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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 막내리는 ‘제5공화국’ 뭘 남겼나

    11일 막내리는 ‘제5공화국’ 뭘 남겼나

    국내 최초로 격변의 제5공화국 시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MBC 특별기획드라마 ‘제5공화국’(유정수 극본·임태우 연출)이 오는 11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방송전부터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며 화제를 뿌린 만큼 지난 5개월에 걸쳐 방영된 이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팩션´으로 거듭난 5공화국 ‘10·26’과 ‘5·18’,‘12·12’ 등 제5공화국의 핵심 사건들을 정면으로 그렸지만 사실(fact)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도, 작가의 상상력만을 펼친 허구(fiction)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실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작가의 허구가 추가된 ‘팩션´(fact+fiction)으로, 역사적 사실 속 독재세력에 대한 시청자의 주도적인 해석을 유도해냈다는 평가다. 유정수 작가는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면서 “드라마에서는 주관적인 감정을 버리고 사실을 쫓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최대한 노력했다.”고 말했다. 방송 초반 전두환 역을 맡은 이덕화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전두환 미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으나 이후 12·12 쿠데타 장면을 기점으로 미화 논란은 잠잠해졌다. 오히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초반에 비해 큰 사건 없이 조용히 전개됐다. 제작진은 처음으로 5공화국 전체를 한 흐름으로 조망한 만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까지 심도있게 그리기 위해 애썼다. 특히 광주에서의 시위대·진압군 대치 장면 촬영을 앞둔 지난 6월에는 이덕화와 임태우 PD 등이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당시 상황실장인 박남선씨 등 5·18 관련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끊임없는 논란과 관심에 비해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평가다. 방영 초기에는 17%대로 분위기를 잡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약 13%대의 시청률을 기록, 더 많은 시청자를 드라마로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지만 12·12 쿠데타를 다룬 4∼9회는 최고 17.4%를,5·18을 다룬 16회도 15% 이상을 기록, 주요 사건들에 대한 관심은 유도했다. 한편 지난 4월23일 10·26을 다루면서 시작한 이 드라마는 오는 11일 방송되는 마지막회(41회)에서 6·29선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대통령이 된 노태우가 왜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고,40년 우정이 끝나는 파국으로 치닫는 길을 택했는지를 조명하면서 질곡의 역사를 끝마친다. ●10억원 손배소 당하기도 5공화국을 지배한 독재정권의 잔재인 역사적 사실들을 화면에 담은 만큼 허화평·허삼수 등 5공 핵심인사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들은 3차례에 걸쳐 MBC에 대본 수정과 정정을 요구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박철언 전 의원은 허위사실을 방영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최근 제작진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유 작가는 “대본 집필은 끝났지만 아직 소송에 대비해 작업실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며 씁쓸한 소회를 밝혔다. 유 작가는 또 “이번 드라마 방영과정에서 드러났듯 ‘전두환 팬카페’가 생길 만큼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독재의 향수가 아직도 존재한다.”면서 “이것이 바로 드라마 제5공화국을 방송해야 했던 이유”라고 말했다. 상당수 시청자들은 이같은 반발에 굴하지 않은 제작진의 노력에 찬사로 호응했다. 제5공화국 온라인 시청자 게시판에는 “드라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시청자들의 애정어린 의견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전두환·노태우씨 서훈 박탈 추진

    정부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훈·포장 회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개정된 법안 시행 이전이더라도 박탈이 결정되면 바로 회수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현재 치탈 쪽에 비중을 두는 분위기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6일 “지난 6월 개정된 상훈법이 11월5일 발효된다.”면서 “법이 발효되기 이전에 전·노 전직 대통령의 서훈박탈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상훈법은 훈·포장을 주거나 박탈할 때는 해당 기관에서 요청을 하도록 돼 있다. 전·노 전직 대통령의 경우 국방부에서 요청해올 경우에 한해 가능하다. 그러나 개정된 법에는 해당기관의 요청없이 행자부장관이 박탈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정부 관계자는 “상훈법을 개정한 것은 행자부가 나서서 박탈하라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면서 “법 개정이 이뤄진 만큼 행자부도 적극 이 문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안이 전직 대통령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행자부 자체 검토, 부처간 협의 등을 거쳐 청와대의 재가를 받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행자부는 박탈을 할 경우, 대상에 대해서도 고민이다. 전·노 두 대통령 모두 실형을 받은 데다 모든 훈·포장을 박탈할지, 아니면 5·18과 관련된 것만 박탈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일각에서는 위헌논란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노 전직 대통령은 지금까지 각각 10개의 훈장을 받았다.5·18과 관련해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국군보안사령관 자격으로 ‘충정훈련 및 국가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해 보안사령관 자격으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靑 “한나라에 달렸다”

    靑 “한나라에 달렸다”

