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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문한신부 영결식

    【수원=조덕현기자】 물에 빠진 신자 3명을 구해낸뒤 숨진 배문한신부(60·수원 가톨릭대학장)의 영결식이 8일 상오 수원시 조원동성당에서 천주교 성직자와 신도,학생등 1천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영결식이 끝난뒤 유해는 배신부가 학장으로 재직하던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왕림리 수원 가톨릭대학으로 옮겨져 이 학교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제가 치러진 뒤 이날 하오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리내성지 성직자묘역에 안장됐다.
  • 수준높은 금속산업(백제를 다시 본다:13)

    ◎“주도술의 진수” 실납법 응용 향노제조/마한의 우수한 청동·철문화 계승 발전/6세기 삼국중 가장 뛰어난 기술선봬/칠지도·금동용봉향로는 당시 기술의 결정체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지난해 부여능산리에서 발굴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라는 긴 이름의 백제향로를 보존처리하고 있다.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향로는 미처 깨닫지 못한 백제 금속문화의 진수다.긴 시간을 뛰어 넘어서 다시 보여준 백제 금속기술의 결정체이기도 하다.역사학자들은 백제가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긴 마지막 사비시대(AD538∼660년)에 이 향로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향로가 나온 건물지에 대해서는 왕릉들의 제사를 집행하던 곳이라는 의견과 왕릉에 넣을 부장품을 만들고 기타 제물들과 기구등을 수리하는 공방지라는 의견으로 엇갈린다.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왕릉과 관련짓고 있다는 점이다.이 향로가 왕릉과 관련된 성스런 행사에 쓰인 성스런 기물이라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본 셈이다.왕릉과 관련한 기물은 국가적인 힘을 모아 제작했을 것이고 백제 금속산업의 실력을 한데 모은 것으로도 짐작할수 있다. 백제 금속기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관리국은 지난 1971년 여름,공주 송산리에서 무령왕의 무덤을 발굴했다.동방의 투탕카멘 왕 무덤이랄수 있는 유적이다.출토된 유물 가운데 뛰어난 금속제품들을 살펴보면 우선 왕의 위엄을 보이는 금동용봉손잡이 큰칼,왕권의 지혜와 힘을 상징하는 사람과 동물이 조각된 사신경(청동거울),3가지 금속으로 구성 제작된 등탁은잔이 있다. ○과학적 이론 바탕 등탁은잔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받침은 구리 합금이며,잔과 뚜껑은 은으로 만들고 손잡이는 연봉 모양이지만 꽃받침은 금이다.그리고 표면은 받침에서 뚜껑까지 역동하는 용과 겹겹이 핀 연꽃,봉래산과 그 위를 나는 봉황새등 무늬들을 새겼다.향로와 미술적모티브가 같다고 볼수 있다.기술적으로 말하자면 백제의 높은 금속기술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금속산업 입장으로 견주어보자.채광 제련 용범 합금 주물 분야는 독립적 설비와 분업적 전문기술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하다.이 요소들은 과학적 이론과 경험의 토대에서 실력이 나온다.이러한 요소는 지금도 국력이다.무령왕릉의 제품보다 1세기 늦은 백제향로는 이같은 과학의 힘으로 완성한 것이다.늦은 만큼 더 발달된 터전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판단하면 우연히 중국제품이 부여 땅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볼수는 없다.필자는 무령왕이 왕의 통치권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영면의 잠자리를 샀노라는 매지권까지 부장한 점도 긍지에 찬 백제문화의 기세를 우러러 볼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보다 앞서 백제가 건국하여 세를 확장한 제1시기 한성시대(4세기초∼475년)에는 칠지도가 있다.일곱개의 가지가 벋은 철검(길이 83.9㎝)은 백제왕이 369년(태화 4년)에 일본의 왜왕에게 내린 칼로 영구히 잘 보존하라는 뜻이 담긴 글귀가 상감 기법으로 새겨져 있다.이 칼은 일본 천이시에 있는 이소노가미신사에 보존되어 있다.지금도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다는 것도 역시 쇠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다는 증거이다. 백제인의 조상은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대로 청동기 문화를 크게발달시킨 예맥이라 부르는 고구려와 같은 부여족이다.고고학적으로 고찰하면 이 종족은 중국 황하강 북부의 오르도스 지역에서 요령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요령식 동검문화(BC8세기)를 크게 융성시키고,계속하여 우리나라로 남하하면서 드디어 독창적인 한국식 동검문화(BC4∼3세기)를 꽃피운다.여기에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과 철기문화를 받아 들이면서 고대국가를 발전시킨다.절정의 한국식 동검문화는 마한소국들의 문화이며 이 지역은 백제가 세를 모아 터를 잡은 오늘날의 경기·충청 지방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명한 부여 송국리 청동기 유적과 대전·공주지방 일대에서 출토된 청동기(동경 동령 동검 동과 방패형동기등)는 종류별로 지정 문화재급이다.이들 청동기가 이 지역에서 직접 만들어졌다는 것은 용범의 출토로 고고학적으로 증명됐다. ○「아연­청동기」 특징 청동기는 대체로 쌍합법으로 주조가 가능하나 팔주령같이 구조가 복잡하거나 기하학적 무늬를 현미경적 작업으로 새긴 다뉴세문경은 소위 실납법이라는 주물기술로만 가능하다.특히 제조기법이 신비의 수수께끼로 알려진 이 세문경은 지금도 필자를 비롯한 많은 전문 과학자들이 실험고고학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92년7월 「한국의 청동기문화」특별전을 열면서 낸 도록에 청동기의 합금 조성비율을 각 유물별로 명시했다.이 분석치를 대표치 비율로 구하면 구리(Cu) 대 주석(Sn) 대 아연(Zn)=7.6대1.6대0.8이다.우리의 주석청동기가 중국과 다르게 「아연­청동기」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이 비율은 금속학적 견지에서 보면 최고 강도와 주조성의 완전한 효율을 터득한 상태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중인 백제향로의 분석비율은 앞으로 확실한 값이 나오겠지만 1차로 7.8대1.6대0.3으로 나왔다.그리고 표면은 금을 수은(Hg)에 녹여 도금했으며 두께는 10∼20마이크로m 정도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여기서 우리는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라는 시대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청동기는 역시 「아연­청동기」인 점을 알수 있다.이 점은 고고학이나 과학사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따라서 백제의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전통적 과학기술 바탕위에서 실납법 제조로 결론지을수 있다.그리고 표면 금치장 방법도 6세기초의 백제는 금박덧씌움법을 무령왕릉의 머리받침과 다리받침목에서 보여주고 있으나,구리합금재 향로는 수은 아말감법에 의한 손도금으로 처리했다.이로써 우리는 백제가 금치장의 여러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점도 알수 있게 됐다. 백제의 금속산업은 삼국중 가장 뛰어났으며 동북아시아 주변국가들에게도 기술적 영향을 주었다고 볼수 있다.이 분야의 연구는 자료의 부족으로 미진했으나 향로의 출현이 백제과학의 실상을 밝히는데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다.따라서 백제향로의 보존처리가 완료된후 많은 과학자들의 분야별 연구를 기대해 본다. ◎도금술 전래/BC1세기 서아시아서 유입 추정/사비시대땐 높은 기술의 아말감 수은법 사용 금에 대한 인류의 욕망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나타나고 있다.황금빛으로 비유되는 찬란한 광택은 인간으로하여금 금을 더욱선호하게 만들었다.금은 귀금속이기 때문에 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더욱 부추겼다.그래서 연금술과 함께 도금술까지도 발전시켰다. 지난해 연말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역시 금을 선호한 고대인들의 욕망을 도금을 통해 대체한 사비시대 백제유물이라 할 수 있다.1천4백여년을 땅속에 묻혀있었음에도 황금광택을 발산하는 까닭은 고도의 도금술에서 찾아진다.최근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이루어진 삼국시대 금동유물 도금분석에서 고대도금술의 신비가 어느정도 밝혀진 바 있다. 한반도에서 시작된 도금의 역사는 명확치 않다.다만 BC1세기쯤 서아시아,서역,중국을 거쳐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현재까지 나타난 가장 오래된 도금유물로는 AD3세기쯤 원삼국시대 널무덤 출토품인 금박유리구슬이 있다.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및 가야 고분 등에서는 말갖춤,신발,관장식,관모,불상등의 도금유물이 출토되었다. 최초의 도금을 기술한 역사기록은 「삼국유사」진흥왕 34년(AD573년)의 황용사 장육상 조성과 관계된 내용.여섯팔 길이나 되는 거대한 불상을 도금하는데 금 1만1백98푼을 썼다고 적었다.백제의 도금관련기록은 없지만 지금까지 출토된 금동유물 가운데 익산 미륵사 절터에서 나온 금동소탑등 3점의 도금제품에 대한 도금분석이 시도되었다.그 결과 「아말감수은법」도금제품으로 가려졌다. 아말감수은법의 도금은 금이 수은속에서 녹으면 수은처럼 액체가 되기때문에 이를 청동제품에 칠하는 방법이다.수은에 용해된 금물을 칠한 뒤에는 수은의 비등점인 3백75도까지 열을 가한다.이 때 수은은 증발해버리고 금피막만 남게되는데,몇차례 같은 방법을 되풀이해야 완벽한 도금이 된다. 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제작시기와 거의 같은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여 부소산성출토 금동맞새금장식품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도금분석이 이루어졌다.결과는 역시 아말감수은법의 도금으로 상당한 기술수준임을 보여주었다.능산리 출토 금동향로의 1차 도금분석에서 역시 아말감수은법에 의한 고도의 도금기술이 구명되었다.그러나 연금술은 물론 산지구명등의 숙제를 안고있다.
  • 고향서 봉영식…애국혼추모행렬/서재필박사·전명운의사 유해봉송 스케치

