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노태우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 육성재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 낙태죄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 12.5조 결손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 애월읍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56
  • [열린세상] 중도론/임춘웅 언론인

    근자 우리사회에 중도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를 양분시켜 왔던 좌와 우, 보수와 진보 같은 이념적 분화현상이 우리사회를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 속으로 몰아 넣었고 그 결과 사회파탄마저 우려되는 상황에 이르러 그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중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도론의 토양은 비교적 비옥한 편이다.‘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극도의 혼돈 속에서 자기 모습을 찾아 내는 데는 그 소용돌이가 얼마간 잦아든 다음, 그러니까 해가 지고난 저녁 무렵에나 가능하듯이 피투성이 싸움에 쌍방이 지쳐 있을 무렵에서 중도를 생각하게 된 것일 것이다. 수구적인 좌파와 수구적 우파의 극복을 기치로 내걸고 지난달 23일 창립된 ‘자유주의 연대’가 그 하나이다. 일부 대학교수들도 비슷한 목적으로 내년초 ‘자유주의 교수 협의회’를 구성한다고 한다. 종교계에서는 ‘기독교 사회책임’이 있다. 노동계에서는 ‘대안 연대’가 재계와 노동계의 합리적 주장들을 함께 포용해 보겠다고 나섰다. 정계에서도 열린우리당의 ‘안정적 개혁을 위한 모임’(안개모), 한나라당의 ‘새정치 수요모임’이 그런 것들이다. 극단을 피해보자는 노력들이다. 그러나 중도가 이 나라의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통합적 기능을 과연 해낼 수 있을까.‘자유주의 연대’는 “이제 제2기 민주화 운동을 시작해야 하고 그 핵심은 자유화 운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정체가 모호하다.‘시장의 인간화’라든지 ‘상생의 자유주의’라는 말도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중도론자들이 우리사회의 분열현상을 이념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동안 좌파, 우파 하며 수없는 논쟁을 해왔지만 그런 이념논쟁에 과연 실체가 있었는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좌와 우의 구분은 본시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정부의 개입정도, 복지예산의 비율, 세금정책 등이 그 기준이 되는데 그동안 있었던 좌우논쟁은 실체없이 수사만 난무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사회 갈등은 상대를 서로간 좌와 우로 색칠한 가공의 싸움이었다.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 합의서’는 우파이고,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성명’은 좌파이며, 박정희 정부가 도입한 고교평준화 정책이 노무현 정부에서 좌파로 비판을 받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를 아예 통제했던 때는 우파였고 아파트 분양가 일부 공개는 좌파적이라는 식이 이념논쟁의 실상인 것이다. 우리사회 갈등과 대립의 핵심은 주류와 비주류간의 밥그릇 싸움인 것이다. 건국이래 한국사회의 중심에 서 있었던 기득권 주류와 그동안 소외돼왔던 비주류간의 갈등이다. 비주류란 계층적 비주류, 지역적 비주류, 학문적·이념적 비주류가 혼합돼 있다. 이념적 비주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진단이 정확해야 해법도 나오는 법이다. 이런 현상을 덮어두고 이념적으로 접근하려 들면 중도가 상황을 헛짚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또 중도가 어느편에 서면 곤란하다.‘뉴 라이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다른 편에서 ‘올드 라이트’와 뭐가 다르냐고 묻게 되면 이미 중도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정치권내의 중도론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중도는 무엇보다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순수해야 한다.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중도가 하나의 세력화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밥그릇 싸움을 위해 이념을 빌려 쓰듯 중도가 세력화하자면 이념적 정체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 같지 않다. 기든스의 ‘제3의 길’도 좌우 양편에서 협공을 받고 있는 터에 실체도 없는 이념논쟁에서 중도이념이란 공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오늘의 이념 갈등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밝히고 차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고 중도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도론은 오늘의 잘못된 현상에 대한 하나의 반성이고 모색이란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새 출발은 반듯한 자기성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때문이다. 임춘웅 언론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케인즈’ 조순 前경제부총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케인즈’ 조순 前경제부총리