    “청와대는 준비할 것도 없고, 모든 것은 한나라당에 달려 있다.” 오는 6일쯤으로 예상되는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회담에 대해 2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회담의 형식과 방법·절차를 모두 한나라당에 따르기로 한 만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연정 담판’의 결과가 뻔하게 예상된다는 점에서 회담 자체보다는 회담 이후의 파장에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핵심 관계자는 회담 전망에 대해 이날 “한강에 배 지나가듯이 끝나지 않고, 뭔가 흔적이 남을 것”이라고 뉘앙스를 남겼다. 회담에서 연정에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경우 지역구도 해소 방안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리고 지역구도 해결 방안에 대한 논란은 하반기 정국을 달굴 것으로 전망된다. 적어도 다음달 재·보선을 거쳐 민주·민주노동당과의 소연정 등의 형식으로 ‘연정 국면’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 피크를 이룰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 자연스레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힘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권에서는 중대선거구제, 독일식 명부제, 권역별 비례대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선거구제 개편에 부정적이어서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다음달 재보선 결과에 따라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마무리되면 임기 단축, 개헌 가능성, 중간 평가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2일 정세균 원내대표 주재로 열린 월례회의에서 현시점에서 개헌논의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시기를 일치시키는 것도 대안”이라고 밝힌 대목은 개헌 구상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총선과 대선의 시기를 모두 2007년 12월 이전에 조기 시행하는 쪽으로 하면 대통령의 임기는 단축될 수 있다. 그리고 개헌안을 자신에 대한 중간 평가로 성격 규정을 할 가능성이 있다. 노 대통령은 임기 단축과 관련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 공약을 거론하면서 “국민들에게 더 향상된 정치문화, 정치제도를 위해서 누군가가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것(임기 단축)은 결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데스크시각] ‘장관 제조공장’은 이제 그만…/곽태헌 경제부 차장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문제있는 장관들이 나올 때마다 인정사정없이 경질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스트레스가 조금은 해소됐는지 모르겠지만, 자동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뉴스로 경질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장관이 있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개각이 잦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출범 때의 장관중 오인환 공보처장관만 남았다.”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오 장관은 언제부터인가 유일한 출범 멤버라는 ‘희소성’ 때문에 YS와 유일하게 임기를 같이하는 기록을 갖게 된 면도 있다고 한다.YS는 취임 초 “임기를 같이하는 장관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YS때와는 달랐다. 문제가 있는 장관이라도 감싸는 편이었다. 남들이 잊을 만하면 다른 인사들과 함께 물타기식으로 문제있는 인사를 정리하는 쪽이었다. 물러나는 쪽을 배려한 셈이지만 DJ시절에도 장관들의 평균 수명은 YS때와 별 차이는 없었다. DJ와 임기 5년을 같이한 장관은 없었지만 색다른 기록은 나왔다.DJ와 같은 전남 목포 출신의 전윤철 현 감사원장은 DJ 임기 5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등 장관급 이상 고위직을 차례로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떠나는 사람을 배려한다는 면에서 DJ에 가깝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2003년 2월27일 조각(組閣)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안정된 부처에서 새로운 활력과 창조적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할 때에는 2∼3년의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면서 “지속적인 개혁과 안정이 필요할 때에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국가정보원의 도청과 관련해 국회에서 “불법 감청할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1000명도 안 된다.”고 정신나간 듯한 답변을 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만 출범 때의 멤버다. 노 대통령은 또 취임 초 기자회견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장관 평균 재임기간이 20개월, 전두환 대통령 때에는 15개월, 노태우 대통령 때에는 13개월, 김영삼 대통령 때에는 11개월, 김대중 대통령 때에는 12개월이었다.”면서 “이래서 장관이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몇차례 말했다. 좋은 지적이었지만, 노 대통령 시절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12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YS나 DJ시절보다 나을 게 없는 셈이다. YS때의 장관은 112명,DJ때의 장관은 96명이다. 임기 절반이 지난 노 대통령 시절 장관은 48명이다.YS때 장관급 부처가 가장 많았다. 이처럼 과거정부나 현정부나 마치 ‘장관 제조공장’처럼 된 것은 큰 문제다. 유능한 인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하는 사례다. 능력보다는 지역간이나 정파간의 안배로 장관자리를 내주고, 선거에서 낙선한 인사에게 자리를 주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아닐까. 또 장관자리를 국회의원선거나 광역단체장선거,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인사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거나 ‘경력관리용’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재선에 성공한 뒤 2기를 같이할 일부 장관들을 임명하면서 같이 기자회견을 했다. 물론 장관을 치켜세웠다. 당시 미국에서 연수중 이런 광경을 보고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수석이 간단히 신임장관을 발표하고, 보도자료를 청와대 기자실에 뿌리는 것으로 끝나는 우리와는 달랐다. 미국의 문화가 우리와는 다른 것도 한 요인이겠지만, 미국은 그만큼 장관들이 자주 바뀌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장관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이 나와서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장관은 5년째 부시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단임으로 끝날 때에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장관들은 너무 많고,2기까지 연임하는 장관들도 적지 않다. 대통령과 2기를 같이하는 장관이 있다는 것은 뉴스도 아니었다. 권위도 있고, 무게도 있어야 할 장관이라는 자리가 우습게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언제쯤이면 우리나라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장관들이 쏟아져도 얘깃거리가 안 될까. 곽태헌 경제부 차장 tiger@seoul.co.kr
  • 유명인 주주 기업 “실적 신통치않네”

    ‘경영 성적은 지명도순이 아니다(?)’ 가수와 영화배우 등 유명 인사들이 주주 등으로 참여하는 일부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공교롭게도 부진을 면치 못해 관심을 끌고 있다. 29일 상장사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05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사회 유력 인사들과 연예인들이 대표이사나 주주로 참여하는 EG와 텔코웨어, 씨피엔, 삼호F&G, 어울림정보기술, 스펙트럼DVD, 여리 등은 올 상반기 실적 대부분이 감소했거나 적자를 기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인 박지만씨가 회장인 기초화합물 제조업체 EG는 올 상반기 매출액이 9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줄었다. 영업이익은 3억원으로 18.6% 감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주주로 참여하고,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의 아들 한태씨가 대표이사인 이동통신 솔루션업체 텔코웨어는 매출액이 204억원으로 14.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7억원에 머물러 지난해 동기 대비 17.2% 급감했다. 천하장사 출신이자 방송인인 강호동씨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소프트웨어개발업체 씨피엔도 매출액이 24억원으로 11.0% 줄었고, 영업이익은 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LPGA프로골퍼 박지은씨가 4대 주주인 수산물가공 전문기업 삼호F&G는 매출액이 8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6% 줄었으며, 영업이익도 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가수 조PD가 주주로 참여하는 네트워크 보안솔루션 제공업체 어울림정보통신도 매출액이 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8% 줄었고, 영업이익은 11억원의 적자를 보였다. 권상우와 이동건을 주주로 영입한 보안솔루션 전문 공급업체 여리도 매출액이 4억원으로 무려 77.4%나 급감했고, 영업이익은 3억원의 손실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아웅산 보복 北폭격’ 소문…워커가 저지했다

