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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29일 새벽 발인이 끝난 뒤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 경복궁 앞뜰 영결식장으로 향한다. 발인제는 1시간 전인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서 진행된다. 운구행렬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올 것으로 보인다. 이동 경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봉하마을 근처인 동창원IC(남해고속도로)~칠원JC(중앙고속도로)~여주JC(영동고속도로)~신갈JC(경부고속도로) 등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운구행렬 중 영정을 모실 검은색 캐딜락은 보닛 정면에 V자 모양으로 꽃 장식을 한다. 또 경찰 순찰차량이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호위한다. ●종합청사서 대한문까지 교통통제 노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쯤 서울에 도착하면, 사이드카 24대가 영정차량을 앞뒤에서 호위한다. 선도차와 영정·훈장차가 앞을 달리고 상주차와 유가족차, 장의위원차 등이 뒤를 잇는다. 경찰은 이날 교통통제를 위해 서울시청 앞~미국대사관~시민 열린마당과 정부중앙청사~대한문까지 폴리스라인을 칠 계획이다. 경찰은 또 갑호비상체제로 전환하고, 경복궁 인근 광화문 네거리 차도를 통제한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다. 뜰에는 4층 계단형 제단이 세워진다. 흰색 천으로 덮인 제단은 2000여 송이의 국화꽃으로 장식된다. 식장에는 삼부 요인 등 1000여명의 장의위원과 수천명의 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낮 12시30분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행렬은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이동,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 광장과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태극기와 노 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흔들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길엔 태극기·노란리본 물결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수원시 연화장으로 운구돼 화장되며 화장과 분골 절차가 마무리되면 다시 봉하마을로 향한다. 운구행렬이 봉하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봉하마을 사저 인근 사찰인 정토원에서 하루 머문 뒤 다음날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영면을 취할 곳은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12 일대가 유력하다.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야산이다. 그러나 유족들이 따로 길일을 잡으면 안장이 며칠 늦춰질 수도 있다. 박건형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노 前대통령 영결식 29일 경복궁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뜰에서 거행된다. 노 전 대통령 유족 측은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29일 새벽 5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발인을 한 뒤 서울로 옮겨 경복궁 뜰에서 영결식을 진행키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영결식장이 경복궁으로 사실상 결정됨에 따라 화장 장소도 김해 시립추모의 공원 대신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벽제 서울시립승화원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에 앞서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내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장의위원장에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장례절차 등은 행정안전부 실무팀이 노 전 대통령의 유족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결식이 경복궁에서 치러짐에 따라 장례 동선은 김해 봉하마을-서울 경복궁-경기 벽제-봉하마을로 이어진다. 영결식은 경복궁에서 국민장이 이뤄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선례에 준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4분 간 방영되고 15분 간의 헌화,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노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는 1000명 이상 규모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서거한 최 전 대통령의 국민장 당시 장의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고문 55명, 국회부의장과 선임 대법관, 감사원장과 부총리 등 부위원장 8명, 위원 616명 등 총 680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유족 측은 장의위원장뿐 아니라 고문과 부위원장, 위원 등에 정부 측이 선정하는 인사 외에 참여정부 인사들을 참여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명숙 공동 장의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과 친분 있는 분들을 장의위원으로 추가 요청했다.”면서 “정확한 인원은 모르지만 장의위 규모가 1000명은 넘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또 ”영결식 후 노제 장소는 아직 미정이지만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집행위원장인 행안부 장관이 검토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해 유대근·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안티’ 달라이 라마 데뷔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농노 해방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입니다. 티베트는 50년전 중국 공산당에 의해 농노제가 폐지된 이후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11대 판첸 라마인 기알첸 노르부(19)가 중국 정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드디어 세계 무대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판첸 라마는 27일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서 열린 제2회 세계불교포럼 개막식에 참석, 유창한 영어 연설로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옹호했다. 그는 이날 포럼에 참석한 50여개국 불교 승려 1000여명 앞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을 ‘나의 조국’으로 호칭하기도 했다. 그는 또 연설 대부분을 티베트 농노해방의 의미와 티베트의 발전, 그리고 중국 정부의 종교자유 보장 등에 할애함으로써 달라이 라마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활발한 국제활동에 곤혹스러워하던 중국은 ‘원군’의 등장에 반색했다. 판첸 라마는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에 이은 서열 2위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자리. 1989년 10대 판첸 라마가 입적하자 달라이 라마는 1995년 ‘10대 판첸 라마의 환생’이라며 당시 여섯살이던 치에키 니마를 11대 판첸 라마로 지정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신 한 살 어린 기알첸 노르부를 11대 판첸 라마로 공표한 후 지금까지 베이징 등에서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교육시켜 왔다. 치에키 니마와 그 가족들은 현재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다. 한편 중국 정부는 ‘티베트 농노해방 기념일’인 28일 티베트자치구 수도인 라싸(薩)의 포탈라궁 앞 광장에서 티베트인 1만여명을 참석시킨 가운데 대대적인 기념 행사를 열었다. 반면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500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stinger@seoul.co.kr
  • 아오이 소라, 중국서 의상 굴욕…”이름값 못했다?”

