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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崔鍾賢 회장 火葬… 한줌 재되어 흙으로

    ◎‘재계 거두’ 死後 더 빛나다/“값싸고 훌륭한 화장터 지어 사회 기증” 유언/故 崔 회장의 굳은 의지로 장례문화 개선 기대/LG­삼성회장·高建 서울시장 등 협조 표명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火葬)을 하도록 해요” 30일 하오 4시 경기도 수원시 봉담면의 가족묘지.지난 26일 타계한 崔鍾賢 SK그룹 회장이 한줌의 재가 돼 흙으로 돌아갔다. 이날 하관식은 5대 재벌의 총수이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3번이나 역임한 재계 거두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촐하게 치러졌다.복잡한 절차 없이 유골함만 묘지에 안장됐다. 화장은 崔회장 유언에 따라 이루어졌다.崔회장은 생전에 자신의 사후 화장을 당부했다.아울러 “화장문화를 국민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SK가 값싸고 훌륭한 화장터(장례식장)를 지어 사회에 기증하고 그룹이 앞장서 화장문화를 계도하라”고 유언했다. 이에 따라 崔회장 유해는 이날 상오 9시 워커힐빌라 빈소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곧바로 벽제화장터로 가 지난해 6월 타계한 부인 朴桂姬 여사의 유해와 함께 화장됐다.이어 서울 을지로SK그룹 본사,전국경제인연합 회관,SKC수원공장,고인의 수원 평동 생가 등에서 노제를 지낸 뒤 안장됐다. 崔회장은 평소 그룹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SUPEX·‘최고 수준’을 의미하는 슈퍼 액설런트의 영문 약자)추구협의회 등에서도 자주 “영혼이 떠나간 육신을 땅에 묻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땅덩어리도 좁은 나라에서 죽을 때마다 무덤을 만들면 국가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매장문화의 불합리성을 지적해 왔다고 李魯鍾 SK그룹 상무는 전했다. 崔회장의 화장은 앞으로 장례문화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좀체 활성화되지 않았던 화장문화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지난 27일 빈소를 찾았던 LG그룹 具滋暻 명예회장과 삼성그룹 李健熙 회장,高建 서울시장도 이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이들은 SK그룹에서 화장터를 만든다면 자신들도 이곳을 이용하겠다고 약속했고,특히 高시장은 모든 행정 절차 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9월1일 차기 그룹 대표로 추대될 장남崔泰源 SK(주) 대표이사 부사장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가족납골당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우리나라의 火葬 실태◁ 우리나라의 화장 비율은 20.5% 수준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다.일본이 97%,태국 90%,홍콩 72%,영국 60% 등이다.중국은 정부에서 매장을 금지해 공식적인 화장률이 100%에 이른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국의 묘지 면적이 서울 면적의 1.6배에 이르는 등 국토잠식이 심각하다.매년 묘지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1.2배인 9㎢씩 늘어나고 있다. 오는 2045년에는 묘지 면적이 1,400㎢로 국토 면적의 1.5%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싸고 간소한 화장이 활성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비용도 3만∼6만원으로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장점 때문에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매장 원칙을 고수해온 성균관조차 ‘화장문화 보급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또 불교계 등에서 납골당을 잇따라 설치하면서 매장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보건복지부 가정복지과 金惠珍 사무관은 “崔회장의 화장은 일반국민들의 화장문화에 대한 인식을 전환케 하는 큰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 유족 “장례식 간소하게” 가족장 결정/崔 회장 빈소 표정

    ◎재계인사 잇단 조문… 전경련엔 조기 崔鍾賢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에 SK그룹은 물론,재계 전체가 충격과 비통 속에 고인을 애도했다. ○…崔회장은 지난해 수술받았던 폐암의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병원으로 26일 새벽 후송됐으나 병원측의 ‘회생 불가’판단에 따라 다시 워커힐 자택으로 옮겨졌다.장남 泰源씨 등 가족들이 급히 달려와 임종을 지켜봤다. 유족들은 “IMF 시대이니만큼 장례를 간소히 치르겠다”며 전경련장(葬)이 아닌 가족장으로 결정했으며 金大中 대통령과 金鍾泌 국무총리,朴浚圭 국회의장이 보낸 조화를 제외하고는 일체 조화와 부의를 거절. ○…崔회장은 그동안 일주일에 하루 정도 본사에 나와 경영현황을 보고받았을 만큼 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가족들조차도 갑작스런 비보(悲報)에 당황해 했다.딸 璂源씨는 미 시카고대 유학을 위해 25일 하오 8시에 김포공항을 출발,미국으로 향했으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하오 6시45분쯤에는 金重權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대신해 조문.재계 인사중에서는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하오 6시40분쯤 제일 먼저 빈소를 찾았고 이어 金錫俊 쌍용그룹 회장 등이 잇따라 조문.金宇中 전경련 회장대행은 이날 아침 중국 체류중 연락을 받고 낮 12시쯤 급히 귀국,빈소로 향했다. ○…전경련은 이날 崔회장을 추모하는 뜻에서 정문에 걸린 회기(會旗)를 조기(弔旗)로 게양.전경련은 “30일로 예정된 영결식 때 전경련회관에서 노제를 지낼 예정이며 조기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게양될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전경련 회장 가운데 재임중 유명을 달리한 경우는 고(故) 崔회장이 처음이다.
  • 한울림,‘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 출간

