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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해야 본전” “민원 피하자” 구청장 부인들 꼭꼭 숨었다

    “잘해야 본전” “민원 피하자” 구청장 부인들 꼭꼭 숨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나 국내 행사 등에는 영부인이 동반한다. 어린이집 사업이나 한식세계화 사업 등 ‘영부인 프로젝트’도 있었다. ‘동네의 왕’인 서울시 구청장 부인들의 활동은 어떠할까. ●“구정은 직원과”… 아내 활동 반대 다수 5대 민선 구청장들은 비교적 진보로 손꼽히는 민주당 출신들이 많지만, 부인들의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 대통령의 업무가 국책사업 위주이지만 구청장의 업무는 생활밀착적이고, 지역경제인들과 깊은 관련이 있어 소소한 이권이 얽힌 민원들이 많다. 그 때문에 구청장 부인의 대외활동은 ‘비공식 민원창구’가 될 우려가 있다. 또 부인들의 활동은 과거 ‘옷로비 사건’과 같은 구설도 만들어낼 것이라는 걱정 탓도 적잖다.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유종필 관악구청장도 도서관 사서 출신인 부인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공·사석에서 고백하지만, 부인이 구청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행사장에서 주민들을 만나게 되면 거절하기 쉽지 않은 민원들이 친구처럼 따라 들어오기 때문이다. 공식·비공식 구행사에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사진촬영이 취미활동인 부인은 남이 알아볼까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행사장을 방문해 남편 사진을 몇 장 찍고 홀연히 사라진다. 유 구청장의 주변에서 낡은 모자를 쓰고, 사진을 열심히 찍는 중년의 여성이 있다면, 그는 유 구청장의 팬이 아니라 그의 부인인 양욱미씨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구청장의 배우자가 움직이면 힘들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아내가 낮은 자세로 주민들과 만나고 활동해도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만 어긋나도 ‘남편이 구청장이지 네가 구청장이냐’는 말이 나온다.”면서 “행사나 사업에서 구청장을 대리하는 사람은 부구청장이나 국·과장”이라고 말한다. 박겸수 강북구청장도 “새마을회, 적십자회, 각종 종교단체 봉사활동만 OK”라고 부인에게 일러놓았다. 그래서 부인은 지난해 ‘김장담그기 행사’에 자주 참석했다. 박 구청장은 “아내의 대외활동을 묶어 놓은 것은 보수적인 게 아니라 원칙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취임식 때 딱 한 번 동부인한 이후로, 그는 구청장 부인과 국장·과장 부인들과의 봉사단체 결성도 반대해 서로 얼굴도 모르도록 해 놓았다. 박 구청장은 “구정은 구청장과 1000여명의 공무원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교사 등 자기 일 집중하기도 이성 구로구청장은 “선거운동을 할 때 아내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나서지 않고 다소곳하다는 게 이유였다.”면서, 나서지 않는 미덕을 강조했다. 서울시 고위 공무원 시절에도 부인은 국장부인 봉사단 활동에 간신히 참여할 정도였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입양한 두 아이까지 포함해 자녀 양육에 바빠 부인의 대외활동이 어렵다고 했다. 부인이 직업을 가져 구청장 부인 역할을 못하는 사례도 있다. 노원구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마들주민회’의 이지현 대표는 김영배 성북구청장의 부인이다. 마들주민회는 상계어머니학교의 후신으로, 여성들의 문맹 퇴치에 힘써온 풀뿌리시민운동단체다. 최근 노원구가 노점상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마들주민회가 반대해 살짝 갈등을 빚고 있다. 성북구청장과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노무현 정부 때 4년 동안 청와대 행정관에서 비서관으로 각각 승진한 ‘절친 선후배’인 만큼 이 갈등에 서로 불편을 느낄 수도 있겠다. 김 성북구청장은 “아내가 ‘누구의 부인’으로 사는 것을 싫어하고, 독립적이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때 사패산 터널공사를 두고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시민단체가 마들주민회였고, 당시 김 구청장은 청와대 행정관으로 정부정책을 지지한, ‘독립적’ 활동의 경험이 있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의 부인은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덕분(?)에 구청에는 취임식을 제외하고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 문소영·김지훈기자 symun@seoul.co.kr
  • 외교관 꿈꾸는 ‘백혈병 소녀’ 김성환 외교장관과 따뜻한 만남

    외교관 꿈꾸는 ‘백혈병 소녀’ 김성환 외교장관과 따뜻한 만남

    “나을 수 있는 병이니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 훌륭한 외교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조언해 주신 대로 백혈병을 이기고 멋진 외교관이 돼 다른 아픈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싶어요.”(이현경양) 백혈병에 걸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소녀가 19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를 방문, 자신의 미래 모습으로 꿈꿔온 외교관들과 만났다. 주인공은 3년째 백혈병과 싸워온 이현경(15)양. 현경이는 이날 오후 김성환 외교부 장관을 만난 데 이어 젊은 남녀 외교관 2명과 만나 자신의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언을 들었다. ●초등6년때 학교 그만두고 혼자 공부 현경이가 꿈에 그리던 외교관을 만나게 된 것은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의 ‘희망 메이커를 만나다’ 프로그램 덕분이다. 백혈병 어린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이들의 장래 희망과 관련된 유명인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던 중 외교관이 되고 싶고 외교관을 만나고 싶다는 현경이의 소원이 재단 측에 전달됐고, 재단 측이 외교부에 이를 타진하면서 현경이와 김 장관의 만남이 성사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백혈병어린이재단을 후원해 온 외교부 직원이 이양의 소식을 접하고 전달, 면담이 이뤄졌다.”며 “김 장관도 흔쾌히 이양을 만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근 아프리카 등 출장으로 본부를 오래 비웠던 김 장관은 현경이 소식을 듣고 일정을 조정했다는 후문이다. 현경이는 2009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작스럽게 백혈병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이식수술 등을 받기 위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노점상으로 생계를 꾸리던 현경이의 아버지는 딸을 간호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기초생활수급자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현경이는 백혈병의 부작용으로 생긴 당뇨병 등과도 힘겨운 싸움을 하며 우울증 증세로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외교관이 되면 세계를 다니며 아픈 어린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지만 집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아버지가 사준 테이프를 들으며 영어를 비롯, 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 등 외국어를 공부하며 소중한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 현경이가 러시아어도 배우고 있다고 하자 러시아어에 능통한 김 장관이 러시아어로 말을 건넸고, 현경이도 간단한 러시아어로 답변하면서 면담은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온라인 친구 되어 대화 나누자” “외교관이 되려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현경이의 질문에 김 장관은 “외교관이 되려면 영어·국사 공부는 기본이고, 세계 문화를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이어 “내가 트위터를 하고 있으니 친구로 가입해 더 많은 질문을 해 달라.”며 온라인 친구가 돼 대화를 나누자고 권했다. 외교부는 이날 현경이가 외교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동영상 학습기를 선물로 줬다. 현경이도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자필 편지와 직접 만든 볼펜을 김 장관에게 건넸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Republic of South Africa-무지개 빛 이야기가 뜨는 땅, 남아프리카 공화국