    아오이 소라, 중국서 의상 굴욕…”이름값 못했다?”

    일본 AV스타 아오이 소라가 중국에서 의상 선택을 잘못해 체면을 구겼다. 14일(한국시간) 중국의 포털 사이트 소후닷컴은 “최근 중국 상해의 한 클럽에서 열린 승용차 홍보 행사에 참석한 아오이가 밋밋한 의상으로 팬들의 실망을 샀다”고 보도했다. 이날 행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섹시 스타의 참석으로 중국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오이는 노출이 전혀없는 평범한 검정색 투피스를 입고 참석했다. 행사에 참석한 남성 팬들은 기대에 못 미친(?) 아오이의 의상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팬들은 “행사 분위기에 맞지 않는 답답한 의상이었다”며 “아오이 소라의 매력을 부각시키지 못한 촌스러운 옷이었다”며 혹평했다. 아오이는 2002년 18세의 나이로 그라비아 모델로 일본 연예계에 첫발을 딛었으며 포르노제작사인 ‘알리스제팬’을 통해 AV배우가 됐다. 청순한 외모와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AV스타에 등극한 아오이는 지금까지 70여편의 포르노에서 주연으로 활약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화왕산 참사 희생자 2명 장례식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 희생자 윤순달(35·여·7급)씨와 관광객 백계현(55·창원시·교사)씨에 대한 장례식이 13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남 창녕에서 열렸다. 윤씨의 장례식은 이날 오전 8시 창녕읍 한성병원에서 발인에 이어 윤씨가 근무했던 창녕군청 앞마당을 한바퀴 돈 뒤 군청 앞에서 노제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앞서 이날 오전 7시 창녕 서울병원에서는 백씨의 장례식이 동료 교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창녕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안철식 지식경제부 2차관 과로로 사망

    안철식 지식경제부 2차관 과로로 사망

     안철식 지식경제부 제2차관이 28일 별세했다. 향년 56세.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안 차관은 27일 오후 11시쯤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해 서울 삼성의료원으로 후송됐으나 다음날 0시 40분쯤 결국 숨을 거뒀다.안 차관은 에너지자원실장을 거쳐 지난 19일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승진한지 불과 9일 만이다.  경찰은 안 차관이 수출업무를 담당해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연일 보고를 받은 점 등을 주목,일단 과로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 차관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제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줄곧 에너지 분야를 담당해 온 에너지 전문가다.지식경제부 전신인 산업자원부와 동력자원부 시절 에너지정책과, 가스산업과, 원자력정책과 등을 두루 거친 안 차관은 지난해 3월부터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을 맡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성실히 수립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안 차관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안실 20호에 차려질 예정이다.유족은 부인 이명애씨와 딸 정연씨,아들 주영군이 있다.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영안실 20호(02-3010-2631,010-6310-1984),발인은 30일 오전 8시다. 장지는 충북 청원군 남이면 소재 (재)충북 평북도민회 동산.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기] ☞ 공무원 과로사 5년간 414명 ☞ 과로사 부하 직원 노제에 골프치느라 참석하지 않다니…     
  • [부고] 강남署 김유신 경감 순직