    ◎질병은 역사를 바꾸고 문명은 질병을 부른다/페스트로 중세 붕괴·종교 권위 추락/르네상스→매독 산업혁명→결핵 연관 중세는 흑사병에 의해 종식됐고 산업혁명은 결핵환자를 잉태시켰다.한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듯이 한 시대를 휩쓴 질병에는 인류의 문명사가 응축돼 있다. 도서출판 한울림에서 펴낸 ‘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황상익 편저)는 질병을 사회와 문명 변화를 가져온 주요 인자로 본다.이러한 사회사적 접근법은 유럽인 4명중 1명이 페스트로 목숨을 잃었다거나 현대 질병인 암 또는 호흡기 질환이 문명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쉬 수긍이 간다. 중세에는 림프절 페스트를 비롯 홍역,결핵,인플루엔자,발한병,무도병 등 다양한 질병이 있었다.그러나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은 나병.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이 억압된 장원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음습한 생활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중세라는 시대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질병이었다.십자군 운동을 통해 동방에서 귀환하는 병사들에 의해 유럽에 전파됐고 13세기 극성을 떨다 14세기 중엽 쇠퇴기에 들어갔다. 1348년에 시작된 페스트(흑사병)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페스트는 근대를 탄생케 했다.엄청난 전염력으로 유럽인구의 4분의 1을 잃게 하고 장원경제와 농노제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또 고위 성직자들이 흑사병을 피해 달아나자 중세를 지배해온 종교적 권위도 붕괴됐다.매개체인 야생쥐는 12세기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페스트가 사라지게 된 것은 검역과 격리 등 방역조치가 이루어진 탓도 있지만 생활상의 변화도 무시할수 없다.중세의 목조나 점토로 만들어진 집이 석조가옥으로 바뀌고 집집마다 지하실이 생겨나자 주거가 안정된 쥐들은 이제 더이상 도시나 마을을 옮겨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르네상스 시대의 밑바닥에는 매독이라는 악의 꽃이 피어났다.인간해방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성적 자유라는 사회 통념이 널리 퍼져 간데다 잦은 전쟁을 통해 성폭력과 매춘이 부산물로 떨어졌다.매독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항해하면셔 유럽에 전파한 것으로 전해진다.신대륙 발견은 유럽에 부를 안겨주었지만 매독이라는 값비싼 댓가를 치루게 한 것이다. 산업혁명은 결핵을 불러왔다.인구의 급격한 도시집중과 슬럼가의 출현,열악한 작업환경과 주거환경,장시간 노동,오염된 공기 등은 영국 노동자들을 결핵이라는 만성 질환에 걸리게 했다. 산업화는 현대인을 발암물질의 바다 한복판에 떠있게 했다.방향족 화합물, 비소 등 새로운 화학물질이 추가될 때마다 발암물질도 하나씩 늘어난다.이 때문에 모유에서 DDT가 나오고 성인병이던 암이 어린이들에게 발병한다. 황씨는 결론적으로 생산력의 단순한 팽창과 성장만이 아닌 인간을 위한 문명이 진정 인간 개개인과 인간 사회를 건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 문학·종교·술·도박… 러시아문화 본격적 탐색

    ◎허승철 교수 등 노문학자 3명 공동집필/국민오락 ‘서커스’ 등 생활풍속 소개/개혁·개방이후 최신자료까지 담아 1990년 9월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국교를 수립하기 이전,국내대학의 노어노문학과는 6개에 불과했다.그러나 지금은 40여개의 대학이 이학과를 두고있을 만큼 그 비중이 커졌다.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은 이제 객관적인 학문적 대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하지만 학계의 연구성과를 대중화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던 게 우리 현실이다.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으로 나와있는 것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학·철학서적 몇 권,그것도 번역서가 대부분이다.‘상아탑주의’에 빠진 우리 학계의 자족적인 연구풍토를 반영한 것일까.최근 출간된 ‘러시아 문화의 이해’(대한교과서)는 이러한 지적상황에 대한 ‘부채의식’에서부터 출발한 본격적인 러시아 문화안내서다.고려대 허승철 교수를 비롯,이항재(단국대)·이득재 교수(가톨릭대) 등 3명의노문학자가 잇단 토론을 거쳐 함께 썼다. 러시아의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의 정신적 성과물인 문학과 예술,그리고 종교에 관해 알아야 한다.러시아 문학이 우리 근대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직·간접의 영향을 주었음은 주지의 사실.특히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진보적 성격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 지식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기도 했다.러시아 문학의 어떠한 특성이 우리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온 것일까.러시아 문학은 우선 어느 나라의 문학보다도 러시아 역사의 부침과 현실에 민감하게 대응해 온 점을 지적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문학은 당대 러시아 사회·정치사의 연대기로 읽힌다.한편 러시아의 사회·정치제도는 1861년에야 농노제가 폐지되고 전제왕정은 1917년 볼세비키 혁명에 의해 비로소 끝장나는 등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이같은 현실에서 러시아 작가들은 작가 이상의 의미와 사명감을 가졌다.그들은 무명(무명)의 러시아에서 민중을 계도하는 민중의 교사이자 어둠의 왕국에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는 예언자로 간주됐다.요컨대 문학은 실낱같은 자유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이다.이 책에서는 러시아 문학을 기록문학 이전의 구비문학,고대문학(10∼17세기),18·19세기 문학,그리고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러시아 현대문학으로 나눠 다룬다. 자기 나라의 이름 앞에 ‘위대한’ 또는 ‘자랑스런’이란 형용사를 붙이는 나라는 많지만 ‘성스러운’이라는 말을 붙이는 나라는 러시아를 빼고는찾아보기 힘들다.러시아에서 ‘성스러운 러시아’ 혹은 ‘성스러운 땅’이라는 어구가 명시된 형태로 나타난 것은 16세기 모스크바 러시아 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그러나 이 개념은 일찌기 988년 키예프 러시아 시대에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등장한 것이다.이 ‘성스러운’이라는 형용사야 말로 러시아의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라는 게 이 책의 설명.실제로 러시아에서는 교회와 수도원,성지 등을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신과 관련된 속담과 격언,성화상을 비롯한 종교예술이 러시아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을 만큼 종교적인 국가다. 이 책은 러시아의 독특한 생활풍속과 민속 등을 소개하는 데에도 많은 지면을 내준다.러시아에서 서커스는 러시아혁명 직후 민주적인 예술로 높이 평가됐다.이런 서커스가 오늘날 러시아에서 국민의 오락으로 만만찮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서커스를 연극과 스펙터클(구경거리)을 포괄하는 하나의 종합예술로 파악하기 때문이다.20세기 초 러시아의 연극이론가이자 전위연출가인 메이예르홀트는 연극에 서커스 예술을 도입한 바 있다.그가 말하는‘구경거리로서의 연극’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러시아인의 일상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샤흐마티’라고 불리는 장기.이 말은 페르시아어인 ‘샤흐’와 아랍어인 ‘마트’가 결합된 것으로 ‘왕이 죽었다’라는 뜻을 지닌다.특히 러시아 작가들 중에는 장기를 비롯한 일종의 놀음에 심취한 사람들이 많다.그 중에서도 러시아의 천재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쓴 소설의 대가로 받은 원고료를 도박에 퍼부었을 만큼 열광적이었다.그는 도박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그러나 러시아인들은 무엇보다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다.러시아인들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이슬람교가 음주를 금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그들에게 술은 일종의 오락과 같은 것이다.이런전통 탓인지 알콜중독은 러시아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개혁·개방 이후의 러시아에 대한 최신 자료까지 활용해 러시아문화의 전체상을 보여준다.그런 점에서 ‘러시아 문화 소백과사전’으로 활용할 만하다.
  • 시인 김상옥(이세기의 인물탐구:160)