    조순 전 부총리는 한국의 ‘케인스(J.M.Keynes)’다. 아니다, 관악산 ‘산신령’이다. 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행을 거른 적이 없다. 또 있다. 산에 오를 때마다 ‘진짜 산신령’과 고난도의 선문답을 질펀하게 주고받는다. 북망산에 누워 있는 이태백과 두보가 놀라 깨어날 정도다. 그가 직접 지은 산시(山詩) 하나를 감상해 보자. ‘산위의 어긋어긋 늙은 소나무/꾸불꾸불 구름으로 용처럼 들어가네/평생의 친구라곤 새와 참새뿐/밤낮으로 의지하며 여름 겨울 보내누나’(山上參差列老松/入雲屈曲似蒼龍/巢枝鳥雀平生友/日夜相依過夏冬. 제목 두타산노송(頭陀山老松).2002년 8월23일 작.‘參差’는 ‘참치’로 읽는다.) 조 전 부총리는 제자들과 산행을 자주한다. 그때마다 제자들은 ‘산신령’이라는 표현을 아무 거리낌없이 한다. 그는 오히려 즉흥시를 지어 화답까지 한다. 이래저래 지어놓은 산시(山詩)만 해도 수백편에 이른다. ‘산신령’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 그는 6공화국 시절 경제부총리를 맡았다. 그때 자택인 서울 봉천동에서 관악산을 넘어 출근하곤 했다. 하루는 출입기자들과 함께 관악산을 올랐다. 그런데 산을 타는 모습이 마치 구름 위를 사뿐사뿐 걷는 듯했다.30대의 젊은 기자들이 60대의 부총리를 뒤따르지 못했다. 그저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앞서갈 뿐이었다. 이를 본 누군가 ‘야, 산신령이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한시(漢詩) 실력은 중국에서도 알아줄 만큼 해박하다. 중국 방문 때 즉석에서 한시를 읊으며 일필휘지로 써내려가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선친한테 한문을 배웠다. 논어·맹자 등도 일찌감치 터득했다. 그는 요즘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회장직을 맡아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발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일성록’은 조선시대 정조임금부터 고종까지 임금이 직접 쓴 일기다.‘승정원일기’는 60년 사업이고 ‘일성록’은 30년 사업이다. 학계에서는 ‘일성록’이 발간되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본다. ●스테디셀러 ‘경제학원론’ 조 전 부총리는 딱딱한 경제얘기를 하지 말자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나 요즘의 화두가 ‘경제’인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는가. 그는 우리나라 경제학계의 거두로 꼽힌다. 그가 지은 ‘경제학원론’은 전공에 관계없이 대학생이면 누구나 일독할 정도로 대학가의 ‘스테디셀러’이다. 얼마 전에는 제자인 이정우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에게 ‘분배론’을 더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쓴소리를 던져 관심을 모았다. 서울 구기동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하얀 머리와 흰눈썹만 빼면 여전히 동안의 얼굴. 먼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의 관계를 물었다. “내가 교수 시절 그는 무척 똑똑한 대학생이었지. 그래서 ‘경제학원론’을 만들 때 다른 제자 5명과 함께 참여시켰어. 그는 인플레이션 부분을 맡았지. 숙제를 줬더니 아주 똑떨어지게 정리했더군.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3,4차례 만날 정도로 여전히 아끼는 후배지. 얼마전 언론에서 쓴소리 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은 치켜세우려고 한 게 그렇게 됐어.” 현 정권의 경제운영에 대한 ‘고언’을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 있어야 해.”라고 했다. 이어 “386들은 (머리가)우수하나 경험이 적어. 그러다보니 자기들만 아는 이론이 바탕이 되고 있지. 결국 현실과 맞지 않게 되고 말아.”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도 실사구시야말로 (경제정책의)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여겼다.”면서 “실사를 파악한 뒤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곧 국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어려움의 씨는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며 경제난의 뿌리 깊은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386세대 머리 우수하나 경험 적어 걱정” “70년대 관치경제에 의해 공업화를 이루다보니 대기업 중심으로 성공을 거두었어. 그러나 이면에는 불균형성이란 이중구조가 생겨났지.80년대에 이를 치유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어. 중소기업은 잘 안되고 정치적으로 민주화 요구가 크게 일어난 시기였지. 결국 문민정부가 등장했으나 경제운영은 그 전과 다름이 없었어.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고 국제 경쟁력은 떨어지고.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았지.” 김대중 정권 때의 관치개혁도 들춰냈다. 즉 금융·노동 등 4대 공공부문을 개혁하면서 2년 만에 IMF를 극복했으나, 카드남발과 소비진작, 건설경기를 부추기는 등의 내수를 통한 성장정책의 실정을 꼬집었다. 결국 참여정부가 이를 고스란히 넘겨 받았지만 비슷한 관치개혁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시장경제의 원리가 아닌 개발연대의 패러다임식 같은 경제운영, 예를 들어 동북아 중심 성장, 금융허브, 경제특구 등 과거의 방법을 답습 하다보니 실사구시는 여전히 뒷전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경제는 오랜 지병처럼 일조일석에 낫지 않는다. 방법은 딱히 없으며 시일을 두고 치유해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과 기업의 사기를 올리고 흐트러진 사회질서를 우선적으로 회복시켜야 원동력이 생겨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국민과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책임감을 통감하고 ‘좀더 잘해 보자.’는 사회적 운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부연했다. ●6·25때 통역장교로 임관 화제를 돌려 수능부정 사태 등 최근의 교육문제를 꺼냈다. 그러자 “기러기 아빠가 있는 나라가 도대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수능처럼)전국적으로 똑같은 기준을 정해도 (교육제도의)효과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경쟁이 없는 교육은 국가를 위해서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며 대학마다 자율권을 많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익과 좌익 등 최근의 분열양상과 관련, 그는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을 예로 들었다. 남북분단과 좌·우익 투쟁의 역사성이 물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늘 분열의 소지가 많다는 것. “가급적 봉합하는 정책이 많이 나와야 해. 정책 입안자들은 말 한마디라도 조용하게 하고 분배 얘기는 될수록 꺼내지 말아야 돼.” 그는 1928년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에 유학자 조정재의 1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49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그는 1년여 동안 강릉농고에서 영어교사를 했다. 그 경력으로 그는 6·25때 통역장교로 임관했다.51년에는 육군사관학교 영어교관으로 발탁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육사11기생들이 그의 첫 제자였다. 1957년 대위로 제대한 그는 경제학 연구를 위해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11년 뒤 귀국, 서울상대 교수로 몸담았다. 이때 정운찬 현 서울대 총장, 좌승희·김승진 박사 등이 그의 제자로 몰리면서 ‘조순학파’라는 한국경제학계의 한 맥을 이루게 됐다. “산이란 춘하추동 언제나 고향이지. 좌우명? ‘도(道)를 밝혀 공(功)을 계산하지 말고, 바름(正)과 의리를 밝혀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이지.” 바둑 아마5단인 그는 최근 조훈현씨와 4점 접바둑을 두어 이겼다. 또 논어와 노자에 빠진 것도 즐거움 중 하나이다.24년째 봉천동에 살고 있는 그는 매일 아침 새벽 서울대까지 부인과 함께 산책을 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8년 강원도 강릉 출생 ▲49년 서울대졸업 ▲67년 캘리포니아대 경제학박사 ▲68년 서울대상대 부교수 ▲70∼88년 서울대 경제학과교수 ▲81년 학술원회원 ▲92∼93년 한국은행총재 ▲93년 도산서원 원장 ▲95년 서울시장(초대민선) ▲97∼98년 한나라당 총재 ▲98∼2002년 15대국회의원 ▲2002년 민족문화추진회 회장, 명지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바른경제동인회 회장 등으로 활약 ■ 주요저서 경제학원론, 한국경제의 현실과 진로, 중장기 경제개발 전략에 관한 연구,J.M. 케인즈, 화폐금융론, 한국경제의 이해, 조순 경제논평 등
  • [뒷골목 맛세상] ‘분당음식’의 자존심