    [부고] 강남署 김유신 경감 순직

    서울 강남경찰서 생활안전계장 김유신(45) 경감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3일 숨졌다고 경찰이 6일 밝혔다. 112 신고 사건을 주로 처리하는 생활안전계장으로 올 3월 부임한 김 경감은 지난달 24일 사무실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김 경감은 하루 평균 350여건의 112 신고 사건을 처리하고, 휴일도 잊은 채 거의 매일 새벽 지구대를 점검하는 등 과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에 장기를 기증했고, 지금까지 4명의 환자가 신장과 각막을 이식 받았다. 앞으로 근막 및 혈관도 이식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선자(46)씨와 아들 준휘(18)·준혁(16)군이 있다. 영결식은 7일 오전 9시30분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에서 진행되고, 오전 11시 강남서에서 노제가 치러진다. 대전 현충원에 안치된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연주하게 돼 무척 흥분”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연주하게 돼 무척 흥분”

    “개막식 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어요. 중국의 신세대를 대표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무대에 선 중국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郞朗·26)이 9∼10일 한국공연을 앞두고 서울에 온다. 랑랑은 중국인으론 처음으로 베를린 필·빈 필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스타 피아니스트. 현란한 기교와 쇼맨십으로 세계무대에서 팝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명품 피아노제조업체 스타인웨이에서는 1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가의 이름을 단 피아노 ‘랑랑 스타인웨이’를 내놓기도 했다. ●“기교 부리는 스타일 바꿀 생각 없어” 9∼10일 성남아트센터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차례로 열릴 랑랑의 이번 공연은 이탈리아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다. 지휘는 서울시향 음악감독인 정명훈(55)씨가 맡았다. 정씨와 이미 파리에서 한차례 같은 무대에 섰던 랑랑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평소 존경해온 마에스트로와 그의 모국에서 함께 연주하게 돼 무척이나 흥분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랑랑의 연주에는 찬사도 쏟아지지만 ‘서커스’처럼 기교만 부린다는 비판도 따른다. 이에 대해 그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까.“제가 아직 부족하고 향상시켜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연주자의 스타일은 곧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극적이든 시적이든 개인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제 방식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세계적 어린이 교육재단 만드는 게 꿈” 중국 선양에서 태어나 세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랑랑은 요즘 아동문제에 관심이 많다.2004년에는 유니세프 국제 친선대사로 임명됐고, 최근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자서전 ‘날아다니는 건반과의 연주’를 펴냈다. 쓰촨성 지진 구호기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피아노를 경매에 부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음악인으로서 그의 목표에는 어린이가 빠지지 않는다.“이미 뉴욕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재단을 만들었다.”는 그는 “세계적인 어린이 교육재단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중국에서 클래식 음악이 붐을 이루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중국 클래식 시장의 전망이 밝긴 하지만 한국의 클래식이 세계음악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아시아 아티스트는 무엇보다 서양의 문화와 맥이 통하는 순간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이청준 선생 노모곁에 묻혀

    지난달 31일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69)씨의 노제(路祭)가 2일 오후 고향인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마을회관 앞에서 열렸다. 이날 노제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전국 최초로 문학관광특구로 지정된 ‘문림(文林)’ 장흥을 대표하는 한승원, 송기숙, 장찬홍, 이승우, 김영남 등 문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마을 주민들은 분향소 주변에 나와 고인을 기다렸고, 장례 행렬이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부인 남경자씨와 외동딸 은지씨를 위로하기도 했다. 노제가 시작되고 선생의 고향 친구이자 동료인 소설가 한승원(69) 추모위원장이 하얀 종이에 먹물로 쓴 조사(弔詞)를 읽어 나가자 분향소 앞에 모인 유가족과 문상객 사이에서는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한 위원장은 조사에서 “이지적이고 정직한 선생은 세상을 문명비평적인 시각으로 통찰하고 조용히 작품을 쓰면서 후학들에게 좋은 소설을 쓰는 전범을 보였고 천재이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글을 쓰는 근면한 작가였다.”고 회고했다.“우리는 선생을 매장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고 선학동에서 영원을 사는 선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당신은 저 태고의 신선들처럼 자기 시간의 한계를 극복한 문학으로써 영원을 살게 된 신화 그 자체입니다.”라고 이어갔다. 선생의 문인 후배인 이명흠 장흥군수와 김영남 시인이 각각 추모사와 조시(弔詩)를 읽어 내려갔고 선생의 유가족을 대표해 조카 이양래씨가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제주민요제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지선씨의 판소리 ‘쑥대머리’와 장흥가무악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덕숙씨의 가무가 펼쳐져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렸다. 노제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분향소와 선생의 생가를 방문했으며 선생의 시신은 마을 인근 선생의 노모가 묻힌 곳에 함께 묻혔다.장흥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당신들의 천국’ 소설가 이청준씨 별세

