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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회 헌안 신청자·가족모임」 성황

    ◎“안구 기증통해 참사랑 실천” 다짐/현재 5천4백명 동참… 수요엔 크게 미흡/지도층인사 솔선수범·법적 뒷받침 절실 『언젠가 내 생명이 다하는 그 날,내 눈은 석양녘 노을과 천진난만한 어린이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주십시오』암흑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실명인들에게 사후 안구 기증을 약속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육신의 나눔을 통한 참사랑 실천」을 거듭 확인했다. 강남성모병원 안은행(주임교수 김재호)주최로 6일 가톨릭의대 마리아홀에서 열린 「제2회 헌안 신청자및 가족모임」에는 안구기증 신청자 3백여명을 비롯,가족·일반인 6백여명이 참석해 헌안과 안구이식에 관한 궁금증과 각막이식 환자들의 체험담을 듣고 메마른 이땅에 생명박애 정신이 널리 꽃피어지는데 앞장서기로 다짐했다. 우리나라에서 헌안운동은 지난 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한마음 한몸 운동」이 전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지금까지 5천4백여명이 사후 안구기증을 약속했고 실제로 사망뒤 두눈을 기증한 사람도 6백여명에 이른다.하지만 각막이식 수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도 안구기증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현재 13만명의 국내 실명자 가운데 각막이식수술을 받아야 시력을 회복할수 있는 사람은 전체의 10%선인 1만3천여명.한쪽 시력만 잃은 사람까지 합하면 3만명 가량이 각막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이에비해 지난해의 국내 각막이식수술건수는 강남성모병원의 1백35건을 포함해 모두 3백여건에 불과하다.미국에선 40년대초 안은행이 설립된 이래 현재 1백50곳이 활동중이며 연간 4만명이 각막이식수술로 광명을 되찾고 있다. 이날 모임을 주도한 김재호교수는 국내 헌안실적이 부진한데 대해 『뿌리 깊은 유교적 인습과 사회 지도급인사의 참여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사체훼손은 불경」이라는 관념 때문에 아직도 대다수 국민이 장기제공에 회의적이어서 사후 안구기증을 약속한 5천4백여명의 대부분은 특정 종교의 지도자및 신도에 국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그는 또 프레마다사 스리랑카 전대통령이 사후 모든 장기의 기증을 약속한 뒤 스리랑카에 국제 안은행이 들어설 만큼 헌안운동이 활발해졌음을 상기시키고 헌안운동에 지도층인사의 솔선수범과 함께 안구적출이 가능토록 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안구기증을 희망하는 경우 본인및 가족이 강남성모병원 안은행(590­1745)이나 한마음 한몸운동본부(771­7600)로 연락하면 된다.
  • 불타는 단풍에 오욕을 태우고서(박갑천칼럼)

    꽃소식은 북상하는데 비해 단풍소식은 남하한다.그게 봄과 가을의 차이인가.지난여름의 저온현상으로 해서 여느해보다 일찍 시작된 단풍의 남행길이다.전국의 산과 들이 붉누런 때때옷을 걸쳐나간다. 『단풍은 연홍이요 황국은 순금이라/신도주 맛시 들고 금은어회 더 죠□라/아희야 거문고 □여라 자작자가 □리라』.요맘때의 정경을 읊은 노가재 김수장의 시조이다.자연에 묻혀 거기 동화하는 삶을 즐기는 가인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자작자가」아닌「대작대가」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가을의 단풍은 증자의 말(논어:태백편)을 떠올려보게 한다.그가 오랜병으로 누워있을 때 노나라의 세도가인 맹경자가 찾아오자 그에게 했던 말이다.『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착한말을 한다』(인지장사이 기언야선)고 한 그때의 말은 오늘에도 사람들 입입에 오르내린다. 그렇다.이윽고 땅위에질 이파리들이「착한말」과도 같이 들려주는「원색의 향연」이 단풍 아닌가.죽으려면서 펼쳐보이는 저녁노을의 화려함이다.얼마 남지않은 삶을 곱게 수놓는 자연에의귀의이다.그러기에 아름답다.고개 숙어진다.그 울긋불긋한 색상은 저 초나라의 지효노래자의 오색반란의를 연상해보게도 한다.나이 일흔에 어버이 기쁘게 해드릴양으로 입고서 어린애 재롱을 부렸다던 그옷 말이다.인생의 황혼이 때때옷 입고 어버이 기쁘게 했음은 자연의 황혼이 때때옷 입고 사람들 마음에 기쁨을 심는 것과 같다.인생위에 엮어지는 제상이 실상 그렇게 우습고 허무한 것 아니던가. 고려조의 문신 문진공 이장용의시「단풍」(홍수)에서도 그걸 느낀다.­『한이파리 바스락지는 밤소리(야성)에 깜짝놀라/천산의 숲들 문득 서리내린 갠아침에 상기됐네/가엾어라 푸른산기운 비춰 깨뜨림이여/알지못했네 흰머리카락 재촉할줄을/거친뜰 바라보는 가을회포는 씁쓸한데/먼산에 부딪쳐 타는 눈부신 석양이여/기억도 새로워라 지난해 바로오늘/그병풍 그림속을 거닐던 연연(외몽골에 있는 산이름)길이』(원문생략:손종섭역).나라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을 산「해동현인」의 착잡했던 심경이 단풍과 인생에 엇짜여 드러난다. 오늘내일 단풍구경 떠나는 이들이적지않을 것이다.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을 아름답게 감상할줄도 알아야겠다.마음속 오욕일랑 불타는 단풍에 태우고서 돌아올 일이다.
  • 확성기가 있었고…(화제의 소설)

    ◎후기산업사회 증후 비판적 시각서 묘파 실험적 작가정신과 탄탄한 문체로 신세대소설의 지평을 열어가는 젊은 작가 구효서가 「노을은 다시 뜨는가」에 이어 2번째 내놓은 창작집. 3부로 나눠 1부에 표제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아이 엠 어 소피스트」등 6편의 단편을 실었다.기호학적 인칭도입,파격적 구성,후기 산업사회증후를 비판적 시각에서 그렸다. 2부의 「노래」「개소문」「자공,소설에 먹히다」등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상품화될 수 밖에 없는 예술과 문학을,3부 「자동차는 날지 못한다」「누각을 찾아서」「들판위의 여자」를 통해 소시민적 삶에 대한 염증과 애정을 뛰어난 감수성으로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구효서지음 세계사 6천원.
  • 오!낙동강(외언내언)