    [뒷골목 맛세상] ‘분당음식’의 자존심

    1980년대 말 노태우정권이 수도권 4대 신도시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남에서 수원 가는 사이의 도로변에 있는 분당이라는 지명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서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치달리고 동쪽으로는 불곡산 산자락이 막아서서 남북으로만 협곡 비슷하게 길게 펼쳐진 보잘것없는 들판은, 그러나 신도시계획이 발표되면서 급기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1990년대 초에 이르러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분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서의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수도권 4대 신도시 중에서도 서울이라기보다는 강남의 위성도시 비슷한 중산층 주거공간의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주로 강남지역에 사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너도나도 분당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강남에 살던 이가 20평,30평대의 아파트를 팔아서 분당에 오면 40평이나 50평대의 아파트를 마련하고도 돈이 남아, 여분으로 중형 자가용에다가 골프 같은 레저용품까지 장만할 수 있었다. ●인구 40만 넘지만 자족도시로는 미흡 흔히 도시의 현상을 공부하는 이들은 위성도시가 그 어미도시로부터 단순하게 인구나 기능을 나누어 갖는 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충족되는 도시의 기능을 갖는 자족도시로 발전하려면 그 어미도시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식이라면 고속도로나 고속화도로를 이용하여 불과 10여분 만에 오고갈 수 있는 강남과 분당은 서로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셈이다. 실제의 거리가 그럴진대 그 어미와 자식 사이의 문화적 거리는 어떠하랴. 비록 잠은 분당에서 자지만 그밖에 먹고 마시고 입고 노는 일체의 문화행위는 강남과 한 치의 오차도 없으리만큼 분당은 강남의 판박이였다. 분당은 지역의 특성에 있어서도 일산이나 평촌같은 다른 신도시들과도 달리, 강남 이외에는 주변에 서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전통적인 자연부락 따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고립된 공간 안에 갇힌 셈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험준한 불곡산 자락에 동서로 옥죄인 채 남북으로 뻗은 일종의 호로병 형상에 갇힌 분당은 애오라지 강남 한 곳으로만 숨통이 트여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분당 특유의 공간적 폐쇄성이 문화적 폐쇄성에도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실 분당은 행정적으로는 성남시의 일개 구에 불과하다. 그렇듯이 행정상으로는 분명히 성남이 분당의 어미도시이다. 분당은 서울방향 이외에도 용인이나 수원에서 분당을 관통하여 성남으로 빠지는 도로가 있지만, 분당사람들치고 행정상의 어미도시에 대한 문화적 취향 때문에 이 길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을 터이다. 도대체 성남은 어떻게 태어난 도시인가. 일찍이 1960년대 말 ‘불도저시장’이라고 불리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무허가 판잣집 18만 채 중에서 우선 미관상 가장 볼썽사납던 청계천 일대의 판잣집들을 막무가내로 헐어낸 다음 바로 그들을 몰아붙여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면서 만들어낸 도시가 아닌가. 분당 사람들로서는 그런 성남을 어미도시로서 인정하기가 어쩐지 껄끄러운 기분인 것이다. ●강남의 판박이… 고유 음식문화 없어 신도시로서 입주가 거의 완료된 분당은 자체만으로도 이제 인구 40만을 넘나드는 그야말로 큰 도시가 되어 있다. 그런 큰 도시가 자족도시로서의 문화나 사회적 기능이 전무하다면, 어쩔 수 없이 괴물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런 괴물스러운 모습은 음식문화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인구 40만의 도시에서 나름대로의 특성이 살아있는 음식문화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새마을연수원 입구의 먹자골목, 야탑동 일대의 먹자골목, 서현동 삼성플라자 일대의 먹자골목, 정자동 일대의 먹자골목, 효자촌 일대의 먹자골목….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것이다, 하고 내보일 만한 분당만의 특색 있는 음식은 보이지 않는다. 애오라지 보이는 것은 분당점이라는 분당만의 희한한 간판이다. 고마다래 분당점, 정성본샤브스끼 분당점, 하야미 분당점, 사누키보레 분당점, 미다래 분당점, 아이스배리 분당점, 무교서린낙지 분당점, 암사해물탕 분당점, 예닮골 분당점, 참치명가 분당점, 천하일품 분당점, 부뚜막왕뚜껑 분당점, 놀부보쌈 분당점, 명동칼국수 분당점, 동경샤브샤브 분당점, 만다린 분당점에서부터 이화주막 분당점, 사발에 술내리고 분당점, 밀밭 사이로 분당점을 거쳐 틈새라면이라는 분식집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어미도시에서 유명한 음식점들의 분당점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 이를테면 음식문화 또한 철저하게 강남이라는 어미도시를 향한 자식도시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셈인 것이다. 분당점 일색의 자식도시 분당에서 당당하게 분당 본점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정자동에 있는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031-713-9777) 분당본점의 주인 되는 이는 신기종씨인데, 재미있는 것은 육남매라는 상호 그대로 신씨 일가의 6남매가 모두 돌솥밥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 정자동 먹자골목 초창기에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이라는 상호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내걸고 식당을 시작한 6남매 중의 둘째 신기종씨를 비롯해서, 첫째 신기원(031-703-9467)씨가 서현동 분당중앙교회 옆에 1995년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셋째 신기현(031-262-0908)씨 역시 1995년에 분당 건너편에 있는 수지의 상현지구에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넷째 신승희(031-707-7243)씨 역시 1995년에 야탑동 지하철 야탑역의 1번출구 관보빌딩 뒤에 있는 먹자골목에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다섯째 신정희(031-718-9878)씨가 1997년에 수내동에 같은 상호로 식당을 내고, 여섯째 신기천(031-206-6090)씨가 약간 늦은 1998년에 그동안 다니던 LG산전을 그만 두면서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낸 식이다. ●육남매 모두 같은 상호로 전문점 운영 이들 신씨 일가가 모두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이라는 상호로 식당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맨 처음 정자동에 돌솥밥 전문점을 차린 둘째 신기종씨의 예상외의 성공이 디딤돌이 되었다. 신기종씨의 부인 최순애씨는 원래 전주출신으로 솜씨가 남달라서 일찍이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는데, 최순애씨의 솜씨에다가 전통 전주비빔밥의 특색을 살려낸 영양돌솥밥이 손님들의 입맛에 맞아 호황을 이루자, 이에 고무된 신기종씨가 형제들을 불러 분당 일대에 신씨 일가의 음식왕국을 이룩한 것이다.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의 주된 메뉴는 역시 7000원짜리 전주영양돌솥밥이다. 전북 장수에서 나는 곱돌 돌솥에 전북 부안에서 생산된 쌀과 완두콩, 검정콩, 은행, 고구마를 섞어 밥을 해낸 다음에 달걀노른자를 고명으로 얹어내는데, 여느 돌솥밥처럼 다른 비빔그릇에 밥을 퍼내 야채와 함께 비벼먹고 누룽지는 뜨거운 물을 부어놓았다가 식사를 끝낸 후에 입가심으로 개운하게 훌훌 먹는 식이다. 이 집에서 비빔용으로 나오는 야채로는 상추겉절이, 돈나물, 콩나물이 있는데, 이 중에서 상추겉절이가 양념장과 함께 결코 6남매 외의 다른 돌솥밥집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비법이 있는 모양이다. 적당한 크기로 손으로 일일이 찢은 상추에 영양부추와 참나물을 넣고 새콤한 소스로 버무리는데, 이 상추겉절이를 돈나물과 콩나물을 넣어서 고명으로 얹은 달걀노른자에 스윽스윽 비벼 한 입 가득히 넣으면 세 가지 야채의 향기가 오래 남는다. 만일 야채가 부족하다 싶으면 밑반찬으로 나오는 무시래기무침, 취나물무침, 유채나물, 도라지, 연근, 느타리나물 등을 더 넣고 비벼도 좋다. 곁들여서 된장국과 조기구이도 나오는데 조기는 비록 씨알은 적지만 맛은 빼어나서 돌솥밥을 비벼먹는 틈틈이 입맛을 바꾸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밖에도 전주영양돌솥밥에 불고기버섯전골을 곁들인 ‘육남매정식’(1만 2000원)이 있는데, 정다운 이와 더불어 식사와 술을 겸하는 데는 이것으로 넉넉할 터이다. 성남에서 분당으로 들어오는 야탑동 초입 여수동에 몇몇 갈매기살집들이 있다. 원래 분당이 생기기 전 광주군 돌마면에 속했던 여수동은 여수동이라는 마을 이름보다는 갈매기마을로 더욱 유명하여 자연부락 형태의 30여집이 모두 갈매기살 전문집을 할 정도였다. 이렇듯 여수동이 갈매기마을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마을에 있는 도축장 시설 때문이었다. 이 도축장에서 부위별로 육가공 되는 돼지고기 부속물 중에 전혀 돼지고기 같지 않게 맛이 뛰어난 갈매기살만 한 부위만을 메뉴로 하여 식당을 차린 것이 전국에서도 유명한 여수 갈매기마을로 발전한 것이었다. 그 후 분당이 개발되면서 여수동은 대부분 분당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도축장은 물론 갈매기마을도 태반이 사라져버렸지만, 다행히 네댓 집이 남아 갈매기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30여곳 성업… 네댓집만 명맥 유지 ‘유명갈매기’(031-752-2393)는 여수동 갈매기마을의 원조답게 옛날부터 내려오는 터전에서 오로지 갈매기살 메뉴 하나만을 고집하며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유명갈매기는 주인이 셋인데, 서로 형제 사이로 맏형 김성웅씨를 위시해서 김선호, 김선이씨 세 형제가 오순도순 식당을 꾸려간다. 갈매기살은 손님 취향에 따라 생갈매기살과 양념갈매기살로 나누어져 값은 모두 1인분에 9000원으로 같은데, 맛은 맛대로 뛰어나지만 돼지고기 한 마리에서 나오는 갈매기가 통째로 나오는 양 또한 푸짐하다. 숯불에 굽는 갈매기살은 유명갈매기에서 만들어낸 깻잎전병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다. 깻잎 위에 얇게 저미듯 둥글게 썬 무를 얹어, 깻잎과 무를 한 켜씩 정성스럽게 쌓은 다음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린 것이 깻잎전병이다. 이 깻잎전병에 참기름을 묻힌 갈매기살을 얹고, 마늘과 고추를 된장에 찍고, 파무침으로 마무리한 다음에 한 입 가득히 넣으면,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맛의 조화가 가히 절묘하다. 이밖에도 달리 상추며 깻잎, 고구마, 당근, 순무 같은 여러 야채들이 넉넉하게 나오는데, 야채들은 겨울 한 철을 뺀 나머지 세 철에는 집 뒤의 드넓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것으로 내고 있다. 여기에 얼음을 동동 띄워 나오는 시원한 동치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갈매기살과 술 몇 잔으로 배를 불리고 나오면 넓은 정원 가득히 매화나무, 살구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감나무, 밤나무 등 갖가지 유실수들이 제철마다 환하게 꽃을 매달고 있어 덤으로 꽃구경도 할 수 있다. ■“갈매기살은 가짜없다” 돼지고기의 횡격막에 붙은 갈매기살은 돼지고기 한 마리에서 불과 300g에서 500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희소부위다. 이를 아는 어떤 이들은 더러 갈매기살이 가짜가 아닌가 하고 의심도 하는 모양이다.‘유명갈매기’의 사장 김선웅은 어렸을 때부터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그런 의심을 명쾌하게 풀어냈다. 그이의 말에 따르면 전국의 도축장 80여 곳에서 하루에 도축하는 돼지들의 마릿수가 적게 잡아 500마리에서 많게는 2000마리에 이르는데,1000마리를 평균으로 해도 8만마리라는 것이다. 이 8만마리에서 나오는 갈매기살은 합계가 모두 32t에 이르는데,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갈매기살을 다른 부위와 함께 팔뿐 갈매기살만을 전문으로 파는 집은 전국적으로 따져도 불과 몇 군데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량이 얼마든지 남아돌아 갈매기살에 가짜를 쓸 이유가 없으니 안심하고 갈매기살의 쫀쫀하고 고소한 맛을 얼마든지 즐기라는 것이다.
  • 전·현직대통령 풍자 음반 낸 공무원 김정중씨

