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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절반 “밤길 걷기 두렵다”

    여성절반 “밤길 걷기 두렵다”

    “이대론 못살겠다.”우리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경기침체도 문제지만 범죄가 겁나고 먹을거리는 믿을 수 없다고 인식한다. 보육료가 비싸 애들 키우기는 벅차다. 세대간 이질감이 커지면서 노인들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자녀와 살기를 꺼린다. 장애인 차별은 여전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아 교통사고가 빈발한다. ●사회안전망 믿을 수 없다 통계청이 만 15세 이상의 가구원 7만명을 상대로 지난 6월에 조사,25일 발표한 ‘2005년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평소 범죄를 당할까 두렵다.”는 응답은 57.9%에 달했다.2001년 56.6%보다 늘었다. 여자의 경우 두렵다가 67.8%에 달했고 밤길을 걷기 어렵다는 응답도 절반에 가까운 48.6%나 됐다. 농산물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우리 농산물의 경우 50.1%가 농약오염을 우려하고 있다.2001년의 52.5%보다 줄었지만 우리 국민의 절반은 ‘신토불이’ 음식조차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 수입농산물의 경우 불안하다는 응답이 82.9%에서 87.8%로 크게 늘었다. 식료품과 약품 등에도 59.4%가 불안해했다, 노약자와 어린이가 자동차 위험에 직면하지 않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는 대답은 불과 5.5%에 그쳤다. 해킹 등으로 개인 정보가 누출될 수 있는 가능성에는 58.9%가 동의했다. ●자녀 키우기가 너무 벅차다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항목으로 60.7%가 보육비 부담을 꼽았다. 소득에 비해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한 가구는 3.7%에 불과했다. 소득의 양극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또한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곳이 없다는 응답도 19.2%나 돼 사회복지시설이 크게 부족함을 드러냈다. 만 10세 이하의 자녀를 유치원 등에 보내는 비율은 2002년 5.3%에서 올해는 13.8%, 보육시설의 경우 7.5%에서 14%로 두배 안팎으로 늘었으나 여전히 국민의 대다수는 자녀들을 유치원 등에 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육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가족이 돌보는 게 안심이 돼서’가 52.9%, 보육료 부담이 24.8% 등을 차지했다.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결할 보육문제로는 보육비 지원이 43.4%, 보육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21.5%로 나타났다. ●소외계층 대책 절실 60세 이상 노인들의 45.6%는 최대의 문제로 경제적 어려움을 지적했다.70세 이상의 과반은 생활비를 자녀나 친척 등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인들의 52.5%는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지역별로는 도시 노인일수록 경제적 어려움과 직업부재를, 농어촌 노인일수록 건강과 외로움의 문제를 호소했다. 장애인 문제는 이중성을 보였다. 응답자의 89%는 스스로는 장애인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우리 사회의 장애인 차별이 심하다고 밝힌 경우는 전체의 75%에 달했다. 장애인의 복지사업과 관련,74%가 아직 미흡하므로 계속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선적으로 확대 실시해야 할 사업으로는 장애수당지급(16.1%), 의료비 지원(15.7%), 자립자금 대여(18.6%) 등의 순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독자의 소리] 치매노인에 연락처 적힌 팔찌를/임병철(경북 예천군 예천읍 서본리)

    젊은 자녀들의 도시생활로 인해 농촌에 홀로 거주하는 부모가 늘어나면서 치매 노인 등이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잦다. 노인성 치매로 인한 가출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짐작된다. 치매현상이 약한 경우에는 문제가 적지만 심한 경우에는 끝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치매노인을 발견했을 때 연락처 등을 소지하고 있으면 쉽게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가족을 찾는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가족들을 끝까지 찾지 못하여 보호시설 등으로 보내지는 경우도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녀들이 부모에게 갖는 관심은 너무 약한 것 같다. 젊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가 길을 잃을까봐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나 팔찌 등을 차게 하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위치 추적까지 할 수 있도록 해놓는 경우도 있다. 자녀에 대한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부모에게 갖기를 바란다. 부모에게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나 팔찌 등을 선물하자. 비싼 목걸이 등은 범죄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가급적 저렴한 것을 선택하면 부담도 적게 든다. 임병철(경북 예천군 예천읍 서본리)
  •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상) 베를린 현지 르포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상) 베를린 현지 르포

    수도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전역에서는 지난 3일 크고 작은 통독 15주년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분위기는 지난 1990년 10월3일 당시 총리로서 통일의 주역을 맡았던 헬무트 콜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독일이 분단의 역사에 종말을 고한 첫 해의 행복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옛 동독 지역 주민들 사이에 자괴감과 실망감이 팽배하고 심지어 이전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어느덧 통일 15주년을 맞은 독일을 찾아 통일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베를린·포츠담 함혜리특파원|통독 기념일인 3일 베를린 시내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는 거대한 축제가 열렸다. 록밴드가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나들이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언제 분단시절이 있었느냐는 듯 축제 분위기에 도취해 있는 젊은이들 사이로 간간이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도 눈에 띈다. 소시지와 감자·버섯 등을 안주 삼아 맥주잔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흥겹다. ●통일의 두 얼굴 전날 방문했던 베를린 인근 포츠담시의 축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포츠담시는 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는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로 동독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연방주가 돌아가면서 통독 기념행사를 주관하는데 올해는 마침 브란덴부르크주가 주관했다. 포츠담 시내 중심부의 루스트 가르텐(즐거움의 정원)에서는 ‘미래가 자란다-통일 15주년’이라는 주제로 곳곳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서 콘서트, 메이크업쇼, 헤어쇼 등 각종 축하행사가 열렸다. 가족·친구들과 어울려 나들이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시민들의 표정은 그러나 그다지 밝지 않았다. 맥주잔을 앞에 놓고 앉아 공연을 감상하고 있던 클로프트 부부에게 지금의 생활이 행복한지 물었다.50세 정도 돼 보이는 클로프트가 오른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어 보인다. 그저 그렇다는 뜻이다. 통일된 후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은 그는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90년 6.4%였던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2004년 19.5%로 치솟았다. 서독 지역(8.9%)의 두 배 이상이다. 브란덴부르크주의 경우에는 공식적인 실업률이 25%에 달하고 실제 실업률은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18살 된 딸 카트린과 축제를 보러 나온 마리아는 “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좋은 가전제품을 갖추게 된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과거가 그립기도 하다.”고 말했다. ●멈춰 버린 경제성장 외형상 통일은 독일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 틀림없다. 옛 동독 지역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 동독 지역의 개인소득은 서독 지역의 83%까지 올라가 1991년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주거비용과 공공요금까지 감안하면 87%에 육박한다. 통일은 또 동·서독인 모두에게 ‘반쪽 독일인’이라는 문화적·심리적 콤플렉스를 완전 해소시켰다. 동독 지역의 환경은 개선됐고 인프라도 많이 구축됐다. 법체제도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과 문화재도 복원됐다. 하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같은 생활수준의 향상은 동독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일을 해서 성취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독의 동독에 대한 재정이전 덕분이다. 독일 정부는 통일이 이뤄진 1990년 이후 무려 1조 2400억유로(약 1550조원)를 옛 동독 지역에 쏟아부었다.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4%에 해당하는 850억유로가 투입된 셈이다. “문제는 투자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고,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동독 지역의 성장이 멈췄다는 것”이라고 유력지 디벨트의 우베 뮐러 기자는 분석했다. 통일 직후인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동독 지역은 서독 지역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보였다. 동독의 1인당 GDP는 1991년 서독 지역의 42.3%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1996년 67.8%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성장을 멈춰 버렸다.2004년의 경우 1인당 GDP는 서독의 67.2%에 해당한다. 동독 지역의 민간경제가 너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독일 전체의 상장기업 가치가 21조유로인데 이 가운데 동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0.1%(14억유로)에 불과하다. 연매출 500만유로 이상인 기업 중 11.2%만이 동독 지역에 소재해 있다. ●인구이동 심화 통독 이후 동독의 인구는 140만명이 줄었다. 이중 60%가 동독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이다. 특히 일할 능력을 가진 젊은 층의 이주비율이 높다.IWH연구소에 따르면 1991년 이후 동독 지역의 노동가능인구(15∼65세)가 110만명 줄었다.2004년 동독을 떠난 사람 중 54%가 18∼30세의 청년층이다.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 1600억유로를 사회간접자본 확충, 주택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 투입했지만 투자효과는 미미하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라이프치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늘어선 대부분의 건물이 텅 비어 있는 것만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쉽게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건물이 낡아서가 아니다. 대부분 새로 지어지거나 증축된 건물이지만 인구가 줄어들고 일자리도 없어지면서 사람들이 떠나간 탓이다. 동독지역에는 비어 있는 주택만 100만여가구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5년간은 인구이동이 더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와 낮은 출생률까지 겹쳐 2020년에 인구는 현재보다 11%가 줄어들고, 노동가능인구는 22%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에 대한 향수 독일 정부는 동독 지원금 부담으로 재정상황이 유럽연합(EU)의 재정 안정화 조약을 위반할 정도로 악화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었지만 생산성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낮은 경제성장, 높은 사회보장 비용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만들어 버리고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통일 이후 독일 정부의 동독 경제 통합 노력이 성과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정치적인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일방적인 원조에 ‘중독’된 동독 주민들은 높은 실업률과 경제난을 정치권 탓으로 돌리며 기존 정치권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동독 지역 주민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차기 총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lotus@seoul.co.kr ■ 동독지역 주민 슐츠 “기존 일자리 90%가 사라져 월급 없지만 연금이 더 많아” |베를린 함혜리특파원|“감격의 눈물이 복받쳐 올라 참을 수 없었다. 밤에 친구들을 모두 깨우고 우리 집에 모여 소중한 날 마시려고 지하창고에 간직했던 포도주를 따서 축배를 들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1일 저녁 옛 동독 지역의 알렉산더 광장 한 모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맥주집. 아돌프 슐츠(65)는 통독 당시를 회상하며 다시 한번 눈물을 그렁거렸다. 기자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던 그는 “한국 국민도 빨리 통일의 감격을 맛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슐츠는 베를린 지역의 일간지 베를리너 자이퉁의 납활자 식자공으로 일했다. ▶독일이 통일된 뒤 피부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었다. 동독은 실업이 없었다. 기존의 일터가 90% 이상 사라졌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동독 시절에는 당원이 되고, 당에서 정해 주는 곳에서 일을 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긍정적인 측면의 변화를 꼽는다면. -무엇보다 표현과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었고 곳곳에 경찰이 있고 당원이 있어서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당에 부정적인 얘기를 하면 곧바로 강등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했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힘들지 않나. -빵이나 맥주 같은 기본 생필품은 예전이 물론 더 쌌다. 하지만 쓸 만한 가전제품이나 고급품의 경우 구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예전에 동독산 자동차 한 대를 사려면 13년을 기다려야 했다. 웬만한 것도 신청하고 나서 6개월을 기다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지금은 그런 문제가 없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전이 좋았던 것도 많다. 교육 시스템은 나라 전체가 동일했기 때문에 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주마다 시스템이 달라졌다. 동독에서는 모든 직장에 보육시설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일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모두 무료였다. 아이들은 무사히 잘 자랐지만 지금은 아이들 키우기가 힘들다. 마약이나 부랑자들로 인한 범죄도 없었다. ▶그렇다면 과거 체제로 돌아가기를 원하나. -결코 아니다. 자유가 있는 지금이 좋다. 생활도 솔직히 많이 좋아졌다. 과거에 노동으로 벌었던 월급보다 지금 받고 있는 연금이 많다.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가정폭력의 또다른 희생자 여성장애인/최광기 전문MC

    “얘,내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아….” 마흔이라는 선배의 나이도 있었지만,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딸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했던 선배의 고단한 삶이 느껴져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기만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어느새 커서 세상에 나가려는 그 순간부터 어디서 상처받고 다치지는 않을지 두렵고 불안한 것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장애를 가진 여자 아이를 키우자면 또 다른 고민을 하나 더 안고 살아가야 한다. 아이는 점점 자라는데 세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엄마가 견뎌온 세상도 그리 만만치 않은데 장애를 갖고 있는 딸 아이가 세상살이를 잘 해낼 수 있을지,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하는 그 끔찍한 폭력들 앞에 우리 아이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 건지 늘 머릿속이 복잡했다고 말했던 선배였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은 교육·고용·이동·문화·정치 등 삶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여성이라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이중으로 겪고 있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침묵으로, 때론 가족의 무관심과 냉대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다. 여성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로서 극심한 빈곤과 심각한 장애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심지어 폭력의 대상이며 인권유린의 대상이 되어왔다. 삶의 전반에 걸쳐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억압당하는 등 사회구성원으로 여성장애인에 가해지는 각종 폭력은 사회적 폭력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2000년부터 여성장애인 문제 가운데 성폭력 문제가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여성장애인 당사자들과 여성계, 장애인계를 중심으로 공동대책위가 조직되어 활동을 펼치면서 우리 사회에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의 문제가 이슈화되었고 구체적인 대안들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그 성과로 2001년 전국 6개 도시에 7개의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가 만들어졌으며, 현재 11개의 상담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장애인 성폭력 문제보다 훨씬 큰 문제로 다가온 것이 여성장애인 가정폭력에 관한 것이다. 가정폭력의 피해 대상은 주로 아내, 자녀, 노인 등 가족내 약자로 볼 수 있다. 여성장애인은 가족 내 약자 중의 약자로 가정폭력의 주 대상자가 된다. 일반 가정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가정폭력에 대해 아직도 “남의 집안 일인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하는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국가정책 마련이나 제도적 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가정폭력방지법에 있어 여성장애인에 관한 부분이 특화되어 신설되어야 하며, 피해자인 여성장애인이 치유될 수 있는 쉼터가 전국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가정폭력으로 신음하는 많은 여성장애인들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무관심과 편견, 그리고 차별을 온몸으로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많은 장애인들, 그리고 약자이며 소수자로서 폭력앞에 무력한 많은 여성장애인들에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폭력보다는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하는 이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 앞에서 이제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중요한 인권문제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평등하게 자기의 권리를 누리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교육·이동·자립·문화 등에서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폭력이 없는 일상의 평화를 지키며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광기 전문MC
  • 노약자 노리는 범죄 ‘껑충’