    ◎시·서·화 3절의 시조문학 거두/글자 한자한자마다 ‘도자기의 자해’ 닮은 품격/조춘·옥적·백자부 등 명편 중고교과서에 실려 ‘무거운/덧문을 열고/뜨락을 한참 내다본다/ 이 아침/매연 속에/목련꽃 차츰 벙글어/ 사노라/때묻은 눈에도/봄은 이처럼 부신가!’(조춘)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는 어느 시를 읽어도 절조를 울리지만 그중에서도 중고 교과서에 실린 ‘조춘’‘옥적’‘백자부’등은 ‘시상의 간명한 처리,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사고의 반전,멋들어진 은유와 섬세한 언어구사’로 더이상의 시를 생각할수 없게 만드는 명편들이다.마치 적설에 파묻힌 보석이 눈이 녹자 자태를 드러내듯이 말속에 숨겨진 온오와 시적 함축은 글자 한자한자마다가 옥구슬처럼 영롱하다.성격도 그렇다.그의 눈에 거슬리고 싫으면 싫은 것이다.이를 두고 소설가 김동리는 ‘인은 곧 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결곡하고 강개한 인품은 족히시에 반영되어있다’고 평한 바 있다. ○초판 1천부 모든 매진 ‘완벽을 기하려는 영악(영오)한 조사와 중속을 떠난 고매한 시혼은 우리문단의 한 이채’로써 ‘전통적 정서나 시인의 인식은 시대가 흐르거나 나이가 들어도 그 광채는 시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시작에 대해 얼마나 까다롭게 선별하는가는 지난 89년 고희기념시집인 ‘향기남은 가을’을 낼 때 시집 8권과 그동안 써두었던 1천여편중에서 103편을 고른 것만봐도 알수 있다.‘이미 활자화된 것은 어쩔수 없지만 그냥 써두었던 것’중에서 시집 30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을 며칠동안이고 찢어버린 것이다.그리고 시집의 서문에다 ‘세상에 시는 넘치도록 흔하지만 정작 시는 드물다’고 자탄하고 ‘한 구절이라도 후일 남을 수만 있다면참으로 분외의 보람이겠다’는 겸양은 후학들의 문학에 대한 자세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경고가 아닐수 없다. 그의 인생역정은 ‘사환에서 점원, 연독이 자욱하던 시골인쇄소의 인쇄공과 도장장이’에 이르기까지 안해본 일이라곤 없다.해방직후 출판된 그의 첫번째 시집 ‘초적’은 편집 교정 문선 조판에서 인쇄 장정의 전과정을 손수해냈고 초판 1천부는 즉시 매진되어 고서점에서도 구할수 없는 희귀본으로 유명하다.고향에서 오랫동안 중고교교사로 봉직하다가 60년초에 서울에 올라와 골동상인 아자방을 경영한 것은 실은 ‘서화 골동을 감식하고 부자도 못한다는 연적 콜렉션’에 가까이 하려는 의도였으며 실제로 그의 서와 전각실력은 의재필선에 이르는 경지다. ○한때 고향서 중고교사로 지난 70년초 신세계미술관초청 ‘시·서·화전 이후 일본 교토초청 전시등 10여차례의 전람회를 가진바 있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씨와 그의 작품을 구입했던 작가 박완서씨는 ‘이것은 단지 문학의 여기가 아니라’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이른바 ‘시·서·화 삼절’로 지칭되는 그의 글과 그림은 고루한 화풍에서 벗어나 진취적인 파격성과 독창성,소쇄한 여백처리로 도자의 품격을 흐트리지 않는다.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화로는 지난 74년 당시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의 초청으로 ‘시와 도자’에 관한 특강에서 ‘시는 언어로 빚은 도자기라면 도자는 흙으로 빚은 시’라는 말을 남겼고 이는 지금까지도 ‘도자’나‘시’를 말할 때마다언제나 인용되는 명구다.그는 참으로 시를 사랑하고도 자를 사랑한다.‘일호의 작위도 없는 우리 고도를 나의 시로써 시못지않게 사랑’하여‘나의 치아보다 먼저 이빠진 항아리에게 순금의 의치를 만들어 끼워주는’ 자세이고 시에서도 ‘이빠진 자욱이 눈에 띠면’ 이만하면 되겠다고 마음에 찰 때까지 몇밤을 지새워 퇴고를 거듭한다. 초정은 경남 충무시에서 기호 김덕홍씨와 진수아씨 사이의 6녀1남중막내로 태어난 귀하디 귀한 외독자이다.6세때부터 동네에 있던 한문서당 송호재에서 수강하여 최연소자로서 ‘괴’를 받았고 일찍이 ‘동필’소리를 들었으며 역시 소년시절인 17세에 문단에 등단후 그가 18세때 쓴 ‘청자부’를 읽은 가람은 ‘글이 너무 절정에 올라가 있어 이런 글을 쓰면 단명하다’고 걱정스러워할 정도였다. ‘우기를 머금은 달무리/시정은 까마득하다//맵시든 어떤 품위든/아예 가까이 오지말라//이 적막/범할수 없어 꽃도 차마 못꽂는다’한평생을 그가 사랑해 마지않은 ‘백자’처럼 살아온 초정은 최근에는 금아 피천득과 만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따금 인사동에 나가 그가 좋아하는 골동품을 보는 기쁨이 낙이다.그런중에도 그가 보여주는 최근의 시는 누에고치에서 청명한 비단실이 뽑혀오르듯이 ‘밤마다 밤이 이슥토록/묵을 갈다가/벼루에 흥건히 괴는 먹물/먹물은 갑자기 선지빛으로 변한다/사람은 해치지도 않았는데/지울수 없는 선지빛은 온 가슴을 번져난다’고 노래부른다. ○한국시조사의 한획 그어 이미 ‘시’니 ‘시조’니 하는 경계에 묶여있지 않은 ‘무위자연인’으로서 그는 ‘시인의 말은 오직 시일뿐’이라는 것이며 ‘속세의만사는 한낱 군소리에 지나지 않다’는 말로 자신의 삶을 압축해 보인다.부인 김정자씨와의 사이에 3남매,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용산구 이태원동청화아파트에서 자녀들은 출가하고 부부만이 살고 있다. 그의 제자이던 시인 박재삼은 생전에 ‘스승의 시는 도자에 그려진 한송이 백매와 같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기막힌 위치에 자리잡고있어 한치도 움직일수 없이 완벽하다’는 것이 이유다.평자들로부터 ‘가람·노산을 뛰어넘어 한국시조사의 한 획을 그어놓은 시조시인’으로 받들어진 것도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곡진한 결과일 것이다. 그의 시적 자존심은 사우세풍을 지나 ‘예술 속으로 뚫고 들어간 사람’이라는 찬사와 함께이 시대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닌 존재로서 언제까지나 찬연히 빛나게 될 것이다. □연보 ▲1920년 경남충무출생 ▲1926년 한문서당 송호재 수강 ▲1930∼35년 진산 이찬근 완선 김지옥 노제 장춘식사사 ▲1936년 시지 ‘아’동인 ▲1937년 시지 ‘맥’ 동인 ▲1938년 문예지 ‘문장’·동아일보에 시·시조·동요 추천,당선 ▲1945년 해방기념제전 시부 장원,삼천포문화동지회 창립,통영문협회원 ▲1946∼62년 중학교교사 봉직 ▲1947년 시조집 ‘초적’(수향서헌)출간 ▲1948년 시집 ‘고원의 곡’(성문사)출간 ▲1952년 문교부편수국 자문위원 ▲1954년 충무공 시비건립,통영문협재건,‘참새’지 복간 ▲1972년 일본 경도에서 서화화전개최,서울·부산·대구·대전·마산등 개인전 10여 차례 ▲1973년 삼행시집 ‘삼행시’출간▲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초청 ‘이조도자’에 관한 특별강연 ▲1977년 육필 몰자귀비 건립 ▲1986년 산청에 시비건립 ▲1989년 고희기념시집 ‘향기남은 가을’(상서각)출간 시집 ‘이단의 시’(49년)·‘의상’(53년)·‘목석의 노래’(56년)‘묵을 갈다가’(80년), 동시집‘석류꽃’ (52년)·‘꽃속에 묻힌집’(58년) 산문집‘시와 도자’(75년)등 12권 제1회 중앙시조대상·제1회 노산문학상·제2회 충무시 문화상 등
  • 뗏목탐사대원 유해 2구/창원 합동분향소에 안치