    남한에서는 가장 긴강이 낙동강이다.영남쪽의 젖줄로 되고 있는 강이지만 도산별곡에 『황지로 소슨물이 낙천이 말가셔라』고 노래했듯이 발원지는 강원도땅 태백산북쪽 천의봉이다.여기서의 낙천이 곧 낙동강.남한땅의 4분의1을 적시는 것으로 계산되는 강이다. 『백번이나 구부러진 푸른산속/한가하게 나서서 낙동을 지난다/풀이 깊으니 아직도 이슬이 있고/솔이 고요하니 스스로 바람은 없네/가을물은 오리머리같이 푸르고/새벽노을은 생생의 피같이 붉도다/게을리 노는 손이 사해로 떠도는 한시옹임을 뉘알리』.여조의 학자 백운산인 이규보가 어느 가을날 낙동강을 건너면서 읊었던 노래다. 어찌 옛날의 백운산인뿐이겠는가.시인묵객이면 누구나 무심할수 없었던 것이 낙동강이다.학산 김용호가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하고 찬미했는가 하면 청마 유치환도 『겨레의 어머니여 낙동강이여…』읊조리고 영운 모윤숙또한 『천년신라를 먹이던 물아/너홀로 푸르러 굽이굽이 흘러라…』면서 시심을 불태운다.황지로부터 다대포에 이르는 낙동강 1천3백리길을그려놓은 박정규화백의「낙동대장강」(폭1·1m 길이80m)은 유명하다. 옛날에는 「낙동강절류」전설이 있었던듯하다.낙동강물이 끊어지면 왜놈이 쳐들어온다는 뜻이었다 한다.실제로 선조4년 당시의 경상감사가 조정에 낙동강물이 끊겼다는 장계를 올려 인심이 흉흉해졌다는 기록도 있다.임진위란은 그로부터 21년후에 일어나는 것인데 그때의 절류에다 견강부회하기도 한다. 그건 다 옛얘기.오늘의 낙동강은 절류는 아니나 사류로 되고 있다.전국의 다른 강들이라 하여 청류라 할수는 없는터이지만 유독 낙동강의 경우는 4급수로 전락하여 경남·부산쪽 식수원에 비상이 걸린 것으로 보도된다.옛날 이규보가 『오리머리같이 푸르다』고 했던 그물이 이젠 『낙동강 오리알도 썩여버릴물』로 변하고 말았다.그것은 농업용수로 써서도 안된다는 뜻이다.가공할 자업자득이 눈에 보인다. 어제가 세계환경의 날이었다.
  • 「늘푸른…」/「먼동」/장편 역사소설 서점가서 “불티”

    ◎일제시대 배경… 항일정신 담은 교양물/분단작가 대표작가 김원일·홍성원씨 나란히 출간 김원일·홍성원 두 중견작가가 필력을 기울인 장편역사소설 「늘푸른 소나무」와 「먼동」이 최근 나란히 단행본으로 완간됐다. 이들 두 작품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김원일의 「늘 푸른 소나무」는 9권,홍성원의 「먼동」은 6권짜리 분량의 대작이다.두 작품 모두 신문연재소설의 개작판이며,같은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완간됐다.제목이 주는 상징성 또한 두 작품 공히 순우리말 조어를 통한 강한 시사성을 풍긴다.홍씨는 1937년생 경남 합천출신이며 김씨 역시 1942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5년 터울의 동년배이기도 하다. 특히 「겨울골짜기」「노을」「불의 제전」「마당깊은 집」(김원일),「남과 북」「기관차와 송아지」「디데이의 병촌」「흔들리는 땅」(홍성원)등 6·25전쟁을 소설의 주요 테마로 천착해온 우리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가 마치 손을 맞춘듯이 시선을 해방이전 일제식민지시대로옮겨 쓴 교양역사소설이란 점도 각별하다.이들 작가의 작품은 현재 서점가에서도 경쟁적으로 팔리고 있다. 「늘 푸른 소나무」는 1910∼20년대 중반까지의 일제강점기전반부를,「먼동」의 경우 구한말에서 한일합방을 거쳐 3·1운동이후에 이르는 역사적 격동기를 각각 시대배경으로 다루고 있다.「소설적 꺼리」가 산재한 중복되는 시기를 두 작가가 나란히 배경으로 선택한 셈이다. 줄거리면에서도 두 작품 모두 비극적인 우리 근대사의 새벽에 피어난 항일정신에 창작의 뿌리를 두고 있다.「먼동」이 동트기 직전에 더 어두운 새벽을 헤치고 살아가는 양반·중인·하층민등 3일가가 출신배경에 따라 운명의 반전을 거듭하는 가족사를,「늘푸른 소나무」의 경우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피나는 고행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뒤 어둠앞에서 초연히 자기 희생으로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숨겨진 개인사와 의식을 찾아 내는데 역점을 둔 점도 비슷하다.「먼동」이 의병전쟁에 참가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과그들의 3세들이 한결같이 3·1만세운동에 연루되는 민중의 삶을 모델로 제시했다면 「늘푸른 소나무」는 1910년대 대한광복회의 활동등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는 국권회복운동을 내세워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김원일씨는 『시대적 변혁기에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을 다룬 교양소설쓰기를 소설가가 되기 이전인 스물살무렵부터 꿈꾸어 왔다』면서 이 소설이 그동안 꾸어온 문학적 지향점의 실현이라고 말했다.홍성원씨 역시 『지난77년 「남과 북」창작을 끝낸이후 역사소설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작가가 해야 할 일은 역사가들이 써놓은 역사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문학적으로 읽는 법을 제시하는 것뿐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 소설가 이제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7)

