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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盧, 전직대통령 우회적 평가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연세대 리더십 특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우회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을 보니 다 죽다 살아난 사람이다.제 앞에 대통령이 되신 분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라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 그렇죠.박정희 전 대통령 결코 찬성할 수는 없지만 한강 건널 때 목숨 걸지 않았나.전두환,노태우… 어떻든 쿠데타는 실패하면 죽는 겁니다.찬성할 수 없지만,공짜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이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다들 돌아가실 뻔했다.”고 덧붙였다.노 대통령은 “저는 다행히 목숨 걸지 않고 대통령이 된 첫 번째”라면서도 “그러나 밑천이 들린 것을 보면 제가 제일 화끈히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목숨걸지 않고 대통령된 첫 사례” 일부 전직 대통령은 ‘지도자의 자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거론됐다.노 대통령은 “말할 자격이 없는 지도자가 좋은 말을 자꾸 하면 좋은 말을 버린다.”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 민주주의를 말살시켜 놓고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한다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고 후유증이 엄청났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정치를 비판했다.또 “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내건 게 정의로운 사회다.”라고 꼬집었다.노 대통령은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을 겨냥,“절대 보통사람일 수 없는 분이 보통사람이라고…”라며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비방하는 결과가 됐네요.”라고 웃어 넘겼다.하지만 “어쨌든 사실”이라고 못박았다. ●高 전총리 애독서 ‘열국지’ 거론 노 대통령은 또 고건 전 총리가 애독한다는 ‘열국지(列國志)’를 거론해 주목을 끌었다.군웅할거 시대에 난세의 리더십을 보여준 ‘열국지’에 대해 노 대통령은 “열국지 시대 리더 자질을 갖고 와서 ‘이거 하라는데’,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각료제청권 행사 문제를 놓고 ‘다르게 판단한’고 전 총리의 리더십을 비판한 게 아니냐는 측면에서 관심이 증폭됐다. 문소영기자
  • 검찰인사 주요간부 프로필

    ●박상길 대검 중수부장 특수수사 요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두루 거친 엘리트 특수수사통.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한보 사건,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등을 처리했다.민감한 사건들이었지만 무리없이 처리했다.▲서울(51) ▲대검 중수부 1·2·3과장 ▲서울지검 특수 1·2·3부장 ▲대검수사기획관 ▲서울지검 3차장 ●강충식 대검 공안부장 겉보기에는 무뚝뚝하지만 실제로는 합리적이고 온화하다.기획·특수·형사분야 등을 두루 거쳤다.서울지검 시절 3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외화밀반출 사건 등 기업들의 재산도피 사건을 도맡아 말끔히 처리했다.▲전남 광주(51)▲서울지검 외사부장▲광주지검 순천지청장▲서울지검 서부지청장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 사시 19회를 대표하는 검찰행정·기획통이다.강금실 법무장관을 보좌,향후 검찰제도를 개혁하는데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업무처리때 원리원칙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입이 무거워 보안에도 철저하다.▲부산(52)▲법무부 검찰과장▲서울지검 형사부장▲서울지검 2차장▲북부지청장 ●임래현 광주고검장 재치가 넘치는 성품에다 상황 판단이 빠르다.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사분야를 개척하는데 열성적이다.지난 98∼99년 순천지청장 재직시절 ‘영·호남 화합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전남 광주(52)▲서울지검 형사부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광주고검 차장검사 ▲전주지검 검사장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 원만한 성격으로 선·후배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법무부 검찰2과장으로 재직하던 93∼95년 벌금전과기록 말소,형 시효법 개선 등 개혁법안을 입안했다.청와대 및 안기부 파견 경력도 있다.▲울산(54)▲서울지검 형사부장▲평택지청장▲서울고검 공판부장▲대검 기획조정부장▲인천지검장 ●안대희 부산고검장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땅에 떨어졌던 검찰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이다.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고검장으로 승진선에서 마무리됐다.▲경남 함안(49)▲서울지검 특수부장▲부산지검 동부지청장▲서울고검 형사부장▲부산고검 차장 ●정상명 대구고검장 선배들에게 대놓고 쓴소리를 할 만큼 직설적이다.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사시 동기생중 한 명이다.참여정부 출범 후 기수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인사로 차관에 발탁됐었다.▲경북 의성(54)▲서울지검 조사부장▲〃 2차장▲〃 동부지청장▲법무부기획관리실장 ●서영제 대전고검장 전형적인 강력수사통이다.2년간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있으면서 조직폭력배 500여명,마약 등 강력사범 500여명을 검거했다.범죄 예방을 위해 국민들에게 수사 결과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충남 서천(53)▲서울지검 강력부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청주지검장 ●이정수 대검차장 매일 새벽 10㎞ 조깅을 거르지 않을 정도로 한 번 세운 원칙에 철두철미하다.특수·공안·기획분야를 두루 섭렵했다.95년 수사기획관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깔끔히 처리했다.일본에 대해서도 해밝은 지식을 갖췄다.▲충남 서산(54)▲대검 수사기획관▲서울지검 1.3차장▲부산지검장 ●김종빈 서울고검장 매사 부지런하고 순리와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다.수원지검 강력부장 재직때 화성 연쇄살인사건 수사와 관련,유전자 감식기법을 최초로 수사에 도입하는 등 검찰 실무제도 개선에 많은 기여를 했다.▲전남 여천(57)▲서울지검 강력부장▲순천지청장▲대검 수사기획관▲법무부 보호국장▲대검 중수부장 ●정진규 법무연수원장 합리적이고 온화한 외유내강형이다.대검 공안2과장,서울지검 공안 1,2부장을 역임하는 등 검찰내 ‘공안통’으로 불린다.프로급 테니스 실력을 갖춘 만능 스포츠맨으로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서울(58)▲서울지검 공안1,2부장▲대구지검 1차장▲대검 기획조정부장▲인천지검장 ●김상희 법무차관 특수·기획통으로 대형사건을 많이 다뤘다.‘12·12,5·18 사건’ 재수사때 주임검사로 활동했다.97년 대검 수사기획관때는 한보사건 및 김현철 비리사건을 심재륜 당시 중수부장과 함께 처리했다.DJ정부 시절 상대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경남 산청(53)▲법무부 검찰3과장▲대검 수사기획관▲제주지검장 ˝
  • [씨줄날줄] 야당특사/김경홍 논설위원

    1990년을 전후해 ‘초당외교’라는 말이 유행했다. ‘1노3김’이 한치 양보도 없이 각축전을 펼치던 때다.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외교를 선언한 이후 야당은 인기몰이식 초당외교를 내세웠고,여당은 소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초당적 협력’이라는 용어로 야당들을 끌어들였다. 야당 총재들 가운데 누가 먼저 소련땅을 밟느냐도 양보할 수 없는 경쟁이었다.그 결과 1989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야당총재로는 처음으로,그리고 3당합당으로 여당대표가 된 후 1년 만에 다시 소련땅을 밟았다.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모스크바의 공항에서 입국이 무산되는 등 눈물을 삼켜야 했다.이후 김영삼 대표와 박철언 정무장관간의 ‘누가 한·소 수교의 숨은 주역인가.’하는 생색논쟁은 북방외교를 정치적 논쟁 차원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훗날 드러나게 되지만 이 과정의 초당외교는 당리당략과 정치논리로 인해 국익을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 국가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초당적 협력과 대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지금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이라크 파병,주한미군 재배치,새로운 한·미동맹관계 정립 문제 등 미묘하고,위험하고,복잡하고,불안한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정치·사회·경제 주체들도 논쟁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정당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당일색’이 아니라 ‘일당사색’에 이를 정도로 복잡하다.초당적 차원이 아니라 초국민적 차원의 고민과 협력이 필요한데도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한나라당 특사 자격으로 미국으로 떠났다.박 의원은 미 백악관과 국무부,국방부 등의 고위관료와 의회 인사들을 만나 주한미군 재배치에 관한 미국 정부의 생각을 듣고 한나라당 입장을 전달한 뒤 돌아온다고 한다.미안한 얘기지만 국내논쟁도 정리되지 않은 사안을 두고 초선의원을,국제관계에 대한 지식이 좀 있고 미국 조야인사 몇몇을 안다고,야당이 특사로 파견한 것은 국익을 놓고 본다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정부당국이나 정당들간 논의나 합의도 없이 불쑥 나서는 것은 초당외교가 아니라 당리당략이거나 인기몰이일 뿐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hok@seoul.co.kr˝