    ‘아웅산 보복 北폭격’ 소문…워커가 저지했다

    ●아웅산 보복 막은 리처드 워커 글라이스틴의 후임자인 워커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의 아시아 전공 학자였다. 남부 출신인 그에게는 ‘딕시’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미국에서는 남부 주들을 ‘딕시 랜드’라고 부른다.) 워커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공화당 중진인 서몬드 스트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의 추천으로 임명됐다. 선거 공신인 스트롬 의원은 출신지역의 인물을 주요 포스트에 앉히고 싶어 친구인 워커에게 “어느 자리를 원하느냐.”고 물었고, 워커는 “한국 대사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워커 대사 재임기간인 1983년 미얀마 양곤을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 정권의 아웅산 테러가 발생했다. 워커는 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그를 만났다. 당시 전 대통령이 아웅산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을 폭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워커 대사는 전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은 동북아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면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전 대통령은 “이미 보복 공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6월 항쟁 때 군 출동 경고한 제임스 릴리 릴리 대사는 중앙정보부(CIA) 출신이었다. 릴리는 글라이스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선교사가 아니라 사업가였다. 릴리 대사의 재임 중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서 민주화를 요구했다. 당시 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려 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군이 나서면 파국에 이를 것이란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당시 김경원 주미대사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백악관에 요청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전 대통령에게 “진압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표현은 매우 정중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전 대통령을 만난 릴리 대사는 편지 내용보다 훨씬 강력한 어조로 전 대통령에게 경고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릴리 대사는 미군 지도부도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 전 대통령은 군을 투입하지 않았다. 그 직후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이 나왔고,87년 대선에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결국 노태우가 당선됐다. ●한반도 비핵화 추진한 도널드 그레그 그레그 대사도 CIA출신이다. 그는 1970년대 하비브 대사 시절 CIA한국지부장을 지내며 김대중 납치 사건 때 김대중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설명했다. 중국 및 러시아 전문가인 그레그는 1980년대 조지 H W 부시가 부통령일 때 그의 안보보좌관을 지내며 부시와 매우 가까웠다고 한다. 그레그 대사의 주요 임무는 한국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철수시키는 것이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레그 대사 본인이 한국에서의 핵 철수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다는 것이다. 오버도퍼 교수는 그것이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협상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그 바탕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정책은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이 주도한 것이며, 미국은 작은 도우미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진단했다. 북한과 화해하고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노무현 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비슷한 점이 있지만 ▲시기와 주변 상황이 다르고 ▲지금은 북핵 문제가 걸려 있는 점이 다르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물론 그레그 대사 시절에도 북한의 핵 문제는 잠재해 있었지만 실제로 표면화된 것은 93,94년이다. ●워싱턴 고위당국자들의 책상을 내려친 제임스 레이니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한 레이니 대사는 외교관이 아니라 대학교수였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 대학에서 강의하던 그는 같은 주 출신인 카터 전 대통령과 아주 가까웠다. 젊은 시절 주한미군에서 근무했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한국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레이니 대사 시절 북핵 문제가 터졌다. 그러나 당시 워싱턴에서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레이니 대사는 미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만나 북핵 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안임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레이니는 당시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인식이 기대에 못 미치자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심각성을 설파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94년 들어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미군이 한반도로 향했다. 북한이 유엔 제재에 반발, 군사적 도발을 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였다고 한다. 레이니는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 한국내 모든 미국인을 피신시키려 했다. 일단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매우 위험한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카터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평양을 방문해달라는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왔다. 카터가 대통령 재임시 김일성, 박정희와 비무장지대(DMZ) 3자회담을 추진하는 등 북한을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 등이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레이건과 H W 부시 정부는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서 카터의 평양행을 원하지 않았다. 북핵 위기의 한복판에서 카터가 평양을 방문한 것은 레이니 대사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목소리 낮았던 스티븐 보스워스 보스워스 대사는 외교관이면서 경제 전문가였다. 주한 미국대사 가운데 실질적으로 경제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인물은 보스워스가 처음일 것이라고 오버도퍼 교수는 평가했다. 경제 전문가인 보스워스 대사 시절 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상황에 들어간 것은 흥미롭다. 보스워스 대사는 외부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로 키’를 유지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재임 당시 누구보다 한국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워스 재임기간인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보스워스를 비롯한 미 당국자들은 공식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에서의 평가와 입장은 사람에 따라 달랐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막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고 그는 전했다. 보스워스 대사는 미국이 클린턴 정부에서 조지 부시 정부로 넘어가면서 대북 정책이 바뀌는 과정도 겪었다. ●부시가 지명한 3명의 주한대사 외교관 출신인 토머스 허버드 대사는 북한과 많은 협상을 벌여온 북한 전문가였다. 허버드는 제네바 협상 당시 미국 대표단에 포함돼 있었고,95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후속 경수로 협상에선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다. 이후 다른 협상으로 평양을 자주 방문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남북관계 전문가인 허버드를 자신의 첫 주한대사로 지명한 것은 논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평양 당국과의 협상이 주요한 한반도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허버드 대사를 포함, 최소한 3명의 주한대사를 지명하는 대통령이 됐다. 오버도퍼 교수는 크리스토퍼 힐 대사와 알렉산더 버슈보 대사 내정자의 인선은 허버드 대사와 달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했다. 힐과 버슈보 모두 유럽 전문가들이다. 힐은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폴란드와 발칸반도 등 유럽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버슈보는 라이스처럼 소비에트 전문가로 나토와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오버도퍼 교수는 힐 대사에 대해서는 “너무 짧은 기간 대사로 일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코멘트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한국에서 힐 차관보의 인기가 높은 것과 관련,“힐 대사의 인기는 대북 협상이 성공적일 경우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힐 차관보는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보다 정부 내에서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버슈보 같은 거물을 차기 주한대사에 지명하려는 것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버슈보가 유능한 외교관이며 그의 역할은 한·미 정부간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17년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국제관계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1970년대 이래 모든 주한 미국대사와 한국 대통령·외교부 장관·주미 한국대사를 인터뷰한 경험을 갖고 있다. 포병장교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으며 1993년 기자를 그만둔 뒤 ‘두 개의 한국’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미 정부 한국 담당 관료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현재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여의도in] 밥통 채운 대통령… 밥통 태운 대통령…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22일 역대 대통령들을 밥통에 비유한 글을 인터넷사이트 ‘프리존’에 기고했다. 시중의 우스개를 정리한 내용이다. 유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밥통은 있는데 밥이 없어서,20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설득하다 겨우 양식 마련할 즈음 부하 하나가 총을 쏴 세상 떠난 사람”이라고 비유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미제 밥통에 양식까지 가득해서 부하들 모두 불러 잔치하면서 배불리 나눠 먹은 사람”으로 정리했다.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밥통에 밥은 없고 누룽지만 남은 경우”라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밥통에 누룽지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아 나중에 어떻게 되건 밥통이라도 외국에 팔아 살림했다.”고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양식은커녕 밥통마저 없어 카드빚을 내 현대식 전기밥통을 마련했다.”고 정리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선 “마침 새로 산 전기밥통을 코드 맞는 사람들과 성능 시험해 본다고 가동했는데,220V에 꽂아야 할 코드를 110V 코드에 꽂아 전기밥통이 타버린 경우”라고 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서울광장] 대통령의 귀/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의 귀/이목희 논설위원

