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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사람입국이다] 3.종업원 생애 책임지는 기업

    [이젠 사람입국이다] 3.종업원 생애 책임지는 기업

    |파리 함혜리특파원| ‘세계는 끊임없이 발전한다. 직업도 변화한다. 따라서 나 자신을 무장한다.’불로뉴비양쿠르에 있는 르노그룹 인적자원국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구다. 사내 직원교육제도를 소개하는 리플렛 표지에도 적혀 있는 이 문구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생산 과잉, 경기 부진까지 겹쳐 있는 것이 오늘날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다. 게다가 수만가지 첨단 기술의 복합체인 자동차를 생산하는 일은 기술의 진보에서 조금이라도 눈을 돌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르노그룹은 종업원 개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이같은 환경에서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판단한다. 사내 재교육제도를 꾸준히 강화시켜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르노 신화의 비결은 인적자원 루이 슈웨체르 르노그룹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르노가 지닌 경쟁력의 자산은 르노의 힘이며,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성장의 기본이다. 재교육은 기업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종업원 개인의 직업적 성숙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그의 의지는 종업원들의 요구와 맞아 떨어져 1999년 프랑스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직원의 재교육권(DIF)을 인정하는 노사협약으로 결실을 맺었다. 프랑스에서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직원재교육에 관한 법’의 모델이 되기도 한 이 노사협약에 따라 르노그룹의 모든 종업원은 직종, 성별, 연령의 제한없이 자신의 직무 완성도와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 직종·직급에 따라 생산직은 연간 25∼35시간, 관리직은 6일간의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연수적립제를 도입해 주어진 교육시간을 다 사용하지 못하면 다음 해에 이월할 수 있도록 했다. 인적자원개발국 파트리시아 뮐러 재교육담당 국장은 “르노는 직원 개인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사내 재교육제도를 기업발전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면서 한때 적자투성이의 국가적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던 르노가 짧은 시간에 글로벌한 생산체제를 갖춘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인적자원을 중시하는 경영전략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전문성 극대화시키는 맞춤식 프로그램 전략기획팀의 미셸 베르제스 부장은 “재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개인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기업의 발전”이라며 “자기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각자 필요에 맞게 재교육 프로그램을 짠다.”고 설명했다. 종업원들은 사내 인트라넷에 올라와 있는 트레이닝 가이드를 참조하면서 기술적 숙련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글로벌한 경쟁체제에 맞게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매년 교육 프로그램을 짜기에 앞서 상사와 면담을 갖는다. 회사의 장기 전략과 세부조직의 목표, 종업원 개인의 향후 진로 및 직무능력 등을 감안해 전문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로그램 역시 꾸준히 업데이트된다. 교육 프로그램은 3000가지에 이를 정도로 세분화돼 있는데 이 가운데 10% 정도는 매년 새로운 것들로 바뀐다. 더이상 쓸모가 없는 내용들은 버려지고, 그 자리를 최신 기술이나 정보로 채운다. ●2003년부터 ‘퍼포먼스’ 시스템 가동 르노는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퍼포먼스’ 시스템을 구축,2003년부터 가동하고 있다.5∼10년 후의 기업환경을 고려해 큰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표준화된 세부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한 뒤 교육내용에 대한 종업원들의 의견을 수렴, 이듬해 프로그램 내용에 반영하는 선순환 시스템이다. 전체 급여의 6.5%에 해당하는 1억 100만유로가 재교육에 투입된 2003년의 경우 르노자동차 직원의 80%가 사내 교육에 참가했다. 평균 참여시간은 2002년 32.2시간에서 36시간으로 늘었다. 르노는 ‘퍼포먼스’ 시스템을 2004년부터 전세계 르노그룹 계열사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춘 만큼 이제는 소프트웨어(인적자원)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경쟁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lotus@seoul.co.kr ■ 英 유통업체 테스코 재교육은 |체스헌트(영국 하트퍼드셔주) 장택동특파원|“기업은 직원을 키우고, 직원은 고객을 살핀다.” 전세계 23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통업체 테스코는 직급별로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직접 대면하는 고객이 많은 업종인 점을 감안, 고객만족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은 매장에서 직접 이뤄지기도 하고 외부기관에 위탁하기도 한다.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 진행된다. 알렉스 트렌차드 해외협력과장은 “단계별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고, 승진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교육프로그램은 직급에 맞춰 6단계로 세분화된다.1단계는 평직원을 대상으로 하며, 동·은·금 단계로 나눠진다. 금 단계까지 통과하면 해당업무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증서를 수여한다.1단계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대학에서 정보통신, 영어, 수학 등을 배운다. 영국 정부가 주관하는 이 ‘실습생 제도’에 참여하면 학비는 정부에서 지원하고, 회사는 직원이 학교에서 교육받는 시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한다. 테스코는 지난해 20명을 참여시킨 데 이어 올해는 500명으로 25배나 늘렸다. 매장의 부문별 관리자가 대상인 2단계에서는 점포 운영에 필요한 핵심 업무들을 교육받는다. 이어 3단계에서 매장 전체 관리자는 재정, 업무 변화, 마케팅 등 경영관련 과목을 배우면서 간부로서의 자질을 키우게 된다. 4단계 매장 총지배인은 회사의 ‘리더십 개발센터’에서 리더십 교육을 받는다. 분야별 담당 이사가 받는 5단계에서는 하버드 등 유수 대학에서 최고위 경영과정을 이수하고, 마지막 6단계인 최고 경영진까지 교육은 계속된다. 니콜라 스틸 직업훈련국장은 “나도 17년 동안 여러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훈련단계를 밟아왔다.”면서 “테스코는 평범한 직원이 오랫동안 내부교육을 통해 고위직까지 올라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taecks@seoul.co.kr ■ 네덜란드 ‘로열더치셸’에선 해외파견때 배우자 현지취업 교육 |헤이그 장택동특파원|네덜란드 헤이그의 카렐 반 바이랜틀란 거리에 위치한 다국적 석유기업 로열더치셸의 학습기관 ‘셸 러닝’ 센터.13개의 교실마다 세미나와 강의가 한창이다. 한 교실에서는 유럽 전역에서 모인 중견간부 10여명이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고, 옆 교실에서는 고객과 신뢰관계를 쌓는 요령을 강의하고 있었다. 로열더치셸은 학습과 윤리를 경영의 두 축으로 삼고 있다. 존 올드햄 교육담당 이사는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직원들이 정확한 교육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준다.”면서 “직원이 새로운 업무를 찾아 나가도록 ‘도전 정신’을 강조하고 이에 필요한 지식은 교육을 통해 채워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현업기반교육을 강조한다. 일을 하면서 현장에서 배우고, 배운 것을 통해 업무를 발전시킨다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이 회사의 중견간부들은 근무시간의 20∼30%를 직원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사내 정규교육은 셸 러닝 센터에서 주로 맡는데 리더십, 조직변화, 공정표준화 등이 주요 과목이다. 실무교육은 각 지사와 작업장별로 직급과 업종에 맞춰 실시된다. 이 회사에 27년째 근무 중인 폴 트리머 북유럽 담당 부사장의 사례는 이 회사의 학습체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본인의 희망에 따라 시장분석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기획·판매 분야로 옮겼다가 브라질·볼리비아 등지에서 가스배급 책임자로 일했다. 직종을 바꾸는 데 필요한 경영, 외국어, 리더십 등은 회사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 트리머 부사장은 “강의를 듣고, 현장에서 배우면서 원하는 분야에 도전하고 자리를 바꿔나갔다.”고 말했다. 로열더치셸은 한편으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강조한다. 다른 교실에서는 40∼50대 여성 10여명이 강사의 설명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해외에서 직장을 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들은 조만간 해외지사로 발령날 남편을 둔 아내들이었다. 외국에 함께 나가 있는 동안 아내들도 직업을 갖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같은 교육을 진행한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직원들은 자기개발 차원의 학습도 할 수 있다. 한 예로 1998년부터 시작된 ‘더 나은 세계’라는 프로젝트는 희망하는 직원들을 40개 개발도상국으로 보내 기술자문도 하고 문화도 배우도록 배려한다. 전세계에서 11만 5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로열더치셸은 연간 160억달러 이상을 교육비로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교육분야를 더욱 강화할 방침을 세우고 셸 러닝 센터를 증축하고 있다. 이 센터 책임자인 감트 로 이사는 “앞으로는 셸 러닝 센터가 회사를 상징하는 심장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taecks@seoul.co.kr
  • [이사람] 28일 개원하는 중국문화원 주잉제 원장