    노약자 노리는 범죄 ‘껑충’

    어린이와 노인·여성 등 노약자들을 겨냥한 강력범죄가 최근 2년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국정감사에서 경찰청이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어린이와 노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5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가 일제히 증가했다. 어린이 대상 강력범죄는 2002년 1139건이었던 것이 2003년 979건으로 줄었지만 지난해에는 1341건으로 전년보다 37.0%나 급증했다. 특히 어린이 대상 강도는 2003년 34건에서 2004년에는 200건으로 5배 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영·유아 살인도 25건에서 57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2002년 이후 어린이 대상 강력범죄를 유형별로 보면 폭력이 60.5%로 가장 많았고, 절도 16.9%, 강간 12.2%, 강도 6.8% 살인 3.6% 순이었다. 여성이 피해자가 된 강력범죄도 2년새 47.4%나 증가했다.2002년 9만 5983건에서 2003년 10만 9863건으로 14.5% 증가했고 2004년에는 14만 1542건으로 28.8%나 늘었다. 특히 지난 한 해 여성 살인 건수를 보면 2년 전에 비해 68.6%나 뛴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대상 강도는 70.1%, 폭력은 63.2%, 절도는 30.7%, 강간도 12.2% 증가했다.2002년 이후 발생한 여성 대상 범죄는 유형별로 폭력 54.8%, 절도 37.5%, 강간 5.3%, 강도 2.2%, 살인 0.3% 순이었다. 노인(61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범죄 역시 2003년 12.4%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48.5%나 늘었다. 특히 노인대상 범죄는 모든 유형의 범죄에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최근 2년 사이 강도는 97.8%로 무려 2배 이상 늘었다. 절도(72.3%), 폭력(63.3%), 살인(42.8%), 강간(40.2%)도 급증했다. 김 의원은 “국내 전체 5대 범죄가 2002년 47만 5367건에서 2004년 45만 5171건으로 4.2% 정도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노약자 대상 범죄의 증가율은 엄청난 것”이라면서 “외부의 공격에 방어능력이 없거나 취약한 노약자를 노린 강력범죄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 전담 수사기구 설치 등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여담여담] 재난보다 무서운 공동체 붕괴/박정경 국제부 기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스. 재즈가 멈춘 곳에 흑인들의 절규만 남았다. 흑인의 비율이 워낙 높은 도시이긴 하지만 왜 임시 대피소 슈퍼돔에 모인 이재민들은 하나같이 흑인이었을까. 아직 사망자 집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흑인의 비율은 매우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언론은 빈곤이 피해를 키웠고, 흑인들은 차도 돈도 없어 대피 대신 잔류를 택했다고 전했다. 단순히 그것 때문이었을까. 궁금하던 차에 미국에서 공부하는 친구의 블로그에서 흑인들이 유난히 재난에 취약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봤다.1995년 시카고 혹서 때 숨진 사람 대부분도 흑인이었다고 한다. 빈곤으로 치자면 히스패닉도 큰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당시 미국 동북부와 중서부를 덮친 폭염으로 669명이 사망했고 가장 심했던 시카고에서는 376명이 숨졌다. 흑인 노인들은 에어컨이 없거나 고장난 집에서 그냥 죽음을 맞았다. 반면 히스패닉들은 에어컨이 있는 이웃 히스패닉의 집에 모여 살인적 더위를 견뎌냈다고 한다. 미국 흑인 가족의 해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가장은 마약 소지 및 거래 등으로 감옥을 들락날락하기 일쑤고 부모와 자녀는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무슨 일을 당해도 국가가 개입하기 전에는 당장 돌봐줄 가족이 없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흑인은 미국 인구의 12%이지만 수감자의 50%(약 100만명)를 차지한다. 흑인 남성의 절반이 일생에 한번은 감옥에 가며 14명 중 1명은 감옥에 갇혀 있다. 여성 마약재소자의 대부분도 흑인이며 이중 75%는 아이를 가진 엄마다. 그 엄마의 아이가 푼돈을 벌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 소년원에 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빈곤이 범죄 유발과 공동체 붕괴를 넘어 재난을 키운다고 봐도 지나친 확대해석은 아닌 듯싶다. 카트리나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허리케인 리타가 텍사스 휴스턴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도시를 빠져나가는 차량들로 주변 도로가 장사진이다. 뉴올리언스와 마찬가지로 상당수 흑인들이 도시에 남아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는 외신들 보도는 “카트리나로부터 교훈을 얻었다.”는 미국 정치인들의 주장에 공허함만 더한다. 박정경 국제부 기자 olive@seoul.co.kr
  • [성매매 특별법 시행 1년] 집결지 여성 절반 떠나…변칙 성매매는 급증

    [성매매 특별법 시행 1년] 집결지 여성 절반 떠나…변칙 성매매는 급증

    성을 사고 파는 행위, 특히 성을 구매하는 사람도 범죄자로 다루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지 23일로 1년이 된다. 성매매가 오랜 관습이라며 시행을 전후한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특별법 시행으로 성매매를 범죄로 여기는 의식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는 바탕은 마련됐다. 그러나 보다 은밀하고 교묘해진 성매매에 한계를 드러낸 당국의 행정력, 성매매에 빠지는 피해 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많다. 20일 오후 10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속칭 ‘미아리 텍사스’라고 불렸던 곳이다. 낮시간부터 일찌감치 유리문 앞에 켜져 있는 빨간불은 ‘영업 중’을 알리고 있지만 드나드는 손님은 드물다. 불꺼진 업소 앞엔 어김없이 ‘월세 놓습니다’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낡은 종이가 몇달 동안 문을 닫은 곳이란 것을 알리지만 성매매 집결지라 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의 최대 성매매 집결지였지만 1년새 업주도 종사자들도 하나둘씩 이곳을 떴다. 지난해 초만 해도 160여개 업소에 성매매 종사자들이 690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130여개 업소,450여명으로 급감했다. 이날 만난 40대 중반의 업주는 “낮 시간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던 유명 업소들조차 하루 한두명 받기가 힘들다.”고 했다. 성매매 집결지의 쇠락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경남지역의 유일한 성매매 집결지인 마산 서성동 속칭 ‘신포동’에는 특별법 시행 이전 47개 업소에 218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25개 업소에 60명이 있을 뿐이다. 부산의 속칭 ‘완월동’에도 70개 업소 500여명에 달하던 여성 종사원들이 지금은 30여개 220여명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홍등가의 불빛은 어두워졌지만 성매매 행위는 더욱 음성화·지능화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인터넷 출장매춘’‘출장마사지’‘전화방’‘대딸방’ 등 변칙 성매매 행위는 오히려 급증세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청량리 588번지에서 만난 업주 김모(37)씨는 “성매매특별법이 이뤄낸 건 집창촌의 침대를 이리저리 흩어놓은 것뿐 그 이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인터넷 성인사이트 등에는 채팅을 통해 성매매 대상자를 찾는 여성들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고급 외제 밴 등을 이용해 장소를 이동해가며 성을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출연했다. 단속경찰은 “마약단속만큼 증거를 잡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손을 이용해 손님에게 유사 성행위를 해주는 대딸방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이를 변형한 ‘페티시 클럽’이 생겨나고 있다. 스타킹이나 유니폼 등 사물에서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페티시즘’을 이용, 독특한 차림의 여성들이 유사 성행위를 해 주는 것이다. 전남과 광주지역에는 ‘피부관리실’ 등 간판을 내걸고 성매매를 하는 업소가 늘어나고 유사 성행위를 하는 새로운 형태의 성매매 업소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부 여성 종사자들은 아예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강원 춘천지역 성매매 종사자 수십여명은 일본으로 유입됐고 일부 성구매자들이 룸살롱 여성 종사자들과 함께 3∼5일간 일정으로 동남아 여행을 하는 등 이른바 ‘묻지마 성여행’을 떠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성매매 여성이 다시 잘못된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재활사업은 아직 큰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성매매 방지대책 추진을 위해 편성한 예산은 모두 220억원으로 이 가운데 82억원이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 시범 사업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대책이 지나치게 집결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다 탈성매매 지원 대책도 미흡해 성매매 여성들의 ‘역유입’이나 음성적 성매매로의 이동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 사무총장은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열매를 맺기 위해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1년이 성매매가 잘못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이뤄낸 해라면 이 법을 국민이 수용하고 실천하는 단계가 필요하다.”면서 “아직은 법에 비해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 관대하다.”고 말했다. 또 “또 성매매단속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수립과 지속적인 시행을 위한 전담기구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영규 유지혜기자 whoami@seoul.co.kr ■ 성매매 31%가 인터넷 알선 지난 1년간 성매매 종사자와 집결지 수는 크게 줄었지만 인터넷 알선이나 유사 성행위 등 변칙적 행태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또 위반사범에 대한 처벌도 경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성매매 집중단속 결과, 전체 적발 3422건 중 31.9%인 1093건이 메신저 등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성매매로 나타났다. 또 스포츠마사지, 휴게텔, 휴면텔, 화상대화방, 출장마사지, 성인전용PC방 등 유사 성행위도 597건으로 17.5%를 차지했다. 반면 성매매 집결지에서의 성매매는 205건으로 6.0%에 그쳐 특별법 시행 이후 드러내놓고 하는 성매매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의 성매매가 1166건으로 가장 많은 34.1%를 차지했다. 경찰은 “특별법 시행 이후 인터넷 성매매 등 외에 물건 판매 등 합법을 가장한 변칙채권으로 성매매를 하는 등 새로운 성매매 방법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키로 했다.”고 밝혔다. 성매매특별법 발효 이후 지난 1년간 성매매 종사자 수는 5567명에서 2653명으로 52.3% 감소했다. 성매매 집결지에 있던 업소 수는 특별법 발효 전 1679곳에서 1061곳으로 36.8%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법무부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호영(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 6월까지 검찰에 접수된 성매매특별법 위반사건은 총 1680건이었으나 이 가운데 정식기소된 사건은 305건으로 기소율이 18.1%에 불과했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이란 지난해 9월23일 발효된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등 2개의 특별법을 통칭한다. 성매매 업주와 성매수자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성매매 여성의 인권보장 등이 골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본지기자가 만난 脫성매매 여성들 지난해 10월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김주연(23·가명)씨는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자신을 옭아매던 ‘성매매’의 사슬을 가까스로 끊었다. 이후 사회복지단체의 도움으로 서울 종로구의 어느 성매매여성 쉼터에 정착, 제과·제빵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1월에는 ‘케이크데커레이션’ 과정까지 등록,7월 ‘케이크디자이너’ 자격증을 땄다. 제과·제빵사도 이미 필기시험에는 합격해 실기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삼순이’처럼 개성있는 빵을 내놓는 ‘파티시에’가 그의 꿈이다. 같은 보호시설의 이미영(가명)씨도 8월 ‘양식조리’ 이론 시험에 합격,‘쉐프’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10여명이 모여 사는 보금자리에는 이들 외에도 대부분 미용이나 제빵, 네일아트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최고 1년까지 머물 수 있는 쉼터에서는 개인 상담과 인성교육 등 피해자치료회복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생계 대책을 위한 미용과 컴퓨터, 조리, 제빵 등 직업훈련도 병행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사설 학원을 오가며 검정고시와 대학입시 등을 통과해 못다 이룬 배움의 열정을 이어가기도 한다. 성북구 H쉼터의 하미정(28·가명)씨와 전유진(23·가명)씨는 미용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05학번’ 새내기. 중졸 학력인 하씨는 대입검정고시에 합격, 지난해 전씨와 함께 대입 원서를 냈다. 헤어디자이너와 성매매여성·노인 관련 사회복지사가 새로 설정한 목표다. 동료를 위해 강사로 직접 나선 경우도 있다. 마포구 H쉼터의 오시내(가명)씨와 신미진(가명)씨는 현재 ‘탈성매매 전업 프로그램’의 네일아트 강사다. 지난 5월부터 두달 동안 첫 강의를 맡았는데 반응이 좋아 다시 강단에 섰다.20명 안팎이 머무르는 이 쉼터에서 이번 여름에만 미용사 자격증을 2명이 땄다. 네일아트 자격증도 1명, 전산처리 관련 자격증은 2명이나 얻었다. 서울시에 설치된 탈성매매 여성을 위한 쉼터는 모두 15곳으로 지난 8월 말 현재 169명이 입소한 상태다. 최대 수용 가능 인원은 204명. 성매매방지법을 시행한 뒤 일시적인 포화상태를 보이다가 올해 초부터 안정세를 찾았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516명이 입소,502명이 퇴소했다. 이전 특별법 시행 이전에 입소한 인원까지 포함시켜 555명이 의료지원을 받았으며 498명이 법률지원,310명은 직업교육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S대 등 상급학교에 진학한 사람은 10명, 이밖에 일반 사무직과 미장원, 네일아트점 등 사회에 진출한 사람만도 27명에 달한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새로 태어난 청계천 ‘귀하신 몸’

