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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규하 前대통령 별세] 全·盧 前대통령 “안타깝다” 짧은 반응

    전두환 전 대통령은 22일 오전 최규하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안타깝다.”고 짧게 말했다고 측근이 전했다.●전두환 “오늘 조문” 노태우 “건강나빠…” 한 측근은 “본인의 직전 대통령이신데다 좋든 좋지 않든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아 보였다. 소식을 듣자마자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전 전 대통령은 23일 상경해 조문할 계획이라고 이 측근은 덧붙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안타깝다.”는 짧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최근 건강 악화로 서울 연희동 자택에 머물고 있다. 측근은 “건강이 좋지 않아 조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최 전 대통령과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은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3자 대면 기회가 있었으나 최·노 전 대통령이 건강문제로 불참함에 따라 회동이 무산됐다. 전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두 분이 최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8개월여 만에 물러나게 한 신군부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감회도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YS “野총재때 직선제 권유… 두번 거절 당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10분께 빈소를 찾아 “더 살 수 있는 나이인데 조금 일찍 돌아가신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고인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당시 야당 총재로서 두차례 찾아가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자고 권유했지만 고인은 우선 남미와 유럽의 선거제도를 시찰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후 3시쯤 빈소에 도착해 약 20분간 머무르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조문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씨줄날줄] 전직 대통령/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대한민국 건국 이래 대통령 직에 오른 분은 모두 9명, 이 가운데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을 뺀 전직 대통령은 모두 여덟 분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민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전직’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한때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개헌을 거듭하며 장기집권하다 4·19혁명으로 쫓겨났다. 그는 이국땅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타계한 뒤에야 국민의 용서를 받아 환국했다. 내각책임제 하의 유일한 대통령인 윤보선은 재직시 장면 총리와 끝없는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고 추인했다. 그는 뒷날 박정희를 상대로 반독재투쟁을 벌이지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협력하는 등 불투명한 정치 행각으로 빈축을 샀다. 윤보선을 뒤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업적에 관한 평가가 가장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다. 경제성장은 공(功)으로 꼽히는 반면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는 어쩔 수 없는 과(過)의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종말과 그에 따른 시국 혼란을 틈타 총칼로 집권한 전두환, 그리고 전두환 세력의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훗날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등을 선고받았다. 잇단 감형과 사면으로 자택에서 칩거한 지 오래됐지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노태우의 후임인 YS(김영삼 대통령)는 ‘IMF 사태’를 불러들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직전 대통령인 DJ(김대중)는 필생의 과업인 ‘햇볕정책’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새삼 시련을 맞고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사이의 혼란기에 잠시 대권을 계승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어제 아침 별세했다. 그는 박정희의 종말을 부른 ‘10·26사태’, 전두환의 권력장악 계기가 된 ‘12·12사태’, 그리고 국민의 숭고한 피로 얼룩진 ‘5·18 광주’를 권력의 최상부에서 겪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하야한 뒤로는 증언을 일체 거부한 채 세상을 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는 현실은 국민의 비극이다. 재직 시에 존경받고, 퇴직 후에도 길이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언제쯤이나 우리 역사에 등장할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북핵 한·중 전문가 긴급대담

    북핵 한·중 전문가 긴급대담

    북한의 추가 핵실험 우려속에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실행 등 압박이 강화되면서 강경해진 중국 속내 및 향후 조치 등을 19일 양원창(楊文昌) 중국 인민외교학회 회장과 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의 대담을 통해 짚어봤다.‘한·중 지도자포럼’ 참석을 위해 16일 한국에 온 양 회장은 외교부 차관를 거치며 한반도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해 왔다. 김한규 회장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이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북한 추가 핵실험에 대해 경고하는 등 전례없이 강경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양원창 회장 발등의 불은 북한의 2차 핵 실험과 같은 추가 조치를 막고 핵개발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 김 회장 중국은 북한 대외무역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무역 상대다. 북한은 원유 수입의 거의 전부를, 식량수입의 20∼30%를 중국에 의존한다. 경제제재로 중국이 대북 유류·식량제공 중단 축소를 결정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양 회장 거래 형식이지만 원유는 사실상 상당부분 무상 원조다. 북한이 다음 단계로 나간다면 중국은 보고만 있을 수 없다. 핵 실험을 여러차례 강행하는 사람들에게 쌀과 원유를 계속 제공할 수 있겠나. 북핵은 어느 한 나라가 단숨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미국, 일본, 한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6자회담 재개 노력이 절실하다. 김 회장 국제적 협력이 해결의 관건이란 점에 동의한다. 탕 국무위원의 워싱턴-모스크바-평양 순방외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북·중 특수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 역할에 기대가 실린다. 중국의 대북 정책이 변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양 회장 북한은 약속을 어겼고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했다. 중국은 안보리 이사회 제재 결의안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핵실험에 상응하는 대우를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손실’을 느끼도록 충분한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데 입장을 같이한다. 현재 지역안전, 환경, 경제 등 핵실험의 부정적인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평가들을 모아 관련 정책을 조정할 것이다. 김 회장 사태 해결을 위해 북한에 안전보장과 경제원조를 지원하되, 대신 북한은 핵을 포기한다는 ‘일괄타결안’이 더 무게를 갖게 됐다. 한·중 양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가 경제개발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믿도록 해야 한다. 양 회장 중국도 이같은 ‘패키지 딜’, 동시 타결안에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은 북한에 남북한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현재는 불안정한 정전체제다. 평화협정은 북한 체제·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동북아 집단안보구상에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김 회장 북한 핵은 미국보다 당장 한국, 중국의 안전을 위협한다.2008년 베이징올림픽,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 등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양 회장 북한 핵 위협과 위험성에 대해선 한·중의 인식이 같다. 한반도 비핵화란 원칙도 그렇다. 북한을 제재하되 물리적 충돌 등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피하자는 생각도 같다. 북한은 핵개발을 계속했고, 미국은 제재 강도를 높여왔다. 북·미의 뿌리깊은 불신 해소에 한·중이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에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조언해 왔다. 김 회장 원만한 중·미 관계는 북핵 해결에 필수 조건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북핵 해결에서 주변국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다자적 접근법’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2002년 10월 ‘제2차 북한 핵 위기’가 발발한 뒤 두 나라는 전에 없는 협력관계를 발휘했다.‘북한 핵이 중·미관계를 나아지게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양 회장 중·미는 제일 중요한 경제 동반자가 됐다. 가장 첨예하게 이견을 보였던 ‘타이완 문제’에 대해 미국이 점차 이해하고 ‘타이완 독립세력’을 억제하고 있다. 올 4월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호전된 두 나라 관계는 북핵 해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미는 북핵해결 원칙에선 같지만 방법론에서 이견이 있다. 김 회장 북한과 국경을 맞댄 지린성과 헤이룽·랴오닝성 등 ‘동북 3성’, 옛 만주지역 부흥을 경제계획의 핵심과제로 선정, 심혈을 쏟고 있는 중국에 북핵은 안정을 흔드는 심각한 우환이다. 북한 난민이 대량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민감한 모습이다. 양 회장 북핵 문제는 지역안정을 흔들고 이란 핵개발과도 상호 연관성을 갖는 국제적 불안 요소다. 일본 핵무장·군비확장의 빌미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김 회장 한·중은 북핵 문제에 대해 주변국 가운데 가장 가까운 입장이다. 무역 역조, 동북 공정 등 갈등 요소도 있지만 경제를 축으로 협력관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정리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양원창 中인민외교학회장 ▲베이징 외국어대학 졸업 ▲주 영국, 주 프랑스 대사관 근무 ▲주 싱가포르 대사 ▲주 홍콩 외교 담당관(차관급) ▲외교부 차관 ■ 김한규 21세기한·중교류협회장 ▲미국 캘리포니아대 국제행정학 석사 ▲러시아 국립사회과학원 정치학박사 ▲총무처장관 ▲13·14대 국회의원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 ■ 中 제2외교부 ‘인민외교학회’는 중국인민외교학회는 외교부 산하기관으로 민간 외교를 총괄,‘중국의 제2외교부’로 불린다.1949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만들었다. 회장은 장관급으로 차관을 거친 직업 외교관들이 맡는다. 최근엔 세계 각국의 전직 대통령·총리·국회의장 등 영향력있는 정치지도자 및 전직 고위관리들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김대중,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퇴임 뒤 외교학회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현재 세계 130여개국과 교류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과는 21세기 한·중교류협회 등과 공식 교류관계를 갖고 해마다 정기세미나 등을 열고 있다.
  • “前의원 구권화폐 사기 사건 참고인중지 이용 수사 기피”

