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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파행, 혈세낭비 끝에 돌아온 난지공원

    오는 10월이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골프장이 개장 4년 만에 난지 노을가족공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땅 소유주인 서울시와 골프장 운영주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용도변경을 놓고 벌인 4년 간의 지루한 법정다툼과 감정싸움을 접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본래 공원이었던 곳을 9홀 퍼블릭 골프장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공원으로 되돌리는 데 든 비용은 최소 225억원이다. 서울시가 공단에 시설 투자비조로 185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데다 골프장의 모래벙커를 메우고 1개당 1억원짜리 퍼팅 그린에 조각작품을 배치하는 등 골프장을 공원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드는 비용 40억원을 더한 수치다. 지난 4년 동안 든 소송비용과 골프장 영업을 했을 때 벌 수 있었던 기회비용은 뺀 액수다. 결국 이 돈은 서울시민이 낸 세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속을 들여다보면 윗사람 눈치보는 우리나라의 행정난맥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2000년 고건 시장 시절 골프장을 만들기로 했지만 2002년 난지골프장 공원화 공약을 내건 이명박 시장이 당선되자 정책이 수정됐다. 공단은 골프장 유지를 고수했고 법원도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지난해 이 전 시장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상황은 180도 역전됐음은 불문가지다. 노을공원은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치르고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왔지만 입맛이 쓰다. 혈세 225억원을 공중에 날리는 데 관여한 공무원과 공단관계자 등 누구 한 명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난지 골프장 시민 품으로

    난지 골프장 시민 품으로

    공원으로 조성된 뒤 골프장이 들어서 시민들의 출입이 제한됐던 서울 난지도 노을공원이 오는 10월 전면 개방된다. 서울시가 공원내 골프장 운영주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측에 투자비 등 185억원을 보전해주는 대신 시설소유권을 넘겨받기로 한 것.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난지골프장의 운영·관리 문제와 두 기관 사이의 법적분쟁 등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합의서를 17일 체결했다. 시 관계자는 “난지골프장은 토지소유권은 서울시, 시설소유권은 체육진흥공단으로 분리돼 있어 운영과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면서 “지난해 12월부터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진행해 7개월 만에 결실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하루 240명밖에 이용할 수 없어 ‘공원’이란 이름이 무색했던 노을공원은 개장 4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시는 인근 하늘공원의 하루 방문자가 5000여명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을공원 역시 개방될 경우 하루 수천명의 방문자가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시설을 넘겨받은 뒤에도 골프장 필드는 최대한 원형대로 보존해 노을공원을 잔디와 수목이 어우러진 가족공원으로 꾸민다는 구상이다. 모래 벙커는 어린이 놀이터로 활용하고 산책로와 필드 곳곳에 조각작품을 배치한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시는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는 10월말쯤 공원을 시민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산책로와 상수도, 음수대, 화장실 등 시민 편의시설을 위한 투자비로 40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을공원 난지골프장은 지난 2004년 6월 쓰레기 매립지 위에 9홀짜리 대중 골프장으로 조성됐지만, 서울시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관리권과 입장료 등의 문제로 이견을 보여 법정 다툼까지 겪었다. 마포연대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노을공원이 소수의 시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골프장으로 활용되는 것은 공원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시설 전환을 요구해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난지 골프장 시민 품으로

    난지 골프장 시민 품으로

    공원으로 조성된 뒤 골프장이 들어서 시민들의 출입이 제한됐던 서울 난지도 노을공원이 오는 10월 전면 개방된다. 서울시가 공원내 골프장 운영주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측에 투자비 등 185억원을 보전해주는 대신 시설소유권을 넘겨받기로 한 것.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난지골프장의 운영·관리 문제와 두 기관 사이의 법적분쟁 등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합의서를 17일 체결했다. 시 관계자는 “난지골프장은 토지소유권은 서울시, 시설소유권은 체육진흥공단으로 분리돼 있어 운영과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면서 “지난해 12월부터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진행해 7개월 만에 결실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하루 240명밖에 이용할 수 없어 ‘공원’이란 이름이 무색했던 노을공원은 개장 4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시는 인근 하늘공원의 하루 방문자가 5000여명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을공원 역시 개방될 경우 하루 수천명의 방문자가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시설을 넘겨받은 뒤에도 골프장 필드는 최대한 원형대로 보존해 노을공원을 잔디와 수목이 어우러진 가족공원으로 꾸민다는 구상이다. 모래 벙커는 어린이 놀이터로 활용하고 산책로와 필드 곳곳에 조각작품을 배치한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시는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는 10월말쯤 공원을 시민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산책로와 상수도, 음수대, 화장실 등 시민 편의시설을 위한 투자비로 40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을공원 난지골프장은 지난 2004년 6월 쓰레기 매립지 위에 9홀짜리 대중 골프장으로 조성됐지만, 서울시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관리권과 입장료 등의 문제로 이견을 보여 법정 다툼까지 겪었다. 마포연대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노을공원이 소수의 시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골프장으로 활용되는 것은 공원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시설 전환을 요구해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기고] 난지골프장을 놀이형 체육공원으로/원영신 연세대 사회체육과 교수

    [기고] 난지골프장을 놀이형 체육공원으로/원영신 연세대 사회체육과 교수

    난지도 골프장 부지는 원래 서민들에게도 골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조성된 공간으로 서울시민들의 신체적 건강과 정서적 교류의 기회를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골프장은 소수를 위한 공간’이므로 ‘다수를 위한 행정’을 위해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취지 하에 가족공원으로 탈바꿈시키려고 서울시와 국민체육진흥공단 간에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원래 추구하고자 했던 생활체육 인구의 저변확대 및 건강사회를 위한 복지구현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며 토지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믿고 싶다. 따라서 윈-윈의 측면에서 놀이개념의 다양한 체육활동을 통해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놀이형 체육테마 가족공원으로 조성해 줄 것을 건의하고자 한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의 여가복지를 위한 건강운동의 장과 어린이들의 자연친화 놀이공원을 조성하여 노인 관련 단체와 유소년 단체, 생활체육단체 등에 참여의 기회를 주면 주중 평일에도 활용도를 높일 수 있으며 명실상부한 가족행복 마당이 될 것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반 조성 및 토지를 제공해주고, 후원 기업은 전반적인 편의시설 확충 및 체육공간에 로고 삽입 등으로 기업홍보를 하며 산학협동으로 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을 맡는다면 서울시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시민의 행복을 업그레이드시켜줄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난지골프장은 대중교통수단이 없고, 진입로의 경사면이 불안정하며 높이가 90m 이상의 가파른 상황이므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특별한 테마가 없이 화장실, 벤치, 안내판 등 공원에 필요한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설치한다면 주변에 이미 조성되어 있는 100만평의 공원과 다를 바가 없어 시민들이 구태여 그곳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구분된 주변의 다른 조건을 가진 공간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고, 공원 전체를 통합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키며, 특성화된 공간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그곳은 애초에 대중골프장을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라 잔디밭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공간이 자연스럽게 9홀로 분리되어 있어서 효율적 배치를 한다면 다양한 놀이형 체육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하드웨어인 시설을 놀이형 체육테마공원으로 활용한다는 가정 하에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을 한다면, 첫째, 가족행복 마당으로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연날리기, 족구식 제기차기, 굴렁쇠, 활쏘기, 킨볼, 플라잉디스크, 낙하산 풍선놀이, 어린이 놀이터시설 등, 둘째, 노인건강놀이 마당으로 다양한 걷기 코스, 서비스볼, 게이트볼, 그라운드골프, 투호, 구슬볼치기 등, 셋째, 민속놀이 마당으로 벙커를 이용한 씨름, 탈춤이나 태껸의 강습이나 공연장 등, 넷째, 꿈나무 골프마당으로 기존의 골프코스 3홀 정도를 이용한 놀이형 골프장 등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조망 조건이 우수한 한강 방향의 남서쪽 경관은 매우 탁월하지만, 아래쪽에는 차가 많이 다니는 큰 도로이므로 움직임이 많은 놀이시설보다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고, 조각전 등을 유치하면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특히 노을공원의 경관과 지형의 특성 및 바람을 이용하여 연 모양의 접이식 지붕이나 바람이 통과할 수 있는 접이식 벽을 설치하는 등 기능적 효용성과 우리 전통문화의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한다면 한강 르네상스와 함께 세계적 관광명소도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특히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뉴스포츠의 적용 및 우리나라의 전통놀이개발은 스포츠 산업으로 이어지며 21세기 글로벌 문화산업으로도 성장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원영신 연세대 사회체육과 교수
  • [서울의 풍경] 상암DMC ‘디지털컬처오픈’

    [서울의 풍경] 상암DMC ‘디지털컬처오픈’