    다음달 1일 완공되는 청계천에서는 물놀이는 물론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도 즐길 수 없고 흡연과 음주도 제한을 받는다. 또 각종 시설물을 이용할 때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서울시의회는 13일 열린 제158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청계천 이용에 관한 조례안’을 가결했다. 조례는 청계광장, 수경시설, 수변무대, 휴게시설, 자연학습장 등 청계천의 각종 시설물을 이용하는 절차와 사용료 등을 규정하고 있다. 조례에 따르면 청계천의 공연시설 등 시설물을 이용하려면 청계천 시설 사용허가 신청서를 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시장은 신청일로부터 5일이내에 허가여부를 결정토록 했다. 허가 순위는 신청순위를 우선으로 하되 어린이·청소년,65세 이상 노인관련행사, 시와 산하기관의 주관행사, 비영리적 문화·예술행사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하천법, 내수면 어업법, 경범죄 처벌법에 의해 낚시, 수영, 목욕, 흡연·음주, 노숙, 쓰레기 투기행위, 동물 동반,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등의 행위를 금하기로 하고 이를 엄격히 행정지도한다. 이용시설 사용료는 촬영 및 녹화의 경우 1시간당 2만 6000원, 이를 초과할 경우 초과 시간당 1만 3000원으로 결정했다. 청계광장의 사용료는 1㎡당 1시간 기준 10원, 수변무대 등 기타시설물 사용료는 1회당 주간 8만원, 야간 16만원 등으로 각각 규정했다. 조례안을 제안한 김춘수(건설위원회) 의원은 “복원된 청계천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많은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 이같은 조례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박태경(朴泰慶)(69)노인은 도로공사판에 인부로 나가고 있다. 일을 하는 데서 오래 산 보람을 느껴 보는 요즘 나날이다. 전과 16범, 일명「땅개노인」- 25년간, 그러니까 삶의 거의 3분의 2를 교도소에서 보낸 인생이 그 노경(老境)에 이르러 비로소 맛보는 평온이다. 주인꾸중 두려워 콩 사오다 도망쳤던 철부지 18세 초범이 그만 수년 전에『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대중가요가 잠시 유행했었다. 이미자가 불렀다. - 비 오는 낙동강(洛東江)에 저녁놀 짙어지면 - 흘러 버린 내 청춘이 눈물 속에 애달프구나 - 한 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 모질게 살아가는 이 내 심정을… 노래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다. 아성(亞星)영화사가 유동일(柳東日)감독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이 바로『저 강은 알고 있다』(일명 땅개 박노인), 그 주제가다. 바로 이 영화의「모델」이 오늘의 박태경씨였다. 영화촬영 당시 박노인은 15회째의 징역살이로 대구교도소에서 푸른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친 것이 죄였다. 땅개 박노인의 기구한 운명이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약삭빠른 영화사가 노인을「모델」로 해서 그럴싸한「최루탄(催淚彈)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노릴 만도 했다. 박노인은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수의를 입은 채로. 1918년 10월 11일 - 지금부터 51년 전, 박노인이 18세 때 첫 번째 죄를 지었다. 일본주인 밑에서 자전거를 타고 두부 만들 콩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 넘어졌다. 콩이 쏟아졌다. 주인을 찾아 볼 낯이 없었다. 그만 콩 한 말을 10원에, 자전거를 10원에 팔아 버렸다. 전과 16범의「스타트」였다. 2번째, 이웃에 홀로 사는 오(吳)모 여인이 아기를 낳고도 굶주리고 있음을 보다 못해서 쌀 두 말과 미역 1단을 훔쳐다 주었다. 3번째, 1919년 6월 21일, 가택침입죄로 대구지방검사국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4번째, 1921년 12월 23일, 역시 가택침입죄로 징역 2년. 5번째, 1923년 10월 16일, 징역 3년. 6번째, 1927년 11월 16일, 징역 4년. 7번째, 1931년 12월 26일, 징역 4년. 8번째, 1935년 12월 28일, 절도죄로 대구지방검사국에서 기소유예처분. 9번째, 1936년 3월 5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0번째, 1936년 4월 28일, 징역 3년. 11번째, 1940년 7월 16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2번째, 1940년 12월 23일, 징역 3년. 13번째, 1961년 7월 25일, 20년간을 고요히 지낸 것도 헛것이 되어 대구지법에서 야간주거침입, 절도죄로 징역 8개월. 14번째, 1963년 1월 29일, 또 절도죄로 징역 2년. 15번째, 막내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쳐서 징역 1년. 영화촬영은 이때였다. 16번째, 1967년 5월 5일, 절도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낯익은 안동교도소에서 복역, 1968년 초에 출감했다. 인생의 가장 좋은 때를 몽땅 교도소에서 보낸 계산이다. 도둑질서 발 씻기는 영화 주제가 때문, 그 노래 들으면 눈물 나와 그 동안의 특징을 보면 고향인 경북 안동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과 죄명이 모두 절도 아니면 주거침입이라는 점. 사람을 해친 일은 한 번도 없다. 고향 땅에 고목 같이 굵은 뿌리를 박고 다만 살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어쩌면 소심하고 선량한 농민의 아들인지도 모른다. 범죄회수가 늘어남에 따라 본명만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자기가 붙이기도 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한 별명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중 알려져 있는 것만 들어도(본인은 입을 다물고 열지 않는다) 상희(相熙), 상열(相烈), 춘근(春根), 태성(泰星), 봉근(鳳根), 송태성(宋太星), 임춘근(林春根), 땅개 박노인의 8가지. 본명과 또 다른 별명들을 합해 13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앞으로는 굶어 죽어도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땅개 박노인」이라는 별명 때문이란다. 영화와 대중가요를 통해 행적이 알려지면서「땅개 박노인」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뜨끔해진단다. 문제의 노랫가락을 혼자 외면 헛되이 보낸 삶에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그는 한때 안동과 대구 등지를 방랑하면서 구걸을 했다. 『땅개 박노인 왔습니다. 도와주십시오』문간에서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두 말 않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구걸도 한정이 있었다. 그는 작년 10월부터 안동시가 실시하는 구호양곡 근로공사장에 그 늙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밀가루 3되씩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버지 소문이 부끄럽던 아이들도 발 씻자 모두 일터 찾아 도둑질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한 것은 후세들의 앞날을 위해서라고 박노인은 말한다. 그의 현주소는 안동시 상아동의 속칭「진모래」라는 곳. 안동 김씨의 재사 안의 1평 반짜리 단칸방에서 박노인 이하 부인 박숙해(가명·48) 장남(18) 장녀(16) 2녀(14) 3녀(10)의 5식구가 살고 있다. 도둑소리만 들어오던 아버지가 손을 씻자 아이들도 저마다 살 길을 찾아 힘차게 나섰다. 장남은 안동시 상아동 박모씨의 양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면서 월수 5천원을 가지고 들어온다. 장녀와 2녀는「검」팔이로 하루 6백원 정도의 벌이를 하고 있다. 박노인 일가는 아침은 조밥을, 점심은 거르고 저녁에는 공사판에서 박노인이 가지고 온 밀가루로 국수를 쑤어 때운다. 비록 배는 고프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명랑한 웃음이 떠돈다. 이들에게는 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해서 3년 후에는 50만원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자는 꿈이다. 아버지가 도둑질만 하고 다녔을 때는 가져보지 못한 단란한 꿈이다. <안동=문명준(文明俊)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 제2권 제5호 통권19호 ]
  • “코리아상권 6개월뒤나 회복”

    “코리아상권 6개월뒤나 회복”

    |뉴올리언스(미 루이지애나주) 이도운특파원|“한인 사업은 다 죽었다. 앞으로 적어도 6개월은 일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사업을 유지하겠나.”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한국인들의 직접적인 피해는 당초 우려만큼 크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들은 무너진 건물과 파손된 물건들보다 앞으로의 사업 전망을 더욱 걱정했다. 뉴올리언스의 중심도로 가운데 하나인 베터런스 블루버드와 디비전 스트리트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동양마켓’. 주변은 쓰러진 나무와 전봇대, 떠다니는 쓰레기 등으로 어수선했다. 유리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진열대의 아랫부분까지 물이 찼던 듯 쌀 등 상품이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다. 다행히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상점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바로 옆 사거리에서 노인이 몰던 차가 경찰차를 피하려다 뒤집어졌다. 사고로 굉음이 나자 언제 나타났는지 한꺼번에 10여명이 몰려들었다. 피난가지 못한 뉴올리언스 주민들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동양마켓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또다른 한인 상점 ‘아시아마켓’은 입구를 나무판자로 덮어 못으로 박아놓았다. 아시아마켓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서성거리자 누군가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한국말로 물었다. 상점 바로 앞 아파트 3층에 사는 최은순(33)씨. 시내 중심부 케너의 보석상에서 일하던 그녀는 카트리나가 이 정도로 심각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 피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주 흑인 약탈자들이 아시아마켓의 나무판자를 뜯고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금고를 뒤졌다고 했다. 사업차 시카고에 머물다 마켓이 약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뉴올리언스로 돌아온 주인 이영선씨는 낙담하는 대신 사업을 다시 일으켜세울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뉴올리언스 공항에서 용역업을 하는 교포 박귀헌(52)씨는 “한인이나 미국인이나 이제 이곳에서의 사업은 다 죽었다.”며 “최소한 6개월은 일을 못하게 됐는데 어떻게 사업을 유지하겠느냐.”며 한탄했다. 한인들 업소가 밀집한 매터리 지역에 있는 한인 세탁소 로열 클리너의 건물은 심하게 파손됐지만 건물 안은 다행히 거의 피해가 없었다. 뉴올리언스에서 피신한 한인들은 미 당국의 통제에도 불구,80% 정도가 지난 2·3일 집과 상점으로 들어갔다 왔다고 한다. ●부시 원망하는 이재민들 “백인들 사는 미시시피는 엄청난 지원을 해줬다고 하더라. 뉴올리언스는 흑인들만 산다고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 것 아니냐.” 전쟁이 끝난 폐허 같은 뉴올리언스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참상을 전하며 부시 대통령에 대한 불만도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중심가에 위치한 서민지역 세버 스트리트에서 만난 차베스 일가는 기자를 자신들의 아파트로 데려갔다. 아파트 건물은 강풍으로 유리가 깨져나가 성한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천장의 일부는 내려앉았고, 마당에는 쓰레기가 가득했다. 실내는 전기와 물이 끊겨 침침하고 악취가 진동했다. 두 아이와 함께 전기와 물이 공급되길 기다린다는 오달리스 차베스(40·여)는 “왜 피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집을 놔두고 어디로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무얼 먹고 사느냐고 묻자 “쌀만 먹고 산다.”고 했다.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아들 케스와니(14)는 “학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12월에야 문을 연다고 한다.”면서 “그 전에 우리집 지붕이 무너질 것”이라고 한탄했다. 차베스 가족과 인터뷰 하는 도중 주변으로 한두명씩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선량한 주민들로 보였지만, 일단 고립된 지역에서 이들에게 둘러싸이자 긴장감이 돌았다. ●지옥 같은 임시 수용소 어학 연수 중이던 툴레인대학에 머물다 고립되는 바람에 뉴올리언스 컨벤션 센터에서 이틀간 머물렀던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박재우씨는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가 끊긴 컨벤션 센터는 밤이 되면 암흑 천지”라며 “그 안에서 총격과 강간, 도둑질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가 발생하더라.”고 전했다. 재우씨는 물이 빠지면서 곧바로 컨벤션 센터를 나왔으며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악몽이었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 야스쿠니 8월 두표정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 야스쿠니 8월 두표정