  • [씨줄날줄] 목욕탕론/우득정 논설위원

    지난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경제수석에 기용된 박재윤씨는 경제전문가,언론인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의견 수렴 작업에 들어갔다.‘군사정권’의 암울한 터널을 거쳐 마침내 문민정부가 탄생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노태우 정부 말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가 좀체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박 수석은 당시 ‘목욕탕론’과 ‘앰플주사론’을 제시하며 양자선택을 요구했다. 목욕탕론은 영업이 가장 부진한 8월초에 인테리어도 고치고 페인트 칠도 다시 해 성수기에 대비한다는 논리다.이는 경제가 어려울 때 개혁을 해야만 비용이 적게 든다는 뜻이기도 하다.반면 ‘앰플주사론’은 환자에게 개혁이라는 수술을 했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먼저 영양제를 투여해 체력을 보강한 뒤 수술은 나중에 하자는 선(先) 경기부양-후(後) 개혁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용어다. 93년 5월초쯤이었던 것 같다.2개월여만에 다시 만난 박 수석은 우리 경제가 수술을 감당하기에는 체력이 너무 허약하다면서 영양제부터 투여하겠다고 공언했다.그래서 시행된 것이 ‘신경제 100일 계획’이다.100일 동안 모든 부양책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체력을 보강한 정책이다.하지만 신경제 계획은 훗날 물가 불안 등 많은 부작용을 낳으면서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직무 복귀를 전후해 경제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힘 겨루기가 한창이다.노 대통령이 탄핵기간 중 63일간 면벽 수도를 통해 ‘실용주의’의 가치를 공부했다고 하자 재계와 일부 경제부처 관료 등 성장우선론자들은 환호성을 올렸다.재계는 특히 유럽의 좌파 정부조차도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를 우선시한다며 ‘친시장’‘친기업’을 연호했다.하지만 사흘 후 노 대통령이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혁신주도형 경제’를 제시하자 이번에는 개혁론자들의 기세가 등등해졌다.노 대통령은 성장과 빈부격차 해소를 동시에 지향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 탓이리라. 방한 중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한국 경제의 최우선 과제로 불확실성 해소를 제시했다.이것이야말로 힘 겨루기보다 더 시급한 과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부고]

    ■ 애국지사 이병훈 선생 애국지사 이병훈 선생이 2일 0시15분 노환으로 서울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91세.1913년 평남 평원에서 태어난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의 특별추천으로 중국 중산대학 의과에 입학했으나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중국 국민당에 입당해 항일운동을 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유족으로는 부인 서광옥씨와 2남 2녀.발인 4일 낮 12시,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애국지사 제3묘역 (02)478-5499. ■ 홍성철 前국토통일원 장관 노태우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홍성철씨가 2일 밤 11시17분 별세했다.78세.황해 은율에서 태어난 홍씨는 지난 1973년부터 내무부장관,국토통일원장관 등을 역임했다.3공 시절부터 6공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각종 요직을 두루 거친 홍 전 실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북 5도 출신의 원로그룹으로 정치권 핵심인사들의 자문역할을 해왔다.30여년 최고 권력자의 측근 반열에 들면서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은 인물로 평가되었다.유족으로는 부인 김수영씨와 2남 2녀.주명건 세종대 이사장이 맏사위다. 빈소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발인 6일 오전 10시.(02)3010-2270. ●林秉郁(한국전광방송광고협회장)秉善(애드매리트 이사)씨 모친상 2일 오후 10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5일 오전 7시 (02)3010-2295 ●徐慶燦(송파구청 직원)慶德(경기고속 계장)씨 부친상 金金植(선광정보통신 과장)鄭莞植(공신R&C 이사)씨 빙부상 2일 오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4일 오전 7시 (02)3010-2292 ●金鍾兌(대우증권 플랜마스터 강남지점장)씨 모친상 2일 오후 5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4일 오전 9시 (02)392-2899 ●成演中(SK가스 강원지사장)演旭(자영업)씨 모친상 2일 오후 5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4일 오전 6시 (02)3010-2293 ●崔俊洛(하이스마텍 차장)씨 빙부상 3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5일 오전 8시 (02)3010-2263 ●鄭殷謨(전 부민문화사 회장)씨 별세 鎭海(부민문화사 사장)鎭成(미국 거주)鎭勝(펜타항공 사장)鎭珏(안산향토사연구소장)씨 부친상 金世謙(전 하이마트 사장)鄭垣杓(홍익대 교수)씨 빙부상 3일 오전 11시7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5일 오전 7시 (02)392-0899 ●黃一相(서울 성원교회 목사)圭相(자영업)恩相(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林明浩(자영업)씨 빙모상 3일 오전 9시5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5일 오전 6시 (02)929-3099 ●현진영(본명 허현석·가수)씨 부친상 2일 0시25분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발인 4일 오전 7시 (02)572-7499 ●朴廷恩(헤럴드경제 편집부 기자)씨 조모상 3일 오전 7시9분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5일 오전 6시30분 (055)270-1940 ●林戊吉(전 부여군 은선면장)씨 별세 洪相(대림기업 회장)씨 부친상 申通澈(공주교대 교수)씨 빙부상 2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발인 4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9 ●趙漢相(㈜코리아 특장사업부 팀장)씨 부친상 鄭鈺桭(LG CNS 과장)씨 빙부상 3일 낮 12시1분 ●金國憲(축산진흥연구소 검사과 검사관)씨 모친상 李泰豪(홍익대 미대 겸임교수)金亨植(공군 중령)閔丙宇(MBC 기자)辛雄(자영업)씨 빙모상 3일 오후 4시 경남 진주시 경상대병원,발인 5일 오전 11시 (055)750-8655 ●文政植(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씨 빙부상 2일 오후 9시40분 충북 옥천성모병원,발인 4일 오전 7시 (043)730-7401
  • [부고]