    현재와 미래의 디지털 세상을 미리 맛본다. 게다가 평소에 볼 수 없는 곳을 들여다볼 수 있고, 모든 행사가 무료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세상 속에 사는 우리에게 이런 순간은 더 이상 매력적일 수 없다. 오는 17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서울디지털컬처오픈(SeDCO)’이라면 가능한 기회이다. 디지털 미디어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모습을 갖춘 서울 마포구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는 서울시가 ‘문화의 미래’를 주제로 엄선한 20여개의 이벤트가 6일 동안 줄줄이 이어진다. 어떤 일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미리 경험해 보자. ●미래 보여주는 ‘디지털파빌리온´ 눈길 많은 주옥같은 행사 중에서도 꼭 경험해야 할 것으로 ‘디지털파빌리온’이 꼽힌다. 지금, 혹은 20년 후에 생활 속에 녹아든 디지털 기술이 총망라된 곳이다. 2층 탐구관에 들어서면 오감 멀티미디어 세상이 열린다. 작곡가와 악기를 직접 선택해 듣는 음악, 선 없이 울리는 하프와 발로 연주하는 색소폰, 허공에서 즐기는 도미노 등 손 끝 하나로 문화 공간이 만들어진다. 미래의 생활상을 알고 싶다면 3층 상상관으로 올라가 보자. 웰빙건강부스 안에 들어서면 체온과 비만도를 측정해주고, 디지털 주치의가 운동요법과 식단을 진단한다. 상상관 한 가운데 ‘물없는 연못’에 사는 디지털생명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낮에도 노을이 지고, 도시에서도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창밖의 풍경은 내가 선택해 연출한다. 영화에서만 보던 미래 생활을 현재에 경험하는 시간이다. 영상에 따라 바람, 비, 향기 등의 효과가 느껴지는 수준 높은 입체영화 ‘화첩몽’을 보는 코스까지 2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지루할 새가 없다. 평소에는 1500∼3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이 기간은 무료이다.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열리는 DMC영화제도 빼놓으면 아쉽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국내영화 100년사를 짜임새있게 풀어놓은 상설전시와 영화 속 연산군을 비교한 기획전시를 준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을 재현한 ‘원각사’에서는 변사가 옛 영화를 소개한다. 독특한 소재와 뛰어난 심리묘사를 영화에 담아낸 고(故) 김기영 감독 10주기 기념 전작전(20∼29일)은 벌써부터 영화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악, 미디어, 예술 행사가 줄줄이 이번 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많다.KGIT센터 전시실과 야외광장 2곳에서 열리는 ‘서울 디지털아트 축제’에서 다양한 장르의 디지털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디지털파빌리온과 문화콘텐츠센터 가운데 놓인 임시전시실에는 독특한 디지털 미로가 만들어져 있고, 미디어보드에 송출된 환상적인 영상을 느낄 수 있다. 직접 UCC(사용자제작물)를 만드는 과정을 배우는 시간도 마련했다. 사전 신청이나 현장 참여로 전문강사에게 간단한 촬영기법과 편집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다. 아울러 학생들과 인디밴드들의 참신함과 열정을 맛보는 ‘디지털 음악회’, 휴스퀘어에 설치될 대형 하프파이프에서 진행되는 ‘아마추어 인라인 하프대회’, 시민 모델이 무대에 올라 ‘대장금’과 ‘주몽’의 사극 의상을 선보이는 ‘드라마 패션쇼’ 등도 열린다. 서울산업통상진흥원 심일보 대표이사는 13일 “DMC에서는 언제라도 디지털세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전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DMC가 세계적인 디지털도시로 자리잡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이생진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

    이생진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

    ‘섬’을 노래해온 이생진(79) 시인이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에 흠뻑 녹아들어 쓴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우리글 펴냄)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섬 1000여개를 편력하며 ‘그리운 바다 성산포’ ‘거문도’에 관한 시 세계를 천착해온 시인이 ‘독도로 가는 길’에 이어 1년만에 낸 시집이다. “고흐의 작품 전시회에 들른 어린이들이 너무나 진지하게 설명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거예요. 이 모습을 보고 고흐의 삶을 통해 어린이들이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데 도움을 주자는 마음에서 시로 표현하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고흐의 삶을 통해 나의 인생을 한번 정리해보고도 싶었습니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 자신이 고흐가 되고, 말을 건네는 친구도 되면서 정갈한 언어로 써내려간 67편의 시가 실렸다.“고흐는 만년에 668통의 편지를 쓰고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등의 작품을 탐독하는 등 문학을 잘 이해한 화가인데다 드라마틱한 인생도 그렇고….” 고흐의 삶이 시의 모티프로 삼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는 얘기다. 시인이 고흐와 한몸이 돼 쓴 시들인 만큼 고흐의 행복과 절망, 사랑과 그리움, 고갱에 대한 애증 등을 오롯이 담아냈다.“남들이 나를 따뜻이 대해줬던들/나는 나만으로도 만족했을 텐데/사람들은 나를 짐승처럼 여기니/내가 나를 동정하지 않으면/나를 돌려받을 수 없어/나는 왜 이리 불쌍한가”(‘자화상’ 중에서) 고흐의 그림에서 받은 느낌을 고흐의 시각에서 쓴 시들도 그림과 함께 수록됐다.“누군가 울고 있다/꺼져가는 벽난로 옆에 앉아/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다/저렇게 머리가 벗겨지도록/울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갈수록 엎질러진 가슴을 채우기 위해/저녁노을이 된 등줄기/그것은 고흐에게만 매달린 통증이다”(‘울고 있는 노인’ 중에서) “이 나이가 되도록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는 시인은 “앞으로 죽음을 의식해가며 죽음의 세계까지도 나의 시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다.”고 말했다.9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크로스오버 아티스트’ 신문희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크로스오버 아티스트’ 신문희 교수

    깐깐 오월에 미끈 유월이라! 해가 길어 일하기 지루해 ‘깐깐오월’이라면, 보리 거두고 모 심고 할 일 많아 미끄러지듯 지나간다고 해서 ‘미끈유월’이다. 정열을 퍼붓듯 유월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지난주, 서울 강남의 노천 카페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크로스오버 아티스트’, 유럽에서는 동양의 훌륭한 성악가, 또 지도력이 뛰어난 젊은 성악교수로 잘 알려진 여인이다. 국내에서는 비록 ‘대중스타’는 아니지만 노래를 한번쯤 들은 사람은 특유의 음색과 창법에 귀가 절로 솔깃해진다. 이날따라 비도 오는데 여인에게 노래부터 한 곡 청했다. 잠시 주저하더니 ‘저 산자락에 긴 노을 지면 걸음걸음도 살며시 달님이 오시네, 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난 행복한 내가 아니냐∼’ 대중음악, 드라마음악, 국악의 여운을 담으면서 파워넘치는 성악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제목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했다. 노랫말에는 우리 민족,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녹여냈다. 우리나라의 자긍심을 심어줄 만한 노래로 ‘애국가’ 외에는 많지 않아 새로 곡을 만들었다. 여인은 특히 여창가곡의 인간 문화재 홍원기 선생한테 가곡을 전수받았다. 하여, 한 곡 더 부탁했다.‘어이∼, 아흐∼’라고 하면서 ‘꺾음새’와 ‘시김새’의 장단을 손바닥으로 무릎팍을 탁탁치면서 뱉어낸다. 그러다가 여인은 쏟아지는 비를 보더니 “비를 엄청 좋아하는데….”라고 흥에 겨워했다. 장난끼가 발동돼 여인에게 뚱딴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내리는 비가 몇도인 줄 혹시 아시나요?” “???…, 아마 좀 차갑겠죠.” 대답 대신 노래를 불렀다.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여인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썰렁한 ‘개그’를 하면서 기자생활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이쯤해서 화제를 옮겼다.1981년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와 미국의 전설적 포크음악 가수 존 덴버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당시 둘은 ‘퍼햅스 러브(Perhaps Love)’를 1∼2소절씩 나누거나 함께 부르거나 하면서 각자의 개성과 영역을 잘도 넘나들었다. 당대 최고 음악가의 목소리에다 ‘사랑이란 아마도∼’의 서정적인 노랫말과 멜로디로 전 세계인의 가슴을 휘어잡았다. 마국차트 59위, 영국차트 32위까지 올랐다. 지금은 ‘파페라’라는 말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성악가와 팝가수가 함께 노래한다는 것은 최대의 사건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이후 성악가가 팝뮤직을 부르고 팝가수가 성악을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국내에서는 대중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3년 ‘하여가’라는 제목으로 2집 앨범을 발표할 때 국악과 랩을 잘 조화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성악가 조수미씨가 TV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 ‘나 가거든’을 불러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크로스오버 음악’이란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들며 교차시킨다는 뜻이다. 완전히 뒤섞어서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르를 결합하면서도 장점을 잘 살려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융합’의 의미인 ‘퓨전’과는 조금 다르다. 요즘 ‘크로스오버 음악가’로 한창 이름을 날리는 여인, 앞서 대화를 나눴던 바로 우크라이나의 오데사국립음대 신문희 교수. 지난 2004년 국내에서 ‘무니’라는 이름으로 크로스오버 음악 1집 앨범(The Whispering of the Moony)을 발표하면서 이 분야의 선구자적 역할을 자임했다. 그가 최근 4년 만에 2집 앨범(The Passion)을 냈다.‘아름다운 나라’ 외에 1962년 나온 피터 폴&메리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500마일(500 Miles)’,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Voi Che Sapete)’, 그리고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간다고 하지마오’ 등 동서양,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총 10곡을 내놓았다.1집이 월드뮤직에 비중을 많이 뒀다면 이번에는 우리 가사의 비중도를 높였다. 이에 대해 “크로스오버 장르에 익숙지 않은 대중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목받는 까닭도 이같은 정열적 ‘시도’에 있지만 가곡과 성악을 전공하고 유럽 굴지의 음악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크로스오버 음악세계’로 뛰어들었다는 점이 더욱 이채롭게 다가온다. ▶크로스오버 음악가로 나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우리나라는 현재 크로스오버 음악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래식이 보수적으로 계속 머물지 말고 이제는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러던 차에 성악가 조수미씨의 동생이 매니저를 맡아 2004년 제1집을 내게 됐지요. 평론가들은 ‘숨은 명반’이라고 높이 평가했지만 홍보가 잘 안돼서 그런지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또 한국적인 크로스오버를 해보자는 생각에서 한국인이 소름끼치도록 좋아하는 음악, 그런 생각에 ‘아름다운 나라’에 굿거리장단도 삽입했지요.” 크로스오버 음악이 국내에 채 도입되기 전 그가 1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에서 활발히 움직였다. 이로 인해 국내 모 언론사에서 정한 ‘한국을 빛낸 여류인사 50인’에 뽑히기도 했다. ▶크로스오버란 어떤 것인가요. “이미 세계 음반계는 클래식과 팝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IT산업의 발달도 이를 거들고 있지요.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로 두 음악을 초월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서로의 장점과 정체성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파페라와 퓨전음악과는 분명 다릅니다.” ▶원래부터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나요. “열두살때 CM송을 죄다 따라부를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음악선생이 저한테 ‘여창가곡’을 해보라며 권했고 인간문화재 홍원기 선생한테 추천을 해줬습니다. 그러다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성악으로 돌아섰지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법대에 진학하라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성악가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친척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로 있어 다른 나라보다 영국행이 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음악적 연고가 없었던 그는 무작정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왕립음악학교에 찾아가 명성이 높았던 줄리 케너드 성악과 교수에게 제자를 삼아줄 것을 여러번 간청, 결국 허락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이 부분에 이르자 언론에 대한 일부 불만도 털어놨다. 자신의 이력 중 ‘왕립음악학교’와 관계된 부분인데 첫 인터뷰때 왕립음악학교 졸업으로 기사가 잘못 나가는 바람에 수정이 잘 안돼 신경이 거슬린다는 것. 성악은 왕립음악학교에 재직 중인 줄리 캐너드 교수를 사사했을 뿐 졸업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꼭 써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후 신 교수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중앙음악학교에 입학, 성악 정규 코스 및 피아노과정을 3년만에 이수했다. 졸업 후에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오데사국립음대 교수에 최초의 동양인이자 역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특히 세계적인 콜로라투라 성악가 조앤 서덜랜드가 심사위원을 했고, 또 성악가 조수미씨가 입상했던 빈센조 벨리니 콩쿠르(이탈리아 시칠리아)에 2002년 최연소 심사위원이 됐던 점이 유럽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평균 연령이 60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30대의 최연소 심사위원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런 그가 이제 막 시작단계나 다름없는 국내 ‘크로스오버 음악계’에서 성악과 국악, 가요 등을 넘나들면서 어떻게 새로운 분야를 이끌어갈지 사뭇 기대된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한국이란 사회에서 대중적 이름이 없이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자 외로움이지요. 하지만 열심히 활동해서 우리나라의 음악발전은 물론 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하겠습니다.” 오는 11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리는 세계요트대회에 초청돼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다운 나라’ 등을 열창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서울 출생 ▲1985년 창덕여고 1학년때 인간문화재 홍원기 여창가곡 사사 ▲87년 창덕여고 졸업 ▲90년 영국 왕립 음악학교 줄리 케너드 교수 성악 사사 ▲96년 이탈리아 중앙음악학교 졸업, 동 대학에서 성악·피아노 정규과정 이수 ▲2000년 우크라이나 오데사 국립음대 최초 동양인·역대 최연소 교수 ▲01년 오데사 국립 오페라단 지도교수 ▲02년 이탈리아 빈센조 벨리니 국제 콩쿠르 최연소 심사위원 ▲03년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한국-캐나다 이민 40주년 기념공연 ▲04년 미 국회의사당 초청 최초 성악가 ▲05년 호암예술상시상식 단독 초청공연, 크로스오버 앨범 제1집 ‘더 위스퍼링 오브 더 무니´(The Whispering of the Moony) 발표 ▲07년 우크라이나 정부 동양인 최초 교육공로상 수상 ▲08년 한국인 우주인탄생 기념공연 스페이스 2008 오프닝·피날레 공연 ▲08년 5월 크로스오버 앨범 제2집 ‘더 패션´(The Passion) 발표 ▲현재 오데사 국립음대 교수,2014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 [씨줄날줄] 생체공학 눈/육철수 논설위원