    대한민국에서 정보가 가장 많은 사람은 현직 대통령이다.‘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말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충언하는 신하는 정보전달 경로가 한정된 왕조시대나 권위주의 정권에서 필요했다. 지금은 다르다. 언론보도만 유심히 살펴도 “그런 비판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간단히 알 수 있다. 공식·비선 라인에서 많은 보고가 대통령에게 올라간다. 취사선택이 어려울 정도로 온갖 내용이 있을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맞은 대통령의 적(敵)은 언로(言路)의 차단이 아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짐으로써 오히려 귀를 닫고,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게 문제다. 대통령이 선호하는 정보창구가 특정인에게 쏠린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100의 정보를 머릿속에 담은 대통령이 10에 못 미치는 정보를 가진 언론인, 기업인, 학자의 ‘훈수’를 가당찮게 여길 수 있다. 청와대 참모도 정보량에서 대통령에게 밀리긴 마찬가지다.1990년대 청와대 수석을 지낸 인사의 회고담.“대통령이 집권 후 한동안 참모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통령직에 익숙해지고, 정보가 쌓이니까 조금씩 고집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임기 중반을 넘어서는 ‘내가 모르는 게 있나.’라는 식으로 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다. 수준 높고 다양한 정보가 뒷받침되면 주장의 강도는 당연히 세진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관·민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민간인의 전언.“상당히 전문적 내용을 다루는 회의였는데 노 대통령이 80∼90% 혼자 얘기하더라. 대통령이 퇴장한 뒤 참석자들이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놓고 새로 토론을 시작해서 놀랐다.” 대통령은 폼날지 모르나 토론문화·시스템운영은 살아나지 않는다. 대통령 혼자 전 국민을 설복시키기 어렵다. 시스템을 작동시키려면 우선 듣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언론사 편집국장,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당초 자유롭게 대화·토론하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연정 등 새롭지 않은 현안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끝났다. 노 대통령이 한정된 인재풀로 돌려막기 인사를 하고 있지만 특정인의 정보에 경도되는 현상은 심해 보이지 않는다.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 김대중 정권의 박지원. 개인능력과 충성심을 떠나 대통령이 특정인의 정보를 편애하면 국정은 왜곡된다. 정보기관의 도청파문은 그에서 파생됐다. 집권자의 관심을 붙들어두려면 누구도 모르는 비밀정보가 있어야 했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이 특정 정보채널에 몰입하는 것을 바로 곁에서 막아보려 한 인사들이 있다. 노태우 정권의 이병기, 김영삼 정권의 박진, 김대중 정권의 박선숙.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대통령 신임이 돈독했으되 정권내 위치는 미약했다. 제도적으로 대통령 귀를 움직여보려는 생각이 약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과묵해지고, 귀를 넓히는 게 바람직스럽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을 듯싶다. 참모들이 도와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이병기, 박진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는 윤태영 부속실장이다. 과거 사례를 연구해보기 바란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생각을 참모가 좌지우지하려 든다면 제2의 김현철·박철언이 된다. 대통령의 귀가 방향성을 갖거나, 닫히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역할은 충분하다. 재미없고, 따분할지라도 공조직 보고를 중시한다면 중간은 간다. 대통령이 정보도 없는 인사가 아는 척해도 참고 들으며 도움이 될 부분을 찾는 모습을 보이도록 해보자. 말을 안 해도 마음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노태우 前대통령 아들 재헌씨140억 대박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자신이 보유한 코스닥기업의 주가 상승으로 거액을 손에 쥔 것으로 파악됐다. 평가액은 140억원대에 이른다. 22일 코스닥 상장기업인 텔코웨어의 공시내용에 따르면 노재헌씨는 이 회사의 지분 9.47%인 85만 7169주를 보유, 평가액이 이날 종가 기준으로 140억 1471만원에 달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조카인 금한태 텔코웨어의 사장은 지난 달 20일 이후 텔코웨어의 보유지분 25.74%인 233만 3354만주 중 46만 6670주를 주당 1만 5800원에 매각,73억 7338만원을 챙겼다. 금 사장이 주식을 매각한 시점은 텔코웨어의 주가가 한창 상승하던 때다. 금 사장은 이에 따라 보유지분의 총 평가액이 305억 2028만원에 달한다. 텔코웨어는 SK텔레콤 등을 주요 거래업체로 두고 있으며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의 아들 한태씨가 2000년 설립한 이동통신 솔루션 회사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이승만·전두환·김영삼 어머니型-박정희·노태우·김대중 아버지型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전두환·김영삼 대통령은 외향적·적극적·감성적·낙관적을 특징으로 하는 플러스(+)형이고, 박정희·노태우·김대중 대통령은 내성적·소극적·이론적·비판적 특성을 보이는 마이너스(-)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최근 심사를 통과한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학위 논문 ‘대통령 리더십과 국정운영 스타일의 심리학적 상관관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논문은 이승만·전두환·김영삼 등 플러스형 대통령들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여성적 세계관이 강하고 ▲집안 형편에 여유가 있으며 ▲두뇌보다는 신체가 강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박정희·노태우·김대중 등 마이너스형 대통령들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성적 세계관이 강하고 ▲두뇌는 우수하지만 가난으로 학력·경력이 취약하고 ▲관료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봤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도청등 권력기관 과거 인권침해 단죄