    ◎“글을 그림처럼”… 절제된 언어의 마술사/「환상 리얼리즘」기법 구축,무의식세계 조파/사회 선입감·통념 거부… 쓰고싶은 글만 고집/「나그네는…」 이상문학상 수상… 시인·화가로서도 경지에 꾸부정하게 걷는 비뚤어진 걸음걸이,구겨진 청회색 점퍼에 벙거지를 눌러쓴 이제하의 모습은 카뮈의 뫼르소나 사르트르의 로캉뎅 일수도 있다.그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무심한듯 생각에 잠긴 묵연은 그대로가 시적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시킨다. 만사에 서툴고 세련된 티를 보이지 않는것도 이 예술가의 독특한 특징일 것이다.그러나 말 하기가 싫어 억지로 하는처럼 어눌하게 굴다가도 자신의 의지와 소신을 펼때는 드물게 치열함을 드러낸다.메마른듯한 그의 가슴에 정열과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때 뿐일것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는 단순한 소설가만은 아니다.시인이자 화가이며 화가이자 소설가다.그리고 타고난 다방면의 재능을 한 수준으로 고루 이끌어 자연스러운 자신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1회 학원문학상수상 그가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때인 57년 여름,정식 데뷔보다도 훨씬 이전의 일이다.52년 마산동중시절 이미 「학원」지에 투고하여 그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는 전국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보라빛 노을을 가슴에/안았다고 해도 좋다/…아아 밀물처럼 온몸에 스며 흐르는/노곤한 그리움이여/로 전개되는 「청솔 그늘에 앉아」는 박목월 조지훈씨의 심사로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과 함께 60년대까지 중3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내 이름을 불렸을때의 그 가슴의 고동을 잊지 못한다』는 감격과 홍대 조각과에 진학하여 『대학 2학년이 될때까지 학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들수 있다. 너무나 순진한 나머지 그는 대학이란 강의시간이나 학점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장소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그의 단순함은 문학쪽에서도 언뜻언뜻 엿보인다. 「현대문학」지의 시추천 완료후 그는 다시 신문의 신춘문예와 월간지를 통해 소설데뷔 관문을 거쳤고 당시 발표한 「유원지의 거울」「흰제비의 여름」또 속물과 진정한 예술가의 대립을 그린 「유자략전」등으로 「표현수법에 있어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뛰어난 압축미」「소설로 쓰여진 한편의 예술사회학」이란 호평속에서 문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무한한 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한 그의 「초현실」이나 「잠재의식」등의 기법상의 탐구는 「쉬르계열의 그림을 느끼게하는 난해성」으로 지적되자 그는 자신의 작품을 「환상리얼리즘」으로 표현,이를 설명하기도 전에 한 평자가 작품과는 상관없는 지연(지연),학연을 거론하면서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대칭이 어떻게 한 이름으로 공존할수 있는가」란 의문을 제기하여 그는 한순간 환멸감과 모멸에 빠지는듯 했다. 그는 후에 「신뢰할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없는 리더의식과 옹졸한 콤플렉스로 지연·학연·인정주의 따위로 섹트를 조성하고 60년대식,70년대식으로 작가를 구분하려 든다」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환상리얼리즘」이란 한낱 조어가 아닌 기왕에 있어온 미술상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를 잠시 소설에 차용한 것이지만 그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외형적 사회의식보다 개인의 무의식세계,그들의 꿈과 악몽을 다루기 위해선 초현실주의 기법을 취할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옳지않은 것,속된것,뻔뻔스러움과 적당주의는 그와는 맞지 않음을 명료하게 구분짓는다. 74년 채식주의를 테마로한 「초식」발표와 함께 현대문학상이 주어졌을 때도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문단에 파문과 충격을 던졌다.모든 문학상이 일반적으로 너무 무난히 주어지며 과열된 문협선거에 얽힌 문단정치에 혐오감을 느꼈다는게 수상거부의 이유였다. 작가의 시대적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명제란 무엇인가. 그는 「작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당대가 직접 간접으로 요구하는 유형무형의 온갖 윤리감각」이라고 말한다.예의 「모든 사람들이 물을 원할때는 불을 이야기함으로써 물에 대한 감각을 없애주는 것이○수상 거부로 큰 파문 작가의 사명이며 책임일 뿐」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해서 작가마저 부화뢰동하고 나서면 작가 본래의 본성이 와해되고 작품은 몰개성화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과연 『쓰고싶은 것을 써서 생존이 가능한 작가는 몇사람이나 되겠는가?』를 자문하고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이야기로 팔아 연명하는 하릴없는 날품팔이』라는것과 이에따른 자책지심을 문단에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자세는 문단초기인 신촌시절에서 동숭동 팔판동 지금의 평창동에 이르기까지 시종여일 변함없는 소신을 지키는듯 하다. 신촌시절에는 그의 부인(고행자씨)이 삐에로 의상실을 경영,화곡동에 집을 산적도 있으나 부인의 사업실패로 난생처음 가져본 집을 빚잔치로 없앴고 이 때의 고생을 바탕삼아 장편 「광화사」와 중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도 여전히 『물리적인 힘에 물리적인 힘으로맞서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문학은 대결로서 당장 결판을 보는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견디고 스며들고 녹이는 작업』임을 상기시킨 저 유명한 수상연설을 남기고 있다. 『문학에서의 가장 큰 고함소리는 침묵입니다.좋은 작품을 읽고 났을때의 그 멍청히 강요당하는 침묵­』 그리고 그의 소설은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림에서의 구성 색채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그 형식만 다르게 나타날 뿐 글쓰기와 많이 닮아있음을 강조했다.이는 일찍이 시인 김춘수씨가 그의 소설 「황색강아지」를 보고 「영화적 기법을 사용한 소설」이라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군제대후 조각과를 4학년 1학기에서 그만두고 서양화과 3학년에 편입,그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델보를 비롯,뭉크와 스텡 프란시스 베이컨에 빠져있었고 영화에 대해서는 한때 소형영화클럽을 만들만큼 영화광,요즘도 시간이 날때마다 청계천에 들러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해온다.비디오테이프만 8백여개.좋아하는 작품은 소련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를 꼽고 있다.그는 한때 까마귀를 비둘기처럼 뱃심좋게 훈련시켜 돈심부름을 시켜봤으면 바란적도 있고 팔판동에 살때는 밤 10시가 넘어 총리공관이 있는 행길까지 내려가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며 딸아이와 뛰어놀기도 했다. 한번은 딸아이(슬·고2)가 좋아하는 빵을 사기위해 호텔 지하에 위치한 제과점에 가려다가 호텔 직원에게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꺼부정한,초라한 행색이 사뭇 못마땅한듯 한참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그의 가방을 가리키며 「그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 사람의 두눈을 똑바로 마주한채 「총」이라고 대답하여 혼비백산시킨적도 있다.이 사회의 선입감,오래묵은 관념에 대한 특유의 냉소가 또하나 이제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시나리오 작업이후 일간신문을 비롯,월간지등에 「이제하 영화칼럼」을 쓰고 있다.좋아하는 영화를 마음껏 보고 마음껏 평을 쓴다.물론 본격적인 평이라기 보다 객석에서의 느낌을 좀더 심층있고 사려깊게 쓰는 식이다. ○노래엔 기품 가득 그리고 때때로 젊은 시인 가수들과 어울려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평소 대화때는 꺼들꺼들 쇠된 목소리를 내지만 노래할 때의 음성은 청량한 기품이 일품이다. 그는 이제 우리문단의 중진의 위치다.그의 말대로 그가 책임질 수 있는 예술을 성취해 가고 싶어한다.그래서인지 그에게선 느슨한 기는 찾아볼 수 없다.긴장을 푼듯 방심하고 무심한 속에서 오히려 감수성의 현을 전보다 더한층 팽팽하게 당기는 자세다. 그런중에도 친구들과 다양하게 교분을 트고 있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간혹 그가 괴벽이나 기인기질을 지닌 것이나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반듯하다.선배나 후배들에게도 따뜻하고 정중하다.어느날 갑자기 그의 달라진 환경과 연륜과 함께 갑자기 표현하는듯한 속된 구석은 근원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그가 지닌 예술성과 인간미는 이 시대에선 몇사람 되지않는 「비범임에는 틀림없다.그래서 그의 예술추구는 정련되지 않은 생금에도 비유된다. 그 옛날 그가 시추천을 받을 무렵 미당이그의 시를 향해 「신시쩍 나무」라고 한것처럼 도무지 「가뭄」을 타지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정」,「우리의 공명선에 잘 직통하는 그의 특수어법」은 바로 그림으로 그려진 소설,소설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연보 ▲1937년 5월20일(음)경남 밀양출생.이해동씨와 김일선여사의 3남매중 독자 ▲1946년 마산으로 이주 ▲1953년 마산 고1 시「청솔그늘에 앉아」로 제1회 학원문학상 ▲1956년 마산고졸「새벗」잡지에 동화「수정구슬」당선 홍대조각과 입학 ▲1957년 「현대문학」에 시「노을」「설야」「바다」서정주추천 신태양사 「황색강아지」당선 ▲1958년 「소설계」중편 「나팔산조」 준당선 ▲1961년 군제대후 홍대조각과 4년에서 서양화가 3년으로 편입,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손(수)」입선 ▲1964년 육십년대 사화집동인(성찬경·박재삼·박회진등) ▲1966년 연작동화 「노래하는 돌」(신아일보연재) ▲1969년 동화 「느림보의 다섯가지 수수께끼」(대한일보연재) ▲〃 문제작 「유자략전」발표로 화제 ▲1973년 첫 창작집「초식」(민음사간) ▲1974년 「초식」으로 현대문학상 수상했으나 수상거부 ▲1977년 꽁트 스케치집「새」(수문서관간)「소설문예」 창간 편집위원 ▲1978년 창작집 「기차,기선,바다,하늘」(홍성사간)월간「수상」(월간 에세이 전신)주간 ▲1979년 화랑협회 계간지「미술춘추」주간 ▲1982년 첫 개인전,개전기념시집「저어둠속 등빛들이 느끼듯이」(청하간) ▲1983년 일러스트집「사라의 눈물」(우석사간) ▲1984년 서양화 10인 소품전·문학선집 「밤의 수첩」(나남간) ▲1985년 중편「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발표(이장호감독으로 영화화) ▲1986년 동화집「노래하는 돌」(샘터간)장편「광화사」(한국일보연재) ▲1987년 장편「광화사」1·2부(문학사상간)「소녀유자」(문학사상 연재) ▲1988년 장편「소녀유자」(고려원간)장편「시습의 아내」(경남매일연재)수필집「길떠나는 사람에게」(동아간)이상문학상수상전집「임금님의 귀」(문학사상간) ▲1990년 장편「진눈깨비의 결혼」(청맥간)문학선집「포말위의 식사」(강천간) ▲91­현재 창작집 「기차 기선 바다 하늘」외 창작들 재간.영화칼럼집「시네마천국」(우리문학사간) 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수상.
  • 한국전통예술 불서 찬사받아/4월 한달 「한국이 파리에」 대성황