    헬렌 켈러는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바라보고 듣고 이야기한 사람이다. 시각·청각장애에다 말조차 할 수 없었던 그녀다. 하지만 맑은 영혼을 간직했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과 소중한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단다. 그래도 마음의 눈만으론 확신이 없었나 보다. 세상을 단 한번만이라도 직접 보길 소망했다. 사흘만 눈을 뜬다면, 맨 먼저 자신의 삶이 있게 해준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은 아름다운 꽃과 노을, 동트는 아침, 밤하늘의 별…. 그리고 활기찬 출근길, 영화, 네온사인, 쇼윈도…. 그런 뒤에 잠시나마 세상을 만나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겠다고 했다. 비장애인이 늘상, 감흥이 무뎌진 채로 접하는 세상의 모든 게 그녀에겐 경이의 대상이었다. 가슴 저미는 감동은 또 있다. 시각장애를 딛고 최근 뉴욕주지사에 오른 데이비드 패터슨의 인간승리다. 보고서를 서류 대신 녹음기로 몇시간이고 들으며 벅찬 업무를 수행한단다. 그는 “잃어버린 것들을 보충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한다.”고 했다. 초능력은 역시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나는, 켈러와 패터슨 같은 사람들을 이 땅에 보낸 하늘의 뜻에 새삼 경외를 느낀다. 이제 화제를 과학으로 돌려 보자. 영국의 어느 안과병원에서 ‘생체공학 눈’(bionic eye)을 실명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다.‘아거스2’(ArgusⅡ)로 명명된 이 인공 눈은 소형 카메라로 사물을 포착해 수신기와 전극판에 영상신호를 전달하고, 이를 망막의 시신경을 통해 뇌에 알려서 이미지를 파악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물을 흑백의 점으로 인식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대단한 과학기술의 진전이다. 이런 의술이 켈러의 생존시에 가능했다면, 그녀가 그토록 갈망한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절반이라도 눈에 담았을 것이다. 지금은 전자코(e-nose), 전자혀(e-tongue) 등 오감(五感) 기능 로봇을 속속 개발하는 시대다. 신체부위와 호환이 문제여서 그렇지, 심장·피부·귀·망막·장기·뼈·혈관 등의 인공기술도 놀라운 수준이다. 인공신체가 제아무리 탁월해도 부모가 만들어준 신체발부만 한 게 있으랴만, 잃은 걸 되찾고 싶은 사람들에겐 희망의 불씨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쓰레기 소각 기금으로 ‘청소년 문화의 집’ 건립

    쓰레기 소각 기금으로 ‘청소년 문화의 집’ 건립

    마포구 상암동에 내년 말까지 체육관과 소극장 등을 갖춘 ‘청소년 문화의 집’(조감도)이 들어선다. 또 지역내 저소득층 자녀와 학업능력 우수학생에 지급될 대규모 장학기금도 마련된다. 필요한 재원은 모두 마포자원회수시설 운영을 통해 적립된 발전기금에서 나온다. 22일 마포구에 따르면 지난 1998년부터 적립된 마포자원회수시설기금 204억여원 가운데 55억원이 시설이 운영 중인 상암동 지역의 교육·복지 환경 개선을 위해 올해 처음으로 사용된다. 다음달 31일 착공되는 청소년 문화의 집은 지하 1층·지상 4층에 연면적 3650㎡ 규모로 음악연습실과 어학교실, 각종 문화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한 세미나실 등이 설치된다. 20억원 규모로 마련되는 장학기금은 오는 7월부터 지역 청소년들을 상대로 장학사업을 시작한다. 구는 지역사회의 기부가 가능한 장학재단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마포자원회수시설기금은 2005년부터 상암동에 쓰레기소각장을 가동하면서 용산·중구의 폐기물을 처리해 주는 대가로 마포구가 받게 된 지원금과 이용료 등을 적립해 마련됐다. 구 관계자는 “기금이 조성된 것은 1998년이지만 관련 조례는 2006년에나 마련됐다.”면서 “지난달 구 의회가 기금 운영과 관련된 입법예고를 마침에 따라 법적 사용 근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마포자원회수시설은 지난 2005년 6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서울시 최초의 광역 쓰레기소각장으로 과거 난지도 매립장이 있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한국 연극의 산실, 대학로 ‘연극투어’ 현장

    한국 연극의 산실, 대학로 ‘연극투어’ 현장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 먼저 올라가서 무대 뒤를 구경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무대 위. 마이크를 잡은 연극배우 오지혜씨의 코믹한 멘트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들은 배우가 아니다. 아빠·엄마의 손을 잡은 초등학생, 친구·연인과 함께 온 20대, 대학생 딸을 둔 엄마이다. 그동안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봤지만 지금은 무대 위에서 객석을 보고 있다. ●연극의 속살을 맛보다 지난달 30일 올해 처음 열린 ‘대학로연극투어’ 참가자 30명은 무대·음악·조명감독을 차례로 만났다. 무대감독은 1981년 개관한 극장의 역사와 ‘하늘’(김환기 작)을 수놓은 대형무대커튼을 10년에 한번씩 세탁한다는 ‘비밀’을 소개했다. 음악감독은 뮤지컬 노래와 다양한 음향 효과를 들려 주었다. 조명감독은 직접 조명을 비춰 주며 설명을 이어갔다.“이런 연한 황색빛은 보통 바닷가의 노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배우 뒤에서 빛을 쏘면 서광이 비추거나 비장한 장면이 되는 겁니다. 옆에서 조명이 비추니까 콧날이 오똑해 보이죠?얼굴의 윤곽선을 강조할 때나 달밤의 은은함을 표현하기도 하죠.” 엄마와 함께 투어에 참가한 경환(11·신목초 4)이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를 보면서 무대설치방법이 궁금했는데 알게 돼 신난다.”며 흥미로워했다. ●연극도 보고, 대학로도 즐기고 극장을 벗어난 참가자들은 대형 세트가 들어가는 현장을 보고, 대학로를 산책한 뒤 동숭동 서울연극협회 연습실을 찾았다. 연습실 바닥에는 동선(動線)을 표시한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진행을 맡은 배우 오씨가 “무대에서는 바닥에 붙어 있는 야광테이프를 보고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보다 더 먼저 배우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더 많은 땀을 흘리는 곳이 이곳입니다.”고 설명하자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자들은 서울연극센터를 방문해 다과를 즐기고, 극단 미추의 ‘남사당의 하늘’(윤대성 작·손진책 연출) 공연을 관람한 뒤 투어를 마무리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와 동행한 임주희(41·강남구 대치동)씨는 “자치구에서 어린이 공연을 많이 열고 있지만 대부분 인기캐릭터를 내세운 유아용이라 아이가 지루해 한다.”면서 “이런 투어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치켜 세웠다. 대학생 문아미(23)씨는 “이제 연극을 볼 때 연출자의 의도나 조명의 의미, 배우들의 노력까지 느끼고, 공연을 더 즐기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국대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중인 이수재(46·양천구 신정동)씨는 “연극 관람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런 기회가 많이 생기면 장기적으로는 연극 관람객이 증가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달 초에 신청 접수 대학로연극투어는 서울문화재단이 한국 연극 100년을 기념해 한국연극100주년기념사업단과 함께 마련한 특별 프로그램. 김현자 서울문화팀장은 “연극·공연의 메카인 대학로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무대 구경과 전문가 설명 등을 들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대학로연극투어는 매월 초 서울연극센터 홈페이지(www.e-stc.or.kr)에서 신청을 받는다. 신청자 중 30명을 선정한다.4·6월은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5월은 매주 토·일요일에 진행할 예정이다. 참가비는 1인당 5000원. 글 사진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가요계 새 이정표 세우는 잔치로”

    “가요계 새 이정표 세우는 잔치로”