    ◎기념관서 2천여명 헌화/서 박사/광주시가 행진… 선영 들러/전 의사 애국지사 서재필박사 유해 봉영식이 6일 상오 10시30분 생가인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서박사 기념관에서 구용상 전남지사와 주민등 각계인사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분동안 엄숙히 거행됐다. 이날 봉영식은 구지사의 봉영사와 외종손 이정섭씨(58)의 약력보고,이채환 서박사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의 경과보고,유족대표인 이의순세방그룹회장의 인사말과 주민들의 헌화·봉헌순으로 진행됐다. 구지사는 봉영사에서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멀리 미국땅에 묻혀있다 43년만에 그토록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통일의 정신으로 이어가자』고 말해 참석자들을 숙연케했다. 서박사의 유해는 이날 하룻동안 일반인들의 분향을 받은뒤 기념공원에서 하룻밤을 새우고 7일 상오 10시 서울로 환송돼 8일 전명운의사와 함께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다. 한편 애국지사 전명운의사의 유해는 이날 광주와 시조 선영이 있는 전남 담양에 들른뒤 서울로 환송됐다. 전의사의 유해는 낮 12시 광주에 도착,시가행진을 가진뒤 하오 1시10분부터 전남 도청앞 광장에서 강영기광주시장등 각급기관장과 종친회원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약력보고·전의사기념사업회장인사말·추도묵념순으로 10여분 동안 출영행사를 가졌다. 유족으로 구성된 전의사의 유해봉송단이 시가지를 통과하는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연도에 나와 묵념으로 고인의 애국혼을 기렸다. 유해봉송단은 이어 하오 2시 10분부터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 담양전씨 시조묘에서 종친회 주최로 열린 참배행사와 노제를 마친뒤 하오 2시30분쯤 서울 국립묘지로 향했다.
  • 가야기원 2세기로 앞당겨/김해양동리 유물 1천점 출토 의미