    [이사람] 28일 개원하는 중국문화원 주잉제 원장

    주잉제(朱英杰)는 중국 정부가 서울에 문을 여는 주한 중국문화원의 초대 원장이다. 문화원은 28일 개원식을 갖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원장 발령을 받고 서울에서 개설 준비를 해왔다. “중국어는 물론 중의학, 중국 요리, 서예도 무료로 배울 수 있어요. 요리 강습을 위해 베이징 일류 요리사가 올테니까 기대하십시오. 관광 및 교역 정보 등 중국 관련 정보도 제공됩니다. 강의는 물론 내년 초부터 시작하고요. 중국문화원 인터넷 사이트(www.cccseoul.org)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년반 동안 몰두해온 개설 준비를 마친 주 원장은 어느덧 문화원을 알리는 ‘중국 문화의 전도사’로서 여념이 없었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 옆 지상 6층 지하 1층의 검은색 건물. 입구에 다가가면 정문 옆 벽에 새겨넣은 공자·맹자·노자·장자 등 중국 전통의 네 현자의 모습과 중국문화센터란 뜻의 ‘중국문화중심(中國文化中心)’이란 한자 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곳이 이집트, 프랑스, 몰타에 이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문을 여는 중국문화원이다. 지난 2000년 당시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먼저 개설을 제의해 이뤄진 중국 정부의 야심찬 중국 알리기 계획의 산물이다.2년여 전 중국 정부가 기존 건물을 40억원에 사들인 뒤 30여억원을 들여 중국식으로 단장했다. 아담한 정원을 포함하면 600평 규모다. “문화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자 석상은 베이징 자금성 정문의 사자상을 그대로 축소해 만든 것입니다. 문화원 안의 가구들도 국보급 명·청 시대 고가구를 원형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주 원장의 설명이다. 사자상과 가구들은 중국에서 공수해 왔고 기술자들도 서울에 와서 10개월 가까이 내부 장식을 다듬었다. 현판 ‘중국문화중심’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친필. 마오가 이전에 따로 쓴 중국 문화와 중심을 합쳐서 만든 것이다. “지하 120석 규모의 공연장에선 매주 2∼3차례 중국 영화가 상영되거나 공연이 열리게 됩니다.50여평 규모의 2층 전시실에선 내년 초 개관 기념 윈난(雲南)성 그림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3층은 강의실,4층은 중국에서 가져온 1만 5000권의 장서가 빽빽하게 꽂혀 있는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7층에 마련된 중국 요리 실습실이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다. 천장의 중국식 초롱의 은은한 빛이 중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 원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내부장식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겼다고 한다. 그는 “중국 문화의 정수에 푹 빠지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28일을 개원일로 잡은 것도 중국인 특유의 관념을 보여준다.“중국인들은 짝수를 좋아합니다. 특히 8자는 ‘재화가 늘고 융성한다.’는 함의를 지녔죠.” 중국인들에게 28일은 8이 2개인 날, 즉 8이 겹치는 날로 해석되기도 한다.2004년 12월도 짝수다. 길일을 택한 셈이다. 문화원 개설·운영의 모든 것을 도맡아 처리하고 초대 원장까지 된 것은 그가 한국을 잘 알고 이해하는 중국 문화부의 대표적 한국통이란 점과 무관치 않다. 게다가 그는 음악과 문화에 정통한 예술인 출신이다. 그는 평양음악무용대학 82학번인 북한 유학생 출신이다. 고교 졸업 후 고향 헤이룽장성 가무단에서 5년 동안 연주 활동을 하다 1981년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음악대학에 입학,25살의 늦깎이 대학생으로 평양 유학길을 떠난다.“김일성종합대학에서 1년 동안 한국말을 배운 뒤 4년 동안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호른을 전공했지요. 어려서부터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해서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문화부 북한담당관으로 일하라고 하더군요.” 그후 1989년부터 4년 동안 평양 중국대사관 문화관을 지냈다. 문화원 원장을 발령받기 직전까지 문화부의 아시아과 과장으로 중국과 남북한 문화교류를 총괄해왔다. 얼후, 피리, 양금 등 전통 중국 악기는 물론 빠우란 중국 소수민족 악기에도 능통하다. 주 원장은 호른을 전공했고, 스트라우스의 콘체르토와 모차르트의 콘체르토 3번을 가장 좋아한다.“조선 사람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민족적 특징과 자부심이 강하죠. 북한의 왕재산 악단이나 피바다 가극단 등이 중국에서 많은 사랑과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적 전통에 서구적인 것을 결합한 점이 어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10년 가까이 북한에 있는 동안 예술인들이 각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쨌든 한반도는 그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다. 그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얽혀 있다.“아내 자오원(趙文)과 만난 것도 평양 유학 시절이고, 아이도 ‘평양산(産)’”이라고 자랑한다. 부인 자오원은 베이징의 중국음악대에서 한국과 일본음악사를 강의하고 있다.“연세대에서 6개월간 유학했는데, 한국말을 저보다 더 유창하게 합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들 원카이(元凱)도 한국말을 배우고 있단다.“런민대학 부속중학 1학년인 원카이는 학교에서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해 배우고 있답니다. 한류 열풍에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주 원장은 한류 열풍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낙관했다. 한국 드라마 덕택에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와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한국 드라마는 중국과 달리 일상생활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어요. 배우들의 연기도 호소력이 있고요.” 그의 고향은 한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헤이룽장(黑龍江)성. 그 탓에 어려서부터 주위에는 자연스럽게 한국 친구가 많았다.“음악선생님들은 대부분 조선족이었죠. 제가 처음 호른을 배운 분도 조선족이었어요.” 주 원장은 왕희지체에 심취해 있을 정도로 서예 실력도 프로급이다. 북한에 있을 때는 옥류관 냉면을 좋아했는데, 서울에 와선 고추·양파·버섯을 잘게 썰어 넣고 푹 끓인 된장찌개에 백세주가 그의 기호식품일 정도로 한국화돼 있다. 독립문 근처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그는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것 말고는 서울이 “고향집처럼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적인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다. 아름다운 한국말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따끔한 한마디도 빼놓지 않았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儒林(250)-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儒林(250)-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공자는 이처럼 계강자를 도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와 노자와의 사상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유리(遊離)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일치되고 있는데, 일찍이 노자도 ‘세도 부리는 도둑’, 즉 나라도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들에 있는 논밭은 거칠어지고 여염집 광은 비어 있는데도 비단옷 차려입고, 날이 선 칼을 차고, 맛난 음식을 싫증내며, 재물이 가득하면 이를 일러 세도 부리는 도둑이라 한다.” 노자의 말처럼 공자도 계강자를 ‘세도 부리는 도둑’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도 부리는 나라도둑일수록 입으로는 백성을 위한다는 공치사를 자주하는 법. 계강자는 다시 공자에게 묻는다. “백성들로 하여금 공경스럽고 충성되며 부지런히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에 공자는 대답한다. “백성들을 장중하게 대하면 자연 공경스러워지고, 효도와 자애로써 대하면 자연 충성스러워지고 선인들을 등용하고 무능한 사람을 가르쳐주면 자연 부지런히 힘쓰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공자는 계강자의 질문에 원칙적인 대답만 할 뿐 직접 정치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계강자가 공자에게 ‘당신은 국로로서 어찌 의견을 말하지 않습니까.’하고 비난을 받을 정도로 나라의 원로(元老) 노릇은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학문에 정진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고 있었지만 노나라의 중요한 국사에는 관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논어의 계씨편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이때는 기원전 482년 공자의 나이 70세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계강자가 군사를 일으켜 전유(臾)를 정벌하려 하였다. 전유는 오늘날 산둥성 페이현(費縣) 서북쪽에 있는 나라로 대대로 노나라의 속령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계강자가 이를 정벌하려 하였던 것이다. 당황해진 염유와 자로가 공자를 찾아뵙고 아뢰었다. “계씨가 전유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말하였다. “구(求:염유의 이름)야,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겠느냐. 전유는 옛날 선왕께서 동몽산의 제주로 삼고 그곳에 봉한 나라이며, 또한 노나라의 영역 안에 있는 나라이다. 노나라를 떠받드는 신하의 나라인데 어찌하여 그를 친다는 것이냐.” 공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동몽산(東蒙山)’은 지금의 산둥성 멍인현(蒙陰縣) 남쪽에 있는 산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몽산이라고도 불린다.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신령한 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대로부터 노나라와 군신의 예를 갖춘 속령이었던 것이다. 공자의 질책에 염유가 변명하여 대답하였다. “계씨가 치려는 것이지 저희 두 사람은 모두 원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구야, 옛 사관이었던 주임(周任)은 이렇게 말하였다.‘자기 힘을 다하여 벼슬자리에 나아가되 만약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벼슬은 그만둔다.’는 것이다. 위태로운데도 붙잡아두지 못하고 넘어지려 하는데도 부축해 주지 못한다면 그런 신하는 어디에다 쓰겠느냐. 또한 너의 말도 잘못이다. 범과 들소가 우리 밖으로 나가거나 궤 속에 넣어둔 신귀(神龜)와 구슬이 깨어졌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공자의 질책은 평소에도 언짢게 생각하고 있던 염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계강자를 도와 가렴주구에 나선 염유의 변명이 못마땅해서 신하된 도리로 계씨를 말리지 못한 불찰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음인 것이다.
  • 강의/신영복 지음