    ◎사물놀이·탈춤 등 공연 언론들 새 평가 4월 한달동안 「한국이 파리에」라는 이름으로 파리 샹젤리제거리 초입의 롱 푸앵 루노바로 극장에서 열렸던 한국종합예술제는 규모로 볼때 프랑스에 한국예술을 소개하는 행사로서는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최대의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프랑스 매체들의 적극 보도 또한 전례없는 것이었다.좀 더 많은 관객을 끌지 못한 아쉬움이 있으나 파리에 한국을 소개하고 한국예술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행사 내용은 ▲전통음악및 무용 ▲사물놀이 ▲봉산탈춤 ▲연극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햄릿」 ▲한국문학의 밤 ▲문인수 조각전등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4월1일 이 행사를 소개하는 기사를 일간신문 르 몽드가 문화면 전면 특집기사로 다루었고 같은 날짜의 일간신문 르 피가로와 주간 시사잡지 누벨 옵세르퇴르에서도 이를 보도했다.행사기간중에는 텔레비전 프로및 공연안내지 텔레라미,일간신문 르 피가로,르 코티디 앵 드 파리,파리지앵,주간시사잡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르 피가로 매가진등의 보도가 있었다.라디오로는 프랑스 뮈지크가 1시간짜리 특집을 내보냈고 프랑스2텔레비전이 뉴스시간에 이승렬 국악원장 인터뷰와 함께 공연장면 일부를 방영했다.이러한 잦은 보도뒤에는 이 행사를 공동기획한 주불한국문화원(원장 조성장)과 롱 푸앵 루노바로 극장측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프랑스인들에게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한국문화의 정수를 한달에 걸쳐 볼 수 있는 기회』『역사가 오래고 예술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한국 전래의 궁중무용』『뉴욕공연에서 세계적인 음악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찬사를 받은 사물놀이』『감정의 격렬함을 영혼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판소리 대가 김일구의 공연』『한국 전통음악과 무용­세련된 음악애호가들을 위하여』『국립국악원 공연은 고상함과 세련미를 지니고 있다』『연극 「햄릿」은 전통과 현대성의 화해』『화려한 옷차림과 넘실대는 세련된 어깨춤으로 구성되는 탈춤은 가히 장관』『한국의 민간외교사절 조각가 문인수』… 매체들의 호의적인 소개와 높은 평가에 비한다면 정작 관객동원은 크게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그러나 대부분 한국의 독특한 예술양식에 대해 충분한 사전 이해없이 입장했을 프랑스 관객들이 뜨거운 박수로 감동을 나타내고 있음은 인상적이었다. 루노바로 극장은 해외의 문화예술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는 곳으로서 4월 한달동안 한국을 소개하기에 앞서 3월엔 인도의 예술을 보여주었다.5월에는 일본의 예술을 소개한다.여기 초청되는 공연단에는 왕복여비만을 자담케하고 나머지 비용은 이 극장에서 댄다. 한국으로서는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였고 그 성과는 컸다.다만 이런 좋은 기회로 이루어진 나들이가 프랑스 지방공연이나 주요 인접국 순회공연으로 연결확장되지 못한 것은 또 하나 아쉬움으로 남는다.한편 국립국악원공연단은 비교적 다양한 레퍼토리를 열성을 다해 보여주었으나 「국립」이라는 이름에 견주어볼때 37명의 단원수는 다소 적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실제 일부 무대에서 충분한 양감과시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편 오는 10월22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3개월간 퐁피두센터에서 한국영화 80여편이 상영된다.또 내년 가을에는 프랑스측 초청으로 한국문인 10명이 파리에 온다.95년에는 기메 동양박물관의 한국실이 확충된다.이렇게 교류가 한켜 한켜 쌓여감으로써 한국예술은 프랑스인들에게 익숙한 대상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 “실익위주 교류” 파리 한국예술제