    ■ 애국지사 이병훈 선생 애국지사 이병훈 선생이 2일 0시15분 노환으로 서울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91세.1913년 평남 평원에서 태어난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의 특별추천으로 중국 중산대학 의과에 입학했으나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중국 국민당에 입당해 항일운동을 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유족으로는 부인 서광옥씨와 2남 2녀.발인 4일 낮 12시,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애국지사 제3묘역 (02)478-5499. ■ 홍성철 前국토통일원 장관 노태우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홍성철씨가 2일 밤 11시17분 별세했다.78세.황해 은율에서 태어난 홍씨는 지난 1973년부터 내무부장관,국토통일원장관 등을 역임했다.3공 시절부터 6공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각종 요직을 두루 거친 홍 전 실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북 5도 출신의 원로그룹으로 정치권 핵심인사들의 자문역할을 해왔다.30여년 최고 권력자의 측근 반열에 들면서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은 인물로 평가되었다.유족으로는 부인 김수영씨와 2남 2녀.주명건 세종대 이사장이 맏사위다. 빈소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발인 6일 오전 10시.(02)3010-2270. ●林秉郁(한국전광방송광고협회장)秉善(애드매리트 이사)씨 모친상 2일 오후 10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5일 오전 7시 (02)3010-2295 ●徐慶燦(송파구청 직원)慶德(경기고속 계장)씨 부친상 金金植(선광정보통신 과장)鄭莞植(공신R&C 이사)씨 빙부상 2일 오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4일 오전 7시 (02)3010-2292 ●金鍾兌(대우증권 플랜마스터 강남지점장)씨 모친상 2일 오후 5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4일 오전 9시 (02)392-2899 ●成演中(SK가스 강원지사장)演旭(자영업)씨 모친상 2일 오후 5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4일 오전 6시 (02)3010-2293 ●崔俊洛(하이스마텍 차장)씨 빙부상 3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5일 오전 8시 (02)3010-2263 ●鄭殷謨(전 부민문화사 회장)씨 별세 鎭海(부민문화사 사장)鎭成(미국 거주)鎭勝(펜타항공 사장)鎭珏(안산향토사연구소장)씨 부친상 金世謙(전 하이마트 사장)鄭垣杓(홍익대 교수)씨 빙부상 3일 오전 11시7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5일 오전 7시 (02)392-0899 ●黃一相(서울 성원교회 목사)圭相(자영업)恩相(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林明浩(자영업)씨 빙모상 3일 오전 9시5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5일 오전 6시 (02)929-3099 ●현진영(본명 허현석·가수)씨 부친상 2일 0시25분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발인 4일 오전 7시 (02)572-7499 ●朴廷恩(헤럴드경제 편집부 기자)씨 조모상 3일 오전 7시9분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5일 오전 6시30분 (055)270-1940 ●林戊吉(전 부여군 은선면장)씨 별세 洪相(대림기업 회장)씨 부친상 申通澈(공주교대 교수)씨 빙부상 2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발인 4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9 ●趙漢相(㈜코리아 특장사업부 팀장)씨 부친상 鄭鈺桭(LG CNS 과장)씨 빙부상 3일 낮 12시1분 ●金國憲(축산진흥연구소 검사과 검사관)씨 모친상 李泰豪(홍익대 미대 겸임교수)金亨植(공군 중령)閔丙宇(MBC 기자)辛雄(자영업)씨 빙모상 3일 오후 4시 경남 진주시 경상대병원,발인 5일 오전 11시 (055)750-8655 ●文政植(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씨 빙부상 2일 오후 9시40분 충북 옥천성모병원,발인 4일 오전 7시 (043)730-7401 ˝
  • 내각 ‘더블 레임덕’

    개각 하마평이 무성해지면서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는 장관들의 영(令)이 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그러지않아도 탄핵소추로 노무현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된 상태이고,고건 대통령권한대행도 총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공언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더블 레임덕’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정치인의 가벼운 입” 4·15총선 이후 열린우리당 주변에서는 통일·행정자치·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교체대상 0순위로 거론된다.교체될 장관들이 신바람을 갖고 일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3일 “의욕을 갖고 일하는 데는 아무래도 영향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개각을 공식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최근 개각 얘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입 때문이다.야권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은 상태에서 개각 얘기를 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헌재 평결이 ‘탄핵 불가’로 내려진다면 노 대통령이 개각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이달 하순에서 다음달 하순 사이로 점쳐진다.새 총리 지명과 일부 각료 경질을 한꺼번에 하면 이달 하순이 되고,새 총리의 인사청문회 등이 끝난 뒤 개각을 하게 되면 다음달로 시기가 넘어간다. ●참여정부 장관들이 최단명(?) 참여정부 장관들의 임기가 너무 짧아 장관들이 책임과 소신을 갖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국무위원인 장관은 모두 19명으로,참여정부 출범 후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현재 기준으로 8개월이다.지난해 2월 참여정부 출범후 초대 장관이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정세현 통일·강금실 법무·조영길 국방·이창동 문화관광·진대제 정보통신·김화중 보건복지·지은희 여성부장관 등 7명에 불과하다.특히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는 초대 허성관 장관,2대 최낙정 장관에 이어 현재 장승우 장관은 3대째로 평균 재임기간은 5개월이다. 장관들의 짧은 재임기간이 더 걱정되는 것은 열린우리당 출신들이 입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장관은 하루라도 빨리 교체하는 게 바람직하지만,문제는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열린우리당의 역학구도 등 정치적인 변수에 의해 장관들이 교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동영 의장은 정보통신부 장관에,김근태 원내대표는 통일부 장관에 거론되고 있다.김정길 전 의원과 김태랑 전 의원,이부영 의원 등도 입각 대상자로 거론된다.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개각과 관련해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개각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고있다. ●능력보다 ‘정치적 교체’ 우려 노 대통령은 지난해 2월27일 조각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안정된 부처에서 새로운 활력과 창조적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할 때에는 2∼3년의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면서 “지속적인 개혁과 안정이 필요할 때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장관 평균 재임기간이 20개월,전두환 대통령 때에는 15개월,노태우 대통령 때에는 13개월,김영삼 대통령 때에는 11개월,김대중 대통령 때에는 12개월이었다.”면서 “이래서 장관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지만,현 시점에서 보면 참여정부 장관들은 최단명으로 기록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곽태헌기자 tiger@seoul.co.kr˝
  • 민주당 사무처 ‘눈물의 해단식’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전두환·노태우와 싸우며 87년 버스 토큰 하나 갖고 들어와 정권을 두 번이나 만들어낸 당입니다.”(양윤녕 홍보국장)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는 건 제 명함 한 장과 부위원장이라는 직함뿐입니다.죄송합니다….”(이정일 사무총장) 27일 오전 민주당 사무처 해단식의 한 풍경이다.60여명의 사무처 당직자들과 이 총장,손봉숙·이상열 당선자 등 당 지도부는 기약없는 재회를 다짐하며 이렇게 헤어졌다.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연거푸 승리한 50년 정통야당은 이날로 사실상 중앙당을 ‘정리’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해단식에서 이정일 총장은 “우리 헌정사에 이런 불행한 자리는 없었을 것”이라며 “당을 떠나도 어디에서든 민주당의 재건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무겁게 시작한 해단식은 손봉숙 비례대표 당선자가 발언을 넘겨받으면서 끝내 눈물과 흐느낌의 자리로 바뀌었다.손 당선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직원 여러분들과 미처 상견례도 못했는데…”라며 눈시울을 훔쳤다.간신히 말을 이어간 손 당선자는 “어딜 가더라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민주당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말하고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몇몇 여직원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뛰쳐나갔고,남자 직원들은 떨군 고개를 들지 못했다.민주당은 이날 약간의 퇴직금과 함께 130여명의 사무처 직원을 정리,당분간 10여명 무급 자원봉사자 체제의 초미니 정당으로 운영된다.4년 전 창당과 함께 입주한 당사도 이번 주 비운다.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진 4층 대회의실엔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며 밝게 웃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형사진만이 을씨년스레 자리를 지켰다. 진경호기자 jade@˝