    도청등 권력기관 과거 인권침해 단죄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과거사 정리를 위한 법적 보완을 제시하고 나서 하반기는 ‘과거사 정국’으로 변환될 조짐이다.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지 3개월 만에,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구성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보완 요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야당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위헌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 거센 위헌 논란이 예상된다. 노 대통령이 요구한 법적 보완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인권이 침해된 데 대해 ▲배상·보상 ▲확정 판결에 대한 재심 가능 ▲시효적용 배제 또는 조정이다. 보상·배상은 기본법 개정으로, 나머지는 특별법 제정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사유가 너무 한정적으로 돼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여론을 반영해 보완을 요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배상·보상에 대해 기본법은 ‘정부는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만 돼 있다. 기본법은 과거사정리위의 결정으로 확정 판결난 사안을 재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는 “사후에 위증 사실이 밝혀졌을 경우에도 재심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헌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은 시효 배제 부분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형사상의 시효배제는 원칙적으로 장래에 관한 것”이라고 한발을 뺐으나, 그렇다고 과거의 일에 대한 시효배제를 완전 부인하지는 않는다. 유엔의 경우에는 보편적 인권문제에서 1946년 2차대전 전범처리를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온 개념인 전쟁과 국가권력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5·18 특별법 때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살인·내란죄를 처벌하기 위해 재임기간을 공소시효에서 배제, 위헌 시비를 비켜간 적이 있다. 청와대는 불법 도청도 과거사 정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통신비밀보호법상의 공소시효가 7년이고, 시효적용을 배제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을 거슬러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까지 처벌과 배상·보상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은 점은 광복 60주년의 상징성에 비춰보면 뜻밖으로 받아들여 진다. 북한 대표단이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고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상황에서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법조계도 논란 분분

    법조계도 논란 분분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한 민·형사상 시효 적용을 배제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위헌 주장이 있는 반면에 가능하다는 논리도 있다.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 제한돼야” 임상혁 숭실대 법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논문에서 “국가범죄에 대한 국가의 태도는 배상 제스처를 보이다가 지친 피해자들에게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이라면서 “국가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복지를 실현해야 하는 국가는 사법적 활동에서도 공공성과 신뢰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국민에게 합리성이 결여된 행위를 저지르고 소멸시효를 주장하느냐고 반문했다. 1951년 발생한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유족들은 1998년 2월17일 희생자로 확정받고 2001년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 강모씨 역시 2003년 대법원이 소멸시효 기산점을 ‘피해보상 약속’을 한 노태우 전 대통령 퇴임시점인 1993년 2월로 보면서 보상을 포기해야 했다. 강씨는 국회의 보상입법이 진행된 2001년 6월을 기산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정신대로 일본에 끌려간 한국인들의 배상청구 사건에 대해 일본 하급심 판결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일본 도야마 지방재판소는 기산시기를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이 아닌 일본 정부가 “협약은 개인의 청구권을 국내법적으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발표한 1991년으로 봤다. 임 교수는 “심급을 막론하고 소멸시효 기산점을 삼청교육대 퇴소시나 계엄해제시로 보는 우리 법원에서 보기 어려운 판결”이라고 평했다. 김갑배 변호사 역시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사법에 의해 과거 국가범죄에 대한 진상을 밝히더라도 처벌을 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해 국가권력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면서 “조직적인 국가범죄에 의한 피해와 그렇지 않은 사안을 구분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헌적 조치 분명” 이번 조치가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인 이석연 변호사는 “형법상으로 공소시효를 늘려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소급입법으로 처벌을 하겠다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나 적법절차 원칙에 저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사상 소멸시효 연장에 대해서는 “어떤 사건의 시효를 연장해줄지 논의가 필요하고 형평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하창우 대한변협 공보이사도 “재심청구나 시효에 관한 부분은 법률적으로 정해져 있는 사항”이라면서 “시효를 배제·조정하는 것은 헌법상 형법불소급의 원칙에 반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광복60-미래를 위한 제언] 한·일 두 학자가 보는 양국관계