    ‘당신들의 천국’ 소설가 이청준씨 별세

    ‘당신들의 천국’ ‘서편제’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한국 문단의 버팀목이 돼온 소설가 이청준 씨가 31일 오전 4시1분 폐암으로 타계했다.69세. 지난해 폐암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아온 고인은 최근 병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약물치료를 받아왔다.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5년 단편 ‘퇴원’이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1967년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문학상,1969년 ‘매잡이’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등단 직후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당신들의 천국’ ‘이어도’ ‘남도 사람’ ‘잔인한 도시’ ‘자유의 문’ ‘축제’ 등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40여년간 문단의 기둥 역할을 해왔다. 고인은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도 지난해 여름 단편 ‘이상한 선물’,11월 작품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내놓는 등 창작의 혼을 불태웠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14호실(02-3410-6914).2일 오전 8시에 발인하며, 오후 2시 장지인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갯나들에서 노제를 지낸다. 장례는 문인장으로 치러지며, 장례위원장은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자문위원이 맡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경자씨와 외동딸 은지씨가 있다. 한편 정부는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1일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고구려 기마문화의 기원은 흉노?

    고구려 기마문화의 기원은 흉노?

    내륙아시아의 유목문화에 대한 한국과 몽골의 공동 연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으로만 알고 있던 흉노(匈奴)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및 몽골국립중앙박물관과 ‘초원의 대제국, 흉노’를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을 29∼30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갖는다. 중앙박물관은 1997년부터 흉노유적인 모린톨고이를 비롯하여 몽골에서 9차례에 걸쳐 지표 및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발굴유물로 3차례 전시회도 가졌고 연구서도 펴내는 등 지속적으로 몽골의 두 기관과 협력해 왔다. 이렇듯 축적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장은정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고구려의 기마문화가 흉노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장 연구사는 “현재로서는 고구려와 흉노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렵지만, 두 지역 간의 밀접한 관계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과 고조선 멸망 이후 서북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북방계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찍이 고조선은 ‘후한서’에 흉노의 왼팔로 묘사될 만큼 흉노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면서 “또 위만조선이 BC 109년에 말 5000필을 한나라에 보냈다는 ‘한서’의 기록처럼 고조선인이 말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법을 터득하는 데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민과 긴밀한 관계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덧붙였다. 윤형원 학예연구관은 “이번 심포지엄은 몽골 유목문화의 큰 주제이자 우리 문화와의 비교연구 대상인 북방의 스키타이, 흉노, 돌궐, 거란, 몽골을 주제로 세계 각국이 기획하여 내놓은 유목문화 전시의 흐름을 살펴보는 자리”라면서 “앞으로 우리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북방 유목문화의 조사와 연구, 그리고 전시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흉노는 중국 북쪽에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나라 전기까지 유목대제국을 유지했던 북방유목민족이다. 고고학적으로 흉노의 자취는 바이칼호수 일대와 몽골, 중국 동북지방에 폭넓게 남아 있으며 남부시베리아와 알타이, 중앙아시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록으로 이들의 존재는 BC 4세기부터 뚜렷한 실체로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의 진나라, 한나라와 대치하면서 적지 않은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노루·사슴 노는 고향 땅서 편히 잠드소서”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故) 박경리 선생이 9일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의 미륵산 자락에 영면했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후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과 전국의 문인, 통영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통영 앞바다와 한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양읍 신전리 양지농원의 미륵산 자락에 안장됐다. 