    17일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선병렬 열린우리당 의원은 “올해 1∼7월 서울중앙지검의 참고인 중지후 재기 수사율이 10.2%에 불과하다.”면서 “참고인 중지 처분이 수사기피의 합법적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의 참고인 중지후 재기수사율은 2004년 32.6%,2005년 21.8%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참고인 중지란 사실관계 파악에 필수적인 참고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을 때 참고인 진술이 확보될 때까지 수사를 중지하는 것을 말한다. 선 의원은 특히 국회의원을 지낸 김모 변호사가 연루된 구권화폐 사기사건이 무리한 참고인 중지로 차질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엄모씨와 함께 “노태우 정권 비자금인 구권화폐를 교환해 40%의 이익을 얻게 해주겠다.”며 사업가 김모씨에게 32억원을 받아 2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에 고소됐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검은 김 전 의원에 대해 참고인중지 처분을 내리고 불기소 처리했다. 선 의원은 “사업가 김씨가 서울고검에 항고했고, 이후 재기수사 지시가 내려졌지만 서울중앙지검은 중요 참고인이 없어서 수사를 못하겠다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北 핵실험 파장] 전직 대통령들 北核의견 피력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전두환·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했다. 북한 핵실험에 따른 ‘고견’을 듣기 위해서다. YS는 햇볕정책, 포용정책을 강도높게 비판, 햇볕정책의 주창자인 DJ와 계승자인 노 대통령을 상대로 대립각을 세웠다. 숙명의 정치 라이벌인 ‘양김씨’만 보면 정치를 떠난 팔순의 나이에 한판 또 붙은 셈이다. 전 전 대통령은 대북정책보다는 대책에 초점을 맞췄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처음 대화를 나눈 YS와 DJ는 햇볕정책의 공과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때문에 한때 분위기가 냉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규하·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강문제로 불참했다. YS는 “햇볕·포용정책은 공식 폐기 선언을 해야 한다.”면서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 등 대북 사업은 전면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한 어조로 노 대통령과 DJ를 싸잡아 비판했다. YS는 “노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엄청난 사안”이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대국민 공개 사과도 해야 한다.”며 강도를 높였다. 또 “북핵은 두 정권이 8년7개월 동안 4조 5800억원의 돈을 북한에 퍼줘 만들어졌다.”면서 “북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감싸기만 한 노 대통령은 북한의 변호사인가.”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더했다. DJ는 마주 앉은 YS의 발언에 직접적인 반응 대신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은 제대로 해왔고 성과도 있다.”면서 “북·미 관계가 안 돼서 진전을 하지 못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웠다.DJ는 “북한의 핵실험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당면 문제는 북한의 핵을 해체시키고 북한이 더 이상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과 북한간에 대화해야 하며,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EU)과 협의하고 차분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가 제재에 앞장설 필요가 없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YS는 오찬 뒤 상도동 자택으로 기자들을 불러 대화 내용을 거침없이 소개했고,DJ는 최경환 비서관을 통해 언급 요지를 보도자료로 내도록 해 특유의 스타일로 대조를 이뤘다. 전 전 대통령은 군 출신답게 군사적 시각에서 접근,“북한의 핵실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핵을 보유했다는 전제하에 대처하는 게 맞다.”면서 “비대칭 전력의 불균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며, 한·미동맹을 강화시키는 것이 필요한 대처방안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전시 작통권 환수 문제도 상황이 악화된 이상 상당 기간 유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한·미동맹을 기초로 해서 국민의 불안과 동요가 없도록 상황을 신중히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사설] 국경일로 승격된 한글날에