    발해 해상항로를 뗏목으로 탐사하다 일본 근해에서 숨진 탐사대 선장 이덕영씨(49)와 촬영담당 이용호씨(35)의 유해가 31일 김해공항을 통해 돌아왔다. 발해 해상항로 학술탐사 사고비상대책위원회(공동대표 송차식·황무현)는 이날 공항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합동분양소가 차려진 창원시 사림동 창원갤러리 사고대책위 사무실에 유해를 안치했다.
  • 대제국과 기마민족(중앙아시아를 가다:11)

    ◎보편 가치에 동화된 유목민 팽창주의/흉노·투르크족 점령지 문화말살 한때 일뿐/불교·이슬람교·기독교문화권에 편입­소멸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한 기마술은 제국의 형성에 없어서는 안될 요인이었다.따라서 인류역사상 가장 방대한 대제국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그 첫번째가 스키타이 세력이다.그러나 스키타이인들은 아직도 베일에 싸인 구석이 많다.그들은 도전적인 기마 집단으로서 여러 지역을 국지적으로 점거하면서 황금문화를 전파했다.그래서 하나의 통일된 정치체제로서의 제국이라고 부르기에 미흡한 점이 있다. 진정한 대제국은 흉노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그 흉노라는 민족은 서양에서는 훈(Hun)으로 기록된다.기원전인 BC 318년 춘추전국시대 주나라의 5개국이 흉노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협정을 맺었다는 기록도 보인다.그리고 기원후인 AD 447년 유럽 훈제국의 아틸라 칸이 발칸반도에 제2차 원정을 시도한 일이 있다.그러자 동로마 황제 데오도시우스는 그의 재상 아나톨리우스를 보내서 이른바 ‘아나톨리우스 협정’을 맺었다.이 협정에는 ‘투나강 남쪽 5일 거리에 비잔틴(동로마제국) 병력을 두지 말고,양국 무역시장은 훈의 변경도시인 나이수스에 설치할 것’이 명시되었다. ○흉노의 강대제국 설명 또 비잔틴은 ‘전쟁 배상금으로 금 6000지브레(악 2천700㎏),그리고 연공을 3배 인상하여 금 2천100리브레(약 945㎏)를 낸다’는 조항도 들어갔다.이 협정내용은 흉노가 얼마나 강대한 제국이었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흉노와 같은 종족의 뿌리를 두고 그 뒤를 이은 제국이 투르크 또는 돌궐이다.‘해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까지 하나의 깃발 아래 복속시키겠다’는 것이 투르크의 정복 의도였다.따라서 그들은 유라시아 대륙을 물밀듯이 제압하면서 공전의 대제국을 이루었다.그러나 그 통치영역이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지정학적 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분열되기도 하고 다양한 제국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그 대표적인 제국이 세계 제1차 대전까지 지속된 오늘의 터키공화국의 전신인 오스만 터키제국이다.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투르크족은 언제나 하늘님 텡그리를 신앙했다.그리하여 돌궐비문에 ‘나의 부친 카간과 모친인 하툰(카간의 비)은 하늘이 권좌에 앉혔다’.그리고 ‘하늘이 명하고,쿠트(하늘의 뜻)를 주었기 때문에 카간이 되었노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투르크의 생득적인 팽창주의는 이슬람 세계의 형성과 12세기 몽골 정복에 의하여 일대 도전을 받아자체 변용이 이루어진다. 몽골 제국역시 투르크의 기마제국이 지닌 전형적인 팽창주의 태도를 그대로 전수받았다.따라서 흉노,투르크,그리고 몽골 제국들은 한마디로 기마제국이다.항가리를 복속시키고 폴랜드를 함락시키던 몽골의 바투 칸의 다음 공격목표는 게르만이었다.이에 전 유럽이 풍전등화의 공포에 휘말렸다.그러나 1242년 초 몽골 황제 오고데이의 사망 소식을 들은 바투가 황제후계자 선출에 참여하기 위하여 몽골 수도 카라코룸에 가기 위해서 군대를 철수했다.이에 유럽은 뜻하지 않게 몽골의 침략을 피할 수 있었다.누가 역사를 예측할 수있단 말인가. ○생존차원서 영토 확장 흉노,돌궐,그리고 몽골 곧 원나라는 전형적인 유목민족의 기마 제국이었다.이들만큼 방대한 통치 영역을 가졌던 왕조나 국가는 아직 없다.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의 정복지역이나 로마제국은 비교가 될 수 없다.유목 기마민족은 방대한 초원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된다.유목에 필요한 초원은 자주 가물기 때문에,더 넓은 초원이 필요했다.따라서 넓은 땅과 방대한 영토를 확보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적 충동다.정복이라는 공간적 팽창주의는 그들의 생존을 위한 이념고,그 이념은 곧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이러한 팽창주의 꿈이 군사력으로 분출히여 공전의 대제국을 이루었다. 그처럼 강대했던 제국을 탄생시켰던 이념과 세계관들은 미구에 사라졌다.오히려 피정복민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정복 유목민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다.그래서 정복유목민들이 역사에서 마치 사라진 것과 같이 보인다.예컨대 중국 중원에 들어온 서역인이었던 북위나 몽골 민족은 오래지 않아 중국의 길을 걸었으며,고창이나 구차국과 같은 위글 왕조는 조로아스터교나 불교에 개종했었다.그러나 대부분의 중앙아사아의투르크족은 후에 이슬람 국가가 되었으며,유럽에 정착한 훈과 쿠르크족은 기독교로 개종했다.따라서 오늘날 흉노나 투르크족은 이슬람이나 기독교 문화권으로 편입되어 외견상으로는 민족이 사라진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불교,기독교,그리고 이슬람과 같은 고전종교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과,그 안에서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이상사회를 이루는 방향을 제시했다.시대와 지역을 넘어선 보편적 이상과 꿈을 제시하는 것이다.이 보편적 이상과 세계관 앞에서 유목민족의 그 것은 너무나 소박하여 그 빛을 잃고 만다.투르크의 각 민족들은 보편적 세계관인 이슬람에 편입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팽창주의 이념 역사 파괴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 종교는 불교가 아닌가 한다.불교는 어떤 군사력이나 정체세력에 기대지 않고 비단길을 따라 전세계로 퍼졌다.그리하여 불교의 이상과 세계관을 당나라와 멀리 신라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그러나 불교가 지나가던 비단길의 길목을 장악하고 교역을 주관하던 서역인 자신들은 그들의 고대 문화를 잃고 말았다.고전적 가치관이 팽창주의에 비해 역사에 보다 더 큰 힘을 실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단길의 대 초원에 부는 모래 바람은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21세기에 온 인류가 당면할 ‘무한 경쟁’은 기마제국의 공간적 팽창주의 이념을 재현한 것인지 모른다.팽창주의 이념은 인류역사를 파괴했을 뿐이다.그것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가치관 속에서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 브랜드 구두 상설할인점/실속파가 몰린다