    Republic of South Africa-무지개 빛 이야기가 뜨는 땅,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는 끝났지만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소위 깡통집에서 살아간다. 150만 채 가량의 만델라 하우스가 지어졌지만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은 도시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다. 무지개 빛 이야기가 뜨는 땅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는 끝났지만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소위 깡통집에서 살아간다. 150만 채 가량의 만델라 하우스가 지어졌지만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은 도시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다. 흑인 경제권 강화 제도 BEEBlack Economy Empowerment는 긍정적인 결과와 함께 흑인을 탄압하는 또 다른 흑인을 낳았다. 모든 일이 좋지만은 않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남아공을 풍부한 자원과 자연을 지닌 축복의 땅이라고 한다. 흑인과 백인은 물론 여러 인종이 모여 만든 무지개 나라Rainbow Nation라고 한다. 어둡지만 않고, 밝지만 않지만 남아공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는 그리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준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남아프리카공화국관광청 www.southafrica.net Cape Town 살랑 바람이 피어나는 케이프타운 남아공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을 꼽으라면 아마 케이프타운Cape Town일 것이다. 일 년 내내 더울 것 같은 아프리카지만 케이프타운은 예외다. 여름인 1월에도 평균기온이 20.3도이며, 겨울인 7월에도 11.6도를 유지하는 지중해성 기후를 자랑한다. 살랑살랑 항구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도시를 호위하듯 우뚝 선 테이블 마운틴이 있는 케이프타운. 종종 비교되는 샌프란시스코보다 정이 가는 도시다. 보여주는 산, 보기 위한 산 케이프타운에 며칠 머무는 이들 모두가 테이블 마운틴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와 바람이 잦은 케이프타운에서는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말한다. 테이블 마운틴. 일반 산처럼 정상이 뾰족하지 않고 테이블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독특한 모양의 산은 케이프타운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와 같다.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에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몇 군데 나 있는 등산로를 이용해도 되고, 케이블카로도 손쉽게 오를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들은 5분여 만에 정상에 도착하는 케이블카를 주로 이용한다.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는 1929년에 개통됐으며, 현재 운행되는 둥근 형태의 케이블카는 1997년에 만들어졌다. 360도 회전하며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는 아찔하게도 창문 두 군데가 막혀 있지 않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아, 탄성이 쏟아진다. 산 아래에서 본 것처럼 정상 일대는 테이블처럼 평평해 사방이 탁 트인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주봉은 해발 1,086m의 매클리어봉이다. 주봉의 북서쪽으로는 669m 높이의 사자 머리Lion’s Head가, 북동쪽으로는 1,001m 높이의 악마의 봉우리Devil’s Peak가 있다. 이들 봉우리와 더불어 테이블 베이, 케이프타운 시내 등 일대가 모두 눈에 담긴다. 케이프타운에서는 테이블 마운틴을, 테이블 마운틴에서는 케이블 마운틴을 보는 셈이다. 정상 일대의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어느 쪽으로 향해도 한 바퀴를 돌 수 있으니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케이프타운을 감싸 안은 테이블 마운틴의 모습은 시그널 힐Signal Hill에서 보는 게 아름답다. 석양 무렵, 차와 자전거를 타고 시그널 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저녁이면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는 테이블 마운틴의 여운을 달래기에도 그만이다. 시그널 힐이라는 이름은 매일 오전 12시에 대포를 발포해 얻게 됐다. 이 대포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 운행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5시(마지막 하강 오후 6시) 요금 어른 왕복 R180, 편도 R90 문의 021-424-8181 tablemountain.net 1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바라본 테이블마운틴과 라이온스 헤드 2 케이블카를 타고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면 케이프타운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3 시그널힐의 일몰 4 케이프타운 일대를 돌아보는 2층 버스가 테이블마운틴을 찾았다 5 테이블마운틴의 절벽위에서 잠든 바위너구리 6 테이블마운틴 산책로 폭풍 속에서 희망을 찾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동남쪽으로 160km 가량 떨어진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다. 그럼에도 희망봉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그 옛날 인도양을 항해하던 선원들이 그랬듯 희망봉에서 희망을 보길 원하는 걸까. 희망봉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이는 바스코 다가마가 아니다.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라는 항해자가 1488년에 이곳을 발견해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 이름했다. 9년 후인 1497년, 바스코 다가마가 이 곶을 통과해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며 폭풍의 곶은 희망의 곶이 됐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까지는 약 50km 거리. 잘 닦인 자동차도로를 따라 희망봉으로 향한다. 운이 좋거나 혹은 나쁘다면 도로 위에서 개코원숭이와도 만나게 된다. 한번 먹을 걸 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 놈이라 양아치로 통하기도 한다. 그렇게 도착한 희망봉은, 바다다. 희망봉이라는 표지판이 놓인, 육지다. 그래도 거룩한 이름의 희망봉인지라 기념사진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희망봉이라는 표지판이 놓인 곳은 바스코 다가마가 실제 발을 디딘 곳이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당시의 날씨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여 케이프 포인트Cape Point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아니지만 남아공 남서쪽 끝을 이루는 곶이 있다. 바로 케이프 포인트다. 238m 높이에 등대가 놓여 있으며, 케이블카를 타거나 걸어서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는 해발 127m에서 출발해 214m 높이의 역에 선다. 케이프 포인트에서는 희망봉은 물론 일대의 바다가 한눈에 조망된다. 세계 도시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등 소소한 볼거리들이 등대와 함께 있다. 케이프 포인트는 테이블 마운틴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관람시간 10~3월 오전 6시~ 오후 6시, 4~9월 오전 7시~오후 5시 요금 입장료 어른 R80, 어린이 R20, 케이블카 어른 왕복 R45, 편도 R35 문의 www.tmnp.co.za, www.capepoint.co.za 1 한 번 먹을 것을 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 개코 원숭이는 케이프타운에서 양아치로 통한다 2 케이프 포인트 케이블카는 해발 127m에서 출발해 해발 214m 역에 선다 3 희망봉을 알리는 표지판 감옥이 된 섬, 유산이 된 감옥 로벤 아일랜드Robben Island로 향하는 길, 배를 다루는 바다가 거칠다. 대서양의 원래 성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바다를 맨몸으로 건너기란 불가능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섬은 1836년부터 1931년까지는 나병환자를, 1959년부터는 정치범을 가두는 장소로 활용됐다. 워터프론트Victoria & Alfred Waterfront의 넬슨 만델라 게이트웨이에서 1시간여 바닷길을 달리면 로벤 아일랜드에 닿는다. 쇼핑 센터와 카페,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는 워터프론트는 늘 활기에 넘친다. 가끔 길거리에서 열리는 공연이라도 보고 있자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워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로벤 아일랜드는 다르다. 텅 빈 섬은 고요하며 엄숙하다. 감옥이 폐쇄된 건 1996년의 일이다. 다음해인 1997년부터 섬은 박물관으로 공개됐고, 199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섬은 버스로 돌아본다. 버스에는 그 옛날 변사를 떠올리게 하는 가이드가 동승해 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버스를 한 장소에 세워두고 투어가 진행돼 조금은 답답하고 지루한 면도 있지만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진지하다. 버스는 섬을 한 바퀴 돈 다음, 참가자들을 감옥에 내려준다. 실제 이 감옥에 수감됐던 이가 안내를 맡아 강제 노역을 했던 장소며, 수십명의 수감자가 지냈던 방과 화장실 등을 보여준다. 당시 뙤약볕에서 노역을 하며 실명을 한 이들도 많았다고 하니 수감 생활의 고단함은 짐작할 만하다. 넬슨 만델라를 포함한 여러 정치범들이 수감됐던 독방 또한 볼 수 있다.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27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로벤 아일랜드 투어는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다. 섬에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이동하는 시간이 길지만 그들의 성지를 엿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물개와 가마우지의 터전이 되는 섬 주변의 바다와 섬 안에서 만나는 아프리칸 펭귄도 반갑다. 4 워터프론트의 시계탑 5 로벤 아일랜드에 사는 아프리칸 펭귄 6 워터프론트에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수많은 가게가 자리했다 그 섬에 물개가 산다 네덜란드어로 나무라는 뜻의 호우트Hout.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상당량의 목재를 베기 이전에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다고 한다. 1652년, 요한 반 리빅Johan van Riebeek은 그의 일기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이곳을 기록했고, 이후 이곳은 호우트 베이Hout Bay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아침, 호우트 베이는 숲이 아닌 기념품을 파는 노점으로 가득하다. 목재 인형에 부부젤라까지, 다양한 상품을 늘어 놓은 노점은 물개 섬으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물개 섬Seal Island은 호우트 베이에서 뱃길로 15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정식 이름은 더커 섬Dulker Island이지만 물개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물개섬이라 불린다. 커다란 갯바위에 가까운 섬에는 계절에 따라 600마리에서 5,000여 마리의 물개가 살아간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섬을 물개가 온통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여 배는 섬에 다가갈 뿐 정박하지는 않는다. 섬 주위를 천천히 움직이는 배에서 물개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15분여 뱃길을 달려 10분여를 구경하고, 또다시 돌아오는 물개 섬의 여정은 40분 정도로 짧아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희망봉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잠시 들른다. 호우트 베이를 떠나 희망봉으로 가는 길은 챔프만스 피크 드라이브Champman’s Peak Drive를 따른다. 죄수들을 동원해 7년간 닦은 길로 1922년에 개통됐다. 도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호우트 베이는 하늘의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빛을 담아낸다. 운행시간 오전 8시45분줈, 오전 9시30분, 오전 10시15분, 오전 11시10분줈(줈는 비정기 노선) 요금 어른 R42.50, 어린이 R15 문의 Circe Launches 021-790-1040 www.circelaunches.co.za 작지만 강한 심장의 펭귄들 남아공에도 펭귄이 산다. 아프리카에 사는 놈이라 이름도 아프리칸 펭귄이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으로 가는 길에는 보울더스라는 해변이 자리했다. 1982년에 이 해변으로 한 쌍의 펭귄이 들어왔고, 지금은 3,000여 마리의 펭귄이 살아가는 보울더스 펭귄 서식지Boulders Penguin Colony로 탈바꿈했다. 1910년에는 150만 마리 가량의 아프리칸 펭귄이 남아프리카에 서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음식 재료로 펭귄 알을 사용하는 등 여러 이유로 20세기 말에는 개체수의 10% 정도만이 살아남았다. 아프리칸 펭귄은 40~50cm 정도의 귀여운 체구를 자랑한다. 체구는 작지만 심장은 강하다. 보울더스의 해변까지 이어지는 나무 데크에서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 펭귄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해변을 벗어나 주차장까지 걸음을 하는 펭귄도 있다. 아프리칸 펭귄은 재캐스 펭귄Jackass Penguin이라고도 불렸다. 당나귀와 울음소리가 비슷해서였는데, 남아메리카의 일부 펭귄도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 아프리칸 펭귄이라 불린다고. 이 펭귄은 1시간에 7km 정도를 수영하고, 2분 정도 잠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보울더스와 차로 5분 이내 거리에 자리한 사이먼스 타운Simon’s Town도 가볼 만하다. 네덜란드 총독이었던 사이먼이 이곳에 항구를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는데 곳곳에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다. 입장요금 어른 R35, 12세 이하 R10 문의 021-786-2329 www.tmnp.co.za 1 챔프만스 피크의 전망대 2 호우트 베이에서 뱃길로 15분 가량 달리면 물개 섬이라 불리는 더커 섬에 닿는다 3 보울더스 해변의 펭귄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에 익숙하다 Kruger National Park 선한 영혼이 뛰노는 자리 크루거 국립공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음푸말랑가Mpumalanga 날씨 맑음. 똑똑한 핸드폰의 아름다운 위젯이 크루거의 날씨를 알린다. 케이프타운에서 2시간 가량 하늘 길을 날아 넬스프룻Nelspruit 공항으로, 또다시 차로 2시간을 넘게 달려 크루거 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의 사설보호구역Private Game Reserve에 들어섰다. 남아공에서 가장 큰 보호구역으로 알려진 크루거는 그 크기만 남북으로 350km, 동서로 60km에 해당한다. 남아공의 음푸말랑가와 림뽀뽀Limpopo주를 포함해 북쪽으로는 짐바브웨, 동쪽으로는 모잠비크와 맞닿아 있다. 이처럼 거대한 크루거의 음푸말랑가 땅, 말라말라 사설보호구역Mala Mala Private Game Reserve에 며칠 머물 예정이다. 똑똑한 핸드폰이 알려준 날씨가 새삼 반갑다. 동물원이 아니랍니다! 새벽부터 숨가쁘게 이어온 여정이건만 쉴 시간은 없다. 해거름이 찾아 들기 전에 야생의 땅으로 안전하게 잠입해야 한다. 샌드위치로 곯은 배를 대충 채우고 랜드로버에 올라탄다. 랜드로버는 크루거 사파리에서 여행자의 발이 된다. 도심의 도로를 달리며 뿜어내던 그의 야성미가 비로소 진정한 멋을 발휘하는 때다. 랜드로버가 발이라면 레인저Ranger는 여행자의 눈이자 보호자다. 레인저들은 매와 같은 눈으로 동물들의 뒤를 쫓는 한편, 안전의식이 미비한 사파리 여행자들을 주의시킨다. “랜드로버에서 엉덩이를 떼지 마세요.” “동물원으로 착각하고 소리치지 마세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장전한 엽총을 지닌 레인저들이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다. 그래야 죽지 않고 사파리를 마칠 수 있다. 워터벅Waterbuck은 사파리가 시작되자마자 모습을 드러냈다. 엉덩이에 Q마크를 예쁘게 새긴 워터벅 한 마리다. 곧 이어 모습을 드러낸 임팔라Impala의 엉덩이에는 M자가 박혀 있다. 사파리가 시작되자마자 웬 횡재냐며 랜드로버의 일행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사실 크루거에는 워터벅이며 임팔라 같은 초식동물은 널려 있다. 찾아내고 뒤를 쫓을 필요도 없다. 그들의 생존 방법이 많이 낳는 것 외에 별다른 게 없어서다. 서쪽 하늘의 석양볕이 열기를 잃고 어둠이 내렸다. 낯설고 먼 소리에 임팔라가 반응을 보인다. 놈의 천적이 근처를 어슬렁거린다는 뜻이다. 또 다른 랜드로버에서 무전을 보내 임팔라의 행동을 확인해 준다. 사자다. 그것도 네 마리의 새끼 사자를 거느린 사자 가족이다. 무전을 주고받은 네 대 가량의 랜드로버가 모여들었다. 사자 가족의 비위를 맞추며 랜드로버 떼가 조심스레 접근을 시도한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카메라 앞에 몇 차례 포즈를 취하던 사자 가족은 초원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네까짓것들은 관심 없다는 듯 시크의 절정을 보여주고는 떠났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흥분했다. “내가, 여기, 크루거, 사파리에서, 사자를, 아니, 사자 가족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1 크루거를 대표하는 초식동물인 임팔라. 뿔 달린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과 함께한다 2 크루거 사파리에서 여행자들의 발이 되는 랜드로버 3 작은 몸집의 새들도 크루거에서는 생존의 법칙에 따라 살아간다. 하루 400km 가량 곡예하듯 비행하는 배틀래 독수리Bateleur Eagle 4 임팔라를 사냥한 표범이 천천히 식사를 즐기고 있다 5 아침, 경비행장 활주로에 나타난 코뿔소 떼 맹수가 사냥을 하는 날 아프리카 사파리 경험이 많은 이들은 초보 사파리 여행자들에게 크루거를 권한다. 짧은 여정으로 쉽게 닿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비교적 손쉽게 동물을 볼 수 있어서다. 초원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동물을 관찰하는 것도 크루거만의 매력이다. 찻길을 준수하는 여타 사파리와는 달라 크루거에서는 쌍안경이 필요 없다. 의기충천해 범이라도 잡을 태세로 달려가는 길, 진짜 범을 만났다. 호피 코트를 멋지게 뽐내는 표범의 엉덩이가 걸음걸음 실룩거린다. “쉿!” 걷고 쉬기를 반복하는 표범의 발걸음이 외따로 풀을 뜯는 임팔라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사.냥.예.감. 예사롭지 않다. 맹수가 사냥을 하는 날, 사파리를 하는 이에게 필요한 건 인내다. 맹수는 배부른 식사를 위해 초식동물과의 거리를 아주 천천히 좁혀 가며 사냥을 한다. 기다림의 시간, 동물 찾기에만 혈안이 됐던 시선이 어느새 하늘을 향한다. 별은 총총하고, 달은 밝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저 멀리 일렬로 선 목 긴 기린 떼의 실루엣이 들어온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는 기다림을 함께하는 친구가 된다. 사냥 시간이 가까워 온다는 생각에 긴장감은 배가 되고,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귀를 아릿하게 적시는 바로 그 순간, 표범이 사라졌다! 임팔라 수놈의 울부짖는 소리를 따라 랜드로버가 초원 안으로 들어선다. 수놈 임팔라와 멀지 않은 곳에는 이미 목을 내어 준 암놈 임팔라가 쓰러져 있다. 이번에는 표범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임팔라의 목을 문 표범은 몇분간 미동도 않는다. 파다닥. 파다닥. 몇 차례 이어지는 임팔라의 몸부림에도 표범은 굳건하다. 표범의 기다림이 끝났다는 것은 소리로 알게 된다. 사각사각 살과 내장을 뜯어내는 소리가 선명하다. 사냥에 성공한 표범은 위풍당당하게 식사를 즐긴다. 불과 몇 시간 전, 초식동물을 동정했던 우리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반하고 말았다. 아름답다. 잔인하지만 아름답다. 1 등에 작은 새를 태운 버펄로의 모습. 새는 버펄로가 이동할 때 뛰어오르는 메뚜기와 같은 곤충을 먹고 산다 2 초식동물 임팔라는 작은 소리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빅 파이브’를 만나게 될까 사파리를 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사자, 표범, 코뿔소, 코끼리, 버펄로를 이르는 ‘빅 파이브 Big 5’다. 사파리를 하는 동안 이들을 모두 보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다. 말라말라 사설보호구역에서도 빅 파이브를 모두 보는 이들에게는 증명서를 준다. 이른 아침, 사파리를 시작하자마자 코뿔소가 보인다. 방금 전에 떠오른 해를 등지고는 경비행기 활주로에 단체로 자리를 깔았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버펄로도 아침 사파리에서 만난다. 코뿔소나 코끼리, 버펄로는 새와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 등이나 머리 위에 새가 앉아도 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작은 새들은 큰 동물이 이동할 때 뛰어오르는 메뚜기와 같은 곤충을 먹고 산다. 몸집에 관계 없이 야생에는 생존 법칙이라는 게 존재한다. 크루거의 사설보호구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출과 일몰 즈음, 두 번의 사파리를 한다. 한낮에는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워킹 사파리 Walking Safari 를 진행한다. 초원까지는 랜드로버로 이동을 하고, 짧은 거리를 걸으며 초식동물이나 새, 나무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워킹 사파리까지 참여하면 하루가 빡빡하다. 똑똑한 핸드폰의 날씨가 바뀌었다. 흐림. 그래도 사파리는 어김없이 이어진다. 어둠이 내렸지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느껴진다. 첫날의 흥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음침한 분위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웬일인지 동물들도 자취를 감췄다. 너무나 빨라 쫓기가 힘든 하이에나만이 어둠 속을 배회한다. 레인저는 “음침한 오늘은 사냥의 날”이라고 했다. 여기저기에서 사냥이 이뤄졌고, 버려진 고기를 먹기 위해 하이에나는 움직였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봤다면 그날은 사냥의 날이자 피의 날이며 음침한 기운을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날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 clip 말라말라 메인 캠프 Mala Mala Main Camp 크루거 국립공원 음푸말랑가 주에 자리한 로지 Lodge 중 하나다. ‘말라말라’와 ‘래트레이스 온 말라말라Rattray’s on Mala Mala’라는 두 개의 로지가 가까이에 있다. 래트레이스 온 말라말라는 전용 풀을 갖춘 풀 빌라. 단 8개의 객실만 운영하며, 16세 이하는 출입을 금하고 있다. 말라말라 캠프에서는 사파리를 하는 시간 외 밥을 먹는 등의 모든 일을 레인저와 함께한다. 심지어 밤에 숙소로 돌아갈 때는 레인저가 문 앞까지 배웅한다. 수영장, 레스토랑, 바 등의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사슴 종류나 코끼리 등은 캠프 안에서 돌아다닐 정도로 보호구역과 경계가 희미하다. 문의 011-442-2267 www.malamala.com Travel to South Africa ▶남아공 찾아가는 길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는 남아프리카의 항공의 허브 도시다. 한국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일반적으로 홍콩을 거쳐 간다. 크루거 국립공원이 위치한 넬스프룻 공항은 요하네스버그에서 1시간, 케이프타운에서는 2시간 가량 걸린다. 사우스아프리카항공 서울사무소 02-775-4697. ▶남아공 기본정보 랜드(Rand, 주로 란드라 발음)를 사용한다. R1는 160.41원. 230V 3핀 코드. 대부분의 호텔에는 한국 전자제품의 2핀 코드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하나 정도 마련돼 있다.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남반구에 자리했으므로 한국과 날씨가 반대다. 7월 최고기온은 17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은 기온이지만 최고 기온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자. 아침저녁으로는 아주 춥다. 비가 적은 여름과는 달리 7월 평균 강수량은 82mm로 많은 편이다. ▶Accommodation 케이프타운 추천 호텔 월드컵 때 태어난 페퍼 클럽Pepper Club 케이프타운의 다운타운에 자리한 5성급 호텔로 2010 월드컵 때 문을 열어 시설이 전반적으로 깨끗하다. 객실 분위기는 모던한 편. 스토브와 오븐이 있는 부엌이 마련돼 있으며, 토스트기와 캡슐 커피 머신도 있다. 호텔 바로 옆에 아바나(Havana)라는 유명 클럽이 자리해 일부 객실은 시끄러울 수도 있다. 주소 Cnr Loop and Pepper Street, Cape Town 문의 021-812-8899 www.pepperclub.co.za 고풍스러운 더 테이블 베이 호텔The Table Bay Hotel 워터프론트에 자리한, 케이프타운에서 손에 꼽히는 고급 호텔이다. 로벤 아일랜드와 워터프론트, 테이블 마운틴 전망의 329개의 객실이 다양한 타입으로 마련돼 있다. 객실 분위기는 고풍스럽다. 호텔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한 아틀랜틱 그릴(Atlantic Grill)과 경쾌한 분위기의 유니온 바(Union Bar) 등이 자리했으며, 스파, 수영장 등의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주소 Breakwater Boulevard, Quay 6 Victoria & Alfred Waterfront, Cape Town 문의 021-406-5000 www.tablebayhotel.com ▶Dining Place 케이프타운 추천 레스토랑 보슈운달Boschendal 와이너리 투어 와이너리 투어는 케이프타운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시내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더반빌을 시작으로 수많은 와이너리가 펼쳐진다. 그중 보슈운달은 1685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와이너리. 케이프타운 시내에서는 차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곳에 자리했다. 2,250헥타르에 이르는 이곳 와이너리에서는 한 해에 300만 병의 와인이 생산된다. 화이트 와인이 60%, 레드 와인이 40%의 비율을 차지하며 반은 해외로 수출하고, 반은 남아공에서 판매된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수입한 고가의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 등 종류가 다양하다. 와인 테이스팅을 통해 와인을 맛볼 수 있으며, 와이너리 내에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해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 뷔페로 운영되는 레스토랑의 음식이 아주 훌륭하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와인은 화이트 와인인 1685 샤도네 2009(1685 Chardonnay 2009)와 레드 와인인 1685 시라즈 2009(1685 Shiraz 2009). 각각 R60로 가격도 저렴하다. 문의 www.boschendalwines.com 아프리카의 맛을 담은 마마 아프리카 Mama Africa 아프리카의 분위기를 담은 레스토랑으로 케이프타운 시내에서는 유명한 편이다.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 악어, 스프링복, 타조 고기 등이 함께 나오는 메뉴는 생소하지만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저녁에는 아프리카 전통 공연도 열린다. 주소 178 Long Street, Cape Town 문의 021-424-8634, 021-426-1017 해산물이 싱싱한 벌사스Bertha’s 사이먼스 타운의 항구에 자리한 레스토랑으로 바다가재, 오징어, 라임 피시 등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짠 편이다. 주소 Quayside Centre 1 Wharf Road, Simons Town, Cape Town 문의 021-786-2138, 021-786-2286 www.berthas.co.za 바다가재 게장이 있는 성북정Taste of Asia 케이프타운에 자리한 몇 안 되는 한식당. 생선초밥 등 일부 메뉴를 뷔페로 즐길 수 있으며, 한식 메뉴를 따로 주문할 수도 있다. 바다가재를 게장처럼 양념해 반찬으로 내어 놓는다. 주소 45 Lower Main Road, Observatory, Cape Town 문의 021-447-1515, 150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서울광장] 광장시장서 만나는 외국인들/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광장시장서 만나는 외국인들/이춘규 논설위원