    현직 세무공무원이 전·현직 대통령의 공과 잘잘못을 낱낱이 풍자하는 음반을 발표해 화제다. 전북 전주세무서 세원관리1과에 근무하는 김정중(50·6급) 계장은 최근 ‘역사속으로’라는 제목의 난타 댄스곡 음반을 냈다. 김 계장은 10곡이 실린 이 음반 타이틀 곡에서 전·현직 대통령 9명의 주요 업적과 치부를 경쾌하고 신나는 댄스음악으로 풍자했다. 특히 직접 작사·작곡한 이 노래에서는 대통령의 아호를 직접 거론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1절에서는 고(故)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전두환 대통령까지를 신바람나게 흥겨운 운율로 노래했다. “일구사팔 우남 독립운동 대통령 삼일오부정 사일구망명/일구육공 해위 문민보궐 대통령 오일육혁명 중도사임, 일구육이 중수 조국근대화 대통령 삼선개현 자주국방 십이륙서거 아이고/일구칠구 현석 통대보궐 대통령 십이십이사태 중도사임/일구팔공 계엄령 언론통합 대통령 오일팔비리 백담사감옥/역사속으로∼역사속으로∼” 2절에서는 “일구팔팔 올림픽 양심선언 대통령 오공비리 비자금 감옥/일구구삼 거산 구정청산 대통령 J,N 감옥/일구구팔 후광 반평생 감옥 대통령 노벨평화상수상 수신제가 아들 둘이 감옥으로/이공공이 인권변호 노동운동 대통령 측근비리 국회탄핵 받아/우리 모두 교훈삼아 탐욕 없는 청백리로 존경받는 사람됩시다.”라고 노태우 대통령부터 노무현 현 대통령까지 전·현직 국가원수를 짚고 넘어갔다. 김 계장은 “이번 음반은 부정부패 척결운동에 나서자는 취지에서 대국민 가요음반으로 출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계장은 작고한 가수 배호와 목소리가 너무 비슷해 ‘제2의 배호’라는 별명이 붙은 공무원 가수.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광장] 역린의 정치/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역린의 정치/이목희 논설위원

    이종찬과 이한동은 5공 정권에 참여했으면서도 나름대로 합리적 처신으로 주목받았다.1985년 두 사람의 정치 장래가 갈리는 사건이 일어났다.2월 총선 이후 미 문화원 점거 등 학생운동권의 움직임이 심상찮았다. 당시 청와대는 학원안정법을 만들어 시위 학생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종찬은 여당인 민정당 원내총무, 이한동은 사무총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법이 문제 있다고 생각했다. 청와대·여당 핵심회의에서 이종찬은 끝까지 반대했으나, 이한동은 대안을 제시하며 타협했다. 분개한 이종찬은 기자들을 만나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이종찬은 그날로 ‘짤렸고’, 이한동도 유탄을 맞아 함께 경질됐다. 중국 고전 ‘한비자(韓非子)’에 ‘역린(逆鱗)’이 나온다. 용은 순한 짐승이지만 턱밑의 비늘, 즉 역린을 건드린 사람은 반드시 죽인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 중기까지 공개항명의 결과는 뻔했다. 정보기관에 끌려가 혼나거나, 정치적으로 매장당했다. 그러나 역린을 건드린 당시의 이종찬은 죽기는커녕 국민적 인기가 치솟았다. 역린을 비켜간 이한동의 대중 지지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학원안정법 파동과 1987년 이뤄진 대통령직선제 개헌은 ‘역린’의 정치문화를 정착시켰다. 전임자를 치받지 않고는 국민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전두환-노태우,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정도의 차는 있지만 ‘차별화’를 통해 집권을 이어갔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정동영·김근태 의원을 내각에 포진시킨 뒤 대단히 편안해 한다.”고 전했다. 이르면 연말 개각을 준비중이며, 여당 인사들의 대거 입각이 점쳐진다고 밝혔다. 지금 이해찬 총리처럼 해준다면 대통령이 편할 수 있다. 대권주자들이 언제까지 그렇게 해줄까.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투자정책을 반대한 것은 ‘역린의 법칙’이 표출되기 시작한 사례다. ‘역린의 법칙’은 대든다고 적용되지 않는다. 국민여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재경부 관리들은 “김 장관이 경제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치부한다. 노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선과 내년 전당대회를 겨냥한 무책임한 행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하늘이 두 쪽나도 국민연금을 지키겠다.”는 김 장관의 간명한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더 먹힌다. 여권이 김 장관의 주장을 일부 수용, 황급히 봉합에 나선 것도 여론의 불리를 느낀 때문이다. 청와대와 김 장관의 기싸움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 때 김 장관이 “계급장 떼고 논의하자.”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사안은 훨씬 심각해 보인다. 김 장관측이 ‘단기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밀어붙이다가는 역풍을 만날 수 있다. 이 총리에 이어 김 장관이 정치적 상승세를 타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무심할 수 없다. 역시 대권주자인 김혁규 의원과의 연대설이 나온다. 남북정상회담 등 ‘한건주의’에 매달릴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김 장관 사태 이후 노 대통령의 선택이 주목된다. 참여정부는 여러모로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럴수록 정치인들을 내각에 붙잡아둬서 용광로처럼 들끓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노 대통령이 ‘대권주자의 차별화’가 일찍 시작돼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넘어서는, 정국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하지만 민초(民草)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권이 치고받는 것도 지겨운데 내각이라도 조용하게 만들어 달라. 정치인들을 장관 시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대권주자 관리장’으로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 행정경험은 당에서 정책을 다루어도 충분히 쌓을 수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2006년까지 경기북도 신설 추진”

    열린우리당 경기북부 출신 국회의원들이 경기북도 신설 추진을 결의했다. 열린우리당 경기북부발전기획단의 정성호 단장(동두천·양주)을 비롯한 문희상(의정부 갑), 강성종(의정부 을), 박기춘(남양주 을), 이철우(연천·포천), 최재성(남양주 을) 의원 등은 4일 의정부시의회 3층 회의실에서 기획단 4차 정례회의를 열고 ▲중앙당과 행자부에 경기북도신설 추진기획단 구성 ▲경기북도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 성안 ▲주민 서명운동 돌입 등을 결의했다. 정 단장은 회의에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달중 관련법안을 제출하고 경기도의회의 동의를 얻어 2006년 지방선거전 분도를 실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를 위해 이미 관련법안을 제출했던 한나라당의 경기도당 위원장 홍문종 전 의원과 현역의원들도 규합, 초당적인 추진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북도 신설은 손학규 경기지사가 반대입장을 분명히하고 있지만,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선거때마다 쟁점이 돼왔고 이번엔 지역출신의원들이 집단으로 나서 실현여부가 주목된다. 의정부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참여정부 출범이후 부산상고 약진