    [광복60-미래를 위한 제언] 한·일 두 학자가 보는 양국관계

    광복 60주년.1945년 8월15일에서 2005년 오늘 그 60년은 대한민국의 희망과 좌절, 격동, 전진의 대역사이기도 하다. 광복 60주년이 우리 대한민국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 이 시기 한반도 평화는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돼야 하는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한반도 평화 구축이란 대전제 속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던져진 과제다. 이런 취지 아래 한·일 두 학자의 인터뷰를 통해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듣는다. 최상용 교수는 주일 한국대사를 지낸 대표적인 지일파(知日派)학자이며, 고하리 스스무 교수는 신진 지한파(知韓派)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최 교수는 직접 인터뷰를, 고하리 교수는 e메일 인터뷰를 했다. ■ 주일대사 역임 최상용 고려대 교수 ▶광복 60주년이 갖는 의미를 정리하면. -우선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고 싶다.1945년 광복 이후 3년 의 군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우리는 자유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선택했고 그 기반 위에 산업화를, 산업화의 태내에서 자생적인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민주화된 시장경제를 구현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하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는 서구처럼 시민혁명에 의한 자생적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명치유신 이후 약 140년간 서구 민주주의를 학습해 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7년간의 미군의 점령정책이 일본의 민주화를 반석에 올려 놓았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은 분단과 전쟁, 독재, 수많은 희생, 반인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광복 60년 이순(耳順)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냉혹한 국제현실에서 자주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자주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안팎의 자원을 주체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다. 냉전시대엔 서방의 맹주였던 미국이 있었고, 서방체제 안에 편입돼 있으면 안전했다. 이젠 달라졌다. 자주 역량을 발휘한 최근 두 사례가 있다.5년 전 6·15 남북정상회담은 바깥 세력에 의해 강제된 한반도 냉전을 우리 민족의 힘으로 풀어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자주적 역량의 표시로 이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본다. 지난 1년여 동안 정체된 6자회담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내 조정자 역할도 훌륭했다. 우리는 이제 ‘중견국가’로서의 역량을 갖춰 나가면서 자유와 자주를 기반으로 한반도 평화를 일궈 나가야 한다. ▶한·일관계의 현주소와 미래는. -1965년 국교 정상화 무렵 한·일국민간 교류는 연간 만 명이었다. 지금은 하루 만 명 이상이다. 이 현실을 무게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1998년 한·일 파트너십 정신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 이를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갈 것,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를 한국시장에 개방하는 것이 중심내용이었다. 우리와 일본의 문화산업의 격차를 우려해 많은 국민들이 반대했다. 나는 당시 문화 교류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서의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끊임없는 서로 배우기의 과정이라고 판단하여 찬성했다. 그래서 지금 한류(韓流)가 있다. 한·일 과거사 논쟁에서 항상 먼저 어기는 쪽은 일본이다. 소위 망언인데,6자회담에서 화두가 된 ‘말 대 말’‘행동 대 행동’ 원칙을 기초로 일측에 대응하되, 한·일관계 협력을 위한 큰 틀을 유지하는 게 성숙한 자세가 아닌가 한다. ▶구체적으로 독도 문제 등이 나오면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독도는 실효 지배를 유지하고 내실화하면 된다. 독도는 우리의 천연기념물이다. 우리 정원을 가꾸듯 해야 한다. 관광객, 군인, 경찰이 대거 들어가는 것보다 천연기념물 관련 전문연구원을 상주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관련해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신사에 합사돼 있는 A급 전범이다.A급 전범의 분사, 또는 제3의 추도시설 등 일본의 사려 깊은 조치를 기대하고 싶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미국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패전국 일본의 A급 전범 판단을 한 당사자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일본을 획일적으로 보는 경향에 대해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 극우지도자들의 망언으로 일본 전체를 나쁘게 보면, 수많은 친구를 잃는 우를 범한다.4년 전 문제의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이 불과 0.039%였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한류에 마음을 열고 있는 수많은 일본인의 반응을 귀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평균적인 일본 국민에게 정서적으로 호감을 받을 수 있고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지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고집, 참가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본의 위치와 역할은. -이 지구상에서 비핵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이면서 핵을 갖고 있지 않은 일본이다. 인류사상 최초의 피폭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방법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전후 일본은 비핵3원칙을 바탕으로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만들지 않고 있다. 그런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이런 점에서 비핵 이니셔티브를 위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원폭을 맞은 피해자이다. 그러나 그 두개 고리가 따로따로 논다. 그 간격을 이을 수 있는 전략도 설명 책임도 없어 보인다. 사실 일본에서의 ‘납치 문제’는 우리나라의 독도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6자회담은 목적이 한반도비핵화다. 피폭국가 일본은 최소한 비핵과제와 납치문제를 병행할 수 있는 전략이라도 보여야 한다. 일본은 이번 6자회담을 통해 대 아시아 외교를 소홀히 해 온 대가를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에만 의존했던 안이함이 부른 화(禍)라고 할 것이다. 보통국가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헌법을 바꾸려 하고, 자위대를 강화하려는 ‘전쟁가해국가’ 일본이 아무리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국임을 강조한다 해도 이웃나라가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수정 기자 crystal@seoul.co.kr ■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지난 60년간의 한·일관계를 평가한다면. -엇갈림과 협력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 시대에 한국인은 과거사 문제로 대일청구 의식을 강하게 했지만, 일본인은 한반도를 무관심·기피의 대상으로 했다. 박정희 시대에는 양국 정부가 양국간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모색했지만, 국민 차원에서는 상호 이해가 진행되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시대에는 일본인이 이문화로서의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다. 김영삼·김대중 시대는 역사인식 문제로 갈등이 있는 한편 대중문화 교류가 비약적으로 진행되었다. 노무현 시대는 일본에서는 한류를 통해 호의적으로 한국을 보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교갈등이란 부정적 측면에서 일본을 보려는 분위기가 있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 해결방안은. -역사적 사실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양국간에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인식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를 모두 일치시키는 것은 꽤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검증할 때 한국에선 일제 식민지 지배를 실행한 장본인이라며 부정적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본에서는 입헌정치의 기초를 확립한 초대 총리라는 긍정적 측면을 평가한다. 양국 모두 ‘우리 민족은 우수하다.’는 자민족 중심주의적인 역사관을 가르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북한 핵문제 해결 방식은. -북한의 핵무기는 절대로 포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지가 양국 정부와 여론이 어느 정도인지 의문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일본여론은 핵문제보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외교 전쟁도 불사한다.’라고 하는 한편, 핵보유에 관해서는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라고까지 말한다. 양국 국민도 북한 핵문제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북한에 체제보증을 약속하는 한편으로, 모든 핵보유를 완전하게 포기시킨다고 하는 점에 일·한·미가 완전하게 일치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3국이 대립해도 그걸 북한에 보여주면 안된다. 특히 한국은 북한이 다른 문제로 대일 공동대응을 제안해도 동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에 대한 일본 여론이 악화되면 예상되는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도 이뤄지지 않게 된다. ▶동북아시아에서의 한·일 관계는. -10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양국 지도자는 지금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 많은 듯하다. 특히 중국과 미국 관계가 중요하다. 현재 일본은 ‘미국 중시-중국 경시’, 한국은 ‘미국 경시-중국 중시’의 경향이다. 일본은 좀 더 중국에, 반대로 한국은 좀 더 미국에, 정중한 외교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류와 한·일 문화교류의 공평성,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제언이 있다면. -지금까지 일본인 중에서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 핵심층은 중년의 여성이었지만, 욘사마 현상 덕분에 지금 중년 여성이 가장 한국에 친근감을 갖는 층이 되었다. 서울신문·도쿄신문 공동여론조사 결과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악화되는데도 과반수의 일본인이 한류현상으로 인해 한국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한류현상이 없었으면 올해 한·일관계는 더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국측이 경제효과, 국위선양 측면에서만 한류현상을 강조한다는 것이 일본에 전해지면 일본에서 한류현상이 식을 수 있다. 한국은 일본 등 외국 대중문화의 수용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양국 지도자가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두 지도자는 ‘국제 협조형의 애국심’보다 ‘배타적인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계속 대두되고 있는 점을 더 우려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도, 노 대통령도 말을 좋아하지만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게 신경써야 한다. 한·일간의 문제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정부여당의 간부에게는 해임을 포함해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외교관계가 악화되어도 문화교류나 자치체간 인적교류는 절대로 중단해선 안된다고 지도해야 한다. 일본에서 반한 감정이,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높아져도 양국에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양국 갈등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양국 쌍방에 다양한 원인과 배경이 있다. 한가지 들고 싶은 것은 언론 보도의 문제점이다. 양국 신문과 TV를 보고 있으면 자국민을 자극하는 도쿄발, 혹은 서울발의 보도가 너무 많다. 도쿄 이춘규특파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황태자의 회고록/우득정 논설위원