    지난 5일 낮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 먹자골목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비빔밤, 순대, 칼국수, 생선회, 돼지껍질 등 먹거리들이 구미를 당겼다. 단골 비빔밥집에는 빈자리가 없다. 조금 기다리다 앉아 보니 옆자리에 외국인 여성 2명이 있다. 허름한 이 가게는 일본·중국·서양인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한국말로 응대한다. 그들에게 찾는 이유를 물어보면 맛과 멋, 분위기가 좋아 찾는다고 말한다. 먹고 나서는 영어, 일어로 “맵고 양이 많기는 한데 맛은 너무 좋다.”며 즐거워한다. 107년 전통의 광장시장은 직물, 침구, 수예용품, 그릇, 폐백, 제수용품, 한복 등의 도·소매 종합시장이다. 2005년 초 3년 가까운 대규모 환경개선사업을 마친 뒤 청계천 바람과 맞물려 내·외국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먹자골목에서는 상설 식당과 긴 나무의자의 노점에서 우리의 먹거리들을 맛볼 수 있다. 한국생활 10여년째인 일본인 지인(49)은 직장 옆 대학가는 외국 같은 느낌이라며 한국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광장시장에 자주 간다고 한다. 외국인 여행객들은 주로 여행안내 책자, 방송 소개를 보고 찾는다. 특히 한류가 거센 일본 방송사들은 광장시장을 자주 촬영, 소개한다. 이날 일본 긴키지역의 MBS TV 팀 5명이 광장시장 먹자골목의 인기 비결을 취재했다. 떡볶이, 족발, 김밥, 김치를 촬영하고 분위기를 스케치했다. 수주 전에도 일본의 다른 방송제작팀이 시장을 촬영했다. 정감 있는 광장시장 분위기에 끌려 외국인들이 몰려든다. 그곳에서 한국의 문화를, 인정을 접한다. 전통 건어물시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인근 중부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을 자주 만난다. 이처럼 외국인들은 한국적인 멋과 맛이 있는 곳을 찾는다. 지난 주말 늦은 밤 서울 용산 허름한 주택가 튀김집에 외국인 4명이 찾아 막걸리를 주문했다. 맥주와 소주만 있다고 하자 생맥주를 주문한 뒤 주택가 풍경이 보이는 옥외자리에 앉았다. 60대로 보이는 일본인 남녀, 서양인 남녀는 쉬지 않고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전통술의 상징인 막걸리를 먹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많은 외국인들은 뉴욕, 런던이나 도쿄와 유사한 모습인 대도심 빌딩가보다 부여, 경주, 전주 등 전통 지방도시들을 찾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60대 일본인 지인도 서울은 잠시 구경만 하고, 부여와 경주 등 고도(古都)를 집중 관광했다. 그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을 보고 싶다.”며 일정 대부분을 고도 관광에 할애했다. 외국인들이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경험하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한국스러움’이 중요한 이유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시가현 나가하마시는 전통을 복원해 재래상권을 되살린 세계적 사례. 430여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개발된 인구 8만명의 나가하마는 자가용 시대 도래와 함께 위기를 맞았다. 한 재래시장은 80개 점포 중 70개가 문을 닫을 정도였다. 이에 주민들이 구로가베라는 회사를 세워 볼거리를 만들고, 전통적 건물·문화들을 복원했다. 국내외에서 손님이 다시 모여들었다. 20년 전 연간 9만명이던 관광객이 300만명이 됐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를 지낸 일본 교토산업대 도고 가즈히코 교수는 서울과 전북 남원 등을 돌아본 뒤 “도심지에 한국스러운 멋이 부족하다. 도심 개발 때는 전통거리와 건물들을 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의 도시들을 살펴본 외교관 출신이다. 전통·첨단의 조화 추구가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참고해야 할 듯하다.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건물과 골목길을 보기 어려워졌다. 600년 전통의 피맛골 등 문화성이 퇴색해 간다. 안타깝다. 조화를 추구한다곤 하지만 공간효율성 위주 도심 개발로 역사가 담긴 건물이나 거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역사가 숨쉬는 개발을 위해 민관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외국인을 매료시키는 광장시장에서 문화를 살려낸 개발의 모델을 보게 된다. taein@seoul.co.kr
  • 서울시 빗물받이 덮개 수거 하수관 흐름 막아 침수 유발