    “슬픈 추모제가 아닌 행복한 헌정의 자리로 꾸밀 겁니다.” 최근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곡가 이영훈 씨 헌정공연 ‘광화문 연가’의 총연출을 맡은 가수 이문세가 밝힌 공연 기획의도다.10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문세는 “고인이 투병 중일 때 기도하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는데, 이제 그의 노래를 불러 의리를 지킬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이문세와 콤비를 이루며 ‘광화문 연가’‘붉은 노을’‘사랑이 지나가면’ 등의 히트곡을 남긴 고인은 생전에 ‘광화문 연가’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준비 중이었고, 이에 착안해 공연 제목이 붙여졌다. 이문세는 “그동안 수많은 작업을 했지만 그 어떤 작곡가로부터도 이영훈과 같은 감수성과 시적인 멜로디는 만날 수 없었다.”면서 “이 자리가 단순한 추모공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침체에 빠진 한국 가요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뜻깊은 잔치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인이 작곡한 ‘소녀’를 리메이크한 SG워너비는 “요즘 음악들은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한 경우가 많은데, 고인의 음악은 트렌드에 상관없이 가슴을 울리기에 앞으로도 끊임없이 재해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7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되는 ‘광화문연가’에는 이문세, 정훈희, 한영애, 윤도현, 이적, 김장훈,SG워너비, 성시경 등 선후배 가수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하며, 수익금은 정동길 또는 광화문에 세워질 고인의 노래비 건립에 사용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Let’s Go] 남도서 들려주는 봄의 왈츠

    [Let’s Go] 남도서 들려주는 봄의 왈츠

    바람결에 촉촉한 습기가 묻어나는 초봄입니다. 남도 끝자락 나로도의 섬 사이를 휘휘 돌아온 봄바람이 섬진강에 상륙해 내륙으로 내달릴 기세입니다. 바다로 향하던 강과 바다에서 내륙으로 거슬러 온 봄바람이 만난 자리마다 꽃망울이 맺히고, 곰실거리는 봄내음에 처녀 가슴은 섬진강 은어처럼 요동칩니다. ‘나는 오늘 좀 달려야겠다.’국내 한 자동차 회사의 광고문구지요. 봄소식을 들은 두 발이 그랬습니다. 오는 봄을 앉아서 기다릴 수 없어 두 발로 달려가 안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봄과 만나는 가장 빠른 길은 역시 남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땅의 해토머리(얼었던 땅이 녹아서 풀리기 시작할 때) 풍경을 찾아 내처 달려보리라 작정했습니다. 화신(花信)에 접한 섬진강을 지나 곧 대한민국의 우주시대를 열 전남 고흥반도의 나로도까지. 이 땅 끝에서 맞는 봄 풍경은 어떤 것인지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섬진강은 언제봐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모습이지요. 봄의 전령 자리를 두고 공명을 다툴 산수유, 매화 등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지만 그 강엔 봄빛이 완연했습니다. 산란을 위해 잠시 섬진강을 떠난 참게 자리는 경칩을 맞아 뛰쳐나온 두꺼비들 차지였습니다. 재첩이며 벚굴 등도 봄의 약동을 시작했지요. 사람 손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하동에서 곡성에 이르는 동안 아직은 찬 섬진강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강이 준 선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붉은 남천 잎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흥반도 끝자락 나로도로 향했습니다. 고흥땅엔 봉수대가 유난히 많지요.20여개쯤 됩니다. 적의 침입을 알렸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내륙으로 봄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듯 했습니다. 특히 유주산 봉수대에서 보는 다도해의 봄 풍경은 정말 멋들어지지요. 재작년 완공된 ‘새내기 호수’ 고흥만은 또 어떻습니까. 끝간데 없는 듯한 제방 도로며, 경비행장이 들어설 간척지 등 정말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그 드넓은 수면 위에 떠있는 물새들의 깃털 사이사이로 봄의 훈풍이 가득차 있었지요. 주 초반 철없이 많은 눈을 뿌려대는 등 겨울의 시샘이 여전합니다. 시간을 다시 겨울로 되돌린 듯도 합니다만 봄은 분명 봄입니다. 남도의 이른 봄 풍경을 담아 왔습니다. 이번 주말엔 해토머리 풍경을 찾아 남도로 ‘달려’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글 사진 구례·고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축제로 여는 섬진강의 봄 해마다 이른 3월이면 구례 산수유마을, 광양 매화마을 등 섬진강변 마을에서 전해오는 꽃소식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한없이 설레게 한다. 아직 꽃망울이 맺혀 있는 정도지만,3월 중순쯤이면 만개할 것으로 현지 주민들은 내다보고 있다. 매화꽃 동산 100여만그루의 매화가 하얀 꽃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노란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노란빛 선연한 산수유마을 골목마다 한껏 물오른 봄의 정취가 흥건할 터. 가슴 빡빡해진 도시인이라면 필경 꽃멀미에 어지러워질 게다. 유명세에서 밀릴지언정 하동땅 매화도 아름답기로 치자면 광양에 못잖다. 특히 광양 청매실농원과 섬진강을 두고 마주한 흥룡리 흥룡마을과 먹점마을 등이 소문난 매화마을. 지리산에 기댄 마을 골짜기와 밭두렁, 고샅길과 개울가까지 온통 매화나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는 법. 섬진강에 흩뿌려지는 꽃비를 맞으려면 서두를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축제 소식이 전해져 온다.8∼16일 광양시 다압면 일대에서 매화축제가 열리고, 구례의 산수유꽃축제도 13∼16일 산동면 상위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섬진강의 아름다움은 결코 꽃에만 있지 않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섬진강물을 따라가 보시라. 모래톱 사이사이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며 그 속에서 재첩잡이 벌이는 어민들의 모습에서 싱싱한 초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어디 그뿐일까. 강바람 일 때마다 춤사위를 펼치는 강변 대밭과 지리산 자락을 타고 오른 차밭, 그리고 하동 악양들의 보리밭 등이 뿜어내는 초록빛깔 또한 이방인의 가슴을 생동감으로 충만케 한다. ■ 고흥반도의 새내기 인공호수 고흥호 섬진강을 뒤로 하고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순천과 주먹 자랑 말라는 벌교를 차례로 지나니 고흥반도. 나로1대교를 건너 마주한 나로도의 들녘은 간지러움으로 몸살을 앓는 듯하다. 그럴 법도 하다. 땅 속 어린 새싹들이 위로 솟아 오르려 오죽 긁어 대겠는가. 고흥반도 초입의 고흥호는 재작년 선보인 ‘새내기’ 인공호수다.15년간의 간척공사 끝에 3100㏊의 간척지와 280㏊의 인공습지,745㏊의 담수호를 얻었다. 파도처럼 넘실대는 갈대와 물새, 너른 남해 등이 어우러지며 장관을 이룬다. 약 3㎞에 달하는 고흥만방조제는 득량만과 고흥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맞춤하다.‘Z’자 모양으로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 가슴의 체증이 뚫리는 듯한 느낌이다. 두원면 풍류리에서 시작해 도덕면 용동리로 이어지는 고흥만방조제에 서면 광활하게 펼쳐진 인공호와 농경지가 두 눈 가득 들어온다. 방조제 서쪽 끝은 고흥만수변공원. 대체로 드라이브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공원을 나와 배수갑문을 거쳐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호수와 나란히 달리는 호반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동쪽으로 간척지를 가로지르면 비룡교 지나 경비행장, 항공센터 등을 만난다. 이어 비아도와 비아마을, 인공습지 등을 차례로 지나면 고흥만 방조제 동쪽 끝에 이른다. 비아도 앞에서 간척지 중앙관리소로 이어지는 담수호 동편 도로변에는 3곳에 자연관찰용 데크를 만들어 놨다. 드라이브 도중 잠시 들러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다. 고흥반도 동쪽 포두면 옥강리에서 오도를 거쳐 영남면 금사리까지 이어지는 해창만 간척지도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갈대밭과 담수호 사이를 누비며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창만 1,2방조제를 합친 길이는 약 3.5㎞ 정도. 방조제를 따라 늘어선 갈대밭은 저녁 무렵이면 황금빛으로 물든다. ■ 남해의 봉래산 삼나무숲 고흥반도 끝자락의 나로도는 외나로도와 내나로도 등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륙교로 이어져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됐다. 배를 타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섬이라는 것이 큰 매력. 하지만 그 때문에 섬 특유의 고적함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로도는 지금 세계 13번째로 들어설 나로우주센터 덕에 유명관광지로 도약할 꿈을 꾸고 있다.4월쯤 고산씨가 우주로 향하게 되면 그 꿈은 더욱 가까워질 듯하다. 우주센터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봉래산 삼나무숲과 만난다. 일제 강점기 때 시험림으로 조성된 숲이다.30m 높이의 80년된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잘 조성된 숲길을 걷다 보면 어디서보다 깊은 숨을 쉴 수 있다. 꽁꽁 언 대지를 뚫고 노랗게 피어난 복수초를 만나는 것도 봉래산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 올해도 삼나무숲에서 헬기장에 이르는 구간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나고 있다.4월이면 별똥별이 쏟아지듯 노란 복수초가 숲을 환하게 밝힐 게다. 봉래산 앞자락 우주센터에서는 올해 말 대한민국 우주로켓 1호를 하늘로 쏘아 올리게 된다. 세계 9번째의 독자적 위성 발사국이 되는 순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삼나무숲에 올라 다도해를 가르며 힘차게 솟아 오르는 우리 위성을 지켜볼 날도 머지 않았다. 글 사진 구례·고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섬진강 자락 구례·하동·곡성 등으로 가려면 우선 경부·중부고속도로로 대전까지 간 뒤 비룡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대전∼통영 구간)로 바꿔탄다.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광주 방향으로 달리다 남원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로 들어서면 구례다. 구례에서 나로도까지는 17번국도로 순천까지 간 다음,2번국도로 바꿔타고 벌교까지 간다. 벌교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끝까지 가면 나로도다. ▶ 가볼 만한 곳 구례군 다무락골, 운조루, 사성암, 압록유원지 등과 광양시 다압면 청매실농원 등은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 우리테마투어(wrtour.com)는 8∼23일 매주 수·토·일 광양 청매실농원, 구례 산수유마을 등을 다녀오는 여행상품을 준비했다.2만9000원.02)733-0882. 나로도에서는 한센병환자들의 애환이 서린 소록도를 찾아야 한다. 녹동항에서 1㎞ 거리에 있다.15분 간격으로 배가 왕복한다.1000원. 도양해운 844-2086. 올 하반기엔 나로도와 소록도를 잇는 연륙교가 개통될 예정이다. 염포 자갈밭 해변, 나로도 해수욕장 곰솔밭과 상록수림, 금탑사 비자나무숲, 유주산 봉수대 등도 잊지 말고 찾아야 할 곳. 뭍에 못지않게 해안 풍경도 아름답다. 나로도 일주 유람선이 나로도항에서 출발한다.2시간 남짓 소요된다.1만 5000원. 우주스타 833-7279. 금어호 833-6905. 고흥군청 문화관광과 830-5224,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780-2450. ▶ 맛집 : 섬진강변 전원가든은 참게탕으로 유명한 집.3만∼5만원을 받는다.782-4733. 고흥군 도화면 중앙식당은 주꾸미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주꾸미해물찜, 데침 1인분 1만원.832-7757. 읍내 ‘소문난식당´은 가자미·병어 등 생선구이 잘하기로 ‘소문났다’.1인분 1만원.833-7787. ▶ 잠잘 곳 : 화엄사 아래 한화리조트 지리산은 호텔객실 1박+조식+사우나 입욕권 등이 포함된 봄꽃패키지를 8만 7000원(2인 기준)에 판매하고 있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도 살 수 있다. 배송비포함 18ℓ 6만원,4.3ℓ 4팩 6만 5000원,782-2171. 나로도의 경우 나로2대교 앞 하얀노을모텔이 깔끔하고 전망좋다.4만∼5만원.833-8311∼3.
  • 열번째 시집 ‘낙타’ 내놓은 신경림