    오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60돌이 되는 날이다. 아울러 한글날이 기념일에서 국경일로 승격된 뒤 처음 맞은 경사스러운 날이기도 하다. 한글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기념일이자 공휴일로 지정받았지만 노태우 정권 때인 지난 90년 11월 공휴일에서는 제외됐다.10월 초에는 추석 연휴와 개천절 등 공휴일이 너무 많아 한글날까지 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한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학계·시민단체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해 말 관련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올해부터 국경일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전의 어느 한글날보다도 축복받아 마땅한 날이지만 오늘을 여는 마음은 그리 개운치가 않다. 한글이, 넓게는 우리 말글이 점차 빛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당장 오늘 아침 보도만 보더라도, 초등학교 6학년생의 학업 성취도에서 국어 성적이 영어 성적보다 상당히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2004년 통계를 보면 영어 과목은 ‘우수 학력’에 속한 학생이 46.6%나 되는데 국어 과목에서는 19.5%에 그쳤다.‘영어 잘하는 지원자는 넘치는데 국어 잘하는 지원자는 보기 힘들다.’라는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한탄이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한글날이 국경일로 대접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은 국민 스스로 우리 말글을 진정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 하루는 국민 개개인이 ‘우리 말글 사랑’을 다시금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열린세상] 한탕주의식 정계개편은 독(毒)이다/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분출되고 있다. 정권 재창출에 대한 위기감이 짙게 배어 있는 범여권이 정계개편론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최근 “수구보수대연합에 대응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 개혁진보세력이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전 총리는 기존 정당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연말에 정치권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면 중도실용개혁세력의 통합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정계개편론에 불을 지폈다. 한편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지역감정 해소와 국민통합을 위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쳐질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는 “내년초 다른 보수세력과 연대한 뒤 3,4월쯤 한나라당과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 정치권과 연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실시된 한국 대선에서는 국민들의 상식을 뛰어 넘는 깜짝 놀랄 만한 역발상의 정계개편을 주도한 세력에 선거 승리라는 달콤한 열매를 안겨 주었다.92년 대선에서는 정통 야당의 한 축이었던 김영삼 후보(PK)가 군부독재세력의 뿌리라고 할 공화당의 김종필(충청)과 민정당의 노태우(TK)와 함께 정계개편을 통해 반DJ(김대중), 반호남 연대를 지향하는 3당 합당을 이끌어 냄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97년 대선에서는 유신저항세력이었던 김대중 후보(호남)가 유신 본류세력인 김종필(충청)과 내각제를 매개로 반한나라당, 반영남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승리했다.2002년 대선에서는 재벌개혁 세력인 노무현 후보가 재벌본류인 정몽준과 극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룩함으로써 승리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해 철학과 뿌리가 다른 이질적인 정치세력간에 추진된 인위적인 정계개편의 최대 비극은 이것이 통치 실패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90년 3당 합당이나 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는 결과적으로 개혁 세력과 개혁 대상이 뒤범벅되어 함께 국정운영에 참여함으로써 한국 정치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정의를 실종시켜 버렸다. 개혁은 용두사미식으로 변질되었으며, 대통령의 지지도는 끝없이 추락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으로 한때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민주화운동 출신 대통령들이 통치하면서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정도정치를 벗어나 독(毒)이 든 정계개편의 열매를 두려움 없이 따 먹었기 때문이다. 정권창출을 준비하는 세력과 유력 대권후보들은 이러한 통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현 시점에서 여야 정치권이 앞장서서 취할 행보는 정계개편 논의가 아니라 자기 성찰과 반성이다. 민생을 챙기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철학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민생 파탄에 대한 자신들의 무능과 오만에 대해 진솔하게 참회해야 한다. 정권재창출의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는 비장함과 용기도 필요하다. 한나라당도 보수대연합을 운운하기 전에 차떼기 부패정당, 기회주의적 잡탕 정당, 기득권 옹호 수구꼴통 정당이라는 낡은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당의 환골탈태를 위한 제대로 된 개혁 논쟁을 전개해서 한나라당판 과거사 정리를 한번쯤은 실시해야 한다. 철학과 정체성이 없는 정당들이 추진하는 한탕주의식 정계개편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권의 현란함에 현혹되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누가 독이 든 정계개편의 칼춤을 또 다시 추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선별해서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 노대통령 회갑연…“안했더라면 섭섭할뻔”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회갑을 맞았다.아침 식사는 청와대의 수석·보좌관들과,점심은 한명숙 총리와 국무위원들과,저녁은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의 사돈들과 함께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아침 7시쯤 관저에서 이병완 비서실장을 비롯,수석·보좌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햅쌀밥에 미역국을 회갑상으로 받았다.권양숙 여사와 축하 케이크를 자르기도 했다.수석·보좌관들은 노 대통령에게 8폭짜리 병풍을 선물했다. 이 비서실장은 축사에서,변양균 정책실장은 건배사에서 노 대통령의 건강과 국가발전을 기원했다.노 대통령은 “고맙다.”는 답례와 함께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자.”고 당부했다. 비서관과 행정관들은 노 대통령의 출근에 맞춰 비서동인 여민1관 앞에 줄지어 서있다 노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건넨 뒤 “회갑 축하합니다.”라며 노래를 불렀다. 오찬은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한 총리의 주재 아래 청와대 충무실에서 국무위원들과 함께 했다.국무위원들은 4개의 기둥에 층마다 판을 댄 ‘사방탁자(四方卓子)’를 선물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회갑연을) 벌리지 말라고 했는데 안 했으면 섭섭할 뻔했다.막상하니 기쁘다.”며 감사해 했다. 노 대통령은 만찬의 경우,아들과 딸이 모두 미국에 체류 중인 탓에 가족들과의 별도 모임없이 사돈들을 초청,오붓하게 식사를 했다.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내외와 손녀들은 이날 아침 전화로 축하인사를 했다.노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는 올라오지 않고 축하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재임 중 회갑을 맞기는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세번째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2007대선과 시대정신] ‘시대정신’의 역사적 흐름