    ◎청동삼발이솥에 명문… 한과 교류 입증/유구 53기 발굴… 묘제연구에 중요자료 동의대 박물관조사단(단장 임효택박물관장)이 경남 김해시 양동리 고분군에서 발굴한 1천30여점의 유물들은 가야의 역사를 서기2세기쯤으로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는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왜냐하면 기원전100∼서기100년 사이 황하의 중·하류지역에서 유행한 다리가 짧고 양쪽 귀가 굽은 한대의 청동삼발이솥이 흙구덩덧널무덤(토광목곽묘)에서 이번에 출토되었기 때문이다.이 청동삼발이솥은 새김 글씨가 들어있는 유명 동정(글씨내용 1면 참조)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유물로 부각된다. 우리나라에서 청동삼발이솥이 출토된 예는 신라고분인 천마총,황오동 4호분,노서동 138호분이 있다.그리고 고구려 강역이었던 만주 집안현 칠성산 96호분과 우산 68호분에서도 나왔지만 새김글씨가 발견되기는 이번에 발굴한 양동리 고분이 처음이다. 청동삼발이는 본래 고기를 삶는 그릇이었으나 진한시대에 이르면 제기로 변한다.그 이후에는 향로로 이용되었다. 그렇다면 청동삼발이솥은 당시 귀중한 유물이고 이를 소지할 수 있는 계층은 상당한 지위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양동리 고분군에서 이번에 햇볕을 본 삼국시대 최대의 고리발(환두대도·길이 1백25㎝)등의 공격용 무기와 갑옷과 투구(갑주)등의 방어용 무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여기 묻힌 계층은 바로 무력과 권력과 부를 함께 거머쥔 지배자로 귀결된다. 따라서 2∼3세기의 가야는 통일국가는 이루지 못했으나 국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 피장자의 신분과 관련하여 출토품인 치레걸이에도 관심이 집중된다.322호 흙구덩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수정목걸이는 가야뿐 아니라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시대 옥목걸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걸작품이다.이 목걸이는 수정제 굽은 옥,수정제 다면옥,마노제 둥근옥으로 구성되었다. 통형동기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지않고 일본에서만 출토된 유물이다.이런 이유로 일본계 유물로 보았으나 김해 대성동고분에 이어 이번에 양동리 고분군에서 또 출토됨으로써 일본 출토품의 원류를 가야에서 찾게되었다.그리고 일본에서는 통형동기를 칼자루나 장대끝쇠로 본 것과는 달리 방울소리가 나는 의기라는 사실도 이번에 밝혀냈다. 양동리 321호 고분은 가야시대 굴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의 원류로 보고 있다.발굴단은 이 굴식돌덧널무덤의 형식을 빌려 가야의 묘제는 흙구덩 무덤(토광묘)→흙구덩널무덤(토광목관묘)→흙구덩덧널무덤→굴식돌덧널무덤 순으로 발전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문화체육부 문화재전문위원인 김기웅박사는 『이번 발굴조사로 그동안 공백상태에 있던 가야사와 일본 고분문화를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를 얻었을뿐 아니라 3∼4세기로 추정되어온 가야집단의 형성시기를 2세기이전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3∼4세기 가야유물 1천여점 출토/김해 양동리서/한대청동솥 포함

    경남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 산3 일대의 가야시대 고분유적을 발굴중인 동의대박물관팀은 27일 가야묘제의 계통을 파악할 수 있는 53기의 무덤에서 3세기경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주는 뿔잔을 비롯한 유물 1천30점을 출토했다고 발표했다. 동의대가 지난해 9월20일부터 제3차발굴로 진행한 이날 발굴에서는 새로운 형식의 뿔잔(각배)과 화로형 토기등 토제품 2백여점,고리칼(환두대도)과 쇠솥 갑옷과 투구 갑주등 철제품 8백여점, 삼발이솥과 통형동기등 청동제품 11점, 유리수정제 치레걸이 18벌등 가야문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가운데 굴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 304호)에서 출토된 뿔잔은 소뿔모양의 토기잔 중앙부위에 아담한 작은 단지를 덧붙인 새로운 형식의 토기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새김글씨가 들어있는 청동삼발이솥은 흙구덩덧널무덤(토광목곽묘 322호)에서 출토되었는데 한대의 전서체로 「서구궁정,용일두,병중십칠근칠양,칠」이라고 새겼다. 이밖에 또다른 흙구덩덧널무덤(303호)에서 나온 고리칼은 길이가 1백25㎝나되어 같은 유형의 삼국시대 유물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밝혀졌다.원통형의 통형동기에는 4개의 장방형 구멍이 나있고 안에는 방울처럼 소리가 나도록 작은 청동봉을 집어넣었다. 이번에 발굴된 통형동기는 김해시 대성동 고분에서 나온 통형동기와 함께 통형동기의 원류가 일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가운데 그 쓰임새도 의기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새김글씨가 들어있는 청동삼발이솥은 이번에 출토된 쇠솥(철복)과 함께 주목을 끌었다.특히 청동삼발이솥은 기원전100∼서기100년쯤에 황하 중하류에서 유행한 유물과 형식이 같은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3세기쯤 가야에 전래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발굴에서 나온 18벌의 목걸이 가운데 흙구덩덧널무넘(322호) 출토품은 삼국시대 최대의 걸작품으로 수정제의 굽은옥과 다면옥,마노제 둥근옥으로 이루어졌다.
  • 정 전총리·문목사 영결식 엄수

    고 정일권전국무총리의 사회장 영결식이 22일 상오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이만섭국회의장·이회창국무총리·김종필민자당대표를 비롯한 각계 인사와 유족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영결식은 고인의 약력보고에 이어 장의위원장인 김민자당대표의 영결사,이국회의장의 조사,고인육성 청취,분향등의 순서로 1시간남짓 거행됐다. 김대표는 영결사를 통해 『선생께서는 공산군의 남침으로 국가가 누난의 위기에 처했을 때 온몸으로 조국을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그후 대사와 외무장관·행정부수반·입법부수장으로서 잠시도 쉴틈 없이 나라와 겨레를 위해 봉사했다』고 추모했다. 이의장은 조사에서 『선생이 남기신 훌륭하신 뜻과 업적은 후배들의 가슴속에 기려지고 간직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총리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스스로 인내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해온 극기의 생애를 사신 데 대해 머리가 숙여진다』고 애도했다. 고인의 유해는 영결식이 끝난 뒤 국립묘지로 운구돼 장군묘역에 안장됐다. 영결식에는 김재순·채문식전국회의장,남덕우·강영훈·정원식·노재봉·황인성전총리,민복기전대법원장등 전직 3부요인과 정부측에서 정재석부총리,한승주외무·최형우내무·이병대국방·서상목보사·서청원정무1장관과 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유경현평통사무총장,이양호합참의장,김동진육군참모총장등이 참석했다. ○대학로서 노제치러 고 문익환목사의 영결식이 22일 상오9시 서울 도봉구 수유동 한신대 신학대학원 대운동장에서 유가족과 재야인사·시민·대학생 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겨레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문목사의 장손 용민군(17)의 영정입장을 시작으로 계훈제장례위원장의 개식사와 지선스님의 양력보고에 이어 김대중 전민주당대표와 임수경양의 조사낭독,문목사의 육성청취와 헌화식,청주대 강혜숙교수의 살풀이춤의 순서로 3시간 진행됐다. 영결식에 이어 문목사의 유해는 하오1시30분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시민·학생·재야인사 등 7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2시간남짓 노제를 치른뒤 경기도 남양주군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 오늘 장례식… 추모인파 줄이어/정 전총리·문 목사 빈소주변