    참여정부 출범이후 부산상고 약진

    3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 인사에서 지연·학연에 의한 연고주의 인사관행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근절되고 있지 않은 폐해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특정학교 비율 상한제를 채택하는 등 각종 대안을 내놓으며 균형을 맞추려 하지만 항상 특정지역·특정학교 편중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정권 향배에 따라 희비 중앙인사위원회가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 발표한 30개 부처 실·국장급 120개 선호요직에 진출한 1∼3급 공무원의 정권별 출신지 분포를 보면 이같은 문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선호 요직에 대한 영남출신의 비율은 전두환 정부 때 41.0%, 노태우 정부 44.4%, 김영삼 정부 41.3% 등 높은 수치를 보였으나 김대중 정부 때는 35%, 노무현 정부에서는 32.5%로 떨어졌다. 반면 호남은 전두환 정부 13.9%, 노태우 정부 10%, 김영삼 정부 11.0% 등이었다가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28.9%, 노무현 정부에서는 29.1%로 증가했다. 1∼3급 전체 공무원도 선호요직 추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2001년 11월 국민의 정부 당시 조사와 비교해 영남은 32.9%에서 33.5%로, 호남은 24.1%에서 24.3%로 약간씩 늘었다. 경인은 20.9%에서 20.6%, 강원은 3.8%에서 3.7%로 각각 소폭 감소했고, 충청은 16.2%로 변화가 없었다. ●특정학교 편중 여전 지금까지 공직을 특정고교와 대학출신이 장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편중현상은 심각하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인사위가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에게 제출한 51개 기관 ‘3급 이상 공무원 현황’에 따르면 전체 1462명 중 상위 10개 대학·고교 출신자 비율이 각각 71.9%와 30.9%에 달했다. 고교는 경기고 82명, 광주일고 65명, 경북고 59명, 대전고 41명, 서울고·전주고 39명 등의 순이었다. 대학은 서울대 346명, 육사 117명, 고려대 105명, 성균관대 100명, 방송대 99명, 연세대 88명 등이다.3급 이상을 20명 이상 배출한 대학과 고등학교는 각 13개에 불과했다. 또 지난달 30일 인사위가 62개 정부위원회 위원 962명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서울대 38.4%, 고려대 8%, 이화여대 7.3%, 연세대 4.8% 등이었다. 이는 국민의 정부 당시인 2001년 11월 조사와 비교해 출신학교 순위만 조금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졸업한 부산상고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 점도 새로운 현상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청와대 소속 진급자 158명 중 6명이 부산상고 출신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헌재, 총리서리 법리논쟁때 소수의견

    지난 1998년 헌법재판소 일부 재판관이 50년 동안 지속된 ‘국무총리서리’제도에 “반복적 관행이라해도 성문헌법을 대신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경희대 정태호 교수는 “당시 헌재 결정 이후 몇몇 헌법학자가 의견을 나눴다.”면서 “이는 관습헌법, 헌법적 관행에 대한 국내 유일의 법리논쟁이었다.”고 24일 소개했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국무총리로 임명했지만, 여야 대립으로 국회의 임명동의안 처리가 무산됐다. 이에 김 대통령은 김 총재를 국무총리서리로 임명했고, 한나라당은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총리서리는 우리나라에서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헌법적 관행이란 주장을 폈고, 한나라당은 성문헌법 대로 결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당시 재판관 5명이 “대통령이 국회의결을 방해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혀 심판은 각하됐다. 그러나 김문희, 이재화, 한대현 재판관은 국무총리서리가 수십년간 반복된 헌법적 관행이라도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를 임명한다.’는 성문헌법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우리 헌법은 한번도 국무총리서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승만 정부 이후 노태우 정부까지 13차례 국무총리서리가 임명됐다.”고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위헌 논란이 거세지자 1991년 이후 국무총리서리 제도가 사라졌다.”고 선을 그었다. 국무총리서리를 임명하는 ‘헌법적 관행’이 과거에 있었더라도 1991년을 끝으로 없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대다수의 헌법학자들도 “단순히 반복된 행위를 모두 ‘헌법’이라고 한다면 위헌적 행위도 반복되기만 하면 헌법상 인정되는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며 동조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李총리 “조선·동아 역사 반역자” 취중진담?

    李총리 “조선·동아 역사 반역자” 취중진담?

    ●베를린서 특파원과 술자리 헝가리 진보정상회담에 이어 유럽을 순방 중인 이해찬 총리가 “조선·동아는 역사의 반역자” “조선·동아는 내 손 안에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용납할 수 있어도 조선일보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조선·동아일보를 강도높게 비판해 파란이 일고 있다. 19일 연합뉴스와 이데일리 등에 따르면 이 총리는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을 방문, 현지 특파원과의 술자리를 겸한 간담회 자리에서 이같이 발언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총리는 술을 약간 마신 상태에서 보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친 표현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 어지럽히고 국민 호도” 이 총리는 “조선·동아일보가 정권을 농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나 나나 끝까지 철저하게 싸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동이 심지어 나라의 인사를 좌지우지한 일도 있으며, 박정희 시대엔 안기부(중앙정보부를 잘못 말함)의 정보로 특종하기도 했으나 한 번도 역사의 발전에 기여한 일은 없다.”면서 “그러나 이젠 ‘밤의 대통령’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약간 우파적’이라고 자평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ㆍ동은 나나 정부를 용공이나 부패로 몰려 하고, 수도 없이 공격하면서 나라를 어렵게 하고 국민을 호도시켜왔다.”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 한나라당식대로 하면 북한에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북한의 급격한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역사발전에 기여해야지 자기를 위한 역사왜곡은 안된다.”며 야당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총리는 자리를 끝내면서 “타협해서 보수세력의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도덕적으로도 절대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절대로 보수언론의 왜곡 보도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말로 정리했다. 이 총리는 7박8일간의 유럽순방 일정을 마치고 20일 귀국한다. ●한나라 “술깨고 귀국하시지…” 한편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19일 ‘술 취한 총리, 술 깨고 귀국하시지요’란 제목의 논평을 내고 “총리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처신인데, 이런 것이 참여정부가 말하는 개혁이고 진보의 실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총리가 비판언론에 대해 극도의 적대감을 표출하고 언론을 권력실세의 손바닥 안에 있는 조약돌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국감 하이라이트] 재경부