    강의/신영복 지음

    논어 ‘위정’(爲政)편에 보면 ‘군자불기’(君子不器)란 구절이 있다. 직역하면 군자는 그릇이어선 안된다는 뜻. 유가 사상이 제시하는 이상적 인간상이다. 하지만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를 논하면서 동양사회가 비합리적이며 근대사회 형성에서 낙후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이 구절에서 이끌어냈다. 그는 기(器)는 한마디로 전문성이고 직업윤리인데 이에 대한 거부가 동양사회의 비합리성으로 통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데 신영복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는 이 전문성이야말로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일뿐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되며,‘군자불기’는 오히려 오늘날의 전문성 담론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즉 논어의 이 구절을 신자유주의적 자본논리의 비인간적 성격을 드러내는 구절로 읽는 것이 바로 오늘의 고전 독법이라는 것이다. ‘강의’(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는 이처럼 동양고전을 통해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은 책이다. 그가 성공회대에서 ‘고전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해 왔던 강의를 정리한 것. 그는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독법 전체에 걸쳐 관철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강의를 진행했으며, 해석 하나하나에서 진보적 색채를 강하게 보여 준다. 책에서 지은이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 즉 부국강병이라는 목표아래 각축을 벌이던 무한경쟁시대에 터져 나왔던 거대 담론들을 ‘고전’이란 통로를 통해 오늘의 상황에 연결하고자 한다. 현대 자본주의, 특히 그것이 관철하고자 하는 세계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강의를 이끌어가는 동안 ‘관계론’이란 화두를 놓지 않는다. 즉 고전은 서양철학의 개별적 ‘존재론’과 달리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 담론을 담고 있다는 인식하에 강의를 진행한다. 이를테면 동양고전의 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시경’(詩經)에선 사실성에 근거한 진정성이 있음을 주목한다.“저 강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기다리는 임은 오시지 않고 그립기가 아침을 굶은 듯 간절하구나…방어 꼬리 붉고 정치는 불타는 듯 가혹하다….”(遵彼汝墳 伐其條枚 未見君子 如調飢…魚 尾 王室如….) 서주 말기, 한 여인이 멀리 떠난 낭군을 그리는 모습을 그린 듯한 이 시에서 지은이는 단순한 그리움을 너머 땔감으로 나무를 꺾는 여인의 가난을 보고, 몇년째 낭군이 전쟁이나 사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난세를 읽는다. 또 피로하면 꼬리가 붉어진다는 방어는 곧 백성의 피곤함이요, 왕실이 어지럽다는 것은 정변과 전쟁이 잦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전쟁은 가난을 불러오고, 정치가 어지러우면 국민이 피곤한 상황은 오늘의 세계, 아니 지금 우리사회가 겪는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맹자’ 앞 부분에 나오는 ‘여민락장’에선 함께하는 즐거움, 즉 여민동락(與民同樂)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다.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며, 이를 주나라 문왕에 비유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혼자만의 즐거움 즉, 독락(獨樂)을 추구한 하나라의 폭군 걸왕은 “저놈의 해 언제나 없어지려나. 차라리 저놈의 해와 함께 죽어버렸으면.”이란 노래를 들었음을 지적한다. 백성들이 그와 함께 죽어 없어지기를 바랄 지경이라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 지천이라도 어찌 혼자 즐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지은이는 오늘날 사람들이 바로 ‘걸왕의 독락’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고 있음을 본다. 개인적인 정서 만족을 낙의 기준으로 삼고, 차별성만 강조한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공감이 얼마나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 무지함을 질타한다. ‘노자’와 ‘장자’에선 이같은 관계론이 최대한의 범주로 확장된다. 자연(自然)이라는 개념으로 사회와 인간을 포용하며, 지배층이 아닌 민초의 철학, 약한자의 철학으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 묵자의 겸애(兼愛)와 순자의 교육론은 물론, 비정한 군주철학으로 규정되고 있는 한비자의 법가이론도 결국 ‘사회와 인간 관계’란 화두를 걸고 오늘에 관철되고 있음을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다.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儒林(240)-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40)-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이러한 자공의 약점을 파고들었던 대부 숙손무숙은 특히 집요해서 자공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자를 비방하여 자공의 마음을 떠보고 있는데, 이 장면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숙손무숙이 공자를 다시 비방하였다. 이에 자공이 말하였다. ‘그러지 마시오. 선생님은 비방할 수가 없는 분입니다. 다른 현명한 사람은 언덕과 같아서 누구나 넘어갈 수가 있으나 선생님은 해와 달 같은 분이어서 아무나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비록 남들이 자기 스스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끊으려 한다 하더라도 해나 달에게 무슨 손상이 있겠습니까. 그러는 사람들의 분수를 모름을 더욱 드러내게 될 따름입니다.’” 자공은 스승에 대한 비난을 ‘엿볼 수 없는 궁궐’,‘하늘에 이르는 사다리’,‘해나 달 같은 영원한 존재’라는 식으로 변호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자공은 외교술과 치재에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자기 스승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던 인격자이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공은 공자가 죽자 다른 제자들은 3년 동안 복상을 하고 헤어졌는데, 자공만은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6년간이나 무덤을 보살폈던 제자 중의 제자였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하였다. “지금 이 순간을 현재의 눈으로 보지 말고 먼 영원의 눈에서 현재를 보라.” 자공은 스피노자의 말처럼 스승 공자가 해와 달 같은 영원한 존재임을 꿰뚫어 본 제자였으니 공자가 2500년 후인 오늘에도 해처럼 한낮에 빛나고 달처럼 한밤중에도 빛나고 있음은 그러한 제자들을 두었으므로 그의 사상이 계승 발전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제자 자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무사였던 자로가 공자가 위나라에 머무르고 있을 때 분가하여 읍재로 나아가 포땅을 다스렸다. ‘공자가어’는 자로가 포땅을 다스리던 3년째 되던 해 공자가 그곳에 들렀던 인상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가 포땅의 경계로 들어오면서 말하였다. ‘훌륭하다. 유는 공경스러움으로써 신의가 있다.’ 다시 고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하였다. ‘훌륭하다. 유는 충성되고 신의가 있으면서도 관대하다.’ 또 자로의 공소(公所)에 이르러 말하였다. ‘훌륭하다. 유는 밝게 살핌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한다.’ 이때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자공이 수레의 말고삐를 잡고 있다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자로의 치적을 보시지도 않으시고 세 번이나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셨으니 훌륭하다고 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그의 정치업적을 보았다. 이곳 경계 안으로 들어오니 밭갈이가 잘 되어있고 김이 잘 매어져 있으며 도랑이 깊게 잘 파져 있었다. 이것은 자로가 공경스러움으로써 신의가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곳 고을 안으로 들어와 보니 집과 담장이 훌륭히 손질되어있고 나무가 무성히 자라있었다. 이것은 자로가 신의가 있으며 관대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구차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자로의 공소에 이르고 보니 마당이 매우 맑고 한적하며 밑에 사람들이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 이것은 자로가 밝게 살피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자로의 다스림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비록 세 번 훌륭하다고 칭찬했다고 하나 어찌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
  • [영화속 수능잡기] 패치 아담스

    [영화속 수능잡기] 패치 아담스

    “나를 존경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는 히틀러와 같은 전체주의자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힘으로 타율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그러나 전체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엄밀히 말해 진정한 힘은 아니다. 타율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힘을 ‘권위주의’라고 이름한다. 권위주의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옳다. 역사를 살펴 보라. 타율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얼마나 많은 체제가 스러져 갔는지. 나사렛의 예수는 김두한 같은 주먹도 없었다. 빌 게이츠와 같은 돈도 없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12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왕자로 태어나 부귀와 영화를 내던져버린 석가모니는 또 어떻게 수많은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을까. 그들에게는 분명 무엇인가가 있었다. 인격으로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 차분하게 인간의 심성에 호소해 설득을 이끌어내는 힘, 역사상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히틀러와 같은 자들이 가지고 있는 ‘딱딱한 힘’이 아니라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부드러운 힘’이었다. 나폴레옹이 ‘딱딱함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간디는 ‘부드러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학식이 풍부한 사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은 분명 타인으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실력만으로는 진정한 존경을 이끌어낼 수 없다. 따뜻한 인간성이 결여된 실력은 권위주의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우애스러운 사람도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성과 도덕성은 훌륭하지만 실력이 형편없는 교사를 생각해보라. 학식과 실력은 인간성과 도덕성의 도움이 없이는 진정한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부드러움과 딱딱함을 동시에 가져야 마땅하다. 부드러움만 있으면 유약하고 딱딱함만 있으면 거칠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딱딱함과 부드러움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노자의 ‘도덕경’에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있다. 부드러움이 반드시 강함을 이긴다는 말이다. 똑똑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이 결국 바위를 뚫는 법이다.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주인공 패치 아담스는 의사이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다. 권위주의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의 차림새는 영락없는 광대다. 그가 의사로서 가진 유일하지만 특별한 무기는 바로 웃음이다. 아담스는 자신의 웃음으로 환자들을 치료한다. 영화는 패치 아담스를 통해 병원은 근엄한 의사들의 숙소가 아니라 환자들의 것이란 사실을 일깨운다. 그 배경에는 의사들의 권위주의에 대한 신랄한 조롱과 풍자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패치 아담스에게 유머라고 하는 부드러움만 있고, 의사로서의 실력과 학식이라는 딱딱함이 결여되어 있다면 우리는 패치 아담스를 진정한 의사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뼈가 있고 살이 있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존재한다. 실력과 인간성,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겸비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한 인간의 진정한 권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케인즈’ 조순 前경제부총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케인즈’ 조순 前경제부총리