    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4번의 대선을 치러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4명으로 대통령을 배출했다. 대권을 거머쥔 4명의 대통령들은 저마다 당시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며 승리를 낚았다. 16년만에 국민의 직접선거로 치러진 87년 대선은 ‘직접 민주주의의 복원’이란 성격이 강했다.87년 이후 봇물처럼 터졌던 민주화 요구를 동력으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형성됐다. 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고 DJ(김대중)와 YS(김영삼)의 분열로 대선에서는 패했지만 이후 2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87년 체제’를 탄생시켰다. 1992년 대선은 ‘군정종식과 문민정부 탄생’이 화두였다. YS는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충청이 손잡은 3당 합당을 발판으로 승리를 거머쥐었고 ‘민간인이 주도하는 정부의 출범’이란 의미를 지녔다.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97년 대선은 선거를 통한 첫 정권교체라는 의미가 강하다. IMF 금융위기 속에서 DJ는 ‘정권교체와 경제민주화’의 시대정신을 국민들에게 설파했다. 반(反)한나라당 전선인 ‘DJP(김대중, 김종필)연합’을 성사시켜 DJ를 괴롭혔던 ‘색깔론’의 덫을 통과했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200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구시대 정치와의 단절과 ‘개혁’을 외친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시기적으로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시대’의 종언과 일치했고, 노 후보는 ‘낡은 정치의 단절, 선명한 개혁’이란 시대정신을 최대한 활용했다. 노 후보는 대세론으로 기세를 올렸던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권위주의와 3김 정치의 아류’로 몰아치며 기득권 유지의 표상으로 부각시켜 승리를 낚았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참여정부 정무직 31명↑

    참여정부 들어 정무직 자리가 무려 31개나 증가했다. 급기야 정부 조직 개편에서 ‘정무직 증가를 막겠다.’는 원칙이 제시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최양식 행정자치부 1차관은 20일 정부조직 개편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정무직 순증 없이 조직개편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정청 신설과 중앙인사위원회 사무처장을 정무직으로 격상하는 것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안전처와 주택본부가 차관급으로 출범하지만, 여성부와 청소년위원회가 통합되면서 차관급이 1명 줄고, 식약청이 폐지되기 때문에 이번 조직개편으로는 정무직이 증가하지 않는다. 우정청 신설의 필요성도 중요하게 검토됐지만 정무직 증가에 대한 부담으로 추후 검토하는 것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행정부의 정무직은 120명이었다. 이후 문민정부에서 101명으로 줄었고, 국민의 정부는 106명이었다. 그러나 참여정부들어 137명이 됐다. 장관급이 7명, 차관급이 24명 늘었다. 현재 행정부의 장관급은 40명이고, 차관급은 97명이다. 원래 참여정부들어 정무직은 35명이 늘었지만, 과학기술자문위원회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외교안보연구원 등의 감축과 철도청의 공사 전환 등으로 4명이 줄면서 31명이 순증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이경형칼럼] ‘盧 차별화’를 許하라

    [이경형칼럼] ‘盧 차별화’를 許하라

    TV광고 기법 가운데 브랜드의 차별화 메시지가 소비자 설득에 가장 효과가 크다고 한다. 선거, 정치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열린우리당의 재선 의원들과 가진 만찬에서 “(대통령과) 차별화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다음 대선을 위해서 당이 (나를) 비판해야 한다면 감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은 ‘차별화 허용’ 등의 확대 해석을 부인하면서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차별화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게 기본 인식”이라고 토를 달았다. 청와대는 당정 분리 원칙과는 달리 정무비서관을 신설하고, 정무특보단도 설치할 계획이다. 일차적으로는 청와대와 당 사이에 소통을 원활히 하고, 정치적 조율을 다잡으면서, 한편으로는 임기 말의 레임덕을 최소화한다는 의도다. 그러나 그보다는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 작업처럼 보인다. 비록 대통령의 지지율이 14∼15% 선에 맴돌고 있지만, 합종연횡을 하든, 한판 엎어치기를 하든, 상황 타개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엄밀히 말해, 현행 5년 단임제 헌법체제 아래서 정권을 재창출한 정권은 없었다.6공의 민자당 정권이 김영삼 정권을 탄생시켰다 해도,5공의 연장선상에 있던 노태우 정권이 YS 문민정부를 창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이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켰으나, 뒤이어 탈당, 창당 수순을 밟은 현 노무현 정권을 민주당이 진정으로 재창출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에 몸담고 있는 인사든, 앞으로 영입될 인사든 간에 후보군으로 나설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미 ‘노(盧)메뉴’에 식상했기 때문이다. 5공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10항쟁 이후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대통령직선제 개헌 수용 등 ‘6·29선언’으로 항복했다. 그 와중에서도 이 선언은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당총재인 전 대통령과 사전 상의 없이 결행한 것으로 정리하여, 모든 공로는 노 대표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전두환이 ‘죽일 X’가 되어도 노태우가 살면 된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여권 후보군이 내세워야 하는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답은 자명하다. 평등보다 경쟁에, 분배 정의보다 성장 동력에, 이념보다 실질 숭상에 좀 더 역점을 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를 일거에 ‘우파 시장주의’로 전환하라는 말은 아니다. ‘노(盧)차별화’엔 노선의 차별화와 못지않게 리더십의 양식, 용인술, 화법의 차별화가 필수적이다. 분열을 통한 지지세력 확보보다는 통합을 통한 사회 전체의 안정을 꾀하고, 코드·회전문 인사보다는 정권지지층의 외연을 두껍게 하는 용인 철학을 가져야 한다. 달변가 노무현 화법은 분명 일품이지만,“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등의 거리낌 없는 직설화법보다는 어눌하지만 진중하고 격조 있는 화법의 소유자라야 차별화가 이뤄질 수 있다. 차별화는 차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비판, 부정, 극복의 수순을 밟게 마련이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열린우리당에 진정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대권후보들에게 ‘나를 딛고 일어서라.’고 말해야 한다. 정권재창출은 밀알이 썩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khlee@seoul.co.kr
  • “작계등 쟁점 작년 美와 이미 정리” 노대통령 회견 요지