    [국감 하이라이트] 재경부

    11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재정경제부 국정감사는 예상했던 대로 성장률 전망·경제정책의 이념편향·환율방어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초선의원들의 날선 공격과 노련한 경제부총리의 공방이 치열했다.관심을 모았던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증인 출석을 마다하지 않아 열기를 높였다. ●성장률 공방-고개숙인 이정우 국감장에서 나온 이헌재 부총리의 ‘내년 성장률 4%대 추락’ 언급은 경제여건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어서 심각성을 더해준다.대표적인 ‘인위적 경기부양’ 반대론자인 이정우 위원장조차 “경기가 나빠 대책이 필요하다.”고 털어놓았다.국회의원들은 “그래도 정부의 경제인식이 안이하다.”며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무소속 신국환 의원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4%대로 떨어졌다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년에 5%대 성장을 전제하고 예산이나 정책을 짜게 되면 틀림없이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정부는 건설경기 연착륙을 강조하지만 이미 경착륙했다.”고 주장했다.이 부총리는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내년 5%대 성장을 이뤄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5% 성장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임을 밝혔다.그동안 ‘의도적으로’라도 낙관론을 펴왔던 이 부총리가 성장률 하락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소모적인 좌·우 이념이나 성장·분배 논쟁을 그만하라는 주문이 깔려 있다. 성장률 공방은 이정우 위원장에게도 튀었다.한나라당 김정부 의원은 ‘겨울이 다 지나가는데 난로를 왜 구입하느냐.’는 이 위원장의 과거 발언을 집중공격해 “그 말을 했을 때는 대부분의 경제예측기관이 하반기 경기회복을 낙관하던 2월이었다.지금은 내수가 어렵고 전반적으로 경기가 나쁜 것은 사실”이라는 답변을 이끌어냈다.“구름이 걷히면 (참여정부 경제정책의)진가가 드러날 것”이라던 이 위원장의 종전 발언과 비교하면 상당히 힘이 빠졌다.물론 그는 “그렇더라도 경제위기는 아니며,병이 깊을 때는 진통제를 놔가며 치료해야 하지만 마약은 안 된다.”고 반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념공방-좌편향 vs 중도도 안돼 국회는 ‘테마 국감’을 야심차게 선언하고서도 소모적인 이념공방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학계에서는 현 정부의 좌편향적,분배우선주의적 정책성향이 경제난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같은 당 임태희 의원도 “민간연구소는 물론 심지어 KDI,금융연구원 등 공공연구기관에서도 좌편향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고 가세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쓸데없는 이념공세에 불과하다.”면서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적 실용주의”라고 반박했다.김종률 의원은 “경제정책에 대한 좌파 이념논쟁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이고 소모적인 정쟁”이라며 “특히 경기침체의 원인을 마치 참여정부의 좌파적 경제정책 탓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대단히 악의적인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정덕구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부동산 대책 등을 근거로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를 좌파적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는데,그렇다면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부동산 공개념에 입각한 정책들은 공산주의의 극치라고 해야 되느냐.”고 반문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참여정부가 분배정책을 쓴 적이 없다.”는 이 부총리의 미국 발언을 인용하며 “중도에도 못미친다.”고 다른 각도에서 거세게 비판했다.이정우 위원장은 “10·29 부동산정책 등 참여정부는 분명히 분배정책을 썼다.”면서 “이 부총리는 아마도 재분배정책을 의미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환율정책 공방-재경부·한은 자료 왜 다른가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집계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이자 비용이 무려 1조 8000억원가량 차이나 ‘환율정책 공방’에 기름을 끼얹었다.재경부가 심상정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8월말까지 외평채 이자지급액은 3조 1132억원이다.반면 한은이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등에서는 같은 기간 이자비용이 1조 3000억원으로 추산됐다.1조 8000억원이나 차이난다. 재경부측은 “외평기금 이자비용이 급증했지만 정책수행과 관련된 비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다만 이자지급 방식의 변화와 기금 증가 때문”이라고 해명했다.외환시장에서는 정부가 역외선물환(NDF) 등 파생상품 시장을 통해 환율에 개입하면서 말못할 비용이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과 통화안정증권의 과다발행을 통해 무리한 환율 떠받치기를 계속해오고 있다.”면서 ‘헛발질 외환정책’이라고 성토했다.이 의원은 이 부총리를 집요하게 몰아세워 “외환보유액이 1500억달러 정도면 충분하다.”는 답변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이 부총리가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을 공개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외환보유액이 1700억달러를 넘어선 만큼 정부도 과도하다고 인정했다.”는 이 의원의 자의적 해석에 대해,이 부총리는 “과도가 아니라 넉넉한 것”이라고 받아넘겼다.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외평채 발행으로 늘어난 통화를 흡수하기 위한)통화안정용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부담까지 포함하면 환율안정 비용이 16조원 3799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31%나 된다.”고 비판했다. 안미현 전광삼기자 hyun@seoul.co.kr
  • 대법 “5·18-12·12사건 수사기록 공개해야”

    30만쪽 분량의 12·12 및 5·18 사건 수사기록은 공개대상이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1부(주심 이용우 대법관)는 정동년 전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검찰이 두 사건의 수사·재판 기록을 공개하지 않은 처분은 위법”이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그러나 대법원은 검찰이 개별 수사기록에 대해 납득할 사유를 제시하면 일부 비공개도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아 향후 공개범위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은 검찰보존사무규칙의 관련규정을 들어 기록의 열람 및 복사를 거부했지만 이 규칙은 행정기관 내부준칙에 불과해 법률에 의한 규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재판부는 이어 “검찰은 당시 국군의 작전 지휘체계,군사작전 상황,병력규모,주변국가 움직임 등 정보를 담은 기록이 공개될 경우 국가안보 및 국방·외교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건 관계인의 정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 입증이 부족한 만큼 이유없다.”고 덧붙였다. 공개대상 자료는 검찰이 12·12 사건 관련자에 대한 지난 94년 10월 기소유예 처분,5·18 사건 관련 피고소·고발인 전원에 대한 95년 7월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릴 당시의 기록 일체 등이다.이 자료에는 전두환 12·12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정호용 특전사령관 등 군 관계자와 남덕우 당시 국무총리,신현확 부총리 등 정부 관계자 50여명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내용이 담겨져 있다. 12·12 및 5·18 사건은 95년 11월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이 터진 이후 5·18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전두환·노태우씨 등 관련자가 처벌되는 등 사건의 실체가 거의 드러났지만 이번 판결로 두 사건을 둘러싼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소송을 낸 정 전 의장측은 수사기록이 공개되면 두 사건과 관련한 사망자가 실제는 2000여명에 달한다는 의혹과 발포명령 최고책임자 및 12·12 이후 신군부의 부정부패 부분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CEO 칼럼] CEO 대통령 대망론/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CEO 칼럼] CEO 대통령 대망론/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요즘은 온통 갈등과 싸움뿐인 것 같다.집단이기주의의 전시장처럼 나라가 변해 버렸다.과거를 바로 세우자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과거에 묶여 미래를 포기한 채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386세대의 미숙을 나무라기도 하고,부패의 오랜 경륜(?)을 몰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동서가 다퉜지만 그것도 어느새 더욱 세분화되었다.혹자의 주장대로 역사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오늘의 과정’이다.그래서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돌이켜보는 일은 매우 슬기로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현대국가 반세기를 넘겼다.그리고 21세기 통일 한국을 내다보고 있다.그러는 사이 한국인은 여덟 명의 행정수반과 아홉 번째 대통령을 맞았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에 앞서 독립운동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한국 광복에 공이 있는 미국을 토대로 한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은 차라리 역사의 순리라고 보는 게 옳다.어쨌든 이 시기는 독립운동가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국부(國父)의 권위를 누리다가 독재자로 쓰라린 퇴장을 당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가 열렸다.한국전쟁을 통해 당시 가장 근대화된 한국사회 구성체는 다름 아닌 군부였다.이 때문에 형태에 상관없이 군부의 등장은 또 하나의 순리였다.그들은 전쟁으로 배고픈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데 진력했다.한강의 기적을 일궜다.그러다가 한국인들은 제왕적 대통령을 용인하고 유신까지 체험해야만 했다.심복의 총탄으로 유신은 퇴장했다.숙명이리라. 최규하 대통령의 등장은 얼떨결에 집권한 관료의 표상이었다.오랜 세월 통치에 잘 훈련된 군부 엘리트가 가만있을 수 없다.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등장과 퇴장까지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의 연장선상에 있는 군인에 의한 통치시대라고 봐야 한다.한 쪽으로 기울면 반동이 그만큼 있게 마련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반군부독재·반부패의 표상으로 등장했다.군부독재를 씻어내기 바빴다.경제는 수렁에 빠졌다가 겨우 헤어나고 있다.민주투쟁가 직업정치인 시대였다. 지난날 정주영 대통령후보가 한국 제일의 금력을 확보한 뒤 대권을 향했지만 무참히 실패했다.한국인은 슬기롭게도 돈과 권력을 동시에 한 자연인에게 안겨주지 않았다. 오늘의 집단이기주의의 발호와 쟁투들은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요즘 먹고 사는 데 한국인의 욕심이 커지고 있다.그만큼 박정희 향수가 감돌고 있다.하지만 역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이제 독립운동가도 내각제도 군인도 관료도 민주투사도 돈 많은 오너도 율사도 과거다. ‘비즈니스맨이 국경을 넘으면 평화와 번영,탱크가 넘으면 전쟁’이란 속담이 있다.그래서 싸움을 어루만져 사라지게 하고 번영을 만드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그립다. 그렇다고 해서 밀어붙이기만 하는 CEO도 말주변 좋은 학자출신도 매스컴 스타도 경계해야 한다.진실로 낮은 카리스마,큰 바위 얼굴의 CEO가 그립다. 21세기 미래는 통치자보다는 국가경영자 CEO의 것이다.아니 경제번영을 꾀하고 경제외교를 확고히 하고 경제로 통일기반을 좀 더 다지는 CEO가 왔으면 싶다.그동안 온갖 혹독한 경영환경에서도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탁월하게 성장한 사회조직은 기업이다.바로 기업의 리더가 CEO 아닌가.아직도 임기가 많이 남은 현직 대통령을 두고 차기 대통령 출현에 대망을 품는 것은 그만큼 오늘과 미래 과제가 크고 힘들기 때문이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 언론인, 정치인, 문인들의 일화와 풍류를 담은 ‘언론·정치 풍속사’/남재희 지음