    조순 전 부총리는 한국의 ‘케인스(J.M.Keynes)’다. 아니다, 관악산 ‘산신령’이다. 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행을 거른 적이 없다. 또 있다. 산에 오를 때마다 ‘진짜 산신령’과 고난도의 선문답을 질펀하게 주고받는다. 북망산에 누워 있는 이태백과 두보가 놀라 깨어날 정도다. 그가 직접 지은 산시(山詩) 하나를 감상해 보자. ‘산위의 어긋어긋 늙은 소나무/꾸불꾸불 구름으로 용처럼 들어가네/평생의 친구라곤 새와 참새뿐/밤낮으로 의지하며 여름 겨울 보내누나’(山上參差列老松/入雲屈曲似蒼龍/巢枝鳥雀平生友/日夜相依過夏冬. 제목 두타산노송(頭陀山老松).2002년 8월23일 작.‘參差’는 ‘참치’로 읽는다.) 조 전 부총리는 제자들과 산행을 자주한다. 그때마다 제자들은 ‘산신령’이라는 표현을 아무 거리낌없이 한다. 그는 오히려 즉흥시를 지어 화답까지 한다. 이래저래 지어놓은 산시(山詩)만 해도 수백편에 이른다. ‘산신령’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 그는 6공화국 시절 경제부총리를 맡았다. 그때 자택인 서울 봉천동에서 관악산을 넘어 출근하곤 했다. 하루는 출입기자들과 함께 관악산을 올랐다. 그런데 산을 타는 모습이 마치 구름 위를 사뿐사뿐 걷는 듯했다.30대의 젊은 기자들이 60대의 부총리를 뒤따르지 못했다. 그저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앞서갈 뿐이었다. 이를 본 누군가 ‘야, 산신령이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한시(漢詩) 실력은 중국에서도 알아줄 만큼 해박하다. 중국 방문 때 즉석에서 한시를 읊으며 일필휘지로 써내려가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선친한테 한문을 배웠다. 논어·맹자 등도 일찌감치 터득했다. 그는 요즘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회장직을 맡아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발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일성록’은 조선시대 정조임금부터 고종까지 임금이 직접 쓴 일기다.‘승정원일기’는 60년 사업이고 ‘일성록’은 30년 사업이다. 학계에서는 ‘일성록’이 발간되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본다. ●스테디셀러 ‘경제학원론’ 조 전 부총리는 딱딱한 경제얘기를 하지 말자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나 요즘의 화두가 ‘경제’인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는가. 그는 우리나라 경제학계의 거두로 꼽힌다. 그가 지은 ‘경제학원론’은 전공에 관계없이 대학생이면 누구나 일독할 정도로 대학가의 ‘스테디셀러’이다. 얼마 전에는 제자인 이정우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에게 ‘분배론’을 더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쓴소리를 던져 관심을 모았다. 서울 구기동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하얀 머리와 흰눈썹만 빼면 여전히 동안의 얼굴. 먼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의 관계를 물었다. “내가 교수 시절 그는 무척 똑똑한 대학생이었지. 그래서 ‘경제학원론’을 만들 때 다른 제자 5명과 함께 참여시켰어. 그는 인플레이션 부분을 맡았지. 숙제를 줬더니 아주 똑떨어지게 정리했더군.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3,4차례 만날 정도로 여전히 아끼는 후배지. 얼마전 언론에서 쓴소리 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은 치켜세우려고 한 게 그렇게 됐어.” 현 정권의 경제운영에 대한 ‘고언’을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 있어야 해.”라고 했다. 이어 “386들은 (머리가)우수하나 경험이 적어. 그러다보니 자기들만 아는 이론이 바탕이 되고 있지. 결국 현실과 맞지 않게 되고 말아.”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도 실사구시야말로 (경제정책의)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여겼다.”면서 “실사를 파악한 뒤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곧 국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어려움의 씨는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며 경제난의 뿌리 깊은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386세대 머리 우수하나 경험 적어 걱정” “70년대 관치경제에 의해 공업화를 이루다보니 대기업 중심으로 성공을 거두었어. 그러나 이면에는 불균형성이란 이중구조가 생겨났지.80년대에 이를 치유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어. 중소기업은 잘 안되고 정치적으로 민주화 요구가 크게 일어난 시기였지. 결국 문민정부가 등장했으나 경제운영은 그 전과 다름이 없었어.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고 국제 경쟁력은 떨어지고.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았지.” 김대중 정권 때의 관치개혁도 들춰냈다. 즉 금융·노동 등 4대 공공부문을 개혁하면서 2년 만에 IMF를 극복했으나, 카드남발과 소비진작, 건설경기를 부추기는 등의 내수를 통한 성장정책의 실정을 꼬집었다. 결국 참여정부가 이를 고스란히 넘겨 받았지만 비슷한 관치개혁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시장경제의 원리가 아닌 개발연대의 패러다임식 같은 경제운영, 예를 들어 동북아 중심 성장, 금융허브, 경제특구 등 과거의 방법을 답습 하다보니 실사구시는 여전히 뒷전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경제는 오랜 지병처럼 일조일석에 낫지 않는다. 방법은 딱히 없으며 시일을 두고 치유해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과 기업의 사기를 올리고 흐트러진 사회질서를 우선적으로 회복시켜야 원동력이 생겨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국민과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책임감을 통감하고 ‘좀더 잘해 보자.’는 사회적 운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부연했다. ●6·25때 통역장교로 임관 화제를 돌려 수능부정 사태 등 최근의 교육문제를 꺼냈다. 그러자 “기러기 아빠가 있는 나라가 도대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수능처럼)전국적으로 똑같은 기준을 정해도 (교육제도의)효과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경쟁이 없는 교육은 국가를 위해서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며 대학마다 자율권을 많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익과 좌익 등 최근의 분열양상과 관련, 그는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을 예로 들었다. 남북분단과 좌·우익 투쟁의 역사성이 물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늘 분열의 소지가 많다는 것. “가급적 봉합하는 정책이 많이 나와야 해. 정책 입안자들은 말 한마디라도 조용하게 하고 분배 얘기는 될수록 꺼내지 말아야 돼.” 그는 1928년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에 유학자 조정재의 1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49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그는 1년여 동안 강릉농고에서 영어교사를 했다. 그 경력으로 그는 6·25때 통역장교로 임관했다.51년에는 육군사관학교 영어교관으로 발탁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육사11기생들이 그의 첫 제자였다. 1957년 대위로 제대한 그는 경제학 연구를 위해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11년 뒤 귀국, 서울상대 교수로 몸담았다. 이때 정운찬 현 서울대 총장, 좌승희·김승진 박사 등이 그의 제자로 몰리면서 ‘조순학파’라는 한국경제학계의 한 맥을 이루게 됐다. “산이란 춘하추동 언제나 고향이지. 좌우명? ‘도(道)를 밝혀 공(功)을 계산하지 말고, 바름(正)과 의리를 밝혀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이지.” 바둑 아마5단인 그는 최근 조훈현씨와 4점 접바둑을 두어 이겼다. 또 논어와 노자에 빠진 것도 즐거움 중 하나이다.24년째 봉천동에 살고 있는 그는 매일 아침 새벽 서울대까지 부인과 함께 산책을 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8년 강원도 강릉 출생 ▲49년 서울대졸업 ▲67년 캘리포니아대 경제학박사 ▲68년 서울대상대 부교수 ▲70∼88년 서울대 경제학과교수 ▲81년 학술원회원 ▲92∼93년 한국은행총재 ▲93년 도산서원 원장 ▲95년 서울시장(초대민선) ▲97∼98년 한나라당 총재 ▲98∼2002년 15대국회의원 ▲2002년 민족문화추진회 회장, 명지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바른경제동인회 회장 등으로 활약 ■ 주요저서 경제학원론, 한국경제의 현실과 진로, 중장기 경제개발 전략에 관한 연구,J.M. 케인즈, 화폐금융론, 한국경제의 이해, 조순 경제논평 등
  • [영화속 수능잡기] 황야의 7인