    ◎세 전대통령도 분향/정 전총리/조문객 2만 다녀가/문 목사 정일권전국무총리와 문익환목사의 빈소에는 장례식을 하루 앞둔 21일에도 각계의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정전총리 장의준비위원회는 22일 상오8시 중앙병원에서 유족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예배를 가진뒤 올림픽대로,마포대교남단을 거쳐 상오10시쯤 국회의사당앞 광장에서 사회장으로 영결식을 갖기로 했다. 장의준비위원회는 이어 국회의사당을 출발,노량진수산시장,동대입구등을 거쳐 상오11시30분쯤 국립묘지 장군묘역에 정전국무총리를 안장키로 했다. ○…정전총리의 빈소에는 21일 하룻동안 2백50여명이 찾아와 문상. 이날 상오 최규하·전두환 두전대통령이 차례로 찾아온데 이어 노태우전대통령도 하오2시40분쯤 조문해 이날 전직 세 대통령이 모두 조문을 끝냈다. 노전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정전총리가 5∼6년은 더 사셨어야 할텐데』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황인성전국무총리도 이날 뒤늦게 조문. 이밖에 서청원정무1장관,남재희노동부장관,황락주국회부의장,김상현·박정훈국회의원,최세창전국방부장관,김덕용전정무1장관 등도 조문했다. ○…김수환추기경은 이날 하오5시쯤 비서없이 혼자 정전총리 빈소에 문상. 김추기경은 장의준비위원회에서 준비한 흰국화 한송이를 영정앞에 놓고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 ○…서울 도봉구 수유동 한신대 본관 201호 문목사의 빈소에는 장례식을 하루 앞둔 21일 서청원정무1장관,황명수전민자당 사무총장,이태영가정법률상담소장,이세중대한변협회장등 각계인사 5백여명이 조문. 장례위원회는 이날까지 2만여명의 조문객들이 다녀갔다고 발표. ○…장례위원회는 이날 통일원의 북측 조문단 방문 불허 방침과 관련,이영덕통일원장관에게 『북측 방문단의 조문을 허용하라』는 내용의 서신을 전달. ○…이날 낮12시쯤 한일병원 영안실에서는 문목사의 3남 성근씨와 특수분장사 허석도씨(37)등 4명이 문목사의 흉상을 제작하기 위해 문목사의 얼굴을 석고로 뜨는 작업을 진행. ○…장례위원회는 이날 22일 거행될 장례의 세부 일정을 확정. 22일 상오8시 한일병원 영안실에서 유가족만으로 간단히 발인식을 갖고 상오9시쯤 한신대 운동장에서 조문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을 거행한다. 이어 낮12시쯤 서울 동대문구 대학로로 출발,노제를 지낸뒤 하오4시쯤 경기 남양주군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을 갖고 장례식을 모두 마치기로 했다.
  • 임란 코무덤 오늘 봉환/부안 호벌치에… 어제 부산서 노제

    【부산=이기철기자】 임진왜란때 왜군에 의해 살륙된 뒤 일본 오카야마현의 「코무덤」에 묻혀 있던 선조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노제가 25일 하오 부산시 동래구 사직운동장앞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노제는 삼귀의례와 심경봉독·헌향·헌화에 이어 한·일 양측 각계 인사의 추도사와 조사 순으로 진행됐으며 원혼을 달래기 위한 고전무용가 홍복순씨(40·여)의 「살풀이 춤」도 펼쳐졌다. 노제를 마친 「코무덤」영령들의 위패와 유골함은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호벌치로 떠났으며 26일 열리게 될 임진왜란 비총 환국 안장추모대회」가 끝난뒤 영구히 안장된다.
  • 내일 성철 큰스님 영결식·다비식… 어떻게 치러지나