    서울시가 장마철 빗물 흐름을 방해하는 빗물받이덮개를 수거해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를 예방하겠다고 5일 밝혔다. 빗물받이는 폭우 때 도로상 빗물을 하수관으로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공공하수도 시설이다. 빗물받이에 합판 등 덮개를 씌울 경우 집중호우 때 빗물 흐름을 막아 도로와 주택을 침수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지난 2001년 7월 집중호우 때도 침수피해를 본 8만 1288가구 중 18.8%인 1만 5255가구가 빗물받이 덮개로 인해 침수됐다. 시는 지난달 4일 ‘안전점검의 날’을 맞아 중점관리구역에 있는 덮개 9084개를 수거한 바 있다. 시는 효율적인 빗물받이 유지관리 방안으로 시민 2만 67명을 빗물받이 관리자로 지정해 자기 동네 빗물받이 덮개를 스스로 제거하도록 하고 있다. 관리자 지정제는 지난해 여름 명동관광특구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된 바 있으며, 올해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관리자를 지정해 수해를 예방하고 있다. 간선도로 빗물받이의 경우 주로 인근 노점상 가판대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있다. 시는 또 침수피해 시 원인을 조사해 빗물받이 덮개가 주요 원인으로 확인될 경우 해당 덮개 설치자를 고발하는 등 행정조치키로 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택시에 놓고 내린 핸드폰, 왜 못찾나 했더니…

    택시에 놓고 내린 핸드폰, 왜 못찾나 했더니…

    술에 취해 잠이 든 승객의 휴대전화를 훔쳐 장물업자들에 팔아 넘긴 택시기사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29일 술 취한 승객을 태운 뒤 목적지 부근에서 잠을 깨우는 척하며 주머니나 가방 안에 있는 휴대전화를 훔친 최모(56)씨 등 택시기사 43명을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최씨 등은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훔친 시가 3000만원 상당의 45개 휴대전화를 노점상 이모(62)씨에게 개당 2만~10만원에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중고 휴대전화를 매입한다’는 명함을 보고 장물업자에게 연락해 훔친 물건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압수한 45개의 휴대전화를 피해자들에게 돌려주기로 했으며 피해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택시기사와 장물업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현장 행정] 목요일엔 가슴 뛴다는 이 남자

    [현장 행정] 목요일엔 가슴 뛴다는 이 남자

    “아파트 놀이터 시설기준을 지난 1월부터 소급 적용해 여기에 맞추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창동 아파트 주민 A씨) “창동역 주변이 너무 지저분하고, 노점이나 포장마차에서 버리는 음식물로 인한 악취와 위생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 주세요.”(아파트 주민 B씨) “구에서 600만원을 지원받아 노인정에 안마기 두대를 놓아주니까 자금이 바닥이 났어요. 줄넘기 강사를 구에서 연결해 주세요.”(아파트 주민 C씨) 지난 16일 창동 주공3단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이동진 도봉구청장과 ‘건강한 생활터 만들기 사업’ 운영자 30여명 사이에 나온 이야기다. 올해 네 번째 ‘주민과 함께하는 목요 데이트’였지만 이 구청장은 수요일만 되면 가슴이 뛴단다. 짧은 만남이라 뾰쪽한 대책을 내놓지 못해도 주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 구청장은 창동역 주변 포장마차와 관련, 심각한 표정으로 “창동민자역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나타난 문제다. 나도 답답해서 코레일 허준영 사장을 만났다. 코레일이 집을 지어 들어오는 것이니 속도를 내달라고 부탁했는데 최근 시행사 관계자가 두 명이나 구속되면서 다시 답보 상태에 빠졌다. 노점상 문제는 원래 민자역사의 설계를 약간 변경하도록 유도해 민자역사 내로 흡수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고 답했다. 또 그는 “도봉산 노점상을 철거하려고 했더니 전국 노점상연합회 등에서 2000명이 운집했다.”면서 “노점상을 모두 없애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시와 협조해 해결점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놀이터와 관련해서는 “우리에겐 규정을 완화할 권한이 없다.”면서 “다만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이니, 다각도로 국회나 정부 등에 문의하면서 해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줄넘기 강사와 관련해 이 구청장은 씩 웃으면서 “건강공동체를 만들라고 준 지원금을 기구를 사는 데 한꺼번에 털어 넣으면 안 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일단 생활체육과 과장님에게 손을 쓰도록 일러놓겠다.”고 덧붙였다.이어 구청 지하 체력단련실을 오후 9시까지 개방해 달라거나 다른 구민이면서도 창동민자역사에 박차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이 구청장은 시종일관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도봉구가 현재 떠안고 있는 주요 과제는 광역급행철도(GTX)와 연계해 노후화한 국철 1호선 경원선을 지하화하는 문제다. 지난 3일에는 이 구청장 주동으로 김성환 노원구청장,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안병용 의정부 시장 등이 모여 GTX 제3노선과 경원선 지하화 병행을 위한 협약도 체결했다. 이 구청장은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인 장광근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힘을 보태고 있어 실현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최근엔 둘리미술관 현상설계 공모작을 발표, 구청 로비에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원작권을 다투는 경기 부천시와 선의의 경쟁을 하며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4) 민주화 무풍지대’ 중동 산유국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4) 민주화 무풍지대’ 중동 산유국