    [영화속 수능잡기] 황야의 7인

    멕시코 접경의 한 마을. 농부들은 매년 마을을 노략질해 가는 칼베라 일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결국 마을을 지키는 싸움을 시작하기로 하고,7명의 총잡이를 고용한다. 마을에 도착한 7인의 총잡이는 방어벽을 쌓고 총 쏘는 법을 훈련시키면서 칼베라 일당에 맞서기 위한 준비를 해나간다. 이상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할리우드식으로 리메이크했다는 영화 ‘황야의 7인’의 대략적인 스토리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쟁쟁한 스타들 중의 한 명은 베르나르 역을 맡은 찰스 브론슨이다. 그는 직업적인 총잡이다. 우수가 짙게 드리운 냉정한 얼굴과는 달리 그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한다. 아이들도 베르나르를 좋아한다.“저도 크면 아저씨처럼 총잡이가 될 거예요.” 아이들은 눈부신 사격솜씨를 가진 베르나르를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의 이면에는 비겁한 아버지들에 대한 분노가 있다. 자신들의 아버지들은 총을 잡고 싸울 줄도 모르고 그저 농사만 짓는다고 아이들은 불평이 대단하다. 이 아이들에게 베르나르는 이렇게 말한다.“겁쟁이가 전쟁터 한 가운데로 스며든단다. 진짜 겁쟁이는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란다.” 아이들은 왜 아저씨가 겁쟁이냐고 따진다. 그러자 베르나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너희들의 아버지는 농부들이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릴 줄 안단다. 씨를 부리고 기다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기다릴 수 없단다. 씨를 뿌리고 기다릴 줄 아는 용기가 없는 내가 바로 겁쟁이란다.” 어느 해에는 불볕 더위에도 비 한 방울 뿌리지 않지만 어떤 해에는 우기가 훨씬 지난 초가을의 폭우로 농사를 망쳐놓기도 한다. 한 마디로 자연은 믿을 수가 없다. 예측불가능한 자연을 믿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일종의 도박이다. 도박에는 당연히 자신의 밑천을 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폭우나 우박으로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뻔히 알면서도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기다린다. 그것은 분명 용기에 속한다. 성철스님은 눕지 않고 자지도 않는 소위 ‘장좌불와’ 수행을 팔 년 동안이나 행했다고 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행을 그렇게 오랜기간 했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17세기 조선 시단(詩壇)에서 이름을 날렸던 김득신은 백이전(伯夷傳)을 1억 1만 3000번을 읽었고, 노자전(老子傳)과 분왕(分王) 등은 2만번을 읽었다고 한다. 이런 노력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반드시 총과 칼을 잡거나 주먹을 쓰는 자만이 ‘용기 있는 자’의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황야의 7인’에서의 총잡이들은 용기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르나르의 말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 그 결과를 겸허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용기의 소유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존 스터지스 감독, 율 브린너·엘리 웰라치·스티브 매퀸·찰스 브론슨 출연,1960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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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퇴르유업은 강원도 청정인증 목장 원유로 무(無)지방우유 ‘팻-프리(Fat-Free Milk)’를 출시했다. 우유 속 지방을 0%로 만들어 우유입자의 농도를 높인 제품으로 200㎖ 600원,930㎖ 2100원. ●한국야쿠르트는 저과즙 어린이음료 ‘귀여운 내친구 곰★탱이’ 파우치 제품인 ‘비타친구’,‘딸기친구’ 2종을 선보였다. 비타민C, 칼슘, 필수 아미노산 3종이 들어 있다. 가격은 130㎖ 800원. ●CJ는 소금 속의 불순물 및 유해성분을 제거한 기능성 소금 ‘자염(煮鹽)’을 내놓았다. 알칼리성 소금으로 맛이 순하고 소금 특유의 쓴맛을 없앴다. 가격은 200g 2200원,500g 4000원,1㎏ 7800원이다. ●미국 코메트사가 변기 청소용 브러시 ‘클린앤플러시’를 선보였다. 물에 적셔 사용하고, 청소 후에는 변기 물에 버리면 된다. 클리너 핸들과 브러시팁 5개가 포함된 키트가 1만 1900원, 브러시팁 8개들이 리필팩은 6900원. 홈페이지(www.funshop.co.kr). ●네스카페는 커피 원두를 냉동 건조공법으로 볶아 진하고 풍부한 맛과 향의 네스카페 ‘자바’와 부드럽고 순한 맛의 네스카페 ‘모카’를 출시했다. 진공포장 지퍼백 150g(3900원),500g(1만 1000원)과 믹스포장 20개들이(2000원),70개들이(6500원) 등 다양한 형태로 나왔다. ●생물산업 벤처기업인 제노자임은 동충하초를 이용한 화장품 ‘디라닌 R4’를 내놓았다. 멜라닌 색소 생성을 억제하는 비타민C, 유기산 등이 첨가됐다.75㎖ 1세트에 8만 8000원.(02)991-9909. ●해태음료는 18가지 야채와 과일로 만든 100% 무가당주스 ‘야채과일 100’을 내놓았다. 당근, 토마토, 브로콜리, 오렌지 등이 들어 있으며, 설탕을 넣지 않아 야채와 과일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비타민A·C·E와 철분 하루 권장량이 함유돼 있다. 페트(1ℓ)병의 가격은 2500∼2800원 선.
  • 儒林(223)-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23)-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자로가 공자를 수행하고 길을 가다가 뒤처져 스승의 일행을 잃어버렸다. 공자의 행방을 찾고 있던 중 막대기에 대바구니를 매달아 걸머지고 걸어가는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자로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께선 저희 선생님을 못 보셨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대답하였다. ‘선생이라니 도대체 누가 선생이란 말이오.’ 노인은 들고 가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두고 풀을 뽑으며 말하였다. ‘사지를 움직여서 일도 하지 않고, 오곡(五穀)을 나누어 뿌리지도 않고 이를 분별하지도 못하는데 누가 선생이란 말이오.’ 자로는 손을 모아잡고 공손히 서 있었다. 노인은 자로를 집에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묵게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고 또 자기의 두 아들을 만나게 하였다. 다음날 자로가 공자에게 돌아와 사연을 얘기하자 공자는 ‘숨어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는 자로로 하여금 되돌아가 그 노인을 찾아보도록 하였다. 그러나 자로가 가보니 노인은 이미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없었다.” 이 일화의 테마도 공자가 노자의 도가사상을 따르는 숨어 사는 사람들로부터 ‘사지를 움직여 일도 하지 않고, 오곡의 씨도 뿌리지 않는 게으른 지식인’으로 멸시를 당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마치 공자가 같은 은자인 장저와 걸닉으로부터 ‘천하를 주유하면서 나루터도 모르는’,‘자기 마음에 드는 군주를 찾아 천하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멸시를 당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장면에서도 스승에게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낱낱이 고하면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자로의 교활한 속셈이 엿보이는 것이다. 노인이 공자를 ‘사지를 움직여 일도 하지 않고 오곡도 구별하지 못하는 백면서생’으로 비웃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로가 그 노인이 자신을 데려가 하룻밤을 편안하게 재워줬을 뿐 아니라 두 아들까지 만나게 해주었다는 가족적인 인간애를 발휘하였음을 굳이 고백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공자가 주유열국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그동안 제자들은 자기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정에 굶주려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객지생활 동안 공자는 동가식 서가숙 하면서 아내 기관( 官)과 아들 공리(孔鯉)를 그리워하였을 것이다. 공자의 생애 중 그의 가족에 대한 기록은 아주 짤막하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아내 기관씨는 일찍 죽고, 공자는 외아들 공리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편하게 묵고 노인의 두 아들까지 만나고 왔다는 자로의 말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공자의 마음을 갈갈이 찢었을 것이다. 그뿐인가. 자로는 공자에게 노인으로부터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굳이 고백하고 있는 것은 갈갈이 찢긴 공자의 마음에 불까지 지르는 잔인한 행위였을 것이다. 그 무렵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궁핍한 생활에 지쳐 있었다. 불안한 정세에 이 나라 저 나라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도망쳐 다니기에 바쁠 뿐 먹고 사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이런 제자들의 걸인과 같은 모습을 보는 공자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생면부지의 숨어 사는 노인이 자신에게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였는데 평생을 믿고 따르는 스승 그대는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먹여주고 어떻게 재워주고 있는가를 따져 묻는 준엄한 질책이 바로 자로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불만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던 것이다.
  • 儒林(222)-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22)-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자로의 대답을 들은 장저가 다시 물었다. ‘노나라의 공구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게 뭘 알려 하시오.’ ‘공구라는 분께서 나루터가 있는 곳을 물어보도록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저가 대답하였다. ‘노나라의 공구라면 천하를 주유하면서 모르는 것이 없을 터인데 어떻게 나루터쯤을 내게 묻고 있는 것이오.’ ‘도(道)를 안다는 것과 갈 길(道)을 안다는 것은 서로 다르겠지요.’ ‘똑같은데 뭘 그래.’ 그러고 나서 장저는 대답하였다. ‘나는 모르오. 저 사람이 나루터가 있는 곳을 알고 있을 것이오.’ 장저는 함께 밭일을 하고 있던 걸닉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래서 자로가 걸닉에게 물으니 걸닉이 말하였다. ‘당신은 뉘시오.’ ‘중유라는 사람입니다.’ ‘그럼 당신은 노나라 공구의 제자요.’ ‘그렇습니다.’ 자로가 대답하자 걸닉이 말하였다. ‘지금 세상은 온통 물이 도도히 흐르는 것과 같아 천하는 어지러워서 도무지 손 쓸 여지가 없소. 이런 판국에 그 누가 강물의 방향을 바꿀 수가 있으며 누구와 손을 잡고 변혁을 시도해 보겠다는 거요. 또한 당신도 사람을 피해 다니는 사람(공자)을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을 피해 사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면서도 밭갈이는 멈추지 않았다. 자로가 돌아와서 이 사실을 고하자 공자께서는 언짢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새와 짐승과 함께 어울려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천하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그 누구와 더불어 살겠느냐.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개혁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유명한 일화는 노자의 고향이었던 초의 속국 채나라에서 공자가 당한 한편의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장면에서도 공자와 자로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엿보인다. 물론 노자의 도가사상을 따르는 장저와 걸닉에게는 나루터도 모르고 사람을 피해 도망쳐 다니는 공자가 어리석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혹 그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돌아와서 공자에게 자초지종을 낱낱이 고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섭공이 ‘스승 공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자로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 공자의 심기를 건드린 것처럼 장저와 걸닉의 빈정거리는 말을 그대로 공자에게 전함으로써 자신의 불만까지 간접적으로 전하려 하였던 불손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가 언짢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언짢게 생각하였던 대상은 자신을 노골적으로 비웃은 장저와 걸닉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낱낱이 고함으로써 불만을 드러내 보인 자로였을 것이다. 공자의 가장 용감하고 충실한 애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이러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불만을 나타내 보인 것은 이 무렵 공자와 제자들 간에 불화가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공자에게는 제자들과의 불화가 그 어떤 정치적 박해보다, 소외감보다, 궁핍보다, 이교도들의 비웃음보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는데 역시 논어의 미자(微子)편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 儒林(221)-제2부 周遊列國 제5장 喪家之狗

    儒林(221)-제2부 周遊列國 제5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논어에 보면 섭공과 공자가 두 번을 만나 서로 얘기를 나눈 것으로 되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섭공은 공자에게 ‘좋은 정치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논어는 기록하고 있다. “정치란 간단한 것입니다. 정치란 먼 곳의 사람들은 흠모하여 찾아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가까운 곳의 사람은 기뻐하며 따라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공자의 대답은 다목적용이었다. 섭공에게 정치란 ‘먼 곳의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해야 합니다.(遠者來)’라고 대답했던 것은 먼 곳에서 찾아온 자신의 입장을 빗대어서 암시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섭공은 애당초 공자를 포용할 만한 그릇이 못되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섭공은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마을에 직궁(直躬)이란 행실이 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기의 아버지가 양을 훔쳤을 때 자식으로서 그 사실을 증언하여 체포되도록 하였는데 이를 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우리 마을의 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기는데 진실로 강직함이란 그런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와는 달리 ‘여씨춘추’에는 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나라의 직궁은 자기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고발하여 관리들이 아버지를 잡아다 죽이려하자 이번에는 아버지대신 처형을 받겠다고 요구한다. 관리가 그를 처형하려하자 직궁은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고발하였으니 신의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또 아버지를 대신하여 처형을 받으려 하니 효성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처럼 신의가 있고 효성이 있는 사람을 처형한다면 나라 안에 그 누가 또 처형당하지 않겠습니까.’하고 아뢴다. 초나라의 임금은 그 말을 듣고 옳다고 생각하여 직궁을 용서해 주는데,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이상하구나. 직궁의 신의라는 것은. 한 아버지를 두고 두 번이나 명성을 취하려 하다니.’라고 탄식하였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처럼 천륜의 예를 중시하였으며 직궁과 같은 신의는 없는 것보다 못하며 직궁과 같은 효성도 없는 것보다 못하다고 본 것이었다. 어쨌든 공자는 두 번이나 섭공을 면담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였다. 직궁에 관한 얘기가 암시하듯 섭공의 가치관과 공자의 가치관에는 일치할 수 없는 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다시 소외된 공자는 어쩔 수 없이 섭나라를 떠나 채나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돌아오는 도중 공자는 두 가지의 의미심장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채나라와 섭나라는 중국 장강을 중심으로 하는 남방의 강국 초나라의 지배를 받던 속국. 초나라는 바로 공자의 유가사상과 정반대의 도가사상을 낳은 노자의 고향이 아닐 것인가. 자연 노자의 도가사상을 좇아 자연을 벗삼아 신선을 꿈꾸며 은둔생활을 하는 도인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러므로 이 무렵의 공자는 위로는 정치가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안으로는 제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밖으로는 전혀 사상이 다른 이교도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있어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이었다. 이러한 사면초가의 처지를 암시하는 내용이 섭나라를 떠나 채나라로 돌아오는 공자에게 연거푸 일어나는데 첫 번째 장면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장저와 걸닉이란 두 사람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다. 공자는 그들의 곁을 지나다가 자로를 시켜 그들에게 나루터가 있는 곳을 물어 보도록 하였다. 자로가 가까이 가니 장저가 먼저 물었다. ‘저 수레의 말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로는 대답하였다. ‘공구라는 분입니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45)