    일본의 패전 60주년인 8월15일 야스쿠니(靖國)신사는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찜통 더위에도 불구하고 20만여명의 참배·관람자들과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어서다. 군국주의 향수에 젖은 우익세력들은 하루종일 신사 경내를 휘젓고 다녔다. 침략전쟁을 반성하자는 양심세력은 신사 근처를 빙빙 돌다 밀려났다. 당연히 엄숙한 추모분위기 대신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이고, 왜 논란의 중심인가. |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집권한 2001년부터 총리가 매년 참배하고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더욱 더 주목을 끌고 있다.2002년 이후 일본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야스쿠니신사는 우익들에게는 군국주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징적인 곳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군국주의 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8월15일 야스쿠니신사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옛 일본군복 차림의 우익인사들이 집단으로 신사를 참배했다. 이들은 오전과 오후 수차례에 걸쳐 거대한 구령소리로 다른 관람자 등에게 위압감을 주면서 옛 일본군이 출전하기 전에 참배하던 식으로 ‘받들어 총’ 자세로 신사를 참배했다. ‘영령에 답하는 모임’ 회원들은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가세,A급 전범 분사를 요구하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도 비난하고 “일본 정부는 외부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분사반대 서명운동을 펼쳤다.‘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고이즈미에게 신벌(神罰)을’이라는 섬뜩한 깃발이 날리기도 했다. 자신을 하라사키라고 밝힌 옛 일본군복 차림의 일본인은 사람들에게 “자위대는 군대다. 따라서 헌법을 고쳐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들, 특히 우익들은 한국언론을 싫어한다. 한국어투가 섞인 일본말로 질문하면 “한국인이지….”라며 적대감을 표시한다. 사라지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그들의 속내를 듣기는 어렵다. 결국 그들간의 대화를 귀동냥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른 나라는 간섭하지 말아줘요 패전 60주년인 올해는 한국인 기자에게 더 민감했다. 평범하게 생긴 60대의 와타나베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짜증냈다. 자신도 참전했었다는 한 80대 노인은 참배 논란에 “내정간섭”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물론 가족을 기리는 참배자도 많았다. 한 80대 할머니는 “형제가 두 명 전사했다. 생명이 있는 한 참배를 계속 하겠다.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으면 우리 형제들이 불쌍하고, 오기도 싫어진다.”고 우려했다. 평소 연인들도 숲이 우거지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야스쿠니를 데이트장소로 많이 찾는다.20대 연인 한 쌍은 “유족은 아니지만, 일본인으로서 참배하러 왔다. 이분들이 일본의 주춧돌이다.”면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참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한 대학생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총리는 참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국내에도 유족은 아주 많이 있지만, 해외에도 피해자가 있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소리 안내는 사람들, 마음은 복잡 평소 사석에서 접하는 일본인들은 비교적 본심에 가깝게 야스쿠니신사 문제에 대해 토로한다. 은퇴한 뒤 4년째 각종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나카자와는 태평양전쟁에 자원 입대했던 삼촌 2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돼 있다. 그래서 야스쿠니를 특별한 의식 없이 찾는다. 다만 A급 전범 분사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확실하다. 일본인은 죽으면 신분 고하를 떠나 신이 되고,A급 전범도 그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분사해도 여전히 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분사해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인들에겐 생뚱맞게 들릴 법하다. 50대 회사원 곤노의 설명은 현실적이다. 야스쿠니에는 246만여명의 위패가 있기 때문에 일본인 전체가 먼 친척까지 포함하면 야스쿠니신사와 일정정도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계기로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초·중·고 시절 단체참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국주의 찬양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본에는 분명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분사나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중지를 요구한다. 극단적으로는 야스쿠니신사 경내의 전쟁박물관인 유슈칸만이라도 즉각 없애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야스쿠니신사가 국제적 논란의 대상이 된 뒤 호기심에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상당수 일본인들은 “야스쿠니 논란 장기화는 누구에게나 상처만 남긴다. 따라서 하루빨리 어떤 형태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며 걱정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日유족회 모리타 쓰구오 부회장|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에 위패가 안치된 태평양전쟁 전사자 유족 모임으로 자민당 최대 후원단체인 일본유족회 모리타 쓰구오(전 참의원 의원) 부회장은 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20년 이상 된 (야스쿠니 신사) 소란이 언제나 그칠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일본인이 야스쿠니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본인 중에도 참배 안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젊은이 가운데는 야스쿠니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찾는 경우가 많다. 일반 신사와 다를 게 없다. ▶고이즈미 총리 등의 참배에 한국, 중국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데. -일면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일본의 가치가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리다. 참배자 대부분이 A급 전범에 관계 없이 유족의 관점에서 참배한다. 나라를 위해 숨진 영령들을 위령하는 이곳을 국정 최고 책임자인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A급 전범 등은 다르지 않나. -일본인들은 A급 전범을 범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쿄재판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731부대 책임자가 미국의 정보에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에 전범에서 누락되는 등 의문점이 많다. 전쟁 책임은 인정하지만, 왜 14명만이 특별히 책임져야 하나. 독일도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나치나 히틀러에 대해 사죄했지, 독일 자신의 사죄는 아니었다. 일본에는 히틀러 같은 사람이 없다. ▶A금 전범 분사에 대해선. -한국과 중국을 만족시킬 해결책이 있으면 검토하겠지만 지금은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분사는 있을 수 없다. 일본을 위한 희생자인데 246만 영령에 끼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 분사 의견도 있긴 하지만 분사는 도쿄재판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반대한다. ▶무종교 추도시설 건립은. -새 추도시설을 만들어도 결국 새로운 논란만을 낳을 뿐이다. 기념비 같은 것은 해외 여론을 달랠 뿐 국내에선 새로운 논쟁이 격렬해진다. 기독교, 불교 등의 반대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이후도 130년 역사의 야스쿠니가 유일한 추도시설이다. ▶일반 국민의 유족회에 대한 생각은. -우익단체나 군국주의를 연상하며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시각에 강력히 반대한다. 우리는 피해자다.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1985년 나카소네 전 총리의 참배 이후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커지며 20년간이나 시끄러운 문제가 됐다. 유족들은 유지하고 싶은데 근린제국들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돼버렸다. taein@seoul.co.kr ■ 야스쿠니 신사는야스쿠니 신사는 왕궁, 국회, 총리관저, 관청가와 가까운 도쿄 한복판에 있다. 연간 참배·관람자는 500만여명에 달한다고 신사측은 밝힌다. 야스쿠니는 ‘편안한 나라’라는 의미다. 따라서 나라를 편안하게 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1978년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고,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가 참배하며 국제적인 논란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최근은 더 심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옛 일본군들이 “죽은 뒤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며 참배한 뒤 태평양전쟁에 나갔을 정도로 국가 신도의 상징장소였다. 일왕 중심의 군국주의의 온상이기도 했다. 따라서 연합군사령부가 야스쿠니를 없애려다,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되자 유지시켰다.1개 종교법인으로 격하됐지만 일본인들에겐 야스쿠니는 특별한 존재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무진전쟁 이후 태평양전쟁까지의 11개 전쟁 전몰자 246만 6532명(지난해 10월17일 현재)이 안치되어 있다.
  • [토요일 아침에]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며칠 전 통계청은 최근 3년 만에 65세 이상 고령자의 자살이 2배 이상 급증했다고 발표했다.1983년의 통계와 비교하면 무려 5배나 증가한 수치라 매우 충격적이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슬프기까지 하다. 자살이란 인간 삶에서 드러나는 가장 절망적인 행위이다. 자살자는 보통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실패한 사람이거나, 혹은 경솔한 결정이나 혼란 때문에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에 자기 스스로를 어리석게 만들고, 또 자신의 삶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살은 물론 개인만의 문제로 비켜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일종의 사회병리현상이다. 현대인의 삶에서 경험되는 급격한 변화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크게 동요시키면서 새로운 질서, 가치는 정착되지 못하고 삶에 불안과 혼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회생활의 모순과 대립 그리고 기존의 가치관이 서로 싸우면서 자살, 이혼, 범죄, 폭력 등이 급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할 때 고령자의 자살 역시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경제적 능력의 상실과 핵가족화, 그리고 건강의 악화 등이 노인 자살자 증가의 주원인이라고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가 어느새 노인들을 소외시키는 사회로 변질되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적어도 부모에 대한 효도나 노인 공경에 있어서는 크게 자랑할 만한 전통을 지닌 나라였지만, 이제는 단지 외형적으로만 유지될 뿐 실질적으로 전통적인 가치관과 윤리의식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이다. 자살의 증가뿐만이 아니다. 독거노인의 반 가까이가 하루 한 끼를 굶고 있고, 또 경제력을 상실하고, 건강 악화로 고통받는 노인들은 스스로를 가족과 사회의 큰 짐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현대사회의 변화가 현대인의 의식 변화를 가져왔다고는 하지만 사회가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변해서는 안 될 가치들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노인들 스스로가 가족과 사회의 짐이 되고 있다는 자괴감과, 그러므로 차라리 죽음이 삶을 더욱 편하게 할 것이라는 패배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노인이기 때문에 사회의 경제활동 주역에서 떠나 있고,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담으로 여긴다고 해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우리 사회를 이끌었던 주역으로서 우리 모두의 존경의 대상이며, 삶의 지혜를 자손들에게 전달해주는 지혜의 샘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명백히 우리 사회의 주요한 한 구성원으로서 보호받을 자격이 있으며, 어느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유엔은 이미 14년 전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들을 위한 원칙’을 발표했는데 그 주요 특징은 독립, 참여, 돌봄, 자기실현, 존엄의 다섯 가지이다. 곧 노인은 정신적·신체적인 학대는 물론 착취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니고 말년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어야 하며, 누구나 자신이 설계하는 인생을 편안히 누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노인들을 위한 여러 정책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선 내 주변부터 눈을 돌려야겠다. 혹시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이라면 주말을 이용해 찾아뵙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전화 안부라도 여쭙는 것이 부모님의 소외감을 덜어주는 작은 효도일 것이다. 현대의 무질서한 사회 변화와 가치관의 혼란이 우리 사회에서 공경받아야 할 노인들을 소외와 죽음으로 내몰지 않도록 우선 나 자신의 작은 노력과 변화가 필요하다. 내 작은 변화는 분명히 노인 공경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전통과 귀한 가치관을 더욱 밝게 빛낼 것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를 인간 모두가 존중되는 사회로 변화시키지 않을까. 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 [Doctor & Disease] 경희대 재활의학과 이종하 박사