    지난 5월25일 저녁 강남의 중식당.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예정시간(오후 7시)보다 3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의례적인 얘기 끝에 지난 1년여 동안 회고록을 집필했으며,6월말이면 출판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것은 7월초). 그는 평양 방문 4차례를 포함한 42차례에 걸친 남북 비밀접촉의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핵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면 밀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태우정권 말기 남북접촉 내용을 별도의 비망록으로 작성해 안기부에 전달했으나 다음 정권(문민정부)에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되뇌었다. 회고록 집필과정에서 당시 상황을 기록했던 일지와 수첩을 뒤져보니 정치인들에게 전달한 수표번호까지 모두 기록돼 있었다며 기록이 남은 부분은 모두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받자마자 바로 전달하느라 수표번호를 기재하지 못한 돈은 소송 가능성에 대비해 뺐단다.‘3당 합당을 전후해 YS(김영삼)에게 전달한 돈이 40억원+α’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연유였던 것 같다. 지난 1990년 4월 초 자택을 찾은 기자들에게 “내 말 한마디면 YS의 정치생명은 끝난다.”고 공언한 것도 정치자금 수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새로운 내용이라며 86년 11월 전두환 대통령이 친위쿠데타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 포기한 사실도 털어놨다. DJ(김대중)는 애초부터 다음 정권을 영남권 인사에게 넘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서 유력한 후보가 자신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6대 국회 진출에 실패하고 대구시장 출마권유를 뿌리치면서 DJ와의 관계도 소원하게 됐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 말에는 자신의 대타로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됐으며 그때 ‘올인’했더라면 운명이 달라졌으리라는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임을 자처하는 박 전 장관은 보안 유지를 위해 끝까지 직접 집필했다고 한다.6공의 황태자로 ‘뜻’을 함께하는 중앙부처 국장 이상 고위관료가 200여명이나 되고 돈줄과 정보를 장악했다지만 정치인에게 필수적인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해 그는 결국 좌초했다. 스스로 ‘권력의 핵심’이라고 했던 박 전 장관의 회고록은 청산돼야 할 권위주의 시절의 또 다른 ‘X파일’인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박철언 “3당합당후 YS에 40억 전달”

    지난 90년 3당합당을 전후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에게 ‘40억원+α’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태우 대통령의 정책보좌관이었던 박철언 전 의원은 11일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5공,6공,3김시대의 정치비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전 의원은 “89년 6월 김영삼 총재의 소련 방문을 앞둔 시점에 노 대통령의 지시로 김 총재에게 20억원과 여비 2만달러를 전달한 것을 비롯해 그해 연말에 10억원,90년 3당 합당 직후 설을 앞두고 10억원 등 3차례에 걸쳐 40억원 이상을 직접 김 총재에게 전달했다.”고 공개했다. 박 전 의원은 지난 89년 3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중간평가 유보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지금까지 알려져온 것과는 달리 김영삼 총재가 적극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측은 “금시초문이다. 전혀 거기에 대해 아는 바 없다.”면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앙심을 품어온 박 전 의원의 말을 어떻게 신뢰하느냐. 정치적 음해다. 현역 정치인 때부터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박 전 의원은 지난 87년 6월항쟁의 분수령이 됐던 ‘6·29 선언’과 관련,“이는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게 먼저 제의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박 전 의원측은 “회고록은 지난 80년 5공때부터 6공,YS정부,DJ정부에 이르기까지 20년간에 걸쳐 정치인으로 직접 겪었던 일들을 기록해뒀던 20여권의 다이어리와 120여권의 수첩, 방대한 사진 등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씨줄날줄] DJ 달래기/이목희 논설위원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장수는 복장(福將)이다. 변변한 능력이 없어도 느닷없이 동남풍이 적진으로 몰아쳐 승리를 거두는데야 어떡하겠는가. 용맹도, 지혜도, 리더십도 행운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다. 최근 국정원 도청파문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듯 참여정부 기획설이 맞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단한 지장(智將)이다. 반대로 “터지는데 어찌 막겠느냐.”는 항변이 사실이라면 복장이랄 수 있다. 노 대통령과 측근들은 새 시대를 열고 싶다는 희망을 수차례 밝혀왔다. 정치적으로 1987년 체제를 바꾸고 싶어한다.87년 체제는 1노(盧)3김(金)의 타협물이다.4인의 영향력이 사라져야 변화가 가능하다.4인 중 노태우·김종필씨와 달리 김대중(DJ) 김영삼(YS) 두 전직 대통령은 현 정국에서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런데 YS정권 당시의 도청테이프가 터져나오고,DJ정권에서 도청이 계속됐다는 정황이 포착됐으니 과거정리의 호기를 자연스레 맞이한 셈이다. 복장이라도 고민은 있다. 동남풍이 분다고 전쟁에서 바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화공(火攻)을 쓸지, 화살을 집중해서 날릴지 선택해야 한다. 이때 상대진영의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게 필수적이다. 지금 YS진영의 대오는 많이 흐트러져 보인다. 하지만 DJ진영은 오히려 결집하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대폭 떨어지고 있다.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DJ의 정치적 영향력이 건재함을 보여준다. 청와대와 여당이 급히 DJ 달래기에 나섰다.YS정권까지의 죄질이 더 나쁘다는 점,DJ정권에서 도청이 있었더라도 사소하며 DJ는 몰랐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진사특사를 파견하고, 광복절 사면복권에 DJ의 두 아들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여권의 DJ 달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DJ는 여든을 훌쩍 넘겼다. 섭섭함을 쉽게 풀기 어려운 연배다. 무엇보다 노벨상 수상의 프라이드를 꺾은, 이번 치욕을 만회할 여유가 없다.DJ는 어제 입원, 여권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노 대통령 쪽도 선택폭이 좁다. 진상을 밝히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거세기 때문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일정부분 과거는 정리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도청파문] “설마, 이건희회장까지” 촉각