    “작계등 쟁점 작년 美와 이미 정리” 노대통령 회견 요지

    노무현 대통령은 31일 KBS와의 특별회견에서 최근 현안인 성인오락게임 바다이야기 사건을 비롯, 부동산 정책, 전시 작전통제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에 대한 입장과 속내를 털어놓았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것이다. 딱 정면으로 말씀드리겠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안 된다. 노태우 대통령 정부가 세운 계획이다.94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서 ‘2000년경까지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할 것’이라고 계획을 명백하게 세웠다. 한나라당 정부이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이고, 통수권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헌법적 질서이다. 대통령은 외국인 안 데려오지 않는가. 참모총장 외국인 안 데려 오지 않는가. ●국방비 부담 지난 수십년 동안 매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이 16%씩 증가해 왔다. 참여정부 와서 처음 작년에 8%정도 깎았다. 미국의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국방비 621조는 작통권 환수를 안 하더라도 다 들어가게 돼 있는 것이다. ●한·미 동맹 아무 문제 없다. 주한 미군의 지원도 아무 문제없다. 부시대통령을 가서 만나보니까 만날 때마다 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다.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해 6월 작전계획 5029의 문제, 전략적 유연성 문제, 그밖에 아주 민감한 당시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와버렸다. 북핵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2. 경제 “주택국을 주택정책본부로 승격 시킬것” ●한·미 FTA 문을 닫아 걸어버린 문명은 다 망해버렸다. 그래서 열어놓고 흥하느냐, 망하느냐를 결정해야 되는 것이다. 일본이 먼저 미국과 FTA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우리나라는 난리가 날 거다.‘노무현이 뭐하냐.’고. 엄청난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한발 앞서가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지 뒤따라가면 안 된다. ●8·31 부동산정책 반드시 성공한다. 부동산 투기는 반드시 실패한다. 많은 국민들의 조세 저항이 두려워서 확실한 약이지만 쓰지 못했던 보유세도 도입했다. 또 정부가 공급의 주체가 돼 서민주택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지고 공급하겠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도심 안에 다세대주택을 사 그 집을 임대하는 ‘맞춤형 임대’를 할 계획이다. 특히 주택국을 주택정책본부로 승격시킨다. ●민생·비정규직 문제 경제실패·국정실패로 표현하는데 국정실패라는 말에 대해서는 좀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실패와는 좀 나눠봤으면 좋겠다. 경제는 정상이다. 경제가 좋아도 민생이 어려울 수 있다. 영세자영업자의 비율이 세계 최고이다. 참여정부에 와서도 많이 늘었다.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비정규직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몇년째 묶여 있다. 비정규직 차별금지를 할 수가 없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수읽기 민심읽기

    1991년 5월로 기억난다. 강경대군 치사(致死)정국과 뒤이은 공안정국으로 온 나라가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거여(巨與) 출범에 따른 3당 합당 여파로 여당인 민자당과 야당인 신민당은 서로 개 닭 쳐다보듯 했다. 이런 와중에 김영삼(YS) 민자당 대표와 김대중(DJ) 신민당 총재가 대구에서 전격 회동을 가진 것이다. 당시 DJ가 이끌던 신민당은 국회 농성이나 장외집회를 단골 메뉴로 삼았고,YS는 대야 관계는 물론이고 ‘한지붕 세가족’의 계파 갈등으로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30년 민주화동지인 두 사람의 관계가 쉬이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런 양김이 만사 제쳐두고 만난 것이다. 그것도 노태우 대통령 고향인 대구의 한복판에서. 더욱이 회동 장소가 오픈된 호텔 커피숍이라 눈길을 끌었다. 포토 세션 시간도 예상보다 길었고, 수많은 취재진으로 커피숍 칸막이가 여기저기 무너지고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는 두 사람이 짜증내지 않고 씩 웃는 것을 보곤 ‘이 상황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양김, 특히 YS를 둘러싼 당시의 정치환경은 썩 좋지 않았다. 강성 이미지의 노재봉 총리 카드로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노태우 대통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고, 여차하면 그를 차기 대권주자로도 밀어줄 태세였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했던 YS로선 자칫 죽 쒀서 개 주는 꼴을 당할지도 몰랐다. 양김 회동 후 얼마되지 않아 노 총리는 물러났다. 위태로웠던 YS의 입지는 한결 나아졌다.DJ로서도 현실 정치의 핵심 축이 양김이란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한 소득을 얻었다. YS의 탁월한 수읽기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일은 또 있다.1992년 3·24 총선에서 217석의 거대 민자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다. 인책론이 당내 최대 이슈가 됐고 YS의 대표직 사퇴 주장이 점차 힘을 얻어가는 형국이었다. 김종필, 박태준 최고위원도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면서 YS를 강하게 압박했다. 어떤 식으로든 YS의 책임론은 불가피해 보였다. 그런데 YS는 총선 4일 후 난데없이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해버렸다. 그 해 5월에 있을 대통령후보 당내 경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당내 최대계파인 민정계는 한방 먹었다며 부랴부랴 경선 후보 선정작업에 착수했다. 이것으로 총선 책임론은 사라지고 당내 기류는 대선 경선국면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일반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국면전환의 수읽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유감(遺感)도 있다. 두 사람이 자신과 계파 이익에만 충실하지 않았나 아쉬움이 남는다. 백성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민초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지는 관심권 밖이었던 것 같다. 곧 대선 국면이 닥친다. 후보군은 물론이요, 주변의 책사들도 바로 이것, 국민을 생각하는 수읽기에 주력했으면 한다. 제 아무리 뛰어난 수읽기라도 국민과 동떨어져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환경이 그때보다 달라졌다 하더라도 정치가 굴러가는 원칙은 큰 차이가 없다.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정치인도 없고, 정치권은 언제나 험한 말만 오가고 한랭전선만 형성돼 있다. 정치권 혐오지수는 갈수록 상승 중이다. 그전엔 자주 했던 여야 영수회담도 지금은 언제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가히 여야관계 실종이다. 그래선 안된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제는 국민들도 정략적인 수읽기는 배격할 줄 안다.jthan@seoul.co.kr
  • [시론] ‘도둑처럼 찾아드는’ 레임덕/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도둑처럼 찾아드는’ 레임덕/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녁 모임 자리가 확실히 차분해졌다. 오래된 친구들의 모임이었지만 이전에는 화제가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로 옮아가기만 하면 목소리도 커지고 시끌벅적해지곤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노 대통령이 아예 화제에 오르지 않거나 화젯거리가 된다고 해도 그저 몇마디들 하고 금방 다른 화제로 넘어간다. 오히려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서운하겠지만 이제 사람들이 ‘차기’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만큼 현 대통령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은 줄어든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이야기되는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그런 느낌을 갖는 것 같다.‘힘이 없어 할 일이 없다. 관리만 잘해주고 넘겨줘야 할 것 같다.’는 노 대통령의 말도 이런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임덕 현상은 고정된 임기를 갖는 모든 지도자가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운명이다. 총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장기간 집권할 수 있는 내각제와 달리,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제에서 레임덕 현상은 임기 후반기 ‘도둑처럼 찾아든다.’ 미국처럼 연임이 가능하면 적어도 첫 임기 4년동안에는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두번째 임기 말에는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5년 단임제인 경우 이런 현상이 보다 심각하다. 머지않아 물러나야 하는 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줄어들고 정책의 추진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도 이전 같지 않을 것이다. 레임덕 현상을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고볼 수만도 없는 일이다. 레임덕 기간을 어떻게 잘 ‘관리해’낼 것인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큰 제도적 숙제이기도 하다. 아직도 1년반이나 남은 시간을 허송세월할 수 없을뿐더러, 이런 현상이 노 대통령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모두 레임덕을 경험한 바 있다. 특히 신임 대통령이 겪기 마련인 임기 초반 6개월에서 1년정도의 시행착오 기간에 더해, 임기말 1년 이상을 레임덕으로 보내야 한다면 대통령의 실제 통치기간은 2∼3년정도인 셈이다. 정책이 안정적으로 추진되고 제자리를 잡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제도적으로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해야겠지만 레임덕 현상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임기 후반기에는 정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큰 정책을 새롭게 추진하기 어렵다. 여론을 등지면서 그런 어젠다를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임기 후반의 대통령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말 이동통신사 선정 논란이나 김영삼 정부 말 노동법 날치기는 모두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정책이 잘 마무리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청간 원활한 소통 역시 중요하다. 선거에 다시 나설 수 없는 대통령과 달리 ‘차기’를 최우선시해야 하는 당으로서는 대통령이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면 ‘당이 살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공격하거나 견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당의 지원까지 잃게 되면 임기 말 대통령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레임덕을 최소화할 확실한 방안은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퇴임을 무척 아쉬워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론상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임기 말까지도 무척 중요하다. 너무 늦게 그 중요성을 깨달은 건 아닌지, 아쉬움과 우려가 교차될 수밖에 없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심층진단-레임덕 (상)원인과 실태] 집권 후반기 민심 등돌려