    언론인,정치인,문인들의 일화와 풍류를 담은 ‘언론·정치 풍속사’(민음사 펴냄)가 출간됐다.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이 쓴 이 책에는 한국일보 기자,조선일보 문화·정치부장,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주필 등 20년 동안 언론인으로,또 20년간 정치인(4선 의원)으로 한국현대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경험을 술에 얽힌 얘기로 풀어냈다.대폿집에서 고급 룸살롱까지 다루면서 유명 인사들의 교유,뒷얘기,은밀한 일화를 들려준다 ‘나의 문주(文酒) 40년’이라는 부제의 책은 모두 7부로 이뤄졌다.1부는 ‘생활 풍습의 중요한 한 단면’으로 언론인,문인들과 술을 나눈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문인화로 정평이 난 청곡 윤길중,다재다능했던 소설가 이병주,선비 언론인 천관우 등이 등장한다.1972년 서울신문 편집국장 시절,사회부 기자였던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과의 인연도 들어 있다.그는 “30명쯤 되는 사회부 기자와 술을 마시면 끝까지 따라와 ‘국장,2차 사시오.’하는 것이,권영길 기자다.술이 장사였다.”고 회고한다. 제2부 ‘현대의 황진이들’은 유명 살롱의 마담부터 당대의 여걸이라 할 만한 인물들의 이야기다. 제3부 ‘정치일탈’편에서는 박정희 정권 실세 3인방인 이후락 공화당 비서실장,김형욱 중앙정보부장,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과의 술자리도 나온다. 4부 ‘슈퍼 거물들과의 술자리’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술 이야기를 다룬다.전두환 전대통령이 “김지하 시인을 석방시켜달라.”는 저자의 요청에 “당장 석방하라.”고 아랫사람에게 지시한 에피소드도 있다.1만 2000원.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메트로 탐방]서대문경찰서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서울 서대문구 일원과 경기도 고양군 일부를 관할지역으로 문을 열었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164번지 현 청사는 1982년 옛 청사를 허물고 지었다.관할지역은 서대문구 14개 동과 종로구 4개 동이다.23.17㎢의 면적에 25만 30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한다.경찰관 584명과 전·의경 185명이 치안을 담당한다.경찰관 1인당 주민 433명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신촌은 하루 유동인구가 50만명에 이르는 교통 요충지이다.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홍익대 등 대학가 밀집지역으로 학원 집회가 많다.또 프랑스대사관과 스위스대사관 등 7곳의 외국 공관이 있다.연희동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저가 위치해 기습시위가 적지않다.독립공원을 중심으로 시국 집회가 많으며,전체적으로는 강력 범죄보다 절도 등 서민형 범죄가 주로 발생한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오늘의 눈] 한단계 성숙해진 中정치문화/이석우 국제부 차장

    2002년 10월말 장쩌민(江澤民)은 톈안먼광장 옆 인민대회당에서 외국하객과 환담하다가 농촌문제,빈부격차를 “풀기 어려운 고민거리”라고 지적하며 “난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다음 지도자에게 넘기고 떠나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정부·군대·공산당의 ‘삼권’을 쥐고있던 장쩌민이 당총서기와 국가주석,두 자리를 후진타오(胡錦濤)현 주석에게 물려주기 직전이었다. 하객은 노태우 전 대통령 및 각료들로 한·중수교 10주년 축하를 위해 중국외교학회가 초청한 것이었다.이 자리에서 장쩌민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도 읊었다.초야에 묻히기 위해 관직과 권력을 버리고 낙향하는 동진(東晋)의 전원 시인의 시구로 2선으로 후퇴하는 ‘착잡한 마음’을 자신보다 앞서 야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전직 외국원수에게 전달했던 셈이다. 그후 만 2년이 채 안 된 19일.장쩌민은 마지막 권력인 군사위 주석직을 후진타오에게 넘겨주었다.임기 2년이 남아 있고 여전히 막강한 인맥을 거느리고 있는 터라 외신들은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라고 타전했다.공산국가들이 무너져내리고 톈안먼 민주화운동의 혼란속에서 정상에 올라 정치안정과 9%대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낸 성공한 지도자로서 무대를 내려선 것이다.후계자와 악수를 나누며…. 지휘봉을 넘겨받은 후진타오는 2년전 장이 지적했던 문제에 여전히 직면해 있다.기술관료 출신답게 후는 대결보다 타협,이념보다 성과를 중시하는,최소한도의 합리성은 갖춘 실용주의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이는 개인적 성향을 떠나 중국사회의 시대적 요청과 한 단계 성숙해진 중국정치의 반영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후진타오와 동갑내기인 원자바오(溫家寶)총리 역시 실용주의의 ‘화신’으로 불린다.국정운영에 뜨거운 가슴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21세기 첫 20년은 경제건설과 내치에 치중한다는 국가목표를 세운 중국인들은 미래를 위해 냉정한 머리와 실용주의로 무장한 지도자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 듯하다. 이석우 국제부 차장 swlee@seoul.co.kr
  • [정치플러스] 고액 추징금 미납액 1兆넘어

    10억원 이상 고액 추징금 미납자의 총 미납금액이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가 17일 국회 법사위 소속인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에게 제출한 ‘추징금 다액 미납자 집행내역’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10억원 이상 고액 추징금 미납자는 96명이며,추징금은 1조 3434억여원이었다. 그러나 전체 추징금의 80%인 1조 751억여원이 미납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을 위반한 김모씨가 1964억여원으로 가장 많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1672억여원으로 뒤를 이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은 550억여원이었다.
  • 與 “박정희시대 집중 조사”

    김구 선생 암살사건,송진우 선생 피살사건,민청학련사건,인혁당사건,KAL기 폭파사건…. 열린우리당이 15일 과거사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힌 사건들이다.이들 사건은 몇가지 예에 불과하다.열린우리당이 조사대상으로 삼은 시간적 범위는 일제시대부터 노태우 정권 때까지 거의 100년을 망라한다.상황에 따라서는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의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단장 원혜영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회의를 갖고,▲일제하 징용 등 강제 동원 ▲한국전쟁 전후 국군 또는 인민군,빨치산 등에 의한 양민 학살 사건 ▲정부 수립 이후 정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과 반민주적 행위,헌정질서 파괴·위협행위 등을 조사범위로 삼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법안 작성 책임을 맡은 문병호 의원이 밝혔다. 문 의원은 특히 “아무래도 박정희 시대의 사건이 많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해 여야간 논란을 예고했다. 문 의원은 “조사 범위는 권위주의 정권 때까지,즉 김영삼 정권 이전 정권까지로 끊었다.”고 말했다.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1993년 2월까지를 조사범위로 삼는다는 얘기다. ‘언론인 대량 해직 사건’에 대해 그는 “준(準) 국가기관이 개입한 인권침해 사건이므로,자연스럽게 과거사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또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 등은 의문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불만이 있는 피해자가 진상 규명을 요청해 올 경우 조사 대상으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논란을 빚은 동행명령장 발부권과 공소시효 정지 여부,국가기관의 정보 공개 거부 등과 관련해 문 의원은 “여러 지적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다.”고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문 의원은 “오는 22일까지 법 조문작업을 마치고 의원총회 등을 거쳐 당론으로 확정한 뒤 다음달 초 법안을 발의,11월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서울광장] 연기금 주식투자의 조건/ 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연기금 주식투자의 조건/ 우득정 논설위원