    [Doctor & Disease] 경희대 재활의학과 이종하 박사

    “세상이 그런 걸 감안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약으로 살을 빼겠다거나 근육을 부풀리겠다는 발상입니다. 단순히 살이 빠지고, 근육이 커지는 정도에서 그치면 좋겠지만, 심하면 죽음에 이르는 부작용을 낳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겁니다. 서울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그리피스 조이너가 심장마비로 숨졌을 때 의사들은 다 ‘약물’ 때문이라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문제는 일반인들까지도 자꾸 이런 유혹에 넘어간다는 사실입니다.” 10년이 넘게 태릉선수촌을 오가며 국가대표 선수들의 재활과 도핑 문제를 도맡다시피 한 경희대 재활의학과 이종하(45) 박사. 그에게 있어 약물, 특히 도핑과 관련된 약물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금기의 룰’이었다.“운동선수들은 존재 이유를 ‘승리’나 기록 갱신’에서 찾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그런 만큼 ‘도핑테스트’라는 제도적인 방지책과 징계라는 억제 수단이 있지만 일반인은 그런 제약이 없어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운동선수도 금기약물인 에페드린 여성들 마구 먹어 이 박사는 운동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이나 부상통증 해소를 위해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이른바 도핑 문제를 꺼내자 정색을 했다.“시장 규모가 엄청난 미국에서는 프로스포츠의 경우 따로 약물을 규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능력 이상의 힘과 기량이 필요한 경우 별 주저없이 이런 약물을 사용합니다. 근육강화제인 아나볼릭스테로이드나 에페드린, 메틸에페드린과 카페인제제류의 흥분제가 대표적이지요. 특히 에페드린은 생약 성분인 반하, 마황에 많이 포함돼 있는데 요즘 들어 이걸 살빼는 약으로 알고 무턱대고 먹는 여성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가 경고하는 이런 약물의 부작용은 심장 발작과 빈맥, 간장 손상, 고환기능 장애로 인한 성기능 퇴조, 불면증, 이상 흥분, 정서불안 등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이런 약물을 일부 헬스클럽 관계자들이 운동하는 일반인에게 권하는 일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란다. 더 놀라운 것은 비만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일주일이면 몰라볼 만큼 살이 빠진다.’며 접근하는 보따리상이나 홈쇼핑 업체들을 통해 무작위로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장발작·간장손상… 성기능 퇴조 부를수도 “이뇨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더러는 살을 뺄 목적으로 이걸 사용하는데,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체내 전해질 군형이 깨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 최근 웰빙 붐을 타고 운동인구가 늘면서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을 할 때 호흡곤란을 줄여준다는 EPO(펩타이드 호르몬제)의 경우 혈중 적혈구 숫자를 일시적으로 늘려 심장마비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심혈관계와 내분비계가 교란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일반인들은 물론 운동 선수들도 이런 위험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되는 약물의 종류가 워낙 많은 데다 계몽이나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서다.“예전 방콕아시안게임 때 일부 종목 선수들이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카페인과 마황 성분의 흥분제를 복용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습니다. 이걸 먹으면 피로감이 덜하고 운동에너지가 향상되는 데다가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먹는다는 말에 별 생각없이 복용했던 것인데, 이게 금지약물이었던 겁니다.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선수들이 이 정도니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현재 IOC가 지정한 금지약물은 크게 ▲펩타이드 호르몬제 ▲근육강화제 ▲마약성 흥분제 ▲마약성 진통제 ▲이뇨제 등이다. 국내에서 이런 성분을 함유한 약제는 수백가지가 넘는다. 종류도 안약, 피부에 바르는 외용제, 먹는 경구용 제제 등으로 다양해 누구든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작용 기전과 종류는 다르지만 이런 약제가 갖는 공통점은 심리적 의존성과 습관성이 강해 사용을 중단하면 심각한 금단현상이 나타난다.“전문가들은 약물 효과나 금단증상을 겪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가령 남자의 유방이 커지는 등 여성형 체형으로 변한다든가,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사람, 갑자기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정서불안, 여성의 생리불순, 여드름 증가, 성욕감퇴에다가 더러는 대머리가 되기도 합니다.” ●청소년들 환각제로 사용… 반도핑 인프라 시급 이런 약물이 더 두려운 것은 수많은 젊은이와 청소년들까지도 예사로 환각제나 마약성 진통제를 찾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상은 성문화 개방과 약물에의 노출이 맞물리면서 폭력이나 성범죄가 놀라운 증가세를 보인다.“청소년들이 이런 약물을 찾는 이유는 약물의 힘에 의지해 답답한 현실에서 일탈하려는 건데 이건 말이 안 되지요. 대한민국에 답답한 청소년이 어디 하나, 둘입니까. 또 상황이 이 정도면 청소년위원회 같은 곳에서도 자꾸 성범죄만 말할 게 아니라 약물 문제를 함께 다뤄줘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실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도핑과 관련한 변변한 통계 하나 없다. 이를 두고 그는 ‘도핑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지금 국내에는 도핑검사가 가능한 곳이 KIST 도핑센터 한 곳뿐인데, 이곳에서 일반인의 도핑까지 담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약물의 위해성으로부터 일반인을 보호하려면 당연히 관심을 갖고 반도핑 인프라를 구축해야지요.” 이 박사는 “이 상태에서 더 나가면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누구나 약물로 살을 빼려 하고, 약물로 기분을 바꾸려 하고, 약물로 건강해지려 한다면 그건 망상이라며 지금이라도 사회나 국가가 미온적, 온정적 입장을 버리고 실효성 있는 처방을 내놔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이종하 박사는 ▲경희대의대 및 대학원(박사)▲한국재활의학회·스포츠의학회·임상노인의학회 회원▲대한올림픽위원회 의무분과 위원·세계태권도연맹 TUE위원장▲미국 애틀란타올림픽·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태국 방콕아시안게임·호주 시드니올림픽·베이징 유니버시아드·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부산아시안게임·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계유니버시아드 한국대표팀 의료대표단▲현 경희의료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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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무부 ◇승진 (2급)△대구고검 사무국장 康基寬△광주고검 〃 許昌基(3급)△서울고검 총무과장 許 英△대전고검 〃 洪性龍△서울중앙지검 〃 曺昌植△대구지검 〃 金俊明△부산지검 〃 李基宣(4급)△법무부 법무과 羅相雲△〃 송무과 柳南鎭△〃 검찰제1과 金福洙△〃 검찰제3과 孫大翼△법무부(파견) 金平煥 金鵬會△법무연수원 일반연수과장 李勳鎬△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張璣和△부산고검 사건과장 金龍大△서울서부지검 조사과장 金鍾一△인천지검 집행과장 丁金聲△청주지검 총무과장 李錫永△〃 사건과장 韓義洙△〃 수사과장 李秉大△안동지청 사무과장 琴秉烈△포항지청 〃 都龍洙△김천지청 〃 朴用晩△부산동부지청 총무과장 崔璨模△울산지검 집행과장 尹成基△전주지검 〃 鄭燦澤△제주지검 사건과장 朴成淳◇전보 (2급)△서울고검 사무국장 姜信出△부산고검 〃 李英浩(3급)△서울중앙지검 사무국장 徐熙錫△서울동부지검 〃 余光鎭△서울남부지검 〃 李元雨△의정부지검 〃 朴載鉉△인천지검 〃 金洪培△수원지검 〃 金瑞南△춘천지검 〃 吳亨燮△청주지검 〃 金英玉△제주지검 〃 朴榮基△대검찰청 총무과장 李鏡炫△부산고검 〃 李鍾佑(4급)△대검찰청 검찰총장비서관 李太燮△〃 감찰제2과 金光洙△서울고검 소송사무1과장 許 煥△〃 소송사무2과장 金桂煥△대전고검 사건과장 吳應秀△대구고검 〃 都桂祿△서울중앙지검 증거물과장 金鎭宇△〃 공안과장 宋完鏞△〃 수사제1과장 宋德基△〃 수사지원과장 李在鎬△〃 조직범죄수사과장 金桓泳△〃 검사직무대리 康棟弼△서울동부지검 집행과장 全孝洙△〃 공판과장 洪性煥△서울남부지검 총무과장 李白龍△〃 집행과장 鄭亨永△〃 공판과장 金貞玉△〃 조사과장 申鎬宗△〃 수사과장 金永來△〃 검사직무대리 劉承俊△서울동부지검 사건과장 金成洙△서울서부지검 총무과장 崔昌植△〃 수사과장 崔基云△의정부지검 사건과장 李在寬△고양지청 사무과장 李正模△인천지검 사건과장 朴容敏△〃 수사과장 安昌煥△〃 마약수사과장 金在新△〃 공판송무과장 權赫轍△수원지검 총무과장 愼範植△〃 수사과장 尹明俊△〃 공판송무과장 姜周植△〃 검사직무대리 白雲起△성남지청 사무과장 韓圭洙△평택지청 〃 成墉均△안산지청 〃 劉点龍△대전지검 총무과장 朴炳勳△〃 사건과장 魏龍水△〃 수사과장 徐鍾漢△홍성지청 사무과장 李相億△서산지청 〃 金東準△대구지검 집행과장 柳興植△〃 조사과장 徐秀吉△〃 수사과장 許益煥△부산지검 기록관리과장 徐永吉△〃 수사과장 沈鏞輔△〃 수사지원과장 鄭炳鎬△〃 조직범죄수사과장 羅福贊△울산지검 사건과장 朴成道△〃 수사과장 陳喆圭△창원지검 총무과장 金在英△〃 사건과장 尹在茂△〃 집행과장 崔賢奎△〃 수사과장 池昌浩△진주지청 사무과장 盧相龍△광주지검 집행과장 李炯玖△〃 수사과장 金塗洙△〃 검사직무대리 申鉉允△순천지청 사무과장 安秉郁△전주지검 사건과장 엄생희△〃 수사과장 白尙鉉△정읍지청 사무과장 許基浚△법무부 부패방지위원회 鄭飛鎬◇부이사관 승진△서울구치소 부소장 조성룡△대구교도소 〃 이국주◇서기관 승진△서울지방교정청 작업과장 김재곤△대구지방교정청 〃 이상국△대전지방교정청 보안과장 한본우△광주지방교정청 〃 박현조△〃 작업과장 박종관△대전교도소 서무과장 최효숙△대구교도소 〃 권기훈△광주교도소 〃 김준겸△영등포구치소 〃 양규열△청송교도소 〃 김혁년△대구교도소 교무과장 김영균◇부이사관 전보△광주지방교정청장 직무대리 양인권△대전교도소장 김양택△대구교도소장 김현태△부산구치소장 김용기△수원구치소장 김태희△성동구치소장 조영호△영등포구치소장 이태희△청송교도소장 최상국◇서기관 전보△여주교도소장 나승두△전주교도소장 하기수△부산교도소장 강중근△마산교도소장 김문하△영등포교도소장 최상윤△진주교도소장 박병철△목포교도소장 이일준△대구구치소장 추의식△군산교도소장 고종석△천안소년교도소장 송영삼△청송직업훈련교도소장 김현석△원주교도소장 이재부△안동교도소장 정종욱△청송제2교도소장 정 돈△청주여자교도소장 황순일△김천교도소장 이진호△청송보호감호소장 곽두일△울산구치소장 이상희△홍성교도소장 장동원△경주교도소장 강동운△통영구치소장 이정규△장흥교도소장 송방식△대전교도소 부소장 나진영△광주교도소 〃 박성식△안양교도소 〃 김종규△부산구치소 〃 한재준△수원구치소 〃 배명수△성동구치소 〃 손행용△인천구치소 〃 김영식△영등포구치소 〃 김선태△천안개방교도소 〃 정원섭△서울지방교정청 총무과장 임재표△〃 보안과장 박용철△대구지방교정청 총무과장 이상승△〃 보안과장 오영태△대전지방교정청 총무과장 윤태섭△광주지방교정청 〃 정종신△안양교도소 서무과장 서병석△부산구치소 서무과장 이종원△수원구치소 〃 경의성■ 보건복지부 △보건정책국 국립대병원발전추진팀장 曺基元△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장 한현우△〃 생물테러대응과장 金榮澤△〃 생명과학연구관리과장 金 澤△국립서울병원 약제과 기술서기관 尹泰權△영국 버밍햄대학교 국외훈련 파견 金惠珍 姜民奎■ 관세청 ◇전보(국장급)△감사관 千泓昱△조사감시국장 李大馥△인천공항세관장 朴在洪△부산세관장 吳炳台△인천〃 禹鍾顔△교육원 교수부장 徐允源 (과장급)△청장 비서관 李明九△혁신기획관 鄭在烈△통관기획과장 李在興△특수통관〃 金鐵△심사정책〃 鄭在完△외환조사〃 陳仁根△공항휴대품통관국장 千甲淇△공항 조사감시〃 崔圭完△부산 조사〃 尹彰洙△성남세관장 申龍德△동해〃 皮在祺△천안〃 李燦基△창원〃 李鍾崙△양산〃 辛泰郁△마산〃 兪相鎭△인천 조사감시국장 崔丘夏△수원세관장 鄭宗完△포항〃 尹南憲△울산〃 河英修△목포〃 金成中△상하이총영사관 朱時炅△관세청 金勇植 ■ 경찰청 ◇총경급 전보△화천경찰서장 李 碩△청양경찰서장 李錫化■ 국무조정실 ◇과장급 전보△심사평가제도심의관실 朱福元△교육문화〃 林燦佑■ 울산시 ◇부이사관급 승진 △도시국장 辛璋烈 ◇서기관급 전보 △정보화담당관 邊鎬鳳△의회전문위원 金應坤△감사관 鄭道永△민방위재난관리과장 朴正植△사회복지〃 朴世祺△건설행정〃 金正道△자치행정〃 安多洙△도로〃 崔光海△도시개발〃 成逢慶△중구 국장요원 兪炳泰 朴承烈△남구 〃 崔洛銀△동구 〃 李圭植 文石祚△북구 〃 尹台昊△울주군 〃 李三宰△종합건설본부 시설부장 張光大 ◇서기관급 승진 △법무담당관 金泰五△기업지원과장 李鍾歡△문화예술〃 金龍燮△도시미관〃 金炳杰△지적〃 朴載完△상수도사업본부 시설관리사업소장 金再坤■ 국민연금관리공단 ◇1급 승진△익산지사장 裵晟勳△남대구〃 禹得濟△포항〃 魯慶安△창원〃 咸賢圭△김해〃 吳判述△진주〃 南銀珍◇1급 전보△혁신평가팀장 全根喆△충청지역관할지사장(대전지사장) 李晟煥△동대문중랑〃 金五泳△성북강북〃 朴英來△강동하남〃 李鍾河△안양〃 鄭在亮△안산〃 朴德洙△부천〃 權善敏△파주〃 吳賢均△구리남양주〃 李容百◇2급 승진 (부장)△총무관리실 金應煥△성남지사 廉春美△대전〃 張鳳翼△동대전〃 崔玄鎬△익산〃 愼熙晟△광주〃 李在鶴 康賢鎭△북광주〃 許基道△포항〃 李忠根 崔晶仁△북부산〃 崔柄龍△남부산〃 柳承洛△창원〃 金炫成 金昌均△김해〃 曺炅兌◇2급 전보△강서지사장 宋成鉉△양천〃 朴鶴來△용산〃 徐仁弼△군포의왕〃 崔惠蘭△북대전〃 崔浩烈△영주〃 李東明△문경〃 徐正準(부장)△총무관리실 金武龍△가입자관리실 金濟均△연금급여실 崔成百△감사실 宋鎬東 金泓成△홍보실 金信哲△혁신평가팀 安鉉朱△노인인력운영센터 鄭豊喜 李根直△고객만족기획단 金哲浩 申玉澈△성북강북지사 朴鐘健△도봉노원〃 宋炅學△강동하남〃 吳承熙 李在求△강남〃 安盛根 姜渭本△구로금천〃 金良泰△영등포〃 韓學錫△서대문은평〃 李秉源 李昌彦△수원〃 金完壽△안산〃 金承奎△고양〃 李南正 金春坤△구리남양주〃 李德熙△춘천〃 李和一△대전〃 申東權 △동대전〃 朴泰湜△전주〃 金在千△광주〃 金中喜△대구〃 李在源△서대구〃 李泰煥 金百基△남대구〃 禹斗坤△구미〃 張基成△부산〃 姜秉昌△동래〃 安廷泰△진주〃 金鍾鎭■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기획조정실장 李昌雨△도시계획설계연구부장 金善雄△도시교통〃 金淳觀△도시환경〃 劉基榮■ 명지대 △부총장 兪炳辰△대학원장 겸 사회복지대학원장 李愚賢△공과대학장 金玄郁△사회교육대학원장 朴富珍△교목실장 具齊泓△인문 학생지원처장 徐成源■ 대한주택공사 ◇신임△홍보실장 박성태
  • [CEO 칼럼] ‘김우중’ 공정한 평가 이렇게/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CEO 칼럼] ‘김우중’ 공정한 평가 이렇게/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인위적이고 주관적 잣대에 의한 흥분을 가라앉혀야 한다. 더구나 대우 출신 등 이해가 걸린 이들의 아우성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6월15일 새벽 5시30분에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나타냈다.69세 노인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느껴 과거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로써 1999년 중국에서 종적을 감춘 뒤 5년 8개월간의 해외 체류를 끝내고 그는 한국인들 앞에 서게 됐다. 1967년 3월,31세의 김우중씨는 자본금 500만원을 가지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30년 후 대우는 자산 83조원과 매출 62조원의 국내 2위 재벌로 컸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대우가 무너진 것은 1999년이다.IMF 외환위기를 만나면서 벼랑에 섰다. 분식회계로 빚을 끌어다 신규 투자를 벌이는 김우중식 경영에 브레이크가 걸렸다.68조원대의 부채를 안고 있던 대우는 무너졌고 공적자금 29조 7000억원이 투입되면서 주요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이 시작됐다. 자산관리공사에 의하면 지금까지 계열사 매각이나 채권권리 등을 통해 7조 7000억원을 회수했을 뿐이다. 대우 조선해양 등을 추가 매각한다 해도 결국 10조원대의 국민혈세는 허공에 날리게 됐고 38만명에 이르는 대우 소액주주들도 3조원 가까운 피해를 봤다. 귀국 전부터 그의 공과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다. 민주노동당은 김우중식 세계경영은 실패한 경영의 표본이라고 깎아내렸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세계경영에 대한 공과가 엇갈렸다.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이한구 의원은 대우 부도사태에 대해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김 전 회장의 경제성장에 끼친 공을 강조했다. 반면에 대우사태 때 재경부 금융국장을 지낸 이종구 의원은 대우부도는 투자실패와 위기관리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김 전 회장의 과(過)를 주장했다. 그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냉철한 노력이 긴요하다. 첫째, 인위적이고 주관적 잣대에 의한 흥분을 가라앉혀야 한다. 더구나 대우 출신 등 이해가 걸린 이들의 아우성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 전 회장을 진정 돕고 싶다면 주장을 아껴야 한다.‘세계가 열린다, 미래가 보인다-김우중의 세계경영’이란 책을 쓴 학자들도 신중하기 바란다. 대우에 근무하던 386 운동권 출신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발언할 차례를 조용히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 보도에 의하면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사법적 판단은 사법부에 맡기고 우리 경제에 미친 김 전 회장의 공과문제는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마땅한 말을 하면서도 “실패한 기업인과 나는 백지한장 차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모든 기업인들이 범죄 수준에 있다.’는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족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박 회장의 말대로 ‘법을 존중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잘못만 앞세워 김우중 전 회장을 몰아붙이기만 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주장도 미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過)가 있으나 공이 있으므로 비겨 버리자는 은연 중의 주장은 현재 모든 국민들의 합의가 아니다. 둘째, 김 전 회장의 귀국에 따른 ‘후폭풍’(?)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 전 회장 자신부터 무리한 명예회복(?)과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무상심이 필요하다. 정치와 경제가 중첩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지만 김우중 공과의 평가는 시종 경제논리로 풀어가는 게 슬기로운 일이다. 셋째, 언론 자체가 원래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하여 선정적 보도로 장사를 해야 하는 메커니즘이긴 하다. 하지만 각계의 주장보다 DNA를 판독하듯 팩트(fact)를 좀더 꼼꼼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여 역사 앞에 헌신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넷째, 경제·경영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건강한 식견을 갖춘 경영전문가로 구성된 가칭 ‘김우중 공정평가를 위한 자문기구’를 발족시켜 사법권의 판단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김 전 회장과 대우 사태는 진행형이다.CEO 연구가로서 필자는 지켜볼 것이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 [교정 대상 수상자]