    ◎품목따라 최고 70% 할인… 명절제외 연중무휴 요즘 괜찮은 구두 한켤레를 사려면 적어도 10만원은 줘야 한다.부담이 가는 액수다.실속파가 즐겨 찾는 브랜드구두 상설할인매장을 이용하면 정상가보다 30∼40%정도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 이들 브랜드구두의 상설할인매장은 신정과 설날·추석을 제외하고는 연중무휴이며 대부분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하오8시30분에서 9시까지 영업한다.신용카드사용도 가능하다.일부 브랜드매장에서는 상품권을 받지 않는다. ▷엘칸토◁ 1년이상 된 제품에서부터 96년 겨울상품에 이르기까지 제화·의류·잡화 등 다양한 품목이 갖춰져 있다.정상가에 비해 60∼7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된다.신사화는 3만5천∼4만5천원,숙녀화 3만∼5만5천원선,캐주얼화 3만∼5만5천원,골프화 3만원선이다.1주일에 두번 월요일과 화요일,매달 중순과 계절이 바뀔때 대량으로 물건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 시기를 이용하면 선택의 폭이 넓다. ▷무크◁ 젊은층에 인기 있는 엘칸토의 자매브랜드.양말과 넥타이·가방·지갑·목걸이 등 액세서리류와 제화·핸드백·의류가 구비돼 있다.제화는 정상가보다 30% 싼 가격에 판매된다.부츠는 남성용이 5만∼9만원,여성용은 7만∼10만원선이다.금요일 하오 물건이 대량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금요일 하오나 주말을 이용하는게 좋다. ▷금강제화◁ 숙대입구 전철역주변에 있는 남영점은 300여평의 넓은 매장에 의류·핸드백·제화·잡화를 골고루 갖춰놓고 있다.이중 제화가 3분의 1을 차지한다.금강제화계열사인 랜드로바·레스모아·비제바노제품도 취급한다.한달전 상품부터 1년이 지난 제품까지 진열돼 있다.정상가에 비해 50∼60%이상 할인한 가격에 판다. ▷에스콰이어◁ 성수동 500평규모의 매장에는 남녀의류,제화학생용품이 있다.전년도 제품이 80%이상을 차지하며 다양한 품목과 사이즈를 구비해놓고 있다.정상가보다 60∼70% 깎은 값에 판매한다.
  • 죽어서도 일제규탄/김태균 사회부 기자(현장)

    ◎일 대사관앞 정신대할머니 노제에 숙연 『할 일이 많은데 벌써 죽을 수는 없다고,죽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도 다짐을 하더니…』 4일 낮11시50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정문 앞. 지난 2일 타계한 정신대 할머니 강덕경씨(68)의 노제가 생전에 고인이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나와 시위를 하던 이곳에서 열렸다.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와 정신대 할머니들의 생활터전인 「나눔의 집」 관계자 및 학생,시민 등 300여명이 비좁은 도로에 모여 고인을 추도했다. 15세때인 44년 정신대 1기로 일본에 끌려가 위안부생활을 했던 강할머니는 92년부터 일제 만행을 담은 그림과 수요집회,강연회 등으로 반인륜적 죄상을 고발해왔다. 영정과 검은 만장들이 일본대사관 주위를 에워쌌고 제상 뒤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에는 강할머니가 마이크를 들고 일제만행을 규탄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눈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말고 내다라도 봐라』 살풀이굿과 일제만행을 재연한 연극이 펼쳐지는 동안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한 할머니가 급기야절규했다.다른 할머니들의 통곡도 한데 섞였다. 노제를 마치고 고인의 시신은 일본대사관을 한바퀴 돈 뒤 벽제화장터로 향했다. 「아아,산 넘어 산을 넘어/멀리 멀리를/정신대로 상등병에게 잡혀/내 몸은 찢겨졌다」­강할머니가 생전에 쓰라린 고통을 달래며 부르던 노래가 몇몇 할머니들의 울음과 향내음에 섞여 대사관 주위를 휘감는 동안에도 창문마다 굳게 커튼이 내려진 갈색 벽돌 건물 위의 일장기는 무심히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 “달에 얼음 존재 가능성”/미 공군­지질연 주장