오후 1시쯤 양지농원에 도착한 유해는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남해안별신굿 보존회의 들채굿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유족, 지인들의 큰 절을 뒤로 하관됐다. 이어 유족들과 강원도 원주, 경남 하동 문인들이 고인이 소설 ‘토지’를 완간한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옛집의 흙과 타계 전까지 살았던 원주 토지문화관 텃밭의 흙, 최참판댁이 있는 하동 평사리의 흙을 관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열렸다. 고인이 2003년 전남 함평나비축제 명예대회장을 했던 인연으로 함평에서 가져온 하얀 나비 수십마리가 하늘로 날아 오르는 가운데 고인은 양지바른 산자락에 영원히 육신을 눕혔다. 앞서 오전 통영시내 강구안 문화마당과 충렬사 주차장에서 추모제와 노제가 열렸다. 유해가 실린 꽃상여와 200여개의 만장(輓章)이 어릴 적 고인이 뛰놀던 통영시내 1㎞를 이동하는 동안 13만여명의 고향 주민들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진의장 통영시장은 “선생의 타계로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우리는 깨닫게 됐다.”면서 “이순신 장군의 독전 소리가 저렁저렁하던 한산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뵈는 양지바른 곳, 선생님이 좋아하셨던 그곳은 노루와 사슴이 쉬었다 가는 좋은 땅, 평화로운 땅이다. 그곳에서 편안히 잠드소서.”라고 추모사를 했다. 한편 통영시는 지난해 12월24일 고인이 81번째 생일을 기념해 외손자 2명과 통영을 찾아 시에 전달했던 유품 수백여점을 이날 시청 강당에서 공개했다. 공개 유품에는 ‘박경리문학상 제작에 관하여’ 육필원고(23장), 본명인 ‘박금이’(朴今伊)로 된 여권, 진주여고 재학당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김약국의 딸들’ 영역본, 외손자 등과 주고 받은 엽서와 편지,‘토지’ 완간 10주년 특별대담 DVD세트, 충무시 문화상 수상패, 고인의 연필 드로잉, 액세서리 주머니, 신문 스크랩 등이 포함돼 있다. 고인이 생전에 “나의 생활이요, 나의 문학이요, 나의 예술”이라며 가장 아꼈던 3가지 물품인 재봉틀과 국어사전, 통영 소목장(小木匠·목재로 만든 세간)은 들어 있지 않았다. 통영시는 유품을 2010년 개관 예정인 통영 박경리문학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통영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하늘의 토지’에서 편히 쉬소서

    지난 5일 별세한 박경리 선생의 영결식이 8일 오전 8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문학인장으로 엄수됐다. 도종환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과 정·관계 인사 등 150여명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박완서, 최일남, 오탁번, 박범신, 윤흥길, 김원일, 조정래, 김초혜, 이근배, 김병익, 김치수, 김화영 등 문인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외손자 세희씨가 든 위패와 최유찬 연세대 교수가 든 영정을 앞세우고 소복을 입은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이 뒤따르는 가운데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에 들어오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어 정현기 세종대 교수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고 고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가장 순수하고 밀도가 짙은 사랑은 허덕이고 못 먹는 것,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연민’”이라는 고인의 육성은 장례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완서씨는 조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선생님 손의 온기가 지금도 제 찬 손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데….”라는 대목에서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시인 이근배씨는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조시를 통해 “선생님은 흙과 물, 나무, 짐승, 세상 사람들, 소설, 문학의 어머니”라면서 “부디 사랑의 손길을 한 번 더 잡아주소서.”라며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유족을 대표해 김영주 관장은 “어머니께서는 아름답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가셨습니다. 어머니 죽음을 애통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울먹이며 힘겹게 인사말을 전했다. 유족과 내빈들의 헌화를 끝으로 고인의 유해는 최근까지 머물던 강원도 원주로 떠났다. 원주에서는 고인의 단구동 옛 집터에 마련된 토지문학공원에서 추모제를, 매지리 토지문화관과 모교인 경남 진주여고에서 노제를 지낸 뒤 이날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냈다.9일 오전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헌무·헌다례 등 추도식에 이어 산양읍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서의 마지막 안장식을 끝으로 고인은 영면에 들었다.김규환 김승훈기자 khkim@seoul.co.kr
  • 무정한 김천시장