    ■ 대상수상 대전교도소 보안과 이정옥 교위 “죄가 미울 뿐이지 마음은 여린 사람들입니다.” 제23회 교정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대전교도소 보안과 이정옥(54·여) 교위는 수형자들을 이렇게 표현했다.1971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후 33년 7개월 동안 근무한 이 교위는 여성 재소자들의 교정(矯正)을 담당하고 있다. 항상 온화한 성품으로 재소자들을 대하는 이 교위는 그들의 대모로 통한다. 다른 직업을 마다하고 굳이 교도관의 길을 택한 것은 먼저 교도관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에서였다. 올해 여든넷이 된 아버지의 당시 직업은 어린 그에게 이상적이고 매력적으로 비쳐졌다. 대전여고를 졸업했지만 나이가 응시 기준에 미달돼 교도관 시험을 보지 못했다.1년을 기다려 ‘교도(9급)’ 계급장을 달았다. 이 교위가 교도관이 되었던 그해 3월 아버지는 공교롭게도 만 50세로 정년퇴직을 했다. 이 교위는 “처음에는 (재소자들이) 무서워서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자식같고 동생같은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맘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도관을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죄를 연결시키면 마음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버림받아 감옥에서 연을 맺은 생면부지의 그들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부모나 가족이 못한 일을 하는 것을 사명이자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살인죄로 복역하다 가석방된 유모(여)씨와의 인연은 동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1986년 교도소에서 만난 유씨는 고향뿐 아니라 나이도 비슷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친 유씨는 무서운 범죄자로 전락하면서 삶을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이 교위는 수차례 상담을 하면서 마음을 열게 해 미용기술과 뜨개질을 가르쳤고 청소 담당 책임자의 역할도 맡겼다. 가장 마음을 썼던 것은 그에게 가족의 정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유씨는 목포의 복지가와 자매결연을 한 것이 계기가 돼 1993년 출소 후 결혼도 했다. 유씨가 첫 아이를 낳아 1995년 아이 돌이라며 연락이 와 참석했을 때는 너무나 가슴이 벅차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교위의 동료들은 그를 천성적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부에서 출소자 옷을 준비해주지 않던 시절 자비로 옷을 사 주거나 자기 옷을 갖다 주는 일이 다반사였고 수감자들의 수술비나 치료비도 지원해주는 등의 선행을 베풀어왔다. 이 교위는 “관공서나 복지시설, 독지가 등이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교도복을 벗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사무실보다는 현장에 머물고 싶다.”면서 “작은 힘이나마 재소자들이 재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본상 ■ 교화상 서홍석 원주교도소 직업훈련교사 91년 원주교도소 제29공공직업 훈련소 직업훈련교사로 임용돼 13년 동안 수용자들의 직업훈련을 담당한 모범 교정 공무원이다. 건축시공산업기사 취득자 5명에게 취업을 알선해 주는 등 출소자 30명에게 자립기반을 마련해 줬다. 또 수용자 108명이 각종 경기대회에서 입상, 총 1억 2000만원을 상금으로 받는 데 도움을 줬다. 2002년에는 봉사단체인 한국기능선수회를 세워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들의 집을 고쳐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 공로상 최한기 천안소년교도소 교화위원 중학교 권투부 코치로 활약하다 87년부터 인천소년교도소에 자원해 18년 동안 스포츠를 통해 소년수용자들을 교화해 왔다. 지금까지 55차례에 걸쳐 199명의 수용자들이 각종 아마·프로 권투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지도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슈퍼페더급 챔피언까지 배출해 냈다. 또 기증운동을 벌여 스포츠계 인사 등으로부터 20종에 이르는 1780만원어치의 각종 훈련장비를 받아 소년 수용자들이 효율적인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 창의상 구우진 마산교도소 교위 80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24년 4개월 동안 일하면서 창의적인 근무 자세로 출소자 취업 알선, 직장 화합 분위기 조성 등에 기여한 바 크다. 83∼86년 4년 동안 의무과에 근무할 때에는 전국에서 집금 수용된 정신·결핵 환자 350명을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85년부터는 출소자 30여명을 마산시 소재 기업체에 취업을 알선해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청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교도관일 뿐만 아니라 팔순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이기도 하다. ■ 자애상 신동민 원주교도소 종교위원 10년 가까이 종교활동을 하고 생활지원을 하는 등 수용자 교화활동에 참여했다. 돌볼 사람이 없는 수용자의 자녀를 보호 시설에 연계시켜 주는 일을 해 왔으며, 갈 곳 없는 수용자들이 출소 뒤 쉼터에 머물 수 있도록 지원했다. 95년 10월부터 176차례의 종파교회와 10차례의 영세식을 실시하는 등 수용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신앙지도를 실시해 왔다. 또 10번에 걸쳐 수용자 300여명에게 원주가톨릭 사회복지관에서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 성실상 김재중 영등포구치소 교위 75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30년 1개월 동안 장기 근속하면서 불우수용자들의 벌금을 대신 내주거나 그들의 가족을 돌봐 주는 등 교정행정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 88년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김모씨를 비롯해 지금까지 197명의 수용자에게 545만원의 영치금을 지원했다. 부인과 함께 출소자 선교를 위한 참사랑교회를 세워 출소자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며 재범을 방지하는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자비상 황용주 전주교도소 종교위원 정읍 일광사 주지로 1986년부터 불교 독지방문위원으로 활동하다 97년 교정위원으로 위촉됐다. 지금까지 매월 3차례 이상 총 818회 14만여명의 종파 집회를 집전하고 수용자 1종교 갖기 운동을 이끌었다. 96년부터 매월 20명씩 총 2830여명을 ‘이달의 불자’로 선정, 상담하고 영치금 등으로 1930만원을 후원했다. 이밖에 수용자 사회체험 및 봉사활동을 후원하고 교화용 기자재를 지원하는 등 수용자 정서순화와 교정교화를 위해 애써 왔다. ■ 면려상 김성봉 목포교도소 교감 75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29년 6개월 동안 장기근속하면서 수용자들의 정신교육기법 개발과 직업훈련 강화에 남다른 신경을 써왔다.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용자에게 양복 기능사 1급 자격증을 받도록 도와 가석방 후 새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1994년에는 문제수 51명을 대상으로 1220여차례 상담을 실시해 이들의 심성 순화를 도왔다.2000년부터 4년 동안 목포교도소 중대장으로 근무할 때는 전 경비교도대원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888명의 유단자를 양성해냈다. ■ 박애상 박상영 경주교도소 종교위원 포항 성결교회 목사로 수용자들의 종교활동을 지원하고 생활용품 제공, 교육실·도서실 보수, 이동도서함 설치, 정보화교육 기자재 기증, 무의탁자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왔다. 지금까지 1만 6500여명을 상대로 238차례에 걸쳐 기독교 집회를 주관했으며 39차례 1160명에게 생일행사를 열어 주면서 1500만원어치의 생활필수품 등을 제공했다. 수용자 교육용 TV수리, 방송기자재 교체 등에 필요한 자금 2800여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별상 ■ 면려상 손윤규 공주교도소 교위 1992년 민원실을 교정기관 최초로 은행창구식으로 개조하고 미결수용자 영치금 반환절차를 간소화했다.1999년 불우수용자 가족을 돕는 모임인 ‘나눔회’를 결성해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수용자 451명에게 영치금과 생필품 등 1800여만원어치를 지원했다.2001년 12월 경비교도 후원회를 결성,1134만원을 지원했다. ■ 창의상 정기수 대구교도소 교위 2000년 10월부터 직업훈련담당으로 기능사 등 810명에게 각종 기술자격을 취득하게 했다.2003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재소자의 생활이 어려운 것을 알고 성금을 지원받아 세탁소를 개업하도록 도와 줬다.2004년에는 한 수용자의 벌금 30만원을 자비로 대납하여 조기 출소하도록 도와 줬다. 불우수용자에게 영치금도 지원해 줬다. ■ 교화상 손기운 청송보호감호소 교회사 1986년 출소자 3명의 벌금 55만원을 대납해 줬다.1988년부터 피아노,TV, 도서 등 3560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를 수증하였고 김천소년교도소 재직 때는 한자교재 500여권을 확보해 소년수용자들을 가르쳤다.1991년에는 무연고 수용자를 벽돌공장에 취업시키고 무의탁 수용자를 자매결연자와 연계시켜 주었다. ■ 박애상 이숙경 영등포교도소 종교위원 동현교회 집사로 수용자 합창단 및 성가대 지도, 기독교 집회 피아노연주 및 성가대 지휘, 수형자 자매결연, 체육대회 지원, 불우수용자 영치금 제공 등 활동을 해 왔다. 지금까지 수형자 184명과 자매결연해 연간 80여차례 총 1614회에 걸쳐 7420여만원어치의 음식 등을 지원했다. ■ 공로상 심재왕 군산교도소 교화위원 16년 가까이 무의탁 수용자의 벌금을 대신 내고 학용품과 교재를 기증하는 등 교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91년부터 매년 10명씩 총 140여명의 불우수용자와 자매결연해 도왔다. 현재 군산교도소 교정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며, 두차례에 걸쳐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자애상 홍승순 울산구치소 종교위원 96년부터 128차례에 걸쳐 3840여명의 수용자에게 천주교 집회를 주관하고,27차례에 걸쳐 405명의 예비신자에게 천주교 교리를 지도했다. 체육대회 주관과 교양도서·서화 및 생활용품 기증 등을 통해 복지향상에 기여해 왔다. 수용자들의 심성을 순화하기 위한 교정 미술공간 조성 사업에도 동참했다. ■ 자비상 윤여진 여주교도소 종교위원 봉림사 주지로 1988년 수원교도소와 인연을 맺은 뒤 93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됐다. 불교종파 교회를 170차례 3만 5000여명에게 실시했다.99년 충남 천안에 장애인·소년소녀 가장·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시설 ‘부처님 마을’을 운영하는 한편 군인과 전경을 위문하는 봉사 활동을 해왔다. ■ 성실상 김동수 여주교도소 교위 1994년부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들의 수용시설인 의왕호스피스선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불우이웃을 도왔다.2000년 1월 거처할 곳이 없는 불우수형자 3명을 의정부 영농협동조합에 취업시켜 주었다.2001년 이후 의지할 곳 없는 병든 수용자들에게 사회복지시설과 연계시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 [사설] 어린이날에 어버이를 생각한다