    儒林 214에는 處世術(머물 처/세상 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람들과 사귀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수단’을 일컫는 말이다. 處는 ‘살다’‘그치다’‘정하다’‘처치하다’‘처자’‘곳’ 등의 뜻으로 쓰인다.用例(용례)에는 處方箋(처방전:처방의 내용을 적은 종이),處身(처신: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 등이 있다. ‘世’자 역시 甲骨文에는 보이지 않지만 金文의 字形(자형)은 매우 다양하다. 학자에 따라서는 ‘돗자리를 짜고 새끼를 꼬는 데 쓰이는 도구’‘葉(잎 엽)자의 古文(고문)으로 줄기와 잎을 그린 象形字(상형자)’‘세 개의 十자로 30년을 나타낸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世의 뜻에는 ‘인간’ ‘시세’ ‘세대’ ‘대(代)’ ‘해’ ‘평생’ 등이 있다. 쓰이는 單語(단어)로는 世居(세거:대대로 삶),世態炎(세태염량: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 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름),蓋世之才(개세지재:아주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曲學阿世(곡학아세: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 등이 있다. 처세의 類型(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능한 군주 섬기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하찮은 벼슬도 사양하지 않으며, 일단 벼슬길에 오르면 현명함을 최대한 발휘한 柳下惠(유하혜) 같은 유형이다. 두 번째는 不正(부정)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임금과 백성이 바르지 않으면 섬기지도 다스리지도 않은 淸廉(청렴)과 志操(지조)의 상징인 伯夷(백이)이다. 그는 주나라 武王(무왕)의 行爲(행위)가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延命(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세 번째는 자신을 일컬어 ‘하늘이 낸 만인 가운데 먼저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며 혼란한 세상을 조금도 回避(회피)하지 않고 重責(중책)을 自任(자임)한 伊尹(이윤)과 같은 삶이다. 유하혜와 같은 삶은 자칫 無所信(무소신),無原則(무원칙)의 機會主義로 흐를 경향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백이와 같은 유형은 올곧음이 지나쳐 我執에서 헤어나지 못할 우려가 있으며, 이윤과 같은 경우는 자기만이 최고라는 選民意識(선민의식) 내지 獨善(독선)에 빠질 수도 있다. 자기 主張(주장)보다 남의 의견을 謙虛(겸허)하게 收容(수용)할 줄 아는 유하혜의 인품과 결코 不義(불의)와 妥協(타협)할 줄 모르는 백이의 강인함, 그리고 내가 최고의 適任者(적임자)라는 所信(소신)을 고루 갖춘 사람이 있다면 시대를 선도할 큰 선비요,知性人(지성인)으로 推仰(추앙) 받아 마땅할 것이다. 맹자는 孔子(공자)를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보고 공자를 일컬어 ‘때를 알고 때에 가장 맞게 행동한 성인(聖之時者·성지시자)이라고 평가하였다. 일찍이 老子(노자)는 처세의 방법으로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은 障碍物(장애물)이 없으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찾아 그냥 흐를 뿐이다. 물은 萬物(만물)에 惠澤(혜택)을 주면서 상대를 拒逆(거역)하지 않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물처럼 거스름이 없는 生活態度(생활태도)를 가져야 失敗(실패)를 면할 수 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문화마당]타이타닉호의 침몰/김욱동 서강대 교수· 문학비평가

    몇 해 전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 영화가 그렇게 큰 인기를 끈 데에는 여러 까닭이 있을 터이지만 90여년 전에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의 뼈대에 화려한 로맨스의 옷을 입힌 것도 한몫을 톡톡히 하였다.1912년 타이타닉 호를 완성한 영국은 그야말로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 이름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장사 타이탄의 이름을 따서 타이타닉 호라고 붙였다. 이 배는 단순히 호화 대형 여객선의 의미를 떠나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승리요 개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희도 잠깐 4월14일 대서양에서 처녀 항해를 하던 타이타닉 호는 뉴펀들랜드 근처에서 거대한 빙산과 부딪쳐 그만 침몰하고 말았다.1500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한 이 사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해양 참사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 영화나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환경 위기를 다룬 녹색 영화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타이타닉 호는 다름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이며, 이 호화 여객선을 마침내 대서양에 가라앉게 만든 거대한 빙산은 바로 환경 오염이다. 배는 바다 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있는데 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사랑에 빠진다. 마찬가지로 지구는 지금 온갖 환경 오염으로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데도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환경 위기를 부르짖는 환경론자나 환경운동가는 종교적 열정에 들떠 있는 광신도의 혐의를 받기 일쑤이다.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시사하는 바 자못 크다. 타이타닉 호는 선실은 물론이고 이제는 갑판 위에까지 물이 차기 시작한다. 배의 악단은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으로 시작하는 찬송가를 연주한다. 그런데 물이 차는 바람에 악단은 연주를 도중에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데 종교도 큰 힘이 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대목이다. 몇몇 학자들은 지구는 아직 자정능력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오염을 그렇게 두려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환경 위기에 따른 재앙을 부추기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환경 위기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꾸짖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인류가 맞부딪쳐 있는 환경 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지구가 앞으로 50년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줄잡아 2050년을 재앙의 해로 잡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2050년이란 아마존 유역을 비롯한 지구상에 아직 남아 있는 열대 우림이 모두 파괴되는 시점이며,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 연료가 완전히 고갈되는 시점이다. 바닷가의 개펄이 지구의 온갖 노폐물을 정화시키는 콩팥이라면, 열대 우림은 지구의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한다. 더구나 열대 우림에는 아직도 인간이 알지 못하는 수만 가지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또한 화석 연료가 완전히 고갈되고 나면 인류가 그동안 공들여 쌓아올린 문명의 탑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맞물려 있어 2050년경에 지구는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바다 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는 이 지구라는 배를 건져내야 한다. 건져낼 수 없다면 가라앉는 속도라도 좀더 늦추어야 한다. 배가 떠 있는 동안 인류는 지혜를 한데 모아 어떻게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스피노자는 일찍이 “비록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하였지만 지구가 멸망하는데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과나무를 심기 전에 사과나무가 자랄 수 있는 땅을 먼저 보살피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김욱동 서강대 교수· 문학비평가
  • 김종영미술관 ‘문자향’ 展

    한국 추상조각을 이끈 조각가 우성(又誠) 김종영은 드로잉 못지않게 서예작품도 많이 남겼다. 김종영이 서예에 천착한 것은 추상조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의 구성과 완결된 구조가 서예와 관련을 맺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 마련된 ‘문자향(文字香)’전은 형태의 본질을 찾는 예술가 김종영이 서예를 통해 얻고자 한 정신성과 조형미를 우리 시대에 어떻게 계승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자리다. 전시는 김종영의 예술세계를 정신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작가들을 통해 오늘날 조각에 있어서 ‘문자향’의 가능성을 찾는다. 전시에는 김종영의 대표적인 서예작품과 드로잉, 조각과 함께 ‘문자향’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김영대 김종구 노주환 정광호 최인수 등 작가들의 작품이 나와 있다. 김종영의 서예작품으로는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가 쓴 ‘애련설’,‘노자의 도덕경 중 제2장 양신(養身)’,‘한산(寒山)’ 등을 볼 수 있다. 초대 작가들은 문자를 조형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최인수의 선으로 이루어진 조각은 문자의 추상적 형상을 단순화한 작품으로, 볼륨보다는 긴장과 이완의 율동을 강조했다. 김종구는 쇳덩어리를 갈아 가루로 바닥에 글씨를 쓰고 그 영상을 벽에 비춘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쇳가루로 추사 김정희의 ‘화법서세’ 예서 대련(對聯)을 재현했다. 김영대는 서화를 조각으로 꾸몄다. 동(銅)을 용접해 만든 그의 동죽(銅竹) 작품들은 사군자의 격조를 느끼게 한다. 노주환은 지금은 사라진 납활자를 이용해 문자의 기둥을 세웠다. 특히 그의 작품 ‘시’는 김종영의 어록을 활자로 음각 구성, 관람객들이 한지 부조를 떠갈 수 있게 했다. 정광호는 항아리나 경판(經板) 같은 대상을 속은 비워내고 그 형태만 동선(銅線)을 사용해 문자모양으로 만든 작품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문자를 이용한 이들 작가의 작업에서는 그윽한 문자의 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곧 ‘옛 것에 비추어 새 것을 만든다.’는 법고창신의 정신이기도 하다.12월5일까지.(02)3217-6484.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가평의 자연과 맛