    열번째 시집 ‘낙타’ 내놓은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낙타’중에서) ●본질적인 삶 추구… 여행의 추억 담긴 작품 많아 문단의 원로 신경림(72) 시인이 열번째 시집 ‘낙타’(창비 펴냄)를 내놓았다.2002년 ‘뿔’ 이후 6년 만이다. 표제시를 비롯,50여편을 묶은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의 촉수는 여전히 예리하다. 삶의 마지막을 준비라도 하는 것일까. 시는 사뭇 묵직하게 다가온다. 시력(詩歷) 52년의 내공이 물 흐르듯 유장한 맛을 전해 준다. “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죠. 보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보면 됩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물결에 떼밀려 모든 것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죠.” 반세기 넘게 시의 본질을 찾아온 그는 본질적인 삶의 추구는 자연스레 죽음으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죽음은 또 하나의 삶인 만큼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길 떠남’이라는 것. 그러다 보니 시집에는 여행의 추억이 담긴 작품들이 많다. 지난 몇년간 시인이 돌아본 곳은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도 있지만 그보다 네팔과 몽골, 터키, 콜롬비아 등 아직 산업화의 손길이 덜 미친 곳이 많다. 개발이 덜 될수록 본질적인 삶에 천착할 수 있는 까닭이다. “아직 문명의 때가 덜 묻은 나라가 시의 본질에 가까운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라는 건 세계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어요. 모두 빨리 변하고 질주하고 있지만 시는 어쩔 수 없이 느린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화가 덜 된 나라들에서 내 시와 정서가 통하는 걸 느꼈죠.” ●모든 것 훌훌 털고 무소유 정신으로 성큼성큼 시인은 이승을 벗어난 다음 생도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무소유 정신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에메랄드 깔린 대로는 아닐 거야,/ 장미로 덮인 꽃길도 아니겠지,/ 진탕도 있고 먼지도 이는 길을/ 이 세상에서처럼 터덜터덜 걸어가겠지,/두런두런 사람들 지껄이는 소리 들리고/ 굴비 굽는 비릿한 냄새 풍기는 골목을./ 잊었을 거야 이 세상에서의 일은.”(‘먹다 남은 배낭 속 반병의 술까지도’ 중에서) 그런 만큼 지금의 삶에 대한 희망의 끈도 놓지 않는다.“저물면 주섬주섬 주워 담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새빨간 저녁 노을/ 세상은 즐겁고 서러워 살 만하다고, 그것이 지금 노을이 내게 들려주는 말이리.”(‘귀로(歸路)에’ 중에서) “시를 쓴 지 50년이 넘었지만 시가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에 얼마나 도움을 줄까 회의가 들 때가 많죠. 내 시를 독자들이 잘 이해할까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시도 사람과 사람간에 나누는 대화인 만큼 소통이 중요하다는 그는 시도 사람이 살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데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인의 몸은 늙었지만 열정만은 아직도 젊은이들 못지않다.“텔레비전이며 신문에서 매일처럼 펼쳐지는 현실이고 일상이다. 그런데도 나는 채널을 돌리면서 신문을 뒤적이면서 번번이 흥분하고 분개한다.”(‘그분은 저 높은 데서’중에서) “앞으로도 시는 계속 써야겠죠. 그리고 세상 구경을 더해보고 싶습니다. 보다 본질적인 시의 모티프를 찾을 수 있는 개발이 덜 되고 근대화과 덜 이루어진 곳, 즉 쿠바·볼리비아 등 중남미 쪽으로 한번 떠나 보고 싶어요.” 피상적인 관찰에 그치는 여행이 아니라 본질적인 삶의 현장을 체험해 보겠다는 것이다.60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부고] ‘광화문 연가’ 작곡가 이영훈씨

    ‘광화문 연가’‘사랑이 지나가면’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작곡가 이영훈씨가 14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48세. 고인은 1986년부터 가수 이문세와 함께 콤비를 이뤄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시작으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깊은 밤을 날아서’‘붉은노을’‘옛사랑’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국내 팝 발라드계를 이끌어 왔다. 이영훈씨 측 관계자는 “고인이 2006년 초부터 대장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계속 음악 작업을 해왔고, 병실을 찾은 이문세씨에게 함께 CCM 앨범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했었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고인은 2006년과 2007년 자신의 인기곡을 정리해 만든 편집앨범 ‘옛사랑’을 발표하고, 별세 전까지도 방송인 김승현씨와 자신의 히트곡으로 엮을 창작뮤지컬 ‘광화문연가’ 제작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8시. 유족으로는 부인 김은옥씨와 아들 정환군이 있다.(02)3410-3153.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밤의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밤의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우리의 일부다. 어떤 이에게는 불안과 고독의 시간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노동에서 해방된 자유의 시간이자 관능적 쾌락과 여흥의 시간이다. 하루의 걱정을 밀쳐둘 수 있는 시간이며,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는 미개척지인지도 모른다. 이건 ‘밤’이다. 캐나다의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인 크리스토프 듀드니의 밤에 관한 단상이다. 그가 쓴 ‘밤으로의 여행’(연진희·채세진 옮김, 예원미디어 펴냄)은 드물게 만나는 ‘밤의 인류문화사’이다. 인류역사를 통해 문학으로, 그림으로 끝없이 노래됐으면서도 밤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낮의 그림자, 낮과 낮 사이에 끼인 어둠의 시간. 하루 24시간의 중심축을 떠받치며 엄존함에도 밤은 개념적 적자(嫡子)로 대접받지 못했다. ●밤의 기원에 대한 신화·과학적 정의도 밤의 모든 것을 파악한 백과전서를 선언한 책은, 그 언어적 유래로 운을 떼는 치밀함을 보인다. 숱한 단어들이 변천의 역사를 겪어왔어도 영어의 ‘night’만큼은 모양을 바꾼 적 없는 은근한 세를 부려왔다. 밤을 여성으로 인격화하며 찬미한 수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밤의 기원에 대한 신화·과학적 정의가 빠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낮을 준비하는 관념적 인식의 대상이던 밤이, 신비함으로 무장한 상상과 창조의 시간으로 실체적 가치를 얻어가는 과정에는 정보가 풍성하다. 밤의 시간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양한 주제의 지적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일몰에서부터 다음날 일출까지 밤의 12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쪼개 모두 12개의 주제가 다른 장(章)으로 책을 꾸몄다. 예컨대 고즈넉이 아름다운 ‘밤의 자연’을 짚는 3장에서는 19세기 미국의 박물학자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저 유명한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 홀로 지내며 소로가 밤낚시를 즐겼던 여름밤 풍경은 그대로 밤의 찬사이다. 소로가 저서 ‘월든’에 쓴 그림같은 기록의 일부가 인용됐다. ●순서없이 펼쳐 읽어도 무리없어 낭만적 고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밤을 “광학적 사막”(빛이 사하라의 물만큼이나 희소한 공간)이라 규정하고, 밤 사냥에서 최고의 입지를 얻는 야행성 동물들에게는 어둠이 오히려 빛이 되는 역설을 일깨운다. 야간투시경을 가진 연쇄살인범이 활약하는 영화 ‘양들의 침묵’, 안구가 유난히 발달해 먹이를 보려면 머리를 돌려야 하는 안경원숭이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지식정보들이 종횡무진 지면을 활강한다. 순서없이 마음 가는 대로 펼쳐 읽어도 무리없는 건 그 덕분이다. 천문학·일몰·북극광·오로라 등 자연현상, 생물학, 생리학, 병리학, 의학, 예술, 과학기술, 신화, 어원학 등 다방면에서 밤의 지표들을 뒤져냈다. 우주가 캄캄한 이유에서부터 부엉이와 박쥐가 어둠 속에서 먹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기술, 저녁 노을의 녹색섬광과 청색섬광의 정체, 도시의 야광이 암에 영향을 미칠지의 여부, 심지어는 코르티잔 나이트클럽 풍속에까지 관심의 촉수가 닿았다. ●잠과 꿈, 해몽과 불면증 이야기도 밤과 필연적 관계를 나눈 잠과 꿈, 해몽과 불면증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마을 주민이 통째로 불면증을 앓는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간의 고독’,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을 인용하거나 때로는 저자가 수면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현장성을 부각시켰다. 고질적 불면증 환자였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해 마르셀 프루스트, 샬롯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 마크 트웨인 등 자신들의 복잡한 내면을 작품에 투영시킨 ‘올빼미 작가족’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글감이다. 저자의 광범한 지적 스펙트럼에 힘입어 밤은 복권돼 간다.500쪽이나 되는 긴 ‘탐구서’를 쉼없이 채워낸 작가의 오지랖과 재담이 무엇보다 놀랍다. 뒤집어, 방대한 지식정보들을 백화점 식으로 나열한 글쓰기에서 깊이읽기의 아쉬움을 느낄 독자도 있을 듯하다.1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Let’s Go] 겨울에 만난 창녕 ‘우포늪’