    오늘은 여든세번째 맞는 어린이날이다.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랴,오늘 하루 가족동반 외출 계획을 짜랴 지난 며칠 바빴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놀이공원을 비롯한 행사장·공연장 등에는 인파가 넘쳐날 것으로 예상된다.그런데 행여 아들·딸 데리고 외출하면서 나이 드신 부모에게는 집 지키시라며 홀로 남겨 두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제 자식은 끔찍이 챙기면서 저를 낳아준 부모는 소홀히 하는 이가 워낙 많은 세상이기에 하는 걱정이다.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3년 당시는 유교윤리가 지배하던 시절이고,세대간 윤리기준의 바탕은 ‘장유유서’였다. 따라서 어른을 공경하는 게 어린 사람의 도리인 데 견줘 어른이 어린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마음은 희박했다. 이런 악습을 깨고자 선각자들이 계몽운동 차원에서 정한 것이 어린이날이다. 젊은이·늙은이라는 표현에 맞춰 어린 사람도 인격체임을 강조한 단어 ‘어린이’가 탄생한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비록 아동학대 등의 범죄적 행태가 일부 남아 있기는 하나 이 시대의 어린이는 더이상 가정과 사회에서 약자라고 하기 힘들다. 한 두 자녀를 키우는 집이 대부분이다 보니 가정사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기 십상이요,그래서 부모의 과잉보호가 오히려 논란에 오른다. 반면 이 시대 늙으신 부모의 위상은 어떠한가.올해 65세가 되는 1940년생을 기준으로 할 때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공간의 혼란을 거친 뒤 열살이 되어 한국전쟁을 겪었다. 1950년대 전후(戰後)의 절대빈곤을 거쳐 60∼70년대에는 경제건설의 최일선에 섰다. 베트남전쟁에 파병돼 밀림의 전투에서 겨우 살아 남은 이가 그들이며,열사의 땅 중동에서 건설노동자로,머나먼 독일에서 광산노동자·간호사로 돈 벌어 모국의 가족에게 송금한 이도 그들이다. 지금 30대이상 세대의 부모는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다. 1940년생보다 연세가 높다면 그들의 삶은 그만큼 더 신산(辛酸)했으리라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나간 삶을 보상받기는커녕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사회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외면 받고 버림 받는 것이다. 한 예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행한 조사를 보면 노인들의 37.8%가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노부모를 모시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노인과 어린이가 갖는 위상은,어린이날이 제정되던 당시에 비해 완전히 역전됐다. 앞으로 사회와 가정에서 사랑 받고 보호 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노인은 어린이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서야 한다. 제 자식을 지금처럼 사랑하되 부모 사랑과 공경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나 자신이 자녀에게 거울임을 명심해 아이에게도 할머니·할아버지를 공경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나를 보며 자란 아이들이 훗날 나를 공경할 리는 없다. 오늘 어린이날,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되살리자.
  • 범죄피해자 지원 어떻게

    범죄피해자 지원 어떻게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지원은 너무 미미했다. 흉악범죄가 급증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피해자들을 돕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민간차원의 지원 활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범죄 피해자 보호 대책을 마련, 민간활동을 돕는 한편 재정지원책도 강구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 현황과 사례, 문제점 등을 살펴본다. 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는 전국 55곳에 설립돼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지원센터의 봉사자들은 피해자와 법정에 함께 가고, 사건 진행정보를 알려주며, 의료·생계지원도 한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지원센터는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률·의료상담은 물론 생계지원까지 사례 1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40대 아내가 남편을 청부살해한 사건이 서울에서 발생했다. 아내는 구속되고, 세 남매만 남았다. 충격을 받은 아이들은 아버지가 숨진 집에서 살아야 했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닥쳐왔다. 이에 지원센터는 아이들 집을 자주 찾아가 말 벗이 되고, 밥과 반찬도 챙겨줬다. 구청과 협의해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와 소년소녀가장으로 선정되도록 도왔다. 덕분에 지난 2월부터 아이들은 다달이 98만 8000원을 받게 됐다.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아이의 전학도 주선했다. 전세금 금융지원을 얻어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사례 2 병든 할머니와 홀로 살던 중학생 A양이 성폭행을 당했다. 지원단체는 혼돈상태에 빠진 A양을 쉼터로 옮기고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자원봉사자가 매주 방문, 청소하고 밑반찬을 만들었다.A양도 안정을 되찾고 학교에 다시 등교하고 있다. 사례 3 피해자 B(16)양과 C(19)양은 의붓아버지에게 4년간 성폭행을 당했다. 친어머니는 딸들이 산부인과 치료를 받을 만큼 다쳤는데도, 거짓말이라며 아버지를 두둔했다. 충격을 받은 아이들에게 지원센터는 정신과 치료 등을 무료로 받도록 돕고, 학비도 지원했다. 취업을 원하는 큰 딸이 중소기업에서 면접을 보도록 주선했다. 사례 4 강도에게 남편을 잃은 아내 D씨는 법정 증인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상황이 떠올라 D씨는 가해자를 마주하기가 겁났다. 연락을 받은 검찰 직원이 D씨 집을 방문, 함께 법정까지 갔다.D씨가 증언하는 동안에도 직원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D씨는 “낯설고 두려웠는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사고로 처음 시작 피해자보호센터는 2003년 9월 대구지하철 사고 200일을 맞아 구미에서 처음 개설됐다. 지하철 방화로 목숨을 잃은 190명의 유족들에게 체계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공공기관은 아니고 민간에서 만든 기관이다. 지난해 7월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붙잡히면서 피해자보호 활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지난해 전체 범죄건수는 205만 8360건으로 2003년(191만 6631건)보다 7.4% 증가했다. 살인 4.8%, 강간 10.1%, 폭력·협박 42.1%, 절도 61.6% 늘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범죄피해자보호·지원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민간 지원센터 설립을 지원했다.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 중앙센터를 비롯해 전국에서 센터가 잇따라 들어섰다. 상담과 더불어 의료·법률지원, 살인 현장 청소도 맡고 있다. 중앙센터 최혜선 사무처장은 “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고,10년 동안 악몽에 시달리다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면서 “피해자 대부분이 작은 도움에도 감동하고 위로받는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 조균석 차장검사는 “앞으로 전문가가 경찰과 함께 사건 현장에 출동, 피해자를 상담하고 현실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면서 “체계적 지원만이 2차,3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원부족이 걸림돌 민간이 주도하는 지원센터는 재원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법무부는 피해자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지원센터를 후원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 사무실을 빌려주는 것 외에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규정한 ‘피해자보호법’을 입법예고했지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피해자 지원대책을 기다리느라 처리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지원센터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매우 크다. 월급을 주지 못해 상근자가 떠나고, 자원봉사자 교육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일반 후원금도 없는데 정부까지 지원하지 않으니 대부분 문 닫을 형편”이라면서 “초창기엔 국가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미·김천시의 경우 설립할 때 약속대로 매년 1억원씩 후원하고 있다. 활동도 활발해 1년 6개월 만에 상담건수는 1000건을 웃돌고 있고, 후원자도 302명으로 늘었다. 법무부는 최근 지원센터를 긴급 지원하고자 국무총리 산하 복권위원회에 복권기금 61억원을 신청했다. 한 검사는 “범죄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면서 “범죄·재해피해자를 사회적 소수로 인정,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유영철사건 피해자 지원은 연쇄 살인범 유영철씨에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 유족은 어떤 지원을 받았을까. 일부 유족들이 정부가 지급하는 범죄피해자구조금 1000만원을 받았을 뿐이다. 사건 피해자는 여성과 노인 20명.2명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고,3명의 유족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피해자 15명의 유족만 수사를 받거나 법정 증인으로 나섰다. 피해자 7명의 가족은 지난해 10월에,4가족은 지난달에 구조금을 신청해 받았다. 매년 5월과 10월 주던 구조금을 앞당겨 지급한 것이다.4가족은 신청자격이 되지 않았다. 구조금은 각 가족당 1000만원. 유족이 여러명인 경우 300만원이나 500만원씩 나눠가졌다. 그러나 구조금이 적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범죄 피해자가 사망하면 1000만원,1∼3급 장애를 입으면 300∼600만원을 준다. 합의금이 없는 경우엔 치료비에도 훨씬 못미치는 액수다. 신청요건도 까다롭다. 피해자가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고, 가해자가 친인척이면 안 된다. 또 피해자의 잘못으로 사건이 발생해도 구조금을 신청할 수 없다. 이에 지난해 신청 123건, 지급액 6억 4940만원에 그쳤다. 이는 일본보다 30배 적은 수치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유영철 사건으로 구조금이 알려져 신청은 늘었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여전히 돈을 받는 피해자는 적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선진국 사례 범죄 피해자 지원은 1970년대 미국과 영국·독일 등에서 처음 시작했다.1995년에는 일본도 뒤따랐다. 미국은 1975년 전국피해자지원기구(NOVA)를 설립한 뒤 ‘피해자 및 증인보호법’과 ‘범죄피해자법’을 잇달아 만들었다. 지원단체는 1만여개. 심리학자·변호사·사회활동가·의사가 상담·진단·치료를 맡는다. 정부는 벌금 중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 단체를 후원한다. 처음엔 우리나라처럼 가해자가 가족이면 보상받지 못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영국은 증인보호협회가 피해자를 지원한다. 자원봉사자는 범죄가 발생하면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 피해자를 위로하고, 정신과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를 소개한다. 독일은 1976년 ‘범죄피해자보상법’을 만들었지만, 자격을 엄격히 제한해 호응을 얻지 못했다.1986년 법률을 바꿔 혜택을 늘렸다. 경찰이 앞장서 피해자 지원단체를 세웠다. 전국 400개 단체에서 자원봉사자 2300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보상금 신청은 물론 수사·재판에도 함께 간다. 자금은 회원 회비와 기부, 벌금으로 채운다. 스위스에선 정부가 주민 수를 기준으로 범죄 피해자 단체에 지원금을 나눠준다. 단체는 2년마다 회계보고서와 제공한 서비스를 보고해야 한다. 일본은 1990년대 말 한 어린이가 트럭에 부딪혀 사망하면서 피해자 지원에 눈을 떴다. 피해아동 아버지는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전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수소문 끝에 가해자가 검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그는 “어린 아들이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울부짖었다. 그의 울분은 일본 대륙을 뒤흔들었다. 가해자는 기소됐고, 정부가 관계 부처회의를 열어 범죄피해자 지원대책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지원센터도 이때 만들어졌다. 국회에선 관련 법안을 만들었다. 범죄피해자는 각종 정보는 물론 피해보상금, 공영 임대주택 우선 입주권도 얻는다. 범죄피해자를 노인·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로 인정, 복지 혜택을 준 것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4)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中)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4)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中)