    ◎문민정부 새 의지 반영… 「르노바로」극장서 내일 개막 「한국이 파리로」라는 주제로 오는 18일부터 프랑스에서 열리는 「93 파리 한국종합예술제」는 우리의 해외 문화교류 정책이 실리 위주로 방향을 전환한 뒤 갖는 첫번째 행사이다.과거 해외 문화교류에서 사실상 가장 큰 목적이 되다시피했던 남북사이의 외교적 경쟁과 권위주의 체제의 이미지 보전 노력에서 탈피하려는 문민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유럽은 우리와의 교역량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음에도 유럽통합으로 무역규제 등 경제마찰이 심해질 소지를 안고 있는 지역.따라서 『해외 문화교류를 통해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실익을 챙기자』고 나선 것이다.특히 이번 행사는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재인식 시킴으로써 문화뿐 아니라 상품의 이미지를 높이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기반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목적을 두고 있다. 이에따라 행사도 부채춤 등 전통예술 일변도의 대중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현재 우리 문화예술의 폭과 깊이를 그대로 보여줄수 있도록 기획했다.이번 예술제가열리는곳은 파리에서도 문화예술의 중심거리인 샹젤리제의 「르노 바로」극장.예술제는 젊은 조각가 문인수의 전시회로 막을 연다.이어 4월2일부터 15일까지는 국립국악원의 공연.10일까지 대극장에서는 「수제천」과 「가야금산조」「검무」「처용무」「작법」 등 우리 전통예술의 정수를 선보인다. 그리고 10일 소극장에서는 판소리「심청가」가 불리워지고 13일부터 15일까지 대극장에서는 사물놀이가 펼쳐진다.김기수 등 19명의 탈패가 나설 봉산탈춤 판은 4월16일부터 18일까지 대극장에서 벌어진다.이 공연은 4월23일 프랑스의 지방도시인 릴에서도 열릴 예정이다.또 「극단 자유」는 20일부터 25일까지 대극장에서 창작극 「노을을 날아 가는 새」와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번안해 공연한다.예술제는 4월25일 소극장에서 시 낭송회를 겸한 한국문학 소개 행사로 막을 내린다. 한편 국립국악원 공연단은 「93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된 벨기에의 안트워프에서 열리는 「한국의 도자기전」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한국학 대회」에도 참여한다.이에따라 4월16일에는 안트워프에서 17일과 18일에는 베를린에서 각각 공연을 가져 유럽에 한국 붐을 조성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정부는 이 행사에 이어 오는 6월 문화사절단의 중국 파견과 9월부터 1년동안 미국에서 열리는 「코리아 페스티벌」,9∼10월에 호주 및 뉴질랜드에서 예정된 「한국문화주간」행사도 같은 원칙에 따라 준비해 나갈 방침이다.
  • 귤향 짙은 노년이고자(박갑천칼럼)

    『하루해가 벌써 저물었으되 오히려 노을이 아름답고 한해가 장차 저물려 해도 귤 향기 더욱 꽃답다.이러므로 일생의 말로인 만년은 군자가 마땅히 정신을 다시 백배할 때이다』­홍자성의 「채근담」:원문생략=조지훈번역. 노년이 아름답고 향기가 번져나야 할 것을 가르치는 글귀이다.노년으로 될수록 꼭두서니 저녁 노을을 더욱 선연한 것으로 물들여야겠다는 권유이다.지나치게 짙거나 살지거나 맵거나 단것은 참다운 맛이 아님을 깨단하면서 담담할 줄 알라는 타이름이다.지나치게 영걸스럽거나 기괴하거나 우뚝하거나 판이한 것은 지인의 경지가 아님을 터득하면서 평범할 줄을 알라는 충고이다.고요하게 승화된 대단원의 막을 마련해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젊은 날이 제아무리 화려했어도 노년에 구름끼고 안개 덮인다면 아름다운 인생이랄 수가 없다.그것은 젊은 날이 화려했던 그만큼 도리어 더 슬픈 인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그래서 사람이면 누구나 향기로운 노년을 생각한다.수신의 경지로도 그러하지만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가정적·물질적으로도뒷받쳐져야 하는 것.이게 누구에게나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더구나 오늘의 사회풍조는 노년이 서러운 쪽으로 자꾸 기울어 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애민육조」는 「양로」로부터 시작되고 있다.­『양로의 예가 폐지된 후에 백성들은 효도를 일으키지 않으니 수령이 된 사람은 다시 양로의 예를 거행하지 않으면 안된다』.정다산은 조선초기에 노인들 위로하는 기로소 설치한 일을 회고하면서 동월의 『나라 안에 80세된 노인이 있으면 남녀 모두 연회를 베풀어 임금의 은혜를 널리 입게 한다』는 「조선부」를 소개하고도 있다.동월은 성종때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사람이다. 『백성들은 효도를 일으키지 않으니…』했지만 정다산 시대만 해도 이땅의 노년들은 외롭고 슬프지 않았다.정다산같은 목민관도 있었고 사회의 전반적 기풍이 경로효친을 숭상했으니 오늘의 시대상황과 더불어 비길 일이 아니다.직계 존비속간의 살상행위까지 예사롭게 되어 버린 것이 오늘의 세태.그래서 「귤향내 짙은 노을」의 노년맞이는 점점 더 어려워져 간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구조가 선진국형으로 되고 있다는 보사부 발표가 나왔다.이는 다시 말해 유년인구 비율은 낮아지면서 노년인구 비율은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환갑잔치하는 것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노령인구가 늘어났음은 누구나가 실감하고 있는터.그에 따라 쓸쓸하고 서러운 노년들도 불어난다.수즉다욕(수칙다욕)이면 죽느니만 못한 법.오래 살되 건강하고 보람에 찬 나날일 수 있어야 한다.그게 참된 복지국가의 모습이다.
  • 왕무당/김금지 연극배우(굄돌)

    요즈음 나는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에서 「왕무당」또 「여인」역을 맡아 공연중이다.내년 4월에 열리는 「파리연극제」참가 작품인데 김정옥교수님이 직접 쓰고 또 연출하시고 우리극단 대표 이병복선생님이 무대와 의상을 맡은 작품이다. 주인공 공주역을 비롯해 주요 배역을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는데 다른 곳에서 연기경험이 있는 쪽들이라 괜찮게들 한다.연기자는 무슨 역이든지 소화해내야 된다고 배웠는데 원래 무당굿하는 걸 별로 본적이 없고 무속쪽에 별관심도 없고 해서 무척 고생을 했었다.그저 기를 쓰고 「어허!」 「어허」하고 소리지르고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하고 방울을 힘차게 흔들기도 하는데 내 생각에도 별 신통치 않은 무당같아 내 주변사람등에게 구경오라는 얘기를 안한다. 연극을 처음 시작할때 국립극단의 천승세작 「만선」이라는 작품에서 한번 무당역을 했는데 돌아가신 그때 교회 집사님이셨던 친정어머니와 같이 동네무당집에 가서 배워온 적이 있었다.피나는 노력으로 무당역을 잘했다고 무척 칭찬을 들었는데 그때 겁났던게 혹시 배역때마다 무당역만 돌아오면 어떡하나 하는 거였다.하느님께 기도까지 했는데 기도에 응답이었는지 그후 계속 예쁘고 슬픈 여주인공역만 도맡아 했었다. 그랬는데,그랬었는데 얼마전부터 늙은 여자,노부인 아니면 무당중에도 왕무당역만 내몫이 된다. 20년동안 같이 연극한 연출자 김선생님은 『이번 왕무당은 단순한 무당이 아니라 나래이터라구! 아주 중요해요』『김금지씨! 왕무당 해보시지!』하면서 내 눈치를 보신다.대본을 아무리 읽어 봐도 정말 내가 맡을 배역이 그것밖에 없어 『그래요』했는데 솔직히 별로 신은 안난다.거기다 객석에 불이 켜지고 무대에서 인사할 때는 관객층이 너무 젊어 무안하기까지 하다.대극장인 경우는 좀 덜한데 이번같은 소극장인 경우는 『내가 너무 연극을 오래 하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든다.점잖게 연출이나 희곡이나 기획쪽으로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좀 고통스럽더라도 내이름 밑에 끝까지 연극배우라는 타이틀로 남아있고 싶다.
  • 극단 자유 3년만에 창작극 공연