    ◎“달에서 반사된 영상 얼음반사와 비슷해” 【워싱턴 UPI 연합】 달에 얼어붙은 물,즉 얼음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득력있는 증거가 확보됐다고 한 학술보고가 나왔다. 미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미 공군 필립스연구소의 스튜어트 노제트연구원과 애리조나주 플랙스태프 지질조사연구소의 우주과학자 유진 슈메이커등 연구진 6명은 29일자 사이언스지 최신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연구진은 태양빛이 닿지 않는 달의 남극에 위치한 어두운 크레이터(운석구멍)안에 수천t의 얼어붙은 물이 있을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들 주장의 근거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 추진됐던 「스타워즈」계획에 따라 미 국방부 탄도미사일방위기구(BMDO)가 개발한 우주탐사선 클레멘타인이 입수한 레이더자료를 분석한 결과 달에서 반사된 영상이 우리 눈에 익은 물질,즉 얼음으로부터 반사된 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레이더장비가 장착된 지구궤도상의 위성도 북극에서 유사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달의 남극에 얼음이 존재할 수 있는 이론적 이유는 과거 달이 혜성과 충돌할 대부분의 혜성내 얼음은 증기로 변하거나 우주 밖으로 나가지만 일부는 수증기형태로 달 남극 주위에 떠돌다 극도로 추운 기온에 물분자가 응축,고체로 결빙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 47년 월북→한국전 사망→88년 해금/희곡작가 함세덕 전집 나와

    ◎대표작 동승 포함 18편·산문­시 수록 월북 희곡작가 함세덕(1915∼1950년)의 희곡을 모두 소개한 「함세덕 문학전집」1∼2가 지식산업사에서 나왔다.(노제운 엮음) 함씨는 일제말,해방공간에 주로 활동하다 47년 월북,6·25 참전도중 사고로 요절했다.월북했기 때문에 88년 해금때까지 논의조차 불가능했던데다 해금 후에는 일제말의 친일경력으로 시비에 오른 비운의 작가.하지만 92년 서울연극제 무대에 대표작 「동승」이 오르면서 밀도높고 섬세한 작품세계가 새로운 조명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집에는 한국희곡사에서 서정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꼽히는 「동승」을 비롯,「산허구리」「해연」 등 초기작부터 월북이후 씌어진 「소위 대통령」「산 사람들」까지 그의 공개된 희곡 18편이 전부 실렸다.또한 신문,잡지 등에 발표된 산문 13편,시 3편과 함께 국문학자인 엮은이가 주변 연극인들의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작성한 함씨의 연대기도 수록됐다.
  • 고 최덕근 영사 어제 영결식… 보국훈장 추서

    ◎「평화의 나라」서 잠드소서 고 최덕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영사의 영결식이 8일 상오 8시10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의료원에서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부인 김영자씨(52)와 현칠(24)·성이(26) 자녀 등 가족과 친지의 분향과 헌화에 이은 배재고 동창 임서규씨(53·신용보증기금 서부지역본부장)의 조사,직장동료의 분향·헌화·묵념 등의 순으로 30분동안 계속됐다. 임씨는 조사에서 『지난 8월 아들을 장가보내며 「이젠 가장으로서 할 일은 다했나봐」라며 환히 웃던 그 사람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 무슨 비통한 일이냐』며 『이승에서 못다한 온갖 아쉬움과 시름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와 평화가 상처받지 않고 영생의 생명수가 면면히 흐르는 나라를 찾아 부디 승천하소서』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추서된 이사관임명장과 보국훈장 천수장 및 근정포장을 뒤로 하고 영결식장을 떠난 시신은 고인의 양친과 생가가 있는 경기도 평택시 이충동 석정마을에서 노제를 지낸 뒤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김태균 기자〉
  • 러 수사팀,진척상황 일체 함구/최 영사 피살­수사 이모저모

    ◎“사안 미묘” 정보유출 수사요원 전격교체/유학생 사물놀이패 진혼굿 “고인넋 달래” ○…러시아 수사팀은 이번 사건의 미묘한 성격을 감안해 수사와 관련된 정보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차단.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수사팀의 총지휘자인 발레리 바실렌코 연해주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이 사건과 관련해 정보를 외부에 전해준 수사요원을 전부 교체했다는 것.소비에츠카야 검찰 지청의 한 수사관계자는 『공식적인 인터뷰는 상부의 지시로 전면 금지됐다』고 설명하면서 수사 진척상황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 ○…최영사의 자택인 루스카야 55­A번지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이틀째 직원들이 경찰에 불려가는 등 의심을 받고 있지만 휴일에도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공사현장의 시공기사라고 밝힌 50대 초반의 한 북한인은 『우리는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면서 『러시아경찰이 직원들을 데리고 간 것은 단지 취업증명서를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관계자 등 한국교민들은 러시아경찰의 수사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자 수사방향이 단순강도 쪽으로 쏠리는 것 같다고 풀이.한 교민은 『수사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러시아측은 금품을 노린 단순강도 쪽에 좀더 비중을 두고 있는 느낌』이라고 전언. ○…5일 엄수된 영결식에서 이석곤 총영사는 『남북통일에 도움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겠다던 고인의 유지를 기리겠다』고 조사를 낭독.동생인 고재춘씨가 관을 붙잡고 통곡하자 장내는 온통 울음바다.영결식장에 들어온 미망인 김영자 여사는 최영사 시신이 도착하자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 ○…영결식이 끝난 뒤 붉은 천위에 대형태극기로 덮인 최영사의 유해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알루미늄관속에 봉합.최영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는 러시아경찰차량의 선도를 받으며 총영사관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으며 노제를 지낸 뒤 공항으로 가 서울로 가는 KE9335편에 실려 출발. ○…러시아 합동수사팀은 토요일인 5일 휴일을 맞아 공식적으로는 업무를 전면 중단한 상태.폰탄나야 거리의 러시아연방 연해주 검찰청은 경비원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모든 직원이 출근조차 하지 않았으며 7일에야 문을 열 예정. ○…하오3시경 알레우츠카야 거리에서 거행된 노제에는 블라디보스토크 한국교육원의 초청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물놀이 강사를 맡고있는 국원섭(36)씨와 극동대학교 유학생 5명으로 이뤄진 사물놀이패의 진혼굿으로 고인의 넋을 달랬다.이 진혼굿에는 지나던 러시아인들도 상당한 관심을 표시.〈블라디보스토크=류민 특파원〉
  • 대만기업에 반도체기술 제공/사상처음… 시장격변 대응 포석/후지쓰