    삼성은 9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이 검찰에 출두한 것과 관련, 말을 아끼면서도 반(反)삼성 기류가 확산되지 않을까 경계했다. 특히 검찰이 이건희 회장도 소환검토 대상이라고 밝히자 “원론적인 차원에서 얘기한 것 아니겠느냐.”며 자위하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 수사가 이 부회장 소환에 그치지 않고 이 회장을 겨냥해 진행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자 사건의 파문이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지 고심하는 표정이었다.이 회장은 10년 전인 1995년 검찰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 때 검찰에 출두한 적이 있다. 삼성은 ‘이 회장이 원론적으로 소환 검토 대상인데 실제로 소환을 할지는 더 수사해야 알 수 있다.’고 검찰이 밝혔듯이 수사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즉각적인 반응이나 대응을 자제했다. 특히 불법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토대로, 대화를 나눈 당사자도 아닌 이 회장에 대한 소환 조사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삼성은 이날 이 부회장의 검찰 출두에 맞춰 일부 직원들을 검찰 청사에 배치하는 등 만일의 경우에 대비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소환조사는 참고인 자격이며, 이에 따라 검찰조사는 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과 테이프를 빌미로 삼성을 공갈ㆍ협박한 부분의 규명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도청 파문] ‘특검·제3기구론’ 정면대응 강수

    [도청 파문] ‘특검·제3기구론’ 정면대응 강수

    검찰이 안기부 도청사건을 ‘특별수사본부’로 정면 돌파할 준비를 하고 있다. 검찰이 ‘특수본부’라는 강수를 두려 하는 것은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특검이나 제3기구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검찰은 굵직한 사건마다 특수본부를 차렸다. 지난 1999년에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수본부’를 설치했다. 파업유도 특수본부는 이훈규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과 이귀남 특수3부장이 본부장과 주임검사를 각각 맡고 특수1,2,3부와 형사부 소속 검사 10명이 배속됐다. 서울지검 특수본부는 대검 공안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하극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95년의 12·12,5·18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5·18 특수본부는 이종찬 당시 서울지검 3차장을 본부장, 서울지검 김상희 형사3부장을 주임검사로 임명하고 서울지검 등 경인지역에서 수사검사 14명을 차출해 수사를 벌인 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들을 법정에 세웠다. 안기부 도청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팀은 서창희 공안 2부장과 소속 검사, 공안1부와 특수부로부터 지원받은 검사 등 8명으로 구성돼 이미 ‘미들급’의 진용은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10∼15명의 ‘헤비급’ 수사팀이 필요하다고 검찰 수뇌부는 판단하고 있다. 국정원이 수사 대상이라는 점에서 현재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공안통’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본부장으로 전·현직 공안검사들이 일단 주요 멤버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사건의 중요도에 비춰 권재진 대검 공안부장이 직접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001년 ‘수지김 사건’ 등으로 국정원 수사를 ‘예습’했던 검사들도 특수본부 영입 1순위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수필가협회 조경희 이사장 별세

    수필가협회 조경희 이사장 별세

    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이 5일 오전 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87세. 1918년 인천시 강화읍 태생인 고인은 언론인 겸 수필가로 활동하며 여성계와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화여전 문과에 다니던 1938년 잡지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돼 등단한 그는 이듬해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어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부산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1980년 한국일보 부국장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40여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71년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이끌어왔으며,1974년 창간한 계간 ‘수필문예’는 ‘한국수필’로 이름을 바꿔 현재 격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다.1979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지냈고 1984년 여성 문화인으로는 처음 예총 회장에 당선됐다. 1988년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정무 제2장관에 발탁돼 여성 권익 향상에도 힘썼다.13개 시·도 가정복지과장을 일제히 국장으로 승진 발령해 안팎의 화제를 모았고,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필요한 예산 500억원을 끌어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예술의전당 이사장, 한국여성개발원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모스크바 국제펜대회 한국 대표 등 최근까지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문화예술계에서의 다양한 업적에 힘입어 한국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본상, 프랑스예술문학공로상, 은관문화훈장, 한국수필대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달 7일에는 올해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홍춘희(개인사업)씨, 딸 성미(미국 거주)씨, 손자 기두(해군대위)·기돈(대한항공)씨가 있다. 발인은 9일 오전 8시30분,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02)929-6699.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의 휴가/이목희 논설위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 크로포드목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기간은 무려 33일. 우리로서는 상상 못할 일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해마다 이집트,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쾌적한 휴식을 즐긴다. 작년에는 바베이도스에 위치한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호화별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모리셔스, 마요르카섬 등 유명휴양지를 찾곤 한다. 국가지도자가 휴가를 가도 국정이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야 선진국이다. 우리도 대통령이 한달간 청와대를 비운다고 국정이 파탄날 일은 없다고 본다. 민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휴식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 뿐이다. 노태우 정권 이전에는 대통령이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있었다. 안가(安家)에서 비밀스러운 술잔치가 가능했다. 눈치 안 보고 골프를 쳐도 됐다. 청와대를 수도원(修道院)처럼 만든 이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안가를 부수고, 공직자 골프금지령을 내렸다. 당시 김광일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수도자적 생활이 오히려 합리적 판단을 저해한다는 점을 느꼈다. 별장을 빌려 여흥자리를 시도했으나 YS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뒤를 이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모범생의 전형이다. 휴가지에서도 두문불출, 독서와 정국구상에 전념했다.YS·DJ시절, 언론에 빠지지 않았던 제목이 ‘청남대 휴가구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젊음에도 불구, 전임자가 만든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휴가보내기’를 해봤다. 창덕궁산책, 인형극 관람 등이다. 올해는 강원도에서 사흘을 보낸 뒤 지난 2일 밤 청와대로 돌아왔다. 공식휴가는 주말까지다. 청와대 관저에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참모들을 불러 국정을 논의하거나 밤늦게까지 인터넷 서핑을 하는 수밖에 없다. 본인에게 휴식이 아니며, 비서실과 내각이 마음편히 휴가를 보내기 어렵다. 국민정서가 따라주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정치스캔들이 연발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마음껏 쉬어라.”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형 대통령 휴식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테니스, 수영 등 운동이나 도박성 없는 게임이 좋을 듯싶다. 관저 앞에 텃밭을 가꾸면서 땀을 흘리는 방안도 괜찮아 보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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