    ◎김정옥작 「노을…」,박웅·권병길 등 출연 극단 자유가 3년만에 새 창작극 무대를 마련했다.김정옥씨가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신작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이 25∼11월7일(하오4시30분·7시30분)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은 극단 자유가 지난 78년 집단창조와 총체적 연극을 표방하고 「무엇이 될고하니」를 선보인뒤 무대에 올리는 다섯번째 작품.연극의 중심축을 희곡이나 연출가에서 연기자로 옮겨 연기자의 개성이 살아 움직이도록하고 온갖 예술행위와 문화양태를 수용해 연극의 표현영역을 넓혀온 극단 자유가 10여년동안 추구해온 집단창조와 총체연극이다. 「노을을…」은 삼국시대처럼 국가와 민족의 형성과 변화가 이루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한나라가 망해 왕족과 지배계급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섬으로 달아난다.그러나 한 공주는 자결도 도망도 가지 않은채 백성들과 함께 나라에 남는다.공주와 함께 남은 무당들과 광대들은 패망한 나라와 죽은 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굿을 한다.과거와 미래,현실과 허구,실제인생과 연극의 세계가 교차하면서 공주는 허구의 죽음을 체험한다.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밝음과 어둠이 엊갈리는 노을;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를 던져준다.우리의 전통적 연희양식과 서구적 양식이 접목돼 관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믿과 죽음의 문제를 체험토록 하는 작품이라 할수있다. 김금지 박웅 권병길 최용재 조덕현등 출연.267­5907
  • 외언내언

    『푸르다 푸르다 붉어진 누이년 입술』­조승기시인은 홍도를 이렇게 읊기 시작한다.그는 이어 『달빛 배어 더욱 붉어진 누이년 울음』이라면서 시를 맺는다.◆영암질이 검붉은 바위섬 홍도.꼭두서니 저녁 노을을 받으면 더욱더 발갛게 수줍어져 버리는 섬이다.조화옹이 혼자만 감상하려고 서해 외딴 물위에 펼쳐 놓았던 커다란 수석의 전시장이라 할까.고은시인은 『절해의 미인』이라 했지만 태고로부터의 풍상을 이겨 내려오는 의연한 공자의 모습이기도.기암절벽의 절경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물고기가 보이는 파란물.그것은 천연의 수주관이다.◆유람선이 돌며 보여주는 홍도십경.흡사 동화의 세계를 노니는 듯하다.구멍바위·거북바위·만물상·돌문·부부탑….탕건바위는 옛날 귀양살이 왔던 양반이 절경에 놀란 나머지 탕건을 떨어뜨려서 굳어진 것.용왕이 벌이는 잔치에 왔던 원숭이가 홍도의 아름다움에 취해 용궁에도 못가고 돌로 굳은 것이 원숭이 바위이다.구멍바위(남문)굴문을 통과하면 1년내내 더위 먹지 않고 소원성취하며 고깃배는 만선을 이룬다고 했다.◆삼국시대 중국과 무역을 하는 뱃길의 기항지가 되었던 섬.여기 쉬면서 항로의 안전을 용왕님께 빈 다음 동남풍을 기다렸다가 뱃길을 잡았다.목포에서 서쪽으로 1백15㎞이니 그야말로 절해고도.지금도 쾌속정으로 2시간남짓 달리는 거리이니 옛날에는 어려운 뱃길이었음을 알게 한다.중국을 오가던 옛사람들은 그러나 홍도 풍란의 향기를 알았다.뱃전으로 난향이 와닿으면 홍도가 가까웠음을 10리밖에서도 기뻐했다는 것이니까.◆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국내 휴가지 1순위가 홍도인 것으로 나타난다.2위가 제주도,3위가 설악산이었다.조화옹의 숨겨논 비경이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그러모은 것.이여름 많이 몰려들 듯싶다.보고 감탄만 하고 와야 할텐데 더럽힐라….
  • 서울국제무용제/춤타래등 10개팀 참가/무용협,국내단체 심사 마쳐

    ◎발레 3·「한국」 5·「현대」2편… 9월20일 개막 오는 9월20일부터 11월1일까지 43일동안 서울 문예회관 대·소극장과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제14회 서울국제무용제에 참가할 국내 참가단체들이 최종 확정됐다. 대본과 실연장면이 녹화된 10분 길이의 비디오테이프심사를 거쳐 무용제 경연부문 참가가 확정된 국내 참가작품들은 한국무용 5편,발레 3편,현대무용 2편등 모두 10편이다. 국내 참가단체와 참가작은 다음과 같다. 한국무용 ▲춤타래무용단의 「회귀선」(장승헌작 김말애안무)▲윤덕경무용단의 「보이지 않은 문」(윤덕경작·안무)▲임학선무용단의 「마음꽃」(박희준작 임학선안무)▲이길주무용단의 「마지막 황후 노을로 타다」(민용태작 이길주안무)▲이은주무용단의 「문」(남기선작 이은주안무);발레 ▲발레 블랑의 「쉬빌레의 입술」(김명회작·안무)▲애지회의 「진주」(존 스타인백작 손윤숙안무)▲매오로시발레단의 「황금꽃의 비밀」(권태희작 김종훈안무);현대무용 ▲이정희현대무용단의 「살풀이­9」(이강백작 이정희안무)▲가림다현대무용단의 「나비,장자의 꿈」(오문자작 김승근안무) 작품평가위원은 조흥동(한국무용협회 이사장)전영동(문예진흥원 부원장)이상일(성균관대교수·평론가)김진걸(한국무용가)김백봉(〃)이운철(인천교대교수·발레무용가)김성일(〃)김화숙(원광대교수·현대무용가)박명숙(경희대교수·〃)등이다.
  • 북한그림/오승우 화가·목우회장(굄돌)

    예술의 전당에서 5월23일부터 6월4일까지 북한미술전이 열렸다. 분단된 지 반세기가 다 되도록 북한미술은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오랜세월 이들으 과연 어떠한 형태로 변했을까.무엇을 주제로 많이 그렸을까.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서니 우선 화사한 실경 산수화의 대작들이 눈길을 모은다. 운해에 싸인 백두산 천지,첨봉들이 솟아있는 금강산의 만추,파도가 부서지는 해뜨는 동해,저녁 노을이 낀 묘향산의 정취등 북한땅 명승지가 실제로 보는 듯 선명하고 아름다웠다.솔잎 단풍잎 하나하나 그릴 정도의 사실능력,고도로 발달된 기교파적 그림이었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그림을 조선화라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화하고는 그 기법이 다르다.다시 말해서 전통적 산수화에 서양화의 사실적 기법을 접목시킨 그림으로 여백이 없고 입체적인 표현으로 인상파 그림같은 실재감을 느끼게 한다. 유화는 소품들이지만 이것 역시 철저한 사실주의적 아름다운 풍경화 들이다.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이 동양풍 자수인데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작품들이다.병아리 눈동자 속에 비친 반사,새들의 깃털,하나 하나의 섬세한 표현은 마치 17 ∼ 18세기 태서명화의 세밀화와 다를 바가 없었고 대리석 조각은 소품들이지만 탁월한 조형적 기교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 모든 작품이 너무나 획일적인 양식으로 개성이나 주관적 표현을 찾아볼 수 없어 예술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말을 안할 수가 없으나 북한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관에 의한 통제성등으로 작가들의 개성을 자유 자재로 표현할 수 없는 환경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이 전시회가 북한 미술의 전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베일에 가린 북한 미술의 일면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싶다. 아무쪼록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작품과 작가들이 교류하면서 반세기동안 단절된 마음의 벽이 하나 하나 허물어지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 화합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희망하여 마지 않는다.
  • 요절시인 고정희씨 추모행사/9일 1주기맞아 여성문학인위등서 준비