    [Let’s Go] 겨울에 만난 창녕 ‘우포늪’

    우포늪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우포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사시절 모양 색깔 모두 다른 우포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수초에 뒤덮인 퇴적늪의 단단함을 때론 살얼음 차가움을 자분자분 맨발로 느껴보세요 (하략) -송미령의 시 ‘우포늪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중. # 늪마다 독특한 풍경 철저히 준비하고 떠난 여행에서는 많은 배움을 얻고, 준비 없이 떠난 여행에서는 많은 것을 느끼고 온다 했다. 전자를 여행자라 한다면, 후자는 방랑자쯤 될까. 경남 창녕의 우포를 찾아가는 길은 후자에 속했다. 우포늪은 창녕군 대합면과 대지면, 이방면, 유어면 등에 걸쳐 있는 국내 최대의 자연 습지다. 소의 머리를 닮은 우항산이 늪에서 물을 마시는 듯하다고 해서 우포(牛浦)늪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늪 전체의 넓이는 서울 여의도와 비슷하다. 가장 큰 우포를 비롯해 인근의 목포와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늪을 아울러 우포늪이라 부른다. 나이는 한반도와 동년배다. 대략 1억 4000만 살 정도 됐다. 면적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2.3㎢쯤 되는 담수면적에 1000여종의 생명체가 올망졸망 살아가고 있다. 창녕 사람들은 우포를 굳이 ‘소벌’이라 부른다. 소벌이란 순 우리말 표현을 두고 일제강점기에 우격다짐으로 바뀐 ‘우포’로 부르기가 썩 내키지 않아서인 듯하다. 다른 늪의 경우도 마찬가지. 공식 문건에 표기되지는 않지만, 각각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우리말 이름을 갖고 있다. 주민들이 ‘소벌’로 부르는 우포는 ‘소(牛)를 먹이거나, 소 모양의 넓은 벌판’이라는 뜻이다.‘나무벌’ 목포는 ‘왕버들 나무(木)가 많은 벌’이고,‘모래벌’ 사지포는 ‘모래(砂) 섞인 땅(地)으로 된 벌’이다.‘쪽지처럼 작은 벌’이라는 뜻의 쪽지벌은 다행히 예쁜 순 우리말 이름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 작다는 의미를 가진 ‘쪽’이란 표현을 일제가 자기네 식으로 바꾸기엔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 우포, 겨울을 말하다 소목 제방에 올라 바라본 소벌. 넉넉하고 포근한 모습이다. 그 너른 품안에서 싱싱한 아침을 맞은 겨울철새들이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큰고니(백조) 무리는 차가운 얼음 위로 제 모습을 비춰보며 ‘나르시시즘 놀이’를 즐기는 듯하고, 물닭들은 물고기를 잡느라 자맥질에 바쁘다. 생기를 잃은 채 숨을 죽이고 있을 거란 예상에 쨍∼하고 금이 가는 순간이다. 오래 전 딱딱하게 얼어버린 늪에서 희망을 본 이가 송미령(51) 시인이다. “얼굴이 베일 만큼 차가운 겨울바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요. 얼어붙은 나뭇가지에서 움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가슴이 설레죠. 겨울엔 모든 것이 정지해 있을 듯하지만, 새벽과 저녁 무렵이면 생기가 넘쳐 흘러요. 겨울철새들이 먹잇감을 구하느라 물속에 머리를 처박기도 하고, 때론 먹이를 두고 싸우기도 하죠.” 소목 제방 왼쪽으로 난 길은 반드시 걸어봐야 한다. 나뭇잎 무성한 계절엔 보이지 않고, 겨울과 초봄에만 잠깐 드러나는 길이다. 개구리덤 주변의 겨울 철새들과 원시적인 풍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자박자박 걷다 보면 모래벌과 만난다. 소벌의 광활한 풍경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호수의 느낌을 주는 곳이다. 얼지 않은 물가 가장자리에 수백 마리 철새들이 부리가 닿을 만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은 호젓함을 더한다. 예쁜 그림이 담긴 우편엽서를 보는 듯하다. 모래벌을 지나 나무벌로 향했다. 수심이 깊어 많은 수중식물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꽁꽁 언 얼음 위엔 왕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왕버들 뿌리 위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쪽배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낡고 초라한 모습이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뱃머리 너머로 예전 많은 창녕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생명력을 나눠주던 우포늪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 시인, 늪에 빠지다 우포늪 끝자락의 쪽지벌은 크기가 가장 작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진입로가 잘 닦여 있어 탐방객들이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십상이다. 쪽지벌 사초군락지는 송미령씨가 우포늪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다.‘우포늪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란 시도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단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자분자분 걷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에요. 바람에 살랑대는 사초 위에 누워 보세요.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거예요.” 창녕에 둥지를 튼 지 벌써 27년. 거의 매일 이곳을 찾았으니, 사초 위에 얼마나 많은 추억을 맺어 놓았을까. 그 중 몇몇은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 두었을 게다. 시나브로 해거름이 찾아왔다. 늪은 어제처럼, 억만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저녁 노을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창포물로 감은 머릿결 같은 사초 위에 잠시 쉼을 청했다. 포근하고 부드럽다. 우포의 정취를 오롯이 느끼려면 맨발이 아닌 ‘맨살’로 찾을 일이다. 글 사진 창녕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창녕 나들목→우회전→우포늪생태학습원→우포늪전망대 ▶맛집 우포의 가장 큰 먹거리는 토종붕어. 겨울철에 특히 큰 씨알의 붕어가 많이 난다.‘우포붕어찜’은 붕어찜 요리로 근동에서 명성이 자자한 집.1인분에 공기밥 포함 1만 1000원을 받는다. 붕어 매운탕은 3만원.(055)532-2088. ▶가볼 만한 곳 ▲ 창녕고분군 ‘제2의 경주’라고 불리는 창녕은 신석기에서 근세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다. 특히 비화가야의 수도였던 만큼 가야시대 무덤 형태를 한 고분이 1만기나 남아 있다. 그 중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볼 만하다. ▲ 석빙고 공기의 대류현상을 이용해 얼음을 천천히 녹게 한 시설물. 송현동에 있다. 겨울철 저장해 놓은 얼음이 7∼8월 한여름까지 녹지 않았다고 한다. 공기를 식히는 역할을 담당한 원통형의 ‘홍예’ 등 건축물 자체가 아름답다. 미리 군청에 연락하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 관룡사와 용선대 화왕산군립공원에 자리한 관룡사는 신라시대 고찰. 관룡사에서 20분 남짓 떨어진 용선대도 잊지 말고 찾아볼 것. ▲ 산토끼 노래비 동요의 대명사 ‘산토끼’는 1930년 이방면 이방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이일래 선생이 작사·작곡했다. 이방초등학교 교정에 산토끼 노래비가 있다. 창녕군청 (055)530-2520, 창녕환경운동연합 532-7856.
  • [현장 행정] 강서구 수요시네마데이

    [현장 행정] 강서구 수요시네마데이

    자치구의 홈페이지를 유심히 들여보다 보면 ‘횡재’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더욱이 문화생활에 목말랐다면 과자 한 봉지, 아니 아이스크림 하나 값밖에 되지 않는 단돈 ‘1000원’으로 옛 추억은 물론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 강서구는 1000원짜리 한 장으로 구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영화, 뮤지컬, 콘서트 등을 마련하고 있다. 강서구 우장산 중턱에 있는 강서구민회관 내 노을극장에서 여는 ‘수요시네마데이’가 그것이다. 최신 개봉작은 아니지만 계절에 어울리는 영화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비디오가게에도 없는 희귀한 영화 상영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만 되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아이들까지 하나 둘 강서구민회관으로 모여든다. 김영수(61·내발산2동)씨는 “매주 수요일은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놓았어. 내가 깜빡깜빡하거든. 젊은 시절 보았던 영화들이라 그런지 옛 추억이 떠올라 좋아. 값도 싸고….” 지난해 말부터 동네 친구들과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는 한영희(68·화곡7동)씨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쯤 보았던 영화 ‘위대한 유산’을 우연히 여기서 다시 봤다.”면서 “집 근처 비디오가게에 가도 빌려볼 수 없는 귀중한 영화라 참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시작한 ‘수요시네마데이’가 1950년대에서 1970년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명화를 상영하면서 중장년층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매주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십명의 ‘폐인’이 생겨날 정도다. ●2월에는 ‘영화로 보는 명작소설´이 테마 상영 영화는 계절별 테마를 정해 다양화한 것이 특징이다. 2월에는 ‘영화로 보는 명작 소설’을 주제로 폭풍의 언덕,80일간의 세계일주, 안나카레니나 등을 상영한다.3월에는 주옥 같은 영화음악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라스트 콘서트’,‘금지된 장난’ 등을 ‘영화음악과 함께 하는 명화’로 엮어 선보인다. 또한 가정의 달 5월에는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선정했으며, 호국의 달 6월은 ‘전쟁영화 특선’, 한여름에는 무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공포영화 모음’을 마련하는 등 계절의 흐름이나 월별 특성을 고려해 골라 보는 재미를 더했다. 강서미디어센터 성윤경 수요시네마데이 담당은 “최신 개봉작은 아니지만 추억의 명화를 감상하는 것은 세월을 넘나드는 묘미가 있다”면서 “좀 더 다양한 주제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상영작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영원한 챔프’ 최요삼 영원히 눕다