  • [총선 D-3] “민주사회 액세서리 야당 필요없다” 조기숙 교수 기고 논란

    11일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 자문위원장에 위촉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의 ‘기고문’이 정가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조 교수는 당으로부터 대변인을 제의받았으나 학교측과 협의 끝에 고사,자문위원장에 위촉됐다. 조 교수는 지난 6일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 영국 스웨덴 등 서구 민주국가는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도 거대여당일 때 국가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며 야당의 거여(巨與)견제론을 반박했다.이어 “과거 야당의 존재는 독재를 합리화시켜주는 액세서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총재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로부터 이런 주장의 타당성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나아가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에서 액세서리로서의 야당의 존재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면서 “경제위기를 불러오고도 현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고 탄핵까지 한 야당을 거여견제라는 명목으로 키워 놓는다면 국가 경제는 파탄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나라당의 거여견제론을 반박하면서 민주당도 공격한 것이다.이에 민주당 장전형 선대위 대변인은 “국회는 대통령의 ‘예스맨’이 돼야 한다는 발언”이라며 “이런 사고방식이라면 국회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라고 반박했다.장 대변인은 지난 9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박정희 대통령 발언과 조 교수 기고문을 묶어 “박정희를 욕하면서 박정희를 닮아가고 독재를 규탄하면서도 독재시대를 그리워하는 열린당의 이중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진경호기자 jade@˝
  • 김종인 前 경제수석 민주당 입당 ‘좌초위기’ 민주號 구할까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17일 거센 탄핵 역풍에 휩싸인 민주당에 입당했다.지지율 급락과 탈당 도미노에 망연자실하던 민주당으로서는 그야말로 ‘단비’를 만난 셈이다. 김 전 수석은 구(舊)여권 인물이면서도 재벌 개혁론자다.노태우 정부에서 보사부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고,민정당과 민자당 등에서 전국구 3선 의원을 지냈다. 그럼에도 지난 국민의 정부 시절 개각 때마다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민주당 김경재 의원은 “재벌개혁과 시장경제정책에 있어서 민주당의 시각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댔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전북 지역의 명문가 출신이라는 사적(私的)인연도 그와 김 전 대통령,민주당을 잇는 끈이다. 지난 14대 국회 이후 건국대 석좌교수 등을 지내다 10년 만에 정계로 돌아온 그는 민주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탄핵으로 국론이 갈린 상황을 맞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정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정치활동 재개 배경을 설명했다.“왜 민주당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유당 시절부터 한국 야당의 명맥을 지켜오면서 정권교체를 실현한,정통성을 확보한 정당이 민주당”이라고 설명했다.이어 “분당 사태 이후 당의 정체성에 다소 혼란을 겪었지만 어느 정도 회복되는 과정인 것 같다.”며 “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정책정당으로 한발짝 더 나아가는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입당을 놓고 당내에선 그동안 논란이 있었다.지난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전력 때문이다.당시 그를 구속시킨 검사가 민주당 함승희 의원이다.함 의원은 그러나 “당시 정경유착의 ‘몸통’을 잡아 넣기 위해 좀 무리하게 (김 의원을)구속했던 측면도 있다.”며 그동안 김 전 수석 영입에 앞장서 왔다. 김 전 수석은 입당과 함께 임명직 상임중앙위원을 맡아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남성으로서는 사실상 1번인 비례대표 후보 2번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경호기자 jade@˝
  • [씨줄날줄] 권한대행/이상일 논설위원

    부기관장은 먼저 입을 다스려야 한다.부(副)를 파자(破字)하면 의미가 분명하다.칼(-)아래 입(口)이 있고 입안에 칼(口안에 十)이 있으며 칼을 옆에 두고 서 있다는 뜻이다.국무총리는 행정부 권력 2인자이지만 입단속과 처신을 잘못하면 단칼에 목이 날아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회창 당시 국무총리의 경질이유를 설명했다.“내(대통령)가 외유중인데 총리가 안기부장(현 국정원장)에게 업무를 보고하도록 하고 장관들에게 대통령과의 독대내용도 보고토록 요구했다.…이 총리는 대통령의 지휘를 받기 꺼려했다.” 민주적 표류형(장면 대통령)이나 소극적 적응형(노태우)보다 특히 가부장형(이승만) 야수형(박정희),승부사적 대통령(김영삼)하에서 총리의 위치는 더욱 약할 수밖에 없다.실제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총리는 국정 실패의 책임을 대통령 대신 지는 ‘방탄총리’,연설문을 대신 읽는 ‘대독총리’,신선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얼굴마담 총리’에 그쳤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 등은 ‘대통령의 성공조건’에서 “우리나라 총리의 권한은 대통령이 위임한 것이지 총리 자신의 공식 권한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DJ정권 초기 김종필 총리는 예외적으로 힘을 갖고 있었다.지난 1999년 7월 청와대에 압력을 넣어, 특검제를 놓고 이견을 빚은 여당인 국민회의 김영배 총재 권한대행(權限代行)을 연임 5시간만에 전격 퇴임시켰다.김 총리의 권력은 총리 파워라기보다 당시 공동여당 지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른 데서 부여받거나 차입한 권력은 취약하기 마련인 것이다.법상 기관이나 그 구성원의 권한을 다른 기관과 사람이 대신 행사하는 ‘권한대행’의 한계가 거기에 있다.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이후 고건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국정이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적으로 권한대행자는 대통령의 권한을 모두 대신 행사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책이나 장관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 법학계의 다수 의견이다.그렇지 않아도 권력기반이 약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들 힘을 쓸 수 있을까.아무리 총리가 적극 나서도 대통령의 빈 자리가 깊어보이고 국정이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 [탄핵정국-긴급좌담] “盧 법의식 문제” “다수결 빙자 폭거”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결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들고 있다. 지역감정으로 인한 마음의 깊은 상처만으로도 서러운 국민들은 이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야 하는 또다른 갈등 앞에 넋을 잃을 지경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본격적인 재판을 앞두고 긴급 좌담회를 마련,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봤다. ●사회 이시윤 변호사·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찬성 이선준 한국법제발전연구소 연구실장 ●반대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이시윤 변호사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됐다.한국 정치사의 경천동지할 사건이다.이제 헌법재판소의 재판이 마지막 남은 절차다.