    [뒷골목 맛세상] 가평의 자연과 맛

    경춘선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남양주에서 가평으로 접어드는 어름에 ‘어서 오세요. 자연을 가슴에 담아가는 가평’이라는 선전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아름다운 문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덜컥, 하고 가슴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자연을 가슴에 담아가라고?하기는 가평이야말로 산과 물 같은 자연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고장임에 틀림없다. 군내를 관통하여 흐르는 북한강과 그 강이 군데군데 빚어놓은 청평호반이며 남이섬, 그리고 대성관광지 같은 절경들, 거기에 어울려 함께 이어지는 유명산과 운악산, 축령산, 명지산 등의 장려한 산자락들은 얼마든지 둘러보아도 결코 싫증나지 않는 풍광이다. 그러나 내 가슴에 덜컥, 걸린 자연은 그러한 풍광들보다는 그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연이었다. 일찍이 노자는 세상살이의 지혜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하였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게’이다. 그 무위자연에 노자는 덧붙인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살아가는 일을 물 흐르는 것처럼 해라. 아아, 단 한번이라도 나는 자신의 삶을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게’ 놓아둔 적이 있으며,‘물 흐르는 것처럼’ 흘려준 적이 있으랴. 계절마저도 가을이 깊어지고 어느 날 아침에 하얗게 무서리가 내린 끝에 저마다 제 빛깔이며 향기를 뽐내던 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시든 대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렇듯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의 마지막이란 시들어 말라붙다 못해 앙상한 형해(形骸)만으로 바둥대다가 끝내는 거친 시간의 바람 속으로 한 줌 먼지가 되어 사라지게 마련일 터이다. 불과 엊그제까지도 불붙듯 온 산에 붉고 혹은 노랗던 단풍들마저 낙엽이 되어 하릴없이 산야에 뒹굴고, 거기에 추수를 끝낸 빈 들판들도 덧없이 적막감에 싸인 채 보는 이의 눈을 시리게 한다. 언뜻 돌이키면 늙는다는 것은 저렇듯 적막한 늦가을의 풍경과 다름 없다. 비단 사추기(思秋期)의 여인만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낸 삶 속에서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것 없이 허방을 짚는 듯한 이에게는 늙어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길이란 더더욱 적막하고 허무한 풍경이나 다름 없을 터이다. 그리하여 화려한 빛깔과 향기 대신에 시든 대로만 남은 저 많은 생명들 또한 자신의 삶처럼 처연하다 못해 추하게마저 여겨질지도 모른다. 만일 그대 또한 자신의 살아낸 삶이 처연하다 못해 추하게마저 여겨진다면,‘가슴에 자연을 담아가라’는 가평의 여행길에 나서기를 권하고 싶다. 가평에서도 운악산 가는 어름에 있는 ‘꽃무지풀무지’(031-585-4875)라는 야생 수목원에 들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한나절을 좋이 늦가을의 햇살 아래 수목원 여기저기 한가롭게 거닐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누가 알랴. 번쩍 그대의 눈이 열려 그대가 전혀 몰랐던 그대의 자연을 만나게 될지. 원래 꽃무더기 풀무더기라는 뜻인 ‘꽃무지풀무지’에는 지난 계절 내내 야생 수목원을 원색으로 한껏 장식했을 온갖 야생화들의 빛깔이며 향기는 더 이상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대신 수목원 가득히 펼쳐져 있는 것은 저마다 천명을 다하고 시들어 버린 꽃대들만이 지난 화려했던 시절의 증거처럼 남아서 잿빛 풍경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수생식물원을 지나고, 습지원을 지나고, 향기, 붓꽃, 나리원을 지나, 산채원이며 덩굴식물원을 지나도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역시 잿빛 풍경뿐이다. 어거지로 찾아낸다면 수목원 가장 위쪽 그늘진 곳에 숨어있는 국화원의 한 쪽에서 쑥부쟁이 몇 다발만이 애잔하게 보랏빛 잔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야생 수목원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대가 위안을 받을 만한 풍경은 없다. 동자꽃, 노인장대, 맥문동, 제비꽃, 은방울꽃, 둥글레, 용담, 앵초, 금불초, 초롱꽃, 비비초, 애기기린초, 금강초롱, 말나리, 하늘나리, 참나리, 털중나리, 꼬리풀, 금낭화, 노루삼, 산작약, 마타리, 패랭이, 구절초, 해국, 울릉국화, 한라구절초, 모싯대…. 그 모든 야생화들은 이제 한낱 푯말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뿐인가. 수목원의 뭇 야생화들은 정말이지 그대에게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고 잿빛 풍경 속으로 속절없이 사라진 것뿐일까. 아니리라. 결코 그것뿐만은 아니리라. 그대가 흡사 자신의 처연한 삶이라도 어루만지듯 푯말과 함께 남아있는 야생화들의 시든 꽃대를 어루만지는 순간, 그대는 벼락처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시든 꽃대는 결코 시든 꽃대로만 끝나지 않는다. 시든 꽃대는 시든 꽃대대로 그 안에 길을 열고 있다. 그리하여 그대가 시든 꽃대가 안에 열린 길을 따라 어디론가 들어가게 된다면, 그대는 마침내 그대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만일 그대가 그대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연만 만나게 된다면, 그대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될 터이다. 늙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 늙어서 그대 또한 시든 꽃대가 되면, 그때에서야 그대는 비로소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게 될 터이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현상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이다.은방울꽃의 시든 꽃잎 안으로 들어가 보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로 거기에는 다가올 어느 봄날 아침에 그다지도 화려하고 향기롭게 피어날 수천수만의 새로운 은방울꽃들을 만나게 되리라. 하늘나리의 시든 대 속으로 들어가 보라. 거기에는 이미 내년 봄에 새로운 줄기로 살아날 수천수만의 하늘나리들이 더없이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으로 벌써부터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아아, 늙어서 시들어진다는 것이야말로, 그리하여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리하여 오래 잊었던 자신의 자연을 만나고, 마침내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한’ 지혜의 물을 만나서 비단 그대만이 아닌,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 함께 영원한 강이 되어 흘러간다면, 어떠한 늙음이며 죽음이 더 이상 그대를 홀로 적막하게 하랴. 세상살이라는 것을 그대와 나는 자칫 저마다 가득히 채워야만 할 무슨 항아리 같은 것으로만 여겨오지는 않았을까. 그리하여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그대와 나는 애오라지 항아리를 채우는 일에만 애면글면하지는 않았을까. 남보다 더 많이, 남보다 더 넓게, 남보다 더 가득히…. 그것이 결국은 밑이 빠져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라는 것조차도 모른 채.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마저도 잃어버리고 흡사 무슨 굶어죽은 아귀라도 씌인 것처럼 헛된 일에만 매달려 아등바등 하지는 않았을까. 아아, 무릇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비운 다음에야 비로소 더욱 가득히 채워진다는 것을 그대와 나는 왜 몰랐던 것일까. ‘꽃무지풀무지’는 11월 중순경까지는 문을 연다. 비록 겉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적막하고 처연한 잿빛 풍경일 터이지만, 그 잿빛 풍경 안에서 만일 그대가 그대의 또 다른 자연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그대의 가을 여행은 온몸 가득히 충만해지리라. ‘꽃무지풀무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운악산 등산로 입구가 있고, 거기에 손두부집들이 올망졸망 촌락을 이루며 몰려있다. 그 중에서 할머니손두부가 유명하지만 어느 집을 들어가도 늦가을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따끈한 손두부(5000원)에 묵은 김치를 가닥으로 싸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거기에 가평의 명산품 잣막걸리를 한 잔 곁들이면, 꽃무지풀무지에서 이미 충만해져온 그대에게 더 이상 무엇이 부족하랴. 손두부 이외에도 순두부(3000원), 두부버섯전골(1만 2000원), 순두부백반(5000원) 등이 있다. 꽃무지풀무지에서 포천으로 가는 길목에는 현리에 국수호박을 전문으로 하는 시골마당(031-585-2309)이 있다. 이 국수호박은 호박을 국수로 만든 것이 아니라 호박 자체가 삶으면 국수처럼 줄줄이 면발이 되어 나오는 것으로, 여기에 양념장만 곁들이면 그대로 요리가 되는 100% 천연국수인 셈이다. 물국수호박과 비빔국수호박이 각각 5000원인데, 가평을 지나다가 출출하다 싶으면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는 재미가 그야말로 별미일 터이다. 그대가 좀 더 가을 여행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번에는 신청평대교를 건너 유명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설악면의 들풀(031-585-4322)을 찾을 것을 권하고 싶다. 블루베리 스파랜드라는 온천으로 가는 쪽에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는 들풀은 된장이며 청국장을 직접 담가서 팔기도 하고 요리로도 만들어내는 청국장 전문집이다. 들풀은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사람 키를 두 세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콩 낟가리를 쌓아놓아 벌써부터 왠지 마음이 푸근해져오는 기분인데,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이다. 콩 낟가리를 지나면 이내 항아리가 30,40개가 넘는 커다란 장독대에 다다르는데, 해마다 된장과 청국장 제조용으로 100여 가마씩 사용하고 있다. 들풀의 김용옥씨와 김안나씨 부부는 함께 주방일도 하고 서빙도 하면서, 주로 콩요리를 위주로 한 1만원짜리 정식을 한 상 차려낸다. 청국장찌개, 된장찌개, 생청국장, 두부부침, 된장부치미에 황태구이, 더덕구이, 잡채, 들풀무침 그리고 깻잎장아찌, 더덕장아찌, 황태장아찌에 각종 나물이 곁들여져 한 상 가득히 채우고 있다. 한 상 중에서도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은 생청국장으로, 고스란히 생으로 먹게 내온 것이다. 밑에 깻잎이나 머위, 상추, 김 등을 깔아 한 잎에 싸 먹게 되어있는데, 생청국장 위에 고명으로 얹은 보랏빛 오디가 주인의 살가운 마음씨를 엿보게 한다. 흔히 청국장이라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우선 그 역한 냄새 때문에 먹는 것 자체가 고역스러운데, 여기에서는 매실을 넣고 검정콩가루를 섞어 발효시키는 비법으로 냄새를 해결한 것이다. ■ 된장찌개에 마늘은 ‘NO’ 들풀에서는 요리와 함께 청국장과 된장도 직접 판매한다. 청국장은 800g에 1만원, 된장은 3년 숙성된 것만으로 파는데,1㎏에 1만 5000원이다. 부부는 청국장과 된장을 팔기에 앞서 먼저 청국장이며 된장을 보다 맛있게 끓이는 법을 친절하게 일러주는데, 이들의 말에 따르자면 절대로 마늘을 넣지 말 일이다. 청국장에 무, 호박, 대파, 신김치, 양파, 청양고추, 두부를 준비해서 우선 무, 호박, 양파, 대파는 썰고, 신김치는 속을 털고 썰어서 꼭 짠 뒤 기름에 살짝 볶는다. 여기에 황태나 멸치를 우려낸 육수를 붓고 두부와 청양고추를 넣은 다음에 청국장을 알맹이 그대로 넣어서 걸쭉하게 끓이는데, 채소만 익었다 싶으면 금방 불을 끈다. 청국장은 유산균이나 비피더스균처럼 장을 깨끗이 하는 작용과 면역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는데 자칫 오래 끓이면 이런 좋은 효소와 균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된장찌개 역시 마늘을 넣지 않고 청국장에 들어가는 재료 외에 감자와 표고버섯을 곁들이는데, 된장을 체에 걸러 풀어서 청국장보다 2배 정도의 시간을 들여 푹 끓여내는 식이다.
  • 儒林(211)-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11)-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자로의 말은 실로 준엄하였다. 평소에 말과 생각과 행동의 일치함을 군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법도라고 가르치고 있던 스승 공자가 반역자의 초청에 응하려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렇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 그러나 지극히 단단한 물건은 아무리 갈아도 닳아 엷어지지 않고 지극히 흰 물질은 아무리 검게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썩어서 먹을 수 없는 박이 될 때까지 한 군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어떻게 매달려 있는 채 밥도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를 쓰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어디든 가서 도를 행하고 싶다.” 썩어서 먹을 수 없는 박. 쓸모없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박. 이 무렵 공자가 얼마나 자조하고 있었던가는 자신을 그렇게 묘사한 대목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밥도 먹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탄식한 것을 보면 궁핍한 생활까지 영위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이때 공자의 심경을 알려주는 일화가 사기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위나라에서 어느 날 공자가 경(磬:돌로 만든 악기)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삼태기를 지고 공자의 문 앞을 지나다가 말하였다. ‘마음속에 딴생각이 있구나. 저 경을 치는 품이.’ 그리고 또 말하였다. ‘천하다. 각박한 소리를 내다니.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시경에 말했듯이 물이 깊으면 옷 벗어 들고, 옅으면 옷 걷고 건너야만 하는 것을.’” 공자가 경을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듣고 공자를 천하다고 비판한 익명의 사람은 공자의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현인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이 현인들은 주로 노자의 사상을 따르는 은둔자들인데, 그들의 눈으로 보면 물이 깊으면 옷 벗어 들고, 옅으면 옷을 걷고 건너면 되는 한세상을 물이 깊거나 말거나 옷을 입고 의관을 정제한 채 예를 갖추어 물을 건너려는 공자의 허례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자는 하릴없이 위나라에서 마음에도 없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허송세월을 한 것처럼 보인다.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여 ‘음악이란 천지의 조화(樂者 天地之和也)’라고까지 극찬한 공자였으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없이 철저히 소외당한 채 음악을 연주하는 공자의 신세는 그야말로 ‘상갓집의 개’와 같은 처량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공자는 그저 세월을 낭비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 공자는 거문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다른 악기들은 다 다룰 줄 알았으나 거문고에 대해서는 백지인 공자는 위나라의 저명한 악사인 양자(襄子)에게 거문고를 배움으로써 무위를 달래고 있었다. 무엇이든 한번 공부하기 시작하면 철저하게 탐구하는 공자의 학문태도는 여기서도 엿보이는데, 이러한 공자의 면학정신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악사 양자에게 거문고를 배웠다. 그러나 열흘 동안 겨우 한 곡을 간신히 배운 것이 고작이었다. 양자가 말했다. ‘이제 다른 곡으로 넘어가시지요.’ 그러나 공자는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하였다. ‘아니오. 나로서는 이제야 그 곡조를 습득했을 뿐 절주(節奏)와 수(數)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오.’ 며칠 후에 양자가 다시 말했다. ‘이제는 절주의 수리(數理)를 습득했으니 다른 곳으로 넘어가시지요.’ 그러나 공자는 다시 대답하였다. ‘아직도 이 곡의 뜻을 모르고 있소.’ 며칠 뒤에 양자가 물었다. ‘이제는 뜻을 아셨겠지요.’…”
  • [논술이 있는 책]동양 철학 에세이/김교빈·이현구 지음