    어디에서도 소형차를 찾아볼 수 없고, 어디에나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선 중동을 휩쓸고 있는 민주혁명의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아랍의 봄’은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북아프리카로 가려던 관광객과 해외투자가 행선지를 자신들 쪽으로 돌리고 있다며 즐거운 표정을 숨기지 않을 정도다. 민주화 요구가 중동을 뒤흔들지만 걸프만 인근 산유국엔 먼나라 얘기일 뿐이다. ●“지혜로우신 술탄·왕세자 덕택에…” 아부다비의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 인터뷰하던 와엘 사브 회장의 블랙베리 전화기가 울렸다. 레바논 출신으로 아부다비 유력 가문 소유의 대기업인 마즈코프 전문경영인인 그는 잠깐 통화를 하더니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곧이어 문틈으로 하얀색 전통 복장을 입고 명품 선글라스와 시계로 치장한 남성이 보였다. 회장도 꼼짝 못하게 하는 이 남성은 바로 ‘왕족의 개인사무실 매니저’였다. 쉽게 말해 왕족의 재산관리인이다. 이들은 왕족의 재산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하기 때문에 왕족 못지않은 권세를 누린다. UAE에서 왕족이나 그들의 대리인들에게 사전 예약이란 없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온다. 인터뷰를 재개하려는데 왕족의 개인 고문은 양해도 없이 한국에서 찾아온 기자가 흥미롭다며 사브 회장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아부다비의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답변을 마저 이어가던 사브 회장의 말을 가로채더니 한참을 아랍어로 떠들어댔다. 말인 즉슨, “지혜로우신 우리 술탄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과 그의 아들이신 왕세자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빈 술탄 알나하얀의 지혜와 영도로 안 좋은 사태에서 벗어났다.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산유국 지배계급은 석유라는 생산수단을 독점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을 통제한다. 생산에 따른 재화 분배도 국가, 즉 왕족 차지다. 막대한 오일머니 일부를 국민들에게 배분함으로써 혁명의 싹을 잘라 버린다. 국민들은 석유 중심 경제구조를 대체하거나 도전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국민들은 “현명하시고 위대한 우리 지도자”만 외치며 왕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를 수십 년. 이제 걸프 산유국 국민들은 오일머니의 단맛에 취해 변화도, 개혁도 잊은 채 1년 내내 쇼핑과 휴가를 즐기며 ‘석유의 가을’을 누리고 있다. 적어도 UAE 515만명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꿈꿨던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는’ 공산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외국인들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가 건립하는 상가를 무료로 분양받거나 서민용 주택을 무료로 제공받는 등의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내국인’ 가운데 먹고사는데 곤란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은 물론 해외 유학까지 무상이고 취업도 쉽다. ●유학까지 무상 교육… 일 안해도 월급 정부 공무원으로 취업하기만 하면 곧바로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스폰서제도’ 덕분에 막대한 돈을 앉아서 벌 수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법인이나 지사 등을 설립할 때 반드시 자국민 스폰서를 지정하도록 한 덕분에 멋들어진 서명 한 번이면 해마다 막대한 배당을 챙길 수도 있다. 기야스 괴켄트 아부다비 중앙은행 수석경제학자도 스폰서제도를 정부가 세계화를 시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UAE 국민들은 인생의 쓴맛도 모르고 사회비판의식도 없다. 돈만 많고 예의 없는 족속이 돼 간다. 한 한국 기업의 현지 사무소 직원은 아부다비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목격한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직원이 몇 번이나 정중하게 재료가 다 떨어져서 팝콘을 팔 수 없다고 하는데도 내국인 젊은이는 ‘팝콘을 달라’고 소리치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몇십 분 동안 지치지도 않고 그러고 있더라. 과자 사 달라며 떼 쓰는 유치원생을 보는 것 같았다.” ●아이폰·블랙베리 함께 가진 젊은이들 두바이에 거주하는 한 한국인은 “이곳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학생 가운데 누구도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질까 걱정하지 않는다. 그건 언제나 자국 학생들 몫이기 때문이다.”고 귀띔했다. 코트라 두바이지사 박정현 과장은 “내국인들은 공공기관에 주로 취업한다. 근무시간은 똑같이 8시간이지만 근무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관의 경우 채용 할당제 때문에 자국민을 채용한 뒤 월급은 그대로 지급하고 출근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유인 즉슨 일을 잘하지도 못하는 데다 열심히 하지도 않고 직장 분위기만 해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UAE 국민들 중에서도 지위 차이는 있다. 육체노동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가 그 기준선이 된다. 대부분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고 돈도 넘쳐나니 이곳 젊은이들은 쇼핑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들은 어떻게 먹고 마시고 놀지 고민할 뿐이다. 대형 쇼핑몰이나 커피숍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앉은 젊은이들이 대낮에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시욕도 엄청나다. 세계 최고층인 부르즈 칼리파,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아부다비 ‘그랜드 모스크’ 등 뭐든 세계 최고여야 직성이 풀린다. 한 국내 대기업 아부다비 본부장은 “주말이면 두바이 번화가는 두바이나 아부다비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 번호판을 단 고급 차량들로 넘쳐난다.”면서 “대부분 환락시설에서 질펀한 음주 가무를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아이폰과 블랙베리를 함께 갖고 다니는 내국인이 적지 않은데 사용법도 독특하다. 블랙베리는 이메일을 보내고 받는 데 쓰고 아이폰으로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즐기는 식이다. 심지어 번호가 똑같은 아이폰을 두 대나 들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한 여행가는 “대학생들이 자동차를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 강의를 듣는 두 시간 내내 에어컨을 켜두곤 한다.”고 꼬집었다.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보여주듯 UAE 여성들은 대부분 눈이나 얼굴만 남기고 전신을 가리는 전통의상인 니카브를 입고 있다. 하지만 소비욕구에서는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천편일률적으로 검은색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끝부분에 화려한 금박 자수를 입혀 멋을 냈다. 특히 핸드백은 과시욕구를 충족시키는 필수품목이다. UAE는 최소 몇 백만원 하는 루이뷔통·구치 등 명품 핸드백의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외국인 노동자가 유일한 혁명 열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UAE의 돈줄을 쥔 건 내국인이지만 국가를 움직이는 건 인구 80%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이다. 한 한국 기업인은 “정부 고위 관료 중에도 외국인이 상당수”라면서 “심지어 경찰과 군대까지도 자신들은 관리자 구실만 할 뿐 실질적인 업무는 모두 외국인을 고용해서 운용한다.”고 전했다. 고위직 상당수는 영국계와 인도계가 차지하고 있다. 대학에는 이집트에서 건너온 학자들이 부지기수고 집단 거주지에 모여 사는 하층노동자 대부분은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출신들이다. 지금까진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군림하는 위치에 있는 내국인들. 하지만 석유자원이 고갈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지금처럼 흥청망청 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마땅한 노동 경험도 없는 이들의 생활상을 볼 때 앞으로도 UAE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한국기업 관계자는 “몇 년 전 이주노동자들이 며칠 동안 파업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하루도 안 돼 말 그대로 국가 시스템이 마비돼 버렸다.”면서 “UAE에서 민주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건 내국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 몫이다.”라고 전망했다. 지난 1월에는 두바이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버스 여러 대가 파손되는 등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UAE 정부도 하층 노동자들을 잠재적 위협 세력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두바이에선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여 노점상 350명을 포함한 500여명을 체포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미국 사설군사업체 블랙워터 창립자인 에릭 프린스가 아부다비 왕세자 요청으로 정원 800명 규모로 용병 특수부대를 만들었으며 이들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시위 진압이라고 지난달 14일 보도했다. 개혁이 필요할 때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 언젠가 남에 의해 개혁을 강요당하게 된다. 아부다비를 떠나기 위해 공항에 앉아서 언젠가 UAE 국민들은 자신들 땅에서 이방인이 돼 버린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옆자리에 한 청년이 앉았다. 흰색 전통의상을 입고 아이폰과 블랙베리를 함께 들고 있는 게 영락없는 UAE 사람이다. 그런데 머리엔 야구모자를 쓴 게 눈길을 끈다. 이 청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름한 옷차림을 한 노인에게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다. 노인이 괜찮다고 사양했다. 이 젊은이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UAE 젊은이답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글 사진 아부다비·두바이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지금&여기] 청경(請警)에게 배웁시다/송한수 사회2부 차장

    [지금&여기] 청경(請警)에게 배웁시다/송한수 사회2부 차장

    “아무리 근무 규칙을 지키라고 해도, 곧이곧대로 따라서는 곤란하지요.” 서울시 서소문청사 청원경찰 H씨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코앞에서 집회가 끊이지 않는 청사를 지키는 입장이라 난감한 일을 많이 겪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먼저 왜 그러는지 물어본 뒤 타당한가를 판단해 시장실 아닌 해당 부서로 안내하되 다른 민원인도 많으니 소란을 삼가고 원만하게 논리를 펴야 한다는 점을 알린다.”고 한다. 언뜻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간단찮은 의미가 숨었다. 자칫 수장(首長)에게 번질지 모르는 폐해를 미리 막을 수 있어서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6월 3일 이런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선 소감을 밝히기 위해 기자실 브리핑룸으로 들어서던 오세훈 시장이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항의차 방문한 옛 황학동 노점상 철거민들과 마주칠 뻔했다. 그런 와중에 H씨의 슬기가 빛났다. 민원인들은 3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고, 오 시장은 2층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H씨는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며 얼굴을 돌리도록 만들었다.”면서 “뿔난 그들이 시장을 만났더라면 어떤 불상사를 일으켰을지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기자는 삐딱한(?) 말을 곧잘 내뱉는 H씨가 오 시장을 거들려고 이런 행동을 보였다고 여기지 않는다.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려는 노력이었다. 원래 청경들의 근무 수칙만 따졌다면 시장을 만나야겠다는 그들을 청사 출입구에서부터 가로막아야 했다. 그러지 않고 사연을 들은 다음 담당자에게 연결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거꾸로 규정(법규)을 철저히 지켜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청사를 찾는 수많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적잖다. 잘 가꾼 화단 옆 인도(人道)를 가로막는 고급 승용차 행렬은 손가락질을 받는 대표적 광경이다. 시끄러움을 줄이기 위해 규정을 약간 깬 청경 H씨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한 시의회 별관 앞 승용차들은 완전히 다른 평가를 듣기 마련이다. 시민들에게 폐를 끼치면서 입법(조례)에 대한 권한을 외쳐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onekor@seoul.co.kr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1) ‘재스민혁명 150일’ 이집트 현지 르포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1) ‘재스민혁명 150일’ 이집트 현지 르포