    ◎문학세계 재조명·고인의 뜨겁던 삶 회고/미발표작등 45편수록 유고시집 발간 지난해 6월9일 지리산 등반도중 사고로 숨진 시인 고정희씨의 1주기를 맞아 고인을 기리는 각종 추모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문학인위원회는 9일 하오7시 서울 강남출판문화센터에서 「고정희시인 추모의 밤」행사를 가지며 「또 하나의 문화」도 13일 하오7시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우리 봇물을 트자2」라는 부제로 고정희시인 1주기 추모행사를 연다.또 창작과비평사는 기일에 맞춰 고시인의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를 펴낸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최하는 「고정희시인 추모의 밤」행사에서는 문학평론가 강형철 김혜영씨가 고시인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고 조옥라(서강대교수),이경자씨(소설가)가 고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또 김초혜·김남주·천양희시인이 고시인의 유고시를 낭독하고 차정미·박몽구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며 정은숙(성악가)박종권(국악인)박선욱씨(시인)가 추모의 노래를 부른다. 「또 하나의 문화」가 주최하는 「우리 봇물을 트자 2」행사는 굿형식으로 꾸며지는데 국악인 채수정,무용인 신경옥·이정희씨 등이 출연,여성운동가로서의 고인의 업적에 초점을 맞춘다.「또 하나의 문화」는 이에 앞서 5일 하오7시 서울 연희동 사무실에서 열리는 월례논단 모임에서 문학평론가 정효구·박혜경씨를 초대,고인의 시세계를 살피는 시간을 마련한다. 한편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오는 고시인의 유작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에는 「밥과 자본주의」「외경 읽기」연작 등 45편의 시가 실리는데 몇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미발표작이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아니면/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외경읽기­모든 사라지는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중) 전남 해남 출신으로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75년 현대시학에 시 「부활 그 이후」「연가」가 추천되어 시단에 나온 고시인은 79년 첫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로부터 마지막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에 이르기까지 10권의 시집을 통해 이 시대의 절망 또는 희망을 종교적 도덕성의 세계관 혹은 여성해방주의자의 시각으로 노래했다. 특히 80년대 중반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시대의 위기」로 깊이 인식,시집 「눈물꽃」(85년)등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강렬한 현실참여적 시를 썼던 고시인은 80년대후반 들어 여성운동쪽에 깊이 관여,최초의 여성문제전문 주간지인 여성신문의 편집주간을 맡는 한편 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89년),「여성해방출사표」(90년)등을 통해 엿어해방의 문제를 시로 형상화 했다.
  • 지구를 살리자/국내외 환경도서 총집합

    ◎5일 「환경의 날」기념… 7일까지 현대백화점서 전시/블라질 환경정상회담 때맞춰 개최/일반인 위한 교양도서등 523종 선봬 환경문제가 전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제20회 세계환경의 날인 오는 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환경정상회담(UNCED)이 열리는 것과 때를 같이해 환경처는 2∼7일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환경사진 및 환경도서 및 환경사진전시회를 연다. 이번에 전시될 환경 관련 책들은 국내에서 나온 2백73종과 국외에서 나온 2백50종등 모두 5백23종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 출간된 환경서적중 70%에 해당하는 1백90종은 89년이후에 나온 최근의 책들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오래지 않음을 반영해준다. 환경 관련 책들은 「오염」이니 「공해」니 하는 단어들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보통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겐 상당한 거리감을 주는 것이 사실.더욱이 국내 환경전문가나 환경학자들이 쓴 책은 대부분 해외의 출판물을 엮어 만든 교과서류의 딱딱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일반독자들을 확보하려는 의도는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이번에 환경도서전시회에 전시되는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도서 1백21종 가운데 순수한 국내저서는 82종.80년대 후반까지 외국번역서가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최근에는 국내 전문가들의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다.그러나 환경문제는 생물학,기상학,자원공학 등 여러분야의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한 만큼 학계전반이 관심을 갖고 저술작업을 펼쳐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환경관련 정기간행물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매년 기껏해야 1,2종이 창간되던 환경관련 잡지들이 올해 벌써 5종이 새로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배달환경연구소가 지난달 처음 내놓은 「곶 됴코 여름 ▦나니」를 비롯,지구환경보호협회가 1월 창간한 「지구환경」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3월 창간된 「까치」(웅진) 등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환경문제를 다룬 문학작품도 소설 13종,시 1종,동화 5종이 있다.시집은 고형렬씨가 쓴 「서울은 안녕한가」(삼진기획)가 유일하며 소설로는 박해강씨의 「검은 노을」(실천문학사),이남희씨의 「바다로부터의 긴 이별」(풀빛),김수용씨의 「이화에 월백하거든」(현암사),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정신세계사) 등이 있으며 동화집으로는 김현옥씨가 성바오로출판사에서 펴낸 「아이야,바다는 눈물로 만들어졌단다」「새앙쥐 쵸쵸」등과 일본인 다지마신지가 쓴 「가우디의 바다」(정신세계사) 등이 있다. 지금까지 환경문제를 다룬 책중에 베스트셀러 종합부문에서 상위권에 든 책은 아직 없으나 과학부문에서는 이따금 나타나고 있다.그 가운데 환경문제에 대한 철학을 심어주기 위해 지난해 이화여대 최형선교수가 펴낸 생태학서 「홀로세의 공룡」(현암사)은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현암사는 이 책이 일반독자들의 인기를 끌자 어린이판을 곧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서울∼산동성 직통전화/내년 2월에 개통/한­중,오늘 각서체결

    우리나라와 중국 산동성을 직접 연결하는 국제전화및 팩시밀리 서비스가 93년2월부터 개시된다. 체신부는 27일 한국통신 노을환 국제통신사업본부장이 중국을 방문,28일 서울∼산동성간 국제 임차위성인 인텔새트위성을 이용한 30회선의 국제통신망을 구축키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한다고 밝혔다. 89년 위성을 통한 직통회선이 서울∼북경간 정식 개통된뒤 91년 한중간 국제통화량은 월평균 22만건이었으며 이중 15%가량이 산동성 통화량으로 추정되고있다. 서울∼산동성간 직접 통신망이 구축되면 현재 북경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한중간의 통신망이 다원화되며 특히 산동성내 경제특구에 입주해있는 국내기업들이 북경을 거치지않고 국제전화·팩시밀리및 데이터를 직접 연결시킬 수 있어 통신소통이 개선된다.
  • 레코드사·음향기기사가 마련/음악감상회 청소년에 인기