    ◎법체 삭발·착관의식 거쳐 화장/조계종 각사찰 일제히 타종,영결식 시작/해인사서 2㎞ 떨어진 연화대서 다비식/분소후 유골 분쇄·산골의식거쳐 사리 스습 퇴옹 성철스님의 입적 엿새째를 맞아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과 다비식이 어떻게 치러질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지는 큰스님의 다비식은 지난 71년 청담스님의 다비식에 이어 20여년만에 치러지는 것으로 단순한 장례식의 차원을 떠나 1천6백년 한국불교의 전통의식을 되살린다는 측면에서 불교계 뿐아니라 민속학계 역사학계 등에서의 관심도 크다. 다비란 불교의 장례의식으로 범어 쟈피타(Jhapita)를 음역한 말로 분소 또는 연소 등으로 의역되며 본래부터 시체를 화장하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불교에서의 통상적인 다비식은 의식집인 석문의범에 규정된 대로 행해지고 있다.성철스님의 다비식은 10일 상오11시 대적광전 앞에서의 영결식에 이어 하오2시 2㎞ 떨어진 연화대에서 거행된다. 영결식 전에 가장 먼저 치르는 의식은 삭발의식.법체가 모셔진 퇴설당에서삭발에 이어서 세수와 선족을 하는 목욕의식,옷을 갈아입히고 관을 씌우는 착관의식이 진행된다.이같은 절차가 끝나면 죽은 이의 영혼을 정좌시키는 정좌의식으로 정좌편과 안좌게를 염불하며,영혼에게 음식을 베푸는 시식의식을 행한다.입관한 뒤에는 기관이라는 발인의식을 거쳐 관을 영결식장으로 옮긴다. 퇴설당 1백여m 아래 있는 대적광전 앞에 마련된 영결식장에는 높이 4m 길이 12m의 연단이 만들어졌다.영결식은 이날 상오 11시를 기해 전국의 조계종 각 사찰과 암자 1만여 곳에서 일제히 다섯번씩 타종하면서 시작돼,서의현 총무원장의 영결사,송서암 원로회의 의장의 추도사,혜암 해인총림 부방장의 문중대표 인사등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영결식이 끝나면 해인사에서 2㎞ 떨어진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을 치르게 된다.다비장에 이르기에 앞서 노제를 지내며 다비장에 이르러서는 고통을 떠나서 열반에 들게 되어 영생을 얻음을 뜻하는 거화및 하화의식을 행한다.떡갈나무의 불이 시신에 옮겨 붙으면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봉송의식을 행하고,또 영혼이 새로운 몸을 받아 새로운 옷을 갈아입을 것을 바라는 창의의식을 치른다. 화장이 끝나고 나면 남은 유골을 수습하여 분쇄하고 흩어버리는 기골·습골·쇄골·산골의식을 행한다.이때 환귀본토진언을 외면서 영혼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발원한다.사리의 수습도 이때 이뤄진다. 다비식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사리 수습이다.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인 사리는 황금색의 분말에서부터 진주와 같은 구슬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부처님의 사리를 진신사리라고 하고 불경은 법사리,고승의 사리는 승사리라고 부른다.진신사리와 법사리는 불탑 속에 봉안되는데 비해 승사리는 불탑과는 다른 형태인 부지에 봉안된다. 기록에 따르면 가장 많은 사리는 부처님 진신사리로 8곡4두에 달했다.이는 불법의 너른 전파를 위해 당시 인근 8개국에 분배,봉안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현장법사가 1백50입,의정이 3백립등을 들여와 널리 퍼져있다. 성철스님의 스승으로 그를 득도의 길로 인도했던 동산스님은 65년 입적후 2과의 사리가 나온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스승이었던 용성스님도 2­3과의 사리를 남겼으며 빛깔이 찬란하고 영롱했던 것으로 유명하다.성철스님도 훌륭한 사리를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 임정요인 5위 해방 48년만에 고국에…

    ◎5일 환국… 준비상황·봉환성사 경위/국립묘지 성토·마무리작업 한창/영결식 10일 국민제전으로 거행/문민정부의 상해임시정부 법통계승 노력 결실 오는 5일 하오 광복 48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상해 임시정부 순국서열 5위 유해봉환을 위한 마무리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현재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뒤편에는 오는 10월말 완공예정으로 임정요인묘역이 조성중이다.규모는 조성묘역 8백20평,예비묘역 3백30평,녹지및 조경지역 8백10평등 모두 1천9백60평으로 잔디심기 작업등이 진행되고 있다. 임정묘역 상단에는 수반급 7위의 묘역이 자리잡게 되며 그아래 3개계단에는 국무위원급 26위가 모셔진다.이번에 봉환되는 박은식선생은 맨 위 수반급 묘역 중앙에,국무위원급인 노백린·신규식·김인전선생은 바로 아래 중앙에 각각 유택이 마련됐다.국무위원급이 아닌 안태국선생은 묘역 아래쪽 애국지사 묘역에 따로 안장된다. 정부는 상해 임시정부요인 유해봉환을 임시정부의 법통계승및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인에 있다고 보고 두달여동안 「대한민국 선열5위 봉환국민제전위원회」를 위시해 국민제전추진위원회·국민제전집행위원회등을 구성,봉환을 준비해왔다. 유해봉환에 앞서 중국 상해 만국공묘에서는 봉환단·유족·현지동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묘식이 엄숙히 거행된다. 이를 위해 이충길보훈처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봉환단 60여명이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5일 상오 현지로 출발한다. 천묘식은 한·중양측이 이미 합의한대로 한국식의 제단과 현판,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의 화환이 놓여진채 우리측 의식으로 30여분간 진행된다. 선열 5위의 유해는 화장된 뒤 국내에서 특수제작한 직경 30㎝ 높이 30㎝크기의 백자도자기 항아리인 「옥함」에 넣어져 오동나무곽에 봉안된다. 유해는 4일 하오 지난4월13일 복원된 임시정부 청사터앞 마당로에서 노제를 지내고 청사안을 한바퀴 돌아 만국공묘관리처에 임시 안치된다. ○한국의식으로 봉환 천묘식이 끝난 직후 옥함에 모셔진 유해는 당일 상오11시30분 상해공항을 출발,하오1시30분 김포공항에 도착하며 하오2시부터 공항 귀빈주차장에서박은식선생의 손자인 박유철씨등 유족 대표와 제전위원,일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환식이 열린다.봉환행사를 마친 유해는 김포공항에서 동작동 국립묘지까지 20여대의 긴 차량행렬로 운구돼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으로 옮겨져 제전위원장인 황인성국무총리등 3부요인과 각계 대표등의 헌화와 분향을 받게된다.봉환된 유해는 오는 10일 상오7시30분까지 공무원·시민·학생등 일반조객의 참배를 받으며 영결식은 같은날 상오10시 국립묘지 현충문 앞에서 각계인사·외교사절·시민등 6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 수준인 국민제전으로 거행된다.이어 유해는 낮12시쯤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묻힌다. 이번 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하게 된데는 군사통치 30년만에 출범한 문민정부의 상해 임시정부 법통승계 노력이 컸다. ○화장뒤 옥함에 모셔 김대통령은 지난 5월27일 방한한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만국공묘안에 있는 박은식선생등 임정요인 5위의 유해를 본국으로 봉환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헌법전문에서 상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고 또 본인의 취임사에서도 이를 밝히고 있으나 양국관계가 성숙되지 못해 지금까지 이분들의 유해를 봉환하지 못했다』면서 중국정부의 협조를 촉구했다.중국정부는 지난 6월3일 공식으로 임정선열 5위의 유해봉환을 수락해왔다. 이에따라 우리 정부는 지난 6월23일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선열 5위 봉환 국민제전계획을 최종확정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임정요인들의 유해봉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중국측의 비협조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지난해 8월 한·중수교로 봉환의 길이 열렸다. ▷유해봉환 추진일지◁ ▲5.27=김영삼대통령,방한중인 전기침중국외교부장에게 유해봉환을 제의 ▲6.3=중국정부,유해봉환수락 ▲6.23=국무회의에서 임정 선열5위봉환 국민제전계획 확정 ▲6.29∼7.3=유해봉환 실무협의반 파견,이장절차와 의식관계등 합의 ▲8.5=중국 상해 만국공묘에서 한국식으로 천묘행사 거행.김포공항서 유해봉영행사,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 ▲8.5∼9=일반인 참배및 분향 ▲8.10=영결식및 유해안장 ▷임정 약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때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한 3·1운동의 이념을 바탕으로 중국 상해에서 탄생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3·1운동 당시의 독립선언에따라 1919년 4월13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4월23일에는 서울에서 한성정부가 각각 탄생했다가 9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된다. 행정·입법·사법의 3권분립을 원칙으로한 대통령중심제의 민주공화정부로 출범했다. 임정은 미·영·중·소·프랑스등 여러나라와 외교교섭을 벌이면서 정부로 승인받기위해 노력했고 상해에 육군무관학교를 설치하고 무관생을 양성,청산리전투등에 병력을 파견했다.또 박달학원·인성학교등을 설치해 근대교육제도 마련에도 노력했다.기관지로 독립신문을 1925년까지 격일제로 발행했다. 지도체제는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25년),국무위원중심의 집단지도체제(27년),주석지도제(40년),주석·부주석지도제등으로 바뀌었다. 역대 수반은 1∼5대 이승만,6대 박은식,7대 이상용,8대 홍진,9대 김구,10대 이동령,11대 안병조,12대 양기탁,13∼14대 이동령,15∼18대 김구등이다.
  • 계룡산기슭서 「음악캠프」 연다