    【도쿄 연합】 일본 후지쓰는 반도체 시황의 격변에 대처하기 위해 대만 최대의 반도체 메이커인 대만적체전노제조(TSMC)에 반도체 기술을 제공키로 했다고 니혼 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이 15일 홍콩발로 보도했다. 이로써 TSMC는 새 공장에서 후지쓰 브랜드로 반도체를 생산해 공급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대만 반도체업체가 일본기업으로부터 반도체 기술을 획득하는 것은 처음으로 대만은 64메가D램 등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과 한국을 급속하게 추격할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후지쓰는 최근 반도체시황 악화로 미국·영국의 자사공장 가동및 착공을 연기했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TSMC에 위탁생산을 함으로써 과잉투자에 대한 위험을 회피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노군 어제 장례식/도심 곳곳서 시위/교통체증 극심

    시위 도중 숨진 연세대생 노수석군의 장례식이 10일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서 학생과 교직원,재야단체 회원 등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장으로 치러졌다. 장례 행렬은 상오 10시쯤 연세대를 출발,신촌네거리와 종묘공원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장지인 광주 망월동 묘역으로 향했다. 서울의 15개 대학 학생 5천여명은 장례식에 참석한 뒤 곳곳에서 시위를 해 교통체증을 빚었다. 한편 경찰청은 『노군의 사인이 급성 심장사로 판명됐는데도 학생들은 지난 10여일 동안 차도 점거,화염병 투척,파출소 습격 등 비이성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주검을 앞세운 반지성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박용현 기자〉
  • 노수석군 오늘 장례

    지난달 29일 시위도중 숨진 연세대생 노수석군의 장례식이 학생의 반대로 무기한 연기된 지 6일만인 10일 치러진다. 「노군추모학생대책위」는 9일 『영결식만 마치고 중단된 노군 장례식을 유가족의 뜻에 따라 10일 속개하기로 했다』며 『상오 9시30분 연세대를 출발해 신촌네거리와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광주 망월동묘역에 안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노군 장례 앞두고 철야농성/학생 2천여명 낮 한때 차도점검 시위

    서울지역 대학생 2천여명은 3일 하오 지난 달 29일 시위중 사망한 연세대생 노수석군 추모집회를 대학별로 가진 뒤 종로,청계천,을지로 등지에서 차도를 점거하고 2시간 남짓 시위를 했다. 학생들은 이어 하오 8시 연세대에서 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노군 추모 국민대회」를 열고 철야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오는 6일부터 명동성당에서 1백여명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10일 하루동안 서울 시내 40여개 대학이 동맹휴업을 하기로 했다. 연세대와 서강대 대학원 총학생회 소속 조교 1천3백여명도 학교측의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과 동맹휴업 및 시위 참가 학생에 대한 출석 점검 강화 지시에 항의,4일 하루동안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편 노군 유족과 연세대측은 『장례식을 4일 상오 7시 학생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서울 종묘공원과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박용현 기자〉
  • 이회장 과실부인… 책임회피 일관/「삼풍」붕괴수사·압수수색 이모저모

    ◎3곳 수색 실시… 뇌물준 증거 확보실패/잠긴 이사장집 열쇠전문가도 못열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본부장 신광옥 서울지검 2차장)는 6일 하오 1시 이 백화점 이준(73)회장의 서울 중구 신당동 399의 46 자택,이한상(42)사장의 서초동 삼풍아파트 21동 503호 자택,서울 동대문구 청평화상가 4층 삼풍건설산업 사무실 등 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구청 공무원 등에 대한 뇌물수수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는데는 실패. 수사본부는 이회장 집에 서초경찰서 강폭반 형사 3명을 투입,장롱·서랍 등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비밀장부나 예금통장 등을 찾지 못했으며 3중으로 잠겨있는 이사장의 집 현관문은 열쇠전문가조차도 열지 못해 하오 4시쯤 철수. 경찰의 한 관계자는 『백화점측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이미 중요한 서류 등을 빼돌렸을 것으로 보고 이번 수색에서 큰 소득을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설명. 한편 이회장의 집은 대지 2백여평에 건평 80여평의 2층 슬라브 주택으로 주변 땅값을 1평에 7백만원씩 쳐서 14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설명.70년대 중반 1백20여평의 단독주택을 구입한 이회장은 옆집 3채를 더 사들여 정원으로 꾸몄다는 것. ○…서초경찰서에 구속수감돼 있는 이회장은 여전히 백화점 붕괴에 대한 과실부인과 책임회피로 일관,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 하오 2시30분쯤 수갑을 차고 서울시청 관계자들과 피해보상단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잠시 유치장에서 나온 이회장은 『사고 직전 왜 대피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백화점은 내 전재산이었다』고 동문서답. 이회장은 또 재산기증 등 구체적인 보상책에 대해서도 『아직 생각해본 바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미안하다』,『할말이 없다』는 등 상투적인 사과발언으로 일관. ○…수사본부는 설계변경을 승인해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수배된 양주환(44·현 중구청 건축계장)씨 등 전·현직 서초구청 공무원 9명을 검거하기 위해 전담반을 편성,이들의 자택과 연고지 등에 급파했으며 법원으로부터 감청영장을 발부받아 전화도청에 나서는 등 총력. ○…삼풍백화점에 대한 불법 증축허가 등으로 검찰수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서울 서초구청에서는 직원의 대부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사방향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 특히 조남호 초대민선 구청장이 검찰에 곧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지방자치시대에 구민의 대변기관으로 탈바꿈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기도. ○…이날 하오 4시10분쯤 발굴돼 노원 을지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이해경씨(26)의 유족들은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상태여서 사고 당시 차고 있던 예물시계와 반지,제왕절개 수술 자국으로 가까스로 신원을 확인. 남편 임성욱씨(26)는 이제 겨우 84일 된 아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뜬 아내의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 망연자실하며 눈물. 숨진 이씨는 이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다 출산을 앞두고 그만둔 뒤 사고 3일 전인 지난달 27일부터 지하 1층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해왔는데 사고 당일이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이었다는 것. ○…지난달 30일 B동 1층 엘리베이터안에 갇혀 8시간여의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진 변동희(50·건축업)씨의 장남인 변성재(20·연세대 전기공학과 1년)군이 이날 상오 아버지가 비명에 숨져간 장소를 찾아 오열. 변군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집안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버지가 지난 89년 작성한 유서를 공개하기도. ○…6일 상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영희국민학교 교정에서 열린 이 학교 4학년 4반 담임 김영옥(48)교사의 노제는 2백여명의 어린 제자들과 동료,학부모들의 통곡으로 울음바다. 친구들과의 모임 때문에 백화점에 들렀다가 운명을 달리한 김교사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는 20여분 동안의 노제를 마친 뒤 학생들의 비명과 통곡 속에 비가 올듯 잔뜩 흐린 하늘을 뒤로 하고 장지로 향했다. ○…서울시 사고대책본부는 B동 지하 2·3층 주차장에 있는 차량 1백16대의 소유주들이 차량을 빨리 돌려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차량번호 및 소유주 확인작업을 거쳐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정. ○…이번 사고는 동원된 소방인원과 장비의 투입 규모면에서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사건·사고 부문 신기록을 수립할 것으로 소방관계자들은 전망. 서울시 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현장에 투입된 인원과 장비는 각각 6천2백32명과 1천4백38대로 이제까지 최대의 인원과 장비가 투입된 것으로 기록된 지난해 12월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때의 10배를 훨씬 넘어섰다는 것.구조작업을 위해 부산·대구·광주·인천·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원정을 온 것 또한 전에 없던 일.
  • “잘가거래이…”통곡의 교정/“꽃다운넋”대구 영남중32명 어제장례식