    2일은 ‘재스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지 150일이 되는 날이다. 1월 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야채 행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자살로 촉발된 중동의 민주 혁명은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 예멘, 리비아, 바레인 등으로 이어지면서 삽시간에 2011년을 중동 혁명의 해로 만들었다.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30년 철권통치를 몰아낸 이집트의 민주 혁명은 중동 지역 전체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혁명 150일. 지금 중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을 시작으로 민주화의 새 아침을 열고 있는 중동의 다양한 표정을 현지 르포와 전문가 진단 등을 통해 6회에 걸쳐 짚어 본다.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성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이곳은 지금 두 얼굴이 공존한다. 아니 무슬림의 주일인 금요일과, 금요일이 아닌 나머지 6일의 그것으로 얼굴이 바뀐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철권독재는 사라졌지만, 민주화는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이고, 그 자리를 혼돈이 눙치고 앉아 있었다. 지난 30일 기자가 찾은 타흐리르 광장은 불법주차 차량들로 넘쳐났다. 혁명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풍경이다. 경찰 한 명이 차를 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곧바로 그 경찰은 수십명의 군중에 둘러싸여 버렸다. 경찰이 노점상과 불법주차 차량을 단속하려 하자 군중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떠들어도 도저히 안 먹히자 경찰은 결국 지원을 요청했고 곧이어 경찰 서너 명이 더 나타났다. 그러나 경찰과 군중들의 실랑이는 그로부터 한참 더 이어졌다. 옥신각신 끝에 결국 불법주차했던 차 주인이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노점상이 물건들을 주섬주섬 거둬들이는 것으로 실랑이는 끝이 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바로 옆에 불법주차돼 있는 수십대의 차량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듯 경찰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석달 전 타흐리르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민주화의 열기는 이렇게 표정을 바꿔 가고 있었다. 독재자를 몰아낸 이 시민의 힘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타흐리르 광장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독재는 몰아냈지만 그 자리를 메울 민주적 질서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혁명의 발단이 됐던 식품가격 상승도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관광객이 줄면서 최대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정권퇴진 운동이 정점으로 치닫던 1월 말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치안 역시 불안하다. 관광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려면 치안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정작 시민들은 불법주차 단속 같은 정당한 공무집행조차도 경찰 말이라면 일단 반발부터 한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추락한 공권력의 권위는 이처럼 아직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지금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의 무질서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뭔가 조급해 한다. 차선과 신호등도 없는 곳이 태반인 카이로 시내 도로에선 과속과 난폭운전이 부쩍 늘었다. ●페이스북으로 집회 참석한 학생들 그러나 이것이 타흐리르 광장의 모든 것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7일, 즉 금요기도회가 열린 광장은 전혀 딴판이었다. 평소엔 귀청을 울리는 경적소리와 난폭운전으로 난리법석이지만 금요일만은 해방구로 변신했다. 무바라크 퇴진 운동과 함께 시작된 수십만명의 집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타흐리르’는 아랍어로 ‘해방’이란 뜻이다. 금요일만은 이름값 제대로 하는 광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은 여전히 삼엄했다. 그러나 경비는 경찰이 아닌 시민들이 섰다. 기자가 광장에 들어설 때에도 시민들로 이뤄진 자율대원들의 검문을 받았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환영한다며 길을 내줬다. 10m쯤 더 가자 이번에는 소지품 검사와 몸수색을 한다. 검색이라고 해 봐야 1~2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이를 통해 위험한 물건이나 수상한 사람들이 광장에 섞여드는 걸 막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모여 있는 대학생들에게 집회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혁명 당시 광장에서 노숙하며 농성을 했다. 한 학생은 당시 친정부 시위대가 휘두른 각목에 맞아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이들에게 오늘 집회에 왜 나왔느냐고 물었다. “이집트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이렇다. “무바라크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 짧은 검문을 마치자 붓을 든 한 사람이 다가와 왼쪽 팔에 이집트 국기와 숫자 ‘25’를 그려 준다. 검문을 통과했다는 인증인 줄 알고 팔을 내맡기고 그림을 다 그린 뒤 ‘고맙다’고 했더니 “20파운드”라고 했다. 알고 보니 시위대와 무관한 장사꾼이다. 혁명을 상징하는 티셔츠, 국기, 그리고 국기를 팔에 그려 주는 노점상은 타흐리르 광장을 누비며 대목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타흐리르 광장 중심부에 들어섰다.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었다. “국민들은 무바라크와 부패 정치인을 재판하길 원한다.” “국민들은 혁명과 언론 자유를 원한다.” “국민들은 군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 광장 곳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주최 단체가 아예 없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로 타흐리르 광장은 금요일에는 언제나 붐빈다. 혁명이 낳은 새로운 풍속도다. 정당이나 단체들은 각자 알아서 무대를 설치하고 연설을 하며 청중들에게 호소한다. 그런 연단이 광장 주변에 다섯 곳이 넘는다. 사람들은 각자 광장 주변을 돌아보며 연설도 듣고 이런저런 피켓과 플래카드도 살펴본다. 그러다 정오가 되면 다같이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고 나면 다시 오전과 똑같은 모습이 저녁까지 이어진다. 연단에서 한 연사가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여전히 원하는 게 많다.”며 열변을 토했다. 연설 뒤에는 구호와 노래가 뒤를 이었다. 2-2-3으로 박자를 맞추는 구호 역시 혁명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무대에서 울려퍼지는 경쾌한 노래 역시 혁명 와중에 나온 ‘민중가요’다. “이집트 사람이라면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라는 노래가사에 맞춰 연단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며 호응했다. ●여성들 ‘보수’ 벗고 화려한 옷차림 광장엔 온갖 사람들로 넘쳐 났다. 다섯 살도 안 된 어린이부터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들까지 각양각색이다. 가족단위 참가자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중동권에서 가장 개방적이라는 말이 실감나듯 다양한 복장을 한 여성 참가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한 가족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히잡을 멋스럽게 머리에 두른 젊은 여성은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사진 찍는 걸 거부했다. 화장을 안 해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올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 말고도 광장 곳곳에서는 다양한 색깔을 한 히잡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멋을 낸 젊은 여성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부르카를 입은 여성, 머리를 드러낸 여성도 있다. 사실 이집트는 1960년대 이전까지 카이로 시내에선 히잡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넘쳐났던 카이로가 50년 가까운 보수화 뒤에 다시 기지개를 펴는 셈이다. 30년 독재를 이겨낸 혁명은 ‘이집트’를 호출하고 있다. 모두가 이집트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자신들의 손으로 독재자를 몰아냈다는 자부심과 결합하면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거나 ‘1월 25일’이라고 쓴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국기는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응원물품에 불과했다. 국기를 파는 한 노점상은 20이집트파운드에 판매하는 국기가 잘 팔린다며 흡족한 표정이다. 오늘 얼마나 팔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70개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단다. ●혁명 도화선 식품가격은 여전 콧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한 중년 남성이 한 손엔 이집트 국기를 들고 젊은 여성과 어린이와 함께 광장으로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부에서 일한다는 것 말고는 자세한 자기소개를 거부한 이 공무원은 시골에 사느라 그동안 집회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딸과 외손자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집트는 미래가 밝습니다. 우리에겐 우수한 인재도 많고 자원도 많습니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마흔 살이 넘도록 지금까지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독재정권을 지지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투표를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랬던 그가 오는 9월 총선과 11월 대선을 손꼽아 기다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선거인데 무척 설렙니다. 이집트를 이끌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는 것이잖아요.” 혁명의 발단이 됐던 식품가격은 여전히 내릴 줄 모른다. 정치 격변 한편에선 극단주의 정당이 활동을 시작했다. 공권력은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기자 앞을 스쳐가는 한 승용차의 뒤쪽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써붙여진 문구는 이집트인들이 지금 중동의 새 역사를 직접 써가고 있음을 웅변했다. 뒷유리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난 이집트가 자랑스럽다.” 글 사진 카이로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담양 명소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입장료 1000~2000원 부과案 논란

    담양 명소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입장료 1000~2000원 부과案 논란

    전남 담양군이 지역 명물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유료화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담양군은 “대표적 관광명소인 메타세쿼이아길의 경관 보존 등을 위해 유료화를 위한 관리조례를 제정키로 하고 내달 11일까지 입법예고 중”이라며 “의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은 “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은 1500원, 어린이는 1000원의 입장료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가로수길은 국도 24호선 담양골프장~학동마을 앞 1.8㎞ 구간으로 두 줄로 늘어선 470그루의 메타세쿼이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2002년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 각종 드라마와 영화, CF 등에 소개돼 일일 평균 1000~2000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유명하다. 특히 사시사철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사로잡아 계절에 상관없이 주말과 관광 성수기에는 하루 1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전국적인 명소로 부각됐다. 군은 지난해 117만 5000명이 이 곳을 찾은 것으로 추산했다. 군 관계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지만 불법 노점상 행위와 쓰레기가 넘쳐나고, 메타세쿼이아 나무 뿌리가 곳곳에서 드러나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는 군민들의 의견이 많아 입장료 징수 결정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장기적 차원에서 관람료를 받아 체계적 관리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가로수길이 지방도가 아닌 국도에 위치한 데다 단순 보행로일 뿐인데 이를 돈벌이로 활용하는 것은 관광객 감소 등으로 오히려 지역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담양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3)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한다] (3)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나의 정치 역정은 ‘내면의 민주화’로부터 시작됐다. 긴급조치 시대에 학생운동을 시작한 나는 ‘독재 타도’를 꿈꿨으며,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감옥에서 맞이했다. 광주의 처참한 희생 위에 등장한 전두환 정권이었기에 ‘절대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민들이 해냈다. 투사의 힘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세상의 곡절을 안고 살아가던 시민의 힘으로 6·29 선언을 이끌어낸 것이다. ‘넥타이 부대’ 이야기나 시위대에 김밥을 건넨 노점상 이야기 등 창살 밖 세상의 변화는 나에게 낯설었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나는 처음으로 실감했다. 6월 민주항쟁은 나라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경직된 나의 내면을 민주화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재야의 한 흐름이었던 민중당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이후 나는 허기진 마음으로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새롭게 찾자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정치 개혁 시민운동에 몸담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대선 직전 내가 속했던 ‘꼬마 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을 통해 탄생한 한나라당의 옷을 입게 됐다. 참 어색한 옷이었다. 그러나 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나에겐 정치적 둥지이자 개혁 대상이었다. 한나라당에서 줄곧 쇄신파의 길을 걸어 온 것은 숙명과도 같았다. 내 지역구는 야당의 텃밭이자 진보적인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관악구갑이다. 보수가 건강하고 정의롭고 민주적이지 않으면 수구일 뿐이며, 민생을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존재의 이유를 부정당한다는 것을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두 번 낙선 끝에 2008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나는 홈페이지 대문에 ‘바르게 소신껏’이라는 슬로건을 걸어 놓았다. 권력에는 정의를, 시장에는 공정을, 국민에게는 기회의 사다리와 안전망을 줄 수 있는 21세기 정책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등원 이후 경제정책과 입법 중심의 의정 활동에 진력했는데, 해마다 ‘최우수 의원’으로 평가받는 보람을 얻기도 했다. 여당 의원이지만 무리한 감세에 반대했고, 경쟁력과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조화롭게 추진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진정 국민 통합을 생각한다면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 부르게 하라고 대정부 질문에서 총리와 보훈처장을 질타하기도 했다. 뜻을 같이하는 초선의원들과 ‘민본21’을 만들어 정의롭고 절제된 권력의 사용과 진정한 친서민 정책을 주장했다. 감히 말해, 내가 정치를 하는 것은 정치의 질을 높여 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정치 개혁은 일거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스스로 현실 정치의 모순을 안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거듭 체감하게 된다. 그래도 다짐한다. 늘 성찰하되 주저앉지는 않으리라. 언젠가는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의 신주류를 만들어 보리라. 건강한 보수를 추구하며 진보와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정치 말이다. ■ 김성식 의원은 ▲1958년 부산 출생 ▲부산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민주화 시위로 1978년, 1986년 두 차례 투옥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나라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 ▲CBS 시사자키 시사평론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경제·예산 담당) ▲경기도 정무부지사 ▲18대 국회의원 ▲초선모임 ‘민본21’ 대표 간사 ▲한나라당 정책위부의장(경제 담당)
  • 중국 ‘짝퉁 음식’ 점입가경…이번엔 ‘가짜 족발’