    ◎「한동일페스티벌」 26일 대전침례신대서 열려/국내최대규모… 피아노·현악 망라/세계적음악가 12명 매일 연주회/미·유고등서 170명 참가… 레슨에도 중점 피아니스트 한동일씨가 올 여름 국내 최고 최대 규모의 음악캠프를 대전에서 연다. 한씨가 이끄는 「한동일 피아노 인스티트」는 오는 26일부터 8월9일까지 대전 침례신학대학에서 「1992년 음악페스티벌」을 갖는다고 발표했다. 한동일음악페스티벌은 지난 89년의 런던과 90년의 보스턴,91년의 하와이 호놀룰루에 이어 네번째. 이번 페스티벌은 그러나 지난해까지가 피아노만의 페스티벌이었던대 반해 바이올린과 비올라·첼로등 현악기부문이 추가됨으로써 종합음악페스티벌로 발돋움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내의 여름음악캠프는 음악인들의 자체행사에 머물러 음악팬들에 대한 서비스는 다소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씨의 이번 음악캠프는 교육뿐 아니라 연주에도 중점을 두어 서울 아닌 지방에서 열리는 음악제로는 질과 양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 될 것이 확실시 된다.한동일음악캠프에 참여하는 교수는 모두 12명이다. 피아노 부문에는 한씨 자신과 함께 마르그리트 홍 국제콩쿠르의 우승자이자 퀸엘리자베스와 쇼팽콩쿠르의 입상자로 인디애나대학교수인 에드워드 아우어가 강사로 나선다.또 반 클라이번콩쿠르의 우승자로 미시간주립대교수인 랠프 보타펙,그리고 줄리어드의 마틴 캐닌,뉴멕시코대학의 정명희,텍사스 웨슬리언대학의 캐롤 레온 등도 참가한다. 또 바이올린에는 데이비드 김과 함께 퀸엘리자베스와 시벨리우스·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서 입상한 폴 로젠탈과 노스 텍사스대학의 필립 루이스교수가 나선다. 이밖에 비올라에는 보스턴대학의 랠프 힐러,첼로에는 댈라스심포니주자인 임정심씨와 이와자키 고가 지도하게 된다. 이들 12명의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오는 27일부터 8월9일까지 매일 저녁 모두 12회의 독주 및 실내악연주회를 갖게 된다. 음악캠프가 열리는 대전 침례신학대학은 온천으로 유명한 유성에 인접한 계룡산기슭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 서울에서도 보기드문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연속 연주회는 좋은 음악회가 드문 대전을 비롯한 중부지방의 음악팬 및 휴양객들에게도 좀처럼 접하기힘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캠프의 참가자는 교수외에 1백60명내지 1백70명.국내 참가자는 지난 2월말까지 모두 확정된 상태이며 이외에 미국과 유고·브라질·대만에서 상당수가 참가하도록 되어있다. 이 음악캠프의 주요행사 가운데 하나는 오는 8월1일 열릴 협주곡 경연대회. 이 경연대회를 위해서 이미 지정곡이 발표됐으며 각 부문 우승자는 8월8일 정두영이 지휘하는 대전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캠프가 열리는 침례신학대 계룡산캠퍼스는 이 행사에 맞추어 올해 서둘러 완공됐으며 참가교수들과 학생들은 이 학교 기숙사에 머무르게 된다. 레슨은 이 학교안의 70여개에 이르는 연습실에서 열리게 되며 연주회가 열리는 대강당은 1천5백석 규모로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이 캠프를 위해 국내 Y피아노제작사에서는 50대의 피아노를 대여했으며 대학측도 연주회수익금을 모아 이 피아노를 구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한씨는 내년에는 이 페스티벌을 관악기까지 포함,명실상부한 종합 페스티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올 행사가 순조로울 경우 내년부터 이 페스티벌을 계속 대전에서 열 것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동영 민자의원 별세/김영삼 대표의 측근 30여년

    김동영의원(민자·경남 거창)이 19일 상오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다.향년 55세. 영결식은 오는 22일 하오3시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국회장으로 치러지며 23일 하오 민자당 거창지구당사앞에서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장지는 경남 거창군 남상면 선영.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의 핵심측근으로서 30년간 김대표와 정치생활을 같이 한 김의원은 지난60년 동국대 법정대를 졸업한뒤 정계에 입문,66년 국회전문위원을 거쳐 지난 73년 9대총선때 경남 거창·산청·함양지역에서 신민당후보로 출마해 당선된뒤 10·12·13대 의원을 지냈다. 80년 정치규제에 묶였을때는 민추협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구신민당원내총무와 구통일민주당 수석부총재·사무총장,3당합당이후에는 민자당초대원내총무와 정무1장관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차길자씨(50)와 2남1녀. ◎노 대통령,조의 전달 노태우대통령은 19일 하오 고 김동영전정무제1장관 빈소에 정해창비서실장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 한진중 노조위원장 박창수씨 장례치러