    ◎“이승에서 못다피운 꿈 저승에서 필치길”/“한번만 엄마 불러다오” 모정 실신/운구행렬 지날때 대구시민 눈시울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싸늘한 시신이 된 32명의 꽃다운 넋들이 30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발걸음으로 하나,둘 정든 학교를 다녀갔다. 『친구들아 이승에서 못한 일 저승에서 한없이 하고 영원히 나와 같이 뛰어놀고 영혼이라도 행복하렴』 승민이의 유해 앞에서 부르짖는 헌규(14·2학년4반)의 애타는 진혼곡은 봄바람에 실려 허공을 맴돌았다.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일순간에 사라졌구나.아 안타깝구나,이미 이승의 인연은 끝이 났으니 저승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피워보며 꽃송이 육신은 편히 잠들고 모두 모두 훗날 만나 이승의 이야기 나누며 영생하라』 같은 학부모를 위로하러 온 한 촌부는 노제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즉석에서 조사를 띄워 보냈다. 선생님들도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눈물을 감추며 어린 영혼들을 어루만졌다. 『오빠…』 하얀 체육복을 입고 하나 뿐인 오빠의 신위를 받쳐든 열두살 은진이도오빠의 교실 책상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흰 국화꽃 한송이를 올렸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좋은데 가라케라』 은진이는 끝내 아빠의 품에 안겼다. 『재경아,엄마 한번만 불러봐라.엄마 여기 있잖아』 운동장에서 노제를 치르다 재경이 어머니는 실신하고 말았다.지난해 2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뒤 재경이를 「이끌고」 어머니를 「모시며」 꿋꿋하게 버텨온 고등학교 2학년 재학이도 입술을 꼭 깨물었다. 『준희야 다 잊고 고이 가거래이.이놈들 에미 마음도 모르고…』 준희·준형이 쌍둥이 형제의 꿈이 뛰놀던 운동장에서 어머니는 운구차에 매달려 몸부림쳤다. 『형석아 이놈아 느그 학교데이.느그 친구들도 많이 있데이』 「고 배형석 신위」­동생의 신위를 들고 본관 2층 3학년 10반 교실로 올라간 형진군(17·계성고 2)은 텅빈 동생의 책상에 흰색 국화꽃 8송이를 올려놓고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다 마침내 그렁그렁 눈물을 떨구었다. 『형석이와는 반은 달랐지만 3년동안 항상 도시락을 같이 먹을 정도로 친했는데…』 형석군의 영정을 든 만길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어린 주검들이 영구차에 실려 차례대로 교문을 들어서자 이들을 기다리던 친구,이웃 주민,학교 관계자 1천여명은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학생들은 교문에서 학교건물까지 4백여m를 두줄로 늘어서 친구들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전송했다. ◎제자 보내는 영남중 이길우 교장/운동장서 뛰놀던 모습 선한데/추모비·기념관 꼭 건립… 겨우 사흘전만 해도 사랑스런 제자들이 맘껏 뛰놀던 운동장에서 그들을 멀리 떠나보내는 노제가 열리는 것을 사무실 창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남중학교 이길우(이길우·63)교장의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하늘로 간 제자들이 다시 돌아오진 못하겠지만 재임중에 꼭 추모비와 기념관을 세울 생각입니다』 슬픔에 겨운듯 이교장의 얼굴은 몹시 초췌했다.사고가 나자 아이들을 맡긴 부모들을 볼 낯이 없어 학교에 혼자 남아 밤을 새운지 벌써 사흘째다. 『그렇다고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등교길에 잃은 부모의 마음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훌륭하게 키워달라고 맡긴 제자들을 제가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같아서…』­울부짖음 속에서 치러지는 노제가 이교장을 다시 슬픔에 잠기게 했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59년 경북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어교사로 부임한 뒤 37년동안 줄곧 이학교를 지켜온 이교장에게 이번 사고는 참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고가 난 28일 상오7시50분 이교장은 달서구 송현동 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다 엄청난 폭발음을 들었다.그러나 그 굉음이 42명의 어린제자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비극의 전주곡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오늘이 37년 교직생활 가운데 가장 슬픈 날입니다』 이 교장은 그러나 슬퍼할 수 만은 없었다.사고수습대책위원회와 학부모·유가족들 사이에 마찰을 막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한사람으로 가슴아픈 기억을 안고 살게 됐지만,그래도 29일 밤9시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학교로 전화를 걸어 위로해 준 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 대학생 등 천여명 화염병 격렬시위/분신 노점상 장례

    지난 8일 당국의 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한 장애인노점상 최정환(36)씨의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었던 25일 경찰이 행사를 원천봉쇄,장애인과 대학생들의 시위가 잇따랐다.또 올들어 처음으로 경찰이 대학교내에 진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고 최정환 빈민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상오11시 연세대 노천강당에서 장애인·노점상연합회회원·대학생등 1천5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을 가진뒤 하오 3시쯤 장례식을 마친뒤 노제가 예정됐던 시청앞 진출을 시도하며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3백여개의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히 맞섰다. ◎“폭력시위 엄단”/이 총리 이홍구 국무총리는 25일 『공공질서와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협하는 불법 폭력시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밝히고 『불법 폭력시위를 철저히 막고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라』고 김용태 내무부장관에게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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