    뜻밖에도 ‘정감록’에 경도됐던 사람들 가운데는 부자가 적지 않았다. 영조 때 남원의 부자 김영건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평소 유복해 보였던 김씨 일가가 비결에 쏠리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남원의 벽보 사건을 좀더 밀도 있게 그려보면 그 답이 보일 것 같다. ●남원성에 나붙은 벽보 영조9년 7월 하순. 그믐날이 가까워 달빛조차 희미한 깊은 밤, 김영건의 두 아들은 괴문서를 남원성벽에 붙였다. 장남 원팔이 문서를 내거는 동안 아우 원하가 망을 보았다. 출입이 가장 빈번한 남문 근처에 한 장의 대형 벽보를 붙이는데 실제 소요된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그들 형제에게는 견딜 수 없이 긴 시간이었다. 당시 남원은 호남 굴지의 대도회라서 날마다 성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수백 명이 성안을 드나들었다. 그들의 눈에 띈 벽보 내용은 삽시간에 호남 일대로, 그리고 지리산 너머 영남 지방으로도 퍼져나갈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튿날 오전 남원부중은 괴문서 이야기로 들썩였다. 그날따라 몸이 불편해 좀 늦게 출근한 최정도 이방(吏房)은 이미 사령들이 수거해온 벽보를 훑어본 다음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조정대신을 강도 높게 비난한 구절도 그랬지만 ‘자미진주(紫微眞主)’ 운운한 것이 영락없는 반역자의 소행이었다. 이방이 알기로, 자미성(紫微星)은 자미원(紫微垣)에 속한 큰 별이다. 그것은 북두칠성의 북쪽에 있는데 천제(天帝) 또는 국왕을 상징한다. 그런데 벽보에 ‘진주’라고 했으니 한양성안 구중궁궐에 엄숙하게 앉아계신 상감께선 왕도 아니고, 자미성 정기를 받은 진짜 왕이 곧 나온다는 얘기다. 벽보엔 상감이 무도하다는 둥 동궁(사도세자)이 미쳤다는 둥 흉악한 언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핀 이방은 새파랗게 질렸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은 이방은 도호부사 조호신에게 긴급사태를 보고하는 한편, 많은 정탐꾼을 풀어 성 안팎에 떠도는 온갖 소문을 즉각 수집토록 했다. 평소 성품이 침착하고 판단력이 있는 이방이었다. 그는 엄하기로 이름난 이 형방, 실무경험이 가장 풍부한 박 호장 등과 함께 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그들은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소문들을 비교 종합해 믿을 만한 것을 추려내어 계통별로 분류했다. 범인을 바로 잡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수사는 신속히 진행돼야 했다. 최 이방은 진행중인 수사에 관해 남원부의 우두머리인 조 부사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다. 그러나 서울 명문대가 출신인 부사는 실무에 워낙 어두워 한숨만 내쉴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많은 정보를 비교분석해 보니 성안에 거주하는 김영건과 세 아들이 용의선상에 떠올랐다. 이방은 사령들을 급파해 우선 그들을 잡아들이고, 김씨 집안에 소장된 모든 문서(文書)를 철저히 수색했다. 그날 해질 무렵 김씨의 문갑에서 두 장의 수상한 문서가 발견됐다. 큰아들 원팔의 필체가 분명했는데, 놀랍게도 벽보의 초안이었다. 두 장 가운데서도 큰 종이에 적힌 문건은 벽보보다 언사가 훨씬 과격했다. 반역자만이 쓸 수 있는, 대역무도한 ‘불온문서’였다. ●정 노인이 일으킨 해프닝 김영건에 대한 남원 사람들의 평판은 무척 좋았다. 그는 성품이 부드럽고 공손하고 단정한 데다 재산도 많았다. 여느 부자와는 달리 가난한 이웃은 물론, 집 앞을 지나는 거지들에게까지 후했다. 최 이방은 소문으로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섣불리 김영건에게 혐의를 둘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문수사 결과를 무시할 수 없어 망설이다가 사령들을 내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영건의 집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는 바람에 이방은 기가 막혔다. 김영건에게는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등 세 아들이 있었는데 셋 다 글 잘하고 글씨도 잘 쓴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인물도 훤칠했다. 특히 큰아들 원팔은 과거시험에도 여러 차례 응시했을 정도다. 그는 남원은 물론 호남의 수부(首府) 전주를 비롯해 각지의 선비들과 두루 사귀고 있었다. 최 이방은 사실 김영건 일가와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으론 늘 김영건의 유복함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김영건 일가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있었다. 수사에 동참한 이 형방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김영건의 ‘근본’ 즉, 신분을 둘러싼 의혹이 있다고 했다. 형방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이방은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정 노인 사건을 다시금 뇌리에 떠올렸다. 하루는 남원 성 밖에 사는 가난한 양반 정 노인이 읍내에 시장구경을 나왔다가 만취한 상태에서 김영건을 노비의 자손이라고 비방하는 시비가 벌어졌다. 그러나 문제의 정 노인은 평소 행동거지가 단정하지 못해 세인의 평판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 뒤 정 노인은 다시 그런 ‘망령된’ 말을 꺼내지 않아 사건으로 비화되진 않았다. 기억력이 비상한 최 이방조차 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때 정 노인이 입을 다문 것은 김영건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그런 것이었다. 영건은 노인과 다투지 않고 도리어 그를 살며시 회유했다. 그는 노인을 정중히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약주를 대접했다. 싫은 노릇이었겠지만 그 뒤에도 길가에서 노인을 마주치면 먼저 반색을 했다. 남원 사람들의 눈엔 마치 도량 있는 김영건이 철없는 주정뱅이 노인을 너그러이 용서한 것으로 보였다. 이 사건은 영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몇 년 뒤에 일어났는데, 적어도 아들인 그만은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영건의 비밀 사실 김영건은 노비나 별 다름 없이 천한 사람이었다. 남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상도 함양에 노씨 성을 가진 한 양반이 살았는데, 그 집에 막산이란 사내종이 있었다. 그 아내는 이름을 분금이라 했다. 본래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었다. 그리고 김영건으로 말하면 분금의 아들이 분명했다. 분금은 어릴 적부터 유달리 영리했고 행실도 조심스러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녀의 미색이 너무 뛰어났다는 점이다. 노씨네 행랑것이었던 그녀를 주인양반은 물론 그 집에 드나든 여러 양반들이 다투어 탐을 냈다. 분금은 물론 영건도 이런 집안내력을 꽁꽁 숨기며 살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영건은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야 그 내력을 알게 됐다. 종 막산은 영건이 아직 젖먹이였을 때 돌림병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 그러자 양반들은 아예 마음 놓고 분금에게 집적거렸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대체로 취미삼아 그런 불륜을 저질렀다. 분금은 자신이 노리갯감으로 전락하는 것이 너무 원통했다. 엄밀히 말하면, 분금은 본래 노씨 집안의 여종이 아니었으므로 종살이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공연히 노씨네 종으로 간주되는 실정이었다. 한탄으로 나날을 보내던 분금은 남편을 묻은 지 1년 만에 젖먹이 영건을 등에 업고 몰래 주인집을 빠져나와 지리산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이틀 동안 산길을 헤매던 분금은 지리산의 서쪽 자락에 있는 운봉을 지나 대도시 남원성으로 들어갔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도 있지만, 뼈대 있는 양반집에서 수년 동안 종 아닌 종살이를 한 분금은 양반들의 예의범절에 거의 통달한 편이라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녀는 질병으로 온 가족이 몰살한 어느 한미한 시골선비의 청상과부라고 했다. 영건의 성은 김씨가 됐다. 마침 그 얼마 전 역질이 남원성을 강타했던 탓에 성안엔 주인 없이 텅 빈 집이 여럿이었다. 분금은 그 가운데서도 시장 쪽으로 얌전히 앉은 초가집 하나를 골라 거처로 삼고서 오직 삯바느질에만 매달렸다. 분금은 나이 일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원체 부지런해 해마다 조금씩 재산이 늘어났다. 과부 허리춤엔 은이 서 말이란 속담 그대로였다. 영건이 스무 살쯤 됐을 때 어머니 분금은 논을 네댓 마지기나 장만했다. 영건은 어려서 서당을 몇 년 다녀 까막눈은 아니었다. 그는 홀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워 일찌감치 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일에 전념했다. 잘 모르는 것은 이웃의 경험 많은 노인에게 물었고, 가끔 시장에 들러 쌀, 콩, 면화, 무명 등의 가격을 조사해 비망록에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만일 콩 한 되라도 팔라치면 반드시 시세가 가장 비쌀 때 내놓았다. 이런 식으로 살림을 하다 보니 영건은 곧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다. 그런 아들인데도 늙은 어머니는 영건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누구에게든지 공손해라! 가난한 이웃을 잘 보살펴 주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게 된 것은 모두 부처님의 크신 원력 덕택이다. 절간에 시주를 게을리 하지 말라!” 영건은 그 가르침을 묵묵히 따랐고, 이웃사람들이 모두 영건을 존경했다. 어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날 밤, 아들을 머리맡에 불러 앉혀 놓고 나직이 말했다.“지금까지 네 아버님의 기일(忌日)이라 믿어온 것이 실은 함양 양반 노씨네 종 막산의 제삿날이다. 나는 그 아내 분금이다. 네 아버지는 경상도 하동 사는 김 선비인데, 이름도 모르고 아무 것도 더는 모른다. 부디 죄 많은 이 어미를 용서해라. 이제 비밀을 네게 털어놓으니 내 가슴이 후련하구나!” ●김영건과 예언서의 만남 김영건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할 수가 없어 혼자 그저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랬는데 정 노인 사건까지 터져 마음을 안정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천도를 핑계 삼아 절간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동안 뭐든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던 것인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 것도 같고 인생과 세상에 대한 회의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과연 전생에 무슨 큰 죄가 있어 평생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가. 종 아닌 종이 되어 제 근본을 숨기고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되는 내 인생은 도대체 얼마나 불쌍한가. 언젠가 이 비밀이 세상에 알려질 경우 자식들의 장래는 또 어찌 될 것인가. 이 놈의 세상이 아주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 나같이 천한 사람도 가슴 펴고 떳떳이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와야 된다. 도무지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하구나!” 김영건이 제기한 질문들은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 노인 사건 이후 영건은 사람이 달라졌다. 그의 왕성했던 식욕은 오간데 없어졌고, 일할 마음도 사실은 거의 사라졌다. 세상이 허무하다는 한 생각만이 온종일 영건의 머리에 가득했다. 영건은 그런 자기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해 더욱 고민이었다. 그나마 큰 다행은 그가 가끔은 절간에 들러 스님들과 문답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영건은 태연한 척 여러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들 가운데는 더러 영건의 깊은 고민을 눈치 채는 경우도 없지 않아 찻잔을 마주한 승방 문답이 해질 때까지 오래 이어지기도 했다. 절간을 오가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고 영건은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인연설은 물론 장차 미륵부처가 다스릴 용화세계가 지상에 실현된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밖에 승려 태진이 소지했던 것과 같은 ‘남사고비기’라든지 ‘정감록’에 관해서도 말을 많이 들었다. 정말 그 비결의 내용처럼 세상이 뒤집어져 상놈이 양반도 되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과연 그런 세상이 올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당시 조정에선 일체의 ‘위험한’ 비결의 독서, 소장, 유포 및 출판을 엄금했다. 금지가 심할수록 비결은 더욱 유행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게 됐다. 영건도 절간에서 객승이 소지한 ‘남사고’를 한두 번 구경한 적이 있었다. 영건은 비결을 베껴 곁에 놓고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는 점차 비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비결을 직접 소장하지 못했고, 비결대로 세상을 바꾸려는 ‘불온한’ 사람들의 무리에 섞이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영건의 성격이 너무도 소극적이었고 그는 이미 늙었다. 하지만 큰아들 원팔은 달랐다. 영리한 아들은 아버지의 불안과 고민을 대강 눈치 채고 있었다. 아들에겐 최봉희란 약빠른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남사고’를 소장하고 있었다. 아들은 최의 책을 필사해가지고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들은 위험천만한 ‘비결’ 조직에 점차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남원 양반 이유성의 문제제기 김영건 일가에 정체성의 위기가 다시 찾아온 것은 1733년이었다. 이미 칠순에 접어든 정 노인과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인데, 정확히 말하면 정 노인의 외손녀사위인 이유성과 다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술 취한 정 노인이 이유성이 듣는 데서 김영건의 비천한 출신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 노인의 친구 가운데는 젊은 시절 분금을 유독 탐낸 양반이 하나 있었다. 그 양반이 참으로 우연히 남원 읍내 길가에서 이미 노인이 다 된 분금을 마주친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 노인은 김영건을 노씨네 종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김영건의 비밀을 들은 이유성은 반드시 그것을 폭로하겠다고 별렀다. 스스로 양반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혈기 방장한 양반 이유성에게는 신분이 뒤섞이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범죄행위였다. 그는 가짜 양반 김영건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유성의 적의를 느낀 김영건 일가는 극도로 긴장했다. 양측의 대립은 갈수록 심각해져 마침내 상대방을 관가에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출된 양측의 문건을 검토한 이 형방은 그들의 주장에 애매한 점이 많은 데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사건들이 많은 관계로 그에 대한 심리를 뒤로 미뤄놓고 있었다. 김영건의 큰아들이 남원성벽에 붙인 벽보에는 게시자가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이유성 집안에 역모 죄를 뒤집어씌울 계산이었던 모양이다. 정말 그런 단순한 계산에서 김원팔 형제는 위험천만한 벽보를 붙였을까. 아니면 혹시 어떤 비밀집단이 그들의 배후에서 벽보사건을 기획했던 것일까. 도승 자명과 변산 승려 태진, 최봉희, 김원팔 등의 관계는 정확히 무엇인가. 다음 호에서 따져볼 것이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선고 매년감소… 집행 7년간 ‘0’

    선고 매년감소… 집행 7년간 ‘0’

    국가인권위원회가 6일 폐지를 권고할 사형은 어떻게 선고되고 있을까. 누가, 어떤 범죄로 사형을 받을까. 서울신문이 2002∼2004년 사형 사건을 분석한 결과, 대법원은 피해자 2명 이상을 계획적으로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시체를 훼손하며 범행을 뉘우치지 않는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파기 사례 많아 흉악 범죄는 늘고 있지만, 사형 선고는 거꾸로 줄고 있다.1심이나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더라도 대법원이 파기하는 사례가 많다.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2000년 20명에 이르렀지만,2004년 8명으로 감소했다. 대법원도 2000년에는 1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2004년 2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살인죄로 기소된 피고인은 2000년 736명에서 2003년 823명으로 증가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윤병철 부장판사는 ‘생명 침해범에 대한 양형’이란 논문에서 2002년 육군 장교인 손모(29)씨 사건을 기준점으로 사형선고가 엄격해졌다고 진단했다. 손씨는 한 여성(18)을 살해하고 9명을 강간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1심,2심은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2년 2월 원심을 파기했다. 인터넷 교관으로 활동하던 손씨가 무분별하게 음란물에 접촉하며 성적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질렀다고 분석했다. 이에 정신치료를 통해 손씨를 교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형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마지막 형벌이기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씨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범행은 치밀하게, 피해자는 2명 이상 사형 확정선고를 받은 피고인들의 주요한 범행 동기는 성욕·재산탐욕이었다.2003년 사형이 확정된 도모(34)씨는 현금 3억원을 가로채기 위해 70대 노인 3명을 둔기로 때려 죽였다. 지난해 사형을 선고받은 김모(24)씨도 신용카드 빚 7000만원을 갚아주지 않는다며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하고 할머니도 같은 방법으로 죽였다. 사형사건의 또 다른 특징은 범행이 계획적이고 피해자가 2명 이상이란 점이다. 지난해 사형이 확정된 유영철(35)은 노인과 여성 20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했다. 식당종업원 허모(27)씨도 열흘 동안 6명을 강도살인했다. 영생교 신자 나모(63)씨도 교단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6명을 죽였다. 한 사람을 죽였다고 사형이 선고된 사례는 없었다. 일가족을 한꺼번에 살해,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김모(47)씨는 10년 동안 의붓딸(20)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집행유예형으로 풀려난 그는 아내 집을 찾아가 잠자던 일가족 4명을 둔기로 내리쳐 살해했다. 김씨의 친아들과 친딸도 함께였다. 사형수들은 대부분 시체를 훼손, 범행을 숨기고 반성하지 않았다. 자수했는데도 사형이 선고된 경우는 없었다. 가족을 죽인 대학생 김모씨도 범행 후 여자친구에게 “오늘 식구들 작업했다가 실패했어.”라고 태연히 이메일을 보냈다. 유영철도 법정에서 “너무 일찍 붙잡혔다.”고 말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피해자와 화해하거나 피고인 가족이 전폭적으로 교화를 지원하면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범행 당시 피고인의 건강상태도 상세히 점검한다. ●범행후 반성하지 않는다 절도죄로 복역한 최모(28)씨가 출소 후 7개월 만에 강도강간·살인 등 13건의 범죄를 저지르자 1심,2심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직후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교통사고 후유증인지 알아봐야 한다.”고 원심을 파기했다. 최씨는 결국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교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의 가족 3명을 살해한 문모(28)씨도 사형을 면했다. 대법원은 “피고인 아버지와 누나들이 교화에 정성을 다하겠다고 호소해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 법원은 사형을 선고할 때 잔인하게 다른 사람을 살해했다는 객관적 측면과 더불어 피고인의 연령, 성장환경, 뉘우침 등 주관적 사정을 깊이 고려한다.”면서 “이것이 사형수가 감소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재 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인 기결수는 유영철을 포함해 60명이며, 집행은 1997년 12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23명이 마지막이었다. 정은주 김효섭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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