    “해는 저물게 마련이지만 눈 시리도록 시뻘건, 그리고 진한 노을을 만들고 가겠다. 보는 이들이 뭔가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지난해 9월 대륙간챔피언(세계와 동양챔피언 중간급)에 오른 직후 최요삼(35·숭민체육관)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고라도 한 듯 이렇게 내뱉었다. 경기에 앞서 “챔피언의 자리에서 복싱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닦아 주고 은퇴하겠다.”는 각오까지 다진 터였다. 그리고 100일 남짓 뒤 복싱을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는 자신의 말대로 그 무언가를 ‘사각의 링’에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12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친의 제사일이었다. ●오늘 0시 1분… 35세 일기로 숨 거둬 지난달 25일 링위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투혼의 파이터’ 최요삼이 9일 만인 3일 0시 1분 결국 마지막 숨을 거뒀다. 앞서 서울아산병원 뇌사판정위원회는 7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장기 등의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장일치로 ‘뇌사’를 판정했다. 종교적·윤리적·법적 문제 등에 대한 신중한 논의를 거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최요삼은 밤 9시 23분 시작된 장기 적출 수술을 마친 뒤 산소호흡기를 떼어내고 심장 주위의 대동맥을 묶는 ‘대동맥 결찰’ 절차 직후 법적인 사망선고를 받아 기구했던 35년 간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전국의 말기 환자들에게 나눠줄 자신의 장기를 남김으로써 유일한 ‘유언’은 실천됐다. 각막과 신장 등 적출된 장기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의해 아산병원을 비롯한 3개 병원에 배분됐다. 호흡기를 이날 새벽 떼기로 한 건 모친 오순이(65)씨의 피끓는 모정 때문. 오씨는 앞서 “결혼도 못해 피붙이 하나도 없는 마당에 누가 제사라도 챙겨 주겠냐.”면서 “내가 없어도 제 아버지의 제삿날에 맞추면 제삿밥이라도 얻어 먹을 것 아니냐.”고 오열했다. ●그러나 6명의 삶으로 다시 피다 1973년생인 최요삼은 서울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프로에 입문, 지난 1995년 한국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을 거쳐 1999년에는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4차 방어전에서 호르헤 아르세(멕시코)에게 6회 KO패, 이후 두 차례나 재도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9월 터키아트 잔딩(터키)에 12회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결국 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챔피언 벨트를 움켜 쥐었다. 그동안 감량의 고통이 심해 “아기를 36번은 낳았을 만한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최용수와 지인진 등 한 때 한국 프로복싱계를 쥐락펴락하던 동료들이 생활고 등으로 이종격투기로 전향하는 것을 가슴아파 했다.“언젠가 한국복싱 중흥의 날이 올 것이고, 거기에 내가 앞장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복싱은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고도 마지막 순간에서도 목숨과 맞바꾼 최요삼의 ‘인생’ 그 자체였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영원한 챔프’ 최요삼 영원히 눕다

    “해는 저물게 마련이지만 눈 시리도록 시뻘건, 그리고 진한 노을을 만들고 가겠다. 보는 이들이 뭔가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지난해 9월 대륙간챔피언(세계와 동양챔피언 중간급)에 오른 직후 최요삼(35·숭민체육관)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고라도 한 듯 이렇게 내뱉었다. 경기에 앞서 “챔피언의 자리에서 복싱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닦아 주고 은퇴하겠다.”는 각오까지 다진 터였다. 그리고 100일 남짓 뒤 복싱을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는 자신의 말대로 그 무언가를 ‘사각의 링’에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12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친의 제사일이었다. ●오늘 0시 1분… 35세 일기로 숨 거둬 지난달 25일 링위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투혼의 파이터’ 최요삼이 9일 만인 3일 0시 1분 결국 마지막 숨을 거뒀다. 앞서 서울아산병원 뇌사판정위원회는 7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장기 등의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장일치로 ‘뇌사’를 판정했다. 종교적·윤리적·법적 문제 등에 대한 신중한 논의를 거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최요삼은 밤 9시 23분 시작된 장기 적출 수술을 마친 뒤 산소호흡기를 떼어내고 심장 주위의 대동맥을 묶는 ‘대동맥 결찰’ 절차 직후 법적인 사망선고를 받아 기구했던 35년 간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전국의 말기 환자들에게 나눠줄 자신의 장기를 남김으로써 유일한 ‘유언’은 실천됐다. 각막과 신장 등 적출된 장기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의해 아산병원을 비롯한 3개 병원에 배분됐다. 호흡기를 이날 새벽 떼기로 한 건 모친 오순이(65)씨의 피끓는 모정 때문. 오씨는 앞서 “결혼도 못해 피붙이 하나도 없는 마당에 누가 제사라도 챙겨 주겠냐.”면서 “내가 없어도 제 아버지의 제삿날에 맞추면 제삿밥이라도 얻어 먹을 것 아니냐.”고 오열했다. ●그러나 6명의 삶으로 다시 피다 1973년생인 최요삼은 서울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프로에 입문, 지난 1995년 한국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을 거쳐 1999년에는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4차 방어전에서 호르헤 아르세(멕시코)에게 6회 KO패, 이후 두 차례나 재도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9월 터키아트 잔딩(터키)에 12회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결국 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챔피언 벨트를 움켜 쥐었다. 그동안 감량의 고통이 심해 “아기를 36번은 낳았을 만한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최용수와 지인진 등 한 때 한국 프로복싱계를 쥐락펴락하던 동료들이 생활고 등으로 이종격투기로 전향하는 것을 가슴아파 했다.“언젠가 한국복싱 중흥의 날이 올 것이고, 거기에 내가 앞장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복싱은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고도 마지막 순간에서도 목숨과 맞바꾼 최요삼의 ‘인생’ 그 자체였다. 글 / 서울신문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영상 /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우유의식/홍희정