    ‘동양 철학’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공자왈 맹자왈’하는 까다롭고 고리타분하기만 한 규범들이라는 생각, 아니면 사주나 관상과 같은 신비스러운 미신들? 어떤 것이든 많은 사람들이 동양 철학에 대해 나하고는 직접 상관없는 옛 유물이며,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한자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뜨거워지는 요즘의 청소년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동양 철학은 우리의 문화와 사고 체계를 이루고 있는 우리 전통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인간과 삶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사상가들이 남긴 훌륭한 유산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더욱 충실하게 꾸미기 위해서 한 번쯤은 꼭 되돌아보고, 딛고 나아가야 할 디딤돌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학문이 가장 화려하고 자유롭게 발전했다는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공자·노자·묵자·장자·맹자·순자·법가·명가·주역의 아홉 가지 주제로 나누어 하나하나 간결하게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 철학의 세계로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참다운 장점은 쉽고 재미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동양 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우리들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쓴 사람들은 철학은 현실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동양 철학에 대해 시대와 사회를 넘어선 보편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각 사상들의 시대적 의미와 한계를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그들 사상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현실과 삶에 대한 동양의 옛 사상가들의 여러 가지 진지한 고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과 생각을 좀더 알차고 여유롭게 꾸미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 (www.unidream.co.kr) ●생각해보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각 인물들의 사상의 특징과 주요 개념을 표로 정리해 보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사상가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인물과 사상을 골라 그 이유를 써보자. ▲공자 사상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지, 생각을 써보자. ▲최근의 환경 위기와 관련하여 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주목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노자와 장자가 말하는 ‘도(道)’의 뜻을 정리해 보고, 그들의 사상을 공자의 사상과 견주어보자. ▲흔히 묵자의 ‘겸애’ 사상을 기독교의 ‘사랑’과 비교해서 말하곤 한다. 이 두 가지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밝혀보자.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의 내용을 정리하고, 각 인간관의 차이가 사회관에 어떠한 차이를 낳는지 자기 생각을 써보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양철학에 대한 잘못된 수용 자세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왜 잘못되었는지 자기 생각을 써보자. ▲흔히 ‘동양은 정신적이고 서양은 물질적이다.’,‘동양은 실천적이고 서양은 이론적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런 생각이 갖는 문제점을 써보자. ▲동양 사상은 현대 사회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받는 근대 서구 물질 문명의 대안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3∼고3 -관련 교과:중학 사회·도덕/고등 사회·윤리와 사상, 전통윤리 -함께 읽어볼 고전 및 원전:공자의 , 장주의 -1998년 서울대 논술고사 기출문제 지문
  • 儒林(197)-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197)-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기원전 496년 노나라의 정공14년.56세의 나이 때 공자는 마침내 노나라를 떠나 위(衛)나라로 찾아간다. 이미 35세 때 제나라로 첫 번째 출국하였던 공자는 21년 만에 또다시 두 번째 출국을 단행하는 것이다.그때는 1년 동안의 짧은 기간만 제나라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무려 13년 동안이나 열국을 주유하는 장기간의 외유였다. 이에 대해 사기는 십이제후연표(十二諸侯年表)에서 공자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왕도를 밝히려고 70여 나라를 유세하였다.”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이 편찬한 백과사전 ‘회남자(淮南子)’에서도 공자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공자는 왕도를 실현하고자 하여 동서남북으로 다니며 70여명의 임금을 유세하였으나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공자가 13년 동안이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닌 것은 사실이었으나 70여 나라를 주유하였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이었던 것 같다.실제로 사기를 쓴 사마천도 위와 같이 공자가 ‘왕도를 밝히려고 70여 나라의 임금을 유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공자세가’에서는 공자가 유세한 나라를 예닐곱 나라로 압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히 과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공자의 유가사상을 연구하여 ‘공자’란 책을 펴낸 청나라 말기 중화민국 초의 계몽사상가이자 문학가인 양계초(梁啓超)는 책 속에서 사기의 과장을 지적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사실은 공자가 찾아갔던 나라는 주(周),제(齊),위(衛,진(陳)이었을 따름이며,또한 초나라의 속령(屬領)인 섭(葉)에도 갔었던 것 같다.그리고 송(宋),조(曹),정(鄭)의 세 나라는 머무르는 일이 없이 그냥 지나기만 하였다.전부를 합쳐보면 지금의 산동(山東),하남(河南) 두 성의 경계 밖을 나가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불확실하지만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 주나라를 찾아간 것과 제나라를 찾아간 것은 그 전의 일이며,그의 역정(歷程)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점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어떻든 사마천의 사기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분석하면 공자가 확실하게 찾아간 나라는 위,진,섭 세 나라뿐인 것이다.그러므로 공자의 발길은 평생 양계초의 지적대로 산둥과 허난 두 성과 하북(河北)의 남쪽 일부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지를 못하였던 것이다.다만 공자는 위나라를 네번이나 거듭하여 왕래하였다는 사기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자는 70여 개국의 나라를 유세하였던 것이 아니라 서너 개의 나라를 반복해서 순회하였으며,공자 자신은 더 많은 전국시대의 임금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다른 나라의 임금들은 회견할 길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그 때문에 공자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을 펼칠 수 있는 임금은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상갓집의 개(喪家之狗)’처럼 초라하게 제국을 전전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의 곤경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56세의 공자는 주유열국의 첫 대상 국가를 위나라로 선택한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위나라를 첫 번째 방문하면서 제자 염유와 나눴던 다음과 같은 대화가 실려 있다.위나라의 번화한 도성을 수레를 타고 갔던 공자가 말하였다. “백성이 번성하구나.” 공자가 탄 수레를 몰던 염유가 물었다. “이렇듯 백성이 많은데 여기에 더 하여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을 부유하게 해주는 거지.” “백성이 부유해진 다음에는 또 무엇을 더하시겠습니까.” 이에 공자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그들을 가르치는 거지.”
  • 儒林(196)-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儒林(196)-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어쨌든 이로서 공자는 5년 동안에 걸친 정치가로서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마감하고 노나라를 떠나 열국을 순회하는 고난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대사구의 재상 직을 버린 것은 55세 때였고,자기의 이상을 정치적으로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 국외로 여행길에 오른 것은 56세 때였다.그 뒤 다시 노나라로 돌아온 것은 기원전 484년,노나라의 애공 11년.공자의 나이 68세 때였으니,공자는 실로 13년 동안이나 열국을 주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13년 동안의 세월은 공자의 황금시절과는 전혀 다른 문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대 사상가 공자가 어째서 13년 동안이나 훗날 자신의 신세를 ‘상갓집의 개’인 ‘상가지구(喪家之狗)’로 표현할 만큼 초라한 신세로 주유천하를 하였던가는 실로 미스터릭한 일로 느껴진다. 노나라를 떠나면서 태사 기에게는 ‘모름지기 군자는 멀리 (속세를 떠나) 도망가서 여생을 한가롭게 지낼 뿐’이라고 노래하면서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세상의 바다 속에 뛰어들어 모진 고초를 받았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화광동진(和光同塵)’,즉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마치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 본색을 숨기고 인간계에 나타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아들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인간이 죽음을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듯이 공자가 13년 동안의 가시밭길을 주유열국 하였던 것은 속세의 티끌과 같이하려는 구법행위가 아니었을까. 아이로니컬하게도 ‘화광동진’이란 말은 공자 당대의 최고의 라이벌인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그 이목구비를 막고 그 문을 닫아서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지혜의 빛을 감추고(和其光),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니(同其塵)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멀어지지도 않는다.이롭게 하지도 않으며 해롭게 하지도 못한다.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그러므로 천하에 가장 귀한 것이 된다.” 무릇 성인들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형극(荊棘)의 가시밭길 끝에 완성되는 것. 13년에 걸친 주유열국의 고난시절은 공자의 사상을 완성시킨 부처의 설산(雪山) 고행과 예수의 무거운 십자가와 같은 것이 아닐까. 노나라를 떠나 홀연히 자취를 감춘 공자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를 전송하였던 태사 기가 돌아오자 계환자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는가.’ 이에 기가 대답하였다. ‘떠나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기어이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 뭐라고 하던가.’ 그러자 태사 기는 공자와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자초지종을 들은 계환자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선생은 예기들의 문제를 걸어서 나를 질책하신 것이다.’” 공자가 떠난 후 노나라는 공자의 예언대로 기울어진다.이것을 상징하듯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여름에 노의 환공(桓公),이공(釐公)의 무덤에서 불이 났다.남궁경숙이 그 불을 껐다.” 남궁경숙은 공자와 함께 노자를 만나러간 사람.공자의 노래 ‘나라의 기둥들이 저 꼴이라면 남은 것은 오로지 파멸일 뿐’이라는 구절처럼 노나라는 마침내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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