소감을 말해 달라. ●이선준 연구실장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탄핵사유는 된다.국회가 치밀하게 논리를 구성,탄핵안을 발의했다.대체로 공감한다. ●남윤인순 사무총장 정치권이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측근비리는 특검에서 조사하고 있고,정치실정은 총선에서 심판받으면 된다.노무현 대통령의 실정도 물론 있지만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공감이 안 된다. ●이 변호사 선관위 통고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선거법 위반을 전제로 한 경고와 의견 제시라는 해석으로 엇갈린다.헌법 교과서는 헌법·법률 위반만 탄핵사유로 본다. ●이 실장 선관위의 의견제시가 판정은 아니라고 본다.그러나 이를 존중하는 것이 헌법정신이다.대통령이 이를 경시했다.노 대통령의 법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법을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 아닌가.실정법 위반도 결코 가볍지 않다.탄핵안은 측근비리에 대해 노 대통령을 공범 관계로 보는 것 같다.정치 실정은 탄핵사유가 안 되지만 실정이 축적되니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남윤 사무총장 경고는 인정하지만 구체적인 위법행위를 했다는 것은 납득 안 된다.이를 경시했다면 다시 경고하면 되지 탄핵으로 갈 만한 사안인가.선관위가 대통령에게 보낸 문건에도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돼 있다.촛불행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은 내가 뽑은 대통령(직접 민주주의)을 내가 뽑은 국회의원(간접 민주주의)이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아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실장 탄핵추진 세력에게는 사과 거부가 앞으로도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표시로 비쳤던 것 같다. ●남윤 총장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는데 관권 선거의 증거가 나왔나.이해가 안 된다. ●이 변호사 어쨌든 선관위의 결정이 탄핵재판에서 결정적 자료가 될 것은 확실하다.대통령이 탄핵안 가결 이전에 사과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까. ●이 실장 사과하지 않은 것이 향후 법을 지킬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편의적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남윤 총장 친인척 비리와 현 사태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과했다.정치적인 사과는 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이를 두고 대통령이 질서를 지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생각지는 않는다.선관위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얘기도 했다.야당에서는 사과 거부를 문제삼았는데 뒤집어 생각해보자.대통령이 사과했다면 탄핵소추 발의를 포기할 정도로 가벼운 사안으로 탄핵했다는 말인가. ●이 변호사 이번 사태는 되도록 빨리 해결해야 한다.문제는 헌재의 절차다.간단치 않은 재판절차를 감안하면 국민들의 기대만큼 빨리 결론내기는 어렵다.자칫 졸속재판이라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남윤 총장 법리적인 판단과 시대정신,국민여론 등을 고려해 신속하게 기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실장 현재로선 탄핵반대 여론이 높은데 탄핵추진 쪽에서는 앞으로 국민을 설득할 여지가 있다.법리적으로는 탄핵될 것이다. ●이 변호사 재판에 영향을 미칠 만한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재판이 끝날 때까지 촛불시위를 계속하겠다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실장 모두 자중해야 한다.이는 헌재의 공정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기도는 없어야 한다. ●남윤 총장 촛불시위는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시다.정치적인 의견은 배제돼야 하지만,국민의 의견은 알아야 한다.법의 정의도 국민의 지지 속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변호사 의사표시는 당연하지만 그것이 커지면 국론분열이 심화되는 심각한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헌재 재판관들은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려고 노력한다.그러나 재판관들은 대통령과 대법원장,국회에서 각 3명씩 지명되기 때문에 정치적 색채가 있을 수밖에 없다.외부에서는 이를 우려한다. ●이 실장 헌재 재판관이 그 추천권자에 따라 선입견을 가지고 재판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이 변호사 헌재 재판관 시절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야당 추천 재판관은 야당 입장을,여당 추천 재판관은 여당 입장을 고수하기도 했다.이는 과거의 일이고,지금은 다 희석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심각한 문제다. ●남윤 총장 예전에 시민단체에서도 헌재 재판관을 임명할 때 추천권을 달라는 운동을 벌인 적 있다. ●이 실장 중립성에는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이 변호사 탄핵소추 재판은 형사소추 절차에 준하기 때문에 법정변론이 열린다.이 때 피소추인인 대통령이 직접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지,대리인이 나와도 되는지의 문제가 있다.향후 재판 과정에서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이 실장 본인 출석은 안 해도 될 것 같다.쟁점도 이미 알려져 있다. ●이 변호사 미 클린턴 대통령은 성추문에 따른 탄핵에서 우리의 헌재에 해당하는 상원에 출두했다. ●남윤 총장 구두변론이 공개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변호사 헌재 재판에서는 국회 법사위원장인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이 검사 역할을 맡는다.그러나 총선 이후 여야의 위치가 뒤바뀌면 법사위원장도 바뀔 수 있다.개인적 생각으로는 탄핵재판에서 검사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총선일정과 심리종결 시기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남윤 총장 헌재 심리 자체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헌재의 결정이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총선 이후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 변호사 탄핵사유로 넘어가 보자.헌법은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을 때’로 규정한다.학계 다수 의견은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의 경우만을 탄핵사유로 인정한다.이른바 행위와 처분의 비례원칙이 문제가 된다. ●이 실장 노 대통령의 법 의식이 너무 자유롭다.탄핵사유가 된 선거법 위반 사례는 대통령의 이같은 의식을 드러내는 한 징표다.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 ●남윤 총장 탄핵사유가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보지 않는다.과거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사실상 국민에 의해 탄핵당한 것과 마찬가지다.이번에도 정당성을 갖추려면 노 대통령이 중대한 위법행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실장 여러 차례 발언이 누적돼 중대한 위법행위가 된 것이다.탄핵반대 쪽에서는 탄핵추진 쪽에 대해 기본적인 불신이 있다.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쿠데타를 했다고 하는데 옳지 않다.기득권은 이미 여야 모두 누리고 있다.탄핵추진 세력도 이유와 명분이 있다. ●남윤 총장 국민들은 오랜 세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그러나 정치권이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동안 민주주의가 성숙했다고 본 것이 지나친 낙관론이었다.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불리해지자 탄핵을 추진한 것 아닌가.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노 대통령을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발전시킨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이를 제대로 봐야 한다. ●이 변호사 일부에서는 국회의원도 국민이 뽑았고,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에 국민 절대 다수가 탄핵에 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일부 세력이 작당한 것인지,국민 대다수가 지지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 실장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이 내린 판단이다.일부 세력의 작당으로 이뤄질 수 없다. ●남윤 총장 물론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았지만 국민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국민을 분노케 할 정도로 부패했다.16대 의원들이 당선 당시의 정신을 아직 갖고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진정 국민을 대변했다고 볼 수 없다.다수결을 빙자한 폭거다. ●이 변호사 최대공약수를 뽑아보자.자유로운 견해표시는 당연한 언론의 자유이지만 너무 과격한 행동으로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좋지 않다.국민분열로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성숙한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양측 모두 나름대로 정서가 있겠지만,차분히 헌재의 결과를 기다리자.그것이 법치주의를 뿌리내리는 길 아니겠는가. 정리 김재천 박지연기자 patrick@˝