    우리 국민들은 주식시장에 대해 극단적으로 이율배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문제가 나오면 뭘 믿고 국민의 노후 자금을 주식에 투자하느냐고 반발한다.한마디로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과 주식시장의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다.그러면서도 외환위기 이후 외국의 자본에 대해서는 우리 시장에 투자하라고 손짓한다.그리고 결산시점을 맞아 외국의 투자자들이 거액의 배당금을 챙기는 것은 못마땅해 하고 배아파 한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해 주식투자의 물꼬를 트려 하자 야당과 노동계,시민단체들이 발끈하고 있다.경제정책 성적표라고 일컬어지는 증시를 떠받치기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을 정부의 쌈짓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내용이다.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 투신사들을 동원해 무리하게 증시를 부양했다가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렸던 경험과 인위적인 증시 부양은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교과서적인 상식이 비판의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증시가 폭락할 때마다 연기금쪽으로 눈길을 돌렸던 경제관료들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다.그 결과,연기금의 주식투자 제한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냉정한 관점에서 본질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지난해 말 현재 55개 연기금 190조원은 채권에 51.5%,금융기관 예치에 32.8%,공적자금 등 예탁에 12%,주식에 4%가 투자돼 있다.연기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국민연금(지난해 말 현재 112조원)은 채권에 79.4% 투자된 반면 주식 투자는 6.3%에 불과하다. 주식 투자 비율이 절반 이상인 외국에 비해 우리의 연기금은 채권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돼 있는 것이다.안정성만 우선시한 탓이다.이러한 비정상적인 연기금 운용은 채권 수익률 하락-연기금 수익률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 구실을 하고 있다.더구나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2025년이면 기금 규모가 12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투자처를 다변화하지 않는 한 조만간 돈을 굴릴 데가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저금리 기조,실질금리 마이너스 추세를 감안하면 낸 돈만큼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외국의 펀드들이 고객인 은퇴생활자들의 안락한 노후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 주식시장에서 고액의 배당을 요구하는 것을 계속 시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만 볼 건가.지금처럼 연기금의 주식 투자에 빗장을 걸어둔 상태에서는 해법이 나올 수가 없다.연기금의 주식 투자를 허용하되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에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본다. 게다가 연기금의 주식 투자 허용 논란에서는 정작 해야 할 핵심적인 논의가 빠져 있다.자본시장 정상화를 위한 논의다.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이 주식·채권 등 직접 자본시장을 통해 기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금융시스템을 정비하려 했으나 1년이 못돼 외환위기 이전의 은행 중심 시스템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직접 자본시장 육성에 필요한 신용평가나 외부감사,기업의 투명성 확보 등 지원체제가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400조원에 이르는 부동자금이 은행권의 단기 상품에서만 들락거리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방증한다. 연기금이 외국의 거대 자본에 대항하는 토종마 구실을 하려면 연기금의 주식 투자 등 투자처 확대 논의와 함께 직접 자본시장을 되살리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돼야 한다.직접 자본시장이 신뢰를 회복한다면 누가 말려도 연기금이 증시를 기웃거리게 될 것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노원구청 채민옥 복지관리팀장

    노원구청 채민옥 복지관리팀장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복지사회를 만들기 위해 남은 공직생활을 다 바칠겁니다.” 노원구청 채민옥(50·여) 복지관리팀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서울시 복지행정의 ‘왕언니’.채 팀장은 지난 1988년 서울시에 복지를 전담하는 ‘사회복지과’가 신설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복지업무만 담당해왔다. 그녀가 복지행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려웠던 가정환경 때문이다.1975년 동사무소 직원이었던 남편을 만나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중풍으로 쓰러진 친정어머니를 대신해 친정 살림과 생계를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 “위로 두 언니가 있었지만 살기 급급해 손을 벌릴 수 없었어요.당시 중학생이었던 막내 여동생까지 제가 키워야했습니다.” ●형편 어려워 자연스레 복지에 관심 생겨 뻔한 남편의 월급봉투만 기다릴 수 없었던 채 팀장은 결혼 3년째인 1978년 9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공무원 시험이 지금처럼 치열하지는 않았습니다.친정 살림하랴,칭얼대는 큰 딸 돌보랴,공부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방법 밖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1979년 관악구 봉천 8동 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또다시 어려움이 닥쳐왔다. 중풍으로 고생하던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친정아버지와 막내여동생까지 부양하게 된 것이다.4년 뒤에는 남편과 사별한 큰 언니가 자녀 둘을 데리고 채 팀장의 집으로 오게 된다. “살림이 힘들다보니 자연스레 사회복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직장을 다니면서도 자녀 키우는 걱정을 안해도 되고,나이가 들어도 노후걱정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요.” ●초기부터 투신한 서울시 복지행정의 ‘대모’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1988년 처음으로 서울시에 복지분야를 전담하는 ‘사회복지과’가 신설됐다.채 팀장은 그때부터 복지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복지행정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여직원을 많이 배정했습니다.전 유아문제부터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때부터 1994년까지 영등포구와 도봉구를 오가며 어린이집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다. “기존 새마을유아원이 1990년 현재의 어린이집 제도로 전환되면서 각 어린이집이 회계처리나 업무미숙 등으로 혼선을 빚었습니다.하지만 일하는 여성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도록 관련 종사자 교육을 강화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채 팀장은 이 기간 중앙대에서 유아교육을 주제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해 복지행정에 대한 전문성도 강화했다. 이어 1994년 말 서울시로 자리를 옮긴 채 팀장은 노인복지업무를 맡게 됐다. “제가 힘들게 부모님을 부양한 경험이 있어서 독거노인에 대한 행정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노인의 집 40곳 개설등 이끌어 채 팀장은 1996년 ‘서울 가정도우미 제도’를 창안했다.독거노인의 집을 도우미들이 직접 방문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또 불우한 노인들이 함께 사는 그룹홈인 ‘노인의 집’을 계획해 서울시내 40곳에 개설했다. “담당 공무원들마저 노인복지를 외면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넉넉지못한 형편에 고생만 하신 부모님도 자꾸 떠올랐고요.” 1999년 영구임대주택 등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많은 노원구로 발령받은 그녀는 장애인 복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정년까지 장애인 지원에도 최선 관련법상 지원을 할 수 없는 장애인 단체에 대해 자치구 공모사업을 통해 사무실 설치를 지원했다.다운증후군을 앓는 사람을 위한 다운복지관 건립과 장애인 보장구 무료수리센터 설치·운영 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이같은 노력에 가족들도 동참할 예정이다.대학 재학중인 아들은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하고 있고,출가한 큰딸도 유아교육을 공부할 계획이다. “정년 때까지 장애인도 스스로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기회가 닿으면 복지와 관련된 공부를 더해볼 작정입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정가 카페] 노태우 “역사는 심판대상 아니다”

    [정가 카페] 노태우 “역사는 심판대상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20일 연희동 자택을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역사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며 최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역사 심판은 위험스럽고 후유증이 우려된다.”면서 “원칙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이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사 규명은 미래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원칙은 이해되지만,지금 경제가 걱정이다.”고 주장했다.또 “경제는 돈 버는 사람이 돈을 버는데 몰두하게 해줄 때 가장 발전한다.”면서 “처음부터 (정부가)막아서 의욕을 꺾으면 경제가 잘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참고 또 참으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는 것이며 낭비처럼 보여도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라면서 “화합이 최고의 덕목이며 그렇게 해야 어려울 때 같이 극복할 수 있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주로 경청하면서 과거사 규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이로써 박 대표는 전직 대통령 예방을 모두 마쳤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