 중립내각 출범은 앞서 4월 실시된 14대 국회의원 총선과 연관돼 있다.김대중(金大中) 총재가 이끌던 민주당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강도높은 대여투쟁을 벌였고,민심이반이 가속화하자 김영삼 대선후보가 노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으로 중립내각을 출범시킨 것이다.훗날 노 대통령의 탈당은 김대중 총재당선에 대비,‘사후보장’을 받으려는 목적이 컸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현승종 내각은 12월 관내 기관장들이 모여 여당후보 당선을 위한 노력을 다짐한 부산 복국집사건이 터지면서 중립성에 타격을 입었다. 97년 중립내각은 그해 11월7일 신한국당 총재이던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으로 이뤄졌다.고건(高建) 총리 내각이 김 대통령 탈당과 함께 중립내각이 된 것이다.당시 그의 탈당 역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대신 국민신당 이인제후보를 밀려는 의도’‘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로부터 사후보장을 받기 위한것’등등의 해석을 낳았다. 앞서 두차례의 중립내각 출범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야당 대선후보로서 ‘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했었다.총재직 사퇴와 민주당 탈당에 이어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선후보로부터까지 중립내각 구성을 요구받고 있는 그의 뒤바뀐 처지는 한국 현대정치사의 또 다른 질곡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진경호기자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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