    【부산=장일찬기자】 「한진중공업 박창수노조위원장 장례위원회」(위원장 백기완)는 30일 하오7시쯤 학생·근로자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에서 박씨의 발인및 영결식을 갖고 시청앞에서 노제를 치른뒤 이날밤 늦게 부산역을 출발,사체를 장지인 경남 양산에 안장했다.
  • 김양장례 충돌없이 치러/장 총장 중재로 파고다공원 앞서 노제

    ◎성대서 영결식… 평화행진 뒤 모란공원 안장 김귀정양의 장례가 김양이 숨진 지 19일 만인 12일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무사히 치러졌다. 김양의 유해는 이날 하오 1시쯤 학교를 출발,파고다공원 등에서 노제를 치르고 밤늦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이날 장례행사는 큰 탈 없이 치러졌으나 일부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 등은 노제가 끝난 뒤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김양대책위원회」는 이날 상오 9시30분쯤 성균관대 학생회관 1층 로비에서 발인식을 가진 데 이어 상오 10시30분쯤 본관 앞 광장에서 옮겨 영결식을 가졌다. 영결식에는 김양의 어머니 김종분씨 등 유족과 계훈제 백기완 지선 스님 등 재야인사 학생·시민 등 5천여 명이 참석했다. 하오 1시쯤 영결식이 끝나자 선도차와 방송차 영정 만장 등은 학교 정문으로,김양의 유해는 11일 교내로 들어갔던 옆문으로 나왔다. 학교를 나온 운구행렬은 1만여 명으로 불어나 혜화동 네거리∼대학로∼종로5가와 4가를 거쳐 파고다공원으로 가려다 경찰이 종로3가 네거리에서막자 30여 분 동안 머물렀다. 이에 운구행렬은 선두에 섰던 장을병 총장이 현장을 지휘하던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에게 「평화행진」을 약속,파고다공원 앞으로 가 노제를 지냈다. 이들은 이어 하오 9시15분쯤 대한극장 앞에 도착해 약 1시간30분 동안 노제를 지낸 뒤 하오 10시15분쯤 김양 모교인 무학여고에 들러 운동장에서 다시 한 번 노제를 갖고 청량리∼망우리∼경춘가도 등을 거쳐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이날 새벽 김양의 시신을 안장했다. 한편 김양의 노제에 참석했던 「서총련」 서부지구 소속 연세대·서강대생 등 1천여 명은 이날 하오 7시10분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고가 입구에서 경찰에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인 뒤 신촌로터리까지 진출,돌과 화염병 시위를 계속하다 2시간여 만에 해산했다.
  • 김양 유해 성대로 옮겨/유림측과 한때 승강이… 후문으로 들어가

    ◎어제 발인… 오늘 노제싸고 충돌 예상 가두 시위를 벌이다 숨진 김귀정양의 장례식이 12일 김양이 다니던 성균관대에서 열리게 됐다. 재야쪽의 「김양 대책위원회」는 11일 하오 서울 백병원에서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식을 가진 뒤 학교측과 유림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오 6시40분쯤 유해를 학교동쪽 옆문을 통해 학교 안으로 옮겼다. 운구가 들어가자 유림측은 학생이 주축인 「대책위」측을 즉각 비난하면서 강력하게 대처할 움직임을 보여 김양 장례가 끝나더라도 유림측과 학생들 사이뿐만 아니라 학교까지 끼인 3자간의 마찰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양의 유해는 을지로3가∼종로4가∼원남동 로터리를 거쳐 하오 5시20분쯤 학교정문 앞에 도착했으나 성균관 유림 1백여 명이 성현들의 존엄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정문을 걸어 잠그고 운구행렬을 막아 1시간20여 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유림측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 운구행렬은 정문을 피해 명륜시장 골목으로 2백50m쯤 떨어진 옆문에 도착,학교측에 잠긴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유림측은 뒤늦게 운구행렬이 학교에 들어간 것을 알고는 『이미 유해가 들어온 이상 나머지를 더 이상 막을 이유가 없다』고 정문을 터줘 영정 등은 정문으로 들어갔다. 김양의 유해는 하오 7시쯤 학생회관 1층에 안치됐으며 하오 8시40분쯤 본관앞뜰에서는 추모집회가 열렸다. 학생들은 하오 11시가 넘자 대부분 해산,5백여 명만 남아 밤을 지샜다. 그러나 「대책위」는 12일 상오 9시 예정대로 장례식을 갖고 경찰의 불허방침에도 불구,파고다공원,대한극장,중앙극장 앞 등 3곳에서 노제를 강행하겠다고 밝혀 또한번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 내일 김양 장례식/성대·성균관 “시신 교내운구 저지”

    ◎경찰,대한극장 앞 노제 허용검토 성균관대학생 김귀정양의 장례식 장소를 둘러싸고 학생들과 성균관 유림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김양 사건대책위원회」는 10일 김양의 장례일정을 확정,11일 하오 1시 백병원에서 발인식을 가진 뒤 11일 하오 4시 김양의 시신을 성균관대로 옮겨 12일 상오에 영결식을 갖겠다고 발표했다. 「대책위」측은 또 성균관대 금잔디광장에서 영결식을 갖고 파고다공원·백병원·대한극장 앞에서 한차례씩 노제를 갖고 김양의 출신학교인 성동구 행당동 무학여고를 거쳐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유해를 안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장을병 총장을 비롯,대부분의 교수들이 반대의사를 밝히고 유림의 최고의결기구인 성균관도 이를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성균관은 『공자의 위패가 모셔진 성역에 시신이 들어갈 수 없다』고 반발,전국 2백32개 향교와 2백57개 유림회지부 소속 유림들을 동원,육탄으로라도 이를 막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은 이날 하오 김양 노제와 관련,대한극장 앞과 무학여고 노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으나 파고다병원과 백병원 앞 노제는 불허할 방침이라는 서한을 장기표 장례위원회집행위원장과 서정기 범성균인 대책위원장에게 전달했다.
  • 조선일보 지사 피습/사기 불태우고 시위/대학생 2백여명