    경북 김천시장이 과로사한 부하 직원의 노제에 골프치느라 참석하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 8일 김천시 등에 따르면 김천 코오롱유화 화재 사고 수습과 후속 대책에 매달리다 숨진 장지현 김천시 환경관리과장의 노제가 지난 3일 열렸다. 노제에는 이철우 국회의원 당선자와 동료 공무원 등 3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나 박 시장은 이날 노제에 불참한 채 오전부터 경북 성주 헤븐랜드 골프장에서 열린 ‘김천농고 동문 골프대회’에 참가해 골프를 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시장은 비난 여론이 일자 “1개월 전에 동문 골프대회 일정이 잡혀 있어 노제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김천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MB “폐암수술 받으라 권유하려 했는데…”

    MB “폐암수술 받으라 권유하려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6일 고 박경리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11시쯤 류우익 대통령 실장,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아 영정에 헌화한 뒤 분향, 묵념을 했다. 또 이 대통령은 고인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을 직접 영정 옆에 놓고, 유족인 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뒤 박완서 장례위원장, 진의장 통영시장 등과 고인과의 인연과 장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조만간 뵈면 폐암수술 받으시라 권유하려고 했다.”며 안타까운 뜻을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날 오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빈소를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토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애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다른 세상에서 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근태 국회의원, 정동영 국회의원, 김기열 원주시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도 걸음해 조의를 표했다. 문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박경리 선생님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어 돌아가셨지만 아직 살아계신 것 같다.”며 “한국의 역사를 개인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분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죽음은 한 연대기의 종지부를 찍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소설가 전상국씨도 “박경리 선생님은 글 쓰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바위 얼굴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 소설가 오정희·유시춘·신경숙, 시인 정현종ㆍ오탁번, 시나리오작가 신봉승, 만화 ‘토지’의 오세영 화백,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마광수 연세대 교수 등도 조문했다. 한편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와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모교인 진주여고에 차려진 분향소에도 이날 하루종일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통영시 중앙동 문화마당에 설치된 야외분향소는 오전 10시부터 지역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이 줄지어 분향했다. 정해룡 통영예총 회장은 “선생의 문학 뿌리와 원류는 통영의 자연 풍광과 유년시절의 추억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유해는 8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에서 발인, 같은 날 원주 토지문학공원에서 노제를 치른 뒤, 모교인 진주여고를 거쳐 장지인 경남 통영으로 운구된다. 그리고 9일 오후 1시 영결식을 지내고 산양읍 미륵산 기슭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규환 이정규 윤설영기자 khkim@seoul.co.kr
  • 박경리 영원히 ‘土地’로 돌아가다

    박경리 영원히 ‘土地’로 돌아가다

    한국 문단의 거목 박경리씨가 5일 오후 2시45분 폐암으로 타계했다.82세. 지난해 7월 폐암 선고를 받은 박씨는 고령을 이유로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투병해오다 지난달 4일 뇌졸중 증세로 쓰러져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달 말 한 차례 고비를 겪은 뒤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치료를 받다 끝내 이날 숨을 거뒀다.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씨는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이 소설가 김동리에 의해 추천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김약국의 딸들’‘파시’‘시장과 전장’ 등을 발표했다. 1969년부터 현대문학에 ‘토지’ 1부를 연재하기 시작한 후 ‘문학사상’‘월간경향’‘문화일보’ 등으로 매체를 옮기며 1994년 8월 집필 25년만에 원고지 4만장 분량의 대하소설 ‘토지’ 전 5부를 탈고했다. 1897년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1945년 8월 해방 때까지 서울과 중국 간도 등을 무대로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간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토지’는 한국 문학사의 가장 큰 수확으로 꼽힌다. 1980년부터 강원 원주시 단구동, 지금의 토지문학공원에 정착했으며 1998년부터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왔다.‘토지’ 탈고 이후 9년만인 2003년 현대문학에 장편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기도 했으나 세 차례만 실은 채 미완으로 남겼다. 최근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 설’‘어머니’‘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 3편을 8년여만에 발표하며 창작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1950년 남편 김행도씨와 사별했으며 유족으로는 외동 딸인 김영주(62)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67) 시인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문인장으로 치러진다.8일 오전 8시 영결식을 가진 뒤 원주시 토지문학공원에서 노제를 지내고 이튿날 장례를 치른다. 장지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 기슭 양지농원. (02)3010-2631. 한편 정부는 5일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키로 했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소설가 박경리 타계] “노벨상 받고 가시리라 믿었는데…”