  • [盧탄핵안가결-高대행 체제] 高대행은 누구

    ‘행정의 달인’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됨으로써 공직사회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 대행은 새로운 자리를 맡거나 한번 맡았던 자리를 다시 역임하는 ‘재수(再修)’를 해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 총리를 지낸 그는 노무현 정부 들어 다시 총리를 맡았는가 하면,노태우 정부에서 지낸 임명직 서울시장 자리를 김대중 정부에선 선거를 치러 재수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고 대행은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 13회에 합격한 뒤 만 37세의 나이에 전남도지사를 지냈다. 교통·농수산·내무부 장관 등 그가 맡아온 장·차관급(도지사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포함) 이상 자리만 9개다.1985년 총선에서는 전북 군산·옥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공직사회에서는 그를 ‘기록제조기’로 부르기도 한다.“4·15 총선이 끝나면 대학교수로 돌아갈 것”이라던 그가 이번에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음으로써 또다시 기록을 만든 셈이다. 다만 삼고초려 끝에 자리를 맡아온 고 대행은 이번엔 고민할 시간없이 곧바로 권한대행을 맡은 점이 다르다. 고 대행은 행정의 달인이라는 닉네임(별명)에 걸맞게 행정의 구석구석을 챙긴다.결코 무리수를 두는 일은 없다. 100년 만의 ‘3월 폭설’이 내리던 지난 5일 대부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 고 대행은 중앙재해대책본부를 세 차례나 찾아가 차질없는 대응을 당부했다.이런 행정능력 탓에 총리를 맡을 때 ‘안정형’ 책임총리로 불렸다. 그는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책임지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고 대행의 생활신조는 ‘돈 받지 말라.누구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지 말라.술 마신다고 소문내지 말라.’는 세 가지다. 부친인 고형곤 전 전북대 총장이 공직에 나가는 아들에게 한 당부다. 고 대행은 공직생활 내내 이런 당부를 지키려고 했고,공직생활의 장수 비결과 화려한 경력도 여기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고 대행은 ‘화합주’를 즐긴다.화합주는 폭탄주를 이르는 말이지만 그는 폭탄주라는 표현 대신 ‘화합주’라고 칭한다.고 대행은 “돈 받지 말고,시류에 영합하지 말라는 것은 잘 지켰는데,술 문제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 같다.”고 너털웃음을 웃곤 한다. 요즘에는 화합주 대신 ‘설산 칵테일’을 즐기기도 한다. 설중매와 산 소주를 한 병씩 섞은 뒤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다.1주일에 한번 정도 테니스를 치고,골프는 아예 치지 않는다. 박정현기자 jhpark@˝
  • [노탄핵안가결-’3·12’파장] 전직 대통령 반응

    전직 대통령들은 12일 헌정 사상 처음인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해 걱정과 우려를 감추지 못하며 조속한 나라 안정을 기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탄핵 사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여야 정치인들은 이제라도 각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태를 수습해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김한정 비서관이 전했다.하지만 탄핵안 표결이 갖는 정치적 의미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으로부터 탄핵안 통과 사실을 보고받은 뒤 이번 사안을 ‘사필귀정’으로 평가한 뒤 “나라가 하루 빨리 안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박 의원이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연희동 자택에서 TV로 중계되는 국회의 탄핵안 처리를 지켜봤으며,특별한 언급없이 서재로 들어가 독서와 붓글씨 쓰기에 몰두했다고 측근들은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침울한 표정으로 “모든 것이 이른 시일 안에 정상화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문동휘 비서관은 전했다.최규하 전 대통령은 서교동 자택에서 표결과정을 지켜봤으며 별다른 언급은 없었으나 걱정과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비서관들은 전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박철언 前의원 시 발표

    노태우 정권의 실세였던 박철언 전 의원이 격월간 문예지 ‘한국문인’ 4·5월호를 통해 두 편의 시를 발표한다. ‘한국문인’의 신작시로 소개된 박씨의 시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그리움의 화살’과 바닷가 여행길에서 자신을 성찰한 ‘동해안 길’.이가운데 ‘그리움의 화살’은 일종의 연애시 성격이며 ‘동해안 길’은 파란많은 삶의 역정을 시인의 감성으로 돌아보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히스토리채널 ‘북으로 간 사람들’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 이후 한동안 잊혔던 북한 체제와 북파공작원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던 반공이데올로기는 현재 어떤 수준인가? 과거 목숨을 걸고 월북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였나? 제2·제3의 실미도 부대는 존재하지 않을까? 히스토리채널이 11일부터 3주 연속(목요일 밤 12시) 방영하는 ‘다시 읽는 역사,호외-북으로 간 사람들’을 보면 조금은 답답함이 풀릴 듯하다. 제1부 ‘경계를 넘다’편에서는 월북 인사들에 얽힌 의문에 한발짝 접근한다.서독 대사와 외무부장관을 지낸 최덕신,천도교 교령과 국민회의 상임고문의 자리에 있었던 오익제의 월북 이유를 살펴본다.특히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월북자인 부산대 윤노빈 교수에 대한 추적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다. 18일 방송되는 제2부는 ‘허락받지 않은 방북’.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잇따른 방북사건에 대해 다룬다.전국 민족민주운동연합의 상임고문이었던 문익환 목사는 3월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회담을 갖고 귀환했다.이어 작가 황석영과 평민당 서경원 의원이 비밀리에 방북했고,대학생 임수경은 제13회 평양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참가했다.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문규현 신부도 입북,임수경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25일 방송되는 3부 ‘북파공작원’편에서는 조국을 믿고 비밀리에 북으로 가야 했지만,국가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은 북파공작원의 실상을 조명한다.특히 제작진은 80∼90년대 초반까지 인천 장봉도와 선갑도에 실미도 부대와 같은 북파부대가 존재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그 실체를 집중 추적한다. 이영표기자 tomcat@˝