    홈쇼핑 채널에서는 석류 즙에 대한 소개가 한창이었다. 쇼 호스트는 활기찬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의 장점을 연신 강조했다. 중년의 여자 탤런트가 과장된 몸짓으로 와인 잔에 석류 즙을 따라 부었다.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석류 즙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찼다. 고개까지 젖히며 잔을 비운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거꾸로 든 빈 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흔들어 보였다. 누군가가 입 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는 그녀의 얼굴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활기찬 그녀와는 달리 나는 젖은 빨래처럼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판단력이 사라진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 머리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듯 무거웠다. 눈은 가물가물해서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의 꼬리마저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워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며칠 전에 들른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적정량의 수면제로만으로는 잠이 오지 않았고 그나마 처방 받은 수면제도 다 먹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늘 같은 꿈에 시달려 왔다. 사실 그것은 꿈이기 이전에 오래전 내가 겪은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이불도 깔리지 않은 방에 함께 누워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낮에 비를 너무 많이 맞고 돌아다닌 우리는 온몸이 젖은 채였다. 동생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 기침을 했지만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다. 동생을 돌볼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도 버겁게만 느껴졌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동생의 기침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이내 작아졌다. 그제서야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방안은 너무 캄캄해서 동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동생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손끝에 닿는 동생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동생이 죽은 뒤로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방안 구석에 서 있는 지금의 내가, 동생의 얼굴을 더듬는 어린 나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에는 항상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때마다 나는 번뜩이는 어린 나의 시선에 몸이 굳어 버렸다. 잠에서 깨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여 보아도 온몸이 꽁꽁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던 나는 늘어뜨린 팔, 다리가 굳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화면에 나오는 홈쇼핑 주문 전화번호를 눌렀다. 자동주문 전화는 1번, 상담주문 전화는 2번이라는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2번 버튼을 힘껏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담원과 연결이 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상품을 주문했다. 나의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는 상담원의 목소리에 나의 손은 떨림을 멈추었다. 하지만 주문을 마치고 휴대폰을 닫자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를 주워 입고 무언가에 도망치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의 주택가 골목은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건너편 동네의 아파트를 바라보니 드문드문 불이 켜 있는 창문들의 모양이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처럼 집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캄캄한 골목에 내가 신은 슬리퍼 소리가 타박타박 울렸다. 목적지도 없이, 그것도 새벽 3시란 시간에 동네를 어슬렁대는 것은 짝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나의 감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득 외롭기도 했다가 갑자기 서럽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가 결국엔 허무하기도 했다가 나중엔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괜히 나온 것 같아 후회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운 좋게 잠이 든다 해도 반복될 꿈이 두려웠다. 나는 항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까지 가서야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고 나면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새벽까지 내 전화를 받아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이젠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홈쇼핑을 보며 상담전화를 걸어 물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열 평 남짓한 나의 원룸은 홈쇼핑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뜯지도 않은 상자 채 쌓여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만치 불이 켜진 편의점 간판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갑자기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슬리퍼 바닥이 땅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나는 편의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편의점의 문을 힘주어 열자 전자음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높은 톤의 음악소리는 단순하지만 날카로웠다.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아르바이트 생인 듯한 남자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었다. 편의점에는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냉장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유와 삼각 김밥과 오렌지주스를 차례로 한 번씩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았다. 식욕이 없어서인지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캔 커피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잠을 자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언제나처럼 그것밖에는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는 계산대로 걸어가 캔 커피를 올려 놓았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캔 커피를 들었다가 조금 거칠게 카운터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가 자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를 깨우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캔 커피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캔 위에 맺힌 물방울이 나의 손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가 아닌 나의 가슴께로 젖은 손을 가져갔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가 잠든 모습을 보면 명치끝이 답답해지곤 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숨마저 얕게 쉬고 죽은 듯이 잠을 잘 때면 동생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뚜껑을 덮어 버린 커다란 항아리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다. 때문에 장소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자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깨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유독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든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몹시 화를 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어느새 상대의 어깨를 흔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번에도 나는 혹시 그가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에 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의 가슴은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나는 막혔던 숨이 터지듯 안도했다. 나는 그를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했다.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저절로 반쯤 벌어진 입주변이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힘차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의 호흡만은 의욕이 넘치는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한 호흡이었다. 나는 캔 커피 따위는 잊어버린 채 한참 동안 그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심각한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로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활기차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카운터에 손을 집고 서서 그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로 공기가 듬뿍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의 코끝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갔다. 들락날락하는 공기가 나의 손끝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웠다. 그것은 새끼 고양이가 엉킨 실타래를 풀며 장난을 치듯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며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너무 가까이 가 있던 자신에게 놀랐다. 그가 갑자기 깨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나는 황급히 편의점 문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곤하게 자고 있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끝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전자음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어서 오세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인사말부터 한 그는 들어오는 게 아닌 나가려는 자세의 내 모습을 보고 의아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의심받을 행동을 한 건 없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망설이던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려던 게 아니라 막 나가려던 참인데…… 별로 살 게 없어서요. 새벽 3시에 일부러 편의점을 찾아온 사람이 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이 자꾸 나왔다. -캔 커피를 사려고 했는데 자는 모습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그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더니 웃으며 말했다. -깨우셔도 되는데 그랬네요. 지금 계산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캔 커피를 카운터에 그대로 놔둔 것이 생각났다. 할 수 없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카운터에 올려져 있던 캔 커피를 건네었다. 그러자 바코드를 찍으며 그가 말했다. -밤에 이런 거 좋지 않아요. 그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듯한 목소리는 그가 자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돈을 꺼낼 생각은 못하고 그의 정수리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쑥스러운 듯 웃는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캔 커피의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캔 커피를 가져다 넣고 우유 두 개를 꺼내 왔다. 그는 입구를 조금 연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가 멈추었고 그는 따끈해진 우유 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우유 팩을 손에 쥔 채 편의점에서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는 전에도 가끔 캔 커피를 사러 온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늦은 새벽에 커피를 사는 내가 의아스러웠다고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편의점을 나가는 내 뒷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쓰였었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성실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그 웃음을 믿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웃는 얼굴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힘차게 숨을 쉬며 자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밤에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궁금한 것을 순수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의 태도도 잠든 그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커피와 상관없이 어차피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은 들은 그가 자신은 밤에 실컷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에 일하고 낮에 잘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야간에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의 햇빛 정도야 괜찮았지만 그때를 제외한 시간에는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기며 참을 수 없이 따가워져서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만큼 심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로 나는 새벽 3시면 매일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 시간들이 한 달쯤 지나자 우리는 함께 잠드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6시에 그는 퇴근을 하면서 항상 우유 두 개를 들고 내가 사는 원룸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편한 식사로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시간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마셨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우유 의식’이라고 부르며 웃곤 했다. 불면증이었던 나도 그와 함께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죽은 듯이 자고 싶었던 때와 비교하면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상대보다 늦게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상대가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 애정이 생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곤 했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아려왔다. 상대도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어 주었다. 싱글 침대 위에서 그와 꼭 붙어 있으면 힘차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나에게 전해졌다. 규칙적인 그의 심장박동과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나는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내가 불안함에 황급히 그를 찾으면 그는 항상 씩씩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는 꿈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가끔 미세한 불안함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호흡에 따라 힘차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하게 숨을 쉬며 자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가 나의 원룸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두 개의 머그잔을 구입했다. 우유팩도 나쁘진 않았지만 머그잔에 담아서 데운 우유는 온기가 더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머그잔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나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 중 네 번의 밤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엔 나와 데이트를 했다. 그와 함께 하는 데이트는 해가 없을 때만 가능했으므로 우리가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밤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공원을 걷기도 했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명동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문을 여는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면 비디오 방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때때로 PC방에서 서로에게 총을 쏘는 게임도 했고, 찜질 방에 가서 구운 계란을 먹기도 했다. 그와 데이트를 하며 나는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밤에도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구체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밤에는 예전에 홈쇼핑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을 함께 뜯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껍질째 넣어도 무엇이든 주스가 된다던 주서기에 파인애플을 통째로 넣고 갈아보기도 하고, 소나기가 와도 완벽한 방수가 된다던 등산화를 신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하루에 한 포씩 먹으면 좋다는 석류 즙을 한꺼번에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13포째 봉지를 뜯다가 포기를 했다. 그리고 26포의 석류 즙을 마시고 27번째 봉지를 뜯는 나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말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일부러 3포를 더 마셨다. 여름인데도 반팔 옷을 입지 못하는 그가 나를 말리며 진땀을 뺐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언제나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긴 옷을 벗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나는 원룸에 있는 단 하나의 창문에 까만 도화지를 꼼꼼히 붙였다. 하지만 그는 긴 옷을 입는 게 습관이 되어서 피부를 내놓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그가 편하게 자는 걸 바랐으므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피부끼리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좋을 테지만 뽀송한 면 티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감촉이라도 상관없었다. 매일매일이 한결같이 흘러갔다. 그가 퇴근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식탁 위에 두 개의 머그잔을 올려놓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있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유 의식’을 하며 예전에 내가 잠들지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더블 침대를 하나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편하게 자는 것을 바라면서도 미세하지만 집요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침대 구입을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자 그의 귀가가 더욱 기다려졌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벌써 도착했을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했다. 그는 휴대폰이 없어서 내가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지속되자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나 역시 그와 지내는 동안 그에게 전화연락을 할 일 따위는 생긴 적이 없었다. 그는 성실했고 한결같았다. 그런 그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밀려오는 불안감을 외면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러나 습관이란 무서웠다.7시까지 깨어 있던 나는 불안함과 나른함에 결국 선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내가 꾸었던 꿈과는 달랐다. 그와 내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항상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안아주던 그였는데 이상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동그랗게 구부려진 그의 등에 몸을 꼭 붙이고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나의 팔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크고 단단한 그의 등에 귀를 대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커다랗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의 등과 가슴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의 등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딱딱할 뿐이었다. 나는 팔을 좀 더 뻗어 그의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힘차게 뛰어야 할 그의 심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워 그를 깨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눈물이 차 올라 그의 모습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뒤틀려 보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를 잡아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내 쪽을 향하면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얼굴이 툭 하고 침대위로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얼굴이 아니고 가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표정이 떨어져 버린 그의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그의 얼굴이 아닌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괴성이 나의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긴 눈이 뜨거웠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식탁 위의 머그잔은 아까 내가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편의점에 가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에 젖은 듯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려서 신발을 신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디지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평소처럼 그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내 앞에 서 있었지만 나는 그가 유령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는 휘청거리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반은 어리둥절하고 반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많이 걱정했냐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 꿈의 잔상에서 깨지 못한 나는 그의 손길을 거칠게 쳐냈다. 교대할 아르바이트 생이 늦게 오는 바람에 편의점을 비울 수가 없어서 늦었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의심의 독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그의 머그잔을 밀쳐 버렸다. -당신 말 따위 믿지 않아. 그의 머그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머그잔의 손잡이가 깨져 버렸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도 주춤하는 듯했다. 그의 태도가 나를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내 몸은 마비가 되는 것처럼 뻣뻣해져 왔다. -남겨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당신이 알기나 해! 나도 모르는 말이 내게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오랫동안 꿈속에 나타난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식탁을 집고 있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떨고 있는 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가을 단풍잎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순간 나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머니에 넣고 달리려니까 빨리 달릴 수가 없어서…… 느릿한 그의 말에 나는 누군가의 농담에 받아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손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에게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은 물론이고 더 큰 상처까지 준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그의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네 번의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은 나와 함께 보냈다. 달라진 거라곤 아침 6시가 되어도 누워 있기만 하는 나를 대신해 그가 머그잔에 우유를 담아 데우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작은 침대에 그와 몸을 붙이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면 티에서 더 이상 아무런 촉감도 느낄 수 없었다. 꼭 붙어 있는 우리의 몸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꼭 안을수록 내 마음은 줄을 놓쳐 버린 풍선처럼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런 나 때문에 그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점점 야위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새벽 3시의 골목과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다. 머그잔을 앞에 놓고 마주 보고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도록 서로를 붙인 채 밤을 새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가 없을 땐 예전에 갔던 밤의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지만 나는 어디를 가도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하며 내 앞에 석류 즙이 가득 담긴 상자를 끌고 왔다. 나는 그가 내 손에 쥐여 주는 석류 즙 봉지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 이라고 힘차게 외친 그는 정말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봉지를 비워 가기 시작했다. 그는 봉지를 제대로 뜯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석류 즙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칠게 봉지를 뜯는 그의 손에 석류 즙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가 즐겨 입는 하얀 티 위로 석류 즙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쌓이는 빈 봉지가 늘어갈수록 그의 옷이 점점 더 붉어졌다. 나는 그가 쥐여 준 봉지를 손에 쥔 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석류 즙을 마시던 그가 갑자기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신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석류 즙을 비운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방바닥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과 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노을 앞에선 그를 연상하게 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바깥에서 마지막으로 노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린 채 저물어 가는 햇빛을 마음껏 받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과 겹쳐졌다. 나는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처럼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얼굴 위로 튄 석류 즙에 섞여 잔인하리만큼 아름답고 투명한 붉은색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석류 즙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 며칠 뒤 출근을 한다고 나간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당연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는 모습이 성실하기만 한 그에게 차마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이해 받고 싶어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매일 ‘우유 의식’을 함께해 준 그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오늘도 같은 꿈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주체할 수 없이 온몸이 떨려 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머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숨이 막혀 왔다. 그러자 그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어린 나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것들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피할 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렸다. 모든 상황이 잔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잔인한 것인지 내가 잔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방안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작은 창문 위 까만 도화지는 조금의 틈도 없이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다시 숨이 막혀 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여름 바람이 훅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였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때 이곳에는 머그잔에 담긴 우유처럼 온기가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없는 일주일간 홈쇼핑에서 주문한 상품들이 방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뜯지도 않은 상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허함은 커지기만 했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손잡이가 없는 그의 머그잔에 담긴 우유가 찰랑거렸다. 아침에 따라놓은 우유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그가 떠난 뒤에도 매일 ‘우유 의식’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몫의 우유를 다 마신 뒤에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하는 ‘우유 의식’을 멈출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나는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억지로라도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잠이 들면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등을 보이고 누운 그를 꿈속에서 보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매번 두려웠다. 그와 지내는 동안의 ‘우유 의식’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삶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방안의 공기마저 쌀쌀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는 두 명의 쇼 호스트와 한 명의 여자 탤런트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 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석류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폴리페놀 성분이 피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하는 말 중 몇 가지 반복되는 단어만이 띄엄띄엄 들릴 뿐이었다. 석류, 비타민C, 여성, 남성, 남녀노소, 온 가족, 활기찬, 여성,95%, 에스트로겐, 무이자 3개월, 온 가족, 활기찬, 하루 한 포, 석류, 매일 아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홈쇼핑의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은 내가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편의점 문이 열리며 흐르던 음악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홈쇼핑입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상담원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나에게 다시 말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송중인 석류 즙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에 그녀는 반복되는 말을 다시 건네었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석류 즙 한 포에 몇 개의 석류가 들어있나요? 네, 고객님. 한 포에 두 개 정도의 석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물었다. 석류는 국내산인가요? 그녀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일관된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최고급 이란산 석류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한참 동안 질문을 계속했다. 나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말투는 빨라졌고 대답은 짧아졌다.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상품정보를 참조한 뒤 다시 전화를 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석류 즙을 주문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빠르고 강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흐르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여러 번 구매했었는데. 그러자 그녀가 상냥하지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석류 즙 재구매 고객이시므로 만원의 할인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상담원의 말에 휴대폰을 놓친 채 일주일간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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