    ◎성음등 4곳,클래식·영상음악 소개/전문가가 해설… 초청연주회도 개최/“음악 아닌 음향애호가 양성” 비판시각도 레코드사와 음향기기제작사들이 주최하는 음악감상회가 뿌리내려가고 있다. 대부분 입장료가 없는 이런 음악감상회는 기본적으로 음악애호가를 양산해 레코드나 음향기기판매의 고객을 확보한다는 판촉활동의 하나로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 음악감상회가 주로 시간이 있어도 갈곳이 마땅치않은 청소년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데다가 대부분 토요일 하오 비슷한 시간대에 열림으로써 주최사들끼리의 경쟁으로 내용도 비교적 충실해서 갈수록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행사의 선두주자는 지난 76년부터 매주 토요일 하오3시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정기레코드 감상회」를 열고 있는 주식회사 성음이다. 고전음악을 담은 레코드제작에서도 선두인 이 회사의 감상회는 전문가들이 진행을 맡아 청소년들에게 멀게 느껴질 수 있는 고전음악을 쉽게 해설해 인기를 끌며 항상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오디오제작사인 주식회사 인켈도 지난 87년 5월 종로구 명륜동에 1백여개의 좌석을 갖춘 「오디오월드」를 만들어 매일 레코드와 레이저디스크를 이용한 영상음악을 틀어주고 있다. 또다른 오디오업체인 아남전자가 매달 3번째 토요일 하오3시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여는 「제3토요음악감상회」도 항상 좌석수이상의 청중이 몰리는 감상회이다. 지난 21일 43번째 감상회에서는 오디오평론가 이영동과 성악가 김진수의 오디오강좌와 영상음악감상,테너 김진수의 창법해설을 곁들인 「떠나가는 배」「산노을」「돌아오라 소렌토로」,초청공연으로 프란츠 단치의 「목관5중주곡 작품 56의1」이 연주되었다. 같은 시간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는 서울음반이 매달 여는 청소년음악회가 있었다. 이달로 63회를 맞은 이 정기음악회는 클래식음반과 대중음악음반을 골고루 만드는 회사답게 1부 클래식과 2부 대중가요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한편 지난해까지 「신나라 라이브홀」에서 매달 무게있는 민속악연주회를 열었던 국악음반전문제작사 신나라레코드는 지난해말 라이브홀이 폐쇄된 뒤에는 실내악단어울림과 원장현등 소속 음악가들이 음악회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기회가 마련되는대로 다시 상설연주회를 열 계획이다. 음악인들은 음악관련기업들의 감상회에 대해 일단 음악애호가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내용의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프로그램이 「기계」와 「레코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자칫 청소년들을 음악애호가 아닌 「오디오매니어」나 음반수집가 등으로 만들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음악이 아닌 음향만을 추구하는 애호가를 대량으로 길러낼 수도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다.
  • “완벽한 합성음의 음악회 선보였죠”(검퓨터로 만납시다:5)

    ◎음악동호회 셈틀소리/애호가 380명 모여 월1회 소공연회/작곡과정도 간편… “오선지 필요없죠”/가수 신해철도 취입때 이용… 장비 비싼게 흠 『석양에 노을지는 꽃잎위에 머나먼 곳으로 손짓하는 저편 향기가…』 지난달 15일 컴퓨터음악통신동호회인 「셈틀소리」가 서울종로2가 코아아트홀에서 개최한 신곡발표회에는 1백80여명의 음악애호가들이 참석,이색적인 컴퓨터 음악발표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컴퓨터음악만 있으면 소규모 공연을 갖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컴퓨터음악이 반주를 맡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되거든요』 셈틀소리 회장인 방재혁씨(30·중앙일보행사팀)는 피아노나 기타반주를 대신해 노래를 부를 수있는 컴퓨터음악이야말로 우리의 생활을 즐겁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도구라고 예찬한다. 셈틀소리만 셈틀(컴퓨터)에서 나오는 소리(음악)란 뜻. 컴퓨터통신을 통해 음악을 연구하고 즐기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컴퓨터음악의 기술적인 분야를 다루는 미디(MIDI)파트와 컴퓨터음악을 이용,편·작곡하고 실제로 음악을 노래하는 라이브파트로 나뉘어 있다. 3백80여명의 회원중 라이브파트가 30여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미니파트에 속한다. 『컴퓨터음악을 하면 작곡하기가 매우 쉽습니다.악상이 떠오르면 피아노의 건반에 해당하는 신디사이저를 두드려 컴퓨터에 입력한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를 수정 보완해 편집하면 곡이 완성됩니다』 셈틀소리 회원인 이승훈씨(29·한국전산)는 『피아노를 이용해 작곡할때는 구상한 곡을 다시 들으려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거나 처음부터 다시 피아노를 쳐야하지만 컴퓨터음악은 그런 과정이 필요없다』고 편리성을 알린다. 실제로 작곡가나 가수들 사이에서는 컴퓨터음악이 필수품화돼 최근 인기정상인 가수 신해철 윤상등이 레코드취입때 반주로 컴퓨터 음악을 이용한다. 회원 구정래양(이대 문헌정보과)은 데이콤PC서브를 통해 이 모임은 알게 됐다며 『회원들이 대부분 전에 음악활동을 했던 이들로 음악에 박식한데다 컴퓨터통신은 이용,음악에 관한 정보교환이 빠르다는 점에서 가장 유익한 취미 모임』이라고 자랑한다. 지난89년 가을 창립된 이 동호회는 월1회 정기모임과 연1회의 정기공연외에 틈틈이 소공연을 마련,컴퓨터음악을 보급해간다. 컴퓨터음악판매업소인 강스튜디오에 근무하는 한경희씨(25)는 『현재 컴퓨터음악장비와 소프트웨어가 대부분 외제인 것이 큰 불만』이라며 값싼 국산장비와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으면 컴퓨터 음악 대중화는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아래 동호회원중 일부는 컴푸터 음악장비와 프로그램 개발에 심험을 기울이고 있다고 알린다. 셈틀소리회원은 20,30대의 젊은이가 주류이지만 교수·의사·군인들도 참여하고 있고 전KBS경음악단원인 홍사철씨,강스튜디오 운영자인 강계남씨등 컴퓨터음악 전문가도 있다. 셈틀소리회원들은 재즈(18%),와 고전음악(18%)을 가장 좋아하고 팝,록,뉴뮤직,블루스,전위음악등 다루는 음악세계가 다양하다. 지금 컴퓨터음악이 확산되는데는 장비값이 만만치 않은것이 가장큰 흠. 피아노건반인 신디사이저가 60만∼3백만원,컴퓨터의 악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카드가 18만∼35만원,소리를 조절하는 사운드모듈이 60만∼2백만원이다. 실제 셈틀소리회원중에는 장비값이 비싸서 악기를 전혀 갖추지 않은 사람도 17%나 된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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