  • [기고]통일수도와 남북연합체/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명예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방송기자클럽 회견에서 통일정부의 수도 후보지로 개성과 판문점 부근을 언급했다.노 대통령의 통일수도 언급은,대전 행정수도 이전문제로 국민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시점에서 통일에 대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남북이 통일수도 입지를 정하는 일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할 것이나,그에 앞서 통일에 접근하는 방법을 먼저 결정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현재까지 통일 접근 방법으로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연방제가 공식 제안된 바 있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9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중간과정의 과도적 통일체제로서 남북연합제를 제시했다.이를 위해 남북에서 100명씩 선출한 대표로 ‘남북평의회’를 구성하자고 했다. 김영삼 정부도 1994년 8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존·공영하면서 연합제의 중간 과정을 거쳐 통일로 가는 3단계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김일성은 1991년 1월 신년사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위해 연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 후 중앙정부의 기능을 점차 강화하는 방식의 연방제 통일을 제의했다. 또 1993년 4월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에서,남북은 현재와 같이 두 제도,두 정부를 그대로 두고,동수의 남북 대표를 선출하여 ‘범민족통일국가’를 만들자고 했다. 김일성이 주장한 ‘범민족통일국가’란 남북한 정부가 국방권·외교권·행정권을 현재와 같이 보유하는 느슨한 단계의 연방제 형태인 ‘최고민족연방회의’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연합제와 연방제의 역사적 배경을 두고 남북정상은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점을 인정함으로써,남북은 향후 통일과정에서 연합제나 연방제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제나 연방제에서 남북은 어떠한 형태의 연합제 또는 연방제의 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남북연합제 기구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의 형태가 아닌,동수의 남북대표로 구성된 ‘남북통일협의회’(가칭)와 같은 의회 기능을 가진 기구로 통일에 대비한 통일헌법과 통일선거법과 같은 문제들을 토의해야 할 것이다. 남북연합제 기구의 결의는 남북정부에 구속력을 갖기보다는 권고적 기능을 하는 통일의 상징적 기구가 되어야 한다.‘남북통일협의회’ 설치에 대해서는 남북이 합의문에 서명하고,남북한 의회가 비준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할 수 있는 한시적 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의 상징적 통일기구는 한반도 중간지대인 개성이나 판문점 부근에 위치하면서 통일수도로 발전할 수 있는 제반 인프라와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만약 남북연합제의 상징적 통일기구가 개성이나 판문점 부근에 위치하고 남북한의 한민족이 같은 건물에서 합동으로 일하게 된다면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더 나아가 남북연합제의 통일기구는 남북한 이산가족 면회소나,남북한 민족의 문화행사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북은 연합제나 연방제를 하루속히 실천하기 위한 상설된 남북한 당국자 협의체를 구성하여 통일문제를 정례적으로 논의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통일수도 구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해야 한다. 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명예논설위원˝
  • ‘셔틀콕 황제’ 박주봉 씨

    “박주봉 선수죠? 사인 좀 해 주세요.” 지난달 29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 ‘코리아타운’ 근처의 한 호텔 로비.40대의 중국계 말레이시아 남성이 미소년처럼 마냥 즐거워하며 전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인 박주봉(40)씨 곁에 다가서 있다.물론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있다.이 남자의 딸인 듯한 10세 남짓한 아이도 양볼이 상기된 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20년 전,영국 버밍엄 국립체육관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전영오픈배드민턴대회 우승컵을 끌어안었던 약관의 청년은 어느새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불혹의 중년이 돼 있었다.‘셔틀콕 황제’ 박주봉이다.역시 황제 칭호를 얻은 골프의 타이거 우즈와 농구의 마이클 조던도 이곳 동남아시아권에서는 그의 명성을 결코 능가하지 못한다.개인 최다인 국제대회 71회,세계선수권 7회 우승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그는 배드민턴이 국기인 말레이시아에서 ‘살아있는 신화’다. ●국제대회 71회, 세계선수권 7회 우승 그가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것은 지난 1999년.97년 1월부터 영국에서 배드민턴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다 연봉 2억원에 고급 주택과 승용차가 제공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말레이시아 대표팀 수석 코치로 스카우트됐다.2000년 말부터 대표팀을 떠난 2002년 12월까지는 총감독까지 지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행에는 한국에서 겪은 비인기종목의 설움이 결정적인 몫을 했다.“우리나라에서는 금메달을 딴 직후 반짝 뜨고,수개월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냉랭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며 “배드민턴 코치의 한마디가 신문의 스포츠 1면을 장식하는 이곳이야말로 배드민턴인들의 천국”이라고 말한다.한국인으로서 국위 선양의 자긍심도 크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대표팀이 ‘박주봉 체제’로 변화한데 따른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이 그의 어깨를 짓누른 것이다.결국 2000시드니올림픽과 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노메달’의 수모를 겪으며 ‘박주봉호’는 일단 닻을 내렸다. 그는 현재 말레이시아 배드민턴협회 자문위원이다.아직도 배드민턴계에서는 막강한 입김을 행사한다.지난해 초부터 배드민턴광인 화교 사업가와 손잡고 스포츠센터 ‘박주봉 아카데미’사업을 추진중이다.다만 사업허가가 늦어지는 게 고민이다. 그는 “계속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느냐,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한 캐나다 미국 등으로 떠나느냐를 두고 숙고하고 있다.”면서도 해외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시드니올림픽에서의 한국 ‘노골드’의 부진을 터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셔틀콕 즐긴 전직 대통령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은 배드민턴을 즐겼다.실력도 평균치를 웃돈다. 이들 가운데 배드민턴에 각별히 애정을 쏟은 이는 전씨.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인 코리아오픈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였다. 박주봉은 이종동서가 전씨의 비서관이었던 게 인연이 돼 가깝게 지냈다.“92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무려 7년간 서울 연희동 전씨 집 인근의 외국인학교에서 주말이면 경기를 함께 했다.”고 회상했다. 전씨와 유사하게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오명을 남긴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도 박주봉을 좋아했다.마하티르 전 총리의 부인이 배드민턴협회 고문이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총리 관저를 종종 방문했고,마하티르 전 총리는 그때마다 경호원도 없이 직접 관저를 안내하며 격의없이 대해줬다. 반면 똑같은 배드민턴 애호가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체육인들 사이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다.박주봉은 “김씨는 호탕했던 전씨와는 달리 체육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주봉은 최근 한국 아마추어스포츠 침체에 대해서도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그는 “정부가 사회체육 육성은 커녕 한국의 국가이미지 제고에 가장 효과적인 올림픽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며 체육정책의 실종이 체육계 침체로 이어졌다고 질타했다. ●배드민턴 중흥 돕는 지도자 될 터 오랜 외국생활 탓일까.그의 가슴 속에는 어느덧 향수병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영국 생활 대신 말레이시아를 ‘제2의 고향’으로 택한 데는 콸라룸푸르의 비교적 큰 코리아타운도 한몫했다.콸라룸푸르 생활 내내 코리아타운 근처를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한국을 그리워했다. 그는 두 아이를 둔 한국인 답게 교육열 또한 남다르다.일찍부터 국제 대회에 출전하면서 언어의 장벽을 절감한 탓이다.초등학교 교감을 지낸 부친 박명수(72)씨가 ‘공부도 잘해야 운동도 잘한다.’는 믿음을 굳게 가졌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 과외까지 받았다.캐나다 등 미주행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도 현대판 ‘맹모삼천지교’의 일환이다.