    중국의 이른바 ‘가짜 음식’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중국 충칭시에서 이번에는 ‘가짜 족발’이 적발됐다. 특히 이 가짜 족발은 매우 강한 발암성 물질까지 검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중경시보는 최근 “마침내 족발까지 위조품이 나왔다.” 며 “중국 각지에서 가짜 족발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번엔 가짜 족발 가공 공장이 적발됐다.” 고 보도했다. 중국에서 족발은 싸고 미용에도 좋다는 인식으로 인기있는 식재료 중 하나다. 이 족발은 노점에서 값싸게 판매되며 특징은 익히면 익힐수록 색이 검게 변하고 딱딱해 진다는 것. 이 가짜 족발은 냉동육을 돼지 가죽으로 싸고 실을 묶어 과산화수소수, 아초산나트륨, 합성 착색료 등을 첨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칭시 당국에 의하면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가짜 족발에서는 무려 기준치의 48배가 넘는 발암물질인 아초산나트륨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수치가 매우 심각해 사람들의 건강에 해를 줄수 있어 족발을 모두 압수했으며 관련자들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31년이 흘렀는데 ‘5월 광주’를 말하고 있다. ‘또(혹은 아직도) 광주냐.’란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개의치 않는 눈치다. 2년 동안 아내(주로미, 조연출·내레이션·구성작가)와 아들(김상구, 촬영보조)까지 동원해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오월愛’(오월애)를 완성했다. 40여명 무명씨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기억하는 1980년 5월과 이후 30년의 사적(私的) 기억을 복원했다.  뿐만 아니다. 광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민중의 세계사’란 주제로 10부작 시리즈를 만들겠단다. 20년 가까이 다큐멘터리 한우물을 파고 있는 김태일(48) 감독 얘기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18개관 개봉(12일)을 앞둔 그를 지난 4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졸업 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나선 ‘10대 스태프’ 상구(14) 군도 함께했다. “우리가 잊고 있던 31년을 살아온 분들이 궁금했다.” →경북 예천 출신인데 언제부터 광주항쟁에 관심을 두게 됐나. -대학(고려대 국문과 84학번)을 다닐 무렵이 아닐까. 엄청나게 피가 뜨거웠던 시절 아닌가.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살아남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화려한 휴가’(2007) 같은 상업영화부터 각종 다큐멘터리까지 광주항쟁을 다룬 영상물은 넘쳐난다. 왜 지금, 광주를 다뤄야 했나. -기존 작품들을 대개 5월 항쟁 열흘의 기록이다. 당시 이름 없이 참가했던 분들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을 통해 30년이 지난 이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아예 광주에 내려가서 살았던데. -2009년 3, 4월 두 차례 답사했다. 광주 대인시장의 방 한 칸을 ‘대인 예술인프로젝트’(시장의 문 닫은 공간에 작가를 상주시켜 예술작업을 지원하고 시장도 활성화하는 사업)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해 작업·생활공간을 얻었다. 실제 광주에 머문 건 6개월쯤이다. →40명에 이르는 무명씨(항쟁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뭉클했다. 이들의 마음을 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쉬울 줄 알았다(웃음). 2009년 5월1일 내려가서 처음 만난 인터뷰 대상에게 딱지를 맞았다. 그다음 뵌 게 양동시장 노점상 이영애(항쟁 당시 주먹밥 부대) 어머니다. 거리에서 30분을 혼났다. 매년 5월이면 언론에서 취재를 와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막상 보도는 시덥지 않으니까 화가 나 있던 게다. 일단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조연출(아내)이 나서 아줌마들끼리의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흐르고서 비로소 인터뷰를 담을 수 있었다. →다큐에 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있나.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이 진압될 때 방송실에 3~5명 정도가 있었다. 그 중 중 3 여학생이 있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확보했다. 그런데 구속자나 사망자 명단,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훈방되면서 기록이 안 남은 걸로 추정할 뿐이다. 당시 넝마주이들이 맹열하게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분들이 모여 살았다는 월산동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끝내 못 찾았다. “광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가슴이 아팠다” →‘언제부턴가 광주 안에서도 5·18이 우리 안의 타자가 된 것 같다’는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관련 단체끼리, 또는 단체와 시민 사이에 골이 깊어진 건 사실이다. 2년을 작업하면서 외부인으로 광주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봤다. 갈등은 90년대 중반 이후 보상과 함께 시작됐다. 이분들이 10년 정도를 폭도 취급을 받다 보니 생활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보상으로 목돈이 생기니까 빚을 갚거나 주식·사업을 한다고 90% 정도는 돈을 날려버렸다. 배운 것도 없고, 고문과 부상으로 막노동할 형편도 안 됐다. 5월의 트라우마는 고스란히 남았고,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50여명이 자살했다.  현재는 도청 별관 철거 논란으로 갈등이 표면화돼 있다. 5월 정신을 계승하려면 도청별관을 보존해야 한다는 측과 하루빨리 (도청별관을 철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남도청 일원의 17만㎡에 2014년까지 민주평화교류원·아시아문화원 등 완공 예정)을 건설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 있다. 후자 측은 5·18 관련 단체(5·18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유족회)를 통합해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공법단체를 만들면 아시아문화전당의 자판기 수익금 등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오랜 갈등을 지켜본 광주시민은 진절머리를 낸다. 결국 ‘5월’은 광주 안의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생활비와 제작비의 경계가 모호해서 제작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웃음).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영화제에서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돈이 떨어지면 ‘알바’를 했다. 늘 외환위기 때처럼 살았다(옆에 있던 상구가 “내 통장도 털렸어요.”라고 폭로했다. 김 감독이 “빌린거지, 털었다고 하면 도둑 같잖아”라며 멋쩍게 웃었다). →부인과 아들까지 (영화 작업에) 끌어들였는데. -아내는 빈민촌 어린이집 교사였는데 문을 닫았다. 40대 중반이면 원장을 할 나이라 재취업이 안 됐다(웃음). 2008년 단편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부터 함께 했다. 이전에도 모든 작품을 가편집 단계부터 보고 상의했기 때문에 스태프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 동반자다. 10여년 동안 작품이 주목받지 못 해 갈등도 많았지만, 항상 아내가 ‘구애받지 말고 해라. 당신 만의 힘이 있다’고 토닥여줬다. 상구는 촬영보조로 딱히 한 일은 없다(이들 부자의 대화는 친구들끼리 말장난하듯 친근하다). →스태프로 뽑은 이유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나(상구가 “돈이 없으니까.”라며 끼어든다). 중학교를 안 다니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더라. 우리 부부는 거의 광주에 내려가 있어야 하니까 그럴 거면 와서 경험해 보라고 했다. 안 내려온다고 버티기에 ‘알바비’를 준다고 미끼를 던졌다. 작업일지를 잘 쓰고, 현장에 꼬박꼬박 출퇴근하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다(상구가 “아빠 말이 맞긴 한데 아직 못 받았어요. 다 합치면 360만~370만원은 받아야 해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영화를 전공한 적이 없다. 1993년 ‘원진별곡’부터 다큐에 뛰어들었는데.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내 길은 아닌 것 같더라.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영상으로 옮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독립영화협회에서 하는 3개월짜리 기초교육만 받고 바로 연출을 시작했다. 그때 조연출을 한, 두 편이라도 했다면 지금 고생을 덜 했을 것 같다. 그때는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웃음).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 10부작을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현장답사를 다녀온 인도차이나를 먼저 다룰 거다. 중동과 팔레스타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콩고 등 중앙아프리카,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동유럽, 호주와 남태평양 지역, 그리고 남미와 북미 등 얼개를 잡았다. →얼마나 걸릴까. -20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기자가 상구에게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업해도 되겠다’고 했더니 “전 관심없어요. 너무 무리 아닌가 싶어요. 10편에 집착하면 작품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라고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31년이 지난 지금, 광주정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뉴스를 보니 중고생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첫 순위로 꼽는다더라.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가치만을 좇고 있다. 31년전 광주에서는 국가폭력에 맞선 극한의 상황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옆 사람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렇게 많은 시민이 죽어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연대와 나눔 등의 가치를 우리가 어떤 의미로 승화시킬지는 각자의 몫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상구는 “5월의 공동체정신을 되새기자라고 하면 되는데 아빠가 너무 장황하게 얘기한다.”고 면박을 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시론] 오글 교수와의 추억/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매체경영 교수

    [시론] 오글 교수와의 추억/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매체경영 교수

    내연구실에는 빛바랜 흑백 사진이 한 장 붙어 있다. 한 외국인 노부부와 우리 가족이 함께한 모습이다. 주인공은 나의 학위 공부를 도와준 교수 중 한 분이다. 십여 년 전 방한 당시 우리 가족과 함께 한 저녁 자리에서 찍었다. 노 교수는 당시 미국 조지아주 에모리 대학 오글 교수였다. 이쯤 되면 ‘아’ 하고 고개를 끄떡이는 사람들이 꽤 있겠다. 많은 한국인에게 오글 교수는 낯익은 인물이다. 특히 이 땅의 민주화 과정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쳐 본 기성 세대에게 그는 잊혀지지 않은 인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오글 교수보다는 오글 목사로 더 알려진 그는 이 땅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최근 무죄로 판결 난 74년 인혁당 사건 고문 조작설을 처음 제기했다가 강제 추방당한 바 있다. 비록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나는 그가 이 땅의 빈한한 자들에게 바친 희생에 감격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서울에서 가장 근사한 레스토랑에 내외분을 모셔 저녁을 대접했던 기억이 난다. 오글 교수는 휴전 이듬해인 1954년 이십대의 젊은 나이에 아내와 단둘이서 인천시 변두리에 자리를 잡고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이른바 도시산업 선교회의 출발이 된다. 권위주의 시대, 도시산업 선교회는 기업의 ‘도산’을 가져 오는 교회로 기업인들에게는 각인됐지만, 민주화 주역들에게는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서울대 강단에도 잠시 섰다. 나는 그와 곧잘 논쟁을 벌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재벌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에 맞서 한국적인 상황 논리를 주장하며 이해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나는 그런 그의 시각을 고치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늘 나의 입만 아플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는 십년 전 우리 가족과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처음으로 삼성·현대 등 한국의 재벌에 대해 상당 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 몸 바친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 국가로 위치를 굳힌 이면에는 재벌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작용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천 변두리 ‘푸세’식 화장실의 추억 등등을 회고하며 당신의 가족들이 한국에 쏟아부은 애정이 마침내 민주화와 경제성장으로 결실을 본 데 대해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격했다.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이제 이웃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민주주의 국가이고 노동자들의 권리 또한 지나친 감이 있을 정도로 강화됐다. 오글 교수가 본다면 상전벽해를 느낄 만큼 모든 것은 변했다. 그래서 재벌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시각도 지금쯤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오글 교수에 맞서 재벌을 변호하던 내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한 재벌의 거친 반격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몽땅 몰아주고 천문학적인 고배당을 챙기는 재벌의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부품 업체를 쥐어짜고, 광고마저도 계열 광고사에 맡기고, 한마디로 땅 짚고 재산 불리기일 뿐이다. 현 정부가 총액출자제한제도, 중소기업 고유업종 등 재벌들을 묶어 놓았던 여러 규제를 ‘친(親)기업’을 앞세워 대폭 풀어 준 다음에 벌어진 현상이다. 심지어 삼성·LG·SK 등은 문방구류 같은 소모성 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 중이다. 중소 문방구 제조업체들이 단번에 몰락했다. 고언하건대 한국의 재벌에게 초과이익 공유를 요구하는 것은 반시장주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 재벌의 성공 뒤에는 열악했던 노동조건 속에서도 구로공단과 중동 열사에서 흘린 한국인의 눈물과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말했다.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사과 파는 노점상쯤 돼 있을 것”이라고. 미국과 미국인이 자신의 부를 이루게 해 줬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부의 대부분을 미국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버핏의 말씀, 한국의 재벌이 반만이라도 들어주면 좋겠다.
  • 옛 춘천 명소 소양 호 일대 새단장