    5일 한국 문단의 큰 별인 박경리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생의 제2의 고향인 강원 원주시민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은 “원주가 선생이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30년 가까이 거주하면서 ‘토지’를 완간하는 등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았다.”며 애통해 했다. 시민들은 선생이 위중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26일부터 옛 집인 단구동 토지문학공원에서 매일 저녁 촛불기도 모임을 갖고 쾌유를 빌어왔다. 시민 정규완(47·회사원)씨는 “선생이 원주에 정착한 뒤 옛 집을 토지문학공원으로 조성하도록 선뜻 내준데다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화관을 만들어 창작의 산실로 삼는 등 지역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며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례위원인 김기열 원주시장은 “1980년 내려오신 뒤 활발한 작품활동은 물론 원주에 많은 애착과 관심을 가져주셔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갖게 하신 분인데 황망히 떠나시게 돼 섭섭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조의를 표했다. 선생을 곁에서 보필해 온 고창영 토지문학공원 소장은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시간과 모든 추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원주시는 이날 토지문학공원 내 선생의 옛 집필실 1층에 시민들이 조문을 할 수 있도록 분향소를 설치했다. 장례일에는 문학공원에서 노제를 준비하고 토지문화관도 들를 예정이다. 한편 박경리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민들도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정해룡 통영예총 회장은 “유치환, 김춘수에 이어 통영이 낳은 한국 문학계의 마지막 산맥이 타계하셨다.”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실 때까지 살아계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순철 통영문인협회 회원은 “‘김약국의 딸들’ 등 박경리 선생의 많은 작품의 무대가 통영이었다.”면서 “살아계실 때 통영에서 박경리 문학관 착공 테이프라도 직접 끊었으면 좋았을 텐테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통영시는 이날 진의장 시장을 명예 위원장, 정해룡 통영예총회장을 위원장으로 해 문화·교육·언론계·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명이 참여한 ‘고 박경리 선생 추모위원회’를 구성해 애도를 표하고 추모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추모위원회는 6일 오전 10시부터 통영시내 중심가인 강구안 문화마당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시민들의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통영 이정규·원주 조한종기자 jeong@seoul.co.kr
  • ‘부민관 폭파의거’ 조문기 선생

    ‘부민관 폭파의거’ 조문기 선생

    5일 지병으로 별세한 독립운동가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장례식이 11일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는 겨레장으로 치러진다. 겨레장은 정부 주관으로 열리는 국장(國葬)은 아니지만 민족운동에 헌신한 인물을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하는 장례로,1994년 세상을 떠난 고 문익환 목사 장례식에 이어 두번째다. ‘고(故) 조문기 선생 장례위원회’는 10일 “조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을 기려 시민사회단체가 겨레장을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11일 오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해 두 차례 노제를 지낸 뒤 오후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에서 안장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대성당에서 열리며 영결식을 전후해 서울 청량리동 연구소 앞과 부민관 폭파의거 현장인 현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시민들이 함께하는 노제가 진행된다. 한편 정부는 10일 빈소를 방문해 유족들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달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강원랜드 “나 어떡해”