그는 “처음에는 외국 생활을 끔찍이 싫어하던 아내(이수진·35)가 요즘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더 적극적”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셔틀콕 황제’의 인생이었지만 좌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요즘은 누구나 다 치는 배드민턴도 20여년 전에는 생소한 종목이었다.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테니스로 ‘이직’할 뻔 했다. 팀 후배인 김동문 길영아와 맞붙은 96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결승전에서의 패배도 아쉬운 기억이다. 후배들을 꺾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며칠 동안 연습 한 번 못했다.결승전 전날 가볍게 몸이라도 풀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 장에 내려갔다가 후배에게 “얼라들이랑 할 건데 뭐하러 왔느냐.”는 핀잔까지 들었다.그는 “작전도 없이 경기에 나선 데다 운도 안 따랐다.”면서 “생전 지는 것을 못본 아내가 눈물을 많이 흘려 가슴이 아팠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평생의 절반 가까운 15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살아왔다.때문에 “고국에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98년 안락한 한국체대 ‘교수님’ 자리를 박차고 영국행을 결정한 것도,정체된 생활 대신 유럽이라는 스포츠의 중심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싶어서였다.어느 나라에서 대표팀을 맡게 되건,박사 과정을 마치는 게 일단의 목표다.현장과 이론의 접목을 위해서다.박씨는 “정신력을 중시하는 우리 풍토에 외국의 합리적인 선수 지도 방법이 결합된다면,세계 체육계를 선도할 새로운 지도법이 창출될 것”이라면서 “선수로서의 영광은 다 누렸으니,이제는 지도자로 한국 배드민턴 중흥을 위해 일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며 밝게 웃었다. 글 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 이두걸특파원 douzirl@ ■ 그가 걸어온길 ▲1964년 12월 5일 전북 전주 출생 ▲ 80년 전주농고 1년때 국가대표 발탁 ▲ 82년 덴마크오픈 복식 우승 ▲ 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전영오픈 우승 ▲ 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 ▲ 88년 서울올림픽 혼합복식 우승(시범종목) ▲ 91년 전영오픈 3연패,국제대회 복식 71회 우승, 세계선수권 7회 우승으로 기네스북 등재 ▲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복식 우승 ▲ 94년 한체대 전임강사 ▲ 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준우승 ▲ 97년 영국대표팀 수석코치 ▲ 99∼2002년 말레이시아 대표팀 수석코치,총감독 ˝
  • 김현철 “安風자금은 내부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안풍사건’의 자금 성격에 대해 “안기부 예산 불용액이든 이자이든 내부자금이지,외부에서 들어온 돈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22일 말했다. 현철씨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안기부 자금,소위 통치자금을 썼다고 본다.”고 말하고 “그러나 아버님(YS)은 절대 안 썼으니까 (계좌에) 쌓여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발언은 안풍자금이 YS의 대선잔금이나 통치자금일 것이라는 한나라당 내 일부의 주장이나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는 강삼재 전 사무총장의 발언을 정면 부인하는 것이다. 현철씨는 ‘YS에게서 직접 자금을 받았다.’는 강 의원 주장에 대해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 쓴 분인데 누구에게 돈을 주느냐.”며 “증거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는데,큰 착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 의원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한나라당에 회유돼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며 “아버님은 (통치자금을) 한 푼도 쓰지 않았으며,안기부 계좌에 그런 돈이 섞여 있었다면 당시 검찰 수사에서 왜 안 나왔겠느냐.”고 덧붙였다.김 전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현철씨는 “한나라당이 여러가지로 곤욕을 치르고 죽어가는데 진짜로 진실을 얘기하면 더 죽으므로 강 의원과 한나라당 보호를 위해서 참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운기자 jj@˝
  • [이경형칼럼] ‘盧 용인술’ 바뀌었나

    노무현 대통령이 장·차관과 청와대 참모들을 4월 총선의 열린우리당 의원 후보로 대거 투입한,이른바 ‘올인’작전에 국민들의 57%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반면 이들의 후임에 관료·전문가형 인재를 기용한 것은 절반이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16일자 문화일보 여론조사) 연말 소폭 개각에 이은 지난주 부분 개각과 청와대 비서실 개편은 386그룹 등 ‘코드 인물’의 퇴조와 테크노크라트의 대거 편입으로 나타났다.이를 두고,집권 2년을 맞는 노 대통령이 국정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인재 등용 방식을 크게 바꾼 것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선 총선,후 행정’이라는 국정 운영의 복안에 따라 불가피하게 ‘올인’의 공백을 관료들로 대체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정당·정파적 기반이 취약한 노 대통령의 인재 풀은 그 층이 얇아 출범 초기 인맥은 비교적 단순했다.과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만난 운동권 출신의 젊은 브레인들과 1988년 이후 국회의원으로서 교류했던 정치인과 당료,1993년 ‘지방자치경영연구원’을 설립하면서 영입한 학자들이 주류를 이뤘다. 여기에 더해,2000년 8월 이후 해양수산부 장관 재임 기간 접했던 관료들과 2002년 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및 대선 과정에서 정책 및 공약 개발에 참여했거나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여한 인사들이 인재 풀을 구성했다. 이 같은 인재 풀의 특징은 개혁성이 돋보인 반면,아마추어리즘과 이상주의의 ‘촌티’를 벗어나지 못했다.그래서 지난 1년간 노 정부를 두고,토론만 한다고 해서 ‘나토(No Action Talk Only)정부’니,계획만 세운다고 하여 ‘로드 맵 청와대’니 하는 별명이 회자되기도 했다. 최근 일련의 인재 등용은 확실히 이러한 비판을 반영한 듯하다.안병영 교육부총리,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이헌재 경제부총리 등 경륜 있는 구관(舊官)이나 반기문 외교부 장관,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한덕수 국무조정실장,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 등 전문성을 살린 엘리트 관료들을 기용한 것이 그 사례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실용주의자라고 일컬어 왔고,최근 중앙일보와 회견에선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시스템 마니아’다.”라고 토로했다.사실 노 대통령은 자주외교니 동맹외교니 할 때나,이라크 파병,자유무역협정(FTA)문제 논란에서도 늘 실용주의 입장을 견지해왔다고 한다. 전문 관료의 중용도 이러한 실용주의 노선의 맥락에서 보면 그의 인사 철학이 바뀐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단지 취임 초기엔 실용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인재를 부리는 용인술(用人術)에 있어 시스템을 존중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역대 대통령 시절,인사의 상당 부분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국가 경영에 있어 시스템을 입으로만 강조했기 때문이다.제왕적 대통령,자식 등 친인척 비리,실세(實勢)정치가 판을 쳤던 까닭이기도 하다. 진정한 ‘시스템 마니아’는 회의체가 의사 결정을 하게 하고,투명성과 기록으로 이를 뒷받침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실리를 좇는 실용주의 노선이라고 해서 정책이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되며,정책이 사람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의 이번 전문 관료 기용이 ‘올인’에 따른 공백 충원이라는 과도기적인 인사가 아니라,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기한다는 실용주의·시스템 존중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고 싶다.총선을 치른 뒤,소수 정권의 한계가 극복되거나 혹은 조금 완화된다고 해서 ‘당 우위 정치’ 등으로 지금의 인사 내용을 마구 흔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편집제작 이사 k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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