    【광주=최치봉 기자】 9일 하오 7시20분쯤 광주시 동구 금남로2가 조선일보 광주지사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2백여 명이 몰려가 계란과 돌멩이 등을 던지고 사기를 불태우는 등 1시간여 동안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보성고생 김철수군 장례노제에 참석했다가 1백m쯤 떨어진 광주동구청 건물 3층에 있는 조선일보사에 몰려가 『노 정권의 꼭두각시 조선일보 박살내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계란 30여 개와 돌멩이 10여 개를 던져 조선일보지사 유리창 3장,동구청사 유리창 2장을 깨뜨리고 동구청 옥상에 내걸린 조선일보 깃발을 끌어내려 불태웠다.
  • 오늘 김양 사체 부검/14일만에/대책위·유족,어젯밤 극적 동의

    ◎양측 부검의사등 15명 공동참여/한때 경찰투입 싸고 초긴장 대치 성균관대학생 김귀정양 사망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형사 3부(이광수 부장검사)는 6일 「김양 사망대책위」가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검찰의 부검방침에 동의함에 따라 7일 상오 10시 서울 백병원 영안실에서 김양 사망 14일 만에 사체부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검찰의 이번 부검은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는 형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초 이날 상오 대책위측이 오는 8일 사체부검을 하지 않고 장례를 치르겠다는 결정을 하자 이를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7일 상오 경찰병력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검찰은 그러나 대책위측이 검·경으로부터 공권력 투입결정을 통보받은 뒤 이날 하오 5시45분과 6시15분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전화를 걸어 부검에 동의하는 쪽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내부의견을 수렴한 뒤 다시 하오 11시15분쯤 부검동의결정 사실을 알려옴에 따라 경찰병력 동원방침을 취소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대책위」측과김양 사체부검에 참석할 부검의와 참관인 등에게 연락하는 등 준비절차를 논의했다. 이번 부검에는 검찰측에서 이정빈·이윤성·황적준씨 등 부검의 3명과 보조의사 2명,임채진·김수남 검사 등 검사 2명,입회계장 1명,경찰관계자 1명 등 모두 9명이 참가하게 되며 대책위측에서는 참가의사를 밝힌 「인의협」소속 양길승·서광태 씨 등 의사 2명과 김양 사체를 처음 검시했던 백병원 레지던트 서병조씨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검찰은 또 이 부검에 유족대표와 「대책위」관계자 1명,추천변호사 1명도 함께 참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부검을 위해 백병원 주위에 경비병력을 투입하는 문제는 중부경찰서에서 맡도록 하되 「대책위」측이 이를 막지 말도록 요구했다. 「대책위」 집행위원장 장기표씨는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장을병 성균관대 총장과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어머니 이덕순씨,「유가협」회원들이 김양 유족을 설득했다』면서 『김양의 사인을 밝히고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부검을 해야 한다는 장 총장 등의 설득에 유족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에 『유족들은 지금까지 당시 진압에 나섰던 경찰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김양 사망에 대해 당국이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대책위」는 문익환 목사와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7일 백병원에서 발인식을 가진 뒤 김양 사체를 성균관대로 옮겨 8일 상오 영결식을 갖고 대학로에서 1차 노제,김양이 숨진 대한극장 앞에서 2차 노제를 지낸 뒤 김양의 유해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이에 앞서 장을병 성균관대 총장과 박형규 목사,유인호 중앙대 교수,한승헌 변호사 등 4명은 6일 하오 5시50분쯤 서울 중부경찰서를 방문,성희구 서장을 만나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부검을 할 경우 학생과 경찰의 충돌로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공권력투입을 유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성 서장은 이에 대해 김원환 서울시경국장과 전화통화를 한 뒤 장 총장 등에게『빠른 시일 안에 부검에 응한다는 조건으로 백병원에 경찰진입을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장 총장 등은 하오 5시쯤 서울 백병원을 찾아가 「김귀정양 사건대책위」 집행위원장 장기표씨와 유족들에게 장례일정을 연기하고 부검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백병원 주변 부검준비 분주/학생들 한때 반발 바리케이드 철거 안해 한편 이날 하오 11시쯤 「대책위」가 부검에 응하기로 결정하고 검찰이 7일 상오 부검을 실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긴장감이 감돌았던 백병원 주변은 서서히 밝은 분위기를 되찾아갔다. 그 동안 부검을 완강히 반대해오던 일부 학생들은 「대책위」 결정에 『우리 뜻을 무시하고 이럴 수가 있느냐』면서 한때 반발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책위」 결정에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대책위」 관계자와 학생들은 부검과 장례 등을 준비하느라 밤새 분주히 움직였다. 백병원측도 「대책위」의 결정에 환영을 표시하면서 부검준비를 서두르는 한편 병원 정상화방안을 철야논의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책위」측이 부검에 응하기로 한 뒤에도 백병원으로 통하는 양쪽 도로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는 자진철거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검찰은 이날 낮 12시쯤 백병원 김예회 병원장에게 전화로 압수수색영장을 다시 발부받은 사실을 통보했으며 병원측은 경찰이 진입할 것에 대비,환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었다. 또 학생들은 「대책위」측이 검찰에 부검에 응하겠다는 통보를 하기 전까지 화염병 3천여 개와 수천여 개의 돌과 쇠파이프 등을 영안실과 바리케이드안 도로 곳곳에 쌓아놓기도 했다.
  • 분신자살 정상순씨/어제 5·18묘역 안장

    【광주=최치봉 기자】 전남대병원 영안실 옥상에서 분신,지난달 29일 숨진 정상순씨(26·무직·전남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 유해가 4일 하오 늦게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 유족,친지들의 오열 속에 안장됐다. 경찰은 이날 정씨 운구행렬의 전남도청 앞 노제를 허가했다.
  • 정상순씨 4일 장례

    【광주】 지난 22일 전남대병원 영안실 옥상에서 분신한 뒤 29일 숨진 고 정상순씨(24·운전사·전남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 251)의 영결식이 오는 6월4일 정씨의 고향인 보성군 보성역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광주·전남대책회의」는 30일 하오 정씨의 장례와 관련,『전남대병원에서 3일 발인해 보성역에 도착,하룻밤을 지낸 뒤 4일 영결식을 갖고 광주로 되돌아와 금남로 노제를 거쳐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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