    강원랜드 “나 어떡해”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장이 운영되고 있는 강원랜드에 비상이 걸렸다. 제주도, 전남 J프로젝트에 이어 전북 새만금에서도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방문해 새만금 신도시에 해양카지노를 유치하겠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제주·전남 이어 엎친 데 덮친 격 전북이 제시한 새만금 해양카지노는 외국인 전용을 표방하지만 ‘내국인은 이용 금액에 한도를 두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는 등 사실상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은 새만금 해양카지노 사업을 그동안 비공개로 추진해 왔지만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 카지노그룹과 상당한 의견 접근을 봤다. 새 정부의 정책적 결단에 따라 새만금 카지노 설립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전남의 J프로젝트도 내국인 카지노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임채영 전남도기업도시기획단 행정지원담당은 “J프로젝트 사업에 내국인 전용 카지노 허가를 목표로 내·외국인 업체들과 꾸준히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사회적 분위기가 사행성 오락이나 도박에 부정적이지만 세계적 추세로 볼 때 내국인 카지노 설립이 허용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추진을 기정사실화했다. 전남도는 미국의 세계적인 카지노 업체인 베네시안 샌즈그룹 회장단이 현장을 둘러보고 내국인 카지노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수조원대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말레이시아 버자야사로부터 외국인 전용 카지노 등 8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성사시켰다. 또 세계적 카지노 개발 업체인 ‘길만그룹’이 제주 남서울호텔, 카지노제주를 인수해 제주 카지노사업에 뛰어 들었다. 제주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오렌지 개방에 따른 제주 감귤 산업 붕괴 보상차원에서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이미 정부에 내국인 관광객 전용 카지노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해 놓고 있다. 카지노 인허가권이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의해 제주도지사에게 주어졌다. ●환경 열세… 관광객 뺏길까 좌불안석 이같은 다른 자치단체의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강원 정선의 강원랜드는 긴장하고 있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폐특법(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2000년 10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강원 폐광지역을 살리기에는 갈 길이 먼데 타 시·도에서 발목을 잡는다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환경이 열악한 정선보다 새만금이나 제주도 등에서 국제적인 전문업체와 자금으로 내국인 카지노장을 열면 강원랜드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최근 몇년 사이 스키장, 골프장 등 종합리조트단지로 수익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영업손익분기점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단지 폐특법에 강원랜드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내국인 카지노는 일절 금지된다는 것이 위안이 되고 있을뿐이다. 그나마 폐특법의 유효 기간은 지난 2005년 한 차례 연장해 2015년까지이다. 강원랜드 카지노관리팀 임윤택씨는 “타 시·도에서 시장 논리를 내세워 법개정까지 추진한다면 강원랜드는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강원랜드가 폐광지역을 살릴 때까지만이라도 내국인 카지노 허용이 자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정선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동대문 운동장 그리고 추억

    1970∼80년대 한국 스포츠의 메카였던 서울 동대문 운동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1926년 3월31일 개장 이래 스포츠는 물론 한국 역사와 궤를 같이 한 동대문 운동장.15일 오후 7시30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휴먼 다큐멘터리 ‘사미인곡’이 철거작업이 한창인 동대문 운동장에 얽힌 사연들을 되돌아본다. 지난 80여년간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는 그대로 한국 현대사의 영욕이기도 했다. 프로 축구와 야구가 첫 선을 보이고 웬만한 국내 경기들이 치러진 곳. 모스크바 3상 회담 관련 대규모 집회,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노제가 열린 곳이기도 했다. 선린상고 시절부터 야구 천재로 불리며 많은 야구팬을 동대문 운동장에 끌어 모았던 야구 해설가 박노준씨의 소회는 누구보다 각별하다. 자신의 고교 시절 꿈과 눈물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동대문 운동장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좋았던 옛시절을 추억한다. 동대문 운동장을 특별하게 추억할 사람들은 숱하게 많다.600여 개의 주변 노점상과 스포츠 용품 가게 주인들, 그리고 그곳에서 특별한 기억을 만들었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스포츠팬들…. 많은 이들이 아쉬움으로 눈물짓게 만드는 동대문 운동장의 ‘뒷모습’을,80여년을 한결같이 붙박이로 서있던 운동장 조명탑만이 쓸쓸히 비출 뿐이다. 이밖에도 독수리들이 500마리 이상 모이는 땅 파주에서 10년째 독수리들의 겨울나기를 도와주는 ‘독수리 아빠’ 한갑수 씨의 사연을 전한다. 야생동물이 함께 사는 자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본업인 오토바이 수리보다 독수리 돌보기에 더욱 애정을 쏟고 있는 이야기가 훈훈하다.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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