    대통령의 5년 단임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의 정치 역학상 보통 집권 3년차 후반부터 4년차에서 권력 누수 현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들 모두 집권 후반기와 말기를 고통스러운 ‘레임덕’의 시기로 보냈다. 국정 표류 현상이 가시화되는 것도 레임덕의 동반 현상이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3년차인 2000년 ‘정현준 게이트’,‘진승현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사건을 겪으면서 권력 누수가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세 아들(홍일·홍업·홍걸)이 각종 비리 연루 의혹을 받은 데다 최측근인 권노갑 민주당 고문이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20%대 후반으로 급락하면서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명분으로 대선 7월 전인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김영삼 정부 역시 1995년 중간 평가 성격의 ‘6·27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서서히 레임덕이 시작됐다.96년 ‘노동법 날치기’ 파동으로 일차 타격을 받은 뒤 아들인 ‘김현철 게이트’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문민정부는 4년차(1996년)엔 지지율이 30%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그 해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급격한 민심 이반을 겪는다. 한보 사태와 아들 현철 씨 등 민주계 실세들의 잇따른 구속,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지원 의혹 등으로 막판에 몰리면서 문민정부의 통제력을 상실했다. 결국 97년 11월 국치로 불리는 ‘IMF’구제금융을 초래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6공 역시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피해 가지 못했다. 사돈 기업인 SK그룹에 이동통신 사업을 허가하려다 당 안팎에서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막판에는 당내 권력 2인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격렬한 권력투쟁을 벌이며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떨어졌다.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심층진단-레임덕 (상)원인과 실태] 낙마·낙하산 인사 불만 최고조

    [심층진단-레임덕 (상)원인과 실태] 낙마·낙하산 인사 불만 최고조

    레임덕(lame duck)은 원래 뒤뚱거리는 오리를 빗댄 말이다. 미국 대통령의 권력 후반기 ‘권력누수’ 현상을 통칭하는 용어인 것이다. 반면 ‘한국형 레임덕’은 정권 후반기 각종 권력형 인사비리 및 부정부패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바로 ‘집권 후반기 증후군’인 것이다. ●레임덕의 원인 우선 참여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폐쇄형 인사 스타일’로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고 직·간접으로 레임덕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코드 인사’로 대변되는 ‘낙하산-보은 인사’가 주범이라는 것이다. 김형준 교수(국민대)는 “대통령이 외부로 통하는 통로를 스스로 좁히고 소수의 견해, 늘 눈에 익은 자료 위주의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당장 ‘8월 한달’ 동안 대통령의 인사 행보를 보자.▲김병준 부총리 인사 파문 ▲유진룡 전 문화차관 보복경질 논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이재용 전 장관 내정 논란 등 숨가쁜 인사 논란으로 한달을 보냈다. 특히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조기 퇴진은 권력누수에 엔진을 달아 준 격이다. 권력 구조에서 한국형 레임덕이 잉태됐다는 지적도 많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근원이다. 노태우·김대중·김영삼 등 역대 대통령들 역시 ‘집권 4년차 증후군’을 넘지 못했다. 강원택 교수(숭실대)는 “레임덕은 임기가 제한된 모든 제도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전제,“그러나 한국의 경우 단임제 채택으로 레임덕이 빠르고 강하게 오는 것이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노 대통령은 “여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해야 한다.”고 당부했으나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의 한자도 고칠 수 없다.”고 반발할 정도로 노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졌다. 당정분리와 당권 불개입을 선언한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에서 기인했지만 국민들에게 준 충격은 적지 않았다. 특정한 지역기반이 없는 노 정권의 정치 역학이 레임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미숙한 국정운영’과 ‘정책 실패’도 한 원인이다. 청와대가 야심차게 준비한, 복지강화를 골자로 하는 장기재정 운용계획인 ‘비전 2030’을 당의 모든 계파가 반대, 무산시켰다. 참여정부가 ‘서민들의 집없는 설움을 없애겠다.”며 추진한 부동산·세금 문제도 결국 ‘서민들의 반대’로 실패 위기에 봉착할 정도다. 보수파에 둘러싸인 ‘소수정권’으로 출발한 노무현 정권이 무리하게 ‘신좌파적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다가 스스로 권력기반을 깨뜨린 부메랑에 직면했다는 지적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레임덕 실태 마지막 보루인 공무원 조직마저 참여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고위 공무원들의 승진기피 현상이다. 사회부처의 모 인사는 “참여정부에서는 승진하지 않겠다.”며 정부에 등을 돌렸다. 얼마 남지 않은 정권에 잘 보여봤자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계산에서다. 한직(閑職)에서 현 정권이 끝나는 1년 6개월만 조용히 지내자는 얘기도 나온다. 경제부처의 고위 관료는 “‘노무현 정권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정권 말기 처신이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다. 부처에 따라서는 인사 불만도 가득찼다. 산하기관장 인사에 재정경제부 출신을 배제한다는 청와대의 원칙에 한 국장은 “386 애들이 뭘 안다고. 돌대가리 같은…”이라며 ‘육두문자’를 쏟아냈다. 경제부처 출신의 한 서기관은 “청와대쪽에 정책 협의를 하기 위해 나가면 그쪽 인사들이 ‘공부’가 안 된 상태가 많지만 말은 잘 한다.”면서 “경제 쪽은 잘 모르면서 운동권에 있으면서 토론 실력만 키운 것 같다.”고 비꼬았다. 그는 “그러니 어느 공무원이 (이들을)존중하는 마음을 갖겠느냐.”고 반문했다. 낙하산 인사는 전체적으로는 예전보다 줄었다는 말도 나오지만 부처간의 차이는 심하다. 과천의 한 사회부처는 최근 이뤄진 산하기관 임원 인사를 놓고 말들이 많다. 예상과는 달리, 업무 전문성과는 동떨어진 시민단체 출신 386인사가 낙점돼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은 “똑같이 행정고시 붙어서 들어와서, 어떤 ×은 죽어라 고생하는데 어떤 ×은 낙하산으로 나가서 연봉 3억∼4억씩 벌면 속이 안 뒤집히겠냐.”고 말했다. 정부 중앙 청사의 한 공무원은 “요즘 청와대 파견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정권이 재창출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면 서로 가려고 할 텐데 정권재창출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꺼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재경부는 부처 정책을 조율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중고차가 굴러가는 수준일 뿐 새로운 정책개발에는 적극적이지 못하다.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9월 말까지 발표하겠다는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 마련 때문에 정책조정국만 땀을 흘리는 정도이다. 정리 최용규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데스크시각] 운칠복삼의 사회?/곽태헌 산업부장