    1970~80년대 강원 춘천시의 대표 관광지였던 소양강댐과 소양호 일대가 호수관광지로 단장돼 옛 명성을 다시 찾을 전망이다. 춘천시는 6일 소양강댐 정상에 있던 노점상이 지난해 12월 모두 철거됨에 따라 관광명소화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우선 소양강댐관리단은 올해 6억원을 들여 댐 정상부 경관 개선과 편의시설 확충 사업을 한다. 관리단은 댐 정상의 광장에서 물 문화관까지 250m 구간의 산 사면에 물을 상징하는 경관 벽으로 단장하고 조형시설물을 설치한다. 또 노점상이 있던 경사면 쪽에는 나무가 깔린 인도가 설치된다. 호수 쪽으로는 기존의 보도 구간을 확장해 꽃과 나무로 된 가로 화단을 조성하고 호수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인다. 물 문화관 옥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소양호의 정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개방된다. 사업은 6월 말까지 끝낼 예정이다. 춘천시도 올해 봄내길 개발사업의 하나로 소양호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소양로 나루길(20㎞) 개설에 나선다. 이와 함께 올해 국비 등 1억원을 들여 청평사 고려선원의 보존 활용 용역을 실시한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차 한잔 하실까요] 진익철 서초구청장

    [차 한잔 하실까요] 진익철 서초구청장

    진익철(60) 서초구청장은 “우리 구내식당은 주민들에게도 자랑거리”라고 말을 건넸다. 손님을 모실 때도 고급 음식점보다 구내식당을 선호한단다. 그를 30일 서초구청 구내식당에서 만났다. 편한 장소여서 인터뷰는 무겁지 않았다.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진 구청장과의 대화를 ‘키워드’로 엮어 본다. ●구내식당 자연히 구내식당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직원들이랑도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하시나 보죠?”라고 묻자 “그럼요. 직원들과 돌아가며 식사하면서 표정을 살피는 거죠. 물론 구를 대표하는 자리지만 내부 고객의 마음부터 느끼는 게 구정의 첫 단추라고 생각해요.”라고 진지한 답변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진 구청장에게 이런 식사 자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얼마 전에는 강남대로 노점상을 단속하는 직원들과 식사를 하며 애로사항을 들었어요. 구내식당은 저와 직원들 간의 소통의 장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내 호기심이 생긴다. 과연 직원들이 애로사항을 순순히 털어놓을까. 구청장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닐까. 우문현답이 되돌아왔다. “맞아요. 처음에는 얘기 잘 안 해요. 그래서 예전엔 폭탄주를 이용하기도 했죠. 하하…. 그런데 그건 취중 발언이니까 지양해야죠. 그래서 계속 들으려고 추궁해요. 그러면 정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 쏟아지죠.” ●로맨스 진 구청장의 과거사(?)를 캐물었다. 스스로 ‘울산 촌놈’이라고 말하는 진 구청장은 27세 때 대학에 입학한 늦깎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과수원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 3학년 시절인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줄곧 서울시에서 공직의 길을 걸었다. “대학 때 학생들이 ‘영감이 학교에 들어왔다’고 장난도 많이 쳤죠. 마음고생도 했고요. 하지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고생을 해 보니 남 힘든 거 알겠더라고요.” 맞선을 본 지 한달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웃는 진 구청장. 30차례 이상 선을 봤지만 아내(김경희씨)를 보는 순간 ‘아, 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버지께 며느릿감을 빨리 소개시켜 드리려는 마음에 부산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를 데리고 울산까지 택시를 타고 갔죠. 당시 수습공무원 월급이 16만원이었는데, 택시비가 5만원이나 나왔어요. 아직도 아내랑 그 얘기를 하면 배꼽을 잡아요.” ●귀양살이 그가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 구청장의 이력서는 본인 말대로 ‘정신이 없다’. 30여년 공무원 인생, 맡았던 보직도 수십여개에 이른다. 여기에 2차례 해외 파견, 대통령 비서실 등 근무 반경도 넓다. “베이징에 4년, 뉴욕에 1년 6개월 파견됐죠. 사실 인사에서 밀려나 일종의 ‘귀양살이’를 한 것인데, 그때 배운 게 너무 많았어요. 다문화 사업을 기획할 때, 당시 익힌 감각이 약이 됐죠. 역시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진 구청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보직으로 2001년 맡았던 서울시 ‘공보관’을 꼽는다. 대(對)언론 홍보 업무를 맡으며 시정의 큰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까닭이다. “민감한 현안이 생기면 공보관은 시의 모든 부처와 긴밀히 협동을 해야 합니다. 해결책을 논의하고 언론, 더 나아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자리가 공보관이거든요. 이미 모든 현장에 다 다녀온 셈이 되니 이만한 보직이 없었죠.” ●소통 최근 ‘소통’은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돌고 있는 말. 조직의 수장 가운데 소통을 말하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하지만 진 구청장의 소통 어젠다는 더 구체적이다. 일단 결재 시간을 대폭 줄였다. “관료제이다 보니 어떤 사안을 보고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요. 주무관은 팀장한테, 팀장은 과장한테, 과장은 국장한테, 국장은 부구청장한테, 부구청장은 청장한테…. 어떨 땐 결재가 15일 뒤에 올라와요. 이러면 주민들이랑 소통이 가능하겠어요? 그래서 중요 현안이 있으면 이들이 모두 모여 의사 결정을 해요. 그렇게 처리한 현안이 지금까지 200건이 넘습니다.” 구청장을 하면서 가장 감동을 받았을 때도 주민과 소통을 할 때라고 했다. 진 구청장은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구청 홈페이지의 ‘구청장에게 바란다’를 확인하는 것이다. 매일 20~30개의 지적사항이 올라오는데 곧바로 해결하도록 지시한다. 이따금 해당 주민에게 불만사항이 잘 해소됐는지 전화를 건다. “구민들은 이런 세세한 모습에 고마워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감동을 받고요.” 다시 구내식당 이야기로 인터뷰를 매듭지었다. “아, 구내식당에서는 남은 반찬을 포장해서 값싸게 팔아요.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부담도 덜고, 친환경 식재료로 만들어 건강도 챙기고, 잔반도 처리하고, 구 예산에 기여도 하는 일석사조(一石四鳥)입니다. 이 기자도 반찬 좀 사서 구 예산에 기여하시죠. 하하….”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서대문 영천시장 50년 무등록 설움 털다

    서대문 영천시장 50년 무등록 설움 털다

    “무면허로 살다가 운전면허를 딴 기분이에요. 마치 불법체류를 하다가 영주권을 얻은 것처럼 세상을 다 얻었다고나 할까요.” 30일 이평주(56) 서대문구 영천시장 상인회장이 최근 구청으로부터 전통시장 인증서를 전달받은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그의 얼굴엔 50년간 온갖 혜택에서 제외되는 무등록시장의 설움을 훌훌 털낸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는 “5년간 구청을 들락거리며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며 “시장이 개천과 인접해 있다는 등의 이유로 늘 ‘퇴짜’를 놓곤 했는데 문석진 구청장이 취임 후 결단을 내려줘 너무 고맙다.”고 덧붙였다. 도심 한복판인 독립문 옆에 위치한 영천시장은 1960년 초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서대문구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이다. 야채, 생선, 식료품, 생활용품 등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이지만 특히 떡 만드는 공장만 20여곳에 이를 만큼 떡도매로 이름난 시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통시장의 인정조건인 ▲점포수 50개 이상 ▲건축물과 편의시설이 점유하는 토지면적 1000㎡이상 ▲영업 상인, 토지 소유자, 건물소유자의 50% 동의 ▲소방도로 확보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무허가 신세로 반세기를 버텼다. 더욱이 시장 입구에 노점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 소방차 진입이 곤란해 화재위험까지 떠안았다는 약점 때문에 전통시장으로 등록받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문 구청장은 취임하자마자 전통시장 및 상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의 깐깐한 조건을 채우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시장 입구에 난립한 노점상을 정비하고 국내·외에 거주하는 토지 소유주들로부터 50% 동의를 받아낸 것이다. 구청장 후보들이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지키지 못한 약속을 문 구청장이 10년만에 실현한 셈이다. 문 구청장은 “무엇보다 영세상인들이 금융 융자를 받으려 해도 무등록 시장이라 모든 혜택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는데 해결하게 돼 기쁘다.”면서 “지역의 대표시장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노점상/조정권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노점상/조정권

    노점상/조정권 열 클립의 햇빛을 M16 탄창에 장전하고 유채꽃밭에 난사합니다. 5월의 이런 날씨 중랑천 변에 앉아 팝니다.
  • [독거노인 사랑잇기] 벼랑 끝에 선 노인들 ③밖으로 내몰리는 그들

    [독거노인 사랑잇기] 벼랑 끝에 선 노인들 ③밖으로 내몰리는 그들

    #1. 지난달 26일 서울 화곡동 도로에서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모(83) 할머니와 또 다른 이모(66) 할머니가 폐지를 서로 가져가려고 몸싸움을 하다 60대 이 할머니가 차량에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할머니들은 1㎏당 80~150원에 불과한 폐지를 놓고 다투다 몸싸움을 한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2. 꽃샘추위가 몰아친 지난 16일 저녁 서울역 지하보도 앞에서 70세를 훌쩍 넘긴 한 할머니가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자식 없이 혼자 산다. 춥고, 배고파 나왔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렸다. 서울에 혼자 산다고만 밝힌 할머니는 1000원짜리 지폐와 동전 몇개를 받아들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노인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노후를 편안히 보내야 할 노인들이 사회적 무관심 속에 생계유지를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속적인 일자리가 없는 데다 턱없이 부족한 정부 지원금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감당할 수 없기에 ‘하루 1만원 벌이’도 안 되는 폐지 줍기와 행상에 나선다는 것이 노인들의 하소연이다. 특히 주변에 돌봐줄 사람조차 없는 ‘홀몸노인’들의 경우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20일 통계청의 ‘2010년 사회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홀몸노인 가구는 2000년 54만 3522가구에서 지난해 102만 1008가구로 두배가량 급증했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7%에서 6.0%로 늘었으며, 2030년에는 230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65세 이상 홀몸노인 21만 61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수조사를 보면 이들의 생활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조사에 응한 8만 2776명의 월평균 소득은 46만원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노인가구의 월평균 소득 182만 6000원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다. 또 홀몸노인들의 66.1%가 전세나 월세에 살아 주거불안을 겪고 있었다. 홀몸노인들은 주거비와 식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수입 1만원도 안 되는 폐지수집과 노점에 나서야 한다. 통계청 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 중 60% 이상이 앞으로도 일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고용률은 29.7%에 불과하다. 정부가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고용률은 2000년 29.4%에서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역정책 연구소인 ‘관악정책연구소 오늘’이 지난해 9월 29일부터 한달간 폐지를 수거해 판매하는 노인 127명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월수입 40만원 미만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홀몸노인이 40.2%였다. 65세 이상 노인들이 겪는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통계청 조사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41.4%로 가장 높았고, 서울시 홀몸노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9.6%가 후원 연계를 원했으며, 34.6%가 공공기관 일자리, 5.8%가 민간 취업 알선을 원했다. 이봉화 관악정책연구소 소장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직계 혈족의 부양에 상관없이 자녀 소득이 있으면 지원을 받지 못해 수급자에서 제외된 홀몸노인도 적지 않다.”면서 “이들이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노인들에게 지속적인 ‘일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정숙 서울시 노인복지과 재가노인팀장은 “홀몸노인 생계 지원을 위해 민간기업과 종교단체, 개인 등 후원자를 발굴하고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찾는 한편, 공공기관 일자리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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