    살다 보면 뜻대로 되는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다. 노력만 한다고 해서, 성실하다고 해서 뜻을 반드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예부터 재운(財運)이니 관운(官運)이니 하는 말이 나온 것 같다. 홀인원을 할 때에도 물론 실력이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가능하듯, 많은 일에는 어느 정도의 행운이 필요하다. 정치판에서는 ‘바람’ 앞에서는 조직력도, 돈을 뿌리는 것도 별로 효과가 없다는 말이 있다. 지난 2004년 총선 때에는 ‘탄핵’ 바람이 휘몰아쳤다. 탄핵이 있기 전 열린우리당의 인기는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신청하는 영양가 있는 인물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탄핵’이라는 예상하지 않은 호재를 만나 열린우리당의 후보들 중 ‘급(級)’이 안 되는 상당수가 금배지를 거저 달았다. 어디 열린우리당의 현 의원들만 운이 좋을까. 몇 달 전 끝난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간판만 달고 나오면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웬만하면 다 당선됐다. 2002년의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들은 능력에 관계없이 호남지역을 제외한 많은 지역에서 광역단체장과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단체장을 거의 싹쓸이했다. 김대중 정부의 권력형 비리가 한나라당 압승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당시 한나라당의 압승을 예상하지 못하고 공천을 신청하지 않았던 적지 않은 정치지망생들이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2004년 5월쯤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대기업의 고위 임원을 만났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요즘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 대신에 운칠복삼(運七福三)이라는 말을 한다.” 복도 운과 다를 게 없으니 이제는 100% 운으로 모든 게 이뤄진다는 게 운칠복삼의 뜻이었다. 보통 그동안 써왔던 게 운칠기삼이다. 운은 말 그대로 실력 외의 요인을, 기는 실력을 말한다. 이런 말이 너무 자주 쓰이다 보니 ‘고스톱도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모든 게 실력이나 노력만으로는 되는 게 아니고 운이 상당부분 중요하다는 점에서 운칠기삼은 별 거부감 없이 통용됐다. 그런데 이제는 운칠기삼도 아니고 운칠복삼이라니…. 능력이나 노력은 간데없고 100% 운이나 줄로 좌우된다면, 또 운이나 줄로 좌우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그 조직은 건강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인사’가 집권 초부더 계속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 특정지역이나 부산상·부산·경남고 출신의 발탁이 많다고 해서 말들이 적지 않다. 헌법재판소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헌법재판관 등 법조계에는 노 대통령과 같이 사법시험 17회에 합격한 동기생들의 발탁이 많다. 특히 사시 17회 중 ‘8인방’은 법조계의 ‘황태자 그룹’에 속한다. 공직에 특정지역과 특정지역 명문고 출신들이 중용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경북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경남·부산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목포상·광주일·광주고 출신들 중 일부가 능력과 관계없이 중용된 것을 잊은 채 현 정권의 인사만 비난할 일도 물론 아니다. 현 정부의 주요인사 중 상당부분을 ‘코드인사’라고 몰아세우는 것에도 지나친 면이 있을 수는 있다. 어느 나라든, 또 어느 정권이든 ‘코드인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정권의 잘못을 개선하지 않고 답습한다면 역사의 발전은 없다. 능력과는 관계없이 적임자가 아닌 사람을 단지 ‘자기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자리에 앉힌다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현 집권층은 “과거정권도 다 그랬는데 왜 우리만 욕을 하느냐.”고 ‘항변’하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1년 반 동안이라도 과거정권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점을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곽태헌 산업부장 tiger@seoul.co.kr
  • “작통권 환수는 北붕괴 대비용”

    김성곤 국회 국방위원장이 23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북한 붕괴 대비용’이라는 의미를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열린우리당 소속인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김근태 의장이 전직 장성들 모임인 성우회 회원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전시 작통권 환수 문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서 “북한 정권이 붕괴되거나 전쟁에서 이겼을 때 북한을 수복하는 군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국방부와 미국의 설명을 들었는데 작통권 환수 이후의 군사협조 내용은 현재 한·미연합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북핵 해결, 한·미상호방위조약 준수, 미군주둔을 선결조건으로 문서화하면 여러분이 걱정하는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험악케 하는 설전이 벌어졌다. 성우회 회원들은 “정치적 인기영합주의, 포퓰리즘적 정치논리로 국정운영을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 의장은 “대통령의 문제는 정부에 말해달라. 결례 아니냐.”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김상태 성우회장은 “우리 정부는 적이 핵실험하고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하는데도 작통권 환수를 한다고만 하니 너무 안타깝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를 만나주지 않으니 김 의장이 대통령을 말려 달라.”고 요청했다. 오자복 전 국방장관은 “우리의 안보는 작전권을 환수하더라도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작통권 환수는 백해무익”이라고 주장했다. 김영관 전 해군참모총장은 “많은 국민이 볼 때 대통령이 안보에 대해 소홀히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의장은 “작통권이 환수되더라도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거라는 건 사실이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고 그때 여기 계신 분들이 대부분 환수로 규정해놓고 지금 안 된다는 것은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라며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총리재임기간 3·4공화국때 ‘최장’

    국무총리의 재임기간이 가장 긴 때는 박정희 정부이다. 또 역대 정부를 통틀어 장관교체가 가장 빈번한 부처는 건설교통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임 기간이 길면 당연히 국정의 안정성이나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역대 정부별 국무총리 및 장관 임면횟수를 분석한 결과,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인 1963년부터 5공화국 출범 전인 1980년까지 17년동안 재임한 국무총리는 모두 7명. 평균 2년 4개월동안 재임한 셈이다. 반면 전두환 대통령 집권기인 1980년 8월27일부터 1988년 2월24일까지는 7명의 총리가 임명돼 평균 재임기간은 1년1개월로 크게 줄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후 정부에서도 평균 총리 재임기간이 1년 안팎에 그쳤다. 노태우 정부 5년동안 5명의 총리가 임명됐고,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선 각각 6명이 거쳐갔다. 참여정부도 한명숙 총리가 세번째다. 부처별로는 건설교통부의 장관 임면 횟수가 단연 많아 눈길을 끌었다. 박정희 정부땐 23명이 평균 9개월가량 재임했다. 전두환 정부 8년동안에도 10명이 교체됐고, 노태우 정부 5년동안에는 10명이 교체돼 평균 재직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김영삼 정부에서는 8차례, 김대중 정부때도 7차례나 바뀌었다.1960년대 이후 국토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지나치게 잦은 교체로 일관성 있는 개발이 이뤄졌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정치적인 바람을 많이 타는 행정자치부(옛 내무부)도 비교적 교체가 잦았다. 박정희 정부 시절 12차례, 전두환 정부 시절 9차례 교체됐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에서도 각각 7차례 바뀌어 평균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은 그래도 4명이 재임해 가장 긴 편이었다. 노태우 정부 이전까지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비교적 ‘롱런’하는 부처였지만 김영삼 정부 이후 교체가 잦았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민주화되면서 바람을 많이 탄 것이다. 교육부 수장은 김영삼 정부에서 5차례, 김대중 정부에서 7차례, 노무현 정부 들어 벌써 5차례 교체됐다. 반면 전두환 정부 8년동안에는 3차례, 노태우 정부 시절엔 4차례만 바뀌었다.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전두환 정부 시절 3차례, 노태우 정부 시절 5차례 바뀌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에서 8차례, 김대중 정부에서 7차례 등 민주화시대에 교체가 잦았다. 이밖에 국민의 정부에선 법무부 장관이 8차례 교체되어 가장 빈번했고, 참여정부에선 교육부와 해양수산부가 각각 5차례로 가장 많았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서울광장] 대선주자들이 명심할 일/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선주자들이 명심할 일/육철수 논설위원

    지난해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막 돌았을 무렵, 어느 언론에서 차기 대선주자들의 지지도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예의상 좀 심했다는 생각을 했다. 참여정부의 권위가 없거나, 힘이 빠져 몰랑몰랑하게 보였거나, 그도저도 아니면 단순히 정부를 약올리려는 전략적 보도였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렇게 일찍 대선주자들이 전면에 떠오른 것은 과거엔 볼 수 없던 일이라 적이 놀랐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력 대선주자들은 그대로다. 소극적이던 주자들은 이제 소신을 밝히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며 민생 속으로 들어가 있다. 지금도 대선주자들이 부각되는 데 대해 이른 감이 있으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할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은 이변이 없는 한 현재 거명되는 정치인들 중에 나올 것이라는데는 이론(異論)이 없을 듯하다. 대선주자들의 조기 부상과 함께 특이한 대목은 일부의 행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100일 민심대장정’은 벌써 50일을 넘겼다. 민심 현장을 찾아다니느라 텁수룩한 수염에다 땡볕에 그을린 얼굴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내륙운하 건설을 위한 탐사활동을 최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예전의 대권주자들이 시도해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정치효과가 내년 당내 경선과 대선 때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서민과 호흡을 맞추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여야(與野)에 많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복이라 할 만하다. 국민의 소중함을 깨닫고 색다른 행보를 보이는 대권주자들을 접하면서 앞으로는 대통령되기도 꽤나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대권주자들에게 한 가지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개인의 이미지와 인지도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나 현 정권에 대한 협조도 아끼지 말라는 점이다. 한 나라의 정권이란 육상의 릴레이 경기와 비슷해서다. 릴레이는 혼자만 잘 뛴다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 주자 모두가 맡은 구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차기 대권을 잡은 사람은 좋으나 싫으나 현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직전 정권에 허물이 많아 설거지에 매달리다 보면 민생탐방 등으로 어렵게 구상한 정책의 구현에 집중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과거의 예를 보면, 노태우 정권은 5공 청산하느라 세월을 허송했다. 김영삼 정권은 군사문화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로 집권초기 시간을 써야 했다.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로 거덜난 곳간 채우느라 바빴고, 현 정부도 직전 정부가 실시한 경기부양의 폐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따라서 차기 정권이 취임 초기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국력소모를 최소화하려면 현 정부의 성공은 필수적이다. 정권 차원이 아니라 크게 보아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그래야 한다는 얘기다. 다행히 노 대통령은 다음 정권을 맡을 사람에게 ‘꼬부라진 마음’도 있으나 ‘펴진 마음’으로 잘해서 바통을 넘겨줄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대권주자들도 현 정부의 실책으로 반사이익을 노리기보다는 성공을 도왔으면 싶다. 그것이 유권자의 표 더 얻는 것만큼 유용한 일이며, 차기 정부가 시종일관 제 페이스로 국정을 이끌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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